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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 최장수 공산품 퍼레이드

구봉88 2008. 12. 14. 14:00

한국 최장수 공산품 퍼레이드

저렴한 약값이 오랜 인기 '묘약'

유한양행이 1933년 진통소염제로 선보인'안티푸라민'은 겨울철 손발이 트면 그 부위에,

감기에 걸리면 코 밑에, 배가 아프면 배꼽 주변에 바를 정도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이 약이 처음 나왔을 때 시판 가격은 60전. 화폐단위가'원'으로 바뀐 이후 60년대에 녹색 철제 캔에 간호사의

이미지가 들어간 제품은 70원에 팔렸다. 요즘 약국에선 2000원 정도에 팔린다.

60년대부터 따지면 약 40년간 28.6배 오른 셈이다.


부채표 활명수 -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1897년 당시 궁중 선전관이던 민병호가

궁중비방에 서양의학을 혼합시켜 만든 국내 최초의 양약이다.

같은 해 그의 아들 민강이 동화약방을 차려 대량생산했다.

 


1912년 1월 1일 매일신보에 신년축하 전면광고(출처 : 동화약품)

활명수는 '목숨을 살리는 신통한 물'이라는 뜻으로 국내 최초의 상표이며,

최장수 의약품으로 기네북에도 올라있다.

진로 소주 - 1924년
진천양조상회(현 진로)에서 1924년 처음 생산한 진로 소주

초기상표는 원숭이였으나 1955년 두꺼비로 교체되었다.

 

 

1959년 두꺼비 두마리가 소주병과 북을 두드리는 애니메이션 광고가 유명한데,

이는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CF라고 한다. 이 CF는 풀프레임(1초당 24프레임)이며 녹음을 먼저 한 후

그림을 그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너도진로~ 나도진로~ 진로 한잔하면 기분이 좋아~"라는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우황청심원 - 1925년
중풍, 뇌졸증 등으로 인한 인사불성에 빠진 사람에게 처방하는 구급약인 우황청심원은

1925년 조선무약의 창업과 동시에 탄생했다. 동의보감의 처방을 근거로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마시는 제품도 나와있다

현재 "솔표 우황청심원"으로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있다.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인 타임캡슐 수장품목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안티푸라민 - 1933년
근육통, 관절통, 신경통 등 각종 통증 및 벌레물린데, 피부가려움,

동창에 효과적인 가정상비약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안티푸라민,배가 아프면

배꼽 주변에 바를 정도로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었다.


추억의 양철통 디자인, 현재는 용기가 교체되었다

 

칠성사이다 - 1950년
1950년 평양에서 서울로 남하한 최금덕씨가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를 차리고

'칠성사이다'라는 제품을 발매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 청량음료가 물러가고 미국의

청량음료가 들어오기 전인 공백기였기 때문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된지 한달만에 6.25 발발로 공장은 폐허가 되었다.

 


혜은이씨의 칠성사이다 광고 사진

전쟁이 끝난 후 재기하기 시작하여 60년대 후반 도약기를 맞이했으나

제 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경영이 악화되고 결국 74년 롯데그룹으로 넘어간다.

모나미 153 볼펜 - 1963년
'모나미 153 볼펜'에서 모나미(MonAmi)는 불어로 Mon(몽 : 나의) + Ami(아미 : 친구) = '나의 친구'라는

뜻이며 153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서 베드로가 물고기 153마리를 잡았다'라는데서 유래한다.

광신화학공업사의 송삼석 회장이 1962년 기술진과 함께 일본에 넘어가 볼펜제조기술을 배워왔다.

하지만 당시 일본도 완벽한 볼펜 제조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고 한다.

1년동안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1963년 5월 1일 국내 최초로 볼펜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모나미가 유명해지자 당시 몬나니(Monnani), 모라니(Morani)와 같은 비슷한 영문표기의 '짝퉁'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를 단속하기 위해 위조품단속반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한다.

모나미 153볼펜의 히트로 제품이름이 회사이름보다 유명해지자 광신화학공업사에서 모나미화학사로,

그리고 1974년 지금의 모나미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박카스 - 1961년
영세제약회사였던 동아제약을 국내 최대의 제약회사로 만들어준 박카스는 1961년 처음 출시시에는

알약 형태로 '박카스錠'였다. 하지만 액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 20ml 앰플 형태로 이듬해

출시했으나 사람들이 주사제로 오인하는 경우가 잦아 결국 1963년 지금의 드링크 형태로 제품을 출시하게 된다.


한 네티즌이 만든 박카스 패러디 제품들, 박카스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브라보콘 - 1970년
1972년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에게 한 아이스크림콘을 건네주자

"미제 아니냐?"고 물어와 우리 대표단이 해명했던 일이 있다. 그때 건넨 아이스크림콘이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짜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라는 CF송으로 유명한 브라보콘이다.

1970년 4월 선보인 브라보콘의 인기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변함없다.

처음 출시될 당시의 가격은 50원, 현재는 8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브라보콘에 담긴 추억 때문에 일반인에게도 소중하다면 해태제과의 입장에서는 부도위기에서

건져내었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1997년 IMF 당시 회사가 부도나자 '해태 살리기 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부도 상태에서 최고 매출을 기록한다. 그 덕분에 1999년 재기할 수 있었다.

출처 : 역사의 소용돌이 Wild China 속에서***
글쓴이 : sbs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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