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정보관련 모음입니다.
(GMRI Business Intelligence 2014- 559호, 2014. 10. 14.)
국내외 경제.산업동향
1.추락하는 국제유가 '날개'가 없다
2.푸틴, 서방 제재보다 유가급락이 더 무섭다
3.버팀목 중국·독일마저…‘장기 저성장 시대’ 빨간불
4.“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3.8% 안팎 될것”
5.꺼져가는 신흥국 성장엔진…글로벌 경제에 '또 다른 뇌관'
6.외국기업에 뺏기는 'MRO 시장'
7.법인세 내렸지만…대기업 稅부담 6년간 11조원 늘었다
8.中企 적합업종에 대형마트 'PB상품(대형마트 자체 브랜드)' 속속 진출
기업경영
1."벤처로 대박 터뜨리는 신데렐라 스토리 나와야"
2.유커의 힘…관광가이드·여행상품까지 바꾼다…일본어 가이드는 지금 '중국어 열공'중
3.'한국의 에디슨' 13만명 몰렸다, 1등은 누구?
4.[Money] M&A로 투자금 회수 빨라지자… 벤처 소액 투자 급부상
5.대기업 人事 칼바람 예고… 금융위기(2008년) 때 능가할 듯
6.“너무 많이 뽑았나” 年 인건비 21兆 삼성전자의 고민
7.국민 메신저의 위기…‘감청영장 불응’ 카톡의 초강수
8.말 많고 탈 많던 '세빛둥둥섬', 새 이름 '세빛섬'으로 빛본다
9.국내 최대 복합쇼핑몰 '롯데월드몰' 14일 개장…축구장 47개 크기에 1000여개 브랜드 입점
10."스마트 워치는 세이코에 기회…삼성·애플과 경쟁 두렵지 않다"
11.고강도 개혁 현대重, 기대 반 우려 반
12.창조적 모방의 신화 이룬 ‘중국판 잡스’
13.神의 영역에 도전하는 GM(유전자재조합)기술의 끝은?
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1.노벨경제학상 장 티롤 "산업조직론 최고 대가"
2.노벨경제학상을 놓친 수재들...자본주의 흐름을 거스른 죄?
3.[창간 50주년 특별 인터뷰] "누구든지 기업가 될 수 있도록 창업 활성화시켜야"
4.中, 러시아제 첨단무기로 무장…군사력 확충 잰걸음
5.지금은 ‘3차혁명’ 중…수백만 개인 주도의 공유사회로
6.최태원 SK그룹 회장 ‘사회적기업’ 책 출간......“사회적기업 한계 인센티브로 해결”
7.침묵하는 다수 무시하는 ‘강경파의 나라’
8.강경파 의견이 당론으로 뻥튀기 … 다수결 왜곡하는 의총
9.朴정부 人事시계, 멈췄거나… 거꾸로 돌거나
국내외 경제.산업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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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성장 둔화로 소비 먹구름…이라크 유전시설 타격은 미미
국제유가가 날개없이 추락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주말보다 8센트(0.1%) 내린 배럴당 85.74달러에 마감했다. 2012년 12월 이후 22개월만에 최저가다.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브렌트유는 1.32달러(1.5%) 떨어진 배럴당 88.89달러로 마감, 3년 10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국제유가 급락 배경은 ▷원유공급 과잉 ▷세계 경제 둔화 우려 ▷지정학적 리스크 제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가격 전쟁 ▷달러 강세 등이 꼽힌다.
▶‘검은 황금’ 쏟아지는데=국제유가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은 공급과잉이다. OPEC의 생산량은 하루 3100만배럴로, 적정수준보다 200만배럴 가량 많다. OPEC은 9월이 비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전월대비 증가시켰다.
세계 원유 공급에 불을 지르는 것은 셰일혁명을 등에 업은 미국이다. 미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2012년 615만3000배럴에서 올해 797만7000배럴로 늘었다. 올 연말까지 90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이 2017년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석유 생산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밖에 리비아가 내전 이전 수준으로 생산량을 회복했고 러시아의 원유 생산은 옛소련 붕괴 이후 최고 수준이다.
▶세계경제는 먹구름=원유 공급은 넘쳐나는데 이를 소비할 세계 경제는 중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둔화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새로운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다음 주 발표될 예정인 중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8%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분기 GDP 성장률 7.5%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유럽은 러시아와 갈등이 깊어지면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는 견조하게 회복되고 있지만 연비 효율 개선 등으로 석유제품 소비는 임계점에 봉착했다.
▶‘검은 눈물’ 리스크는 기우=이라크와 시리아 사태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경계감은 희미해지고 있다. 이라크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전투를 계속하고 있지만 이라크 남부 유전 시설 타격은 없었다. 시리아의 원유생산은 크지 않아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관측에 따른 달러강세는 유가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유가는 달러 베이스로 거래가격이 책정되기 때문에 달러가치가 오르면 유가는 떨어진다. 일본 석유천연가스ㆍ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의 노가미 타카유키 분석가는 “미국 경제 개선 기조 속에 금리인상 관측이 강해지고 있다”며 “외환시장에서의 달러 강세가 유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OPEC發 가격전쟁=사정이 이런대도 세계 최대 원유 카르텔 OPEC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맏형 격인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유럽에 이어 11월 아시아 원유 판매가격도 낮췄다. 이란 역시 아시아 대상 원유가격을 2008년 이래 최저치로 하향조정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란이 재정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출가격을 배럴당 140달러를 유지해야 하지만 대폭 할인했다고 지적했다.
모간 스탠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가 원유 가격 하락을 견딜수 있는 반면, 다른 소규모 산유국은 재정부담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유가 하한선은?=국제 유가의 전망은 암울하다. 배럴당 8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3일(현지시간) “OPEC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원유 공급을 지속한다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쿠웨이트 석유부 장관 알리 알 오마이르는 “유가가 배럴당 77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며 “이는 러시아와 미국산 원유의 경제적 생존 능력을 압박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파티 비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원유의 손익분기점은 80달러선”이라고 지적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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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달러 규모의 러시아 경제에서 원유ㆍ천연가스 판매 수입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또 유가 하락으로 원유 수입이 줄면 대외 신인도가 약해져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어려워진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원유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국제 유가가 6월 이래 23% 넘게 곤두박질치면서 러시아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분석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서방의 대러제재보다 유가 하락이 러시아 경제에 더 큰 하방압력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여가던 지난 여름 내내 가치 하락을 비교적 잘 방어해온 루블화가 최근 들어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10일 동안 60억달러를 풀며 적극 개입에 나섰지만, 13일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40.50루블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치를 새롭게 갈아치웠다.
모스크바 소재 컨설팅업체 매크로어드바이저리의 크리스 웨퍼는 모스크바타임스에 “루블화는 ‘석유 통화’(petro-currency)”라며 “실제로 8월 초 이래 원유 가격이 8% 떨어지자 달러-유로 바스킷에 대한 루블화 가치가 9%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유가 하락으로 내년 세입예산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 정부가 거둬들이는 국세수입의 45%가 원유에서 나올 정도로 비중이 커서다.
때문에 타치야나 네스테렌코 러시아 재무부 제1차관은 유가와 환율이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세입 결손 발생이 불가피하다고 13일 밝혔다.
러시아가 내년 예산을 편성할 때 기초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다. 브렌트유 가격이 이날 배럴당 88.89달러 수준으로 떨어진 것과 비교해보면 큰 폭의 차이가 난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 가격 변동에 대비해 조성한 예비금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네스테렌코 제1차관은 세입 결손금을 충당하기 위해 향후 3년 간 에너지 예비금 740억달러의 절반 정도를 써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가가 지금처럼 약세를 지속하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흘러나온다.
찰스 로버트슨 르네상스캐피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배럴당 92~93달러에 도달해야만 러시아 경제 성장에 긍정적 전망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유가가 90달러에 그치면 내년 러시아 경제 성장률은 0.4% 포인트 위축되고, 80달러까지 떨어지면 1.7% 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승연 기자/sparkli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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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등 신흥국 원자재 수요 줄어
7월 경제성장률 4.3%로 0.2%p↓
“미 양적완화 끝나 신흥국 타격 우려”
유로존 침체 위기에 선진국도 암울
저성장에 국제유가 넉달새 19%↓
전세계가 ‘장기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암울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 국가들)은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신흥국 경제 성장 전망도 어둡다. 세계적 경기 침체로 원자재 수요가 줄면서 유가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2일(현지시각) 신흥국 경제가 새로운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영국 시장조사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자료를 인용해, 주요 신흥국 19개국의 8월 산업생산과 2분기 소비 지출이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9년 이후 최악의 수준이라고 전했다. 신흥국 중에서 가장 심각한 곳은 동유럽이다. 동유럽은 독일 업체들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많은데, 그동안 유럽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온 독일의 산업생산 지수가 8월 104.5로 전달에 견줘 4% 감소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중남미도 중국의 성장률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감소한 데다, 역내 소비자들의 지출도 감소해 8월 산업생산이 침체됐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8월 산업생산 지수는 5% 높아져, 신흥국 전체 평균 성장률인 2%를 초과했다. 하지만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중국 경기 둔화의 여파로 아시아 신흥국들의 성장 동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통계를 보면, 신흥국 전체의 7월 경제 성장률은 4.3%로 전달에 견줘 0.2%포인트 하락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나우캐스팅 이코노믹스’는 신흥국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브라질의 올해 성장률은 0.3%로 지난해 2.5%에 견줘 격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 경제에서 가장 활력 넘치던 곳(신흥국)에서 이제는 저성장이 고정적인 현상이 됐다”고 짚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신흥국 담당 분석가인 닐 쉐어링은 “이건 ‘뉴 노멀’(금융위기 이 저성장·저소비가 굳어진 현상)”이라며 “2010년대 내내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은행 ‘유비에스’(UBS)의 수석 고문인 조지 매그너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이 2011년 이후 신흥국 성장률을 여섯 차례나 하향 조정한 점을 들며 “2006~2012년 사이에 나타난 신흥국의 예외적 성장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사무총장도 지난주 연차 회의에서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로 신흥국들의 타격이 우려된다며 “브라질과 러시아 같은 나라들에서의 경기침체는 명백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달 말께 양적완화를 종료할 시점이 다가오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 상승이 계속되고 신흥국에서의 자금 이탈이 벌어지고 있다.
선진국들의 사정도 먹구름 속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유로존이 내년에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이 40%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유럽연합은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산유동화증권(ABS) 매입 계획 등을 밝혔으나 충분치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 때문에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주 국제통화기금 연차 회의에서 “유럽중앙은행은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추가 부양책도 쓸 계획이 있음을 내비쳤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유럽중앙은행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국채를 직접 매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 경제 또한 국제통화기금이 이달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가 7월에 비해 0.7%포인트 낮아지는 등 전망이 어둡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미국도 무역 상대국들의 경제 악화와 달러 강세 현상으로 수출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분석했다.
세계적 저성장과 수요 부족 현상은 국제 유가의 하락에도 반영돼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의 원유 선물 가격은 13일 배럴당 84달러대로 6월19일의 103.85달러에서 넉달 만에 약 19% 가량 하락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10일 브렌트유 가격이 2010년 12월 이후 최하인 배럴당 88달러까지 떨어졌다며 “유가가 계속 낮게 유지된다면 일반 원유보다 생산 단가가 비싼 셰일 원유 개발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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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3.8% 안팎 될것”
해외에서 예측하는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3.8%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치(4.0%)보다 낮다.
1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27개 해외 경제예측기관이 내놓은 한국의 내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는 평균 3.8%다. 한국 경제를 가장 어둡게 본 곳은 캐나다 3위 은행인 노바스코샤은행과 독일 데카방크로 각각 3.2%의 성장률을 예상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IHS와 프랑스계 투자은행 BNP파리바는 3.3%를 제시했다. 다이와캐피털마켓(3.4%), ING그룹(3.5%), 스탠더드차타드(3.6%), 무디스(3.6%)의 전망치는 3% 중반대였다.
HSBC(3.7%), 크레디트스위스(3.7%), 골드만삭스(3.8%), 도이치방크(3.8%),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3.9%) 등은 내년 성장률을 3% 후반대로 전망했다.
소시에테제네랄(4.0%), 씨티그룹(4.0%), 노무라(4.0%), 바클레이즈(4.0%) 등 7곳은 정부와 같은 전망치를 내놨다. 4.0%를 넘어서는 전망을 한 기관은 모건스탠리(4.1%), 스코틀랜드왕립은행(4.1%), 비즈니스모니터(4.1%) 세 곳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7월 ‘41조원+α’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제시했다. 이어 최 부총리는 지난달 16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정책 효과 가시화와 세계경제 회복을 전제로 한국 경제가 4.0% 성장 경로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에서는 확장적 재정정책, 구조개혁 등으로 내년 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강한 의지에도 일부 해외 기관들이 낮은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유럽, 중국 등 한국을 둘러싼 대외 경제환경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가 부진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지난 7일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3.8%로 내렸다. 이 기관은 “세계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예상보다 취약한데다 하방위험이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해외ㆍ국내 경제예측기관 모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이 3.6%다. 한은도 오는 15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8%에서 3.5~3.7%로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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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시장 침체·美 금리인상 우려로 자금유출
신흥국 8월 성장률, 5년 만에 최저치 추락 예상
[ 김순신 기자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톡톡히 했던 신흥국 성장세가 급격히 꺾이고 있다. 원자재 시장 불황이 계속돼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국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투자자금이 빠져나가 신흥국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흥국의 저성장 기조는 유럽 등을 중심으로 다시 경기침체 조짐이 나타나는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풀 꺾인 신흥국 경제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 경제분석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가 중국 브라질 등 19개 주요 신흥국 경제 지표를 분석한 결과 신흥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신흥국의 지난 8월 산업생산량과 2분기(4~6월) 소비 지출은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7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4.3%로 6월의 4.5%에 비해 0.2%포인트 둔화됐다. 닐 시어링 캐피털이코노믹스 신흥시장팀장은 “역동적인 성장으로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던 신흥시장에서 저성장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8월 신흥국 성장률은 2009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신흥국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IMF는 지난주 보고서에서 “신흥국은 내수 부진과 인프라 부족 등 취약한 경제 구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신흥국은 금융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연 7%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앞으로는 5%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역시 “브라질과 러시아 같은 나라엔 경기 둔화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수요 둔화
전문가들은 신흥국 경제 성장 부진이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기회복세가 주춤한 상황에서 원자재 시장 침체,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으로 인한 자금 유출 우려가 맞물려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나우캐스팅이코노믹스는 중국의 3분기(7~9월) GDP 증가율을 6.8%로 예상했다. 이는 2분기 GDP 증가율 7.5%보다 크게 떨어진 것이다. 세계은행도 지난 6일 중국의 올해 증가율 전망치를 7.4%로 종전보다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대규모 경기 부양에는 나서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마쥔 중국 인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가까운 미래에 대규모 경제 부양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남미 신흥국은 직격탄을 맞았다.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수입이 줄면서 원자재 시장은 5년 만에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20개 주요 원자재를 모아 놓은 블룸버그 원자재지수는 3일 5년 만에 저점인 118.01로 하락했다. FT는 올해 브라질의 GDP 증가율이 지난해 2.5%에서 급락한 0.3%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IMF는 2011년 하반기 이후 지금까지 신흥시장 성장률 전망치를 여섯 차례 하향 조정했다. 조지 매그너스 UBS 수석 고문은 “신흥시장이 2006~2012년 기록했던 이례적인 고속 성장 시대는 끝났다”고 평가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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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조명 역차별도 재고를
[ 이태명/김우섭 기자 ]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가 국내 대기업의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 사업 확장을 제한한 이후 해외 대기업 MRO들이 국내 시장에 속속 진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규제 정책이 해외 대기업에 ‘안방’을 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독일 뷔르트는 올해 상반기 국내 중소기업 한국화스너를 인수해 국내 MRO 시장에 진출했다. 뷔르트는 작년 매출이 12조원에 달하는 독일 최대 MRO 기업이다. 뷔르트는 한국화스너를 거점 삼아 볼트 너트 등 국내 산업용 기자재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미스미그룹도 올해 1월 한국법인(한국미스미)을 만들어 공구 기자재 등 MRO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작년엔 세계 최대 MRO 기업인 미국 그레인저의 일본 자회사 모노타로가 한국시장에 진출했다. 모노타로는 작년 4월 한국법인(나비엠알오)을 세운 지 1년6개월 만에 3만여개 국내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해외 MRO기업 3년 뒤 시장장악 불 보듯
동반위, 사업제한 연장 여부 내달 확정
해외 MRO(소모성자재 구매대행) 대기업이 잇따라 국내시장에 진출하는 건 ‘규제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011년 11월 대기업 MRO 계열사가 일정 규모 미만의 기업을 신규 고객사로 확보하는 것을 향후 3년간 엄격히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규제에 따라 대기업 MRO는 계열사나 연매출 1500억원 이상 중견기업만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사실상 국내 영업에 제한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2011년 MRO계열사인 아이마켓코리아를 인터파크에 매각했다. SK그룹은 ‘행복나래’라는 MRO계열사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으며 비슷한 시기 한화그룹도 MRO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서브원(LG 계열), 엔투비(포스코 계열), KeP(코오롱 계열) 등 나머지 대기업 MRO 회사들은 국내 영업 제한 규제 이후 해외시장에 주력하거나 기존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정책팀장은 “해외 대기업들이 국내 MRO 시장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2~3년 뒤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며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동반성장 규제가 불러온 역효과”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동반성장위는 다음달 대기업과 중소기업계 의견을 수렴해 ‘MRO 사업제한 가이드라인’을 3년 더 연장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기업들은 ‘연매출 1500억원 이상 기업’만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중소 MRO업계는 ‘대기업 MRO는 연매출 5000억원 이상 기업만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MRO뿐만 아니라 LED(발광다이오드)조명 등 규제의 역효과가 발생하는 업종에 대해선 동반성장 정책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규제 시행 이후 빚어지는 ‘국내 기업 역차별’ ‘해외 기업의 점유율 확대’ 등을 정밀 분석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LED조명 시장의 경우 동반성장위가 2011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필립스 등 해외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5.5%포인트 올랐다. 중소기업적합업종은 아니지만 급식 업종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타나고 있다. 2012년 정부는 중소 급식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공공기관 급식사업(구내식당 운영)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했는데, 이 규제로 공공기관 급식은 미국 아라코 등 외국계 기업과 중견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이태명/김우섭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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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한세율 올리고 비과세·감면 혜택 줄인 탓
中企는 12조원 감소
[ 조진형 기자 ]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최고세율 25%→22%)에도 대기업의 세 부담은 지난 6년간 세법 개정으로 11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가 2008년 법인세율 인하로 세 부담을 크게 줄여줬지만 그 뒤로 대기업들에 대한 비과세·감면 혜택을 꾸준히 축소한 데 따른 것이다. 특정 공익사업의 사업자나 수혜자에게 부과하는 부담금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부터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까지 단행된 여섯 차례 세법개정으로 총 25조4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기재부 세제실이 해당 기간의 연도별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 증감효과(개정연도부터 5년간 누적)를 합산한 수치다. 총 세수는 2008년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인하한 세법개정으로 5년간 88조7000억원 급감할 것으로 예상돼 왔으나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사실상의 증세가 이뤄지면서 25조4000억원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은 이명박 정부 첫해 23조7000억원의 감세 효과를 누렸다가 2009년부터 세 부담이 늘어 법인세 인하에도 10조9000억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최저한세율을 2012년 14%에서 16%로, 2013년 16%에서 17%로 두 차례 인상한 데다 대기업에 대한 고용창출투자세액 공제 등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였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이 축소된 데 이어 2012년, 2013년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도 추가적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중소기업의 세 부담은 같은 기간 총 11조9000억원 줄었다. 대기업과 달리 비과세·감면 혜택이 크게 축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소득세 부분에도 중산·서민층의 세 부담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세법개정이 이뤄졌다고 강조한다. 상용근로자 평균 연봉의 150%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의 세 부담은 2008년 세율 조정으로 28조3000억원 줄었지만 이후 단계적인 증세 정책으로 결과적으로 5년간 4조2000억원 부담이 늘었다. 이 기간 세율 38%인 최고 세율 구간이 신설됐고, 해당 과표구간이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서민·중산층의 경우 지난해 세법개정에 따른 근로장려세제(EITC)와 자녀장려세제(CTC) 등까지 가세하면서 5년간 감세 규모가 30조6000억원에 달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각에서 서민 증세, 부자 감세 오해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지난 6년간 세법은 서민 감세, 부자 증세 기조로 개정됐다”고 강조했다.
세종=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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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어묵·김치·순대 등 유통 대기업은 제한 없어
대형마트 "유통단계 줄인 것… 직접 제조 안하니 문제 안돼"
중소업계 "저가 납품 요구… 공장 돌려도 남는 것 없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에 있는 이마트의 장(醬)류 판매코너. 총 7단의 진열대 중 주부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른바 '골든존'으로 통하는 3단과 4단에는 '이마트' 브랜드를 단 고추장·된장·쌈장이 진열돼 있었다. 다른 자리보다 매출이 3~4배 높은 것으로 알려진 진열대 양쪽 끝(엔드캡) 자리도 모두 이마트 제품 차지였다.
이마트는 중견 식품업체인 S사가 만들어 공급하는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고추장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경쟁업체 제품은 물론 S사의 자체 브랜드 제품보다 30% 이상 저렴했다. 롯데마트·홈플러스도 중견업체로부터 고추장 등을 공급받아 PB 제품으로 팔고 있다. 주부 조모(29)씨는 "용량·원재료·생산공장이 거의 똑같은데도 가격은 PB 제품이 수천원 이상 저렴해 기왕이면 싼 걸 찾는다"고 말했다.
고추장·된장·간장 등 장류는 동반성장위원회가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권고한 품목이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해당 제품을 제조하는 대기업의 신규 참여나 사업 확장 등이 제한된다. 이후 CJ제일제당·대상 등 대기업과 샘표 등 중견기업은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는 등 사업 확장을 자제했다. 아워홈은 아예 청국장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제조 대기업들과 달리 유통 대기업들은 중소업체에서 저가(低價)에 제품을 공급받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해 각종 PB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이마트와 롯데마트·홈플러스 등에는 순대·세탁비누·어묵·김치·원두커피 등 중기(中企)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상당수 품목이 PB 제품으로 나와 있다.
대형마트 측은 PB 상품이 소비자에겐 질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품질이 괜찮지만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업계 3~4위 수준의 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유통 단계를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업종 침해 논란에 대해서도 "직접 생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고 동반위 권고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중소업체들의 성장에 PB 제품이 도움이 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형마트가 요구하는 품질·위생기준에 맞추면서 납품업체는 경쟁력이 높아지고, 판로(販路)가 넓어지는 효과도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상당수 중소 식품업체는 대형마트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식품업계 협동조합 관계자는 "값이 싼 PB 제품이 소비자에게 일시적으로 혜택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정된 매대(賣臺)에서 중소업체 제품이 밀려나면 결국 소비자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이 중소업계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고, 대기업이 이를 악용(惡用)한다는 주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거의 원가 수준으로 납품을 요구하기 때문에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지만 남는 것은 없고, 독자 브랜드도 키우지 못한 채 결국 대기업에 종속되고 만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이 문제에 대해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동반성장실장은 "중기 적합업종을 비롯해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의 애로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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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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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 KOTRA가 13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 회관에서 연 '제7회 기업가정신주간 국제컨퍼런스'에서 데틀레프 쥘케 독일 스마트팩토리 집행위원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기업가 정신 국제컨퍼런스
모바일기기로 공장 제어하는
스마트팩토리는 '제4 산업혁명'
[ 강현우 기자 ]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 KOTRA 공동 주최로 13일 개막한 제7회 기업가정신주간의 메인 행사인 국제컨퍼런스에선 기업가 정신 회복을 통해 한국 경제를 도약시키기 위한 다양한 해법이 제시됐다.
기조강연자로 나선 손동원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는 “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제대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벤처기업가나 투자자가 수백억원대 인수합병(M&A)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나와야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벤처기업이 3만개가 넘고 1인당 특허 출원 건수는 0.41건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M&A 규모는 5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0.043%에 그쳐 미국(400억달러·GDP 대비 0.25%)이나 중국(200억달러·GDP 대비 0.27%)에 크게 뒤진다.
손 교수는 “구글이 최근 서울에 창업캠퍼스를 낸 것은 국내 벤처의 기술과 잠재력을 높게 봤기 때문”이라며 “자금력 있는 국내 대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적정 가격에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미래산업연구실장은 경기 회복을 위해선 제조업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제안했다. 백 실장은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제조업 강국이 앞다퉈 법인세를 내리고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는 건 제조업 기반이 튼튼해야 서비스업 등 다른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35%였던 제조업 법인세율을 지난해 25%로 내렸고 독일도 법인세율을 38%에서 29%로 낮췄다. 백 실장은 “한국의 법인세율은 22%로 낮은 편이지만 이제는 장점이 사라졌다”며 “정부가 더 적극적인 지원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제조업을 육성하는 체계적인 비전이나 지원책이 미흡하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시한다며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혼란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의 제조업 혁신 기구인 스마트팩토리의 데틀레프 쥘케 집행위원장(카이저슬라우테른공대 교수)은 정부와 기업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팩토리 정책을 소개했다. 스마트팩토리는 생산설비에 인터넷을 연결해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로 공장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쥘케 집행위원장은 “스마트팩토리는 증기기관이나 컨베이어벨트처럼 산업 구조를 바꾸는 ‘제4의 산업혁명’이 될 것”이라며 “독일 정부는 기업이 함께 혁신하고 결실을 나눌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부터 위기 극복의 해법을 기업가 정신에서 찾기 위해 기업가정신주간을 개최하고 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가 기업가정신에서 경기 침체의 해법을 찾고 있다”며 “한국도 경제 대도약을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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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 KOTRA가 13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 회관에서 연 '제7회 기업가정신주간 국제컨퍼런스'에서 데틀레프 쥘케 독일 스마트팩토리 집행위원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
기업가 정신 국제컨퍼런스
모바일기기로 공장 제어하는
스마트팩토리는 '제4 산업혁명'
[ 강현우 기자 ]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 KOTRA 공동 주최로 13일 개막한 제7회 기업가정신주간의 메인 행사인 국제컨퍼런스에선 기업가 정신 회복을 통해 한국 경제를 도약시키기 위한 다양한 해법이 제시됐다.
기조강연자로 나선 손동원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는 “벤처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제대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벤처기업가나 투자자가 수백억원대 인수합병(M&A)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나와야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벤처기업이 3만개가 넘고 1인당 특허 출원 건수는 0.41건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M&A 규모는 5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0.043%에 그쳐 미국(400억달러·GDP 대비 0.25%)이나 중국(200억달러·GDP 대비 0.27%)에 크게 뒤진다.
손 교수는 “구글이 최근 서울에 창업캠퍼스를 낸 것은 국내 벤처의 기술과 잠재력을 높게 봤기 때문”이라며 “자금력 있는 국내 대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적정 가격에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미래산업연구실장은 경기 회복을 위해선 제조업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제안했다. 백 실장은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제조업 강국이 앞다퉈 법인세를 내리고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는 건 제조업 기반이 튼튼해야 서비스업 등 다른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35%였던 제조업 법인세율을 지난해 25%로 내렸고 독일도 법인세율을 38%에서 29%로 낮췄다. 백 실장은 “한국의 법인세율은 22%로 낮은 편이지만 이제는 장점이 사라졌다”며 “정부가 더 적극적인 지원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제조업을 육성하는 체계적인 비전이나 지원책이 미흡하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시한다며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혼란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의 제조업 혁신 기구인 스마트팩토리의 데틀레프 쥘케 집행위원장(카이저슬라우테른공대 교수)은 정부와 기업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팩토리 정책을 소개했다. 스마트팩토리는 생산설비에 인터넷을 연결해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로 공장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쥘케 집행위원장은 “스마트팩토리는 증기기관이나 컨베이어벨트처럼 산업 구조를 바꾸는 ‘제4의 산업혁명’이 될 것”이라며 “독일 정부는 기업이 함께 혁신하고 결실을 나눌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부터 위기 극복의 해법을 기업가 정신에서 찾기 위해 기업가정신주간을 개최하고 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가 기업가정신에서 경기 침체의 해법을 찾고 있다”며 “한국도 경제 대도약을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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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바꾸는 통역가이드
일본 관광객 급격히 줄자 중국어 자격 도전 부쩍 늘어
자유롭게 다니며 쇼핑 '선호'…'세미패키지' 상품 속속 출시
[ 김명상 기자 ] 12년 동안 일본어 관광통역안내사(투어 가이드)로 일해온 박진하 씨(50·가명)는 올해 초 2년이 넘는 준비 끝에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땄다. 2012년 이후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수입이 줄어들자 고심 끝에 방향을 바꾼 것. 제주도에서 일하고 있는 박씨는 “요즘 일본인 관광객은 한 달에 한두 팀 받기도 어렵지만 중국인 손님은 7~8팀씩 맡고 있다”고 말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급증하면서 박씨처럼 중국어로 전공을 바꾸는 일본어 가이드가 늘어나고 있다. 쇼핑을 즐기는 유커들의 요구로 패키지 여행상품 일정에 1~2일의 자유 일정을 포함한 세미패키지도 급증하는 추세다.
◆중국인 관광객 올해 600만명 예상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52.5% 증가한 432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35.5%를 차지했다. 반면 일본인 관광객은 274만명으로 21.9% 감소했다.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올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방한한 중국인 관광객은 411만명. 같은 기간 일본인 관광객(154만명)의 세 배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중국어 가이드로 진로를 바꾸려는 일본어 가이드가 10명 중 7~8명에 이른다고 박씨는 전했다. 유커가 급증하는데도 현재 중국어 가이드는 400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전문 여행사는 중국어 가이드를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행사들이 새로운 기회를 위해 중국어로 전공을 바꾼 가이드를 주목하는 이유다.
장유재 모두투어인터내셔널 대표는 “회사에 소속된 일본어 가이드 중 5명이 중국어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해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어 가이드 자격증을 딴 김인혜 씨(39·가명)는 “일본어 가이드의 경우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상 부가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유커 중에는 씀씀이가 큰 사람들이 많아 의외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유커 쇼핑 요구에 세미패키지 급증
급증하는 유커가 바꿔놓은 또 하나의 현상은 패키지와 개별 자유여행이 결합된 세미패키지 상품의 급증이다.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유커들의 요구를 반영한 또 하나의 트렌드다. 하나투어ITC의 경우 유커 대상 패키지 여행 상품 중 30%가 자유일정을 1~2일 포함한 세미패키지다. 모두투어인터내셜은 세미패키지가 20%를 넘는다.
추신강 중화동남아여행협회장은 “5박6일 이상 서울 관광상품의 경우 1~2박 정도를 가이드 없는 완전 자유일정으로 넣는 세미패키지 상품 판매가 작년보다 20~3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인 여행객의 80.6%가 ‘쇼핑’을 방한 목적(서울관광마케팅, 2013 서울시 외래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으로 꼽았다. 하나투어ITC 관계자는 “세미패키지 상품 판매는 올해 들어 급증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체 상품의 50%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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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바꾸는 통역가이드
일본 관광객 급격히 줄자 중국어 자격 도전 부쩍 늘어
자유롭게 다니며 쇼핑 '선호'…'세미패키지' 상품 속속 출시
[ 김명상 기자 ] 12년 동안 일본어 관광통역안내사(투어 가이드)로 일해온 박진하 씨(50·가명)는 올해 초 2년이 넘는 준비 끝에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땄다. 2012년 이후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수입이 줄어들자 고심 끝에 방향을 바꾼 것. 제주도에서 일하고 있는 박씨는 “요즘 일본인 관광객은 한 달에 한두 팀 받기도 어렵지만 중국인 손님은 7~8팀씩 맡고 있다”고 말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급증하면서 박씨처럼 중국어로 전공을 바꾸는 일본어 가이드가 늘어나고 있다. 쇼핑을 즐기는 유커들의 요구로 패키지 여행상품 일정에 1~2일의 자유 일정을 포함한 세미패키지도 급증하는 추세다.
◆중국인 관광객 올해 600만명 예상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52.5% 증가한 432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35.5%를 차지했다. 반면 일본인 관광객은 274만명으로 21.9% 감소했다.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올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방한한 중국인 관광객은 411만명. 같은 기간 일본인 관광객(154만명)의 세 배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중국어 가이드로 진로를 바꾸려는 일본어 가이드가 10명 중 7~8명에 이른다고 박씨는 전했다. 유커가 급증하는데도 현재 중국어 가이드는 400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전문 여행사는 중국어 가이드를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행사들이 새로운 기회를 위해 중국어로 전공을 바꾼 가이드를 주목하는 이유다.
장유재 모두투어인터내셔널 대표는 “회사에 소속된 일본어 가이드 중 5명이 중국어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해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어 가이드 자격증을 딴 김인혜 씨(39·가명)는 “일본어 가이드의 경우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상 부가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유커 중에는 씀씀이가 큰 사람들이 많아 의외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유커 쇼핑 요구에 세미패키지 급증
급증하는 유커가 바꿔놓은 또 하나의 현상은 패키지와 개별 자유여행이 결합된 세미패키지 상품의 급증이다.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유커들의 요구를 반영한 또 하나의 트렌드다. 하나투어ITC의 경우 유커 대상 패키지 여행 상품 중 30%가 자유일정을 1~2일 포함한 세미패키지다. 모두투어인터내셜은 세미패키지가 20%를 넘는다.
추신강 중화동남아여행협회장은 “5박6일 이상 서울 관광상품의 경우 1~2박 정도를 가이드 없는 완전 자유일정으로 넣는 세미패키지 상품 판매가 작년보다 20~3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인 여행객의 80.6%가 ‘쇼핑’을 방한 목적(서울관광마케팅, 2013 서울시 외래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으로 꼽았다. 하나투어ITC 관계자는 “세미패키지 상품 판매는 올해 들어 급증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체 상품의 50%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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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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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 물 온도 맞춘 '아기 정수기'… 보통사람들 아이디어 1만개 쏟아져
결선 50개중 2개 이상 상품화 가능
사업가의 꿈을 속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주부, 중·고등학생,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속으로 품어왔던 '대박 상품'의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LG전자가 단순한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창구를 열어놓자, 사업 아이디어 1만여건이 쏟아진 것이다. 그 아이디어들을 평가·개선하고, 마케팅 방안을 제시하면서 사업화로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13만5000명에 달한다. LG전자가 "제품으로 만들어지면 매출의 4%를 지급하겠다"며 개설한 '아이디어LG'의 이야기다. LG전자는 "민간기업의 공모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가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며 "10대에서 80대까지 각계각층에서 문의를 하고 직접 참여했다"고 밝혔다.
◇1만개 아이디어 쏟아져
아이디어LG는 '한국의 쿼키(Quirky)'라는 별명도 얻었다. 미국의 소셜아이디어 전문 업체 쿼키는 발명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팔고, 매출의 일부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과 심사위원에게 나눠준다. 예를 들어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는 멀티탭 '피벗 파워(Pivot Power)'란 제품은 70만개가 팔렸고, 쿼키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은 사례금 6억원을 받았다.
아이디어LG도 쿼키와 비슷하다. 소비자 아이디어를 심사해 제품을 만들고 매출액의 4%를 최초 아이디어 제출자에게 준다. 또 제품을 평가한 사람, 적절한 가격이 얼마냐는 설문에 응한 사람, 마케팅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에게도 매출의 4%를 추가로 떼내 나눠준다.
LG전자는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한 채 오로지 아이디어 자체를 평가한다는 원칙하에 아이디어 제출자의 성명·연령·성별·전화번호·학력 등 개인 정보를 하나도 받지 않았다. 평가 결과를 알릴 때 쓸 이메일 주소만 받았다.
LG전자는 처음 공모전을 시작할 때 이공계 대학이나 대학원 학생들이 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말 그대로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사람들이 아이디어LG에 도전했다.
◇전문 발명가부터 중년 주부까지 경합
13만명이 넘는 소비자 평가단의 심판을 거쳐 결선에 진출한 작품은 모두 50개. 현재 일반 소비자의 평가는 끝났고, LG전자의 상품기획·마케팅·개발·영업팀이 이 아이디어의 상품화 가능성을 마지막으로 심사 중이다. LG전자는 "현재로선 50개 아이디어 가운데 복수(複數)제품을 상품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13일 오후 5시 현재 결선 평가에서 1위를 달리는 아이디어는 '패션 안전 무선 이어폰(EarFit)'이다. 이어폰에 자동차 경적이나 브레이크 소리를 감지하는 기능을 넣은 뒤 길에서 이런 위험한 소리가 들리면 이어폰이 자동으로 음량을 줄여서 사용자가 위험을 감지하게 하는 것이다.
2위는 '휴대전화 케이스 충전기'. 휴대전화를 감싸는 케이스와 충전기를 일체형으로 만들었다. 케이스 따로, 충전기 따로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없앤 것이다. 공동 3위는 물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휴대용 보온병 '워터마스터'와 아이 체온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열 감지 손목 밴드'다. 5위는 모터를 아래쪽에 장착한 선풍기. 기존 선풍기는 모터가 제품 상단 날개 바로 뒤에 달려 있어 앞뒤로 쓰러지기 쉽고 모터의 열 때문에 뜨거운 바람이 나오기도 한다. 모터를 하단에 장착하면 안정감이 있고, 소음이 줄어든다.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현재의 등수가 최종 결과는 아니다. LG전자 내부 평가과정에서 매일 순위가 달라진다. 며칠 전엔 케이스 충전기와 열 감지 밴드가 1위였다. 점수 차도 크지 않아 심사가 끝나는 14일 밤 자정까지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순위 경쟁이 벌어진다. 결과는 15일 발표 예정이다.
보통 사람들이 삶 속에서 끄집어낸 아이디어들도 많다. 한 중년 가정주부는 내부 칸을 분리해 한꺼번에 잡곡밥, 백미밥, 죽을 지을 수 있는 '올 카인즈 밥솥'을 아이디어로 냈다. 시어머니는 죽, 딸과 사위는 흰 쌀밥, 남편은 잡곡밥을 좋아해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올 카인즈 밥솥은 결선에 오른 50개 아이디어에 포함됐다.
14개월 된 딸이 있다는 한 젊은 아빠는 아기 분유를 탈 때 적당한 온도의 물이 적당한 양만큼 나오는 '아기 전용 정수기'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LG전자는 현재 2차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최상규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부사장)은 "아이디어LG를 회사와 소비자가 만나는 집단지성의 창구(窓口)로 항상 열어놓겠다"고 말했다.
[백강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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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투자 필요없는 SW기업 증가로 적은 돈으로도 스타트업 가능해져
초기 기업에 5억 내외 소액 투자하는 마이크로 벤처캐피털 15~20개로 늘어
지난 8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모바일 광고 업체 탭조이가 한국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파이브락스'를 약 400억원에 인수했다. 파이브락스는 모바일 게임 사용자들을 그룹으로 나눠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기술력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탭조이가 파이브락스의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벤처캐피털 업체인 스톤브릿지캐피탈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난 2011년 파이브락스에 투자한 후 3년여 만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스톤브릿지캐피탈은 2008년 설립된 벤처기업 전문 투자 업체로, 출범 초부터 초기 기업에 포커스를 맞춰 크지 않은 액수를 다양한 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여러 초기 기업에 소액을 투자하는 마이크로 벤처캐피털이 부상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초기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진행되며, 예상보다 빨리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들은 창업할 때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 없게 된 것도 마이크로 벤처캐피털이 늘어난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살아나는 초기 기업 투자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이후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투자한 자금에서 초기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 5월까지 비중이 25.3%였으나 8월에는 31.4%까지 늘어났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올해 마이크로 벤처캐피털의 투자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부터 꾸준히 초기 기업 전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를 비롯해 지난 2012년 설립된 케이큐브벤처스, DSC인베스트먼트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대형 벤처캐피털 업체들과 달리 이들은 5억원 내외 소액 투자를 선호하는데 소액으로 여러 기업에 투자해 투자 위험을 낮추고, 잘되는 기업에는 추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는 모바일 게임 개발사인 펀프레소를 시작으로 모바일 오디션 개발 업체인 요쿠스에 이르기까지 올해 들어서만 벌써 14개 업체에 투자했다. 대부분 1억원에서 5억원 수준의 소액 투자다. 케이큐브벤처스 역시 설립 2년여 만에 3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 중 설립된 지 1년이 안 되는 업체가 19곳이며, 서비스가 출시되기도 전에 투자한 업체가 17곳에 이른다. DSC인베스트먼트, 캡스톤파트너스, IDG벤처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등 다른 마이크로 벤처캐피털 역시 펀드 규모를 늘려가며 적극적으로 초기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M&A 통한 회수 증가… 소액 투자로도 창업 가능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벤처 생태계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다음과 합병한 카카오처럼 성공한 스타트업 사례가 줄을 잇고 있는 점도 관련 투자가 늘어난 배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초기 기업의 경우 투자 회수까지 걸리는 시간이 통상 10년 이상 걸렸는데 최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예상보다 빨리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엔젤스의 경우 지난 2012년 투자한 그래픽소프트웨어 개발사 위트스튜디오가 올해 7월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플러스에 인수되면서 2년이 채 안 되어 투자금을 회수했다. 모바일 중고 거래 장터 개발사인 퀵켓 역시 2013년 11월 네이버에 인수돼 투자한 돈을 거둬들였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인 매드스마트는 2012년 SK플래닛에 인수돼 투자 1년여 만에 15배가량 성과를 내기도 했다.
기술 발달과 산업 형태의 변화로 설비투자가 필요 없는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이 많이 생겨난 것도 초기 투자 증가의 배경 중 하나다. 창업 시 필요한 자금의 규모가 줄었기 때문에 벤처캐피털이 소액으로 다양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는 "모바일 벤처 창업은 창업 비용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며 "벤처 생태계가 살아나며 초기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이 15~20개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박원익 조선비즈 기자]
[Money] 요즈마그룹 3년간 1조 투자… 구글도 '캠퍼스 서울' 통해 벤처 육성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외국 투자 업체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요즈마 펀드로 유명한 이스라엘 요즈마그룹은 이번 달 안에 한국법인 설립을 마무리하고 향후 3년간 국내 벤처기업에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요즈마 스타트업 캠퍼스'를 만들어 벤처 창업가도 육성할 계획이다.
앞서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베이신캐피털은 올 7월 비디오 명함을 제작하는 500비디오스에 75만달러를 투자했고, 실리콘밸리 VC인 실버블루와 유명 투자자인 팀 드레이퍼 역시 국내 비트코인 업체 코인플러그에 각각 40만달러를 투자했다.
일본 사이버에이전트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개발사인 카카오를 비롯해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만든 우아한형제들, 무료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제작한 록앤올 등에 투자하기도 했다.
투자업체 외에도 미국 IT 기업 구글이 지난 8월 국내 벤처 기업가들을 지원하는 '캠퍼스 서울'을 내년 초 설립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구글은 캠퍼스 서울을 통해 창업에 필요한 공간을 대여하고, 투자자와 만나는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다. 내년 초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는 캠퍼스 서울은 대치동 오토웨이타워에 들어설 예정이며, 규모는 앞서 지난 2012년 문을 연 '캠퍼스 런던'과 비슷할 전망이다.
[노자운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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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악화에 인사 앞당긴 현대重 이달 안에 90여명에 해임통보
삼성·현대車도 인사태풍 임박
"신입사원 채용규모 못 줄여 기존 임원 구조조정 압력 커져"
고위직 '일자리 보릿고개' 우려
"초상집 전야(前夜) 같은 분위기입니다." 회사 측이 이달 12일 전격적으로 임원 260명 전원에 대해 사표 제출을 요구한 현대중공업 그룹 내부 관계자의 얘기이다. 대상 임원 가운데 적어도 90명 안팎은 이달 안으로 해임 통보를 받을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13일 현대미포조선 신임 사장에 강환구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승진 발령하는 등 속사포처럼 일부 인사를 단행했다. 김외현 현대중공업 사장은 조선사업본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사장은 이달 31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 전까지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최원길 현대미포조선 대표도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원래 현대중공업 임원 인사 시기는 매년 11월 말~12월 초이다. 하지만 올 상반기 1조3000억원의 영업적자에 이어 3분기(7~9월)에도 대규모 적자설(說)이 나도는 상황에서 회사 측이 한 달 반 이상 빨리 '초강력 인사 태풍' 카드를 꺼낸 것이다.
한국 재계가 '인사(人事) 칼바람'에 벌벌 떨고 있다. 예년에는 승진 후보자를 추려내고 들뜬 분위기가 생길 시점이지만, 올해는 주요 기업마다 실적이 크게 뒷걸음질쳐 임직원 모두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등에 힘입어 한국의 주력산업 대부분이 구조조정을 피했지만 이번에는 주력산업 모두 최악의 실적을 예고해 올 연말 인사의 물갈이 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수년간 줄이지 못한 상황에서 기존 임원들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問責性 인사 태풍' 불듯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해만 해도 전체 임원 승진자 475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삼성전자에서 나왔다. 하지만 12월 초 단행될 올 정기인사에서는 사정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올 2분기와 3분기에 연속 '어닝 쇼크(예상보다 실적이 크게 낮은 것)'를 낸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도 나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원칙을 어느 그룹보다 철저하게 지켜왔다"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는 물론 삼성중공업·엔지니어링 등은 문책성 경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도 하이닉스·SK텔레콤을 제외하곤 승진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그룹 관계자는 "이노베이션·증권·해운·네트웍스·건설 등은 실적이 워낙 좋지 않아 임원 승진자가 극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시황 회복은커녕 뾰족한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30일 임원인사를 단행해 기존 20명의 임원 중 7명을 퇴사시켰다. 이 회사는 올 4월에도 7명의 임원을 내보냈다.
포스코·한화·한진·두산 등은 업황 부진으로 상시(常時) 구조조정 체제에 돌입해 있다. 한화 관계자는 "승진자 관련 자료를 취합 중이지만 실적 부진으로 분위기가 예년과 다르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올 2월 최한영 현대차 상용차담당 부회장을 시작으로 설영흥 현대차 중국사업총괄 부회장(4월)에 이어 이달 6일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마저 내보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기 승진인사는 12월 말이지만 그전에 수차례 비정기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수백명 '전직 임원 市場' 형성될 듯
국내 100대 기업 임원 수는 7000명 안팎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을 경우 연말 인사 이후 '제2의 일자리 시장'이 생겨날 전망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고위직 임원의 경우 당분간 '일자리 보릿고개'를 겪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대다수 업종에서 동시다발적인 불황을 겪고 있는 탓이다.
글로벌 헤드헌팅사인 하이드릭&스트러글스 코리아의 김재호 파트너는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서 물러나는 고급 인력들이 적재적소에 재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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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수 3년새 19만 → 28만명… 매출 47% 오를 동안 인건비 57%↑ 인력과잉 우려… 공채규모 줄일듯
삼성그룹이 인건비 고민에 빠졌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 사업 확대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 계열사 임직원 수가 크게 늘어나 인건비가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마트폰 사업 부진에 따른 영업실적 하락으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올해도 20만 명에 육박하는 취업준비생이 삼성그룹 신입사원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등 ‘삼성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신입사원 채용 인원을 줄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13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지출한 인건비는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어섰다. 전체 임직원 수가 2010년 19만464명에서 지난해 28만6284명으로 3년 만에 50% 늘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인건비도 2010년 13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21조4000억 원으로 57% 늘어났다. 인건비는 급여와 퇴직급여, 복리후생비 등을 포함한 액수다.
반면에 같은 기간 회사가 벌어들인 매출은 154조6300억 원에서 228조6900억 원으로 4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영업이익도 올해 2분기(4∼6월) ‘어닝 쇼크’ 수준인 7조 원대로 떨어진 데 이어 이어 3분기(7∼9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60% 줄어든 4조 원대에 그쳤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설비뿐 아니라 인력에 대한 과잉투자가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내부에서 심각하게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인건비 부담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 직원은 “한때 사업부마다 경력 사원 채용을 워낙 많이 늘리다 보니 전국 공대 출신들을 다 모으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직원들 사이에 돌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삼성그룹은 현재와 같은 공채 규모는 줄이고 수시 채용 비중을 늘리는 채용 제도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소 강조했던 ‘S급 인재’ 등 회사 미래를 책임질 최고급 인재 확보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삼성 인사팀의 변함없는 방침이다. 다만 기업 규모가 커지고 산업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매년 1만 명씩 공채 제도로 꼬박꼬박 뽑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내부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처럼 팀별로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는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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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13일 오후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법과 프라이버시가 충돌할 경우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우선하겠다. 지난 7일부터 감청 영장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음카카오가 감청 영장 집행 불응이라는 초강수를 내놓은 것은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에 미온적인 대응을 했다는 비난이 사용자들의 ‘사이버 망명’ 바람으로 이어져 카카오톡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 지난달 18일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을 상시 단속하겠다고 나서면서 불안을 느낀 카카오톡 이용자들의 이탈이 지속돼 최근 일평균 이용자 수는 160만명 이상 감소했다. 카카오톡의 하루 평균 메시지 전송건수가 60억건을 넘어 실시간 감시가 불가능하다는 검찰 측의 해명도 사용자의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했다.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다음카카오의 감청영장 불응 발표에 대해 법조계는 공무집행 방해로 이어지는 ‘초법적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의 국정감사에서 “과도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용자의 신뢰를 되찾는 일은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면서 “감청 불응이 실정법 위반이라면, 대표인 제가 최종 결정을 했기 때문에 그 벌을 달게 받겠다”고 강조했다.
카카오톡 등 ‘전기통신’에 대해 집행한 압수수색이 2012년 681건에서 지난해 1099건으로 61%까지 급증하는 상황에서 다음카카오는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최후 수단으로 ‘감청영장 불응’을 선택한 것이다.
이 대표는 향후 정보보호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정기적으로 투명성 리포트를 발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 단말기에 암호화 키를 저장하는 ‘종단간 암호화’ 기법을 활용한 프라이버시 모드를 순차 도입하고, 서버에 저장하는 대화내용을 암호화하는 작업도 연내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 대표의 승부수가 ‘사이버 망명’에 나선 사용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관심이다.
황유진 기자/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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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 3년만에 전면 개장…가빛섬, 컨벤션센터·카페
채빛섬, 수상뷔페 레스토랑…솔빛섬, 전시·레저시설
서울시 예산 92억원 투자…효성 "서울 랜드마크 목표"
[ 강경민 기자 ]
운영사 선정과 특혜 시비로 3년간 개장이 미뤄진 세빛둥둥섬(사진)이 15일 전면 개장한다. 서울시와 운영 사업자인 효성은 세빛둥둥섬의 새 이름을 ‘세빛섬’으로 확정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고 13일 발표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세계 최대 수상컨벤션 시설로 추진한 세빛섬은 우여곡절 끝에 완공 3년 만에 문을 열게 됐다.
◆축구장 면적 1.4배 인공섬
서울 반포대교 남단 수상에 건설된 세빛섬은 총면적 9995㎡(축구장 면적의 1.4배)로, 가빛섬·채빛섬·솔빛섬 등 다리로 연결된 3개의 인공섬으로 구성됐다. 2009년 3월 착공해 사업비 1390억원을 들여 2011년 9월 완공됐다.
세 섬 중 가장 큰 가빛섬은 총면적 5478㎡(3층) 규모로 각종 콘퍼런스, 패션쇼, 결혼식 등이 열리는 700석 규모의 수상 컨벤션센터,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꾸며진다. 채빛섬은 3419㎡(3층) 규모로 공연과 식사가 가능한 수상뷔페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17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솔빛섬은 1098㎡(2층) 규모로 전시공간 및 수상레포츠 지원시설로 활용된다. 세 개의 수상섬과 함께 한강반포공원에 조성된 예빛섬은 전시장 및 공연장 등으로 활용된다.
서울시와 효성은 15일 오후 4시에 예빛섬에서 ‘한강의 새로운 문화, 세빛섬이 열어갑니다’를 주제로 개장식을 연다. 세빛섬 전면 개장을 맞아 13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사진전 및 사회적 기업이 참여하는 소비장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완공 3년 만에 문 열어
세빛섬 운영은 시행사 플로섬의 대주주인 효성이 직접 맡는다. 당초 세빛섬은 플로섬이 30년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기부하는 민간 투자사업(BOT) 방식으로 추진됐다. 플로섬의 최대주주는 57.8%의 지분을 보유한 효성이다.
당초 세빛섬은 완공 직후인 2011년 9월 전면 개장할 예정이었지만 집중호우로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고 운영사 선정이 늦어지면서 지연됐다.
플로섬의 2대 주주는 29.9%(128억원)의 지분을 보유한 서울시 산하기관 SH공사여서 세금을 낭비한 ‘전시·홍보성 사업’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서울시는 2012년 7월 세빛섬 사업이 시의회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투자비도 기존 662억원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등 총체적 부실 속에 추진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의 개장 연기 방침에 효성은 개장이 지연된 3년 동안 200억원이 넘는 추가 이자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서울시와 효성은 완공 2년이 지난 2013년 9월에서야 세빛섬 운영 정상화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양측은 사업 시행사가 세빛섬을 30년 무상 사용하기로 한 기존 협약을 바꿔 20년 무상 사용, 10년 유상 사용으로 변경했다. 또 서울시는 자체 예산 92억원을 세빛섬 공공성 확보에 전액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전면 개장에 따라 세빛섬 사업이 정상 궤도에 진입할지 주목된다. 서울시는 세빛섬 내 전시·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사전 공공성 심의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효성 관계자는 “논란을 끝내고 세빛섬이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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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 브랜드 국내 첫선
최고 1억 에르메스 '버킨백' 개장 전 예약판매서 완판
[ 유승호 기자 ]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이 서울 잠실에 문을 연다. 롯데그룹은 쇼핑, 외식, 문화생활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롯데월드몰을 14일부터 순차적으로 개장한다고 13일 발표했다.
롯데월드몰은 연면적이 42만8934㎡로 쇼핑시설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 영업면적은 33만9749㎡로 축구장 47개 규모다. 에비뉴엘동, 쇼핑몰동, 엔터동 등 3개 건물에 백화점, 면세점, 극장, 대형 수족관 등이 들어선다. 입점 브랜드는 1000여개이며, 이 중 50개는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던 브랜드다.
롯데백화점이 운영하는 명품 전문 백화점인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은 14일 문을 연다.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은 영업면적이 2만9800㎡로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의 3배가 넘는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 3대 명품을 비롯해 225개 브랜드가 들어선다. 이 중 보석 브랜드 에이치스턴과 포멜라, 명품 시계 유보트, 고급 식품 매장 펙 등 33개는 국내에 최초로 입점하는 것이다. 가격이 2000만원 안팎에서 최고 1억원을 넘는 에르메스 ‘버킨백’은 최초 배정 물량 40개가 이미 전량 예약판매되는 등 개장 전부터 VIP 고객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에르메스는 에비뉴엘 7층에 있는 롯데면세점에도 매장을 냈다. 에르메스가 한 건물에 두 개 이상 매장을 여는 것은 전 세계에서 이곳이 처음이다.
롯데하이마트 월드타워점과 롯데마트 월드타워점도 14일 개장한다. 롯데하이마트는 영업면적이 4500㎡로 전자제품 전문 매장으로는 국내 최대다. 1억원대 105인치 UHD TV와 하만카돈 오디오, 1000만원대 유라 커피머신 등 프리미엄 전자제품을 판매한다. 기존 하이마트에는 없던 월풀, 키친에이드, 밀레 등의 제품도 선보인다.
롯데마트는 김치, 김 등 선물용 한국 식품을 판매하는 ‘외국인 특화존’을 설치했다. ‘수입식품 특화존’도 운영한다.
15일 문을 여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는 상영관이 21개, 객석 수가 4600개인 아시아 최대 복합상영관이다. 롯데시네마 ‘수퍼플렉스G’에는 가로 34m, 세로 13.8m의 세계 최대 스크린을 설치했다.
쇼핑몰, 롯데면세점, 아쿠아리움은 16일 개장한다. 쇼핑몰에 입점하는 269개 브랜드 중 16개는 국내에 처음 들어오는 것이다. H&M의 고급 브랜드 코스와 생활용품 브랜드 H&M 홈, 퓨전 중식 PF창, 스와치의 시계 편집매장 아워패션 등이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는 420개 브랜드가 입점한다. 영업면적이 1만990㎡로 시내면세점 중에서는 세계 3위 규모다. 화장품 매장이 140여개, 시계 매장이 60여개로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중국인 관광객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매장을 구성했다는 것이 롯데면세점 측 설명이다.
아쿠아리움은 총면적이 1만1240㎡인 국내 최대 도심 수족관이다. 관람 동선은 840m이며 전체 관람에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국내 최다인 650종, 5만5000여마리의 해양 생물이 있다.
롯데는 롯데월드몰의 연간 매출이 1조5000억원, 경제적 파급효과가 3조40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소진세 롯데 대외협력단장은 “롯데월드몰은 국내 최고의 쇼핑·문화·관광시설이 결집된 신개념 공간”이라며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면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관광객 동선에 맞춘 설계 눈길 500만 유커 겨냥 K뷰티 - 패션 전문관 주차 100% 유료… 예약때만 진입 허용
개장을 하루 앞둔 13일 제2롯데월드 저층부에 들어설 명품관 에비뉴엘에서 매장 직원들이 분주하게 상품 진열 작업을 하고 있다. 225개 브랜드가 입점하는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는 이탈리아 식품 브랜드 ‘펙(PECK)’ 등 33개 브랜드가 국내 최초로 들어선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넓고 화려하고 웅장했다. 서울 송파구의 제2롯데월드 저층부(롯데월드몰)를 13일 둘러보고 느낀 점이다. 롯데월드몰은 3개동(에비뉴엘동, 쇼핑몰동, 엔터테인먼트동)으로 이뤄져 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기존의 백화점, 영화관, 쇼핑몰을 뛰어넘는 규모였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봤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명품 전문 쇼핑몰인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은 롯데 본점 에비뉴엘의 3.1배 규모. 롯데월드몰의 연면적은 주차장을 제외하고도 축구장 47개 크기(33만9749m²·약 10만2800평)에 이른다.
롯데월드몰은 우여곡절 끝에 14일 고객에게 첫선을 보인다. 롯데그룹은 13일 롯데월드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장 일정을 발표했다. 14일에는 국내 최대 명품관인 에비뉴엘 월드타워점과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가 먼저 문을 연다. 15일에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스크린을 갖춘 롯데시네마가, 16일에는 자정까지 운영하는 이색 푸드코트를 갖춘 쇼핑몰과 420여 개 브랜드가 입점한 면세점, 85m 수중터널을 자랑하는 아쿠아리움이 개장한다.
소진세 롯데그룹 대외협력단장은 “제2롯데월드 건설은 대한민국의 대표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됐다”며 “일자리 창출과 내수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유커 500만 시대, 쇼핑의 메카로
롯데월드몰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500만 시대를 맞아 관광객의 동선을 고려해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이원우 롯데물산 대표는 “관광버스 107대를 동시에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을 마련했다”며 “매장 앞이 버스로 혼잡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품 구성에서도 유커 등 방한 관광객들의 취향을 반영했다. 에비뉴엘동 7, 8층에 있는 롯데면세점에는 국산 화장품 브랜드 50여 개를 모은 ‘K뷰티 전문존’이 들어선다. 이 면세점은 2016년 초고층 월드타워가 완공되면 면적을 추가로 확장해 1만5868m²(약 4800평) 규모가 된다. 이는 면적 기준 세계 3위다.
엔터테인먼트동 지하 1, 2층의 롯데마트는 김치, 김 등 선물세트를 파는 ‘외국인 특화존’을 설치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마트 근처에 관광버스 주차장이 있어 외국인들이 버스에 오르기 전에 먹을거리 선물을 살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16일 개점하는 쇼핑몰에서는 다음 달 초까지 269개 브랜드가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스웨덴 패션그룹 H&M의 ‘코스(COS)’ 매장은 30일에 오픈할 예정. 1만9835m²(약 6000평) 규모의 공원은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이도록 설계해 국내외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공원은 14일부터 공개된다.
○ 예약 안 하면 주차 못해
하지만 남은 숙제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주차 문제다. 롯데월드몰 주차장은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일반전화를 이용해 예약을 해야 차를 몰고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최대 예약 시간은 3시간, 주차는 100% 유료다. 요금은 10분당 1000원이며 3시간 이후부터는 10분당 1500원으로 뛴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쇼핑하느라 5시간을 주차하면 3만6000원을 주차료로 내야 한다.
이원우 대표는 “주차 유료화 및 사전예약제는 서울시의 임시승인 조건이라 원칙대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사전 홍보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백화점은 그동안 전 점포에서 발레파킹 서비스를 받아 온 에비뉴엘 우수 고객들의 주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원준 롯데백화점 대표는 “어려움 끝에 개점하는 만큼 고객들이 환영하는 점포가 되도록 할 것”이라며 “최우수 고객에게는 회사 차로 교통편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도입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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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우 기자 ] “스마트 워치의 등장은 기존 시계업체들에 ‘굿 뉴스’입니다. 젊은층을 시계 시장으로 유입시켜 파이를 키우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의 간판급 시계 브랜드 세이코의 핫토리 신지 회장(61·사진). 그는 “스마트 워치가 기존 중저가 시계 브랜드를 위협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은 일견 맞는 얘기”라면서도 “시장 전체가 확장하는 계기인 만큼 세이코처럼 경쟁력 있는 업체에는 오히려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핫토리 회장은 “세이코는 전자식부터 기계식까지, 어떤 사양과 가격대의 제품이든 100% 자체 생산하는 회사”라며 “삼성이나 애플과의 경쟁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핫토리 회장을 만난 건 지난 10일 일본 도쿄 중심가인 긴자의 명물 ‘세이코 시계탑’에서였다. 1930년대 세워져 멈추지 않고 돌고 있는 이 시계탑은 일본에서 세이코가 갖고 있는 상징성과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그는 1881년 세이코를 창업한 고(故) 핫토리 긴타로의 증손자로, 2003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세이코는 세계 시계 시장에서 큰 획을 그은 회사로 평가받는다. 1969년 세계 최초의 전자식(쿼츠) 시계 ‘아스트론’을 출시해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와 유럽산 명품 시계의 부활로 세이코의 위세는 전성기보다 주춤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스위스 시계와 차별화한 고급 제품을 강화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노리고 있다.
핫토리 회장은 “세이코는 전통적인 시계 제조법과 현대적 기술을 접목하는 데 오래 전부터 강점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위성항법장치(GPS) 신호를 수신해 지구촌 어디서든 정확한 시간을 스스로 맞추는 시계 △빛에너지를 동력으로 전환해 배터리가 필요 없는 시계 △기계식으로 작동하지만 오차 보정은 전자식으로 보완해 정확성을 높인 시계 등은 유럽에선 찾아보기 힘든 제품들이다.
세이코의 숙제는 중저가 시계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300만~1000만원대의 ‘그랜드 세이코’ 판매에 힘을 쏟고 있다. 그랜드 세이코는 시간의 정확성에서 스위스 명품보다 까다로운 검사 기준을 적용하는 고가 컬렉션으로, 시계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도쿄=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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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제고 곧 반등" 기대도
[ 김희경 기자 ] 전 임원 사표 등 고강도 개혁에 나선 현대중공업의 주가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혁안 발표 후 첫 거래일인 13일 약세로 마감하며 1년 최저가를 기록했지만, 하락세에서 조만간 벗어날 것이란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이날 현대중공업은 전주말보다 1.70% 떨어진 11만55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최근 1년 중 가장 낮은 가격으로 떨어졌다. 전 임원 사표와 조직개편 계획이 발표됐지만 주가는 올초부터 줄곧 약세를 보이며 25만원에서 절반 아래로 하락한 주가 흐름을 되돌리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의 약세는 실적 악화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지난 2분기에 1조103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기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한 12조8000억원에 그쳤다. 조선업계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해양플랜트 저가 수주로 수익성마저 악화됐다. 3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1% 증가한 13조4161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 영업손실은 749억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중공업이 체질 개선에 적극 나서기로 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김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임원들의 일괄사표는 경영 정상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며 “3분기 실적이 발표되고 현재 주가가 저점으로 확인된다면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계열사들의 경쟁력이 제고되면서 복합기업으로서의 장점이 부각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형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현대미포조선은 중소형 상선을 효율적으로 건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현대삼호중공업은 대형 상선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며 “현대중공업은 계열사들과의 시너지 효과에 힘입어 내년에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19호 태풍 봉퐁의 영향으로 13일 근로자들이 작업을 중단한 현대중공업 울산 공장 내 3도크. 현대중공업 제공 |
현장 리포트
파업 찬반투표 조합원들 사이 노사 상생 분위기 감지
"회사 위기감에 손님 확 줄어"…울산 지역 상권도 울상
[ 하인식 기자 ]
“임원들이 일괄 사직서를 내야 할 만큼 회사가 위기에 처한 줄 몰랐습니다.”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맞은편에서 횟집을 하는 김동식 사장(72)은 13일 “지난 30여년 동안 현대중공업 덕분에 불황 한번 겪지 않았는데 올해는 손님이 확 줄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1인당 800만~1000만원의 격려금(타결 일시금)을 받은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지갑을 열면서 매출이 올랐는데, 노사 갈등으로 올해는 침체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날 현대중공업이 ‘전 임원 일괄 사직서 제출’이란 고강도 개혁안을 발표하자 회사 주변 상권에까지 위기감이 감돌았다. 저가 수주로 인해 일시적으로 영업적자를 낸 것으로 알았는데, 임원들이 한꺼번에 사직서를 내는 것을 보니 업황 악화로 인한 구조적 어려움에 처했다는 점을 알게 됐다는 반응이다.
울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울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회사 근로자 2만6000여명에 사내협력사 3만5000여명 등 6만1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여기에 3000여개 협력사를 포함하면 총 40여만명(울산 전체 인구 110만명)이 현대중공업과 관계가 있다. 현대중공업이 삐걱대면 울산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날 현대중공업 본사 사업장은 19호 태풍 봉퐁의 간접 영향까지 받아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위기감이 한층 고조된 분위기였다.
지난 6월 회사가 임원진 급여를 10~30% 자진 반납하기로 결의할 때만 해도 “설마 세계 조선 1위인 현대중공업이 망하겠느냐”며 강성 집행부의 파업 방침에 동조했던 일반 근로자들도 동요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건조2부의 김모씨(55)는 “1990년대 노조의 골리앗 투쟁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게 과연 뭔지 묻고 싶다”며 “회사 경영진이 경영 잘못을 인정하고 살을 도려내는 혁신의지를 분명히 한 만큼 우리도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진조립부에서 일하는 정모씨(43)는 “회사가 이렇게 어렵다고 하는데 노조가 막무가내식으로 현대차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하는 건 무리”라며 “일단 노사가 협상테이블에 앉아 당면한 위기 극복 방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내외로 위기 의식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회사 경영진에 눈길도 주지 않으며 반감을 드러냈던 일반 조합원들 사이에선 회사부터 우선 살려야 한다는 노사 상생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여전히 강성 기조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노조는 지난달 23일부터 전체 조합원 1만8000여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간 뒤 “회사가 조합원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등 부당하게 개입하고 있다”며 투표 마감시한을 무기한 연기하며 회사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 같은 노조의 강성기조 방침에 동구 주민들은 “2012년 초 35만원이던 주식이 11만원대로 3분의 1 토막이 났는데 노조가 왜 이렇게 무리하게 파업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며 “파업을 통해 임금과 성과금을 더 챙기면 회사가 망해도 괜찮은 것이냐”고 질타했다.
김철 울산상의 회장은 “2002년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에 있던 조선업체 코쿰스의 골리앗 크레인이 1달러에 울산 현대중공업에 인수될 때 스웨덴 언론은 ‘말뫼가 울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며 위기를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을 통탄했다”며 “현대중공업 노사가 이런 말뫼의 눈물을 울산시민에게 안겨줘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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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5일 이후 한국 경제계의 최대 화제는 단연 중국 업체 ‘샤오미(小米)’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가 삼성전자와 애플을 모두 넘어섰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캐 널리스는 올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가 점유율 14%를 차지해 12%의 삼성전자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고 이날 발표했다. 3위는 중국의 레노보가 차지했다.
애플은 힘이 빠져 아예 5위권 밖으로 밀렸다. 기술력과 혁신의 상징인 스마트폰마저 중국 업체에 밀렸다는 점에서 이날 뉴스는 한국 경제계에 충격이었다. 샤오미는 한국 기업들이 ‘짝퉁 애플’이라 얕잡아 보던 중국 업체다. 그런 샤오미의 초고속 비행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형국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캐널리스는 샤오미가 중국에서 지난 2분기에만 1500만대가 넘는 스마트폰을 판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2분기 중국 시장 점유율이 겨우 4% 남짓했던 샤오미는 불과 1 년 사이에 그 3.5배 규모인 14%로 성장한 것이다. 고속성장 시 장에서 초고속으로 경쟁자를 따라잡은 것이다. 물론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25.2%(7450만대)의 점유율로 여전히 1위다. 샤오미는 아직 5.1%(1510만 대) 수준이다. 하지만 샤오미는 아직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샤오미가 기술력과 마케팅 경험을 축적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경우 한바탕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년 만엔 중국 점유율 3.5배로 늘려
그런 샤오미 돌풍의 주인공은 창업자인 레이쥔(雷軍·45) 회장 이다. 레이쥔은 중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 테크의 창업자 겸 CEO인 것은 물론 중국내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의 하나인 킹소프트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지난 8월 레이쥔의 재산이 41억 달러에 이르러 중국 19위, 세계 375위라고 보도했다.
비상장 사인 샤오미는 지난해 기업가치를 100억 달러(약 10조4180억 원)로 평가 받았다. 창업자인 레이쥔 회장의 재산은 75억 달러 (약 7조8135억 원)로 평가돼 중국 부자 순위 10위라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9월 24일 중국의 부자연구소인 후룬 연구원이 발표한 중국 부자 순위에 따르면 레이쥔의 재산은 390억 위안(약 6조7000억 원)로 중국 5위다. 그가 중국 부자 10위권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샤오미폰의 돌풍 덕분이다.
올해 샤오미의 판매목표는 6000만대이고, 내년에는 1억대다. 이제는 중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레이쥔 회장이 자신감을 얻고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그가 계속 성공을 거둔다면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추격해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했던 것처럼 샤오미도 가까운 장래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레이쥔의 야망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샤오미는 올해 싱가포르에 거점을 마련하고 이곳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에서 샤오미는 ‘중국의 애플’로, 레이쥔 회장은 ‘중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다. 레이쥔은 스티브 잡스의 경영 스타일을 철저하게 연구한 전문가로 알려졌다. 특히 신제품 소개 행사 때 마다 직접 등장해 잡스가 하는 방식 그대로 따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검은색 청바지와 터틀넥이라는 복장은 물론 프레젠테이션 하는 방식도 흡사하다. 말을 하는 방식, 질문을 받는 방법,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그대로 따라 한다. 잡스를 철저히 모 방해 그를 따라잡겠자는 것이다. 중국 매스컴은 물론 샤오미폰 사용자들도 그를 중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부른다. 지난 2분기 샤오미폰이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하면서 레이쥔은 단순하게 스티브 잡스의 겉모습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집념, 추진력, 철저한 시장 분석과 미래에 대한 혜안까지 갖춘 파워 경영인으로 새롭게 평가 받고 있다.
레이쥔 회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에선 유명한 벤처 기업인이다. 1999~2002년에 걸쳐 중국청년보 등 여러 미디어가 뽑은 ‘중국 IT업 10대 풍운인물’에 올랐다. 2003년에는 중국 베이징의 실리콘밸리인 중관춘의 우수 경영자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 포춘지가 뽑은 ‘비즈니스 룰을 바꾸는 11인 의 개척자’에 중국인으로 유일하게 뽑혔다.
레이쥔은 중국 후 베이성 샨타오시에서 태어나 우한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어디에 취직할까나 고민하던 공대생인 그의 인생을 바꿔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실리콘 밸리의 창업자 이야기를 모아놓은 <파이어 인 더 밸리(Fire In the Valley)>라는 책을 읽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그는 IT벤처기업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벤처기업을 창업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다.
1992년 23세의 나이에 중국 IT업체로 소프트웨어 개발로 유명한 킹 소프트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1994년 베이징에 자회사를 세우고 개발과 영업을 분리했다. 엔지니어와 영업맨의 장점을 각각 발휘해보라는 취지였다. 개발은 남부 광둥성 주하이의 주하이킹소프트가, 영업은 베이징의 베이징 킹 소프트가 각각 맡았다.
킹 소프트는 1996년 첫 게임소프트웨어인 ‘중관춘 계시록’을 발표했으며 이듬해에는 롤플레이 게임인 ‘검협정록’을 내놨다. 이어 사전소프트웨어인 금산사패를 발매하면서 최고 인기 사전으로 떠올랐다. 중국어를 배우는 한국인 사이에서도 유명할 정도다. 최근에는 모바일 사전으로 진화해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킹 소프트는 여세를 몰아 윈도즈 95에 대응할 WPS97이라는 프로그램까지 발표했다.
그러자 1998년 중국의 거대 컴퓨터 업체인 레노보그룹이 거액을 투자했다. 능력을 인정받은 레이쥔은 입사 6년 만인 1998년 8월 이 회사의 총경리(대표이사)에 올랐으며 2007년까지 자리를 유지했다. 2007년 홍콩증시에 상장해 중견기업으로 완전히 인정받으면서 그해 12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레이쥔은 2011년 7월 킹소프트주식의 10.3%를 취득해 최대 주주가 됐으며 창업자 겸 회장을 퇴진시키고 자신이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킹 소프트의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창업이었다. 그는 2008년 12월 ‘UCWeb’이라는 인터넷 기업의 회장을 맡았다. 모바일 브라우저 제조가 주업으로 중국과 인도에서 모바일 브라우저, 검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이 업체가 개발해 내놓은 UC브라우저라는 제품은 2014년 3월 현재 사용자가 5억명에 이른다. 중국 내 시장 점유율도 65.5%에 이른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알리바바와 합작으로 중국 시장에 모바일 전용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션마를 설립했다. 이 업체는 지난 7월 알리바바 그룹에 흡수됐는데 이 거래는 중국 최대의 인터넷 인수합병으로 기록된다. 앞으로 알리바바 그룹의 모바일 관련 비즈니스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킹 소프트의 성공도, UCWeb의 성공도 그의 벤처인생에선 전주곡과 간주곡에 불과했다. 그의 인생의 대전환점은 2010년 4월 6일로 기록된다. 바로 샤오미 테크를 창업한 날이다. 2010년 4월 레이쥔은 구글차이나, 모토롤라 베이징연구센터, 베이징과기대 공업설계학부의 교수, 킹 소프트의 전 대표 등 6명을 끌어들여 샤오미 테크를 창업했다. 그는 6개월 동안 중국 전역을 돌며 창업 멤버를 모았다. 그는 “태풍의 길목에 서 면 돼지도 날 수 있다”라는 말로 지금이 샤오미를 창업할 기회임을 역설했다.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업체 대표이사 출신인 그가 41세의 나이에 창업에 나선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화제가 됐다. 중국에서도 IT벤처 창업은 주로 20대 초반에 하는 일이다. 40세가 넘은 나이에 창업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레이쥔은 젊은이처럼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베이징 IT클러스터 중관춘에 둥지를 틀었다. 베이징 북서부 하이디옌 구에 자리한 중관춘은 입주기업 2만여 개. 연간 총 매출 4200 억 달러(약 430조5000억 원), 해외에서 유턴한 창업자만 2만여 명,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 3000개, 벤처 투자 규모가 중국 전체 벤처 투자의 3분의 2이 넘는 6조 원 이상인 중국 최대의 벤처 클러스터다.
1980년대 초 전자상가 거리에서 시작한 중관춘은 관련 IT기업이 모여들면서 영역이 갈수록 확장돼 이제는 75 ㎢(약 2269만평) 면적의 거대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세계 1위 PC기업 레노보와 ‘중국판 구글’로 불리는 바이두, 칭화대, 칭화사이언스파크, 베이징대, 창업거리(innoway), 레전드캐피털, 중국 최대 창업 인큐베이터 창신공장 등이 줄지어 입주해있다. 샤오미를 창업한 레이쥔도 여기에 자리 잡았다.
회사 이름 샤오미(小美)는 레이쥔가 제안했다. 좁쌀이라는 뜻의 중국어와 같은 이 이름은 사실 좁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샤오(小)는 ‘한 알의 작은 곡식알이 높은 산만큼 위대하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따왔다고 한다. 비록 완벽함을 갖추지 못하고 작은 일에서 시작하지만 꿈을 크다는 의미다. 미(米)는 모바일 인터넷(Mobile Internet)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의 두음을 따왔다고 한다. 이 회사의 스마트폰은 미1·미2·미3·미 4·홍미·홍미노트·미패드 등 ‘미(Mi)’시리즈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실제로 샤오미는 모바일 인터넷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켜 미션 임파서블을 이뤘다.
전복형 이노베이션 추구
사실 2011년 첫 스마트폰인 Mi1을 출시할 때만 해도 샤오미는 ‘짝퉁 애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애플의 아이폰을 꼭 닮은 디자인에, 운영체제(OS)까지 애플의 iOS를 베껴왔다는 지적이었다. 레이쥔은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스티브 잡스처럼 청바지에 검정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 차림으로 등장했다. 비판이 쏟아졌지만 레이쥔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샤오미는 애플의 ‘창조적 모방’이라고 강변했다. 레이쥔은 중국중앙방송(CCTV)과의 인터뷰에서 ‘샤오미가 아이폰을 베낀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샤오미는 전복(顚覆)형 이노베이션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타인의 생각과 관점을 긍정적으로 전복했다. 남이 뭐라 생각하건 내 일을 잘하면 그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샤오미에게 최근 골칫거리가 생겼다. 샤오미의 야심작인 ‘미4’의 짝퉁 제품이 중국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국에서 샤오미의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고 위상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군소업체가 카피한 짝퉁 제품은 화면 해상도를 빼고는 디자인은 물론 성능까지 비슷해 정품 여부를 쉽게 알기가 힘든 상황이다. 샤오미는 제품이 정품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배포했다.
전복형 이노베이션으로 성장한 샤오미가 자신의 전략을 그대로 쓰면서 짝퉁을 만드는 군소업자들의 공격을 당하는 상황이다. 샤오미 스마트폰은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한국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제 한국 시장에서도 한바탕 샤오미 돌풍이 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어폰 '피스톤2'(왼쪽부터), 보조 배터리, 미밴드, 홍미 노트. |
中 1위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 이어폰·배터리 국내 판매 시작
대용량 반값 보조 배터리 오픈마켓서 판매 급증
웨어러블 가격도 1만원대…국내 업체는 '초긴장'
[ 박병종 기자 ]
올 상반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샤오미. 샤오미의 스마트폰 주변기기가 최근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보조 배터리, 이어폰 등이 가격 대비 높은 품질을 인정받으면서다. 중국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한국 공습이 예고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스마트폰 대전’을 앞둔 ‘전초전’ 성격으로 풀이된다.
◆샤오미 주변기기 돌풍
국내 샤오미 돌풍의 시작은 스마트폰 보조 배터리에서 시작됐다. 지난 4~5월 인터넷 커뮤니티 공동구매로 국내에 상륙한 샤오미 보조 배터리는 오픈마켓으로 유통 경로를 확장하면서 국내 시장을 평정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이 제품은 7월부터 보조 배터리 부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9월 판매량은 7월보다 네 배 이상 늘었다.
샤오미 보조 배터리의 최대 강점은 1만400㎃h의 압도적인 용량이다. 아이폰6는 5번, G3는 3.5번, 갤럭시 노트4는 세 번 충전할 수 있다. 가격은 오픈마켓을 중심으로 2만4000원대다. 같은 용량 국산 제품(4만~6만원대)의 절반 수준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부에 들어가는 배터리셀은 삼성 LG 산요 등의 제품을 사용한다. 8월부터 샤오미 보조 배터리를 사용했다는 직장인 김정범 씨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보다는 중국 유명 브랜드 제품에 더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보조 배터리 외에 샤오미의 이어폰도 인기다. 샤오미의 이어폰 ‘피스톤2’는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 모양의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고급 이어폰에서나 경험할 수 있었던 뛰어난 저음 표현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얻었다. 가격은 1만6000원에 불과하다.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등을 통해 ‘대륙의 실수’라는 별명이 붙으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독일 음향기기 명가 ‘젠하이저’의 60만원대 이어폰 ‘ie800’과 맞먹는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초기 웨어러블 산업 몰락 가능성
샤오미의 위협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샤오미는 8월 ‘미밴드’라는 스마트밴드를 중국에서 발매했다. 전화·문자 알람은 물론 운동량·수면 분석 등 대표적인 스마트밴드의 기능을 두루 갖췄다. 성능 면에서도 핏빗 샤인 조본 등 유명 제품과 별 차이가 없다. 주목할 것은 역시 79위안(약 1만4000원)인 가격. 현재 국내외에서 팔리는 스마트밴드 가격이 10만~20만원대인 것을 고려할 때 10분의 1에 불과한 가격은 위협적이다. 홍성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샤오미가 이끄는 중국산 웨어러블 기기가 국내에 상륙할 경우 국내 초기 웨어러블 산업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샤오미는 ‘애플 워치’와 ‘삼성 기어’ 등에 맞설 스마트워치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저가 전략을 펼 것으로 예상되면서 웨어러블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지 주목된다.
◆중국산 스마트폰 공습경보
샤오미 군단의 주력 부대는 스마트폰이다. 샤오미가 중국 시장을 평정하면서 국내에서도 샤오미 스마트폰 공동구매에 나서는 소비자가 생겼다.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은 스마트폰 구매업체인 리퍼비쉬, G마켓과 함께 7월 말부터 샤오미 스마트폰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대상 제품은 ‘홍미’ ‘홍미노트’ ‘미3’ ‘미4’ ‘미패드’ 등이다.
정식 판매도 준비하고 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정식 판매를 위해 알뜰폰 사업자인 CJ헬로모바일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화웨이는 지난달부터 알뜰폰 업체 미디어로그를 통해 대표 제품인 ‘X3’를 국내에 판매하고 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으로 외국산 스마트폰도 통신요금 할인이 가능해지면서 중국산 스마트폰의 위력은 더 강해졌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샤오미 매출, 5년내 거리전기 추월…10억위안 내기서 이길 확률 99.99%"
[ 김동윤 기자 ] “둥밍주 거리전기 회장과의 내기에서 내가 이길 확률은 99.99%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사진)이 최근 국가인터넷정보사무실 주최 행사에서 한 말이다. 에어컨 제조업체 거리전기는 2005년부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고,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는 올 2분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잘나가는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내기를 한 것은 작년 12월 중국 중앙방송 CCTV 주최로 열린 ‘2013 중국 경제인’ 시상식 자리에서다. 당시 두 사람은 앞으로 5년 안에 샤오미 매출이 거리전기를 추월할 수 있을지를 놓고 10억위안을 건 내기를 했다. 지난해 샤오미 매출은 316억위안으로 거리전기(1200억위안)의 약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기를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되는 시점에 레이 회장은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레이 회장은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 샤오미는 ‘인터넷 시대의 날개’를 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샤오미의 매출은 올해 800억위안(약 1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재계에서는 두 사람의 내기를 인터넷 기업과 전통 제조기업 간의 상징적인 대결로 보고 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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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의 유전정보를 종자단계에서 분석하는 몬산토의 특허 장비 ‘치퍼’. |
세계 최대 종자기업 몬산토의 리서치랩(연구실)에는 몬산토가 자랑하는 ‘치퍼(Chipper)’란 장비가 있다. 치퍼는 종자의 상업화에 걸리는 기간을 2년 이상 앞당기는 몬산토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특허장비다. 종자의 일부를 가느다란 칩(Chip)처럼 긁어서 떼어내 수백만 개에 달하는 DNA 유전정보를 분석하는 로봇이다.
지난 9월 23일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에서 64번 고속도로를 30분간 달려 찾아간 크리브코어의 몬산토 본사. 몬산토 크리브코어 캠퍼스의 리서치랩에서 치퍼와 마주했다. 몬산토의 한국인 김선란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치퍼의 스위치를 켰다. 한 면에 8개씩 4면에 32개의 로봇팔이 8개 옥수수 알갱이를 노즐로 ‘휙휙’ 소리를 내며 빨아들였다. 진공청소기와 같았다. 이후 각각의 노즐 위에 놓인 옥수수 알갱이의 사진을 찍고, 이들 알갱이를 나란히 정배열한 뒤, 알곡의 한쪽 면을 순식간에 긁어서 떼어냈다. 긁어낸 알갱이는 샘플링 접시에 담겨 나왔다. 특허장비라서 치퍼가 가동 중에는 사진촬영이 절대 금지됐다.
몬산토 김선란 연구원은 “치퍼로 인해 옥수수의 경우 연구기간만 (옥수수의 생장기간인) 3~4개월 이상 단축된다”며 “몬산토 본사에는 이 같은 치퍼가 옥수수를 비롯 대두, 밀, 쌀, 면화, 사탕수수 등 작물별로 있다”고 말했다.
기자를 안내한 라라 알팬 몬산토 혁신경험가이드는 “종자에서 생장에 관여하는 배아(胚芽)를 손상하지 않고 긁어내는 것이 치퍼의 핵심기술”이라고 자랑했다. 과거에는 특정작물의 유전정보를 분석하는 것은 종자 단계에서는 불가능했다. 작물을 땅에 심은 뒤 자라난 이파리 등의 샘플을 채취해 유전정보를 분석해야 했다. 일례로 치퍼만 있으면 한국의 강원도 토종 찰옥수수도 땅에 심어 키워볼 필요도 없이 씨앗만으로 대략적인 생장 특성을 알아낼 수 있다. 결국 치퍼의 도움으로 종자 분석에 걸리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북미뿐만 아니라 한국 등 전 세계 종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정보 분석이 가능해진 셈이다. 옥수수 치퍼는 지난 2007년 개발됐다.
몬산토는 세계 최대의 종자기업이다. 특히 GM(유전자재조합) 종자 시장의 9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다. 몬산토는 1901년 사카린을 생산하는 평범한 화학기업으로 출발했다. 베트남전 때 맹위를 떨친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와 제초제 ‘라운드업’ 생산을 거쳐, 2000년대 초반 종자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미시시피강, 미주리강, 일리노이강이 한데 합류해 곡물 유통의 중심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교외 크리브코어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60개국에 400개 이상의 연구시설을 두고 있다.
현재 몬산토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종자 육종과 GM종자 분야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의 청양고추 종자도 몬산토 소유다. 한국 농민들이 청양고추를 종묘상에서 구입해 땅에 심으면 로열티가 몬산토 금고에 떨어진다.
몬산토는 종자와 작물보호제(농약)뿐 아니라 생물학제제, 정밀농업으로까지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몬산토가 생산한 종자를 땅에 심고, 몬산토 종자에 최적화된 작물보호제를 뿌리고, 이 작물재배에 필요한 토양과 기후정보까지 몬산토가 제공한다. 이를 통해 몬산토는 인터넷 업계를 장악한 구글과 같이 세계 최고 농업국인 미국과 전 세계의 농업 생태계를 장악해 가고 있다.
몬산토는 미국 백악관의 정책 결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 9월 23일 기자가 세인트루이스 교외의 몬산토 본사를 찾아간 날, 뉴욕의 유엔본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이 참석한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몬산토의 지속가능사업솔루션 이사인 마이클 돈씨는 “로버트 프랠리 몬산토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유엔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자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정상회의는 지구온난화와 사막화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당면위기 해결을 목적으로 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용수부족과 농지고갈, 식량생산 감소 등으로 인한 기아에 대처한다. 이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신기술이 가뭄 등에 강한 GM기술이다. 몬산토의 최고기술책임자 겸 부회장인 로버트 프랠리 박사는 GM기술 관련 세계 최고 권위자다. 마이클 돈 이사를 만난 몬산토 귀빈실과 리서치랩에는 그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교외의 몬산토 크리브코어 캠퍼스 리서치랩(연구실). 치퍼가 있는 곳이다. |
몬산토 크리브코어 캠퍼스에서 자동차로 15분가량 떨어진 체스터필드 캠퍼스에서도 종자 연구는 이어졌다. 체스터필드 캠퍼스 리서치센터동에 들어서자 ‘grow more with less(적게 써서 많이 키우자)’라는 표어가 눈길을 끌었다. 몬산토의 표어였다. 인류는 현재 71억명에서 2050년까지 96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된 토양과 물을 최대한 활용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자는 말이었다. 현재는 70%의 물과 40%의 땅이 식량생산 과정에서 낭비되고 있다.
몬산토 체스터필드 캠퍼스 리서치센터 옥상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유리온실이 눈길을 끌었다. 종자회사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유리온실은 대개 지면에 붙어있기 마련. 몬산토의 지속가능커뮤니케이션 이사인 타이슨 푸르이트씨는 “땅값이 비싼 지상에 유리온실을 설치하는 것보다 지대를 아낄 수 있고, 태양열 흡수에는 훨씬 더 좋다”며 “공사 중인 그 옆의 주차장 건물이 완공되면 그곳 옥상에도 유리온실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푸르이트 이사에 따르면, 체스터필드 캠퍼스에는 이 같은 옥상 유리온실이 36개동이 있다. 연구동 5~6층에 있는 유리온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화씨 82도(섭씨 27.8도)의 열기와 습기가 느껴졌다. 유리온실 천장에 달린 나트륨등과 LED등은 태양과 가장 가깝다는 색깔의 빛과 열기를 동시에 뿜어내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는 키와 덩치가 각양각색인 옥수수를 비롯 대두, 사탕수수, 고추, 면화 등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유리온실 아래에서는 GM기술을 적용한 작물들도 자라고 있었다. 특히 체스터필드 캠퍼스 한편에 마련된 해충저항성 GM기술이 적용된 대두는 일반 대두와 극명한 대비를 보여줬다. GM기술이 적용된 대두와 적용되지 않은 대두에 이파리를 갉아먹는 ‘소이빈루퍼’란 벌레를 30마리 정도 투입한 비교실험 상자였다. GM기술로 자란 대두는 푸른색 이파리가 그대로 달려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일반 대두는 푸른 이파리가 듬성듬성 다 뚫려 바짝 말라 있었다. 그 아래로는 소이빈루퍼가 꿈틀꿈틀 기어다니고 있었다. 라라 알팬 몬산토 혁신경험가이드는 “GM기술이 적용된 대두가 해충에만 작용해 죽게 하는 단백질을 배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몬산토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에는 ‘유전자 총(Gene Gun)’ 등의 장비를 이용해 필요한 유전자를 넣고 불필요한 유전자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식물 유전자를 재조합했다. 하지만 유전자 총은 유전자 재조합에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자연에 있는 각종 박테리아를 이용해 필요한 유전자가 식물로 자연스레 옮겨가게 만드는 기술을 이용한다. 일례로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박테리아가 옥수수에 저절로 들러붙게 한다. 라라 알팬 몬산토 혁신경험가이드는 “회전식 전화기가 버튼식으로 바뀐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몬산토는 기존에 연구가 활발했던 옥수수와 대두 외에도 밀, 쌀과 같은 주곡(主穀) 연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옥수수, 대두, 밀, 쌀은 세계 4대 작물이다. 몬산토의 마이클 돈 지속가능사업솔루션 이사에 따르면, 밀과 쌀은 전체 식량공급에서 40%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GM기술 개발이 더뎌 생산성 향상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마이클 돈 이사는 “몬산토는 지난해 매출 148억달러(약 15조7000억원) 가운데 10억달러를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며 “투자금액으로는 전 세계 종자기업 가운데 최고”라고 했다.
몬산토는 각국의 인재를 스펀지처럼 흡수 중이다. 몬산토 전체 직원은 2만1000명. 본사 근무 인원은 5000명가량이다. 몬산토 본사에 근무하는 한국인 문홍석 연구원에 따르면, 몬산토 본사에는 10명의 한국인 연구원이 있다. 또 다른 한국인 임양주 연구원은 “급여나 복지 등 여러 면에서 월등하다”며 “몬산토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농업 시장 규모가 월등한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출신 연구원 숫자는 말할 것도 없다.
몬산토는 기존의 전통 육종과 GM기술 외에도 생물학제제와 정밀농업과 같은 분야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정밀농업은 향후 성장성이 기대된다. 농업 생산에 관여하는 기후와 토양성분 등 모든 정보를 인공위성과 GPS 등 취합해 ‘빅데이터’로 가공한 뒤 이를 분석해 농부들에게 수확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정보서비스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등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 농사를 짓든 이 같은 서비스를 구매해 농업 생산의 예측가능성을 높여, 식량생산에 따른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다.
몬산토의 토머스 애덤스 생명공학(BT) 담당 부사장은 “가뭄저항성 기술은 이미 상업화됐고, 현재 옥수수뿌리벌레에 적용하는 해충저항성 작물도 수년 내 상업화된다”며 “앞으로는 기후변화 등 날씨 관련 소프트웨어와 이와 관련한 애플리케이션 등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농업 정보를 이용해 컨설팅을 제공하는 농업 정보 종합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동훈 기자
미국 아이오와주 프레리시티의 GM대두 농장과 곡물엘리베이터(사진 가운데). |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루이스 교외 64번 고속도로 근교의 홀푸즈마켓. 유기농 식품 열풍을 일으킨 대형 식품매장이다. 오전 11시, 비교적 이른 시간인데도 대형 손수레를 미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매장 진열대 식품들에는 유기농, 재래식(conventional), 지역특산(local)이란 표식이 붙어 있었다. ‘NO GMO(유전자재조합)’와 같은 표기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는 식품도 있었다.
미국의 식품 시장에서도 유기농은 거대한 산업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유기농과 재래농법은 인류의 식량위기 극복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하루 벌어서 은행대출과 카드대출 상환에 바쁜 저소득층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은 전혀 못 된다. 홀푸즈마켓 등 유기농 식품점에서 유기농, 재래농법, 지역특산물 표식을 붙인 식품이 불티나게 팔리지만 이 상품들은 중산층 이상 백인들이 대상이다.
홀푸즈마켓에서 팔리는 유기농, 재래식이란 설명을 달고 있는 중남미 에콰도르와 코스타리카산 수입 바나나의 경우 파운드당 가격이 79~99센트에 달했다. 인근 월마트에서 파운드당 55센트에 팔리는 바나나에 비해 2배 가까이 비쌌다. 어차피 바나나의 경우 GM종자 자체가 없어 모두 재래농법으로 재배되지만 오가닉, 컨벤셔널, 로컬이란 꼬리표를 달면서 몸값이 급등한 것. 결국 환경단체와 좌파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유기농, 재래농법은 정작 고소득 중산층 백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식품산업이 돼 있었다. 기자를 태우고 간 흑인 기사 라이베리씨는 “홀푸즈마켓의 식품들은 너무 비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미국의 경우 식량생산자인 농부들 입장에서 유기농과 GM(유전자재조합)식품 간의 싸움은 끝난 상태였다. 아이오와주(州) 디모인 인근 프레리시티에서 1500에이커(약 606만9400㎡) 규모의 농사를 짓는 고든 와세나르(78)씨는 20여년 전부터 GM종자를 사용해 옥수수와 대두농사를 짓는다. 동네친구인 딘 테일러씨도 GM종자로 3000에이커(약 1213만2231㎡)가량의 땅에서 옥수수와 대두 농사를 번갈아 짓는다. GM종자 자체에 가뭄저항성과 해충저항성 같은 특성을 띠고 있어서 제초제와 살충제 같은 농약은 단 한 차례도 치지 않는다고 했다.
와세나르씨와 함께 가본 그의 GM옥수수와 대두 농장에는 제초제를 치지 않았는데도 잡초를 찾기가 힘들었다. 와세나르씨는 아직 수확 전인 GM옥수수와 콩을 따서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그리고 기자에게 “먹어보라”며 건넸다. 얼떨결에 받아든 팔뚝만 한 크기의 노란 사료용 GM옥수수는 알갱이가 가지런하고 실했다. 벌레가 파먹은 곳은 없었다. 입에 넣고 씹으니 옥수수의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졌다.
20여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지어온 고든 와세나르씨는 잡초와 해충으로 인해 제초제와 살충제를 늘 끼고 살았다. 그는 “살충제와 제초제를 써서 농사를 지을 때는 하루 종일 피곤하고 역한 느낌으로 고생했다”며 “GM종자를 사용한 뒤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덕분에 일손도 별로 안 들어 와세나르씨는 달랑 3명이서 1500에이커 농사를 짓는다. 인건비를 아끼는 것은 덤이다.
그는 GM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자신했다. 와세나르씨는 “우리 집 개가 20년간 매일 GM식품을 먹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자신했다. 와세나르씨에 따르면, 그가 농사를 짓는 프레리시티에서는 GM종자 사용으로 생산성이 늘어난 만큼의 경작지를 자연으로 환원시켰다. 초창기 정착민들이 옥수수 농사 등을 짓던 곳을 버펄로와 엘크 등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자연초지로 지정했다. 과거 옥수수와 대두 농사를 지으면서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려 대던 곳이다. GM기술이 그만큼 생물다양성 확보에 기여한 셈이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옥수수의 90% 이상은 GM기술을 적용해 길러낸다. 미주리주 체스터필드에 본부가 있는 전미옥수수재배자협회(NCGA)에서 만난 바이오기술 경제분석 디렉터 네이탄 필즈씨는 “줄잡아 90% 이상 미국 농부들은 GM종자 선택을 당연시한다”며 “지난해에는 평균 헥타르당 11톤의 옥수수를 생산했는데 심지어 25톤의 수확을 올린 농가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미옥수수재배자협회는 1957년 창설한 미국의 옥수수 생산자를 대표하는 최대 단체다. 미 전역에 48개 지부를 두고, 30만 옥수수 농가가 회원이다. 네이탄 필즈씨에 따르면, 미국 옥수수재배농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에이커당 20%가량 수확이 많다. 이를 통해 지난해 90억달러(약 9조5400억원)를 수출해 만성적자에 빠져 있는 미국의 산업 가운데 흑자를 올린 몇 안 되는 부문이다.
밸 기딩스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선임연구원(박사)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미 1986년부터 GM 관련 규제정책인 ‘코디네이티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운용 중이다. 미국은 농무부(USDA), 식품의약국(FDA), 환경국(EPA) 등 3곳에서 각각 농업, 인체, 환경에 위해요소를 유기적으로 감독한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등 농업 선진국들도 이를 벤치마킹해 유사한 체계를 도입했다. 잘 정비된 규제·감독 체계 아래서 미국에서는 GM 기술을 이용한 약 4만건의 현장실험이 이뤄졌고, 이 중 120~140건이 상업화하는 등 월등히 앞서가고 있다. GM종자의 경우 개발 단계에서부터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평균 13년가량이 걸린다. 종자 개발에 들어가는 평균 금액은 1억3600만달러(약 1440억원)에 달한다. 이런 까닭에 미국의 GM 기술은 우주항공, 군사 분야만큼 후발주자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앞서가고 있었다.
심지어 듀폰 같은 미국 굴지의 대표기업도 종자기업으로 변신 중이었다. 듀폰은 1802년 창업해 미국 남북전쟁 때 화약을 납품하며 사세(社勢)를 키운 회사다. 이후 나일론, 아크릴, 케블라(방탄섬유) 등 신소재를 만드는 화학기업으로 변했다. 더욱이 1999년에는 종자기업인 파이어니어를 인수해 종자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듀폰의 지난해 전체 매출 357억달러(약 37조원) 가운데 117억달러(약 12조4000억원)를 종자 분야에서 올린다. 현재 세계 최대 종자기업인 몬산토와 함께 미국의 종자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아이오와주 존스턴에 있는 듀폰 파이어니어의 존스턴 이노베이션센터에서 만난 존 아버클 연구개발담당 부사장은 “나의 할아버지는 일리노이주의 소작농 출신이었다”며 “듀폰 파이어니어에서 일하는 수천 명은 모두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로서 GM작물의 안전성에 관해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렉 다나 듀폰 파이어니어 생명공학 규제담당 이사는 “GM과 같은 안전성 잣대로라면 알러지가 있는 땅콩, 키위 등은 시장에서 진작 퇴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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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장 티롤 "산업조직론 최고 대가"
(세종=뉴스1) 민지형 기자 =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미시경제학자인 장 티롤 프랑스 툴루즈 1대학 교수(61·사진)가 선정됐다. 이로써 노벨상 6개 부분의 수상자가 모두 가려졌다.
스웨덴 노벨상 위원회는 13일 오후(현지시간) 소수 대기업의 독과점을 어떻게 이해하고 규제해햐 할 것인지를 연구한 공로로 티롤 교수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티롤 교수가 시장의 독과점을 규제하는데 이론적으로 어떤 정책이 특정한 상황에서 잘 작동하고 다른 상황에서 단점이 더 많은지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티롤 교수 연구를 통해 정부가 생산적인 기업을 창출하는 동시에 경쟁자와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됐다는 평가다. 이른바 공정거래 분야에서의 공로를 인정한 셈이다.
독점기업 규제의 문제에 천착하면서 일반적인 규제 원칙이 어떤 조건 하에서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조건에서는 이득보다 해악이 더 크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즉 가격상한제는 독점 기업에는 가격을 하락시킬 강력한 규제가 되어 당장은 싼가격의 상품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기업에만 독점적인 이득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게 티롤 교수 주장이다.
티롤 교수는 프랑스 툴루즈 태생으로 198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툴루즈 1대학의 산업경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다만 티롤 교수를 프랑스 학자로 분류하기는 어렵다는게 학계의 설명이다. 티롤 교수의 주요 업적은 산업조직론에서 저명한 교재를 썼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아울러 최근 규제관련 이론도 새롭게 정립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받으실 만한 분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가지 업적이 많고 산업조직론 쪽에서 저명한 책을 썼고 게임이론 쪽에서도 업적이 많다"며 "최근 흔히 공정거래와 정보통신산업 관련되는 이론도 많이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미시경제학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학문적 토대를 가진 중요한 분"이라며 "다만 프랑스 학자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것이 MIT에서 학위도 땄고 지금도 미국과 프랑스를 반반씩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성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티롤 교수가 쓴 산업조직론 관련 서적은 대학원 산업조직론 이론 파트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통한다"며 "이른바 산업조직론의 바이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티롤 교수의 산업조직론이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교재로 쓰일 만큼 영향력이 크다"며 "게임이론을 통해서 산업조직론을 체계화해 교과서 형식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최근에 양면시장 이런 쪽도 연구를 하셨고 공정거래 관련된 부분드로 묶음 판매같은 것에서 업적을 남기고 있다"며 "산업조직론에서 가장 대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티롤 교수가 좋은 논문은 많지만 대표적으로 손에 잡히는 업적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과거 학계에서) 이견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티롤 교수가 최고의 산업조직이론가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부연했다.
한편 노벨경제학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 기일인 12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다. 티롤 교수는 상금으로 800만 크로네를 받게 된다.
노벨 경제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한 상으로 공식적인 이름은 스웨덴은행경제학상(Sveriges Riksbank Prize)이다. 이날 노벨경제학상이 발표되면서 올해 노벨상은 6개 부문의 수상자 선정은 마무리됐다.
mjh@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제공. |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톨 프랑스 툴루즈 1대학 교수는 독과점 기업에 대한 규제 방안을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게임이론과 산업조직론의 대가로 경제학계에서는 이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거론돼 왔다. 수상 시기가 언제냐 정도가 문제였을 정도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티롤 교수의 업적으로 '기업의 시장지배력(독과점)과 규제에 대한 분석'을 제시했다. 수학적인 툴인 게임이론을 실제 기업 현실에 적용해 기업들의 행동이 사회에 해를 끼치느냐 득이 되느냐를 분석했고 기업의 행동과 시장지배력이 사회에 해를 끼칠 때는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 논리를 제공했다. 우리나라 재벌기업과 같은 대규모 기업들의 지배구조(거버넌스)를 분석하기도 했다.
게임이론 전문가인 연세대 한순구 교수는 "그동안 노벨경제학상은 미국 출신들이 대부분 휩쓸어왔는데 미국인이 아닌 프랑스인인데도 그 업적이 너무 뛰어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티롤 교수에 대해 "온화한 성품에 경제학자답지 않게 친절한 성격"이라며 "MIT에서 교수 생활도 했는데 영어에 프랑스 발음이 많이 섞여 있어 영어를 잘 못하는 아시아권 학생들은 티롤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티롤 교수는 1953년 프랑스 출생으로 올해 61세다. 1976년 파리에 있는 에콜 폴리테크니크(기술대학)와 1978년 파리도핀대학(파리9대학)에서 산업공학 학위를 받았다. 1981년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84년부터 1991년까지 MIT에서 교수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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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경제학상이 프랑스의 장 티롤(62) 툴루즈 1대학 교수에 돌아가면서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티롤의 수상은 관행화된 미국 주류 경제학계의 노벨상 독식구조를 깨뜨리며, 그동안 소외됐던 경제 석학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4일 “생전에 경제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이 의아한 학자들이 많다”며 노벨 경제학상을 놓친 수재들을 소개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놓친 수재들=노벨경제학상은 서방 특히, 미국에 집중됐다. 역대 수상자 중 미국인은 53명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영국(7명), 프랑스ㆍ노르웨이(각각 3명) 순이다. 비서양인 수상자는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이 유일하다.
노벨경제학상이 서구에 치중된 이유는 ‘태생의 한계’에 있다. 100년이 넘은 다른 노벨상보다 역사가 짧은 노벨경제학상은 스웨덴중앙은행의 창립 300주년을 맞아 1969년 신설됐다. 때문에 근저에는 친(親)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성향이 깔려 있고 여기서 벗어난 학자는 배제되는 경향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 옥스포드대의 로이 해롯(1900~1978) 교수다. 해롯은 존 케인즈의 거시경제 동학(動學) 분석의 선구자다. 개념적인 케인즈 이론을 수학과 통계를 이용해 경제과학으로 발전시킨 ‘해롯-도마 성장모델’의 창시자이고, ‘내생화폐이론’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로이 해롯 교수
또 불완전 경쟁이론과 국제경제ㆍ금융이론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노벨상은 해롯을 외면했다. 해롯의 경제동학이 자본주의 안정성에 의문을 던지는 ‘위험한 이론’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로빈슨(903~1983)도 마찬가지다. 로빈슨은 케인즈파의 정통 계승자로 독점적 경쟁이론을 구축했다. 그는 기업이 생산요소를 자유롭게 바꿀수 있는 미국 경제학자들을 정면 반박하면서 고정적인 생산 요소를 전제로 투자 이론을 전개했다. 말년에는 중국 공산주의 혁명에 동참하는 등 반(反) 자본주의ㆍ자유주의 성향을 노골화하면서 노벨상과는 더 멀어졌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모리시마 미치오(1923~2004) 런던정경대 교수가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 ‘자본론’에 나타난 경제이론을 현대경제학의 수학적 분석방법을 이용해 연구한 것이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미움을 샀다.
모리시마 미치오 교수
닛케이는 “최근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21세기 자본’을 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노벨경제학상 후보가 될 수 있는 지를 묻는다면 많은 전문가들은 ‘무리’라고 답할 것”이라며 “이것이 노벨경제학상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경제학상 45년, 시대별 트렌드는=노벨 경제학상 역대 수상자 면면을 보면 시대별 트렌드를 감지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밀턴 프리드먼, 존 힉스,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등 경제학 거장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1980년대는 경제학계 중심 인물들이 수상했다. 기업 투자이론을 분석한 ‘q이론’과 ‘토빈세’,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으로 유명한 제임스 토빈과 소득과 저축률 관계를 분석한 프랑코 모딜리아니 등 시장의 한계에 주목한 ‘케인지안’의 수상도 눈에 띄었다.
1990년대는 시장 만능을 주장하는 ‘시카고 학파’가 득세했다. 로널드 코스, 게리 베퍼, 로버트 루카스가 잇따라 수상해 미국인 독식이 가중됐다. 2000년 이후 시카고 학파의 독점은 사라졌지만, 미국 중심 수상자 선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분야 창시자나 대표자를 중심으로 한 다양화와 학제화 경향이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올해 수상자 티롤 교수처럼 “경제학과 심리학의 상호교류를 통해 탄생한 행동 경제학 등 학제적 분야가 수상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학 제국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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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블랑샤르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 IMF 본부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한국의 미래 성장 전략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잠재성장률 둔화 한국도 예외 아냐…'중진국 함정' 위험
한국의 '모방' 전략 한계에 다다라
경제구조·체질 바꿔 기술프런티어 돼야
아베의 엔저정책 수출확대 효과 미미…성공 확신 못해
[ 장진모 기자 ]
“세계 경제가 잠재성장률 둔화에 직면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창업하고 기업가가 될 수 있게 경제구조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은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올리비에 블랑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가 한국 경제에 던진 충고는 간단명료했다. 선진국에서 수입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성장 전략으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을뿐더러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블랑샤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 IMF 본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창간 50주년 특별인터뷰를 하고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모방이 아닌 혁신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MF가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는 종전 3.4%에서 3.3%로, 내년은 4.0%에서 3.8%로 내렸습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어둡습니까.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미약하고 불균형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금융위기의 그림자인 과잉 부채에 발목이 잡혀 있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은 회복세가 정체 중이고, 디플레이션(장기적인 물가 하락)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대부분 선진국과 신흥국에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것도 큰 걱정거리입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가 최근의 경기 부진을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생산성 향상이 둔화되고 동시에 노동력까지 감소해 미래 잠재성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잠재성장력이 과거에 비해 둔화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면에서 ‘구조적 장기 침체’에 직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실업을 해소하고 성장률을 높이면서 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IMF가 정부 인프라 투자 확대를 비롯해 수요 진작과 구조 개혁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미국 경제가 회복 중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여전히 성장률이 낮은 수준입니다. 미국도 잠재성장률 둔화에 직면했다고 봅니까.
“미국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선 혁신 제품, 발명품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생산성이 더욱 향상되고 강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근의 경기 회복세가 지속돼 1~2년 안에 잠재성장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에서도 경제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솔직히 말해 기술 선도국(프런티어)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기업이 선진국 원천기술을 수입해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수출하는 구조에 머물고 있습니다. 성장률을 높여 소득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려면 모방 전략에서 벗어나 혁신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한국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후진국일 때는 모방이나 선진 기술을 수입함으로써 고속성장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부가 쌓인 후에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기술 선도국이 돼야 합니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기술 혁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창의성과 이를 키울 수 있는 질 좋은 교육 시스템, 그리고 창업 활성화 등을 통해 누구든지 쉽게 기업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구조와 체질을 바꾸지 못하면 잠재성장률이 둔화되고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국 내수시장이 침체돼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재정확대 정책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에서 내수주도형 구조, 다시 말해 중소기업이 더 큰 역할을 하는 경제구조로 체질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재정확대 정책이 바람직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모델을 바꿔야 합니다.”
▷선진국, 특히 미국을 겨냥해 ‘성급한 통화정책 정상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노동시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금리를 인상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경제 회복세가 지속되고 노동시장 여건이 개선되면 Fed는 내년 중에 금리를 올릴 텐데 구체적인 시기는 경제 회복 강도가 결정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장의 최대 관심은 Fed의 금리 인상 시기입니다.
“금리 인상 시기가 내년 6월이 될지, 아니면 9월이 될지 예상할 수 없지만 금리 인상이 이미 상당 부분 시장에 반영돼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미국 장기국채 금리는 이미 오르기 시작했고, 외환시장에서도 달러 강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빠져나갔던 자금도 일부 되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파장이 작을 것이란 뜻인가요.
“과거 경험으로 미뤄보면 Fed가 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미국 금리가 상승하고 그로 인해 미국에서 빠져나갔던 자금이 유턴(U-turn)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이 압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큰 파장을 미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서 보듯이 중동 분쟁은 국제 원유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사태가 악화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글로벌 경제에 시스템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셰일 혁명’이 국제유가를 장기적으로 하락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최근 유가 하락은 대부분 공급 증대에 따른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가 주된 배경입니다. 유가를 전망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당분간 급등이나 급락세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셰일 혁명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줄여주고 에너지 가격을 떨어뜨려 미국 경제에 큰 보탬을 주고 있습니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출범 2년이 다 돼 가는데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현재로선 아베노믹스가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비세를 인상하자 경제가 다시 위축되고 있습니다. 엔저(低)의 수출 증대 효과도 크지 않고, 소비와 투자 증대도 미미합니다. 세 가지 화살로 이뤄진 아베노믹스 전략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합니다. 특히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을 밀어붙여 0.3~0.5% 수준인 잠재성장률을 1%대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IMF가 최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의 재분배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데 글로벌 경제의 ‘최후의 대부자’라는 기존 역할에 비춰보면 좀 생소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수년 전부터 소득 불균형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고 두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통계적으로 소득 불균형이 심해질수록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지속 성장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소득 불균형이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고용시장의 이중구조(정규직과 비정규직)가 소득 불평등의 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중산층이 튼튼해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결론은 소득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부의 각종 재분배 정책이 성장에 이롭다는 것입니다.”
블랑샤르 IMF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대표적 MIT 출신 경제학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거시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 경제논문 정보사이트 레펙(RePEc)에 따르면 그는 3만여명의 경제학자 가운데 ‘논문에 가장 많이 인용된 경제학자’ 11위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를 앞서고 있다. 그가 쓴 ‘거시경제학’은 한국어로 변역돼 국내 대학에서 교재로도 쓰이고 있다. MIT 경제학 박사 출신인 그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등과 함께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MIT 출신 경제학자’의 대표 인물로 꼽힌다.
△1948 년 프랑스 아미앵 출생 △1971년 파리9대학 경제학과 졸업 △1977년 MIT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1977~1983년 하버드대 교수 △1983~2008년 MIT 교수 △2008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현), 미국 보스턴연방은행 및 뉴욕연방은행 고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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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미국ㆍ유럽이 경제제재로 러시아의 목을 죄어오자 러시아가 13일(현지시간)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문과 함께 50여개의 경제협약을 맺으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난국을 타개하려 하고 있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해 외국 자본 유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중국에 S-400 미사일 시스템과 수호이(Su)-35 전투기 등 첨단 무기 수출로 경제난을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신형 잠수함인 아무르1650과 핵추진 위성과 같은 제품들의 부품 공급 검토중이다.
군사력 확충을 꾀하고 있는 중국에게도 러시아와의 첨단무기 협력은 큰 힘이 된다. 첨단무기 수출로 경제난 타개를 꾀하는 러시아와 군사력 확충을 도모하는 중국으로서는 ‘윈윈전략’인 셈이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은 1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있었던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여전히 안전하고 신규사업을 진행하려는 기업들에게 “매우 수익성있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인위적인 제재가 가해지고 있지만 이같은 제재가 곧 해제되길 바라고 있다”며 “러시아로 복귀해 다시 투자를 시작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모두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중 관계에서는 달라진다. 외자유치가 절실한 러시아로선 협상의 많은 부분에서 중국보다 수세에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의 외국인 투자 유치와 관련해 이번 정책 계획과 연관된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러시아가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중국의 투자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이 가장 원하는 원자재와 첨단무기 등 두 가지 분야에 대한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중국을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러시아 대통령실 홈페이지]
루블화 가치하락, 외국인 투자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에게 중국은 천군만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평론가 마샤 립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에서 멀어지고 이제 동쪽을 항하고 있으며 중국은 러시아의 필요에 의해 최대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13일부터 시작된 리커창 총리의 3일 간의 러시아 방문에서 러시아가 얻은 것은 50개가 넘는 에너지 및 금융분야를 포함한 협정체결이다.
청궈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관영 CCTV에 이번 3일 간의 방문이 “중국과 러시아의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원동력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사력 확충을 꾀하고 있는 중국에게 러시아의 협력은 큰 힘이 된다.
모스크바 전략기술분석센터의 중국 전문가 바실리 카신은 내년 1분기께 러시아가 S-400 미사일 시스템과 수호이(Su)-35 전투기 인도계약을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러시아는 중국에 신형 잠수함인 아무르1650과 핵추진 위성과 같은 제품들의 부품을 공급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에너지 분야에 있어선 이미 중국은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는 평가다. 지난 5월 있었던 양국간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는 30년 간 4000억달러를 받고 중국에 가스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양국간 무역수지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전세는 역전된 상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2000년만 해도 러시아는 중국으로부터 10억달러 규모의 상품을 수입하고 60억달러를 수출했다.
하지만 흑자는 적자로 바뀌었다. 지난해 러시아의 대중국 수출액은 400억달러 미만이었고 반대로 수입액은 530억달러로 크게 앞질렀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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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비용 토대 이윤 재생산 막혀
자본주의 존립 근거 부정된 사회
인터넷·재생에너지·자동물류 기반
접근·공유 중심 개방적 혁명으로
독일, 재생에너지 총발전량의 27%
유럽 이미 협력적 공유사회 진입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이 방한해 1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컨퍼런스룸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989년에 내가 25년 뒤 인터넷 이용자가 인류의 50%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을 때 그러리라고 본 사람이 몇이나 됐나? 대다수가 불가능한 얘기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 전망은 24년 만에 실현됐다.”
방한 중인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지은이 제러미 리프킨(69)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13일 그가 말한 ‘협력적 공유사회’가 “이미 시작됐다”며 텔레비전과 레코딩 업체, 대형 출판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전통적인 신문·잡지 산업 또한 급속히 사양길에 접어든 사실 등이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도래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이라고 쉴새없이 열거했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란 자본주의 체제하의 경쟁적인 기술 혁신의 결과 물품 추가 생산에 필요한 한계비용이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진 사회다. 그렇게 되면 한계비용을 토대로 생산물품에 이윤을 붙여 판매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존립근거 자체가 부정당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로 이끄는 기술혁신의 핵을 리프킨은 ‘사물 인터넷’(The Internet of Things, IoT)이라고 부른다. 커뮤니케이션 인터넷과 에너지 인터넷, 물류 인터넷을 합친 개념인 사물 인터넷은 에너지(동력자원)를 조직하는 커뮤니케이션(소통)과 물류(운송) 3분야의 혁명적 발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리프킨은 사물 인터넷이 오히려 기존 기술 격차를 심화시켜 자본주의 불균형과 이익독점(착취) 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없느냐는 질문에 “개도국에 더 기회가 많다”며 “가난한 곳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도와 중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최극빈층 어린이들도 3차혁명 대열에 이미 합류했다고 말했다.
3차 산업혁명과 신자유주의와의 관계를 묻자 리프킨은 “신자유주의는 20세기의 얘기”라며 “미국은 아직 아니지만, 유럽연합은 이미 한계비용 제로의 협력적 공유사회로 진입했다”고 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독일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가 총발전량의 27%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30%를 넘어설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1와트의 태양광발전에 60달러의 비용이 들었다면 지금은 60센트로 족하다. 처음의 고정비용만 댈 수 있으면 그다음은 거의 무료다. 풍력도 지열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투자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 결과 독일 4대 전력업체가 독일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은 7%도 안 된다. 그리고 협동조합 같은 소규모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주체가 주도하는 분산형 자급자족식 에너지체제로 이행해 가고 있다.”
공유·나눔 경제가 자본주의의 종말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상품화로 이끌어, 돈 없는 사람은 거기에도 접근할 수 없을 것이며, 사물인터넷도 결국 자본주의로 흡수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너무 낡은 생각”이라고 했다. 국가와 인종, 지역, 계층에 따라 여전히 격차를 나타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3차 산업혁명이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에” 빚어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 협력적 공유사회가 성숙하려면 40년 정도 더 걸릴 것이다. 절대로 추정이 아니다.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토대로 산출해낸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이번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난 얘기를 하면서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협력사회와 공유사회 얘기를 하는 그는 세계 도시들 시장 중에 가장 앞선 시장”이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더 제대로 하려면 “사물 인터넷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생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 마스터플랜에 따라 산업을 재배치하고 있는 프랑스 북부 산업지대 얘기를 하면서, 정보기술과 건설, 자동차 등에서 이미 앞서가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그렇게 하면 “앞으로 40년은 더 번영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이 앉은 자리 뒤쪽의 유리창을 가리키며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는 에너지 낭비형 건축물들을 다 바꾸고 전력망과 철도망, 물류망, 자동차 등도 모두 마이크로화·스마트화해야 한다면서, “그런 새 인프라를 까는 일을 모두 비숙련 노동자들이 하게 돼 엄청난 노동력 수요·취업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석유산업에 기댄 지금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끝내려 하자, 그는 한 가지 질문이 빠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 지구는? 기후변화는? (지금과 같은 생태파괴적인 산업체제로는) 100년 뒤까지 과연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물의 순환에 토대를 둔 지구 생태계에서 온도가 섭씨 1도 오를 때마다 7%의 수분이 대기 중으로 더 증발한다. 2도면 14%다. 거세지는 폭우와 폭설, 홍수, 가뭄, 혹서와 혹한, 태풍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대로는 지구 생태계가 대응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제6의 대멸종을 피할 수 없다. 금세기 중에 70%의 생물종이 멸종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런 점에서도 자원절약형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제러미 리프킨은“‘한계비용 제로 사회’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준비하는 로드맵”이라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
"당신은 곧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제러미 리프킨(69)은 말했다. 리프킨은 "나는 내년에 일흔 살이 되고 당신은 아직 30대일 테지만, 당신이 부러우면서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난 그는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 게다가 사회사상가다. 최근 번역된 책 '한계비용 제로 사회'(민음사)에서 리프킨은 충격적 전망을 내놓았다. 우리가 공기처럼 마시는 자본주의가 지금 황혼기이며 곧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등장할 것이라고 그는 썼다. 상품 생산비는 제로(0원)에 가까워지고 기업의 이윤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끝이 닥친다니 믿기 어렵다고 하자 리프킨은 "종말이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면서 "분명한 것은 새로운 경제 시스템, 즉 '협력적 공유사회'로 바뀔 것"이라고 답했다. "태양열이나 풍력은 원료비가 거의 안 든다. 남는 에너지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정보와 뉴스를 공유하고 자동차·집·옷까지 나눠 쓰고 있다."
리프킨은 "자본주의와 협력적 공유사회는 당분간 상호보완적이거나 라이벌이 될 수 있다"며 "사람들은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 온라인 교육 등으로 정보와 자산을 남과 나누기 시작했고 2050년까지는 하이브리드 경제(hybrid economy)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에는 패러독스(역설)가 있다. 자유 시장의 경쟁적 기술 혁신이 생산에 필요한 한계비용을 제로 수준으로 낮춘 결과, 시장에서 상품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자본주의 기업의 존립 근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렵사회, 농경사회, 로마제국, 봉건사회, 산업사회 등의 공통분모는 '기술혁명'이라고 했다. 커뮤니케이션·에너지·교통의 변화다. 리프킨은 "19세기 1차 산업혁명은 전보(電報)와 증기엔진, 철도가 이끌었다"며 "앞으로 두 세대에는 사물인터넷이 핵심"이라고 했다. 수십억개에 이르는 센서가 모든 기기와 전기 제품, 도구에 부착돼 촘촘한 신경 네트워크로 사람과 사물을 연결하는 세상이다.
리프킨은 "지구에서 21세기 중에 '물의 순환(water cycle)'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며 "협력적 공유사회는 지구 온난화 부담도 줄인다는 점에서 생태학적으로 효율적이며 지속 가능한 경제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박돈규 기자]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방한
13일 한국을 방문해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신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원자력발전소를 늘리겠다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잘못된 겁니다.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데 왜 굳이 비싼 원전을 짓습니까?”
13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세계적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69)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 독일은 모든 정당이 원전을 폐쇄키로 합의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발간한 책 ‘한계비용 제로 사회’(민음사)에서 사물인터넷(IoT)과 재생에너지가 이끄는 공유경제가 자본주의를 대신할 것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리프킨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전 옹호론이 최근 고개를 들고 있지만 원전 폐기물 처리와 원자로 냉각수로 인해 발생하는 물 부족 문제 등을 감안하면 원전은 경제성도 친환경성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독일을 예로 들었다. 현재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전체의 27%가량인데 화석연료 중심의 4대 독일 전력회사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리프킨은 “물류와 커뮤니케이션, 에너지를 통합한 슈퍼 사물인터넷이 한계비용을 0으로 낮춰 생산성을 극대화함으로서 세계경제를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상점에서 소비자가 물건을 살 때마다 메뉴 아래 설치된 센서가 시간대별로 각 상품의 판매현황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함으로서 각종 유통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물인터넷과 연결된 센서가 35억 개 정도인데 2030년이 되면 130조 개로 폭증하고, 사물인터넷을 통해 전 인류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예측이다.
전인미답의 공유경제 시대를 맞아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리프킨은 망설임 없이 “새로운 시대에서도 한국의 잠재력은 크다”고 말했다. 공유경제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 인프라의 우수성과 정보기술(IT) 산업에서 앞선 경쟁력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모든 기업이 달려들어 원자력과 화력 중심에서 신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에너지 믹스를 바꾸고 사물인터넷을 에너지와 물류까지 확장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새로운 인프라 구축에 40년가량이 걸릴 것이며 이 과정에서 상당한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리프킨은 14일 세계지식포럼, 15일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에너지대전’에서 주제 강연을 한 뒤 출국한다.
::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
주변의 여러 물건들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사람과 사물 혹은 사물과 사물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지능형 인프라를 말한다. 전력망이나 물류시스템은 물론이고 가전제품이나 각종 생활용품 등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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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메모 · 구술로 탈고…“판매 수익금 전액 기부
“어릴 적 나와 동생이 구두를 닦으면 선친(故 최종현 회장)께서는 100원, 마당을 쓸면 200원, 세차를 도우면 300원을 주셨다. 사회적기업이 더 많은 사회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금전적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SK그룹 최태원<사진> 회장이 직접 집필한 사회적기업 전문서적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이 14일 출간됐다. 최 회장은 2009년 한 대학에서 열린 ‘사회적기업 국제포럼’에 참석해 사회적기업을 처음 접한 후 줄곧 “사회적기업 확산은 평생의 과업”이라고 밝혀왔다.
▶사회적기업 인센티브 제도 최초 제안=최 회장은 229페이지 분량의 이 책에서 “사회적기업은 공공과 시장영역, 자선과 비즈니스 방식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전문 해결사”라면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기업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사회적기업 숫자가 부족하고, 문제 해결 역량과 성장에 필요한 투자금도 부족하다는 점을 현재 사회적기업의 한계로 꼽았다.
최 회장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전적 인센티브 제도인 SPC(Social Progress Credit)를 처음 제안했다.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그 결과와 연계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더 많은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최 회장은 “아버지의 상금은 내가 착한 일을 더 많이 하도록 하는 동기였다.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아버지의 필요를 살펴서 심부름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가치를 창출해 얻은 인센티브를 활용해 투자를 유치하거나 기업 자산으로 삼을 수 있다. 최 회장은 ”사회적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더 많은 인재가 사회적기업 생태계로 유입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옥중에서 ‘꼬깃꼬깃 메모’ 전달해 마무리 작업=최 회장은 지난해 2월 구속되기 전부터 사회적기업과 관련한 자료들을 틈틈히 탐독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관계자는 “사내 사회적기업 사업단과 주기적으로 워크숍을 열고 실제 사회적기업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면서 습득하고 구상했던 바를 정리한 것”이라며 “그동안 각종 사회적기업 포럼에 참가해 해외 석학과 기업인들과도 꾸준히 교류해왔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수감 전 책의 상당 부분을 이미 집필했고, 옥중에서 마무리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꼬깃꼬깃한 메모에 적어서 면회 온 지인들에게 전달했고, 일부는 최 회장이 구술하면 지인들이 받아적어 책으로 만들었다. SK동반성장위원회는 최 회장의 책 제작과 수정 작업을 진행한데 이어 2권 ‘SK의 사회적기업 운영사례집 행복한 동행’을 펴냈다. 138페이지 분량의 2권은 행복도시락, 행복한학교, 행복나래,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 MBA 등 SK그룹이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시도해왔던 노력을 사례 중심으로 소개했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서적 판매 수익금을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전액 활용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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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세월호法-공무원연금 개혁-쌀개방… 극단적 주장 펴는 소수 강경파 득세 온건한 다수 의견 묵살해 ‘여론왜곡’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박영선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타결되고 이틀 뒤인 2일 의원들에게 e메일로 보낸 원내대표 사퇴서에 이렇게 썼다. 정치권은 이 ‘극단적인 주장’에 휘둘렸고 국회는 지난달 30일 협상 타결 전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5개월 동안 공전했다.
당초 세월호 특별법 초안이 마련될 때만 해도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조사 활동의 효율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였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항이 돼 버렸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내에서는 정의당 당원인 유경근 대변인 등 강경파들이 의사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게 유가족들의 얘기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한 유가족은 “우리가 있을 곳은 광화문도 국회도 아니고 청와대 앞도 아니다”라며 “그분(일부 유가족 대표)들이 강압적으로 해 왔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 개혁 이슈에서도 한 공무원은 “국가 재원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연금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공적(公敵)이 된다”며 “일종의 금기어처럼 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면 우린 다 죽는다” “△△ 결사반대”와 같은 결의에 찬 문구는 스펙트럼의 선두이자 해당 집단의 대표 의견으로 다수 국민에게 인식된다. 그렇다면 스펙트럼의 나머지 부분에 있는 이들의 ‘침묵’은 암묵적 동의를 의미하는 것일까. 드러나지 않고 묵살됐던 다른 의견이 실제로는 다수 의견인 것은 아닐까.
동아일보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지난달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목소리 큰 도우미’ 실험을 설계했다. 정답에서 가장 거리가 먼 답안을 제시하면서도 강경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도우미 앞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애초의 의견을 바꾸거나 토론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써서 제출한 답안과 실험 종료 후 인터뷰에서는 강경파 도우미에게 반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취재팀은 최근 사회적으로 갈등의 핵이 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공무원연금 개혁, 쌀 시장 개방 등의 이슈와 관련해 그동안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침묵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일부 세월호 유가족과 현직 및 예비 공무원, 쌀 전업 농민의 목소리는 기존에 주목받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집단 내 강경한 주장에 드러내놓고 절충적이거나 현실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반복적인 묵살에 의한 무기력감’ ‘자칫하면 집단 안에서 소외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강경파가 침묵하는 다수에게 ‘비겁자’라거나 ‘충분히 문제를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독선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곽도영 now@donga.com·조종엽 기자
[프리미엄 리포트/강경파의 나라] [강경파에 왜 휩쓸리나/‘숨겨진 다수’의 이야기]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 그룹 실험에서 강경파 도우미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나머지 피험자들은 말이 잠시 끊기거나 좀 더 오래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그룹에 있던 피험자들은 “(도우미가) 너무 세게 주장을 하고 들을 생각을 안 하니까 더이상 말하기가 싫었다”거나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 동조하기가 싫어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인 집단 당사자들 사이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외부에 공개적으로 나서 의견을 내세우는 ‘주도파’와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이가 상당수였다. 그 이유로는 집단의 공적(公敵)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반복적인 묵살에 의한 무기력함이 가장 컸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그동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숨겨진 이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 세월호 유가족 “우리 입장만 얘기할 때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유가족 A 씨는 “집행부가 주도하는 유가족 총회에 참여율이 적어지고 있다. 다른 부모들은 ‘너무 힘들다. 끝내자’는 소리도 한다”고 말했다. 기존 집행부의 사퇴로 9월 21일 학부모 총회가 열렸지만 새 집행부는 사실상 ‘추대’되다시피 했다는 게 A 씨가 느낀 인상이었다. 대변인 후보로 3명이 나왔지만 이미 분위기는 앞 선에 앉은 이들에 의해 기존 유경근 대변인이 유력한 쪽으로 흘렀다. 결국 나머지 후보 2명은 중간에 기권했고 대변인은 표결 없이 재선출됐다.
희생된 단원고 교사 유가족 B 씨는 “저는 학생 유가족이 아니기도 하고, 대표 분들이 앞에서 정한 것들을 그냥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각 유가족들은 자기 반 학부모들의 얼굴만 겨우 알 뿐 다른 부모들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표를 뽑아야 했다. 결국은 앞에 나선 각 반 대표가 추천하다시피 하는 이들이 선출됐다. 일반 학부모들의 ‘현실적인 절충안’은 총회에서 자주 묵살되거나 공개 비판을 받았다.
A 씨는 “부모 중 3분의 1은 ‘집행부가 국회로, 청와대 앞으로 여기저기 너무 끌고다녔다’고 생각한다”며 “사회는 결국 함께 살아갈 곳이고, 우리도 이제 제정신을 차리고 현실적인 항의를 해야 하는데 앞에 나선 분들은 너무 자기 입장만 이야기하니까… ‘우리들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 공무원 “연금개혁 필요하지만…”
최근 연금개혁 토론회가 거센 반발 속에 무산되는 등 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공무원 사회 안에서도 침묵하는 이들은 있었다. 지방 공무원 김모 씨(48)는 “국가 재원이 고갈되는 일에 공직자로서 현실적인 연금개혁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간 낮은 월급을 받고 이제 퇴직 수혜만 남겨둔 세대 앞에서 이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직장 안에서 동료들끼리 이런 얘기를 하면 10명 중에 3명 정도는 동의를 하는데도 막상 공개적으로는 누구도 나서지 못한다. 노조가 거세게 이끌고 가는 분위기에서 조직 내 왕따나 공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김 씨는 덧붙였다.
올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일부 예비 사무관도 “고시 준비할 때부터 이미 연금 혜택이 약해질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며 연금개혁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예비 사무관 C 씨(26)는 “공무원 노조를 심정적으로는 응원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사실 현재의 공무원 연금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데 동감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 쌀 전업 농민 “우리 지역 농민은 관세율 찬성”
올해 말이면 쌀 관세화 유예조치가 종료돼 시장이 개방된다. 최근 ‘고춧가루 사태’ 등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관세화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일반 농민은 현재 관세가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현 관세율 513%는 10여 년을 이어온 정부와 농민 측 의견 조율 끝에 어렵게 찾은 합의점이라는 인식이 컸다. 충북 진천 농민 김동규 씨(64)는 “수년간 정부와 협상해왔고 고투 끝에 내놓은 안에 대해 ‘우리만 살자’고 무조건 관세화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우리도 처음엔 관세화 반대가 최선인 줄로만 알았지만 그게 임시 바람막이는 될 수 있을지라도 침체한 한국 농업에 기본적인 개혁안은 되지 못한다. 800여 명으로 구성된 우리 지역 농민회 대부분은 이제 현실적으로 기울고 있다”고 김 씨는 말했다.
경남 거창에서 20년째 쌀 농사를 지어온 최홍구 씨(67)도 ‘양측 입장’이 골고루 농민들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언론에 주로 나오는 일부 농민 단체는 지역에 내려와서도 ‘정부가 농업 말살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 물론 부분적으로 맞는 지적들도 있지만, 그들이 현재의 상황에서 살길을 찾아나가길 원하는 대다수 평범한 농민들의 심정을 모두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곽도영 now@donga.com·백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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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강(强)은 늘 강(强)을 부른다. 한나라당도 맞대응에 나섰다. 의원총회가 잇따라 열렸다.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은 그해 12월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일부 의원이 대치 상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의총장에서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라고 외쳤다. 이후 여의도 정치는 당론 대 당론이 맞서는 블랙홀에 빠졌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당의 의원총회는 소수 당론을 뻥튀기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게 뻥튀기된 강경 당론은 의회민주주의를 왜곡하곤 했다.
노 대통령 발언이 나오기 전 국회 상황은 그래도 타협의 여지가 있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국보법 폐지에는 반대했지만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 등의 일부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국보법 개정에는 찬성했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였다. 그해 8월까지만 해도 개정에 동조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일부 문제 되는 조항을 고친다면 국보법의 반인권적 요소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이 8월 28일 발표한 국회의원 299명 전수조사에서 보안법 개정 의견은 146명으로 폐지 의견 117명을 앞섰다.
당시 여야 정당엔 마지막 기회가 있었다. 정기국회 종료를 하루 앞둔 12월 30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김원기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회담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는 대신 ‘국가안전보장특별법’이라는 대체법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역시 의원총회였다. 천 원내대표가 어렵사리 합의안을 갖고 왔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는 막무가내였다. “한나라당 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반역”(임종인 의원) 등의 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합의안에 찬성하는 의견은 묻히고 말았다.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여야가 대립한 올해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158명)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온건파(15명)를 합하면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60%에 가까웠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의총의 결과는 늘 강경파가 지배했고, 36일간의 장외투쟁으로 국회는 개점휴업이었다.
의총을 통한 당론 결정 과정이 다수결을 왜곡할 뿐 아니라 효율성마저 잃게 만든 셈이다. 박영선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두 번의 세월호특별법 협상안을 만들었지만 의총에서 거부된 게 단적인 예다.
특별취재팀=권호·유성운·허진·정종문 기자
소수가 주도한 당론 때문에 정치권이 대립했고 국익도 무시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졌다. 우리 역사에는 이런 예가 적지 않다.
임진왜란이 대표적이다. 조선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동인과 서인에서 1명씩 선발한 통신사를 일본으로 보냈다. 심상찮은 일본을 살피라는 임무도 주어졌다. 하지만 돌아온 통신사는 당파에 따라 말이 달랐다. 정치권도 양분됐다. 치열한 토론 없이 자기 당론만 고집했다.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자 국토의 3분의 1이 폐허가 됐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론정치의 모든 피해는 죄 없는 백성이 뒤집어썼다.
붕당(朋黨)의 시작도 국익과는 거리가 멀었다. 1575년 관료 인사권을 쥔 이조전랑에 누구를 천거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김효원(동인)과 심효겸(서인)이 다툰 게 발단이 됐다. 이 때문에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이른바 ‘을해당론’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439년 전이다.
이후 조선은 동인 대 서인에 뒤이어 노론·소론·남인·북인의 사색 당파 시대로 이어졌다. 송시열(노론), 유성룡(남인), 정인홍(북인) 등 영수(지도자)가 주도한 당론정치가 판을 쳤다. 같은 당파(서인)라도 중도적인 목소리(소론)보다는 강경한 목소리(노론)가 힘이 셌다. 이런 흐름은 광복 후 현대 정치사로 이어졌다.
이현우 서강대(정치학)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들은 이승만, 박정희, 3김 등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존해 조직되다 보니 전체 의원들의 의사나 민의를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손병권 중앙대(정치학) 교수도 “미국·영국·독일 등에서는 주요 이슈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당이 조직되고, 그 안에서 지도자가 나왔다. 당론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민의와 당원의 뜻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한국은 그런 과정이 생략돼 소수 지도층에 의해 당론이 악용되곤 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의회민주주의를 고사 직전까지 몰아넣은 사건들은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지도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게 대부분이다.
1954년 자유당 지도부는 다수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제한 철폐를 당론으로 밀어붙였다. 자유당은 국회 표결에서 개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자 ‘사사오입’이라는 기상천외한 개념을 적용시켜 어거지로 통과시켰다. 69년 공화당도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위해 개헌을 ‘당론’으로 밀어붙여 관철시켰다. 박 대통령은 이후 유신 개헌과 의회 해산 등의 무리수를 뒀다.
춤추는 당론 따라 기업들도 피해자
노무현 정부에서 3년 동안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전 위원장은 재임 당시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을 대기업들에 촉구했다. SK는 정부의 이런 정책에 따라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문제는 금융사인 SK증권이었다. 당시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SK는 SK증권을 매각하려 했으나 유예기간이 2년이어서 서두르진 않았다.
그러던 중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2009년에 지주회사도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냈다. 매각 유예기간은 2011년까지 2년 더 연장돼 SK는 법안 통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야당이 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은 “대기업 특혜”라며 공정거래법 개정을 당론으로 반대했다.
재계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시절 민주당은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하는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야당이 되자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당론으로 찬성하면서도 다른 현안에 몰두하는 바람에 협상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유예기간 4년이 지났다. 공정위는 2011년 10월 자회사를 팔지 못한 SK에 과징금 50억8500만원을 물렸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정책 혼선에 의해 과징금을 물게 된 SK는 소송을 제기해 2012년 8월 승소했다. 하지만 매각협상에 어려움을 겪어 경영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했다. SK는 2012년 12월이 돼서야 지주회사 소속이 아닌 SK C&C 등에 지분을 매각해 5년 동안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후유증은 이어졌다. 지난 1월 통과된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연계돼서다. 외촉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외국기업과 증손회사를 세울 때 지분 제한을 100%에서 50%로 완화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이를 “특혜법”이라며 SK 계열사 임원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세종시 연 4조원 비효율" 경고 무시한 당론의 비극
“예산 46억원이 투입된 세종시 통합관사의 이용률은 10%대.”(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의원)
매년 국정감사만 열리면 세종시의 비효율이 도마에 오른다. 올해 국감도 그랬다. 한국행정학회는 2009년 일찌감치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유·무형 비용이 연간 4조8000억원이나 된다고 경고했지만 당론에 빠진 한국 정치는 귀를 닫았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도로 무르지도, 그렇다고 내버려 두지도 못하는 세종시의 비극이다.
‘계륵(鷄肋)’이 돼 버린 세종시는 태생부터가 정파적이었다. 대통령선거 중인 2002년 9월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건 뒤 2010년 12월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안’이 확정될 때까지의 100개월은 기나긴 당론 투쟁의 역사였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노 전 대통령은 충청권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대선 직후 행정수도 이전은 집권당인 민주당의 당론이 됐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뒤늦게 충청권 표를 의식해 숟가락을 얹었다. 문제는 수도권과 영남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였다. 2003년 11월 국회 본회의에선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위원회’ 구성안이 재석 179명 중 찬성 84명, 반대 70명, 기권 25명으로 부결됐다. 당론 대신 자유투표에 맡긴 결과였다.
비상이 걸린 건 야당 지도부였다. 2004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한나라당 홍사덕 원내총무는 “충청권 민심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최대한 빨리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했고, 의원 자유투표에 맡겼던 행정수도 이전 관련 사안을 당론으로 밀어붙였다. 당론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2003년 12월 ‘신행정수도특별법’은 재석 194명 중 찬성 167·반대 13·기권 14표로 통과됐다.
17대 국회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그러자 당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행정수도 대신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들고 나왔다.
2005년 2월 여야 지도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세종시 건설법) 처리에 합의했다. 문제는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합의안을 추인하기 위한 의원총회는 진통의 연속이었다. 당시 수도권의 이재오 의원 등은 “사실상 수도 이전”이라며 저항했다. 박근혜 대표는 “최선을 위해 노력했고 차선을 얻었다고 본다”며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독려했다. 의총에서 결론이 안 나자 당내 표결에 부쳐 ‘찬성 46표, 반대 37표’로 ‘권고적 당론’을 채택했다. 3월 2일 세종시건설법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일부 의원의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종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당론정치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각 당 지도부가 당론을 앞세우는 바람에 합리적인 논의가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새누리당의 경제통인 이한구(4선) 의원은 “당론을 내세운 세종시 논쟁에 정치색이 가미됐고 의원들 간에는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못했다”며 “정파적 논리를 없애고 여야 의원들끼리 자유롭게 토론했으면 오늘날 이 상태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권호·유성운·허진·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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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난맥 박근혜정부] 靑 인사권 ‘실종’… 주요 포스트 빈자리로 국정 곳곳 구멍
《 여권 관계자들을 만나면 국정 현안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가도 말수가 줄어드는 대목이 있다. 바로 인사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것 같지만 그 힘은 인사권에서 나온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선 인사권이 실종됐다. 정부 부처, 공공기관, 공기업 할 것 없이 수개월째 빈자리가 수두룩하다. 국정 곳곳에 ‘인사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천기 아닌 천기’를 발설했다가 여당 의원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한국전통문화대 총장 임명이 7개월째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위(청와대)에서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것. 나 청장은 뒤늦게 “(청와대가) 인사 검증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그렇게 대답하면 큰일 난다. 말씀을 조심해서 하라”고 질책했다.
인사 난맥의 가장 큰 원인은 인사권을 틀어쥔 청와대가 기민하지 않은 탓이다. 7월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실이 신설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인사 동맥경화 현상은 급기야 권력 내부 ‘암투설’로 번지고 있다. 비선 라인이 등장하고, ‘인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최근 인사 난맥은 이런 의혹에 불을 댕겼다. 새로 임명된 총무국장이 10여 일 만에 경질되는가 하면, 이헌수 기획조정실장이 ‘위’의 뜻에 따라 사표를 냈다가 논란이 커지자 반려되는 소동도 빚어졌다. 국정 전반이 인사 난맥상에 빠졌다. 》
▼ ①한체대 총장, 정부 출범후 내내 공석 ▼
亞문화개발원장도 17개월째… 권력 암투설-비선 개입설 번져
설마 하겠지만 19개월째 공석인 자리도 있다. 박근혜 정부 집권 기간 내내 비어 있었다는 얘기다. 한국체육대 총장이 그렇다. 김종욱 전 총장은 지난해 3월 물러났다. 이후 한국체육대는 선거를 통해 내부 교수 출신과 조현재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등 4명을 잇달아 총장 후보로 선출했다. 하지만 모두 교육부의 인사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탈락했다. 외부 인사까지 총장 후보에서 탈락하자 한국체육대는 손을 놓은 상태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3년여 앞두고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이 방향을 잃었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국제경기 파트 부위원장도 3개월 넘게 공석이다. 직제까지 바꿔 부위원장 자리를 신설해놓고 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계는 더욱 심각하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8월 취임하자 문체부 산하 기관들은 안도했다. 당시 무려 7곳의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임기가 끝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장관이 취임한 지 50일이 지났지만 인사는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현재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 아시아문화개발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오페라단 등 산하 기관 4곳은 최대 17개월까지 기관장 공백 상태다. 또 영화진흥위원장은 올해 3월 말, 영상물등급위원장과 한국저작권위원장은 6월 말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자가 없어 자리만 지키는 ‘시한부 위원장’이다.
▼ ②관피아 논란에 공공기관장 올스톱 ▼
강원랜드 정치외압 겹쳐 사태 악화… 주택금융公-항만公도 인선 중단
공공기관 인사에 제동이 걸린 것은 세월호 참사와 무관치 않다. 통상 부처 산하 기관이나 공기업 임원 자리는 퇴직 공무원이나 정권 창출에 기여한 정치권 인사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관(官)피아’ ‘정(政)피아’ 논란 등이 확산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강원랜드의 인사 난맥상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올해 2월 최흥집 전 사장이 강원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임하면서 사장은 8개월째 공석이다. 김성원 전 부사장마저 배임 혐의로 4월 물러나면서 강원랜드는 경영진 공백 상태를 맞았다. 하지만 강원랜드는 사장에 앞서 부사장 선임 작업에 먼저 들어갔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인선 작업에 대해 강원랜드 노조는 “6·4지방선거에서 떨어진 새누리당 후보를 사장에 선임하려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그렇다고 부사장 선임이 신속히 이뤄진 것도 아니다. 옛 지식경제부 국장 출신인 강원랜드 경영지원본부장이 부사장으로 임명될 것이 유력했지만 관피아 논란과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다시 공모 절차를 밟아 7월 말 부사장 후보를 2명으로 압축했지만 두 달 넘게 최종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 사장 공모는 이달 초 끝났다. 친박(친박근혜)계로 통하는 함승희 전 의원과 2010년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엄기영 전 MBC 사장 등이 후보군에 포함됐지만 최종 선임까지는 갈 길이 멀다.
관피아 논란으로 인선이 중단된 곳은 수두룩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은 올해 1월 이후 공석이다. 당시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의 내정설이 돌았지만 정부가 관료 출신 배제 원칙을 내비치면서 인선은 올스톱됐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직이 4개월째 공석인 것도, 울산항만공사 사장직이 3개월째 비어 있는 것도 관피아 논란과 무관치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 ③낙하산-들러리 시비… 구태 여전 ▼
파다한 내정설에 공모제 무용론… 적임자 못찾아 장고끝 惡手도
곳곳에서 ‘인사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잡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 공모제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인사가 지연되는 곳마다 누가 정권 실세의 동아줄을 잡았다는 ‘내정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8월 사장 임기가 끝난 인천항만공사의 경우 사장 공모 신청이 13일 마감됐다. 하지만 공모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으로 인천 지역에 출마한 A 씨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인사는 인사대로 늦어지면서도 적임자를 찾지 못하는 ‘장고 끝 악수(惡手)’ 패턴도 반복되고 있다. 바로 ‘보은(報恩) 인사’ 논란이다. 10일 우리은행 감사위원에는 친박연대 대변인으로 활동한 정수경 변호사가 선임돼 ‘낙하산 논란’을 빚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직 공모를 두고는 ‘꼼수 인사’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전임 이사장이 물러난 뒤 반년 가까이 공모를 하지 않던 공단은 올해 2월 28일 공모 절차를 밟아 현 이창섭 이사장을 선임했다. 문제는 이 이사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돼 2월 11일까지는 공모에 응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 이사장은 박 대통령의 지역 대선조직을 이끌었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만 인사 지체가 심각한 게 아니다. 정권 최고 실세로 통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인사를 제때 못하고 있다. 현재 기재부에는 1급만 다섯 자리가 비어 있다. 특히 현 정부의 최대 중점 추진 분야 중 하나인 공공기관 개혁 업무를 담당하는 재정업무관리관 자리가 두 달 넘게 공석이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개혁의 추진력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 수요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인사수석실을 중심으로 인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국 종합·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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