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원로망

[스크랩] 토담집

구봉88 2008. 6. 22. 12:01

토담집

 

낡은 농가 개조한 정겨운 토담집

낡을 대로 낡은 허름한 농가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 근사한 토담집으로 바뀌었다. 부서진 곳은 고치고, 불편한 곳은 편리하게 개조해 멋있는 ‘시골집’이 된 것. 마당에서부터 집안까지 옛 생활소품들이 더해지면서 운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한 최정희 씨의 집 이야기다.

최정희 씨(55세·경기 양평군 지제면 망미리)의 집은 담 대신 항아리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마당에 심어진 나뭇가지 위에도 작은 항아리나 검정 고무신을 걸어두는가 하면 군데군데 청둥호박이 장식처럼 놓여져 있는 모습이 여느 시골집 같지가 않다.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옛 생활소품들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을 뿐인데도 꽤 운치가 있다. 한 개 한 개 놓고 보면 그리 특별한 물건도 아닌데 말이다. 지나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찾아와 기웃거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러한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다.
최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10년 전 경기 용문사 근처에 정착했고, 이곳에 온 지는 올해로 5년째다. 최씨가 이곳을 처음 봤을 때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허름한 농가였다. 당시의 집을 기억하는 이들은 지금의 모습에 감탄한단다. 같은 곳이라도 집주인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고.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을 할 때에도 떡 치는 도구나 구유 등 옛 생활용품들을 얻어와 모아두곤 해 가족들로부터 잔소리(?)를 듣던 그이는 오래 되어 낡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농촌 풍경에 나지막하게 지어진 시골집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단다.
최씨는 생전 처음 집을 고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시골집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생활하기 불편한 곳만 고치고 낡은 곳은 수리만 하기로 했다. 최씨는 한 달 반의 공사를 거쳐 허름한 농가를 시골집의 정겨움과 도시 주택의 편리함을 갖춘 집으로 바꿨다. 공사를 하는 데는 인부 한 사람의 도움을 받았단다.
현재 20평 남짓한 이곳은 ‘ㄱ’자 구조로, 작은 방 세 개에 화장실과 거실, 부엌 겸 주방이 있다. 가장 큰 공사라면 방과 연결돼 있던 툇마루를 없애고 대신 흙을 돋워 거실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툇마루에서 떼어낸 나무는 외벽 창문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데 사용했다. 거실과 하나의 공간으로 돼 있는 부엌은 재래식 부엌 바닥을 높여 만든 것으로, 부엌 쪽으로도 문을 내 바깥으로 드나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난방을 위해 방 한 곳만 구들을 두고 나머지 방에는 아궁이를 없애고 보일러를 설치했다. 두 개의 방에서 드러낸 구들장은 현관 앞의 마당에 깔고 구들장 사이사이에 채송화와 금잔화를 심어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꾸몄다. 입구에서 현관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철도 침목을 깔았다. 이처럼 그이에게는 버릴 물건이 하나도 없다. 그 한 예가 대나무통.
“한번은 대나무통 밥을 하는 식당에 갔는데 대나무통은 오래 되면 버린다고 하더라고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 집이 흙으로 지어 비가 많이 오면 건물 밑이 젖어 평소 신경이 쓰였거든요. 그래서 이를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
최씨는 식당에서 버리게 된 대나무통을 얻어와 건물 주위를 둘러가며 쌓아두었다. 그랬더니 분위기도 독특하고 비가 심하게 와도 외벽 밑 부분이 젖을 염려가 없어 좋다고 한다. 내부 마감을 황토로 하면 흙이 갈라지는 경우가 있다. 최씨는 아예 이곳에 천연 염색한 천 자투리를 발라 하나의 문양이 되도록 했는데 꽤 근사해 보인다.

 



최씨의 집은 시골집이라 천장이 낮은데도 전혀 답답하지가 않다. 이는 최씨가 벽마다 창을 내 바깥 전경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특히 거실에는 통창을 내고, 통창이 주는 현대적인 느낌을 없애기 위해 격자무늬 창틀을 위에 걸어 예스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식탁에 앉으면 창문을 통해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여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 못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이 집의 자랑이다. 거실에는 황토로 아궁이 모양의 벽난로를 설치했는데, 이 또한 운치가 있다.
“저는 새 것보다는 생활의 흔적이 묻어나는 물건들이 더 애착이 가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시골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얻어오곤 해서 가족들이 그랬어요. 왜 구닥다리 물건을 그렇게 모으느냐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그래요. 엄마가 그동안 모아오던 물건들이 제 자리를 찾았다고요. 이곳에 있으니 꽤 괜찮아 보인다나요?”
그러고 보니 실내를 장식하고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그이가 사용하는 생활용품이다. 젓갈 담는 항아리는 쌀통으로, 금이 가 못 쓰는 항아리는 쓰레기통으로, 떡을 칠 때 사용하던 도구는 자질구레한 용기들을 담아두는 장식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소 여물을 쑤던 가마솥은 유리를 얹어 식탁으로, 함지박은 유리를 얹어 거실 탁자로 쓴다. 어디 이 뿐일까.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반닫이에서부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작은 나무 의자까지, 최씨가 현재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없다. 예전과는 다른 용도로 쓰일 뿐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인데도 마치 장식품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대부분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옛 생활용품이기 때문. 이처럼 마당 가득한 옹기들과 실내의 옛 생활용품들이 토담집과 조화를 이뤄 최씨 집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분위기에 끌려 불쑥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을 보고 놀라던 최씨도 지금은 이들을 반갑게 맞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마 시골 생활을 동경하던 도시인에서, 도시인들에게 고향을 느끼게 하는 ‘시골 사람’이 다 되었다는 것일 게다. 글·이인아 차장 | 사진·박찬우(사진가)

전원생활 통해 새로운 일 찾은 최정희 씨
최정희 씨는 눈썰미가 있는 데다 솜씨까지 좋다. 새로운 머리가 유행하면 미장원에 가서 한 번 해보면 다음 번부터는 집에서 직접 같은 모양의 머리를 하고 다닌다. 바느질 솜씨 또한 전문가 수준이다.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솜씨 덕분에 오래 전부터 옷은 직접 만들어 입었단다. 이곳에 오면서부터는 염색에 관심이 생겨 천연 염색한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다녔는데 그러한 것이 사람들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최씨가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나서면 사람들마다 부탁을 해왔고, 그렇게 한 벌 두 벌 짓기 시작한 것이 본격적인 염색 작업과 바느질로 이어졌다. 염색과 관련한 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실력은 전문가 못지 않아, 요즘은 그이에게 염색을 배우러 오는 이들이 꽤 많다. 그래서 아예 집 입구에 ‘황토산방’이라는 이름을 써 붙이고 사람들과 염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에 빠져 있단다.

 


출처 : 흙에서흙으로
글쓴이 : 흙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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