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연개소문,
후계자 선택이 흥망 갈랐다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역사철학자로 꼽히는 E. H. 카는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갈파했다. 동명성왕 고주몽, 광개토대왕 고담덕, 을지문덕, 연개소문, 발해 고왕 대조영. 이들은 1300∼2000년 전의 고대사 속 영웅들이다. 이들을 역사책 속에만 가둬 놓는다면,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본지에서는 이 고구려 영웅들에게 현대 리더십 이론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이를 통해 고대의 영웅들과 21세기 CEO들간의 대화를 시도하자는 것이다. 고구려사 전문 학자인 고구려연구재단 김현숙 연구위원과 리더십 전문가인 T-Plus 조영준 이사를 통해, 고대 고구려와 현대 기업경영 간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 주몽 |||
우리 역사에서 창업군주는 이성계로 대표되는 걸출한 무인형과 왕건 같은 덕을 앞세운 지도자 스타일이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동명성왕 주몽의 경우 개인적 능력도 탁월했지만, 그 보다 인화력과 포용력·조정력 등에 힘입어 한 나라를 창업하는 데 성공한 인물로 평가된다. 사서에서 체격이 크다거나 용맹성 등을 강조한 다른 고구려왕들과 달리, 주몽에 대한 묘사는 재주와 지략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왕자들이 주몽을 죽이려 할 때, 어머니 유화부인이 “너의 재주와 지략으로 어디를 간들 안 되겠느냐? 멀리 가서 뜻을 이루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권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부여를 탈출할 때부터 주몽을 따랐던 세 친구 오이·마리·협보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으로 봐야 한다. 탈출과정에서 주몽은 모둔곡에서 삼베옷을 입은 사람(재사)과 중의 옷을 입은 사람(무골), 마름 옷을 입은 사람(묵거)을 수하로 거둬들여 각기 대실씨·중실씨· 소실씨 라는 성을 내렸다. 이들은 현지 토착세력인데, 자진해서 주몽을 찾아와 합치기를 원했다고 한다.
또 졸본 지역에 들어가서는 졸본부여의 왕녀, 또는 우태의 미망인이던 소서노와 결혼했다. 이런 사례들은 주몽이 토착세력을 무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손을 잡고, 민심을 얻으며, 스스로 신복하게끔 유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포용력은 건국 후, 비류국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주몽은 비류수에 채소 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따라 올라가 비류국에 도착, 송양왕과 활솜씨를 겨룬다. 패한 송양왕이 굴복하지 않고 계속 대항하자, 홍수를 이용해 비류국을 거의 멸망지경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을 용서하고 그냥 돌아오자, 이듬해 송양왕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 왔다. 이에 송양왕을 계속 그 곳 우두머리로 삼았다는 것이다. 당시 고구려는 부족연맹체 국가로서, 연맹체의 리더가 송양왕에서 능력과 무력이 뛰어난 주몽으로 교체됐지만, 송양왕의 기득권과 기존 세력기반은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김현숙 연구위원은 “토착세력과 연합, 리더의 자리에 올라서고, 지역의 기득권은 인정해 주면서 자발적으로 복속하게끔 만드는 과정을 보면, 주몽의 기본 성향이 조정·통합·포용 및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왕건형 리더로 보인다”고 말했다.
★ 리더십 스타일 : 수용과 조화 중시하는 화합형
조영준 이사는 “주몽은 유복자로 자라 집안 배경과 기존 세력이 전혀 없었던, 자수성가형 리더”라며 “이런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수용과 조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기존 세력들과 연합하고, 기득권을 인정해 주고, 표용하고, 스스로 따르게 만든 것이 그의 성공요인”이라고 분석했다.
★ 주몽형 CEO : 구인회, 발렌베리 가문
LG그룹 창업자인 고(故) 구인회 회장은 전형적인 화합형 리더십의 소유자다.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이 만나 대그룹을 이루었으며, 조화와 화합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확립했다.
★ 후계자 결정방식 : 객관적 능력위주 선택
주몽의 리더십에서 특기할 것은 후계자 결정 방식이다. 사랑하는 부인 소서노의 소생 비류와 온조를 제쳐두고, 부여에서 망명해 온 유리를 태자로 세운 것.
||| 광개토대왕 |||
“조선조 최고의 명군 세종이 군사적 능력까지 갖춘 격이다.” 김 연구위원은 광개토대왕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만큼 기록상으로만 보면, 광개토대왕은 거의 무결점 리더였다. “체격이 뛰어나게 크고 활달한 뜻을 가졌다”는 표현처럼, 개인적 능력도 뛰어난 데다 철저한 제왕교육을 거친, 완벽하게 준비된 지도자였다.
당시 고구려는 전연의 침략으로 국가적 위기를 당한 이후, 전 국민들이 왕을 중심으로 뭉쳐 급속하게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은 고국양왕의 태자로서, 어릴 때부터 전술과 전략·용병 등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았고 완벽한 제왕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사람됨이 굳세고 용감했으며,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백제 진사왕조차, 대왕이 용병에 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감히 나가서 대항하지 못하고, 한강 이북을 고스란히 빼앗겼을 정도다.
대왕은 총 7회의 정복활동 중 5차례나 직접 군대의 선두에 서서 전쟁을 지휘, 승리를 거둠으로써 왕의 권위를 드높이고 국가를 강성하게 했으며, 귀족세력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특히 즉위하자마자 장거리 원정으로 거란족 정벌을 강행했는데, 승전 후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라 요하 주변을 순시하면서, 대규모 개선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는 계산된 정치적·전략적 행동이며, 오늘날로 치면 고도의 홍보마케팅 전략이다. 이때의 나이가 불과 18세였다.
중국과 대등한 천하의 중심이라며 ‘태왕’ ‘호태왕’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처음 사용한 것도 그렇다. 또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수묘인에 대한 기록을 보면, 대왕이 군사적 정복뿐 아니라 내치에도 탁월했고, 정복지의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는 경제정책에도 능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평양에 절 7개를 지었다는 것은 장수왕대의 수도이전에 대한 준비를 이미 다 해놓고 있었다는 뜻이다.
김 위원은 “무리하게 중원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듯이, 합리적이고 실속도 챙길 줄 알았던 인물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없는, 거의 완벽한 군주”라고 말했다.
★ 리더십 스타일 : 글로벌 마인드 도전형 리더십
대왕은 자신이 속한 세계보다 더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그것을 성취한 도전형 리더십의 소유자며, 준비된 리더의 단계를 초월한 진정한 리더다.
★ 광개토대왕형 CEO : 하워드 슐츠, 리처드 브랜슨, 남승우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의 창업동기는 단순하다. 이탈리아 여행시 작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면서 ‘이 커피문화를 글로벌화 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한 것. 그는 커피를 문화로 창출한다는 원대한 꿈에 도전했고, 이를 성취해냈다.
||| 을지문덕 |||
“신묘한 계책은 천문에 닿았고, 묘한 계산은 지리에 통달했도다.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겨 공 이미 높은데, 족한 줄 알면 그만둠이 어떨까.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을지문덕 장군의 이 유명한 시는 수나라 113만 대군을 격파한 구국의 영웅 을지문덕의 다양한 일면을 보여준다. 적군을 평양성 앞까지 깊숙이 유인해 궁지에 빠뜨린 을지문덕은 이런 시를 보내, 수나라 장수들을 은근히 비웃으며 철군을 종용한다.
그 때서야 적군은 스스로 승전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함정에 빠진 것이며, 평양성은 험고한 데 반해 자신들은 지치고 배고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이 대목에서, 을지문덕이 얼마나 치밀한 전략가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됨과 동시에, 그의 글 솜씨 또한 군사적 능력 못지 않게 탁월하며, 유머감각까지 뛰어나다는 것이 확인된다.
을지문덕의 출신 내력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학계에서는 ‘을지’라는 성에 주목, 고구려에 동화된 선비족의 후예가 아닐까 추정한다. ‘문덕(文德)’이라는 이름에서는, 그의 학문적 소양과 문학적 재능을 짐작할 수 있다.
을지문덕의 유머감각에 이르러서는, 요즘 경영트렌드인 신바람 조직문화와 펀(FUN) 경영을 가능케 하는, 리더의 자질을 연상시킨다. 사서에서도 을지문덕에 대해 “자질이 침착하고 용감했으며, 지모가 있고, 겸하여 글도 지을 줄 알았다”고 했다.
김 위원은 “거짓 항복하는 것처럼 적진 속에 홀로 들어가 상대의 허실을 염탐하고 왔을 정도로 대담하고, 매사에 자신감과 여유에 넘쳤으며, 필요하면 몸을 굽히고 자신을 낮추는 유연성도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 리더십 스타일 : 치밀한 전략의 창의적 리더십
조 이사는 “살수대첩의 성공과정을 보면, 을지문덕은 져야 할 때는 지고, 밀어붙여야 할 때는 확실하게 밀어붙일 줄 아는 사람”이라며 “전략적으로 매우 뛰어난 인물로, 다윗(고구려)과 골리앗(수나라)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기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을지문덕형 CEO : 스티브 잡스, 샘 월튼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PC시장에서의 쓰라린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PC 만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디바이스에 주목했다. 그는 치밀하고 창의적인 전략으로 ‘아이팟’ MP3 플레이어를 준비, 드라마틱한 재기에 성공했다.
||| 연개소문 |||
연개소문은 보는 입장과 상황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다. 당나라와 맞서 민족자주성을 드높인 인물이라는 시각과 포악한 독재자, 고구려 멸망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엇갈린다. 일단 개인적 능력은 비범했던 게 틀림없다. 송나라 왕안석이 비상한 인물이라 평했고, 김부식도 ‘재사’라고 표현했다.
기본 성격은 매우 터프하고 직설적인 무인형으로, 그를 두려워 한 영류왕과 다른 대신들이 아버지 연태조의 자리를 잇지 못하게 했을 정도였다. 그 때 무릎을 꿇고 맡겨달라고 통사정했을 정도로, 필요할 때는 굽힐 줄도 알았다.
그러나 그 순간 연개소문은 쿠데타를 모의하기 시작했다. 쿠데타에는 반드시 연계세력이 있게 마련인데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연개소문은 유아독존적 성격인 듯하다.
집권 후 철권 독재를 휘둘렀지만, 반대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또 아들들을 요직에 임명해 사적 권력을 강화했다.
연개소문은 집권기간 내내 당나라와 싸웠는데, 그도 가능하면 전쟁을 피해보고 싶었겠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나라에 있어 고구려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존재였다.
더욱이 당은 침공의 명분으로, 연개소문이 왕을 시해하고 백성을 괴롭힌다고 주장했다. 연개소문 입장에서는, 정권을 내놓지 않으려면 당과 맞서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또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해 유지되던 정권이 그의 죽음과 더불어 수습불능이 됐다는 점에서, 고구려 멸망에 대해 그는 분명 중대한 책임이 있다. 특히 당나라와 신라의 동맹을 막지 못한 것은 결정적 패착이었다. 백제의 공격에 시달리던 신라 김춘추가 원병을 요청하자, 죽령 이북의 옛 고구려 땅을 반환하라고 요구, 절망한 김춘추는 당나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김 위원은 “연개소문은 군사적 능력과 카리스마가 대단하고, 자기 과시욕과 자존심도 강하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사람”이라며 “그러나 유연성과 융통성·포용력이 부족하고 외교력과 국제정세를 읽는 눈이 부족한 것이 지도자로서 큰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 리더십 스타일 : 지키기를 위한 안정형 리더십
당나라와 신라가 연결된 상태에서, 연개소문은 폐쇄적이고 원칙적이며 카리스마적 독재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 연개소문형 CEO : 잭 웰치, 카를로스 곤
연개소문은 실패한 사례지만, 그와 유사한 지키기를 위한 안정형 리더십으로 성공한 현대의 CEO들도 많다.
★ 후계자 결정방식 : 그의 선택이 나라를 망쳤다
연개소문의 가장 큰 실패요인은 역시 아들들에게 정권을 물려줬다는 것이다. 후계자 남생은 동생들과의 권력쟁탈전에서 패하자, 앞장서 당군을 끌어들이는 반역행위를 자행했다.
||| 대조영 |||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은 출신성분이 분명치 않다. 고구려의 장수를 지냈으며 고구려의 혼을 계승한 것은 틀림없으나, 아버지가 걸걸중상인 점으로 보아, 예맥족과 동화된 속말말갈(쑹화강 유역 거주)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성씨인 대(大)씨는 즉위한 후부터 사용한 것으로, 고구려의 고(高)씨와 비슷한 의미가 있다.
대조영에 대해 사서에서는 전술·전략가로서 문무를 겸비한 지·용장으로 표현한다. 중국의 기록에서도 “용맹이 뛰어나고 훌륭한 장수였으며, 계교를 알았다”고 했고, 군사적 능력과 조직력·전략전술이 뛰어나고 기회포착에 민감하며, 포용력과 융화력도 탁월했다.
기록상으로는 영주지역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거란족 이진충의 반란을 틈 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규합해 동쪽으로 달아났다지만, 실제는 치밀한 전략과 사전준비의 결과물이었다. 학계에서는 이진충과의 모의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으며, 특히 말갈족 지도자 걸사비우와 의기투합해 조직력을 갖춘 것을 중시한다.
쫓기는 와중에서도 추격하는 당군을 천문령에서 격파한 군사적 역량이나, 동모산에 도착해서도 현지 토착민들과 아무런 마찰 없이 나라를 건국한 포섭력이 주목된다. 건국 후에는 그의 비범한 국제적 감각과 글로벌 마인드, 외교력이 돋보인다. 대조영은 즉위 직후 돌궐과 일본에 사신을 파견,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강조했는데, 고구려의 옛 명성을 이용해 신생 정권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고, 후방 우호세력을 확보한 것이다.
또 당시 당과 대립하던 신라와도 친교를 맺었다. 한편 그런 와중에 당과도 교류,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다.
특히 돌궐에 망명했던 고문간·고공의 등 고구려 유민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노력은 비록 실패했지만, 그의 국제감각과 글로벌 비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 리더십 스타일 : 원대한 목표 비전형 리더십
조 이사는 대조영의 원대한 꿈과 비전을 높이 평가했다. 전형적인 창업형 리더의 유형이며, 앞으로 우리 역사에서 크게 각광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것.
★ 대조영형 CEO : 헨리 포드, 김우중
미국 자동차산업의 창시자 헨리 포드는 원대한 꿈을 안고, 그것을 달성해 가는 비전형 리더십을 보여줬다. 자동차가 최상류층 만의 전유물이던 시절, 포드는 ‘대중을 위한 자동차’라는 비전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60% 비용절감, 생산라인 도입, 분업화 등 창조적이고 혁신적 방법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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