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지어놓고.." 참았던 감정, 잔금 정산때 폭발한다
“집짓는 과정은 굉장히 즐거운 일 아닌가요. 나만의 집을 짓는 건 꿈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럴려면 분쟁 대비가 정말 중요합니다. 자칫하면 악몽이 될 수도 있어요.”
유민권 변호사(법무법인 소헌)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건설·부동산 관련 분쟁 전문가로 통한다. 2009년 사법연수원을 나와 대형 로펌과 한국토지신탁에서 경험을 쌓은 뒤 2012년 독립했다. 6년 여간 부동산 개발 관련 계약 자문을 맡고 타운하우스와 공동주택 관련 분쟁도 다뤘다.
유 변호사는 손수 단독주택을 짓기도 했다. 한 필지에 두 세대를 짓는 이른바 듀플렉스(duplex) 하우스였다. 그는 “집짓는 과정은 200% 만족했다”며 “당시 시공사 대표, 현장소장과는 아직도 이웃사촌처럼 지낸다”고 했다.
땅집고가 유 변호사를 만나 집짓는 과정에서 생기는 분쟁 해결과 예방법을 들어봤다. 유 변호사는 “공사 관련 분쟁은 공사대금이 5억원이든지, 5000억원이든지 발생하는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면서도 “개인 주택은 분쟁 금액이 크지 않아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합의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공사 과정에서 분쟁이 많이 생기는 시기는. “시공사가 받아야 할 돈이 있는 상황에서 주로 다툼이 생긴다. 주로 잔금이다. 잔금은 대개 전체 공사대금의 20%인데 준공 후에 받는다. 이 때 시공사는 잔금 외에도 추가 또는 변경 공사 정산을 요구하게 된다. 반면, 건축주는 공사 지연과 미진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면서 오히려 잔금을 깎으려고 한다. 결국 잔금 지급 시점에서 그동안 쌓인 문제가 터지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상 건축계약서에는 공사가 하루 지연되면 지체상금(遲滯償金)이 총 공사대금의 1000분이 1로 돼 있다. 총 공사비가 5억원이라면 공사가 하루 지연될 때마다 시공사는 건축주에게 50만원을 물어줘야 한다. 한달이면 1500만원이 된다. 문제는 소규모 공사는 변수가 많아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건축주는 공사 지연 책임을 시공사에게 돌리는 반면, 시공사는 건축주가 설계를 바꾸거나 추가 공사를 요구해서 지연됐다고 주장하면서 다툼이 생긴다.”
-그럼, 추가공사가 분쟁의 씨앗인가. “공사가 진행되면 건축주가 상상하던 집이 구체적으로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 자꾸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창문 크기, 문 위치, 조명 등 다양한 설계 변경과 추가 공사 상황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비용 문제가 생긴다.”
-개별 추가 공사마다 정산하면 되지 않나. “시공사가 추가 공사 내역을 건축주에게 알려줘도 건축주 대부분은 ‘나중에 한꺼번에 정산하자’는 반응을 보인다. 작은 금액, 사소한 비용이라도 한번에 정산할 경우 쌓여있는 금액이 상당해 건축주가 당황하게 된다. 건축주가 안내도 되는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하면 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추가 공사 기간을 총 공사기간에 포함할 지, 추가 공사비를 정산할 때 실비로 할지를 포함해서 최초 도급공사계약서를 잘 작성해야 한다. 추가 공사비가 발생할 때 시공사는 어떤 양식으로 보고하고, 건축주는 어떻게 승인할지 정해놓는 것도 좋다. 당사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
유 변호사는 “시공사가 분명히 잘못했거나, 건축주 요구가 반영되지 않아 재시공했는데 추가 공사로 둔갑시켜 정산하려는 시공사도 있다”면서 “분쟁을 막으려면 처음 시공한 사진을 찍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건축주가 잘못된 시공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건축주 직영공사도 많죠. “직영은 결국 집을 싸게 짓겠다는 것인데, 자칫하면 분쟁의 씨앗이 된다. 5억원짜리 공사라면 부가세만 5000만원이다. 당장 부가세 절약에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금액을 아끼려고 직영공사 업체를 찾지만 시공경험이 있는 현장소장 출신의 프리랜서이거나 면허가 없는 경우가 많아 분쟁에 취약하다.
반면, 종합건설회사와 정식 공사계약을 맺으면 계약이행보증이나 하자보증으로 공사 안정성을 보장받게 된다.”
건축주 직영공사는 앞으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올해 6월부터는 연면적 200㎡(60.5평) 이상 건축물은 건축주 직영 공사가 불가능해진다.
-조심해야 할 시공사는. “계약할 때 준비 비용이나 초기 공사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명목으로 계약금을 총 공사비의 최대 30%까지 요구하는 경우 조심해야 한다. 계약하고 공사를 5% 정도 진행하다가 ‘수주할 땐 몰랐는데 공사비 책정이 잘못됐다. 증액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건축주는 이미 지급한 돈이 크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막을 방법은 없나. “결국 믿을 만한 시공사를 찾아야 한다. 규모도 있고 체계가 잘 잡힌 회사를 말한다. 시공실적도 중요하다. 계약금은 10% 이상 주는 것은 위험하고 가능하면 5% 내외로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사대금은 공사 기한으로 약정하기 보다 공사 진척도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좋다.”
-계약서는 어떻게 써야 하나. “국토교통부에서 만든 표준공사도급계약서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하되 각자 현장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시공사가 가져온 계약서가 정답은 아니다. 계약서를 쓸 땐 법률적, 전문적 용어가 아니라 생활용어로 작성해도 된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써야 하나. “계약서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분쟁이 생기고 소송까지 가는 것보다 낫다.”
-변호사인 당신은 계약서를 어떻게 썼나. “3가지를 넣었다. 첫째, 견적서에 빠졌어도 설계도에 포함된 공사는 시공사가 약정한 금액 안에서 공사한다는 것. 둘째, 설계도면 해석은 건축주나 시공사가 아니라 건축사 의견에 따른다. 셋째, 설계도면에 없어도 ‘스케치업’ 파일(설계도면을 입체화한 프로그램 파일)에 표현돼 있으면 약정공사금액 내에서 공사를 해야 한다고 넣었다.
이렇게 하면 공사대금이 조금 늘어날 수 있고 시공사와의 관계가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건축주에게 이익이 된다. 시공사 입장에서 부담되는 조건이지만 불합리한 내용은 아니다. 시공사가 견적을 엄격하게 내면 된다.”
-시공사 검증은 어떻게 했나. “공사 도중 시공사가 부도나면 모든 게 허사다. 시공사의 등기부등본, 시공사 대표의 자택 등기부등본, 시공현장 갯수를 미리 파악했다. 부도나면 공사비 회수 가능성까지 염두해 두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민원은 주로 시공사가 처리하나. “해당 민원이 시공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건축물 자체에 대한 민원인지부터 가려야 한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시공사가 해결하게 된다.”
-시공사를 괴롭히는 건축주도 있다는데. “잔금을 안 주는 경우다. 공사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추가공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서 잔금을 깎자고 한다. 시공사는 결국 잔금을 받아야 이익이다. 그 이전에 들어간 비용은 실비 정도다. 결국 잔금을 받지 않으면 다른 현장을 돌릴 수 없는 영세 시공사의 어려움을 알고 악용하는 건축주도 있다. 이 때 시공사가 지은 집에 가압류를 걸면 대개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고 빨리 해결하려고 한다.”
-예비건축주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분쟁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분쟁에 대비한 계약서를 써야 한다. 건축과정에서 생기는 변경 사항을 쉽게 넘기지 말고, 서면이나 메모로 남기는 습관이 중요하다. 아무리 계약서를 잘 작성해도 모든 상황을 대비할 순 없다. 계약서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닥치면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양보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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