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생활문화

전통의 신발전문점 보영재

구봉88 2009. 4. 26. 21:31

보영재(步瀛齋)

 

"베이징보영재(步瀛齋 Buyingzhai)신모자유한회사"는 번화한 전문외(前門外)상업거리에 위치해 있다.

"보영재"신가게는 1858년에 창건되어 지금까지

 1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창업자는 당시 조정에서 임관하고있던 이빈식(李斌植 Li Binzhi)이라고

부르는 만족(滿族)인이었다.

 

"보영재"는 원래 2층으로 되어있는, 조형이 비교적 간단한 작은 아파트였으나 편액에만은 특별히 신경을 썼는데, 청조때의 문인 모영희가 친필로 써준 것이라고 한다. 베신의 생산과 판매를 위주로 한 당시의 "보영재"는, 고급재료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었는데 생산해낸 상품은 조정의

고관들에게 제공되었다.

 

"보영재"신가게는 수를 놓는것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재료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가장 좋은것을 택했는데, 이런 재료들은 쉽게 기름이 나지 않고 밀도가 높아서 만들어낸 신발은 편안할 뿐만아니라 모양새도 좋아서 귀족들과 많은 여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보영재"신가게는 고관들을 위한 고급신발외에도 일반 백성들을 상대한 신발도 만들었으며, 전문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신발도 만들어 냈다.

1937년, 손으로 수를 놓은 신발들이 의연히 "보영재"신가게의

 전통 상품이긴 했지만, 차츰 "보영재"에서는

남방의 상해 등지에서 가죽구두를 구입해 왔다.

 

해방후 1953년에 이르러 사회의 발전과 당의 3권정책의 실시에 따라

나큰 발전을 가져왔던 "보영재"는 판매량도 최고수치를 기록했다 .

 

10년동안의 문화대혁명은 "보영재"로 하여금 부득불

 "공농병(工農兵 Gongnongbing)"으로 편액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게 했으며, 후에는 다시 "동승(東升 Dongsheng)"신가게로

이름을 고쳤다가 1983년에 이르러서야 "보영재"라는

원래 이름을 회복할수가 있었다.

 

1986년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국은 경제상에서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으며,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진 "보영재"는 가게를 증축했다.

현재의 "보영재"는 전통브랜드의 경영특색을 여전히 보존하는

기초상에서 몇천원에 달하는 수입제 가죽구두로부터,

몇원짜리 어린이 신발까지 다양한 종류로 구색을 맞추고 있다.

1층의 대청홀에는 여러가지 가죽구두들이 눈부시게 진열되어 있고,

 2층에는 다양한 베신들로 종류가 다양하다.

 "보영재"는 부동한 장소, 신분, 연령층, 체형 등 갖가지 방면으로부터

 착수하여 신발을 만들어내기에 힘써왔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옛 브랜드를 지켜냈다.

 

현재 "보영재"는 믿음과 환영을 받는

신가게로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는데, 1999년에는 베이징시

 유명상표로 평의되면서 국내무역부로부터

 "중화브랜드"칭호를 수여받았다. 2001년부터 "보영재신무자유한회사"에서는 "보영재"브랜드의 연구와 발전에 치중하여,

몇개밖에 없던 판매지점을 산동, 산서 등 전국의 20여개

기타 지역까지 확장하여 판매네트워크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해마다 많은 판매액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보영재"는 전통 브랜드의 특유한 매력으로 중국의

 신(鞋)문화를 전파하는 사자로 되어, 중외문화교류의

유대작용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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