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 고흐 -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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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 천재 화가 등으로 불리웁니다.
고흐는 네덜란드 빈민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 났어요.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그가 태어나기 꼭 1년전에 태어난 형이 있었죠.
부모님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한 그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었지요.
장남을 잃은 어머니는 그 슬픔을 차남(지금의 고흐)이 태어난 후에도
지우지 못하고 매일같이 죽은 큰 아들의 무덤을 찾았대요.
어머니의 애정이 부족함을 느낀 고흐의 맘 한구석에는 항상 슬픔과 울적함이 있었지요.
그림2 :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 1885년 4월
그림3 : 고흐 - 구두 한 켤레 - 1886년
이 구두는 고흐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예요
한짝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글픔을 버티는 모습"을,
한짝은 "고난극복 후에 맛보는 기쁨"을
보여주는 그림이죠.
그림2, 그림3에서 보듯
고흐는 일상생황에 담겨져있는 주제를 무엇보다 좋아했으며
이 구두를 그림으로써 광부, 농부,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는 그림의 주제가 참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가장 바람직한 소재는 성서적, 신화적 주제였고 그 다음으로 풍경과 정물이었고,
농부를 그린다는 것은 가장 천한 주제에 속했죠.
...
고흐는 화가공동체를 꾸리는 것을 진심으로 갈망했어요
예술가를 꿈꾸는 동료들이 함께 생활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때로는 예술을 논하고 하는...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자신이 먼저 아를이라는 곳에 가서 몇명의 화가를 불렀지요..
하지만 고흐의 설득에 응답해주는 사람은
오직 고갱 한 명뿐이었죠.
고흐는 고갱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멋진 그림을 그렸어요.
이시기에 그린 작품 중에는 오늘날 인기있는 알려진 것이 아주 많아요.
(그림4~그림8)
고흐는 신부 같은 맘으로 고갱을 기다리며 그가 거처할 방에 걸기
위해서 '해바라기' 연작을 그리게 됩니다.
노란색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고흐는 술꾼이었어요. 당시 유행던 압생트를 매일매일 마셨고
이 술의 부작용으로 황시증이 생기게 됩니다.
시립병원의 레이 의사가 고흐에게 음주를 나무라자
고흐는 이런 말을 했어요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라오 ...... 올 여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나로서는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오."
찬란한 노란 색을 얻기 위해 여름내내 취해있었다는 것이예요..
고갱은 10월 23일 , 아를에 도착하게 되고.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보고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림 4 :고흐 - (꽃병에 꽂힌 열네송이) 해바라기 - 1888년 8월
그림 5 :고흐 -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 - 1888년 8월
고흐가 아주 좋아했던 사람이예요.
그림 6 :고흐 -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 1888년 9월
이 그림과 관련된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편지
"... 짙푸른 하늘 여기저기에는
코발트 원색의 푸른색보다 더더욱 푸른 구름과
더욱 밝은 은하의 창백함을 닮은 푸른 구름이 떠 있었다.
그 창공 기숙이 별이 여기저기에서 빛났다.
녹색, 황색, 백색, 장미색, ....
파리에서는 본적이 없을 정도로 보석과 같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바다는 실로 깊은 군청색이었다."
그림 7 :고흐 - 밤의 까페 테라스 - 1888년 9월
그림 8 : 고흐 - 노란집 - 1888년 9월
고흐는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 집을 하나 얻고 그 벽을 노란색으로 칠한답니다.
하지만 얼마안가서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앙금이 생기게 된답니다.
아를에는 반고흐가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몇몇 동네분들이 있었지요..
그 중 한명이 드 라가르 까페 주인인 지누부인이었는데
고흐와 고갱은 지누부인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어요.
그녀는 손님이 없는 오전시간을 택해 모델서는 것에 응하게 되는데
이때 고흐는 방안에서 책을 몇권 들고와서 부인 곁에 놓게 됩니다.
고갱은 매우 못마땅했어요.
술집여주인 그리는데 옆에 누더기책은 왜 갖다놓는가 싶었죠.
고흐는 아랑곳하지 않고 45분만에 그림을 완성합니다.(바로 아래그림)
그림 10 :고갱 - 아를의 밤의 카페(지누부인) - 1888년 11월
하지만 고갱은 같은 모델을 놓고 그린 그림이지만.(그림9와 그림10을 비교해보세요.)
고갱은 실존하는 현물을 무시하고 그림을 완성합니다.
지누부인의 앉은 탁자위에는 책이 아닌 압생트술병과 술잔이 놓여있으며
당구대 뒤에 손님들로는 고흐가 좋아 했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대한 경멸을 나타내는 거죠.
그림5에서 보았던 조셉 롤링도 뒤에 앉아 있네요.
그녀의 표정도 스케치와는 다르게 유화로 옮겨질때는 더욱 냉소적인 미소로 바뀌에 됩니다.
물론 고흐도 고갱의 어느정도 의도를 눈치채게 됩니다.
고흐는 참았어요. 화가공동체의 꿈 실현을 위해.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계기는 아래 그림에서였죠.
그림 11 : 고갱 -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 1888
고갱은 이 그림을 그린 후 자신과 고흐의 우정을 기념하는 작품이라했어요.
과연 그럴까요?
자. 꽃잎은 다 떨어져가고 해바라기는 커다란 눈처럼 보이죠.
반 고흐는은 반쯤 감겨 멍한표정이며 해바라기가 눈을 더 크게 뜨고 있죠.
들고있는 붓은 마치 바늘을 들고 있는 것 같고..
뒤의 벽 풍경화의 소실점이 반 고흐 위에 있어서 그림이 사람을 억누르는 형상이죠.
고흐와 고갱은 사이가 더욱 벌어지게 되었고.
급기야 고흐가 고갱에게 술잔을 던지는 일도 있게 됩니다.
바로 다음날 고갱은 자신이 떠나겠음을 내비치고
겨우 겨우 고갱을 달래보았지만
사이는 좋아지지 않았죠.
여기서 고갱의 수기중 한 구절을 잠깐 보면
"...발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면도칼을 든 고흐가 나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내가 노려보니 그는 행동을 멈추고 달아났다."
달아난 고흐는 자기 귀를 자르게 됩니다.
고갱이 떠난다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는 동시에
"화가 공동체의 꿈"이 좌절되는데 대한 안타까움이죠.
그림 12 : 고흐 - 붉은 포도밭 - 1888
이 그림은 고흐의 수많은 작품중 유일하게 팔린 그림이예요. (400프랑)
고흐가 자른 귀에 붕대를 하고 있는 자화상은 두점이 있답니다. (그림 13, 그림 14)
그림 13 : 고흐 -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 - 1889년 1월
그림 14 : 고흐 -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 1889년 1월
그림 15 :고흐 - 뒤집힌 게 - 1889년 1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뒤집힌 게의 모습입니다.
고흐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는 듯..
그림 16 :고흐 - 별이 빛나는 밤 - 1889년 6월
고흐는 휘트먼의 시를 좋아했어요.
그 중의 한 구절을 보면
"초승달 어린이가 제 뱃속에 자기 보름달 어미를 데리고 간다"
그림의 달을 잘 보세요
달 부분(초승달)과 전체(보름달)이 동시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자세히 보면(큰 그림으로) 어지럽다는 사람이 있을정도로 소용돌이를 하고 있는데
이는 고흐의 눈에 실제로 그런식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어요.
당시 고흐는 오랫동안 현기증, 발작을 일으켜왔으니까요.
...
요양원에 입원하고 다음날부터 고흐는 실편백나무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게 되죠.
실편백나무가 죽음을 상장한다는 것은 당시 보편적 상식이었죠
여기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부분
"나는 해바라기 연작을 그린 것처럼 실편백나무 주제 연작을 그리려 한다.
왜냐면 아직 내가 보고 느낀 것 같은 실편백나무를 그린 화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이집트의 오베리스크처럼 아름답다"
그림 17 : 고흐 - 실편백나무가 있는 밀밭 - 1889년 9월
...
고흐는 말년에 오베르라는 조용한 마을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리게 되요
거기에는 가셰박사라는 아마추어화가이자 전문의가 있었기에 그를 잘 이해해주었어요.(처음에만)
그림 18 : 고흐 - 오베르의 교회 - 1890년 6월
이 그림에 대한 평론도 상당히 많은데
한 전문가의 평을 인용하자면
입구가 보이지 않는 교회 뒷면을 그린것은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반감을 뜻하고.
왼쪽으로 걷는 여인은 과거의 그가 사랑한 여인들의 상징.
오른쪽 길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상징한다고 해요.
그림 19 :고흐 - 가셰박사의 초상 1890년 6월
그림 20 :고흐 - 철로 옆을 지나가는 마차 - 1890년 6월
이 그림을 그린 한 달 후
놀랍게도 그의 시신은 길을 지나 묘지로 가게 되었답니다.
아마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나 봐요.
그림 21 :고흐 - 구름낀 하늘아래 오베르의 밀밭 - 1890년 7월
이 그림 역시 그가 묻힌 공동묘지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라 해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일까요..
그림 22 :고흐 - 까마귀떼 나는 밀밭 - 1890년 7월
이 그림에 대해 미술 평론가 고바야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측에서 온 길은 중앙에서 줄로 갈라지는데
가운데의 밝은 길은 동생 테오 부부가 걸어갈 미래
좌측으로 사라지는 길은 고흐를 나타내며
지평선 중앙의 구름을 보면
중앙에는 두개의 구름이 합쳐져있는데 이것은 테오부부
이 구름에서 떨어져 나가는 또 하나의 구름은 반 고흐를 의미하며
이는 절망적인 결의를 상징한다.
...
결국 고흐는 권총자살을 시도 하며 37세라는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10년 작품활동에서 1만 6000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생전에 팔린 것은 한점뿐 (그림12)
그가 죽고도 10년이라는 세월이 더 지나서야 그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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