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2015년을 맞이하는 세계의 전문가 들의 글모음

구봉88 2015. 1. 6. 00:12

1.데니스 낼리 회장 "삼성·한화의 빅딜 같은 자발적 구조조정 많아질 것"

2.美칼라일 루스타인 회장 “美경제 better” 저금리·저유가로 두둑한 지갑 활짝 연다

3.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韓 ·日 역사문제 극복 중재하는게 미국의 가장 중요한 일

4.노벨경제학상 수상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

     한국, 수출경쟁력 지키려면…환율전쟁 손놓고 있어선 안돼

5.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美 주택시장 절뚝거리며 상승…뉴노멀붐 마지막 왔다”

6.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유럽, 투자 아닌 소비에 집중하라

7.사이먼 존슨 MIT 슬론 비즈니스스쿨 교수

8.앨런 크루거 "한국, 부양책은 한계…구조개혁 해야 D공포 극복"

9.유진 파마 美 시카고대 교수, "세계경제 가장 큰 리스크는 과도한 福祉 약속"

10.옌쉐퉁 칭화대 교수 “中-北동맹 사실상 깨져… 한국, 美-中상대 실리외교 펼칠 때”

11.포머랜츠 미 시카고대 교수,

    미-중 경쟁 넘어 대립 땐 한국 운신의 폭 좁아…다자적으로 안보 관리하되 주도 능력 키워야”

12.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허판 부소장 "中 중진국 함정 피하려면 韓 배워야"

13.이와타 가즈마사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

      "올 세계경제 환율 변동성 더 커져…신흥국 위기땐 엔低 흐름 꺾일 수도"

14.장샤오징 중국 사회과학원 거시경제연구실 주임

15.지한파 언론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日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16.리웨이 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장

17.에드윈 풀너 美헤리티지재단 설립자

18.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2차 세계대전뒤 70년, 지구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9.제프리 삭스 컬럼비아大 교수,

   [2015년 자본주의가 갈 길] "약자·빈민 끌어안는 '착한 成長'으로 자본주의 흐름 바꿔야"

20.폴 로머 뉴욕대 교수의 조언, "기업 아닌 사람을 보호하라… 새 기업 생기도록"

21.개원 앞둔 '21세기 사숙'건명원… 인재 육성 맡은 석학들 放談
22.IT 미래학자 돈 탭스콧 회장,

   삼성전자, 5大 IT기업(구글·아마존·알리바바·애플·삼성) 중 미래 가장 어둡다"

23.오마에 겐이치 "한국 IT위기는 ‘차이완 태풍’ 못 읽은 탓"

24.장세진 카이스트 교수, “삼성 장점이던 ‘총수 1인 경영 체제’ 이제는 장애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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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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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빅샷 인터뷰 ① 美칼라일 루벤스타인 회장 ◆


“더 좋아질 것(better)이다.” 내년 미국 경제를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 그룹을 설립한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회장이 일순간도 주저함 없이 내놓은 답변이다. 루벤스타인 회장 인터뷰는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평소에도 달변·다변(?)으로 유명한 루벤스타인 회장은 질문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미국 경제 긍정론을 거침없이 펼쳤다. 물론 러시아 경제위기 등 언제든지 미국·글로벌 경제 회복이라는 기차를 탈선시킬 수 있는 그레이 스완을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국 경제에 대한 내년 전망은.

▶미국 경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매우 좋은 상황(very good shape)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실업률은 6년래 최저치인 5.8%다. 2015회계연도 예산안도 공화·민주 양당 합의로 통과되면서 셧다운(연방정부 업무마비)과 같은 경제 발목을 잡는 정치적 위험에서도 벗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던 은행들은 자본 재확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덕분에 금융회사 대출여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저유가로 미국 가계는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것처럼 주머니가 더욱 두둑해지게 됐다. 에너지값 하락으로 셰일 등 에너지 관련 업체들이 타격을 받고 에너지 업체에 투자하는 펀드 수익률은 좋지 않겠지만 저유가는 미국 경제에 순긍정적(net positive)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내년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겠지만 금리가 인상되더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낮은 저금리 현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칩머니(cheap money)와 칩가스(cheap gas)가 미국 가계 소비 확대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어차피 미국은 소비로 굴러가는 나라다. 가계 소비가 미국 국내총생산에서 70%를 점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내년에는 10여 년 만에 연 3%대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내년 미국·글로벌 경제 발목을 잡을 리스크는.

▶지정학적 이슈를 잘 지켜봐야 한다. 이라크·시리아 과격 이슬람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사태가 통제 불능 상황으로 치달아 미국이 군사 개입하는 폭이 확대될 수 있다. 미국·이란 간 핵협상이 잘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만약 결렬됐을 때 후폭풍이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토 문제로 무력충돌을 할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를 해킹하고 극장 테러위협까지 한 북한이 또 어떤 비이성적 행동을 할지 모른다. 저유가 쇼크로 산유국 베네수엘라와 러시아가 디폴트에 직면했을 때 전 세계 경제에 어느 정도 파국적인 상황을 초래할지 현시점에서 짐작하기 힘들다. 특히 그렇지 않아도 디플레이션에 직면한 유로존은 러시아 경제위기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유로존 많은 금융회사들이 러시아 기업에 대출을 많이 해줬는데 채무 상환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준이 달러 초강세를 용인할 것으로 보는가.

▶환율은 미국 재무부 관할이기는 하지만 연준도 당연히 달러 환율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연준은 미국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비전통적인 양적 완화 정책까지 취해왔다. 이제 막 미국 경제 회복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달러 초강세에 따른 수출 위축이 초래되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으로 본다. 달러가 과도하게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는 조짐이 감지되면 연준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늦추거나 더 천천히 하는 식으로 기준금리 인상폭과 속도를 조절할 것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시점은 언제쯤.

▶연준은 미국 경제가 확실히 회복된다는 자신감이 들 때까지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12월 정례회의 후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밝힌 대로 연준은 최소 두 차례 정도 FOMC 회의를 연 뒤에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과 고용지표가 지속적으로 개선된다는 전제하에 내년 중반기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지만 금리 인상폭과 속도는 매우 완만(moderate)할 것으로 본다.

?주식·채권 고평가 논란이 계속되는데.

▶증시 랠리가 꺾일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또 주식 밸류에이션이 높기는 하지만 거품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채권 금리는 연준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하면서 내년에 오름세로 방향을 잡을 것이다. 그렇다고 채권거품 붕괴와 같은 패닉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 루벤스타인 칼라일 회장은…

1949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루벤스타인은 듀크대와 시카고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루벤스타인은 1977년부터 4년간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 때 백악관 국내 정치담당 부보좌관을 지냈다. 카터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낙심하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전화위복이었다. 1987년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을 설립한 뒤 승승장구해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사모펀드 회사로 키워냈다. 칼라일이 투자한 기업은 200개를 훌쩍 넘는다. 외환위기 때 한미은행을 사들여 씨티그룹에 매각해 큰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백악관에서 일하며 정치권에 몸담았던 경력 덕분에 정치권 네트워크가 강해 칼라일그룹 본사는 워싱턴에 자리 잡고 있다. 루벤스타인 회장 개인 재산은 30억달러에 육박한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매일경제
빅샷 인터뷰 ① 美칼라일 루벤스타인 회장 ◆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회장(65·사진)이 한국 경제에 대해 낙관론을 펼치며 내년에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루벤스타인 회장은 지난 주말 맨해튼 520빌딩 43층 칼라일 뉴욕사무소 집무실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하면서 “나는 한국 경제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I am a big believer in Korean economy)”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한국 투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용 자금 규모가 2300억달러(약 250조원)에 달하는 칼라일은 4개월 전 아시아 시장에 투자하는 칼라일아시아파트너스4펀드를 설립했다. 운용 자산 39억달러로 칼라일이 그동안 설립한 아시아 투자펀드 중 최대 규모다. 루벤스타인 회장은 “칼라일아시아파트너스4펀드는 주로 한국 중국 인도 기업에 투자할 것”이라며 “한국 제조업은 물론 IT, 소비재기업, 금융사가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미국 경제에 대해 주저없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고 실업률이 최저치며 저유가 혜택도 크다”고 강조했다.

루벤스타인 회장에게 한국 경제와 시장을 매력적으로 보는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근면성실하고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고급 인력이 많다는 점을 우선 꼽았다. 그만큼 경제가 성공할 수 있는 인적 자본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낮은 실업률에 국내총생산(GDP) 1조4000억달러, 인구 5000만명 등 시장 사이즈도 투자하기에 적정하다고 봤다. 여기에다 전 세계 수출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탁월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한국 기업이 많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근혜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통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한편 루벤스타인 회장은 미국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창의성을 꼽고, 한국·미국 간 문화 차이를 이를 통해 설명했다.

루벤스타인 회장에 따르면 미국 젊은이들 롤모델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빌 게이츠 MS 창업자 등 탁월한 아이디어를 창업으로 연결해 부를 일군 창업 기업가들이다.

반면 한국 대학생 상당수는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에 목을 매는데 이는 창업가 정신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창업 마인드 강화를 위해 정부가 벤처캐피털과 기술 벤처기업이 더 많이 생겨나고 몸집을 키워갈 수 있도록 창업 생태계 구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많은 한국 학생들이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미국 경영대학원(MBA)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다고 봤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서울경제

신흥국 '자금 엑소더스' 가속… 경제·신용도 따라 차별화 클것

올 중반 미 기준금리 인상 예상… 신흥국 전체 충격은 없을 듯

저유가에 러 등은 디폴트 위험

자산 저평가 유로존 투자 유망… 브라질·나이지리아도 주목

에너지부문은 지금이 최적기

"신흥시장으로의 달러 자금 유입(push)은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결국 거의 '중단(disruptions)' 수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반면 올해 중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지난 2002년 이후 신흥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 8,000억달러가 본격적으로 유출(pull)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자금들은 미국으로 향할 것입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그룹의 공동창업자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사진)회장은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완화 정책에 힘입어 과거 신흥시장에 들어갔던 투자가들이 더 유망한 지역과 더 높은 성장률을 찾아 자금을 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그는 "미 달러화 유동성이 위축되면 신흥국 신용도와 경제에 따라 거대한 차별화가 진행될 것"이라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처럼 위기가 신흥국 전반으로 전염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루벤스타인 회장은 올해 투자 유망 지역 가운데 하나로 디플레이션 우려에 자산가치가 20%가량 저평가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꼽았다. 또 신흥시장에서는 경제개혁이 가속화하고 있는 브라질, 성장성이 높은 나이지리아 등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가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에너지 부문도 앞으로 5~10년 내에 다시 찾기 힘들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자가 입장에서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은 무엇인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 수출국의 국채나 이들 나라의 석유·천연가스 부문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디폴트 가능성은 베네수엘라가 가장 높지만 가장 큰 위험은 러시아다. 러시아 비금융 기업의 해외부채는 4,5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달러·유로화 발행 채권의 형태로 주로 석유·천연가스 부문에 집중돼 있다. 국제유가가 현 수준에 머문다면 막대한 러시아 부채의 상환 일정이 재조정돼야 한다. 디폴트 이후 러시아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외면당한다면 채무 재조정 협상이 어려워지면서 파장이 글로벌 시장 전체에 미칠 것이다.

-미국 경제의 회복세는 탄탄한데.

△과거 미국 기업들은 현금 축적, 기업 인수 등을 통한 비용절감에 주력했지만 지금은 투자를 통한 기업 가치 창출이 시작되고 있다. 또 미국 화물선적 물량이 지난 3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등 실질적인 최종 수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기업 투자와 수요 증가는 미 경제성장을 가속시킬 것이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언제 올릴 것으로 보는가.

△올해 중반이다. 미국 성장률은 확실한 수준의 모멘텀을 획득할 것이다. 특히 부동산 개발을 가늠할 수 있는 건설 지출이 강하다. 미 노동시장의 회복세가 지속될 경우 정책금리는 조만간 정상보다 지나치게 너무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연준의 조기 긴축이 우려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에 근접하고 실업률이 6% 밑으로 내려갈 때까지 기준금리는 0%에 머물 것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달러 강세 가속화로 미 경제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외환시장의 단기 예측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미 경제회복과 달러화 자산 매입 기대감 등으로 달러화 가치가 오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연준과 미 재무부는 달러 움직임을 면밀히 지켜볼 것이다. 금리인상 속도는 부분적으로 달러 강세의 정도에 달려 있다. 만약 달러가 급격히 오르면 연준은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이다.

-유가 하락이 미 경제에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는 있지만 저물가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저유가는 미 경제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유가 하락으로 가계가 부유해지면서 올해 미국의 소비는 0.5%포인트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반면 에너지 부문에서 현금유입 감소, 외부 금융비용 상승 등의 여파로 관련 투자가 둔화될 것이다. 에너지 부문에 대한 개발·장비대여 등의 관련 투자는 매년 2,500억달러에 이르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산업투자 순증가분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의 투자 감소는 올해 미 GDP의 0.3%포인트를 깎아먹을 것이다.

-에너지 투자 시대는 끝난 것인가.

△유가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고 아마도 당분간 낮은 상태에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다음 5~10년 뒤의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저가 매수의) 투자 적기다. 칼라일그룹은 포트폴리오에서 에너지 부문에 60억~70억달러를 배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렸을 때 신흥시장은 금융위기를 겪었는데.

△지난 4년간 신흥시장은 달러화 유동성의 유입과 유출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이제 투자가들은 더 유망한 지역과 더 높은 성장률을 찾아 신흥시장에서 자금을 빼고 있다. 신흥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은 감소 중이며 결국 '중단'되는 반면 자금유출은 지속될 것이다. 신흥시장 채권금리의 움직임은 미국의 정책금리 전망과 거의 일치한다.

-몇몇 신흥국의 변동성이 커지면 차별화가 진행될지, 위기가 전염될지가 관심사다.

△미 달러화 유동성이 위축될수록 보다 거대한 차별화가 진행될 것이다. 싼 자금(easy money)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위험에 대해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피해 안주(complacency)하려 한다는 점이다. 반면 일부 신흥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시사로) 2013년 5~9월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 발생하자 미 달러화 유동성이 위축되는 사태에 미리 대비하고 있다.

-올해 투자 유망 지역은 어디인가.

△러시아와 남극만 제외하면 투자 기회가 있는 곳은 어디든 가려고 한다. 특히 브라질 정부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정책금리를 11.75%까지 올렸다는 점을 인상 깊게 보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후임 경제팀도 집권 2기를 맞아 재정 및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경기호조의 전조라고 본다. 반면 터키는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기업 부문은 국내 사업에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달러를 들여왔다. 세입과 부채 간 통화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아프리카 프런티어 시장이 각광을 받기도 했는데.

△아프리카는 유가 하락에 따른 통화 약세, 몇몇 나라의 정치적 불안정 등 다양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자 유망 지역으로 본다. 아마도 다음 몇 년간 많은 투자가들이 사하라사막 남쪽 지역으로 몰려갈 것이다. 특히 나이지리아의 미래를 낙관한다(칼라일은 지난해 11월 말 나이지리아 다이아몬드 은행에 1억4,7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유럽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 경제의 성장속도는 느리고 때로는 경기침체 우려를 주고 있다. 유로존 GDP의 40%를 차지하는 이탈리아·프랑스의 성장률은 0%대로 떨어졌고 독일도 1%에 근접하며 낮아지고 있다. 유럽의 문제는 경기순응적인 통화정책을 펴도 실물경제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변두리 소기업의 대출금리가 6%에 이른다면 0%의 정책금리는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유럽 경제는 재정위기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고 점차 치유되고 있다고 본다. 아일랜드·스페인·포르투갈, 심지어 그리스까지 성장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이션과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에 맞서 행동하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유럽 투자가 유망하다는 뜻인가.

△유럽의 신용경색은 우리에게 축복이자 저주이다. 성장이 둔화된 반면 칼라일 같은 투자가에게 자금을 빌리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와 리스크 프리미엄 때문에 유럽 자산 가치가 20% 이상 저평가돼 있다고 본다. ECB의 양적완화로 유로화 표시 현금이 유입되면 디스카운트 비율이 낮아질 것이다. 유로화 가치가 미 달러화 대비 1% 하락할 때마다 유럽의 기업 가치는 수출증가에 힘입어 3.65%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은 어떤가. 시진핑 정부가 경제발전 모델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데.

△중국의 고정투자와 해외 제조업의 상품 수요는 드라마틱하게 둔화되고 있다. 반면 가계소비 증가율이 연간 10% 정도까지 올라가는 데서 보듯 중국인의 소비여력이 강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기존의 투자 중심에서 소비에 초점을 맞춰 구조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톱 라인(Top line·양적 성장)' 경제의 둔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는 더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 더 좋은 방향이다. 또 과도기를 맞아 신용시장 등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중국 정부는 외환보유액 등 문제해결을 위한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어떻게 평가하나.

△아베 신조 정권의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편 작업도 결국 성공할 것으로 본다. 장기적 도전과제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일본 경제가 궁극적으로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가고 다음 5~7년 뒤에 3~3.5%의 명목 GDP 성장률 흐름을 보일 것으로 확신한다. 또 소비세 인상의 여파로 일본 경제가 기술적 침체에 빠졌지만 개인소비가 지난해 3·4분기 연율로 1.5% 성장하면서 회복 중이다. 칼라일도 이전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투자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카터 前대통령 보좌관 출신 재산 절반 사회기부 서약도

■ 루벤스타인 회장은

월가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지난 1997~1981년 지미 카터 행정부 때 백악관 국내정치 담당 부보좌관을 지내다가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자 백악관 근무 시절에 쌓아놓은 금융계 인맥을 바탕으로 사모펀드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정치 인맥이 강한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사무실도 뉴욕이 아닌 워싱턴에 차렸고 1987년에는 윌리엄 콘웨이와 칼라일그룹을 공동 창업했다.

이후 칼라일은 운용자산 2,030억달러, 산하 펀드 270개, 40개국 사무소를 거느린 세계 2위의 사모펀드로 성장했다. 루벤스타인 회장도 30억달러의 부를 쌓았다.

그는 진보 성향인 카터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 때문인지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재산의 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서약했을 정도다. 특히 교육 기회 제공이 빈부격차를 해소시키는 최선의 방안으로 보고 시카고대 2,000만달러, 듀크대 1,000만달러, 하버드대 500만달러 등 교육기관에 기부를 가장 많이 하고 있다. 또 브루킹스연구소 공동회장, 미국외교협회 부회장, 워싱턴 이코노믹클럽 회장 등을 맡으며 왕성한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다.

◇약력 △1949년 미 볼티모어 △1970년 듀크대 우등 졸업 △1973년 시카고대 로스쿨 △1975~1976년 미 상원 사법 소위원회 수석자문 △1977~1981년 카터 행정부 국내정치 담당 부보좌관 △1987년 칼라일 공동 창립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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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빅샷 인터뷰 ②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 ◆


국제관계 및 외교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77)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이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기 시작해야 한다”며 “미국이 한·일 양국에 그런 제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 교수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의 우경화에 깊은 우려를 표명해왔던 인물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퇴행적인 행태라는 비판이었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1930년대의 경향’을 지적했다. 일본 제국주의를 연상케 하는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일 관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나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국·일본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지만 역사 인식과 독도 문제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한국과 일본, 미국 모두에게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 1930년대를 회상하게 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러나 상황을 살펴보면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지난 70년 동안 침략행위자가 아니었다. 1930년대의 사건들을 계속 들춰내는 것은 눈앞에 닥친 21세기의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뒤를 되돌아보기보단 미래를 내다보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만약 북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한·미·일 세 나라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해질 것이다. 미국 역시 한·일 양국에 역사 문제에 집착하는 것을 중단하고 (북한 등) 당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함께 고민하자고 제의해야 한다. 미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북 통일을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언젠가 남북한 통일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는 통일된 한반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그러나 한반도에 인접한 중국과 일본이 남북 통일을 지지하는지는 불분명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남북 통일의) 어려움은 어마어마한 비용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한국 주변국들이 통일을 꺼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 과정은 점진적으로,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물론 돌발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1989년 11월 초에 베를린장벽이 한 달 내에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 통일 과정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뤄질지, 단계적인 절차를 밟게 될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통일 과정에서) 가속화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그렇다면 그 기회를 잡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통일 과정에서 미국이 맡을 역할은 어떤 것인가.

▶미국은 대체적으로 남북 통일을 환영해왔다. 중국은 (남북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국경지역에서의 불안정을 우려할 수 있다. 통일을 바라보는 중국 시각이 미국에 비해 훨씬 더 제한적인 이유다. 미국은 (통일 국면이 전개되면) 실제로 충고와 지원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 독일 통일의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중국이 (한국의 국익과 어긋나는 방식으로) 통일 국면을 이용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 통일은 어디까지나 한국인들에 의해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역할은 이를 지원하고, 남북 통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주변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될 것이다.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북한과의 대화가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대화가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서울과 워싱턴DC 사이를 이간질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한·미 양국이 완전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보조를 함께 맞춰나가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대화의 실익(實益)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과거에 자신이 깨뜨린 것과 똑같은 약속을 되풀이하려고 한다. (대북 대화가 재개되려면) 북한이 진지하게 실질적인 대화를 하려고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뭔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북한이 이미 한 번 판 말(馬)을 두 번 파는 데 능숙하다고들 얘기한다. 북한이 말을 세 번 팔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구축 방안에 대한 평가는.

▶가능한 일이다. 또 한반도에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처럼 매우 불투명한 정권과 신뢰를 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한 정권은 과거에도 합의한 약속을 깨뜨리고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반복해왔다. 따라서 북한이 (신뢰 구축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신뢰는 반드시 검증 가능해야 한다.

조지프 나이 교수는…
‘소프트 파워’ 주창한 세계 100대 사상가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석좌교수는 1937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가정보위원회(NIC) 의장과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등을 역임해 이론뿐 아니라 국제 외교 현실에도 정통하다.

‘소프트 파워 국가론’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소프트 파워란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등 물리적 국력을 뜻하는 ‘하드 파워’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강제보다는 매력을, 명령보다는 자발적 동의를 통해 얻는 국력을 의미한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 9월 나이 교수를 국제관계 전공 학자와 정책 당국자들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꼽았다. 이에 앞서 2011년에는 그를 ‘세계 100대 사상가’ 리스트에 올리면서 “미국 대외 정책을 이해하는 모든 길은 조지프 나이로 통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워싱턴 = 이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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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출경쟁력 지키려면…환율전쟁 손놓고 있어선 안돼

빅샷 인터뷰 ③ 노벨경제학상 수상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다면 추가 금리 인하를 검토해볼 만하다.”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는 기자의 설명에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내놓은 답변이다. 지난해 말 컬럼비아대 교수실에서 만난 스티글리츠 교수는 “현재 원화 환율은 한국 거시경제 펀더멘털이 아닌 다른 나라 통화정책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환율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스티글리츠 교수는 “일본 등 주변 경쟁국들이 금리 인하·추가 양적완화를 통해 자국 통화가치를 앞다퉈 낮추는 경쟁적 환율절하(competitive devaluation)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환율 때문에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또 스티글리츠 교수는 추가 금리 인하 후 사후정책을 주도면밀하게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저금리로 풍부해진 유동성이 비생산적 부분에 흘러들어 가 거품을 키우도록 해서는 안 되고 생산적인 곳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득불평등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는 그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 경제성장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경제가 더 강한 성장을 하는 데 장애물은.

▶미국 경제가 다시 강한 성장궤도로 재진입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전 기록한 장기 성장률과의 격차(갭)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3가지 위협에 직면해 있다.

첫째,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 경제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유럽 경기는 아직도 매우 취약한 상태다. 특히 러시아를 필두로 신흥시장 성장 둔화세가 뚜렷하다.

둘째, 미국 정치 리스크다. 지난 수년간 정치가 미국 경제 발목을 잡아왔다. 특히 올해 공화당이 상하 양원 다수당이 된다는 점이 미국 경제 최대 위협이라고 본다. 공화당은 재정건전성 강화를 금과옥조로 생각해 재정긴축(Austerity)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 경기 활성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 같은 긴축 마인드는 경제에 부담만 줄 뿐이다. 셋째, 소득불평등 때문에 더 강한 경제성장이 안 되고 있다.

?좌파 성향 지식인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명확한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의 발언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소득 불평등이 대거 확대된 2003년부터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전까지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며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인 점에 주목했다. 이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이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연방준비제도가 키운 자산거품 때문이었다. 연준이 주택·증시 거품을 확 키우면서 미국민들이 주식·주택 평가차익을 가지고 실제로 부자가 된 것처럼 소득을 훨씬 넘어서는 무절제한 소비에 나섰다.

거품이 커지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듯 보였지만 과잉소비가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미국 경제 거품이 붕괴됐고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현재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약점은 수요 부족이다. 이 같은 수요 부족은 소득 불평등과 큰 관련이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부의 대부분은 최상위 10%, 특히 1%에 집중됐다. 최상위 부유층 10% 부는 더욱 커졌지만 나머지 90% 부는 그다지 많이 늘어나지 못했다. 미국 국내총생산의 70%를 쥐락펴락하는 가계 소비 대부분은 이들 90%에서 나온다. 그런데 부익부 빈익빈 불평등이 커지면 90%의 소비가 쪼그라들어 총수요가 늘어날 수 없다. 이것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한 처방전은 무엇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 기회 확대, 기업지배구조·독과점 개선 등 소득 불평등 개선을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은 여러 가지다. 나는 특히 양도소득·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리면 소득 불평등 개선과 함께 미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경제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 토지 등 부동산이나 주식 등 금융자산 투자에서 거둔 양도소득·자본이득에 대한 세금을 일반 소득세율보다 훨씬 낮게 가져가는 것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주식 등 금융자산과 부동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계층은 부유층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고소득층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몇몇 억만장자들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게이츠 창업자는 지식재산권을 중요하게 생각해 복제약을 쉽게 제조하도록 하는 것을 반대한다. 게이츠 창업자가 자신의 부를 이용해 질병예방·공중보건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복제약을 쉽게 제조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글로벌 공중보건 개선에 훨씬 더 효율적이다. 억만장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를 쏟아부을 수 있겠지만 이들 소수의 억만장자들이 사회적 이슈와 방향성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안 된다.

■ 스티글리츠 교수는…

1943년생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1967년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26세에 예일대 교수가 됐다. 프린스턴, 스탠퍼드대 교수를 거쳐 클린턴 행정부 때 경제자문위원장(1995~1997), 세계은행 부총재(1997~2000)를 지냈다. 대표적인 케인스학파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시장 자율성을 강조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실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라며 시장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선호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IMF 고금리 긴축 처방에 반대하다가 세계은행 부총재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美연준, 임금 오를 때까지 금리인상 말아야

빅샷 인터뷰 ③ 노벨경제학상 수상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

연준 기준금리 인상 시점에 대해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임금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될 때까지는 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과거 사례를 보면 연준은 고용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근해 임금이 상승하는 임금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날 때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며 “정체상태에 있는 임금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때까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임금 인상 흐름으로 보면 임금인플레이션은 2016년이나 돼야 가시화될 것”이라며 “이때까지 기준금리 인상을 억제하는 게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연준이 내년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개연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연준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그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상당 기간 시장에 예고됐던 만큼 혼란(turmoil)은 제한적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걱정했다. 특히 단기적으로 신흥시장을 필두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더 진행되면 달러부채가 많고 재정적자가 큰 신흥국가부터 외화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아베노믹스로 달러 대비 엔화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돼 미국 수출경쟁력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지만 추가 엔화 약세가 나타나도 미국 정부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함부로 개입하기는 힘들 것으로 봤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연준이 양적완화(QE)를 시행했을 때 브라질 등 신흥국들은 미국 정부가 돈을 풀어 달러가치 하락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미국 정부는 QE가 내수경기 부양 차원이지 달러 평가절하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며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아베노믹스가 경기부양을 위한 조치일 뿐 엔화가치 저하를 노린 게 아니라고 주장하면 미국 정부 입장에서 할 말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스티글리츠 교수는 아베노믹스가 탁월한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아베노믹스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첫 번째 화살인 통화완화 정책과 두 번째 화살인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을 잘해 나가다가 뜬금없이 소비세를 인상하면서 두 번째 화살 방향을 거꾸로 쏴버렸다는 설명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일본 정부가 재정수지 개선이 필요하다면 탄소세(카본택스) 도입을 고려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며 “탄소세 부과가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주장이 많지만 사실 탄소세를 부과하면 기업들이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보다 효율적인 기계·장비를 도입하고 빌딩도 더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등 투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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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 빅샷 인터뷰 ④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


“뉴노멀 붐 모멘텀이 약화되고 있다. 주택·증시·채권 랠리가 마무리 사이클에 접어들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2015 전미경제학회(AEA) 회장으로 선출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지난 수년간 이어져온 미국 주택·증시·채권 랠리를 ‘뉴노멀 붐’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지난해 말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S&P다우지수 월드헤드쿼터에서 만난 실러 교수는 저성장·저금리라는 만성적 질병과 같은 뉴노멀 상황에서 만들어진 인위적 자산 가격 상승 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뉴노멀 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력한 경제 펀더멘털 뒷받침이 없는 뉴노멀 붐은 지속되기 힘들다고 경고했다. 당장 자산 가격이 추락하지는 않더라도 올해 이들 자산 투자에 돈을 집어넣어봤자 저수익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주택 시장은 뚜렷한 약세 국면에 진입하는 등 지루한(boring) 모양새를 띨 것으로 내다봤다.

?주택 거품 붕괴를 계속 경고해왔다.

▶현시점에서 주택 시장이 추락할 가능성은 50% 이하다. 당장 주택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기보다는 절뚝거리면서도 올해 소폭 상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이다. 특히 간과해선 안 될 것이 바로 주택 시장이 뚜렷한 약세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 가격 오름세가 꺾였고 건설업 경기는 완연한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주택 경기 둔화 신호가 나타난다는 것은 시장이 변곡점에 접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주택 경기는 호황의 마지막 사이클에 들어왔다고 본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확률은 절반 이하지만 주택 시장 거품 붕괴 가능성도 남아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움직이면 주택 경기 회복세가 가파르게 둔화될 것 같다.

▶기관투자가들은 일반 주택 소유자들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다. 기관투자가들의 임무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것이다. 주택 가격 하락 조짐이 감지되면 누구보다 빨리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동안 집값 상승폭이 컸던 것은 기관투자가들이 대거 매물을 걷어들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물건을 처분하기 시작하면 주택 가격 하락세가 빨라질 수 있다

?재테크 차원에서 주택보다 주식 투자가 더 낫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집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만족감, 집을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이웃과 교류하고 지역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차원에서 집을 소유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투자 개념으로 접근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의 축적이 목적이라면 집을 사는 것보다는 렌트를 하고 차라리 이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게 더 스마트한 선택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주택에 투자하는 것보다 주식에 투자하는 게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189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S&P종합지수는 매년 평균 2.03%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집값은 매년 평균 0.33%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 100년간 집값 상승에 따른 차익은 실질적으로 제로 수준이었던 셈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가.

▶과거 주택과 주식 투자 상대 수익률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미국 주식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높다는 점이다. 추가 상승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지난 10년간 S&P500지수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지수)이 현재 26~27배 수준이다. 1929년, 1999년, 2007년 단 세 차례만 CAPE지수가 25를 넘어섰다. 그리고 세 번 모두 고점을 찍은 뒤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경험이 있다.

?올해는 주택·주식 모두 큰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인가.

▶최근 수년간 경험한 주식·주택·채권 랠리는 미래에 대한 낙관 속에서 잉태된 게 아니다. 1월 15일께 내가 저술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세 번째 개정판이 출간되는데 여기서 최근 주식·주택·채권 시장 랠리에 대해 뉴노멀 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뉴노멀은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후 저금리·저성장세가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2009년 빌 그로스 핌코 창업자가 제시한 화두다. 뉴노멀 붐은 뉴노멀 시대를 맞아 역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저금리·저성장 흐름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금리가 바닥권으로 추락하면서 풍부해진 유동성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다가 결국 상대적인 고수익을 노리고 주식·주택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자산 가격 상승 붐을 일으켰다. 투자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시작된 붐이라는 얘기다.

또 정보기술(IT)의 눈부신 발전과 인공지능 부상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기보다는 오히려 기계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재테크를 통해 부를 늘려야겠다는 절박함 속에 주식·주택·채권을 사들이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저금리 상황과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산 가격이 올라갔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제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 같은 뉴노멀 붐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실러 교수는…서브프라임 위기 미리 경고해 명성

1946년 디트로이트 출생으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예일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가 된 부동산 거품 붕괴를 2006년에 경고해 명성을 떨쳤다.

미국 대도시 주택 가격 추이를 보여주는 부동산 지표인 S&P케이스·실러지수를 공동 개발하는 등 부동산 전문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2000년 미국 IT 거품 붕괴를 예언한 책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은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UC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와 함께 쓴 ‘야성적 충동’(2009년)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5년 전미경제학회(AEA) 회장으로 선출돼 2일부터 나흘간 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되는 전미경제학회를 주관한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연준, 금리 올리더라도 상징적 수준 그칠듯

◆ 빅샷 인터뷰 ④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최근 일방적으로 미국 경제 낙관론이 확산되는 모양새에 다소 염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올해도 3% 성장률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고 지난 수년간 이어진 저성장 추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실러 교수가 제시한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2.5%에 그쳤다. 실러 교수는 “많은 전문가들이 올해 미국 경제가 3%대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나는 미국 경제에 대해 덜 낙관적(less optimistic)”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 이후 저성장세가 구조화되면서 3% 선 이하 성장세가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가 올해 3% 이하 성장을 하더라도 연준이 올해 중반께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유가에 따른 저인플레이션, 강달러가 촉발시킨 미국 수출 가격 경쟁력 약화 불안감이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이미 연준이 시장에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기 때문에 신뢰 훼손을 막기 위해서라도 2006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은 상징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봤다. 0.25%포인트 정도 금리를 올려봤자 시장에 큰 영향을 주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실러 교수는 “서프라이즈에는 반응하지만 이미 예고된 사안에 대해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게 시장의 특성”이라며 “기준금리를 올리면 오히려 경제에 대한 연준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장이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준금리 인상이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러 교수는“연준의 금리 상승 폭과 속도는 당연히 경제 펀더멘털에 달려 있다”며 “미국의 금리 상승은 매우 느릴 것이고,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진단했다.

미국 주택 시장 회복세 둔화 경고와 함께 실러 교수는 “중국의 경우 주택 가격이 너무 올라 조정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식·주택 시장이 동시다발적으로 큰 폭의 조정을 받을 경우 중국 경제가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실러 교수는 “중국 경제가 그동안 리세션이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다”며 “이 때문에 주택·증시 조정으로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드랜딩) 상황까지 빠져들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로존 몇 개 국가는 이미 디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진단했다. 실러 교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로존 디플레이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미국 연준식 양적완화에 따른 유로화 약세 유도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아베노믹스와 관련해 그는 “소비세 인상 실수만 빼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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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요즘 브뤼셀과 유럽 전역에는 "투자가 경제회복 열쇠를 쥐고 있다"는 주문이 널리 퍼져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새 경제전략 핵심은 앞으로 3년간 투자규모를 3150억유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행위 제안은 투자에 초점을 맞춘 것부터 자본조달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도됐다.

장 클로드 융커 위원장의 새 집행부 출범 이니셔티브로 집행위가 이런 계획을 제시한 건 결코 놀랍지 않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침체에 갇힌 상황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투자라는 구상은 지속가능 회복이 공공 담론으로 깊숙이 자리한 지금 핵심적인 것이 됐다. 이는 투자가 늘수록 자본량과 산출이 늘기 때문에 더 좋다는 가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유럽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EU 당국(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이) 유럽-특히 유로존-은 '투자갭'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7년에 비해 연간 기준으로 4000억유로 더 적다는 게 이 같은 의심을 불렀다. 그러나 비교가 잘못됐다. 2007년에는 신용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러 투자낭비가 심했다. 집행위도 신용 붐 이전을 적정 투자수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고, 이에 따르면 투자갭은 그 절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붐 이전 시기도 지금 유럽 경제에는 좋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변했기 때문이다. 바로 유럽의 인구 흐름이다. 유로존 노동연령대 인구는 2005년까지 늘었지만 2015년부터는 줄게 된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심각한 잠재성장률 하락을 뜻한다. 낮은 성장률은 필요 투자 규모가 작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로존이 붐 이전 수준의 투자율을 유지하면 조만간 경제규모에 비해 자본규모가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뭐? 자본이 많은 건 좋은 거잖아."

그러나 산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이 늘기만 한다는 건 자본수익률이 어느 때보다 낮아지고, 시간이 지나면 은행 부문의 악성채권(NPL)이 사상최대 규모로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유럽의 취약한 은행 시스템을 생각하면 지나친 자본 축적은 EU가 누릴 만한 사치품이 아니다.

다다익선 의문을 제쳐두더라도 융커의 계획이 총투자에 어떤 단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투자 결정 요인에 관한 학술연구에 따르면 투자를 결정짓는 주된 변수는 성장(또는 성장전망)이다. 금리는 대개 그다음으로 고려되는 요소다. 당연히 통화정책은 투자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없다.

사실 시장 신호는 분명하다. 지금 EU 대부분 지역에서 활용가능한 자본이 부족하지는 않다. 여전히 대출이 어려운 유로존 주변부 규모는 유럽 경제에서 4분의 1도 안된다. 따라서 투자가 아직도 부진한 이유가 자금 부족은 아니다.

융커안에 따르면 EU가 조달할 자금 210억유로의 최대 15배에 이르는(3150억유로) 대규모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설득력 없는 계획이다. 유럽 은행권이 보유한 자본은 이미 1조유로를 넘는다. EU 예산으로 보증하는 형태의 210억유로 추가 자금이 은행들의 투자 자본 대출 유인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융커안은 특히 다른 투자보다 대개 더 위험한 사회기간망(인프라 스트럭처) 계획을 타깃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인프라 계획의 위험은 돈 문제가 아니다. 각국별 정치, 규제 장벽이 위험요인이다. 이 문제들은 EU 예산을 통한 보증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간 전력선이 여전히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양국이 독점적 시장을 개방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철도, 도로 건설 계획 역시 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역의 반대 때문에 진행이 더디다. 유럽 인프라 투자의 실질적인 장애물은 이런 것들이다.

대규모 투자는 겉보기에 늘 매력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과 영국은 유로존에 좋은 본보기다. 양국 경기회복 동력은 가계 재무구조 개선에 힘입은 소비 증가였다. 유럽 정책담당자들이 경제회복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투자가 아닌 소비에 집중해야 한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원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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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신흥국, 美 금리인상 충분히 대비… 초대형 충격은 없을 것

저성장 국면 한국, 창조성·신사고 바탕 혁신 나서야

美 회복되고 있지만 금융개혁 미미… 위기 재연될수도

유로존 10년치 GDP 증발… '잃어버린 10년' 가능성

"지난 몇십년간 수렁에 빠진 일본처럼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도 '잃어버린 10년'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유럽의 몇몇 주변부 국가들을 실질적인 스태그네이션(장기침체)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사이먼 존슨(52·사진)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지난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경제에서 10년치 이상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부분이 증발했고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들은 오는 2020년까지도 재정위기 이전의 GDP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그는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월가의 로비에 밀려 금융개혁이 후퇴하고 있어 미래의 어느 순간 금융위기 재발에 따른 경기침체 재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존슨 교수는 내년 중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출구전략 등에 따른 즉각적인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에 대해 "신흥국들이 여기에 대비하고 있어 초대형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성숙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휴대폰 등의 분야에서 보여준 성과처럼 창조성·신사고를 바탕으로 더 혁신적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위기 전문가로서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

△유가하락이 글로벌 경제, 특히 금융 부문에 어떤 위험을 몰고 올지 지켜보고 있다. 유가하락에 따른 러시아의 위기가 다른 지역으로 더 광범위하게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그림자금융(섀도뱅킹)의 파장도 큰 관심거리다.

-미국 경제는 어떤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달러 강세, 저조한 임금 인상률 등 일부 위험요인도 있는데.

△유럽·일본과는 전혀 다르다. 금융위기로 미국의 GDP도 1년치인 14조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대규모 금융 익스포저(위험노출액)와 부채 등 요인 때문에 경기가 침체됐지만 회복되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 등 일각에서 주장하는) 구조적 장기침체(scular stagnation)는 아니다.

-미 경제회복으로 연준이 내년 중반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연준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 성공했다고 평가해야 하나.

△연준은 미 경제를 부양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복세는 아직 느리고 완전하지 않으며 고통스러운 과정을 동반한다. 진짜 걱정거리는 금융규제가 여전히 느슨하다는 점이다. 과거 대형 금융 리스크는 심각한 실물경제 침체를 초래했다. 금융기관 부채비율 등의 측면에서는 다소 개선됐지만 충분하지 않다. 금융 리스크가 다시 쌓이면서 미래의 어느 순간 금융위기와 경제침체 재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2003~2004년 1%라는 저금리를 유지하는 바람에 거품이 커져 2008년 금융위기를 불렀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도 6년째 제로금리인데 통화정책 실패를 재연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가.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금융안정성이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보려는 것은 위험하다. 또 중앙은행은 위기 때마다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맡아왔다. 다음에 직면할 문제 가운데 하나는 중앙은행의 정통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금융 시스템 보호를 위한 개혁에서 멀어지는 매우 위험한 경로에 있다. 은행 로비스트들은 아직도 정치권을 이용해 금융규제를 희석하고 있다. 만약 중앙은행이 신뢰성을 잃어버리면 다음 위기 때 정책대응에서 큰 구멍이 생길 것이다.

-한국에서는 제조업에 비해 경쟁력을 떨어지는 금융산업을 대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모든 국가에는 금융산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채는 막대하고 자산은 많지 않은, 지나치게 레버리지가 높은 은행은 무시무시한 위험에 빠질 수 있고 실물경제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이는 지난 10년간 미국과 서유럽 양쪽의 경험이다. 자산건전성 등을 비롯해 금융 부문은 대단히 주의 깊게 관리돼야 한다.

-최근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다. 연준의 긴축정책도 가시권에 들었는데 신흥국 동반위기의 가능성이 있는가.

△역사는 대부분 정확히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희망적이게도 신흥시장 정책당국자들은 조만간 미국 기준금리가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준비할 시간을 가졌다. 또 이전의 금융위기 경험 때문에 몇몇 신흥국들은 (달러라는) '쿨에이드(음료수의 일종)'를 마시지 않았다. 그들은 핫머니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재빨리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소 어려움은 있겠지만 지나치게 큰 난관 없이 기준금리 인상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부채가 많은 국가와 기업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유로존은 매우 비관적으로 전망했는데.

△매우 취약한 금융 부문이 ?适맛?경제회복세를 약화시킬 것이다. 긴축·성장 등에 대한 최선의 방안을 놓고 주요국 간의 심각한 의견 불일치가 지속될 것이다. 유로존의 문제점은 유로존 시스템 그 자체에서 출발한다. 단일통화가 유지되려면 그리스 같은 주변부 국가들이 독일 수준의 생산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와 독일 간의 생산성 격차는 지난 10년간 더 확대됐다. 구조개혁은 듣기는 좋지만 효과를 발휘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유로존은 점점 더 깊은 위기로 빠져들고 있고 재정 등이 완전히 통합되지 않는 한 결국 붕괴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액 등 대단히 많은 정책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이들 위험 요인이 앞으로 악화되고 일정 기간 성장둔화가 계속되더라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중국은 2009년 실시한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 인프라 건설 등에서 신용거품이 발생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림자금융이며 신용증가 둔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와 비슷한 양상이다. 만약 중국이 리먼브러더스 위기 같은 사태를 피한다면 심각한 침체는 면할 것이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궁극적으로 성공할 것으로 보는가.

△일본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라는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공공부채는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지금까지 나온 지표로는 큰 변화를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구조개혁 없이 통화·재정정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화 국제화가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 많은데.

△앞으로 몇년 내 위안화가 주요 중앙은행들의 보유통화가 되지는 않겠지만 점차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워싱턴의 글로벌 리더십이나 전망 부재가 우려되는 사항이다. 미국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 역시 중요한 전략적 결함 요인이다.

-한국 역시 빈부격차가 심화하면서 분배 욕구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의 어젠다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성장의 혜택을 더 광범위하게 공유할 수 있는 방안에 합의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고등교육 확대 등으로 이 문제에 대해 큰 성공을 거둔 국가 중 하다. 또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국 경제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넛크래커'로 전락했고 고령화·가계부채 등 위험요인 때문에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컴퓨터·휴대폰 등과 관련된 모든 제품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신기술을 발전시켜왔다고 본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에 기반을 두고 더 혁신적이 돼야 한다. 지난 50년간의 한국 인적자본 개선은 경탄할 만하고 세계에 가장 인상적인 성공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창조성·신사고 등을 더 촉진해야 한다고 본다.

He is

△1963년 영국 셰필드 △옥스퍼드대 졸업, MIT 경제학박사 △2001~2002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자문위원 △2007~2008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2006~2007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객원 연구위원 △2004~ MIT 경영대학원 교수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지낸 글로벌 경제·금융 전문가

■ 사이먼 존슨 교수는

사이먼 존슨 교수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글로벌 경제·금융 전문가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워싱턴DC의 유명 싱크탱크인 피터슨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이기도 하다. 아울러 미 의회예산국(CBO)의 경제자문 패널,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산하의 시스템해결자문위원회의 위원, 재무무 산하의 금융연구자문위원회의 위원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저서 '위험한 은행'은 미 금융의 역사를 민주주의와 거대 금융 간 대결의 맥락에서 분석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국 재정정책을 다룬 '불타는 백악관'도 정치적 스펙트럼을 떠나 찬사를 받았다. 또 그는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프로젝트신디케이트 등에 지난 5년간 300여편의 비중 있는 원고를 기고했다. 경제 관련 기고인데도 페이지뷰가 최대 100만건이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월가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금융기관 소형화를 주장해 2013년 중소형 은행으로 이뤄진 미국독립은행연합회(ICBA)로부터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의 영웅'으로 지명됐다. 부인이 한국계 미국인이며 1997~1998년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크다.

/대담=최형욱 뉴욕 특파원

사진제공=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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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CNBC 방송화면

신년 특별 인터뷰 - 앨런 크루거 美 프린스턴大 교수

"의료·교육 생산성 높여야 성장 지속"

글로벌 경제, 금융위기후 대침체서 완전히 회복 못해

유럽도 양적완화 나서야


[ 프린스턴=장진모 기자 ]

“글로벌 경제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공포를 해소하려면 중앙은행을 비롯한 정책 당국이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시행해 수요를 진작시켜야 할 뿐 아니라 구조 개혁 등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합니다.”

2013년까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29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강하게 회복하고 있지만 유럽 일본 등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는 아직 금융위기 이후의 ‘대침체(Great Recession)’에서 회복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크루거 교수는 올해 중반 이후로 예상되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과 관련해 “상당수 신흥국이 대비하고 있는 만큼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가 지난 3분기 5%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했지만 2분기와 3분기 연속 높은 성장세를 보인 것은 소비가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정체됐던 임금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소비 여력이 늘어나고,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결과로 보입니다. 유가 하락이 소비심리를 더욱 북돋울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 독주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고전 중인 유럽과 대조적입니다.

“미국은 2008년 말 금융위기 당시 다른 나라들보다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처했습니다. 은행의 자본 확충과 대형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 도입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빨리 정상화했습니다. 5년 이상 지속한 Fed의 양적 완화와 제로 금리 정책,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뒷받침됐습니다. 이런 일관된 경기부양 노력이 수요를 진작하면서 경제를 다시 회복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은 행동이 느렸고, 지금도 금융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은행 통합(banking union)’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Fed의 금리 인상이 빨라질까요.

“미국은 소비지출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고 기업 투자도 회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용시장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습니다. 7~8%를 웃돌던 실업률이 5.8%로 떨어졌습니다. 다만 고용시장이 Fed의 기대 수준, 즉 완전 고용 상태에 진입한 것은 아닙니다. 물가상승률 역시 Fed 목표치인 2% 아래에 머물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물가상승률이 2%를 웃돌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가 나올 때까지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Fed의 금리 인상이 신흥국에 큰 충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있습니다.

“2013년 6월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테이퍼링(양적 완화의 점진적인 축소)을 언급했을 때 세계 주요 증시와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락했는데 시장이 과잉반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신흥국들이 Fed의 금리 인상에 충분히 대비태세를 갖췄다고 판단합니다. 외환보유액을 늘렸고 경상수지 적자를 줄였습니다. 지난해 양적 완화가 종료됐을 때 큰 혼란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Fed가 금리 인상에 나서면 신흥국이 단기적으로 충격을 받겠지만 곧 복원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을 빼면 올해 글로벌 경제 전망은 어두운 편입니다.

“세계 경제는 아직도 금융위기 이후의 ‘대침체’에서 회복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유럽의 재정위기와 금융위기는 여전히 심각한 위협으로 남아 있고, 중국의 성장 둔화 역시 아시아 지역과 호주 등 몇몇 국가에 리스크로 작용할 것입니다.”

▷유럽과 일본은 디플레 우려가 큽니다.

“디플레이션이 글로벌 경제의 리스크인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수요를 진작하고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이 사용한 전면적인 양적 완화를 시행해야 합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 우려는 더 심각하고 뿌리 깊다는 게 문제입니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돈만 푼다고 되는 게 아니라 구조 개혁 등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은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6·25전쟁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빠르게 중진국에서 고소득 국가로 이동한 사례가 없습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하려면 이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경제 모델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조업 외에도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 둔화로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한국은 더 이상 중진국이 아닙니다. 기술적으로 새 분야를 개척하면서 선진국에 바짝 다가섰다고 판단됩니다.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의료 교육 등 서비스 분야를 더 개방해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유가 급락이 글로벌 경제에 큰 파문을 낳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원유 수입국은 유가 하락으로 경제적 혜택을 볼 것입니다. 에너지 업체 등은 타격을 받겠지만 국가경제 전체로는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 하락이 글로벌 경제 전체에 플러스가 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물론 원유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러시아나 베네수엘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이에 따른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봅니다.”

▷긍정적인 효과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일례로 미국과 쿠바가 50년 이상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에 나서기로 한 데는 쿠바의 후원자 역할을 해온 베네수엘라의 경제 악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관계, 중동지역의 이슬람국가(IS) 격퇴 전쟁, 에볼라 파장 등 지정학적 리스크는 어떻게 보십니까.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들 지정학적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질 고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데다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관계, 중동 정세 불안에도 유가는 되레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일자리 창출을 통해 중산층을 회복시키겠다는 ‘오바마노믹스’는 성공했다고 봅니까. 빈부격차가 오히려 커졌다는 통계가 많습니다.

“2007년 말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었습니다. 대량 실업으로 가계 소득 감소, 임금 하락 또는 정체가 오랫동안 지속됐죠. 다행히 경기가 회복돼 지난해부터 임금이 서서히 오르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대침체’에서 구하고, 건강보험 개혁(오바마케어) 등을 통해 중산층의 경제 안전망을 높인 지도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일각에선 미국 경제의 잠재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경제가 지속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낡은 도로와 공항 등 사회 기반시설 투자를 확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 투자가 더 살아납니다. 또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교육 투자를 확대해야 합니다.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의회 차원에서 포괄적인 이민 개혁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대기업의 세금 회피를 위한 인수합병(M&A)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비애국적’이라고 비난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의 세금 제도는 최악입니다. 법인세율(35%)은 선진국 최고 수준이고, 평균 세율은 낮은 아주 기형적 구조입니다. 애국적이냐 비애국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낡은 세제가 너무 오래 방치돼 비롯된 문제입니다.”

■ 앨런 크루거는…

오바마의 경제 가정교사…백악관 경제자문 역임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인 ‘경제 가정교사’로 꼽힌다. 2011년 11월부터 2013년 8월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 살리기를 키워드로 삼고 있는 ‘오바마노믹스’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초기 재무부 경제정책담당 차관보로 일했다.

약력 △미국 뉴저지주 출생(54) △코넬대 경제학과 졸업(1983년)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1987년) △미국 노동부 수석이코노미스트(1994~1995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2011~2013년) △프린스턴대 교수(1987년~)

프린스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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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진 파마 美 시카고대 교수 인터뷰]

서구식 복지制 지속 불가능… 재정 고갈로 연금 무너지면 다른 사회안전망도 '도미노'

市場은 늘 합리적으로 행동… 정부의 시장개입 도움 안돼


"2015년 세계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위험 요소)는 정부가 지금 수준으로 복지 약속을 남발하는 것이다."

2013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유진 파마(76) 시카고대 교수는 서구사회의 '지속 불가능한 복지제도'를 2015년의 가장 위험한 불안 요소라고 지적했다.

선진 민주주의·자본주의사회일수록 복지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다 재정(財政)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위기 이후 7년이나 지났지만 경기 회복이 더딘 이유는 각국 중앙은행의 지나친 개입 때문이란 의견도 제시했다. 시장(市場)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행동한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의 창시자인 파마 교수는 지난 성탄절 연휴 본지 인터뷰에서 올해 세계경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지속 불가능한 복지

파마 교수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본지 인터뷰에서는 "새해 가장 큰 리스크는 지속 불가능한 복지"라고 경고했다. 고령 은퇴 인구가 늘어나고 그 사람들을 부양할 노동인구는 줄어드는데,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것을 약속하는 서구식 복지제도를 현행처럼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파마 교수는 "서구 선진국일수록 국가총생산의 큰 비중을 복지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는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재정을 고갈시킨다"면서 가장 먼저 연금제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금이 무너지면 곧이어 의료보험, 실업수당, 빈곤기금 등 다른 사회안전망도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라며 복지제도를 현세대 인구구조에 맞게 고치고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복지를 약속해주는 관행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의 시장개입, 경기 회복에 도움 안 돼

파마 교수는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계속되는 한, 2015년에도 세계 경기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기 회복이란 명분을 내세워 시장에 개입했는데 실제로 이런 조치들이 경기 회복을 도왔다는 통계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지난 200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14차례 금융 위기와 비교했을 때 최근의 회복세는 역사상 가장 느린 편"이라며 "시장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놔뒀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채를 사들여 돈을 푸는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서도 "단기 부채를 내서 장기 부채를 막는 짓"이라며 "양적 완화의 효과 또한 통계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고 말했다.

파마 교수는 대공황 당시 자기자본비율이 15% 이상이었던 월가(街) 은행들은 파산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향후 금융 위기에 대비해 시중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을 20~25%로 높이는 정책을 제안했다.

파마 교수는 금융 위기가 버블에 의해 초래됐다는 주장에 대해 "버블이 존재했다는 통계학적 근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값싼 주택을 공급하려 했던 미 정부의 정책 실패"라며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안 좋은 선례만 남긴 경험"이라고 말했다. 당시 은행들이 파산하게 놔뒀어야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파마 교수는 "시장은 2주 안에 좋은 자산과 나쁜 자산을 구분해내고 스스로 복구했을 것"이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정부 개입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금융 위기에 가장 잘 대응한 나라 중 하나"라고 평가했지만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인 만큼 한국도 비슷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했다.

파마 교수는 자신의 모든 투자 자산을 인덱스 펀드에만 넣는다고 했다. 단기적으로 시장을 예측해 남들과 다른 추가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므로 주가지수에 따라 장기 수익을 낼 수 있는 인덱스 펀드가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유진 파마(Eugene Fama·76) 美 시카고대 교수는

시장은 그 자체로 효율적이며 개인 투자자는 절대로 주가를 예측할 수 없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을 정립·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에 로버트 실러·라스 피터 핸슨 등과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밀턴 프리드먼, 머튼 밀러 같은 시카고학파 거두들의 지도를 받아 시카고학파의 적통(嫡統)으로 꼽힌다. 미 터프츠대 경제학과를 나와 시장자율주의의 총 본산인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63년부터 재직해왔다. 효율적 시장이론은 '자본시장에서 책정된 가격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충분히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가설로 이에 따르면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필요없는 일이다.

[박승혁 기자]


조선일보

"자산가격 연구 발전에 기여"

유진 파마와 로버트 실러교수의 2013년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은 경제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은 서로 상반되는 이론으로 때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파마 교수는 시장의 자산가격에는 모든 가용 정보가 반영돼 있어 단기적으로 주식 가격을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는 '효율적 시장가설'을 주장했다. 반면 실러 교수는 행태경제학의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자산가격은 예측 가능하다는 주장을 1980년대 초에 발표했다. 가격에는 비(非)이성적이긴 하지만 반복되는 인간 행동의 패턴이 반영돼 있어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파마 교수와 실러 교수의 이론이 치열하게 부딪쳤지만, 자산가격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는 데 두 사람이 크게 기여했다며 공동 수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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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동아일보]
[2015 격랑의 한반도/세계 석학에게 듣는다]<상>中 대표적 현실주의 학자 옌쉐퉁 칭화대 교수

 


《 “중국과 북한 관계는 한국전쟁을 치를 때 등 과거에는 동맹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북한이 동맹국으로서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북한이 사실상 파기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의 중조(中朝·북-중 관계의 중국식 표현) 관계를 보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칭화(淸華)대 당대국제관계연구원 원장 옌쉐퉁(閻學通) 교수는 지난해 12월 1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옌 교수는 “한국의 많은 분석가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은 시각 때문에 중-북 관계를 이해하는 데 모순과 혼란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조가 동맹 관계인데 어째서 장기간 양국 고위층이 만나지 않는가. 중한 관계가 어떻게 중조 관계보다 더 좋아 보이는가. 중국은 북한의 맹우(盟友)여서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왜 양국 고위층이 대화도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런 혼란의 단면을 짚었다. 》

옌쉐퉁 칭화대 교수 약력

○1952년 톈진 출생

○1982년
헤이룽장대 영어과 졸업

○1986년
현대국제관계학원 석사

○199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박사

○1982∼2000년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와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소속 연구원 주임 등으로 근무

○주요 저서=‘중국 국가이익 분석’(1996년), ‘미국 패권과 중국 안보’(2000년), ‘중국 굴기와 그 전략’(2005년), ‘역사의 관성-미래 10년의 중국과 세계’(2013년) 등

옌쉐퉁 중국 칭화대 당대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은 현실에서의 북-중 관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옌 교수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군사적 행동을 할 때도 중국의 의견을 구하지 않는다”며 “북한이 조약상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양국 간 동맹 조약은 사실상 폐기됐다”고 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옌 교수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지난해 정례 브리핑에서 이미 중북 관계는 정상 국가 관계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현실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에 의존해서 보고 있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중국도 동맹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1950년대 중반에는 중국과 옛 소련도 동맹국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최근 북-중 관계에 변화가 온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조 간 동맹상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북한은 어떤 군사적 행동을 할 때도 중국의 의견을 구하지 않는다. 북한이 조약상의 어떤 약속도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양국 간 동맹 조약은 사실상 이미 폐기된 것이다. 북한의 어떤 군사행동도 중국과 상의하지 않는다.”

1961년 체결된 ‘중조우호합작조약’은 양측이 폐기를 공식 제기하지 않아 2021년까지 자동 연장된다. 옌 교수의 설명은 법적으로라기보다 실효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북한에 용인할 수 없는 ‘레드 라인’은 무엇인가.

“중국이라고 다른 기준이 있는 것 아니다.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중국의 대북 정책은 국제사회와 같다.”

?지난해 11월 18일 유엔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중국은 반대했다.

“그런 방법이 지역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100여 개 국가가 반대해도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지지구 공습을 지지했다. 미국 역시 공습 반대는 중동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국은 자연히 자신만의 견해가 있다. 중국이 이렇게 하는 것(북한 인권 결의안 반대)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과거 한중 간 동맹 관계 설정 가능성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한미가 동맹인데 한중 동맹이라는 두 가지 병립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중소 국가들은 국제관계의 권력 이동의 지형을 잘 살펴야 한다. 권력 이동 과정 중 최대의 이익을 가져올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양대 강대국에 동시에 의존한 사례가 있다. 고려가 요나라 및 북송과 각각 동맹 관계를 수립했다. 조선왕조는 후금(청나라) 및 명나라와 동맹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역사가들은 이 같은 주변 양대 강국과 동시에 관계를 맺은 것을 ‘양단(兩端) 외교’라고 부른다.”

옌 교수는 지난해 4월 한 세미나에서 중한 양국이 ‘공동의 안보 이익’을 앞세워 동맹을 맺어야 할 이유로 우경화하는 일본과 북한 핵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를 꼽았다. 옌 교수를 칭화대 밍자이(明齋)에서 만난 날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다음 날이었다.

?중일 관계 개선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닌가.

“아베 총리의 선거 승리는 집권 기간이 길어지고 평화헌법 개정이 추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매우 큰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국민들을 믿게 하고 중국 한국 러시아 등과 대항적인 자세를 지속하면서 헌법 9조 삭제도 추진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아베 총리의 우경화나 군사대국화를 지지하는 일본 국민은 소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제 이런 생각도 바꿔야 하지 않는지….


“아베 총리의 우경화 정책은 비교적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헌법 개정, 특히 9조 개정 또는 삭제는 일본 내에서도 이견이 있고 지지율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일본 분위기로 보면 헌법 개정과 9조의 폐기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한국 중국 등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텐데….

“헌법 개정이 이뤄지면 중국 한국과의 관계가 내리막길로 가고,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가 포함되면 더욱더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탈 것이다.”

?2015년 러시아와 공동으로 전승 70주년 기념식을 갖기로 한 것은 일본과의 대립을 부추길 우려가 있지 않은가.


“일본의 우경화가 지역 평화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은 전승 70주년 기념식을 통해 일본의 우경화가 지역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경각심을 국제사회에 주기 위한 것이지, 특정국과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중국은 미국 한국 일본 등 가급적 많은 국가가 전승기념식에 참가하길 바란다. 일본이 참가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범죄를 인정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뜻이다.”

?2015년 중일 관계가 개선될 전망은 없는가.


“아베 총리가 집권하는 한 양국 관계가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아베 총리는 고의로 중국과 대항하려는 정책을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베이징(北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총회에서 아베 총리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만나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자국 국민들에게 자신이 강한 외교수단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이 정상회담을 하지 않기를 원했지만 결국은 받아들이도록 했다며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아베 총리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옌 교수의 이런 평가는 당시 아베 총리가 홀대를 받았다는 평가가 일본에서 나왔던 것과는 다른 해석이다.

?새해에는 한중일 3국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3국 간 정치적 관계가 좋아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경제적 협력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3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 올해 3국 관계의 키워드는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거운 ‘정랭경열(政冷經熱)’이 될 것 같다”

?당신은 중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라고 불린다.

“그렇지 않다. 신보수주의자는 오직 미국에만 있다. 한국 영국 일본 어디에도 없다. 서방에서 나를 신보수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내가 주창하는 외교정책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이 보다 연약하기를 바란다. 중국이 독자적 행동을 하기보다 서방과 보조를 맞춰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반대한다. 나는 호주 국립대 장펑(張峰) 교수가 제기한 ‘도의(道義) 현실주의(moral realism)’를 주창한다. 이는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려면 서구식 현실주의 이론의 ‘실력’만이 아니라 ‘정치지도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옌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중국이 ‘실력’은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하지만 ‘지도력’을 갖춰 가고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3년 출판한 저서 ‘역사의 관성-미래 10년의 중국과 세계’에는 중국이 10년 안에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보인다.

“책 어디에도 미국을 추월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중국도 초강대국이 된다고 했다. 이는 중국의 실력이 미국을 추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때 소련도 초강대국이었지만 미국을 추월하지는 못했다. 중국이 10년 안에 초강대국이 되지만 실력은 여전히 미국만 못할 것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다만 미국은 냉전이 끝났을 때와 같은 주도권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과의 갈등이나 충돌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어가는 중에 중미 간 갈등이 점차 증가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전쟁이 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는 양국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글로벌화에 따라 양국이 서로 의존하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중국이 10년 안에 어떤 군사적 충돌에 개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중미 간 직접적인 전쟁은 아닐 것이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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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특별 대담] 중화제국 부활과 동아시아 안보
포머랜츠 미 시카고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케네스 포머랜츠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연세대 상남경영관에서 <한겨레> 새해 특별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올해는 2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멈춘 지 70년이 되는 해다. 한국 입장에선 해방이라는 환회와 분단의 질곡이 동시에 주어진 지 7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 70년동안 오롯이 미국의 영향권 안에 갇혀있던 한국은, 중국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 흐름 속에서 한층 복잡하고 까다로운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고 있다.

<한겨레>는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 신한석좌 강좌 초청프로그램으로 방한한 세계적인 중국역사 권위자 케네스 포머란츠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특별 대담을 마련해, ‘중화제국’ 부활의 의미와 전망, 이에 대한 한국의 선택지 등을 들어봤다. 대담은 지난 7일 연세대 상남경영원에서 진행됐다.

중국은 급속한 발전 이후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나서…
과도한 과거로 회귀는
주변국 입장에서 당혹스럽다

‘굴욕의 세기’ 150년의 상처를
중국정부가 계속 들춰내고 있다
외부세계가 고통 준 건 맞지만
안좋은 방식으로 분노 상기시켜


박명림(이하 박) 2015년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즉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인 동시에, 한국의 해방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다. 세계와 한국민들에겐 특별한 해이다. 이를 맞아, 동아시아의 지난 70년을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전망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얘기로부터 풀어가자. 최근 들어 특히 중국의 부상은 눈부시다. 나의 경우 한국인으로서 중국 바로 옆 나라에 살기 때문에 중국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중국학자로서 당신은 먼 미국에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일찍부터 중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포머란츠(이하 포) 좋은 중국 관련 강의 덕분이었다. 동시에 1980년대에는 미·중 관계 정상화로 중국이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개방됐다. 중국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 통합된 국가와 도시가 있어 내가 나고 자란 서구와 달라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가 산업화 시기라고 일컫는 100~200년은 달리 말하면 전세계 소작농 사회의 붕괴가 일어난 시기였다. 하지만 당대 중국은 달라보였다. ‘근대적인 동시에 지방적·토착적인’ 시도가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진 다른 이유는 비교학문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중국에 대한 천착은 비교연구에 대한 나의 관심과 일치했다.

사실 80년대는 일본이 세계2위 경제대국으로 동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일본이 아닌 중국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내겐 그 점이 참 특이하게 다가왔다. 당시 많은 내 서양학자들은 일본을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중국학 교수들을 만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별히 중국 지방의 모습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나를 사로잡았다. 일본 역사를 배우기도 했는데 중국처럼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다. 또 중국이 아직 미개척 영역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당신을 포함한 캘리포니아 학파들은 세계학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중국에 대한 접근이나 세계사를 보는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 같았다. 동양과 서양, 유럽과 중국을 대등하면서도 균형적이고, 비교적이면서도 상호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결코 쉽지않은 역동적 균형주의 시각이 상당히 놀라웠다. 국제질서 및 전쟁과 평화를 공부하는 나 역시 당신과 같은 방법적 균형을 추구하다보니 더 깊은 공감을 갖게 되었다.

맞다. 캘리포니아 학파라고 불리는 우리는 균형적인 비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왜 이곳(동양)은 저곳(서양)이 한 일을 못했나?’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쌍방향으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농업이 발달하고 성숙한 시장, 분명한 소유관계를 가진 상업화된 지역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런 곳이 언제나 ‘산업혁명’을 이룬 건 아니다.

이렇게 질문을 해보면 달리 접근할 수 있는 게 많다. 유럽 근대국가 건설 초기에는 군대와 도시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지에 대해 큰 힘을 쏟았다. 변방은 기본적으로 농수산물 공급처로 취급되거나 아예 무시되었다. 유럽중심주의에 갇혀 있으면 그게 정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방문제를 해결해나간 중국의 후기 제국을 들여다보면 외려 유럽이 크게 이상하게 다가온다. 왜 엄청난 규모의 식료품을 이동시킬 능력을 가진 발달된 국가들이 지방의 고통은 정책적으로 외면했는가? 즉 유럽이 특이하게 보인다.

우리가 기여한 이런 접근법이 곧바로 유럽중심주의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그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갈 수는 있다고 본다.

쌍방향 접근이라는 말이 깊이 와 닿는다. 나는 두 가지 강박관념을 벗어나는 것이 결국 보편적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것이 최고다”와 “너희 좋은 것이, 우리도 있다”는 오류를 벗어나는 것이 보편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당신의 중국서술은 패러다임 융합이자 전환이며, 좁은 의미의 역사분과나 역사기술을 넘어선다. 서술 단위와 수준도 세계와 지역, 국가와 경제, 인구와 생태 등 서로 다른 범주의 것들을 매우 조화롭게 접근했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의 저작들이 끼친 영향이 엄청 컸다. 그에게 깊은 영감을 받았다. 어떤 학자는 “동서의 차이는 너무 근본적”이라고 말한다. 즉 “서양에는 자율성이 있었고 동양사회는 전제정치 아래에서 자율성이 없었다”는 거다. 그게 사실이라면 동서양 논의는 시작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난 것이다. 실증적으로도 잘못됐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유럽과 중국의 격차는 훨씬 전에 벌어졌어야 했다.

‘1750년이라고 가정하고 농업이 굉장히 발달했지만 낙후한 공업 사회와, 농업이 낙후한 대신 광업이 발달한 사회 중 어디서 살겠느냐’고 묻는다면 모두 농업이 발달한 곳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100년 뒤 광업, 특히 석탄 채굴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몰랐다. 그런 차이가 특정한 순간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를테면 중국과 유럽은 ‘영토 개척’을 다르게 접근했다. 그 결과 유럽은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런 우발적인 차이가 역사에서는 결정적이게 된다. 역사가가 하는 일은 그냥 놔뒀을 때 의미 없을 수 있었던 순간들을 결합해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라고 본다.

당신의 연구는, 동서를 비교하는 동시에 연결해서 보고, 나아가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와 지구사로 통합해내었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중국사를 변방사가 아니라 세계사로 해석해내는 데 독보적이었다.

중국을 세계사로 편입하고 싶었다. 과거에는 항상 서양적 관점에서 말하고 다른 곳도 이에 해당하는지 끼워 맞춰 봐야 했다. 유럽 역사를 말할 때는 유럽 외에 다른 어떤 곳도 말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거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유럽의 산업화도 세계와 상호관계를 이루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유럽의 과학혁명의 기본을 따져보면 천문학에서 나왔다. 서양은 처음에 그리스 과학이 있었지만 중세에 사라졌고, 아랍세계가 이어온 것을 유럽이 가져와서 발전시켰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다른 견해는 아랍세계가 단순히 천문학을 전해준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단계의 천문학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즉 아랍세계의 발전된 천문학 없이는 유럽이 이룩한 과학혁명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제 현재의 중국을 말하자. 최근 중국은 세계에서, 그리고 중국 역사에 비추어보아도 가장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뤘다. 동시에 세계 무역과 경제의 중심으로 급속하게 부상했다. 이 세력전이는 세기적 지역적 변화를 넘어 지역적이며 문명사적인 동시에 인류사적이다. 30년 전 중국이 이렇게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나?

아니다. 30년 뒤 중국이 눈에 띄게 발전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좋고, 어떤 측면에서는 나쁘다. 우선, 중국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성장을 볼 때, 당시만 해도 현저한 불평등의 증가 없이도 급격한 성장이 가능해보였다. 그런 사실에 굉장히 고무됐다. 또 급격한 성장이 지방 사회의 심각한 붕괴없이 진행됐다. 성장의 많은 부분이 지방에 존재했다.

최근 20여년 성장은 더 빨라졌다. 대체로 많은 부분에서 좋은 변화였다. 하지만 불평등이 심각해졌고, 일부 지방의 황폐화도 충격적이다. 중국 어린이 5명 중 1명은 부모와 떨어져 지낸다. 그들은 대개 춘절(설날)에만 부모와 만난다고 한다. 인간적 비극이다. 그게 변화와 발전을 만들기 위해 치러야하는 값이라면 너무 큰 비용이다. 환경이라는 큰 문제도 있다. 이 부분은 30년 전에도 예상 가능했지만, 그때는 누구도 기후변화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세계적으로 큰 문제인데, 기후변화의 경우는 한번 일어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중국의 성장 동력을 찾는 문제는 복잡하다. 학자들은 국가의 발전전략, 노동통제, 저임금과 양질의 노동력, 유교문화 등을 들고 있다.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작용했다고 본다. 물론 값싼 노동력은 중요했다. 하지만 가난한 국가들은 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다. 중국이 달랐던 점은 값싼 노동력이 문맹자들이 아니라 상당한 사회적 성취욕이 있었으며 건강한 의식이 있었다는 데 있다. 만일 저임금 노동자가 산업 규율에 못 미친다면 그 노동력은 싼 게 아니다. 중국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열심히 일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으며, 중국은 마오주의 기간 이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국가적 비용을 들였다.

또한 가난한 농민들과 지방관리들을 위한 정책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덩샤오핑은 지방정부가 산업성장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재정시스템을 마련하려고 했다. 동시에 지방정부들이 농업에서 챙길 수 이익에 대해선 엄격한 제한을 두려했다. 우연이기에는 엄청나게 기발한 우연이었다. 왜냐하면 농업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제한하면서 지방관리들에게 산업을 키웠을 때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는 유인 방식은 지방관리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서구의 노동운동 약화라는 세계 경제의 특정한 국면에 일어났다. 그래서 중국제품들이 서구노동자들의 큰 저항에 부딪치지 않고 서구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나아가 해외에서 성공한 중국인들이 다시 고국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이 중국의 부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설명해주지만, 그것이 왜 계속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나도 일부만 이해할 수 있는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다. 삐끗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지만 대체로 성공했다.

케네스 포머랜츠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한겨레> 새해 특별대담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국에 중국은 제1 교역국
미국은 제1 안보동맹국이다
경제를 버릴 수도 없고
안보를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니…

100개국에 군기지 보유한 미국
소프트파워 여전히 막강
중국은 분명 G2 맞지만
미국과 동등한 G2는 아니다


방금 말한 대로 사회주의 붕괴 이후 시장의 세계화와 노동운동의 전세계적 약화가 매우 중요했다고 본다.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안정과 결합된 온건한 경제개혁이 장기적인 고도성장의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경영권을 개혁하기 전에 시장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포스트 소비에트 경제권에서는 바로 국영기업들을 팔아버렸다.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고 시장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없었다. 아무도 그 가치가 얼마인지 모르는 환경에서 국영기업을 팔아먹는 것은 대실패를 불러올 수 있다. 실제 포스트 소비에트 체제에서 이런 국가기업을 사고 싶어 하는 유일한 그룹은 이 기업들을 전에 경영하던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그 자산가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내부자 가격으로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관리들이 새 경영자가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중국에서는 사적 소유화 이전에 시장화를 이뤘기 때문에 점진적인 변화가 가능했다. 그래서 여러 자산을 팔기 시작했을 즈음엔 부패에 대한 점검이 이뤄졌다. 국영기업의 가치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있었고, 기업을 경영해온 사람들 이외에 전문가들이 충분히 있었다. 점진적일 수 있었던 게 큰 차이를 나았다고 본다.

또 지방기업을 대하는 자세도 중요했다. 당시 사람들은 규모의 경제 시대에 100만개의 작은 지방 기업을 만들고 있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 작은 기업들의 기여가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매우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래서 한꺼번에 도시로 진출하지 않았다. 그게 굉장히 중요했다. 아마 그것이 규제를 한꺼번에 걷어내고 뭐가 일어나는지 보자고 했던 동유럽식 충격요법보다 좀 더 균형잡힌 성장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즉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본다. 그게 30여년간 성장이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사실 정치적 안정의 문제는 양면적이다. 즉 중국공산당에 의한 일당통치가 정치적 안정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사회적 다원성과 밑으로부터의 참여,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문제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질문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당 독재 하에서 정치적 안정성이 성장을 도왔느냐?’는 건데 답은 긍정적일 수 밖에 없다. 일당 독재 하에서의 안정성은 언제나 불안정성보다 높을 수 밖에 없다. 두번째 질문은 ‘일당독재만이 안정성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냐’인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민주적인 중국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일당독재가 안정성을 제공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빠르게 발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중진국 함정’을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즉, 다양한 요구들이 분출하며 과거와 같은 일사불란한 발전이 어려울 수도 있다. 발전된 서구국가들과도 이제부터는 대등하게 경쟁해야한다. 상호 모순되는 ‘사회주의원리’와 ‘사적 소유’, ‘공산당 일당통치’와 ‘시장경제’의 장기공존의 붕괴 위험성도 상존한다. 중국에서 그동안 공존해온 이 모순요소들은, 다른 나라들의 역사경험을 통해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적 특징을 과거 30년의 안정성과 함께 지방분권주의에서 찾고 싶다. 두 조합이 정말 좋았다. 앞서 말한 지방관리들의 정책 동조를 위한 덩샤오핑의 선택이 대표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체제발전의 성과를 나눠주기 위해 이런 식의 ‘지방 기업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방분권화가 굉장히 실질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유엔은 인간개발지수라는 것을 발표하는데 만일 상하이 주변 75마일(121㎞)을 포함한 곳을 독립적 국가라고 치고 표본으로 삼는다면, 아마 프랑스 정도 수준에 달하는 인간개발지수가 나올 것이다. 만일 남부의 꾸이저우 인근의 인간개발지수를 따진다면 쿠바보다 한참 아래이며 가봉보다 살짝 위일 것이다. 하나의 단일국가 안에서 중앙집중 정권이 그렇게 격차가 심각한 지역들의 단일정책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중앙집권화된 정부가 그 지역들간에 자원을 교류할 수는 있다. 꾸이저우가 발전하려면 상하이 같은 곳의 자원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유연하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는 정치적으로는 허용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몇몇의 지방정부들이 경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줬다.

정말로 날카로운 지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2천년 역사를 보면 지방에 대해 정치적 자율성은 불허하지만, 경제적 자율성은 허용하는 이중구조를 지속해왔다. 이를 통해 장기간 제국체제를 유지해오지 않았나 싶다. 그 점과 관련해 나는 중국 전래의 군현제도를 로마제국 지방통치 및 미국의 연방주의, 소련의 사회주의체제와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들이 매우 많이 발견된다.

현대 중국에서도 지방관리들이 정치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된 범주는 굉장히 작다. 그러나 앞으로는 궁극적으로는 지방으로부터의 정치적 실험이 행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중심부에서 시작되는 중국의 근본적인 정치변화는 더욱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랑스·러시아에서 급진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그런 식으로 수도에서 혁명과 쿠데타로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방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변화가 더 실현가능해 보인다. 어떤 건 성공할테고 어떤 건 실패할 것이다. 그중에서 성공한 사례들이 중국 전체로 녹아들어 일반화되길 바랄 뿐이다.

이제 ‘중국모델’을 말해보자. 사회주의와 사적소유, 공산통치와 시장경제를 결합한 중국체제를 우리는 ‘제3의 길’, 또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중국은 지금 과연 ‘중국모델’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중국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중국은 ‘신자유주의 사회주의체제’(neoliberal socialism )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중국의 학자들은 나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3의 길’이라는 건 굉장히 재미있는 표현이다. 말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소비에트 공산주의도 아니고 서방의 자본주의도 아니라는 건데, 만일 그게 ‘제3의 길’의 전부라면 중국은 ‘제3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제3의 길’은 서방의 장점과 전통적인 형태의 사회주의의 장점이 결합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중국이 ‘제3의 길’을 이뤘다고 보지 않는다. 1970년대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제3의 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강점의 조합을 원한다면 스웨덴이 훨씬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실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복지를 결합하는 것이 ‘제3의 길’이라면, 나는 미국의 루즈벨트 개혁, 전후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그리고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를 ‘사회국가’로서 ‘제3의 길’이라고 본다.

같은 생각이다. ‘제3의 길’이 두 체제 모두에 응답하는 대안이라고 규정한다면 그렇다. 2차 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가 우리 시대에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 보다 좋은 방향이었다고 본다. 그 모델이 신자유주의 등장으로 80년대 이후 밀려나고 있는 것은 굉장한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발전 이후 중국’을 말하자. 중국은 급속한 발전 이후 유교, 공자, 민족주의를 급격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특히 중국 민족주의의 주류를 보면, 200년 이내에 근대 이후 한족(漢族)들이 위로부터 발명해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고대 이래 국가라기보다는 천하, 제국, 문명, 질서로서의 중국은 민족주의가 필요 없었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세 제국이었던 몽골, 청, 중화인민공화국이 모두 유교·공자·민족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거부한 제국이었다는 점은 오늘의 중국현실을 두렵게 한다.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과도하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주변국의 입장에서도 당혹스럽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내부에선 어떤 비판적인 목소리도 없다. 학자들은 일방적인 지지 아니면 침묵뿐이다. 이게 민심을 얻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과거 제국의 영화에 대한 향수가 발현한 것일까?

민족주의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당신 말처럼 민심을 얻기 위해 민족주의 정책을 꾀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세계에서 대국으로서의 어떤 입지를 차지하기 위한 주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민족주의를 맑스주의의 대체 이데올로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 단순한 접근이라고 본다. 물론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큰 냉장고를 가지게 됐다는 경제 발전 이상의 관심을 둘만한 어떤 것, 즉 전체의 일부분이라는 좀 더 큰 뭔가를 제공해준다. 중국인들은 그런 게 필요했고, 민족주의는 그러한 기능을 갖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는 명확하게 특정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정부가 ‘굴욕의 세기’라고 말하는 지난 150년의 상처를 계속 들추어내고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물론 그 150년은 현실이었고 외부세계가 중국에 굉장한 고통을 안겨준 시기였다. 하지만 중국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분노를 자주 상기시키고 있다.

나는 단순히 번영이 곧 세계시민주의(코스모폴리타니즘)을 가져오고, 세계시민주의가 민족주의의 약화를 가져온다고 보지는 않는다. 미국에서도 그렇지 않았다. 미국도 최근 30여년 간 이상한 민족주의가 다시 재현되고 있다.

당신의 균형시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아시아인으로서 동아시아의 현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분별하다’, ‘물음을 배운다’는 뜻을 갖는 동서양의 ‘학문’ 개념은 결국 자기와 세계에 대한 질문과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학문적 스승 브로델에게 큰 영향을 끼친 비코와 미슐레를 따르면 ‘자기비판’, ‘자기나라 비판’이야말로 ‘자기사랑’, ‘자기나라 사랑’의 원천이다. 나는 그들의 이탈리아와 프랑스 연구에서, 사랑과 애국으로 승화되는 자기비판의 정수를 읽곤 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도했던 오리엔탈리즘 비판의 지극히 역설적인 기능은,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시각을 비판하는 동안, 동양인들 자신의 자기모순과 약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차단시켰다는 점이다. 생전에 사이드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을 때 그는 나의 이 질문에 대해 침묵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그건 동양인들의 몫”이라는 묵언의 답으로 이해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인으로서 동아시아를 볼 때 나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일본·중국·한국은 세계의 첨단 물건들, 즉 스마트폰·전자·자동차·선박 등을 만들어 세계에 수출했다. 하지만 인권, 민주주의, 권력분립, 과거청산, 자유, 평등, 복지, 평화의 수준은, 수출은 커녕 세계와 공유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유럽중심주의와 중화주의 모두를 극복한 당신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뇌가 남달랐을 것 같다.

당신이 맞다고 생각한다. 난 ‘아시아적 가치’라는 게 부족한 점을 다루지 않으려는 핑계가 되는 것이 아닌가 굉장히 의심스럽다. 아까 말했던 ‘균형잡힌 비교’로 돌아가자면, ‘균형잡힌 비교’라면 ‘유럽중심주의는 잘못됐다. 좋은 건 다 동아시아나 다른 곳에서 왔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일정한 관점에서 분석할 때 각각의 사회는 부족함이 있다. 그리고 그런 비판적 인식이 현재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더 멀리 나아가는 작용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안타까운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서구가 일본·한국·대만보다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전진하는 게 아니라 뒷걸음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난 기사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뉴욕 경찰이 목조르기로 사람을 죽이다가 걸린 장면이 찍혔는데도 대배심이 기소를 거부했다는 기사였다. 인종차별 철폐를 말할 때 얼마나 빨리 그 지점에 도달할 것이냐,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의견을 달리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그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종차별 문제가 결국 풀 수 없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이게 일시적인 후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후퇴다.

자기비판과 상호위로가 가장 좋은 결합이 아닌가 싶다. 사실 동아시아의 현재를 보면 과거로의 반동적 퇴영이 너무도 심각하다. 나는 동아시아의 퇴영에 대한 서양인들의 비판을 기다리기에 앞서, 동양인들의 침묵이 더욱 큰 비극이라고 본다. 여기 이웃하는 나라들의 정치적 상황을 보자. 일본의 총리는 1급 전범의 3세대다. 한국의 대통령은 과거 일본군장교이자 군사독재자의 2세다. 중국 최고지도자는 공산 혁명가의 2세대이며, 상충부의 다수는 세습자제들이다. 3대세습의 북한은 가장 퇴영적이며, 가산국가로서 최소 민주주의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런 동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칭송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 사이의 관계도 상호 신뢰와 화해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인권갈등과 영토분쟁도 심각하다. 이런 문제를 끊임없이 야기하는 일본이 과연 보편적 문명국가인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남북한은 부끄러운지조차 모른 채 아직도 심각한 적대와 반목을 반복하고 있다. 특별히 동아시아 영구평화와 지역통합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동아시아 현재에 대해 더욱 비판적이다. 당신의 세계와 아시아에 대한 통합 경제연구와 같은 방법을, 나는 세계와 아시아의 통합 평화연구 분야에서 집필하고 있는데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당신 역시 다음 책은 중국의 정치질서에 대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도 많은 부분에서 전진하기보다 후퇴하고 있다는 건 어두운 현실이다. 나의 다음 책은 제목이 <왜 중국은 이렇게 큰가?>이다. 각각의 역사적 순간들에서 무엇이 이 정도 규모의 나라를 하나로 묶어둘 수 있었는지 규명해보려는 시도다. 자연적·필연적이었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굉장히 잘 짜여진 집단이었고 각각의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건설됐다. 그래서 아까 당신이 언급한 민족주의가, 사실 한족(漢族)이라는 개념이 강조된 것이 지난 200년의 결과물이라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 전에는 분명히 ‘한족 국가주의’ ‘일국가성’의 존재감은 강하지 않았다. 내 책의 핵심은 중국이 왜 그렇게 큰지 하나의 답을 내놓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질문에 대한 답들이 역사적으로 대표되는 시기에 따라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물러난 뒤 중국 동쪽을 통합하기 쉬운 이유가 무엇인지, 신장 위구르를 중국의 일부로 묶어두는 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이다. 결국 이것도 다른 결과들이 만들어낸 다른 결과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은 이게 원래 이렇게 됐어야 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왜 하나로 뭉치지 않았을 때보다 하나가 될 때가 많은지 묻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반동적 퇴영은 ‘뒤집힌 현실’을 한 가지 더 깊이 상념케 한다. 역사적으로 개인주의, 사유재산, 시장경제, 경쟁의 전통이 강한 서구에서는 지금 분배, 평등, 복지체제가 강하고, 반대로 전체, 국가주의, 공동체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는 오늘날 소득집중, 불평등, 고용불안, 사적 소유관념이 훨씬 심각하다. 어떻게 이런 극적인 반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 국가의 적정 역할의 후퇴로 설명하곤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제외하고 경쟁적인 자본주의 매카니즘이 비민주적인 상황에 주어졌을 때 극단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그게 중국에서 최근 일어난 일 중 일부라고 생각한다. 대만은 좀 더 민주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덜했다. 대만은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좋은 의료체계를 갖고 있다. 서방 전체보다 유럽 대륙 쪽이 더 위협당하고 있다. 유럽 대륙 복지체제는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괜찮아 보이는데 그들 자신의 30년 전과 비교해볼 때는 가난해졌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굉장히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70년대가 여러 방면에서 실망적인 연대였다는 것은 맞다. 적어도 내가 볼 땐, ‘경황이 없어 아이를 목욕물에서 내던져버린 격’이었다. 대처와 레이건 등은 정말 어떤 조급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챙길 수 있는 이익을 외면했다.

정책적으로 20세기의 첫 75년간은 서구가 실제 복지를 이룩하는데 괄목할만한 제도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제도들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아직 서방이 동아시아보다 멀쩡해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슬프게도 이미 그런 제도들이 평가절하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주제는 미래 중국의 국제적 입지에 대한 것이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왕조는 자주 교체되었지만, 제국은 지속됐다’ 중국의 역사는 ‘집중’과 ‘이완’, ‘통합’과 ‘분열’을 반복한 독특한 제국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도 중국 지도층 내부에서는 과거의 이완과 분열의 역사에 대해 예리하게 주목하고 있다. 대만, 홍콩, 티벳, 위구르, 신장 등의 문제에 대한 강경대응은 이런 역사인식의 연장으로 보인다. 반면 대외적으로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양강, 주요2국(‘G2’·지2)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을 이렇게 분류하는 것에 동의하나? 중국을 과연 미국의 경쟁제국이라고 볼 수 있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중국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큰손’이 됐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역을 떠나서 처음으로 국제적인 ‘주요 행위자’가 됐다. 아프리카에서도 남미에서도 중국은 중요해졌다. 그것은 새롭고 기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그런 면에서는 ‘지2’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내재하고 있는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독특한 형태로 존재한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미군의 규모는 놀라운 것이다. 이제 정상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됐지만, 100개국에 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충격적인 일이다. 또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기술력과 소프트 파워는 여전히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런 면에서, 지2가 맞지만, 동등한 지2는 아니다.

동의한다. 중국은 아직 경제 분야 정도에서만 미국에 견줄 수 있다. 군사·정보기술(IT)·교육·국제 관계·표준가치 설정능력으로 봐도 미국이 유일한 글로벌 제국이다. 중국은 준 글로벌 제국 정도이다. 또는 동아시아의 제국이다.

맞다. 그런 것이다. 겉으로는 제국처럼 존재는 하지만 그 정도의 입지는 없다. 미국이 갖고 있는 정도의 입지는 없다.

중국이 세계에 급속하게 수출하려는 공자학원을 둘러싼 해외의 논란 역시 그런 중국의 조급함과 현재 위치를 동시에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 아닌가 싶다.

공자학원은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라고 생각한다. 공자학원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어를 배우게 했다. 하지만 관련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미국처럼 공자학원을 계속 열어온 곳에서도 사람들에게 중국 정부에 대한 호감을 주기에는 부족했다고 본다. 공자학원을 소프트 파워라고 본다면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본다.

중국의 부상 이후 일부에서는 벌써 ‘세계화 이후’를 말하면서 ‘미국화’와 ‘중국화’의 때 이른 대결을 말하기도 한다. 나아가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담론들이다.

중국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의미겠지만, ‘19세기는 영국의 세기’ ‘20세기는 미국의 세기’라는 정도로 중국이 그들처럼 세계질서를 주도하고 국제규범의 모델이 되는 역할을 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의 세기다’ ‘미국의 세기다’라고 한다면, 왜 21세기가 누군가의 세기가 되어야 하냐고 되레 묻고 싶다. 지금 많은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 어느 시대보다 국제적 규범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규범이 하나의 거대한 특정 제국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인지는 동의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에서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마지막 주제는 한반도 문제다. 중국은 현재 남북한 모두의 제1 교역국이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액은 한미 교역액의 2배가 넘는다. 반면 미국은 제1 안보동맹국이다. 두 거대 제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안보와 경제의 제1상대가 서로 경쟁하는 지극히 기묘한 상황이다. 한국으로서는 처음 맞는 상황이다. 일단 양자택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즉 안보(미국)를 위해 경제(중국)를 버릴 수도, 경제(중국)를 위해 안보(미국)를 버릴 수도 없는 변혁 국면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넘어 점차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국 나름의 운신공간을 확보하는 문제가 절실하다.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의 상황이 정말로 미국과 중국 중에 택일해야하는 상황인지 숙고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은 대국의 막대한 영향 하에 놓여있었다. 처음에는 중국, 다음에는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그러나 보다 긴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보상황은 진정으로 다자적으로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럴 경우 중국은 다자적 안보 틀의 바깥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 어느 국가도 중국이 동아시아 안보 상황을 독자적으로 관장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상당 기간 동안 미국이 유용한 균형 요소가 된다. 하지만 미-중이 대결하는 구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안보는 무엇보다도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달려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될 때 한국은 정말 고통 받을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기안보 전반을 관장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앞서 말했듯 한국의 안보 관리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다자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문제일 텐데, 그것과 관련해 어떤 비상구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제 마무리를 짓자.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역할이 없이는 한국은 주변 대국들인 일본, 중국, 러시아를 견제할 길이 없었다. 역사 속에서 그들은 번갈아가며 이 작은 나라를 위협, 공격, 점령해왔다. 한국이 현재 중견국가로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미국의 균형역할은 필수인 것이다. 또한 중국과의 경제협력 없이는 미래의 발전도 어렵다. 이제 한국민들은 두 거대제국 사이의 열린 공간을 활용하는, 예술 같은 지혜를 통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전과 평화, 발전과 통일을 이루어야하는 무거운 과제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맞다. 나는 한국인들의 그런 노력을 통해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평화와 안전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정리/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대담자 약력

케네스 포머란츠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중국과 유럽에 대한 비교사 연구를 통해 19세기 이후 세계사를 규정한 동·서양의 발전 격차의 원인을 분석한 기념비적 저서 <대분기: 중국, 유럽, 근대 세계경제의 형성>(2000) 등을 내놓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2013년~2014년 미국 역사학협회 회장을 지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 한-미 관계, 해방 전후 한국정치 등에서 돋보이는 연구 성과를 보여왔으며,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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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데일리



[베이징= 이데일리 김경민 특파원] “단언컨데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은 제로(0)다. 다만 부동산 경기 둔화와 지방부채 문제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

지난 1977년 설립된 중국 국무부 직속 최대 씽크탱크인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허판(何帆·43) 부소장은 2015년 새해를 맞아 1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추세대로라면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는 작년보다 낮아지겠지만, 경착륙 가능성은 단 1%도 없으며 7%대 성장률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그동안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던 수출과 부동산 관련 투자가 둔화되고 있는 만큼 중국 경제는 고속 성장기에서 중저속 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맹목적인 투자에 따른 부동산산업 위축과 그로 인해 대규모 악성 부채,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따른 생산과잉, 환경 오염 등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이로 인해 중국 경제가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어려움을 겪는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 관계가 깊어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며 양국 인력과 기술 등 경제분야에서의 교류는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올해 중국 경제를 전망해달라.

△현재 경제성장 추세를 본다면, 올해 경제 성장 목표는 작년보다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수출이 둔화되고 있고, 부동산 관련 투자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중공업 관련 투자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7%대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며 경착륙이 나타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고속 성장기에서 중저속 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안정성이 커진다는 장점도 있다. 중산층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소비 잠재력은 여전히 큰 편이다. 또 정부가 인프라 관련 투자를 늘리고, 전통산업 기술 수준 향상과 환경 보호에 대한 투자에도 나서 경기 부양을 이끌 것으로 본다.

-지금 중국 경제의 장애물과 성장동력은

△중국의 가장 큰 장애물은 투자가 계속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과거 대규모 정부 투자에 인프라 건설 등이 쏟아지면서 중국 경제는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그러나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생산과잉 문제가 생겨났고, 산업 구조의 전환을 늦췄으며, 소비를 억제하고 환경 오염 등의 문제를 만들었다. 이에 앞으로의 성장 동력은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노동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며, 교육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도시화와 재정 체제 개혁, 서비스업 개방, 국유기업 개혁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중국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정부 주도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호황기도 20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부동산값이 오르면서, 이런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맹목적인 투자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산업이 쇠락을 자초한 것이다. 부동산 산업의 부채비율이 높다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또 부동산 산업의 흐름은 지방정부 부채 비율로 직결되기 때문에, 부동산 거품이 많이 꼈던 시기에 생겨난 대규모 악성 부채들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방 부채는 통제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규모가 워낙 크고, 악성부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더는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다만, 부동산 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인터넷과 첨단장비 제조업, 환경 산업 등 신흥 산업이 부동산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중국이 제조업 국가에서 소비 중심의 국가로 변신하고 있는데

△중국은 아직 소비국가로 일컫기엔 부족한 면이 많아, 아직 제조업 위주의 국가라고 생각한다. 소비란 서비스 산업을 포함해야 하는데, 중국인들의 서비스 산업에 대한 소비는 아직 크지 않다. 예를 들어 의료 서비스나 교육 혜택을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서비스 관련 분야에서 많은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정부가 질적인 성장에 공을 들이고 있어 점점 관련 시장이 커질 것이다.

소비자들의 성향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성향을 잘 파악해 투자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소비 방식이 변하면서 전자상거래업종이 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아시아,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어떤 것이며 당면한 숙제는 무엇인가.

△중국은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의 수혜를 입은 국가 중 하나다. 이에 중국에 글로벌 경기는 매우 중요하다.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무역 전쟁과 화폐 전쟁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는 모두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중국은 신흥국들의 발언권 확대에 노력해야 하며, 각종 형식의 보호주의 철폐에 목소리를 높여 세계 공동 번영을 수호해 나가야 한다.

-한국과 중국 경제의 관계도 긴밀해졌는데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일체화 현상이 강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방면에서 한국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이라는 말이 나온 초기만 해도 한국은 4개국 중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낸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발전을 거쳐 한국은 대만과 홍콩을 넘어섰다. 한국은 이제 중국과의 관계를 두텁게 하며 경제 세계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 경제는 한국의 경험을 학습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성장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국 진출에서 한국 기업에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들은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보다 더 잘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있다. 예를 들어 세계 금융 위기 이후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빚지고 야반도주해 중국 경제에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례들도 있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국 경제는 현재 세대교체 중이고, 한국 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한다. 만약 과거와 같이 값싼 노동력을 기대하고, 가공 수출을 위한 생산 기지로만 중국을 공략한다면, 중국 시장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소비자들의 요구를 잘 이해해야만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인력과 기술 등 경제 분야에서 교류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본다.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는데.

△중국에 있어 한국은 주요 무역상대 중 하나라는 점에서, 한·중 FTA는 양국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좀 더 큰 그림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각각의 FTA도 중요하지만, 중국과 한국은 모두 세계무역기구(WTO) 다자무역 체제의 발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 경제는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 안 할 수가 없다

△한·중·일 관계는 여전히 낙관적이라고 본다. 세 나라의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다. 과거 100년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갈등의 골이 깊어 보이지만, 더욱더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재조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웃 국가끼리 일정 수준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 국가 국민의 정서를 훼손하는 짓을 경계하고, 상호 이해의 증진과 교류에 힘써야 한다.

김경민 (min07@edaily.co.kr)

[해외석학 인터뷰]`中최고 소장경제학자` 허판 사회과학원 부소장

[베이징= 이데일리 김경민 특파원]

■허판 부소장은

1971년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태어난 허 부소장은 중국내 소장학자의 대표 주자다. 재정부ㆍ상무부ㆍ인민은행 등 정부부처의 자문위원을 맡아 환율정책과 금융개혁 등 각종 정책을 입안하는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가 몸담은 사회과학원은 국무원 산하기관으로 중국 최대의 싱크탱크(두뇌집단) 역할을 하고 있다.

허 부소장은 1992년 하이난(海南)대를 졸업한 뒤 사회과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마쳤다. 2002년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연구원을 시작으로, 2008년 연구원으로 승진해 2010년부터 부소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중국 경제지 제일재경일보가 선정하는 `올해의 청년 경제학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경민 (min07@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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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인구 감소, 성장률에 치명타

한·일 모두 해결책 마련 시급

소비세 추가 인상 미룬 아베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힘써야


[ 서정환 기자 ] 이와타 가즈마사(岩田一政)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한국도 인구 감소가 장기 경기침체의 가장 분명한 원인이 될 것”이라며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생산성 향상과 함께 인구감소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내 대표적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이와타 이사장은 올해 세계 경제의 주요 변수로 유가 하락과 미국 금리 인상을 꼽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주가와 환율 변동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진단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의 힘이 부족하다”며 “네 번째 화살로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세계 경제는 작년보다 나아질까요.

“세계 경제가 지난해 2.5% 성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보다 조금 높은 3% 성장을 전망합니다. 미국은 3% 정도의 양호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일본의 성장률도 올해 -0.5%(추정치)에서 1.3%로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유럽의 성장률은 1% 정도로 예상합니다. 주요 신흥국 가운데선 5% 성장이 예상되는 인도를 제외하면 러시아 브라질 등 대부분 상황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세계 경제의 성장률은 높아지겠지만 환율 등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질 것으로 봅니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중국의 성장률은 올해 5~6%대로 떨어질 것으로 봅니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최근 2050년 경제 전망을 하면서 중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얼마 전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도 비슷한 견해를 냈습니다. 중국이 지금부터 2030년대 초까지 연평균 3.9%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죠. 향후 중국의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과 일본의 통화정책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유럽중앙은행(ECB)은 전면적인 양적 완화에 나설 겁니다. 시장에선 이달이 아닐까 하는데 저는 그 시점을 3월로 예상합니다. 시기가 언제든 지금보다 훨씬 더 돈을 푸는 거죠. 일본은 지난해 10월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 완화를 했지만 물가상승률이 0.7%(11월)로 여전히 목표치(2%)를 크게 밑돕니다. 소비자물가가 0.5%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또다시 추가 양적 완화를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엔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십니까.

“2008년 말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2012년까지는 과

한 엔고(高) 시기였습니다. 아베 2차 내각 출범 후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체력)을 반영하면 달러당 90~100엔 정도가 적당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환율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언더슈팅(초과 하락)하거나 오버슈팅(초과 상승)을 합니다. 지금의 달러당 120엔대는 과도한 엔저(低) 상태입니다.”

▷투자은행들은 올해 말 130엔까지도 예상합니다.

“올해 엔화가치는 달러당 120엔 전후의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이가 기본적으로 엔저 요인입니다. 반면 유가 급락에 따라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는 건 엔고 요인입니다.”

▷한국도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원화가 미 달러화나 엔화에 대해 계속 강세를 보이면 한국 경제가 힘들겠지만 최근 달러에 대해선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3% 중반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률도 목표치보다 낮을지는 모르지만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에 빠진 적은 없습니다. 거시적으론 한국이 일본보다 분명 좋은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가 직면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인구 감소 문제를 보면 한국이 일본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심지어 한국은 일본보다 출생률이 낮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중장기적으로 상당한 경기침체에 빠질 겁니다. 성장률은 노동 투입과 자본 투입, 생산성 세 가지 요인으로 정해지는데 인구 감소는 이들 세 가지에 모두 부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인구 감소 문제 해결은 생산성 향상의 전제 조건입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기기계, 반도체 업체들은 일본 기업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2의 기계시대’로 인간의 두뇌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이버 피지컬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사물인터넷(IoT), 3차원(3D) 프린터 같은 기술의 결합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이 같은 글로벌 기술혁신의 큰 흐름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한국 기업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겁니다.”

▷아베 총리 3차 내각이 들어섰습니다.

“일본 경제엔 긍정적일 겁니다. 아베노믹스는 아직 미완입니다. 아베 총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년 내 2%로 하고 2020년까지 연간 경제성장률을 2%로 하는 두 가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장률의 경우 2013년도엔 2.1%로 목표를 달성했지만 지난해엔 다시 마이너스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2년의 아베노믹스를 평가한다면.

“아베노믹스는 세 개의 화살로 시작했습니다. 확장적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이 합쳐졌던 기간은 일본 경제가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소비세 인상 후 추진한 성장전략은 실행이 부족했습니다. 세 번째 화살은 힘이 부족해 보입니다.”

▷세 번째 화살이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장전략에서 요구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인구 감소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1억명 인구를 유지한다’는 목표를 내걸은 건 획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이노베이션(혁신)을 활발히 해야 합니다. 특히 ‘오픈이노

이션’이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기업 내에서보다 소비자, 다른 기업 또는 대학과 연계해 혁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구가 줄지 않게 하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성장전략의 ‘두 다리’입니다.”

▷소비세 추가 인상 시기를 미룬 뒤 일본의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재정건전성을 위해선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합니다. 현 제도에서는 정부가 세수를 늘려도 매년 1조엔씩 증가하는 사회보장비 지출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연금과 의료·요양 등에 대대적인 제도 개혁을 해야 합니다. 아베노믹스에서 처음부터 빠져 있던 것이 사회보장제도 개혁이었습니다.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적 개혁, 이것이 네 번째 화살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증시는 올해도 계속 오를 것으로 보십니까.

“시장 관계자들은 올 연말 닛케이225지수가 20,000까지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황은 좋습니다. 일본은행이 금융 완화를 계속하고 있고 소비세 인상도 연기됐습니다. 지난해 말 3조5000억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도 편성됐습니다. 유가 하락이 일본의 재정·금융 정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보면 증시는 오르기 쉬울 겁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러시아가 채무위기에 빠진다든가, 그와 비슷한 상황이 다른 나라에서 발생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18,000을 적정 수준으로 보지만 누구도 증시를 정확히 예측하긴 힘들 겁니다.”

이와타 가즈마사는…

관료 출신 日 대표 경제학자…일본은행 부총재 역임


민 간 싱크탱크인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이와타 가즈마사 이사장은 경제기획청 관료 출신으로 정책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일본의 대표적 경제학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때 일본은행 부총재를 지낸 그는 일본 경기가 호황이던 2007년 2월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을 때 소비심리 회복세가 더디다는 이유 등으로 통화정책위원 중 유일하게 동결을 주장했다. 아베 2차 내각 출범 초기 일본은행 총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약력 △일본 도쿄 출생(69세) △도쿄대 교양학과 졸업(1970년) △경제기획청 장관관방비서관(1970년) △경제기획청 경제연구소 주임연구관(1985년)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1991년) △내각부 정책총괄관(2001년) △일본은행 부총재(2003년) △내각부 경제사회종합연구소장(2008년)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2010년~)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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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송기용 특파원] [편집자주] 장샤오징(張曉晶) 사회과학원 거시경제연구실 주임은 중국 경제학계 최고권위자에게 수여하는 '쑨예팡(孫冶方) 경제과학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거시경제계 브레인이다. 쑨예팡 경제과학상은 리커창 총리와 린이푸 전 세계은행 부총재 등 거물들이 받아 알려졌다. 장 주임의 주요 연구영역은 개방경제 거시경제학, 발전경제학이다. 그는 중국 국무부 산하 최대 싱크탱크이자 정책자문 및 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에서 제11차 5개년 계획(2006~2010년), 12차5개년 계획(2011~2015년) 입안에 참여했다. 중국 인민대학 경제학 학사 및 석사, 사회과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학 포스트닥터 과정을 거쳐 스웨덴 스톡홀름 경제학원과 하버드대학,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 학술방문, 국제통화기금(IMF) 공동연구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금융 글로벌화 시대의 경제분석' 등 다수의 저서로 한 차례 '중국도서상'을 수상했다.
[[신년기획 인터뷰]장샤오징 중국 사회과학원 거시경제연구실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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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가 2015년에 적지 않은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하고, 경기하강 압력도 비교적 클 것으로 보인다. '신창타이'(新常態)라는 새로운 경제발전 시대에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지난해 12월11일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새해 거시경제 운영방향과 목표를 논의한 최고위급 경제회의인 '중앙경제공작회의' 화두는 신창타이였다.

신창타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특징인 저성장·저소비·고실업 현상을 의미하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의 중국판이다. 미국 경제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뉴노멀이 중국 경기둔화와 맞물리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10%대의 고속성장을 누리던 중국이 6~7%대의 중속성장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기여도가 1990년대 10%에서 20여 년 만에 34%로 높아졌다. 미국(17%), 유럽(8%)을 추월한 중국의 영향력에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은 옛말이 됐고 어느덧 중국의 건강이 중요한 시대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에게 2015년 중국 경제는 더더욱 관심사일 수 밖 에 없다. 장샤오징(張曉晶) 사회과학원 거시경제연구실 주임을 만나 지난해 중국 경제성과를 짚어보고 새해 전망을 들어봤다. 장주임은 중국 경제학계 최고권위자에게 수여하는 '쑨예팡(孫冶方) 경제과학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거시경제계 브레인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2014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목표치 7.5%에 미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보나.
▶ 지난해 1분기·2분기 GDP 성장률이 7.4%, 7.5%를 기록했고 3분기에는 7.3%로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을 받았던 2009년 1분기(6.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4분기에는 재정지출 확대,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3분기보다 떨어져 2014년 전체 GDP 성장률은 7.3%를 기록한 것으로 판단된다.

- 지난해 경기둔화의 직접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중국 경제를 이끄는 3마리 마차인 소비와 투자, 수출이 총체적으로 부진했다. 지난해 10월 소비증가율은 11.5%로 8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투자는 더 심각해 10월까지 고정자산 투자가 15.9% 증가해 2013년(19.6%)에 크게 못 미쳐 경기둔화 최대요인으로 투자부진이 꼽힌다. 투자증가율이 어디까지 떨어질지에 대해 13% 이하, 혹은 10% 이하 등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모두가 투자가 부진할 것이라는데 동의했다. 수출입은 11월까지 3.4% 증가했는데 수출은 2조1000억 달러로 5.7% 늘었지만 수입은 1조7800억 달러로 0.8% 증가하는데 그쳤다. 수입이 부진한 것은 중국 국내 경기가 그만큼 안 좋고 주변국 기여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뉴노멀이 화두였다. 고속 성장하던 중국이 중속성장으로 전환된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뉴노멀, 중국 표현으로는 신창타이는 '구조적인 성장감속'이다. 중국만의 현상은 아니고 어느 나라든 고속 성장한 다음에는 (성장)감퇴기가 찾아온다. 한국과 일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다만 국가별로 구조적 감속의 이유가 다른데 중국 성장둔화는 5가지 원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자원배치 효율이 낮아지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농업(1차 산업)이라는 효율 낮은 부분이 효율 높은 제조업(2차 산업)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성장속도가 빨랐다. 이제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3차 산업)으로의 산업구조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 정부도 3차 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생각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제조업 과잉투자가 생산과잉을 촉발했고 3차 산업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산업별 성장률은 △1차 산업 4.2% △2차 산업 7.4% △3차 산업 7.9%로 정부 의도대로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3차 산업 노동생산성이 2차 산업보다 낮다는 것이다. 산업구조를 최적화하면서 3차 산업을 키우려면 부득이하게 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을 감내 할 수 밖 에 없다.

뉴노멀의 두 번째 원인은 임금, 토지, 자본 등 요소공급 효율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중국이 값싼 임금과 토지가격으로 경쟁우위를 누렸지만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더 싼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시아로 기업이 떠나 '메이드인 차이나'가 '메이드인 베트남'으로 바뀌고 있다.

기술습득 효율도 하락했다. 중국은 선진국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 기술도 국제적으로 앞선 위치에 도달해 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30년은 기술혁신 없이도 손쉽게 돈을 벌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하지만 자주적 기술혁신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자연환경 제약도 증대했다. 인체에 유해한 스모그 등 대기오염 감축을 위해 공장가동 중단 및 감축이 필요한데, 성장 측면에서 악재다. 마지막으로 외부경쟁 압력 증대도 영향을 미쳤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미국, 일본,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도 경쟁국으로 부상했다. 또 무역장벽을 피하기 위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증가로 수출 환경이 악화됐다.

- 뉴노멀 시대에 중국이 겪게 될 리스크 요인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나.
▶ 기업 연쇄도산과 금융기관 악성채무 증가 현상이 가장 걱정된다. 고속성장기에는 물건을 만들면 팔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생산과잉을 피할 수 없다. 생산과잉으로 판로 잃은 기업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은행 부실채무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중소 민영기업 경영난 사태가 상하이(上海), 난징(南京), 항저우(杭州), 닝보(寧波) 등 창장삼각주 동부 연해지역에서 중서부 내륙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기업부문 채무 잔액은 2012년 말 현재 58조6700억 위안으로 GDP 대비 113%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한 90%를 초과한 만큼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기업 파산으로 실업자가 증가하면 사회혼란도 불가피해 중국 정부도 생산과잉을 주시하고 있다.

- 경기부양용 재정투자로 중국 국가부채 역시 증가했다. 많은 나라들이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중국은 어떤 상황인가.
▶ 2012년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 합계가 27조7000억 위안으로 GDP 대비 비중이 53%로 집계됐다. 일본(226%) 이탈리아(111%) 등 부채대국은 물론 미국(80%), 독일(83%), 프랑스(90%) 등 선진국보다 월등히 낮은 수준이다. 다만 지방정부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 부동산 거품이 중국의 최대 리스크 요인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 글로벌 경기둔화 뿐 아니라 도시화 진척이 예상보다 더디고, 고령화 현상으로 주택수요가 떨어져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다. 1가구1자녀 정책을 수십 년간 시행한 결과 주택구매 계층인 30, 40대가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등으로부터 집을 물려 받아 주택 공급보다 수요도 감소했다. 부동산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20%라는 점을 감안하면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의 부동산 리스크는 통제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부동산이 급락해도 주택 가격은 여전히 대출 대차잔액보다 높아 '마이너스 자산' 즉 저당물 압류 붐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집값이 폭락해도 은행이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인 만큼 금융기관 도산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도 부동산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는데 이는 부동산 리스크가 중국 정부 통제 범위 내에 있다는 의미다.

- 새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데, 어떻게 보나.
▶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떨어질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다만 대다수가 7% 성장을 예상하던데 이보다는 조금 높을 수 있다고 본다. 소비, 수출은 다소 개선되겠지만 투자는 여전히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경제권 구축),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 약칭)일체화 개발, 창장(長江·양쯔강) 개발 등 강력한 재정투자로 경기둔화를 어느 정도 상쇄할 것으로 본다. 미국 경제의 강한 회복은 중국에 칼날의 양끝으로 작용할 것이다. 수출에는 긍정적이지만 미국 금리인상 시기를 앞당겨 자본유출을 초래하는 등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 중국 정부의 재정 및 통화 정책은 어떻게 운용될 것으로 전망하나.
▶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힘 있는 재정정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정지출은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경기둔화로 재정수입이 줄어 적자재정 편성이 불가피하다. 통화정책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완화될 전망이다. 당국이 금리인하, 은행지급준비율 인하 등을 통해 시중에 통화 공급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 러시아 루블화 폭락사태로 달러화가 강세다. 위안화 환율은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나.
▶ 달러강세 현상으로 위안화 약세(평가절하)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좀 더 넓게 보면 미국 경제가 3%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 성장률이 6%대로 떨어져도 미국보다 두 배나 높다. 이런 추세를 보면 장기적으로 위안화는 평가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 위안화 약세 추세가 올해 내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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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신문



[서울신문]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인 올해는 한국 광복 70년이자 일본 패전 70년, 중국 승전 70년 등 동북아 3국이 저마다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해다.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북한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안보협력 강화에 나서면서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에 맞서는 중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가속화 행보로 인한 한·일, 중·일 간 갈등 증폭 등 올해도 동북아 정세는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중국, 미국 3국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격랑의 2015년 동북아 기상도를 전망해 본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언론인인 와카미야 요시부미(66·전 아사히신문 주필)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는 지난 12월 중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65년 맺은 한일기본조약은 50년간 진화해 왔다”면서 “새롭게 한일기본조약을 되돌아보고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서로 양보해 해결하도록 제안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양국 정상에게 주문했다. 합리적인 시각으로 한·일 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글을 써온 와카미야 전 주필은 최근 ‘전후 70년 보수의 아시아관’(작은 사진)이라는 저서에서 일본 현대사를 보수 정치인의 행보와 엮어 통렬히 분석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연말 총선을 통해 정권 기반을 다졌다. 아베 총리의 향후 외교정책에 대해 유연 노선과 강경 노선의 양론이 있는데.

-좀 희망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두 가지 관측 중 전자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과 일단 정상회담을 가졌고, 위기관리에 대해서도 합의하면서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50주년을 맞아 무엇인가 하는 게 좋다는 여론이 있다. 박 대통령이 유연하게 나온다면 아베 총리도 화답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핵심인데, 한 번에 해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양측이 접점을 찾는 자세가 좋다고 생각한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인 6월 22일 전에 두 정상이 만날 가능성이 있나.

-지금 분위기라면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만나지 않고 50주년을 맞는 것도 심한 얘기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만나려고 해도 상대가 만나 주지 않는다”고 말해 왔는데,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보다 조금 유리한 입장에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아베 총리가 가게 되는데, 거기까지 가서 만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다. 지난해 11월 중·일 정상회담을 하기 전 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긴밀히 성사시켰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아서 유감이다.

→국교정상화 이후 50년을 평가한다면. 또 앞으로의 50년을 전망한다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어떤 의미로는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무리하게 타협했던 것이 독도, 역사인식 문제 등으로 불거지고 있지만 조약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의 경제 발전을 조약이 뒷받침한 것도 틀림없는 얘기이고, 게다가 타협을 그대로 방치한 것도 아니다. 조약의 내용은 50년 동안 진화해 왔다고 생각한다. 가령 일본의 반성이나 사죄가 조약에는 없었지만 무라야마 담화(1995년)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이를 위해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합의한 것이 주요 내용)으로 일본의 사죄가 명확해졌다. 또 당시 일본에서는 독재 정권과 조약을 맺어도 되느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한국은 민주화 국가가 됐다. 지금까지 부족한 부분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냉정히 생각하는 것이 정치나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 번 더 한일기본조약을 되돌아보고 위안부 문제 등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양보해 해결하고, 앞으로 50년을 새롭게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신(新)김대중·오부치 선언 같은 새로운 파트너십의 제안인가.

-가능하다면 좋겠다. 국가 대 국가로 맺은 공식 선언이라는 데 의미가 있지 않나. 일본이 다시 사죄하는 게 아니라 그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면서 미래지향적인 박근혜·아베 공동선언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기적으로는 한·일 관계를 낙관하나.

-그렇다. 남북 통일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서도 영향은 있겠지만 그때 일본이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전후 70년을 평가하면.

-70년간 일본이 한 번도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평화적인 경제 발전의 길을 걸어온 것은 평가해 주었으면 한다. 특히 1990년대에는 과거에 대한 사죄를 거듭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다른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중국이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확대되고 있고 계속해서 사죄를 요구당한 것에 대한 울분 섞인 반발도 있다. 과거를 모르는 세대가 주류가 돼 속죄 의식보다는 오히려 피해자 의식이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은 다시 한번 겸허히 자성을 해야 하지만 주변국에도 관용의 정신을 부탁하고 싶다.

남북 분단, 내전, 그리고 군사 독재로부터의 민주화를 경험해 온 한국에 비해 일본은 전후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 이 때문에 사회 발전은 빨랐지만 에너지를 잃어 노화돼 왔다. 헤이트 스피치(특정 인종·집단에 대한 증오 발언)처럼 유치한 현상은 노화에 의해 갓난아기로 돌아온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달의 총선으로 극우 정당이 괴멸한 것처럼 일본 전체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유아화하거나 아니면 성숙을 되찾아 가거나 현재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동북아 정세가 갈수록 복잡해질 전망이다. 일본의 대(對)중국 정책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그 안에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G2라고 불리는 중국이 그 정도의 지위를 갖춘 것을 존중하는 동시에 견제하는 세력이 돼야 한다. 일본이 전후 경제 발전 속에서 겪어온 공해, 버블 등 큰 실패를 중국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경제력으로는 ‘넘버 2’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아직은 미숙하다. 한국은 일본의 중요한 ‘동지’다. 일본은 중국에 힘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과도 다툰다면 고립되고 만다. 또 한국과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한·일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한·중·일 연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일 관계를 전망한다면.

-지난달 총선으로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의 헤노코 이전이 어려워진 것 등을 감안하면 미·일 관계도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베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이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공화당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공화당이 집권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군사력이 약해지고 있는 미국은 일본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일이 갈등을 빚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과연 아베 정권이 잘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된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주필은

1948년 도쿄 출신. 1970년 아사히신문 기자가 돼 지방 지국을 거쳐 1975년부터 정치·외교 분야를 취재했다. 2013년 주필로 퇴직했다. 현재 일본 국제교류센터의 시니어펠로인 동시에 게이오대학, 서울대, 동서대의 객원교수, 연구원으로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두 차례 한국 유학 경험이 있으며 일·한포럼의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르포 현대의 피차별부락’, ‘잊을 수 없는 국회 논전’, ‘한국과 일본국’, ‘야스쿠니와 고이즈미 총리’, ‘신문기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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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서울신문]

“올해는 중국의 항일(抗日)전쟁 승리 70주년이다. 중국은 올해도 일본을 상대로 역사 공세를 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군국주의자들과 일본 국민들을 분리해 일본을 상대할 것이다. 중국은 한국도 (중국처럼) 새로운 일본의 침략 역사 만행 자료를 공개하는 식으로 일본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리웨이(李薇·60)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소장은 1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올해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은 중국의 동북아 전략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중국도 일본인들이 중국에 위협감을 느끼게 된 문제를 돌아보고 그들이 중국의 평화 발전을 믿도록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중국의 동북아 전략은.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주변 외교’ 원칙은 친밀·성의·혜택·포용을 의미하는 친·성·혜·용(親·誠·惠·容)이다. 친근하게 성의를 가지고 서로 윈·윈하면서 함께 발전하자는 뜻으로 ‘공동 발전’을 의미한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주변 관계는 중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과의 갈등은 계속돼 왔는데.

-중국은 중·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원한다. 공동 발전의 첫걸음인 셈이다. 그러나 일본이 역사 문제에서 잘못된 언행을 일삼아 3국 FTA 체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대일 관계는 모두 일본의 역사 인식으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중·일 갈등의 모든 책임이 일본에 있나.

-일본 지도자의 역사 인식과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국유화 조치가 양국 관계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다만 많은 일본인이 중국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데 중국은 평화 발전의 길을 걸어갈 것임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중국은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할 것으로 보는가.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 용인 결정으로 볼 때 일본의 국방 정책이 크게 변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직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대일 전략은.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13일 난징(南京)대학살 추모일 연설에서 “난징대학살을 추모하는 것은 원한을 지속시키려는 게 아니다. 한민족 내 소수 군국주의자들이 발동한 침략 전쟁으로 그 민족 전체를 적대시해선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침략자들이 범한 만행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일본 우익분자는 강력 비판하되 일본 국민과는 적극 교류하겠다는 것으로 시진핑 정부의 대일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은 올해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일본에 대한 역사 공세를 강화하나.

-중국이 올해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려는 것이 침략 역사를 미화하는 일본 우익에 대한 경고와 무관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시 주석이 난징 연설에서 일본을 겨냥해 “역사를 잊는 것은 배반이며,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재발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재차 일본에 경고하려는 것은 아베 신조 총리의 강한 민족주의 성향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 공세는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도록 촉구함으로써 중·일 양국 정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일본의 대중국 전략을 평가한다면.

-일본의 중국 전략은 근래 들어 크게 변했다. 일본은 중·일 수교 이후 체결된 양국 우호 관계의 핵심인 ‘4개 정치 문건’은 회피하고 ‘전략호혜’(戰略互惠)만 강조하고 있다. 특히 아베 총리는 전략적으로 중국을 일본의 ‘맞수’로 규정하고 있다. 1972년 양국 수교 이후 일본이 중국을 맞수로 규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도 중·일은 충돌하나.

-중국과 한국 국민이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는 역사와 관련이 깊다. 영토 문제도 침략 역사와 직결돼 있기에 문제가 더 큰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한국과 중국을 자극한다면 두 나라와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는 2015년에도 지금처럼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상태에 머물 것이다. 시 주석도 지속적으로 지역 평화와 공동 발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때 일본과의 충돌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은 일본의 역사 인식을 질책하겠지만 때리고 부수고 불태우는 식의 민족주의적 반일시위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한·중, 중·일, 한·일 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나.

-아베 총리는 집권 이후 외교를 중시한다며 50여개 나라를 방문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중국과 한국은 방문하지 않고 있다. 또 한·중 양국은 물론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아베 총리의 우익 성향상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보다는 약간 완화되겠지만 종전 70주년이라고 해서 중국 및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보기 어렵고, 이에 따라 관계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아베 총리가 종전 70주년 메시지를 통해 한·중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 가능성은.

-그의 강한 우익 성향을 감안할 때 전후 일본이 평화를 위해 공헌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뿐 중국과 한국이 중시하는 침략 역사 반성이나 이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을 것이다. 침략 역사까지 부인하진 못하겠지만 역사 문제는 담화의 핵심이 아닐 것이다.

→중·일 관계에서 중국이 한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도 중국처럼 일제 침략 자료를 공개하기 바란다. 나아가 한·중이 함께 역사 자료를 공개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공개 포럼을 통해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도록 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 일제 만행 자료를 공개하는 것은 일본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겠다는 게 아니라 역사 직시를 촉구함으로써 한·일 관계를 더 잘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이기도 하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역사 문제 해결과 함께 일본의 올바른 자아 인식 정립이 필요하다. 일본은 한국이 자국보다 작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이 심한데 이 같은 편견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이 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나.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도 언젠가는 만난다. 그러나 한 번 만난다고 동북아 전체의 판도나 양국 관계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한·미동맹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역사 문제로 양국 관계에 대한 영향도 계속 받을 것이다. 이 틀은 바뀌지 않는다.

→최근 한·미·일 3국의 ‘북한 핵·미사일 위협 정보 공유 약정’에 대해 중국이 불만을 표출했는데.

-한·일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주도로 체결된 것으로 안다. 한국 측에서 볼 때 북한 핵·미사일 정보 공유는 북한을 상대로 한 것이지만 실제 운용에서 그 범위가 (중국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의 이웃인 중국 입장에선 자체 안전을 고려할 때 협약의 운용 범위와 내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한국 및 중국과 잘 지내기 위한 방법은.

-중국은 일본이 침략 역사를 사과하고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이 있음을 인정하길 원한다. 아베 총리가 침략 역사를 사과하고 영토 분쟁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중·한 양국 국민의 감정을 해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언행을 잘 통제해야 한다. 더 이상 중국과 한국을 자극해선 안 된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리웨이 소장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태어나 문화대혁명 때 허난(河南) 산간벽촌으로 하방(下放)돼 노동을 하다 광저우(廣州)어언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과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사회과학원 국제협력국에서 국장까지 지내다 2002년부터 일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주중 일본 언론인들 사이에서 온건한 일본관을 가진 학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중국의 주요 ‘일본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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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서울신문]

“새해에는 미국과 한국, 일본, 중국 등 각국 지도자들이 긍정적인 자세로 협력을 강화하길 기대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설립자이자 전 이사장인 에드윈 풀너(73) 박사는 지난달 27일 워싱턴DC 집무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신년 인터뷰 내내 ‘긍정적으로’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미국 내 최고의 동아시아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그러나 답변 중간중간 긴 한숨을 쉬며 숙고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 올해 동북아 정세가 평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5년은 한국 광복 70주년이고 한·일 수교 50주년이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인 한국과 일본 간 갈등과 차이를 보고 있으면 슬프고 힘들다. 그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워싱턴과 서울, 도쿄 사이에는 틈이 없이 함께 일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특히 6자회담에서 3국의 협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에 유화적이고 러시아는 다소 이상한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과 일본 친구들에게 미래를 향해 일하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를 권한다. 물론 한·일 간 역사적 논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과 일본은 공유한 이익이 많고 이는 미국과도 공유되는 만큼 더 긍정적으로 함께 일해야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개입)능력은 일본 내 주둔부대에 즉각 접근해 미군을 동원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렇게 우리가 공유할 것이 많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외교·안보적인 차원뿐 아니라 경제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미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해 왔고 3국은 최근 정보공유약정도 맺었다.

-나는 3국의 국방부·외교부 간 안보협력에 강하게 찬성하는 입장이다. 동북아에서 중국은 미국, 한국, 일본과 기본적으로 다른 이익구조를 갖고 있다. 한·미·일이 이익을 공유할 때 베이징·평양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3국이 가능한 한 긍정적인 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3국 간 미사일방어(MD) 협력도, 북한이 핵무기든 재래식 무기이든 정교한 공격 능력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억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지미 카터 정부 시절 주한미군 감축 추진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고 그 뒤로 의회 강경파는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 철수하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주 긍정적인 관계에 있고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서 북한의 그 남자(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를 다룰지 생각해야 한다.

→6자회담은 공전하고 미국은 대북 관계에서 ‘전략적 인내’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책은.

-전략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는 미·중 관계가 중요하다. 미국은 경험 많은 맥스 보커스 전 상원의원을 주중 대사로 보낸 만큼 중국이 평양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좀 더 구체적인 요구를 중국 지도부에 전달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6자회담을 막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예상보다 6자회담에 관심을 덜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러시아·중동 등 외교정책의 접시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은 미국이 앞으로 어디에 중점을 두는 것이 맞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지지한다. 아시아로의 회귀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이자 동시에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할 뿐 아니라 3국이 직접 또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이 돼야 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김정은은 고모부인 장성택 등 가족 및 군부 내 권력 경쟁자들을 제거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영리하거나 또는 영리한 측근들의 조언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를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비유하자면 아프리카 사냥터에서 동물이 궁지에 몰렸을 때 오히려 맹렬하게 반격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상황이 몇 년 전(핵실험 등)보다 더 악화되면 주변국들은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관계 회복에 나서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그런 행동을 수용할 수 없으니 관계를 아예 끊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남한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중장기 시도를 해왔는데 상당수는 어려움에 처했다. 무엇인가 시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의 정권 교체 또는 현 정권의 대내외 태도를 바꾸는 방안 등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 대통령처럼 기회에 대해서는 낙관적이고 싶다. 동시에 현실적이기를 원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위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좋지만 무엇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남북 간 협력이 가능한 구체적 분야를 찾는 ‘물밑 대화채널’이 가동되기를 희망한다. 김정은은 핵을 갖고 있어서 전 세계가 자기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금융제재나 중국을 통한 압박 등 광범위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1965년 내가 워싱턴 싱크탱크에 처음 몸담았을 때 옆 사무실 전문가가 ‘베를린 장벽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베를린 장벽이 생긴 지 겨우 4년이 지났을 때였다. 이는 많은 면에서 북한을 생각하게 한다. 북한도 영원할 수 없고 억압 정권하에서는 어딘가에 금이 생겨 평화로운 방법으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현명한 방법들을 찾음과 동시에 동맹국들과 함께 긴밀히 대처해 가길 바란다.

→한·미 동맹이 60년을 넘었다. 한·미 동맹에 대한 평가와 제언은.

-한국을 꾸준히, 자주 방문해 온 지난 40년간의 경험상 현재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정부 간, 군대 간 긴밀히 일하는 것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라 양국 국민들의 교류가 왕성해진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이제 한국을 세계적 수준의 생산국이라고 평가한다. 더 이상 일본의 소니·도요타가 아니라 한국의 삼성·현대차인 것이다. 앞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함께 일하고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동북아 평화협력 강화를 위한 제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전에 개인적으로 나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에 대한 나의 접근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주 긴 길 위에 작은 발자국들이니.” 동북아 국가 간에는 서로 다른 시각과 장벽이 존재한다. 이를 함께 극복하고 긍정적인 기회를 찾아가는 것, 작은 발자국들이 모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 리더들이 같은 방향의 많은 발자국을 쌓아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박 대통령, 아베 총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발걸음을 함께 내딛기를 희망한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에드윈 풀너 박사는

미국 싱크탱크계의 산증인이자 신보수주의그룹 리더로, 1973년 헤리티지재단을 세운 뒤 1977년부터 2013년 4월까지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현재 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에 자문하는 등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MBA)을 거쳐 에든버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자유의 행진’, ‘미국을 위한 리더십’ 등 8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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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특별 대담] 분쟁의 세계, 평화정착 방안을 말하다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구의 대립, ‘이슬람국가(ISIS) 등 극단주의자들의 준동,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반도에서도 냉전의 그늘은 가시지 않은 채 불안한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한겨레>는 세계대전 종전 70년과 한반도 분단 70년을 맞아 세계적인 평화학의 권위자인 요한 갈퉁과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새해 특별 대담을 마련해, 세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분쟁과 평화의 원인과 평화정착 방안을 들어봤다. 대담은 지난달 중순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폭력은 인간본성으론 설명 못해
협력적 구조·평화의 문화 만들면
북유럽·EU·아세안국가들처럼
전쟁은 거의 안일어나지 않을까


박명림(이하 박) 2015년은 비극적인 2차 세계대전 종전 70돌이 되는 해다. 지난 70년 동안 세계 초강대국 사이에는 전쟁이 없었지만, 여러 작은 나라들에서는 수많은 분쟁이 벌어졌다. 또 유럽과 북미는 평화로웠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들, 즉 동아시아와 중동, 동남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전쟁이 빈발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냉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평화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지난 70년의 세계 질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평화로운 시기였나, 충돌의 시대였나, 아니면 평화와 충돌이 병존했던 시기로 보는가?

갈퉁(이하 갈) 지난 70년동안 초강대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건 핵억지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미국이 소련에 대한 ‘예방 전쟁’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양국에서 수소폭탄이 나온 뒤로는 사라졌다. 세계는 대신에 한국전(1950~53년)이나 베트남전(1961~75년) 같은 치열한 대리전적 열전을 겪었다. 이런 전쟁들은 동시에 냉전 열강들이 분단시킨 나라를 통일하려는 민족주의 전쟁이기도 했다.

이 70년 기간은 1945~75년 사이에 탈식민 전쟁들이 벌어지는 등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3세계의 해방’을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3차세계대전’이 벌어졌고, 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카나키, 타히티 등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구 식민주의의 종언과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된 소비에트 제국의 종식, 1812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 된 1953년 한국전 휴전으로 시작된 미 제국의 종언 등은 평화를 향한 세 가지 거대한 움직임이었다고 본다.“

2차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자, 사상 최악의 비극이었다. 나는 그 전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낀다. 이 전쟁을 촉발한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왜 우리는 세계대전을 막는 데 실패한 것일까? 인간 이성의 한계였던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요인 때문인가? .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2차대전은 과연 세계대전이었을까? 유럽 거의 전부에서 벌어졌지만, 아프리카에선 소규모 해안지역에서만, 라틴 아메리카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전쟁에 휩싸였다. 이런 점에서 2차대전은 두 지역의 병행 전쟁이었던 셈이다. 하나는 대서양 전구에서 1939년부터 1945년 5월 8일까지 벌어진 전쟁이고, 또 하나는 태평양 전구에서 1931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이 중국 및 서구 식민주의, 미국 등과 맞붙은 전쟁이다. 미국은 두 전쟁에 다 참여했다.

미국은 주변부를 만들고
악마와 싸우려 한다
어제는 공산주의, 오늘은 테러
내일은 또 누구일까?


나치의 러시아인과 유대인 대학살 및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등을 비롯한 대참사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이 필요할 듯 하다. 전쟁을 일으킨 원인, 즉 ‘작동 원인’은 독일의 폴란드 침략과 일본의 만주·진주만 침략이었다. ‘물질적 원인’은 엄청난 양의 무기와 군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형상적 원인’은 동맹-협정-조약-제재 등이다. 그리고 독일과 일본이 추구했던 목표를 의미하는 ‘최종적 원인’이 있다. 독일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식민지로 만드는 유럽의 신질서를 욕심냈다. 일본은 대만과 한국,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팽창 야욕을 갖고 있었다. 유럽은 자신들의 식민지를 유지하고 싶어했고, 미국은 세계 패권을 갖고 싶어했다. 그리고 미국은 전쟁을 통해, 또 경쟁자들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이를 달성했다. 의도는 인간사에서 전체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법이다.

2차대전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전쟁의 목표를 병리나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또 중립과 비동맹을 통해, 급진적 군축 또는 최소한 수세적 방어로의 전환을 통해, 그리고 침략행위에 대한 병사들의 대규모 거부 등을 통해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러한 오래된 아이디어들은 과거에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전쟁은 막대한 비극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왜 그렇게 자주 전쟁을 벌이는가? 지도자의 일방적인 잘못된 욕망 때문일까, 아니면 근대국가와 세계 질서의 본질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이거나 인간 본성의 문제일까? 혹은 이런 여러 요인들이 복합된 것일까? 나 자신이 수많은 전쟁의, 수많은 원인을 탐구해오면서도 아직 해답을 얻고 있지 못한 문제다. 다만 나는 인간본성을 설명해온 성선설과 성악설이 전혀 진실이 아니라는 점은 인류의 여러 고전으로부터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다.

네 가지를 꼽고 싶다. 아니, 세가지로 축약할 수도 있겠다. 먼저 과거의 ‘직접적 폭력’은 승자의 영광과 패자의 외상-복수로 이뤄지는 전쟁이다. ‘구조적 폭력’, 즉 식민지들과 제국 간에서 벌어지는 것들은 정복과 해방을 동력으로 한다. ‘문화적 폭력’은 나머지 두 가지를 정당화한다. 다른 말로 하면, 군사적, 경제적, 종교-이데올로기적인 폭력이다. 이 세 층위는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지만 폭력의 정도가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된다.

시간과 공간, 역사와 지리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지만, 전쟁과 폭력은 먹을 것과 섹스 추구와 같은 인간의 내적 본성이 아니라 구조와 문화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은 잔인하게 행동할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있지만,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운명지워져 있지는 않다. 더 협력적인 구조와 평화의 문화를 만들면 북유럽의 노르딕 국가들이나 유럽연합(EU) 국가들, 아세안 국가들에서 보듯이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런 곳에서 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국가 시스템 그 자체라는, 구조적이고 주요한 원인을 더 이야기하고 싶다. 국가는 다른 국가를 위협으로 바라보고, 피해망상적이 되곤 한다. 타국의 최악의 측면에 자국 안보의 초점을 맞추고, 상호 동등한 이익을 위한 협력에는 방점을 두지 않는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과정이 목표”라는 당신의 평화이론은 20세기 평화학의 최대 성과로 불리웠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평화적 수단과 정당한 방식이 아닌 폭력과 살상의 방식으로는 인간은 결코 평화 상태를 달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통해 평화적 수단과 평화목적을 결합할 수 있을까?

평화적 수단과 평화에 관한 나 나름의 공식이 있다. 평화=(공평X조화)/(외상X충돌) 이다. 공식을 보면, 네 가지 기본적인 과제가 있다. 공평은 상호적이고 동등한 이익을 위한 협력을 말한다. 조화는 정서적 공명과 서로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많은 공감이 필요한 일이다. 화해할 수 없는 외상과 화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풀리지 않는 충돌이라도 반드시 풀어야만 한다. 이 네 가지 과제에 능한 커플은 능히 훌륭한 결혼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웃 국가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소련의 붕괴와 얄타 체제의 해체 이후, 유럽에서는 양극대치(냉전체제)가 종식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양극체제의 잔기는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런 차이는 두 지역에서의 냉전 구조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사이의 다자적이고 집단적인 구도였다. 그러나 후자는 미국과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일방적인 중심축(미국)과 바퀴살(동아시아국가들) 관계 체제였다. 이런 차이는 두 지역의 냉전 구조의 결정적인 차이였고, 이는 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냉전이 지속된 핵심기초가 되었다고 본다.

평화를 위해 우리는 다자주의와 양자주의가 모두 필요하다. 좋은 직접적 양자적 관계를 맺는 한편으로 그걸 넘어서는 다자기구가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은 오늘날 직접적 양자 협력을 일부 희생함으로써 다자주의와 양자주의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유럽의 냉전은 서기 395년 로마 제국이 서로마의 가톨릭과 동로마의 정교회로 분리된 사태와 더불어 시작됐다. 이 분리는 1054년 역사적 ‘분립’(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리)으로 이어진다. 동서 블록 사이에 여러 정상회담들도 열렸지만, 1975년 헬싱키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블록을 넘어서지 못했다. 요즘도 미국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당신 말처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미국주도의 중심축과 바퀴살 체제였다. 그러나 상하이협력기구가 현재 나토-미국-일본 연대에 맞서 균형을 갖추려하고 있다. 1945년 이래 유지돼온 미국의 세계 패권은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에서 모두 약해지고 있다. 다만 유럽에선 소련의 내부붕괴 뒤 미국과 유럽연합의 동진이 이뤄졌지만, 아시아 태평양에선 중국이 약진하면서 미국이 쇠퇴를 겪고 있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남북은 대화로 갈등해법 찾아야…통일은 그 다음 일이다”

과거사 극복 역시 지역 평화 구축에는 결정적이다. 유럽에서는 나치 유산 청산이 미래의 평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과거 전쟁범죄의 유산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즉 일본은 침략부인, 역사 왜곡,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거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문제, 영토 분쟁 등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독일문제와 일본문제가 초래한 차이가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왜 일본은 독일과 완전히 다른 걸까? 나는 전범국가 일본을 분단시키지 않고, 천황을 처형하지 않은 미국의 책임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중요한 문제다. 과거의 상처는 화해를 통해 치유되어야 한다. 왜 일본은 독일과 완전히 다를까?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미국과 영국은 해법의 공식을 찾아냈다. 잘못은 나치당의 리더십에 돌리고, ‘탈나치화’를 하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자살했고,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재건과 부흥을 이끈 주요한 건설자인 햘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는 무죄 방면됐는데, 그는 나치 당원이 아니었다. 아울러, 독일인들이 나치의 행위를 열광적으로 용인했다는 사실은 잊자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른다면 일본 도쿄전범재판에서도 미국은 일본인들을 수족으로 여기는, 태양 여신의 자손이라고 하는 신성한 천황국가의 신토 체제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천황 일가는 무죄를 받았고, 731 부대 죽음의 수용소 설립 등에 대해서도 무죄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좋은 양자적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 이상의 다자기구도 필요하다
미국의 세계패권은 약화됐다


일본이 저지른 잔혹행위들이 존재했다. 몇 년 전에 ‘평양 리스트’라는 게 있었는 데, 일본이 한국에 무슨 짓을 했는지, 일본에 조선인들을 끌고가 노예 노동을 시키고, 가축과 자원들을 약탈하고, 문화재를 약탈하고, 점령하고, 위안부를 끌고 가고, 조선인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였고, 일본 제국의 일부로서 분단되게 만들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이에 더해 제노사이드 학살을 저질렀다.

그러나 조심해서 봐야할 것이 있다. 누군가가 무엇 때문에 비난을 받을 때 일부는 진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며, 일부는 신화일 수 있다. 제 3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나요? 가스실에서? 난징에서 30만명이 학살 당했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위안부 여성들이 끌려갔다면 그들 중 일부는 돈을 받는 일반적 성매매 여성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진실만이 모든 이들을 해방시킬 것이고 평화를 만들 것이다. 중립적인 이들을 비롯해 모든 관련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조사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동아시아는 역내 교역과 경제협력은 거의 유럽연합(EU)과 북미 수준에 근접한다. 반면 역사화해, 영토갈등, 신뢰구축, 지역안정, 평화건설 면에서는 악화되고 있다. 일부 서구의 관찰자들은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더욱 심각했다. 유럽은 기독교, 이성, 산업혁명, 과학혁명, 의회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반면, 두 번에 걸친 세계전쟁을 포함해 제국주의, 나치즘, 파시즘, 인종주의, 홀로코스트 등을 자행했다. 나는 이를 ‘아시아 패러독스’보다 더 심한 ‘유럽 패러독스’, 또는 ‘유럽의 자기분열’ ‘유럽의 자기모순’이라고 불러왔다. 반면 오늘날 유럽은 이런 모순을 잘 극복하고 역내 통합과 평화를 달성하였다.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할 방법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유럽도 다른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모호하고, 중국의 음양이론이나 한반도의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순으로 가득하다. 유럽은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모순의 본질은 변화한다. 중국은 침략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인민해방군의 막대한 보병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진행된 미국의 포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는 동쪽으로, 미-일 안보동맹은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더욱 강화됐고, 사실상 한국과 대만을 포괄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을 방어하기 위해 고기술, 고비용의 현대적인 군대로 전환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태평양 쪽 근해에 해군을 가동하고 있지 않고, 멕시코에 기지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리고 유럽과 동아시아, 독일과 일본의 또 다른 주요 차이도 있다. 독일은 프랑스에 의해 (유럽)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초대 받았다. 미국도 이를 원했다. 나치 이후 유럽공동체 건설이라는 해법은 독일이 나치범죄에 대한 인정을 하면서 좀더 쉬워졌다.

문제해결 없이 화해를 하는 방법은 ‘평화화’하는 것뿐이다. 일본을 위한 해법은 과거에도 현재도 동아시아(혹은 동북아시아)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남북한과 두 개의 중국(중국, 대만), 다른 국가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코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일본 내의 냉전 강경파들도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을 동아시아(동북아시아) 공동체에 초대함으로써 일본이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게 더 쉬워지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일본의 과거 잔혹행위 명백하지만
제3자는 물을 수 있다, 진실을
중립적 인사를 포함한
국제적 조사위 못만들 이유 없다


전후 70년 동안 세계 최대 변화 중의 하나는 중국의 급속한 발전이다. 요즈음은 중국과 미국을 두 강대국으로 분류하는 ‘G2(지2)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개념에 동의하나?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세계화 이후 미국화와 중국화의 새로운 양극 경쟁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나는 중국은 아직 경제력만 강력한 준 글로벌 제국이며, 여전히 미국이 유일한 글로벌 제국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유엔에서 ‘비토권’을 가진 5개 나라에 독일을 추가한 G5+1 개념도 있고, 지금은 주요7국(G7)이 된 과거의 주요8국(G8), 그리고 주요20국(G20)과 유럽연합(EU) 28개국 및 유엔의 194개국이 있듯이, 세계질서에 ‘지2’의 면모가 있다는 건 의심할 수 없다. 이토록 많은 그룹이 있지만, 유일하다 할 수 있는 그룹은 없다. 나는 4개의 큰 나라와 4개의 지역, 곧 러시아-인도-중국-이슬람협력기구(OIC)-유럽연합(EU)-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미국의 8각형이 오히려 이해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은 대륙의 1인자가 적이라고 생각했다. 대륙의 1인자인 적은 한때 프랑스였지만 그들이 독일에 패배하자 독일이 적이 되었고, 러시아가 그들을 패퇴시키자 이번엔 러시아가 적이 되었다. 미국은 이 이론을 세계에 투사시켜, 러시아·중국과 전쟁을 벌여 둘 다 약화시키는 한편, 어느 쪽이 진정한 적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동맹을 얻었다.

미-중의 G2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서방 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라는 G2도 있고, 군사적으로는 나토·미-일 동맹 대 상하이협력기구라는 G2도 있다. 미국은 여전히 국내총생산과 군사비 지출에서 중국을 앞서지만, 중국은 인구가 더 많을 뿐 아니라 보다 중요한 문명화 시기 등에서 앞선다. 중국은 최소한 4천년 동안 여러 왕조가 이어져왔지만, 미국은 200여년 동안 원주민을 죽였을 뿐 그들 토착 문명을 연속적으로 발전시킨 게 없다. 중국에는 역사로부터 끌어올 수 있는 자산이 훨씬 많다. 이것은 미국을 절박하게 만들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게 만든다.

중국은 동서남북 세계를 ‘야만’으로 간주한 채 오랫동안 고립 속에서 지내왔지만, 1980년부터는 국제질서에 재빨리 참여해왔다. 미국은 과거에도 지금도 역사를 배척한 채 우주 속에서 지내왔으며, 항상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시작을 창조한다고 믿을 뿐,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인식하지 못한다. 중국은 긴 역사에 걸친 왕조이지만, 미국은 우주의 제국으로서 모든 힘을 사용해 주변부를 만들고 악마와 싸우려 한다. 어제는 공산주의자, 오늘은 테러리스트, 내일은 또 누구일까? 중국의 고위층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다. 우리는 조화와 상호 평등한 이익을 바란다.” 만약 중국이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복종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처럼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나는 매우 놀라게 될 것이다.

물론 한족중국(Han China)은 제국주의의 특성을 갖고 있다. 또 히말라야와 고비사막, 툰드라와 해양에 둘러싸인 중국엔 유교 사상이 있고, 이는 내가 말하는 6개의 중국, 곧 한족중국과 대만, 홍콩·마카오, 티벳, 위구르, 내몽골 뿐 아니라 베트남과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특히 북한은 중국보다 더욱 유교적인 나라가 됨으로써 살아남았다. 베트남은 2천년을 싸우면서 살아남았다. 중국은 이 모든 것을 현명하지 못하게 다루고 있는데, 러시아가 제국을 어떻게 포기했는지에서 배울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들에게 아주 새로운, 하지만 역사의 그림자들을 가진 채 자산과 조화를 나름대로 그릴 수 있는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평화의 궁극적 의미를 논의해보자. 평화논의는 그 자체가 이론이자 실천이라는 함의를 담는다. 즉 현실에서 평화실천과 평화건설이 부족하다는 점은, 달리 말하면 평화철학과 평화이론이 부족하다는 점을 뜻한다. 나는 평화의 목표와 방법을 적극적 평화, 생산적 평화, 포괄적 평화, 영구적 평화로 구분해왔다. 동시에 평화의 궁극적 목표는 국가간 평화가 아니라 개인 삶의 평화, 인간의 평안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는 마치 건강처럼 모든 좋은 것, 최고선을 의미한다. 우리는 평화에 만족한다.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 없으며 나쁜 것들이 만연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평화도 있다. 협력과 공감을 통하여 평등과 조화와 같은 좋은 것을 수반하는 번영과 안전의 결실을 내는 적극적 평화도 있다. 폭력에서 소극적 평화를 거쳐 적극적 평화로 가는 과정엔 조정이 필요한 다양한 조합이 존재한다. 항상 갈등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폭발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파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구 평화”는 포함시키지 않겠다. 최종적 상태로서, 영구평화라는 서구적 추상을 사용한 칸트는 틀렸다. 건강을 위해 항구적으로 노력하듯이 평화가 항구적인 과정은 맞지만, 항구적인 건강은 있을 수 없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두 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둘 다 강제력인 아닌 헤게모니에 바탕한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제국은, 강권에 기반했으나 단명했던 과거의 몽골, 독일, 일본, 소련 제국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다면 두 제국 아래에선 동아시아의 장기평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다른 국가의 관계는 군사동맹에 기초해 있지만, 중국은 상호 평등한 이익을 위한 거래에 기초한 것처럼 보여 전혀 다르다. 나는 정복 대 헤게모니의 구분 보다는 군사적 확장의 유무로 구분하고 싶다. 미-중 공동 제국은 부재한 채, 평행관계 속에서 상당한 협력적인 관계가 있을 뿐이다. 미국은 저가 양질의 중국산 물건이 하위 70%의 국민들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은 전세계에 다른 고객들이 널려있다.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쿠바를 통해 오랜 뒷마당인 남미로 돌아가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화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의 하나는 내부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동아시아에서는 심각한 퇴영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후퇴는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갈등을 내장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일당 통치국가다. 중국의 지도부는 많은 경우 2대, 3대 세습자제들이며, 북한은 3대세습 독재국가다. 동아시아의 민주국가 일본과 한국의 후퇴 역시 심각하다. 일본은 1급 전범의 3세가 집권하였으며, 과거 인정과 반성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한국 역시 군사독재자의 2세가 집권하여 민주화 이후 선도하던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평화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상실하였다. 이런 내부 역행 속에 상호갈등 역시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지속 가능한 평화를 결합하는 문제는 결코 용이하지 않다.

요한 갈퉁 전 베를린대 교수
내부 문제와 국제관계는 앞서 얘기한 평화 공식의 네 가지 면을 통해 연결되며, 이는 민주정과 독재정에 모두 열려있다. 독재정치체제도 네 가지를 모두 갖출 수 있다. 예컨대 북한도 더 높은 수준의 교역을 추구할 수 있고, 남북한 전체 민족 공동체에 대한 깊은 정서적 유대가 있으며, 1945~1953년 갈등과정을 명확히 하기 위한 국제위원회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해상 경계에 대한 분란도 노르웨이-러시아처럼 ‘회색지대’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이를 정책적으로 추진할 수 있지만, 또한 파괴적 정당은 이러한 의제들이 복잡하고 모호할수록 투표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 결국 이는 무엇을 할지 알고 그것을 바라면서 실천하는 문제다. 오늘날 남한과 북한은 모든 문제들을 직접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만 해도 다른 네 나라는 각자의 의제가 있어 두 한국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최근 쿠바와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 이로 인해 이제 북한은 예외적으로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고 지구상에서 최강대국에 의해 최장기간 봉쇄를 당하고 있는 나라가 됐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적대국가였던, 소련, 중국, 베트남, 서독, 일본 등과 미국의 관계개선 역사에 비추어 보아도 두 세대를 넘는 북-미 적대는 예외적으로 길다. 나는 북-미 관계도 당연히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통해 쿠바에 대해 50여년 동안 추진된 나쁜 정책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그러나 사실 다른 사례들도 행정명령들을 기다리며 줄을 섰다.

북한의 경우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평화협정과 외교관계를 맺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도 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인정해야 한다. 2002년 아랍연맹의 제안, 그리고 1967년 6월 이스라엘 문제(3차 중동전쟁 뒤 서안지구 점령) 등이 다뤄져야 한다.

마지막 문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민주화와 남한의 내부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비관적이다. 북한의 민주화는 아직 가능성이 높지 않다. 나아가 남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심각한 분열과 갈등은, 이 정도의 차이도 수용하지 못하면서 북한의 적대세력과의 공존과 통합을 의미하는 통일을 과연 추진할 수 있을까 크게 걱정하게 한다. 독일의 통일은 물론 유럽통합과 평화구축도 사실은 전후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믿게 된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에 기초한 다당체제라는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역할을 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여전히 금융통치, 부패통치, 기술통치와 단일정당 독재 등에 대해 취약하다. 민주주의는 체제의 평화적 이행에 좋다. 그러나 북한은 부자세습이라는 오래된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근본주의 나라다. 남한도 일면 그런 점을 갖고 있다. 남북한을 너무 다르게 보지 않는 게 좋다. 투명성과 합의를 향한 끊임없는 대화라는 점에서의 민주주의는 또 다른 문제다. 남과 북은 모두 그 문제에서 부족하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

통일과 북한국경의 개방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크게 필요한 과정으로서, 이 정상화는 북한을 보다 정상적이고 덜 병적인 나라로 만들 것이다. 구체적 사항들은 남과 북이 도출해내야 한다. 남과 북의 통일은 나중의 일이다. 아마도 처음엔 국가연합, 그리고 코리아 공동체, 다음엔 연방을 거쳐, 마지막엔 남북 국민이 원한다면, 하나의 통일국가가 될 것이다.

정리/손원제 김외현 기자 wonje@hani.co.kr

대담자 약력

요한 갈퉁은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세계적 석학이다.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오슬로대·베를린대 교수를 지냈으며, 지금은 세계 곳곳을 돌며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평화와 관련된 주제로 150권 이상의 책과 1500편 이상의 논문을 썼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 한-미 관계, 해방 전후 한국정치 등에서 돋보이는 연구 성과를 보여왔으며,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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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 컬럼비아大 교수]

유엔과 함께 새 경제목표 제시 - '지속 가능한 발전'에 무게

환경 오염 주범인 美·中도 탄소배출 종량제 동참 앞둬… 반기문 총장이 큰 역할 해내

문제는 '富의 불균형' - 절대 빈곤 인구는 줄었지만

美 등 부자 위주 정책으로 세계경제 위험 요인 키워


"자본주의는 이제 성장만을 위한 성장, 오로지 부(富)를 축적하기 위한 성장은 지양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사회적 책임과 문화 발전, 환경 보존 등 다양한 가치를 함께 성장시키는 '지속 가능한 성장' 단계로 이행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는 2015년을 자본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삭스 교수는 새해를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세계는 지금까지와 다른 성장 모델을 도입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맡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약자와 빈민 안고 가야

삭스 교수가 올해를 '자본주의 업그레이드 원년'이라고 지목한 이유는 유엔이 오랜 기간 준비해온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SDG는 반기문 총장과 삭스 교수 주도로 유엔이 새로 개발 중인 세계경제 발전 목표다. 지난 2000년 도입됐던 '새 천년 발전 목표(MDG)'가 올해 종료됨에 따라 이를 대체해 향후 15년을 이끌 국제사회의 새 '발전 강령'이 바로 '지속 가능 발전 목표'이다.

삭스 교수에 따르면 SDG에 기반을 둔 새 자본주의는 '경제 성장이 사회적 책임과 환경 보존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선진국 간 경쟁적이고 파괴적인 제로섬 성장에서 벗어나 약자와 빈민을 안고 가는 '착한 성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삭스 교수는 SDG가 가능한 근거로 올 12월 열리는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지목했다. 그는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미국과 중국이 마침내 협약에 동참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며 "전 세계가 참여하는 탄소 배출 종량제가 실시됨으로써 자연히 SDG형 성장의 시대로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이 과정에서 반기문 총장의 역할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 총장이 10년 동안 조용하지만 뚝심 있는 행보로 강대국들의 SDG 참여를 이끌어냈다"면서 "이것만으로도 반 총장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삭스 교수는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취임 초기부터 경제 개발 특별자문관을 맡았고, MDGSDG 추진 단계에서 반 총장의 '멘토' 역할을 해왔다.

한국에 대해선 "빈곤 퇴치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반 총장이나 김용 세계은행 총재처럼 한국 출신 글로벌 리더들이 늘어나면서 세계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리더 역할을 더 많이 해주길 기대한다"면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주도로 아시아·아프리카에 '새마을운동' 같은 성장 노하우를 수출한 것은 선진국 사이에서도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절대 빈곤층 줄었지만, 부의 불균등은 심화

줄곧 빈곤 퇴치를 위해 힘쓴 삭스 교수는 "최근 15년 사이에 세계의 절대 빈곤 인구는 전체 35%에서 17% 선까지 떨어졌다"며 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빈곤이 줄어든 대신 부(富)의 불균등한 분배와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 세계경제의 리스크(위험 요인)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삭스 교수는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특히 부의 불균등 분배 문제가 심각하다"며 "1980년 이후 세계화와 기술 변화로 인해 서민 경제가 힘들어지고 양극화도 심해졌다"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부자 위주의 정부 정책이 부의 불균등을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삭스 교수는 "정치인은 돈줄 쥔 사람들을 위해 각종 세금 감면, 사회보장 축소, 금융 규제 완화 같은 잘못된 정책을 남발했고 이 때문에 소득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온난화, 섭씨 2도 넘기면 위험

빈곤과 함께 자신의 주요 관심 분야인 환경 보호에 대해서는 좀 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삭스 교수는 멀리 내다봤을 때 세계경제의 가장 위험한 리스크는 지구온난화라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평균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올라가면 극지대의 영구 동토층(凍土層)이 녹으면서 수만년간 갇혀 있던 메탄가스가 방출된다"며 "이렇게 되면 농경지 오염과 바닷물의 산성화가 급속히 일어나 농·수산업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수산업의 실패로 곡물·식량 가격 폭등 현상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쌓아 온 공든탑마저 무너져 버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제프리 삭스는…]

"경제학은 후진국 위해야"빈곤·질병 퇴치 등 앞장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선진국의 발전 논리에 맞추기보다 후진국의 빈곤·질병 퇴치에 활용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 성향 경제학자이다. 빈곤 퇴치·개도국 지원·탄소 배출량 감소 운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당시엔 거리에 나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상위 1%가 부를 독점하는 현 자본주의 체제는 잘못됐다"고 강연했다. 한국 외환 위기 당시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린 고금리 처방이 부당하다며 강력하게 비판해 주목받았다. 저서 '빈곤의 종말'(2005)에서 극단적 빈곤을 끝내고 선진국과 후진국이 더불어 잘살 수 있는 해법을 제시했으며, 뉴욕타임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꼽았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28세에 종신교수직을 보장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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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Cover Story] "기업 아닌 사람을 보호하라… 새 기업 생기도록"

  • 최현묵 기자 입력 : 2015.01.03 03:02
  • 한국이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하려면?… 폴 로머 뉴욕대 교수의 조언
    “특허 개수는 혁신의 성공지표가 아니다 새 기업에 밀려나는 대기업 숫자를 보라”

    정부 주도 발전국가 모델 추격자 단계에서만 효과
    기존 대기업 보호하면 새 기업·혁신 발생 어려워 경제 전체 위기 처하게 돼
    기업 진입 장벽 낮춰야 선도자 단계 경제 가능

    무너진 장벽…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월마트·타깃, 美유통시장 진출해 유통 비용 확 낮추며 혁신 이끌어…
    시어즈 등 기존 대기업들 밀어내

    ‘지식 독점’ 욕심 내려놔야 혁신 생겨
    美정부, 셰일가스 채굴 정보 공개 최고의 채굴법 빠르게 확산되고
    송유관 독점 막아… 모두에 개방

    2015년 유로존, 불황에 빠질 위험
    독일, 南유럽 구조 개혁 방법으로 노동비 줄이는 ‘장기불황 전략’ 채택
    “윤리적 문제 있어… 반발 불러올 것”

    폴 로머 교수는 정통 경제학자와 전 세계 빈곤 퇴치운동가라는 두 가지 가치를 함께 추구해왔다. 지난달 플라자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시종일관 성실하고 열정적인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폴 로머 교수는 정통 경제학자와 전 세계 빈곤 퇴치운동가라는 두 가지 가치를 함께 추구해왔다. 지난달 플라자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시종일관 성실하고 열정적인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남강호 기자
    30대에 경제성장에 관한 새로운 이론으로 경제학의 지평을 바꿔 놓은 천재 학자, 노벨 경제학상 단골 후보,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의를 거절하고 후진국 개발 운동에 나섰다가 '신식민주의자'란 비판을 받은 이단아.

    폴 로머(Paul Romer·60) 뉴욕대 교수에겐 늘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런 대단한 인물을 만난다는 긴장감은 그를 만난 지 5분 만에 눈 녹듯 사라졌다. 첫인상은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했다. 오전 7시 30분쯤 서울 플라자호텔 로비에서 만나자마자 그는 "우선 아침 식사부터 하자"며 식당으로 이끌었다. 전날 부산에서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한·아세안 CEO 서밋'에 참가하고 밤에 서울로 이동한 다음 날이라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10대 소년처럼 눈빛이 반짝였다.

    그가 과거 로체스터대 조교수로 있을 때였다. 임용 후 3년이 지나도록 논문을 한 편밖에 내놓지 못하자 교수 회의에서 재임용은 시켜주되 구두 경고를 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일반균형이론으로 유명한 원로 교수 라이어널 매킨지가 "폴이 평범한 논문을 양산하는 학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 지금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만류했다. 과연 그는 임용된 지 5년이 지나 지식의 상품화와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임을 규명하는 '내생적(內生的) 경제성장 모형'을 발표하면서 세계 경제학계를 흥분시켰다. 로머는 이 논문이 화제를 부르면서 모교인 시카고대 정교수로 영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 세계 빈곤 퇴치와 저개발국 도시화 운동에 앞장서는 행동가로도 유명하다.

    추격자에서 선도자 되려면 더 많은 경쟁을 허용해야

    ?많은 사람이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발전의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습니까?

    "어느 경제건 추격자(follower) 단계에선 급속 성장을 하지만 선도자(frontier)에 접근하면 항상 성장률이 낮아지기 시작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저성장에 실망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성공을 이뤄낸 국가에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신호입니다."

    로머 교수는 선진국이란 용어 대신 선도자란 용어를 사용한다. 다른 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해도 혁신할 능력이 없으면 선진국은 될지언정 선도자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선도자로 가기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경제 운용의 스타일이 변해야 합니다. 각 부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더 많은 경쟁이 일어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추격하는 동안에는 소위 '발전 국가 모델'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성장을 유도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무시하고 국가 개입 성장 모델을 추구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저는 아시아 국가들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모델이 선도자 국면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미국 통신 시장을 예로 들었다.

    "미 정부는 1984년 AT&T를 수십 개의 지역별 통신회사(베이비 벨)로 해체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두려워했지만, 그 결과는 놀라운 진보였습니다. 애플, 퀄컴 같은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하고, 구리선 대신 광(光)케이블 시대가 열렸습니다. 때로는 친숙하지 않은 것을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선도자로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일본은 소득과 도시화 수준이 높고, 뛰어난 기술들을 개발해 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자유와 경쟁을 촉진하는 단계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스타트업이 거의 없고, 젊은이들에게 기회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비 은행, 좀비 기업은 기존 기업을 보호하려는 '보호 충동(protective impulse)'의 증거입니다."

    ?한국도 창업 기업이 커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기존 기업들을 보호한다면 새로운 기업이나 새로운 혁신이 발생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기업을 보호하기보다는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기업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을 보호하려다 보면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핀란드의 노키아를 봅시다. 만약 노키아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경제적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면 노키아의 쇠락과 함께 경제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한국 정부가 교수님에게 혁신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묻는다면 뭐라고 충고하시겠습니까?

    "정책의 핵심은 성공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저라면 혁신 정책의 성공 지표로 특허에 집중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률을 지표로 삼을 겁니다. 나아가 새로운 기업에 밀려 도태되는 기존 대기업의 개수를 성공의 신호로 생각할 겁니다. 미국 소매업은 월마트와 타깃이 진입해서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특허는 당신의 시스템이 이런 종류의 새 기업들을 허용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기업보다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로머 교수의 말은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던지는 경고로 들렸다.

    ?한국 경제도 너무 삼성에 의존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삼성은 매우 어려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소니는 한때 소비자 가전에서 최고였지만 시장 환경이 변하면서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삼성이 잘하고 있지만, 그 시장은 매우 경쟁적입니다. 심지어 애플조차도 10년 후에는 소니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선도자가 되려면
    정부가 규칙을 바꿔라, 혁신이 촉진되리니

    ?내생적 성장 이론에서 교수님이 강조한 ‘아이디어’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내생적 성장 이론의 요점은 정부가 정책 변화를 통해 더 빠른 혁신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겁니다〈키워드 참조〉. 내생적이란 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규칙이 변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중국은 왜 미국처럼 셰일가스 산업이 빨리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미국보다 중국에서 이 분야의 지식재산권이 더 강하게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수많은 중소 셰일가스 생산자는 셰일 유정을 채굴할 때 매번 새로운 방법을 실험합니다. 모래 양을 달리해서 얼마나 많은 석유를 얻어내는지 알아보는 겁니다.(셰일가스는 대량의 물과 모래, 각종 화학 물질을 혼합한 용액을 지하 퇴적암층에 쏘아 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생산된다. 이때 혼합 비율이 중요하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이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합니다.(미국은 대부분 주에서 셰일가스 생산 과정에서 상수원 오염 등을 우려, 셰일가스 채굴에 사용되는 용액의 구성 물질과 혼합 비율을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2010년 와이오밍주가 최초로 강제한 이후, 다른 주들도 비슷한 규제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모든 셰일가스 생산자가 더 좋은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중국에선 정부가 국영 석유회사들에 독점적으로 채굴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식을 독점하지 않은 게 혁신을 낳은 셈이네요.

    “그렇습니다. 셰일 산업 발전은 얼마나 시장이 위대한가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동시에 얼마나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지도 보여줍니다. 의도했건 아니건 화학 물질 공개가 지식을 공유하도록 해서 관련 산업의 혁신을 가능케 한 겁니다.

    셰일 산업이 발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송유관입니다. 미국 정부는 셰일가스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전국에 깔린 송유관을 대기업이 독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일종의 공공재와 같았기 때문에, 다코타든 펜실베이니아든 미국 어느 곳에서라도 석유를 생산한 사람은 누구나 송유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소업체들도 대기업과 경쟁하며 가스를 전국에 팔 수 있었습니다. 전사적 품질 관리(TQC)나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의 예를 보면 지식의 확산이 우리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린 생산 방식으로 잠시 동안은 도요타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것이 확산되면서 모두가 따라 하게 됐고, 모두의 생산성이 증대됐습니다. 지식의 확산이 한쪽에 해가 되는 전쟁과 달리, 경제적으로는 지식 확산이 모두를 더 나아지게 합니다.”

    ?내생적 성장 이론은 풍요로운 사람이 많아지면 더 많은 아이디어가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불평등이 성장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불평등은 발견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 부작용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디어 발견자(혁신자)가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난 이게 맞는 얘긴지 모르겠습니다. 2차대전 동안에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은 수많은 중대한 발견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발견들은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애국심과 같은 뭔가 다른 목적에서 나온 겁니다. 돈 이외 많은 것이 사람들에게 동기가 됩니다. 자선 사업가에겐 세상을 더 좋게 만들자는 동기, 대학교수에겐 위신입니다. 그런 위신 때문에 당신 같은 기자들이 아침부터 호텔로 찾아와서 인터뷰하는 게 아니겠어요(웃음)?”

    ?미국은 부자도 많고 불평등도 심합니다.

    “맞습니다. 미국은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동시에 혁신적입니다. 불평등이 심화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작은 정부를 주장하며 세율 인상 제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작은 정부’를 지지합니까?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역사적으로 진자 운동을 거듭해 왔습니다. 대공황 후 사람들은 시장경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지 우려가 컸습니다. 이로 인해 20세기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는 정부가 경제 통제 면에서 극단적으로 강한 정부 형태였습니다. 이후 20세기가 진전되면서 우리는 정부가 경제에 훨씬 적게 개입해도 여전히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있다는 걸 깨닫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반적으로 20세기 문제가 너무 강한 정부였다면, 21세기 문제는 너무 약한 정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겁니까?

    “정부의 역할에 대해 대립하는 양 진영이 있습니다. 한쪽은 정부가 전혀 필요 없다는 쪽이고, 다른 쪽은 정부가 마치 건축가처럼 빌딩의 모양을 결정하고 창문의 개수까지 미리 결정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나는 중간입니다. 어떤 분야에선 정부가 계획해야 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계획은 세부적인 면에는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 역할은 도시 계획 입안자들이 갖는 정도의 권한보다는 훨씬 작아야 합니다.”

    로머 교수는 사업가 경험도 갖고 있다. 스탠퍼드대 교수 시절인 2000년 온라인 교육 기업을 창업해 키운 뒤 2007년에 매각했다. 교과서는 무료로 배포하되 숙제 문제들은 온라인으로 올리고 유료로 만든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많은 창업을 유도하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게 더 나은 방법입니다. 창업 절차를 쉽게 만드는 등 법적 규제를 완화하고, 창업가가 되려는 학생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유망 스타트업을 선정해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런 것은 정부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정말 걱정된다

    ?2015년 세계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글로벌 금융 위기로 동조화 현상이 나타났었는데, 지금은 차별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회복되고 있으나, 유럽과 일본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고,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불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유로존은 또 다른 불황에 빠질 심각한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정말 유럽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점진적으로 성장률을 낮추는 현실주의적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중국은 금융 위기 때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제대로 된 부양책을 썼고, 이번에도 잘해낼 거라고 봅니다. 금융시장, 자산 시장은 변동성이 더 커질 겁니다.”

    ?유럽을 왜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독일은 그리스 등 유럽 남부 주변부 국가들의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인 불황(prolonged recession)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구조적 개혁을 이뤄낼 유일한 방법은 고통스러운 불황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독일은 아무도 세금을 내려고 하지 않는 그리스의 문화를 바꿀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불황을 겪도록 하는 게 그런 문화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큰 고통을 가져오는 그런 방법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 반발을 가져올 겁니다.”

    실험 도시 프로젝트

    로머 교수는 기발하면서도 거대한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차터시티(Charter City)’ 캠페인이 그것이다〈키워드 참조〉. 개도국 내에 하나의 섬과 같은 모델 도시(enclave)를 만들어서 선진국의 법 제도를 적용하는 실험이다.

    ?차터시티 내에선 행정권까지 선진국 정부에 위임하는 일종의 모델 도시를 만들자고 주장하셨는데, 개도국이 국가 운영을 잘 못한다고 해서 주권까지 제한하자는 말씀입니까?

    “선진국들이 매년 수십억달러씩 원조를 하지만 개도국의 발전이 더딘 건 제도상 문제 때문입니다. 반면,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선진국의 법 제도와 자유시장 경제를 갖춘 투명하고 효율적인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차터시티에는 누구나 이주할 수 있게 하되 일부 권리는 유보하고 사회복지 혜택도 최소화해야 투자자를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통치자는 예를 들어 캐나다나 영국 등 선진 민주 정부가 임명하도록 하되, 법에 의한 지배, 위생적 환경,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하는 겁니다. 매년 수십만, 수백만명이 정치적 이유나 경제적 이유로 모국을 떠나 불법 이민자로 세계를 떠돕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차터시티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차터시티 이주자들은 도시에 들어온 순간 이미 발로 투표한 겁니다. 개도국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제도를 선진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입니다.”

    ?동료 학자들조차 교수님을 ‘신(新)식민주의자’라고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추진할 땐 그런 비난에는 개의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결과입니다. 개도국의 수많은 사람에게 삶을 향상시킬 기회를 주는 것, 독재자들에게 ‘당신의 국민이 모국을 떠나도 충분히 자유롭고 잘 살 수 있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비난도 감수할 겁니다.”

    한 경제학자의 공상으로 보이던 차터시티는 두 차례에 걸쳐 실현 직전까지 갔다. 2009년엔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이 로머 교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고 시행을 추진했으나, 쿠데타로 정권이 무너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이어 2010년엔 온두라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해당 도시 선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차터시티의 운영을 맡아야 할 선진국들이 ‘신(新)식민주의’란 비판을 두려워해 로머 교수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게다가 온두라스 정부가 로머 교수를 배제한 채 미국 투자자와 자유경제구역 개발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자 로머 교수는 손을 뗐다.

    그러나 로머 교수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 로머 교수는 기자에게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 지대에 차터시티를 건설하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흥미 있는 아이디어”라고 답하자 그는 “관심이 있으면 전화나 이메일을 하라. 언제든 환영한다”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그의 마지막 인사는 “뉴욕에 오면 꼭 연락 달라. 우리 함께 이 아이디어를 토론하자”였다.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
    경제성장에 있어 기술을 미지의 외부 요인(외생 변수)으로 간주하던 통설을 깨고, 연구개발(R&D)과 같은 의도적 노력을 통해 축적된 기술이 성장을 좌우한다는 이론이다. 전통 경제학은 노동과 자본이 생산량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봤으나, 내생적 성장 이론은 아이디어(기술)를 더 중요한 요인으로 부각시켰다. 아이디어는 기술뿐 아니라 기술 발전을 가능케 하는 문화적·제도적 측면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

    ☞차터시티(Charter City) 캠페인
    개도국 내에 선진국의 법·제도를 이식한 모델 도시를 투자를 유치해 만든 뒤 제3세계 이주민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제공, 개도국의 성장을 촉진하자는 캠페인.

    폴 로머 교수는
    ‘기술이 성장을 좌우한다’는 내생적 성장론으로 돌풍 온라인 교육기업 창업도


    로머 교수가 걸어온 길은 통념에 대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의 내생적 성장 이론은 경제성장에 있어 기술을 미지의 외부 요인으로 보던 통설을 깨고, R&D 등을 통해 내적으로 양성된 기술이 성장을 좌우한다는 내용으로 경제학계를 뒤흔들었다. 폴 크루그먼 교수가 “198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1990년대 성장 이론 연구자들은 상당수 로머의 통찰에 기반했다.

    2000년에 그는 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온라인 교육 기업을 창업해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가 회사를 키워 지분을 매각하고 나온 2007년 세계은행은 그에게 수석 이코노미스트 자리를 제안했다. 로런스 서머스,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스타 경제학자들이 맡아온 자리다. 그러나 로머 교수는 이를 거부하고, 기발하고도 대담한 구상을 주창하는 행동가가 됐다. 개도국에 하나의 섬과 같은 모델 도시를 만들어 선진국의 법·제도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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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보이지 않는 선진화의 벽… 인문·예술·과학 통찰력으로 뛰어넘자"

     

  • 정리=이위재 기자 입력 : 2015.01.03 03:02
  • 개원 앞둔 '21세기 사숙'건명원… 인재 육성 맡은 석학들 放談
    최진석 교수 - 남들이 만든 걸작 숭배만 말고 질투의 힘으로 '스승' 넘어서야
    김대식 교수 - 한국은 아쉽지만 '카피 국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질문해야
    배철현 교수 - 햄릿 모르는 것만 無識이 아니야 미적분 차이 몰라도 부끄러운 일
    김개천 교수 - 남들이 만든 세상 비평하지 말고 직접 참여해서 세상을 만들어야

    벽 앞에 선 대한민국, 이 벽을 넘어서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인문·예술·과학 등 각 분야 석학들이 모였다. 미래 세대에게 이 벽을 넘어설 통찰력을 전수하겠다는 게 목표다. 배철현(서울대 종교), 최진석(서강대 철학), 김성도(고려대 언어), 김개천(국민대 디자인), 서동욱(서강대 철학), 김대식(KAIST 전자전기공학), 정하웅(KAIST 물리) 교수와 더불어 주경철(서울대 서양사) 교수가 의기투합했다. 청년들을 위한 사숙(私塾) '건명원(建明苑)'을 만든 것.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란 뜻이다. 이 사숙에서 19~29세 청년 30여명을 뽑아 1년 동안 인문·과학·예술에 대한 사유의 기초를 가르쳐 스스로 벽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인재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자는 게 포부다.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이나 옥스퍼드대가 고전 중심 교육과정을 현대화한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수준을 넘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맞게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예술을 융합해서 가르칠 예정이다. 개원(開苑)에 앞서 배철현, 최진석, 김대식, 김개천 교수가 나눈 방담(放談)을 요약했다.

    '건명원' 개원을 앞두고 앞으로 강의를 맡을 교수들이 지난달 조선호텔에 모여 '벽 앞에 선 대한민국, 이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이날 김대식, 최진석, 배철현, 김개천 교수(왼쪽부터)가 참석했다. / 김지호 기자
    '건명원' 개원을 앞두고 앞으로 강의를 맡을 교수들이 지난달 조선호텔에 모여 '벽 앞에 선 대한민국, 이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이날 김대식, 최진석, 배철현, 김개천 교수(왼쪽부터)가 참석했다. / 김지호 기자
    최진석 한국은 지금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문턱에 서 있다. 그런데 바로 앞에 보이는 선진국이란 고지는 잡힐 듯 말 듯 가까워지지 않는다. 뭐가 잘못된 걸까. 커다란 벽이 서 있는 느낌이다. 돌아보면 한국은 넘어야 할 벽들을 착실히 넘었다. 해방과 건국, 빈곤에서 벗어나는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 시대의 과제들을 무난히 완수했다. 그런데 이런 과거의 벽들은 구체적이고 눈에 보였지만, 선진화라는 벽은 그렇지 않다. 선진, 선도, 창의, 상상, 장르, 개념을 창조하는 지성적이고 인문적인 돌파력을 가져야만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돌파하는 노선(路線)을 찾기 쉽지 않다. 지금은 틀에 갇힌 사람들끼리 모여 각자 자기 주장만 할 뿐, 함께 이 틀을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상승하려는 꿈을 만들고 공유하려는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美영화 '인터스텔라'통해 본 사유의 깊이

    김대식 세계를 오리지널과 카피(copy) 나라로 나눌 수 있다면 한국은 아쉽지만, 카피 국가에 머물고 있다. 오리지널의 아우라(aura)를 갖지 못한다. 선진국이 만든 오리지널과 비슷한 카피를 만들어 열심히 팔아왔던 게 부끄럽지만 솔직한 과거 우리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과학에서 노벨상, 경제에서 창조 기업, 정치에서 독자적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외부 기운에 의존하며 살았다.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노벨상(일본 22명, 한국 1명)이나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일본 7명, 한국 0명) 등 선진국이란 위상에 걸맞게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이 없다. 애플과 비교한 삼성의 창조력 현황,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아무 주도권을 발휘하지 못하는 외교력도 이런 알맹이 없는 공허함을 반영한다. '우리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거야?'라는 질문을 서로 나눠 가져야 할 때다.

    최진석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지니는 선진국으로서 사유의 깊이와 폭을 절감할 수 있다. 시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그 사유를 화면에 풀어내는 힘은 제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해보지 못한 나라로서는 감히 시도해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언제까지 이렇게 남들이 만든 걸작을 손뼉 치고 숭배하면서 살 수만은 없다. 존경은 그만하고 질투가 필요하다. 질투가 힘이 되어 스승을 넘어선 제자의 각성이 나타나야 할 시점이다. 다행스러운 건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면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를 정확히 읽어내면 실마리가 보인다. 세계를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인식하면 출발선이 어딘지는 알 수 있는 법이다.

    배철현 그 출발선을 인문, 과학, 예술을 통합한 교육을 통하여 찾고자 한다. 인간의 창의는 가치, 의도, 미(美)적 판단, 사회적 정서, 그리고 개인 의식 수준과 긴밀하게 작용하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예술과 인문학도들도 수학·과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인문·예술에 해박하면 수학·물리학은 몰라도 되는 줄 착각했지만, 우주를 설명하는 수학적 공식은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나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만큼 숭고하고 심오하다. 햄릿을 모르는 것만 무식한 게 아니다. 유전자와 염색체, 미분과 적분의 차이를 모르는 것도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인문·과학·예술 통섭하는 지식인 양성

    김개천 조선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은 이 모든 학문에 통달한 존재를 가리켰다. 선비는 문사철(文史哲)뿐 아니라 시서화(詩書畵)와 의술(醫術) 등 자연과학, 무술(武術)까지 능통한 전체적 인간이 되려 했다. 이 시대 예술과 디자인은 특정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잠재력을 일깨우고 창조적 영토를 제공하려 했다. 앞으로 이런 지식인 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자라는 식으로 규범을 내세울 게 아니라 삶의 매 순간 자신에게 몰두해 보는 게 중요하다. 이러면 오히려 정서적 안정을 통해 자유롭고 예술적인 삶이 가능하다.

    배철현 디지털 혁명은 기술과 창조적 산업이 융합하면서 탄생한다. 창조적 산업이란 미디어, 패션, 음악, 엔터테인먼트, 교육, 문학, 예술, 종교, 철학 등에서 발견될 수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혁신은 과거의 산물들, 책이나 신문, 잡지, 노래, TV, 영화 등을 디지털과 접목하면서 이뤄졌으나, 이제는 기술과 창조적인 인문학, 예술과 상호작용을 통해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를 지닌 미디어를 탄생시킬 것이다. 이 혁신은 아름다움을 공학에, 공학을 인문학에, 시(詩)를 컴퓨터에 연결시킬 능력이 있는 자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혁신가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또는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진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따르는 영적이며 정신적인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글로벌 지적 향연에 동참할 수 있어야

    김대식 이런 이질적인 학문들이 한 존재 내면에서 충돌하면서 새로운 사유의 틀을 만들어낼 때 그 마찰열은 창조의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 영국과 미국 정치인들이 만나서 어떤 얘길 할 것 같은가. 교양과 사유를 통해 다져진 그들의 내공은 남다르다. 영미 엘리트들은 주요한 대화 주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공감대가 대화와 협상에서 편을 가르는 기준이다. 복잡한 외교적 현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앞서 지적인 한담을 통해 정신적인 교류를 펼친다. 여기서 서로 코드가 맞으면 본 협상은 쉽게 풀린다. 우리 정치인, 기업인도 이런 지적(知的) 향연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근래 기업 사이에서 퍼진 인문학 열풍은 도구적 측면에 치중했다. 인문학을 수익 증진이나 판매 향상의 방편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종종 엿보이는데, 그런 식의 얄팍한 접근 방법으로는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응용수학이나 컴퓨터 공학에는 로컬 솔루션(또는 로컬 옵티멈)과 글로벌 솔루션(글로벌 옵티멈)이란 게 있다. 전자는 부분적인 해답을 뜻하고 후자는 전체적인 해답을 가리킨다. 글로벌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로컬 솔루션에 매몰되다 보면, 폐렴인데 감기약만 계속 주는, 즉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오류를 반복한다.

    김개천 이런 교착상태를 벗어날 능력을 이제 미래 세대에게 전수해야 한다. 진리와 선, 공익 같은 근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 자발성이 공공을 이루는 시대로 만들어가는 그런 인재들이다. 얼마 전 국가적 디자인 행사 때 보니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이란 구호를 붙여놓았더라. 21세기에 여전히 과거의 틀을 답습하는 모습이다. 공공성이 개별성을 가두는 시대적 패러다임으로는 창발(創發)적인 인재가 태어날 수 없다. 각자가 개별적 존재로서 자부심을 갖고 세상과 맞서야 한다. 비평가가 돼선 곤란하다. 남들이 만든 세상을 비평할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해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욕망과 열정이 풍부하다. 그게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으로 전화할 수 있다. 이 두 요소 때문에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고 예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꾸로 이 두 가지가 있어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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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디지털트렌드 전망] "삼성전자, 5大 IT기업(구글·아마존·알리바바·애플·삼성) 중 미래 가장 어둡다"

    [IT 미래학자 돈 탭스콧 회장]

    -삼성 스마트폰, 이대론 위태

    경쟁자들 低價 공세 위협적… R&D까지 아웃소싱 늘려야

    -S(Social media)세대 뜬다

    쌍방향 소통과 협력에 익숙, 사회 全분야 변화 주도할 것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디지털 구루(Guru)로 평가받는 돈 탭스콧(Tapscott·68) 막시인사이트 회장이 글로벌 5대 IT(정보통신기술) 기업 중 삼성전자의 미래가 가장 불안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탭스콧 회장은 우리에게 친숙한 위키노믹스, 프로슈머, 디지털 경제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또 본지 인터뷰에서 모든 업무 처리와 소통을 소셜 네트워크(SNS)를 통해 처리하는 S세대의 등장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런 변화에 걸맞은 '디지털 시민상'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현재 세계에는 5대 IT 기업이 있다.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애플과 삼성이다. 이들은 앞으로 5년간 성장하리라 보지만, 그중에 삼성의 미래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점이 있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삼성이 생존하려면 아웃소싱(outsourcing·기업이 업무 일부를 제3자에게 위탁하는 것)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조업과 마케팅, 그리고 심지어 연구 개발(R&D)까지 늘려야 한다."

    ?삼성도 스마트폰 제조부터 마케팅 등 아웃소싱을 늘리는 추세다.

    "나는 그러한 노력이 경쟁자들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삼성은 여전히 직접 내부에서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다. 나는 그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갤럭시S 5 등 갤럭시 시리즈를 봐라. 지금 벌써 수많은 경쟁자가 훨씬 낮은 비용으로 삼성을 위협할 제품을 만들고 있다. 지금대로의 삼성이라면, 삼성이 만드는 그다음 스마트폰은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다."

    ?당신은 과거 베이비부머 부모로부터 태어난 N(Net) 세대들에 주목하라면서, 어릴 때부터 N세대들은 컴퓨터 마우스와 인터넷을 접하면서 지능도 높고 협업도 익숙해 기업들의 마케팅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세대는 이미 사회의 수많은 비즈니스를 점령하고 있다. 나는 1997년 이후 태어난 더 젊은 세대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S(Social media)세대다. 이들은 N세대보다 훨씬 협력에 능하고, 쌍방향 소통에 익숙하다."

    ?S세대는 N세대와 어떻게 다른가?

    "N세대는 인터넷 활용도가 높은 세대다. 인터넷의 정보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력도 높다. 예컨대 석탄회사의 "석탄이 최고의 대체에너지다"라는 주장이 거짓말이란 것을 구별할 줄도 알고, 선택의 자유와 재미·스피드를 추구한다. 그러나 S세대는 모든 어려움, 인간관계, 인성을 인터넷만이 아닌 다양한 플랫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쌓는 세대다. 이들에게 학교 숙제란 의미가 다르다. 숙제를 인스턴트 메신저,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100% 해결하는 세대다. S세대는 사용자이면서, 협력자이지만, 모든 것을 플랫폼으로 해결한다. 그들의 뇌는 훨씬 발전돼 있다."

    ?새로운 세대들이 디지털화되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인터넷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불필요한 믿음과 왜곡된 사실을 전파한 측면도 크다. 디지털 비즈니스를 연구하지만, 어떻게 하면 올바른 '디지털 시민상'을 만들지 정확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미디어, 기업 모두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의 발전이 국가 지배 구조와 정치 문화도 바꾸나?

    "급진적인 혁신이 전 세계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창조적 관료제(creative bureaucracy)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정부가 민간기업 및 기관들과 손을 잡고 국가 경영을 함께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인터넷으로 소통을 더 늘리는 의미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새 국가 지배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나는 이제야 산업혁명 시대가 종말을 맞는 것 같다. 정부를 포함한 모든 기관과 비즈니스가 디지털 비즈니스화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정부는 어떤 수준인가?

    "전 세계 정부 중 상위 10% 안에 넣겠다. 인터넷 사용률이 높아서다. 그러나 인터넷 사용률은 높은 반면, 이를 활용해 시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돈 탭스콧은]

    30년前 'IT 新경제' 예측족집게 디지털 예언가

    돈 탭스콧 회장은 2013년 세계 경영 대가 순위(Thinkers 50)에서 4위에 랭크됐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6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등 베스트셀러 작가인 짐 콜린스가 12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탭스콧 회장은 1985년 디지털 기술에 대한 첫 책을 발간하고, 디지털 이코노미에 대한 예언들을 잇따라 내놨는데, 거의 적중했다.

    그는 아직 인터넷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1980년대부터 월드와이드웹(www)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경제라는 개념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인터넷 기반의 기업을 바탕으로 신(新)경제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예측대로 구글, 아마존 등 인터넷 기반의 회사들이 속속 탄생했다.

    2006년 위키노믹스(Wikinomics)란 저서에서 "기업 단위가 아닌 대규모 일반인이 온라인 협업 공유로 문제를 해결하고, 창업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할 것"이라고 쓰면서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이란 개념을 소개했다. 9년이 지난 지금 크라우드소싱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에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공유 경제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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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5대 경영구루 중 한 명으로 꼽았을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Business Breakthrough University) 학장은 5년 전인 2010년 한국을 방문해 “한국이 도요타자동차의 위기를 즐길 때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당시 도요타는 대대적인 리콜 사태와 달러당 80엔대 초반까지 치솟은 엔고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었다. 이 덕분에 2008년 9월 터진 리먼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한국이 가장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부러움까지 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오마에 학장은 도요타 위기에 취해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한국에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 도쿄 지요다구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학장실에서 만난 오마에 학장은 “당시 당신의 조언대로 한국 산업이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아베노믹스 엔저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환율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오마에 학장의 분석이다.

    오마에 학장은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수십 년간 지속돼 온 엔고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로 공장을 분산시키는 작업을 진행해왔다며 “한국은 일본 기업이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일본 기업은 장기간 지속돼 온 엔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강해져 있다. 한국 기업도 더 늦기 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마에 학장은 중국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아니라 “대만의 영향력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위협은 중국이 아니라 중국과 대만이 결합한 ‘차이완’”이라며 “대만의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하고, 대만 엔지니어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 가운데 엔고 시절을 잘 헤쳐나온 대표적인 기업은 어디인가.

    ▶자동차 기업은 대부분 엔고 극복에 성공했다. 일본의 엔화는 70년 전에는 달러당 360엔(※일본 엔화는 전후 1949년 1달러=360엔 고정환율로 거래를 시작했다)이었다. 지금(120엔 안팎)은 3배나 오른 것이다. 한국의 원화로 바꿔보면 달러당 400원의 경험을 한 것이다.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이 경쟁력이 없는 건 당연했다. 일본 자동차기업들은 엔저든, 엔고든 영향을 받지 않도록 분산하는 데 집중했다. 도요타자동차는 현재 전 세계 52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30년에 걸쳐 전 세계에 분산시켰다. 자동차 메이커는 태국 같은 중립적인 곳에 공장을 뒀다.

    도요타는 혁신만으로도 극복이 가능하지 않았나.

    ▶공장을 세계화하기 전에는 혁신을 통해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팔려고 했다. ‘코롤라(도요타 소형차)’를 미국에서 1만2000달러에 팔다가 2만5000달러, 3만달러까지 2배 이상으로 팔기 위해 업그레이드를 했다. 생산성 개선과 가치 향상으로 2배 정도의 엔고를 견디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대응이 안 되자 부품회사와 함께 미국으로 이전했다. 일본 회사는 지금 미국에서 400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10년 전부터 일본 기업이 굉장히 약해졌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실은 약해진 것이 아니다. 시련을 겪고 미국 현지 생산하고 있는 기업 중 95%는 흑자로 되돌아왔다. 일본 기업은 엔고라는 힘든 상황이 있어 옛날보다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은 반대가 됐다. 한국의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자동차 산업은 엔화 약세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일본 기업의 30년간에 걸친 고통은 한국 입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원화 약세가 굉장히 길어 생산의 세계화가 늦어졌다. 원화 강세가 된 지금 세계화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매출 세계 랭킹은 현대차가 혼다를 이겼지만 세계화라는 랭킹에서는 혼다가 현대차를 이기고 있다.

    ‘세계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인가.

    ▶현대차는 20년이나 걸리는 생산의 세계화 작업을 누가 중심이 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리더십이 굉장히 좋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20년 걸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 조직적으로 해야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같은 강력한 리더들이 이끌면 한국 기업은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에 걸쳐 이런 일을 하려면 ‘조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일본 기업은 원래 강한 리더가 없기 때문에 ‘조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많다. 일본 경영자는 6~10년 이상 계속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의 경우 굉장한 리더가 있으면 20~30년을 잘 해나갈 수 있지만 지금은 이런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 다음 세대에도 굉장한 리더가 나올 수 있을까 이게 문제다. 최근 문제(대한항공 땅콩회항)는 한국 재벌들에게 좋은 경고라고 생각한다. 원화 강세를 비롯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20년 걸려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 사람의 리더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기업 조직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 위기의 한가운데 중국이 있다. 중국 IT기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의 IT기업이 강한 건 대만 덕분이다. 엔지니어링은 대만에서 하는 기업이 많다. 애플 제품도 대부분 대만 기업이 하고 있다. ‘차이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대만과 중국의 조합은 일본도 상대가 안 될 만큼 강하다. 대만과 중국의 조합은 일본과 한국 입장에서는 굉장히 껄끄럽다. 대만은 엔지니어링이 강하다. 분야에 따라서는 일본보다 엄청나게 발전돼 있다. 스마트폰 설계와 칩의 생산을 해 주는 미디어텍 등의 회사는 일본에도 유례가 없다. 대만은 병역 의무가 있는데, 엔지니어링으로 대학원까지 가면 면제가 된다. 그래서 대부분 엔니지어가 된다. 이들은 일본어 영어 중국어 3개 국어를 하는 엔지니어들이다. 미국에 유학해 기업을 세운 인재도 많다. 중국은 생산과 시장으로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대만의 영향력을 한국은 체크하지 못했다. 중국이 강한 것이 아니라 차이완의 조합이 강한 것이다. 이런 흐름을 빨리 체크해 대만 엔지니어를 한국에 데려오든, 대만 엔지니어 회사를 인수하든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중국 샤오미 등에 밀려 삼성 스마트폰도 고전하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 분야는 지금의 코스트로는 매우 고전할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굉장히 마케팅이 훌륭한 회사로 이를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으로 생산한 제품을 삼성이 가진 브랜드와 네트워크로 판매하는 등의 방법으로 탈피해야 한다. 지금처럼 반도체부터 제품까지 만들어 마케팅하는 수직통합의 방식으로는 굉장히 힘들 것이다. 삼성은 브랜드 마케팅 판매력이 강한 회사다. 만드는 것은 가장 싼 곳, 즉 중국과 대만에 맡기면 된다. 지금처럼 혼자서 다 하려는 방식은 안 된다.

    ?바이오 같은 신산업은 어떤가.

    ▶무리다. 바이오산업은 우수인재를 확보한 미국 유럽 기업이 10조엔 이상 매출에, 연구개발비만 1조엔 쏟아붓고 있다. 이런 분야는 미국 유럽에 20~30년 이상 뒤처졌다. 허들은 옛날보다 훨씬 높아졌다.

    ?지금부터 한국 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패션업계를 보라. 일본 섬유메이커에 쫓겨 프랑스와 이탈리아 패션업계는 굉장히 고생을 했다. 많이 망했지만 일본 제품보다 2배, 5배 비싼 브랜드 제품을 만들었다. 스위스 시계산업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일본 세이코 시티즌 등에 역전당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지금은 일본 시계의 10배 가격에도 팔리는 시계를 만든다.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은 소비자가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코스트로 승부해 오던 한국 기업에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한국은 앞으로 중국 동남아에서 만드는 제품의 5배, 10배 이상 가격에도 팔릴 만한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곳이 없다. 한국 기업의 도전과제다. 그러나 재벌그룹 회사들은 도전을 잘 하지 않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세계에 판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산업의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된 중소기업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한국은 중소기업이 하도급업체지만, 일본은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이라고 부른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관계가 강한 곳은 역시 도요타다. 내부에 ‘함께 번영하자’라는 그룹이 있어서 코스트를 절감하는 제안이 나와 성공하면 반은 제안한 기업이 갖고, 나머지 반은 도요타가 갖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파트너십과 관련해 가장 좋은 예는 유니클로다. 유니클로는 섬유업체인 도레이와 함께 파트너십을 발휘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단순히 싼 곳에서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소재 기술개발은 파트너인 도레이가 하고 있다. 두 회사는 신문광고도 같이 할 정도다. 메리트가 생겼을 때 함께 나눈다는 분위기가 없다면 파트너십이 아니다. 한국은 대기업이 메리트를 전부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애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 디플레이션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교육을 바꾸는 것이다. 좋은 학교 나와 좋은 회사 취직해 편안한 삶을 산다는 일본의 40년 전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잘못된 점은 과거 일본의 가혹한 수험 등 나쁜 문화를 아직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다(Teach)’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답이 없는 시대에 ‘선생(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람이 가르치는 건 난센스다.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는 선생이 아니라 코디네이터 등으로 호칭을 바꿔 모두가 정답을 찾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한국은 미국 유럽 일본을 따라잡고 싶어 이런 시스템이 유지돼 왔다. 하지만 이젠 그런 시스템으로는 첨단 연구가 가능하지 않고, 세계적인 인재도 기를 수 없다.

    ?새해 세계 경제는 어떻게 보나.

    ▶유럽은 앞으로 고생할 것이고, 러시아도 한동안 힘들 것이다. 새해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일 것이고, 부동산 주식 등 버블이 일어날 것이다. 미국에 돈이 모이지만 더 이상 투자 기회가 없기 때문에 버블로 가게 될 것이다. 미국 경기가 좋아져도 미국 기업의 50%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국내의 고용 등에 메리트가 별로 없다. 미국은 현재 버블의 초입에 가 있다.

    ■ 일본은 저욕망사회…아베노믹스는 ‘조크’
    결혼도 출세도 기피하는 젊은층 급증…월급 늘어나도 편의점 도시락에 만족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아베노믹스 엔저로 일본 기업 실적 좋아진 것 아닌가.

    ▶현재 일본은 엔고든, 엔저든 상관이 없다. 지금 엔저는 마이너스 측면의 방향이 강하다. 엔저라든가 원저라고 하며 기뻐하는 것은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둘 다 수출기업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달라졌다. 엔저로 나빠지는 게 더 많다. 엔저는 한국을 괴롭히고 있지만 일본 경제에 메리트는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공장을 세계에 분산시켰다. 엔저가 되더라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캐논은 대만 중국 베트남에서 10만명이 일하는데, 일본에서는 1000명도 채용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과거 공장을 닫을 때 파업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다시 일본에 공장을 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거의 중국으로 이전해 버린 부품이다. 제품 조립값은 20%에 불과하고, 부품값은 80%를 점하고 있다. 엔저로 부품을 수입하면 할수록 비싸지는 구조로 돼 버렸다. 일부 수출업계의 구시대 사람들 얘기만 듣고 아베 총리가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다.

    ?아베노믹스 제3의 화살, 성장전략을 평가하면.

    ▶아베의 성장전략은 ‘조크’다. 그런 걸로 일본이 성장할 리가 없다. 일본은 지금 저욕망사회다. 욕망없는 국민이 대부분이다. 개인 금융자산이 1600조엔이지만 쓰지 않는다. 일본인은 죽을 때가 가장 부자다. 보험 연금이 나오지만 쓰지 않는다. GDP의 3배의 돈을 저금해 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좋아진 게 아니라 국민들이 “장래에 좋아지는 것 아닐까”라는 기대감에 2년 전에는 1600조엔의 아주 일부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기업도 GDP의 60%에 필적하는 300조엔이나 되는 내부유보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 저욕망이라 월급이 올라도 편의점 도시락 먹는 걸로 만족하는 굉장히 신기한 저성장이 진행되고 있다. 플랫35라고 하는 주택론이 있는데 35년간 1.56%의 고정금리에도 주택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차입도, 결혼도, 출세도,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빠져 나올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인가.

    ▶저출산 이민 호적 문제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일본 경제는 계속 침체될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단지 브랜드일 뿐이며 알맹이가 없다. 정말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민과 호적 문제다. 일본은 아이를 낳고 호적에 넣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차별을 당한다. 프랑스는 사실혼이다. 3년 이상 동거하면 결혼으로 보고 호적도 없다. 결혼하지 않고 태어나는 아이가 56%다. 이러면 소득세가 줄고 정부 보조금도 늘어난다. 일본 우익은 호적 철폐를 반대한다. 지금의 아베 정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이민도 반대하고 있다. 이러면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고 경제도 침체될 것이다. 사실 뛰어난 일본의 기업은 글로벌화가 잘 돼 있어 여차하면 일본을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He is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에서 23년간 일하며 일본 지사장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장을 지낸 경영 컨설턴트이자 경제 전문가다. 국가의 종말, 지식의 쇠퇴, 더 넥스트 글로벌 스테이지 등 10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집필했다. 1994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세계 5대 경영구루에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와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43년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도쿄 와세다대 이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3·11 대지진 이후에는 후쿠시마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민간 프로젝트팀의 총괄 책임을 맡기도 했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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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장점이던 ‘총수 1인 경영 체제’ 이제는 장애 요소”

    [한겨레] 인터뷰/ ‘삼성과 소니’ 쓴 삼성 전문가, 장세진 카이스트 교수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이제는 새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장세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31일 <한겨레>와 만나 삼성이 1인 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스피드 경영’에는 장점이던 ‘총수 1인 경영 체제’가 이제는 삼성에 장애요소가 된다”며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반도체산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오히려 극복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옛 비서실로 통하는 미래전략실에는 인사와 재무 기능만 남아 단기적 경영성과에 치중하고 있다”며 “신수종 사업이 안되고, 소프트웨어 육성이 안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영학 교수로도 일하는 그는 2007년 교육부가 선정한 ‘국가 석학 15인’ 가운데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국제 경영 전략’ 분야에서 이름난 전문가다. <삼성과 소니>란 책을 쓴 ‘삼성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에는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에 참석해 ‘다시 전략이다’라는 주제로 강의도 했다.

    “미래전략실에는
    인사·재무 기능만 남아
    단기적 경영성과 치중…
    신수종 사업 안되는 것도 같은 이유”


    장 교수는 삼성전자에 대해 “현재 3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있지만, 각자 자기 부분만 책임지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는 없다”고 말했다. 연말 휴대전화 실적 부진으로 교체설이 나돌던 신종균 사장의 유임 역시 ‘대안 부재’를 이유로 꼽았다. 장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기존 강점인 원가절감과 강한 유통채널 등을 유지하는 것이 답이다. 시장 점유율을 잃으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까지 여파가 미쳐,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점유율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하면 삼성전자의 한 분기당 영업이익은 3조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2013년 3분기 10조1635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4년 3분기에는 4조600억원으로 급감했다.

    장 교수는 이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본다. 스마트폰 시장 초창기에는 애플의 혁신 제품을 삼성이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빨리 따라갈 수 있어 높은 영업이익이 보장됐지만, 이젠 중국이나 인도 업체들이 추격해 많은 경쟁자가 생겨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비전 제시하는
    실질적 최고경영자 없어
    현재 CEO 3명 있지만
    각자 자기 부분만 책임져”


    그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한 투자를 강조했다.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대안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꼽았다. 장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소프트웨어와 글로벌경영 역량을 키우는 데 아버지 시절보다 더 긍정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체제에서 대주주로서 전문경영인을 감시하고 큰 방향만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계열 회사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슈나이더의 사례를 들었다. 170여년을 이어온 슈나이더는 철강업→전기업→에너지관리 등으로 주사업을 탈바꿈하면서 1980년대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삼성 역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같은 흐름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고집한 ‘무노조 경영’ 역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오너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 가장 큰 리스크…
    진로 부도·금호 수조원 손실
    총수 판단 잘못이 문제였다”


    장 교수는 삼성에스디에스(SDS)와 제일모직 상장에 대해선 경영이 투명해지고 내부거래 위험이 줄어들게 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승계 과정에서 나타난 막대한 상장차익 등 무리수는 향후 출범할 이재용 체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상장차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한국 재벌과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대표되는 ‘오너 리스크’가 “한국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리스크”라고 그는 말했다. 과거 외환위기 시절 시장점유율 50%에 달하던 진로가 부도나고, 몇해 전 금호그룹이 대한통운, 대우건설 인수에 나섰다가 수조원 손실을 보는 것도 총수의 잘못된 판단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한전 터를 사는 데 무려 10조원을 써 내고 전문경영인들이 제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사례 등 많은 기업에서 그런 문제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장 교수는 “총수 일가라고 30대 초반의 임원이 탄생하는 기업은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기피하고 결국 인재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후진적인 기업 문화는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하면 투자한다는
    정부 주장 현실성 없어…
    부품쪽 전문기업 생기고
    새 서비스 제공 업체 많이 생겨야”


    그는 정부가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을 100%에서 50%로 완화하기로 한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단점을 막으려는 지주회사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규제를 완화하면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한다’는 정부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이상 수출 중심, 대기업 중심의 정부 정책은 유효하지 않다”며 “규제 완화가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고, 설령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온다고 해도 고용은 크게 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도 강조했다. 장 교수는 “부품 쪽 전문 기업이 생기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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