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 리더쉽

21세기 존경받는 기업의 조건

구봉88 2010. 7. 11. 17:00

기업의 생존을 위한 노력은 도처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실행되고 있다.

 

몇 년전 엔론의 파산에서 우리 기업들은 무엇보다도 시장 신뢰의 상실은 큰 대가를 치룬다는 점을 배워야 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직·간접 금융시장에서 외국인의 지배력은 더욱 커졌고, 기업의 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등이 미국식 평가 기준을 받아들이는 등 국내 금융시스템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통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시장 신뢰를 상실한 엔론이 보여 준 단기간 내의 급속한 파산은 우리기업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중후 장대형 에너지 사업을 경박 단소형 첨단사업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하여 1990년대 후반 e-비즈니스계의 총아, 구조조정의 선두주자로 각광 받던 엔론(Enron)사가 실적부진, 분식회계 소문이 난지 불과 2개월도 못되어 파산하였다. 1,000억 달러짜리 회사가 하루 아침에 몰락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엔론의 파산 원인은 무엇이고 엔론의 파산이 국내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진단해 보았다.

 

엔론의 성공과 몰락

 

엔론은 1990년대 미국 에너지 시장의 규제 완화 바람을 타고 에너지 유통(Transportation & Distribution) 업체에서 에너지 중개 업체로 급성장한 회사이다. 엔론의 2000년 매출액 규모는 1,008억 달러(약 131조원)로, Fortune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16위를 차지하였던 기업이다. 엔론의 매출 규모는 국내 최상위 대기업집단의 전체 매출액보다 크다.

 

엔론의 사업은 에너지 중개, 에너지 유통, 초고속통신 사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업별 매출 규모는 에너지 중개와 관련된 매출액이 971억 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에너지 수송 등 전통적 에너지 유통과 관련된 매출액 27억 달러, 초고속통신 사업 9억 달러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 에너지 사업의 매출 비중은 3% 정도에 불과하다.

 

엔론은 2001년 3/4분기 실적을 발표하기 이전까지 투자자, 경영학자, 언론의 주목을 받는 소위 잘 나가는 회사였다. 엔론은 Fortune지가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25위에 랭크되었고, 5년 연속으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고경영자이자 설립자인 레이(Lay)는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CEO 25인 중 한명으로 뽑혔다. 또한 영국의 Financial Times는 2000년 최고의 에너지 업체로 엔론을 선정하는 등 언론의 엔론에 대한 평가는 오랜 기간 동안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언론뿐만 아니라 경영학자의 평가도 긍정적 이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경영학 교수인 Bartlett는 “엔론의 최고경영자인 스킬링과 창립자인 레이는 기업가적인 행동양상과 성장엔진을 창출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였고,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Hamel은 “엔론은 무한한 성장가능성이 있는 혁신적인 e-비즈니스 개념을 창출하고 있다”고 칭찬하였다.

 

투자자들도 엔론의 높은 성장률에 매료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엔론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는 높은 주가상승률로 나타났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엔론의 주가상승률은 1,415%로 S&P500의 주가상승률 383%에 비해 3.7배나 더 높았다.

 

하지만 작년 3/4분기 저조한 실적 발표 이후 SEC의 내부자 거래 조사, 회계장부 재작성, 합병 실패 등 잇따른 악재가 터져 나오고 결국 파산보호 신청을 하게 되면서 엔론은 주주, 채권자, 협력업체, 종업원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비가 오면 몰아친다”는 미국 속담이 딱 들어맞는 사례가 되었다. BusinessWeek는 엔론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주주는 630억 달러, 채권자는 176억 달러, 파생상품 거래 파트너는 40억 달러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종업원들은 회사의 파산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데다가 퇴직연금과 관련된 자사 주식투자로부터의 손실로 인해 평생동안 저축한 돈을 일시에 날려 버렸다. 종업원 퇴직연금 자산의 60% 정도를 엔론 주식을 매입하여 큰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엔론의 이러한 급격한 몰락 원인은 무엇인가?

 

원인 1. 수익창출에 실패한 사업 다각화

 

엔론사가 1990년대 중반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내건 슬로건은 “Asset Heavy Company에서 Asset Light Company로”였다. 초기 변신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엔론은 가스, 전력 등 에너지를 개발·생산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유통·수송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집약적 사업에서 탈피하여 사업자 간 에너지 거래를 중개하면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신사업을 일구는데 더욱 주력하였다.

 

이 시기에 사업구조 재편을 위해 엔론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e-비즈니스 강화와 첨단 금융기법 활용이었다. 엔론은 오프라인 상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2년간의 준비 끝에 1999년 11월에 인터넷에서 에너지를 거래할 수 있는 ‘EnronOnline’을 설립하였다. EnronOnline은 인터넷에서 가스, 전력, 철강, 목재 등 다양한 상품거래를 취급하였다. EnronOnline은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아 하루 거래금액이 3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고객 반응도 좋았다.

 

에너지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거래에서 재미를 본 엔론은 그 범위를 확장해 신용파생상품(Credit Derivatives)같이 순수 금융상품도 취급하는 월스트리트형 회사로 변모했다. 엔론이 개발한 대표적 상품 중 하나가 날씨 파생상품 이었다.

 

날씨변화로 기업들이 입게 될 손익을 일종의 권리형태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였는데, 신상품 도입 초기에는 에너지 관련 업체들이 주요 수요자였지만, 나중에는 기후에 영향을 받는 모든 회사들이 관심을 갖는 상품이 되었다. 새로운 금융기법 개발을 위해 엔론은 상위 비즈니스 스쿨에서 매년 25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하였다. CEO인 스킬링은 이렇게 대거 몰려드는 인적자본의 우수성에 대해 무척 자긍심을 가졌다.

 

이러한 사업구조 재편으로 엔론의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물론 회계조작으로 크게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지만 엔론의 매출액은 1996년 132억 달러에서 1997년 203억 달러, 1998년 313억 달러, 1999년 401억 달러, 2000년 1008억 달러로 늘어나 연평균 66%의 성장세를 과시하였다. 매출 증가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인터넷상의 에너지 중개 플랫폼인 EnronOnline이 설립된 이후 엔론의 매출액이 급증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매출액의 급성장과는 대조적으로 엔론의 수익성은 급감하였다. 엔론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996년 15.7%에서 2000년에는 8.5%로 줄어들었다. 매출액이 급성장한 5년(1996~2000) 동안 자기자본이익률은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엔론의 수익성이 저하된 데는 사업다각화에 따른 투자 실패와 에너지 거래업에서의 경쟁심화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엔론이 인도에서 추진했던 대규모 발전사업은 최대 고객이 전기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 어려움에 봉착했고, 영국에서 추진했던 수력 발전사업은 규제 당국의 요금 인하 정책으로 수익성 부진에 처하게 되었다.

 

엔론의 해외 사업의 영업 마진은 1.5%로 미국내의 영업 마진(2.7%)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였다. 또 2000년에 야심차게 시작했던 초고속통신망 사업도 별다른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엔론은 광통신 시설 매수에 12억 달러나 투자를 하였으나 IT산업의 침체와 더불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에너지 거래에서는 경쟁 격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엔론이 인터넷상에서 가스, 전력 등 에너지 거래를 할 수 있는 ‘가상공간의 통합(Virtually Integrated)’ 모델은 초기 투자부담이 적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았다. 따라서 신설업체들은 엔론이 자랑하던 우수한 사원들을 스카우트하여 에너지 거래 사업에 진출하였고, 그 결과 경쟁 심화로 수익성은 악화되었다. 에너지 거래의 평균 마진은 1998년 5.3%에서 2001년 3/4 분기에는 1.7%까지 하락하였다.

 

원인 2. 무너진 내부통제시스템과 모럴 해저드

 

이사회의 독립성 부족, 경영자와 회계법인의 담합 등 내부통제 시스템이 확립되지 못한 폐해가 누적된 것이 엔론사 파산요인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사회 멤버 중 상당수가 엔론과 거래관계가 있는 등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경영진을 적절히 감독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이사회 구성 멤버인 웨이크함(John Wakeham)은 엔론과 컨설팅 계약 을 맺고 있었고, 그람(Wendy L. Gramm)과 멘델손(John Mendel-sohn)은 엔론이 기부한 재단의 책임자였다. 또한 이사회멤버가 기업 재무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여 사설 펀드를 통한 부외금융, 파생상품 등 복잡한 금융기법을 통해 어떻게 부채를 숨기고, 이익을 부풀리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사회는 2001년 8월 엔론의 최고경영자였던 스킬링이 갑자기 사퇴하기 전까지 그의 과거 성공 실적이나 업계의 찬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때문에 이사회가 해야 할 감독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러한 이사회의 독립성 부족과 전문성 부실 요인이 작용하여 스킬링과 CFO인 Andrew Fastow를 제외하고는 자회사와의 거래, 부외금융 등과 같은 복잡한 사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이사나 경영진이 없게 되었다. 또한 엔론의 CFO인 파스토우가 자산운용업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횡령하였다.

 

2001년 10월 엔론은 전임 최고 재무책임자(CFO)가 자산운용업체 LJM2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12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CFO인 Fastow는 엔론의 LJM2 매수 과정에서 LJM2로부터 3천만달러 이상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회의 사업 내용에 대한 이해부족은 스킬링과 파스토우가 갑작스럽게 사퇴하게 되자 잇따른 악재에 대해 엔론이 신속한 조치를 취하여 조기에 사태수습을 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엔론의 회계감사인인 앤더슨의 도덕적 해이도 파산의 큰 원인이었다. 회계감사법인인 앤더슨은 엔론의 회계감사와 컨설팅 서비스를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엔론의 분식회계를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앤더슨은 2000년 한 해에만 회계감사 수임료로 2,500만 달러를 받았고, 컨설팅 서비스 대가로 2,700만 달러를 받았다.

 

레이 회장은 2001년 1월부터 7월까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엔론 주식 2,300만 달러어치를 팔아치웠고, CEO를 맡았던 스킬링도 올 상반기에 1,750만 달러 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하지만 종업원 퇴직연금은 파산보호 신청때까지 연금 자산의 60%를 엔론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이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심각한 부실을 사전에 감지하고 주식을 먼저 대량으로 매도했다고 비난하고 있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려고 하고있다.

 

원인 3. 편법적인 자금조달

 

엔론은 가스, 전력, 철강, 목재 등의 중개 사업, 날씨 파생상품 및 신용 파생상품 거래 등 금융성격이 강한 사업구조로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편법적인 자금조달 기법을 신금융기법이라는 미명하에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성격이 강한 거래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거래 상대방이 엔론의 신용과 자금조달 능력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엔론은 부채규모 축소와 자본 확충 등을 통해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엔론은 내부유보,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본 확충보다는 주로 부채를 통해 조달하였고, 더욱이 막대한 부채를 장부상에 나타나지 않는 부외부채로 조달하는 각종 편법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엔론은 사설 펀드(SPEs:Special-Purpose Entities)를 만들어 자산과 부채를 이곳에 매각하였다. 사설 펀드는 엔론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므로 사설 펀드의 자산과 부채가 엔론의 재무제표에 표시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내역이 회계장부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사설 펀드에 외부 투자자가 3% 이상 투자하게 되면 모회사와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엔론이 사설 펀드를 통해 어떻게 부채규모를 축소할 수 있었고, 나중에 엔론의 부채로 다시 나타났는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자. 엔론은 기관투자가가 주주인 Marlin Water Trust와 합작하여 Atlantic Water Trust라는 사설 펀드를 만들었다. 사설 펀드는 출자금과 추가 차입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엔론의 자산과 부채를 인수한다. 이러한 계약을 통해 엔론은 상당 규모의 부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엔론은 이면계약을 통해 엔론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주가가 하락하면 Marlin Water Trust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엔론이 되사도록 되어있었다.

 

이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면 사설 펀드의 부채 9억 달러를 엔론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설 펀드의 부채에 대한 위험을 최종적으로 떠안는 것은 엔론이기 때문에 엔론의 회계장부에 나타나야 하지만 실제로는 엔론의 재무제표에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회계감사에서도 지적되지 않았다.

 

또한 엔론은 30여 개가 넘는 제휴처로부터 돈을 차입하였으며, 가스, 전력 등 에너지 거래를 중개하면서 신용이 낮은 기업들에 대해서 엔론이 지급보증하는 업무도 수행하였다.

엔론의 파산보호 신청 당시 부채를 살펴보면, 모회사의 부채는 131억 달러, 자회사의 부채는 181억 달러였다. Economist 보도에 의하면 공식적인 부채외에도 200억 달러의 추가 부채가 더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파산직전까지 협상과정에 있었던 다이너지가 엔론 인수를 포기한 결정적인 원인이 엔론의 부외부채 규모를 추정할 수 없었다는데 있다고 추정된다.

 

원인 4. 분식회계와 이익 부풀리기

 

엔론은 매출액 성장세에 비해 수익성 증가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자 회계조작을 통해 이익을 부풀렸다.

엔론은 자회사 지분 보유가 50%가 되지 않으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모회사의 실적을 돋보이게 하였다.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게 되면 모회사와 자회사의 거래는 하나의 실체로 보기 때문에 모회사와 자회사간 거래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회사가 모회사와 독립적인 회사로 판단되어 연결재무제표 작성 대상이 되지 않으면 자회사와 거래를 통해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다.

 

또한 엔론은 공정한 가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투자자산을 자회사에 양도하여 이익을 증가시켰다. 1997년부터 2001년 3/4분기까지 엔론의 투자자산 처분이익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나 되었다.

 

엔론은 매출의 인식에 있어서도 분식회계를 자행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스와 전력 등 에너지 거래에서 상품의 양수도 시점이 아니라 계약 체결 시점에서 매출과 이익을 반영함으로써 이익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미국 SEC가 엔론의 사설 펀드에 대해 조사가 들어간 지난해 10월 이후 엔론은 1997년부터 2001년 3/4분기까지의 재무제표를 재작성 하였다. 재무제표의 재작성으로 1997년부터 2001년 3분기까지 엔론의 순이익이 29억 달러에서 23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지난 5년간 엔론은 순이익을 6억 달러, 약 20% 정도의 이익을 부풀린 것이다.

 

원인 5. 투기적 파생상품거래

 

엔론은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장 상황이 자신들의 예상과 빗나가 파생상품 거래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투기 거래를 감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잘 나가던 때의 엔론은 금융성격의 에너지 거래를 중개하면서 철저한 위험관리로 정평이 나있는 회사였다. 엔론은 CEO가 자신의 시간 중 1/3을 위험관리 업무에 할애하고, 에너지 상품을 거래하는 트레이더의 올바른 정신 무장과 업무규정 준수를 강조하였다.

 

현물과 선물 거래에 있어 이익을 남기는 투기거래보다는 위험을 줄이는 헤지거래가 원칙이며, 트레이더의 투기거래를 제한하기 위해 보너스의 75%는 위험조정 성과(Risk-Adjusted Performance)에 연동되었다. 또한 현물과 선물 포지션에서 이익과 손실 규모가 잔고의 1%를 벗어나면 바로 반대매매를 통해 위험을 제한하도록 내부적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엔론의 위험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파생상품에서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엔론은 가스와 전력 파생상품의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상당수의 매수포지션을 취했지만 이러한 예상이 맞지않아 큰 손실을 보았고, 이러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추가적인 투기를 감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원인 6. 시장 신뢰의 상실

 

엔론은 2001년 3/4분기의 저조한 실적 발표(2001.10.16) 이후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은 단시간 안에 파산 보호 신청(2001.12.2)을 하였다. 엔론이 이렇게 단시일에 파산을 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시장 신뢰의 상실로 인한 주가 폭락이었다. 3분기의 실적발표 당시 33.8달러였던 주가가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하향 조정된 2001년 11월 28일에는

 1.1달러로 급락하였다. 실적 악화, SEC의 내부자 거래 조사, 분식회계 발표 등 악재가 잇달아 발표되면서 투자자들은 엔론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였고, 이로 인해 신규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진 엔론은 더 이상 재기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엔론이 급격히 시장 신뢰를 상실한데는 평소에 경영진이 투자자들에게 사업 내용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회사내부의 고위 경영진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업 내용을 기업 외부에 투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연히 외부 투자자들은 엔론의 에너지 거래에 수반하는 복잡한 금융거래, 자회사와의 내부거래, 파생상품 거래나 부외부채에 대해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하였다.

 

정보의 부족으로 엔론의 실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잇따른 악재가 발표되자 투자자들은 엔론이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이게 되고 이는 투매로 이어지게 되었다. 단순한 엔론의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에서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확산되어 결국 급작스럽게 파산하게 된 것이다.

 

수익성이 동반되지 않는 성장은 파산 위험

 

엔론의 성공과 몰락은 기업들에게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첫째, 수익성이 동반되지 않는 급격한 성장, 차입에 의존한 경영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엔론은 ‘수익성’보다는 ‘성장’ 위주의 경영을 지향하였고, 실물투자나 자본집약적 사업보다는 금융중개성격이 강한 중개업을 육성하였고, 물적자산보다는 인적자산을 중시하는 경영전략을 추구하였다. 또한 기업 성장에 소요되는 자금은 주로 외부차입을 통해 해결하였다. 그러나 전략 방향이 옳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없다.

수익이 동반되지 않는 성장, 차입위주의 경영의 폐해는 소비 둔화로 인한 매출 부진, 경쟁 격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 자금시장의 불안 등 경영 환경이 조금만 기업에게 불리해지면 정상적인 경영을 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둘째, 경영자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적절히 운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경영자의 업무집행의 적법성, 재무제표의 정확성과 타당성 검토 등 경영감독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회계법인이 독립적인 감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등 내부임직원의 모럴 해저드를 방지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모두가 준수하도록 하여야 한다.

 

경제적 사실에 부합하는 회계장부 작성

 

셋째, 재무제표 작성에 있어서 ‘규정’에 부합한 지의 여부가 아니라 ‘경제적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여야 한다.

사실 엔론의 회계장부가 법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엔론은 부외부채를 통한 자금조달, 자회사와 유가증권, 자금 등 내부거래, 수익의 인식과 측정 등 경영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회계 처리에 있어서 경제적 사실을 반영하기 보다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경제적 사실을 숨길 수 있는 규정을 찾는데 몰두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사실을 상당 부분 왜곡하였다.

재무제표의 작성, 특히 경영자의 자의적 판단이 들어갈 수 있는 계정에 있어서 기업회계기준 등 규정에 맞는지의 여부보다는 경제적 사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회계처리를 하여야 한다. 매출의 인식과 측정, 재고자산의 진부화에 따른 손실, 부실채권과 관련된 대손충당금의 설정, 제품 리콜로 예상되는 손실, 감가상각과 관련된 회계 처리, 내부 거래와 인수·합병과 관련해서 경제적 실체와 부합하는 회계처리를 해야 한다.

이러한 경제적 실체에 부합하는 회계 처리는 대표소송이나 증권집단소송에서 경영자와 이사회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방패막이 될 것이다. 미국의 경제 연구 및 컨설팅 회사인 NERA(National Economic Research Associates)의 조사에 따르면 1998년 한 해에 회계관련 소송이 146건이나 되고 전체 집단소송의 55%를 차지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넷째, 파생상품 거래 위험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통제, 파생상품 거래 사실에 대한 적절한 공시를 하여야 한다.

원자재, 환율, 금리 등 가격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국내기업들도 위험관리 차원에서 선물, 옵션, 스왑 등 파생상품 거래를 이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당 LG경제연구원이 30대 기업집단에 속해있는 125개 기업의 2000년 사업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선물환 거래 등 파생상품 거래를 이용하고 있다고 공시한 기업은 26개였다. 이들 기업이 환위험 관리를 위한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약 65억 달러(8조 5천억원)였다.

파생상품은 금리, 환율 등 시장가격 변동위험 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파생상품에 내재된 복잡성 때문에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경영자, 이사회가 어떤 경우에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위험을 줄이기 보다는 더 큰 위험을 발생시키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파생상품은 적은 금액으로도 많은 양의 거래를 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가 있어서 손실이 발생하게 될 때 빨리 거래를 종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시장 신뢰의 상실은 파산으로 연결

 

다섯째, 시장의 ‘신뢰 상실’은 즉각적인 주가 폭락과 기업 도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직·간접 금융시장에서 외국인의 지배력은 더욱 커졌고, 기업의 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등이 미국식 평가 기준을 받아들이는 등 국내 금융시스템이 미국식 금융시스템으로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어서 시장 신뢰를 상실한 기업은 곧바로 회생불능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 말 현재 거래소 시장에서 외국인이 보유한 시가총액은 94조원, 전체 시가총액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어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의 간접금융의 창구인 은행들도 외국인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는 은행이 많다. 또한 기업 평가, 여신심사를 담당하는 신용평가회사,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등도 미국식 기준과 관행을 급속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금융시스템의 변화로 분식 회계, 내부자 거래 등으로 인한 시장에서의 신뢰 상실은 즉각적인 주가 폭락이나 신용등급 하향조정 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신규 자금조달을 불가능하게 하여 결국 기업 도산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시장 신뢰의 상실에 대한 대가는 과거 보다 빠르게 일어날 것이고 그 파장이 훨씬 커지게 될 소지가 있다. 투명경영, 책임경영과 든든한 내부통제시스템의 확립을 통한 신뢰구축이 가장 든든한 자본(Trust Capital)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