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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굳지않는 떡’

구봉88 2010. 11. 29. 21:39

[특별기획]‘굳지않는 떡’ 개발한 농진청 한귀정 과장
떡 산업의 혁명…첨가물 없이 말랑거림 6개월 이상 연장
멥쌀에 물리적 변화 가해…파급 효과 1조 원대
상온뿐 아니라 냉동 후 해동해도 부드럽고 쫄깃

“시골에서 올라온 조카 2명을 포함해 우리 집엔 고등학생이 3명이나 됩니다. 갑작스럽게 아이들 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을 때 떡이라도 선물하고 싶지만 최소한 하루 전에는 주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신 케이크나 빵을 사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굳지 않는 떡이 상용화되면 그럴 걱정이 없겠지요?”

△한귀정 과장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에 위치한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 발효이용과장실에서 만난 한귀정 박사는 앞으로 행복한 학부모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이라도 하듯 시종 함박웃음을 잃지 않았다.

한 과장은 세계 최초로 ‘굳지 않는 떡’을 개발한 장본인으로, 그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누릴 편익과 그에 따른 쌀 소비 촉진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보고 무척 고무돼 있다.

가히 ‘산업 혁명’으로까지 평가되는 ‘굳지 않는 떡’ 개발은 국내 떡 관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뿐만 아니라 한식세계화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엔 줄잡아 1만3000~1만8000개의 방앗간이 있다합니다. 이들 방앗간에서 아침에 만든 떡이 오후 4시면 절반가격으로 뚝 떨어지고, 가래떡은 아예 딱딱하게 굳어 판매할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떡 제조여건도 매우 열악해 하루 전날 주문 받아 밤샘작업을 통해 당일 아침에 쪄서 납품하는 3교대 작업이기 때문에 대부분 가족단위로 운영되는 시스템에서는 서로 마주보고 얘기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랍니다.”

그러나 이번에 농진청에서 개발한 ‘굳지 않는 떡’ 제조기술이 현장에 적용될 경우 이러한 떡 산업 종사자의 삶의 질 문제가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물론 중소 가공업체까지 60여 곳에서 기술이전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 과장은 전한다.

일각에서 굳지 않는 떡 제조기술이 기업체에 이전되면 생계형 떡 생산업체들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데 대해 한 과장은 “떡 산업의 혁신을 통한 수요 확대로 시장규모가 커지고 쌀 소비 증대에 따른 식량안보도 가능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당일 생산, 판매하는 즉석제조식품에 해당하는 떡은 유통과정 중 곰팡이가 피거나 이물 등 위생안전성 문제가 산업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점은 하루 평균 방문자가 4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따라서 굳지 않는 떡 생산과 위생 안전성을 고려한 새로운 포장방법이 개발된다면 유통기한을 훨씬 늘릴 수 있게 됨으로써 그만큼 안정적인 수요 확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한 과장의 설명이다.

◆ 연구배경

△1주일이 지나도 떡이 굳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번 기술 개발과 관련, 한 과장이 가장 뿌듯해하는 점은 ‘멥쌀’을 주재료로 하면서 첨가물 등 화학적 처리가 아닌 순전히 물리적인 변화로 이뤄냈다는 것. 세계적으로 떡류의 노화 억제관련 연구는 지난 60여 년간 지속돼왔고 관련 특허만 해도 185건(한국 74, 미국 5, 일본 104, 유럽 2건)에 달하지만 모두 전분이나 화학처리에 관한 것이고, ‘무 첨가물’의 원천기술은 전무한 실정이어서 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24년 연구경력의 한 과장은 지난 93~97년 떡 관련 연구를 진행하다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접근방식을 달리해 물리적 변화에 의한 노화억제를 연구하던 중 11월 멥쌀도 찹쌀과 같은 과학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처음 발견했다. 찹쌀시루떡과 모찌(일본식 찹쌀떡), 한과 등은 찹쌀의 각기 다른 성질을 이용한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멥쌀의 물리적 특성연구에 들어갔다.

“고두밥을 떡메로 쳐 인절미를 만들 듯이 조상 대대로 사용해온 펀칭기법과 씨실과 날실을 이용해 베를 짜는 원리를 적용하는 등 4가지 물리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접목시킨 1200여 실험 처리구를 관찰하던 중 860번째 처리구에서 굳지 않는 정도가 기존대비 7~13%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고, 돈을 주고 제품을 구입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돼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쌀 소비 늘리고 김밥·컵떡국 등 응용분야 넓어
관련 업계 기술 이전 요청 쇄도…국내특허 출원


◆ 주요 추진성과

결국 떡류의 물성변화 지연에 따른 저장기간을 기존 1일에서 6개월 이상으로 연장시키는 원천기술을 확보한 한 과장은 ‘세계 최초 멥쌀을 이용한 첨가물프리 굳지 않는 떡 개발’에 관한 국내특허를 출원한 데이어 내년 2월엔 국제특허도 출원할 예정이다.

특허 내용은 상온 냉장 냉동 등 어떠한 유통환경에서도 최적조건을 차별화시킴으로써 상온에서 뿐 아니라 냉장상태에서도 굳지 않고, 냉동했다 해동하면 이전의 말랑거림 그대로 복원되는 힘이 강해 400%이상의 품질향상도로 더 쫄깃한 식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

실제로 국정감사 때 제시하기 위해 만든 떡이 상온에서 31일 지난 인터뷰 당일까지 굳지 않고 말랑거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파랗고 노란 곰팡이가 피어있었는데, 이는 곧 보존료나 그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더욱이 굳지 않는 떡은 치아에 달라붙거나 냉동시켰다 해동해도 손에 물이 묻지 않는 특성이 있다.

한 과장은 “이 기술을 사용할 경우 찹쌀이나 밀가루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제품을 멥쌀로 대체할 수 있으며, 특히 현미 잡곡 등 다양한 곡류를 최대 80%까지 배합 가능하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뻤다”고 말했다.

△굳지 않는 떡을 얇게 펴 김밥롤시트로 사용하면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위), 사진 아래는 다양한 응용제품들.
◆ 적용분야

“굳지 않는 떡이 본격 생산될 경우 그동안 학교급식 등에서 기호식품 범주를 벗어나 한 끼 식사로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이를테면 떡을 얇게 펴 김밥용 롤 시트를 대신할 수 있고, 보쌈용 피와 샌드 아이스크림, 쌀유대면, 컵떡국 등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한 과장은 소개했다.

현재의 무균 포장밥은 전자레인지나 끓는 물이 있어야만 취사가 가능하지만, 굳지 않는 떡을 무균 포장할 경우 별도의 취사시설 없이도 바로 먹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생산 포장은 업체의 몫이라는 것.

◆ 제조기술의 파급성

기술가치 경제성 평가 전문업체가 굳지 않는 떡 제조기술 적용에 의한 떡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측정한 결과 1조3072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멥쌀의 찹쌀 대체에 따른 경제 효과 외에도 △고차원 가공기술에 의한 부가가치 극대화 및 △떡의 이용 편이성 증진 △주요 식사애데상품 전환, △다양한 소재개발에 따른 떡 시장 확대 및 주변시장 활성화 등이 꼽힌다.
또 기술 혁신을 통한 한식세계화를 앞당기고, 무첨가로 인한 환경 친화적 안전성 제고와 녹색성장에 기여하고, 기술공정의 간소화 및 유통물류체계 개선에 따른 저탄소기술로 인정되고 있다.

◆ 인터뷰를 마치며...

한 과장은 올 2월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연구를 중단해야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청의 배려로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만드는 기법만 알았을 뿐으로, 메커니즘 규명 작업이 남았기 때문이다. 신기술이 발표되자 ‘굳지 않는 떡’은 지난 9월 네이버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올랐으며, ‘이 정도면 연락이 오지 않을까’ 속으로 기대했던 인기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손석희 ‘시선집중’에서 9월 15일 인터뷰 요청을 해 17일 방송을 탔다고 자랑한다.
김현옥 기자 : hykim996@thinkfoo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