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웰빙-외식사업

어묵-오뎅의 기원 알기

구봉88 2010. 4. 25. 11:10

길거리 음식의 탄생 -오뎅-어묵

 

 

대부분의 길거리 간식이 나이들면 체면때문에라도 먹기 힘들다. 머리 성성한 할아버지가 떡볶이를 먹고 있는 장면, 다큰 처녀가 붕어빵을 먹고 있는 장면...등은 아무래도 상상하기가 조금 낯이 설다. 그런 면에서 오뎅은 참 예외적이다.

 

겨울에 오백원주고 오뎅꼬치 하나 사서, 감기환자도 찍어먹고 임질환자도 찍어

먹던 간장에다 푹 담궈서, 한입 크게 베어물고, 조미료를 줄줄 들이부은 국물 한 컵 마셔주는건, 참 누가 그렇게 먹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동네꼬마도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오 뎅이 일본음식이라는 것은 아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말로 어묵이라고 순화해야 한다는 말도 많으며, 실제로 요즘은 어묵이라는 말도 많이 쓴다. 오뎅을 어묵이라고 고친 것은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고치는 류의 얼토당토 않은 순화가 아니며, 어묵이라는 말도 어감이 나쁘지 않다. 그래도 국물은 역시 어묵 국물보다는 오뎅 국물이 좋겠지만...

 

일본어 <오뎅>을 한국어로 바꾸면 어묵이 아니다

그런데 오뎅을 한글화하면 어묵이 맞을까?

어묵(魚-, 문화어: 고기떡, 일본어: 蒲鉾 (かまぼこ) 가마보꼬)은

흰살 생선을 잘게 갈아 약간의 밀가루를 넣어 뭉친 음식을 말한다.

튀기거나 삶거나 쪄서 먹는다. 생선묵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분식집에서 파는 어묵을 속어로 오뎅으로도 부르기도 하지만,

일본어의 오뎅은 어묵을 모아서 만든 탕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어묵과 오뎅을 구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먹는 오뎅과 일본의 가마보꼬는 차이가 있다

 

1.오뎅의 어원부터 알아보자.

' 오뎅'이라는 말은 원래 '덴가쿠'의 첫 글자에 접두사 오(お)가 붙은 말이다. 덴가쿠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무로마치(室町 · 1338∼1573) 시대 모내기철에 행하던 놀이의 하나로 죽마를 타고 그 위에서 추던 춤이요, 다른 하나는 꼬챙이에 끼운 두부를 된장에 발라 구운 두부 된장 구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후자의 이름은 그 모양이 전자인 덴가쿠 춤의 모양을 연상케 한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그런데, 이 덴가쿠의 모양새가 왠지 석연치 않다. 모양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오늘날의 오뎅과는 전혀 무관한 듯한 이 '두부 된장 구이'가 어떻게 여러 가지 재료에 국물을 내고 맛을 내는 오늘날의 오뎅으로 변모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덴가쿠에 쓰이는 재료의 변천과 그에 따른 이름의 변천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한 편 기록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에도 말기에는 오뎅이라는 이름이 이미 널리 쓰이고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덴가쿠를 국물에 넣고 함께 끓이는 형태의 요리가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에도 시대 중기인 18세기 도쿄에서 처음 이러한 요리가 생겨났을 때 사람들은 이를 덴가쿠라 하기도 하고 오뎅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중에는 주로 삶은 것을 오뎅이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재료 역시 다양해져 오뎅은 토란이나 무, 가다랭이, 어묵, 구운 두부, 삶은 계란 등을 넣은 오늘날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오뎅에서 그 옛날 덴가쿠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재료를 꼬챙이에 꿴다거나 구운 두부를 쓴다거나 하는 덴가쿠의 잔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상출처 : www.chamsal.co.kr

 

 

설명이 아주 자세하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1. 두부된장구이를 꼬치에 꿰어 먹는 음식을 덴가쿠라고 불렀다.

2. 에도시대에 덴가쿠를 국물에 넣어 끓이는 요리를이것을 오~덴가쿠 ,오뎅이라 

    고  불렀다.

3. 현재의 오뎅은 재료를 꼬치에 꿰어서 국물에 끓여먹는 조리방식을 의미.

4. 오뎅의 재료에는 토란, 무, 가다랭이, 어묵, 구운두부, 삶은계란 등이 있다.

 

일본판 위키페디아에 <오뎅> 중 지역별 오뎅에 대한 자료이다.

 

1.나가노현 -

이이다 지방에서는, 간장의 국물로 익힌 일반적인 오뎅에, 네기다레(잘게 썬 것으로 한 파를 간장에 담그어 파의 엑기스에 의해 끈기가 나온 소스)를 걸쳐 먹는다. 인기의 도구는 두부이다.

 

2.시즈오카현 -

시즈오카시 규구의 번화가에는 오뎅점만이 처마를 나란히 하는 음식점거리가 있거나 많은 막과자가게에서도 오뎅을 판매하고 있다.

또 시즈오카현의 오뎅 자체도 농구 간장을 사용해 우스지육으로이고를 취한 검은 국물이 특징으로, 생선 굳힌 식품은야이즈산의흑생선 굳힌 식품,

모든 도구에 대나무 꼬치를 찔러 있는 것이 특징으로, 위에 「이고 가루」라고 불리는 정어리의 가다랭이포나 가다랑어로 만든 포, 녹조류 (을)를 걸쳐 먹는다.이것은 「시즈오카 오뎅」(발음은시즈오카시주변에서의 「시즈오카」의 읽혀지는 방법을 모방해 「-얼굴로 」)로 불리고 있다.

 

 3.아이치현 -

현지 목이라고 익혀를 힌트에 핫쵸된장을 베이스로 한 된장 오뎅」이 있다. 무우, 곤약등의 스테디셀러 도구 외에 돼지 삼겹살육이 들어가 있다. 된장미가 스며든 알을 밥 위에 실어 먹는 것이 특징.

 

 4.효고현히메지시 -

겨자대신에 짊어지지만간장에 붙여 먹는다.

 

5.카가와현 -

우동가게에서는,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 부식으로서 판매되고 있어 손님은 주문한 우동이 다될 때까지 등에, 달짝지근한 된장을 찍어 먹는다.

이 오뎅에 사용되는 국물은 우동에 사용하는 국물과 공통인 것이 대부분이다.

 

6.에히메현 -

겨자대신에 오뎅용 된장을 붙여 먹는다.

번 역이 난리도 아니긴 하지만, 두부에 삼겹살까지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오뎅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어묵> 으로 번역하는 물건은 일본에서는 <오뎅>이라고 부르지 않고 <가마보코>라고 부른다.

 

 

일본식 가마보코의 조리법 및 기타등등

 

우리말 <어묵>은 일본어로 <가마보코>다

 

1) 어원

가마보꼬의 "가마"는 가마라고하는 식물의 꽃을 의미하며, "보꼬"는 무사가 전쟁을 할 때 무기로 사용했던 炳(손으로 잡는곳)의 긴 검의 끝을 의미한다. 생선의 살을 잘게 썰어서 소금을 뿌려 같은 생선살을 검 끝에 입혀서 불에 구워 먹은 것을 시작으로 그 형태가 "가마"라고 하는 꽃의 이삭과 창(검)을 이용해서 구웠던 것으로부터 가마의 보꼬라고 불려지게 된 것으로 지금의 가마보꼬라는 표현이 된것으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2) 역사

神 功황후의 전설에 이미 가마보꼬와 관련된 전설이 있지만, 실제 가마보꼬의 역사적 시작은 平安 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足利 시대에는 儀食用으로 사용되어 왔다고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가마, 가마보꼬, 살갈음, 생선갈음 등의 명칭으로도 불려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무판위에 갈아 얹은 생선의 살을 얹혀서 찐 가마보꼬 (이따가마보꼬)가 등장 된 것은 도요도미히데요시 시대(1568~1600년)가 시초로 보인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식전에는 이따가마보꼬가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이전에는 구워서 만들었으나, 에도시대에 오면 찌는 방법이 주류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서지방에서는 야끼이따,무시이따가 주류이다.

- 구운 스타일 : 찌꾸와, 사사,

야끼이타- 아게 (튀김) : 아게가마,

아부라아게- 찜 : 신죠, 무시이따, 쯔미레등

 

 가마보코란 생선의 살코기를 갈아서 전분 및 각종 야채나 향료를 넣고, 찌거나 굽거나 튀기는 음식, 즉 어묵이다. 레시피를 찾아봤는데 이상하게도 잘 안나오는군요.

 

조선에도 어묵 비슷한 건 있었다 우 리나라의 어묵은 일제시대를 통해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이 중론이다. 오뎅 자체가 일본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한국의 오뎅과 일본의 오뎅이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이미 한 번 지적했다.

 

수입을 했다고 쳐도 상당히 삐꾸로 수입한 셈인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에는 어묵이 전혀 없었을까?

 

 1) 생선숙편에 관한 기록

숙 종 45년(1719)의 기록인 <진연의궤>에는 생선숙편이라는 찬품이 나온다. 재료는 <대생선 3미, 간장 3홉, 녹말 1되 5홉, 참기름 3홉, 잣 5작> 이다. 조리법은 안 나오는 모양인데, 김상보씨는 이것이 <생선 으깬 것에 녹말, 참기름, 간장을 넣고 차지게 섞어 틀에 넣어 쪄낸 다음 이것을 편으로 썰어서 잣가루를 넣은 간장에 찍어먹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라고 추리했다. 이 생선숙편은 후일 진찬의궤(1829), 진연의궤(1901) 등에 생선문주라는 명칭으로 변모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이상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P235)

 

2) 농촌생활연구소에서 편역한 규합총서(1800년경)의 완자탕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① 큰 생선을 껍질과 뼈 없이 하여 살을 곱게 두드린다. 

② 쇠고기나 돼지고기, 생치, 닭 중에서 곱게 두드린다. 

③ 두드린 생선과 고기에 후추, 생강, 파, 표고를 기름장에 합하여 주물러서 가운데 왼잣 하나씩 넣어 밤 만하게 환을 만든다. 계란이나 녹말을 씌워 장국에 간 맞추어 끓인다.

비슷한 조리법은 산림경제에도 있다. 

완자탕(椀子湯)은, 큰 생선의 껍질을 벗겨 뼈를 발라내고 살만 곱게 다진 뒤, 살진 쇠고기나 돼지고기, 또는 꿩이나 닭고기를 곱게 다져 후추ㆍ생강ㆍ버섯ㆍ파ㆍ참기름 등 양념에 재어 밤알만하게 만들어 그 속에 잣 한 개씩 박아 넣고, 간장과 물로 간을 맞추어 끓여, 계란이나 또는 녹말(菉末)을 씌워 데쳐서 먹는다.

 

 한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다진 고기 등을 소금으로 간하여 밤톨만하게 뭉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을 씌워 맑은 장국에 끓인 음식이다. 생선이 없으면 고기만으로 한다’고 하였다(윤숙경. 1996).

 

3) 같은 책에서 <준치 뼈 없이 하는 법>을 보니 조리법이 이렇다. 

 

① 준치를 씻어 토막 지어 그 조각을 도마 위에 세우고 허리를 꺾어 베나 모시 수건으로 두 끝을 누르면 가는 뼈가 수건 밖으로 내밀 것이니, 낱낱이 뽑으면 가시가 적어진다. 

② 준치 토막을 삶아 체에 걸러 갖은 양념하여 도로 손으로 준치처럼 만들거나, 생치만두처럼 하여 녹말 씌워 먼저 삶던 물에 도로 넣고 생강 넣은 유장, 파 등을 넣고 다시 끓인다. 결국 생선에서 살만 발라내어 치댄 뒤 부재료와 섞어서 뭉치고 이것을 찌거나 (생선숙편) 끓이거나 (완자탕, 뼈 없는 준치-_) 하는 요리법은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완자탕은 고기를 섞었나본데, 그 비중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인터넷 자료에는

<완자탕은 궁중에서는 봉오리라 하고 민간에서는 모리라고 하여 봉오리탕, 모리탕이라고도 했대요. 이렇게 완자탕은 누구 할거 없이 모든 사람들이 즐겼던 음식이었습니다. 서민층에서도 즐겼던 완자탕은 밥과 함께 먹는 음식이기보다는 교자상이나 주안상에 주로 내었던 음식이었답니다. 물론 반상보다는 주안상에 잘 어울려서 그렇겠지만 완자탕 하나만으로 충분하게 요기를 면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요즈음은 완자탕을 즐기는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

 

와 같은 기사가 있는데, 모리탕은 모르겠고 봉오리탕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와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으로 양반들의 손님접대에 활용했다고 한다. 요약하면, 생선숙편은 어묵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즐기던 음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완자탕은 고기가 섞이기도 하고 섞이지 않기도 하는데, 고기가 섞이지 않은 완자탕은 어묵탕과 비슷할 것으로 짐작한다. 다만 생선만으로 완자탕을 자주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준치 뼈 발라내는 법을 보면 어묵과 유사성이 보인다.

 

그러나 결론은, 이것들이 오뎅의 원조라고는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무슨 전통을 가졌든간에, 현대의 우리가 먹는 오뎅은 일본의 가마보코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 편 역관(또는그 부인)이 1700년경에 썼다고 전해지는

≪소문사설≫에는 <가마보곶(可麻甫串)>이라는 음식이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물고기살을 얇게 저미고, 여기에 돼지고기·쇠고기·버섯·해삼·파·고추 등을 다져 만든 소를 얹어 3,4켜가 되도록 한다.

 

그  다음에 이것을 두루마리 종이 말 듯이 둥글게 말아 삶아낸 다음에 썰어서 먹는다. 역관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일본에 다녀온 경험을 살려서 쓴 글이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대중화된 음식은 아니었고, 중인 계급에서 일부 해먹던 별미로만 추정된다. 오뎅집은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수입되었다

 

일제시대의 외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의 하나가 바로 오뎅집이다. 중국음식이나 일본음식, 양식집이 음식점으로 자리를 잡은 한편, 오뎅집은 술집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이 시대의 오뎅집에서 가마보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초대량 생산공장이 존재하지는 않고, 대부분 시장의 상인 등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또는 영세한 공장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해방전 근현대회사 조합자료를

보면 당시에 어묵의 제조나 판매를 담당하는 회사가 가끔 등재되어 있다.

 

흑전상점 (어묵제조) - 합자회사, 자본금 4,000원, 부산산목상점 (어묵 판매) - 합자회사, 자본금 1,500원당시의 자본금 4,000원이 어느 수준일까?

조선은행 및 조선일보 등을 비교해보자. 조선은행 40,000,000원, 조선방직5,000,000원, 경성방직 1,000,000원, 동아일보 700,000원, 조선일보 500,000원, 통영 정미소 100,000원, 평양 삼정정미소 24,000원, 군산 낙합정미소 13,000원, 자본금으로 볼 때 가마보코 공장은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런데 이 시대까지는 오뎅에 대한 용어 혼돈은 없었던 것 같다.

가령 1949년에 대구시에는 丸武가마보고工場 라는 어묵공장이 있었는가하면, 1949년에 발표한 국어순화안을 보면 오뎅은 <꼬치안주>라고 번역되어있다.

불확실한 추정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때까지도 진정한 한국 오뎅이 탄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마보코가 가마보코인 한, 한국의 오뎅이 아니다.

어묵은 가마보코, 오뎅빠는 꼬치안주술집,

하지만 한국 오뎅은 오뎅일 뿐이다

 

아주 우문일 수도 있지만, 이 쯤에서 오뎅과 어묵의 차이를 좀 짚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간단하다.

 

<어묵>은 흰살생선이 찾아오신다는 삼호어묵, 청정원어묵, 오양어묵, 이런 류의 백화점 진열대의 럭셔리한 불빛 아래에 앉아있는 넘들이다.

 

<오뎅>은 조미료 듬뿍 탄 국물 안에서 푹 퍼져있는 부산오뎅, 또는 당근 따위와 함께 간장과 식용유에 대강 볶아서 밥반찬으로 나오는 넘이다.

국내 오뎅

가마보꼬

오뎅의 원재료는 생선을 통째 갈아서 (선도 및 어종에 관계치 않음) 껍질, 뼈, 머리 등 모두 함께 갈아서 밀가루를 섞어서 튀겨낸 제품이 주종임

가마보꼬는 선별된 어종(조기, 도미, 바다장어, 명태등)을 선도유지하는 가운데 머리, 껍질, 뼈 등을  모두 제거한 후 생선살 안의 힘줄까지 모두 제거 하여 급속냉동 시킨 연육을 선별 사용(최고급품)함.

국내의 생선살과 밀가루의 배합 비율이 상당히 높음. 정확히는 각 회사에 따라서 작업하는 가운데 정확한 수치를 알기 어려움

가마보꼬는 생선 연육을 해동하여 그 자체 고유의 맛을 살리기 위하여 첨가물 및 전분 사용량이 극소량이기 때문에 생선의 육질과 맛을 최대한 살림

튀김이 주종임

가마보꼬는 튀김(아게)가마보꼬, 구운(야끼)가마보꼬, 삶음(무시)가마보꼬 등 가마보꼬의 종류가 다양함.

국내의 노하우가 옛날 일본에서 들어올 당시 노하우에 거의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

일본의 가마보꼬 명인의 70년 노하우와 전통을 그대로 전수하여 국내에 최초로 선을 보이는 High Qulity 제품임.

 

다행히 이에 대해서는 프리미엄 가마보코 제조업체인 chamsal.co.kr 에서 친절히 비교를 해주셨다.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료하다.

 

선별된 어종에서 연육만을 골라내어 다양한 조리법으로 익힌 다음 요릿집에서 내놓은 High Quality 제품이 가마보코인 반면, 상한 생선, 껍질과 대가리, 공장 직원 불알, 가끔은 멀쩡한 생선 등등을 푹 갈아서 밀가루 한푸대쯤 넉넉히 넣고 트랜스지방에 튀겨낸 것이 바로 오뎅이다. (머 요즘 오뎅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한때는 저랬겠지 뭐.)

 

그리고 이러한 차별성을 만들어낸 시점이 바로 한국오뎅이 탄생한 시점이다. 연육으로 곱고 이쁘게 만든 가마보코는, 한국의 공장에서 밀가루와 조미료로서 오뎅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러한 한국 오뎅은 확실히 일본 본토의 가마보코와는 다르다. 그래서 한국 오뎅은 한국 오뎅일 뿐이다. 삼호어묵 내지는 고급 어묵은 일본어로 가마보코라고 하면 되고, 오뎅빠는 우리말로 꼬치안주술집이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 오뎅은 그냥 한국 오뎅일 뿐이다.

 

한국의 오뎅 공장은 언제 처음 생겼을까?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를 찾지 못했다. (어디서 찾아야할지 모르겠다.) 다만 부산의 어묵 가공업체의 연혁을 뒤져보니 1960년경에 오뎅 공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환공식품 - 60년 : 1950년?

부산효성어묵 - 부평동 오뎅할매 50년 : 1960년?  http://amukmall.co.kr

/부산대원어묵 - 1965 http://www.dwfood.net/

부산어묵 - 1974남부식품 - 1975 http://nambu.webin.co.kr/html/introduce/introduce2.html

선우어묵 - 30년 : 1975년?

 

오뎅공장이 본격적으로 생기는 것이 1970년대 중반인 것으로 봐서는 부산권에서 먹던 부산오뎅이 전국구로 확산되는 시점이 대략 1970년대 중반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일본의 전국어묵연합회http://www.zenkama.com에 의하면 수제 또는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제조되던 가마보코가 대량생산된 것은 소화 34년(1959년) 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마보코가 우리의 오뎅과 비슷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한 대량생산공법이나 보존기술이 우리나라로 전해지기까지의 시차를 고려해보면 얼추 비슷한 시점으로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오뎅이 1970년대 중반에 탄생했다면 한국 어묵은 언제 처음 탄생했을까?

나름대로 일세를 풍미했던 <삼호어묵>의 역사를 보면 1976 년에 삼호물산 주식회사로 설립되어 1979년 수산물 가공·수출 사업을 시작으로 식품 사업에 참여한 삼호 F&G는 1983년 부산에 지사를 설치하고 원양어업을 시작하였으며, 1985년 국내 최초로 위생·고급 어묵인 "삼호어묵"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내수식품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 바로 1985년의 삼호어묵으로부터 오뎅은 다시 어묵으로 고급화되어가는 경향을 본다.

 

 

특별부록. 빨간소세지의 탄생.

일 본의 전국 어묵연합회에 의하면, 1954년(쇼와 29년)부터 수산청은 마구로 잡이를 적극 장려했다고 하는데, 이게 어민들에게는 나름대로 골치꺼리였나보다.

 

많이 잡아서 가져오면 잘 안팔려서 신선도가 떨어지고, 그렇다고 남들 다 많이 잡는데 안 잡을 수는 없고. 신선도 떨어진 거 팔아봐야 제값도 못 받고.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끝에, 어육을 사용한 햄·소세지는 어떨까라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 신제품은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케이싱에 채워 가열살균하므로 보존이 잘되다.제법은 어묵과 같습니다만, 돈지로 굳히고 스파이스로 풍미를 주고 있었으니까, 그 무렵의 소비자의“서양식 기호”에 딱.게다가, 양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도 싸다.생산량은 쇼와 35년을 경계로 하고, 급상승, 눈 깜짝할 순간에 10만 톤을 넘어 15만 톤대에 임박할 기세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빨간쏘세지가 등장했다. 1960년의 일이다.이것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빨간소세지의 대명사 진주햄의 창립을 통해 추적하면 될 것이다.   

 

1963. 08. 13.     회사창립 (상호: 평화상사-"진주어묵"생산시판)   

1967. 08. 01.     축산물 가공품 국내최초 생산시판   

1969. 10. 10.     진주햄소세지(주)로 상호변경   

1976. 02. 01.     어육튀김 생산개시

원 래 어묵을 생산하다가, 축산물 가공품 시판이 1967년이구만. 하지만 본사가 말하는 회사연혁에 의하면 대량생산체제는 1974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김밥에 빨간쏘세지가 들어간 연도를 잡아보자면 아주 이르게 잡으면 1963년, 대강 적절하게 잡으면 1967~1970년쯤,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기를 잡으면 1973년이 되겠는데. 그런데 진주햄에서도 어육튀김이 1976년에 생산되었다는것이다.

 

이상의 자료를 통해 국내 어묵, 오뎅의 유래를 알아봄.

어묵 오뎅산업의 웰빙화, 소비증대, Target의 확대를 위해 좀더 많은 제품개발, 생산성 혁신, 다양한 요리법 등이 지속적으로 개발이 되어져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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