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케팅 자료

문제는 ‘마케팅’이야~

구봉88 2011. 6. 9. 17:36

바보야! 문제는 ‘마케팅’이야~
[문화칼럼] 정영선의 ‘이야기가 힘이다’  

1
“도대체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뭡니까? 해도 별 효과도 없던데 왜 다들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우연히 만난 어느 지자체 공무원이 볼멘소리를 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길래 자신의 지자체에서도 관련 사업을 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업을 했는지 질문했더니,

“‘스토리텔링’이면 ‘스토리’로 뭘 어떻게 하는 거 아니겠어요? ‘스토리’하면 작가들이 쓰는 거잖아요. 그래서 유명한 작가들한테 우리 지역 민담이랑 전설을 책으로 써 달라고 부탁했죠. 스토리텔링만 잘하면 관광객도 많이 올 거라고 해서 기대를 하고 책을 냈는데 전혀 변화가 없던데요. 그냥 책 한 권 내고 끝난 거죠. 스토리텔링, 이거 완전히 헛것 같아요.”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스토리텔링’과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구분 못하신 거예요. 작가들은 예술가지, 마케터가 아니거든요. 좋은 책 한 권을 내고 싶으셨다면 작가에게 맡기셔도 되겠지만, 관광 상품 개발과 지역브랜드 제고를 바라셨다면 작가가 아니라 ‘스토리텔링 마케터’에게 맡기셔야 했던 겁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작가적 역량보다 마케터적 역량이 훨씬 중요한 분야거든요.”

공무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스토리텔링’과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다르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아니, 무엇보다 정영선 이사님 자신이 작가면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저는 작가가 아니라 마케터입니다”

지자체 강연을 가면 좀 불편한 게 있다. 사회자가 나를 소개할 때마다 ‘(주)브랜드스토리 기획이사’라는 직함보다 ‘방송작가’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10여 년간 ‘방송 밥’을 먹어 오긴 했지만 이제는 작가가 아니라 마케터입니다.”하고 정정하곤 한다.

물론 사회자가 굳이 ‘방송작가’라는 타이틀을 더 강조하는 이유를 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 특히 공무원들은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작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지자체에서는 관광명소나 길에도 ‘이야기’를 입힌다면서 작가들에게 작업을 맡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사업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분명하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작가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10여 년 간 방송계에서 드라마와 교양프로그램을 써 왔다. 하지만 평소에 마케팅에 관심이 많아 따로 공부하며 준비를 해 오다가 2005년, 스토리텔링 마케팅 실무회사를 열었다.그때만 해도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흐름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몇몇 대기업을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중기청, 한국관광공사 등의 정부기관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 왔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갑자기 많은 작가들이 스토리텔링 마케팅 사업을 시작했다. 작가 출신이 스토리텔링 마케팅 회사를 열었으니 자연히 ‘스토리텔링 마케팅 사업은 작가가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방송대본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옛 작가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자신들도 스토리텔링 마케팅사업을 하겠다면서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불러 주는 명단에서 아는 이름 있으면 말해. 필립 코틀러, 톰 피터스, 말콤 그래드웰, 세스 고딘, 잭 트라우트.....”
상대 작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는다.

“그 사람들... 소설가야? 어, 나 소설 많이 읽지만 그런 작가들 못 들어봤는데.”

“마케팅 전문가들이야. 아니, ‘마케팅 구루(스승)’라고까지 불리는 사람들이지.”

“마케팅 구루? 그런 사람들을 알아야 해?”

“당연하지.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예술이 아니라 사업이야. 집필이 아니라 마케팅이지. 작가로서의 역량이 20% 필요하다면 나머지 80%는 마케터로서의 역량이야. 그렇다고 글을 못 써도 된다는 건 아니야. 상업 작가로서의 미덕을 가지되, 그 위에 마케터로서의 역량까지 가져야 한다는 거야. 즉, 글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글을 좀 쓸 줄 아는 ‘마케터’가 되어야 해.”

작가의 눈과 마케터의 눈은 다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신문의 문화면은 열심히 읽어도 경제면은 건너뛴다. 신간 서평은 꼼꼼하게 훑어보지만 주가동향이나 국제유가에는 관심이 적다. 나는 작가 출신이지만 경제지를 즐겨 본다. 신문 경제면도 꼼꼼하게 살펴본다. 작가가 아니라 마케터이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의 눈과 마케터의 눈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모시가 중국산 모시에 밀려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내 고향에도 모시가 많이 생산되었는데..... 지금도 어머니께서 모시실을 다듬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어머니는 윗니가 사선으로 닳으셨지. 이로 일일이 실을 뽑아내야 하셨거든. 그런데 그런 모시가 중국산에 밀리다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런 감성적인 수필을 발표하면 순간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향수심과 미안함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모시 매출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반면 스토리텔링 마케터인 나는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

“품질면에서 국산 모시가 훨씬 좋으니 충분히 경쟁력은 있어. 게다가 친환경적으로 재배했으니 요즘 같은 웰빙시대에는 최고의 상품이야. 아, 그래! 저 지자체에 말해서 아토피 어린이들에게 모시옷을 선물하라고 하면 되겠다. 친환경적으로 만든 안전한 옷감이니까 아토피 어린이들의 피부상태가 좋아질 거야. 그럼 그걸 언론을 통해 알리거나 세계 여러 나라 의학 잡지에 낸다면 우리 모시를 한 층 더 널리 알리게 되겠지.”

같은 모시 이야기를 갖고도 작가는 모시 추억담을 떠올리지만 마케터는 그 모시를 잘 활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고 지역브랜드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세운다. 단, 기획안을 쓸 때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각 채널이나 매체에 맞게 스타일을 바꿀 뿐이다. 이것이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예술이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경제 분야의 일인 것이다.

스토리 < 텔링 < 마케팅 = 스토리텔링 마케팅

요리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재료 고르는 일부터 배운다. 재료를 골라내는 눈을 기른 다음에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다. 이 단계를 마치면 요리사가 된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에서 ‘스토리’는 요리 재료이다. ‘텔링’은 ‘요리법’이다. 즉 훌륭한 요리사는 좋은 재료를 고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뛰어난 솜씨로 조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좋은 소재를 골라내 작가적 역량을 다해 좋은 글을 쓰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정부와 지자체가 해 온 작업이다. 그런데 재료도 있고, 요리법도 있는데 ‘마케팅’이 없다.

즉,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고 믿고 해 온 작업들이 사실은 ‘스토리텔링’에 머물고 있을 뿐, ‘마케팅’까지는 못 나간 것이다. 음식을 만들기는 했는데 손님들의 입맛과 동선, 생활 패턴을 분석하여 마케팅 하는 과정이 빠졌기 때문에 ‘팔리는’ 음식이 되지는 못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요리사가 ‘이 동네에는 젊은 직장 여성들이 많으니까 브런치 메뉴를 늘리는 게 좋겠어. 아니, 아예 브런치를 예쁘게 포장해서 배달 서비스까지 하면 어떨까? 다이어트 하는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 거야. 또, 브런치 도시락을 선물해 주는 이벤트도 만들면 좋겠다.’하는 플랜을 세운다면 이것은 ‘마케터’의 역량까지 갖춘 것이다. 이 단계까지 모두 아울러야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되는 것이다.

뛰어난 요리사는 부실한 재료로도 멋진 요리를 만들어 낸다. 훌륭한 마케터는 어떤 음식이라 해도 시장과 고객의 성향을 잘 분석하고 제품에 아우라를 씌워 판매한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마케터는 작가로서의 역량과 마케터로서의 역량을 모두 갖춰야 한다.

물론, ‘맛만 있어 봐라. 조선팔도 어디든 찾아간다. 전국 맛집 소개도 있지 않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맛집’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맛’ 하나만으로 세금을 쏟아 붓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마케터적 역량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토리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진짜 해야 할 일

아무튼, 오해를 받건 오용을 하든,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점차 널리,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스토리 산업 육성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거액의 상금을 걸고 공모전을 여는가 하면, 공무원들을 전문 스토리텔러로 양성한다는 계획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스토리산업’을 육성하고 싶다면 정부가 꼭 해 줘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바로 문화콘텐츠와 창의성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첫째, 가장 시급한 것이 문화 콘텐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도 슬로건이나 이벤트 아이디어 등은 지적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공모전에 기획안을 냈다가 떨어진 업체나 개인의 아이디어를 당선업체가 부분적으로 도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물론 법정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그 분야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그냥 참고 넘어가는 기획자들이 부지기수다.

둘째, 지금도 정부나 지자체의 많은 관광콘텐츠산업 사업발주가 하드웨어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심리를 섬세하게 파악하고 접근하는 소프트웨어 문화콘텐츠는 이 하드웨어 사업체 밑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이 분야의 예산은 대폭 줄어든다. 공무원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콘텐츠보다는 당장 그럴 듯하게 보이는 시설과 기계 쪽에 더 많은 예산을 주기를 바란다.

지금도 각 지자체에서 올라오는 관광지 개발사업 계획서 평가회의에 가보면 대부분의 사업계획안이 ‘공연장’, ‘주차장’, ‘수련원’, ‘가로 정비’등 하드웨어에 치중되어 있다. 물론 이것들이 잘만 활용되면 문제가 없겠는데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찾지 않아 지자체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관광 콘텐츠 사업 발주에서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율해야만 한다. 지자체나 단체장의 선거용으로 쓸 만한 시설 투자보다는 그 지역 주민들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스토리 콘텐츠,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강화하여 사업발주를 해 주는 것이 급선무다.

정리하자면 간단하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창작의 영역이 아니라 마케팅의 영역이다. 따라서 작가적 역량보다 마케터로서의 자질과 역량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보다는 진정으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감성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사업 발주가 필요하다.


※ 정영선은?

정영선은 ‘스토리텔링 마케팅’ 전문가이다. 드라마 작가를 거쳐 현재 (주)브랜드스토리의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살리기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 스토리텔링 사업과, 문화재청의 ‘경복궁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각 지자체와 정부기관에서 스토리텔링 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