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전기 남아도는데 “원전 더 필요하다”는 정부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5-05-19 22:12:04ㅣ수정 : 2015-05-19 22:16:48
▲ “전력 충분하다” 지적에도 2035년까지 11기 추가
과소비 부르는 싼 전기료, 발전소 공급과잉 초래
충남 지역의 한 민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는 올 들어 가동률이 5%대로 떨어졌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1년 중 전기를 생산하는 날이 20일에 그치게 된다. 2008년 완공된 이 발전소는 가동률이 2013년 77%에 달했으나 지난해 41%로 떨어졌고 급기야 한 자릿수가 됐다. 전기수요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민간발전협회 관계자는 19일 “내년에는 발전효율이 높은 민간 LNG 발전소도 적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군 해안가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원자력발전소들. 정부는 원전의 발전비중을 26%에서 29%로 늘리기로 했고 원전을 현재의 23기에서 34기로 늘릴 계획이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발전소 남는데도 추가 원전 계획
국내 전력공급은 발전단가가 싼 석탄화력과 원자력발전이 기본적인 전력생산(기저발전)을 담당하고, LNG나 신재생에너지가 부족분을 메운다. 그런데 전기가 남아돌면서 LNG 발전 가동률은 2013년 67.1%에서 지난해 53.2%로 1년 새 14%포인트가 급감했다. LNG 발전소 절반이 사실상 가동 중단 상태인 것이다. 김광인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LNG 발전소 가동률은 2022년 17%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올해부터 LNG 발전소들은 대부분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13년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951만㎾를 공급할 신규 발전소 건립을 확정했다. 화력발전소 투자비만 15조6388억원에 이른다. 발전설비 과다건설은 송배전 설비 과잉투자를 부른다. 실제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전이 송배전 설비 건설에 투자한 돈은 22조5167억원이다.
하지만 정부의 6차 수급계획은 과잉전망에 근거한 과잉투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6차 때 확정된 발전소 중 상당수를 짓지 않아도 전기가 모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 내놓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사전평가’ 보고서에서 예산정책처는 신고리 3·4호기 등 발전소 17기(1573만㎾) 건설이 늦어져도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분석했다. ‘신경기~강원~신울진’을 연결하는 230㎞의 신규 송전선로 ‘신강원권 765㎸’가 늦어져도 전력부족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 송전선로는 신한울 3·4호기 등 인근 6기 발전소(680만㎾)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예산정책처 허가형 사업평가관은 “신강원권 765㎸가 당초 계획보다 2년 늦게 건설되더라도 2025년까지 설비예비율은 20%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7차 계획에서는 이미 수립해둔 원전 건설 계획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위 계획인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5년까지 원전설비 비중을 26%에서 29%까지 확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전 설비용량인 2071만㎾보다 2배 많은 4300만㎾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고리 1호기 등을 폐로하지 않는 한 원전은 23기에서 34기로 늘어난다. 우선 지난해 11월 운영승인을 받은 신월성 2호기가 올해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하고, 신고리 3·4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4기가 건설 중이다. 또 신고리 5·6·7·8호기와 신한울 3·4호기 등 6기가 추가로 건설된다. 신고리 7·8호기는 강원 삼척이나 경북 영덕 중 한 곳에 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중에서도 반핵 여론이 높은 삼척 대신 영덕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 직원이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실에서 전력수급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싼 요금이 ‘발전소 난립’ 초래
사실 발전소가 남아도는 상황은 최근의 일이다. 2003년 17%였던 전력설비 예비율은 2012년 4%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전기요금이 싸서 과소비가 이뤄진 탓이다. 2000년 이후 2012년까지 소비자물가는 45% 상승한 반면 전기요금은 3% 오르는 데 그쳤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14년 에너지통계 연보’를 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제조업의 전력사용량 증가율은 69.1%로 전체 에너지 사용량 증가율(34.0%)의 두 배에 달했다. 전기요금이 싸다보니 석유와 가스 대신 전기를 쓰는 ‘전력화 현상’이 심화됐던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세금은 6가지나 되지만 원자력이나 발전용 유연탄에는 세금이 거의 부과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은 억제하면서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 전기 과소비를 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너무 높게 잡은 ‘전력설비 예비율’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5-05-19 22:11:55ㅣ수정 : 2015-05-19 22:16:46
발전소가 남아돌게 된 것은 ‘전력설비 예비율’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행 전력설비 예비율은 22%다. 전력소비가 가장 많을 때에도 발전소의 4분의 1이 놀고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한국전력조차 적정 설비예비율을 12%로 잡고 있는 것에 비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는 2013년 2월 세운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2~2027년)에서 전력설비 적정 예비율을 22%로, 5차 계획(2010년 확정) 때보다 4%포인트 높였다. 2020년에는 설비예비율이 30.5%까지 치솟도록 했다.
지난 20년(1993~2012년)간 설비예비율이 줄곧 20%를 밑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설비예비율 22%는 전례 없는 수치다. 한전 경제경영연구원이 2012년 작성한 ‘적정 설비예비율 및 운영예비력’에서 적정 설비예비율을 12%로 잡은 것과 대조된다. 2008년 실시된 서울대 연구 결과도 12%가 적정하다고 제시했다. 미국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15% 이내, 독일과 프랑스는 13%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전력수요 전망도 과다하게 책정됐다. 6차 전력수급계획 당시 전력소비량 증가율은 연평균 3.4%, 최대전력수요 증가율은 3.5%로 예측됐다. 5차 계획의 전력소비량 증가율 3.1%, 최대전력수요 증가율 3.1%보다 높다.
하지만 2013~2014년의 실제 최대전력수요는 전망치를 크게 밑돌았다. 2013년 여름의 최대전력수요 예측은 7835만㎾인 반면 실적은 7402만㎾로 원전 4기 발전량보다 많은 433만㎾가 남았다. 지난해 여름 예측(8033만㎾)과 실적(7605만㎾) 차이도 428만㎾였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웃돌거나 비슷했던 전력소비도 2011년 이후 증가세가 크게 둔화됐다. 2013년엔 GDP 증가율이 3%였으나 전력판매량 증가율은 1.8%, 지난해에는 GDP 3.3% 증가에 전력판매량은 0.6% 증가에 그쳤다.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 설비예비율을 높게 책정했다고 설명한다. 2011년 9월15일 발생한 순환단전, 2012년 전력부족 사태도 영향을 미쳤다. 원전 안전대책 강화를 위한 예비율 3%를 포함한 최소 예비율 15%에 예측오차와 수요관리의 불확실성을 반영해 7%를 더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력수요 둔화 가능성보다 공급불안 가능성만을 강조 해왔다고 지적한다. 발전소 추가 건설을 위해 수요예측을 부풀리고 설비예비율을 과다설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 기간 중 민간기업들이 대규모로 발전사업에 뛰어들었다. 국회예산정책처 허가형 사업평가관은 “2027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3.5%로 예상할 경우 수요 증가세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정부가 과거보다 10% 이상 높은 설비예비율을 설정했다”고 지적했다.
전력의 총 공급능력에서 여름이나 겨울 성수기의 최대전력 수요를 빼 산출하는 수치로, 전력 여유가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낸다.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송전탑 주민 “수도권에 전기 보내려 마을이 제물로”
경기 광주·횡성·울진 |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입력 : 2015-05-19 22:05:40ㅣ수정 : 2015-05-19 22:13:45
ㆍ농토·마을 위로 지나가 주민들 피해·반발 불러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10년간을 싸워온 밀양 할머니들이 시위 현장에서 들고 있던 손팻말에 쓰인 문구다. 스위치만 누르면 쓸 수 있는 전기는 편리하고 값도 싸지만 집과 사무실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은 간단치 않다. 대도시에서 쓰는 전기의 대부분은 수백㎞ 떨어진 곳에서 송전선로를 타고 온다.
경북 울진 바닷가에서 만들어져 강원 횡성 등을 거쳐 경기 가평에 도달하는 ‘765㎸ 초고압 송전선로’. 송전탑이 지나는 300㎞ 구간 곳곳에서 바벨탑 같은 거대 철탑이 논을 가르거나 집과 축사 옆에 들어서 주민들의 일상을 앗아간 실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한 경북 울진의 야산에 세워진 송전탑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 등에 송전하기 위해 세운 거대한 인공 구조물들이 살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철탑공화국의 오명
지난달 14일 찾은 경기 광주 삼합리에는 ‘마징가 제트’로 불리는 높이 100m가량의 765㎸ 초고압 송전탑이 마을 입구에 버티고 서 있었다. 2006년 송전탑이 생기면서 농토를 잃거나 마을을 등지는 주민이 속출했다. 송전탑 건설을 놓고 찬반으로 갈리면서 주민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한국전력공사가 울진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에 보내기 위해 2019년까지 765㎸ 송전선로와 신경기변전소를 건설하기로 하면서 삼합리 등 주변 마을이 다시 후보지가 된 것이다. 삼합리 이장 윤천상씨(63)는 “송전탑을 또 짓는다니 마을이 아예 제물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70·80대 고령자가 대부분인 주민들은 3만원씩 추렴해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삼합리 옆 유사리 주민인 어영규씨(56)는 “농사일을 제쳐두고 엉뚱한 데 힘을 빼고 있으니 속이 시커멓게 탄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후보지 선정과 관련한 “회의록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한전은 묵묵부답이다.
9년 전 송전탑이 세워질 당시 주민들은 초고압이 뭔지,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주민의견을 수렴하거나 설명하는 자리조차 없었다. 이후 ‘밀양의 비극’을 계기로 송전탑의 문제점에 눈뜨게 됐다. ‘철탑공화국 거미줄 같은 송전선로 밑에서 우리는 살 수 없다’ 마을 입구에 주차된 소형 트럭에 붙어 있는 문구다. 농작물을 실어 날라야 할 트럭이 시위용으로 서 있었다.
■ “먼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 있는 거 알아야”
강원 횡성에는 이미 80개의 송전탑이 들어서 있다. 횡성도 새 765㎸ 송전탑 후보지로 발표됐다. 후보지인 공근면 대책위원장 조병길씨(52)의 안내로 부창리 마을에 들어서니 논 한복판에 송전탑이 서 있었다. 시야가 닿는 곳곳에 논밭을 가리지 않고 송전탑이 솟구쳐 있었다. 횡성환경운동연합 김효영 사무국장은 “송전탑이 세워진 후로는 벌이 싹 사라졌다”며 혀를 찼다.
지난달 15일 도착한 경북 울진군 북면에는 한울원전이 들어서 있다. 북면 신화리 마을회관은 반경 1㎞ 거리에 원전 6기가 있고, 4기가 추가 건설될 예정이다. 지난 30여년간 방사능과 전자파 공포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집단이주를 요구해왔지만 묵살됐다. 이장 장헌달씨는 “마을 기능이 상실된 곳에서 희망 없이 살고 있다”며 “제발 주민을 속일 생각 말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화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장헌수 할아버지(80)는 집 뒤 송전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이게(전기)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몰라. 동네라도 피해서 탑을 세워야 하는데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잖아. 이상도 하지. 마을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10명이 넘어. 다 되돌려 놓았으면 좋겠어, 옛날로.”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은 “도시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대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이거 하나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목소리 큰 싸움꾼도, 대단한 대가를 바라는 이들도 아니었다. 올해 3월 말 현재 전국에는 4만851기의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있다.
전력은 ‘W’, 전력량은 시간당 생산 전력 ‘Wh’
TV를 보는 데 필요한 전력은 평균 130.6W다. 가로 100㎝, 세로 60㎝ 크기의 태양광 패널 1장이 100W의 전력을 생산하니 2장이면 TV를 볼 수 있다. 전기에너지의 크기를 가리키는 전력은 와트(W), 킬로와트(1㎾=1000W), 메가와트(1㎿=1000㎾), 기가와트(1GW=1000㎿) 등으로 표시된다.
일정 시간에 생산·소비되는 전기에너지의 양을 ‘전력량’이라고 하는데 100W짜리 태양광 패널이 1시간 동안 생산한 전력량은 100와트시(Wh)가 된다. TV를 6시간 동안 켜두면 소비전력량은 783.6Wh다. 한국의 4인 가정은 한 달 평균 337kwh의 전력량을 사용한다.
고리원전 1호기의 지난해 총 발전량은 4538GWh이다. 1.6㎿급 발전기 24기가 설치된 경북 영덕풍력발전단지의 연간 발전량은 96.68GWh이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강력한 전자파 암 유발·소음 피해… 초고압 송전탑의 폐해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입력 : 2015-05-19 22:05:32ㅣ수정 : 2015-05-19 22:12:49
초고압 송전탑의 폐해는 심각하다. 강력한 전자파로 인체는 물론 가축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녹색당의 현지조사에 따르면 충남 서산시 팔봉면에 1994년, 1997년 세워진 345㎸ 송전선로의 100m 이내 주민 73명 중 25명이 암에 걸려 17명이 사망했다. 주민들은 1년 중 200일 정도는 소음에 시달리고, 선로에서 불꽃이 튀는 ‘코로나 현상’이 나타난다고 호소한다. 송전탑과 송전선로 부근 주민들은 토지 강제수용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원 횡성군 공근면 부창리에 사는 함성호씨의 집과 축사 바로 뒤에 765㎸ 송전탑이 세워져 있다. | 김영민 기자
왜 이렇게 많은 송전탑이 필요한 것일까. 서해안 지역을 예로 들어보자. 당진, 보령 등 충남 서해안 지역에는 26기의 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2017년까지 7기가 더 들어선다. 2013년 말 현재 충남에서 생산한 전력의 63.8%는 다른 지역으로 송전된다.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설치한 송전선로는 1470㎞에 이르고 송전탑은 4141개가 있다. 서울의 전력소비량 중 95%는 다른 지역에서 공급된다. 결국 현지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보낼 전기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현재 총연장 3만1600㎞에 이르는 송전선은 2027년 3만8600㎞로 7000㎞가 추가로 늘어난다. 불필요하게 세워지는 송전탑도 많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밀양의 비극을 불러온 신고리~북경남 765㎸ 송전선은 이미 수명이 지난 고리원전 1호기만 폐쇄한다면 세울 필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송전탑은 고압일수록 피해가 심각해 해외에서도 미국과 캐나다 정도만 765㎸ 송전탑을 활용하고 있다. 경기 광주에서 만난 윤천상씨는 “전기가 필요한 곳에 발전소를 지으면 엄청난 비용과 고통을 줄일 수 있는데 정부가 왜 현재 방식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잉 설비 → 싼 요금 → 소비 증가 → 설비 추가… 한국은 전기중독사회
글 유희곤·사진 김영민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5-05-20 06:00:01
“향후 15년간 연평균 3% 증가”
전력 수요 ‘과다예측’ 의혹 일어
▲ 발전소 증설 등 전력 정책 왜곡
‘밀양의 비극’처럼 갈등만 유발
정부가 2020년까지 전력수요가 매년 4% 늘어나고, 2029년까지는 3%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해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년)을 수립 중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지난해 전력수요 증가율이 0.6%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과다예측이라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원자력발전소 등을 새로 더 짓기 위해 수요를 부풀리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계획 실무소위원회는 전력수요가 올해부터 2029년까지 15년간 매년 3%씩 증가하고 특히 2020년까지는 연평균 4%씩 늘어날 것으로 잠정 전망했다. 또 전기요금 인상률을 물가상승률의 2분의 1 수준으로 상정했다. 이렇게 되면 요금 인상에 따른 수요억제는 어려워진다. 전력수급계획은 향후 15년간 전력이 얼마나 필요한지와 전력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공급할지를 담는 것으로 2년마다 작성된다. 7차 계획은 다음달 말 확정될 예정이다.
이런 전망대로 7차 전력수급계획이 결정될 경우 발전소의 추가 건설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둔화와 인구구조의 변화로 보면 이미 계획된 발전설비만으로도 전력공급이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현재 계획 중인 발전소 17기가 지연 준공되고,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발전소 8기의 가동이 늦어진다 해도 향후 12년간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단기 전력수요 증가율이 3%대가 된다면 당장 발전소를 착공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수요 과다예측을 근거로 한 ‘마구잡이식’ 발전소 건설은 많은 갈등을 유발해왔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건설 중이거나 준비 중인 발전소는 55기에 이른다. 이를 짓고 송전선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 2월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을 결정한 데 이어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 등에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 기간 중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2기에 대해서도 가동연장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초고압 송전탑 건립에 반대하며 주민 2명이 목숨을 끊은 ‘밀양의 비극’이 보여주듯 현재의 중앙집중식 전력공급 시스템은 지역분산형 전력 생산과 자연에너지 육성으로 전환하는 세계적 추세와 맞지 않는다. ‘발전소부터 짓고 보자’는 공급정책과 싼 전기요금으로 우리 사회의 ‘전기 중독’은 심각한 상태다.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전력정책은 불신과 반목을 키워왔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발전소와 송전선 건설계획이 밀실에서 수립되고, 이 과정에서 이권이 개입되지만 제동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녹색당과 공동으로 정부의 왜곡된 전력정책을 심층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집중 기획시리즈 ‘전기중독 사회를 넘어서’를 싣는다.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해온 에너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향후 15년간 전력이 얼마나 필요한지와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지를 담는 종합계획으로 2년마다 작성된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매출 0원 회사가 발전소 ‘딱지장사’로 주가 7배 올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5-05-26 21:56:54ㅣ수정 : 2015-05-26 22:06:32
ㆍ(2) 이권덩어리 전기사업
▲ 동양파워 ‘폐광 발전소 개발’
정부 전력계획 포함되자
포스코, 4311억원에 인수
▲ 정부, 민간 전기 고가 매입
대기업엔 ‘황금알 낳는 사업’
강원 삼척 ‘동양파워(현 포스파워)’의 석탄화력발전소 예정지는 옛 동양시멘트의 석회석 광산 부지였다. 동양그룹 자회사인 ‘동양파워’의 자산은 2012년까지만 해도 동양시멘트가 넘긴 폐광산 부지 값(247억원)을 포함해 275억원이 전부였다. 매출액은 ‘0원’이었고, 31억원의 영업손실 상태였다.
하지만 정부가 2013년 1월 발표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3~2027년)에 이 회사가 추진해온 2GW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 동양파워 1, 2호기가 포함되자 회사가치는 급등했다. 사업권 가치만 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자금난을 겪던 동양그룹은 동양파워를 매물로 내놨고, 포스코에너지가 4311억원을 주고 인수했다. 포스코는 1주당 5000원이던 동양파워 주식을 주당 3만6500원에 사들였다. 동양그룹은 폐광산 부지와 ‘발전소 딱지’(사업권)만으로 7배 넘는 장사를 한 것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이름 한줄 올린 대가는 이처럼 막대했다.
정부가 화력발전 시장을 민간에 개방한 뒤로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이 보장되는 ‘땅짚고 헤엄치기’ 사업을 벌여왔다. 이명박 정권 말기 6차 전력수급계획안 발표를 열흘 앞두고 SK, 동양파워, 삼성물산 등이 신규 발전사로 선정되면서 이들 기업의 주가가 급등했다. 동양파워 모회사인 동양그룹은 1주당 1210원(2013년 1월18일)에서 1595원(1월22일)으로 나흘 만에 30% 넘게 뛰었다. 동부하슬라파워 1, 2호기 사업권을 따낸 동부건설도 1주당 3965원(1월18일)에서 4555원(1월21일)으로 급등했다.
포스코가 원가의 7배에 발전소 사업권을 사들이고, 사업권을 따낸 기업가치가 폭등하는 것은 발전사업이 막대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자회사들이 생산한 전기에 대해서는 할인율을 적용해 낮게 매기는 대신 민간 발전소가 생산한 전기가격은 높게 쳐줬다. 2012년 한전 자회사의 유연탄 발전단가는 1kwh당 64.48원인 반면 민간발전사는 1kwh당 157.94원으로 2.5배였다. 이익이 과다하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내년부터 민간 화력이 생산하는 전기의 매입가격을 약간 낮추기로 했지만 수익성 보장구조는 유지된다.
발전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다 보니 허가가 불투명하게 이뤄졌고, 로비의혹도 불거졌다. 감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발전사업자 선정 실태’를 보면 동부하슬라파워 1, 2호기(강원 강릉)는 강원 신태백 변전소가 수용할 수 있는 발전용량을 초과하는 상황인데도 허가를 내줬다. 동부하슬라파워의 전기를 사용하려면 경기 신포천 변전소로 우회해야 하는데 182㎞의 송전선로 추가 건설이 필요하다. 동양파워는 심사과정에서 ‘용수확보’ 항목이 전문가 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았지만, 외부 평가위원들이 최고점인 2.5점을 주는 바람에 선정됐다. 외부 평가위원들이 평가·채점할 시간은 25분에 불과해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사전에 적어준 점수를 그대로 주는 일이 벌어졌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대기업 수익보장을 위해 발전소 허가를 마구잡이로 내주고 발전단가도 높게 책정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3년 2월에 민자발전소를 대폭 확대해줬다는 점은 이런 의혹을 짙게 한다. 전력 설비예비율을 22%로 과다하게 높게 잡은 것도 발전수요를 늘려 대기업에 사업기회를 주려는 차원 아니냐는 의문도 여전하다. 이런 발전소 허가잔치는 결국 전기 과잉공급으로 귀결됐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대기업에 수익을 보장해주고 발전시장에 참여시키는 전력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폐로냐, 수명 연장이냐… 고리 1호기 운명 내달 중 ‘가닥’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5-05-26 21:53:29ㅣ수정 : 2015-05-26 22:06:25
ㆍ7차 전력수급계획 촉각…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심각
정부가 6월 중 마련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관련해 국내 원전업계와 탈핵단체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2차 수명연장(계속운전) 여부에 대해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산 지역 주민은 물론 지자체와 정치권에서도 노후원전 ‘폐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으로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의 수명은 2017년 6월18일까지다. 2007년에 30년인 설계수명이 다했으나 그해 12월 1차 수명연장이 결정됐다. 한수원은 “이달 말까지 고리 1호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끝내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 평가를 한 후 주민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26일 밝혔다.
원자력안전법상 원전 수명연장 신청은 수명 만료일 2년 전까지 하도록 돼 있다. 한수원은 다음달 18일까지 원전 안전 평가보고서를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원전업계와 한수원은 노후 원전도 설비 교체 및 정비를 통해 수명을 연장하는 게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한다. 한수원은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이라도 2번까지 수명연장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원전사고 발생 시 피해가 막대한 만큼 6월 말 확정되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고리 1호기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은 폐로 준비는커녕 고리를 세계 최대의 원전단지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지의 반대여론도 높아 부산시의회는 지난달 만장일치로 고리 1호기 폐로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서병수 부산시장도 ‘고리 1호기 폐로’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심각하다. 원전 운영 중 나오는 방사성(핵) 폐기물은 크게 중·저준위와 고준위로 나뉜다.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 핵폐기물에 해당되며 방사능 강도를 줄이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10만년 이상 외부와 격리 보관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4개 원전 부지(고리·한빛·한울·월성)에 임시 보관 중이다. 2014년 말 기준 고리 본부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포화율은 80%에 이른다. 2013년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6월 말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에 대한 대정부 권고안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화력발전소 10기 들어설 ‘청정 강원’ 미세먼지 속수무책
삼척 |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입력 : 2015-05-26 21:53:37ㅣ수정 : 2015-05-26 23:06:16
ㆍ2021년까지 건설… 주민 “광산 이어 또 피해 주나”
ㆍ대기오염으로 건강 위협… 정부, 구체적 대책 미비
강원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해안에는 1980~1990년대 원전 건설을 막아낸 주민들의 ‘반핵 의지’를 담은 ‘원전 백지화 기념비’가 있다. 근덕면 일대는 2012년 다시 원전 건설 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근덕면 원덕읍에선 최근 154㎸ 송전탑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17일 찾은 근덕면 상맹방리 입구에는 ‘포스코 화력발전소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삼척에는 원전뿐만 아니라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도 들어선다.
이곳에 국내 최대 화력발전소가… 국내 최대급 규모의 화력발전소 건립이 예정된 강원 삼척시 적노동 상맹방리의 옛 광산 부지. 땅이 움푹 파인 곳에 발전소가 들어설 경우 인근 주민들에게 미칠 환경피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국내 대표적 청정지역인 강원도에는 2021년까지 화력발전소가 10기 더 들어설 예정이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포스파워(포스코에너지의 자회사)는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삼척시 적노동 동양시멘트 광산 부지에 2021년까지 발전용량 2100㎿(1050㎿급 2기)의 발전소를 짓는다고 발표했다.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중 최대 발전 용량으로 원전 2기 규모에 이른다.
상맹방리 이장 진광선씨(44)는 포스파워가 지난 2월 내놓은 ‘환경영향평가서’(초안) 사본을 내보이며 “발전소가 대기를 오염시켜 주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며 “이곳 주민들은 시멘트 광산에서 나온 먼지로 이미 수십년간 피해를 입어왔다”고 말했다. 진씨는 “발전소를 분지 지형인 광산 부지에 지으면 굴뚝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인근 마을에 곧바로 피해를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포스파워는 “굴뚝 높이를 일반 발전소보다 높게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승용차 편으로 대로변에서 10분 정도 산길을 올라가 보니 발전소 부지가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처럼 움푹 파여 있다. 움푹 파인 곳에 발전소를 지으면 굴뚝 높이가 낮아져 인근 마을의 대기오염 피해가 커질 수 있다. 포스파워는 발전소 가동을 위해 맹방리 해변가에 하역부두와 방파제, 취수로·배수로를 설치할 계획이어서 해안 침식도 예상된다. 진씨는 “발전사는 환경 피해에 대해 ‘대안을 강구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고 말했다.
‘청정 강원도’가 석탄화력발전소로 뒤덮이게 된다. 강원도에는 2021년까지 10기(9370㎿)의 화력발전소가 새로 지어진다. 발전용량으로 계산하면 현재(725㎿)의 13배로 늘어난다. 전력거래소의 예측에 따르면 강원도가 자체적으로 필요한 양의 8배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낼 예정이다. 쓰지도 않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도 석탄화력발전소는 53기(2만6278㎿)에서 2021년까지 77기(4만7968㎿)로 늘어난다.
석탄화력발전소는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해 주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강원도의 미래는 현재 화력발전소가 26기로 가장 많은 충남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예측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완주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충남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2년 8750만t, 사회적 비용은 2조7162억원에 달했다.
단국대가 2013년 충남도 화력발전소 인근 주민 285명의 건강피해를 조사한 결과 당진과 태안에서 조사대상 30% 이상이 고위험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우울과 공포·불안을 호소하는 주민은 42.3~50.4%에 달했다.
초미세먼지(PM2.5)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결과도 충격적이다. 그린피스는 3월 미국 하버드대학 다니엘 제이콥 교수 등과 공동조사한 보고서에서 “현재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초미세먼지로 뇌졸중, 폐암, 심폐질환 환자가 발생하고 연간 최대 1600명의 조기 사망자가 나온다”고 발표했다. 초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국제학술지인 직업환경의학회지에는 “수도권의 30세 이상 성인 중 초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자 수는 2010년 한 해에만 1만5346명으로 수도권 사망자의 15.9%를 차지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PM은 미세먼지를 뜻하는 ‘Particulate Matters’의 약자이고 뒤의 숫자는 미세먼지 입자의 크기다. 2.5㎛(마이크로미터) 이하로 사람 머리카락의 20분의 1~30분의 1 굵기다. 폐포에 침투하거나 모세혈관을 타고 체내 깊숙이 들어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산업용 전기, 원가 이하로 공급… 기업 과소비 조장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5-05-26 21:56:45ㅣ수정 : 2015-05-26 22:06:30
ㆍ4년간 기업 5조원 이익… 절전 땐 보조금 혜택도
ㆍ화력·원전 원료 세금 미미… 정부가 ‘전기쏠림’ 부채질
국내 전기요금은 세계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가정용은 누진제가 적용되면서 소비가 억제되고 전체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만, 산업용은 비중이 클 뿐 아니라 누진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받는 등 특혜도 주어진다. 기업들이 ‘전기중독’에 걸릴 환경을 정부가 조장해온 셈이다.
26일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4번째로 낮았다. 가정용 전기요금도 멕시코, 노르웨이에 이어 3번째로 저렴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2010년 기준)의 경우 산업용은 OECD 국가 중 7위, 주택용은 27위였다. 주택용 전기요금에 누진제가 적용된 영향으로 가정용 전기소비량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결국 소비량의 과반(2011년 기준 53.2%)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과소비를 주도해왔다. 기업들에는 특혜도 주어졌다. 한국전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원가의 85.8% 수준으로 전기를 공급했고, 이로 인해 기업이 얻은 이익은 5조23억원에 달했다. 2013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이후 요금이 다소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원가의 90%대 후반으로 공급된다. 한전은 에너지를 절약하거나 자가발전기를 가동한 기업에 2013년에만 1182억원을 지급했다. 재원은 소비자가 낸 전기요금으로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마련했다.
전기요금은 다른 에너지에 비해 낮게 유지됐다.
2011년 경유, 등유, 도시가스 가격은 2002년에 비해 각각 170%, 150%, 70%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20%만 올랐다. 요금이 싸다 보니 기업들은 등유를 쓸 일에도 전기를 썼고, 그 결과 2002년부터 2011년 사이에 등유 소비는 52% 줄어든 반면 전기 소비는 68% 급증했다.
세제도 싼 전기요금을 뒷받침했다. 화력·원자력 발전원료인 유연탄과 우라늄에는 세금이 거의 붙지 않는다. 반면 경유,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관세, 개별소비세 등 6종류나 된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이로 인한 ‘전기쏠림’ 현상을 지적하면서 “전기소비세를 도입하거나 유연탄, 우라늄 등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기요금을 싸게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요금 인상의 영향은 크지 않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3년 보고서에서 “전기요금이 5% 인상되더라도 실질 GDP는 0.09% 낮아지는 데 그친다”고 분석했다. 제조원가 중 전기요금 비중도 1995년 1.72%에서 2013년 1.45%로 낮아졌다.
값싼 전기가 석유·가스 등을 대체하는 것
다른 에너지를 사용할 곳에 전기를 쓰게 되는 현상을 ‘전력화 현상’이라고 한다.
선철은 등유를 태워 만든 열로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만들어진다. 한번 달궈진 용광로는 보통 15년간 꺼지지 않는다. 반면 전기로 열을 발생시켜 선철을 만드는 전기로는 쉽게 끌 수 있고 설비투자비가 적게 든다. 국내 제철소들은 철강 수요가 늘어나면 전기로를 늘리는 방식으로 설비를 확대했다. 전기요금이 낮다보니 전기로가 용광로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산업용 전기는 주택용과 달리 누진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한 시간대(밤 11시~아침 9시)의 산업용 요금은 kwh당 52.3원으로 주택용 100kwh 이하 사용 가구에 적용되는 kwh당 57.3원보다도 싸다. 전력화 현상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전기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제철업체들의 전기로 확대는 2011년 발생한 전력부족 사태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962개 창문에 태양광 패널… 안 쓰는 컴퓨터 저절로 OFF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입력 : 2015-05-27 22:28:23ㅣ수정 : 2015-06-01 22:22:30
ㆍ(3) 후쿠시마 이후 일본
▲ 전기 사용량 70% 줄인 ‘시미즈건설’ 사옥
햇빛 차단 블라인드 등 건물 곳곳에 절전기술
민간선 주택 리모델링 붐… 기업·지자체도 절전 동참
“오후 4시 현재 이 건물의 태양광 하루 누적 발전량은 416㎾입니다. 태양광 발전과 절전으로 탄소배출량을 79% 줄였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4시 일본 도쿄(東京)도 주오(中央)구 교바시(京橋)에 있는 시미즈(淸水)건설 사옥 2층 로비. 휴게실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 건물의 에너지절감 시스템을 소개하는 영상과 에너지 절감수치가 흘러나왔다. 모니터를 지켜보는 방문객들은 건물이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면서 다양한 절전 시스템으로 탄소배출량을 80% 가까이 줄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반원전 운동가’로 나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일본을 대표하는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 소개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시미즈건설 본사 건물의 에너지절약 시스템은 ‘작은 절약’의 ‘큰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회사 관계자가 “건물의 구조와 정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라며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빛이 잘 드는 창가에 집중 배치된 화장실 창문의 유리에는 짙은 색깔의 태양광 패널이 부착돼 있었다. 밖에서 화장실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선팅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기도 생산하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한다. 반면 사옥 내 일반 사무실의 창문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직원들이 바깥 풍경을 내다볼 수 있도록 투명소재로 돼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인 2012년 5월 준공된 이 건물의 창문에는 962개의 태양광 패널이 붙어 있다. 합계 면적이 2000㎡에 이르는 태양광 패널의 연 발전량은 8만4000㎾로, 건물에서 사용하는 모든 LED 조명의 전력을 충당할 수 있다.
22층인 건물의 창문에는 다양한 에너지절감 기술이 숨어 있었다. 햇빛을 차단하는 블라인드는 수시로 바뀌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각도가 자동 조절된다. 태양광의 양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해 냉난방 전력사용량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창문을 외벽으로부터 60㎝ 안쪽에 설치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직사광선이 바로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여름철 냉방수요가 높아지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건물 내부 사무실의 조명은 보통 700룩스의 조도인 여타 건물의 절반 이하인 300룩스로 유지돼 다소 어두웠다. 회사 관계자는 “사무실에서 주로 컴퓨터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700룩스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며 “작은 글씨를 봐야 할 경우 개인별 보조조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시미즈건설 기획실 이마무라 히데오(今村秀夫)는 “쓰지 않는 컴퓨터 전원을 자동차단하는 시스템과 일기예보에 연동해 조명·공조를 자동 조절하는 시스템 등을 통해 일반 건물에 비해 에너지 사용량을 70%까지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시민과 기업, 지자체 등을 중심으로 절전노력이 활발하다. ‘원전 재가동’을 염두에 둔 일본 정부가 에너지절감 정책에 소극적인데도 전력소비량이 10% 절감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민간·지자체 등의 자발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전기 과소비의 일본 사회가 원전사고를 계기로 ‘전기중독’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원전사고 직후 전등 끄기나 냉난방 시간 감축 등 초보적인 절전에서 시작된 일본의 절전운동은 점차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태양광 발전시스템 설치, 내·외벽 단열재 보강, 2중창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주택을 에너지절감형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 붐을 이룰 정도다.
오릭스 등 민간기업들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에 적극 진출해 원전과 화력발전 의존도를 낮출 토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오릭스는 재생에너지 분야의 발전능력을 2018년까지 원전 1기에 해당하는 100만㎾로 늘리기로 했다.
지자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도쿄도는 땅속의 열을 냉난방에 이용하는 사업에 올해 1억엔(약 9억93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도쿄도는 이 시스템으로 냉난방용 전력사용량을 30%가량 절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전력 소비량 고리 1호기 3개 맞먹어
전기밥솥만 쓰지 않아도 전력소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가정에서 연간 전력사용량이 가장 많은 기기는 전기밥솥(946.4kwh)이다. 한달 사용량만 78.9kwh로 가구당 월 평균 전력사용량(2014년 226kwh)의 35%에 이른다.
취사보다는 보온용으로 더 많은 전기를 쓴다. 시간당 소비전력은 밥을 지을 때(1036.2W)가 보온할 때(158.2W)보다 많지만 보온시간(연 3791시간)이 취사시간(연 341시간)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한 달에 226kwh의 전력량을 쓰는 가정이 전기밥솥을 사용하지 않으면 한달 전기요금은 2만8500원에서 1만4700원으로 낮아진다.
전기밥솥은 가구당 0.93개씩 1606만6000여개가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가정에서 전기밥솥으로 소비하는 전력량만 연간 152억486만kwh에 이른다. 이는 고리원전 1호기가 지난해 생산한 전력량(45억3826kwh)의 3.35배에 달한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아베 정권, 원전 재가동 위해 에너지 절감 민간 참여 억제”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입력 : 2015-05-27 22:28:14ㅣ수정 : 2015-05-27 22:42:03
ㆍ반 히데유키 일본 탈핵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원전을 재가동하는 정책을 강행하면서 에너지절약 정책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에너지절약은 민간이 이끌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의 탈핵 시민단체인 원자력자료정보실의 반 히데유키(伴英幸·사진) 공동대표는 지난 10일 도쿄 신주쿠(新宿) 사무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절전으로 전력소비량을 최고 17%까지 줄인 바 있는데 이는 대략 원전 20개의 발전량에 맞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를 계기로 더 많은 돈이 들더라도 절전형 전자제품이나 주택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기업들도 이에 호응해 절전형 제품을 쏟아내는 등 민간 차원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절전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자료정보실은 일본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쳐온 대표적인 시민단체다.
반 대표는 그러나 “원전 재가동을 전제로 에너지 정책을 짜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절전이나 재생에너지산업 육성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전력소비량 절감률은 1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여름철 절전대책과 관련해 기업과 가정에 절전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기로 하는 등 ‘느슨한 절전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반 대표는 아베 정권이 이처럼 절전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력을 많이 팔아야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전력회사들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아베 정권은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민간참여를 억제하려는 태도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민주당 정권은 원전을 모두 없애겠다고 했지만, 이후 정권을 잡은 자민당의 아베 정권은 전력업계의 반발을 수용해 원전회귀를 선언했다”면서 “선거마다 압승을 이어가고 있는 아베 정권에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바라는 일본의 에너지 정책은 2030년대에 원전 비율이 0%가 되는 ‘제로원전’의 실현에 있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에너지절약 정책을 추진한다면 절전만으로도 전력소비량을 최고 2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반 대표는 “전력소비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적극적으로 늘려나간다면 일본은 원전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면서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원전으론 지속가능한 삶 불가능… 낡은 집 고쳐 쓰며 공동체 이뤄”
이토시마(후쿠오카) |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입력 : 2015-05-27 22:25:57ㅣ수정 : 2015-05-27 22:38:25
ㆍ‘탈원전·탈도시’ 외치는 다이뉴 셰어하우스 젊은이들
일본 후쿠오카시에서 전철로 1시간가량 떨어진 이토시마시 다이뉴 마을. 도시에 살던 20~30대 청년 6명이 2년 전 이곳으로 이주해 셰어하우스를 꾸렸다. 지난달 22일 방문했을 때 타지에서 찾아온 친구를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뒤 “도시적인 삶에서 벗어나 공동체 생활을 하겠다”며 낡은 고옥을 고쳐 생활하고 있다. 요리사, 음악가, 사진가로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함께 농사를 짓고, 지역사회에서 보육봉사도 하고 있다.
도쿄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고이치 시다(30)는 “내가 사는 환경은 스스로 가꿔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전기를 원전에 의지하고, 돈 때문에 회사에 의지하면서 사는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만큼은 아니어도 원전사고를 계기로 도쿄에 사는 또래들 중에서 생각이 바뀐 이들이 많다”고 했다.
도쿄에서 이토시마시 다이뉴 마을로 이주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고이치 시다(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셰어하우스 앞에서 친구들과 활짝 웃고 있다. 이토시마(후쿠오카)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에너지 자립은 이들의 새로운 삶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셰어하우스에 태양광 패널 1개(발전용량 50W)를 설치해 휴대폰 충전에 쓴다. 고이치는 “태양광 패널 설치비용이 4만엔(약 36만원)으로 비싸다”며 “친구로부터 50W 패널 10개를 받기로 해 앞으론 전기의 절반 정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이토시마 인근 사가(佐賀)현에 있는 원전의 재가동 반대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일본 사회에 ‘원전으로는 지속가능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고이치처럼 에너지 자립을 실천하기 위해 도시를 떠나는 이들도 늘어났다. 한·일 청년담론 연구자인 후쿠시마 미노리(福島みのり)는 <조용한 전환>이란 책에서 “3·11을 계기로 일본 청년들이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계맺음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민들이 33년째 원전 건설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이와이시마에는 원전사고 이후 30~40대 20여명이 섬으로 이주했다. 지난달 21일 이와이시마에서 만난 호타 게이스케(49)는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시에 살다가 3년 전 가족과 함께 이 섬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와이시마의 원전 반대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꿀벌의 날갯소리와 지구의 회전>을 보고 섬의 매력에 빠졌다. 섬에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매주 월요일이면 열리는 원전 반대집회에도 참석하고 있다.
요시카와 다카코(40)는 이와이시마로 이주한 뒤 태양열을 이용한 ‘솔라 쿠커’(solar cooker)로 요리하는 ‘자연주의 식당’을 열었다. 그는 “도시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소비를 많이 하는 삶이 환경이나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섬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주민들은 석유나 가스, 전기를 가급적 쓰지 않는다”며 “도시에서도 어렵겠지만 조금씩 삶의 변화를 주는 노력을 하면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420명 사는 섬 “원전 도움 안 받겠다” 에너지 독립선언
이와이시마(야마구치) |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입력 : 2015-05-27 22:26:08ㅣ수정 : 2015-05-27 22:42:01
ㆍ‘탈핵 섬’ 이와이시마
▲ 33년째 인근 섬 원전 반대
‘후쿠시마’ 이후 자립 결심
▲ 태양광 발전소 3곳 설치
선박엔 충전용 패널 달아
“느리지만 꾸준히 갈 것”
배에서 내려 선착장을 나서자 부둣가에 ‘원전 절대 반대’라는 글귀가 적힌 낡은 간판이 보였다. 지난달 20일 일본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에서 기차와 배를 갈아타고 4시간 걸려 닿은 이와이시마(祝島)의 ‘탈핵의 섬’다운 첫인상이었다.
이와이시마에서 자연주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요시카와 다카코가 ‘솔라 쿠커’로 물을 끓이고 있다. 우산처럼 보이는 게 솔라 쿠커다. 이와이시마(야마구치)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야마구치(山口)현 가미노세키초(上關町)에 속한 여의도 두 배 남짓한(7.6㎢) 이와이시마는 인구 420여명, 평균 연령 79.5세의 초고령화 섬마을이지만 탈핵을 염원하는 이들에게는 ‘성지순례 코스’로 통한다. 33년째 원전 건설 반대 운동을 해온 섬 주민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2011년 ‘에너지 100% 자립 섬’을 선언해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아왔다. 가난하고 노령화된 섬마을이 이루기 쉽지 않지만 ‘느리지만 꾸준히’ 꿈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1982년 주고쿠(中國)전력은 이와이시마에서 3.5㎞ 거리에 있는 섬에 137만3000㎾ 규모 원전 2기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와이시마 해변에서 건설 예정지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깝다. 가미노세키초 8개 어업협동조합(어협) 중 7개 어협은 원전 건설에 동의해 125억엔(약 1126억원)을 지원받았지만 이와이시마 주민들은 거부했다. 주민들은 그해부터 매주 월요일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원전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요즘도 40~50명이 꾸준히 집회에 참여한다. 1219번째 집회가 예정돼 있던 이날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취소됐다.대대로 어업과 비파(과일의 일종) 농사를 하며 안온하게 살아온 섬 주민들은 주고쿠전력의 원전 건설 계획이 발표되자 섬의 평화가 깨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른 지역 원전을 견학하고, 섬 출신의 원전노동자들을 만나 정보를 수집한 끝에 원전이 들어설 경우 어업이 불가능해진다는 결론에 이르자 원전 반대를 결의했다. 타지에 나갔다 “원전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귀향한 야마토 사다오(65)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1985년부터 도민회 대표를 맡아 2011년까지 원전 반대 운동을 이끌었고 지금은 아들 다카시(37)가 ‘에너지 100% 자립 섬 만들기’ 프로젝트의 사무장을 맡고 있다. 다카시 역시 오사카로 나갔다가 2000년 귀향했다.
선착장에서 5분쯤 떨어진 도민회 사무실을 찾았더니 한쪽 벽은 ‘이와이시마를 지키자(祝島をまもれ)’ ‘이와이시마 원전 안돼(祝島に原發はダメ)’라고 쓰인 플래카드와 일본 전역서 보낸 성원의 엽서들로 가득했다. 도민회 대표 시미즈 도시야스(60)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가미노세키 원전은 건설심의가 중단됐지만 아베 정권이 원전 재가동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어 안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이와이시마 전경 이와이시마(야마구치)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주고쿠전력은 2009년 원전 반대 집회로 공사를 방해했다며 주민 4명을 상대로 4800만엔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시미즈는 “소송은 주민들의 반대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라며 “원전건설 계획을 철회할 때까지 반대 집회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980년대 1300명이던 주민이 420여명으로 줄어든 데다 고령화가 심각해져 끝까지 관철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일본을 충격 속에 빠뜨린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소송 문제로 의기소침해 있던 주민들을 일깨웠다. 주민들은 탈원전이 자신들만의 일이 아님을 확인하고 기운을 차렸다. 사고 석 달 뒤인 2011년 6월 도민회는 ‘에너지 자립 섬’ 계획을 선언하고 사단법인 ‘천년의 섬 만들기’를 만들어 실행에 나섰다. 후원자들로부터 소득의 1%씩 섬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기부를 받아 추진한다. 현재 1100만엔(약 9900만원) 정도가 모여 마을 3곳에 2㎾, 6㎾, 10㎾급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다. 선박 13척에 선박 배터리 충전용 태양광 패널도 달았다.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는 전력회사에 되팔아 수익금을 재생에너지 확대에 투자하고 있다. 올해는 풍력발전에 착수한다.
이와이시마 부둣가 창고에 ‘원전 절대 반대’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 있다. 이와이시마(야마구치)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하지만 에너지 자립화의 속도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 농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가난한 섬마을 주민들이 정부나 자치단체 지원 없이 기부만으로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기란 처음부터 버거운 목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주민 전체의 의견을 듣고 뜻을 모아야 운동의 뿌리가 튼튼해진다고 주민들은 생각한다. 야마토는 “태양광 패널 설치를 위해 산을 깎는 것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다”며 “좋은 취지라도 주민 합의 없이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차근차근 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탈원전과 에너지 자립은 특별한 구호나 이벤트가 아니라 섬 주민들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그저 조상이 물려준 아름다운 섬을 지키고 싶을 뿐.” 2박3일간 섬에 머물며 만난 주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중국, 태양광·풍력 전폭 지원”… 재생에너지, 원전의 10배
우시·치둥·상하이(중국) |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5-06-01 22:29:42ㅣ수정 : 2015-06-01 22:52:16
ㆍ(4) 해외의 자연에너지 현장
ㆍ우시시 구보타 공장 옥상의 태양광 발전소
▲ 태양광 패널 빽빽이 설치
생산 전력 30%는 판매
▲ 정부, 태양광 전폭 지원
일조량 등 자연조건 유리
발전량 1년 새 170% 늘어
중국 장쑤성 우시시의 일본 굴착기 회사 구보타 공장 옥상은 빽빽이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태양광 셀 60개로 구성된 패널 8808장이 1만4092㎡에 이르는 2층 건물 옥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낮 기온이 25도를 넘나들 정도로 무더웠던 지난 4월22일 현지 직원들은 1주일 전 설치공사를 마친 태양광 인버터가 정상 작동하는지를 점검하고 있었다. 태양광 인버터는 태양전지로 만든 직류 전기를 교류로 바꾸는 장치다.
총 2.23㎿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의 70% 이상은 공장의 자체 전력으로 쓰고, 약 30%는 중앙전력망을 통해 다른 사업장이나 가정에 판매한다.셀과 태양전지는 한국 업체 한화큐셀의 치둥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약 120㎞ 떨어진 한화큐셀 치둥공장은 구보타 태양광 발전소를 20년간 운영하면서 전기판매금의 10%를 임대료 형태로 받게 된다. 홍정의 치둥공장 상무는 “중국이 2013년부터 세계 최대 태양광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부품 판매부터 발전소 설치에 이르기까지 사업기회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 못지않은 ‘원전대국’의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 2월 현재 중국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가동 중인 원전은 23기, 건설 중인 원전은 26기에 이른다. 중국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한국에도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우려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중국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대에 그친다. 중국은 원전과 석탄화력에 치우친 한국과 달리 재생에너지 비중을 무서운 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중국전력기업연합회의 ‘중국 전력산업 현황과 전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중국의 발전 설비량은 전년보다 8.7% 늘어난 1360GW, 발전량은 3.6% 증가한 5조5500억kwh였다. 이 중 태양광, 풍력, 수력 등 비화석에너지 발전량은 전년보다 19.8% 늘어난 1조2494억kwh였다. 전체 발전량의 22.5%에 해당한다.
태양광만 보면 설비용량은 67% 증가한 2652만㎾, 발전량은 170.8% 늘어난 231억kwh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국이 2022년 전후로 유럽의 태양광 시장을 추월해 2030년에는 세계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 중 중국 점유율이 23%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우시시의 일본 굴착기 회사 ‘구보타’ 공장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태양광발전으로 생산된 전기의 70%는 공장을 돌리는 데 쓰고 30%가량은 외부에 판매한다.
중국 태양광 발전의 빠른 성장은 자연조건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일조 시간과 복사량 기준으로 토지를 5등급으로 나눌 경우 중국은 1~3등급 지역이 전국 면적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전력망 회사가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의무적으로 구매하는 ‘재생에너지법’을 2006년 마련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1차 에너지 소비에서 비화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15%로 높이고 석탄 비중은 62% 미만으로 억제할 계획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태양광 발전 기업 산로능원집단 엘리스 펑 부장은 “중국 정부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도 태양광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며 “올해 중국 태양광 신규 설비 목표량이 원전 18기 분량에 이르는 17.8GW이지만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원전 발전 비중이 높은 국가로 알고 있다”면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원전은 안전하지 않은 발전 방법이라는 것이 입증됐고, 석탄은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일으키는 만큼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 통계를 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는 각각 1310㎿와 5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최저 수준이다. 양성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태양광 시대가 머지않았지만 국내 전력산업은 여전히 화석연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정부와 관련 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태양광 사업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둘쑥날쑥한 재생에너지 안정적 전기공급 가능케
LG화학 익산공장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22.7㎿h의 전력량을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장치(ESS·Energe Storage System)’가 가동 중이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저장한 뒤 필요할 때 사용하는 차세대 축전기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기상상태에 따라 전력생산이 들쑥날쑥한 단점이 있지만 ESS와 연결하면 전기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ESS 기술이 발달하면 재생에너지도 원전이나 화력을 대체해 안정적인 전력원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럽·미국 등 재생에너지 선진국들은 ESS 개발과 보급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달 초 전기자동차로 유명한 미국 기업 테슬라는 가격을 3000달러 수준으로 낮춘 가정용 ESS ‘파워월’을 내놨다.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ESS의 가격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발전차액지원제, 재생에너지 보급 늘려… “한국도 성공할 수 있어”
아헨(독일) |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5-06-01 22:25:30ㅣ수정 : 2015-06-02 13:06:36
ㆍ‘아헨모델’ 설계 주역 파벡
독일 중서부에 위치한 아헨시는 갈탄이 많이 생산되는 루르공업지대에 속한다. 라인강을 따라 독일 남부에서 중서부로 이동하는 길에는 핵·화력 발전소들이 증기와 연기를 뿜고 있었다. 루르공업지대에 접어들수록 풍력과 태양광 발전소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기묘한 동거다.
하지만 5년 뒤 재생에너지는 최종 소비전력의 35% 이상을 담당하게 되고, 2022년에는 독일 전역 핵발전소 17기가 모두 문을 닫는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에는 광공업도시 아헨의 역할이 컸다. 아헨에서는 전력회사가 태양광전기를 의무적으로 높은 가격에 사들이는 조례가 1992년 세계 최초로 제정됐다. ‘발전차액지원제도(FIT)’, 또는 ‘아헨모델’이라고 불리는 제도를 설계한 주역이 아헨 시민단체 ‘태양에너지지원협회’의 볼프 본 파벡 사무국장(80·사진)이다. 지난 4월29일 방문한 태양에너지지원협회는 교회건물을 빌려 쓰고 있었다.
파벡 사무국장은 1990년대 초 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아헨시가 FIT를 도입하도록 시의회를 설득했다. 전력회사인 아헨도시에너지공사의 반대가 컸지만 지역 여론은 찬성으로 기울었다.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들이는 데 필요한 추가 재원은 전기요금을 올려 마련키로 했다. 파벡 사무국장은 “태양광 발전을 늘리려면 집주인들이 지붕에 패널을 설치하도록 해야 하는데 설치·수리비 이상의 경제적 유인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아헨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어나자 독일 연방의회는 2000년 녹색당 한스 요셉 펠 의원 등의 주도로 FIT를 기반으로 한 재생가능에너지법(EEG)을 통과시켰다. 2015년 6월 현재 독일에서 10㎾ 미만의 태양광 발전 사업자가 전력회사에 전기를 판매할 경우 20년간 1kwh당 12.40유로센트를 받을 수 있다.
파벡 사무국장은 “독일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산업이 있어 에너지 시스템 전환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악조건 속에서도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려 ‘원전 제로’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가 성공한다면 한국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2001년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시행했다가 2012년 폐지했다.
■ 특별취재팀 경제부 김희연·이재덕, 전국사회부 김향미,산업부 유희곤 기자 윤희일 도쿄특파원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시민들, 공정률 98% 원전 건설 중단시켜… 정부도 에너지 절감 지원
이유진 | 녹색당 공동위원장
입력 : 2015-06-01 22:29:33ㅣ수정 : 2015-06-01 23:37:39
ㆍ대만에선
인구 2300만명의 대만은 원자력발전소 6기를 가동하고 있다. 진산과 궈성, 마안산 3곳에서 각각 2기씩 운영 중이다. 대만 정부는 북부 궁랴오 지역에 2000년부터 제4원전 2기를 추가로 짓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시민 20여만명이 새벽까지 거리시위에 나서는 등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공정률 98%에 이르던 원전 건설은 중단됐다.
제4원전은 수도 타이베이에서 차로 불과 50분 거리에 있다. 안개가 잔뜩 낀 궁랴오 지역은 한국의 원전지역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한적한 바닷가 어촌마을이다. 반대운동을 이끌어온 주민 대표는 “공사가 시작된 뒤 해안 모래가 유실되는 등 환경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와 대만전력은 보상금으로 지역 주민을 갈라놓았고 공동체는 무너졌다”고 말했다.
녹색공민행동의 훙션한 부비서장은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제4원전이 문제투성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대중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을 비롯해 학생과 시민들이 반대집회에 적극 나서자 정부가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의 탈핵운동은 원전 건설 중단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 전환 운동 단계로 진입했다. 전력소비량이 급증하면 원전 추진파들이 제4원전 가동을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탈핵’을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활동가들은 올 초 서울을 2차례 방문해 서울시가 추진 중인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조사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원전 1기분의 전력을 줄인 수요관리 정책이 대만에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만의 언론들이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대만 정부도 에너지 절감 지원에 나섰다. 경제국이 20억대만달러(약 722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19개 지자체가 에너지 절약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도록 했다.
시민사회는 정부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22일 ‘지역에너지 전환 훈련 워크숍’을 개최했다. 전국에서 모인 60여명의 탈핵운동가들이 지역 에너지 전환정책과 원전 하나 줄이기를 주제로 장장 8시간에 걸쳐 발표와 토론을 했다. 활동가들은 워크숍에서 19개 지자체가 발표할 절약 계획안을 비교·분석하는 한편 지역 에너지 조례 제정운동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제4원전의 건설 중단은 한국으로 치면 운영 승인 심사를 앞둔 신고리 3호기를 중단시킨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반대 여론은 높지만 신고리 3호기 반대 여론은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대만 활동가들에게 “대도시인 부산에 현재 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앞으로 6기를 추가 건설해 모두 12기가 될 예정”이라고 한국 상황을 전하자 모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한국이 처한 심각성을 더 실감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시민들 “우리 손으로 전기 생산” 거대 전력회사 물리쳐
쇠나우(독일) |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5-06-01 22:25:46ㅣ수정 : 2015-06-02 07:46:05
ㆍ시민발전소 세운 독일 쇠나우를 가다
▲ 체르노빌 사고 목격 후
‘탈핵’ 결심… 11년간 투쟁
▲ 마을 지붕마다 태양광 패널
독일 전역 15만명에 공급
수익의 4% 조합원에 배분
나머진 재생에너지에 투자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에서 스위스 바젤로 이어지는 흑림(黑林)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쇠나우’라는 마을이 나온다. 지난 4월27일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인구 2500명의 작은 마을 쇠나우는 현 독일 축구대표팀 감독 요하임 뢰프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주민들이 대형 전력회사와 맞서 싸워 전력 배전권을 독일에서 처음으로 인수한 ‘에너지 혁명의 성지’로 유명하다.
쇠나우의 시민발전소 ‘EWS’는 태양광 패널을 지붕 위에 얹은 1층짜리 패시브하우스(에너지절약형주택)와 가정집을 개조한 3층 건물이 전부다. 마을 주민이 생산한 전기를 사들여 독일 전역에 공급하는 배전 업무를 주력으로 한다. 주택 지붕마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고, 상점들 출입문에는 ‘남쪽 쇠나우에서 온 전기를 사용한다’는 문구가 적힌 태양 그림 스티커가 붙어 있다. 쇠나우의 첫인상은 ‘재생에너지 생산·공급 시스템’이 최적화돼 있는 마을이라는 느낌이었지만 이를 이뤄내기까지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EWS의 홍보책임자인 탄야 가우디안은 “원전 전기를 공급하는 대형 전력회사를 내쫓고 시민발전소를 만들기까지 11년에 걸친 투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독일 쇠나우의 케밥가게 출입문에 ‘쇠나우에서 온 전기를 사용한다’고 쓰인 태양그림 스티커가 붙어 있다. 쇠나우(독일) |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 대기업에 맞선 무기 ‘쿠키와 잼’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 낙진이 1700㎞ 떨어진 독일 남부에까지 넘어오자 쇠나우 마을은 공포에 휩싸였다. 방사성 요오드로 인한 갑상샘암 발병이 늘었고, 아이들 사망률도 높아졌다. 위기감이 커지면서 의사, 변호사, 경찰 등 쇠나우 주민 9명이 ‘원자력 없는 미래를 위한 부모들’ 모임을 결성하고 원전반대·절전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현재 EWS 공동대표인 우르슬라 슬라덱도 교사였다.주민들이 가세하면서 운동은 시민들이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쪽으로 확대됐다. 소형 열병합 발전기를 보급하는 한편 마을 어귀에 방치돼 있던 소수력 발전설비도 재가동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전기는 배전 독점권을 쥐고 있던 전력대기업 ‘KWR’에 판매해야 했다. 쇠나우 주민들이 발전은 물론 배급까지 자립적으로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KWR는 1991년 지방의회에 향후 20년간 배전 독점권을 보장해주면 매년 2만5000마르크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지역의회가 제안에 응하자 주민들은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독점권 계약 저지를 위한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독점권 연장을 반대하는가’를 묻는 투표에 ‘네’라는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Ja(네)’라고 쓰인 하트모양 과자를 만들어 돌렸다. 주민 75%가 참여한 투표에서 55%가 독점권 연장에 반대했다. 첫 번째 승리였다. 주민들이 세운 시민발전소 EWS가 4년 뒤 배전업체로 선정됐지만 이번엔 KWR가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EWS의 인가를 취소하고 KWR가 전기를 공급하는 데 찬성하는가’를 묻는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주민들은 ‘NEIN(아니요)’이라고 쓰인 잼을 돌렸다. KWR를 지지하는 칫솔 제조업체는 ‘EWS가 전력을 공급하면 비싸지고, 불안정해진다’는 전단과 칫솔을 돌리며 맞섰다. ‘칫솔 대 잼’의 싸움이었다. 다행히 투표자의 과반(52.4%)이 ‘잼’을 선택했다.
투표에선 이겼지만 EWS가 전기를 공급하려면 KWR의 배전망을 사들여야 했다. 870만마르크(약 54억원)라는 막대한 금액을 지급하기 위해 조합원을 모으고,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다. 이후 KWR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사실이 판명되면서 EWS는 1997년 3월 KWR의 배전망을 580만마르크(약 37억원)에 인수해 11년3개월에 걸친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JA(예스)라고 적힌 하트모양 쿠키
독일 쇠나우의 교회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 이재덕 기자
■ 비싸도 태양광 전기 쓰는 소비자
흐렸던 하늘이 오후 들어 개기 시작하자 마을 언덕 위 교회 지붕이 반짝거렸다. 51.5㎾ 전력을 생산하는 마을의 첫 태양광 패널이다.
안내판에는 ‘쇠나우의 창조 윈도’라고 쓰여 있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창이자,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여는 창이라는 뜻이다. 당초 EWS는 외부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들여 마을에 공급했다. 1년 뒤, 1848년 혁명 150주년 마을 행사에서 EWS 조합원인 피터 목사가 80여년 된 교회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EWS에서 시작한 전력혁명을 완성하겠다’는 이 선언이 기폭제가 됐고, EWS가 재생에너지를 비싼 가격에 사들이면서 마을 내 태양광 패널 설치가 확산됐다. 현재 생산자들은 3500여명에 이른다.
EWS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주식 100%를 소유한 협동조합 산하 주식회사다. 수익의 4%를 조합원 4000여명에게 배분하고, 나머지 96%를 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 등에 투자한다. 주민들이 집에서 생산한 태양광 외에도 마을 반경 5㎞ 내에 열병합, 수력, 풍력 발전소를 설치해 전기를 생산한다. 전기요금은 비싼 편이지만 이 회사의 전기를 쓰는 소비자는 독일 전역에 15만명에 이른다. 탄야 가우디안은 “EWS의 투쟁 과정을 지켜본 독일 시민들이 EWS를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 회원은 전기요금으로 한 달 기본요금 6.9유로 외에 1kwh당 26.27센트(재생에너지 지원금 0.5센트 포함), 27.35센트(재생에너지 지원금 1센트 포함), 28.54센트(재생에너지 지원금 2센트 포함)를 선택해 지급한다. 회원이 소비하는 전력은 1년 평균 2417kwh로, 독일 일반 가정 평균 소비량인 3473kwh보다 30%가 낮다. 필요한 만큼만 전기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마을에서 케밥집을 운영하는 터키인 술탄도 2년 전부터 쇠나우 전기를 쓰고 있다. 점심때를 맞아 부지런히 케밥을 만들던 술탄이 말했다. “조금 비싸지만 낸 전기요금이 되돌아와 마을을 풍요롭게 하지요. 저는 전기도 케밥에 들어가는 채소도 쇠나우에서 나온 것만 고집합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태양광으로 두부 만들고 고추 빻고… “읍내 안 가 돈 절약”
임실 |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5-06-11 21:48:58ㅣ수정 : 2015-06-11 22:38:14
(5) 에너지 자립 꿈꾸는 마을들
ㆍ주민 주도로 에너지 절약 실천하는 임실 중금마을
▲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시작
환경에 대한 자각 싹트며
태양광 발전 자연스레 정착
두 집 건너 한 집 태양광
전북 임실의 중금리(중금마을)는 31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바로 옆의 화성리, 금당리와 함께 임실치즈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달 7일 중금마을에 들어서자 태양광 패널을 올린 집들이 우선 눈에 띄었다.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된 마을 도서관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은 “학교 끝나면 방과후수업으로 항상 여기에 온다”고 말했다. 인근 기림초등학교 학생들은 ‘바이오 연료로 움직이는 경운기 타기’ 등 친환경 체험학습을 하러 마을을 찾는다. 마늘밭에서 호미질을 하던 마을 아낙은 “화학비료 없이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마을 공동텃밭”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일 하늘에서 바라본 전북 임실군 중금마을. 사진 왼쪽에 위치한 방앗간과 사진 가운데 붉은 돔 지붕의 도서관, 그 바로 뒤 마을회관 등 공공시설과 주택 10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중금마을은 전 가구의 3분의 1인 10가구가 태양광 발전을 한다. 2010년 정부의 ‘그린 빌리지 사업’ 보조금을 받아 가구당 3㎾짜리 태양광 패널이 설치됐다. 대부분 실패로 끝난 ‘녹색마을’과 달리 지역 시민단체인 ‘전북의제21’과 마을 주민이 보조금 사용 방식에 대한 원칙을 정하고 사용처를 결정했다.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기 보조금은 월 전력 사용량이 350kwh 이상으로, 마을에서 상대적으로 젊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했다. 자부담은 100만원으로 정했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집이 발전설비를 갖춰야 발전기 설치비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을 이용하지 못하는 가난한 독거노인들을 위해서는 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마을회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중금마을 방앗간은 할머니들이 텃밭에 심은 콩을 수확해 3000원짜리 ‘우리콩두부’를 생산하는데 이곳에도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두부를 만들 때도, 고추나 쌀을 빻을 때도 태양에너지를 쓴다. 마을 주민에게는 비용이 ‘공짜’다. 지역 시민단체인 ‘전북의제21’에서 활동하다 이곳에 정착한 김정흠씨(49)는 “할머니들이 고추를 빻으러 읍내 방앗간에 가려면 왕복 버스요금 2400원을 내야 하는데 이 비용이 줄었다. 그만큼 탄소 배출도 줄어든다.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며 웃었다.
통상 농촌 마을의 태양광 발전기 설치사업은 정부 보조금으로 진행된다. 자치단체가 보조금을 받아 농촌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면 전기요금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민들은 환영한다. 하지만 태양광으로 아낀 전기요금만큼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태양광 발전 설비가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비 부담 때문에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채 관이 주도하는 보조금 사업의 폐단이다.
하지만 중금마을은 시작부터 달랐다. 2008년 ‘쓰레기 분리수거’ 사업부터 손을 댔다. 주민들은 마을 곳곳의 쓰레기 현황을 조사하고 빈 포대에 ‘농약병’ ‘농약 봉지’ ‘병뚜껑’ ‘깡통’ 등의 푯말을 붙인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폐품은 팔아 마을기금으로 썼다. 이후 공터에서 쓰레기를 태우거나 길에 농약병을 버리는 일이 차츰 사라졌다. 쓰레기가 줄어들자 지자체 수거차량의 방문도 줄었다. 김씨는 “에너지 절약과 전환은 시설만 그럴싸하게 갖춰놓는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쉬운 일부터 조금씩 주민들의 문화로 정착시켜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화가 마을에 자리 잡기까지 4년이 걸렸다.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자각이 싹트면서 태양광 발전사업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쓰레기 분리수거 다음 단계는 ‘주택 에너지 효율 높이기’였다. 전북의제21이 양성한 ‘에코 홈 닥터’가 마을에서 에너지 교육을 실시하고 백열등을 고효율 전등으로 바꿨다. 세면장에는 절수형 샤워 꼭지를 달고, 외풍을 막는 문풍지와 방풍 실리콘을 붙였다.
중금마을 친환경 수업에 참석한 기림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2일 폐식용유로 만든 연료를 경운기에 넣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중금마을은 다음 세대를 위한 에너지 교육에도 힘을 기울인다. 김씨는 “시민 주도의 에너지 전환이 성공하려면 어린 세대를 위한 에너지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비를 들여 자택에 환경교육장을 만들었다. 매주 화요일에는 초등학생 35명을 대상으로 방과후 생태수업을 진행한다. 폐식용유로 바이오에탄올을 만들고, 이를 마을 관광용 경운기 연료로 사용한다.
중금마을의 에너지 전환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진행 중이다. 마을의 마스코트는 지구를 짊어진 달팽이다. 자연과 공생하는 마을을 목표로 조금씩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주민들은 수년 동안의 아이디어를 집약한 ‘마을 비전 2020’을 만들어 마을 입구에 내걸었다. 안내판의 맨밑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후쿠시마는 위대한 스승이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소수력·열병합 발전 늘려가는 서울 ‘전력 자급률 20%’ 목표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입력 : 2015-06-11 21:48:49ㅣ수정 : 2015-06-11 22:37:26
‘원전 하나 줄이기’
서울 동작구 노량진배수지에는 ‘소수력발전소’(발전용량 300㎾)가 있다. 지대가 높은 암사아리수정수센터와 노량진배수지 상수도관 구간의 24m가량의 낙차와 유량을 활용해 발전한다. 지난해 3월 가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133만9131㎾를 생산했다. 466가구가 1년간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서울 하천의 자연 낙차가 대부분 2m 미만이어서 소수력발전이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지만 정수센터와 배수지의 낙차에 착안한 것이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에서 소수력발전이 가능한 지점은 46곳으로, 모두 활용할 경우 발전규모는 1만㎾대에 이른다.
서울 난지물재생센터에서는 2013년 3월부터 바이오가스를 이용한 3.1㎿급 ‘열병합발전소’를 전국 최초로 운영하고 있다. 하수찌꺼기 처리 시 발생하는 하루 2만6000㎥의 바이오가스를 한국지역난방공사에 공급하면 공사는 이를 연료로 사용해 매년 전력 2만㎿h와 열 2만4000G㎈를 생산해 8000가구에 공급한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골마을근린공원 근처에 조성된 ‘제로에너지 주택’은 화석연료를 전혀 쓰지 않고 냉난방, 온수, 조명, 환기 등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에너지 절약형 미래주택이다. 노원구 하계동 일대에 7층 아파트 3개 동과 단독주택 등 122가구의 제로에너지 주택이 2017년까지 들어서게 된다. | 노원구 제공
서울시가 2012년 5월부터 실시한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은 다양한 에너지 관련 사업을 통해 원전 1기에서 생산하는 전력량만큼을 절약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전기 절약과 효율화는 물론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것까지 포함해 사업을 진행했다. ‘서울이 쓸 전기를 서울에서 해결하자’는 취지 아래 도심에서 가능한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발굴·확대하는 것이 눈에 띈다. 소수력발전소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지난 4월 현재 ‘서울시 허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현황’을 보면 태양광 발전 224건(2만4276㎾), 연료전지 2건(4800㎾), 바이오가스 1건(1065㎾), 소수력발전 8건(616㎾) 등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인 3㎿ 초과 발전시설로는 LNG 2기(387.5㎿), 열병합발전소 4곳(81.9㎿), 구역형 집단에너지(CES) 6곳(57.88㎿), 연료전지 발전시설 1곳(19.6㎿) 등이 있다.
서울시는 비교적 보급이 쉬운 태양광 발전의 확대를 위해 서울형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시행하고 있다. 100㎾ 이하 태양광 발전시설이 생산한 전기 1㎾당 100원씩 5년간 지원한다.
연료전지도 설치면적이 작은 반면 발전 효율이 높고 소음이 적어 도시형 신재생발전시설로 주목받고 있다. 시는 도시철도, 정수장, 물재생센터 등 주요 기반시설의 비상전원으로 연료전지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서울은 지난해 전력사용량을 전년 대비 3.9% 줄였다. 아직 서울의 전력자급률은 4.7%에 불과하지만 202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서울시의 목표다. 얼핏 달성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서울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다른 지역이 희생하는 구도를 바꾸겠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은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 강필영 시 환경정책과장은 “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에너지정책을 수립·실행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절반 지원… 전기료 월 5400원 절감
집에서 직접 전기를 생산하고 싶다면 집 지붕이나 아파트 베란다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보자. 서울시의 ‘태양광 미니발전소 보급’사업과 산업통상자원부의 ‘태양광 대여’사업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는 소형 태양광(200~500W) 설치비용의 절반을 부담해준다. 서울에 사는 주민이면 시 인증을 받은 태양광 설비 업체에 연락하면 된다.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250W태양광 발전설비(가로 1.6m, 세로 1m)를 66만원에 공급하는데 시가 비용 절반을 지원하므로 실제 부담은 33만원이다. 예컨대 250W거치식 태양광 패널을 남향에 설치하고 하루 일사량이 3시간이라면, 월평균 발전량은 22.5kwh이다. 월 전력사용량이 220kwh(전기요금 2만7300원)인 가정이라면 매달 5400원의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다. 세입자도 이용할 수 있고, 이사할 때는 설비를 떼 새 집에 설치할 수 있다. 산업부의 태양광 대여사업은 주로 단독주택 집주인들을 대상으로 하며 태양광 패널 대여업체로부터 3~6㎾짜리 대용량 설비를 빌려 지붕 위에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3㎾태양광 설비 대여료는 월 4만~7만원 수준으로 7년 의무사용한 뒤에는 설비가 무료로 제공된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밀양 송전탑’ 계기로 절전 운동… 계단 전등 LED 교체부터 시작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입력 : 2015-06-11 21:48:40ㅣ수정 : 2015-06-11 22:37:40
ㆍ에너지자립마을 선정된 신대방현대아파트
서울 동작구 신대방현대아파트 정문. 느티나무 아래 ‘에너지자립마을’이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단지 내 화단에는 ‘전기코드 뽑아 미래세대 행복 충전’ ‘에너지 절약에 밤낮 없다’ 등의 표어가 쓰인 작은 팻말이 곳곳에 서 있다. 햇볕이 잘 드는 24가구의 창가에는 태양광 패널이 촘촘하게 설치됐다. 880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전력사용량을 전년 대비 6.5%(전기요금 1억4900만원) 줄였다. 얼핏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에너지 자립마을화’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이 아파트는 2013년 서울시 조경사업의 하나인 화단 가꾸기를 하면서 서먹했던 주민들 간에 말문이 트였다. 30·40대 여성 주민들을 중심으로 ‘푸르미’라는 동아리가 만들어져 꽃 가꾸기와 육아 경험을 공유하면서 주민 간 유대가 깊어졌다. 허정자 에너지마을 대표(50)는 “때마침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가 사회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에너지 자립’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졌다”고 말했다.
우선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입주자회)는 공용계단 전등을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하고, 매달 1회 불끄기 행사를 열었다. 관리사무소와 협조해 주민들이 LED 제품이나 멀티탭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활동이 기반이 돼 지난해 4월 말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로 선정됐다.
지난해 5월부터 입주자회와 푸르미는 동작구청 직원들과 함께 각 가정의 전자제품 효율등급 등을 측정하는 ‘에너지 진단’을 실시했다. 이 사업을 통해 350가구가 ‘서울시 에코마일리지’에 가입했다. 에코마일리지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면 현금으로 전환하거나 휴대전화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입주자회는 월별 에너지 ‘절감왕’과 ‘절약왕’ 가구를 단지 내 게시판에 소개했다. 부모들의 활동에 자극을 받은 아이들도 ‘에너지 봉사단’ ‘에너지 수비대’를 꾸렸다. 지난해 10월엔 ‘에너지 자립마을 축제’도 기획했다.
이 아파트는 올해 서울시의 스마트그리드 시범마을로 선정됐는데 사업을 추진하려면 아파트 옥상에 대용량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한다. 취지는 좋더라도 주민 합의가 우선이라고 보고 ‘주민 80% 동의’라는 조건을 자체적으로 정했다. 허 대표는 “꽃 가꾸기도 에너지 자립 사업도 마을공동체라는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주민들에게 사업 내용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면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녹색당 공동기획>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주민 의견 안 듣고 일방 추진 ‘바람 잘 날 없는 풍력’
영양 |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5-06-15 21:52:00ㅣ수정 : 2015-06-15 22:26:17
ㆍ(6) 전기에 중독된 한국사회
ㆍ한국 풍력발전의 현주소
▲ 지자체·외국민간사업자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진행
정선·의령·영암·울산·거제
사업자와 대립·마찰
▲ 대안·공공재 개념보다
부정적 인식만 커져
강원 태백시 구봉산에서 부산 다대포 몰운대로 이어진 낙동정맥이 지나가는 경북 영양군 맹동산 정상. 봉우리 반쪽이 뎅겅 잘려나간 자리에 기둥 높이 80m, 날개 길이 35m에 이르는 거대한 풍차가 들어섰다. 3개의 날개가 ‘웅웅웅’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랐다.
능선이 모조리 파헤쳐진 자리에 200~300m 간격으로 1.5㎿짜리 풍력발전기 41기가 들어섰다. 콘크리트로 덮인 능선의 길이가 10여㎞에 이른다. 거센 바람으로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해 ‘민둥산’이라 불리던 맹동산은 진짜 민둥산이 됐다. 풍력발전기 터빈에는 스페인의 풍력발전사 ‘악시오나(acciona)’ 상표가 붙어 있다. 악시오나는 2009년 영덕군과 영양군의 경계인 이곳에 국내 최대 풍력단지를 세웠다. 영덕 갈천리 주민 김종혁씨(59)는 “바람이 심한 날은 소음이 영덕으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영양 주민 송재웅씨(45)는 “영양에 풍력발전단지 허가를 받은 업체만 6곳이나 되고, 계획 중인 회사까지 치면 영양군의 웬만한 산등성이가 풍력발전기와 송전탑으로 꽉 찰 것”이라고 말했다. 맹동산 외에도 심의리 영양제2풍력, 무창리 GS영양풍력과 와이지이, 영양 무학리 등 일대 AWP, 양구·홍계리 영양윈드파워 등이 공사 중이거나 준비 중이다.
지난 4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맹동산 능선에 줄지어 들어선 수십기의 풍력발전기가 살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영양군에 풍력발전단지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서면서 재생에너지 발전의 취지마저 퇴색하고 있다. | 드론 촬영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주민들은 이들 업체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의 허가를 받은 사실조차 뒤늦게 알았다. AWP풍력단지 예정지 인근에 사는 송씨는 “주민들은 낯선 이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소음을 측정하러 다니는 것을 보고서야 AWP가 전기위원회의 허가를 받은 것을 눈치챘다”고 말했다. 영덕 백청리 주민 김언태씨(59)는 “인허가가 이미 나온 뒤 반대해봐야 업무방해로 경찰서만 들락거리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핵·화력발전의 대안이 돼야 할 재생에너지 사업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풍력발전은 민간기업과 자치단체가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면서 마찰을 키우고 있다. 현재 강원 정선, 경남 의령, 전남 영암, 울산, 경남 거제 등에서 풍력사업자와 주민이 대립하고 있다.
풍력업체들은 ‘요식행위’나 다름없는 환경영향평가를 거친 뒤 공사에 들어간다. 맹동산의 악시오나는 환경영향평가를 마치기도 전에 영양군의 사업인가를 받아 공사에 착수했다. 지난 5월 전기위로부터 “민원 발생 소지가 없는 것으로 심의됐다”며 의령 한우산 풍력발전 허가를 받은 ‘유니슨’도 최근 건설 공사에 들어갔다. 의령 주민들은 해발 870m 한우산 능선을 파헤치는 공사를 막기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공사 현장에 농성 중이다.
정부는 풍력발전 건설을 위해 규제를 속속 풀고 있다. 지난해 산지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산지 내 풍력발전시설 규모를 3만㎡에서 10만㎡까지 확대했다. 환경부도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풍력발전을 제한적으로 풀면서 의령, 영양군의 풍력단지 조성에 길을 터줬다.
육상 풍력은 다른 재생에너지에 비해 수익성이 높다. 또 500㎿ 이상 발전사업자가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 제도(RPS)가 도입되면서 풍력업체들은 전기를 한국전력 등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바람이 평균 풍속 6m/s 이상만 되면 수익성이 있다”며 “풍력발전 수명이 20~25년이지만 빠르게는 4~5년이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풍력이 수지맞는 사업으로 떠오르자 투자자 맥쿼리 계열의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운용은 2013년 악시오나가 지분 100%를 보유한 맹동산의 영양풍력발전공사를 1700억원 안팎에 사들였다. 영양풍력은 지난해 매출액의 30%에 가까운 순이익(85억원)을 냈다.
하지만 풍력발전의 핵심기술은 모두 수입에 의존한다. 특히 덴마크 베스타스(점유율 45.6%)와 스페인 악시오나(10.6%)가 국내 풍력터빈 시장 절반 이상을 점유했다. 국내에서 두산중공업이 3㎿급 풍력터빈의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가격이 비싸 외면받고 있다.
영양과 영덕 주민들은 ‘영양·영덕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풍력발전단지 건설 저지에 나섰다. 영덕은 신규 원전 부지로 지난해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김언태씨는 “핵발전이나 풍력발전이나 밀어붙이기식 사업방식은 똑같다”며 “이런 식이라면 풍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커질 뿐”이라고 말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풍력을 공공적으로 개발·이용하는 ‘풍력 공개념’을 도입하고, 시민사회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입지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버 냉각에 21만명 연간 사용량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정보기술(IT) 기업들에 화석연료나 원자력 대신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왜 IT기업이 문제가 되는 걸까?
인터넷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데이터들은 IT기업들의 데이터센터에 축적된다. 데이터센터는 많은 열을 발산하기 때문에 데이터센터의 사용전력 중 약 50%가 서버 열기를 식히는 데 쓰인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약 6840억㎾h(2011년 기준)에 달한다. 국내 데이터센터는 113개로 연간 약 26억㎾h(2013년 기준)의 전력을 소모하고 있다. 이는 인구 21만명인 충북 충주시의 1년간 전력량(21억20만㎾h)을 넘는 규모다. 데이터센터 소모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낮은 편이다. 그린피스가 지난 3일 발표한 국내 IT기업 7곳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 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높았던 SK C&C조차 불과 1%(태양광)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고, 공개한 KT(0.44%), 네이버(0.006%) 등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린피스의 요구에 네이버는 “데이터센터 ‘각’의 100%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공식화한다”고 밝혔으나 다른 기업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철강업체, 싼 전기 믿고 과잉 설비 투자… 위기 닥쳐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입력 : 2015-06-15 21:52:18ㅣ수정 : 2015-06-15 22:25:35
ㆍ전기중독 실태
ㆍ수입업자 ‘관세보다 전기료’… 냉동고추 말려 가루로
최근 국내 전기로 철강업체들이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값싼 중국산 제품에 밀리는 것이 주된 원인이지만 정부의 잘못된 전기요금 체계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이 경영악화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전력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시간대별로 차등 부과한다. 가장 싼(경부하) 시간대는 오후 11시~오전 9시, 가장 비싼(최대부하) 시간대는 오전 10~12시·오후 1~5시다. 300㎾ 이상 다소비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경부하 시간대 요금은 계절에 따라 kwh당 55.2~62.5원으로, 최대부하 시간대 요금인 kwh당 101.0~178.7원보다 최대 3분의 1 이상 싸다.
산업용 심야전기요금 소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기로 제강업체들은 원가 이하의 싼 전기요금만 믿고 과잉투자를 해왔다. 에너지시민연대 자료를 보면 국내 5대 철강업체의 차입금 규모는 2007년 9조7000억원에서 2011년 28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동국제강은 2006년 당진 제3후판공장을, 동부제철은 2010년 열연강판 설비를 증설했다.
정부가 심야전기요금을 싸게 책정한 이유는 남아도는 전기를 소화하기 위해서다. 기저발전으로 분류되는 원자력과 석탄화력발전소는 24시간 가동해야 한다. 즉 전기 사용량이 많은 낮 시간대뿐 아니라 밤 시간대에도 발전을 멈출 수가 없다. 전기는 공급과 수요가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금이 너무 싸다 보니 수요과잉 현상이 초래됐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을 보면 하루 중 전력수요가 가장 낮은 오전 3~4시의 평균 전력수요는 4만9910㎿(2012년)로 24시간 돌려야 하는 원전·석탄화력의 설비용량(4만4125㎿)을 초과했다. 경부하대 요금이 적정요금보다 훨씬 낮다 보니 기저발전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농업부문에서는 일부 수입업자들이 영농조합을 만들어 중국산 냉동고추를 수입한 다음 대형건조기를 이용해 고춧가루를 만들어 파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농수산물 가격안정과 영세 농어민 지원을 위해 싸게 공급되는 농사용 전기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업자가 고춧가루와 같은 최종제품을 수입할 경우 부과되는 높은 관세를 피하고 싼 농사용 전기를 활용해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가정용 전기요금의 역진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저소득 가정의 소득대비 전기요금 부담이 고소득 가구에 비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가계 경상소득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2.37%에서 2013년 2.26%로 작아졌지만 저소득층인 1~4분위 계층의 전기요금 부담은 되레 커졌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전력가격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2012년 기준 소득규모가 최저생계비 미만인 5인 이상 가구의 전기요금 단가는 165.7원/kwh였다. 반면 최저생계비의 5배 이상을 버는 고소득 1인 가구의 전기요금 단가는 111.1원/kwh였다. 전수연 예산정책처 사업평가관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되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별도의 에너지복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가격 폭락·경쟁 치열… 시민참여형 태양광발전 존폐 위기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입력 : 2015-06-15 21:52:10ㅣ수정 : 2015-06-15 21:55:30
ㆍ발전차액지원제 재도입해야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은 2013년 4월 서울 은평구와 전국 각지 시민 250명이 출자해 은평구에 태양광발전시설 1·2호기(500㎾)를 설립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경영난으로 3·4호기(200㎾) 추가 설립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에너지전환을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태양광발전협동조합이 잇따라 생겨나 30여개에 달하고 있지만 대부분 존폐위기에 몰려 있다. 정부가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수익을 보장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2011년 폐지한 뒤 재생에너지 보급을 시장경쟁에 맡기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로 바꾸면서 태양광 산업의 침체는 예고돼 왔다.
RPS하에서 대형 발전사업자는 의무할당량만큼 소규모 발전사업자의 신재생공급인증서(REC)를 사들이면 된다. 하지만 현재 의무할당량은 전체 발전량의 3%에 불과한 데다 공개경쟁 입찰이어서 매년 가격이 하락했다.
올 상반기 태양광 판매사업자 입찰결과 REC 평균 낙찰가는 7만707원으로 지난해(11만2591원)보다 37% 폭락했다. 입찰이 도입된 2011년 하반기(21만9977원)에 비하면 무려 68%가 폭락한 것이다. 그럼에도 경쟁이 치열해 낙찰률은 10%에 불과해 소규모 사업자들은 대거 탈락했다. ‘규모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자들이 대규모 풍력발전단지나 대형 태양광발전업체 등과 입찰경쟁에서 이기기란 불가항력이다.
고사위기에 몰린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은 RPS의 폐지와 FIT의 부활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는 지난달 19일 성명을 내고 “RPS 도입으로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태양광산업이 한국에서는 망해가는 산업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최승국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소규모 사업자에 한해서라도 FIT를 도입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FIT의 재도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FIT를 채택한 71개국은 재생에너지 보급이 획기적으로 늘었다. 독일은 1990년 FIT를 도입한 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지난해 28%로 늘어났다. 중국도 2011년부터 도입했으며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듬해인 2012년 RPS를 폐지하고 FIT를 도입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의 거래가격이 정부가 고시한 기준가격보다 낮을 경우 차액을 지원한다.
▲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발전회사들에 재생에너지 공급 비율을 의무화한 제도. 의무비율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전력시장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의 ‘신재생공급인증서(REC)’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의무비율을 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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