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국가별 가상화폐 정책과 셈법
가상화폐를 두고 세계 각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나라 별로 처한 상황에 따라 엇갈린 대책을 내놓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
가상화폐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세계 각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상화폐는 단순히 규제냐 허용이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기존 통화질서에서 본 가상화폐는 '공공의 적'이다. 각국 정부가 행사해 온 최대 권력인 발권력이 사라지며, 중앙집권형 통화질서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는 사용자끼리 직접 거래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 중앙은행은 물론 시중 은행 같은 중개기관 없이 모든 거래가 가능하다. 정부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규제와 허용.. 실리 추구하는 '미국'
미국은 조심스럽게 '선(先)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를 화폐나 지급수단이 아닌 하나의 '상품'으로 규정하면서 올해부터 양도차익에 대해 10~37%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시작된데 이어 24일(현지시간) 미 CNBC에 따르면 나스닥도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준비중이다. 이날 미 신용평가사 와이어스는 세계 최초로 가상화폐 74개를 평가한 가상화폐 신용등급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거래를 활성화하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가상화폐가 자금세탁이나 테러지원 같은 불법적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규제안을 준비해왔다. 미국 뉴욕주 금융감독국(NYDFS)은 2015년 6월 자금세탁 방지와 이용자 보호를 고려한 가상화폐 종합규제체계를 마련했다. 가상화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대해 영업인가를 받도록 규정한 것이다.
미국이 가상화폐를 새로운 국제 통용 수단으로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막대한 화폐주조차익을 누리고 있으며 사실상 무제한적인 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고, 무역적자를 완화할 수 있는 막대한 권력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는 세계 기축통화의 패권을 쥔 달러와 이에 도전하는 유로, 위안화의 경쟁 구도였다. 그러나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가 세를 불리면 달러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스티클리츠 교수는 "달러라는 좋은 교환수단이 있는데 왜 비트코인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공격적인 제도권 편입 '일본'
일본 정부는 가장 적극적으로 가상화폐를 제도권 시장에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일본은 2014년 2월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마운트 곡스'가 파산한 이후 가상화폐 양성화를 위한 제도 정비에 돌입했다. 지난해 4월에는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허용, 법정화폐는 아니지만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로 인정했다.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에 부과하는 소비세 8%를 폐지하고 가상화폐 취급업소 등록제도 실시하고 있다. 또 가상화폐 거래차익이 200만원을 넘으면 스스로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했다.
12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금융상은 국무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관련)무엇이든지 규제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아소 부총리는 이용자 보호와 기술혁신의 균형을 주의 깊게 유지하면서 당분간은 상황파악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날카로운 규제의 칼 '중국'
중국은 가상화폐 규제에 가장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가상화폐를 통한 자금모집(ICO)을 전면 금지하고,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명령을 내리며 일찌감치 규제를 택했다. 그러나 중국 내 가상화폐 거래자들이 P2P(개인 간) 거래로 옮겨가면서 투기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중국 정부는 올초 중국 채굴업체에 전기 공급을 차단하기도 했으며, 16일(현지시간)엔 가상화폐 P2P 거래를 금지시켰다. 중국발 쇼크는 세계 가상화폐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는 비트코인 선물 가격이 20% 급락하면서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중국의 규제 정책은 계속될 당분간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해외로 거점을 옮긴 거래소들에 대해서도 규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가상화폐의 앞날.. 긍정론과 비관론 팽팽히 맞서 [사진=픽사베이] |
스웨덴, 중앙은행서 가상화폐 발행 추진.. 독·프 '가상화폐 규제안' 공동제출
유럽권에서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법정화폐를 가상화폐로 전환하는 혁신을 추진 중이다. 스웨덴은 2016년 중앙은행 가상화폐 'e-크로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구 감소 등으로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화폐 발행 잔액이 감소한데다, 현금 이용 빈도가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e-크로나는 개인들이 채굴하는 각종 가상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가치를 지급보증하는 화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금융 허브 지위를 위협받고 있는 영국도 가상화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은 2015년 중앙은행 가상화폐 발행을 주요 리서치 과제로 선정한 이후 지속적으로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오는 3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가상화폐 규제안'을 공동으로 제출하기로 했다. 가상화폐가 테러조직의 자금줄로 악용될 가능성과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시세 변동이 기존 금융시스템의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8일 부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프랑스와 독일은 가상화폐에 대한 공통된 우려에 따라 비트코인을 규제하는 정책을 펼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재무장관도 "시민들에게 가상화폐의 위험성을 알리고 규제를 만들어 그 위험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갈팡질팡하는 '한국'.. 30일 가상화폐 규제 가이드라인 시행
한국의 가상화폐 시장은 세계 어떤 나라들보다 활발하지만, 가상화폐의 지위나 과세방안에 대해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규제로 가닥을 잡았지만 부처 간 말을 바꾸는 발표로 가상화폐 시장이 크게 요동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3일 우리 정부는 가상화폐 규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실명 계좌가 확인된 사람들만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는 가상화폐 실명거래제가 이달 30일부터 시행된다. 그동안 가상화폐 거래에 사용하던 기존 가상계좌는 사용할 수 없다. 실명거래를 이행하지 않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계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고, 외국인과 미성년자는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없다.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도 도입된다. 은행은 1일 1000만원 이상, 7일 2000만원 이상 가상화폐 거래 입출금 내역이 있거나 반복적인 입출금 행위가 있을 경우 의심 거래로 간주하고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엇갈리는 전망
사실 가상화폐의 앞날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긍정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선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가상화폐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나쁜 결말을 맺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비트코인을 대륙화폐에 빗댔다. 대륙화폐는 미국 독립전쟁 시절 미국 대륙의회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화폐로 7년 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그러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기존 은행을 대신할 잠재력이 있다"면서 "(시장을) 확장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지만 앞으로 가상화폐가 부딪힌 기술적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력한 비트코인 거품론자였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은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말한 것을 후회한다"면서 "가상화폐 기술인 블록체인은 현실"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