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당(德壽堂 Deshoutang)"한약방은 1934년에 창립되었는데, 선무구주시구서대(宣武區珠市口西大 Xuanwuquzhushikouxida)거리 175호에 자리잡고 있다. 창시자는 강백경(康伯卿 Kang Baiqing)이란 베이징 사람으로서, 자는 인수(印壽 Yinshou)이고 호는 욱동(旭東 Xudong)이다.
그는 일찍 어려서부터 회인당(懷仁堂 Huairentang)에서 견습공으로 있었는데 총명한데다가 부지런하고, 늘 언젠가는 창업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간단한 약들을 만들어낼수 있었다.
또한 꾸준한 실천을 거듭해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는데 1920년에는 숭문구외남소시(崇文區外南小市)에 "덕수당약포(德壽堂藥鋪)"를 하나 냈으며,
1928년에는 숭문구외동화시장(崇文區外東花市場)에 "덕수당동호(德壽堂東號)"를, 1934년에 주시구서대(珠市口西大)거리에 "덕수당남호(德壽堂南號)"를 창립했다.
처음에는 자체로 만든 환약, 가루약, 고약, 단약 등을 위주로 경영하다가 후에는 달인 약에까지 범위를 확대시켜 경영했다. 창립되어서부터 발전하는 동안, "덕수당"중약방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성공하기까지는 자신만의 독특한 비법에 있었다고 볼수 있다.
하나는 독특한 경영방법인데, "덕수당"중약방은, 가게와 제약공장이 일체화된 약방으로서, 판매하는 약품은 좋은 재료에 가공이 세밀하여 질량을 담보할수 있었고, 가격이 합리해 베이징에서 좋은 평판을 받으면서 소비자들의 신용을 얻었다.
특히 "덕수당"중약방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온 조상들의 비방으로 연구제작해 낸 "강씨우황해독환(康氏牛黃解毒丸)"은 독특한 처방으로 약효가 선명하고 뛰어난 특점으로 소문이 났는데
20세기 30년대 남양박람회에서 상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중남해국화정품전람회에서도 격려상을 받았으며, 이때부터 "덕수당"은 전 국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두번째는 광고수법이 독특했고, 세번째로는 건축풍격면에서 독특했다는 점이다. 1987년 선무구정부에서는 "덕수당"중약방을 "구급(區級)문물보호단위" 선정했고, 2003년 베이징정부에서도 "시급(市級)문물보호단위" 선정했다.
"덕수당" 1999년 광안도로(廣安道路)공사중에서 보존되어 남아있는 3대 건축문물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도로 시공 가운데서 여러가지로 엄중한 폐해를 받고 있다. 이 문물을 재생시키기 위해 베이징시위원회와 시정부에서는, 역사문물의 원 모양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약방에 대해 전면적인 보수를 진행하는 등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덕수당"은 지금까지 70여년의 역사를 갖고있는 브랜드로, 국에서 굳건한 자리를 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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