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삼성' 세운 이건희, 지다
- 윤도진 기자 spoon504@bizwatch.co.kr
- 2020.10.25(일)
1942.1.9 ~ 2020.10.25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선친은 사업 성공의 요체로 운(運), 근(根), 둔(鈍)의 세 가지를 꼽으셨다. 여기에 내 나름의 해석을 보탠다면 운이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운의 이면에는 남모를 고뇌와 노력이 숨어있다. 근이란 고객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한 끈기와 집녑을 의미하고, 둔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이건희 지음, 동아일보사, 1997년
한국 기업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 향년 78세(1942~2020).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이사장이 있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반 가까이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투병 기간 자가호흡은 했지만 인지능력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은 이날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과 경재계의 대대적인 조문 행렬이 예상된다. 명실상부 '경제대통령'이었던 그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손위로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고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 고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 이숙희 씨, 이순희 씨, 이덕희 씨가 있고 손아래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있다.
이 회장은 그의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7년 11월 별세하자 그 다음달 삼성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애초 장남이 후계자로 내정돼 있었지만 장·차남이 당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그룹 비리에 대한 탄원 등으로 후계 구도에서 멀어지며 3남인 그가 결국 후계자로 낙점됐다.
2013년 10월4일 오후, 이건희 삼성 회장이 35일간의 해외출장을 마치고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부를 대물림한 창업 2세대 경영자였다. 하지만 물려받은 삼성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게 그의 가장 큰 공(功)이다. 창업주보다 공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드문 2세대 경영인이다. 그가 에세이집에 쓴 대로,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운(運)'을 틔우기 위해 고뇌와 노력을 쏟아부은 그였고, 또 그것을 제대로 성공시켰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삼성이다.
기업인으로서의 공적은 숫자로 나타난다.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다. 같은 기간 그룹 자산은 10조원에서 878조3000억원으로 약 88배, 그룹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 커졌다. 또 취임 당시 10만명이던 삼성의 임직원 수는 52만명으로, 계열사는 상장사 16개를 포함해 59개로 증가했다.
삼성이라는 이름도 그가 회장에 오를 당시에는 개발도상국의 여러 재벌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인 인터브랜드가 꼽은 '2020년 최고 글로벌 브랜드'에서 삼성전자는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이은 5위에 올랐다. 이름값(브랜드 가치)만 623억달러(약 71조원)로 측정됐다.
뼛속까지 사업가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말로 상징되는 1993년 '신경영 선언'이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분수령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세탁기 뚜껑이 불량인데도 작업자가 이를 태연히 칼로 깎아 조립하는 장면을 사내방송으로 보고 불같이 화를 냈고, 결국 세계 수위로 도약하는 전기를 만들어 냈다.
삼성전자를 이렇게 세계 기업으로 키운 것도 그다. 반도체 사업은 선친이 처음 시작했지만 이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으면서 세계 수위권에 올렸다. 2001년 4기가 D램, 2007년 64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 2010년 30나노급 4기가 D램 등의 개발이 모두 세계최초였다. 현재 삼성전자는 D램 등 메모리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TV 등 20개 품목을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에 올려두고 있다.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지만 아픔도 적잖았다. 형제 중 장남인 이맹희 회장, 차녀인 이숙희 여사(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 등과는 상속 문제로 법정 다툼까지 겪었다. 또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하고 경영 일선에서도 물러났다.
2014년 1월9일 오후, 73세 생일을 맞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 함께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년 사장단 만찬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이후에는 조직 재정비를 하는 한편,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재배구조 개편작업 등에 대한 계획을 정리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병상에 들기 넉달 전인 2014년 1월, 그는 자신의 73번째 생일을 맞아 사장단과 신년만찬을 했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그는 부인 홍라희 전 관장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손을 잡고 밝게 웃으며 플래시를 받았다. 그게 마지막 공개석상이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병상에서 일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슬픔과 충격을 주체할 길이 없다"며 그를 추도했다.
[이건희, 지다]'세계 초일류' 꿈이 아니었다
- 최형균 기자 chg@bizwatch.co.kr
- 2020.10.25(일) 16:36
'제 2의 창업선언' 등 그가 남긴 말들 "잘해야 1.5류" "식은땀 난다" "한명이 10만명 살린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의 근본 체질을 뒤집어 엎자는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내놓은 말이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이 안팎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는 위기의식을 온몸으로 느꼈다. 자사 제품이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그의 말마따나 '싸구려'로 취급되는 등, 삼성이라는 이름표가 해외에서는 푸대접을 받는 현실을 절감해서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까지 느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생전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이에 대한 돌파구로 외형적 성장만이 아닌 삼성의 내실 다지기에 나선다. 신경영 선언을 바탕으로 삼성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됐던 제품 디자인 혁신 등을 적극 추진하며, 삼성을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초일류에 올려놓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신경영 선언 27주년이 된 올해 2020년, 그의 초일류를 향한 길었던 항해는 이제 멈췄다. 하지만 그의 꿈은 메모리를 넘어 비메모리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이룩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지난해 선언하는 등 삼성의 초일류 발판을 더욱 확고히 다지려는 장남 이재용 부회장에게 넘어갔다.
다음은 그가 1987년 회장 취임 이래 남긴 말들이다.
이건희 회장님 어록
▲이건희 회장 취임사(1987년 12월 1일 오전 10시 호암아트홀)
“삼성은 이미 한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 국민적 기업이 됐습니다. 삼성이 지금까지 쌓아 온 훌륭한 전통과 창업주의 유지를 계승해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새로 출범하는 삼성의 제2창업에 찬란한 영광이 돌아오도록 힘차게 전진합시다.”
▲제2창업 선언(1988년 3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지산 반세기의 발자취를 거울로 삼아 삼성의 위대한 내일을 설계하자.”
“오는 90년대까지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키겠으며, 앞으로 각종 사회봉사사업을 비롯한 문화진흥 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겠다.”
▲1989년 1월 신년사
“삼성의 협력업체도 바로 삼성가족입니다. 그들에게 인격적인 대우와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어 회사와 협력업체가 하나의 공동체이며, 한 가족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줌으로써 참된 공존공영을 이룩하는 것 또한 인간중시 경영의 하나라고 저는 믿습니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질 것입니다. 개성화로 갈 것입니다. 자기 개성의 상품화, 디자인화, 인간공학을 개발해서 성능이고 질이고는 이제 생산기술이 다 비슷해질 것입니다. 앞으로는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 질 것입니다."
▲1994년 1월 신년사
“앞으로의 10년은 과거의 50년, 100년과 맞먹는 기업경영의 변화, 세계 역사의 발전을 가져올 것입니다.”
▲삼성가족 한마음 축제(1994년)
"우리는 지금 가슴 벅찬 미래를 향한 출발 선상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초일류이며, 방향은 하나로, 눈은 세계로 그리고 꿈은 미래에 두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1996년 1월 신년사
"협력업체는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신경영의 동반자입니다. 협력업체의 질적 수준이 세계 일류로 올라갈 때 비로소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세계 일류가 달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올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자, 지적 자산이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기업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시대를 지나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아야만 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최후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1997년 1월 신년사 (IMF 사태 직전, 위기의식 강조)
“저는 지난 10년 간 세기말적 변화에 대한 기대와 위기감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습니다. 이제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3년 뿐입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남들은 뛰고 있는데 우리는 ‘외부환경의 위기’, ‘내부혁신의 위기’,’시간의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삼성은 물론, 나라마저 2류, 3류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순간입니다.”
▲여성인력 관련 (1997년 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中)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이는 실로 인적 자원의 국가적 낭비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탁아소나 유치원 시설을 많이 제공함으로써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
“기업도 여성에게 취업 문호를 활짝 열고 취업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비해 줘야 한다.여자라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이에 따라 당사자가 겪게 될 좌절감은 차치하고라도 기업의 기회 손실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1998년 1월 신년사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게 뜰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불황을 체질 강화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땀과 희생 그리고 용기와 지혜입니다.”
▲2001년 1월 신년사
“우리 삼성은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시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기업상을 구현해야 합니다. 소외된 이웃에 눈을 돌리고 따뜻한 정(情)과 믿음이 흐르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선도기업인 우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2년 4~5월 계열사 사장단 회의
“5년에서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납니다.”(4월 전자계열사 사장단)
“이익이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5월 금융계열사 사장단)
“핵심 인재를 몇 명이나 뽑았고 이를 뽑기 위해 사장이 얼마나 챙기고 있으며, 확보한 핵심 인재를 성장시키는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사장 평가항목에 반영합시다.”(5월 전자 사장단)
▲신경영 10주년 기념사 (2003년 6월 5일)
“신경영을 안 했으면 삼성이 2류, 3류로 전락했거나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
“신경영의 성과를 어려운 국가 경제위기 극복과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확산시켜 나가자.”
“지금 우리 경제는 외부 환경 탓도 있지만 과거 선진국도 겪었던 ‘마의 1만불 시대 불경기’에 처한 상황으로 신경영 선언 당시와 유사하다. 따라서 우리가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일류 선진국이 될 수도,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당장의 제몫 찾기보다 파이를 빨리 키워, 국민소득 만불 시대에 돌입하기 위해 온 국민이 다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
▲언론사 인터뷰 (2003년 6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립니다.”
▲2004년 1월 신년사
“디지털 시대의 경쟁력은 지식과 브랜드,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분야들이 좌우할 것입니다.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삼성만의 소프트를 창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류 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입니다.”
▲반도체 30년 기념식 (2004년 12월)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 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2006년 1월 신년사
“과거의 성공에 도취하고 현재의 편안함에만 안주한다면 정상의 자리는 남의 몫으로 넘어 갈 것입니다.”
▲경영 복귀 (2010년 3월 24일)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신사업 관련 사장단 회의 (2010년 5월 10일)
“환경 보전과 에너지 고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도 녹색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또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기업의 사명이기도 하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서 기회를 선점하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많이 뽑아서 실업해소에도 더 노력해 달라.”
▲반도체 16라인 기공식 (2010년 5월 17일)
“지금 세계경제가 불확실하고 경영여건의 변화도 심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이러한 시기에 투자를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뽑아서 글로벌 사업기회를 선점해야 그룹에도 성장의 기회가 오고 우리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통령 기업인 조찬 간담회時 답사 (2010년 9월 13일)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가 함께 성장하는 것은 대기업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데도 필요한 일입니다. 사실 대기업이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먼저 일류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으로 2차, 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해서 좀 더 무겁게 생각하고 세밀하게 챙겨서 동반 성장을 위한 제도나 인프라를 만들어가도록 하겠다습니다. 나아가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우리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룹 조직 신설 (2010년 11월 19일)
“21세기 변화가 예상보다 더 빠르고 심하다. 삼성이 지난 10년간 21세기 변화를 대비해 왔지만 곧 닥쳐올 변화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룹 전체의 힘을 다 모으고 사람도 바꿔야 한다.”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 (2010년 12월 1일)
“새로운 10년이 시작된다. 옛날과 달라서 21세기 10년은 빠르게 온다고 생각한다.”
▲2011년 신년사 (2011년 1월 3일)
“지금부터 10년은 100년으로 나아가는 도전의 시기가 될 것이며, 이제 삼성은 21세기를 주도하며 흔들림 없이 성장하는 기업,안심하고 일에 전념하는 기업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업구조가 선순환 되어야 하며,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업과 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과 제품이 자리잡아야 한다. 이 일을 혼자서 다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삼성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기꺼이 협력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글로벌 인재를 키우고, 유망 기술을 찾아내는 한편, 창의력과 스피드가 살아 넘치고 부단히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 참관 (2011년 7월 29일)
“5년,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소프트기술, S급 인재, 특허를)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프트웨어, 디자인, 서비스 등 소프트기술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필요한 기술은 악착같이 배워서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부품 수를 줄이고, 가볍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 등 하드웨어도 경쟁사보다 앞선 제품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사장들이 S급 인재를 뽑는 데서 그치지 말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특히 소프트웨어 인력은 열과 성을 다해 뽑고 육성해야 한다.”
“지금은 특허 경쟁의 시대이며, 기존 사업뿐 아니라 미래 사업에 필요한 기술이나 특허는 투자 차원에서라도 미리미리 확보해 두어야 한다.”
▲정례 출근 – 여성임원 오찬 (2011년 8월 23일)
"여성임원은 사장까지 되어야 한다. 임원 때는 본인의 역량을 모두 펼칠 수 없을 수도 있으나, 사장이 되면 본인의 뜻과 역량을 다 펼칠 수 있으니 사장까지 되어야 한다.”
▲2012년 신년사 (2012년 1월 2일)
“삼성은 어려움 속에서 위기 극복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특히 국민 경제를 발전시키고 지속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주어진 책임이자 의무다.”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변화들이 나타날 것이다. 기존 사업은 성장이 정체되고, 신사업은 생존의 주기가 빠르게 단축될 것이다. 동종 경쟁에서 이종 경쟁으로, 기업간 경쟁에서 기업군간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경쟁력이다.”
▲CES 참관 (2012년 1월 12일)
“정말 앞으로 몇 년, 십 년 사이에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지겠다 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긴장이 됩니다.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가고, 우리가 앞서가는 것도 몇 개 있지만, 더 앞서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취임 25주년 기념식 (2012년 11월 30일)
“취임 초 삼성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절감해 신경영을 선언하며 낡은 관행과 제도를 과감하게 청산했다.”
▲2013년 신년사 (2013년 1월 2일)
“지난 성공은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도전하고 또 도전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더 멀리 보면서 변화의 흐름을 앞서 읽고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을 찾아내야 한다.”
“시장은 넓고 기회는 열려 있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몫임. 미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는 인재 육성이다. 우수한 인재를 뽑고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세계의 다양한 인재들이 열린 생각을 하고 막힘 없이 상하좌우로 통하게 한다면 삼성은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혁신의 기품으로 가득 찰 것이다.”
▲신경영 20주년 만찬 (2013년 10월 28일, 영상메시지)
“우리는 초일류기업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한 길로 달려왔다. 양위주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질 중심으로 바꾸면서 경쟁력을 키워 왔다.”
“앞으로도 우리는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한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
▲2014년 신년사 (2014년 1월 2일)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립시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 냅시다.”
“미래를 대비하는 주역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도전하기 바랍니다.”
▲이 밖에…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나면 누가 사겠습니까?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들(미국, 일본)의 (반도체)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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