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레길 정보

강화 나들길

구봉88 2014. 10. 15. 11:06

[트레킹, 이 길을 걸어요] 강화나들길

 

비운의 역사길 '눈부신 푸름'… 고려 장군이, 빨래하는 아낙들이 말을 걸어온다

강화도의 영욕(榮辱)의 역사를 지켜본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월곶돈대에 있는 연미정을 향해 멋들어지게 나뭇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강화나들길을 찾은 도보여행자들이 성곽을 끼고 걷고 있다. / 정정현 영상미디어 기자 rockart@chosun.com

강화도는 우리 역사의 축소판이자 노천 박물관이다. 섬 곳곳에 있는 지석묘는 선사시대의 유물이다. 섬 내 최고봉 마니산(469.4m)은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해 참성단을 세운 곳이고, 전등사(傳燈寺)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토성(三郞城·삼랑성) 위에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때 세워진 고찰이다.

또한 읍내 송악 기슭에 자리 잡은 고려궁지는 몽골의 침입으로 천도한 고려 고종과 원종이 39년 동안 숨죽인 채 지냈던 곳이다. 해안에 구축되어 있는 5진(鎭) 7보(堡) 53돈대(墩臺)는 외적을 막기 위한 요새이자 망대였다.

이러한 우리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 산과 들녘, 산골 마을과 갯마을, 그리고 갯벌과 철새 서식지를 잇는 강화나들길은 읍내 강화우체국 사거리 북쪽 망한루(望漢樓)에서 시작한다. 망한루는 고려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비해 1232년(고종 19년) 고려궁지를 가운데 두고 둘러싼 강화산성의 동문이다.

'강화나들길'을 가리키는 작은 팻말과 전봇대에 매달린 꼬리표가 가리키는 대로 1970년대 분위기의 고샅길을 따르다가 한옥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 들어섰다. 용흥궁(龍興宮)이다. '강화도령' 조선 철종(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 당시에는 초가집이었으나 왕위에 즉위하자 강화 유수가 기와집으로 바꿔 지은 뒤 '용이 승천한 궁'이라는 의미에서 용흥궁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전통다도예절관(문의 한국명선차인회 010-3317-4177)으로 이용되고 있는 용흥궁은 연잎 떠 있는 수반, 반짝이는 장독, 뚜껑 덮인 우물 등 마당 구석구석 널려 있는 것마다 어릴 적 시골집 마당을 떠올리게 해 정겹기 그지없다.

고려궁지 외규장각 아래로 강화읍내가 내려다보인다. 병인양요 때 불탄 건물을 복원했다. / 정정현 영상미디어 기자 rockart@chosun.com

용흥궁공원을 가로질러 고려궁지로 올라선다. 읍내뿐 아니라 주변 산봉들이 한눈에 드는 언덕배기에 올라앉은 고려궁지는 1270년(원종 11년)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 사용되다가 몽골과 맺은 강화조약 조건에 따라 허물어졌다. 이후 조선 인조 9년(1631) 행궁과 더불어 외규장각 등을 지어 나라의 장서와 문서를 보관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많은 책과 서류를 약탈해 가고 건물을 불살라 버린 비운의 현장이다.

고려궁지를 벗어나자 발길이 절로 곧장 북문으로 이어지는 숲길로 향한다. 길 아래로 향교 건물도 보이고 북문으로 이어지는 숲 우거진 능선도 바라보인다. 강화나들길의 제1코스 '심도역사문화길' 구간이다.

'鎭松樓(진송루)' 현판이 걸린 아치형 북문을 들어서면 우거진 숲길. 이곳에서 오읍(五泣)약수까지는 강화에서 손꼽힐 만큼 뛰어난 숲길이다. 양봉원 옆에 반듯하게 자리잡은 오읍약수는 가뭄에 시달린 주민들이 산신령께 기도 드리자 하늘에서 내리친 번개에 맞아 깨진 바위틈에서 솟구쳤다는 샘물로, 몽골군을 피해 강화로 건너온 이들이 이 물을 마시고 향수를 달랬다고 전해진다.

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며 두런거리는 아낙들을 떠올리게 하는 송학골 빨래터를 내려서면 콘크리트 동네 길(오읍약수터 0.88㎞·대월초교 0.4㎞). 이어 아스팔트 도로를 따르다가 대월초등학교 교문에서 만난 도우미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물 한 모금 마신 뒤 운동장 뒤편 숲길로 들어선다.

'심도역사문화길'은 잠시 숲길로 이어지다가 산골 마을로 내려서고 도로 아래 터널을 빠져나간 뒤 콘크리트 길 따라 100m 정도 가면 또다시 왼쪽 산등성이로 올라붙는다. 이후 울창한 숲길이 30분쯤 이어지다 다시 월곶리 마을로 내려선다.

마을 끝에 왕릉처럼 솟아오른 곳이 월곶돈대요, 그 위에 올라앉은 정자가 연미정(燕尾亭)이다. 길가 텃밭에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농가 담장 옆에서 복숭아가 익어가는 마을을 가로질러 연미정에 올라선다.

연미정이란 정자 아래로 한강과 임진강 물이 합쳐졌다가 한 줄기가 서해로 흘러들고 또 한 줄기가 김포와 강화를 가르는 해협인 염하(鹽河)로 흘러드는 모습이 마치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비운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지만, 옛날 서해에서 한양으로 가려는 배들이 정자 아래에서 만조(滿潮)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하니 뱃사람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을 게다.

5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멋들어지게 그늘을 드리운 연미정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불현듯 고려 때 구재(九齋·고려 문종 때의 사립 교육기관)의 학생들도 연상되고 조선 때 돈대를 지키던 병사들도 떠올랐다. 한강 건너로는 북한 개풍 땅이 보였다.

●트레킹 팁: 강화나들길은 테마에 따라 9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제1 코스인 심도역사문화길은 강화버스터미널~갑곶돈대 18㎞ 코스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한다. 답사 방향은 강화우체국 사거리→동문→성공회강화성당→용흥궁→고려궁지→북관제묘→강화향교→성곽길→북문→북장대→오읍약수→대월초교→숲길→연미정→월곶돈대→옥계방죽→갑곶돈대로 어진다. 단 7, 8월 한여름에는 고려궁지에서 북문으로 곧장 이어지는 숲길을 따르고, 숲이 거의 없는 연미정~갑곶돈대 구간은 생략하는 게 좋다. 약 4시간. 북장대터는 현재 복원 공사 중이라 북문에서 성곽 길을 따라 오를 수 없다. 강화나들길 홈페이지(www.trekking.go.kr) 참조

 

●대중교통: 서울→강화: 지하철 2호선 신촌역 1번 출구에서 약 150m 떨어진 GS편의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마송과 김포를 경유하는 3000번 좌석버스가 05:40~23:20 15분 간격 운행. 영등포 신세계백화점(영등포역) 건너편 금강제화 앞 버스정류장에서 05:30~23:40 15~20분 간격 운행하는 1번·88번 버스 이용. 1800원. 문의 강화운수 (032)934-4343

강화=한필석 월간 山 기자 pshan@chosun.com

입력 : 2011.07.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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