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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국인 유학생 실태

구봉88 2010. 1. 30. 10:36

니하오! 중국 유학생 5만명 시대


# 1.


지난 31일 서울 한국외국어대 앞 작은 도넛 가게. 모처럼 대학가를 찾은 기자는 순간 이곳이 중국인가 착각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손님들의 대화 소리가 온통 중국어였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테이블의 절반 정도가 중국 유학생들이었다. 또 다른 가게에선 중국 유학생이 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주문을 받는 말투가 어색해 눈치채기 전까지는 외국인인지 몰랐을 뿐이었다.

#2.

수도권에 있는 한 대학을 다니는 김아무개(25)씨는 최근 한 과목 강의에서 낭패를 겪었다. 조별 발표가 중요한 수업에서 3인 1조로 모둠을 짰는데 나머지 두 명이 중국 유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발표 준비는 벅찬데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두 사람과 함께 해야 해 결국 혼자 준비를 도맡을 판이다. "무엇보다도 만나면 '니 하오~' 해야 하는지, 외국 학생하고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더 고민이에요."

'가깝고 싼 나라'에 정부·지방대 유치 맞물려
해마다 30% 급증…전체 유학생의 70% 차지
언어와 문화 달라 교수도 학생도 대략난감
불법취업·위장유학에 범죄자 전락 부작용도


한국 대학가가 중국 유학생 5만명 시대를 맞았다. 한국에 공부하러 온 외국인 유학생이 최근 7만명을 넘어섰는데, 중국인 유학생들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새로운 대학문화가 싹트는 한편 편견과 오해가 뒤엉켜 해프닝과 불상사가 빚어지기도 한다. 대학가 주변에는 중국식 술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작은 차이나타운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한국 대학생들은 이제 새로운 동학(同學)들과 이웃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수업 풍속도들

전주 우석대 유통통상학부 전홍철 교수의 강의에는 반드시 한국 학생과 중국인 유학생이 함께 조를 이뤄 공부해야 한다. 전 교수가 요구하는 사항이기도 하지만 수강생 50여명도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이 반반씩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다 보니 함께 발표 준비를 하는 게 쉽지 않아도 나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중국 학생들과 종종 논란도 벌어진다. 한국외대 박아무개(26)씨는 "중국 학생들의 약속 문화가 달라 애를 먹는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박씨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조 모임 약속 시간에 중국 학생이 늦는 경우가 잦았다"며 "우리끼리 중국 학생들은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나누곤 했다"고 말했다. 극심한 학점 경쟁 때문에 유학생과 같은 조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학생들도 있다.

중국 유학생들이 늘면서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재미가 생겼다는 환영 의견도 많다. 연세대 3학년 정아무개(25)씨는 "한국어를 잘 못해도 열심히 참여하고 친해지려는 중국 학생 덕에 서로 중국어와 한국어를 공부하며 도움을 주고받았다"며 "잘 몰랐던 중국 음식과 노래 등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강의 진행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아예 영어로 강의를 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 경우 정작 국내 학생의 이해도가 떨어지고, 외국 학생들도 영어를 모두 잘하는 것이 아니어서 어차피 실현되긴 어려운 아이디어에 그치고 있다.

대학가 노래방도 중국노래 바람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이 몰려 있는 서울 신촌과 서울대 부근 봉천동 일대 등 대학가에는 중국 유학생들을 겨냥한 양고기 꼬치구이점 등이 늘고 있다. 중국 학생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한국외대 앞 이문동 골목에는 중국음식 재료 가게까지 생겼다.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노래방에도 중국 바람이 분다. 요즘 노래방 노래책에는 중국 가수 왕리훙의 '아이더더티'처럼 올해 초에 나온 노래들이 거의 시차 없이 올라온다. 중국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 10여년 전부터 중국 노래가 노래방에 들어가기 시작한 뒤 요즘에는 유학생들이 즐기는 최신 곡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가 부동산 중개업소들도 중국 유학생들 덕에 일감이 늘었다. 경희대 부근 청솔부동산 송영미 사장은 "새 학기 시작 전인 1~2월이 피크이고, 또 학기 중에도 단기 어학연수생들이 몇백명씩 함께 오는 경우도 있는데, 기숙사를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이 방을 구하러 온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들이 주로 찾는 방은 보증금 500만~1000만원에 월세 50만~60만원짜리가 많은데, "요즘에는 위안화가 절상되면서 예전에는 지하방도 마다지 않던 중국 유학생들이 더 좋은 방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송 사장은 전했다. 중국 유학생들은 음식 문제 때문에 하숙보다는 원룸을 선호하고, 원룸도 요리를 자유롭게 해 먹을 수 있도록 독립된 곳을 선호한다. 원룸 주인들은 "중국 학생들은 월세가 밀리는 경우가 없어" 선호하는 편인데, 일부는 "방을 지저분하게 써서 싫다"는 경우도 있었다.

대학가 상인들은 중국인 유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특히 신입생이 줄고 휴학생이 늘어나는 지방대학 부근 상점은 더욱 중국인 유학생들을 반기는 편이다. 충북 청주대 부근에는 중국어로 쓴 주점 펼침막이 내걸리기까지 했다. 지방대학 주변에선 술집이나 식당 외에도 미용실·안경점·편의점·책대여점도 매상의 20~30%가 중국인 학생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올 정도다.

중국인 유학생 5만명 넘어서

한국으로 중국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유학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3년 재중 동포를 포함해 5607명이었던 중국 유학생은 해마다 30% 정도씩 늘어, 올해 초 처음으로 5만명을 넘어서며 5만6034명(법무부 집계)에 이르렀다.

중국 학생들이 한국으로 많이 오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물가는 일본보다 싸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에 한국 기업 진출이 늘면서 한국어 습득 수요가 많아지고, 한국 드라마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것도 한국 유학이 늘어난 이유로 꼽힌다. 연세대 어학당에 다니면서 9월에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루어핑(25)은 "한국은 일본보다 유학 비용이 절반 정도밖에 들지 않고, 일본은 이미 중국인 유학생이 너무 많아서 입학이 한국보다 까다롭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에서 유학하고 돌아가면 중국에 있는 한국 회사에 취직하기 유리하다는 점도 유학생들이 한국행을 고려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유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국제화 시대에 맞춰 우수 학생을 유치해 국가간 우호관계를 높이고 인적 자원 네트워크를 넓히기 위해 2012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10만명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신강탁 재외동포교육과 과장은 "우리나라로 오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중국의 인구를 감안하고, 또한 미국이나 일본으로 가는 중국 유학생들의 수에 견주면 우리나라로 오는 유학생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의 전체 외국인 유학생은 12만3829명이고, 이 가운데 중국인 유학생은 7만2766명으로 58.8%에 해당한다.

대학들마다 "중국 유학생 모셔라"

중국인 유학생이 급증하는 것은 지방대학들의 열악한 사정과 관련이 크다. 인구 감소로 지방대학들은 신입생 정원을 다 못 채우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다. 실제 올해 1학기 정원을 못 채운 대학은 20여곳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유학생들은 정원외로 받을 수 있어 열악한 대학 재정을 보충할 수 있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

지방대학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외국에서 한국 유학설명회를 여는 것은 기본이고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대학과 교환학생 방식으로 데려오고, 등록금과 기숙사 관리비를 면제 또는 할인해 주는 바겐세일도 한다. 지난해 기준 외국인 유학생 수 국내 8위인 청주대는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이 국내 학생의 절반 수준인 200여만원 선이다.

대전 우송대는 외국인 유학생 대상 단과대학인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을 새로 열었다. 이렇다 보니 전체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지방대학에 적을 둔 외국인 유학생이 60~70%에 이른다.

유학생 유치 경쟁으로 중국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부작용도 벌어지고 있다. 유학생들이 불법 취업을 하기도 하고, 돈벌이를 위해 '위장유학'을 오는 경우도 생긴다. 중국 현지 브로커에게 1천만원 안팎의 수수료를 주고 위조 고교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만들어 입국한 가짜 유학생이 적발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이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 합법적으로 유학비자(D-2)를 받고 온 유학생도 학업보다는 아르바이트에 치중하다가, 취업비자 없이 일하다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주로 유학비자나 일반연수비자(D-4)를 받고 들어오는데, 유학비자를 받은 경우는 주말이나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지만 학기 중에 일을 하려면 시간제 아르바이트 자격(S-3)을 얻어야 한다. 전화 금융 사기인 '보이스피싱'에

국내 중국인 유학생이 직접 나서거나 이용당하는 일도 잇따라 생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