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
전력소비, 데이터 통신량, 그리고 꽉 막힌 도로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 Kierkegaard, Karl Marx and many others...
최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세 가지
- 사무실에서 덜덜 떨면서 지내는데도 기록적인 추위로 연일 전력소비량이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최근에 부쩍 통화품질이 나빠졌다는 불만이 늘고 있다.
- 갈수록 서울 시내 교통량은 늘어나고 출퇴근 시간은 물론, 주말에도 차량정체가 빚어지기 일쑤이다.
이 세 가지 이슈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모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그 출발점이다. 혹자는 소비자들의 “과잉소비(overconsumption)”를 탓한다.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전기를 너무 흥청망청 쓴다거나, 이웃 일본에 비해 나 홀로 차량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게 문제라거나 하는 비판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공급자들의 “과소공급(undersupply)”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많은 이윤을 내면서도 통신망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통신사업자들을 비난하는 소리는 언론의 단골 메뉴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체로 정책당국이나 세간의 여론은 소비자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관점에서 공급확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전력사용 통제는, 전면 정전이라는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유사 배급”을 실시하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과잉소비”와 “과소공급”은 동전의 양면이다. 즉, 가격기구(price mechanism)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일 뿐이다. 이런저런 말로 복잡하게 이 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사실 문제는 간단하다. 가격기구가 작동하여 소비와 공급이 균형점을 찾게 하면 되는 것이다. 가격구조는 건드리지 않고, 공급량을 늘려서 해결하려 하거나, 아니면 소비랑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
2. 우리는 정말 “생각 없이 펑펑 쓰는” 소비자인가? - 전력의 경우
<그림 1>을 보면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2009년의 일인당 전력 사용량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8,833kWh를 사용하여, 미국(12,917kWh)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일본(7,818), 프랑스(7,512), 독일(7,148), 영국(5,607)보다도 더 많이 전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당연한 결과로, 2009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 소비량을 보면, 한국은 달러당 0.561kWh로 OECD 평균인 달러당 0.325kWh보다 1.7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 일인당 전력 소비량
그런데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이 전기를 많이 쓰는 이유는 요금이 싸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기요금의 원가회수율은 2011년에 86.1%로 전기요금이 원가에 미달하는 상황이다.
용도별로 전기요금의 편차가 지나치게 큰 것도 문제다. <그림 2>에서 보듯이 주택용과 상업용은 거의 원가에 가까운 요금을 내고 있는데 비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 대비 89.4% 수준이고 농업용은 불과 36.7% 수준에 그치고 있는 등, 원가차이로 설명할 수 없는 정책적 판단이 전기요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 용도별 전기생산비용 대비 판매가 비율
전기요금의 국제비교를 통해서도 비슷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말 환율 기준으로 kWh 당 전기요금(종합판매단가 기준)은 우리나라가 0.072달러로, 캐나다(0.067달러)보다는 다소 비싸지만 일본(0.173달러), 영국(0.158달러)과 비교해 절반 가격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림 3>) 물론 각국의 물가수준(구매력 지수)을 고려하지 않고 전기요금 수준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왜곡을 낳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전력 생산에 필요한 원료 및 장비를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소득 수준 및 물가 수준이 낮다고 하더라도 전력 생산원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을 요인은 별로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원가가 낮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낮은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
<그림 3> 전기요금 국제비교
소비자들은 이러한 가격왜곡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반응하였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사이에 등유는 87%, 도시가스는 44% 인상된 반면에 전력은 불과 17% 인상되었다. 그에 따라 같은 기간에 전력 소비는 68% 증가하였는데 비해 등유는 52% 감소하였고, 도시가스도 45% 증가에 그쳤다. 이처럼 전기의 상대적 가격이 낮아지자 석유류 소비를 전기로 대체하는 것은 “생각 없이 펑펑 쓴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자로서의 선택을 한 결과이다.
한편 공급자인 한국전력의 사정은 어땠을까? 한전은 2007년에는 3,8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였으나, 2008년(-3.7조), 2009년(-0.6조), 2010년(-1.8조)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보고 있다. 공급자도 이러한 상황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2001년 한전의 총 발전설비는 5,086만kW였는데 2010년에는 7,608만kW로 50% 증가하는데 그쳤다. 앞에서 보았듯이 같은 기간 전력소비는 68% 증가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전력예비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요즘 많은 이들이 추운 사무실에서 겪는 고통은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온 결과이다.
3. 많은 데이터를 빠른 속도에 주고받는 것이 항상 당연한 건 아니다 - 통신의 경우
우리나라는 유선에서 초고속인터넷을 가장 빠르게 보급한 나라이다. 따라서 일인당 데이터 통신량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2010년 한국의 일인당 유무선 데이터 트래픽은 40Gigabytes로서 일본(11G), 미국(19G), 영국(12G)의 2-4배에 이르며 당분간 그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은 아직 우리나라의 1/40 수준에 불과하다. (시스코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데이터 트래픽에서 무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 정도이며, 2015년에는 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표 1> 일인당 데이터 트래픽 (단위: Gigabytes)
구분 |
한국 |
일본 |
미국 |
영국 |
중국 |
2010 |
40 |
11 |
19 |
12 |
1 |
2015 |
135 |
35 |
58 |
52 |
6 |
자료: Cisco, VNI Forecast Highlights
이처럼 우리나라의 데이터 트래픽이 많은 것은 빠른 인터넷 접속속도와 싼 요금에 기인한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의 유선인터넷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18Mbps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그림 4>) 그 다음이 일본으로 16Mbps를 약간 밑도는 수준이고 나머지 OECD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1/2~1/4 수준에 불과하다. 그 이후에도 우리나라에 광랜이나 FTTH(Fiber To The Home)이 지속적으로 보급된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품질 우위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 유선인터넷 다운로드 속도
한편 유선인터넷 요금수준은 어떤가? 각국 사업자들은 인터넷 제공 속도 별로 요금 수준을 달리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각국의 Mbps당 가격대역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계산된 2010년 각국의 인터넷 가격대역 자료는 <그림 5>와 같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유선인터넷 요금수준은 Mbps 당 0.2달러에서 4.9달러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속도를 제공하는 상품의 경우 Mbps 당 가격은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요금수준은 최고 속도 인터넷의 경우 일본에 비해 다소 비싸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저 속도 인터넷 요금, 평균 요금, 중간 요금 모두 세계에서 가장 낮다.
<그림 5> 유선인터넷 Mbps 당 요금수준
무선인터넷의 경우는 스마트폰의 보급에 따라 트래픽이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보급이 다소 늦게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10월에 2천만 가입자를 넘어섰으며 전체 휴대폰 가입자의 40% 수준에 도달하였다. 2009년 중반부터 2010년 중반까지 불과 1년 사이에 KT의 무선데이터 트래픽은 344% 증가하였으며, SKT는 232%, LGU+는 114% 증가한 것으로 시스코는 추정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태블릿 PC, 스마트 TV 보급으로 더욱 심화되어 시스코의 예측에 따르면 2010년~2015년 사이에 전 세계 무선데이터 트래픽은 매년 92% 증가하여 5년 사이에 26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우리나라는 데이터 트래픽이 무선은 매년 72%, 유선은 28% 정도 증가하여 데이터 트래픽이 각각 15배,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림 6> 무선인터넷 데이터 트래픽 예측 (전세계)
이러한 트래픽 증가는 통신사업자들의 투자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 국내 통신사업자들의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 비중이 과거 몇 년간 16-17% 수준이었는데, 작년에는 20.7%로 대폭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트래픽이나 투자는 느는데 비해 매출액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과거 수년간 초고속인터넷 및 이동통신의 가입자당 매출액(ARPU, Average Revenue Per User)은 줄곧 하락세를 보였는데, 마침내 작년 3분기에는 재작년 같은 분기 대비 모든 통신사업자들의 이동전화 매출액 자체가 감소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초래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카카오톡 같이 기존 통신서비스를 대체하는 비즈니스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인데, 앞으로 무선인터넷 전화가 본격화됨에 따라 이통사들의 수익기반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둘째, 소수 이용자나 특정 애플리케이션이 트래픽을 집중적으로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약 5%의 고객이 무선트래픽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상위 10개의 콘텐츠가 전체 트래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전력 산업에서 낮은 요금이 문제가 된다면, 유무선 데이터 통신에서는 무제한 요금제가 문제이다. 사용자가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낸다면 소수의 고객에 의해서 대부분의 트래픽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제한 요금제로 말미암아 소수의 고객에게는 요금이 사실상 0이라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대부분 3세대 무선데이터 통신이 본격화되면서 데이터 무제한 정액제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미국의 통신사업자들은 대부분 최근에 무제한 정액제를 폐지하였다. 영국의 Vodafone, 네덜란드의 KPN 등 몇몇 유럽 사업자들도 정액제 폐지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편 독일 Vodafone, 일본 NTT DoCoMo는 LTE(Long Term Evolution)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이 서비스에 대해서는 정액제를 폐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LTE 서비스에 대해서는 정액제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제한적이긴 하지만 LTE 단말기기를 가지고도 3세대용 무제한 요금제 가입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고, 또 LG U플러스는 최근에 LTE 요금제에서 허용하는 데이터 통신량을 대폭 늘림으로써 사실상 무제한 요금제에 가까운 요금제를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경쟁과 규제가 “합심”하여 LTE에서도 무제한 정액제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 다른 나라의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 규제당국은 지금까지 소비자의 통신 이용을 줄이기보다는, 요금은 내리고 통신사업자들의 투자는 유발함으로써 소비와 투자를 함께 진작하는 정책을 펴 왔다. 지금까지는 기술진보와 경쟁확대를 통해서 이 두 가지를 함께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낮은 요금을 통한 소비 진작과 투자 증가는 양립할 수 없다.
4. 도시의 도로 및 기반시설은 어느 정도까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1979)인 Arthur Lewis(1915-1991)는 도시의 규모를 결정하는 경제적, 정치적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그에 따르면 도시가 팽창하는 초기에는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여 계속 커지지만, 적어도 경제학적으로는, 일정한 규모를 넘어서면 규모의 비경제가 발생하여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는 인구집중을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구가 한 도시에 모여 살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규모의 비경제(diseconomies of scale)도 커지게 마련이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규모의 비경제가 규모의 경제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한 도시가 ‘적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는 일은 없다. 인구가 증가하면 투입자원의 한계수입(yield)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선 집세가 오를 것이다. 그리고 도시가 커짐에 따라 음식, 음료수 등 생필품을 제공하는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도심으로 이동하는데 드는 교통비도 증가한다. 도로와 모든 기반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다. 총체적으로, 생활비가 증가됨에 따라 임금도 증가해야 할 것이다. 결국은 집중에 따른 규모의 경제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고비용’ 지역이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시에 남는 것이 유리한 산업만 남고 다른 산업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제 인구는 더 이상 늘지 않게 되고, 다른 ‘저비용’ 지역의 개발이 시작될 것이다.“ (Arthur Lewis, "Development Planning", 1966, pp. 70-71 부분 의역)
그러나 가격기구가 완전히 작동하지는 않는다. Lewis는 다음의 몇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대도시에 사는 비용이 가격기구가 완전히 작동할 때에 비해서 덜 증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 집세에 대한 규제로 말미암아 덜 오르게 된다. (2) 운임 또한 거리에 따라 받지 않기 때문에 통행 거리가 늘어나더라도 교통비가 증가하지 않는다. (3) 교통정체를 줄이기 위해 건설되는 도심고속도로 비용은 종종 중앙정부가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그 도시의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4) 새로운 기업이 들어섬에 따라 추가되는 비용(교통 혼잡, 학교 건설, 기반 시설 등)을 지방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에 기업은 입지선택을 함에 있어서 이 부분을 비용으로 계산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대도시의 혼잡에 대해서 불평한다. 그리고 지역 간의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이유에서 취해지는 조치들이 결국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비용을 줄여줌으로써 대도시를 더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은 대도시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데도 말이다...
중앙정부가 대도시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서 대도시의 도로 등 기반시설을 늘려주는 의사결정이 가격기구를 망가트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Arthur Lewis, p. 72)
Lewis의 주장을 쉽게 풀면 다음과 같다. 대도시의 혼잡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고통” 자체가 대도시에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치러야할 “비용”이다. 어떤 사람이 대도시에 산다면 이러한 비용과 편익을 따져서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이유에서 - 즉 대도시 주민의 표를 의식해서 - 대도시의 혼잡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로를 더 건설하는 등 혜택을 준다면 사람들은 대도시에 더 몰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 도시는 도로 건설 이전 수준만큼 다시 혼잡해질 것이고, 대도시 집중만 더 심화되고, 막상 그 도심의 주민들은 여전히 혼잡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5. 문제의 진단과 처방: 경제학적 관점
서두에서 지적하였듯이, 이 세 가지 증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같다. 즉 원래 비용보다 더 싼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과잉소비” 현상이 생겼고, 정치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정책당국은 가격을 인상하여 소비를 줄이기보다는 공급을 늘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은 공기업을 통하거나(전력), 신규서비스 도입과 경쟁 확대와 같은 규제정책을 활용하고(통신), 일반 조세를 사용하는 등(도로 건설) 다양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급 확대 방법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neither desirable nor possible) 않은 방법이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으면 당연히 가격이 오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수급 균형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균형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만큼을 공급하는 정책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설사 경제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경제외적인 요인을 감안하여 원가 이하에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대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그러나 이 같은 대안은 장기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적정이윤을 보장받지 못한 공급자가 시설투자를 축소하여 결국엔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공급할 설비가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전기, 통신 등 전통적으로 요금규제를 받는 산업에서 공급자들이 시설투자를 불필요하게 확대함으로써 이윤을 늘리려는 유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처음 이론적으로 밝힌 Averch & Johnson의 이름을 따 Averch-Johnson(A-J) 효과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이슈들은 공급자가 투자한 자본에 대한 적정한 대가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과소투자가 발생하는 경우이고, 따라서 이를 “역 A-J 효과(reverse A-J effect)"라고 부른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 이래 미국의 일부 주에서 전력요금 상승이 생산비용 증가보다 늦어져서 시설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을 분석한 논문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전력 산업에서는 한전의 적자가 심각한 상황이니 이 경우가 맞겠지만, 통신서비스 산업에서는 기업들이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있으므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전력산업과 달리 통신서비스 산업에서는 낮은 요금, 높은 품질의 서비스, 선발사업자의 많은 이윤이 동시에 존재하는 “행복한” 상황이 유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력산업에서 원료가격 인상 등 원가 상승요인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통신서비스 산업에서는 기술혁신을 통해서 원가절감 및 품질향상이 가능했다. 또한 통신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어서 비용감소 요인도 있었다. 그런데 규제당국은 명목가격 인상을 억제 하는데 관심이 있지, 원가가 하락함에 따라 이윤이 늘어나는 것을 반드시 규제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러한 비용감소는 이윤증가로 연결될 수 있었다. (이 또한 Joskow 등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져 있는,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주 “상식적”인, 결론이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얼마 전까지는 낮은 요금, 높은 품질, 많은 이윤이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경쟁적인 시장구조에서는 1위 기업이 아니라 한계 기업의 이윤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완전경쟁 시장에서의 기업은 경제적 이윤이 0이라고 할 때, 이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은 한계기업의 이윤이 0이라는 뜻이고, 그 보다 원가구조가 좋은 기업들은 초과이윤을 향유한다.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3위 업체인 LG유플러스는 작년 당기순이익이 847억 원이다. 회계 상의 당기 순이익이 곧 투하한 자기자본에 대한 대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한계 기업”이 투하한 엄청난 자본에 대해서 적정한 대가가 주어지는 상황은 아니고, 이는 곧 경제적 이윤이 마이너스라는 뜻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따른 기존 기업(incumbent firms)들의 급격한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통신서비스 기업을 위협하는 것은 원가상승이 아니다. 그 보다는 기술혁신으로 말미암아 기존 기업들과 유사한 서비스를 훨씬 낮은 원가에 제공하는 기업이 등장함으로써 기존 기업의 수익기반이 심각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무선 인터넷전화 등) 최근에 IT산업만큼 기업들의 부침이 심한 곳이 없다. 그런데 이런 부침은 딱히 기존 기업들이 경영을 잘못해서 라기 보다는 기술혁신이 가져다 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저명한 경영학자 Tom Peters가 “기업이 혁신에 성공하는 것은 망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고 말했을까...
통신서비스 산업처럼 환경변화가 큰 시장의 미래에 대해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향후 5년 사이에 데이터 트래픽이 15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에서, 기존 기업들이 지금처럼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낮은 가격에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6. Epilogue -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스개 소리 하나. 경제학자와 외과 의사를 수술하면 뇌가 아주 깨끗하다고 한다. 외과 의사는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째자고” 했기 때문이고, 경제학자 역시 머리 쓸 필요 없이 무조건 시장에 맡기자고 했기 때문이란다.
모든 문제를 시장원리에 입각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가 있다면 그는 참으로 “철이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다. 모든 사회적 문제는 - 설사 경제적인 측면이 아주 강한 문제라 하더라도 - 경제 외적인 요인들에 대한 고려 없이 결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제약요인 말고도 정치적·사회적·역사적 연원을 지닌 경제 외적인 제약요인을 감안한 후에, 그 제약조건 하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경제학자의 역할이다. 또한 경제학자가 해야 할 일은, 경제적으로만 보면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를 제시하여 이를 벤치마킹 또는 출발점으로 삼고, 여기에 경제 외적 요인을 추가적으로 고려함에 따라 출발점에서 얼마나 “이탈(deviation)”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런 선택의 비용-편익을 따져 볼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상황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의사결정을 보는 것은 경제학자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체계에 따라서 내려지는 결정을 경제학적인 잣대로만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결정에 따른 결과 또한 고스란히 그 사회 구성원 - 다음 세대를 포함하여 - 의 몫이 될 것이다.)
반복하지만, 앞의 세 가지 상황들은 경제적으로 볼 때 비효율적이고 또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런 상황은 소비자들의 후생을 극대화하겠다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 앞의 인기나 편익을 위해 미래의 장기적인 이익을 희생하는 그리 좋지 않은 정치적인 의도를 바탕으로 한다.
어차피 의사결정에 경제 외적인 요인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이처럼 “정치공학적”인 요인보다는 좀 더 “인문학적”인 고민이 스며들면 좋겠다. 더 많은 전기를 쓰고, 더 많은 데이터 트래픽을 일으키며, 더 편하게 도로를 달릴 수록 좋다는 것은 어쩌면 천민적이고 물질 만능주의적인 사고방식의 발로이다. 전기의 실제 비용보다도 더 전기를 귀하게 여겨 이를 아껴 쓰도록 권장하는 사회, 가끔은 스마트폰을 꺼 놓는 것이 더 멋있게 보이는 분위기, 독일 BMW보다는 Bus-Metro-Walk가 더 대접받는 사회 -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다소의 결핍을 좀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경제학자에게 결과적으로 제약요인을 덜 부과한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부추기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리한 선택을 하는 사회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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