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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효율성에대한 생물핮적 비유

구봉88 2009. 10. 2. 13:26

 

 

최근에 금융 리스크 문제로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시장 효율성(market efficiency)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를 읽게 되었다:

생물학자들은 먹이 경쟁이 여러 전략이 공존하는 안정된 진화적 평형 상태를 낳는다고 본다. 경쟁자들이 하나의 먹이 터에서 만난다면, 이들은 부상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먹이를 두고 싸우거나 — “매파” 전략 — 아니면 물러나서 먹이를 포기 — “비둘기파” 전략 — 할 수 있다.

 

 만약 모든 개체들이 싸우려 든다면[역주: 모두가 매파 전략을 쓰는 경우], 물러설 줄 아는 한 돌연변이체가 다른 여느 개체들보다 번식 확률이 높을 것이다. 모두가 싸우는 상황에서는 부상의 위험도 크고 결국 하나의 승자만 많은 먹이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비둘기파 전략을 쓰는 개체는 이들이 싸우는 사이에 가끔 혼자만의 먹이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개체들이 비둘기파 전략을 쓴다면, 매파 전략을 쓰는 한 개체가 아주 많은 먹이를 차지할 것이다. 결국 진화적 평형 상태는 다음 둘 중의 하나로 수렴한다. (a) 일부는 매파 전략을 따르고, 다른 일부는 비둘기파 전략을 따른다. (b) 모두가 무작위적인 전략을 따르는, 즉 어떨 때는 매파로 행동했다가 다른 때는 비둘기파로 행동하게 된다. 어쨌건 모두가 똑같이 고정된 전략을 따르는 경우는 확실히 배제된다.

 

이런 비유는 시장 효율성에도 즉시 적용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가장 “저평가된” 자산을 찾아 경쟁한다. 매파 전략은 종목 분석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비둘기파 전략은 별다른 정보 분석 없이 [역주: 남들 눈치 보고 대세를 쫓아] 수동적 투자를 하는 것이다. 분명히 모든 사람들이 종목 분석을 하면, 그로 인한 편익은 비용보다 적어질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투자한다면, 종목 분석의 편익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결국 균형점은 어떤 이들은 분석하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는 중간 상태이다. 뭔가 익숙하게 들리시는가? 최종 균형점은 수동적이던 투자자들이 새로 분석에 나설 만큼도, 반대로 적극적이던 투자자들이 종목 분석을 그만둘 만큼도 아닌 상황이 된다.

Roll, R. (1994). What every CFO should know about scientific progress in financial economics: What is known and what remains to be resolved. Financial Management, 23(2), 69-75. [Malevergne, Y. and Sornette, D.(2006). Extreme Financial Risks: From Dependence to Risk Management. Berlin: Springer-Verlag.에서 재인용]

이 글을 쓴 UCLA의 리처드 롤 교수가 금융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기는 하지만, 진화생물학까지 정통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으니 약간의 오류야 눈 감아주자.

 

그보다도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시장 효율성의 원천에 대한 시사점이다. 요즘 글로벌 금융위기로 홍역을 치루고 있다보니 그 동안 시장만능 지상주의자들의 오만함에 반감을 가졌던 분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 시장주의에 대한 비판 글들을 읽다 보면, '시장'에 대한 반감이 지나친 나머지 좀 오버한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많이 보인다.

 

특히 최근에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1이 유행이다보니 反시장주의를 표방하는 분들이 이를 차용하는 경우가 있다.

 

 행태경제학에서는 인지과학, 심리학 등의 연구결과를 적극 활용하여 인간의 비합리적 행태 속성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른바 주류경제학(또는 표준경제모형, SEM)에서 간과되어왔던 부분을 새롭게 해석-조망하고 경제학 체계를 보완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자의적으로 받아들여 완전합리성을 가지는 경제 주체(Homo economicus)를 가정하고 전개한 표준경제모형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무시했으니 완전히 틀렸다는 극단적인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더 나아가 이를 근거로 시장의 효율성은 근본적으로 허구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주류경제학계가 배타적이고 지나치게 심미주의적인 경향에 빠져드는 문제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준경제모형 체계가 아예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학에서도 마찰이 없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가상의 점입자(point particle)강체(rigid body)에 대한 이론을 전개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기체 상태방정식 같은 것들이 다 틀려 먹었으니 쓸모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디테일을 희생하더라도 간략한 모형화를 통해 유용한 시사점을 끌어낼 수 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경제 시스템에 대해 불완전하나마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표준경제모형은 유용하다.

 

시장의 효율성 문제는 더 심오한 측면이 있다. 인간의 비합리성과 反시장주의를 성급하게 엮으려는 분들은 "시장 주체들이 불완전하니 시장도 비효율적이다"라는 명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는 한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복잡계적 관점에서 모형들을 만들어보면 비합리성은 커녕 무지에 가까운 경제주체를 가정해도 시장 전체적으로는 효율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다중지성(swarm intelligence)의 문제라든가, 몇 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제임스 수로위키의 『The Wisdom of Crowds(대중의 지혜)』 등도 이와 관계가 있다.

"시장 주체가 불완전해도 시장은 꽤나 효율적일 수 있다"가 더 정확한 말이다.2

글머리에 소개한 롤 교수의 글도 그런 맥락에서 흥미롭다. 생태계는 굳이 신의 존재를 가정하거나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생물체가 없이도 나름의 메커니즘에 의해 꽤나 놀라운 항상성을 보여준다.

 

시장도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많은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시장에도 다양한 전략 — 그것이 고도의 지적 연역에 의해 나온 것이건 경험적인 휴리스틱이건 — 을 구사하는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자연생태계를 이루는 수많은 생물들처럼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길게 보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롤 교수의 비유처럼 우리가 너무나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이나 전체적인 시장 시스템이나 사실 많은 부분 진화적 메커니즘이 작용하여 만들어진 산물이다. 생태계처럼 시장도 결코 완전무결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간단히 그 미묘한 효율성을 간과할 수도 없다.

The EMH is an idealization of a self-consistent dynamical state of the market resulting from the incessant actions of the traders (arbitragers). It is not the out-of-fashion equilibrium approximation sometimes described but rather embodies a very subtle cooperative organization of the market.

효율적 시장가설(EMH)은 거래자(차익거래자)들의 끊임없는 행위로 만들어지는 시장의 일관된 동태적 상태를 이상화한 것이다. 이것은 간혹 언급되는 것처럼 한물 간 균형의 근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시장의 아주 미묘한 협력 구조를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Malevergne, Y. and Sornette, D. (2006). Extreme Financial Risks: From Dependence to Risk Management. Berlin: Springer-Verlag.

우리는 자연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보여지는 자연 생태계의 신기한 모습들 앞에서 경의의 찬탄을 쏟아내고는 한다. 그리고 자신의 통찰력을 과대선전하고 (제대로 검증 받지 못한) 이론으로 자연계의 변화를 꿰뚫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아직 자연 생태계의 작동원리의 전모를 파악하려면 멀었다는 공통의 인식이 그런 자세를 자아내는 것일 게다.

 

홈지기는 많은 분들이 시장을 비롯한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도 그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시장 효율성은 이를 옹호하는 방향이건 부정하는 방향이건 단정과 맹신의 대상이어서는 곤란하다. 무조건 시장만 믿으면 만사형통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나, 시장은 절대 악이고 주류경제학자들은 모두 사기꾼 집단인 양 낙인찍는 것 모두가 섣부른 태도이다.

 

경제 시스템은 자연 생태계 만큼이나 아직도 많은 부분을 파헤쳐야 하고, 기존의 경제학은 물론, 다양한 학문의 지식을 결합시켜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모두가 좀 더 겸허하게 무지를 인정하고 시장의 본질에 접근해가려는 노력을 계속할 때,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경제 시스템을 보다 유익한 곳으로 바꿔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행동경제학, 행동주의 경제학 등의 번역이 널리 쓰이는데 홈지기는 '행태'라는 번역에 조금 더 끌린다. 
  2. 이 문제에 대해 쉽게 다룬 대중과학도서로는 국내에도 번역된 필립 볼(Philip Ball)의 『Critical Mass
    (번역서명: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