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이 3.1%에 그칠 것이라는 내용의 수정전망을 25일 내놨다. 이는 지난해 12월 발표(3.8%)보다 0.7%포인트 낮춰잡은 것이다. 15조원 이상의 재정 보강이 실현되고, 세계 경제도 3.5% 성장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2015년 경제 전망 변화
올해 소비자물가는 0.7% 상승하는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연초 단행된 담뱃값 인상 효과(0.6%포인트)가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물가가 0.1% 오르는 데 그친다는 뜻이다. 특히 내년 물가도 1.3% 오르는데 그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사실상 4년 연속 물가상승률이 2%를 밑돌 것이라고 본 것이다. 지난해와 2013년 물가상승률은 모두 1.3%였다.
민간소비·수출 대폭 하향 조정
건설투자 증가율만 높여 3.2%→4.5%
“물가 올 0.7%↑ 내년 1.3%↑”
하반기도 기준금리 인하 압박 가능성
한국은행의 한 간부는 “내년 물가 전망이 눈에 띈다. 정부가 보수적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 4월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물가상승률은 0.8%, 내년은 2.2%로 제시한 바 있다. 정부가 올 하반기에도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말에는 올해 3.0% 늘어날 것으로 봤으나 이번에 2.1%로 0.9%포인트나 낮춰 잡았다. 반면 설비투자 증가율은 종전 전망 5.8%에서 5.6%로 소폭 하향 조정하는 데 그쳤고, 건설투자 증가율 전망치는 3.2%에서 4.5%로 크게 높였다. 수출액은 3.7% 증가에서 1.5% 감소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는 정부가 민간소비와 수출부진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핵심 축으로 보면서, 건설 경기 활성화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 정부는 추경 예산의 상당부분을 사회간접자본(SOC) 쪽에 배정할 예정이다.
올해 취업자 증가는 당초 예상(45만명)보다 조금 적은 43만명,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애초 전망(820억달러) 보다 더 많은 940억달러가 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부처 합동브리핑에 참석해 ‘2015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
정부는 25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민간 여유자금을 인프라투자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국내투자를 활성화하는 계획을 담았다. 연기금·산업은행·민간자본이 공동 참여하는 10조원 규모의 한국인프라투자플랫폼(KIIP)을 가동하기로 했다. 30조원 규모로 조성된 기업투자촉진프로그램을 이용해 사물인터넷, 차세대 이동통신망 등 유망분야 투자를 유도한다. 서울 여의도우체국을 포함해 도심 ‘금싸라기 땅’에 있는 우체국 건물과 공공청사는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상업시설로 개발한다. 유휴 국·공유지에는 시민주 방식으로 야구장, 오페라극장 등을 짓는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존 교원의 명예퇴직을 확대하고, 신규교사 채용을 늘리기로 했다. 어린이집 보조·대체교사 채용도 확대하고, 지방병원을 중심으로 간호사도 늘린다.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던 ‘청년인턴 지원제’는 중견기업까지 확대해 현재 3만5000명인 지원대상을 5만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청년근로자 수가 일정기준 이상으로 증가한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청년고용증대세제’를 신설한다. 정부 내 ‘해외 청년일자리 협의체’를 구성하고, 재외공관과 코트라 등을 활용해 ‘해외 일자리 지도’도 만든다.
메르스 대응 수출 상담회 25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 코트라에서 진행된 ‘메르스 대응 온라인 수출상담회’에서 국내 기업인들이 화상 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정부는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통계 기준, 지역·업종별 최저임금 등 제도 전반에 대한 노사정 논의를 거쳐 개선방안을 마련한다. 기업이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대한 근로소득 증대세제 인센티브를 추가해 세액공제 혜택을 더 주기로 했다. 서민들이 에너지·통신·의료 등 주요 생활비를 덜 부담하게 하는 정책도 마련한다. 여름철인 7∼9월 주택용 전기요금 3·4구간을 통합해 누진구조를 개편하고 우선돌봄 차상위가구와 신규 기초수급자 총 87만가구에도 복지할인을 적용해 연간 전기료 460억원을 절감해 주기로 했다. 170여개 중증질환 치료 전반에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유통단계별로 마진을 분석해 의약품 가격을 내리는 방안도 검토한다.
펀드에 투자했다가 원금손실이 났을 때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도록 주식 등의 매매·평가차익에 대해서는 펀드 환매 시에 과세하도록 바꾼다. 면세하는 통관절차 간소화(목록통관) 한도를 100달러에서 150달러로 높여 해외직구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황교안 국무총리(왼쪽), 이병기 비서실장과 함께 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정부가 ‘제2의 해외투자붐’ 조성에 팔을 걷어붙인다. 2007년 해외주식 투자로 발생한 매매차익에 3년간 세금을 매기지 않는 정책을 내놓은 지 8년 만이다. 먼저 일반 주식투자자들과 금융기관의 해외증권 투자를 활성화한다. 해외주식 매매·평가차익 및 환차익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는 해외주식투자전용펀드를 한시적으로 도입한다. 환차익에 대해 과세한 2007년보다 더욱 완화된 조치다. 보험사들의 해외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투자 가능한 외화자산 범위를 확대했다.
정부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 후 확대될 중국 중서부의 인프라 투자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민간과 금융, 정부가 참여하는 합동대응체계인 ‘코리안 패키지’(가칭)를 구성하기로 했다.
건설·중공업·컨설팅 분야 기업들이 금융사·연기금 및 정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활용해 새로운 먹거리도 찾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카자흐스탄 방문 때 주창한 일대일로는 중국 중서부, 중앙아시아, 유럽을 아우르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중국 남부, 동남아시아의 바닷길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오픈마켓인 알리바바 티몰(T-mall)에 개설된 한국관을 확충하는 프로젝트도 추진된다.
정부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충격으로 인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8%에서 3.1%로 낮췄다. 성장률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과 기금 변경, 공기업 조기 투자 등 총 15조원이 넘는 재정 보강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2015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최 부총리는 "소비와 서비스업은 세월호 사고 때보다 더 크게 위축됐고, 메르스가 진정돼도 부정적 영향이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다"며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메르스 충격으로 성장률이 0.2~0.3%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추경을 편성하지 않는다면 성장률이 2%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용 재원을 총동원해 성장률 '마지노선' 3.1%를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세입 추경 5조원에 더해 메르스·가뭄 대응과 수출 활성화, 청년고용, 서민생활 안정 사업을 위한 추가 지출에 세출 추경 5조원 이상을 편성하기로 했다.
세부적인 추경안은 다음달 초 당정 협의에서 구체적인 세출 리스트에 근거해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지방자치단체도 추경을 편성하도록 유도하고 재정 집행에도 속도를 내 지방재정 지출을 3조원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11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춘 데 이어 재정 보강을 통해 통화·재정 '쌍끌이' 부양책을 쓰겠다는 전략이다.
국외 주식 매매·평가차익과 환차익에 대해 비과세하는 '해외주식 투자전용펀드'를 도입한다. 올해 940억달러로 예측되는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외환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달러 퍼내기' 정책 가운데 하나다. 앞서 2007년 6월~2009년 말 한시적 비과세 기간에 해외 펀드 수는 300여 개, 설정액은 26조원가량 늘어난 바 있다.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산업은행이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를 발굴하면 연기금·생명보험사 등과 함께 투자하는 '한국인프라투자플랫폼(KIIP)'을 10조원 규모로 조성한다.
또 개인이 소액 지분 투자를 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시민주' 방식으로 국공유지에 야구장·공연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 <용어 설명>
▷ 추가경정예산(추경) : 예산이 확정된 이후에 생긴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이미 성립된 예산에 변경을 가하는 예산을 말한다. 추경예산은 이미 확정된 예산에 변경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을 수정하기 위한 수정예산과는 다르다.
[김기철 기자 / 조시영 기자]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포함해 15조원 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것은 올해 성장률 3%를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2%대 후반과 3%대 초반 성장률은 수치상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상징적 의미에서 그 차이는 막대하다. 3%대 성장률은 우선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 패스를 밟는지 판가름하는 수치다.
또 지난해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야심 차게 추진했던 '초이노믹스' 성패를 가늠하는 성적표이기도 하다. 올 하반기 국회 복귀가 예상되는 최 부총리 입장에서는 경제수장으로서 성적표가 그의 정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정부가 올해 3%대 성장률에 목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소비가 대폭 위축됐다는 점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메르스가 경제성장률을 0.2~0.3%포인트 정도 끌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만약 추경을 포함한 재정 보강이 없다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15조원 규모 재정 보강은 정부가 끌어 쓸 수 있는 모든 재원을 동원해 성장률 3%대를 지키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추경 편성에도 불구하고 3%대 성장률 달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추경으로 편성한 돈이 적절한 시점에 경제에 투입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국회법 개정으로 여야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면 추경을 포함한 경제활성화 정책의 국회 통과는 요원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실제 자금이 집행되기까지 일정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추경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추경예산 집행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재정이 성장률에 기여하는 정도인 재정승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추경을 하더라도 3%대 성장률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르스로 인한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도 불확실하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로 집계돼 전달보다 6포인트나 급락했다. 소비심리가 급락하면 이는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메르스 사태로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사태 때 소비자심리지수가 4포인트 하락한 것을 감안할 때 메르스 충격이 그보다 훨씬 더 클 것임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메르스로 인해 경기 회복세 자체가 꺾여서 다시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설 우려가 있다"며 "메르스로 인한 골이 세월호보다 더 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영우 기자 / 박윤수 기자 / 김태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