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작 "황야의 독수리"는 날아다니는 독수리와는 별 상관이 없는 영화이고, 그렇다고 해서, 황야에서 누가 장독을 수리해 준다는 내용도 아닌 영화입니다. "황야의 독수리"는 원수 다섯명을 차례로 처치하기 위해 만주를 떠도는 총잡이 역할을 장동휘가 맡았고, 그 원수를 박노식이 연기했으며, 그리고 장동휘의 아들 내지는 박노식의 아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역할로 김희라가 나오는 영화입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탈리아산 서부 영화에 영향을 받은 만주물 한국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 영화 "황야의 독수리는" 바로 그 중에서 요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영화입니다. 어떻게해서 원한관계가 생기는지 지켜보고, 아슬아슬한 갈등이 어떻게 끝을 맺는지가 묘미겠습니다만, 이하에서 이 영화의 전체 내용을 대충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황야의 독수리" 포스터)
영화가 막이 오르면, 어느 시골 마을을 보여줍니다. 평범한 60년대 한국 농촌 마을처럼 생겼습니다만, 영화 나중에 나오는 것을 보면, 이곳은 하얼빈 근처의 북만주인 곳입니다. 이 부분의 배경은 전혀 만주스럽지도 않고, 별로 만주물 영화스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제 역할은 합니다. 이야기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가파르게 긴장감을 높이면서 빠르게 나아갑니다.
시작 장면에서 어느 사진사가 마을에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마을에 나타나는 사진자를 비춰줍니다만, 이 사진사는 각본상의 대사만 볼때는 영화에서 별 중요한 일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화면은 사진사를 한동안 따라다니며 비추어 주고, 덕분에 이 사진사의 존재가 영화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서 영화 끝까지 복선으로 활용되게 됩니다. 사진사가 하는 대사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사진사를 중심으로 좀 오래 시간을 소모해 화면에 담았기 때문에, 사진사가 별것아니면서도 막판 반전등을 위한 단초가 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사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사람들)
일단 사진사가 마을에 나타난 사연은 무엇인고하니, 한 한인 집안의 어린아이가 백일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일잔치를 하고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영화 화면은 사진사가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는 이 하얼빈 마을의 한인들을 사진사의 시각으로 보여줍니다. 모여서 서 있는 사람들이 사진에 담기려는 순간, 사진사의 렌즈속에 갑자기 사람들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일본군 병사들이 잡힙니다. 사진사는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곧 영화 화면은 모여 서 있는 사람들을 휩싸면서 접근해 오는 일단의 일본군 병사들을 보여줍니다.
이 일본군 병사들은 독립군을 찾니 어쩌니 하면서, 시비를 걸다가 결국은 마을에서 어림없는 끔찍한 행패를 부리고, 마을 사람들과 사진사도 모두 학살해버립니다. 이 일본군들의 부대장이 바로, 박노식으로 박노식은 정신병자에 가까운 변태 미치광이 악당의 모습을 전쟁에 미친 잔인한 병사들이라는 모습에 연결시켜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노식이 연기하는 일본군 부대장의 기막힌 모습은 사실 영화 중반에 더 치솟아 오르는데, 영화 초반에서도, 자기 병사들이 행패부리면서 난리치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시상이 떠오른다"면서 부하에게 자신의 시를 받아 쓸 것을 지시하는 모습을 잘 연기해서, 초장부터 아주 과대망상증 미치광이 악당 같아 보입니다. 이렇게 악행을 하면서 "시상이 떠오른다" 운운하는 인간은 일본 소설이나 영화에 종종보이는 것입니다. 이 영화, "황야의 독수리"는 어느 영화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박노식의 악당 연기는 워낙에 개성이 넘쳐서, 조잡한 아류작으로 보이기보다는, 충실한 정신나간 악당 역할속에 잘 자리잡혀 있습니다.
(사진 촬영하는데 끼어들어 학살극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악당 박노식)
박노식은 백일을 맞은 문제의 아기가 아기 어머니가 잔혹하게 죽어가는 동안 그 옆에서 나뒹굴며 울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박노식은 일단 부관에게 시를 받아쓰게 합니다.
"아- 아기의 울음소리는 천사의 울음소리인가!"
쓰레기 같은 시를 한 구절 지어낸 박노식은 정신나간 기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중얼거립니다.
"나카무라. 강아지 키워본적이 있나? 나는 저 말하는 강아지를 한 번 키워 보고 싶다. 저 아기를 강아지처럼 한번 키워보자."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마을에서 학살극을 펼치는 모습에서 박노식의 모습이 워낙 괴상한 짓을 많이 하는 변태 괴물처럼 보이기 때문에, 괴이한 상황을 이끌려나가는 이 장면들은 무척 잘 이어집니다. 이야기 자체도, 자신의 지시로 결국 비참하게 죽은 아기 어머니를 눈앞에서 낄낄거리며 지켜보았으면서, 그 아기를 기르겠다고 하는 것이 박노식의 미치광이 소리의 점층법으로 부드럽게 연결됩니다. 더군다나, 사람인 아기를 뭔 귀여운 강아지처럼 여기는 소리를 섞는 것도 껄끄럽고 이상한 소리로 들리면서 박노식의 광기를 더해주는데 일조합니다.
("말하는 강아지를 키우면 재밌겠지?")
화면이 바뀌어,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었던 장동휘가 이 마을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보아하니, 장동휘는 바로 죽은 아내의 남편이자, 죽은 노인의 아들인듯 합니다. 장동휘는 멧집 좋은 모습에 굳은 얼굴로 인상 쓰고 있는 고유의 정통 표정을 보여주는데, 일가족이 몰살당한 그 광경을 보고 넋이나갈 정도로 분노한 모습이, 길길이 날뛰고 울부짖는 장면 없이도 기묘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장동휘는 학살 당한 사진사가 사진기에 담은 마지막 사진을 현상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에 같이 찍힌 일본군 병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만주를 떠돌며 복수를 펼치는 것입니다. 장동휘가 사진을 현상에서 사진에 같이 찍힌 일본군의 얼굴을 근거로 해서 복수를 계획한다는 것은, 무척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별다른 설명이나 대사 없이, 사진기를 보는 장면과 현상하는 장면, 사진 속에 찍힌 일본군 병사들의 얼굴과 그 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장동휘의 표정 등등을 신속히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것으로 관객들 누구나가 다 그런 계획임을 알게 합니다.
영화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동휘는 먼저 3명의 원수들을 차례로 총을 쏘아 죽이는데, 이 총싸움 장면은 상당히 힘이 넘치는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장동휘는 "장동휘 표정"으로 저벅저벅 아무곳에나 자신있게 걸어들어가서 시원하게 총을 뽑고 저주의 말을 읊조린 뒤에 가차없이 총을 쏘아 죽입니다. 긴긴 세월이 흘러 각기 다른 곳,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당시의 일본군 병사들을 차례로 찾아가 죽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배경의 배경 전환도 빠르게 넘어가서 다양한 맛이 살기도 합니다.
장동휘는 그렇게 처연한 복수를 저지르면서 방해하는 다른 병사나 총잡이들을 단숨에 줄줄이 다 쏘아 죽여버립니다. 장동휘는 그 무시무시한 총질을 눈 하나 깜짝 않고, - 사실 영화 화면상에서 눈은 좀 깜짝거립니다. - 표정 변화도 별로 없이, 걸음걸이나 움직임 변화도 별로 없이, 그냥 태연자약하게 이리저리 총을 쏘며 다 쓰러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장동휘의 멧집 좋은 모습과 정확하게 들어 맞아서, 장동휘가 옛 원수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병사들이 찍힌 사진을 들이밀고, "내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황천으로 꺼져라" 정도의 대사를 읊조리는 모습은 정말로 강한 총잡이라는 육중한 힘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왜 왔나?"/"너를 죽이려고 왔다")
그 중에서도 아마 기생집에서 인신매매짓을 하게 된 악당을 죽이는 장면이 가장 잘되어 있지 싶습니다. 장동휘가 총을 들이밀자 악당은 잠시 잔꾀를 써서 몰래 발로 비상벨을 누릅니다. 그래서 누가 나타나는 듯 인기척이 들리는데, 그러자 장동휘는 악당의 품에 안겨 있던 한 여자를 끌어내더니 문을 벌컥 열며 내 보냅니다. 문에서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비상벨을 듣고 달려온 악당의 부하들은 그 여자에게 반사적으로 총질을 합니다. 그렇게해서 악당들이 총을 엉뚱하게 쏜 뒤에, 한 박자 다음에 장동휘가 튀어나와 장동휘는 악당들을 다 쓸어버립니다. 악당을 대신 문밖으로 먼저 보내는 것은 총잡이들이 나오는 영화에서 지금껏 매우 자주나오는 장면입니다만, 이 영화에서도 꽤 잘되어 있습니다.
결국 방법이 없어진, 악당은 비굴하게 바닥을 기면서 장동휘에게 구구한 말들을 하며 살려달라고 합니다. 악당은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장동휘에게 밀리고 더 비굴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악당은 빈틈을 노려 권총을 집어 장동휘를 쏘려고 합니다만, 장동휘는 놓치지 않고 악당에게 먼저 총을 쏩니다. 그러자, 허연 배에 붉은 피를 흘리며 속옷바람으로 뒹굴며 악당은 죽어가는데, 그 처절하면서도 비참한 악당의 마지막 모습은 선명한 색채대비하며 꽤 그럴듯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장동휘는 몸을 뒤틀며 죽어가는 악당에게 계속해서 확인사살 탄환을 퍼붓는데, 이 장면은 기어가며 죽어가는 악당과 일어서 악당을 내려보는 장동휘를, 영화를 찍을 때 장동휘 머리 위 방향에서 찍어 화면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 영상이 담겨서 악당이 바닥에서 뒹구는 처절한 모습이 더 잘 다가오고, 장동휘가 악당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는 위압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연출해 내는 수법은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야쿠자 영화에서 종종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만, 따지고보면, 50년대 한국영화인 "지옥화" 같은 영화에서도 비슷한 연출법을 주요 장면에서 잘 써먹은 바 있습니다.
(문 밖으로 나가.
(문 밖에 나가면 장동휘가 나온줄 알고 악당 부하들이 총을 마구 쏩니다.))
이 부분에서는 음악도 매우 그럴듯합니다. 이 영화에는 "황야의 독수리" 주제곡이 서부 영화 음악에 살짝 과하게 작렬하는 트럼펫 연주를 섞어서 마련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장동휘가 만주 이곳저곳 다니며 줄줄이 복수하는 장면들에서는 주요한 순간마다 여러가지로 변주된 "황야의 독수리" 주제곡이 마구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허구헌날 반복되어서 좀 과하지 않나 싶으면서도, 또 그렇게 같은 노래가 여러가지로 변주되면서 자꾸만 터져나오는 것이, 이렇게 좀 말이 안되는 서부의 무용담이나 전설같은 느낌을 살려주는 효과도 생기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총질의 파괴감은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만, 이런 음악이 마구 펼쳐지는 분위기는 "데스페라도"나 "슛뎀업" 같은 영화와도 일맥상통하는 묘한 흥취가 있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총질하며 전설적인 무용담 같은 분위기는 영화 앞부분의 도입부에 충실하게 살아 있는 것이고, 이 분위기는 아쉽다면 아쉽게도 살짝 수그러듭니다. 그리고, 장동휘가 악당들의 두목격인 박노식을 살해하러 길을 떠나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중심으로 접어듭니다.
(만주를 떠도는 장동휘)
장동휘가 복수를 하러 만주를 돌아다닌 긴긴 세월 동안, 박노식과 박노식이 데려간 그때 그 아기가 어찌 되었는가 궁금해할법도 한 상황입니다. 영화는 그 궁금증을 좀 더 자극하면서도, 서서히 풀어주기 위해, 대뜸 어느 군부대에서 군인들끼리 권투시합을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아직 멧집을 키우기전의 젊은 김희라와 삭발을 하기 전 날카로운 모습의 조춘이 서로 권투시합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투시합을 낄낄거리며 지켜보는 늙은 부대장 박노식이 보입니다. 권투시합을 지켜보면서, 이번에는 "혼도"가 이길것인가 어떨것인가를 두고 박노식과 그 부관 "나카무라"가 응원을하면서 몇마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개가 됩니다.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권투 과정에 부드럽게 지난날 있었던 일을 전달해주게 만들어 놓은 각본은 정교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정말로 정교해 보이는 것이, 이 권투 장면 자체의 싸움 연출이 무척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권투 장면 싸움 자체에 완전히 끌어들여 놓고, 거기에 집중한 상태에서 경기 해설을 보는 듯한 감각으로 박노식과 나카무라의 대화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양아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즐기는 박노식과 그의 부하)
이 권투 장면은 일단 조춘과 김희라의 움직임 자체가 매우 날렵하고 상당히 사실적이며, 때리는 조춘의 표정과 김희라의 맞는 표정도 정말 그럴듯합니다. 또 때린 뒤에 맞은 김희라가 쓰러져 나가 떨어질때는, 나가 떨어지는 김희라의 동작에 따라 부드럽게 화면이 따라가면서 맞아 자빠지는 김희라와 함께 이동합니다. 설명하자면, 때리면 그 때린 힘에 영화 화면이 날아가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때린 힘의 방형에 따라 영화 화면이 같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화면을 때리고 자빠지는 방향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은, 이 영화 구석구석 싸움장면마다 무척 잘 살아 있습니다.
김희라는 조춘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아서 거의 죽을 것처럼 보이다가도, 박노식이 다그치면서 응원을 하자 악착같이 일어나서 결국 조춘을 때려 눕힙니다. 이런 내용 속에서, 김희라가 조춘을 이길정도로 싸움도 잘하고, 한편으로는 좀 비인간적일 정도로 굳세고 독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전해줍니다. 박노식이 하고다니는 소리를 들어보면, 박노식은 "개를 키우는 재미처럼" 김희라를 길렀는데, 부대의 누룽지 남은 밥을 긁어다 주면서 김희라를 키워서, 지금은 김희라가 엄청나게 싸움을 잘하는 최고로 실력 좋은 군인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직도 사춘기 청소년 같은 느낌도 좀 남아 있는 김희라의 모습은 당시 일본 "청춘 영화"의 반항적이고 싸움잘하는 고등학생과도 일맥상통해 보입니다. 이 영화속에서 김희라는 어딘가 좀 떨떠름한 인상 구기고 있는 표정 딱 한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버티고 있는데, 이 이상한 연기방식과 그 영화 전체에 걸쳐서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는 표정이 이 비인간적인 세뇌된 인간으로 자라난 김희라의 역할에는 기막히게 맞아 떨어집니다.
(청춘의 김희라)
김희라는 집요하게 싸운 끝에 권투시합을 이기고, 순찰을 돌기 위해 말을 타고 떠납니다. 말을 타고 가다가 김희라는 마적떼에 쫓기고 있는 한 마차를 구해주게 되는데, 이때 구해준 아가씨와 김희라는 심상치 않은 눈빛을 주고 받습니다.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엉뚱한 이야기는 아니면서도, 이후 이야기에 충분한 복선으로 쓰이는 것, 역시 정석대로 입니다. 한편으로는, 만주물 답게 마적떼거리가 잠시 나타나면서, 마적떼 분위기는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 짧게 사라지는 구성도 괜찮습니다. 별 이유없이 만주물이니까 마적떼가 나와야하고, 때문에 별 잘 묘사도 안된 마적들이 가끔 한 번씩 얼굴을 들이밀다 마는, 말하자면, "쇠사슬을 끊어라" http://gerecter.egloos.com/3509141 속 마적처럼 엉성한 위치매김보다, 사건 하나만 확실히 만들어주고 사라지는 이 영화 "황야의 독수리"속 역할이 마적을 영화속에 끌어들이는데 훨씬 더 나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클럽의 아가씨)
이후에, 클럽에서 자리를 잡고 잔치를 벌이는 일본군 떼거리들과, 드디어 이곳에 도착해 박노식의 목숨을 노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 장동휘, 박노식의 경호원 역할을 하면서 박노식을 지키고 있는 최측근 김희라의 모습이 차례로 나옵니다. 장동휘가 저녁을 먹고 있는 곳에 어떤 낯선사람이 나타나 원수를 갚겠다면서 박노식을 죽이러 가겠다는 말을 합니다. 식당 주인은 그러다 죽는 사람 숱하게 봤다면서 그 낯선 사람을 말리는데, 그 사람은 무시하고 술을 퍼먹더니 박노식을 죽이러 떠납니다. 그 사람은 단도를 던져서 가볍게 문지기 일본군 병사 두명을 쓰러뜨립니다. 여기까지만해도, 이 낯선 사람은 꽤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데다가 비장한 각오까지 남다른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 표현됩니다. 그러나, 그런 단도잡이도, 박노식 앞에 뛰어들자, 김희라에게 간단히 제압당하여 실패하고 죽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역시 박노식을 원수를 갚기 위해 죽이고 싶은 장동휘는 그런 상황을 무표정하고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표정한 모습뒤에 얼마나 많은 감상과 계산이 왔다가는지 관객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한 앵벌이 꼬마가 이런저런 많은 말로 주절주절 박노식과 김희라의 무서운 싸움솜씨에 대해 떠들게 했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장동휘는 아무 말이 없이 무거운 표정만 굳게 짓고 있는 모습이 잡혀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사실 꼬마가 수다스럽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장동휘의 생각과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관객으로서는 장동휘가 박노식과 그 경호원 김희라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고민한다는 생각을 충분히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장동휘는 별 대사를 하지 않고 그냥 "장동휘 표정"으로 무겁게 앉아 있기 때문에, 장동휘의 과묵한 분위기와 폼잡는 느낌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거친 서부의 사나이와 어린이가 대사를 주고 받으며 우정 비스무레한 것을 살짝 만드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셰인"부터, 요즘에 나온 "데스페라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같은 영화 까지, 자주 쓰는 수법인데, 이 영화 "황야의 독수리"에도 과하지 않게 잘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의 짧은 묘사를 통해서 박노식이 나쁜 놈이고, 박노식을 김희라가 밀착 경호하고 있고, 김희라는 싸움을 엄청나게 잘하는 놈이라는 것이 충분히 잘 전달되고, 거기에 더하여, 장동휘의 복수가 쉽지 많은 않겠다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물론, 장동휘-김희라가 사실은 아버지와 아들인데 그 관계를 모르고 서로 원수라고 생각하고 싸우게 될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하며 아슬아슬함이 쌓여나가게 합니다.
(박노식 죽이러 갔다가 김희라에게 죽는 단역. 역이 매우 작은데도 연기는 성실합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박노식과 그 일본군 부대들이 여러가지 행패를 부리며 흉악한 짓을 한다는 것이고, 여기에 맞춰서 박노식은 또 더러운 짓을 할 때마다, 변태적인 표정으로 "시상이 떠오른다" 운운하면서, 나카무라에게 시를 받아쓰게 합니다. 이 대목에서 박노식의 미치광이 악당 연기는 압도적이어서, 정말 좀 맛이 간 놈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조커" 같은 악당 역할이나, "디파티드"에서 잭 니콜슨의 모습에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박노식은 독립군들이 공격해 올것 같다면서 "뭔가 심상찮은 냄새가 난다"라고 하면서, 좀 맛이간 표정으로 갑자기 진짜 냄새를 킁킁 맡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 모습은 "디파티드"에서 잭 니콜슨이 생쥐 흉내를 내는 그 기괴한 모습을 한참 앞서나가는 듯 보입니다.
(혼도. 미친짓을 많이 해서 이 애비를 기쁘게 해라. 낄낄낄.)
박노식과 그 일본군 부대들이 행패를 부린다고 했는데, 이 놈들이 부리는 행패로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은 아무 이유 없이 여자를 습격하는 것 한 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배우들의 비명소리와 옷이 찢어지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 묘사와 소재를 사용하는 방법은 당시 일본의 동시상영관용 완전성인용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뭐 썩 영화를 잘 맞춘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야기를 완전히 이상한쪽으로 틀어버리면서 망쳐버릴 정도로 완전히 기울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이 곳에 찾아온 클럽의 가수 아가씨와 김희라는 젊은 피가 끓어올라 서로 정이 들고, 그런데, 그 클럽의 가수 아가씨가 바로 박노식 부대에게 당하면서, 김희라는 괴로워하고, 점차 박노식과 이 일본군 부대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잠깐 괜찮은 장면도 있습니다. 김희라와 클럽의 가수 아가씨가 헛간 같은 곳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먼데서 부대의 귀대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는 장면은 "카르멘"의 한장면이 떠오를만합니다.
(노래하는 떠돌이 아가씨와 그녀를 사랑하는 병사. 카르멘과는 달리 애초부터 병사쪽이 훨씬 무서운놈입니다.)
한편 박노식을 암살할 궁리를 하고 있는 장동휘는 먼저 김희라를 사로 잡은 뒤에 김희라를 인질로 잡고 박노식을 불러내어 일대일 결투를 하자고 합니다. 사실은 아버지와 아들인 장동휘와 김희라가 인질과 인질을 붙들고 있는 사람의 관계가 되어 잠시 함께 하는 장면은 시종일관 어느 정도 긴장감이 감돌아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장동휘는 주도면밀하게 박노식을 죽이려고 했지만, 김희라의 발빠른 동작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도망치게 됩니다. 말을 타고 도망치다가 뒤쫓는 김희라에게 총을 맞은 장동휘는 죽음의 위기에 놓이는데, 이때 독립군 패잔병들에게 구출되어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김희라와 클럽의 가수 아가씨와의 이야기가 좀 더 극적으로 치닫고, 열받은 김희라가 도저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서, 클럽의 가수 아가씨를 괴롭힌 자기 동료들을 잡아 죽여버리는 이야기가 잠시 펼쳐집니다. 그런 뒤에, 이야기는 마지막 결전 장면으로 흘러갑니다. 독립군들이 양동작전을 펼쳐서 일본군 부대를 엉뚱한 곳으로 끌어내고, 텅빈 부대를 급습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장동휘는 따라가서 텅빈 부대에 홀로 남아 있는 박노식을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권총들고 잠입하는 장동휘)
이 마지막 결전은 일본군이 속아서 독립군들과 싸우러 나간 쪽의 이야기와, 일본군 부대로 몰래 살금살금 다가가는 장동휘와 독립군 동료들의 이야기, 두 가지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면서 진행됩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를 어떻게 교대로 배치해서 잘 전달해 줄지 제대로 계획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찍어서, 그냥 두 가지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뚝뚝 필름이 서로 끊겨서 넘어다니는 형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하는데 실패했고, 흡인력도 이야기 내용에 비해서 떨어집니다. 편집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영화를 찍었고, 편집 기술도 좀 부족해서, 빈틈이 좀 많이 보이는 면이지 싶습니다.
장동휘는 부대에 성공적으로 들어오는데는 성공했지만, 아무리 부대를 뒤져봐도 박노식을 찾아내지 못해서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때, 박노식이 이상한 낌새를 끼고 숨겨 놓은 복병들이 튀어나와서, 장동휘 일행들을 다 쏘아 죽여버립니다. 장동휘 일행은 순식간에 전멸했지 싶습니다. 그러나, 요행 장동휘는 살아남았고, 죽은척 하고 있다가 방심한 일본군들에게 순식간에 육연발 권총 탄환을 모조리 쏟아부어 단숨에 다시 일본군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 너무 주인공만 총싸움을 잘하는 것 같아서 황당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장동휘의 몸놀림과 총구를 따라 움직이는 화면 연출이 자연스러워서 괜찮아 보입니다.
황량한 벌판에 텅빈 군부대가 있고, 흙바닥 위에 이리저리 시체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흙먼지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만 을씨년스럽게 들리는데, 외로이 장동휘가 혼자 서 있습니다. 만주물 분위기가 제대로 치달으면서, 한편으로는 장동휘가 도대체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갔는데 과연 목표인 원수 박노식은 어디있는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느낌도 은근히 떠오르게 됩니다. 장동휘의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한 "장동휘 표정" 그대로 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박노식을 발견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해하다가 몰살당한 독립군들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남아 있고, 반대로 다 끝낸줄 알고 방심하고 있다가 장동휘에게 몰살당한 일본군들의 모습도 관객들에게 남아 있기에, 도대체 박노식 그 놈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박노식은 땅굴 속에 숨어 있는데, 박노식은 이 영화에서 줄기차게 보여주었던 정신병자 악당의 표정으로 읊조리기를,
"여기가 천국이구나"
라고 합니다. 땅속에 있는 박노식을 보여준다는 것이 기술적으로 미숙해서 잘 연결은 안됩니다만. 그러나, 그 박노식은 결국 용의주도한 장동휘에게 발견됩니다. 장동휘는 지금까지 다른 원수들에게 그랬던 것 처럼,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사진을 던지면서, 20년전에 저지른 학살이 기억이 나냐고 호통칩니다. 영화 첫머리에 무슨 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나왔던 사진찍는 장면이 계속 조금씩 이어져서는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중요한 소재로 수미쌍관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때 박노식은 기괴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날 죽이고 싶지? 죽여봐. 죽여. 날 죽여."
붉게 눈이 충혈되어 악마 같은 모습인 박노식의 이 맛이 간 표정은 압권입니다. 그러나, 영화 화면상에서 별로 강조하지 않고 있는데다가 보여주는 시간도 매우 짧아서 무척 아쉽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박노식은 장동휘가 쏜 총알 횟수를 세고 있었고, 장동휘가 총을 다 쏘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노식은 장동휘를 제압한 후에, 만신창이가된 장동휘를 일본군 국기계양대 밧줄에다가 묶어 놓고 죽여버리려고 합니다. 장동휘는 계양대에 묶여 있고, 깃발에는 일장기가 휘날립니다.
(푸른 하늘, 황야, 결투하는 원수)
바로 그 때, 모든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이제 부대를 떠나서 클럽의 가수 아가씨와 함께 멀리 도망가버리려는 계획을 세운 김희라가 나타납니다. 김희라는 박노식과 그 부하들에게 맺힌게 많은 상태이고, 이미 몇몇 단서를 통해, 자신에게 어떤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계획을 눈치챈 상태입니다. 김희라는 박노식이 당장에 장동휘를 죽여버리라고 하자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혼란스러워합니다. 박노식이 김희라에게 말하기를, 지금 붙잡혀 있는 이 장동휘가 한국인 독립군으로 그날그때 일본인인 김희라의 어머니를 죽인 원수라고 합니다. 재갈을 물린채 묶여 있는 장동휘는, 안타까운 눈빛을 김희라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당황스러운 처지입니다. 자칫하면, 아들인 김희라가 원수인 박노식의 말을 믿고, 사실 친아버지인 장동휘를 죽일 결정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김희라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바로 그 사진을 봅니다. 사진에 자신의 친어머니와 그 가족들이 한복을 입고 있고, 나카무라를 비롯한 일본군들이 찍혀 있는 모습을 봅니다. 김희라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닫고 장동휘 대신 박노식을 죽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박노식은 죽을 때 나카무라의 시체 옆으로 엎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또,
"시상이 떠오른다..."
며 읊조립니다. 박노식은 충혈된 눈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되어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 썼는데, 입에서는 붉은 피를 게워올리며 죽어갑니다. 그 모습은 드라큘라를 연기하는 크리스토퍼 리 못지 않은, 악역다운 힘이 넘칩니다.
장동휘와 김희라는 그제서야 극적으로 상봉을하고, 둘다 황야 한 가운데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감격하며 얼싸안습니다. 김희라는 장동휘를 아버지라고 불러보려고 하는데, 그 순간, 쓰러져 있던 일본군 병사 중에 조춘이 마지막으로 총을 쏘아 기구한 운명의 김희라를 죽여버립니다. 20년만에 아들을 만나서 죽다 살아서 겨우겨우 재회했는데 그 순간 아들이 죽어버리자, 장동휘는 허탈한 심정에 빠집니다. 물론 표정은 역시나 변화없는 "장동휘 표정" 그대로 입니다만, 그 허망함은 충분히 표현 됩니다.
(죽은 아들을 보는 "장동휘 표정")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아들의 시체를 말잔등에 태우고, 해가지는 황야 저편으로 장동휘가 표표히 떠나가는 것입니다. 황야 한 켠에서는 김희라와 함께 멀리 도망가기로했던 그 클럽의 가수 아가씨가 눈물도 제대로 흘리지 못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표정 연기가 좀 더 강했다면 좋겠다 싶습니다만, 당시 인기를 끌었던 홍콩 배우 이청(李菁, 리칭)과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그 모습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운치있는 선택이다 싶습니다. 서부영화스러운 분위기 답게, 이 쓸쓸한 광경의 아가씨 옆에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을 잘 모르는 꼬마 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같이 서 있어서, 그 쓸쓸한 낭만을 더 고취합니다.
(또다시 끝없이 만주를 떠도는 장동휘)
"황야의 독수리"는 초반에는 박자감각이 충분한 총싸움 장면이 좋고, 중반이후로는 박노식의 악역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배역 선정도 장동휘의 아들이 김희라라는 것은 더없이 정확한 선택이지 싶습니다. 멧집있고 뚝심있는 주먹잘쓰는 남자 배우의 계보에서 장동휘의 직계로 김희라가 이어지기도 합니다만, 두 사람다 영화 내내 줄창 똑같은 표정으로 인상만 쓰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영화 수법에 매우 잘 어울립니다. 특히나 김희라는 그 눈썹이 짙은 얼굴이 당시 반항아 고등학생을 다룬 일본 영화 속 주인공 같은 피끓는 젊은이라는 느낌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20년간 잔인한 박노식에게 비인간적으로 길들여져 마치 기계와 같은 무뚝뚝하고 지독한 군인이 되어 버린 모습도 정말 진짜처럼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살인기계, 김희라)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일단은 마지막 결전 부분의 편집 기술이 부족했다는 것과, "황야의 독수리" 주제곡을 사용하지 않는 부분의 음악이 너무 지겹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악당들이 악당짓을 하기 위해서 하는 짓이 오직 여자들에게 행패부리는 것 한가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영화들이 써먹는 것입니다만, 그런만큼 진부하고, 답답한 느낌도 없잖습니다. 한편으로 "흉악한 일본군"을 묘사하는 역겨운 수법이 너무 치닫는 나머지, 신나는 활극과 호방한 총싸움 이야기여야할 이야기가 뭔가 지나치게 어두워지고 흐름을 좀 방해할만큼 잔인해지기도 합니다.
거기에다가, "너는 내 여자다", "저는 당신의 여자가 되겠어요" 같은 닳아빠진 대사가 겹치면 이야기가 좀 더 모자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의 연기를 최대한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김희라, 유미의 모습 때문에 영화가 망하는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은 막아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주물의 간판 배우인 장동휘가 주인공으로 되어 있고, 일제시대 만주를 배경으로, 마적, 독립군 등등이 나온다는 것에다가, 국내에서 황량한 만주벌판 느낌을 내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해서 찍은 수법들하며, 제대로 맞춰져 있는 주제곡, 서부 영화의 특징적인 연출을 활용한 면모 등등, 여러가지면에서 이 영화 "황야의 독수리"는 만주물의 대표작으로 지목될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밖에...
이 영화에 나오는 어린이는 생년월일을 따져보고, 범상치 않은 연기실력을 보면, 아무래도 "얄개"시리즈로 유명한 이승현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자료가 부족해서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영화 중에 보면, 사방에 행패부리고 다니는 일본군이 또 전투를 하러 떠나는데, 흙먼지를 날리며 트럭이 떠나자, 어린아이가 괜히 트럭에다 손을 흔들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자, 일본군 병사 하나가 손을 흔들어 답해주는데, 이 영화에서는 별 쓸모없는 장면이지만 전쟁영화에서 잘 사용되었다면 기묘하게 서글픈 운치를 더하기에는 그만인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기는 해도, 아마 실제 한국전쟁 당시 어린아이들이 군인들의 트럭이나 탱크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을 기억하고 직접 끼워 넣은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임권택이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KMDB 자료를 보면, 이 영화는 이탈리아산 서부영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는 것을 아예 직접 선전한 영화입니다. 동아극장 광고에서 "액션영화 극장으로 소문난 동아가 자신있게... 내놓은... 신형액숀... 폭풍적 기세로 등장한 마카로니 웨스턴을 능가할 신형 액션 이색소재"라는 문구로 선전했다고 합니다.
marlowe님과 rumic71님이 제공해주신 정보로 알게된 이야기입니다만, 이 이야기는 1966년작 이탈리아산 서부영화, "7 Dollari sul Rosso" ("7 Dollars on the Red")에 큰 영향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서부의 총싸움을 배경으로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오해하고 싸우게 되기까지의 갈등구도가 두 영화가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줄거리, 결말, 연출 방식의 세부와 세세한 사건, 대사등등은 또 전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