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사업

스몰 M&A

구봉88 2014. 10. 15. 10:12

자동차 부품과 기계 업체인 A사는 최근 유럽 진출을 추진 중이다. 유럽 자동차 부품 시장 참여를 위해서인데, 방법은 소위 스몰 M&A(소규모 인수합병)다. A사 관계자는 “최근 워낙 금리가 낮아 자금 조달 상황도 용이해진 데다 유럽 쪽 경기가 안 좋아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업체들이 꽤 있다. 지나치게 규모가 크지 않고 업력이 긴 업체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A사 측은 유럽에 새로 진출해 지사를 설립하고 사람을 뽑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 리스크 등을 감안하면 스몰딜을 통한 시장 진출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기업들이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시장 확대를 위해 스몰 M&A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흔히 스몰딜로도 불리는 소규모 인수합병의 최대 장점은 자금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시장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도 용이하다. 외국계 증권사의 IB사업부 대표는 “국내외 경기 전망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과도한 차입이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로 대형 M&A보다는 소규모 합병이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유럽, 일본 등의 소규모 기업을 두고 국내 기업들이 경쟁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소규모 합병에 나서는 기업이 늘 것으로 전망했다.

조 단위 빅딜 대신 스몰딜 열풍

인수 후 합병 작업· 낮은 리스크 최대 장점

국내외 안 가리고 기술력 갖춘 中企 잡아라

지난 4월 글로벌 제약사 GSK와 노바티스는 각각 항암제와 백신사업부를 맞교환하는 데 합의했다. GSK는 노바티스로부터 백신사업부를 받아들이고 대신 노바티스는 GSK의 항암제사업부를 사들이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GSK는 백신에서, 노바티스는 항암제에서 더욱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산이다.

재계에서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거나 기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아니면 핵심 역량에서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특정 분야에서 기술력을 가진 국내외 중소기업을 인수하는 수백억원 안팎의 스몰 M&A가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난 8월 SK그룹은 계열사인 SK텔레콤을 통해 음향기기 업체 아이리버를 인수했다. SK 측은 아이리버의 음향기기 제조와 고음질 오디오 관련 노하우를 통해 앱세서리(모바일앱+액세서리) 사업 등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인수의 변을 밝혔다. 인수 금액은 약 300억원. LG는 반도체 시스템설계 업체인 실리콘웍스 지분 20%를 취득, 최대 주주에 오르면서 역시 계열 편입시켰다. 두산은 연료전지를 생산해 판매하던 퓨얼셀파워를 흡수합병했다.

대기업뿐이 아니다. 자동차에어컨과 히터 시스템 전문기업 한라비스테온공조는 일본 자동차 공조 회사인 JCS 중국 난징법인 지분 51%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인수금액은 약 66억원(약 640만달러)이다. 췌장암 치료제로 알려진 젬백스앤카엘은 바이오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제약 지분 16.1%를 120억원에 인수했다.

삼일회계법인 한 파트너는 “스몰딜의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흔히 국내외 중소·중견기업을 1000억원대 이하의 가격에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공시가 되지 않은 비상장사나 계열사 내에서 사업 조정을 목적으로 한 지분 이동 등을 고려하면 최소 한 달에 한 건 이상 스몰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소규모 M&A에 나서는 이유는 자금 때문이다.

대기업의 성공한 스몰딜의 경우 인수 자금이 작게는 수십억원에서 많아야 2000억~3000억원을 넘어서지 않는다.

스몰딜은 ‘승자의 저주’에서도 자유롭다. 대규모 인수합병은 단번에 기업 규모를 키울 수 있지만, 인수 시 질 수밖에 없는 부채가 큰 부담이다. 과거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대운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핵심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게 대표적 사례다.

무엇보다 최근 기술력을 갖춘 알찬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점 역시 스몰딜이 늘어나는 배경 중 하나다. 이들의 기술을 저렴한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도 용이하게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미국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개발회사인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2012년 설립된 스마트싱스는 여러 가전제품이 원활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플랫폼을 만드는 업체다. 인수 대금은 약 2억달러(약 2000억원)로 삼성전자 입장에선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또한 북미에서 시스템에어컨 등 공조기기를 판매·유통하는 콰이어트사이드도 사들였다. 가격은 2400만달러(약 244억원)에 불과하지만 삼성은 이로써 북미 공조 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스몰 M&A는 조직 통합에도 용이하다는 평가다. 대형 기업을 인수하게 되면 인수 후 조직 통합 작업이 실패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반면 중소형 기업의 경우 인원이 적은 만큼 조직원들이 새 조직문화에 적응하기에 용이하다.

“우수한 중소기업을 인수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경기에 대한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소규모 M&A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매경이코노미

인수 후 잘 성장시키니 주력 사업보다 빛 발하기도

시장서 저평가된 벤처 찾아 새로운 동력원 삼는다

기업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연구개발(R&D)을 통해 자체 육성하거나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중소업체를 인수, 성장시켜 신사업 기틀을 마련한 성공 스토리가 적지 않다. 회사 설립, 인력·네트워크 구축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인수하는 편이 유리할 때도 있다. 굳이 큰 기업을 인수하지 않더라도 기술력을 가진 소규모 기업을 적절한 가격에 인수한다면 변화하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모기업의 조직력과 자금력, 마케팅 능력이 더해진다면 시너지를 발휘해 신사업을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다.

김정열 SV어드바이저그룹 대표는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요즘엔 많은 기업들이 큰 금액을 투자하기 꺼려한다. 소규모 거래를 주시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스몰 M&A 형태의 거래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중견기업 스몰 M&A로 사세 확장

LS·KG·SM그룹 대표적 성공 사례

LS그룹, SM그룹, KG그룹은 M&A를 통해 신사업에 진출한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특히 국내에서 LS그룹은 스몰 M&A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LS는 LG에서 분리돼 나온 지 10여년 만에 계열사 수를 11배 이상 늘렸다. 2000년대 후반부터 새 시장 진출에 적합한 원천 기술을 갖춘 기업들을 찾아 스몰 M&A를 지속해 왔다. 대상은 인수 대금 50억원부터 1000억원 미만의 다양한 중소업체들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체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들이었다. ‘휘닉스M&M’을 77억원에 인수해 폐전자 부품을 활용한 희유금속 추출 산업에 진출했다. 로봇 사업 확대를 위해 ‘메트로닉스’를 88억원에, 그린빌딩 분야로 진출하면서 지능형 건물관리시스템 전문업체 ‘사우타코리아’를 5억5000만원에 사기도 했다.

LS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가진 고유 기술을 보완하면서도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게 기술력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인수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SM그룹 역시 적극적인 M&A를 통해 다양한 신규 사업에 진출한 경우다. 지난 10여년간 매출액 100억원 이상 계열사를 10여개 사들였다. 특히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매물을 바라보는 눈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SM그룹은 당장 자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도 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회사를 찾아내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다. SM그룹은 2008년까지만 해도 1조1000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2조4900억원으로 5년 만에 2배 이상 성장했다. 적극적인 M&A가 성공한 결과다.

매출 1조원대 중견기업 KG그룹도 스몰 M&A의 강자로 꼽힌다. 2005년 ‘시화에너지’를 시작으로 2008년 택배회사 ‘옐로우캡’, 2011년 온라인 결제업체 ‘이니시스’, 휴대전화 결제업체 ‘모빌리언스’까지 끊임없이 신규 업종의 업체를 인수했다. 특히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M&A 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M&A를 할 때 당시 잘되는 회사가 아니라 실적이 좀 좋지 않더라도 직접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회사를 선택해 왔다.

금융 분야에서도 스몰 M&A로 신사업을 크게 성장시킨 사례가 이어진다.

2006년 자산 규모 300조원에 육박했던 농협중앙회는 약 1000억원을 주고 세종증권을 인수했다. 이후 1년 만에 농협은 세종증권을 3배 이상 키웠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NH농협증권의 순자산은 8679억원. 인수 당시 약 150명 규모였던 소형 증권사 세종증권은 현재 직원 수 4000여명의 대형 증권사 NH농협증권으로 거듭났다.

 

최근 대기업 적극적으로 가세

두산·LG 연료전지 진출에 활용

이 같은 성공 사례가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대기업들도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소규모 업체들을 잇달아 인수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M&A에 접근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비교적 소극적이었지만, 최근 기술력 있는 작은 기업들을 잇따라 사 모으고 있다. 올해만 4개의 기업을 사들였다. 2007년부터 삼성전자는 총 22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이 중 절반이 지난해 이후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이 같은 태도 변화에 대해 “신성장동력 발굴과 함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함”이라고 입을 모은다.

두산과 LG는 연료전지라는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M&A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

좀 더 적극적인 곳은 두산이다. 두산은 연료전지 기업 ‘퓨얼셀파워’ 외에 ‘클리어에지파워’도 인수했다. 퓨얼셀파워는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가정용 연료전지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클리어에지파워는 건물용 연료전지 기술을 보유한 미국 기업으로 두산은 3240만달러를 들여 인수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연료전지 사업을 두산의 주력 사업으로 키워 나가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이번 M&A를 통해 연료전지 사업 확대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연료전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LG도 마찬가지다. 2012년 LG는 영국 롤스로이스 계열사로 발전용 연료전지 원천 기술을 보유한 ‘퓨얼셀시스템즈’ 지분 51%를 4500만달러(약 52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후 ‘LG퓨얼셀시스템즈’로 이름을 바꿨다. LG는 내년부터 연료전지 시장에 본격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밖에도 LG그룹은 수처리 필터 사업을 그룹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육성하기 위해 M&A를 활용했다. LG화학은 올해 초 미국 수처리 필터업체 ‘NanoH2O’를 2억달러에 인수했다.

화학 분야는 최근 M&A가 활발히 진행되는 곳이다. 특히 미래 소재 부문은 많은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M&A로 새 판 짜는 중소기업

리노스, 인수 후 매출 10배 키워

스몰 M&A로 새 사업지도를 짜는 데 성공한 중소업체들도 있다. 디지털방송에서 패션 기업으로, 최근에는 바이오 업체까지 인수하며 회사를 성장시킨 코스닥 기업 ‘리노스’다. 2003년 디지털방송 전환이 완료되며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됐고 리노스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과감히 도전했다. 당시 가방 브랜드 키플링 판권을 보유한 회사를 약 15억원을 주고 인수한 것. 그 후 10년 만에 키플링 사업 매출은 10배가량 뛰어 올해 700억원을 바라본다. 올해 리노스는 드림씨아이에스를 인수하면서 바이오 시장에도 진출했다.

양영석 한밭대 창업경영대학원 교수는 “리노스는 시장과 산업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했다. 실제 구매 행위를 일으키는 유효 수요를 확인한 뒤 M&A를 감행해 성공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부품업체였지만 노르웨이의 조그만 신약 개발업체 ‘젬백스’를 인수한 코스닥업체 젬백스(옛 ‘카엘’)도 비슷한 경우다. 젬벡스의 연매출이 약 600억~700억원 수준이지만 시가총액이 한때 1조원을 넘길 정도로 주목받았다. 췌장암 치료제를 만드는 데 쓰이는 물질 ‘GV1001’ 덕분이다. 신사업이 기존 주력 사업보다 더 빛을 발한 것이다.

물론 기술력을 있는 중소기업을 인수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 사례가 더 많다. KT&G는 과거 인수를 통해 계열사들을 크게 늘리며 사업 다각화를 한창 진행했다. 2011년에는 화장품 진출을 선언하며 소망화장품을 인수했지만 4년째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는 등 조그만 계열사들의 실적이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서은내 기자 thanku@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7호(10.08~10.14일자) 기사입니다]

매경이코노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기술력 있는 기업 발굴

인수 기업 판단하는 잣대는 매출 아닌 핵심기술

애플과 구글, 퀄컴의 공통점은?

모바일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 IT 기업이란 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자사 핵심 경쟁력을 소규모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확보했다는 점이다.

2005년 애플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핑거웍스’란 업체를 인수한다. 핑거웍스는 당시 독보적인 터치 기술을 가진 업체였지만 매출이 거의 없었다. 애플은 핑거웍스 인수를 계기로 멀티터치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2년 뒤 아이폰이 처음 선보였을 때 ‘터치 입력 방식’은 아이폰의 상징이 됐다. 애플 M&A 중 가장 중요한 사례로 많은 사람들은 핑거웍스 인수를 꼽는다. 이후에도 애플은 반도체 기업 ‘P.A. 세미’, 음성인식 기업 ‘시리’, 지문인식 기업 ‘오센텍’ 등 기술력은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기업들을 인수했다.

글로벌 기업들 소규모 M&A 통해

부족한 기술 확보하고 신규 시장 창출

시장 상황 탄력적 대응 위한 필수요소

2006년, 구글은 ‘안드로이드’라는 조그만 벤처기업을 겨우 5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안드로이드는 당시 22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생 기업이었다. 하지만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통해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운영체제(OS)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OS가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다. 이후 구글은 세계 M&A 업계에 공룡으로 자리 잡는다. 2001년 이후 구글이 지금까지 인수한 기업은 170여개에 이른다. 인공지능 업체 ‘딥마인드’, 로봇 개발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등이 대표적인 소규모 M&A다.

기술 확보를 위해 M&A를 선호하는 애플과 구글이지만, 방법은 차이가 있다. 강민수 광개토연구소 대표변리사는 “애플은 대규모 M&A를 선호하지 않는다. 또 인수 대상 기업이 갖고 있는 기술을 자신들이 최대한 빨리 흡수할 수 있을 경우에만 산다. 반면 구글은 가리지 않는다. 기술력 있는 기업이라 판단하면 규모와 상관없이 인수한다”고 설명했다.

퀄컴은 통신 기술 원천특허를 갖고 있는 기업이다. 그동안 끊임없는 연구로 모바일 기기에 사용되는 저전력 CPU(중앙처리장치)칩 설계 능력도 갖췄다. 하지만 그래픽 관련 기술이 부족했다. 2009년 퀄컴은 AMD의 모바일그래픽사업부를 6500만달러에 인수했다. 이후 퀄컴은 그래픽 분야에서도 한층 더 경쟁력을 갖게 됐다. 현재 세계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이 퀄컴 칩을 사용하게 된 배경 중 하나다.

인텔,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전통 IT 강자들도 소규모 M&A를 즐겼다. 특히 인텔은 구글 이전에 M&A 시장의 공룡으로 불렸다.

IT 분야가 아닌 기업 중 M&A로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은 영국의 세계적인 광고·미디어 기업 WPP(Wire and Plastic Product)를 꼽을 수 있다. 1986년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약 1000여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이 중에는 그레이 등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기업도 포함돼 있다. M&A를 통해 다양한 브랜드를 확보한 WPP는 세계 최대 광고·미디어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바이오 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미국 ‘암젠’이나 ‘길리어드’도 적극적인 M&A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다. 이들은 신약 개발과 M&A를 통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제약 기업으로 떠올랐다.

최창호 큐더스 이사는 “시장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소규모 M&A는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매경이코노미

인수 후 조직 내부 융합 이뤄야 성공 모델 가능해져

수익 창출할 시장 수요 검증 안 되면 줄줄이 실패

스몰 M&A가 가진 장점을 살려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의 결합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어떤 성공 방정식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명확한 M&A의 비전과 이를 뒷받침할 자금력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는 게 1순위로 꼽힌다. 대형 M&A에 비해 첫 인수 시 오가는 돈이 적다 해서 쉽게 보면 오산이다. 김정열 SV어드바이저그룹 대표는 “대형 업체를 인수하는 것을 고등학생을 데려와 가르치는 것에 비유한다면 스몰 M&A는 유치원생을 데려다 키우는 것과 같다. 그만큼 합병이 이뤄진 후에 더 모기업의 자금력과 조직력을 동원해 지원해야만 피인수 업체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KT가 이석채 전 회장 시절 단행한 일련의 스몰딜은 실패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당시 KT는 콘텐츠 유통 부문 역량 강화, 콘텐츠 확보란 명분하에 관련 벤처기업들을 사들였다. ‘엔써즈(동영상 검색)’ ‘KT클라우드웨어(전 ‘아헴스’, 클라우드 서비스)’ ‘KT넥스알(대용량 분산·처리)’ ‘KT이노에듀(전 ‘사이버MBA’)’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011년 피인수된 엔써즈는 누적적자가 늘어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KT클라우드웨어, KT이노에듀, KT넥스알 등도 줄줄이 적자 행렬에 동참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고경영자 교체 때마다 KT 전략이 바뀌는 게 결정적이다. 모기업에서 충분한 지원을 이어가지 못하니 안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전 미리 피인수 업체의 취약점과 그 업체가 속한 업황(산업 상황)을 면밀히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2011년 LG디스플레이가 전자종이(Electronic paper·종이 인쇄물 같은 느낌을 내는 반사형 디스플레이) 기술을 확보하고 있던 이미지앤머터리얼스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시장에선 바로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문제는 시장이었다. 전자책, 전자잡지는 지금도 시장 자체가 커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다시 재매각 수순을 밟아야 했다.

양영석 한밭대 창업대학원 교수는 “M&A로 핵심 신기술을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해도 수용할 시장이 없다면 결국 소용이 없다. 때문에 인수 이후의 ‘Time to business(수익을 창출해 낼 시장이 형성돼 있는지)’를 철저히 따져 봐야 한다”며 인수 전 치밀한 준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셋째는 인수한 후 조직 내부적인 융합을 이루는 것이다. 인수하는 기업이 우월적 지위에서 내려다보는 식이 아닌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려는 인식이 구축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류재욱 네모파트너즈 총괄사장은 “유망한 중소업체를 인수하면서 점령군의 마인드는 버려야 한다. 한 수 가르쳐 준다는 식의 접근이나 선진 시스템을 이식해야 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피인수 기업에 도움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합병 후 통합 작업을 이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기철 삼일회계법인 이사는 같은 맥락에서 조직문화의 융합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말했다.

“기업 간 합병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옥상옥 식의 의사결정 구조인 대기업과 빠른 보고 체계를 가진 소기업이 합쳐지면 부딪치는 일이 발생한다. 소통 범위를 늘려 분위기를 바꾸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시너지라는 것이 특별한 데서 오는 게 아니다. 구성원들을 로테이션해주며 조직 분위기를 익힐 수 있게 해야 한다.”

2000년대 중반 SK컴즈는 벤처업체였던 싸이월드를 비롯해, 이글루스, 엠파스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지만 결국 싸이월드가 페이스북 등 경쟁 업체에 밀려 도태되면서 실패한 M&A 사례로 남게 됐다. 조기철 이사는 “대기업 조직 체계의 사람들과 개개인의 역량을 강조해온 벤처 구성원들 간에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괴리가 컸을 것”이라며 “벤처문화가 퇴색하며 제 성격을 잃어버린 것이 실패의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서은내 기자 thanku@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7호(10.08~10.14일자) 기사입니다]

매경이코노미

경쟁사 우리 식구 만드니 더 강해지네

브랜드·기술력 알아보는 안목이 중요

대기업의 시장점유율 수성과 중소기업의 사세 확장에 스몰 M&A는 유용한 전략 중 하나다.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 취임 시기인 2005년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나뉜다. 극적으로 회사 체질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빅딜로 신성장동력 마련 후 스몰딜로 시장점유율 강화’ 전략 덕분이다.

2005년 이전까지만 해도 LG생활건강의 주력 사업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이었다. 차석용 부회장은 취임 후 2007년 코카콜라보틀링 한국법인을 4000억원에 인수하며 단숨에 음료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후엔 스몰 M&A 전략으로 선회해 다양한 음료를 LG 유통망에 얹었다. 2009년 다이아몬드샘물, 2010년 한국음료, 2011년 해태음료가 이렇게 한 식구가 됐고 지난해에는 제약업체 영진약품의 드링크 사업 자산을 141억원에 인수하면서 건강음료 시장에도 진출했다.

롯데칠성음료도 비슷한 전략을 쓴다. ‘처음처럼’으로 대변되는 주류 사업에 전국 단위 점유율 확대를 위해 충북소주를 350억원에 인수했는가 하면 종전 ‘아이시스’ 생수 점유율을 늘리고자 군인공제회가 갖고 있던 록인음료를 올해 초 인수(320억원)했다.

패션 업계에서도 스몰 M&A의 효과를 톡톡히 본 기업들이 있다.

인지도는 있었으나 모기업의 부진으로 매물로 나온 브랜드를 인수해 되키우는 전략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 패션그룹형지의 주력 브랜드로 자리 잡은 샤트렌이 대표적인 사례다. 샤트렌은 논노그룹 산하 브랜드였다. 한때는 매출액 1000억원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모기업이 부도나면서 브랜드 명맥만 살아 있는 정도였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은 샤트렌의 가능성에 주목해 2006년 브랜드 사용권을 많지 않은 금액을 주고 인수한 후 유명 모델 CF 기용, 거리매장(가두점) 확대, PPL 등 크로커다일레이디 성장 전략을 그대로 적용했다. 그 결과 샤트렌은 지난해 전국 매장 250개, 매출액 1500억원대 브랜드가 됐다.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발굴해 메가 브랜드로 키워낸 케이스도 있다.

SK네트웍스 패션 부문도 여성복 브랜드 오브제를 2008년 약 500억원에 인수했다. 매출액 20조원이 넘는 SK네트웍스에 비해 당시 오브제는 매출액 800억원대에 불과한 작은 브랜드였지만 인수 후엔 효자가 됐다. 지난해 기준 오브제 매출액은 2900억원에 달했다. 오브제 서브브랜드 오즈세컨의 지난해 매출액은 1600억원. 이 중 중국 등 해외 매출이 절반가량인 750억원에 달한다. 오브제의 가세 이후 SK네트웍스의 패션 부문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총 8000억원을 돌파하며 증권가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은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조기 발굴하고 인수해 매출을 키운 경우다.

2009년 당시 석정혜 디자이너가 출시한 ‘쿠론’의 가능성을 보고 이듬해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에서 인수했다. 이후 쿠론은 스테파니백이 입소문을 타고 단일 가방으로는 2만여개 이상 팔리는 ‘대박’을 터뜨리며 지난해 단숨에 매출액 600억원을 돌파했다.

쿠론의 성공에 힘입어 2012년에는 김재현 디자이너의 ‘쟈뎅드슈에뜨’와 서브브랜드 ‘럭키슈에뜨’를 추가로 인수했다. 또 그 해 말에는 이보현 디자이너가 2003년 출시한 ‘슈콤마보니’를 인수해 19개국의 유명 백화점, 편집숍까지 유통망을 확장하고 있다.

중소 벤처기업들이 사세를 단숨에 키우기 위한 전략으로도 스몰딜은 효과를 발휘한다.

PNF가 대표적이다. 삼성SDS, 한국HP 출신의 김충기 대표가 이끄는 PNF는 일반 노트북 화면에 그대로 클릭하고 또 글을 쓰고 디지털로 저장 가능한 전자펜이 주력 생산모델이다.

 

게임빌, ‘효자’ 컴투스 인수 당시엔 혹평

패션·식음료·제약 스몰딜 활발

LG생건 빅딜 후 스몰딜로 점유율 늘려

문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경쟁사 루이디아가 PNF의 미국 진출에 특허소송을 걸며 사업을 방해한 것. 지난해 말 기준 매출액 223억원가량인 중소기업이 특허소송에 진을 빼다 보면 기회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예상, IBK캐피탈 등 투자자를 끌어들여 지난해 말 루이디아를 100억원도 안 되는 가격에 인수했다. PNF는 단숨에 루이디아의 해외 영업망도 확보할 수 있었다. 더불어 루이디아 매출도 PNF와 비슷했는데 두 회사가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올해 PNF 연결 기준 예상 매출액이 530억원일 정도로 성장했다.

LCD, AMOLED 검사장비 전문회사인 HB테크놀러지도 스몰딜로 큰 경우다. 2012년 제일모직 TFT-LCD용 도광판, 확산판 제조 관련 소재사업부를 125억원에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인수 금액 탓인지 회사 매출액은 333억원, 당기순손실만 102억원에 달했다. 그러던 회사가 인수 이듬해인 지난해 매출액 1443억원, 당기순이익 214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지난해 10월 중소 게임업체 게임빌이 컴투스를 인수한 것도 ‘신의 한 수’란 평가를 받는다. 인수 당시엔 넥슨이 엔씨소프트 인수 후 시너지 효과가 적다는 이유로 게임빌의 선택이 잘못됐다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하지만 컴투스의 자체 개발 게임 ‘낚시의 신’ ‘서머너즈워’가 잇따라 흥행에 성공,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면서 컴투스는 물론 게임빌 모두 52주 신저가에서 1년 만에 신고가로 주가는 치솟았다. 더불어 이번 인수로 게임빌, 컴투스 두 회사는 총매출 16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상장사 한글과컴퓨터 역시 스몰딜로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컴은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 ‘이지포토(2012년)’, 영국의 모바일 프린팅 기업 ‘소프트웨어이미징(Software Imaging, 2013년)’을 줄줄이 인수했다. 이를 통해 한컴 매출액은 2010년 472억원에서 지난해 717억원(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00% 이상 증가했다.

녹십자의 이노셀 인수처럼 제약 업계도 스몰딜이 활발하다. 약점으로 지적된 분야를 인수합병을 통해 만회하기 위함이다.

함병현 타임폴리오투자자문 팀장은 “스몰 M&A는 소프트웨어, 패션, 음식료, 제약, 바이오 등 소수 인원으로도 창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제품을 창출할 수 있는 영역에서 효과적인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총평했다.

벤처 연합으로 중견기업 성장 ‘옐로모바일’

스몰딜로 벤처업계 블랙홀 떠올라

옐로모바일은 산하에 40여개 이상의 벤처기업 연합군을 두고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게 성장모델을 구축했다. 옐로모바일은 마이원카드 창업자였던 이상혁 대표가 다음커뮤니케이션에 회사 지분을 판 후 2012년에 새로 꾸린 회사다. 처음에는 벤처기업들의 마케팅, 운영 대행을 해주기 위해 이름도 아이마케팅코리아로 지었다. 초기 5개 벤처회사의 연합 형태로 출범한 이 회사는 이후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옐로모바일이란 사업지원회사 아래 45개의 벤처회사가 포진하고 있다.

이런 구조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주식스와프(지분 맞교환)와 사업지원회사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있다. 벤처기업이 옐로모바일 식구가 되고 싶으면 옐로모바일의 신주와 벤처회사 간 지분을 맞교환하거나 옐로모바일이 직접 벤처 지분을 사준다. 대신 벤처회사 대표의 경영권을 보장하되 매출, 영업이익 등 목표치와 성과를 공유하는 식이다.

임진석 옐로모바일 CSO(최고전략책임자)는 “산하 벤처기업이 늘어날수록 고객을 공유해 복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마케팅 비용 절감, 전문 인력 교류 등의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옐로모바일 산하에 이모션이란 웹에이전시가 합류했는데 옐로모바일 소속 다른 벤처회사들의 웹 개발을 해주며 매출을 늘리는 식이다. 또 옐로모바일 소속 핫딜쇼핑포털 ‘쿠차’의 홍보 마케팅을 역시 옐로모바일 산하 기업인 SNS 마케팅회사 퍼플프렌즈와 이노버즈가 해준다. 이런 사업 모델로 옐로모바일은 지난해 매출액만 230억원, 영업이익은 60억원을 올렸다. 산은캐피탈, 기업은행, DSC, 스톤, LB, SL 등 외부 투자기관의 투자액도 올해 10월 기준 700억원이 넘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 IAC, 영국 WPP도 처음엔 중소회사들의 연합군 형식으로 사세를 키워나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주회사 격인 사업지원회사가 일관된 비전과 전략을 산하 기업들에 전파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의사결정 과정을 효율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 사진 :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