청명이 오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간다. 멀리 하늘 나라로 떠나는 어머니를 보내기 싫어 애달픈 가슴을 뜯으며 몸부림치던 일이 어제만 같은데 어느사이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날 어머니는 생전의 소원대로 고운 한복을 입고 가셨다. 어머니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모습이였고 우리 자식들이 마지막으로 보는 어머니의 옷차림이였다. 연한 보라색 바탕에 매화꽃이 돋힌 한복을 입고 조용히 가시던 어머니, 어머니의 그 마지막 모습은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여든 하나에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도 마지막 길에 입고 가실 옷을 손수 미리 지어서는 10여년이나 고이 간직하고 계셨다. 목단강에 있는 딸집이나 대경에 있는 손녀집에 놀러 가실 때면 큰 보따리속에 또 작은 보따리가 들어 있었는데 그 보따리는 몇겹으로 싸고 또 싼 할머니의 '보물'이였다. 내가 철이 든 퍼그나 후에 일인데 그 보따리가 늘 궁금하던차라 한번은 보여줄수 없냐고 물었다. 했더니 할머니는 보따리를 내앞에 풀어놓는것이였다. 새하얀 천으로 한뜸한뜸 바느질하여 만든 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버선이였다. 그때는 그저 슬하에 아들없이 딸자식만 둘을 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자식에게 부담이 될가봐 미리 그런것들을 준비하여 둔것이 아닐가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달랐다. 환갑을 쇠고 몇년이 지난후에도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으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 딸이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인지 은근히 걱정스러워 셋째 언니에게 가만히 물었더니 차차 어머니에게 직접 엿주어보자고 건의해왔다. 그러던 어느 하루 퇴근길에 민족상점에 들렸던 나는 고운 보라색 한복이 눈에 안겨오기에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한벌 골랐다. 어머니는 여러 색상중에서도 보라색을 특별히 좋아했기 때문이였다. 바로 그날이였다. 어머니는 나를 곁으로 조용히 부르더니 "내가 저 세상에 갈 때 이 옷을 입으면 어떻겠냐?"며 나의 손을 꼭 잡는것이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외할머니와는 달리 그후 그 한복을 세번 꺼내 입으셨다. 로인들의 대형 활동에 한번, 가정촬영에 한번, 또 어느 한번은 어머니의 생일날에 입으셨던것으로 기억난다. 한번 입고난 후이면 깨끗하고 말쑥한 비닐로 동정을 다시 갈아달고 어디 허물이나 가지 않았나 꼼꼼히 살피셨고 번마다 다리미로 반듯하게 다려서는 정히 숨겨두군 하였다.
그런 용단을 내리신 뒤 어머니는 많이 변하신것 같았다. 매번 어머니의 옷궤에서 그 한복을 꺼낼때만은 젊은 나이에 너무도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큰딸을 못잊어 우리앞에서 마음놓고 울어볼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였다. 항상 딸을 가슴에 묻고 쉬이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가 그 한복을 무릎우에 놓고는 "나는 세월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너 언니를 하루 빨리 만날텐데 ..."하면서 몹시 락루하셨는데 그래도 그렇게 마음놓고 울고나면 속이 확 트이는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보라색 한복은 단지 마지막 길에 입고 갈 옷뿐만 아니라 영영 눈감을 그 순간을 태연하고 차분하게 대비하는 마음의 준비가 아니였을가.
어머니는 생전에 입는 옷에 퍼그나 집착하는 편이여서 딸과 사위들은 명절이나 생일 때면 돈보다도 옷을 선물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외투요, 자켓이요, 원피스는 물론 한복만 해도 네벌이나 되였다. 후날 어머니는 년세가 들면서 기력이 많이 못해지자 자신의 앞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지 아까운 옷들이 그저 페물로 된다며 농촌에 있는 친척들이나 이웃들에 나누어 주라고 여러번 말씀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말을 따르지 않자 어머니는 손수 생생한 한복 치마를 뜯어서는 이불속도 만들고 방석도 여러개나 만들면서 옷에 대한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보라색 한복만은 싸고 또 동여서는 깊숙이 보관하며 애착을 보였다.
셋째 딸집에 놀러가 한겨울만 나고 돌아오신다던 어머니가 병환으로 겨울을 두번이나 보내고도 돌아오지 못하고 "내집에 가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외우던 소원 이루지 못한채 영영 저 세상으로 가셨다. 내가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과 함께 셋째 언니의 부탁대로 어머니가 마지막 가는 길에 입고갈 그 보라색 한복을 들고 허둥지둥 언니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눈을 감으신 뒤였다. 그때까지도 따뜻한 체온이 흐르는 어머니 몸에 한복을 입혀주며 나는 오열을 터뜨렸다. 왜 이 막내딸을 기다리지 않고 눈을 감았냐고, 왜 이 딸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그렇게 가시느냐고... 비오듯 흐르는 눈물은 어머니가 입고 가는 연한 보라색 한복에 떨어져 그 자리 자리는 진한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것은 이 딸이 어머니에게 입혀준 마지막 옷이였다...
서서히 사라져 가는 어머니를 바래면서 나의 이 눈에 사진처럼 진하게 찍힌 그 보라색 한복, 어머니는 저 하늘나라로 가시면서도 깨끗하고 고운 모습 남기셨고 일생동안 몰부었던 자식사랑을 마지막 입고 가는 그 한복에 고스란히 놓고 가셨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그 보라색 한복은, 어머니의 고운 그 마지막 모습은 오늘도 이 딸의 가슴을 아프게 뜯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