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튜닝

리스토어 산업 -튜닝 시장리뷰

구봉88 2016. 2. 14. 10:12


300만원 중고차 8500만원 들여 싹 바꿔 '나만의 갤로퍼' 부활

[현장 속으로] 구식 차 '리스토어' 파주 작업장 가보니중앙일보 | 김영민 | 입력 2016.02.14. 01:28



원격시동 시스템, 전자식 파킹브레이크, 자율주행 시스템 등 첨단 자동차 시대에도 짧게는 십수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도 더 지난 옛것의 감성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30~40대 남성을 중심으로 구식 차를 복원하는 ‘리스토어(restore·복원)’가 자동차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컴퓨터 코드만 약 10억 개가 들어갈 정도로 전장(電裝)화된 최신식 자동차를 구입하는 대신 구식 차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차’를 만드는 일을 선택한 이들이다.

뼈대만 남겨둔 채 완전히 재복원된 갤로퍼 리스토어 차량(사진 왼쪽)과 1970~80년대 원형 그대로 복원 된 순정형 포니 픽업트럭들. [사진 모헤닉, 김상국씨]
뼈대만 남겨둔 채 완전히 재복원된 갤로퍼 리스토어 차량(사진 왼쪽)과 1970~80년대 원형 그대로 복원 된 순정형 포니 픽업트럭들. [사진 모헤닉, 김상국씨]
리스토어를 위해 입고된 중고 갤로퍼는 6기통 디젤 엔진, 34인치 타이어 등 모두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된다. 차량 내 각종 배선도 새로 설치했고, 내부는 자작나무 소재 원목으로 재설계 했다. 실시간 음원 재생, 내비게이션 용도로 아이폰 도킹 장치가 센터페시아 부분에 장착된다.
리스토어를 위해 입고된 중고 갤로퍼는 6기통 디젤 엔진, 34인치 타이어 등 모두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된다. 차량 내 각종 배선도 새로 설치했고, 내부는 자작나무 소재 원목으로 재설계 했다. 실시간 음원 재생, 내비게이션 용도로 아이폰 도킹 장치가 센터페시아 부분에 장착된다.
피아트500누오바(사진 왼쪽)와 닛산 휘가로의 리스토어 차량. [사진 로미코리아]
피아트500누오바(사진 왼쪽)와 닛산 휘가로의 리스토어 차량. [사진 로미코리아]

 리스토어란 차량을 개조하는 튜닝과 달리 과거의 감성을 현대의 기술로 고풍스럽게 해석해 복원하는 작업이다. 배기량과 가속력에 중점을 둔 ‘머슬카’의 표본이 된 제너럴모터스(GM)의 ‘콜벳’과 ‘머스탱’, 1991년에 2만 대만 한정 생산된 닛산 ‘휘가로’ 같은 기념비적 모델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리스토어 대상이다.

한국 시장에선 91년 출시돼 2003년 단종된 4륜 구동 지프 ‘갤로퍼’가 대표적이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박스 형태의 디자인이 특징으로 지금도 자동차 매니어와 전문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4일 경기도 파주시 ‘모헤닉게라지스’(이하 모헤닉)의 400㎡ 규모 작업장에는 갤로퍼 8대가 리스토어 작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소형자동차정비업(2급 공업사) 허가를 받은 국내 최초의 수제자동차 업체다.

차고 형태의 작업장에는 리스토어 전문 엔지니어 3~4명이 갤로퍼 두 대에 도색과 엔진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반대편 차고에는 뼈대만 남은 갤로퍼가 자리를 잡았다. 바깥에는 폐차 직전의 낡은 갤로퍼 4대가 놓여 있었다.

 갤로퍼 복원의 첫 작업은 중고 갤로퍼를 가져다가 실오라기 하나 없이 드러내고 뼈대만 남기는 일이다. 그 다음 차체 프레임 분리, 녹 제거, 도장(塗裝)작업, 엔진 재장착, 내부 인테리어, 마감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은 모두 사람 손으로 진행된다.

1년간의 복원 기간을 거친 갤로퍼는 ‘모헤닉G’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원목을 직접 깎고 붙여서 만든 계기판(클러스터)과 스티어링휠(운전대), 내비게이션과 음원 재생 용도로 설치한 아이폰 도킹 시스템 등이 이 차만의 특징이다.

룸 미러에는 운전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방 카메라를 설치할 수도 있다. 리스토어 비용은 사양에 따라 크게 2200만원, 4400만원, 8500만원 등으로 나뉜다. 갤로퍼 중고차 매입가(약 300만원)보다 최대 28배가량 비싸지만 매니어들은 개의치 않는다.

 모헤닉 김태성(45) 대표는 스스로를 “고집스러운 장인 정신을 가진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홍익대 미대 출신인 그는 수제차 업체를 창업하기 전 약 10년간 가구 디자이너와 사진 작가를 겸업했다.

김 대표는 “2012년 우연히 갤로퍼를 보게 됐는데 ‘이놈 제대로 꾸미면 새 차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5개월간 공업사를 돌아다니다 아예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나도록 갤로퍼를 만들고 싶어 창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모헤닉G의 주요 수요층은 변호사·의사 등 30~40대 남성 전문직 종사자다. 올해엔 주문 첫날에만 100명 넘는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올 한 해 복원 예정인 차량 12대의 계약이 모두 끝났다.

배우 김수로씨도 갤로퍼 복원을 놓고 상담 중이라고 한다. 지난달 25일 시작한 모헤닉의 지분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에는 2주일도 안 돼 투자금 1억원이 모였다.

 갤로퍼가 현대 기술의 힘을 빌려 재해석된다면 ‘포니’는 70~80년대 당시 원형 그대로 복원된다. 76년 국산 고유 모델로 최초 수출된 기념비적 모델인 포니는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출신 조르제토 주자로가 디자인해 아직도 매니어층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충남 예산에 거주하며 포털 카페 ‘포니타는사람들(http://cafe.naver.com/mypony)’을 운영 중인 김상국(39)씨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포니 픽업트럭 두 대를 보유한 리스토어 매니어다.

김씨가 보유한 차량은 각각 88년식 포니Ⅱ, 81년식 포니Ⅰ으로 모두 픽업 트럭 형태다. 약 1년 반 동안 도장·배선·마감 등 각종 작업을 다시 해 원형 모습을 살린 순정형 포니다.

포니의 엔진룸을 열어보면 신형 자동차와 달리 원판 모양의 대형 카뷰레터(가솔린으로 혼합기를 만들어 엔진에 공급하는 장치)가 위치해 있다. 김씨는 “내가 직접 복원한 81년식 포니는 지난주에도 약 50㎞ 떨어진 수원에 타고 다녀왔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사람들은 전국 곳곳의 카센터·부품업체를 돌아다니며 부속품을 구하기도 한다. 90년 단종된 포니의 순정 부품 가운데 몇 가지는 현대차 조립 공장이나 현대모비스 부품 공장에서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나마 남아 있는 부품은 울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공수했고 없는 부속품은 직접 깎아 만들었다”며 “카페 개설도 경남 창원에 사는 포니 매니어와 부품 수급 때문에 하루에 약 10통화씩 하다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그는 “3D프린팅 기술이 이른 시일 내 상용화된다면 값싼 가격으로도 포니 순정 부품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포니타는사람들 카페에는 약 9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카페 회원끼리 순정 복원한 포니를 몰고 1년에 두 차례 정도 충남 공주, 경북 경주 등지에서 동호회를 열기도 한다.

 사실 자동차 선진국에선 고풍스러운 느낌을 재현하는 자동차 복원이 생활 속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튜닝 계열사 ‘브라부스’는 클래식카 사업부를 따로 운영해 벤츠 복원을 전문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경차 ‘스마트’부터 최고급 세단 ‘마이바흐’까지 고객 취향에 맞게 복원한다.

미국에는 60~70년대 차량을 전문적으로 복원하는 ‘아이콘 포바이포(4by4)’, 구형 포르셰를 다시 만드는 ‘싱어포르셰’ 등 리스토어 전문 기업이 있다. ‘빌드 투 오더(선주문 후 생산)’ ‘커스터마이즈드 카(고객맞춤형 차량)’ 같은 리스토어 전문 용어가 있을 정도다.

일본 도쿄에선 매년 3분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복원된 수퍼카를 대상으로 하는 리스토어 차량 전시회가 개최된다.

 반면 한국은 리스토어 분야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다. 100조원 규모의 세계 자동차 재개조 시장에 비해 한국 시장의 연매출 규모는 0.5%(약 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2013년 8월 국토교통부가 ‘자동차튜닝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엔진 재장착은 물론 단순한 외장 변화도 허용되지 않았다.

김기찬(전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 가톨릭대 교수는 “한국인은 그동안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 또는 부의 상징으로만 여겨왔다”며 “자동차를 통해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멋을 알게 된다면 대중 차 같은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리스토어·튜닝카 같은 질적 성장도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S BOX] 정몽구 회장, 현대정공 대표 때 갤로퍼 개발·출시

갤로퍼는 1990년대 한국 자동차 시장에 4륜구동차의 대중화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몽구(77·당시 현대정공 대표)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개발에서부터 제작, 출시까지 직접 관여한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당시 항공기 부품·공작기계 생산 등에 주력하던 현대정공이 직접 완성차 시장에 뛰어든 건 다소 의외였다.

갤로퍼 생산을 두고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정몽구 대표에게 물었다.

“왜 삼촌 회사(정세영 회장의 현대자동차)를 놔두고 자동차를 따로 만들려고 해?” 이에 정 대표는 “4륜구동 지프는 세단 일변도인 지금의 현대차에선 생산이 어렵습니다. 각종 부품 생산으로 기본기가 탄탄한 현대정공에서 4륜구동차를 만든다면 차종 다변화가 이뤄져 결국 현대차뿐 아니라 내수 전체에도 득이 될 겁니다”고 답했다.

이 말에 정주영 회장은 아들의 뜻을 수용했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이 장면이 훗날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를 물려받는 명분이 쌓여진 첫 순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갤로퍼는 초기에 일본 미쓰비시의 내수용 지프 ‘파제로’를 면허생산 방식으로 들여왔다. 생산 첫해 2934대가 팔리더니 1년 후인 92년에는 2만3738대가 팔려 그해 국내 4륜구동차 시장(4만5732대)의 51.9%를 차지해 단숨에 시장 점유율 1위로 자리 잡았다.

2003년 단종됐지만 지금도 8만7560대가 등록돼 있다. 국민대 허승진(자동차공학) 교수는 “박스형 디자인과 높은 출력, 단단한 서스펜션은 갤로퍼만의 고유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