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언니. 당신과 필드에서 4시간 반을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지난 주말 당신이 골프장에서 한 일을 알고 있습니다. 제 눈에 비친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요. [모델=백지혜. 사진=김상선 기자] | |
골프장에 갈 때마다 꼭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캐디’입니다. 최소한 4시간반 동안 골퍼들과 함께하는
라운드의 동반자입니다.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 오방렬 지배인은
“대한민국 캐디야말로 세계 골프 시장에 내놓을 만한 명품”이라고
말합니다.
코스 설명에서부터 클럽 전달, 거리 측정은 물론이고
퍼팅 라인을 읽어주는 것까지 ‘1인4역’은 기본이라는 거지요.
이뿐일까요. 스코어 기록은 물론 상금 관리 및 분배까지
1인 5역, 6역을 맡는 사람이 대한민국 캐디입니다.
그런데 주말 골퍼들은
‘캐디’를 진정한 ‘라운드의 동반자’로 여기고 있는 걸까요.
-“언니야, 볼 찾아와!”
-“언니야, 물 좀 달라니까.”
-“언니야, 거리가 틀렸잖아.”
혹시 골프장에 갈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지는 않으시는지요.
대부분의 주말 골퍼들은 예의를 잘 지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입니다.
인터넷 골프 전문 사이트마다 고충을 토로하는
캐디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거든요.
‘오감자’란 필명으로 유명한 캐디 최민아씨는
인터넷 매체에 글을 쓰다 ‘위풍당당 오감자의
유쾌한 골프세상’이란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캐디 엄희영씨는 골프스카이에
‘떠리원 통신’을 연재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크 플리즈’란 아이디를 쓰는 한 캐디는
인터넷 다음에 ‘라운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캐디의 눈에 비친 아마추어 골퍼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들이 말하는 내용이야말로 우리나라
아마추어 골퍼들의 자화상 아닐까요.
이번 주 golf&은 골프장 캐디의 입을 빌려
아마추어 골퍼의 유형을 정리해 봤습니다.
아래의 에피소드는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랍니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골퍼인가요.
■야누스형
두 얼굴을 가진 골퍼. 말 그대로 야누스다.
두 얼굴을 가졌다. 캐디들은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야 한다.
동반자들이 있을 때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지만
캐디랑 둘만 남겨졌을 때는 표정이 180도로 변한다.
내기할 때 돈을 따면 방긋 웃다가도, 잃으면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린에서 라인이라도 틀리게 읽으면
싸늘한 말투로 캐디를 식은땀 나게 하는 골퍼다.
표정이 돌변하는 걸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게 한다면 어설픈 야누스다.
진정한 야누스는 캐디만 안다.
■작업형
“언니~. 우유에는 딸기 우유도 있고, 초코 우유도 있고, 바나나 우유도 있는데 내가 만든 우유는 뭐~게?”
“뭔데요?”
“아이 러브 유~.”
작업형 골퍼를 만나면 닭살이 절로 돋는다.
이런 경우도 있다.
“언니야! 천천히 걸어다녀.”
“왜요.”
“언니, 매력이 뚝뚝 떨어지잖아.”
또 있다.
“언니, 아버지가 보석상 하셨어?”
“아뇨.”
“그럼, 누가 우리 언니 두 눈에 보석을 박아놨을까.”
이 정도면 뭐 그래도 애교 수준이다.
하지만 작업형들은 이쯤에서 그치지 않는다.
“휴대전화 번호 찍어달라”
“쉬는 날 기숙사로 차를 보내겠다” 등 별별 얘기를 다 한다.
■투덜이형
앞바람이라고 투덜. 뒷바람이라고 투덜. 거리 길면 길다고 투덜. 짧아도 투덜. 설명해 주면 말 많다고 투덜. 안 해주면 무뚝뚝하다고 투덜. 앞 팀이 빠르면 안 보인다고 투덜. 그늘집에 먹을 게 없다고 투덜. 먹고도 맛없다고 투덜. 볼 안 맞아도 투덜. 뭐, 그리 불만이 많은지.
■거북이형
말투부터 행동까지 말 그대로 ‘거북이’다. 준비할 때도 꼼지락꼼지락, 하루 종~일 걸린다. 어드레스할 때는 장갑 끼고, 티펙 꽂고, 볼 놓고, 방향 맞추고, 다시 쪼그려 앉아서 또 방향 맞추고…. 슬로 비디오가 따로 없다. 그런데 아직 스탠스도 안 취했다.
드디어 시작되는 빈 스윙. 세 번 이상은 기본이다. 그래도 여기서 샷을 하면 다행이다. 어드레스를 다시 푸는 이도 있다. 가끔 “어? 배꼽 나왔네” 하며 티를 뽑으면 살인 충동까지 느낀다. 스탠스를 취한 뒤엔 궁둥이를 씰룩씰룩하며 왜글에 들어간다. 하나 둘 셋~. 숨 넘어간다. 어쨌든 어드레스 긴 사람치고 볼 잘 치는 이가 없다. 거북이형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느리다’는 점을 모른다는 것이다.
“언니, 우리 플레이가 늦은 편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헉.” 답이 안 나온다.
■조급형
어드레스가 없다. 티펙 꽂고 빈 스윙도 없이 바로 친다.
진행이 안 된다 싶으면 티잉 그라운드에서
서너 명이 동시에 샷건을 하기도 한다.
조급형의 특징은 끼리끼리 모인다는 것.
동반자들도 다 조급형이다.
거리를 부르는 찰나에 클럽 다 뽑아서 간다.
온그린시키면 바로 카트로 와서 퍼터까지 챙겨간다.
“고객님, 핀~” 하는 사이에 이미 2명이 퍼팅을 한다.
신기하게 이런 팀들은 퍼터를 잘한다.
스코어 따위도 절대 연연해 하지 않는다.
첫 홀은 무조건 ‘일파만파’ 아니면 ‘무파만파’다.
뒤에서 볼 때 그린에 올라가기만 하면
사라지는 앞 팀이 있다면 바로 이런 유형이다.
캐디로서는 좋지만 좀 정신없는 게 흠이다.
■네탓이오형
잘 치면 무조건 자기가 잘 쳐서다.
볼이 핀에 붙으면 꼭 이렇게 말한다.
“언니가 불러준 것보다 5m 덜 봤다.”
만약 거리가 길었을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히 6번은 길다고 조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6번으로 친다. 아니나 다를까.
그린을 훌쩍 넘어간다.
바로 쇳소리가 섞인 한마디가 날아온다.
“언니야. 145m 아니다. 이 언니가 자꾸 거리를 길게 보네. 일한 지 얼마나 됐어.”
그러다 버디라도 잡으면 잘난 체를 한다.
“언니야. 내가 사실 언니가 본 것보다 더 많이 봤어.”
■집착형
모든 것에 집착하는 골퍼다.
가장 기본적으로 골프공에 집착한다.
공이 분명히 워터 해저드에 빠지면서 물까지 ‘파바박’ 튀었는데도
“언니! 볼 못 찾나? 새 볼인데”라며 애꿎게 캐디만 쳐다본다.
거리가 좀 안 맞았다 싶으면 홀마다 캐디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언니, 왜 아까 거기서 155m 본 거야? 내리막인데.”
뭐 이런 식이다.
골프공만 찾으면 양반이다.
티샷을 할 때마다 날아간 티펙 하나를 찾기 위해 헤매는 골퍼도 많다.
■나는 왕이다형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한번 그 자리에 서면 꼼짝도 하지 않고 캐디를 부른다.
“언니야, 5번~.” 허겁지겁 달려가면-.
“아니, 6번~ 줘야겠다.”
숨이 막힌다.
이 유형은 말투도 명령형이고, 행동도 자기 멋대로다.
클럽이고, 골프공이고, 물이고 모든 것을 다 갖다받쳐야 한다.
비가 오는 날, 이 유형을 만나면 곤욕을 치른다.
“언니, 그립 안 젖게 수건으로 싸고 있다가 줘.
퍼터하게 우산 좀 들고 있어라.”
글=최창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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