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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못할 스프링클러 설비

구봉88 2019. 10. 24. 13:27

[기획] 신뢰 못할 스프링클러 설비,

제도적 기반이 문제?

- 주먹구구식 후진국형 스프링클러설비, “이대로는 안돼”
- 위험도 고려 없는 설치 규정, 기술 발전까지 막았다!
- 전문가들 “공학적 기반 갖춘 설치 기준으로 개선해야”

최영 기자 | 입력 : 2014/05/26 [09:41]


스프링클러 설비는 소방시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자동소화설비로 화재를 제어하거나 진압해 거주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목적을 가진다. 성능이 확보된 스프링클러 설비는 대형 화재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소방력의 출동으로 인한 현장 진압 상황을 줄이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곧 화재로 인한 대규모 피해를 예방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대표적 소방시설로 분류되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신뢰성이 높은 시설로 불리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관련법에서 이러한 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하는 대상물을 강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법 체계에 따라 설치되는 스프링클러설비가 본연의 성능을 발휘하는 것에는 한계가 따른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 4월 28일 발생한 아모레퍼시픽 화재의 경우도 소방시설의 유지관리 과정에서부터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관리 측면의 문제 이전에 실효성을 확보한 소화설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본지(FPN)에서는 이번호에서 우리나라 스프링클러설비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봤다.

위험분류 없는 주먹구구식 스프링클러설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는 대상물의 위험도 분류는 최초 설계 기준을 결정하는 과정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적인 부분이다. 건축물의 사용용도에 따른 위험성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스프링클러 시스템 성능에 영향을 주게 되면서 화세제어나 화재진압에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건물의 용도와 가연물질의 양, 특성 등에 따라 위험도를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NFPA의 경우 스프링클러 소화설비의 설계를 위해 ▲경급위험 ▲중급위험1 ▲중급위험2 ▲상급위험1 ▲상급위험2 등 5가지의 틀 내에서 상세하게 분류하는데 위험도가 현저히 높은 랙크식 창고 등 특수용도 시설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분류를 기초로 적합한 스프링클러설비의 방수밀도와 방수구역 면적을 결정하고 해당 장소에 적합한 시스템을 선정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는 설치대상 공간의 화재크기와 성장속도, 화재하중, 그리고 보관물품의 특성 등이 다양하게 고려된다. 쉽게 말해 위험성이 높은 공간에는 화재시 뿌려지는 물의 양을 늘려 더욱 확실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기준은 스프링클러설비의 설치 대상을 업종과 건축물 형태에 따라 단순하게 분류하면서 스프링클러 설비의 실질적인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내의 경우 위험분류체계를 건물의 용도나 층고 건축물의 층수로 분류하고 있어 건물 내의 화재 위험도가 상이하더라도 모두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방수밀도가 많이 요구되는 장소에는 방수 부족 문제를 불러오게 돼 화세 제어에 실패할 우려가 있고 적은 방수밀도가 요구되는 장소는 과다한 방수로 인해 비경제적인 시스템이 설치될 수밖에 없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매우 단순한 분류체계인 것도 문제지만 스프링클러설비의 방수밀도와 방수구역의 분류기준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며 “대상공간의 구체적인 화재 위험도를 고려해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업종과 건물의 형태에 따라 적용되면서 소화설비의 설계시 공학적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실제 화재 시 화세제어의 목적 달성여부도 판단하기 곤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일률적 설치 기준에 도태된 국내 기술

세부적인 위험분류에 따른 스프링클러 설비의 적용 개념 부재 문제는 국내 스프링클러 관련 기술의 낙후까지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을 낳는다.

▲ 우리나라의 스프링클러 헤드는 표준형, 주거형, 인랙, 건식형 등 소수 종류만이 개발되어 사용된다. 
위험분류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다보니 현행 스프링클러설비의 화재안전기준(NFSC103. 소방방재청 고시)에서는 스프링클러 헤드의 단위면적 당 방수량이 일률적으로 1분에 80리터 이상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로 인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일반적 건축물에는 해당 기준에 따라 방수압력이 0.1MPa일 때 분당 80리터를 뿌려주는 표준형 스프링클러 헤드가 설치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관련법규에서 일률적으로 정해 놓은 스프링클러 기준 개수와 수평거리 기준에 따라 헤드가 배치된다.

정해진 일정 대상물의 스프링클러 기준 개수와 수평거리기준에 따라 스프링클러 헤드가 배치되는 단순한 방식이다. 이는 선진국에서 스프링클러 설비의 적용 시 기본적으로 적용하는 방수밀도와 방수구역면적의 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 미국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스프링클러 헤드 
더욱이 선진국에서 헤드 배치간격의 변동 없이 헤드의 방수압력을 조정해 탄력적으로 방수밀도를 변화시키는 것과도 확연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러한 실태는 관련법에서 설치 대상물에 대한 위험분류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스프링클러 헤드 제조사들의 기술개발 의지를 제약하고 엔지니어들의 기술력까지 떨어뜨리는 근본적 이유로도 작용한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한해 동안 스프링클러 헤드의 제품검사 수량은 1,100만여 개에 이르지만 이 중 95% 이상이 분당 80리터 방수량을 가진 표준형 스프링클러 헤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보급되는 표준형 외의 다양한 방수량을 보이는 스프링클러 헤드는 대부분이 외국산 제품들이고 국내에서 자체 생산되는 헤드의 종류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극소수다.

스프링클러 제조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같이 위험분류에 따른 설치 규정이 정립돼 있지 않아 적용 시설물에 따른 특수목적형 스프링클러 헤드는 개발을 하더라도 수요가 없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발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스프링클러 헤드의 성능을 검증하는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실화재 시험조차 실시되지 않는다. 획일적인 설치 규정에 맞춰 스프링클러 헤드가 어느 정도의 물을 뿜어낼 수 있는지만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한 전문가는 “불을 제어하거나 끄기 위해 설치하는 스프링클러 설비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헤드라고 봐야 하는데 이러한 헤드의 성능검증 과정에서 화재 시험조차 거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있는 ‘조기진압용 스프링클러’ 마저…

현행 화재안전기준에는 표준형 스프링클러 헤드가 설치되는 일반적인 스프링클러 설비 외에도 화재조기진압용 스프링클러설비, 간이스프링클러설비 등 두 가지 설비가 더 존재한다.

이 중 화재조기진압용 스프링클러 설비는 법규상 정의로 ‘특정 높은 장소의 화재위험에 대해 조기에 진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스프링클러’를 말하는데 스프링클러의 기본 목적 중 화세제어가 아니라 초기에 화재를 진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화재안전기준에서는 스프링클러 헤드의 분당 방수량을 최대 360리터까지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스프링클러 헤드의 형식승인 기술기준에는 이 같은 설치규정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최근 한 창고 건축물의 경우 시설 위험성을 고려해 대용량의 방수능력을 가진 스프링클러 헤드를 적용하려 했으나 이 과정에서 별도의 행정 절차를 거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경기도에 들어서는 모 물류 창고형 가구 매장은 스프링클러 설계 설계과정부터 미국 NFPA 규정과 FM 실험 데이터를 근거로 분당 방수량이 360리터(360LPM/[kg/㎠])에 이르는 스프링클러 헤드를 적용했다.

그러나 소방방재청 고시로 운용되는 스프링클러 헤드의 형식승인 기준에서 분당 203리터로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건부 승인이라는 명목으로 특례조치를 받아야만 했다.
 
화재안전기준과 달리 관련 기술기준에는 시험규정조차 정립되지 않아 별도의 행정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다. 이는 국내 소방시설 설치기준인 화재안전기준과 제품의 성능 검증 시 필수적인 시험기준의 상호 연계성 부족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창고형 가구 매장 사업자는 화재위험도가 높은 창고 건물 특성을 고려해 세계적으로 공통된 소방시설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부재한 규정 때문에 애로를 겪은 셈이다.

한 소방전문가는 “세계적인 기준이 통용되는 수많은 국가 중 관련 기준이 정립되지 않아 적용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웃기고 창피한 일”이라며 “이러한 고질적 문제들은 스프링클러 설비의 신뢰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관련 산업의 기술까지 도태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스프링클러 적용 개념 “선진국 따라가야”

많은 전문가들이 스프링클러 설비의 기본적인 적용 개념을 미국 등 선진국과 같이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배경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위험분류등급의 체계화로 화재의 성상과 가연물의 적재량을 고려해야만 소화설비의 실질적인 성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소방관련법에 따른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의 단순한 분류방식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이를 세분화시켜 건물의 용도와 특성, 위험도를 따지고 다양한 유형의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설비가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표준형 스프링클러 헤드만을 적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현행 스프링클러 설비의 설치기준도 다양한 헤드들을 설치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수평거리 기준으로 헤드를 배치토록 규정한 법규도 헤드 간의 배치거리 개념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현재의 국가 화재안전기준은 공학적 합리성이 미흡해 다양한 기술을 적용하는 데에도 분명한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며 “스프링클러 소화설비의 궁극적인 설치목적인 화세제어를 실현하고 소화설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선진 기술과 공학적 기반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먹통 스프링클러, 문제는 소방시설법?…소방방재청 ‘뒷짐’소방법 기준대로 설치한 스프링클러, 화재에도 작동 안 돼 주차된 차 50여대 불타

박상욱 기자  |  ysidej@hanmail.net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차량 50여대가 불탄 주차장 내부.


소방법에 따라 설치한 스프링클러가 불이 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문제가 드러났지만 정작 대책을 마련해야 할 소방방재청은 뒷짐만 지고 있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통 건물에는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소방법)에 따라,  불이 나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자동으로 물을 뿌려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 규정대로 설치한 스프링클러가 불이 나도 작동되지 않아 피해를 키운 사고가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 1월, 용인 기흥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주차돼있던 자동차 50여대가 불에 탔다.

문제는 이 주차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는 소방법에 따라 설치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를 조사한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소방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는 미작동 이유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내놨다고 밝혔다.

하나는 처음 발생한 화재가 열감지 센서와 이어진 컨트롤박스 전선을 태워 작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과, 또 하나는 지하주차장 천장에 구조적 보완을 위해 돌출돼 있는 부분(일명 헌치) 때문에 센서가 열을 감지하지 못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

다시 말해, 자동차 사고를 대비해 돈 들여 블랙박스를 달았더니 사고 순간 녹화가 안됐고, 그 이유가 갖가지 원인으로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블랙박스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아닐 수 없다.

  
▲ 건물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이렇다 보니, 소방당국 내부에도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스프링클러 등의 소방시설은 화재발생 시 무슨 일이 있어도 작동해야 한다”면서 “이런 소방장비들이 관련법에 따라 설치되고 있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설치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소방시설 설치 세부 기준을 재조정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소방당국은 실태파악은커녕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소방방재청 소방제도과 담당자는 “소방시설 설치규정은 완벽하게 잘 돼있다”며 “규정 때문에 미작동 하는 일은 없으며, (규정) 재조정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작동되지 않을 수는 있다”면서 “기흥구 화재의 경우, 주차장의 사각지역에서 방화를 저지른 사건으로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용인시 기흥구의 한 주민은 “생명과 직결된 소방시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작동해야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돈 들여 설치하고 관리하는데 정작 불이 나도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시민은 “기준대로 설치했는데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 기준자체가 문제 있다는 반증으로, 어디 불안해서 지하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겠느냐”며 “소방방재청은 강 건너 불구경 하지 말고 정확한 실태를 파악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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