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처(都一處 Duyichu)는 기원전 1738년에 창립되었다. 원래는 "왕기주포(王記酒鋪 Wangjijiupu)로 불리웠는데 왕서복(王瑞福 Wang Ruifu)이란 산서사람이 창립했다고 한다.
"도일처"란 편액의 유래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건륭17년(기원전1752년), 건륭황제가 비밀리에 통주(通州 Tongzhou)란 지방으로 민정을 살피러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영정문에서 전문으로 통하는 일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날은 마침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이였다고 한다.
이미 땅거미가 깃들었는지라 백성들은 저마다 준비해둔 음식을 집으로 가져가느라 분주했으며, 많은 가게들도 일찍부터 문을 닫았다. 하지만 유독 왕서복이란 사람이 경영하는 가게만이 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으므로 건륭황제 일행 세명은 이 술가게로 들어가게 되었다.
왕서복은 이 세명의 손님이 의상이 단정하고 풍채가 고상하여 보통사람들과 다른 신분일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십여년간 술가게를 경영하던 경험으로 이 세사람을 윗층에 안내하여 자신있는 몇가지 요리에다 양주를 올렸으며 옆에서 시중까지 들었다.
술을 마시고, 요리를 맛보다가 그중 한 사람이 가게이름을 묻자 왕서복은 아직까지 가게는 딱히 정해진 이름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모두들 명절을 보내느라고 바쁜데 지금 이시간까지 아마 영업을 하는 집은 이 가게밖에 없는것 같으니까 아예 '도일처'라고 하세" 라고 말했다.
왕서복은 그때 당시 이 이름에 대해 별로 만족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후 몇몇 환관이 "도일처"라고 쓴 편액을 갖고와서 하는 말이 이 편액은 건륭황제가 친히 쓴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날 왔던 세사람중에 주인차림을 했던 사람이 바로 건륭황제라고 말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왕서복은 급히 편액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걸었으며 이때로부터 이 술가게는 "도일처"로 이름을 달게 되었다고 전한다.
왕서복은 건륭황제가 앉았던 걸상을 노란색 견직물로 고이 감싸서 "보배걸상"처럼 간주했다. "도일처"란 편액을 달면서부터 장사는 날이 갈수록 잘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외국손님들까지 흥미를 갖고 이곳을 찾아서 기념사진을 남겼는데 이러한 정경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한다.
건륭황제가 찾았던 곳이라 하여 "도일처"는 한결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도 옛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굳게 지키고 있는 "도일처"의 더 밝은 내일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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