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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산 넘어 산, 세월호 특별법] 합의는 했지만 합심은 없었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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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경기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은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왼쪽)와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운데)가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전명선 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며 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여야 협상이 9월 30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4월 16일 참사가 발생한 지 168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관련 협상에 착수한 지 81일 만이다. 이에 따라 세월호 특별법과 국회 일정에 대한 큰 틀은 일단 마련됐다.
‘국회’에서 9월 마지막 날 본회의를 연 것을 시작으로 10월 1일부터 상임위원회 회의 등 활동을 재개했다. 10월 국정감사를 비롯한 주요 일정도 확정했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제출된 법안인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유병언법’이라 부르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 이달 말까지 처리키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여야 합의를 ‘시간에 떼밀린 아슬아슬한 타협’이라고 평가한다. 게다가 여야 추가 협상 과제가 남았고, 야당 내부의 복잡한 상황도 정국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진통 거듭한 협상 과정의 3대 흐름
당초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적 요구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안 마련이 큰 목표였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공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관련 집단 간 인식 차가 드러났다. 여기에 여야 내부의 권력 재편 흐름, 두 번의 선거 일정까지 맞물려 상황이 더 꼬였다. 진상규명을 위한 방법과 과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표출된 것이다. 협상까지 주요 일지를 크게 3기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1기는 참사 발생에서 6월 지방선거까지다. 4월 16일 참사가 발생한 후 정치권은 우왕좌왕했고 여야 의원들은 긴급 상임위 회의 등을 통해 정부를 질책했다. 폭로성 각종 의혹도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5월 8일 여야 신임 원내대표 선출로 새 흐름이 조성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신임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5월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자”며 대여 협상을 제의했다. 여당이 청와대를 보호하느라 진상규명에 소극적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화살이 여당과 ‘청와대’로 이동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감성적 대응’이 분위기를 일부분 바꾸게 된다. 5월 19일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고 눈물을 흘리며 국민에게 사과한 것이다. 대통령은 또 해양경찰(해경) 해체를 비롯한 정부조직 개편안 등의 계획을 밝히고, 여야 정치권과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핵심 내용으로 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각종 해석이 나왔지만, 여권에 대한 험악한 민심이 일부분 변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시기적으로 늦었지만 ‘대통령의 사과’는 여권 핵심 지지층에게 ‘대통령을 무조건 비난하면 안 된다’는 동정론으로 확산했다.
이런 가운데 6·4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다가왔다. ‘대통령의 눈물 마케팅’을 적극 활용한 새누리당은 완패 위기를 모면했다. ‘선거 민심’을 업고 여당을 강하게 압박하려던 새정치연합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른바 ‘범야권 지지층’도 혼란에 빠졌다. 이 흐름을 타고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세월호 가족대책위)를 중심으로 6월 7일 ‘세월호 특별법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이 열렸다. 장외 여론을 지켜보던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및 국민 안전 혁신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7월 청와대 회동+‘유민 아빠’의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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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10월 1일 경기 안산시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해 유가족들과 면담한 뒤 문을 나서고 있다. 그는 이튿날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7, 8월 상황은 여당의 바람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6월 지방선거 이후 일정 부분 국정 동력을 회복한 박 대통령은 7월 10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회동 등을 통해 ‘국회에서의 해결’을 희망했다. 7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청와대 회동 바로 그다음 날, 여야 정책위 의장과 관련 상임위 간사가 참여해 ‘세월호 사건 조사 및 보상에 관한 조속 입법 태스크포스’ 첫 회의를 열었다. 여론의 초점은 다시 국회로 모아졌다.
그런데 이즈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세월호 유가족 중 ‘유민 아빠’ 김영오 씨 등이 세월호 특별법 조속 제정을 촉구하며 14일 단식을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문화·예술계 인사 등 비정치권 시민들이 동조 단식을 진행하면서 여권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장외 활동이 국회를 압박하는 새로운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결국 두 원내대표 모두 한 걸음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해 8월 7일 양당 원내대표가 1차 특별법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것으로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여야의 1차 합의안은 유가족들에게 거부당했다. 8월 11일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조차 ‘특별법 재협상 추진’을 결정했다. 결국 재협상에 나선 여야 원내대표가 19일 2차 합의안을 내놨다. 7명으로 구성된 특별검사추천위원회 중 여당 몫 2명을 추천할 때 야당과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기로 한 내용이다.
그러나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재합의안도 공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야권 내부의 파열음이 커졌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이 단식을 시작하면서 야당 내부에서는 대여 협상 방법에 대한 이견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여야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을 새정치연합이 제안했으나 새누리당이 거부했다. 그 대신 이완구 원내대표 등이 8월 25일과 27일, 이어 9월 1일 3차례에 걸쳐 세월호 가족대책위를 만났다. 또 8월 28일 김영오 씨가 46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고 문 의원도 장외 투쟁을 접었다.
여기에 9월 22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회담이 이뤄진 후 새 물꼬가 트였다. 특히 △문 위원장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여야 원내 지도부 간 대화가 복원됐으며 △정의화 국회의장의 ‘본회의 개최 의지’ 천명 등이 결합돼 9월 내 협상 타결 가능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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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탱크미래,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들이 9월 16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병언 특별법과 특검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국회의 장기간 마비는 여야 모두에게 부담이 됐다. 혼선 끝에 9월 26일 본회의는 여당 단독 처리로 9분 만에 끝났지만, 29일 여야와 세월호 가족대책위 간 첫 3자 회동이 이뤄졌다. 그다음 날 여야는 2차 합의안을 타결했고, 본회의에서 90여 건의 안건이 처리됐다. 하지만 10월 1일 여야 지도부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새누리당 지도부 표정은 밝았지만 새정치연합 비대위원들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협상 과정에서 부침을 거듭한 박영선 원내대표는 10월 2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의 큰 틀에 대한 협상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8월 19일 2차 합의안을 유지하면서 일부 조항이 추가됐다. ‘양당 합의하에 4인의 특별검사 후보군을 특별검사후보추천위에서 제시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야 협상 타결 자체가 ‘국회의 완전한 정상화’로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특검의 수사 범위, 진상조사위원회 활동 범위, 참사 희생자 등에 대한 보상과 배상 문제에 대한 여야의 추가 협상도 남아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여야 원내지도부가 언제 다시 만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당장 박영선 원내대표 사퇴 이후를 수습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희생 당사자인 세월호 유가족이 정치권의 합의를 신뢰하면서 국회 흐름을 지켜볼지도 미지수다. 여기에 범야권 지지층의 불만 기류 등으로 ‘돌발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특집 | 산 넘어 산, 세월호 특별법] 집 나간 정치력, 속 터진 국민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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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로 국회 본회의가 2시간여 지연된 가운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가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마침내 끝났다. 하지만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국민도 유가족도 여당도 야당도 불만족스럽다. 전쟁이 끝나면 승자도 패자도 허탈감에 빠진다. 이겨도 이겼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정치권은 세월호 정국에서 3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 첫째, 책임감 부족이다. 새누리당에 묻는다. 정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믿는가. 어쩔 수 없이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지만, 실은 원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적어도 새누리당의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세월호 특별법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후반 국정 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까지 불거진 터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세월호 가족대책위)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면에는 바로 그런 생각이 있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이는 처음부터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에 뜻이 없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온갖 적폐가 드러났고 이번 기회에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척결해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지만 구호에 불과했을 뿐, 진심은 진실을 덮는 데 있었다면 책임감 있는 정당이라 부를 수 없다.
합의했어도 모두가 불만족
새정치민주연합에도 묻는다. 정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최고 민생법안이라고 믿는가. 당 명운을 걸 정도로 중요한 법률이냐는 질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국민 이름으로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여러분을 국회로 보낸 사람은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은 7·30 재·보궐선거 결과로 세월호 심판론에 대해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했다.
그 뜻을 받아 자기 책임하에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마무리해야 했지만, 여러분은 합의안이 나올 때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재가를 받는 데만 열중할 뿐이었다. 합의안이 혹시 역풍에 휘말릴 경우 그 책임을 가족대책위에 돌릴 생각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국민이 새정치연합에 분노한 이유이자 정당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다.
두 번째 문제점은 위기감 결여다. 이번에는 새정치연합에 먼저 묻는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의원직을 걸 생각인가.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 동조단식도 불사했던 강경파 의원들이 그럴 것이다. 왜. 그 모든 강경 행위도 결국 재선을 목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 국민적 위기 앞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강경론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새정치연합 의원총회 참석률은 전체 의원 과반 출석을 겨우 넘기곤 했다. 진정으로 위기를 느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경파도 온건파도 이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은 2016년 총선 공천에 영향을 미칠 차기 당권이 개인적으로는 더 큰 관심사다. 세월호 특별법도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자기 이익 그리고 자기 계파의 이익에 맞는 방향에서 대처하면 그만이다. 그 이익 앞에서는 당도 국가도 중요하지 않다.
새누리당에도 다시 묻는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모든 적폐가 사라지길 바라는가. 그렇다고 답할 의원은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계가 그럴 것이다. 친박계는 새누리당에서도 본류에 해당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정치 활동을 시작해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쳐 새누리당 내에서도 원로급에 해당하는 인물 대부분이 친박계다. 물론 친박계 중에도 신(新)박계가 없진 않은데, 신박계 일부조차 대를 이어 정치하는 경우다.
그들은 적폐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적폐 원조인 경우도 없지 않다. 시대가 바뀌어 그 적폐를 더는 관행이나 관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는 어려워졌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걸 원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덮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온 사람들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특별검사(특검)가 강도 높게 이어져도, 또는 당초 세월호 가족대책위나 야당이 주장했듯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행사했다고 해도 그들은 덮을 방법을 찾을 테고 그 방법은 꽤 유효할 것이다. 일부가 드러나 비난여론이 빗발쳐 2016년 총선이나 2017년 대통령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더라도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며 희생도 국부에 그칠 것을 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정치력 부재다. 세월호 정국이 길어진 가장 큰 이유는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정치력 부족 때문이다. 전임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대표 체제에서도 그랬고 혁신위원장을 겸임한 박영선 원내대표 체제에서도 그랬다. 무엇보다 당내 계파 갈등을 해소하는 것,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친노무현)계를 견제하는 것에 한계를 노출했다. 결국 범친노계 문희상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되고 나서야 계파 갈등이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도 문 위원장의 정치력에 힘입은 바 크다.
새누리당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세월호 사고로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진 속에서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최고의원을 김무성 대표가 이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단 친박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더욱이 김 대표 역시 범친박계에 속하기에 친박계가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울 수도 없는 처지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관련해 친박계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전권을 준 것도 내부 갈등을 피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결국 김 대표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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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힌 10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박 원내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비상대책위원 회의가 열렸다.
책임감과 위기감 결여 ‘한심’
문제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조화다. 당청관계라고도 볼 수 있는데,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 대해 과도한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것이 박·김 밀월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정치력이 최근 난조를 보이고 있다.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까닭이기는 하겠으나 청와대에 고립돼 있다 보니, 정치권 기류를 자주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차라리 정치권에 맡겨두면 될 일에 개입한 결과,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더 지연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 막바지에 정의화, 김무성, 문희상 3자의 정치력이 힘을 발휘한 점이다. 세월호 정국에서 가족대책위의 단식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고, 새누리당 단독국회도 없었으며, 단상 점거 사태도 없었다. 정치권의 책임감 부족, 위기감 결여, 정치력 부재 속에서도 거둔 성과라면 성과라 하겠다.
개헌론이 힘을 얻는 중이다. 각 당도 혁신 경쟁에 나섰다. 개헌도 혁신도 이 3가지 문제점 해결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강한 책임감, 국가적·국민적 위기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위기감, 그리고 갈등을 조기에 해소할 수 있는 정치력으로 무장한 정치인을 길러내야 한다는 의미다. 2016년 총선거가 기회다.
[특집 | 산 넘어 산, 세월호 특별법] 당장 ‘진상조사위’부터 지뢰밭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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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대한 여야 간 타결이 있은 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끌어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과연 이번 세월호 특별검사 추천권 합의안은 새누리당에 득이 될까, 아니면 독이 될까.
“오늘 합의는 세월호 특별법 합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9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이날 여야가 극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합의하고 국회에 등원하자 “추후 논의에서 유가족 뜻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대 쟁점이던 세월호 특별검사(특검) 추천권을 여야 합의로 4명의 특검 후보군을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에 추천하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여전히 남은 쟁점이 적잖은 탓이다.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와 특검이 실질적으로 활동하기까지 여야 간 치열한 수 싸움이 예상된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 연말까지 갈 수도
여야는 그동안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통해 특검 추천권을 제외하고 대략적인 틀을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적잖다. 문제는 현재 새정치연합에 이를 담당하는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세월호 특별법 태스크포스(TF) 야당 간사였던 전해철 의원은 8월 여야 1차 합의안에 항의하며 간사직을 사임했다. 그동안 전체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박영선 원내대표마저 10월 2일 사퇴하면서 새정치연합은 원내대표를 새로 선출하고 협상단을 새롭게 꾸려야 한다.
이에 따라 당장 10월 말까지 세월호 특별법을 정부조직법,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함께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적잖다. 그동안 여야가 보여온 모습을 볼 때 ‘반드시 10월 말까지 처리한다’는 의미이기보다 ‘10월 말까지 처리하도록 노력한다’가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정부조직법과 유병언법이 연계되면서 두 법안의 논의 여부에 따라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더 미뤄질 개연성도 크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정부조직법의 경우 여야 쟁점이 적잖아 합의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결국 연말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세월호 진상조사의 양대 축은 진상조사위와 특검이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진상조사위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특검을 임명해 ‘투트랙’ 진실 규명에 나선다는 복안이지만 곳곳이 지뢰밭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면 먼저 진상조사위가 꾸려진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부분은 ‘진상조사위를 구성한다’는 부분밖에 없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설치될 진상조사위는 여야 각 5명, 대법원장과 대한변호사협회(변협) 각 2명, 유가족 추천 3명 등 17명으로 구성된다. 당장 진상조사위 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유가족 추천 몫으로 3명이 주어졌지만, 유가족이 일반인 유가족과 단원고 유가족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누가 위원 3명을 추천할지도 쟁점이다.
조사권 범위를 놓고 여야가 대치할 공산도 크다. 새정치연합은 조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동행명령권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 3000만 원을 부과하는 강제조항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새누리당은 위헌 여지가 있다며 신중한 반응이다.
진상조사위에 기관과 단체에 대한 실지조사권을 부여할지를 놓고도 여야 간 충돌이 예상된다. 실지조사권은 진상조사위가 특정 기관에 찾아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새누리당은 진상조사위가 실지조사권을 남용해 청와대나 언론사 등을 찾아가 망신 주기용 공세를 펼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강력한 조사권을 부여하려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처지다.
진상조사위의 청문회 개최는 잠정 합의가 이뤄졌지만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간 팽팽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새정치연합은 ‘국회증언감정법’을 적용해 청문회 출석을 강제하자고 주장하지만 새누리당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선 “증인 채택 문제로 갈등을 빚다 청문회를 제대로 열지도 못한 채 활동을 종료한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진상조사위 활동 기간에 대해선 여야가 1년 반에서 최대 2년까지로 합의했다. 진상조사위가 11월 초 구성된다 해도 2016년 4월 치르는 20대 총선 시기와 겹칠 개연성이 크다. 정치권 한 인사는 “자칫 선거바람에 휘말려 진상조사위 활동이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와 별개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검도 가동된다. 특검 가동 시기는 빨라야 내년 하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상조사위가 어느 정도 활동해야 특검 수사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상조사위의 조사가 강제력이 떨어지는 만큼 ‘1차 진상조사(1년)→특검(90일)→2차 진상조사(6개월)→특검 연장(30일)’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2회까지 연장 가능하다.
특검 후보 추천 변협 회장이 캐스팅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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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삼성 비자금의혹 관련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 통과 당시 국회 모습. 삼성 특검은 공안통 특별검사 임명으로 두고두고 말이 나왔다.
특검 후보 선정 작업도 결코 쉽지 않은 부분이다. 9·30 합의문 첫 번째 조항에는 ‘양당 합의하에 4인의 특별검사 후보군을 특별검사후보추천위에 제시한다’고 적시돼 있다. 거꾸로 보면 여야가 4명의 특검 후보를 선정하는 데 최종 합의하지 못할 경우 특검 후보 선정이 차일피일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후보는 배제한다’는 두 번째 조항도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여야 모두에게 상대방이 제안하는 후보를 거부할 명분으로 전락해 특검 후보 선정 작업이 난항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의 수사 대상과 범위를 놓고서도 여야 간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성역 없는 수사를 주장하며 특검 수사 대상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까지 포함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새누리당은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특검 대상을 놓고 여야 간 정쟁을 벌이면 특검 수사가 방향성을 잃고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특검이 실제 활동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여야 간 합의가 필요한 가운데 정작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끝까지 대립한 쟁점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추천위에 유족이 직접 참여하는 문제였던 만큼 특검 추천위의 선정부터 초미의 관심 사안이 되고 있다.
상설 특검법상 특검 추천위의 구성은 총 7명으로 여당 몫 2명, 야당 몫 2명, 법무부 차관과 법원행정처 차장, 변협 회장으로 구성된다. 여야가 새롭게 협상을 벌여 유족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는 새로운 안이 채택되지 않는 한 이 위원들이 최종 확정한 후보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만 추천위원 중 4명을 확보하는 쪽이 실질적으로 특검을 선택한다고 볼 수 있는 것. 위원 중 다수를 확보하는 쪽이 대통령에게 올릴 후보군 2명을 모두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인물로 선택해 올리면 대통령은 싫든 좋든 그중 1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추천위 구성을 정치적 성향으로 분석해보면 언뜻 보기에 위원 7명 가운데 여당 인사가 4명(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여당 몫 2명)인 까닭에 새누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 같지만, 여야 합의의 단서 조항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여당 몫으로 된 2명을 추천하는데 ‘야당과 세월호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는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여당 몫인 2명 위원의 선정을 두고 여야와 유족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 결국 무색무취한 중립 인사가 선정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만약 여당 몫인 2명의 추천위원에 중립적인 인사가 선정되면 캐스팅보트를 쥘 사람은 엉뚱하게도 변협 회장이 된다. 여당 몫 2명을 제외하면 야당 몫 2명과 정부 측 인사 2명이 동수를 이루기 때문에 마지막 결정권이 변협 회장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위철환(56·사법연수원 18기) 변협 회장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야당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로, 7월 변협 차원에서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공식성명서를 냈다 전직 변협 회장단과 보수단체로부터 “법리에 어긋난 행동이자 정치 개입”이라며 집중포화를 맞은 바 있다.
만약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의견이 위 회장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라면 특검 후보 선정에서 유족과 야권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 된다. 대통령에게 최종 추천할 특검 후보 2명을 모두 야권 성향의 인사로 채울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문제는 과연 위 회장의 정치적 성향이 유가족의 주장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변협 집행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가 하는 점이다. 위 회장을 잘 아는 법조계 한 인사는 “변협 내부에 꾸려진 ‘세월호 참사 피해자지원 및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멤버들이 워낙 야성이 강하다. 유가족의 주장을 강하게 반영한다. 위 회장은 집행부의 공식적인 의견을 받아들여 성명서를 낸 것일 뿐이다. 위 회장이 추천위에 들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위 회장 본인밖에 모른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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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1일 개최된 특별감찰관 제도 도입 방안에 관한 공청회. 올해 7월 관련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감찰관 후보 추천이 진통을 겪으면서 파행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세월호 특별검사도 결국 이와 비슷해질 것이란 여론이 많다.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 논쟁
또한 위 회장의 임기가 내년 2월 25일 끝나는 데다 위 회장이 내년 1월 있을 변협 회장 선거에 재출마하지 않기로 이미 의사 표명을 했다는 점도 복병이다.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에는 추천위를 언제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경과 규정이 없다. 다시 말해 내년 2월 25일 이후 추천위가 꾸려질 경우 그때 변협 회장은 위 회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온 10월 초 현재 차기 변협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3명의 법조인 가운데 딱히 야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없다.
서울고등검찰청장 출신인 박영수(62·사법연수원 10기) 변호사와 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소순무(63·10기)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순수 개업 변호사 출신인 하창우(60·15기)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등 3명이 출사표를 던졌는데, 특수통 검사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거친 박 변호사는 여권에서 특검 후보로 가장 먼저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변협 한 관계자는 “위 회장은 공식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적이 없다. 상임위원회 이사회 자리에서 재선하지 않겠다고 밝힌 게 다다. 당선 가능성을 차치하고 재출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검찰 출신 법조계 원로는 “추천위가 꾸려져야 여야 정치권을 대변하는 특검 후보들이 거명될 텐데, 정작 추천위원 선정도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감찰한다고 만든 특별감찰관의 경우도 여당이 추천한 인사는 제안을 거절해버렸고 야당이 추천한 인사는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야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여당이 보이콧했다. 이번 특검 후보 추천위원의 경우는 그 부담이 감찰관 후보보다 더 심하다. 잘해봐야 본전인데 누가 추천위원을 하려 하겠나”고 반문했다.
추천위가 우여곡절 끝에 꾸려진다 해도 여야 모두 자신의 이해를 반영할 특검 후보를 추려내는 작업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인력 풀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과거 특검의 경우 공안통 검사 출신을 임명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경험이 있는 데다 지난 10년간 옷을 벗은 50, 60대 특수통 검사 출신 법조계 인사 대부분이 새누리당(옛 한나라당)과 코드가 맞지 않아 옷을 벗었거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길 거부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야권 성향이 강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솔직히 유가족 뜻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야당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해줄 이름난 특수통 검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처음부터 맹인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의 논쟁”이라고 말했다.
[특집 | 산 넘어 산, 세월호 특별법] “최종 타결안 받아들일 수 없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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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10월 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유가족이 참여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면담요청 41일째’
10월 1일 밤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 천막에는 이런 글씨가 붙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 소속 유가족과 시민들은 8월부터 이곳에 머물며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해왔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이날도 전과 다름없이 거리에서 밤을 맞았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농성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9월 30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지만, 상당수 유가족은 이를 거부하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농성이 시작된 건 7월 12일.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유가족 3자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며 국회를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이날 국회 본청 앞에서 노숙시위를 시작한 유가족들은 같은 달 14일부터 광화문광장, 그리고 8월 22일부터는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0월 1일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우리가 줄곧 요구한 건 세월호 특별법 제정 논의에 가족들을 참여하게 해달라는 것, 그래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다. 정치권이 시간만 끌다 끝내 이 바람을 거부한 것 같아 마음 아프다”고 밝혔다.
야당 안에서도 출구전략 모색
그러나 그사이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달라진 상태다. 유가족의 농성 중단을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시위가 잇따르고, 서울시는 세월호 유가족이 설치한 광화문광장 천막에 사용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국회사무처도 9월 말 국회 농성장의 유가족들에게 자진 철수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이 최근 “이제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도 돌아간 영혼들의 영면을 위해 마음을 정리할 때가 됐다. 그 절제된 아름다운 모습에 국민이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밝히는 등 야당 안에서도 ‘세월호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이가 늘어나는 모양새다.
심지어 유가족 사회도 갈라졌다. 단원고 학생 유가족이 중심이 돼 구성한 가족대책위와 별도로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이 조직한 일반인대책위는 10월 1일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 합의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한성식 일반인대책위 부위원장은 “법안의 세부 사항은 앞으로 계속 협의하면 된다. 이번 합의안을 거부하면 국민이 유가족에게 등을 돌릴 수 있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명분도 잃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족대책위는 ‘합의안 수용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10월 1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경기 안산시 세월호 사고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들을 설득했지만 이들의 뜻을 바꾸지는 못했다.
가족대책위가 밝히는 이유는 합의안대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 경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불가능해진다는 점. 특별검사(특검) 추천 단계에 유가족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가족대책위는 여야 최종협상을 앞두고 그동안 요구했던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에서 한 발 물러섰다. 그 대신 야당이 제안한 ‘특검후보 추천 때 유족 참여’ 방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종 합의문 1항은 ‘양당 합의하에 4인의 특별검사후보군을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에 제시한다’가 됐다. 3항은 ‘유족의 특별검사후보군 추천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한다’이다. 가족대책위는 이 규정이 사실상 유가족 배제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전명선 가족대책위원장은 이에 대해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재난관리 구조·구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특검이 이 문제를 수사해야 진실 규명이 가능하다. 지금 여야는 특검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를 배제한다는데 여당, 야당, 유가족 중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력이 유가족인가, 여당인가”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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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릴레이 단식 천막들(왼쪽)과 가족대책위 대표들이 9월 30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을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이번 합의는 말장난에 불과”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상설특검법에 있는 특별검사추천위원회 구성(26쪽 참조)을 보면 위원 7명 중 정부·여당 인사가 4명이다. 사실상 정부 여당에 유리한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 유가족의 참여까지 배제하면 과연 제대로 된 특검을 임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그의 말이다.
“이번 합의의 첫째 문제는 여야가 4명의 특검 후보를 선정하는 데 최종 합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거다. 이 경우 특검 후보 자체를 선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 오랜 샅바싸움을 하다 결국 각각 2명씩 후보를 정해 특검추천위원회에 올릴 공산이 크다. 이때 여당 입김이 강한 특검추천위원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최대한 균형을 맞춘다 해도 여당 추천 인사 1명, 야당 추천 인사 1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지 않겠나. 그러면 대통령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합의는 아무 내용이 없는, 유족을 놀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가족대책위는 여야 합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2+2’ 결정을 막으려면 유가족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최소한 합의문 3항(‘유족의 특별검사후보군 추천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한다’) 문구를 ‘추후 논의’가 아니라 ‘지금부터 바로 논의’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여야가 이러한 뜻을 수용하지 않으면 끝까지 싸워나갈 방침이다. 전명선 가족대책위원장은 “10년이든 20년이든 못 싸우겠느냐”고 했다. 가족대책위 한 관계자는 “KBS가 8월 30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구성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58.3%)는 의견이 ‘동의하지 않는다’(38.6%)는 의견보다 19.7%p 높게 나타났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이 발생한 후인 9월 21일 JT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응답이 42.8%로 ‘줘선 안 된다’(42.9%)와 거의 똑같이 나왔다. 상당수 국민은 아직 유가족의 뜻에 공감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란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정치권 앞에는 유가족의 동의라는 큰 관문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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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연정, 어느 정치 로맨스 01] 밀고 당기고 ‘적과의 동침’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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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경기도지사 공관에서 열린 ‘도-도의회 의장 및 대표단 상견례’ 자리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강득구 도의회 의장, 도의회 대표 대표단과 간부공무원들이 ‘민선 6기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경기도 집행부와 의회가 바람 잘 날 없었어요. 왜냐? 도의회는 야당이 다수당이니, 김문수 전 도지사가 일을 좀 하려면 예산을 다 깎아버렸죠. 그러니 여당 의원들은 단상 점거하고 야당 의원들과 몸싸움하고….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과도 무상급식 예산을 두고 매번 티격태격했으니 도민들이 얼마나 짜증났겠어요.”
9월 30일 오전 경기 수원역을 출발한 택시가 도청오거리를 지날 무렵 60대 중반의 택시기사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기자가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연정(聯政)에 대해 물을 때였다.
“연정인가 뭔가 한다고 의회에서 멱살잡이는 안 하는 거 같은데, 알 수 없죠. 언제 또 난장판이 될지. 다 같이 ‘봉선화 연정’이나 부르면 얼마나 좋아(웃음).”
택시기사는 가수 현철의 ‘봉선화 연정’의 마지막 소절을 구성지게 뽑더니 기자를 보고 씩 웃어 보였다.
이념 다른 정당이 함께 정권 구성
그동안 비생산적인 한국 정치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연구 대상’이던 연정이 시나브로 경기도에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세월호 정국, 서릿발이 내린 여야 대치정국에서도 경기발(發) 연정은 조용히 그 싹을 틔웠다.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한 남경필 지사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연정은 복수 정당이 연합해 정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좌우 대연정처럼 이념이 다른 정당이 정권을 구성하는 형태다. 남 지사는 연정을 ‘연립정부’라고 지칭하기보다 정치를 하나로 모으는 ‘정치 연합을 하겠다’는 의미로 쓴다. 구체적인 모습은 협의를 통해 만들어가자는 거다. 이걸 대한민국 인구 4분의 1이 사는 경기도에서 시작한 것이다.
경기 연정은 5월 11일 남 지사 후보가 6·4 지방선거 출마선언을 하면서 이미 시작됐다. 남 지사 후보는 이날 연정을 처음 제안했고, 당선 이후인 6월 11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연정을 다시 제안하면서 출발선을 넘었다. 돌이켜보면 연정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내에 처음 소개한 측면이 크다. 2005년 7월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한나라당에 국무총리 자리와 권력의 절반을 주겠다며 연정을 제안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단호히 거절하면서 연정은 없던 일이 됐다.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경기 연정은 야당이 받았다. 정책 합의로 연정을 시작하자던 야당의 역제안도 도지사가 받아들였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경기 연정은 삐뚤삐뚤 위태롭지만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전거처럼 달린다. 남 지사의 말이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로 당선했는데,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구호는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입니다. 정치의 갈등 구조 해소 없이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어요. 지금의 시대정신은 권력 분산이고, 연정은 권력을 분산해 힘을 합치는 협치(協治)입니다. 제가 50.4%를 얻어 당선됐는데요, 나머지 절반의 도민은 상대 후보를 찍었잖아요. 그럼 권력도 어느 정도 나눠야 리즈너블(합리적)한 거 아닌가요.”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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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경기도지사 집무실 벽에 걸린 연리지(連理枝) 나무. 남 지사는 “여야가 연정을 통해 경기도에서만이라도 하나가 돼 연리지 나무의 녹음처럼 도민들에게 행복한 경기도를 선물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만큼 경기 연정은 여야가 하나씩 주고받으면서 길을 만들고 있었다. 크게는 세 갈래다. △연정 실현을 위한 정책협의회를 만들어 20개 우선 정책을 공동 실천하기로 합의했고 △지사가 임명한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장에 대해 도의원들이 청문회를 실시하며 △야당 추천 인사가 보건, 여성, 환경 부문을 책임질 사회통합부지사(정무부지사)를 맡는 것이다.
애초 로드맵은 없었다. 야당 인사를 도정에 참여하게 한다는 원론 정도였다. 연정 협상단 관계자는 “남 지사가 6월 11일 새정치연합 측에 연정을 제안하니 새정치연합 김태년 경기도당위원장 측에서 ‘정책협의를 먼저 하자’고 역제안을 하더라”며 “정무부지사 자리를 받으려면 진정성을 확인하고 명분도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는데, 우리는 흔쾌히 받았다”고 귀띔했다.
연정을 실현하고자 여야 국회의원과 도의원, 실무진 10명이 참여한 정책협상단은 7차례 모여 머리를 맞댔다. 여야 정책 중 공통분모가 있는, 이견이 크지 않은 정책부터 실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결국 세월호 참사 이후 화두가 된 안전 문제와 교통, 주거, 일자리, 경기 북부 발전 방안, 재정, 복지 등 20개 정책을 공동 실천하기로 하고 8월 5일 정책합의문을 최종 확정했다.
새정치연합의 민생 공약인 ‘생활임금조례’와 무상급식 예산운영 규칙을 제정하기로 하는 등 야당 요구 사항이 대폭 반영됐고, 따복마을(따뜻하고 복된 마을공동체 조성 사업)과 빅파이 프로젝트(빅데이터 무료 컨설팅서비스) 등 남 지사의 공약도 포함됐다.
김문수 전 지사가 재임 마지막 날인 6월 30일 대법원에 제소한 ‘생활임금조례’ ‘6·25전쟁 민간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등 ‘4대 조례안 재의결 무효확인소송’과 집행정지신청을 취하하고 수정, 합의해 처리키로 했다. 생활임금조례는 경기도가 용역계약을 맺는 근로자들에게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조례로, 6·4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민생 공약 1호였다. 이를 야당이 다수당인 8대 도의회가 통과시키자, 김 전 지사 집행부는 권한 남용이라며 무효소송을 냈다. 6·4 지방선거 이후 구성된 9대 의회 역시 야당이 다수다. 재적 178명 중 새정치연합 78명, 새누리당 50명인 양당제 구조다.
협상 과정은 불꽃 튀는 신경전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정책합의문 15번에는 ‘집행부와 도의회가 참여하는 경기 재정 전략회의를 신설한다’고 돼 있다. 예산 심의 이전에 야당이 예산 편성에도 참여하는 길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경기 연정 예산가계부‘를 만들자고 주장해 합의문에 반영하게 했다. 야당 요구로 비정규직과 보육교사 처우 개선 등에 예산 편성이 집중될 경우, 지출 한도를 정한 ‘연정 가계부’를 통해 적절히 제어하는 견제 장치를 만든 것이다.
생활임금조례나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전환 같은, 야당 이념이 오롯이 담긴 정책을 여당 집행부가 선뜻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정책협상단으로 참여한 한 인사는 그 과정을 설명하며 혀를 내둘렀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 양당 실무자끼리 만나 의견을 교환했고, 야당 중진의원들을 찾아 설명하는 등 인내의 연속이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물론, 김 전 지사 측 인사들로부터 항의받을 때는 ‘이렇게까지 연정을 꼭 해야 하나’라는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그의 말처럼 협상 첫날부터 인내의 연속이었다. 야당 정책협상단은 회의 시작도 하기 전 “(새누리당 소속인) 김 전 지사가 제소한 조례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협상할 수 없다”며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한 야당 의원은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니들이 생활조례를 알아?” 하고는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고, 여당 의원도 “나도 연정 안 해”라고 발끈하면서 좌초 위기를 맞기도 했다. 협상단으로 참여한 새정치연합 김현삼 대표의원의 말에서 야당 인사로서의 고민이 읽힌다.
“연정은 끊임없는 협상과 인내의 연속이더라. 합의문을 만들었다 해도, 세부 개별 협상은 다시 해야 한다. 그런데 연정을 하다 보니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기더라. 연정을 통해 도민에게 상생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설렘이었다면, 척박한 정치 환경에 익숙한 도의원이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두려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생과 협력이라는 화두가 먹힐 수 있을까 며칠을 고심했다.”
‘인내의 터널’을 지나 정책 합의를 이룬 만큼 차기 도지사, 차기 도의회 원구성이 바뀌어도 합의된 정책을 번복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여야, 경기도와 도의회가 ‘이것만은 하자’고 일종의 족쇄를 채웠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수긍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춤추지 않는다’는 것은 연정의 장점이기도 하다.
‘경기발 연정’에서 또 하나의 방편은 인사청문회. 도지사가 임명하는 산하 공공기관장을 국회처럼 의회가 인사청문회를 열어 도덕성과 자질을 따져 묻도록 한 것이다. 경기도시공사, 경기개발연구원, 경기문화재단 등 경기도 내 6개 주요 기관장이 되려면 도덕성검증위원회의 도덕성 검증(1차)과 각 소관 상임위원회의 직무적합성 검증(2차)을 통과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놓으니 광역단체장이 주로 정치적 빚이 있거나 측근을 임명하던 과거와 달리 임명권자는 인선 단계부터 바빠졌다고 한다. 남 지사의 말이다.
“흔히 본 ‘흠집 내기 청문회’가 아니라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는 명실상부한 청문회를 하자고 당부했다. 그런데 의원들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지적에 오히려 내가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인사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경기도는 9월 경기도시공사 사장, 경기문화재단 대표, 경기개발연구원장,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대표 등 4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청문위원들은 후보 4명 가운데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최동규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제기하며 부적격 의견을 냈고, 남 지사는 인사청문회 보고서를 존중해 임명을 보류했다. 최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고, 경기도는 재공고를 냈다.
청문회 과정도 치열했다고 한다. 임해규 경기개발연구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그나마 업무전문성이 있는 관피아(관료+마피아)보다 군림하는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더 큰 문제”(김호겸 의원)라는 지적이 나왔고, 부천 지역 도의원인 새정치연합 나득수 의원은 임 후보자가 17, 18대 국회의원(부천원미갑)을 지낸 경력을 소개하며 “원장 임기가 3년인데 내년이면 총선을 위해 그만두는 것 아니냐. 공직에 대한 책임 의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며 맹공을 퍼부었다. ‘부천 출신 도의원이 부천 출신 국회의원을 물었다’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임 후보는 한때 “청문회 때문에 원장 못 하겠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청문회 이후에는 야당 의원의 지적을 수용해 투명한 연구원 운영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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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들이 지난 4월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경기도의회가 ‘생활임금조례’를 통과시킨 것을 환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당시 김문수 도지사는 거부권(재의)을 행사했고, 이후 이 조례는 대법원 소송으로 비화됐다가 남경필 지사 당선 이후 수정 처리하기로 했다.
사회통합부지사 놓고 격돌
권력 분산이 연정 목적이라는 점에서 사회통합부지사는 경기발 연정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다리는 이미 놓였다. 남 지사는 7월 초 새정치연합 측에 정무부지사인 사회통합부지사를 추천해달라고 했고, 도의회는 9월 16일 제290회 임시회를 열어 사회통합부지사를 포함한 조직개편안을 통과시켰다. 복지, 여성, 환경, 대외협력 부문을 담당하게 될 부지사는 경기복지재단 등 공공기관을 관장하고 기관장 인사 추천권도 쥐고 있다. 1726명에 대한 인사권과 4조4358억여 원 예산을 다루는 막강한 자리다. 경기도 올해 전체 예산(17조829억 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리는 놓였고 길도 닦였지만 ‘부지사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도의회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이미 8월 25일 강원 홍천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사회통합부지사 수용 여부를 놓고 표결한 결과 참석 의원 68명 중 찬성 25명, 반대 40명, 기권 3명으로 추천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기류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도의회 새정치연합 대표단은 9월 30일 의원총회를 열고 부지사 추천 필요성을 설명했고, 반대파 의원들도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 도의회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경기 연정의 주체는 새정치연합 경기도당이 아니라 경기도의회다. 그동안 도당이 부지사 추천 가부 결정과 추천권을 행사하려고 해 의원들의 반발이 컸다. 8월 25일 총회 연찬회 때 부지사 추천 반대표가 많았던 것은 김태년 도당위원장이 전직 국회의원을 부지사로 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젠 도의회가 주체가 돼 상황이 바뀐 만큼 부지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도의회 새정치연합은 사회통합부지사 추천을 위한 당내 의견조정기구를 구성해 10월 중순까지 최종 결론을 낼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고질적인 야당의 계파정치가 연정 걸림돌”이라며 부지사 추천을 못 하는 속내를 내비쳤다.
“도의원들은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강득구 의장 중심의 비주류파와 김현삼 대표의원 중심의 주류파, 친노(친노무현) 강경파 등의 의견이 다 다르고, 각자가 생각하는 추천 인사도 달라 합의추대는 쉽지 않다. 비주류 내부에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도 있다. 8월에 전직 국회의원이 부지사로 거명될 때 비당권파와 손학규 전 의원 계파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김태년 도당위원장 처지에선 (도의원들로부터) 세게 맞은 거다.”
‘2인3각’ 정책 합의 레이스
야당 의원 일부에선 연정으로 야당의 견제와 비판 기능 축소를 우려하지만, 정작 소수당인 여당 의원들은 ‘우리는 화병이 날 지경’이라고 반박한다. 9월 30일 기자와 만난 도의회 새누리당 이승철 대표의원은 “처음 가는 연정의 길인 만큼 양쪽 모두 불안하고 불편하다”며 운을 뗐다.
“웬만하면 참고 간다. 가다 보면 좋은 모델이 나올 테고, 그러면 중앙정치도 우리를 배우려고 올 것이다. 싸우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발은 없나.
“왜 없었겠나. 나부터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추경예산 심의에서도 경기항공전과 관사 리모델비, 빅파이 프로젝트 등 역점 사업 예산은 대부분 삭감됐다. 경기항공전은 당장 10월 9일 열리는 행사인데, 6억 원 전액을 삭감했다. 빅파이 프로젝트는 이미 정책합의문에 함께하기로 약속한 내용인데, 이걸 상임위에서 17억 원 중 12억 원을 삭감했다. 예결위는 ‘0’원으로 만들었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8대 의회 때도 후반기 대표의원을 했는데, 그때였다면 나부터 본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고 단상 점거하고, 예결위를 보이콧했을 거다. 경기도의회에서는 새누리당이 소수당이니 몸으로 저지할 수밖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당 의원들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격앙돼 예결위원 사퇴하겠다는 의원들을 말리느라 진땀 뺐다. ‘그놈의 연정’ 때문에…. 당대표지만 나도 쫓겨날 판이다. 어느 지역 신문 정치부장이 전화해 ‘대표님, 요즘은 칼날이 무뎌졌습니다’ 하더라. 어쩌겠나. 우리가 대화하자고 했으니…. 야당도 이후 ‘연정 정신’을 살려 빅파이 프로젝트 예산 5억 원을 반영해줬다.”
▼ 물리력을 안 쓰면 다른 전략은 있나.
“계속 이런 일이 생길 거다. 물론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당 대 당의 정치적 대결로는 풀기 어려울 거 같다. 당 대 당으로 부딪치지 않고 정책적으로 접근해 다수당의 이해를 끌어내겠다. 연정은 곧 정책 합의다. 연정이란 목표를 위해 첫걸음을 뗀 경기도의원으로 남고 싶다.”
이처럼 연정 정치 실험은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시도됐고, 경기도는 한국 정치의 대안을 향해 2인3각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학)는 경기 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지금 같은 다수결 원칙, 대통령 직선제에서는 첨예한 갈등 구조를 완화하기 어렵다. 선진국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이런 정치 구조로 돌파할 수 있겠나. 두려움이 있겠지만, DJP(김대중+김종필) 공동 정권 사례에서 보듯 큰 문제없을 거다. 앞으로 연정 주체끼리 나눠 먹는 부패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적으로 연정을 보완해나가면 경기발 연정은 우리 정치사에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지방정부여서 부담도 적다.”
[커버스토리 | 연정, 어느 정치 로맨스 02] 남경필 경기도지사 “정치 구조 새판 짜기 첫걸음” 강득구 경기도의회 의장 “민생, 지방자치 강화 기회”
[주간동아]
남경필 경기도지사
“권력 분산이 시대정신 정치 구조 새판 짜기 첫걸음”
남경필 경기도지사(사진)는 “지금까진 도의회 여야 지도부와 소통했다면 이제는 의원 한 분 한 분을 만나 소통할 때가 됐다”며 “연정(연합정치, 연립정부)이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도의원이 부지사를 겸임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왜왜 지금, 연정인가.
“지금 시대정신은 권력 분산이다. 선거 결과가 권력 배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치 구조가 필요하다.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의 정치 구조, 연정 시스템 안에서 사회 대통합이 가능한 연정 구조가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대통령도 권력을 의회와 행정장관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 연정은 보통 내각제하에서 국가가 위태로울 때나, 단독 과반을 넘지 못할 때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탄생하지 않나. 남 지사가 먼저 연정을 제안한 이유는 뭔가.
“정치인으로서 고민을 많이 했다. 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 정치는 회복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 정치체제는 1987년 체제 아닌가. 민주 대 반민주 구조에서 이뤄놓은 거다. 그때 만든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조직법이나 세월호 특별법에서 보듯 대통령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다. 의회도 혼자 해결 못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대선) 결과는 여야가 52% 대 48%였지만, 권력은 90 대 10 정도 된다. 여기서 반칙이 나오고 정치는 선악 대결로 치닫는다. 선거 결과가 52 대 48이면 권력도 60 대 40 정도로 나눠야 리즈너블(합리적)하다. 그동안 국회에서 독일식, 오스트리아식 정치 구조에 대해 계속 논의해왔고, 이제 경기도에서 먼저 실천하려 한다.”
▼ 왜 독일식 연정이어야 하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브라질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해 자국 선수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가까운 미국,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정치적 안정 때문이다. 자기 권한을 장관들과 나누고, 그 장관들이 책임감을 갖고 인사 및 예산 권한을 행사한다. 메르켈 총리도 6개 장관자리를 상대 정당에게 넘겨주는 대연정을 했다. 총리는 코디네이터 구실을 하면 된다. 그 때문에 메르켈 총리는 퇴근 후 남편과 장을 보고, 그 모습을 보는 국민은 안정감을 느낀다. 총리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정치 스트럭처(구조) 때문이다. 독일의 총리 평균 재임 기간은 8년이다.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노동시장과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는 등 자신의 지지 기반에 반하는 정치를 했지만 결과는 어땠나. 자신은 낙선했지만, 혜택은 국민에게 돌아갔다. 높은 경제성장을 이뤘고, 기독민주당 메르켈 총리가 나왔다. 우리도 정치 구조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여야 모두 혁신을 논하는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혁신 경쟁을 하는 것도 좋다.”
태풍의 길목에서 미래 준비
▼ 혁신 경쟁이 왜 필요한가.
“지금 우리나라는 성장잠재력이 둔화하고 이웃 중국이 부상하는데, 정치 갈등은 커지고 있다. 태풍의 길목에 선 거다. ‘도민이 나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계속 따져 물으면서 답을 얻었다.”
▼ 무슨 답을 얻었나.
“‘태풍의 길목에서 미래를 준비하라’는 답이었다. 그게 도민이 나를 뽑아준 이유라고 생각한다. 샤오미를 창업한 중국 레이쥔(雷軍) 회장은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고 했다. 언젠가는 (나도) 태풍을 탄 돼지처럼 날고 싶다.”
▼ 선거구제도 바꿔야 하나.
“개인적으론 중·대선거구제가 맞다고 본다. 그러나 개혁은 기득권 세력이 극렬히 반대하면 이루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국회의원들이 동의해야 하는 만큼 영호남 농촌은 소선거구제, 수원 같은 중대 도시는 중선거구제, 서울·부산 등 광역도시는 대선구제로 하는 게 맞다.”
▼ 일각에선 ‘연정이 잘되면 남 지사 공(功), 못 되면 협조한 야당 책임’이란 분위기도 읽힌다.
“진행 과정에서 갈등이 있고, 처음 가는 길인 만큼 비틀거리고 실수도 하지만 방향이 옳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 큰 힘이 된다. 도정에 대한 무한책임은 도지사가 진다.”
▼ 책임정치 측면에서 보면, 야당 인사를 부지사로 앉히면 국민은 다음 선거에서 헷갈릴 수 있겠다.
“글쎄, 우리나라 정당의 이념 차이는 크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김진표 후보의 정책도 나의 정책과 유사한 게 많다. 검토해보니 70%가 비슷했다. 공통분모가 있는 정책을 먼저 추진하면 다음 도지사가 누가 되든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될 테고, 그 결실은 국민에게 돌아갈 거다.”
▼ 사회통합부지사는 여전히 공석인데.
“도의원들과 얘기해보니, 국회의원이 추천하는 국회의원 부지사는 싫다고 한다. 그래서 도의원 출신 가운데 추천된다면 무난하게 될 거 같다. 최근 지역신문에서 전수조사를 했더니 조사에 응한 새정치연합 도의원 67명 중 35명(58.3%)이 여기에 찬성한 것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다.”
▼ 부지사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그런 우려도 있더라. 그런데 부지사에게 업무 권한을 대폭 주는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책과 인사 문제는 실국장과 함께 할 건데, 행정공무원들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모두 오픈돼 있어 독단적으로 할 수도 없다. 믿고 맡기고 대화하면 된다. 부지사와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
▼ 다양한 일?
“이거 말해도 되나(남 지사는 배석한 경윤호 정책보좌관을 힐끗 쳐다봤다). 경기도가 시작한 어젠다가 국가 어젠다, 글로벌 어젠다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활용이 화두인데, 프라이버시에 대해선 어느 나라도 규범을 만들지 못했다. 빅데이터 관련 규범을 논하는 국제 콘퍼런스를 만들어 글로벌 규범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식의 글로벌 어젠다 10개를 만들 거다.”
▼ 남 지사가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새누리당이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고 위헌 심판을 하겠다고 한다. 당은 협치(協治)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건가.
“그렇게 되나(웃음). 국회선진화법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근본 원인은 정치권의 시스템, 정치력 부재 아니겠나.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를 없애고자 한 시도였는데, 이를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공천 때도 자주 발생하는 게 몸싸움이다. 권력자에게 공천권이 있으니. 결국 권력을 분산하는 게 근본 해결책이다.”
강득구 경기도의회 의장
“연정의 중심은 민생 지방자치 강화할 기회”
‘경기발(發) 연정’의 한 축인 경기도의회 강득구(새정치민주연합) 의장(사진)은 “연정을 한다고 의회 본연의 기능이 약화될 일은 없다”며 “오히려 의회 견제 기능을 강화하고 지방자치를 강화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의장으로서 연정을 어떻게 보나.
“당을 뛰어넘어 도민에게 힘을 주는 좋은 사례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새누리당 소속인 도지사가) 진정성을 보이고 해서 큰 틀에서 동의한 거고. 연정을 당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했다면 동의하지 않았을 거다.”
▼ 도의회의 견제 및 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의장으로서 이런 우려를 불식할 방안은 있나.
“의회 구실이 줄어들 거라는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걱정 안 한다. 연정의 가치는 존중하되, 의회 고유 기능인 비판과 견제, 정책 대안 생산은 더 강화될 걸로 본다. 생각해보라. 정책합의문 20개 과제 중에도 어떤 과제는 조례를 제정해야 하고, 어떤 과제는 예산을 세워야 한다. 연정 과제를 진행할수록 오히려 의회 구실은 커질 수 있다. ‘남경필 집행부’도 의회와 소통하며 해답을 찾도록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함께하면서 문제점 고칠 것
▼ 인사청문회는 어땠나.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를 했다. 그동안 공공기관장은 단체장이 독자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고, 그에 따른 공공기관의 방만 운영과 부실경영을 의회가 사전에 견제하지 못했다. 인사청문회는 단체장의 인사권을 지방의회가 참여해 정책 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고, 지방자치와 지방 분권의 기초를 닦는 시발점이 될 거라고 본다. 다만 청문회 준비 기간이 짧았고,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기로 한 제도적 문제점은 짚어봐야 한다. 함께해보고, 문제점을 고쳐가는 게 연정 아니겠나.”
▼ 연정 핵심인 사회통합부지사 추천에 대해선 주류와 비주류 의원 간 의견 대립이 있는 거 같다.
“연정의 중심은 민생이고, 도정 전반에 대한 정책 어젠다가 합의되면 도의회가 이를 필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먼저다. 자리가 중요한 건 아니다. 부지사 자리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갑론을박했지만 연정 주체가 도의회와 도집행부로 규정되면서 이제는 판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의견을 내지 않는 의원들은 도당과 중앙당으로부터의 심리적 압박, 지역 국회의원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고심한 걸로 안다. 나는 의원이 아니어도 중립적인 인사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했거나 민생을 고민한 사람이라면 (부지사로) 추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파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 김현삼 대표의원은 현재 15명을 부지사 후보로 ‘스크린’했다고 한다. 의견수렴기구를 만들어 10월 중순까지 결론 내겠다고 하는데.
“무작정 공석으로 놔둘 수도 없다. 이제는 나도 10월 둘째 주부터 의원들 의견을 수렴하고, 어떤 사람이 좋을지 치열하게 고민할 거다. 의장으로서 여야 의정활동을 조율하지만, 나도 새정치민주연합 추천을 받아 의장이 된 소속 의원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사람을 먼저 정해놓고 해선 안 된다. 남 지사가 제안한 부지사 권한과 시대적 가치, 명분 등을 따져본 뒤 사람을 정해야지….”
강 의장은 김 대표의원의 부지사 추천 방식에 대해서는 마뜩잖은 반응이었다. 계파 간 의견 대립이 부지사 추천의 걸림돌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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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경기도지사(오른쪽)가 9월 15일 경기도의회 오완석 인사청문회 도덕성검증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인사청문회 결과보고서를 전달받고 있다.
[커버스토리 | 연정, 어느 정치 로맨스03] 풀뿌리 연정 ‘성공 방정식’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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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경기도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정책 합의문을 채택한 여야 협상단이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백원우 전 국회의원,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 조경호 김진표 전 의원 보좌관, 오완석·김현삼 도의원, 남경필 지사, 이승철·윤태길 도의원, 임해규 전 국회의원(현 경기개발연구원 원장).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7곳 광역 및 227곳 기초자치단체 수장과 의원들이 선출되면서 7월 1일부터 4년간 지방정부를 이끌어갈 ‘민선 6기’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닻을 올렸다. 이들 가운데 특히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행보가 세간의 관심을 끈다. 한국 정치에 친숙한 이에게는 ‘느닷없다’고까지 여겨질 수도 있는 ‘연정(聯政·연립 정부)’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연정이란 말 그대로 복수 정당이 연합해 구성한 정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이든 지방이든 단 한 차례도 실시한 적 없는 제도다. 생소하다면 생소한 이 제안이 나온 이후 경기·제주도민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많은 국민과 언론이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세 가지 이유
첫째, 양당제와 다수결 원리가 지닌 한계점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이든 지방이든 강력한 양당제가 지속되고 있다. 양당제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권위주의 시대에 집권 여당과 정부를 견제하려면 반대자들이 하나의 야당으로 집결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양당제와 다수결 원리는 소위 ‘51 대 49’ 문제를 야기한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51%의 지지를 얻어 집권한 정부와 여당이 독주하는 경우 반대 정당(후보)을 지지했던 49%에 달하는 유권자의 선호가 국정이나 도정(道政)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그것이다. 의사결정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장점에도 다수결 원리가 민주주의 관점에서 결코 이상적인 제도가 아니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연정은 합의제와 더불어 이와 같은 ‘단순 다수결 원칙(simple plurality rule)’의 한계를 해결하고자 시도되는 대표적인 대안적 제도다.
둘째,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우리나라는 7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국가 형성, 산업화, 민주화, 지구화를 차례로 이뤘다. 서구 선진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이룩한 발전을 한 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압축적으로 달성한 것이다. 이 ‘압축 발전’의 각 단계에서 다양한 갈등의 씨앗이 배태됐다.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 형성 단계에서 이념갈등, 산업화 단계에서 빈부갈등, 민주화 단계에서 권력갈등, 지구화 단계에서 산업구조 간 갈등이 배태되기 마련이다. 다만, 이러한 갈등은 단계별로 그때그때 해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압축 발전 과정에서 단계별로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다음 단계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갈등이 중층적으로 쌓였다. 지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터키 다음으로 갈등이 심한 나라다. 이로 인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약 4분의 1(연간 82조∼246조 원)에 해당하는 사회·경제적 손해를 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파란만장했던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우리나라 정당들은 ‘선명성’과 ‘단결성’을 지고의 덕성으로 여기고 강화해야만 했다. 정당 간 협의와 상호협력이 어려운 점은 1987년 민주주의 이행 이후에도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 연정과 합의제 정치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셋째, 지방 수준에서 먼저 시행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기대다. 앞에서 지적한 양당제나 사회갈등 문제들이 지금의 중앙정치 수준에서 쉽게 해소될 수 있으리라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에 의해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의회 내 정당기율과 정당 간 대결 양상은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같은 정당 소속 의원의 의회 내 투표 성향을 의미하는 ‘정당응집력’ 지수에서 비교적 낮은 나라로 알려진 미국 의회(65%)는 말할 것도 없고, 높기로 유명한 영국 의회(97%)보다 높을 것 같다. 사회 부문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을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의회가 오히려 이를 부추기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기능한다.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다수 국민이 이제 우리나라 국회도 대결 정치에서 숙의민주주의 정치로 한 단계 발전하려나 보다 하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 후 현실을 보면 실망 수준을 넘어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혐오를 더 키우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민주주의 제도를 실시한 국가의 경우 대개 지방 수준에서 먼저 다양한 아이디어가 창안되고, 그것을 지방 수준에서 실험해 성과가 입증되면 비로소 횡적 및 종적 확산을 꾀하는 순서를 밟는다. 조지아 주지사 시절 ‘영기준 예산(zero-base budgeting)’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주정부에서 시행해본 다음 연방정부 수준으로 확대 적용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상향적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안전성도 높아진다. 지방자치가 갖는 의의 가운데 하나는 지방 수준의 정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게 된다는 존 스튜어드 밀의 견해다. 중앙의 다수결 원칙에 의해 소외된 소수집단의 선호가 지방 수준에서 반영되게 한다는 ‘차별선호집중’ 원리 또한 지방자치가 갖는 의의다. 여기에 정부 개혁 ‘인큐베이터’로서의 의의가 추가돼야 한다.
도민 참여 제도화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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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9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과의 대연정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투표 결과 사회민주당 당원들의 76% 찬성으로 대연정이 받아들여졌고, 메르켈 총리는 3선 총리로 선출됐다.
이처럼 다양한 의의를 지닌 연정이지만, 이 제안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까지는 적잖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연정은 독일처럼 내각책임제 정부 형태에서 더 자연스러운 제도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집행부 수장 및 입법부 의원을 모두 직선으로 선출한다. 이처럼 이원적 정당성에 근거를 둔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연정이 성공하려면, 여야 간 ‘통 큰’ 양보와 진정성에 바탕을 둔 협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6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기도정책협의회 토론회(‘연합정치에서 상생과 협력의 길을 묻다’)에서 경기대 김택환 교수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모두에서 연정이 일상화된 독일의 경우를 소개했다. 독일정치 전문가인 그는 경기도 연정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대통합의 통 큰 정치 △여야 정치인의 진정성 △협상과 타협 △상징적이고 실력 있는 인물 등용 △도민의 적극적인 참여 제도화가 그것이다. 특히 김 교수는 지도자의 소신 있는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2005년 여당인 기민당 내부의 반발에도 야당(사민당)과 대연정을 통해 복지 확대, 원자력발전소 폐쇄 등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야당의 가치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파격적인 결단과 설득의 리더십을 예로 들었다.
경기도에서 연정이 성공하려면, 여야뿐 아니라 도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앞의 토론회에서 송경영 신부가 지적했듯이, 도민들은 연정이 성공할 수 있게 ‘견제’하고 ‘교착에 빠졌을 때 조정자 구실’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도민 자신들의 후생도 증대될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2014년 우리는 민주화 27주년, 지방의회 부활 23주년, 직선 지자체장 19주년을 맞이했다. 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뤄야 할 때다.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정치에서 ‘논제로섬 게임(nonzero-sum game)’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융합을 추구하는 시대다. 정(正)과 반(反)의 정치에서 합(合)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경기·제주도발(發) 연정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