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에게

공무원시험 도전기

구봉88 2009. 8. 5. 11:58

 

외시·행시 수석 합격한 공신들의 조언

 
 


올해 공신으로 꼽힌 사람은 행정고시 수석 합격자인 김혜주(29)씨와 외무고시에서 수석을 한 박꽃님(25)씨.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기본에 충실하라고 강조했다. 기본 없이 응용문제만 풀다가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스스로 공부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이를 철저히 이행했다. 남이 하라는 것을 한 게 아니라 능동적인 자세로 자기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따라간 것이다. 공신들의 공부 노하우와 꿈을 들어본다.

중·고생을 위한 조언

두 사람은 모두 지방학교 출신이다. 그래서 사교육 받을 기회도 제한됐지만 오히려 깊게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박 씨는 고교 2학년 때 수학 과외를 받은 게 전부였고, 김 씨는 학원이나 과외와는 아예 거리가 멀었다.

중학교 수학 선생님인 박 씨의 아버지는 그때그때 배운 것을 충실히 소화하면 굳이 선행학습이 필요하지 않다며 학원엘 보내지 않았다. 선행학습을 하면 다 아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덕분에 박 씨는 중학교 때 기본을 충실히 배우는 연습을 했다. 시험이 어렵지 않았고 많은 것을 배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뛰어난 머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시간을 들여서 깊이 탐구하는 타입이다”라고 한다.

그런 딸에게 수학교사인 아버지는 생각이 필요한 문제를 내 주고 1주일 동안 생각

하도록 내버려 둔 뒤 나중에 함께 풀곤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책을 많이 읽은 게 이런 데 도움이 됐다.

고교 때는 그저 남들이 하는 만큼 했다. 12시 반에서 1시 사이에 자고 7시에 일어났다.

학원에 가지 않는 대신 막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됐다.

박 씨는 특히 연상하면서 암기하는 방법을 깨쳤다. 책을 보면 아는 것 같은데 막상

덮고 나면 생각이 나지 않으므로, 하루나 이틀에 한번 씩은 자기 전에 배운 것을

떠올려본 뒤 막히는 게 있으면 일어나서 확인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것을 채웠다.

김혜주 씨는 중학교 때 특이한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2학년까지 그는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면 저녁을 먹고 바로 잤다. 대신 남들이 모두

자는 새벽에 일어나 공부했다. 6시에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든 뒤 8시간 정도 자면

2시다. 그 때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혼자 공부를 했다는 것. 중3 때는 학교 수업이

늦게 끝나 어쩔 수 없이 남들과 같이 했다.

과외와 학원을 멀리한 대신 김 씨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공부를 했다. 그 때

연습한 게 나중에 고시공부를 하는데도 도움이 됐다. 교재도 이것저것 보지 않고

기본적인 것을 확실히 해놓은 뒤 특정 교재 하나를 반복해서 공부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여러 책을 보는 것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보는 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고시 공부 이렇게

신림동엔 고시생들이 몰려있다. 덕분에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위안을 주며, 시험 트렌드를 알 수 있는 학원에 쉽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짧은 기간에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험의 특성상 스터디그룹을

만들 필요성도 큰데 그게 용이하다.

고시는 두 차례의 시험과 3차 면접으로 이뤄진다.

1차 시험은 전엔 헌법 한국사 등 공통과목으로 치렀지만 지난해부터 공직에 공통적

으로 적용되는 공직적성평가(PSAT)로 대체됐다. 암기능력이 아니라 폭넓은 지식이

고르게 요구되는 사고력 테스트다. 이 때문에 별도 공부를 할 필요 없이 그날의

컨디션이 좌우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는 오산이라고 한다.

김혜주 씨의 경우 공통과목으로 볼 때는 1차 시험을 수월하게 통과했다. 그래서 PSAT

로 바뀐 뒤에도 방심하다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 씨는 “1차 시험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암기가 아니고 사고하는 것이므로 컨디션이

중요하다며, 공부해봤자 필요 없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

김 씨는 이후 기본을 철저히 다졌다. 기출문제를 분석해 취약과목은 강의를 듣고

오답노트를 작성했다. “1차는 기본서적을 과목 당 1~2권으로 최소화하되 기본을

철저히 익힌 뒤 시중에 나온 모의고사 문제는 거의 풀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꽃님 씨는 고시공부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1차 시험을 봤다. 합격한다기보다

분위기와 수준을 알기 위해서다. 문제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 그는 1년 동안 혼자

공부를 했다.

기초를 철저히 다지기 위해서다. 2년째부터는 학원에 다녔다. 그래야 모의시험을

계속 치면서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올해는 1차 시험을 앞두고 2~3개월

전부터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공부를 했다고 설명했다. 시간 제약이 있는 시험이기에

함께 준비하는 게 효율적이란 것.

2차 시험은 부문별로 정해진 과목으로 치른다.

여기서도 각 과목의 기본 내용을 철저히 이해하는 게 비결. 박 씨는 기본서를 7~8번

읽는 것으로, 김 씨는 기본서 내용을 완전히 정리하는 것으로 이 작업을 마쳤다.

외시를 본 박 씨는 우선 외국어는 매일 조금씩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은 매일

영어는 3시간, 제2외국어인 일본어는 1시간씩 했다고 한다.

소위 논문과목이라고 불리는 나머지 과목은 기본서를 철저히 암기하고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박 씨는 국제법과 국제정치 경제학 등 3과목을 치렀다. 그는 세 과목

모두 기본서에 나오는 개념과 조문을 암기하는 데 충실했다. 그중에서도 암기과목이

라고 생각한 국제법은 조문과 기본개념까지 외우다시피 했다.

박 씨는 “학원에서는 기본을 응용한 것을 많이 가르치려고 하는데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것을 외운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기본을

철저히 한 게 실제 도움이 됐다고 경험담도 털어놨다. “국제정치는 준비 안한 생소한

문제가 나왔는데 그와 관련해 기본서에 나와 있는 것을 썼다. 나중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을 보면 그게 먹힌 것 같다.”

박 씨는 “처음 세 번은 정독했고 이후엔 목차만 보고 내용을 떠올리다가 막히면 가서

찾아보는 방법을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김혜주 씨는 2차 과목을 정리할 때 “기초를 도외시하고 응용문제 풀이 위주로

정리하다 보면 기본이 무너져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고 경험을 밝혔다.

그는 2007년 한 해에 걸쳐 2차 과목의 교과서와 자료를 취합해 정리했다. 교재를

직접 만든 셈이다. 특히 제일 약하다고 생각한 경제학은 교과서를 모두 정리하고

서브노트를 끼워 넣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 없는 부분과 중요한 부분을 정리하니 남이

쓴 글을 읽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고 한다.

“2007년에 운이 안 좋아 1차 시험에서 떨어진 게 지금 와서 보니 전화위복이 됐다.

시간이 생겨서 충분히 정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할 정도다.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도 고시생에겐 큰일이다.

김 씨는 나이 먹은 딸을 오랫동안 믿어준 부모님과 스스로도 시험 준비를 하면서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 하며 도와준 동생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특히 막바지엔 신림동에서 공부하며 사귄 남자친구가 정서적으로 도움을 많이 줬다고

 털어놨다.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하지만 불확실이 주는 스트레스로 힘들어 할 때

격려해줘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

박 씨도 신림동에서 공부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적으로 위로를 받고 정보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 그렇지만 나름의 마인드 컨트롤

노하우도 공개했다.

“2년 반 동안 나를 믿어보자고 했기 때문에 방황을 덜 하게 된 것 같다”는 그는 처음

시작할 때 시간을 충분히 잡았기에 1차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동요하지 않은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믿어보자고 한 게 좋은 결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외시 수석 박꽃님 씨]


마산 출신으로 구암여중과 구암고를 나왔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반이다. 중·고교 때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한 정도라고 했다. 중학교 때는 책을 많이 읽었지만 고교 때는

그러질 못해 대학에서 다양한 종류의 책을 두루 읽었다. 특히 사회학을 이중전공

하려고 생각해 사회사상 쪽 책을 많이 읽었다고. 그는 교환학생으로 노르웨이에

갔다가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3학년 2학기에 교환학생으로 나갔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영어 못하는 게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곳에서 모의UN총회를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나 잘 했다. 프레젠테이션도 잘 했고 토론도 자연스럽게 해서 보기가

좋았다. 내가 좁은 곳에서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쓰라렸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돌아오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국제기구에 가려고 보니

자격요건이 걸리는 게 많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외무고시를 택했다.

2005년 12월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휴학계도

냈다. 마침 동생이 신림동에 있었기에 자연스레 신림동으로 갔다.

두 번의 낙방 끝에 올해 1차 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해 보니 안정적인 점수가 나왔다.

곧바로 두 달 뒤에 있는 2차 시험을 준비했다. 이미 기초를 탄탄히 쌓았기에 기본서의

목차를 보면서 각 장의 암기내용을 체크하며 딸린 내용을 떠올려봤다. 2차도 무사히

통과했다. 외교관이 되기 위해 연수를 받고 있는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외교관이 될

것인지 생각하지 못하다가 선배들의 얘기를 듣고 이제는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부단히 노력하는 외교관이 되려고 한다”는 그는 “전문분야에 대해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을 것이다”며 의지를 밝혔다.

취미는 바이올린 연주. 어릴 때 배웠는데 그 동안 쉬다가 지금 다시 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은 중학교 교사인 부친과 어머니, 그리고 서울대 4학년인 동생이 있다.

[행시 수석 김혜주 씨]

경남 진주 봉원중과 삼현여고를 나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중·교교 때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

고교 때 좋아하는 선생님이 “너는 미학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해 관심을 갖고 있었

는데 마침 당시 인기를 끌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보고 미학이 문학

철학 인문학 전반을 다룬다는 것을 알고 전공을 삼았다고.

중·고교 시절 계획을 세워 꼼꼼하게 공부를 하느라 세상을 폭넓게 보지 못했던 그는

대학에 와서 자신의 시야가 좁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철학 문학 역사

등을 두루 공부했다.

특히 학회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학과의 역사철학학회장까지 역임했다.

미학과에서 국문학 강의를 들을 때 소설 읽고 토론하는 게 재미있게 느껴져 국어교사

를 하겠다며 졸업 후 국어교육과에 편입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시적인 것보다는 교육 정책 같은

거시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진로를 바꿨다.

어머니는 고시공부를 한다는 딸을 반겼다. 그러나 아버지는 처음엔 걱정을 많았다.

쉽지 않은 도전이기에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되는데”하며 만류했지만 딸의 결심을

보고 전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철도공무원을 정년퇴임한 부친은 자주 공무원의

보람과 자부심을 얘기했는데 김 씨가 고시를 본 데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소설읽기가 취미라는 김 씨는 고시 준비할 때 헬스클럽에서 체력을 다졌지만 그래도

나중엔 체력이 달렸다고 털어놨다.

출처:[이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59호(08.12.29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아이들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최면의 방법  (0) 2009.08.10
좋은사람이 되는 요령  (0) 2009.08.07
생물자원보전 청소년리더 선정  (0) 2009.07.30
물 프로젝트매니저  (0) 2009.07.30
[스크랩] 한국 - 육군 특전사  (0) 2009.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