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생활문화

[스크랩] 베이징리포트-중국의 결혼식 풍경

구봉88 2008. 10. 1. 20:53
오늘 민박집 주인아줌마(조선족)의 아는 분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쫓아가 봤지요.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식 풍경을 훔쳐볼 수 있을 것 같아서죠.
오늘의 결혼식은 북경의 명소인 옥류관에서 치뤄졌답니다.
'옥류관'이 어디냐구요?
그 유명한 평양식당 옥류관을 모른다구요?
옥류관은 홀이 아주 넓은 식당인데, 주말에는 예식을 치루는 장소로 이용된다는군요.
평일에는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와서 냉면과 가자미식해 등 북한음식을 먹고,
평양 기쁨조 아가씨들의 공연을 구경하고 갑니다.
오늘은 예식이 있어서 입구를 꽃으로 예쁘게 단장을 했습니다.

11시에 시작한다던 예식은 12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됐습니다. 중국인들의 시간관념은 우리의 코리안타임보다 더 징하더군요.
기다리는동안 신랑이 타고 온 자동차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고급승용차에 꽃과 풍선을 달고 몇 대의 호위차량에 둘러싸여 옥류관으로 입장했는데,
특이한건 자동차번호판에 '영결동심(永結同心)'이라고 써붙인 거였어요.
'한 마음으로 영원히 결합하다' 란 뜻이지요. 사진은 앨범코너에 올려놓을께요.

하객들이 서서히 입장하고 드디어 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화동들이 뿌려놓은 꽃길을 따라 나란히 입장한 신랑, 신부.
주례같은 것은 없고, 그저 맨 앞자리에 나란히 서서 사회자가 주는 혼인증명서를 받고
예물을 교환하고 간단한 애정표현을 한 다음, 부모님께 큰절하는 순서로 예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신랑신부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습니다.
그 비싼 바닷가재 사시미로 시작된 음식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너무 고급이고 종류도 너무 많아서 옆에 있는 사람한테 슬쩍 물어봤습니다. 이정도 하려면 비용이 적지 않을 거 같은데, 얼마나 드느냐고?
그랬더니 한 테이블당 1200원, 우리돈으로 십오만원이 넘는 금액이라는 겁니다.
난 겉으론 표현할 수 없었지만 속으로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오마나 세상에~
난 체면 차리지 않고 아줌마근성 드러내며 열심히 집어 먹었습니다. 내가 잘 먹는다고 옆에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군요.

드디어 신랑신부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입장했습니다.
십수년전 조선족동포가 결혼할 때 입은 한복을 생각한 나는 그들이 입은 한복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지 뭡니까. 내가 작년에 우리신랑이랑 결혼할 때 입은 한복과 다를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물었죠. '저거 중국에서 만든 한복인가요?'
돌아온 대답. '아니요, 한국에서 150만원 주고 해 온겁니다.'
어쩐지.

이어서 신랑신부가 단위에 놓여진 청실홍실 의자에 가 앉았다가 일어서서 바가지를 던집니다. 바가지를 던져서 파인면이 나오면 딸이 나오고 둥근면이 나오면 아들은 낳는다나요.
첫번째 던진것이 파인면이 나오자 신랑이 다시 한번 던지겠다고 하더군요.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내들이란 그저 아들밖에 모른다니까...

신랑신부가 좌석을 돌며 인사를 나눈 뒤, 북한 복무원아가씨들의 축하공연이 시작됐습니다.
가무가 어쩜 그리 뛰어나든지, 우리나라 남자들이 가면 침흘리고 본다더니 정말 그럴만 하더라구요. 생글생글 웃어가며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와 춤을 선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깜찍하고 예뻤습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중국가면 꼭 한 번 옥류관에 들러서 공연을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단을 장식한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은 우리의 돌잔치, 회갑연 등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는데,
각종 과일, 과자, 사탕, 술 등으로 장식하고 부를 뜻하는 물고기 두마리와 사랑을 뜻하는 닭 두마리가 원앙의 모습으로 맨 윗자리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잉어같았는데, 죽은것이 아니라 술에 담궈서 잠시 기절시켜 놓은 거라는군요.ㅎㅎ

결혼식이 대충 끝나갈 무렵, 난 아줌마와 함께 일어났습니다.
예식이 하도 거창하고 화려해서 내가 아줌마한테 물었죠.
젊은 중국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서 저렇게 결혼을 거창하게 하느냐고.
그 젊은 신랑은 어려서 부모한테 버림받고 혼자 공부하고 공장을 차려서 자수성가했다는군요.
그 나이에 고급 아파트와 고급차도 마련해 놓았답니다.
어느나라든 결혼전에 그만한 걸 준비해 놓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결혼비용을 거의 부모에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모습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결혼식 풍습이 예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결혼식 수준이 일종의 부의 상징처럼 여겨진다더니 정말 그런거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조선족동포들이 한국의 결혼식 유행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 좀 씁쓰름 했죠. 예식순서나 결혼식피로연 등이 우리것과 많이 흡사했거든요. 그런건 안 닮아도 될 거 같은데.

한가지 다른 점은 우리나라처럼 번개불에 콩궈먹듯 시간에 쫓겨 후다닥 치뤄지거나,
하객들로 북적대고 그런 모습이 없다는거죠. 약간 썰렁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나 할까.

암튼 오늘은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사진 몇장 찍은거 올려 놓을테니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80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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