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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공식 출범한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의 최재천 초대 원장. 뒤에 보이는 것은 생태원의 핵심 시설인 에코리움(생태체험관)이다. 국립생태원 제공 |
[한겨레]
[지구와 환경] 최재천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인터뷰
우리나라 생태 연구와 전시·교육의 최고 기관인 국립생태원이 지난달 28일 공식 출범했다. 충남 서천군 마서면 송내리 일대
30만여평에 들어선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은 최재천(59)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맡았다. 최 원장은 금강하구 북쪽 갯벌을
매립해야 하는 장항산업단지의 대안으로 2007년 6월 국립생태원 조성 사업이 결정된 뒤, 그 밑그림을 그리는 기획 용역을 총괄한
인연이 있다. 초대 원장직을 맡은 것은 자신의 구상을 직접 구현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지난 6일
국립생태원 원장실에서 만난 최 원장은 “국립생태원을 영국 왕립식물원 ‘큐 가든’이나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과도 겨룰 수
있는, 국제적으로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꿈”이라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국립생태원 출범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에 ‘환경’이라는 이름을 내건 기관들이 많지만 자연이 이렇게 늘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생태학 기반이 없이 환경을
다루어왔기 때문입니다. 생태원 출범은 이제 우리나라에도 환경 문제를 다룰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기관이 생겼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존의 생물자원관이나 식물원, 수목원 등의 기관들은 생물학 분야로 보면 생물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분류학과 관련돼 있는
기관입니다. 생태원은 분류에서 끝나지 않고, 분류된 생물들 간의 관계, 생물들과 물리적인 환경의 관계 등을 전부 아우르는 생태학에
기반을 둔 기관입니다. 생태학이란 학문은 제가 유행시킨 표현을 빌리면 전형적인 ‘통섭형’ 학문인데요, 그런 것에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기관이 생긴 것이지요.”
-국립생태원장은 어떻게 해서 맡게 되셨는지요?
“지금 이런 기관이 생겼다는 게 사실 꿈같은 일이에요. 아마 이게 여기서 (장항산업단지 조성의) 대안 사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우여곡절이 없었다면 30년 내에도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학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기회가 오리라고는 사실
꿈도 못 꿨어요. 그런데 이제 기회가 와서 제대로 해야 되고, 출범을 해야 되니까 주변의 생태학 하는 분들로부터 저에게 나서달라는
권유가 많았습니다. 제 입으로 얘기하기는 쑥스럽지만 그래서 사명감을 갖고 나섰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도 참여하지 않으셨나요?
“2008년도에 국립생태원 총괄기획을 제가 했습니다. 1년 동안 공부를 접다시피 하고, 거의 매일같이 회의하고 해외 사례 등도
조사해서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엔지니어링 부문 용역까지 제가 하는 용역 밑으로 집어넣어 총괄하면서, 제깐엔 혼신을 다해서 꽤
괜찮게 만들었다고 자부를 합니다. 그렇게 생태원 기획을 하고 초대 원장까지 맡았으니, 어쩌면 이것도 운명인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설립 준비 단계에서는 떠나 있었지요?
“사실 많은 분들이 ‘기획을 했으면, 설립 준비도 맡고 초대 원장까지 해야 당신 생각대로 될 거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1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서 기획을 하고 나니 더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이후 과정에 다른 좋은 분이 오셔서 제 아이디어에
보태고, 그 아이디어에 더 보태고 하면 좋은 게 아니냐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설립 준비 과정에서 처음
기획보다 좋아진 점도 많지만, 아쉬운 점도 많아요. 특히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해서 넣어놓은 아이디어들이 빠진 것이
아쉬워요.”
국제경쟁 피할 수 없는 운명
후발주자 이점 충분히 살려
‘이 부분은 최고’ 소리 들을 것
제돌이 돌려보내기 주도했는데
펭귄들은 좁은 곳 가둬 아쉬움
-특히 아쉬운 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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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에코리움을 하늘에서 본 모습. 왼쪽 위 사각형 온실들은 재배용, 아래쪽 곡선형의 온실들은 전시용이다. 전시온실은 왼쪽부터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순서로 배치돼 있다. 맨 오른쪽은 맹금류관이다. |
“가장 아쉬운 것 하나만 들라면 펭귄관이 너무 작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인데 공간이 좁아 구경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펭귄들한테 너무 미안한 마음이에요. 제가 얼마 전에 돌고래 제돌이를 바다에 풀어준 사람이잖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동물을
가두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생태원에서 식물 전시만 갖고는 사람들을 모으기 힘들고 승산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기가 많은
펭귄을 데려와야겠는데, 좁은 공간에 넣을 수는 없고 해서 큰 공간 확보를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펭귄과 함께 썰매타기’
기획이었습니다. 에코리움의 돔 꼭대기부터 지하까지 썰매를 만들면 6,70m 길이의 공간이 나오는데, 그 옆으로 펭귄들이 이동할 수
있는 삼각형의 튜브 같은 공간을 만들려는 아이디어였지요. 그 정도 규모로 만들어주면 펭귄들한테 미안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빠져버리고 애초 디자인에 없던 맹금류관이 에코리움 맨 끝에 어울리지 않게 붙어버렸더군요.”
-사람들이 국립생태원을 방문해서 무엇을 느끼고 가기 바라십니까?
“우리 국민들의 생태나 환경에 대한 인식은 이미 상당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생태원을 사람들에게 ‘생태가
중요하다’는 것을 억지로 가르쳐서 새로운 무엇을 느끼고 가는 곳이 아니라, ‘역시 생태가 우리 삶에 중요하구나. 역시 이런 것을
중요시해야 돼’ 하고 다짐하고 가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사실 저의 가장 큰 꿈은 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경제성 예비타당성조사를 하는 것처럼 국립생태원에서 생태성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는 것을 정책으로 세우는
겁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반대가 있겠지만, 누구든 만나서 토론하고 설득해나갈 생각입니다.”
-30여년간 학자로 지내시다 행정가로 변신하셨는데요, 조직 관리는 어떻게 해나가실 생각입니까?
“통솔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어서 계속 리더를 거부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리더가 돼서 걱정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진심을 다해서 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다 꺼내놓고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효율적인 기관이 못 되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도 되지만, 일단은 아주 깨끗한 경영, 구성원이 행복해하는 그런 기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으려 합니다.”
-원장 임기 3년 동안 특히 중점을 두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생태학의 기초를 닦는 데 온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면접할 때 이런 얘길 했더니,‘그러다가는 업적도 못 내고, 예산
받기도 어렵고 애로사항이 많을 텐데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생태원이 망하는 한이 있어도 나는 생태학의 기반을 닦는 데 내
3년을 그대로 다 투입하겠다’고 했습니다. 생태원은 연구와 전시·교육 기능이 있는데, 서천군한테는 사람이 많이 와야 되니까 특히
전시와 교육이 중요하죠.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곳은 우리 것을 전시하니까 세계와 겨뤄야 되는 것이 아니지만, 생태원과 식물원,
자연사박물관 등은 우리나라라고 확연히 다른 어떤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 세계적인 수준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보는 눈이 높은데, 여기서 학예회 수준의 전시를 했다가 한번 와서 보고 ‘삼천몇백억원 들였다면서 뭐 이래’ 하면 끝나는
거죠. 연구가 바탕이 되지 않는 전시와 교육은 절대 오래 못 갑니다. 탄탄한 연구가 기반이 돼야, 저력 있는 전시와 교육이 가능한
거죠. 그래서 전시는 전시대로 노력하겠지만, 방점은 역시 연구에 둘 생각입니다.”
-올해 6월 제인 구달 박사와 생명다양성재단을 창립해 대표직을 맡으셨는데, 재단 일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생명다양성재단을 설립해 대표를 맡은 것은 국제적 약속이어서 갑자기 못 하겠다 할 수 없고, 또 재단과 생태원의 성격이 서로
비슷해서 잘하면 두 개가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싶어서 환경부 장관님께 말씀드려 겸직 허락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생태원에서
교육, 대외협력과 같은 차원에서 지역 주민과 전체 국민하고 함께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그런 과정에서 재단이 공헌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 원장은 “생태원장이 된 뒤 평소 알고 지내온 해외 유명 자연사박물관과 생태원 등의 수장들로부터 ‘우리가 열심히 도와줄 테니까,
후발 주자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 우리보다 더 훌륭한 기관으로 만들어보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규모로는 그들과 비교가 안
되겠지만, 뭔가 독특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것은 한국의 국립생태원이 제일 잘한다’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그들이 못했던 그런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천/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최재천 원장은 누구
통섭의 중요성 널리 알린 생태학자
최재천 초대 국립생태원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물 생태학자로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시간대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2006년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옮긴 뒤로 최근까지 이 대학 에코과학연구소 소장과
자연사박물관 관장을 지내며, 우리 사회에 ‘생태’와 학문 간 경계를 넘어서는 ‘통섭’의 개념을 소개하고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9년 개미의 세계를 다룬 <개미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을 시작으로 30여권의 저술과 번역 등을 통해
대중과도 활발히 소통해왔으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는 등 사회참여 활동도 적극 펼쳐 왔다. 특히 올해는 서울대공원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야생 방류를 위한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제돌이를 제주 바다에 풀어주는 일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박사와 함께 동물 연구와 보전, 환경ㆍ생태 예술 진흥 등을 목표로 하는 생명다양성재단을
출범시켜 대표를 맡고 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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