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의 특징과 종류] 민화에는 소박한 삶의 체취와 감정이 느껴지는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대륙성과 해양성의 조화를 보이는 풍토와 기후 등 자연환경의 영향 속에서 사계변화가 뚜렷하고 천기가 다양한데서 오는 변화성과 조화미를 담고 있다. 말하자면 자연에 대한 애착, 자연현상의 순수한 수용, 이런 것들이 곧 바로 민화의 산수도에 표현되어 있으니, 아름답고 부드러운 정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민화의 사상적 소재는 토속신앙에서 유래되었으리라 보는 점은 화원을 비롯한 민화가 민간에 퍼지면서 자연 민간의 토속신앙과 혼합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알수 있다. 한편으로는 불선합일론이 주장되던 시대상황에서 혼합종교양식이 섞이면서 다양하게 전개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같은 원시신앙 이전에 유교, 불교, 도교 등 조선인들의 신앙은 민화의 소재가 되었다. 민족신앙의 기반과 근원을 이루었던 원시신앙은 지금까지도 민간신앙에 전승되었다. 민화나 민화적 사상이란 민중의 표현으로서 민간 신앙을 근간으로 한다. 민간신앙에서 생겨난 민화를 일관하는 기본사상은 현세복락주의이다. 민화는 한국사회와 대중들의 행복과 평화에 대한 소망과 욕구를 나타내고 있다. 민화에는 한국인 본연의 냄새가 나고, 한국인 특유의 파격과 여유, 익살 등이 나오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천연의 소박주의도 민화에 보인 한 사상이다. 소박한 민족공동의 설화성도 민화에 스며들어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사상과 생활의 표현이며, 자유로운 사상의 세계요, 희망인 것이다. 민화는 또한 해학, 음양대응 등 상징적 기능을 갖고 있으며 형태적으로는 기하학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즉 각(角), 방(方), 원(圓) 등이 그것인데 온갖 형태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최대공약수로 요약하고 있다. 민화에 많이 등장하는 각종의 나무는 아래에서 위로 뻗어가는 상승작용을 하고, 물은위에서 아래로 흘러 나무와는 정반대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꽃은 봉오리에서 개화까지 원의 운동을 계속한다. 때문에 이 민화에는 상하법칙이 원만히 됨으로써 이세상의 모든 것이 유지된다는 심오한 민속신앙사상이 포함되고 있다. 민화는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열거된다. 첫째 민화는 장식적 필요에 의해 그린 그림이다. 생활미술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가옥구조에 첨가되는 장식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병풍은 이러한 생활미술품으로 웃풍이 센 우리네 한옥구조의 결함을 보완하거나 방 안의 자질구레한 물건을 가리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살림세간 가운데 하나였다. 민화는 거의가 병풍에 편집되어 집 안에 간직되었는데 병풍에 그린 민화는 그것을 둘러칠 장소나 행사의 내용에 걸맞는 것이 선택되었다. 이외에도 널판지, 대나무, 도자기, 가구, 문방구, 돗자리에 이르기까지 민화는 우리네 일상 생활공간 곳곳에 놓였으며 한국인이 살아가는 곳에는 민화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둘째 민화는 토속신앙과 세계관이 반영된 그림이다. 민화의 특성으로는 실용성, 상징성, 예술성을 꼽을 수 있다. 순수미술은 예술성을 앞세운다. 이와 달리 민화에서는 예술성보다는 실용성이 강조되는데 이는 민화에는 상징성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더욱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해 표현방법이나 소재 해석을 늘 새로이 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민화는 더욱 독특하게 발전되어 갔다. 민화의 상징적 표현은 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의 의사소통을 가능케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사소통의 바탕이 되는 공통의 세계관을 매개해 주는 역할도 한다. 민화에서 표현되는 이러한 상징성들은 사회 전체에 의해 공유되기도 하지만 특수한 사회부류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감수성에 의해 그 상징이 변질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성이 민화만의 독특한 미술세계를 이룩하며 민화의 아름다움과 해학 역시 이러한 상징적 표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셋째 민화에는 주술적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민화 중에는 토착적인 종교와 결합된 풍습에 의해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 있다. 이를 세화라 하며 널리 그려졌다. 궁중은 물론이고 사대부들의 저택, 일반 서민의 집에서 입춘방처럼 축귀나 구복의 상징으로 그런 세화를 정월 초하룻날 대문 또는 집안에 걸거나 붙이게 했다. 넷째 민화는 집단적 감수성의 표현이다. 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장식이나 주술적 가치로 그린 그림은 곧 그들의 공통되는 세계관을 드러낸다. 정통회화가 작가 개인의 예술성이나 개성 혹은 세계관을 드러내는것에 비해 민화에는 일반 서민의 집단적인 미적 체험이나 세계관이 자연스럽고도 원초적인 표현형태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는 민화를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으로 그렸다기 보다는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그렸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서는 공통의 감수성을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렸다는 의미가 된다. 다섯째 민화는 모방한 그림이다. 민화는 그 주제와 표현의 원류에 있어서 문인화나 도화서 화공들의 그림을 철저히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담아내는 내용이나 표현기법은 다르다. 이는 민화가 양산되고 보급되면서 점차 서민들이 지배층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세계관을 형성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섯째 독특한 공간구성 방법을 들 수 있다. 민화는 전후, 좌우, 상하, 고저에 대한 분명하고 일관된 시점이나 작법을 무시하고 그렸다. 다시 말해 시잠을 다양하고 자유롭게 전개하고 있다. 이는 서구의 르네상스 이후 발달된 일점원근법과도 다르며 동양화의 원근법인 삼원법과도 다르다. 일곱째 민화는 모든 색채를 강렬한 색상대비로 표현하고 있다. 민화에는 어둡고 칙칙한 색이 거의 없고 모든 사물이 밝고 명쾌하다. 사물 모두의 존재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했기 때문에 어느 한 색이 다른 색으로 인해 약화되지 않도록 했다. 여덟째 복합성과 반복성이 두드러진다. 민화의 표현 중에 두드러지는 것이 복합성이다. 즉 화의나 주제가 일치하는 것이면 관련된 도상들을 모두 화면에 묘사한다. 한편 반복성은 주술적인 면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여겨지는데, 똑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만족감이나 성취의 의지를 보이는 것은 모든 주술적 행위의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민화는 소재에 따라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는데 보통 소재로는 화조, 산수, 민속, 교화 등으로 대별된다. 첫째 꽃 그림이다. 민화에 등장하는 꽃은 줄잡아 40여 종이나 되는데 화훼도에서 보이는 꽃의 종류로는 치자, 홍화, 울금, 쪽풀, 딱풀, 소방목, 황벽, 지초, 단풍나무, 산딸기, 앵두 등 자연염색에 쓰이는 꽃이 가장 많고 연, 매화, 난초, 산국화, 홍도화, 산수유, 모란, 백작약, 옥잠화, 동백, 산신화 등 식용이나 약용으로 사용되는 꽃도 있다. 그리고 오동, 진달래, 개나리, 솔, 버드나무, 메꽃, 해당화, 작약 등도 등장한다. 이러한 꽃들은 단독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러 가지 식물, 조수, 바위, 물 등과 함께 그리고 있다. 화훼도라고 해서 새나 곤충들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꽃이라는 소재에 중점을 두고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을 소재로 한 그림들은 모두 화훼도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한 화면에 함께 그려진 다른 소재들에 따라 좀더 종류를 세분화시킬 수도 있는데 새와 같이 그려진 것은 화조도로, 곤충들과 함께 그려진 그림은 초충도로 분류하게 되고 화훼도는 거의 꽃만을 주소재로 다룬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꽃그림의 소재로 자주 다루어지는 몇몇 꽃들이 지닌 상징성을 살펴보면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만큼 꽃그림에서 아주 비중있는 소재다. 모란은 그 자태의 화려함으로 인해 ''부귀''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모란 그림은 주로 병풍으로 꾸며서 신방이나 안방 장식에 쓰였고 제례용이나 궁중에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부귀를 상징하는 화려한 모란이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다. 모란병풍은 웬만큼 부유했던 집안에서는 각자가 마련해서 쓰고 서민들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것을 혼례식 때나 축하해야 할 길일에 빌려서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란 이외에도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꽃이 연꽃이다. 모란이 화중왕이라면 연꽃은 화중군자로 표현할 수 있다. 진흙 속에서 살면서도 더러운 물 한 방울 몸에 묻히지 않는 기품있는 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세파에 물들지 않는 청아함과 고결한 모습을 간직한 군자에 비유되곤 한다. 연꽃은 또한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아들을 얻고 싶은 염원을 화병에 꽂힌 연꽃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고 연꽃의 한자가 연이어진다는 뜻의 한자와 독음이 같으므로 이을 연을 써야 할 곳에 대신 연꽃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연달아 아들을 많이 낳길 바라는 뜻을 담아 아들을 상징하는 대상과 연꽃을 함께 그리는 경우에서 이런 예를 볼 수가 있다. 이 외에도 사군자의 하나인 국화를 그린 민화도 자주 볼 수 있다. 국화는 유유자적은둔해서 살아가는 은일자를 상징한다. 둘째 새 그림이다. 새그림은 다시 학, 봉황, 백로, 닭, 원앙으로 구별 되며 각 소재에따라 특성이 달리 나타난다. 학은 정통회화에서나 민화에서나 자주 선택되는 소재다. 그림에 등장하는 학은 대부분 구름 속을 날고 있거나 소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림에서 소나무와 학의 관계는 기러기와 갈대, 백로와 연과의 관계처럼 거의 하나의 틀처럼 정형화되어 있다. 학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소나무와 함께 ''학수천세''라는 말처럼 십장생의 하나로서 장수를 상징하고 다른 하나는 벼슬이나 관직과 연관되어 입신출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그림은 학과 소나무를 그리고 일품대부라는 화두를 달고 있는데, 일품이란 말은학이 새들의 우두머리이기도 하거니와 옛날 중국에서 문관일품의 복장에 학의 문양을 쓴 데서 연유한 것이며, 대부는 진시황이 산행을 갔다가 비를 피해 머문 곳이 마침 소나무 아래라, 비를 피하게 해 준 소나무를 가상히 여겨 대부의 벼슬을 내렸다는 데서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나무와 벼슬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에 얽힌 이야기가 그것이다. 파도치는 바다에 서있는 학을 그린 그림으로 ''일품당조''라는 것이 있다. 당조란 ''파도치는 바다''라는 말이지만 조수를 뜻하는 ''조''를 독음이 같은 ''조''로 바꾸어''당조''라 하면 ''조정에 들어간다''라는 뜻이 되며 ''일품당조''는 ''조정에 들어가 관직이 일품에 오른다''는 뜻이 된다. 봉황 은 군왕이 갖출 모든 조건을 상징적으로 갖추었다하여 군왕을 상징해 왔다. 천자의 궁문에 봉황을 장식하여 봉궐, 봉문이라 하고 천자의 수레에 장식하여 봉거, 봉련, 봉여라 했다. 천자의 도읍인 장안을 봉성, 궁중의 연못을 봉지, 좋은 벗을 봉려, 아름다운 누각을 봉대 혹은 봉루, 피리소리 등의 묘음을 봉음라 하는 것만 보아도 봉황은 상서로운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봉황을 소재로 하는 그림은 대부분이 오동나무가 함께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봉황의 거소가 오동나무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오동나무 대신에 대나무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봉황이 죽실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봉황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조 따위는 먹지 않는 청렴한 성품의 소유자로 간주되어 민화의 윤리문자도 중 『염자도』의 대표적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림외에도 봉황은 귀족 여인들의 예복이나 장신구, 또는 가구, 공예품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시문되었던 문양의 대표적 소재로 널리 애호되었다. 백로 를 소재로 하는 그림들은 대개 연밥을 곁들인 연과 갈대를 한 화면에 담고 있다. 백로 그림에 등장하는 백로가 한 마리인 경우와 두 마리인 경우가 있는데, 원칙적으로는 한 마리여야 본래의 화의에 맞는 것이 된다. 백로가 한 마리여야 본래의 화의에 맞다고 하는 것은 이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모두 일로연과(한 길로 연이어 과거에 급제한다)라는 선비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선택된 소재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백로를 한 마리만 그리는 것은 ''일로''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갈대도 백로와 마찬가지로 길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갈대의 한자 발음이 ''로''의 발음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연밥은 어떤 경우에는 다남자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 닭그림은 옛날에 개, 사자, 호랑이 그림과 같이 정초에 벽사초복의 의도로 그려져 대문이나 주거공간에 붙였던 세화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닭 그림은 평소에도 장식용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병아리를 거느리고 있는 암탉을 그리거나 위엄을 갖춘 수탉을 단독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맨드라미를 곁들어 그리기도 한다. 이것은 닭과 맨드라미가 서로 어울려 ''관상가관''이라는 길상적 문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관상가관은 "관 위에 또 관을 더한다"는 뜻으로 입신출세의 최고 경지에 이름을 말한다. 닭머리 위의 볏(벼슬)은 계관이라 하고, 맨드라미 역시 닭의 볏과 모양이 닮아 계관화라고 부르고 있다. 이 두 소재를 화면의 상하에 배치함으로써 관위에 관이 있는 것으로 쳐서 관상가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원앙은 날 때 암수가 서로 어깨와 날개를 나란히 하며 난다고 하는데, 수컷인 원이 오른쪽을, 암컷인 앙이 왼쪽을 지킨다고 한다. 그림에서는 대부분이 쌍을 이룬 원앙을 그리고 있는데, 원앙은 쌍을 이루고 있음으로 해서 본래의 상징성을 제대로 갖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물고기 그림이다. 물고기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로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물고기는 그 속성상 낮이건 밤이건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이에 연유하여 사람들은 물고기가 삿된 것을 경계하고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림은 아니지만 쌀 뒤주에 물고기 모양의 자물통을 달거나, 장롱의 문이나 서랍에 물고기 모양의 손잡이를 다는 풍습도 이와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물고기 중에서는 주로 잉어나 쏘가리, 메기등을 그렸다. 사람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장원 급제를 통해 출세하기 위해 면학에 힘쓰는 선비들을 잉어에 비유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변해 용이되는 것에 비유하였다. 이러한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그림이 바로 약리도 혹은 어변성룡도이다. 이런 유형의 그림은 잉어가 물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잉어의 주변에는 거칠게 출렁이는 파도가 묘사된다. 이런 그림을, 과거시험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벗에게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았으며, 과거에 급제하기를 스스로 다짐하는 선비가 그의 책상 머리에 걸어 놓는 그림이기도 하였다. 잉어가 그림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림뿐만 아니라 건축물 장식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창덕궁 후원에 있는 영화당 옆에 부용지라고하는 네모꼴의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을 싸고 도는 화강암 축대 모퉁이에 잉어 한마리가 물 위로 막 뛰어오르는 모습으로 조작되어 있다. 그런데 이 연못 주변의 마당은 조선시대에 전시를 치루던 곳이었다. 이 장소는 팔도에서 모여든 뭇 선비들이 장원 급제를 위하여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시험을 치루던 장소였다. 바로 이곳에 있는 연못에 잉어가 조각되어 있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연못 옆에는 어수문이라고 이름한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은 그 이름이 시사해주듯이 부용지에서 뛰어오른 잉어가 통과하는 곳, 즉 용문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이 문을 통과하면 보다 높은 위치에 큰 누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주합루이다. 이누각은 어수문을 통과한 잉어가 하늘에 닿아 용으로 화하여 보다 깊고 완숙한 학문의경지를 개척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잉어 외에도 물고기를 소재로 하고 있는 그림의 예를 든다면 쏘가리 그림이 있다. 그런데 쏘가리를 소재로 한 그림이라 할지라도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물 위를 흘러가는 복숭아꽃을 배경으로 쏘가리가 뛰노는 모습을 그린그림과, 배경의 설정없이 단순히 쏘가리만 그린 그림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서로 다른 것이다. 먼저 말한 쏘가리 그림은 시적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은 중국의 시인 장지화의 어부가의 한 구절인 "서쪽 한산에는 백로가 날고, 복숭아꽃이 물 위에 흘러갈 때 쏘가리가 살찐다."라는 시구 중 일부분을 따서 그 시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음으로 쏘가리가 단독으로 그려진 경우를 살펴보자. 이런 그림은 쏘가리의 ''궐''이 궁궐의 ''궐''과 발음이 같음으로 해서 쏘가리를 궁궐로 생각하고, 이것을 ''과거에 급제하여 대궐에 들어가 벼슬살이를 한다''라는 의미를 달아 그린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낚시바늘에 꿰인 쏘가리를 그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벼슬자리를 꼭 잡아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메기그림도 잉어나 쏘가리처럼 등용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메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보면, 메기는 비늘도 없이 미끄럽지만 대나무에 오르는 재능이 있어 물이 내리흐르는 곳이 있으면 훌쩍 뛰어 넘어서며, 대나무 잎을 물고 계속 뛰면서 대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메기도 입신출세와 높은 벼슬과 관련 있는 물고기임을 알 수 있다. 넷째 동물그림이 있는데 동물 중에서는 호랑이나 용을 주로 그렸다. 전통미술의 소재로 등장하는 동물들은 그 종류가 실로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호랑이다. 민화에 등장하는 한국의 호랑이들은 사납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점잖게 입을 다물고 있거나 혹은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거나 때로는 바보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어 마치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를 대하는 듯 다정스럽고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모습의 호랑이는 세계 어느 민족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호랑이를 소재로 한 그림은 수호신적인 역할을 했던 사신도의 한 변형으로 보이며 좌청룡, 우백호로 왼편은 용이 막아주고 바른편은 호랑이가 막아준다는 벽사용으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겨레와 가장 친근한 동물인 용 은 상상의 동물이다. 그 생김새는 몸통은 뱀과 같고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이 있어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고 머리에는 사슴 같은 뿔이 있다.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어 사람이 이에 닿으면 죽게 되며 토끼 같은 눈, 소의귀, 뱀의 목, 범의 발바닥, 매의 발톱, 큰 조개같은 모습의 배를 가졌다고 한다. 용은 전통적으로 고귀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비유되어 왕의 얼굴을 용안, 덕을 용덕, 지위를 용위, 앉는 걸상을 용상이라고 했다. 왕을 용에 비유하게 된 사연은 용에게는 인간과 국가를 보호하고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이 우리민족과 용을 매우 밀접하고 폭넓은 공감대로 묶어 왔고 사실처럼 기록에 남기고 또 그림이나 조각에 표현해 왔다. [민화의 가치 재인식] 진솔하게 살아온 서민들의 삶 속에서 우러나온 감정으로부터 형성된 민화는 겨레의 꿈과 신화, 종료,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귀중한 우리의 유산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이나 행사때에 치장용으로 사용하던 풍습이 생활양식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사라지면서 자연히 민화를 그리는 화공의 맥도 끊어지게 되었고 민화는 점차 퇴보 하였다. 게다가 민화는 오랫동안 세인의 각광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얻지 못하고 속물스런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아 왔다. 순수한 감상적 목적보다는 장식되는 장소나 쓰임새가 확실할 정도로 실용성을 구비한 회화였기 때문에 소위 감상만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온 종래의 미술사에선 거의 무시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이라면 몰라도 오늘날에 와서도 이런 이유 때문에 민화가 평가 절하된다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우리의 시각을 생각할 때 대단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시대의 모든 미술 작품에 그 옛날의 중국 미관을 적용해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민화도 그 시대에서 따로 떼어 객관적으로 예술적가치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민화에 있어서 화공이 마을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려 주기 위해서는 화제와 많은 자연의 소재와 인공 기물 등의 형상을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의 개성적 표현 방법도 있어야 했고, 주문자 앞에서 주문자가 요구하는 대로 능숙한 솜씨로 그려낼 수 있어야 했다. 이것은 화공이 막상 그림을 그려야 하는 무대에서 기억한 대로 그려지지 않아 항상 즉흥성을 잦고 작업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주문을 받고 그 요구대로 그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느끼기에 약간 어색한 표현이 있더라도 수정하는 꼴을 보일 수 없었거니와 또 보여서도 안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표현은 작가 스스로 느끼기에는 그림의 수준을 낮추는 일이었겠지만 주문자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매우 재미있는 표현으로 이해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민화에 종종 기상천외한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원인에서 일 것이며, 때문에 역설적으로 창조적인 표현을 낳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숙한 표현이 창조적인 표현으로의 길을 열게 하였으며 기존 화법의 틀을 깨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고 기억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즉흥적 붓놀림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회화의 세계로 민화를 인도하는 것이다. 민화는 사물의 각 부분의 형태를 가장 기억하기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 두었다가 표현함으로써 부분적 묘사는 제법 사실적이고 정확한 형태로 그려지나 각 부분끼리의 연결은 회화적이기보다는 안다는것에 기초를 둔 지각적인 것이다. 곧 과거에 저장되었던 형태를 다시금 회상해 내고 이 회상된 것들을 아주 단순한 서로간의 관계로 결합시켜 제각기 기억된 형태로부터 태어나며 그 요소들은 그림 그리는 순서에 따라 간단하게 관계지어진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비례는 비합리적이며 서로 조화할려고 노력하고 있지도 않다. 통일감을 거부하는 이 모든 요소들은 결코 단조롭지 않으며 개개마다 생동감을 갖고 있다. 개개의 생동감이 지나쳐 산만하기까지도 하지만 반면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이 발산된다. 이러한 외부를 향한 발산력은 민화의 모든 형체들을 외부로 발산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민화의 화면은 대개 커다란 여백 없이 하나하나의 소재로 채워져 있으며, 좌우는 분명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는 민화가 벽면의 치장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균형 있는 장식을 위해서 필연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억제된 전체적인 운동감이 화면 내부의 부분과 부분에서 해소됨으로써 화면의 한 부분 한 부분은 더욱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그러나 민화에는 이상의 여러 요소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생명력의 약동이 있다. 이러한 약동감은 기억을 표현해 내는 과정에서도 생기지만 사실 민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것으로서 일일이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작가의 왕성한 힘이 무작위하게 작용하여 발산되었을 때 거기에는 약간의 불합리가 있다 하더라도 생명의 꿈틀거림이 표출되는 것이다. |
출처 : 풍경스케치
글쓴이 : 소운 小雲 원글보기
메모 : 소운 선생닌 동양화교실-한국민화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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