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내외로무와 과학영농으로 돈 벌어 처녀장가 들고
어제날 농촌에서 조선족총각들이 장가들기 어려운 문제는 일대 사회적인 난제로 나섰었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발전과 더불어 오늘날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주변의 농촌사회를 두루 살펴보면 “농촌조선족총각들이 장가들기 어렵다”는 제기법은 이미 지나간 화제로 되였다.
지금 해외로무로 나갈수 있는 여건은 이전보다 많이 느슨해졌다.
해외에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번 조선족농촌청년들은 돌아온후 대부분이
큰 장애가 없이 장가를 들고있다.
지식의 차원과 직업의 장벽을 넘어서 장가를 아주 잘든 총각들도 적지 않다.
화룡시 투도진의 한 총각은 해원으로 나가서 수년간 근무하다가 돌아왔는데
시정부에서 사업하는 처녀한데 장가를 들었고 룡성진의 한 총각은 한국에 나가서 수년간 열심히 일하여 목돈을 쥐고 돌아왔는데 사범학원을 졸업하고 교원으로 사업하는 처녀한데 장가를 들었다.
로무를 마치고 돌아와 장가든 청년들중 대부분은 시가지로 들어갔지만
농촌총각으로서 장가를 든것만은 사실이며 조선족처녀들이 많이 해외에로.
연해도시로 진출하였기에 한족처녀들에게 장가드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농촌총각으로서 장가를 든것만은 사실이다.
최근년간 한국의 기업소들이 중국대륙으로 대거 진출함에 따라 조선족청년들은 다른 민족 청년들에 비하여 연해도시의 합자기업소에서 취직할수 있는 조건이 많이 우월하여졌다.
하기에 많은 조선족청년들이 언어우세,혈통우세를 리용하여 한국기업소들에서 활약하고있다. 합자기업소에 취직한 조선족청년들중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장가를 들었다.물론 한족처녀한데 장가든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당과 “3농”정책이 갈수록 좋아지고 농업과학기술의 발달,농업기계의 보급 등 유리한 대기후로 하여 농촌에 남아있는 총각들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장가를 들었다.
한족들이 대부분인 투도진 청룡촌의 조선족청년 채청룡은 열심히 농사도 짓고 소도 길렀으며 촌의 공청단서기사업도 출중하게 한 보람으로 본 촌에 있는 한 한족처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여 후에는 백년가약을 맺고 깨알이 쏟아지게 잘 살고있다.
숭선진 고성리촌의 태명국청년은 부대에서 돌아온후 농사를 열심히 짓는한편 촌의 치보주임,촌민위원회주임 사업도 출중하게 해 3년전에 본 촌의 한족처녀와 결혼하였다.지금 이들에게는 3살되는 귀여운 딸애까지 있다.
상술한바와 같이 지금 농촌총각들이 장가들수 있는 조건은 많이 좋아졌으며 계속 좋아지고있다.해외에로 진출하든, 합자기업소에 들어가든, 농사를 짓든지간에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장가를 들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분발향상심이 전혀 없이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 고생이 두려워 꾀를 부리거나 제한된 도급전이나 대충 다루고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하는 농촌의 총각들은 배우자찾기확률이 거의 령이다. 이들중에는 40세를 넘긴 로총각들도 푸술하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관건은 삶의 자세이고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있다. 무릇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기필코 아름다운 미래가 약속되여 있기마련이며 생활을 열애하고 노력하는 농촌총각들한테는 더욱 이쁘장한 배우자가 따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