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특별 대담] 분쟁의 세계, 평화정착 방안을 말하다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구의 대립, ‘이슬람국가(
ISIS) 등 극단주의자들의 준동,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반도에서도 냉전의 그늘은 가시지 않은 채 불안한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한겨레>는 세계대전 종전 70년과 한반도 분단 70년을 맞아 세계적인 평화학의 권위자인 요한 갈퉁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새해 특별 대담을 마련해, 세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분쟁과 평화의 원인과 평화정착 방안을 들어봤다. 대담은 지난달 중순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폭력은 인간본성으론 설명 못해
협력적 구조·평화의 문화 만들면
북유럽·EU·아세안국가들처럼
전쟁은 거의 안일어나지 않을까박명림(이하 박) 2015년은 비극적인 2차 세계대전 종전 70돌이 되는 해다. 지난 70년 동안 세계 초강대국 사이에는 전쟁이 없었지만, 여러 작은 나라들에서는 수많은 분쟁이 벌어졌다. 또 유럽과 북미는 평화로웠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들, 즉 동아시아와 중동, 동남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전쟁이 빈발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냉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평화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지난 70년의 세계 질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평화로운 시기였나, 충돌의 시대였나, 아니면 평화와 충돌이 병존했던 시기로 보는가?
갈퉁(이하 갈) 지난 70년동안 초강대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건 핵억지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미국이 소련에 대한 ‘예방 전쟁’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양국에서 수소폭탄이 나온 뒤로는 사라졌다. 세계는 대신에 한국전(1950~53년)이나 베트남전(1961~75년) 같은 치열한 대리전적 열전을 겪었다. 이런 전쟁들은 동시에 냉전 열강들이 분단시킨 나라를 통일하려는 민족주의 전쟁이기도 했다.
이 70년 기간은 1945~75년 사이에 탈식민 전쟁들이 벌어지는 등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3세계의 해방’을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3차세계대전’이 벌어졌고, 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카나키, 타히티 등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구 식민주의의 종언과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된 소비에트 제국의 종식, 1812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 된 1953년 한국전 휴전으로 시작된 미 제국의 종언 등은 평화를 향한 세 가지 거대한 움직임이었다고 본다.“
박 2차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자, 사상 최악의 비극이었다. 나는 그 전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낀다. 이 전쟁을 촉발한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왜 우리는 세계대전을 막는 데 실패한 것일까? 인간 이성의 한계였던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요인 때문인가? .
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2차대전은 과연 세계대전이었을까? 유럽 거의 전부에서 벌어졌지만, 아프리카에선 소규모 해안지역에서만, 라틴 아메리카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전쟁에 휩싸였다. 이런 점에서 2차대전은 두 지역의 병행 전쟁이었던 셈이다. 하나는 대서양 전구에서 1939년부터 1945년 5월 8일까지 벌어진 전쟁이고, 또 하나는 태평양 전구에서 1931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이 중국 및 서구 식민주의, 미국 등과 맞붙은 전쟁이다. 미국은 두 전쟁에 다 참여했다.
미국은 주변부를 만들고
악마와 싸우려 한다
어제는 공산주의, 오늘은 테러
내일은 또 누구일까?나치의 러시아인과 유대인 대학살 및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등을 비롯한 대참사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이 필요할 듯 하다. 전쟁을 일으킨 원인, 즉 ‘작동 원인’은 독일의 폴란드 침략과 일본의 만주·진주만 침략이었다. ‘물질적 원인’은 엄청난 양의 무기와 군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형상적 원인’은 동맹-협정-조약-제재 등이다. 그리고 독일과 일본이 추구했던 목표를 의미하는 ‘최종적 원인’이 있다. 독일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식민지로 만드는 유럽의 신질서를 욕심냈다. 일본은 대만과 한국,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팽창 야욕을 갖고 있었다. 유럽은 자신들의 식민지를 유지하고 싶어했고, 미국은 세계 패권을 갖고 싶어했다. 그리고 미국은 전쟁을 통해, 또 경쟁자들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이를 달성했다. 의도는 인간사에서 전체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법이다.
2차대전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전쟁의 목표를 병리나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또 중립과 비동맹을 통해, 급진적 군축 또는 최소한 수세적 방어로의 전환을 통해, 그리고 침략행위에 대한 병사들의 대규모 거부 등을 통해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러한 오래된 아이디어들은 과거에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박 전쟁은 막대한 비극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왜 그렇게 자주 전쟁을 벌이는가? 지도자의 일방적인 잘못된 욕망 때문일까, 아니면 근대국가와 세계 질서의 본질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이거나 인간 본성의 문제일까? 혹은 이런 여러 요인들이 복합된 것일까? 나 자신이 수많은 전쟁의, 수많은 원인을 탐구해오면서도 아직 해답을 얻고 있지 못한 문제다. 다만 나는 인간본성을 설명해온 성선설과 성악설이 전혀 진실이 아니라는 점은 인류의 여러 고전으로부터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갈 네 가지를 꼽고 싶다. 아니, 세가지로 축약할 수도 있겠다. 먼저 과거의 ‘직접적 폭력’은 승자의 영광과 패자의 외상-복수로 이뤄지는 전쟁이다. ‘구조적 폭력’, 즉 식민지들과 제국 간에서 벌어지는 것들은 정복과 해방을 동력으로 한다. ‘문화적 폭력’은 나머지 두 가지를 정당화한다. 다른 말로 하면, 군사적, 경제적, 종교-이데올로기적인 폭력이다. 이 세 층위는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지만 폭력의 정도가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된다.
시간과 공간, 역사와 지리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지만, 전쟁과 폭력은 먹을 것과 섹스 추구와 같은 인간의 내적 본성이 아니라 구조와 문화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은 잔인하게 행동할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있지만,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운명지워져 있지는 않다. 더 협력적인 구조와 평화의 문화를 만들면 북유럽의 노르딕 국가들이나 유럽연합(
EU) 국가들, 아세안 국가들에서 보듯이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런 곳에서 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국가 시스템 그 자체라는, 구조적이고 주요한 원인을 더 이야기하고 싶다. 국가는 다른 국가를 위협으로 바라보고, 피해망상적이 되곤 한다. 타국의 최악의 측면에 자국 안보의 초점을 맞추고, 상호 동등한 이익을 위한 협력에는 방점을 두지 않는다.
박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과정이 목표”라는 당신의 평화이론은 20세기 평화학의 최대 성과로 불리웠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평화적 수단과 정당한 방식이 아닌 폭력과 살상의 방식으로는 인간은 결코 평화 상태를 달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통해 평화적 수단과 평화목적을 결합할 수 있을까?
갈 평화적 수단과 평화에 관한 나 나름의 공식이 있다. 평화=(공평X조화)/(외상X충돌) 이다. 공식을 보면, 네 가지 기본적인 과제가 있다. 공평은 상호적이고 동등한 이익을 위한 협력을 말한다. 조화는 정서적 공명과 서로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많은 공감이 필요한 일이다. 화해할 수 없는 외상과 화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풀리지 않는 충돌이라도 반드시 풀어야만 한다. 이 네 가지 과제에 능한 커플은 능히 훌륭한 결혼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웃 국가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박 소련의 붕괴와 얄타 체제의 해체 이후, 유럽에서는 양극대치(냉전체제)가 종식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양극체제의 잔기는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런 차이는 두 지역에서의 냉전 구조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사이의 다자적이고 집단적인 구도였다. 그러나 후자는 미국과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일방적인 중심축(미국)과 바퀴살(동아시아국가들) 관계 체제였다. 이런 차이는 두 지역의 냉전 구조의 결정적인 차이였고, 이는 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냉전이 지속된 핵심기초가 되었다고 본다.
갈 평화를 위해 우리는 다자주의와 양자주의가 모두 필요하다. 좋은 직접적 양자적 관계를 맺는 한편으로 그걸 넘어서는 다자기구가 필요하다. 유럽연합(
EU)은 오늘날 직접적 양자 협력을 일부 희생함으로써 다자주의와 양자주의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유럽의 냉전은 서기 395년 로마 제국이 서로마의 가톨릭과 동로마의 정교회로 분리된 사태와 더불어 시작됐다. 이 분리는 1054년 역사적 ‘분립’(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리)으로 이어진다. 동서 블록 사이에 여러 정상회담들도 열렸지만, 1975년 헬싱키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
OSCE)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블록을 넘어서지 못했다. 요즘도 미국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당신 말처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미국주도의 중심축과 바퀴살 체제였다. 그러나 상하이협력기구가 현재 나토-미국-일본 연대에 맞서 균형을 갖추려하고 있다. 1945년 이래 유지돼온 미국의 세계 패권은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에서 모두 약해지고 있다. 다만 유럽에선 소련의 내부붕괴 뒤 미국과 유럽연합의 동진이 이뤄졌지만, 아시아 태평양에선 중국이 약진하면서 미국이 쇠퇴를 겪고 있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남북은 대화로 갈등해법 찾아야…통일은 그 다음 일이다”박 과거사 극복 역시 지역 평화 구축에는 결정적이다. 유럽에서는 나치 유산 청산이 미래의 평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과거 전쟁범죄의 유산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즉 일본은 침략부인, 역사 왜곡,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거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문제, 영토 분쟁 등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독일문제와 일본문제가 초래한 차이가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왜 일본은 독일과 완전히 다른 걸까? 나는 전범국가 일본을 분단시키지 않고, 천황을 처형하지 않은 미국의 책임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갈 중요한 문제다. 과거의 상처는 화해를 통해 치유되어야 한다. 왜 일본은 독일과 완전히 다를까?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미국과 영국은 해법의 공식을 찾아냈다. 잘못은 나치당의 리더십에 돌리고, ‘탈나치화’를 하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자살했고,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재건과 부흥을 이끈 주요한 건설자인 햘마르 샤흐트(
Hjalmar Schacht)는 무죄 방면됐는데, 그는 나치 당원이 아니었다. 아울러, 독일인들이 나치의 행위를 열광적으로 용인했다는 사실은 잊자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른다면 일본 도쿄전범재판에서도 미국은 일본인들을 수족으로 여기는, 태양 여신의 자손이라고 하는 신성한 천황국가의 신토 체제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천황 일가는 무죄를 받았고, 731 부대 죽음의 수용소 설립 등에 대해서도 무죄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좋은 양자적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 이상의 다자기구도 필요하다
미국의 세계패권은 약화됐다일본이 저지른 잔혹행위들이 존재했다. 몇 년 전에 ‘평양 리스트’라는 게 있었는 데, 일본이 한국에 무슨 짓을 했는지, 일본에 조선인들을 끌고가 노예 노동을 시키고, 가축과 자원들을 약탈하고, 문화재를 약탈하고, 점령하고, 위안부를 끌고 가고, 조선인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였고, 일본 제국의 일부로서 분단되게 만들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이에 더해 제노사이드 학살을 저질렀다.
그러나 조심해서 봐야할 것이 있다. 누군가가 무엇 때문에 비난을 받을 때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며, 일부는 신화일 수 있다. 제 3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나요? 가스실에서? 난징에서 30만명이 학살 당했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위안부 여성들이 끌려갔다면 그들 중 일부는 돈을 받는 일반적 성매매 여성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진실만이 모든 이들을 해방시킬 것이고 평화를 만들 것이다. 중립적인 이들을 비롯해 모든 관련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조사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 오늘날 동아시아는 역내 교역과 경제협력은 거의 유럽연합(
EU)과 북미 수준에 근접한다. 반면 역사화해, 영토갈등, 신뢰구축, 지역안정, 평화건설 면에서는 악화되고 있다. 일부 서구의 관찰자들은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더욱 심각했다. 유럽은 기독교, 이성, 산업혁명, 과학혁명, 의회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반면, 두 번에 걸친 세계전쟁을 포함해 제국주의, 나치즘, 파시즘, 인종주의, 홀로코스트 등을 자행했다. 나는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보다 더 심한 ‘유럽 패러독스’, 또는 ‘유럽의 자기분열’ ‘유럽의 자기모순’이라고 불러왔다. 반면 오늘날 유럽은 이런 모순을 잘 극복하고 역내 통합과 평화를 달성하였다.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할 방법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갈 유럽도 다른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모호하고, 중국의 음양이론이나 한반도의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순으로 가득하다. 유럽은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모순의 본질은 변화한다. 중국은 침략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인민해방군의 막대한 보병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진행된 미국의 포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는 동쪽으로, 미-일 안보동맹은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더욱 강화됐고, 사실상 한국과 대만을 포괄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을 방어하기 위해 고기술, 고비용의 현대적인 군대로 전환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태평양 쪽 근해에 해군을 가동하고 있지 않고, 멕시코에 기지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리고 유럽과 동아시아, 독일과 일본의 또 다른 주요 차이도 있다. 독일은 프랑스에 의해 (유럽)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초대 받았다. 미국도 이를 원했다. 나치 이후 유럽공동체 건설이라는 해법은 독일이 나치범죄에 대한 인정을 하면서 좀더 쉬워졌다.
문제해결 없이 화해를 하는 방법은 ‘평화화’하는 것뿐이다. 일본을 위한 해법은 과거에도 현재도 동아시아(혹은 동북아시아)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남북한과 두 개의 중국(중국, 대만), 다른 국가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코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일본 내의 냉전 강경파들도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을 동아시아(동북아시아) 공동체에 초대함으로써 일본이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게 더 쉬워지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일본의 과거 잔혹행위 명백하지만
제3자는 물을 수 있다, 진실을
중립적 인사를 포함한
국제적 조사위 못만들 이유 없다박 전후 70년 동안 세계 최대 변화 중의 하나는 중국의 급속한 발전이다. 요즈음은 중국과 미국을 두 강대국으로 분류하는 ‘G2(지2)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개념에 동의하나?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세계화 이후 미국화와 중국화의 새로운 양극 경쟁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나는 중국은 아직 경제력만 강력한 준 글로벌 제국이며, 여전히 미국이 유일한 글로벌 제국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갈 유엔에서 ‘비토권’을 가진 5개 나라에 독일을 추가한 G5+1 개념도 있고, 지금은 주요7국(G7)이 된 과거의 주요8국(G8), 그리고 주요20국(G20)과 유럽연합(
EU) 28개국 및 유엔의 194개국이 있듯이, 세계질서에 ‘지2’의 면모가 있다는 건 의심할 수 없다. 이토록 많은 그룹이 있지만, 유일하다 할 수 있는 그룹은 없다. 나는 4개의 큰 나라와 4개의 지역, 곧 러시아-인도-중국-이슬람협력기구(
OIC)-유럽연합(
EU)-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미국의 8각형이 오히려 이해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은 대륙의 1인자가 적이라고 생각했다. 대륙의 1인자인 적은 한때 프랑스였지만 그들이 독일에 패배하자 독일이 적이 되었고, 러시아가 그들을 패퇴시키자 이번엔 러시아가 적이 되었다. 미국은 이 이론을 세계에 투사시켜, 러시아·중국과 전쟁을 벌여 둘 다 약화시키는 한편, 어느 쪽이 진정한 적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동맹을 얻었다.
미-중의 G2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서방 대 브릭스(
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라는 G2도 있고, 군사적으로는 나토·미-일 동맹 대 상하이협력기구라는 G2도 있다. 미국은 여전히 국내총생산과 군사비 지출에서 중국을 앞서지만, 중국은 인구가 더 많을 뿐 아니라 보다 중요한 문명화 시기 등에서 앞선다. 중국은 최소한 4천년 동안 여러 왕조가 이어져왔지만, 미국은 200여년 동안 원주민을 죽였을 뿐 그들 토착 문명을 연속적으로 발전시킨 게 없다. 중국에는 역사로부터 끌어올 수 있는 자산이 훨씬 많다. 이것은 미국을 절박하게 만들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게 만든다.
중국은 동서남북 세계를 ‘야만’으로 간주한 채 오랫동안 고립 속에서 지내왔지만, 1980년부터는 국제질서에 재빨리 참여해왔다. 미국은 과거에도 지금도 역사를 배척한 채 우주 속에서 지내왔으며, 항상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시작을 창조한다고 믿을 뿐,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인식하지 못한다. 중국은 긴 역사에 걸친 왕조이지만, 미국은 우주의 제국으로서 모든 힘을 사용해 주변부를 만들고 악마와 싸우려 한다. 어제는 공산주의자, 오늘은 테러리스트, 내일은 또 누구일까? 중국의 고위층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다. 우리는 조화와 상호 평등한 이익을 바란다.” 만약 중국이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복종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처럼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나는 매우 놀라게 될 것이다.
물론 한족중국(
Han China)은 제국주의의 특성을 갖고 있다. 또 히말라야와 고비사막, 툰드라와 해양에 둘러싸인 중국엔 유교 사상이 있고, 이는 내가 말하는 6개의 중국, 곧 한족중국과 대만, 홍콩·마카오, 티벳, 위구르, 내몽골 뿐 아니라 베트남과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특히 북한은 중국보다 더욱 유교적인 나라가 됨으로써 살아남았다. 베트남은 2천년을 싸우면서 살아남았다. 중국은 이 모든 것을 현명하지 못하게 다루고 있는데, 러시아가 제국을 어떻게 포기했는지에서 배울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들에게 아주 새로운, 하지만 역사의 그림자들을 가진 채 자산과 조화를 나름대로 그릴 수 있는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
박 이제 평화의 궁극적 의미를 논의해보자. 평화논의는 그 자체가 이론이자 실천이라는 함의를 담는다. 즉 현실에서 평화실천과 평화건설이 부족하다는 점은, 달리 말하면 평화철학과 평화이론이 부족하다는 점을 뜻한다. 나는 평화의 목표와 방법을 적극적 평화, 생산적 평화, 포괄적 평화, 영구적 평화로 구분해왔다. 동시에 평화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간 평화가 아니라 개인 삶의 평화, 인간의 평안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평화란 무엇인가?
갈 평화는 마치 건강처럼 모든 좋은 것, 최고선을 의미한다. 우리는 평화에 만족한다.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없으며 나쁜 것들이 만연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평화도 있다. 협력과 공감을 통하여 평등과 조화와 같은 좋은 것을 수반하는 번영과 안전의 결실을 내는 적극적 평화도 있다. 폭력에서 소극적 평화를 거쳐 적극적 평화로 가는 과정엔 조정이 필요한 다양한 조합이 존재한다. 항상 갈등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폭발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파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구 평화”는 포함시키지 않겠다. 최종적 상태로서, 영구평화라는 서구적 추상을 사용한 칸트는 틀렸다. 건강을 위해 항구적으로 노력하듯이 평화가 항구적인 과정은 맞지만, 항구적인 건강은 있을 수 없다.
박 오늘날 동아시아의 두 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둘 다 강제력인 아닌 헤게모니에 바탕한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제국은, 강권에 기반했으나 단명했던 과거의 몽골, 독일, 일본, 소련 제국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다면 두 제국 아래에선 동아시아의 장기평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갈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다른 국가의 관계는 군사동맹에 기초해 있지만, 중국은 상호 평등한 이익을 위한 거래에 기초한 것처럼 보여 전혀 다르다. 나는 정복 대 헤게모니의 구분 보다는 군사적 확장의 유무로 구분하고 싶다. 미-중 공동 제국은 부재한 채, 평행관계 속에서 상당한 협력적인 관계가 있을 뿐이다. 미국은 저가 양질의 중국산 물건이 하위 70%의 국민들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은 전세계에 다른 고객들이 널려있다.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쿠바를 통해 오랜 뒷마당인 남미로 돌아가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평화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의 하나는 내부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동아시아에서는 심각한 퇴영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후퇴는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갈등을 내장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일당 통치국가다. 중국의 지도부는 많은 경우 2대, 3대 세습자제들이며, 북한은 3대세습 독재국가다. 동아시아의 민주국가 일본과 한국의 후퇴 역시 심각하다. 일본은 1급 전범의 3세가 집권하였으며, 과거 인정과 반성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한국 역시 군사독재자의 2세가 집권하여 민주화 이후 선도하던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평화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상실하였다. 이런 내부 역행 속에 상호갈등 역시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지속 가능한 평화를 결합하는 문제는 결코 용이하지 않다.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갈 내부 문제와 국제관계는 앞서 얘기한 평화 공식의 네 가지 면을 통해 연결되며, 이는 민주정과 독재정에 모두 열려있다. 독재정치체제도 네 가지를 모두 갖출 수 있다. 예컨대 북한도 더 높은 수준의 교역을 추구할 수 있고, 남북한 전체 민족 공동체에 대한 깊은 정서적 유대가 있으며, 1945~1953년 갈등과정을 명확히 하기 위한 국제위원회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해상 경계에 대한 분란도 노르웨이-러시아처럼 ‘회색지대’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이를 정책적으로 추진할 수 있지만, 또한 파괴적 정당은 이러한 의제들이 복잡하고 모호할수록 투표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 결국 이는 무엇을 할지 알고 그것을 바라면서 실천하는 문제다. 오늘날 남한과 북한은 모든 문제들을 직접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만 해도 다른 네 나라는 각자의 의제가 있어 두 한국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박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최근 쿠바와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 이로 인해 이제 북한은 예외적으로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고 지구상에서 최강대국에 의해 최장기간 봉쇄를 당하고 있는 나라가 됐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적대국가였던, 소련, 중국, 베트남, 서독, 일본 등과 미국의 관계개선 역사에 비추어 보아도 두 세대를 넘는 북-미 적대는 예외적으로 길다. 나는 북-미 관계도 당연히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갈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통해 쿠바에 대해 50여년 동안 추진된 나쁜 정책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사실 다른 사례들도 행정명령들을 기다리며 줄을 섰다.
북한의 경우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평화협정과 외교관계를 맺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도 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인정해야 한다. 2002년 아랍연맹의 제안, 그리고 1967년 6월 이스라엘 문제(3차 중동전쟁 뒤 서안지구 점령) 등이 다뤄져야 한다.
박 마지막 문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민주화와 남한의 내부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비관적이다. 북한의 민주화는 아직 가능성이 높지 않다. 나아가 남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심각한 분열과 갈등은, 이 정도의 차이도 수용하지 못하면서 북한의 적대세력과의 공존과 통합을 의미하는 통일을 과연 추진할 수 있을까 크게 걱정하게 한다. 독일의 통일은 물론 유럽통합과 평화구축도 사실은 전후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믿게 된다.
갈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에 기초한 다당체제라는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역할을 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여전히 금융통치, 부패통치, 기술통치와 단일정당 독재 등에 대해 취약하다. 민주주의는 체제의 평화적 이행에 좋다. 그러나 북한은 부자세습이라는 오래된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근본주의 나라다. 남한도 일면 그런 점을 갖고 있다. 남북한을 너무 다르게 보지 않는 게 좋다. 투명성과 합의를 향한 끊임없는 대화라는 점에서의 민주주의는 또 다른 문제다. 남과 북은 모두 그 문제에서 부족하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
통일과 북한국경의 개방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크게 필요한 과정으로서, 이 정상화는 북한을 보다 정상적이고 덜 병적인 나라로 만들 것이다. 구체적 사항들은 남과 북이 도출해내야 한다. 남과 북의 통일은 나중의 일이다. 아마도 처음엔 국가연합, 그리고 코리아 공동체, 다음엔 연방을 거쳐, 마지막엔 남북 국민이 원한다면, 하나의 통일국가가 될 것이다.
정리/손원제 김외현 기자
wonje@
hani.
co.
kr
대담자 약력요한 갈퉁은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세계적 석학이다.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오슬로대·베를린대 교수를 지냈으며, 지금은 세계 곳곳을 돌며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평화와 관련된 주제로 150권 이상의 책과 1500편 이상의 논문을 썼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 한-미 관계, 해방 전후 한국정치 등에서 돋보이는 연구 성과를 보여왔으며,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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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자본주의가 갈 길] "약자·빈민 끌어안는 '착한 成長'으로 자본주의 흐름 바꿔야"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大 교수]
유엔과 함께 새 경제목표 제시 - '지속 가능한 발전'에 무게
환경 오염 주범인 美·中도 탄소배출 종량제 동참 앞둬… 반기문 총장이 큰 역할 해내
문제는 '富의 불균형' - 절대 빈곤 인구는 줄었지만
美 등 부자 위주 정책으로 세계경제 위험 요인 키워"자본주의는 이제 성장만을 위한 성장, 오로지 부(富)를 축적하기 위한 성장은 지양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사회적 책임과 문화 발전, 환경 보존 등 다양한 가치를 함께 성장시키는 '지속 가능한 성장' 단계로 이행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는 2015년을 자본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삭스 교수는 새해를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세계는 지금까지와 다른 성장 모델을 도입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맡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약자와 빈민 안고 가야삭스 교수가 올해를 '자본주의 업그레이드 원년'이라고 지목한 이유는 유엔이 오랜 기간 준비해온 '지속 가능 발전 목표(
SDG·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SDG는 반기문 총장과 삭스 교수 주도로 유엔이 새로 개발 중인 세계경제 발전 목표다. 지난 2000년 도입됐던 '새 천년 발전 목표(
MDG)'가 올해 종료됨에 따라 이를 대체해 향후 15년을 이끌 국제사회의 새 '발전 강령'이 바로 '지속 가능 발전 목표'이다.
삭스 교수에 따르면
SDG에 기반을 둔 새 자본주의는 '경제 성장이 사회적 책임과 환경 보존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선진국 간 경쟁적이고 파괴적인 제로섬 성장에서 벗어나 약자와 빈민을 안고 가는 '착한 성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삭스 교수는
SDG가 가능한 근거로 올 12월 열리는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지목했다. 그는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미국과 중국이 마침내 협약에 동참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며 "전 세계가 참여하는 탄소 배출 종량제가 실시됨으로써 자연히
SDG형 성장의 시대로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이 과정에서 반기문 총장의 역할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 총장이 10년 동안 조용하지만 뚝심 있는 행보로 강대국들의
SDG 참여를 이끌어냈다"면서 "이것만으로도 반 총장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삭스 교수는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취임 초기부터 경제 개발 특별자문관을 맡았고,
MDG와
SDG 추진 단계에서 반 총장의 '멘토' 역할을 해왔다.
한국에 대해선 "빈곤 퇴치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반 총장이나 김용 세계은행 총재처럼 한국 출신 글로벌 리더들이 늘어나면서 세계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리더 역할을 더 많이 해주길 기대한다"면서 "한국국제협력단(
KOICA) 주도로 아시아·아프리카에 '새마을운동' 같은 성장 노하우를 수출한 것은 선진국 사이에서도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절대 빈곤층 줄었지만, 부의 불균등은 심화줄곧 빈곤 퇴치를 위해 힘쓴 삭스 교수는 "최근 15년 사이에 세계의 절대 빈곤 인구는 전체 35%에서 17% 선까지 떨어졌다"며 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빈곤이 줄어든 대신 부(富)의 불균등한 분배와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 세계경제의 리스크(위험 요인)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삭스 교수는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특히 부의 불균등 분배 문제가 심각하다"며 "1980년 이후 세계화와 기술 변화로 인해 서민 경제가 힘들어지고 양극화도 심해졌다"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부자 위주의 정부 정책이 부의 불균등을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삭스 교수는 "정치인은 돈줄 쥔 사람들을 위해 각종 세금 감면, 사회보장 축소, 금융 규제 완화 같은 잘못된 정책을 남발했고 이 때문에 소득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온난화, 섭씨 2도 넘기면 위험빈곤과 함께 자신의 주요 관심 분야인 환경 보호에 대해서는 좀 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삭스 교수는 멀리 내다봤을 때 세계경제의 가장 위험한 리스크는 지구온난화라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평균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올라가면 극지대의 영구 동토층(凍土層)이 녹으면서 수만년간 갇혀 있던 메탄가스가 방출된다"며 "이렇게 되면 농경지 오염과 바닷물의 산성화가 급속히 일어나 농·수산업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수산업의 실패로 곡물·식량 가격 폭등 현상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쌓아 온 공든탑마저 무너져 버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제프리 삭스는…]"경제학은 후진국 위해야"빈곤·질병 퇴치 등 앞장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선진국의 발전 논리에 맞추기보다 후진국의 빈곤·질병 퇴치에 활용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 성향 경제학자이다. 빈곤 퇴치·개도국 지원·탄소 배출량 감소 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당시엔 거리에 나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상위 1%가 부를 독점하는 현 자본주의 체제는 잘못됐다"고 강연했다. 한국 외환 위기 당시에는 국제통화기금(
IMF)이 내린 고금리 처방이 부당하다며 강력하게 비판해 주목받았다. 저서 '빈곤의 종말'(2005)에서 극단적 빈곤을 끝내고 선진국과 후진국이 더불어 잘살 수 있는 해법을 제시했으며, 뉴욕타임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꼽았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28세에 종신교수직을 보장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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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기업 아닌 사람을 보호하라… 새 기업 생기도록"
최현묵 기자 입력 : 2015.01.03 03:02
한국이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하려면?… 폴 로머 뉴욕대 교수의 조언
“특허 개수는 혁신의 성공지표가 아니다 새 기업에 밀려나는 대기업 숫자를 보라”
정부 주도 발전국가 모델 추격자 단계에서만 효과
기존 대기업 보호하면 새 기업·혁신 발생 어려워 경제 전체 위기 처하게 돼
기업 진입 장벽 낮춰야 선도자 단계 경제 가능
무너진 장벽…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월마트·타깃, 美유통시장 진출해 유통 비용 확 낮추며 혁신 이끌어…
시어즈 등 기존 대기업들 밀어내
‘지식 독점’ 욕심 내려놔야 혁신 생겨
美정부, 셰일가스 채굴 정보 공개 최고의 채굴법 빠르게 확산되고
송유관 독점 막아… 모두에 개방
2015년 유로존, 불황에 빠질 위험
독일, 南유럽 구조 개혁 방법으로 노동비 줄이는 ‘장기불황 전략’ 채택
“윤리적 문제 있어… 반발 불러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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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 로머 교수는 정통 경제학자와 전 세계 빈곤 퇴치운동가라는 두 가지 가치를 함께 추구해왔다. 지난달 플라자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시종일관 성실하고 열정적인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남강호 기자
30대에 경제성장에 관한 새로운 이론으로 경제학의 지평을 바꿔 놓은 천재 학자, 노벨 경제학상 단골 후보,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의를 거절하고 후진국 개발 운동에 나섰다가 '신식민주의자'란 비판을 받은 이단아.
폴 로머(Paul Romer·60) 뉴욕대 교수에겐 늘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런 대단한 인물을 만난다는 긴장감은 그를 만난 지 5분 만에 눈 녹듯 사라졌다. 첫인상은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했다. 오전 7시 30분쯤 서울 플라자호텔 로비에서 만나자마자 그는 "우선 아침 식사부터 하자"며 식당으로 이끌었다. 전날 부산에서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한·아세안 CEO 서밋'에 참가하고 밤에 서울로 이동한 다음 날이라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10대 소년처럼 눈빛이 반짝였다.
그가 과거 로체스터대 조교수로 있을 때였다. 임용 후 3년이 지나도록 논문을 한 편밖에 내놓지 못하자 교수 회의에서 재임용은 시켜주되 구두 경고를 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일반균형이론으로 유명한 원로 교수 라이어널 매킨지가 "폴이 평범한 논문을 양산하는 학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 지금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만류했다. 과연 그는 임용된 지 5년이 지나 지식의 상품화와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임을 규명하는 '내생적(內生的) 경제성장 모형'을 발표하면서 세계 경제학계를 흥분시켰다. 로머는 이 논문이 화제를 부르면서 모교인 시카고대 정교수로 영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 세계 빈곤 퇴치와 저개발국 도시화 운동에 앞장서는 행동가로도 유명하다.
추격자에서 선도자 되려면 더 많은 경쟁을 허용해야
?많은 사람이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발전의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습니까?
"어느 경제건 추격자(follower) 단계에선 급속 성장을 하지만 선도자(frontier)에 접근하면 항상 성장률이 낮아지기 시작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저성장에 실망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성공을 이뤄낸 국가에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신호입니다."
로머 교수는 선진국이란 용어 대신 선도자란 용어를 사용한다. 다른 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해도 혁신할 능력이 없으면 선진국은 될지언정 선도자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선도자로 가기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경제 운용의 스타일이 변해야 합니다. 각 부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더 많은 경쟁이 일어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추격하는 동안에는 소위 '발전 국가 모델'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성장을 유도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무시하고 국가 개입 성장 모델을 추구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저는 아시아 국가들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모델이 선도자 국면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미국 통신 시장을 예로 들었다.
"미 정부는 1984년 AT&T를 수십 개의 지역별 통신회사(베이비 벨)로 해체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두려워했지만, 그 결과는 놀라운 진보였습니다. 애플, 퀄컴 같은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하고, 구리선 대신 광(光)케이블 시대가 열렸습니다. 때로는 친숙하지 않은 것을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선도자로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일본은 소득과 도시화 수준이 높고, 뛰어난 기술들을 개발해 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자유와 경쟁을 촉진하는 단계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스타트업이 거의 없고, 젊은이들에게 기회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비 은행, 좀비 기업은 기존 기업을 보호하려는 '보호 충동(protective impulse)'의 증거입니다."
?한국도 창업 기업이 커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기존 기업들을 보호한다면 새로운 기업이나 새로운 혁신이 발생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기업을 보호하기보다는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기업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을 보호하려다 보면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핀란드의 노키아를 봅시다. 만약 노키아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경제적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면 노키아의 쇠락과 함께 경제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한국 정부가 교수님에게 혁신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묻는다면 뭐라고 충고하시겠습니까?
"정책의 핵심은 성공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저라면 혁신 정책의 성공 지표로 특허에 집중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률을 지표로 삼을 겁니다. 나아가 새로운 기업에 밀려 도태되는 기존 대기업의 개수를 성공의 신호로 생각할 겁니다. 미국 소매업은 월마트와 타깃이 진입해서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특허는 당신의 시스템이 이런 종류의 새 기업들을 허용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기업보다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로머 교수의 말은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던지는 경고로 들렸다.
?한국 경제도 너무 삼성에 의존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삼성은 매우 어려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소니는 한때 소비자 가전에서 최고였지만 시장 환경이 변하면서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삼성이 잘하고 있지만, 그 시장은 매우 경쟁적입니다. 심지어 애플조차도 10년 후에는 소니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규칙을 바꿔라, 혁신이 촉진되리니
?내생적 성장 이론에서 교수님이 강조한 ‘아이디어’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내생적 성장 이론의 요점은 정부가 정책 변화를 통해 더 빠른 혁신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겁니다〈키워드 참조〉. 내생적이란 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규칙이 변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중국은 왜 미국처럼 셰일가스 산업이 빨리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미국보다 중국에서 이 분야의 지식재산권이 더 강하게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수많은 중소 셰일가스 생산자는 셰일 유정을 채굴할 때 매번 새로운 방법을 실험합니다. 모래 양을 달리해서 얼마나 많은 석유를 얻어내는지 알아보는 겁니다.(셰일가스는 대량의 물과 모래, 각종 화학 물질을 혼합한 용액을 지하 퇴적암층에 쏘아 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생산된다. 이때 혼합 비율이 중요하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이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합니다.(미국은 대부분 주에서 셰일가스 생산 과정에서 상수원 오염 등을 우려, 셰일가스 채굴에 사용되는 용액의 구성 물질과 혼합 비율을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2010년 와이오밍주가 최초로 강제한 이후, 다른 주들도 비슷한 규제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모든 셰일가스 생산자가 더 좋은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중국에선 정부가 국영 석유회사들에 독점적으로 채굴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식을 독점하지 않은 게 혁신을 낳은 셈이네요.
“그렇습니다. 셰일 산업 발전은 얼마나 시장이 위대한가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동시에 얼마나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지도 보여줍니다. 의도했건 아니건 화학 물질 공개가 지식을 공유하도록 해서 관련 산업의 혁신을 가능케 한 겁니다.
셰일 산업이 발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송유관입니다. 미국 정부는 셰일가스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전국에 깔린 송유관을 대기업이 독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일종의 공공재와 같았기 때문에, 다코타든 펜실베이니아든 미국 어느 곳에서라도 석유를 생산한 사람은 누구나 송유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소업체들도 대기업과 경쟁하며 가스를 전국에 팔 수 있었습니다. 전사적 품질 관리(TQC)나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의 예를 보면 지식의 확산이 우리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린 생산 방식으로 잠시 동안은 도요타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것이 확산되면서 모두가 따라 하게 됐고, 모두의 생산성이 증대됐습니다. 지식의 확산이 한쪽에 해가 되는 전쟁과 달리, 경제적으로는 지식 확산이 모두를 더 나아지게 합니다.”
?내생적 성장 이론은 풍요로운 사람이 많아지면 더 많은 아이디어가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불평등이 성장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불평등은 발견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 부작용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디어 발견자(혁신자)가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난 이게 맞는 얘긴지 모르겠습니다. 2차대전 동안에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은 수많은 중대한 발견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발견들은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애국심과 같은 뭔가 다른 목적에서 나온 겁니다. 돈 이외 많은 것이 사람들에게 동기가 됩니다. 자선 사업가에겐 세상을 더 좋게 만들자는 동기, 대학교수에겐 위신입니다. 그런 위신 때문에 당신 같은 기자들이 아침부터 호텔로 찾아와서 인터뷰하는 게 아니겠어요(웃음)?”
?미국은 부자도 많고 불평등도 심합니다.
“맞습니다. 미국은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동시에 혁신적입니다. 불평등이 심화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작은 정부를 주장하며 세율 인상 제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작은 정부’를 지지합니까?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역사적으로 진자 운동을 거듭해 왔습니다. 대공황 후 사람들은 시장경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지 우려가 컸습니다. 이로 인해 20세기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는 정부가 경제 통제 면에서 극단적으로 강한 정부 형태였습니다. 이후 20세기가 진전되면서 우리는 정부가 경제에 훨씬 적게 개입해도 여전히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있다는 걸 깨닫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반적으로 20세기 문제가 너무 강한 정부였다면, 21세기 문제는 너무 약한 정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겁니까?
“정부의 역할에 대해 대립하는 양 진영이 있습니다. 한쪽은 정부가 전혀 필요 없다는 쪽이고, 다른 쪽은 정부가 마치 건축가처럼 빌딩의 모양을 결정하고 창문의 개수까지 미리 결정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나는 중간입니다. 어떤 분야에선 정부가 계획해야 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계획은 세부적인 면에는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 역할은 도시 계획 입안자들이 갖는 정도의 권한보다는 훨씬 작아야 합니다.”
로머 교수는 사업가 경험도 갖고 있다. 스탠퍼드대 교수 시절인 2000년 온라인 교육 기업을 창업해 키운 뒤 2007년에 매각했다. 교과서는 무료로 배포하되 숙제 문제들은 온라인으로 올리고 유료로 만든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많은 창업을 유도하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게 더 나은 방법입니다. 창업 절차를 쉽게 만드는 등 법적 규제를 완화하고, 창업가가 되려는 학생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유망 스타트업을 선정해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런 것은 정부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정말 걱정된다
?2015년 세계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글로벌 금융 위기로 동조화 현상이 나타났었는데, 지금은 차별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회복되고 있으나, 유럽과 일본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고,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불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유로존은 또 다른 불황에 빠질 심각한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정말 유럽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점진적으로 성장률을 낮추는 현실주의적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중국은 금융 위기 때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제대로 된 부양책을 썼고, 이번에도 잘해낼 거라고 봅니다. 금융시장, 자산 시장은 변동성이 더 커질 겁니다.”
?유럽을 왜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독일은 그리스 등 유럽 남부 주변부 국가들의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인 불황(prolonged recession)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구조적 개혁을 이뤄낼 유일한 방법은 고통스러운 불황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독일은 아무도 세금을 내려고 하지 않는 그리스의 문화를 바꿀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불황을 겪도록 하는 게 그런 문화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큰 고통을 가져오는 그런 방법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 반발을 가져올 겁니다.”
실험 도시 프로젝트
로머 교수는 기발하면서도 거대한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차터시티(Charter City)’ 캠페인이 그것이다〈키워드 참조〉. 개도국 내에 하나의 섬과 같은 모델 도시(enclave)를 만들어서 선진국의 법 제도를 적용하는 실험이다.
?차터시티 내에선 행정권까지 선진국 정부에 위임하는 일종의 모델 도시를 만들자고 주장하셨는데, 개도국이 국가 운영을 잘 못한다고 해서 주권까지 제한하자는 말씀입니까?
“선진국들이 매년 수십억달러씩 원조를 하지만 개도국의 발전이 더딘 건 제도상 문제 때문입니다. 반면,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선진국의 법 제도와 자유시장 경제를 갖춘 투명하고 효율적인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차터시티에는 누구나 이주할 수 있게 하되 일부 권리는 유보하고 사회복지 혜택도 최소화해야 투자자를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통치자는 예를 들어 캐나다나 영국 등 선진 민주 정부가 임명하도록 하되, 법에 의한 지배, 위생적 환경,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하는 겁니다. 매년 수십만, 수백만명이 정치적 이유나 경제적 이유로 모국을 떠나 불법 이민자로 세계를 떠돕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차터시티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차터시티 이주자들은 도시에 들어온 순간 이미 발로 투표한 겁니다. 개도국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제도를 선진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입니다.”
?동료 학자들조차 교수님을 ‘신(新)식민주의자’라고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추진할 땐 그런 비난에는 개의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결과입니다. 개도국의 수많은 사람에게 삶을 향상시킬 기회를 주는 것, 독재자들에게 ‘당신의 국민이 모국을 떠나도 충분히 자유롭고 잘 살 수 있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비난도 감수할 겁니다.”
한 경제학자의 공상으로 보이던 차터시티는 두 차례에 걸쳐 실현 직전까지 갔다. 2009년엔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이 로머 교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고 시행을 추진했으나, 쿠데타로 정권이 무너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이어 2010년엔 온두라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해당 도시 선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차터시티의 운영을 맡아야 할 선진국들이 ‘신(新)식민주의’란 비판을 두려워해 로머 교수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게다가 온두라스 정부가 로머 교수를 배제한 채 미국 투자자와 자유경제구역 개발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자 로머 교수는 손을 뗐다.
그러나 로머 교수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 로머 교수는 기자에게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 지대에 차터시티를 건설하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흥미 있는 아이디어”라고 답하자 그는 “관심이 있으면 전화나 이메일을 하라. 언제든 환영한다”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그의 마지막 인사는 “뉴욕에 오면 꼭 연락 달라. 우리 함께 이 아이디어를 토론하자”였다.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
경제성장에 있어 기술을 미지의 외부 요인(외생 변수)으로 간주하던 통설을 깨고, 연구개발(R&D)과 같은 의도적 노력을 통해 축적된 기술이 성장을 좌우한다는 이론이다. 전통 경제학은 노동과 자본이 생산량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봤으나, 내생적 성장 이론은 아이디어(기술)를 더 중요한 요인으로 부각시켰다. 아이디어는 기술뿐 아니라 기술 발전을 가능케 하는 문화적·제도적 측면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
☞차터시티(Charter City) 캠페인
개도국 내에 선진국의 법·제도를 이식한 모델 도시를 투자를 유치해 만든 뒤 제3세계 이주민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제공, 개도국의 성장을 촉진하자는 캠페인.
폴 로머 교수는
‘기술이 성장을 좌우한다’는 내생적 성장론으로 돌풍 온라인 교육기업 창업도
로머 교수가 걸어온 길은 통념에 대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의 내생적 성장 이론은 경제성장에 있어 기술을 미지의 외부 요인으로 보던 통설을 깨고, R&D 등을 통해 내적으로 양성된 기술이 성장을 좌우한다는 내용으로 경제학계를 뒤흔들었다. 폴 크루그먼 교수가 “198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1990년대 성장 이론 연구자들은 상당수 로머의 통찰에 기반했다.
2000년에 그는 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온라인 교육 기업을 창업해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가 회사를 키워 지분을 매각하고 나온 2007년 세계은행은 그에게 수석 이코노미스트 자리를 제안했다. 로런스 서머스,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스타 경제학자들이 맡아온 자리다. 그러나 로머 교수는 이를 거부하고, 기발하고도 대담한 구상을 주창하는 행동가가 됐다. 개도국에 하나의 섬과 같은 모델 도시를 만들어 선진국의 법·제도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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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보이지 않는 선진화의 벽… 인문·예술·과학 통찰력으로 뛰어넘자"
정리=이위재 기자 입력 : 2015.01.03 03:02
개원 앞둔 '21세기 사숙'건명원… 인재 육성 맡은 석학들 放談
최진석 교수 - 남들이 만든 걸작 숭배만 말고 질투의 힘으로 '스승' 넘어서야
김대식 교수 - 한국은 아쉽지만 '카피 국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질문해야
배철현 교수 - 햄릿 모르는 것만 無識이 아니야 미적분 차이 몰라도 부끄러운 일
김개천 교수 - 남들이 만든 세상 비평하지 말고 직접 참여해서 세상을 만들어야
벽 앞에 선 대한민국, 이 벽을 넘어서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예술·과학 등 각 분야 석학들이 모였다. 미래 세대에게 이 벽을 넘어설 통찰력을 전수하겠다는 게 목표다. 배철현(서울대 종교), 최진석(서강대 철학), 김성도(고려대 언어), 김개천(국민대 디자인), 서동욱(서강대 철학), 김대식(KAIST 전자전기공학), 정하웅(KAIST 물리) 교수와 더불어 주경철(서울대 서양사) 교수가 의기투합했다. 청년들을 위한 사숙(私塾) '건명원(建明苑)'을 만든 것.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란 뜻이다. 이 사숙에서 19~29세 청년 30여명을 뽑아 1년 동안 인문·과학·예술에 대한 사유의 기초를 가르쳐 스스로 벽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인재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자는 게 포부다.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이나 옥스퍼드대가 고전 중심 교육과정을 현대화한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수준을 넘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맞게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예술을 융합해서 가르칠 예정이다. 개원(開苑)에 앞서 배철현, 최진석, 김대식, 김개천 교수가 나눈 방담(放談)을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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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명원' 개원을 앞두고 앞으로 강의를 맡을 교수들이 지난달 조선호텔에 모여 '벽 앞에 선 대한민국, 이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이날 김대식, 최진석, 배철현, 김개천 교수(왼쪽부터)가 참석했다. / 김지호 기자
최진석 한국은 지금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문턱에 서 있다. 그런데 바로 앞에 보이는 선진국이란 고지는 잡힐 듯 말 듯 가까워지지 않는다. 뭐가 잘못된 걸까. 커다란 벽이 서 있는 느낌이다. 돌아보면 한국은 넘어야 할 벽들을 착실히 넘었다. 해방과 건국, 빈곤에서 벗어나는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 시대의 과제들을 무난히 완수했다. 그런데 이런 과거의 벽들은 구체적이고 눈에 보였지만, 선진화라는 벽은 그렇지 않다. 선진, 선도, 창의, 상상, 장르, 개념을 창조하는 지성적이고 인문적인 돌파력을 가져야만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돌파하는 노선(路線)을 찾기 쉽지 않다. 지금은 틀에 갇힌 사람들끼리 모여 각자 자기 주장만 할 뿐, 함께 이 틀을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상승하려는 꿈을 만들고 공유하려는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美영화 '인터스텔라'통해 본 사유의 깊이
김대식 세계를 오리지널과 카피(copy) 나라로 나눌 수 있다면 한국은 아쉽지만, 카피 국가에 머물고 있다. 오리지널의 아우라(aura)를 갖지 못한다. 선진국이 만든 오리지널과 비슷한 카피를 만들어 열심히 팔아왔던 게 부끄럽지만 솔직한 과거 우리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과학에서 노벨상, 경제에서 창조 기업, 정치에서 독자적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외부 기운에 의존하며 살았다.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노벨상(일본 22명, 한국 1명)이나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일본 7명, 한국 0명) 등 선진국이란 위상에 걸맞게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이 없다. 애플과 비교한 삼성의 창조력 현황,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아무 주도권을 발휘하지 못하는 외교력도 이런 알맹이 없는 공허함을 반영한다. '우리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거야?'라는 질문을 서로 나눠 가져야 할 때다.
최진석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지니는 선진국으로서 사유의 깊이와 폭을 절감할 수 있다. 시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그 사유를 화면에 풀어내는 힘은 제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해보지 못한 나라로서는 감히 시도해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언제까지 이렇게 남들이 만든 걸작을 손뼉 치고 숭배하면서 살 수만은 없다. 존경은 그만하고 질투가 필요하다. 질투가 힘이 되어 스승을 넘어선 제자의 각성이 나타나야 할 시점이다. 다행스러운 건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면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를 정확히 읽어내면 실마리가 보인다. 세계를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인식하면 출발선이 어딘지는 알 수 있는 법이다.
배철현 그 출발선을 인문, 과학, 예술을 통합한 교육을 통하여 찾고자 한다. 인간의 창의는 가치, 의도, 미(美)적 판단, 사회적 정서, 그리고 개인 의식 수준과 긴밀하게 작용하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예술과 인문학도들도 수학·과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인문·예술에 해박하면 수학·물리학은 몰라도 되는 줄 착각했지만, 우주를 설명하는 수학적 공식은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나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만큼 숭고하고 심오하다. 햄릿을 모르는 것만 무식한 게 아니다. 유전자와 염색체, 미분과 적분의 차이를 모르는 것도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인문·과학·예술 통섭하는 지식인 양성
김개천 조선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은 이 모든 학문에 통달한 존재를 가리켰다. 선비는 문사철(文史哲)뿐 아니라 시서화(詩書畵)와 의술(醫術) 등 자연과학, 무술(武術)까지 능통한 전체적 인간이 되려 했다. 이 시대 예술과 디자인은 특정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잠재력을 일깨우고 창조적 영토를 제공하려 했다. 앞으로 이런 지식인 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자라는 식으로 규범을 내세울 게 아니라 삶의 매 순간 자신에게 몰두해 보는 게 중요하다. 이러면 오히려 정서적 안정을 통해 자유롭고 예술적인 삶이 가능하다.
배철현 디지털 혁명은 기술과 창조적 산업이 융합하면서 탄생한다. 창조적 산업이란 미디어, 패션, 음악, 엔터테인먼트, 교육, 문학, 예술, 종교, 철학 등에서 발견될 수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혁신은 과거의 산물들, 책이나 신문, 잡지, 노래, TV, 영화 등을 디지털과 접목하면서 이뤄졌으나, 이제는 기술과 창조적인 인문학, 예술과 상호작용을 통해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를 지닌 미디어를 탄생시킬 것이다. 이 혁신은 아름다움을 공학에, 공학을 인문학에, 시(詩)를 컴퓨터에 연결시킬 능력이 있는 자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혁신가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또는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진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따르는 영적이며 정신적인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글로벌 지적 향연에 동참할 수 있어야
김대식 이런 이질적인 학문들이 한 존재 내면에서 충돌하면서 새로운 사유의 틀을 만들어낼 때 그 마찰열은 창조의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 영국과 미국 정치인들이 만나서 어떤 얘길 할 것 같은가. 교양과 사유를 통해 다져진 그들의 내공은 남다르다. 영미 엘리트들은 주요한 대화 주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공감대가 대화와 협상에서 편을 가르는 기준이다. 복잡한 외교적 현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앞서 지적인 한담을 통해 정신적인 교류를 펼친다. 여기서 서로 코드가 맞으면 본 협상은 쉽게 풀린다. 우리 정치인, 기업인도 이런 지적(知的) 향연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근래 기업 사이에서 퍼진 인문학 열풍은 도구적 측면에 치중했다. 인문학을 수익 증진이나 판매 향상의 방편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종종 엿보이는데, 그런 식의 얄팍한 접근 방법으로는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응용수학이나 컴퓨터 공학에는 로컬 솔루션(또는 로컬 옵티멈)과 글로벌 솔루션(글로벌 옵티멈)이란 게 있다. 전자는 부분적인 해답을 뜻하고 후자는 전체적인 해답을 가리킨다. 글로벌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로컬 솔루션에 매몰되다 보면, 폐렴인데 감기약만 계속 주는, 즉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오류를 반복한다.
김개천 이런 교착상태를 벗어날 능력을 이제 미래 세대에게 전수해야 한다. 진리와 선, 공익 같은 근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 자발성이 공공을 이루는 시대로 만들어가는 그런 인재들이다. 얼마 전 국가적 디자인 행사 때 보니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이란 구호를 붙여놓았더라. 21세기에 여전히 과거의 틀을 답습하는 모습이다. 공공성이 개별성을 가두는 시대적 패러다임으로는 창발(創發)적인 인재가 태어날 수 없다. 각자가 개별적 존재로서 자부심을 갖고 세상과 맞서야 한다. 비평가가 돼선 곤란하다. 남들이 만든 세상을 비평할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해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욕망과 열정이 풍부하다. 그게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으로 전화할 수 있다. 이 두 요소 때문에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고 예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꾸로 이 두 가지가 있어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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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디지털트렌드 전망] "삼성전자, 5大 IT기업(구글·아마존·알리바바·애플·삼성) 중 미래 가장 어둡다"
[IT 미래학자 돈 탭스콧 회장]
-삼성 스마트폰, 이대론 위태
경쟁자들 低價 공세 위협적… R&D까지 아웃소싱 늘려야
-S(Social media)세대 뜬다
쌍방향 소통과 협력에 익숙, 사회 全분야 변화 주도할 것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디지털 구루(Guru)로 평가받는 돈 탭스콧(Tapscott·68) 막시인사이트 회장이 글로벌 5대 IT(정보통신기술) 기업 중 삼성전자의 미래가 가장 불안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탭스콧 회장은 우리에게 친숙한 위키노믹스, 프로슈머, 디지털 경제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또 본지 인터뷰에서 모든 업무 처리와 소통을 소셜 네트워크(SNS)를 통해 처리하는 S세대의 등장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런 변화에 걸맞은 '디지털 시민상'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현재 세계에는 5대 IT 기업이 있다.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애플과 삼성이다. 이들은 앞으로 5년간 성장하리라 보지만, 그중에 삼성의 미래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점이 있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삼성이 생존하려면 아웃소싱(outsourcing·기업이 업무 일부를 제3자에게 위탁하는 것)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조업과 마케팅, 그리고 심지어 연구 개발(R&D)까지 늘려야 한다."
?삼성도 스마트폰 제조부터 마케팅 등 아웃소싱을 늘리는 추세다.
"나는 그러한 노력이 경쟁자들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삼성은 여전히 직접 내부에서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다. 나는 그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갤럭시S 5 등 갤럭시 시리즈를 봐라. 지금 벌써 수많은 경쟁자가 훨씬 낮은 비용으로 삼성을 위협할 제품을 만들고 있다. 지금대로의 삼성이라면, 삼성이 만드는 그다음 스마트폰은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다."
?당신은 과거 베이비부머 부모로부터 태어난 N(Net) 세대들에 주목하라면서, 어릴 때부터 N세대들은 컴퓨터 마우스와 인터넷을 접하면서 지능도 높고 협업도 익숙해 기업들의 마케팅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세대는 이미 사회의 수많은 비즈니스를 점령하고 있다. 나는 1997년 이후 태어난 더 젊은 세대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S(Social media)세대다. 이들은 N세대보다 훨씬 협력에 능하고, 쌍방향 소통에 익숙하다."
?S세대는 N세대와 어떻게 다른가?
"N세대는 인터넷 활용도가 높은 세대다. 인터넷의 정보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력도 높다. 예컨대 석탄회사의 "석탄이 최고의 대체에너지다"라는 주장이 거짓말이란 것을 구별할 줄도 알고, 선택의 자유와 재미·스피드를 추구한다. 그러나 S세대는 모든 어려움, 인간관계, 인성을 인터넷만이 아닌 다양한 플랫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쌓는 세대다. 이들에게 학교 숙제란 의미가 다르다. 숙제를 인스턴트 메신저,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100% 해결하는 세대다. S세대는 사용자이면서, 협력자이지만, 모든 것을 플랫폼으로 해결한다. 그들의 뇌는 훨씬 발전돼 있다."
?새로운 세대들이 디지털화되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인터넷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불필요한 믿음과 왜곡된 사실을 전파한 측면도 크다. 디지털 비즈니스를 연구하지만, 어떻게 하면 올바른 '디지털 시민상'을 만들지 정확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미디어, 기업 모두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의 발전이 국가 지배 구조와 정치 문화도 바꾸나?
"급진적인 혁신이 전 세계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창조적 관료제(creative bureaucracy)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정부가 민간기업 및 기관들과 손을 잡고 국가 경영을 함께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인터넷으로 소통을 더 늘리는 의미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새 국가 지배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나는 이제야 산업혁명 시대가 종말을 맞는 것 같다. 정부를 포함한 모든 기관과 비즈니스가 디지털 비즈니스화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정부는 어떤 수준인가?
"전 세계 정부 중 상위 10% 안에 넣겠다. 인터넷 사용률이 높아서다. 그러나 인터넷 사용률은 높은 반면, 이를 활용해 시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돈 탭스콧은]
30년前 'IT 新경제' 예측족집게 디지털 예언가
돈 탭스콧 회장은 2013년 세계 경영 대가 순위(Thinkers 50)에서 4위에 랭크됐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6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등 베스트셀러 작가인 짐 콜린스가 12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탭스콧 회장은 1985년 디지털 기술에 대한 첫 책을 발간하고, 디지털 이코노미에 대한 예언들을 잇따라 내놨는데, 거의 적중했다.
그는 아직 인터넷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1980년대부터 월드와이드웹(www)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경제라는 개념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인터넷 기반의 기업을 바탕으로 신(新)경제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예측대로 구글, 아마존 등 인터넷 기반의 회사들이 속속 탄생했다.
2006년 위키노믹스(Wikinomics)란 저서에서 "기업 단위가 아닌 대규모 일반인이 온라인 협업 공유로 문제를 해결하고, 창업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할 것"이라고 쓰면서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이란 개념을 소개했다. 9년이 지난 지금 크라우드소싱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에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공유 경제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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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MBA] 오마에 겐이치 "한국 IT위기는 ‘차이완 태풍’ 못 읽은 탓"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5대 경영구루 중 한 명으로 꼽았을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Business Breakthrough University) 학장은 5년 전인 2010년 한국을 방문해 “한국이 도요타자동차의 위기를 즐길 때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당시 도요타는 대대적인 리콜 사태와 달러당 80엔대 초반까지 치솟은 엔고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었다. 이 덕분에 2008년 9월 터진 리먼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한국이 가장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부러움까지 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오마에 학장은 도요타 위기에 취해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한국에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학장실에서 만난 오마에 학장은 “당시 당신의 조언대로 한국 산업이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아베노믹스 엔저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환율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오마에 학장의 분석이다.
오마에 학장은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수십 년간 지속돼 온 엔고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로 공장을 분산시키는 작업을 진행해왔다며 “한국은 일본 기업이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일본 기업은 장기간 지속돼 온 엔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강해져 있다. 한국 기업도 더 늦기 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마에 학장은 중국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
IT)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아니라 “대만의 영향력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위협은 중국이 아니라 중국과 대만이 결합한 ‘차이완’”이라며 “대만의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하고, 대만 엔지니어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 가운데 엔고 시절을 잘 헤쳐나온 대표적인 기업은 어디인가.
▶자동차 기업은 대부분 엔고 극복에 성공했다. 일본의 엔화는 70년 전에는 달러당 360엔(※일본 엔화는 전후 1949년 1달러=360엔 고정환율로 거래를 시작했다)이었다. 지금(120엔 안팎)은 3배나 오른 것이다. 한국의 원화로 바꿔보면 달러당 400원의 경험을 한 것이다.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이 경쟁력이 없는 건 당연했다. 일본 자동차기업들은 엔저든, 엔고든 영향을 받지 않도록 분산하는 데 집중했다. 도요타자동차는 현재 전 세계 52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30년에 걸쳐 전 세계에 분산시켰다. 자동차 메이커는 태국 같은 중립적인 곳에 공장을 뒀다.
도요타는 혁신만으로도 극복이 가능하지 않았나.
▶공장을 세계화하기 전에는 혁신을 통해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팔려고 했다. ‘코롤라(도요타 소형차)’를 미국에서 1만2000달러에 팔다가 2만5000달러, 3만달러까지 2배 이상으로 팔기 위해 업그레이드를 했다. 생산성 개선과 가치 향상으로 2배 정도의 엔고를 견디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대응이 안 되자 부품회사와 함께 미국으로 이전했다. 일본 회사는 지금 미국에서 400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10년 전부터 일본 기업이 굉장히 약해졌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실은 약해진 것이 아니다. 시련을 겪고 미국 현지 생산하고 있는 기업 중 95%는 흑자로 되돌아왔다. 일본 기업은 엔고라는 힘든 상황이 있어 옛날보다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은 반대가 됐다. 한국의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자동차 산업은 엔화 약세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일본 기업의 30년간에 걸친 고통은 한국 입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원화 약세가 굉장히 길어 생산의 세계화가 늦어졌다. 원화 강세가 된 지금 세계화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매출 세계 랭킹은 현대차가 혼다를 이겼지만 세계화라는 랭킹에서는 혼다가 현대차를 이기고 있다.
‘세계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인가.
▶현대차는 20년이나 걸리는 생산의 세계화 작업을 누가 중심이 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리더십이 굉장히 좋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20년 걸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 조직적으로 해야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같은 강력한 리더들이 이끌면 한국 기업은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에 걸쳐 이런 일을 하려면 ‘조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일본 기업은 원래 강한 리더가 없기 때문에 ‘조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많다. 일본 경영자는 6~10년 이상 계속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의 경우 굉장한 리더가 있으면 20~30년을 잘 해나갈 수 있지만 지금은 이런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 다음 세대에도 굉장한 리더가 나올 수 있을까 이게 문제다. 최근 문제(대한항공 땅콩회항)는 한국 재벌들에게 좋은 경고라고 생각한다. 원화 강세를 비롯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20년 걸려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 사람의 리더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기업 조직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 위기의 한가운데 중국이 있다. 중국
IT기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의
IT기업이 강한 건 대만 덕분이다. 엔지니어링은 대만에서 하는 기업이 많다. 애플 제품도 대부분 대만 기업이 하고 있다. ‘차이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대만과 중국의 조합은 일본도 상대가 안 될 만큼 강하다. 대만과 중국의 조합은 일본과 한국 입장에서는 굉장히 껄끄럽다. 대만은 엔지니어링이 강하다. 분야에 따라서는 일본보다 엄청나게 발전돼 있다. 스마트폰 설계와 칩의 생산을 해 주는 미디어텍 등의 회사는 일본에도 유례가 없다. 대만은 병역 의무가 있는데, 엔지니어링으로 대학원까지 가면 면제가 된다. 그래서 대부분 엔니지어가 된다. 이들은 일본어 영어 중국어 3개 국어를 하는 엔지니어들이다. 미국에 유학해 기업을 세운 인재도 많다. 중국은 생산과 시장으로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대만의 영향력을 한국은 체크하지 못했다. 중국이 강한 것이 아니라 차이완의 조합이 강한 것이다. 이런 흐름을 빨리 체크해 대만 엔지니어를 한국에 데려오든, 대만 엔지니어 회사를 인수하든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중국 샤오미 등에 밀려 삼성 스마트폰도 고전하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 분야는 지금의 코스트로는 매우 고전할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굉장히 마케팅이 훌륭한 회사로 이를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
OEM)으로 생산한 제품을 삼성이 가진 브랜드와 네트워크로 판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탈피해야 한다. 지금처럼 반도체부터 제품까지 만들어 마케팅하는 수직통합의 방식으로는 굉장히 힘들 것이다. 삼성은 브랜드 마케팅 판매력이 강한 회사다. 만드는 것은 가장 싼 곳, 즉 중국과 대만에 맡기면 된다. 지금처럼 혼자서 다 하려는 방식은 안 된다.
?바이오 같은 신산업은 어떤가.
▶무리다. 바이오산업은 우수인재를 확보한 미국 유럽 기업이 10조엔 이상 매출에, 연구개발비만 1조엔 쏟아붓고 있다. 이런 분야는 미국 유럽에 20~30년 이상 뒤처졌다. 허들은 옛날보다 훨씬 높아졌다.
?지금부터 한국 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패션업계를 보라. 일본 섬유메이커에 쫓겨 프랑스와 이탈리아 패션업계는 굉장히 고생을 했다. 많이 망했지만 일본 제품보다 2배, 5배 비싼 브랜드 제품을 만들었다. 스위스 시계산업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일본 세이코 시티즌 등에 역전당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지금은 일본 시계의 10배 가격에도 팔리는 시계를 만든다.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은 소비자가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코스트로 승부해 오던 한국 기업에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한국은 앞으로 중국 동남아에서 만드는 제품의 5배, 10배 이상 가격에도 팔릴 만한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곳이 없다. 한국 기업의 도전과제다. 그러나 재벌그룹 회사들은 도전을 잘 하지 않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세계에 판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산업의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된 중소기업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한국은 중소기업이 하도급업체지만, 일본은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이라고 부른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관계가 강한 곳은 역시 도요타다. 내부에 ‘함께 번영하자’라는 그룹이 있어서 코스트를 절감하는 제안이 나와 성공하면 반은 제안한 기업이 갖고, 나머지 반은 도요타가 갖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파트너십과 관련해 가장 좋은 예는 유니클로다. 유니클로는 섬유업체인 도레이와 함께 파트너십을 발휘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단순히 싼 곳에서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소재 기술개발은 파트너인 도레이가 하고 있다. 두 회사는 신문광고도 같이 할 정도다. 메리트가 생겼을 때 함께 나눈다는 분위기가 없다면 파트너십이 아니다. 한국은 대기업이 메리트를 전부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애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 디플레이션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교육을 바꾸는 것이다. 좋은 학교 나와 좋은 회사 취직해 편안한 삶을 산다는 일본의 40년 전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잘못된 점은 과거 일본의 가혹한 수험 등 나쁜 문화를 아직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다(
Teach)’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답이 없는 시대에 ‘선생(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람이 가르치는 건 난센스다.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는 선생이 아니라 코디네이터 등으로 호칭을 바꿔 모두가 정답을 찾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한국은 미국 유럽 일본을 따라잡고 싶어 이런 시스템이 유지돼 왔다. 하지만 이젠 그런 시스템으로는 첨단 연구가 가능하지 않고, 세계적인 인재도 기를 수 없다.
?새해 세계 경제는 어떻게 보나.
▶유럽은 앞으로 고생할 것이고, 러시아도 한동안 힘들 것이다. 새해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일 것이고, 부동산 주식 등 버블이 일어날 것이다. 미국에 돈이 모이지만 더 이상 투자 기회가 없기 때문에 버블로 가게 될 것이다. 미국 경기가 좋아져도 미국 기업의 50%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국내의 고용 등에 메리트가 별로 없다. 미국은 현재 버블의 초입에 가 있다.
■ 일본은 저욕망사회…아베노믹스는 ‘조크’
결혼도 출세도 기피하는 젊은층 급증…월급 늘어나도 편의점 도시락에 만족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아베노믹스 엔저로 일본 기업 실적 좋아진 것 아닌가.
▶현재 일본은 엔고든, 엔저든 상관이 없다. 지금 엔저는 마이너스 측면의 방향이 강하다. 엔저라든가 원저라고 하며 기뻐하는 것은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둘 다 수출기업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달라졌다. 엔저로 나빠지는 게 더 많다. 엔저는 한국을 괴롭히고 있지만 일본 경제에 메리트는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공장을 세계에 분산시켰다. 엔저가 되더라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캐논은 대만 중국 베트남에서 10만명이 일하는데, 일본에서는 1000명도 채용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과거 공장을 닫을 때 파업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다시 일본에 공장을 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거의 중국으로 이전해 버린 부품이다. 제품 조립값은 20%에 불과하고, 부품값은 80%를 점하고 있다. 엔저로 부품을 수입하면 할수록 비싸지는 구조로 돼 버렸다. 일부 수출업계의 구시대 사람들 얘기만 듣고 아베 총리가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다.
?아베노믹스 제3의 화살, 성장전략을 평가하면.
▶아베의 성장전략은 ‘조크’다. 그런 걸로 일본이 성장할 리가 없다. 일본은 지금 저욕망사회다. 욕망없는 국민이 대부분이다. 개인 금융자산이 1600조엔이지만 쓰지 않는다. 일본인은 죽을 때가 가장 부자다. 보험 연금이 나오지만 쓰지 않는다.
GDP의 3배의 돈을 저금해 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좋아진 게 아니라 국민들이 “장래에 좋아지는 것 아닐까”라는 기대감에 2년 전에는 1600조엔의 아주 일부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기업도
GDP의 60%에 필적하는 300조엔이나 되는 내부유보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 저욕망이라 월급이 올라도 편의점 도시락 먹는 걸로 만족하는 굉장히 신기한 저성장이 진행되고 있다. 플랫35라고 하는 주택론이 있는데 35년간 1.56%의 고정금리에도 주택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차입도, 결혼도, 출세도,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빠져 나올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인가.
▶저출산 이민 호적 문제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일본 경제는 계속 침체될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단지 브랜드일 뿐이며 알맹이가 없다. 정말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민과 호적 문제다. 일본은 아이를 낳고 호적에 넣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차별을 당한다. 프랑스는 사실혼이다. 3년 이상 동거하면 결혼으로 보고 호적도 없다. 결혼하지 않고 태어나는 아이가 56%다. 이러면 소득세가 줄고 정부 보조금도 늘어난다. 일본 우익은 호적 철폐를 반대한다. 지금의 아베 정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이민도 반대하고 있다. 이러면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고 경제도 침체될 것이다. 사실 뛰어난 일본의 기업은 글로벌화가 잘 돼 있어 여차하면 일본을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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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에서 23년간 일하며 일본 지사장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장을 지낸 경영 컨설턴트이자 경제 전문가다. 국가의 종말, 지식의 쇠퇴, 더 넥스트 글로벌 스테이지 등 10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집필했다. 1994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세계 5대 경영구루에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와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43년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도쿄 와세다대 이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3·11 대지진 이후에는 후쿠시마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민간 프로젝트팀의 총괄 책임을 맡기도 했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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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장점이던 ‘총수 1인 경영 체제’ 이제는 장애 요소”
[한겨레]
인터뷰/ ‘삼성과 소니’ 쓴 삼성 전문가, 장세진 카이스트 교수“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이제는 새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장세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31일 <한겨레>와 만나 삼성이 1인 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스피드 경영’에는 장점이던 ‘총수 1인 경영 체제’가 이제는 삼성에 장애요소가 된다”며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반도체산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오히려 극복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옛 비서실로 통하는 미래전략실에는 인사와 재무 기능만 남아 단기적 경영성과에 치중하고 있다”며 “신수종 사업이 안되고, 소프트웨어 육성이 안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영학 교수로도 일하는 그는 2007년 교육부가 선정한 ‘국가 석학 15인’ 가운데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국제 경영 전략’ 분야에서 이름난 전문가다. <삼성과 소니>란 책을 쓴 ‘삼성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에는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에 참석해 ‘다시 전략이다’라는 주제로 강의도 했다.
“미래전략실에는
인사·재무 기능만 남아
단기적 경영성과 치중…
신수종 사업 안되는 것도 같은 이유”장 교수는 삼성전자에 대해 “현재 3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있지만, 각자 자기 부분만 책임지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는 없다”고 말했다. 연말 휴대전화 실적 부진으로 교체설이 나돌던 신종균 사장의 유임 역시 ‘대안 부재’를 이유로 꼽았다. 장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기존 강점인 원가절감과 강한 유통채널 등을 유지하는 것이 답이다. 시장 점유율을 잃으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까지 여파가 미쳐,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점유율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하면 삼성전자의 한 분기당 영업이익은 3조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2013년 3분기 10조1635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4년 3분기에는 4조600억원으로 급감했다.
장 교수는 이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본다. 스마트폰 시장 초창기에는 애플의 혁신 제품을 삼성이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빨리 따라갈 수 있어 높은 영업이익이 보장됐지만, 이젠 중국이나 인도 업체들이 추격해 많은 경쟁자가 생겨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비전 제시하는
실질적 최고경영자 없어
현재 CEO 3명 있지만
각자 자기 부분만 책임져”그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한 투자를 강조했다.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대안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꼽았다. 장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소프트웨어와 글로벌경영 역량을 키우는 데 아버지 시절보다 더 긍정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체제에서 대주주로서 전문경영인을 감시하고 큰 방향만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계열 회사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슈나이더의 사례를 들었다. 170여년을 이어온 슈나이더는 철강업→전기업→에너지관리 등으로 주사업을 탈바꿈하면서 1980년대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삼성 역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같은 흐름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고집한 ‘무노조 경영’ 역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오너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 가장 큰 리스크…
진로 부도·금호 수조원 손실
총수 판단 잘못이 문제였다”장 교수는 삼성에스디에스(SDS)와 제일모직 상장에 대해선 경영이 투명해지고 내부거래 위험이 줄어들게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승계 과정에서 나타난 막대한 상장차익 등 무리수는 향후 출범할 이재용 체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상장차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한국 재벌과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대표되는 ‘오너 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리스크”라고 그는 말했다. 과거 외환위기 시절 시장점유율 50%에 달하던 진로가 부도나고, 몇해 전 금호그룹이 대한통운, 대우건설 인수에 나섰다가 수조원 손실을 보는 것도 총수의 잘못된 판단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한전 터를 사는 데 무려 10조원을 써 내고 전문경영인들이 제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사례 등 많은 기업에서 그런 문제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장 교수는 “총수 일가라고 30대 초반의 임원이 탄생하는 기업은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기피하고 결국 인재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후진적인 기업 문화는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하면 투자한다는
정부 주장 현실성 없어…
부품쪽 전문기업 생기고
새 서비스 제공 업체 많이 생겨야”그는 정부가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을 100%에서 50%로 완화하기로 한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단점을 막으려는 지주회사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규제를 완화하면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한다’는 정부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이상 수출 중심, 대기업 중심의 정부 정책은 유효하지 않다”며 “규제 완화가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고, 설령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온다고 해도 고용은 크게 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도 강조했다. 장 교수는 “부품 쪽 전문 기업이 생기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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