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넉넉하게 비가 내린 때문인지 비교적 시원하게 지내나 싶더니만, 8월 들어 폭염이 역시나 여름이구나 싶게 했다. 시장상황도 날씨와 비슷하다. 지난겨울까지만 해도 꽁꽁 얼어붙었던 금융과 부동산시장이 이제는 과열을 걱정할 만큼 폭등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드디어 1,600 고지를 감히(!) 넘보려 하고 있고, 재개발지역에서 시작된 부동산 열기는 전세시장으로 옮겨 붙어가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낙관론적 전문가들이 지난겨울에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면, 지금은 회복장세 국면에서 신중론을 외쳤던 비관론적 전문가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렇듯 시장상황이 급변하자 정책당국과 투자자 모두 다급해진 것 같다. 그동안 시인과 부인을 모두 피하던 당국이 드디어 출구전략(exit plan)의 시기와 강도를 언론에 흘리며 여론탐색 작업에 들어갔다. 투자자들 또한 포트폴리오 재조정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고민 중이다. 불과 반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중에서 금융자산 포트폴리오 조정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재테크 전략이 자산배분, 종목선택, 매매시점 포착의 세 가지로 나뉘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산배분전략임은 필자가 지난 칼럼들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도 투자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주식과 고정수익자산(예금 및 채권) 간 투자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로 여겨진다.
재테크전략에 대해 필자는 주변 친구, 친지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요청받는다. 대개는 필자의 재테크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이거나 단순한 농거리일 것으로 넘겨버리지만 어떤 경우는 금융이론에 대한 오해에서 유발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잘 듣는 보약은 드물며 대개는 체질에 맞추어 따로 짓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재테크전략 또한 투자자 각자의 환경, 성격, 직업, 나이 등에 따라 달라진다. 필자의 포트폴리오 구성 비율을 알려주면 그대로 복사하겠다는 혹자가 나타나면, 내심 당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주식에서 돈을 버는 방법에는 상, 중, 하책의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상책(上策)은 남들과 거꾸로 하는 것이다. 작년 겨울 종합주가지수가 900 밑으로 추락하고 미네르바가 500대를 예측하면서 모두가 주식투매에 나설 때 과감하게 매입하였다가, 모든 언론과 친지들이 한 목소리로 주식시장을 낙관적으로 예측할 때 팔고 나오는 것이다. 필자는 종합주가지수 910대에서 비교적 많이 샀지만 지금 파는 시점을 두고 고민 중이다. 지금은 과연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낙관적일까?
중책(中策)은 투자자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전체 운용자산의 일정비율만큼을 주식에 투자하겠다고 스스로 규칙을 정해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장이 아무리 암울해보여도 주식 투자 비중을 20% 이상 유지하고, 반대로 극단적으로 낙관적 시장상황에서도 40% 이하로 유지하겠다고 정해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꼭짓점에서 막차로 매입하고, 바닥에서 울면서 매도하는 절망감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필자 입장에서는 현재 주식투자 비중이 이미 정해둔 상한선에 도달하여 고민 중이다. 심정적으로는 더 투자하고 하고 싶지만, 규칙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함을 알기에 참는 중이다.
하책(下策)은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단, 이때 시장상황이 좋다고 투자금액을 늘리거나, 반대로 침체기에 금액을 줄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정금액을 꾸준히 나누어 투자하게 되면 의외로 양호한 투자결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적립식투자에서 가장 큰 고민은 투자기간을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매입시점은 분산되어 특별한 고민이 필요 없지만, 매도시점의 판단이 어려운 것이다. 적립식펀드에 투자한 많은 투자자들이 현재 매도 시점 포착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편, 아마추어가 주식투자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미래의 주가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하에 매매시점 포착전략을 스스로 구현하는 것이다. 정보의 양과 질, 급등락 장세에서 리스크관리 능력과 침착성 유지 측면에서 아마추어는 시장을 상대할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대개의 아마추어는 비쌀 때 사서 쌀 때 파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결국 시장을 떠나고 마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된다. 브라질, 러시아, 중국, 인도, 그 어디도 가본 적 없는 투자자들이 2007년 가을, BRICs 펀드에 가장 많이 가입한 사실은 우리나라 아마추어 투자자들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이와 같은 비전문성을 펀드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펀드들은 이러한 투자자들의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것으로 판단된다. 2007년 여름, 종합주가지수가 2,000을 훌쩍 넘긴 꼭대기에서 펀드운용사와 판매사들의 무책임한 마케팅은 극에 달했었다. 그래도 보수적일 것으로 믿었던 은행들조차 펀드 판매수수료 욕심에 물불 가리지 않고 투자자들을 부추겨 투자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후 주가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여 바닥에 이르는 동안 펀드 운용수수료나 판매수수료를 깎아 주었거나 돌려주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바닥에서도 꼬박꼬박 수수료를 챙겨간 것이다.
필자 또한 여러 개의 펀드를 갖고 있다가 올해 들어 하나 둘 정리하고, 현재는 소액의 일부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펀드에 대한 신뢰를 버린 대신 이를 ETF(보통 주식처럼 주식시장에서 즉시 매매 가능한 인덱스펀드)로 바꾸어가는 중이다. 필자의 친구, 친지 중에는 펀드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으므로 이러한 필자의 입장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재테크시장에서 왕자로 군림했던 은행들의 ‘채권형 신탁’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상실하여 시장에서 사라지는 데 불과 1, 2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펀드산업도 지금과 같은 행태를 계속하면 이제까지의 양호한 성과를 앞으로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신뢰를 상실하는 펀드라면 이제부터라도 발전전략을 새롭게 구상해 봄이 좋을 것 같다.
이번 여름도 역시 더웠다. 속대발광 욕대규(束帶發狂 慾大叫, 의관을 차려입고 있자니 미칠 것 같아 소리를 내지르고 싶다)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더운 여름에 열심히 김을 매주며 물길을 잘 잡아주어야만 곧 다가올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여름에 주식, 예금, 부동산, 이들 간 투자비중 재조정을 현명하게 고민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조금은 더 여유롭게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필자: 김진호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 컬럼비아대에서 재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때 증권회사에서 투자분석, 한국금융연구원에서 금융정책 수립도 했다.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금융이야기를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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