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그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크고 중대한 일 중 하나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결합 방식이기도 하여 혼인이 미치는 범위는 남녀 두 사람의 개인 생활이나 두 집안의 행복뿐만 아니라, 종족 발전 여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혼인 그 자체는 매우 좋은 일이지만, 배우자의 선택으로부터 약혼 결혼에 이르는 전 진행 과정에 있어서 유형무형으로 각양각색의 제한이나 간섭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매 과정마다 다음과 같은 각종의 금기사항이 생겨나게 되었다.
색깔금기
중국에서 가장 고귀하게 여기는 색은 붉은색이다. 이 색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인식되어 결혼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생활곳곳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색이다. 붉은색이 어떻게 해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색이 되었는지는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 즉 귀신의 세계는 '음산하다' '음기가 서려있다'라는 분위기와 연결되어 있듯이 음양(陰陽)중 음(陰)의 세계에 속한다.
반면 사람이 살고 있는 현실의 세계는 양(陽)의 세계에 속한다. 귀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태양이며, 태양은 바로 양(陽)의 상징이다.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에 보면 귀신은 해가 있는 낮에는 활동을 못한다. 태양의 색깔은 붉은색이다. 그래서 귀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색은 붉은색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어쨌든 붉은색은 오랜 세월에 거쳐 중국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고상한 색이다. 그래서 도장을 찍을 때 사용하는 인주를 다른 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쓰는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도처에 붉은색으로 도배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이 색을 매우 선호한다. 특히 중국 사람들의 결혼식을 참관하여 보면 온통 붉은색 천지이다 결혼식 식장 바깥에서는 귀신을 쫓아낸다는 폭죽을 다발로 터뜨리는데, 이 폭죽 색깔도 역시 붉은색이다.
결혼식에 참가하면 우리나라와 같이 부조를 하는데, 이 때 사용하는 봉투의 색깔도 필히 붉은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흰색 봉투에다 점잖게 '축혼(祝婚)', 혹은 '화혼(華婚)'이라고 쓴다. 그러나 중국에서 결혼식 부조에 흰색은 절대로 써서는 안된다. 중국에서는 흰색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장례식때에 주로 쓰이는 색깔이 바로 흰색이다.
궁합관련금기
궁합과 결혼에 관련된 금기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인간사에 대입되면서 발전되어 온 독특한 문화형태이다. 결혼에 있어서 궁합에 관한 금기는 남녀의 사주팔자에 근거하여 결혼이 성립될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신세대들이 아예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농촌에서도 지역과 가정에 따라서 거의 무시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 중국 사회에 여전히 그 존재가 남아 있다.
과거 중국에서 이를 얼마나 중요시하였고 얼마나 엄격하였는지는 그 절차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두 가정 사이에 혼담이 오고 가면 우선 중매인을 통해 남녀 쌍방의 출생년월일 및 시간을 빨간 종이위에 쓰는데, 절대로 흰색 종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홀수이면 남자의 경우는 이름 밑에 '건(建')자를 써 넣었으며, 여자의 경우에는 이름 밑에 '서(瑞)'자를 써서 넣었다.
남녀 쌍방이 이 종이를 교환한후에 각기 집안의 신위(神位) 옆에 놓고 3일 동안 아무런 벌레가 이 물 속에 떨어지지 않으면 매우 길吉한 것으로 간주했으며, 그 반대의 경우는 물론 더 이상 혼담이 진행되지 않았다. 이를'삼일원(三日圓')이라고 하였다. 3일 동안 모든 것이 탈없이 원만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이 이외에도 이 기간 동안에 그릇이 깨어지거나 가축이 질병이 들고 강도나 화재를 만나면 조상신이 이 혼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간주해서 상대방의 사주 종이를 돌려보냈다.
그 다음 단계는 남녀 쌍방의 사주팔자를 계산해서 합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이를 계산할 때 적용되는 것이 바로 음양오행에 관한 이론이다. 우선 음양오행설이 어떤한 것인지 간단히 살펴보자. 음양오행설의 기원을 살펴보면, 일찍이 춘추전국(春秋戰國(B.C.8세기∼B.C.3세기)시기에 이에 관한 체계적인 정리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결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관련된 문헌의 기재에 의하면 오행五行과 결혼이 직접적인 관련을 맺기 시작한 것은 '사주팔자(四柱八字)의 개념이 생긴 이후부터인 것 같다. 소위 사주(四柱)란 개인이 출생한 년·월·일·시의 네 기둥을 말하며, 팔자(八字)란 개인이 출생한 연월일시를 간지(干支)로 산출해 낸 8개의 글자를 말한다.
음력으로 1990년 7월 5일 낮 12시에 태어난 사람이 있담년 이 사람의 생년월일은 경오庚午(년)·갑신(甲申,월)·신유(辛酉,일)·갑오(甲午,시)가 된다. 동시에 매 간지(干支)는 음양오행 중 한 요소에 해당된다.
사주팔자란 바로 위의 도표에서와 같이 음양오행에 대입한 내용을 가지고 그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나 결혼 혹은 각종 사항을 미리 예측하는 내용을 말한다. 기왕에 개인의 사주가 그 사람 운명의 방향을 결정하고, 또한 일단 정해진 사주는 바뀌지 않으므로, 사람들 결혼 등의 대사에 있어서 쌍방의 사주가 잘 배합이 되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오행(五行)간의 상생상극(相生相克)의 원리를 대입하여 남자의 사주와 여자의 사주가 서로 상생(相生) 관계에 있으면, 즉 서로 키워 주고 보완해 주는 관계에 있으면 결혼 생활이 평탄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서조 상극(相剋)이 되면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하거나 파탄이 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자의 사주가 수(水)에 속하고 남자가 목木에 해당되면, 나무가 성장하려면 물이 필요하듯이 두 사람 사이에는 수생목(水生木)의 상생(相生)관계가 되어 일단은 괜찮은 궁합으로 판단하는 식이다. 오행간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은 각각 다음과 같다.
상생관계(相生關係) :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상극관계(相克關係) :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 몰론 궁합을 보는 과정이 단순히 두 사람의 사주가 상생(相生) 관계이면 무조건 좋고, 상극(相克) 관계이면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간단하고 단순한 작업은 아님을 밝혀 둔다.
예를 들면 사주에 오행 중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꼭 좋은 현상은 아니다. 만약 남자의 사주에 나무 목(木)이 너무 많이 있는 경우, 여자 쪽 사주에 금(金)이 있는 것이 좋다. 금극목(金克木)이 되기 때문에 여자가 갖고 있는 금(金)의 덕성이 남자의 지나치게 과도한 목(木)의 덕성을 어느 정도 제어해 주기 때문이다.
띠와 나이에 관련된 금기
오늘날 현대 중국에서 남녀 사주에 의한 궁합이 결혼의 성패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지만, 전통 미신이나 관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띠를 따져서 서로 상충相沖되는 띠끼리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닭과 개띠, 용띠와 토끼띠 등은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
이를 논하기 전에 먼저 띠에 대해 알아보자 띠라고 하는 것은 원래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중 십이지十二支와 연결되어 있는데, 중국어로는 이를 '십이생초十二生肖'(shi er sheng xiao, 스알셩씨아오)라고 한다. 십이지十二支는 각각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이다.
이들 십이지十二支의 글자는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에 민간 사회에서는 열두 종의 동물을 가지고 매 지支에 상응시켜, '자子는 쥐띠, 축丑은 소띠, 인寅은 호랑이띠··· 하는 식으로 각종의 띠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방법이 언제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는 확실히 알수가 없다. 민간 사회에서는 이들 띠를 점차 그 해에 태어난 사람의 인격과 결부시키는 관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십이지十二支의 중국어 단어인 '십이생초十二生肖'의 '초肖'는 '닮았다'라는 의미이다.
즉 어느 동물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마치 그 동물의 이미지를 닮거나, 적어도 어느 부분은 그 동물과 흡사한 면을 갖는다고 여기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관념은 당唐나라·송宋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상충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쳐, 자기가 출생한 해에 해당하는 동물을 마치 자신의 생명신生命神인양 매우 중시하게 되었다. 상층사회 뿐만 아니라 민간사회에서도 점차로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인 관념의 동물띠와 실제 동물과의 관계를 사실인 양 착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실제생활 중 적지않은 부분이 이런 관념적이 지배를 받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혼인 대상자를 고를 때 어느 동물 띠에 속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와 호랑이띠이면 이미지를 실제 호랑이와 결부시켜 강한 여자로 인식한다. 이 관념은 아마도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심리에서 나온 것 같다. 그리하여 호랑이띠에 속한 여자는 정마로 사람을 해치는 흉악한 호랑이로 여기게 되었다.
특히 호랑이는 늘 밤에 나타나서 사람을 해친다고 하여 야간에 태어난 호랑이띠의 여자는 기피 대상이었다. 양띠 여자의 경우도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양의 눈은 눈동자 주변 모두가 희어서, 다섯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다"(양안로사백羊眼露四白, 오부수택五夫守宅)라는 속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양의 눈은 흰자위가 많고 검정 눈동자가 작아, 죽은 사람의 눈이 연상되어 기피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과거에는 양띠 여자는 출가후 남편을 극克하고 과부가 된다는 그릇된 관념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 띠의 여성들은 정말 결혼을 못했는가? 꼭 그렇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이들 띠에 속하는 여성들은 한 살을 맣게 하거나 적게 속이는 편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호랑이띠의 전반부에 태어난 여자는 소띠로, 후반부에 태어난 여자는 토끼띠 등으로 말이다. 오늘날 젊은이들도 부모에게 사귀는 여자의 띠가 기피되는 띠일 경우 나이를 슬쩍 속이 곤 한다.
나이차이금기
신랑 신부의 나이 차이도 금기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는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우선 일반적으로 남자의 나이가 여자의 나이보다 많아야 함을 원칙으로 하고 남녀간에 나이 차이가 너무 큰 것은 금기로 하고 있다. 만약 열 살 차이가 나면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비판의 소리가 나오곤 열 살 차이면 한 세대 차이로 간주되어 윤리의 법칙을 혼란시키는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에 있어서 남자가 여자보다 세 살·여섯 살·아홉 살 많은 것은 기피되곤 하였다. 사주상 서로 극克하고 해害한다는 관념에서이다. 반대로 여자가 남자보다 한 살 많은 것도 매우 금기시 되어 "여자가 한 살 많은면 부인이 아니다"(여대일女大一, 불시처不是妻)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단지 여자가 남자보다 한 살 많은 경우만 피하고, 여자가 두 살 많은 것은 오히려 권장되는 경우도 있다. 남녀가 같은 나이이면 결혼을 기피하는 관념이 아직도 남아 있다. 특히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동성동본문제
우리 나라에서는 동성동본(同性同本)의 개념이지만 중국에서는 동성불혼(同姓不婚)의 개념이다. 동성불혼(同姓不婚)의 풍속은 중국의 각 지역 각 민족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던 현상인데, 한족(漢族)을 포함하는 절대다수의 민족이 지금도 부분적으로 이 풍속을 준수하고 있다.
아주 먼 옛날 혼인은 본래 같은 성이건 이성(異性)이건 제한없이 행하여졌다고 한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같은 성끼리의 결혼이 금지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관한 구체적인 기재는 주(周)나라 때 문헌에 엿보이기 시작한다. 왜 이러한 금기가 생기기 시작하였는가? 이를 금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후손의 번성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임을 많은 문헌들이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춘추좌전(春秋左傳)』의 "남녀가 같은 성이면 자손이 번성하지 않는다. (남녀동성(男女同姓), 기생불번(基生不蕃)"와 『국어(國語)』의 "같은 성끼리 결혼하지 않은 것은 자손이 번성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해서이다(동성불혼(同姓不婚), 구불식야(懼不殖也)"등의 기재는 모두 같은 성끼리 결혼하였을 경우 자손이 번성하지 못함을 우려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 이외에 또 다른 견해로는 동성(同姓)끼리 결혼하면 재난이 온다는 설이다.
『국어(國語)』에 보면 "취처피기동성(娶妻避基同性), 외재난야(畏災難也)"라는 기재가 있다. "부인을 맞이하는데 같은 성을 피하는 것은 재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옛날에는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배우자를 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만큼, 만약 부락 내에서 배우자를 구할 경우 서로 다춤이 일어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되고, 이는 결국 부락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아예 같은 성姓을 가진 배우자를 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는 해석도 있다.
이후 당唐·송宋·원元·명明·청대淸代를 거치면서 동성끼리의 결혼에 대한 금지는 일단 각종 법률의 형태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명나라나 청나라는 이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특히 청나라 말기에는 동성同姓과 동종同宗을 구별하여 같은 혈통을 의미하는 동종결혼同宗結婚만 금지시키고, 단순히 성이 같은 동성同姓끼리의 결혼은 금지시키지 않았다.
오늘날에 와서는 단순히 성씨姓氏가 같다고 해서 동일 혈통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은 이미 크게 변하였다. 각종 성씨姓氏의 발생이 반드시 동일 혈통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성끼리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도 그렇게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비록 같은 성끼리 결혼하더라도 사람들이 직접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혈연 관계의 근원近遠이지 단순히 성씨가 같은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근대 중국사회에서는 "친상가친親上加親"이라 하여 가까운 친척끼리 결혼할수록 더욱 좋다는 관념이 유행하였다. 예를 들어 이종 사촌과 결혼하는 것을 매우 이상적인 결혼으로 받아들이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T.V.국에 보면 이종 사촌끼리의 연애 감정을 묘사하는 장면도 나온다.
현행 중국의 혼인법에 의하면 삼대三代에 걸친 방계 혈통 내에서만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삼대三代라고 하면 조부·조모 대代 부모 대代 범주 내에서 인척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고종사촌·이종사촌 등과는 결혼을 할 수 없다.
결혼시기 금기
결혼식을 언제 올리는가 하는 문제는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매우 신중히 여기는 사항이다. 그 시기는 해(年)에 관한 것도 있고, 월月과 일日에 관한 금기도 있다. 일반적으로 특이한 상황이 들어가는 해에는 결혼식을 거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입춘立春이 들어있지 않은 해에는 결혼식을 거행하지 않는다.
입춘立春은 매년 대략 양력 2월 5일 좌우인데, 음력 정월 초하루가 양력 2월 5일 이후가 되면 그 해는 입춘立春이 없는 해가 된다. 이런 해를 '과년寡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寡'란 '과부寡婦'의 '과'자이다. 따라서 입춘이 없는 '과년寡年'하면 과부 혹은 홀아비 등이 연상되어 결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해로 인식된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입춘이 없는 "과년寡年'에 결혼하면 후손이 없다라는 관념을 갖고 있다. 그 해에 입춘이 없다는 것은 춘春, 즉 봄이 없다는 것이며, 춘春은 춘심春心·춘정春情이라는 단어같이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옛날의 혼례식은 모두 봄에 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만약 이런 해에 결혼을 하면 남녀간 음양陰陽의 기운이 교접하지 않아 자손이 없을까 생각하였던 것이다.
혼례를 올리는 달에 대해서도 약간의 금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농촌에서는 농사일이 한창 바쁜 시기인 음력 5월·7월·9월 등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다. 전통적인 관념에 의하면 이런 달들은 악월惡月이라 해서 귀신들이 많이 돌아 다녀서 결혼하기 쉽지 않다고 여겼다. 사실 이즈음은 날씨도 덥고 음식물도 쉽게 부패되며, 농사일도 많아서 사람들이 한창 바쁘고 가축들도 병이 나기 쉬운 기간들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가능한 한 결혼식을 피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치가 있는 것 같다.
날짜에 있어서는 홀수 일은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속담에 "호사성쌍好事成雙", 즉 "좋은 일은 쌍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혼인과 같이 경사스러운 날은 필히 짝수와 연결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이 이외에도 중국인들이 보편적으로 기피하는 날은 음력 7월 7일, 즉 칠석七夕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날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일년에 한 차례 만나는 날이다. 따라서 이 날 결혼한다는 것은 견우와 직녀 마냥 부부가 늘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연상되어 혼례에 적합하지 않은 날로 인식된다.
오늘날에는 혼례를 올릴 년·월·일 등에 대한 엄격한 금기 사항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짝수 달 짝수 일이 좋은 날로 인식되고 있으며, 농촌에서는 농사철이 바쁜 기간에는 혼례식이 상대적으로 적고, 농한기 기간에는 비고적 많은 편이다.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5월 1일(노동절)·10월 1일(건국기념일)과 춘절春節(음력 정월 초하루) 전후 등 국가가 정하고 있는 법정 휴일에 거행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음력보다는 양력을 쓰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음력에 의해 엄격히 지켜지던 금기일의 효력이 이미 상실되고 있다. 전통 관념에 집착을 하는 윗세대에서 이를 고집한다 하더라도 종종 젊은 세대들이 이를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전통적인 금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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