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국 대통령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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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7일 김충영 KISTI 전문연구위원/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역사는 미시적으로 보기보다는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시적으로 보면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칼맑스는 미시적으로 보고 불상한 노동자들을 위해 자본가들에게 적개심을 고양하여 노동자들을 똘똘 뭉쳐서 기득세력을 분쇄해야 하고 부를 똑같이 분배해야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공산 쏘련, 동구, 그리고 공산 중국, 베트남은 몰락했고 공산당의 충동질에도 의현이 대처한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국가 그리고 미국 등은 꾸준히 성장하여 선진국으로 남아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아니지만 분배정책 또는 복지정책을 남발하여 공산주의와 비슷한 정책을 펴다가 아르젠틴 (제2차 세계대전 직후는 선진국이었다)은 몰락했으며, 최근 그리스는 부도위기에 처해서 나라가 애를 먹고 있다.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자주만 있고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결여되어 있던 당시 상황에서 달콤한 공산주의 사상가들을 몰아내고 한국의 민주주의 토대를 닦는데 혼신을 다했다. 그가 인의장막에 가려 국민 소리를 듣지 못해 4.19 혁명이 발발했으나 곧 국민이 원한다면! 하고 물러나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요사이 독재자들 직위를 유지하려고 앙탈하는 것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각게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의 목표는 조국 근대화에 있었고 잘 살아보자는데 있었다. 1962년 당시 북한 경제력을 남한을 앞섰고 별보기 운동을 하여 4대군사노선을 선포하고 군사행동노선으로 1) 전인민의 무장화 2) 전국토의 요새화 3) 전군(全軍)의 간부화 4) 장비의 현대화 등을 추진하여 군사력에서 남한 보다 우위를 점하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국민자본이 열악한 상황에서 일부 국민의 반대(야당은 필사적으로 반대했다)를 무릅쓰고 한일협정, 베트남 파병, 서독 광부 및 간호사들을 보내고 국민자본을 형성하여 개발독재를 강행하여 경제기반을 조성하였다.
그는 군사정부, 독재자라는 누명을 무릅쓰고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려는 의욕을 고양하고 경제를 살려 1972년도부터 북한을 앞질렀으며 더구나 1975년 베트남 남쪽 정부가 무너져 북한이 무력남침통일에 눈독을 들이고 외교활동을 하고 카터 미대통령은 박대통령에 등을 돌리고 그리도 한국국민들이 안보라는 말을 넌더리를 낼 때(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한국은 위기의 상태이다)
박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원 창설 전방에 탱크 방벽 설치 등 외롭게
(종교적으로 말하면 순교자처럼)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면 국가안보에 애를 썼다.
국민을 잘 살게 하려고 독재하는 정치가는 서양에서는 독재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국민들을 못살게 하고 우민정치를 하면서 최고직위를 누리는 사람들을 독재자라고 부른다. 로마 시저(카에자르), 프랑스 나폴레온, 독일 빌헬름 1세, 이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등은 국가를 부흥시켰기 때문에 독재자이지만 독재자로 부르지 않는다.
전두한 대통령은
잠실대통령으로 비하를 받으며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는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국가를 발전시키려는 의욕은 대단했다. 김재익 장관을 삼고초려 하듯이 영입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발전시켰으나 안정시키지 못한 한국경제를 흑자로 돌리고 한강오염을 방지하는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자기 동생을 새마을운동회장으로 두어 새마을 정신을 망쳐버렸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김영삼의 분열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국민들의 데모에 끌려 다녀서 힘없는 대통령으로 이름 높았으나
갑작스런 경제 도약으로 부족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분당과 일산 신도시를 건설했으며 새만금 방조사업을 시작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어떠한 정책다운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일본은 비핵3원칙(핵제조, 보유, 반입금지)선언할 때, 핵농축, 재처리시설, 대량플로토늄 소유는 가능하도록 했느나, 한국은 핵연료 ‘재처리시설과 핵농축 시설을 보유 않는다.’ 라고 선언해 핵주권을 포기하는 잘못을 해버렸다.
그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자유화 물결을 완화하는데 실패하여, 노동자들의 반발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과의 물고를 트는 북방외교 노력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화 대통령으로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군대 하나회를 척결하고 두 군사 출신 대통령을 법으로 처리하는 등 하여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재임시절 삼풍, 씨프린스, 성수대교 등 끔찍한 대형 사고들을 자아내더니, 자기 따라다니는 정치꾼(이런 사람은 대통령에게만 충성을 하지 국민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들을 중요시 하여 이들을 등용하여 국정을 운영하다가 급기야는 역사상 최초로 국가부도를 내 한동안 국가를 IMF의 통제에 들어갔다. 그의 아들 김현철이는 부정에 연루되어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초 호남대통령으로 호남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진정한 민주화 대통령으로 그 이름을 드높였다. 그러나 그도 끝까지 그를 따라다니며 고생한 사람들을 주로 중용하여 조풍언씨 등 많은 로비스트 들이 활개를 쳤다.
권노갑은 김대중 대통령 방패로 부정을 저질은 대표적 인물이었다. 외환은행을 불실로 처리하여 미국 펀드기업 론스타에게 헐값으로 매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철도청에서 러시아 석유개발 사업에 참여하여 국민혈세를 낭비한 의혹도 회자되고 있다. IMF를 조기에 벗어났다는 공은 세웠으나 북한과 교류하는 것을 중요시하여 북한에 퍼주기만 하다가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주고 노벨 평화상을 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특히 북한과의 대화를 중요시하여 2002년 월드컵 경기 중에 장갑차에 치인 두 여학생을 부추기고 서해에서 북한군에 의해 전사한 6명의 전사자에 대해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여 국가안보를 위기로 몰아넣는 대통령이 되었다.
IMF처리과정에서 국민의 혈세가 공적자금으로 부실기업에 유입되어 많은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하에 크레디트카드를 남발하여 카드부실을 만들어 경제에 먹구름을 끼게 했습니다. 공공근로 사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세금을 배급해 주었다. 들에 가서 풀을 뽑고 코스모스를 심으면서 절반 이상을 놀다가 오면 하루에 22,000원을 주었고, 산에 가서 나무를 벤다며 소주 마시고 낯 잠을 자다 오면 37,000원씩을 주었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버니까 이들은 공장이나 들에 나가 힘들게 일하고 싶지 않았다.
김대중의 일자리 만들기는 사실상 일자리 죽이기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무너진 기업 수는 사상 최고에 이르렀고,
김대중은 기업 죽이기의 명수였다. 또 그의 아들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는. 김영삼씨 아들에 이어 두 번째로 구속되는 불미스런 일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모라는 집단과 참여연대라는 집단을 만들어 이들을 중심으로 국정운영을 하면서 북한에 대한 교류는 김대중 대통령 정책을 답습했다. 북한의 핵개발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고 군에 가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비하하여 국가 안보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서울지역이 비대해 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수도 이전 및 중앙부서 지방 이전 등 즉흥적인 정책을 여과 없이 실행에 옮겨서 국가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법조계 윤상림 로비스트(브로커라고도 함), 금융계 김재록 그리고 건설업자 김상진, 미술계 신정아 등이 로비스트로 신문에 회자되었다.
2002년 정부는 바다이야기를 허가하여 현금이 오가는 도박성을 강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가족 사이에 부정이 들어나 자살로 끝났다.
사후에도 박연차게이트 및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하여 캄보디아투자가 말썽이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로비스트 황금시대라 할 수 있다. 대통령 만들기에 혼신을 다 한 사람들은 로비스트가 되어 부정을 저질렀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이 되면 권한이 어마어마하여 이권집단이 어떤 경로로 접근하기 마련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이점을 착안하여 친인척 관리자를 두어 친인척을 관리하여 이들을 통하여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러나 전두한 대통령은 아들이 이권에 개임하는 것은 차단했으나 형과 동생은 차단하지 못했다.
특히 동생을 새마을운동 회장으로 부임시켜서 박정희가 세운 고귀한 정신을 이어 받지 못하고 전시효과만 강조한 나머지 흙탕물처럼 흐리게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 김현철,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 김홍일은 나라종금 뇌물수수 건강상의 이유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김홍업은 부정에 걸려 수감 중 보석, 그리고 김홍걸 부정 관련되어 수감 중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인도 부정으로 매스컴을 탔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친인척 및 옛날 지인들을 관리할 줄 몰랐다. 그래서 나라는 부정으로 물들이게 했다.
앞으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자유 그리고 인간 기본권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그 중요성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친인척과 지인들을 관리하여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한비자(韓非子) 책을 읽었으나 인의 장막을 벗어날 수 없어서 뒤 끝이 좋지 않았다.
전두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한비자 책을 읽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친인척과 측근(대통령 만들기에 힘쓴 사람들)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많았다.
앞으로 한국에서 대통령이 될 사람은 자유를 실천하려면, 풀루타크 영웅전을 읽고, 친인척 및 측근들을 관리하려면 한비자를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성실한 인사는 열 사람이 못되고 관내 관원은 백 명 정도 필요하다(今貞信之士 不盈於十 而境內之官以百數). 성실한 사람만 임용한다면 관내 사람이 부족하다(必任貞信之士 則人不足官). 관내 사람이 부족하면 다스릴 사람이 적어서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 많게 된다(人不足官 則治者寡而亂者衆矣). 그러므로 현명한 최고 책임자는 한결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지혜 있는 자를 찾지 않는다.
기술을 확고히 할뿐이지 성실한 사람을 사모하지 않는다(故明主之道 一法而不求智 固術而不慕信 故法不敗 而群官無姦詐矣). 한비자는 중단참관(重端參觀,감시감독)을 중요시 했다.
인간은 이익을 쫓기 마련이니 철저히 감시감독을 해야 한다는 한비자 철학이다. 그리고 최적 결심을 방해하는 요인을 팔간(八姦)이라 하여 부인(同牀), 친한 측근(在旁, 대통령만들기 힘쓴 자들), 친인척(父兄), 취미(養殃), 여론조작(民萌, 참여연대, 정의구현사재단, 경실연 등), 달변인(流行), 내부위협세력(威强, 반정부 시민단체), 외부세력(四方)이라고 하여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플루타크 영웅전은 1517년에 원어판이 플로렌스에 출간된 이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1700년대 전 유럽에 퍼져 특히 룻소와 나폴레온이 탐독했다. 여기에 플루타크는 영웅을 그리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고수하기 위해 왕 및 독재자들과 싸우는 그리스인(플라톤, 데모스테네스 등)과 로마인(브루투스, 카토 등) 영웅들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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