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망 직업 변천사(1950~2010년
◆10년 후 유망 직업◆유망 직업은 시대상과 산업구조를 반영한다. 해방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한국 사회는 빠른 발전만큼 유망 직업도 빠르게 변해갔다. 매경이코노미가 지난 60년간의 유망직업 변천사를 살펴봤다. 50년대 군 장교와 타이피스트가 유망 직업
↑ 70년대 최고 인기 직업이었던 비행기 조종사와 스튜어디스. 한편 1950년 제1회 고등고시가 실시되면서 외교관, 법관, 공무원을 시험으로 뽑기 시작했다. 이때 고등고시를 통과한 공무원은 최고 결혼 상대로 꼽혔다. 서울역에서 종로를 거쳐 시내를 가로질러 왕십리까지 향하던 전차는 서울의 주된 교통수단이었던 만큼 전차운전사도 유망 직업군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68년 서울에서 전차 노선이 폐지되면서 전차운전사라는 직업도 함께 사라졌다. 60년대 섬유엔지니어와 가발기술자 인기 60년대 한국은 노동집약적 산업을 앞세워 경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섬유업에 뛰어들었다. 이 중 상당수는 미싱공, 재단사를 하며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했지만,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는 사정이 달랐다. 당시 섬유엔지니어는 기업 핵심 인재로 대접받았다. 가발 역시 대표적인 수출상품이었기 때문에 가발기능공도 기업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도로교통이 발달하면서 버스가 주된 교통수단으로 등장한 것도 새로운 모습. 이때 버스에선 안내와 요금정산을 맡는 버스안내양이란 직업이 등장했다. 1961년 버스 여차장제를 도입하면서 도시로 상경한 젊은 여성들의 주요 직업군으로 부상했다. 버스안내양은 한때 9급 공무원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며 1만5000여명에 달했다. 60년대에는 대기업 공채가 본격화됐다. 삼성, 동양, 한화, 현대 등의 기업들이 모두 50년대 창사됐고, 삼성은 57년 국내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했다. 이종구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는 "기업 공개채용이 실시되면서 대기업 사원, 은행원, 공무원 등 사무직종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68년 전차가 사라지면서 시내에 택시가 많아졌고, 제복을 입은 택시기사도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70년대 종합상사 다니면 최고의 결혼 상대 70년대 수출지향적인 중화학공업정책은 여러 유망 직업군을 양산했다.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럭키금성상사, 국제상사 등의 직장이 각광받았고 무역업 종사자는 최고의 결혼 상대로 꼽혔다. 국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무역업 종사자들은 항공기 여승무원과 함께 자유롭게 국외를 오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다. 여승무원은 69년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대한항공이 출범하면서부터 채용되기 시작해 70년대 '하늘의 꽃'이라 불리며 선망받는 직업이었다. 중동 건설특수를 타고 건설 관련 기술자(설계사, 중장비엔지니어 등)도 유망 직업으로 떠올랐다. 많은 노동자를 국외에 보내야 했기에 노동자들의 대우와 처우 문제를 담당하는 노무사도 시대 특수를 잘 탄 직업이었다. 중화학공업 위주 성장정책으로 화공·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는 산업현장의 역군으로 자리 잡았다. 트로트 가요가 대중들의 인기를 얻으면서 트로트 가수 또한 인기 직업으로 부상했다. 이때 남진, 나훈아 등의 가수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고단한 시절을 보내던 대중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존재로 부상했다. 80년대 정치 현실 어두워지면서 엔터테인먼트 업종 부각 80년대 노동집약적 산업이 자본집약형으로 발전하면서 금융산업 성장이 뒤따랐다. 당시 최고 직장으로 떠오른 곳은 은행과 증권회사. 김준성 직업평론가는 "금융권 회사들은 높은 소득을 올리면서도 안정적인 직장으로 각광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80년대 말 증권시장이 활황을 이루면서 많은 인재들이 증권회사를 선택했다. 삼성전자가 83년 이병철 회장의 '도쿄선언'으로 반도체산업에 뛰어들면서 반도체엔지니어도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반도체엔지니어들의 노력으로 92년 삼성전자는 D램반도체시장에서 점유율 기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7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한 한국의 조선산업은 80년대 세계 1위로 떠올랐다. 83년부터 현대중공업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며 세계 1위의 조선기업으로 부상했고, 이에 따라 선박엔지니어도 촉망받는 직업으로 주목됐다. 80년대는 정치적으로 어두운 시절이었다. 이는 당시 유망 직업 트렌드에서도 나타난다. 국민 관심사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정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육성했고 관련 직종이 대거 유망 직업으로 떠올랐다.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하면서 야구선수는 학생들 사이의 최고 선망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컬러텔레비전이 확산되면서 드라마프로듀서, 탤런트 등도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광고업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때 부상한 직업이 광고기획자, 카피라이터 등이다. 한편 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이 국제 무대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으며 외교관, 통역사 등의 직업도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90년대 인터넷 혁명 시작 90년대 들어 금융산업과 정보통신 분야 직업이 세분화되면서 여러 인기 직업을 만들어냈다. 금융직종의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외환딜러, 선물거래사 등은 고임금 직업으로 주목받았고 정보통신 분야에선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웹마스터, 프로그래머 등이 인기를 모았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은 IT 분야 벤처기업 설립을 촉진했고 결과적으로 성공을 꿈꾸는 벤처기업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편 90년대 초반 문화대통령라 불리던 가수 서태지의 등장으로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계층이 10~20대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가수와 연예계 관련 직종도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97년 IMF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망 직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병숙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당시 많은 기업들이 부도 위기를 겪으며 M & A전문가, 경영컨설턴트 등의 직업이 유망 직업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취업난과 조기 명예퇴직이 사회현상으로 대두되자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안정성이 직업 선택의 척도로 떠올랐다. 직업 안정성이 돋보이는 교사와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97년 한국교원대 입학경쟁률은 23.5 대 1까지 치솟아 화제가 됐다. 2000년대 삶의 질 높이는 직업이 뜬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직업의 세분화·전문화는 더욱 심화된다.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결혼 상대를 대신 찾아주는 커플매니저가 대표적인 예다.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결혼정보회사는 현재 업계 추산 1200여개에 달한다. 전문화된 직종들 가운데서도 사회복지사, 한의사, 인테리어디자이너, 생명공학연구원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직업들이 부상했다. 2006년 취업전문 월간지인 커리어매거진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5년 뒤 유망 직업으로 한의사, 생명공학연구원이 1, 2위에 올랐다. 한의사는 임금수준, 안정성, 전문성, 근무환경 등 4가지 항목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공인회계사도 인기 직종 대열에 올라섰다. 2001년 경희대 취업정보실이 대학생 6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유망한 자격증'에 공인회계사가 선정됐고, 남학생들이 꼽은 인기 직종에도 사업가에 이어 회계사가 2위를 차지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노인과 유아동에 대한 복지가 중요해지자 사회복지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편 게임에 열중해 부모 속을 썩이던 청소년 중 일부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억대 연봉을 올리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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