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명품

명품 로고 이야기

구봉88 2010. 9. 28. 00:29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가방을 볼 때, 늘 나에게 의문이었던 점은 ‘왜 사람이 어느 브랜드 것이라는 불도장을 찍은 듯한 로고 프린트에 열광하는가’였다(로고 프린트 백을 소장한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그러나 내 눈앞에서 윙윙거리는 LV, GG, FF, CC 등 브랜드 머리글자 시리즈는 늘어만 가니, 이 로고 라인들의 선풍적인 인기는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내 취향과는 반대로, 왜 브랜드들이 로고 라인에 열광하는지는 자못 선명하다. 그것은 마치 국가를 세울 때 국가의 탄생 설화와 국기 같은 상징물을 중요시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브랜드들은 앞날을 좀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브랜드의 상징인 로고를 발전시키는 데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에디터에게도 이 로고 백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저 코코 샤넬 머리글자의 조합이라 여겼던 CC 로고가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수녀원 창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 달빛이 비치는 수도원의 창문이 마치 C자가 등을 댄 듯 보이는 것이었다 - 다분히 순정만화 같은 스토리를 들은 후, 왠지 모르게 CC 로고가 새겨진 샤넬 백에 정이 가는 것이었다.

이렇듯, 루이 비통의 LV, 구찌의 GG, 펜디의 FF 등에는 단순한 머리글자 이상의 재미난 뒷얘기가 많다. 브랜드의 창립자인 루이 비통의 머리글자인 LV와 모노그램 플라워, 이 두 가지 로고에는 아버지에게 바치는 존경이 담겨 있다. 패션 비즈니스에 천재적이었던 루이 비통의 아들인 조르주 비통은 자신의 성공이 모두 아버지의 덕이라 여겨 1896년, 아버지를 상징하는 LV 로고를 디자인하게 된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 꽃 모양을 새긴 모노그램 플라워 로고를 발표해, 아버지에게 헌사한다. 그의 각별한 효도심 덕이었을까? 루이 비통의 성장은 거침없는 질주 그 자체였다.


구찌를 대표하는 GG 로고는 회사 창시자인 Guccio Gucci의 이니셜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GG 로고의 열풍은 1960년대 중반 GG 캔버스라 불리는 코튼 패브릭 위에 더블 G 로고를 장식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찌의 베스트셀링 아이템인 ‘재키 백’에 사용된 GG 프린트이다. 재키 백으로 인해 구찌의 얼굴이 된 이 GG 로고에 대한 편애는 대단했다. GG 프린트 위에 투명 합성수지를 덮어(GG프린트 빈티지 제품 중 반짝이는 비닐같이 느껴지는 제품이 이에 해당된다) 실용적인 시도를 했는가 하면, 여러 층의 PVC를 이용해 엠보싱 처리를 하이도 했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여, 드디어 2005년, 이 GG 로고는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름하여 구찌시마 컬렉션. 지금까지 캔버스에 프린팅으로 작업하던 기술이 아닌 스탬핑, 즉 기계의 열로 GG 로고가 영구히 프레싱된 가죽 제품이 탄생한 것이다.


크리스찬 디올 역시 구찌처럼 창립자의 이름에서 비롯된 로고를 제품 디자인에 충실히 반영하는 실속파이다. 1970년대 초 Dior 네 자를 사선으로 배열하는 ‘빈티지 로고 라인’을 디자인한 무슈 디올은 이 로고 라인이 ‘슈퍼맨 시리즈’보다 더 많이 리바이벌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어쨌든 그가 디자인한 이 전설적인 로고 라인은 2001년 ‘뉴 로고 라인’으로 부활했으며, 그 인기에 힘입어 2002년 ‘뉴 빈티지 라인’으로 재해석되었다. 이 로고 라인이 일대 변화를 맞은 해는 바로 2003년. 이때 론칭한 ‘핑크 로고 글래머’는 핑크 컬러와 하얀 가죽 꽃 장식이 더해진 귀여운 디자인으로, 그동안 선보여온 빈티지 라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2004년 가을, 로고 라인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존 갈리아노는 빈티지 로고 라인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라스타’ 컬렉션을 발표한다. 존 갈리아노는 자메이카 흑인들의 문화인 ‘라스타’의 컬러 코드인 옐로, 그린, 레드 등을 덧입혀 모던한 로고 라인에 복고적이고 펑키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올해 크리스찬 디올은 무슈 디올의 빈티지 로고와 가장 흡사한, 기존의 로고보다 좀 더 두꺼워진 로고를 사용한 빈티지 컬렉션으로 로고 라인의 열풍을 다시 한번 재현하고 있다.

프라다 역시 디올과 마찬가지로 창립자이자 브랜드 이름인 Prada 철자를 로고로 사용한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철자 주위를 둥그런 매듭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은 사보이 왕가의 문장을 둘러싼 매듭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왕가의 제품을 제작하는 공식 업체로서의 자존심과 위엄을 로고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이 위엄 있는 로고는 자카드 기술을 응용하여 아예 로고를 새긴 채 패브릭을 짜나가는 ‘로고 자카드 라인’으로 재탄생되어 그 파워를 더하고 있다.


1백6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로에베는 로에베의 과거 제품을 다시 구입하는 독특한 프로젝트를 통해 로고의 역사와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작업을 전개했다. 로에베는 연대별 제품을 수집하는 이 작업을 통해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가 격변을 겪는 시기마다 심벌을 달리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집된 로에베의 로고들이 그 변화에 얽힌 히스토리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재미난 모양들을 일곱 개의 핀으로 만들어 1백60주년을 기념하는 ‘앤티크 컬렉션’을 탄생시켰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현재, 로에베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로고인 애너그램은 로에베에 있어 의미 있는 해였던 1980년, 로에베의 첫 글자인 알파벳 L 네 개를 조합하여 디자인한 로고다. 이로써 로에베는 혼재된 브랜드 로고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으나, 하마터면 귀중한 로고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흘려보낼 뻔했다.

올해로 1백50주년이 된 버버리는 비로소 새로운 로고로 통합하며, 그야말로 ‘전진’을 위한 맹세를 다졌다. 사실, 공식적인 버버리의 로고는 1901년 창업자인 토머스 버버리가 강하고 진취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제작한 ‘창 든 기마상’이다. 그리고 이 기마상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라틴어로 ‘전진’이라는 뜻인 프로섬(Prorsum)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창 든 기마상은 ‘버버리 체크’의 위력에 밀려서인지 많은 제품에 활용되지 못했고, 브랜드 상징으로서 확고한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하면서, 이 기마상에도 광영이 비치기 시작했다. ‘전진’이라는 뜻이 마음에 들었는지, 베일리는 버버리 프로섬 라인에 이 로고를 극대화했고, 2006년 1백50주년을 맞이해 그동안 버버리 런던과 버버리 프로섬으로 분리해 전개해온 액세서리 라인을 하나로 통합해 이 기마상 로고를 표시하는 일대 변혁을 일구었다. 고로, 앞으로 우리는 ‘전진’이라는 깊은 뜻을 지닌 ‘창 든 기마상’ 로고에 더욱 친숙해질 것이다.


셀린의 상징인 블라종 로고처럼 우연한 기회에 브랜드의 상징을 만나게 되는 행운도 있다. 1973년 셀린 비피아나 여사는 파리 개선문 앞의 에트알 광장에서 우연히 자동차 사고를 겪는다. 그때 우연히 개선문을 둘러싼 쇠사슬을 보았고, 묘한 매력을 느낀 쇠사슬 가운데 패턴에서 블라종 로고는 탄생되었다. 그러나 블라종 로고가 애초부터 셀린의 상징은 아니었다. 셀린 하우스의 원래 심벌은 지난해, 셀린 탄생 60주년을 맞아 재탄생된 아메리칸 슐키였다. 말을 끄는 마차가 아로새겨진 이 로고는 1966년 승마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남편 비피아나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이처럼 행운의 여신이 브랜드 로고를 점지해준 또 다른 케이스는 바로 에르메스의 샨당크르 로고이다. 배에 연결된 닻을 상징하는 이 로고는 1938년 당시 회장이었던 로베르 뒤마가 부둣가를 산책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고, 그는 이 닻 모양을 에르메스가 ‘여행’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도록 이바지하는 데 사용했다. 브랜드 정체성이 가장 확실한 브랜드 중 하나인 에르메스는 의외로 로고만큼은 매우 유동적으로 사용한다.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로고는 에르메스의 주황색 박스를 실은 사륜마차를 끄는 말이 새겨진 ‘칼레쉬 로고’와 에르메스 첫 글자인 H를 일컫는 ‘아쉬 로고’이다.

칼레쉬 로고에는 마부가 없는 ‘뒤끄’라는 이름의 사륜마차가 새겨져 있는데, 빈 마부석은 고삐를 조절할 고객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칼레쉬 로고는 상품에 생명을 부여하는 진정한 주인이 바로 고객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에르메스는 포장을 하는 리본에서 비롯되어 브랜드의 심벌로 자리 잡은 볼딕 리본, 베이비 라인에 독자적인 로고로 사용되는 목마까지 제품의 라인과 이미지에 따라 다양한 심벌과 로고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어떠한가? 단순한 로고에 숨겨진 이 복잡다단한 뒷얘기가? 물론, 베스트셀러처럼 흥미진진하진 않지만, 단순한 로고만 보았을 때보다 덜 지루하지 않은가? 베스트셀러의 근간이 되는 실존 인물의 탄생 설화처럼, 이 로고들은 브랜드의 히트 아이템을 제작하는 밑거름이 되어왔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를 지닌 것은? 가장 단순하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단단한 내공을 지닌 것은? 이 알쏭달쏭한 패션 퀴즈의 정답은 바로 ‘로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