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풍 농가로의 초대
<농가 한옥 리모델링>
Mariana's House & Garden
10년 전, 이정희 씨가 쓰러져 가는 폐가를 구입한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매물로 나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집을 선택한 것은 한 겨울 성엣장이 집 앞을 스치고 가는 아름다운 풍광과 문수산성을 배경으로 삼은 볕 좋은 터 때문이었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 명당 자리
↑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 임진강과 한강이 한데 만나 바다로 흐르는 길목에, 그녀의 집이 자리한다.
문수산성을 목적지로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무성한 나무와 넝쿨식물들에 가려져 있는 작은 현관을 발견할 수 있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는 집은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워서, 문패를 마주한 반가움이 어느 때보다 크다.
집으로 이르는 길은 문수산성의 해안 쪽 성벽이다. 성벽 위로 마을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산성의 윤곽만이 애처롭게 남아 있지만, 주변이 문화재관리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서 신축은 물론이거니와 섣불리 증축과 개축을 하기에도 제한이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도 이정희 씨는 10년 전, 산성 안쪽에 위치한 구옥을 무작정 구입했다.
누구도 선뜻 갖기를 꺼려했던 이 집이, 왜 그토록 그녀에게는 살고 싶은 집으로 비춰졌을까? "집 앞에 마주한 염하강은 강화도의 앞바다이기도 하지요. 한겨울 성엣장이 밀물과 함께 움직이는 장관을 보고, 한 눈에 반했어요. 뒤로는 문수산이 버티고 있으니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땅이랍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집은 개를 사육하던 이가 잠시 휴식을 취하던, 사람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벽체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진 70년대 새마을 주택. 수년을 무허가 건물로 있다가 다행히도 건축물대장에 등록되어 25년이 흐른 참이었다. 게다가 옆에는 개를 키우던 허름한 창고가 집 보다 더 큰 크기로 쓰러질 듯 서 있었다.
헌 집 예찬론자의 두 번째 개조
건축에 제한이 있어 집을 신축하기도 어려웠지만, 이씨는 애초부터 개조를 염두에 두고 집을 구입했다. 그 전에도 주말별장으로 농가를 개조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선 때였다. 당시만 해도 10년의 나날들을 고군분투할 줄 어찌 알았으랴. "생각했던 것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이었어요. 개조에 매달려 몸이 힘든 것보다, 공무원들과 매일 논쟁해야 하는 마음고생이 더 심했지요. 나무 한 그루 마음대로 심을 수 없었으니까요. 담당공무원이 바뀌면 지침도 따라 바뀌어, 이곳저곳 관청을 다니며 동분서주했어요."
시간이 지나자 집의 가치를 알아봐 준 그녀의 마음이 통했는지, 주변 땅들은 자연스럽게 그녀 몫이 되었다. 지자체에서 토사가 필요하다면서 집 뒤의 둔덕을 파가는 통에 생각지도 않게 뒷마당도 얻었다. 그렇게 작은 전정과 너른 후정을 함께 두고 집도 점점 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외부는 드라이비트로 마감해 단열을 보충하고, 지붕은 싱글을 새로 얹었다. 필요한 공간이 있으면 그때그때 증축하기를 10년. 지금은 처마를 이어낸 응접실 공간과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까지 생겨 제법 큰 면적의 집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이태리 토스카나 여행길에서 만난 한 농가를 떠올리며 리모델링에 임했다. 공간 중 어느 한 곳은 꼭 옛집의 흔적을 남겨놓는 후대의 마음이 담긴 작업. 비록 서까래가 없는 70년대 가옥이지만, 아름다움보다는 집의 진정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Tip 이정희 씨가 말하는 농가 리모델링 포인트
01 꼭 서까래를 살리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옛집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은 좋지만, 모든 공간의 서까래를 살려 구옥 이미지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취향과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서 마음껏 개성을 살려서 고치면 되는 것이다. 헌 집은 유지관리가 힘들기 때문에, 고치고 난 후를 충분히 생각해서 편의를 살려야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02 오래된 집일수록 마당의 배수로를 꼼꼼히 살펴라
특히 산이나 계곡 아래 집이라면 배수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집의 수명을 늘리는 기본 조건이다. 이를 잘 모르면 처음 2~3년 동안 수없이 많은 수목이 과수(過水)로 죽어나갈 수 있다. 물길을 파악해 정원 가장자리에 배수로를 만들어 주면 정원도 살아나고, 집도 습기를 피해 안전하다.
03 가옥이 밀집되어 있다면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를 활용해라
문수산을 내려오는 등산길에 서면 집의 뒷마당이 훤히 보인다. 본채는 뒤돌아 앉아 상관이 없지만, 게스트룸은 왠지 마음이 걸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그린색 반사유리를 활용했다. 내부가 좀 어두운 단점은 있지만, 외부에 인기척이 많거나 구옥이 밀집되어 있는 동네라면 활용할 만하다.
사계절 변모하는 들꽃 정원
증축을 한 공간들은 처마를 그대로 내었기에 천장이 낮다. 하지만, 지붕에 창을 뚫고, 벽면에도 아기자기한 창들을 새로 내어 공간을 밝게 했다. 집이 높고 창이 크면, 왠지 집에 사람이 치이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매순간 자신만의 기준을 어기지 않고 공사에 임했다. 사실 일꾼을 부리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아무리 능숙한 목수라도 집의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것이 그녀였기에 모든 공정을 함께 했다. 색을 입힌 자투리 목재들이 공간마다 제 빛을 발휘하면서 세상에 하나 뿐인 이미지들이 모여, 집은 점차 유럽에서 만난 토스카나 농가처럼 제 색깔을 내며 변모해 갔다. 흰색 외벽에 싱글과 돌기와로 지붕을 삼고, 창문마다 올라탄 넝쿨 식물이 흰 벽에 집의 나이를 써주고 있다. 결국 그녀 자신이 집을 그리는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헌집을 고치는 매력은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집의 모양과 꾸밈새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죠. 헌 집의 정서를 빌려서 자신만의 개성을 입히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집을 만들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집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이랍니다."
출처 : 농가 한옥 리모델링
저자 : 편집부
출판사 : 주택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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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이정희 씨가 쓰러져 가는 폐가를 구입한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매물로 나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집을 선택한 것은 한 겨울 성엣장이 집 앞을 스치고 가는 아름다운 풍광과 문수산성을 배경으로 삼은 볕 좋은 터 때문이었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 명당 자리
문수산성을 목적지로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무성한 나무와 넝쿨식물들에 가려져 있는 작은 현관을 발견할 수 있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는 집은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워서, 문패를 마주한 반가움이 어느 때보다 크다.
집으로 이르는 길은 문수산성의 해안 쪽 성벽이다. 성벽 위로 마을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산성의 윤곽만이 애처롭게 남아 있지만, 주변이 문화재관리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서 신축은 물론이거니와 섣불리 증축과 개축을 하기에도 제한이 많은 지역이다. 그런데도 이정희 씨는 10년 전, 산성 안쪽에 위치한 구옥을 무작정 구입했다.
누구도 선뜻 갖기를 꺼려했던 이 집이, 왜 그토록 그녀에게는 살고 싶은 집으로 비춰졌을까? "집 앞에 마주한 염하강은 강화도의 앞바다이기도 하지요. 한겨울 성엣장이 밀물과 함께 움직이는 장관을 보고, 한 눈에 반했어요. 뒤로는 문수산이 버티고 있으니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땅이랍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집은 개를 사육하던 이가 잠시 휴식을 취하던, 사람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벽체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진 70년대 새마을 주택. 수년을 무허가 건물로 있다가 다행히도 건축물대장에 등록되어 25년이 흐른 참이었다. 게다가 옆에는 개를 키우던 허름한 창고가 집 보다 더 큰 크기로 쓰러질 듯 서 있었다.
건축에 제한이 있어 집을 신축하기도 어려웠지만, 이씨는 애초부터 개조를 염두에 두고 집을 구입했다. 그 전에도 주말별장으로 농가를 개조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선 때였다. 당시만 해도 10년의 나날들을 고군분투할 줄 어찌 알았으랴. "생각했던 것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이었어요. 개조에 매달려 몸이 힘든 것보다, 공무원들과 매일 논쟁해야 하는 마음고생이 더 심했지요. 나무 한 그루 마음대로 심을 수 없었으니까요. 담당공무원이 바뀌면 지침도 따라 바뀌어, 이곳저곳 관청을 다니며 동분서주했어요."
시간이 지나자 집의 가치를 알아봐 준 그녀의 마음이 통했는지, 주변 땅들은 자연스럽게 그녀 몫이 되었다. 지자체에서 토사가 필요하다면서 집 뒤의 둔덕을 파가는 통에 생각지도 않게 뒷마당도 얻었다. 그렇게 작은 전정과 너른 후정을 함께 두고 집도 점점 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외부는 드라이비트로 마감해 단열을 보충하고, 지붕은 싱글을 새로 얹었다. 필요한 공간이 있으면 그때그때 증축하기를 10년. 지금은 처마를 이어낸 응접실 공간과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까지 생겨 제법 큰 면적의 집이 될 수 있었다.
01 꼭 서까래를 살리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옛집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은 좋지만, 모든 공간의 서까래를 살려 구옥 이미지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취향과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서 마음껏 개성을 살려서 고치면 되는 것이다. 헌 집은 유지관리가 힘들기 때문에, 고치고 난 후를 충분히 생각해서 편의를 살려야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02 오래된 집일수록 마당의 배수로를 꼼꼼히 살펴라
특히 산이나 계곡 아래 집이라면 배수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집의 수명을 늘리는 기본 조건이다. 이를 잘 모르면 처음 2~3년 동안 수없이 많은 수목이 과수(過水)로 죽어나갈 수 있다. 물길을 파악해 정원 가장자리에 배수로를 만들어 주면 정원도 살아나고, 집도 습기를 피해 안전하다.
03 가옥이 밀집되어 있다면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를 활용해라
문수산을 내려오는 등산길에 서면 집의 뒷마당이 훤히 보인다. 본채는 뒤돌아 앉아 상관이 없지만, 게스트룸은 왠지 마음이 걸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그린색 반사유리를 활용했다. 내부가 좀 어두운 단점은 있지만, 외부에 인기척이 많거나 구옥이 밀집되어 있는 동네라면 활용할 만하다.
증축을 한 공간들은 처마를 그대로 내었기에 천장이 낮다. 하지만, 지붕에 창을 뚫고, 벽면에도 아기자기한 창들을 새로 내어 공간을 밝게 했다. 집이 높고 창이 크면, 왠지 집에 사람이 치이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매순간 자신만의 기준을 어기지 않고 공사에 임했다. 사실 일꾼을 부리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아무리 능숙한 목수라도 집의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것이 그녀였기에 모든 공정을 함께 했다. 색을 입힌 자투리 목재들이 공간마다 제 빛을 발휘하면서 세상에 하나 뿐인 이미지들이 모여, 집은 점차 유럽에서 만난 토스카나 농가처럼 제 색깔을 내며 변모해 갔다. 흰색 외벽에 싱글과 돌기와로 지붕을 삼고, 창문마다 올라탄 넝쿨 식물이 흰 벽에 집의 나이를 써주고 있다. 결국 그녀 자신이 집을 그리는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헌집을 고치는 매력은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집의 모양과 꾸밈새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죠. 헌 집의 정서를 빌려서 자신만의 개성을 입히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집을 만들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집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이랍니다."
출처 : 농가 한옥 리모델링
저자 : 편집부
출판사 : 주택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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