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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좀 도와주라고 하실 때 보면 참…
머뭇머뭇하시고 그런 어른이지요.
나는 그 어른을 아주 존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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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경제인이었지만
“한국 정치가 썩어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며
직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따라서 인터뷰 중 역대 대통령에 대한 소회도 빼놓지 않았다.
“내가 대통령을 여러 명 경험해 봤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자신의 집을 고쳐야 되겠다는 말을 안 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한 분뿐이었습니다.
전부 다 집이 좁다 오래됐다 퇴임 후가 어쩌고 하면서
집 얘기를 다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물론 대통령 앞이니까 심각하게
물을 수는 없지요. 농담처럼 물어보는 거지요.
‘집이 좁다고 하시는데 식구가 늘어났습니까
세간이 늘어났습니까?’
그랬더니 ‘경호 문제도 있고…’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았지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게 뭡니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기 집 좁은 거
걱정하고 있어요 그래?
나라를 부강시키고 어떡하든 국민이 잘살게 하면
물러나서 집 걱정을왜 합니까?
설령 집이 좁아 누울 자리가 못되면 나 부터라도
정 명예회장은 인터뷰 도중 문득 박 전 대통령과의
추억이 떠오른 듯 재미있는 한마디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제일 고민했던 게 뭔지 알아요?
영식인 지만군이 외롭다는 거예요.
그건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 아니겠어요?
박 전 대통령 세대에서 아들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자꾸 지만군 주위가 허전하게 보이시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청와대 무도관 준공식 때나 크고 작은 공사를 끝내고
테이프 커팅을 할 때 보면 지만군을 자주 대동하시거든?
진해 가실 때도 보면 꼭 데려가시고.
근데 하루는 코를 찡긋하시면서 거 왜 박 전 대통령 보면
말수도 적으시고 참 순진한 면이 있으시잖아요?
어색하거나 누구 좀 도와주라고 하실 때 보면 참…
근데 하루는 ‘정 회장, 정 회장은 어떤 재주가 있어서
아들이 그리 많고 다복해요?’
그러시잖아요. 지만군을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뭐 다른 말씀을 드릴 수 있어요?
나도 각하 심정이 되는데.
잠시 있다가 그랬지. ‘각하 새벽에 하십시오’
하하항. ‘나는 새벽에 아들을 다 만들었습니다’ 그 얘기지 하하하. (회장실 앞 응접실이 흔들릴 정도로 웃었다고나 할까)
허전해 하시는데 무슨 얘기를 드리겠어요.
그랬더니 그 어른이 박장대소를 하시면서도 ‘자기 피알(PR) 되게 하네. 새벽까지 일한다. 그 말이구먼’ 이러시는 거예요. 박 전 대통령은 그런 분이에요. 다른 기업가한테는 모르겠어요.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이 뵈었을 텐데 나는 그 어른을 아주 존경해요.
단 한번도 뭐 추한 말씀이 없으셨지요.”
-대통령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더 여쭤 보겠습니다.
정치자금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말을 대통령이 직접
“그런 소리를 나한테 하지 않은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밖에
없어요. (다들) 직접 하지요.
근데 그런 소리 하기 전에 꼭 묻는 말이 있단 말이야.
‘기업이 참 어렵지요?’ 이래 놓고는 돈 달라니 말이지 하하하.
그리고 제일 난감한 게 있어요.
방위성금이니 새마을성금이니 평화의 댐이니 해서 청와대에
가져가면 많이 낸 회장부터 순서대로 대통령 옆자리에
앉도록 하는 거예요.
이를테면 ‘이건 평화의 댐에 쓰라고 가지고 온 거지요?’
이러거든. 아주 난감하지요. ‘성금만 가져왔느냐’
‘기업이 참 어렵지요?’하는 소리나 하지 말든가 말이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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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바닥에서 펑펑 울던 대통령
경기도 김포들녘에서 모심기를 하시고 농수로에서 고무신 씻는 대통령
1979. 5. 23 (박 대통령 서거 5개월전)
1960년대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들이 고통을 겪을 때,
아주 늦은 밤 마침내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고 한다.
모두 잠든 시간, 박정희 대통령은 조용히 운전기사를
논이 보이자 차를 세우신 박 대통령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논 한가운데로 저벅 저벅 걸어 들어가셨는데
한참을 지나도 안나오셔서 운전기사가 가까이가보니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고 계셨다고 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운전기사도
박 대통령을 따라 한참을 울었다고
(박정희 대통령 운전기사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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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그가 어릴 때 그를 등에 업고 다니며, 극진히도 돌봐주시던 누님이 딱 한 분 계셨다.
동생이 대통령이 되었을 당시 누님은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어렵게 살아 올케가 되는 육영수 여사에게 좀 도와 달라고 어려운 부탁에 편지를 보냈다.
이를 받은 육 여사는 친인척 담당 비서관에게 이 편지를
건네 주었다. 당시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생이었고, 박 대통령의 집안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 대통령 모르게 은행에서 대출을 알선해 (일종의
압력이었음) 박 대통령 누님의 아들에게 택시 3대를 사서
운수업으로 먹고살도록 주선을 해 주었으나, 나중에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박 대통령은 大怒해서 친구이기도 했던
담당 비서관을 파면하고, 택시를 처분함과 동시에
누님과 조카를 고향으로 내 쫓아 버렸다.
이 조카는,-- "삼촌! 대한민국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습니다."라며 울먹이면서 대들었지만, 박 대통령은 단호하게 고향으로
쫓아 버렸다.
누님의 원망을 들은 박 대통령은 "누님 제가 대통령 그만두면 그 때 잘 모시겠습니다." 며 냉정하게 누님을 외면했다.
그 후 누님은 할 수 없이 대구에서 우유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대통령인 동생을 원망하면서…….
단 한 분 그것도 자신을 극진히 돌봐 주시던 누님이 어렵게 살고 있는데, 대통령이 된 지금 이렇게도 냉정하게 뿌리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총을 들고 혁명을 일으킨 진정 메마른 눈물을 가진 독재자였기에 때문에 감정 없는 그런 인간이었을까.
피를 나눈 혈육의 정까지도 마다하고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며, 사리사욕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가관이 확실한 애국심을 가지고 이 나라 4,000만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탁월한 영웅, 대한민국 역사이래 진정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보라..! 후임 지도자들을,......
그 누구 하나 부정부패 비리로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지도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며, 지금까지도 전직 대통령들의
자식들이 감옥에 가 있음을,…….
박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친인척 그 누구도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고, 청와대 초청 한번 안 했으며,
또, 박 대통령 자녀 중 누구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지도 않았고, 단 한푼의 재산도 물려주지 않았으며, 특혜도 베풀지 않았다.
인간이 재물에 대한 욕망은 그 끝이 없음이 현실이다.
그러나 재산은 죽은 후 주머니에서 십만 원과 고물시계를 팔에 차고 있었던 것 뿐이였으며, 그 이상 발견된 것이 없다.
단군이래 대한민국 지도자 중, 단 한 건에 비리도 없었던 박 대통령 말고 또 그 누가 있었다면 말해 보라.
대통령은 커녕 출세했다, 장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제 자식 취직자리부터 먼저 챙기는 썩어빠진 것들이 개혁을 외치며, 박 대통령을 헐뜯으려 단점만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이 어찌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이 어찌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참으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초등학생 불러다 놓고, 이같이 설명하며 물어봐라. 대한민국 역사이래 누가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훌륭한 지도자였느냐고,….
살인범 김재규를 민주화인사 운운하는 자들아.--
박 대통령 사후 지난 수십 년 간 그의 정적들이 박 대통령을 깎아내리려 눈에 불을 켜고 비리를 찾아 보려 했으나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역사를 똑바로 세워야 된다며 친일파 청산이란 명제하에 박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연초 부턴 한일 외교 문건과 문세광 비밀 문건을 공개, 흠집 찾기에 몰두하더니, , 화풀이 분풀이 욕구 해소라도 해야겠다고 박 대통령 친필인 '광화문' '운현각' '충의사' 현판을 뜯어내고 부시고 뽀개고 빠개고 하는 것이란 말이더냐.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좌파들이 박 대통령을 헐뜯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며 매도하려 발버둥치는 것을 보니,
혈육의 정까지도 냉정하게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청렴결백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이 나라에 진정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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