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신차 美서 개발"… 日자동차 脫일본 가속화
-생산 주력 옮기는 日자동차
美컨슈머리포트 혹평에 충격… 신형 '시빅' '어코드' 美서 개발
-현대·기아도 해외비중이 더 커
쏘나타 美판매 국내보다 많고 생산성도 미국공장이 더 좋아일본
혼다자동차가 향후 '시빅'과 '어코드' 신형 모델을 미국에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도요타·닛산 등이 해외 생산 비중을 크게 늘린 데 이어, 연구개발(R&D)까지 탈(脫)일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도 올해 처음으로 해외 생산량이 국내 생산량을 추월할 전망이다. 국내 사업장보다 해외 신설 공장의 노동생산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계속 이런 추세로 나가면 국내 제조기반이 '공동화(空洞化)'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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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 이어 연구개발도 해외로혼다는 이제까지 모든 신차 개발을 도쿄(東京) 북쪽 도치기(?木)현에 있는 혼다기술연구소에서 담당했다. 일부 차종의 경우 해외 연구원들이 개발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일본 연구소가 주도권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혼다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답은 시장에 있다. 시빅과 어코드는 혼다 전체 판매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차종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팔린 시빅은 1000대, 어코드는 3000대에 불과했다. 전체 판매량의 절반인 50만대는 미국에서 팔려나갔다. 경차나 소형차를 즐겨 타는 일본인들에겐 중형차 어코드는 물론이고, 배기량 1.8L짜리 준중형 시빅도 부담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미국 소비자 단체 컨슈머리포트가 2012년형 시빅을 '수준 이하의 차'라고 혹평했다. 인테리어가 부실하고, 주행 민첩성도 떨어진다는 평이었다. 컨슈머리포트는 과거 시빅을 6차례나 '최고의 차'에 선정했었다.
충격을 받은 혼다는 시장 상황에 맞게 개발 방향을 전면 수정했다. 아예 미국 개발 인력들이 현지 소비자들 입맛에 맞게 차체·인테리어·주요 부품 등 전반을 개발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쓰이 쇼지(松居祥二) 수석엔지니어는 "오하이오에 있는 미국 연구소에는 2000여명의 우수한 연구 인력이 있어 핵심 신차를 개발할 역량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혼다 경쟁사들도 속속 주력 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중이다. 최근 출시된 도요타의 대형 세단 '아발론' 신형도 제품 설계부터 최종 생산까지 전 과정을 미국 개발센터에서 주도했다. 도요타는 내년 일본 내 생산물량을 올해보다 10% 줄이는 대신, 북미와 동남아 지역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도요타는 10년 전 자국 대(對) 해외 생산비율이 6대4 구조에서 지난해 4대6으로 뒤집혔다. 내수 판매는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생산비용 상승 압박이 크기 때문. 앞으로 일본 내 생산량은 300만대 수준으로 억제하고 동남아 등 신흥 시장 생산만 늘릴 계획이다.
닛산은 이미 주력 중형차 '알티마'를 미국에서 개발해 팔고 있다. 2015년부터는 브라질·멕시코·러시아 등 신흥국에서 만드는 차의 부품을 전량 현지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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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도 해외 생산량 절반 넘어한국 자동차 업체도 일본과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09년 나온 YF쏘나타의 디자인은 미국 디자인센터에서 주도했다. 쏘나타 미국 판매량이 국내 판매량보다 많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앞으로 미국·유럽 등 해외 주요 거점의 개발·디자인센터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산 거점도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올 들어 11월까지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 비중은 51%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진 이 비중이 48%에 못 미쳤다. 올해 중국·미국·유럽 등 해외 현지 공장 생산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국내외의 비중이 역전된 것이다.
내년 이후에도 국내 신차 판매량이 많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갈수록 국내 생산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국내 공장에서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투입되는 근로시간(HPV)이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두 배가 넘는다. 유경준 KDI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생산기반과 고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려면 노동효율성을 높이고, 경직된 노사관계도 더 유연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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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데이터'로 들여다본 겨울… 첫눈 오는 날이면 '그 사람' 생각
2008~2012년, 국내 블로그 글 3억건 겨울철 키워드 분석
성탄절 종교일 아닌 휴일 인식, 교회·성당보다 카페·식당 찾고
아기예수보다 산타 얘기 많아
연말 집중했던 불우이웃 돕기 반짝 화제에서 일상 관심사로첫눈이 오면 '그 사람'을 떠올리고, 크리스마스엔 아기 예수보다 산타 할아버지를 더 많이 생각한다. 송년회는 '부어라 마셔라 술 푸는 모임'에서 맛집을 찾아가 함께 즐기는 자리로 바뀌고 있다. 불우 이웃에 대한 관심도 이제 연말용 반짝 이벤트가 아니라 연중 관심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12년 한국인의 평균적인 겨울 이야기다.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은 뭘 하나, 송년회는 어떻게 보낼까.
본지는 국내 처음으로 '빅 데이터'를 통한 한국인의 겨울 라이프스타일 분석을 시도했다. 데이터마이닝 회사인 다음소프트에 의뢰해 2008년 1월 1일부터 2012년 12월 16일까지 국내 블로그에 오른 글 3억311만3210건을 대상으로 겨울철 주요 키워드와 연관어를 분석했다. 뜻밖의 현상이 포착되기도 하고 막연히 그럴 거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첫눈' 하면 생각나는 '그 사람'시인 정호승은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고 노래했지만, 겨울 하면 사람들은 '첫눈'을 떠올린다. '첫눈'과 함께 가장 자주 등장하는 연관어는 '영화'였다. 2008~2012년 줄곧 1~3위권에 들었다. 첫눈 오는 날 함께 영화 보러 가는 이들이 많다는 뜻일까. 뒤이어 '노래' '길' '목소리' 등이 5위권 안에서 자리다툼을 벌였다. '길'은 눈 온 후의 '눈길'이나 '미끄러운 길'을 걱정하는 얘기 속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목소리'는 첫눈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목소리' 등의 표현 속에 포함된 경우들이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 사람'이 꾸준히 10위권에 끼어있다는 사실. "기다리던 첫눈은 오는데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라는 식의 감성기 짙은 문장 속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소설'은 2008년 2위, 2009년 1위를 기록하다가 2010년 13위, 2011년 18위, 2012년 13위로 하향세를 보여, 최근의 위상 하락을 반영했다.
◇송년회에도 '술'보다 '음식'송년회가 '흥청망청 취하는' 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기는 자리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송년회 연관어 검색에서 2008~2009년 단연 1위였던 '술'이 2010년부터 '음식'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해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다. 2011년에는 '요리' '맛집'이라는 단어가 3, 4위에 올라왔을 정도로 식도락이 연말 송년회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송년회에 마시는 술로는 소주·위스키 같은 독주는 점차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맥주·칵테일이 상승세를 나타냈다. 송년회 연관 장소 검색에서는 '강남'이 압도적 1위였다. 이어 청담동-종로-대학로-압구정 순으로 인기가 높았다.
◇아기 예수보다 산타 할아버지 인기
성탄절은 이제 종교적 의미보다 즐거운 휴일로 인식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크리스마스 연관 검색어로 교회·성당 같은 종교적 장소(15%)에 비해 카페·레스토랑 같은 비(非)종교적 장소(85%)가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매년 12월 집중 거명되는 관련 인물 검색에서도 '아기 예수'에 비해 '산타 할아버지'가 약 4배 높게 나왔다.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장소는 '롯데월드'(6268회)-에버랜드(5224회)-CGV(3475회)가 1~3위. 서울에서는 '대학로' '가로수길', 기타 지역으로는 부산 '해운대'와 '남포(동)'이 자주 등장했다. 경기도 포천의 '산타마을'은 2008년까지만 해도 자주 거명됐으나 2009년부터 잦아드는 추세를 보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케이크'가 압도적 1위(3만122회)였다. 이어 책(1만9079)-인형(1만6177)-초콜릿(1만3339)-쿠키(1만2304)-장난감(1만1122)-와인(9238)-모자(8619)-커피(8219)-목도리(6329) 순이었다.
◇'불우이웃'은 연중 관심사로
추운 연말, 불우 이웃도 관심사에서 빠질 수 없다. 불우 이웃이란 단어를 연말연시(12월~이듬해 1월)와 평소(2~11월)로 나눠 검색해본 결과, 불우 이웃 언급 빈도가 2008년의 경우 연말연시 36%, 평소 64%이던 것이 2011년 연말연시 28%, 평소 72%로 점차 연중 관심사로 분산돼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다음소프트의 권미경 홍보담당 이사는 "불우 이웃 이야기가 연말연시의 반짝 화제에서 점차 일상적인 관심사로 옮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는 불우 이웃 관련 감성 연관어 분석에서 '지속적'이라는 단어가 2008년 96회(7위)에서 2011년 216회(5위)로 상승한 데에서도 나타난다.
☞빅 데이터 분석이란
스마트폰의 확산, 소셜미디어 등장으로 생산·유통·저장되는 정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쏟아지는 대규모 디지털 데이터에서 일정한 패턴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빅 데이터(Big Data) 분석. 기업의 소비자 심리 파악, 경찰의 치안 계획 수립, 정치인의 선거전략 짜기 등 활용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전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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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살리느냐, 죽이느냐" 21세기 솔로몬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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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이종석 파산수석부장판사(가운데) 등 기업 회생(법정관리) 담당 판사들이 13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 기업의 회생 계획안 심사 집회(재판)를 진행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이 판사는“망한 기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사회가‘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
파산부 판사들이 말하는 '기업과 실패'의 방정식
-기업은 망할 수 있다, 당연하다
후진국은 실패를 용서 안한다… 혁신 사회는 실패를 용인한다
망한다는 건 끝장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기회로 봐야 한다
-면죄부 발급소? 망해야 산다
무조건 살리는 게 능사냐고? 망할 기업이 제때 안망하면 시장도 나라도 다 망하게 된다 지난 11월 서울에서 열린 기업 구조조정 관련 국제 심포지엄에서 중국의 한 변호사가 말했다. "외국인 사장들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몰래 도주해 버립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는 건지 화가 납니다." 일본의 한 파산 전문 학자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중국에선 사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실패한 기업을 처리하는 적법한 절차가 있습니까." 중국 변호사는 "사실 아직 잘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 우리도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당시 심포지엄에 참가했던 서울중앙지법 이종석 파산수석부장판사는 "법인 회생(법정관리)과 파산 절차가 법 안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실패한 기업의 사장에겐 채권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 "기업의 실패를 법적인 틀 안에서 얼마나 공정하게 해결하는지는 시장이 얼마나 성숙한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말했다.
◇혁신과 도전정신엔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필요한국의 가장 큰 파산부인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최근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유명세를 탔다. 법정관리 신청 건수가 올해 사상 최다를 기록하자 일각에선 파산부를 '면죄부 발급소'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파산법정의 철학과 운영 원칙은 무엇일까?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이종석 파산수석부장판사와 정준영 부장판사, 구회근 부장판사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실에서 만나 들어봤다.
―기업이 실패할 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경영진에게 있는 것 아닌가. 왜 법원이 빚을 조정해 줘야 하나.
이종석(이하 '이')=망한 기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사회가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개인 차원에서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이 부분을 담당한다. 그런데 기업 차원에서는 법인 회생과 파산이 실패를 담당하는 것이다. 가장(家長)이 빚을 많이 져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고 치자. 집을 나가서 노숙자가 되거나 심하면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빚을 적절히 조정해 줘서 경제활동을 지속하고, 오래 걸리더라도 빚을 어느 정도 갚도록 해 가정을 유지하게 하는 것 아닐까.
정준영(이하 '정')=우리 법원의 다른 판사들 중에도 파산부가 하는 일이 어색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계약을 했으면 계약을 지켜야지, 마음대로 떼어먹으려고 하느냐"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파산부에 오는 기업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산은 철학의 문제라고 본다. 창의성, 혁신, 도전정신을 높이 쳐주는 사회라면, 이 같은 가치에 '실패할 수도 있다'라는 전제 조건이 포함돼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기업을 제때 망하게 하는 것도 경영인의 책임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할지, 파산을 시킬지는 어떻게 판단하나.
정=경제성의 원칙에 따른다. 계속 기업 가치, 즉 회사를 살려두어서 경제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회사를 매각했을 때의 가치를 넘어선다면 회사를 되살려서 영업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법인 회생(법정관리)이다. 회생 절차를 밟으려면 적어도 영업 비용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회사의 자산을 매각해서 채권자들에게 적절히 배분하는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권리 순위에 따라서 얼마나 신속하고 공정하게 기업을 정리하는가의 문제는 국가 신인도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구회근(이하 '구')=체면 때문에 끝까지 버티다가 기업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로 법원에 오는 경우를 볼 때 매우 안타깝다. 6개월 동안 임금이 체불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한 회사를 어떻게 되살리나. 자구(自救)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 기업을 제때 망하게 하는 것도 경영인의 사회적 책임이다.
―법인 회생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많다.
이=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 자체가 경영인의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기업가 입장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한마디로 '망했다'고 인정하는 셈이고, 다 내놓아야 한다. 현금 빚은 줄어들더라도 채권자의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주며, 대주주의 주식은 소각해서 회사를 채권자에게 넘기게 된다. 또 채권자들이 추천한 구조조정 임원이 직원들 식대 나간 것 하나까지 다 들여다본다.
정=미국 도산법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법대 교수의 책 '미국의 기업회생 제도'에 나오는 첫 문장을 늘 되새긴다. '기업은 망할 수도 있다(Businesses fail)'는 것이다. 중국 그리고 과거의 한국같이 기업을 실패하지 못하게 하고 공적 자금을 투입해 연명시킬 수도 있지만, 망할 기업을 제때 제대로 망하지 못하게 하면 시장이 망가지고, 결국은 나라가 망가지게 된다.
◇"경영권 유지, 채권단이 동의해야"
―법정관리 기업의 경영진이 '기존관리인유지(DIP)'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유지한다는 비판이 많은데.
정=기존관리인유지 제도의 취지는 회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기존 경영인이 기업의 회생 절차를 맡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이 이미 오래전부터 도입하고 있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기업의 재정적 파탄이 경영인의 재산 유용, 은닉, 부실 경영 때문이거나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엔 기존 경영인을 선임할 수 없도록 한 견제 장치가 있다. 웅진홀딩스의 경우 채권자협의회의 요청에 따라 윤석금 회장이 결국 관리인을 맡지 못했다. 법인 회생 절차는 법원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과정에서 까다로운 표결 절차를 걸치고, 이 과정에서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차를 진행할 수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파산법정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지난해 3월 도입한 '패스트트랙(fast track)' 회생 절차가 가장 대표적인 변화다. 채무 조정을 최대한 빨리, 될 수 있으면 6개월 안에 마무리해 기업을 시장으로 복귀시키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이전에는 일단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오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법원의 관리 아래 있었다. 그동안은 '법정관리 기업'이라는 낙인 탓에 투자를 받거나 계약을 따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구=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법인 회생, 파산, 워크아웃 제도가 크게 발전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판사가 미국에 가서 도산법을 공부해 왔고, 파산 제도도 정비돼 부실한 기업을 솎아내서 정리하는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한국이 완전히 쓰러지지 않게 한 숨은 동력에는, 지난 10년 동안 작동해 온 파산 제도가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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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가장 큰 위협… 저금리 기조 심화될 것”
본보, 주요 은행장 9명 집중설문… 내년 한국경제는?
[동아일보]
주요 은행장들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 안팎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내년에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가계부채를 꼽았고 기준금리는 올해보다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국책은행장과 시중은행장 9명은 동아일보 경제부가 실시한 2013년 경제 전망 등에 대한 설문에서 이같이 답했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관련해서는 강만수 KDB산은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2.0∼2.5%로 가장 낮은 전망치를 내놨다. 윤용로 조준희 행장도 2%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이순우 신충식 김용환 민병덕 김종준 하영구 행장은 3%대 성장률을 기대했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3.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3.1%)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제시한 내년도 한국 성장률 전망치보다 조금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국내외 요인을 한 가지씩 꼽아달라는 질문에 9명 중 6명이 대내 요인으로 가계부채를 꼽았다. △이순우 행장은 부실 여신 증가 △김종준 행장은 성장률 하락 △하영구 행장은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라고 대답했다.
대외 요인으로는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 재정절벽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국책은행을 이끌고 있는 강만수 회장과 김용환 행장은 각각 ‘외환·금융시장 불안’과 ‘세계 각국의 환율전쟁’이 가장 큰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내년 경제 기상도를 묻는 질문에는 5명이 ‘흐린 후 맑음’을, 4명은 ‘흐림’을 꼽았다. 설문에 응답한 은행장 9명 모두 내년 초반에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 셈이다.
경제 저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김용환 하영구 행장은 1분기를, 강만수 조준희 신충식 행장은 2분기를 저점으로 예상했다. 김종준(3분기) 윤용로(3분기 혹은 4분기) 이순우(4분기) 행장 등은 하반기나 돼야 저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2.75%인 기준금리와 관련해서는 ‘동결’을 전망한 김종준 행장을 제외한 8명이 모두 내년 중 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하 폭은 ‘한 번에 0.25%포인트’와 ‘두 차례에 걸쳐 각각 0.25%포인트(총 0.50%포인트)’로 엇갈렸다. 신충식 NH농협은행장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 경기 부양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둘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위해 상반기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원-달러 환율은 1050원을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1000원 밑으로 하락(원화 가치 상승)할 것으로 보는 행장은 한 명도 없었고 11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이도 신충식 행장이 유일했다.
내년 은행 경영과 관련해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7명이 수익성 및 건전성 유지라고 대답했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순이자 마진 축소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가계부채 부실로 건전성 악화가 예상된다”며 “수익성과 건전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모든 은행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내년 한국 금융권이 주목할 주요 이슈는 저성장과 저금리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신성장동력 확보와 리스크 관리를 꼽을 수 있다”며 “한국 경제가 일본과 같은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융가에서 최고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관련한 질문에 응답한 5명 모두 “국내외 금융정책을 통합 관리하는 ‘금융부’ 신설에 찬성한다”고 대답했다. 금융감독원을 소비자감독기구와 건전성감독기구로 나누는 방안에는 5명 중 4명이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황진영·황형준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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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00대 CEO에 윤종용 3위, 정몽구 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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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비지니스리뷰(HBR) 선정 세계 100대 CEO에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3위에, 정몽국 현대차 회장이 6위에 각각 올랐다. /HBR 홈페이지 캡처 |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선정한 세계 100대 CEO에 윤종용 삼성전자 전(前) 부회장이 3위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6위에 올랐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펴내는 하버드비지니스리뷰(HBR)는 20일 "1995년 이후 전·현직 CEO 31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최고의 CEO에 올랐다"고 밝혔다. HBR은 단기적인 주가나 매출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CEO를 평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숨진 잡스는 2010년 HBR의 세계 100대 CEO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잡스는 1997~2011년 CEO로 재직하면서 주가를 6682% 키우고, 시가 총액을 3590억 달러(약 400조원)나 불렸다.
2010년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던 윤 전 부회장은 이번 순위에서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에 밀려 3위에 올랐다. 윤 전 부회장은 1996~2008년 재직하면서 삼성전자의 주가를 1559% 키우고 시가총액을 1280억 달러(약 140조원) 증가시켰다.
베조스 CEO는 1996년 이후 지금까지 주가를 1만2431% 키우고, 시가 총액을 1110억 달러(약 121조원) 불렸다.
정몽구 회장은 1999년 이후 지금까지 현대차의 CEO로 재직하면서 주가를 2024% 키우고, 시가총액을 480억 달러(약 52조원) 높였다. 2010년 발표에서 29위였던 정 회장은 현대차의 고속질주와 함께 순위도 6위로 껑충 뛰었다.
이번 발표에서 여성으로는 맥 휘트먼 이베이 CEO(9위)와 동밍주(董明珠) 거리(格力)전자 CEO(98위)가 유이(有二)하게 등재됐다. 거리전자는 중국 최대의 에어컨 제조 기업이다.
이번에 발표된 100대 CEO 중에 MBA 경력자는 27명에 불과했다. 83명은 내부 승진으로 발탁됐다.
아시아 국가별로는 한국에서 2명, 일본에서 2명, 중국 본토에서 2명, 홍콩에서 4명, 대만에서 1명이 100대 CEO에 선정됐다.
[조호진 기자
superstor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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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서… 가장 깊은 곳서…인간 한계에 도전하다
[한겨레]
바움가르트너, 3만7000m서 낙하
“세상 정점에 서면 생존 의지뿐”
제임스 캐머런 1만여m 바닷속에
“내가 보는 것 모두와 공유하고파”줌업 2012|인간의 꿈2012년에도 인간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올해 인간은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고,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 창공 높은 곳에 섰던 도전자는 말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이들은 오히려 자연 앞에서 겸손해졌다.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트너(43·위 사진)는 10월9일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웰 사막 상공 3만7000m 고도에서 맨몸 낙하에 도전해 성공했다. 헬륨 기구를 타고 상승해 성층권 상층부에서 보호복과 헬멧, 낙하산만을 착용한 채 수직낙하한 것이다.
그는 뛰어내린지 40초만에 음속을 돌파했고 최고 낙하속도는 시속 1324㎞에 이르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세상의 정점에 서면 기록 같은 건 전혀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살아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영화 <타이타닉>, <아바타> 등을 감독했던 슈퍼스타 제임스 캐머런(57·아래 사진)은 3월25일 오전 7시52분 1인승 잠수정 ‘딥 시 챌린저’를 타고 1만898m,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에 도착했다.
태평양 필리핀 근처인 이 해구의 해연이 인간의 발길을 허용한 것은 지난 1960년 이후 처음이며, 1인승 잠수정으로서는 세계 최초다. 캐머런 감독은 해연에 도착한 뒤 트위터를 통해 “방금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남긴 뒤 “밑바닥에 닿은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내가 보는 것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세시간 가량 머물며 고화질 3D 카메라로 심해를 촬영하고 해양 지질에 대한 샘플도 수집했다.
글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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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하원의장, `정치절벽' 추락 위기"< WP>
매코널 공화 상원대표 `재정절벽' 협상 역할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 미국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이른바 `재정절벽(fiscal cliff)' 협상 난항으로 `정치적 절벽(politicla cliff)'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대통령선거 직후 본격화한 재정절벽 협상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공동 주역'을 맡아왔으나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한데다 자신이 내놓은 협상안이 당내에서조차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다음 달 출범하는 제113대 의회에서 과연 베이너 의장이 2년 더 하원을 이끌 지도력이 있느냐에 대한 의문까지 나온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베이너 의장은 지난 20일 연소득 100만달러 미만 가구를 상대로 세제 감면 혜택을 연장하는 내용의 이른바 `플랜 B'에 대한 하원 표결을 하려 했으나 막판에 이를 보류했다.
공화당 내부에서 `플랜 B'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가결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당 안팎에서 베이너 의장의 정치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 민주당 의원인 리 해밀턴 인디애나대 교수는 "베이너 의장의 리더십은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의 정치 경력에 중대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베이너 의장이 차기 하원의장직을 포기할 것이라는 징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내 최대 도전자로 꼽히는 에릭 캔터(버지니아) 원내대표는 베이너 의장의 `플랜 B'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 다른 경쟁자인 톰 프라이스(조지아) 의원도 하원의장 선거에 출마할 계획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재정절벽 협상의 향배에 따라 베이너 의장의 정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0년 소득세 감면 연장 협상과 지난해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협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베이너 의장을 대신해 향후 협상을 주도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오바마 대통령과 베이너 의장이 주도하는 재정절벽 협상은 경우에 따라 공화당의 매코널 대표와 민주당의 조 바이든 부통령,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가 이끌고 나갈 수도 있다고 WP는 전했다.
존 크로닌(공화ㆍ텍사스) 상원의원은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능력으로는 매코널 대표보다 나은 인물이 없다"면서 "그는 위기탈출을 위한 창조적인 방도를 찾는 데 전문가"라고 말했다.
huma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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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北개발 지원"…中통해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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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세계은행총재 |
세계은행이 중국을 경유해 북한 측에 경제지원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청와대와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 11월 중국 차기 총리로서 권력 2인자인 리커창 상무부총리를 만나 북한에 대한 세계은행의 경제개발 지원 의사를 밝혔다.
리 상무부총리는 이에 대해 "(북한 경제 개발은) 중국의 국익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매우 좋은 생각"이라며 "조만간 북한에 방문할 예정인 중국 측 고위 인사를 통해 김 총재의 뜻을 북한 측에 전달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리 상무부총리는 북한의 경제 개발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면서 세계은행의 역할에 상당한 기대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이달 초 통보받았다. 김 총재는 최근 미국을 방문한 한국 정부의 고위급 인사와의 면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며 관련 사실을 설명했다.
세계은행 관계자는 "북한은 아직까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이고도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북한 측의 회원 가입과 지원 요청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지원계획이 수립된 것은 없다"면서 "10여 년 전에도 북한에 대한 세계은행의 경제개발 지원이 여러 경로를 통해 거론됐으나 실제 결실을 맺지 못한 전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총재는 지난 10월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했을 때 북한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내 아버지도 실향민이고 가족이 여전히 북한에 살고 있다. 하루빨리 대화가 열려 북한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개발 지원이 성사되려면 △북한 측의 세계은행 회원국 가입 △세계은행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용인 △한국 정부와의 협의 등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 12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한ㆍ미 양국의 대북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시일 안에 세계은행의 대북 지원이 성사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내년 초부터 본격화할 한국의 차기 정부와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 조율과정에서 세계은행의 북한 경제개발 지원이 유용한 카드로 다뤄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중국 측에 세계은행의 북한 경제개발 지원에 대한 의사를 밝힌 사실을 확인했다"며 "다만 북한이 회원국이 아니라 당장 지원이 어려운 점도 있고, 세계은행도 아직 구체적인 지원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워싱턴 = 이진우 특파원 / 서울 = 김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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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장관 B- ‘무난’ 김중수 총재 D+ ‘꼴찌’
[서울신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B-, 김석동 금융위원장 C,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C,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C-,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C-,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D+. 대학교수, 기업체 임원, 은행장 등 경제계 인사 80명이 매긴 ‘현 정부 경제팀’에 대한 성적표다. A학점은 한 명도 없었다. B학점은 박재완 장관이 B-로 유일했다. 경제부처 수장 6명 중에서는 학점이 가장 높다. 박 장관 스스로도 자부심을 크게 갖고 있는 ‘재정 건전성’이 평균 점수를 끌어올렸다. 22명에게서 A를 받았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에 함몰돼 경기 상황을 오판했다는 정반대 평가도 적지 않았다. F를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비교적 무난하게 거시경제 정책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학점이 가장 낮은 사람은 김중수 총재다. 평가자의 절반 이상(41명)이 금리 정책 실기를 문제 삼았다. F학점을 준 사람도 7명이나 됐다. 시장의 비판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다는 점에서 A학점을 준 사람(3명)도 있었다.
평가가 가장 극명하게 엇갈린 수장은 김동수 위원장이다. 12명에게서 A학점을 받아 박 장관 다음으로 A가 가장 많았다. 동시에 F학점도 5명에게서 받아 김 총재 다음으로 F가 많았다. 예컨대 물가 단속에 대해서는 “공정위 외연 확대”라는 호평과 “부처 목표 오조준”이라는 비판이 교차했다.
김석동 위원장은 11명에게서 A학점을 받았다. 하지만 C(32명)와 D(10명)학점도 많아 총점은 C에 그쳤다. F를 준 사람도 한 명 있었다. “관(官)은 치(治)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소신과 가계 부채가 ‘우등생 대열’ 합류를 막았다.
홍석우 장관과 권도엽 장관은 ‘약한 존재감’이 역설적으로 중간 학점을 끌어냈다. 상당수의 평가자들이 “이렇다 할 공과가 없다.”며 A도, F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무난한 B와 C에 상대적으로 점수가 몰렸다. 현안 대처에서는 홍 장관이 권 장관보다 조금 앞섰다.
경제살리기 올인… 성적은 ‘기대 이하’
[서울신문]
경제계 인사 80명의 현 정부 마지막 경제팀에 대한 평가는 ‘미흡’이었다.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큰 파고가 있었던 점을 들어 당사자들은 “선방했다.”고 강변할 수 있지만,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며 경제 살리기에 올인한 점을 감안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박재완(4.0점) 기획재정부 장관만 하더라도 성적표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대놓고 1등을 자랑할 처지가 못 된다. 낮은 학점을 준 평가자의 상당수는 리더십을 문제 삼았다. 경제부총리는 아니지만 선임 경제부처 수장으로서 박 장관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평가다. ‘비서 타입 행정가’, ‘스태프형 장관’이라는 심사 각주가 적지 않았다. 박 장관에게 높은 점수를 준 재정 건전성은 양날의 칼이었다. 재정 건전성에 함몰돼 경기 상황을 오판, 소극적인 경기 부양에 그치면서 올해의 ‘성장률 쇼크’를 완화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권도엽(3.2점) 국토해양부 장관은 취득세와 양도세 등 주택거래세 인하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잘못된 세제나 규제 조치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건설산업의 투명화에 노력했다.’ 등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존재감이 약하다는 지적이 무척 많았다. 부동산 정책 실패, 4대강에 대한 과도한 투자 등도 4명에게서 낙제점(F학점)을 받았다. 철도경쟁체제를 추진한 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존재감이 약하다는 지적은 홍석우(3.5점) 지식경제부 장관도 받았다. 재벌에 편향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래도 1조 달러 무역시대를 열고 경상수지 흑자 폭을 확대한 것은 평가할 만한 공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전력 위기관리에 대해서는 마무리는 그럭저럭 했지만 위기를 막기 위한 수급체계를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유난히 많은 산하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손대지 않음으로써 후임 장관에게 큰 짐을 안겨줬다는 뼈 아픈 평가도 있었다.
김석동(3.5점) 금융위원장은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문제가 된 경우였다. ‘소리만 요란한 꽹과리’라며 ‘과거의 전문성과 통솔력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과의 불협화음 탓인지 다른 부처와의 정책조정 기능이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과 마피아의 합성어)라는 출신 성분의 한계와 ‘관치금융 심화’ 등도 혹평의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가계부채 연착륙을 유도하고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A학점을 준 사람도 11명이나 됐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끌어낸 점 등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김동수(3.3점) 공정거래위원장은 ‘부처’보다는 ‘개인’을 앞세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자신의 치적을 의식해 담합 조사 등을 남발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은 공정위를 보는 시선에 따라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는 점이다. 물가 단속 등 본연의 목적에 맞지 않는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공정위의 존재감을 없게 만들었다는 비판과, 공정위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가 공존한 것이다. 공정위의 역할에 대한 새 정부의 사회적 합의 필요성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김중수(2.9점) 한국은행 총재가 D학점을 받은 주요 요인은 금리 정책 실기였다. 이를 중앙은행의 독립성 약화와 연결시킨 평가도 제법 있었다. 취임 초기 ‘한은도 정부’라고 했던 김 총재의 발언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 내부 인력들과의 조화에 실패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소신’을 높게 평가한 사람도 있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경제·산업부 종합
■어떻게 평가했나 대학 교수, 민·관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투자은행(IB) 및 증권사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가와 은행장, 기업체 임원, 경제 관련 단체 등 경제현장에서 뛰는 인사 등 총 80명이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점수를 매겼다.
금융, 부동산, 실물 등 가급적 여러 영역이 고루 섞이도록 했다. 총 5점 만점으로 5점=A, 4점=B, 3점=C, 2점=D, 1점=F다. 점수와 평가자 수를 곱해 합산한 뒤 총평가자(80명) 수로 나눠 단순 평균했다. 소수점 두 자리에서 반올림했으며 학점별로 초반은 ‘-’, 중반은 ‘0’, 후반은 ‘+’로 구분했다.
예컨대 C학점의 경우 3.0~3.3은 C-, 3.4~3.6은 C, 3.7~3.9는 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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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인터뷰 - 박근혜 정부에 바란다
“세금 올리고 복지 늘려야 성장 온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50)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에게 박근혜 시대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그는 대선 이틀 뒤인 21일 케임브리지대 연구실에서 나눈 네 시간의 대화 내내 복지, 사회적 대통합, 국가적 산업 전략을 강조했다. 정부의 기술 개발 투자와 특정 산업 육성, 복지 제도의 확립으로 다시 한국 경제를 성장의 발판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심정이 복잡했다. 당선인이 과거사를 깨끗이 정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자식이 아버지를 부정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인정했어야 했다. 아버지가 너무나 확연히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남겼기 때문에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박정희 시대의 긍정·부정 요소는.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다. 산업 고도화 정책이 이룬 엄청난 업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독재하고, 필요 이상으로 노동자를 탄압했다. 큰 잘못이다.”
-박 당선인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나.
“지지하지 않은 48%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반대 진영 사람 좀 데려다 쓰는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복지 제도를 만들어 모든 국민이 마음 편하게 살고, 일하는 나라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선거판에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장 교수도 올봄에 낸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경제민주화를 얘기했다. 도대체 경제민주화가 뭔가.
“전 세계에서 다이어트 약을 연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말라리아 퇴치 연구비의 약 20배다. 말라리아로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지만 말라리아 약이 필요한 사람은 가난해서 수익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잘못된 시장의 현상을 막는 게 경제민주화다. 정치의 '1인 1표주의'로 경제의 '1원 1표주의'를 바로잡는 것, 즉 정부가 시장에 규제를 가해 사회적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 더 공평한 사회의 구현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논의는 재벌의 지배구조나 계열사 간 순환출자의 문제에 집중됐다. 박 당선인도 순환출자를 더 이상 못하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소액 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순환출자를 막는 게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그것은 주주 간의 싸움일 뿐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과 상관없나.
“물론 경제민주화에 재벌 개혁도 포함된다. 노동권 인정 안 하고, 규제 빠져나갈 궁리하고, 하청기업 쥐어짜는 것 고쳐야 한다. 그런데 진짜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는 대량 해고, 골목상권 위협, 고용 불안, 비정규직 확대 이런 것들이다.”
-통합진보당 등에서는 재벌 해체하면 이런 문제 해결된다고 하는데.
“순진한 생각이다. 재벌이 아닌 KT·포스코에는 하청이나 비정규직 문제가 없나. 중소기업 중에도 얼마나 나쁜 곳이 많나. 재벌 없앤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다.”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쪽은 주식 보유 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가지는 이른바 '주주 자본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투자자의 이익 때문에 단기 이윤에 급급하고, 재투자 안 하고, 노동자 교육 안 시켜서 망하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본다. 이건희·정몽구 회장 쫓아내고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주주들이 정말 그런 사람에게 경영을 맡기게 된다는 보장이 있나. 미국과 영국의 금융권에서 자신들의 단기적 이익만 충실히 보장해줄 인물로 삼성전자의 경영인을 선택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21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연구실에서 본지 이상언 런던 특파원(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하준 교수. 이날 인터뷰는 4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주주 자본주의'가 확산되면 해외 자본이 우리 경제를 망칠 수도 있나.
“이미 여러 사례에서 보지 않았나. 해외자본이 KT&G에 영향력 행사해 있는 자산까지 팔아서 이윤보다 더 많이 배당하도록 했다. 전문 경영인이 주주를 무서워해 재투자 못하게 된다. 단기 이윤 많이 내기 위해 되도록 비정규직 많이 쓰고, 직원 교육도 못한다.”
-이번 대선에선 모든 후보가 복지를 앞세웠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의 사회 변화가 만든 일이다. 고용 안정성이 사라지고, 자본시장 개방되면서 투기성 행위로 빈부격차 커졌다. 동시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하면서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돈 못 버는 게 개인의 책임이 됐다. 그래서 과외 받고 '스펙' 쌓아서 좋은 데 취직하고, 토익 공부해서 승진하고, 빚 얻어서 재테크 하는 데 몰두했다. 한때 '부자 되세요'가 서로 주고받는 인사가 되지 않았나. 온 국민이 그 길로 갔다. 그래서 잘살게 해주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 그런데 더 나빠졌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재테크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복지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뭘 잘못했나. 기업들 잘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규제 풀고 세금 줄인다고 기업이 저절로 잘되는 게 아니다. 지금의 경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부의 기술 혁신 유도, 신기술 투자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이런 일을 안 했다. 교육·복지·재교육·재취업·연구개발·사회간접자본 확충이 다 맞물려 돌아가야 성장이 이뤄진다.”
-박 당선인은 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대를 약속했다. 세금 안 올리고 할 수 있나.
“복지국가를 약속하면서 세금은 안 올리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탄탄한 복지국가 만들려면 세금을 늘려야 한다. 세금 낸다고 내 돈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국민이 개별적으로 보험을 드는 대신에 대한민국이라는 보험회사에 보험료를 내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경제 분야 공약을 봤나.
“온갖 대증요법은 다 모아놓았을 뿐 경제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큰 그림이 없었다.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한다고 병이 낫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선진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도 복지 규모를 줄인다는데.
“비만 환자가 다이어트 하니까 영양실조 걸린 사람도 밥 굶겠다고 하는 꼴이다. 우리는 '복지병'보다 '복지실조'를 걱정할 때다.”
-북유럽 복지 제도는 인구 규모나 경제 구조 면에서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 포항제철과 현대조선소 만들 때 국내외 경제학자들 모두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당시 우리 수준엔 라디오 조립하고 인형이나 가발 만드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새 대통령이 우선 해야 할 일은.
“일단 본인이 내세운 복지 공약을 최대한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 시간이 지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면 반대론자들의 저항이 커질 수 있다. 그 다음엔 기업가·노동자·전문가 등을 모아 치열하게 논쟁하도록 하면서 경제정책의 큰 틀을 짜야 한다.”
-일자리는 어떻게 늘릴 수 있나.
“복지 제도를 잘 만들어야 고용 창출이 된다. 예전엔 봉제공장 노동자가 몇 주 교육 받으면 전자공장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동차 회사에서 정보통신 업체로 가려면 6개월에서 2년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복지 제도가 있어야 그런 교육이 가능해진다.”
◆ 장하준 교수는27세 때인 1990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가 됐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1년 전이었다. 국가 개발정책을 정치경제학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전공이다.
그는 학자·관료·정치인이 두루 있는 명문가 출신이다. 할아버지(장병상)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였고, 부친은 장재식(77)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다. 동생 장하석(45)씨는 케임브리지대의 과학사·과학철학과 교수다. 장충식(83) 전 하이닉스 회장이 큰아버지, 장영식(73) 전 한국전력 사장이 작은아버지다. 장하진(61) 전 여성부 장관, 안철수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했던 대표적 재벌개혁론자 장하성(59·경영학) 고려대 교수와는 사촌 사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자유시장경제를 비판하는 책을 내왔다. 그의 책은 한국에서 150만 부가량 팔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 리스트에 올라 더욱 주목받았다.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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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검은돈은 밝은 곳 싫어하는데 … 372조원, 자수해서 광명 찾을까
박근혜 당선인 '지하경제와 전쟁'
지난달 21일 수원역에서 현금 5000만원이 든 돈가방이 발견됐다. 물품보관함에 들어 있던 이 돈가방의 주인은 한 달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4월엔 전북 김제의 밭에서 110억원이 발견됐다. 유명한 '마늘밭' 사건이다. 이 돈의 출처는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 수익으로 밝혀졌다.
지하경제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공약하면서다. 박 당선인 측은 지하경제의 6%만 양성화해도 연간 1조6000억원의 세수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고소득 자영업자와 대기업 탈루소득에 과세를 강화하면 연간 1조4000억원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도 한다. 둘을 합하면 5년간 재원 확충 규모가 15조원에 이른다. '블랙머니의 화이트닝(검은돈 양성화)'에 가장 적극적인 인사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다. 그는 23일 “부자증세 해봐야 몇 푼 안 된다”며 “상속세 포탈, 기업 비자금 등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과거 정권의 금융실명제나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굵직한 경제 개혁은 모두 지하경제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효과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우선 지하경제의 규모부터 아리송하다. 새누리당은 지하경제 규모를 약 372조원으로 본다. 정부가 짠 내년 예산안(342조5000억원)보다 많다. 지하경제 전문가인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오스트리아 리츠대 교수는 한국에 인색한 평가를 하고 있다. 1999~200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하경제 비율이 평균 26.8%에 달한다고 봤다. 이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스위스·오스트리아 등은 지하경제 비중이 GDP의 10%에도 못 미친다.
조세연구원의 분석은 다르다. 슈나이더 교수는 국제 비교가 가능한 수치만 이용하다 보니 한국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논리다. 조세연구원 분석은 2008년을 기준으로 GDP의 17%(160조~170조원) 정도다. 지하경제의 기준을 소득세 탈루로 좁게 해석하면 GDP의 2~3%(22조~29원)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안종석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신용카드 결제액 소득공제 등으로 1990년대 이후 지하경제 규모가 축소되는 추세”라고 진단한다. 새누리당이 추정한 지하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것은 과거 GDP를 기준으로 한 지하경제 비율을 지난해 GDP를 기준으로 단순 환산한 측면도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지하경제 규모 통계는 아직 없다.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국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확보의 첫걸음은 규모 파악”이라고 강조했다.
지하경제와의 전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파켈라키(작은 봉투)'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촌지 문화가 대표적이다. 2009년 한 해에만 그리스 정부가 거두지 못한 세금이 330억 유로라는 분석도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하경제와 탈세를 양성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위기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21.7%(2010년 기준)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이거다 싶은 방안은 찾지 못했다. 세금 많이 내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듯, 돈도 태생적으로 밝은 곳을 싫어한다. 웬만한 자극에도 검은돈은 꿈쩍 않는다. 그리스는 6000여 개 탈세기업 명단을 발표했으나 별반 반응이 없다. 방글라데시는 지난 6월 검은돈 합법화를 추진했다. 검은돈 소유자가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고, 세금의 10%만 벌금을 내면 면죄부를 주는 제도인데 사회적 논란만 일으켰을 뿐이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 건 '지하경제의 국제화'다. 국세청의 역외 탈세 조사 실적이 2008년 1503억원에서 지난해 9637억원으로 6배 늘어났다. 검은돈은 안을 조이면 밖으로 튀어나가는 속성이 있다는 얘기다.
박 당선인 측이 만지작거리는 카드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정보를 국세청이 지금보다 더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FIU는 1000만원 이상 금융 거래 내역에 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이한구 원내대표 주도로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미국·영국·호주 등은 국세청이 FIU 정보망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 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물거래 중심의 과세인프라 체계는 갈수록 진화하는 신종·첨단 탈세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금융거래 중심의 과세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론도 적지 않다. 금융실명제는 FIU 정보 이용보다 훨씬 강력한 정책이었지만, 기대만큼 효과를 못 봤다는 평가다. 국세청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차명 재산 규모를 3만2000건(4조7000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
자칫하면 국세청 배 불리기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은 “세계 최정상급인 한국의 과세 정보 전산화 수준 등을 감안할 때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펴봐야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며 “자칫하면 세금 걷는 비용만 늘리고 공무원 수만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하려면 소규모 자영업자에 적용되는 간이과세 제도 등을 축소하는 인기 없는 정책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지하경제 비중을 낮춰 누구나 정당하게 세금 내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세율을 올리는 식은 가장 하책”이라고 지적했다.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민 탈세 감시단 활성화, 포상금 지급 인상 등 사회공동체와 협력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영훈 기자
filic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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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우리 시대의 성녀(聖女)…소피아(최분이) 수녀
“내 손을 보면 ‘오리발’이라고 해… 나는 배운 게 없어 식모일만 했거든”“이 세상에 내가 안 온 걸로 치고 내가 그 일을 하게 해달라 시래기를 주워도 안 굶게 하고”마더 테레사 방한해 그 방에서 잠자 김수환 추기경, “저기 수녀 왕초다” 임종 직전 이방자 여사에게 세례 줘"이제 늙은 할매가 다 돼서 일도 안 하는데… 꼭 오셔야 해요?"
마산역에서 내려 진동 방면으로 40분 걸리는 외진 동네에 '요셉의 집' 문패가 보였고, 소피아(최분이·74) 수녀는 사내 아홉 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까 운전하던 그 아이는 쓸개도 없고 간도 조금 남았어. 다들 죽을 거라 했는데 지금 완전히 정상이 됐어요. 동네 사람들은 여기에 누가 사는지 몰랐지. 내가 술꾼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면,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있거든. 이 집을 애들과 같이 지었어요. 나를 '왕초' '대빵' '엄마' '할마시', 지그들 좋은 대로 불러. 여기에 온 지 5년쯤 됐나."
키 작은 노(老)수녀의 말씀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조리가 없었다. 하지만 거칠고 터 갈라질 듯한 그의 검붉은 손은 모든 걸 말해줬다. 내가 손을 잡자, "사람들이 '갈쿠리' '오리발'이라고 해. 배운 게 없어 평생 식모 일을 했거든" 하며 수줍어했다.
우리 시대의 성녀(聖女)…소피아(최분이) 수녀
―수녀님이 식모 일이라니요?
"수녀들 중에도 머리 좋은 사람은 공부를 시키는데, 우리처럼 일에 미쳐 사는 사람은 공부 머리가 안 되잖아요. 대구시립희망원(부랑아 복지시설)에서 일하겠다고 하니까, 총장 수녀님께서 '복지사 자격 있어요? 자격증 없으면 안 돼요' 하잖아요. 제가 '씻기고 닦이는 것도 자격증이 필요한가요?" 했지. 남들이 다 안 가려고 하는데 그런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갔어요. 거기서도 10년간 '식모 일'을 한 거죠. 뒤에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긴 했어요."
―어떤 일을 하셨길래.
"제가 주방을 담당했어요. 부식비가 적게 나오니, 트럭을 타고 이곳저곳 부식 사러 다녔어요. 요양원 측은 나보고 '불도저'라고 했어요. 요양원 마당에 오리를 1000마리나 키웠어요. 오리알을 삶아 먹이려고, 그릇 던지고 싸움이나 하는 애들도 잘 먹이니까 조용해졌어요. 아이들은 내가 안 보이면 '우리 두목 어디 갔나'라고 했고."
―부랑아들이 술에 취해 수녀님께 행패 부리지는 않았나요?
"내 말은 그래도 잘 들었어요. 술 취해서 내 앞에서 바지를 홀딱 벗고서 '치료해달라'고 하거든. 내가 '야 사내자식이 가릴 것은 가려야지' 하면, '엄만데 어떠노'라고 해요."
―비록 수녀님이나, 여성의 몸인데.
"얼굴 생김도 무서운 깡패 중의 깡패가 있었어. 한번은 이 아이가 눈이 뒤집혀서 '너를 죽여버린다. 오늘 한번 해보자'며 왔다갔다 해. 그러곤 주전자에 든 우유를 내 옷에 들이붓는 거야. 누군가가 이를 보고 파출소에 신고를 했어요. 경찰이 와서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놈이 어디 있습니까?' 묻는데, 나도 모르게 '아까 장난치고 갔습니다'라고 답했어요. 경찰이 떠나자, 이 아이가 '엄마' 하며 무릎을 꿇어요. '다른 사람들에겐 옷도 갈아 입혀주고 약도 주더니 왜 나한테는 안 해줬어. 나도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겠다'며 우는 거야. (울먹이며) 나도 걔가 무서워서 가까이 안 했는데."
―1981년 5월 마더 테레사 수녀가 방한해 대구시립희망원까지 내려와 "노벨 평화상은 소피아 수녀가 받아야 하는데 내가 받았다"고 말했다면서요?
"그 소리는 할매(테레사)가 그냥 말한 거지. 내가 원장 수녀나 되는 줄 알고 잘못 말한 거지. 나는 희망원에서 부식이나 사러 다니는 식모였는데."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 하늘에서는 가장 높은 곳 아닌가요?
"그러면 큰일 나지. 원장은 원장이지. 하여튼 그때 테레사가 마음이 상했어. 자기만을 보려고 인파가 몰려들었거든."
―그게 왜 마음이 상할 일인가요?
"사람들이 희망원에 있는 아픈 아이들한테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를 보려고 서로 밀치고 하니까 그랬지."
―당시 마더 테레사가 수녀님 방에서 주무셨다면서요?
"내 연탄방에서 자고 싶다고 해서 그랬어요. 그 방은 연탄가스 냄새가 나서 문을 꼭 열어놓아야 하는데."
―두 분이 그전에 인연이 있었던 건가요?
"한국에 오시기 2년 전에 내가 초청을 받고 인도 콜카타로 가서 테레사를 만났거든. 통역이 나에 대해 뭐라고 얘기를 한 것 같아. 내가 무식해 대화가 잘 안 되는데도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그분과 얘기하다가 서로 계속 울었어요."
―수녀님이 왜 무식합니까?
"나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셈이지. 내가 무식하게 살았어요. 엄마가 몸이 불편해 나는 집을 돌봐야 했지. 오빠와 동생들은 공부했고."
―가톨릭 집안이라, 21세 때 수녀원에 들어가신 겁니까?
"가톨릭 집안이 아니야. 내가 어려운 사람과 같이 살고 싶어서. 내가 죽어도 간다니까 부모님이 못 말렸어. 삼천포(사천)에서 아버지가 건축 일을 해서 먹고살 만했어. 그런데 집에 있는 것을 내가 다 퍼다 주니까."
―퍼다 주다니요?
"6·25 직후라 다리 밑에 거지들이 우글거렸어. 피란 내려온 어려운 사람이 많았거든. 집에 있는 된장·고추장을 막 퍼다 줬어. 어렸을 때부터 남 돕는 게 그렇게 좋아. 엄마가 '이놈의 기집애야, 네 아버지가 그냥 돈을 주워 온 줄 아나. 저걸 다리몽댕이를 부숴버릴까' 하며 야단도 많이 쳤어요. 아버지 생신날 광어를 넣어 미역국을 한 솥 끓여놨는데, 문밖에 할아버지들이 추위에 떨고 앉아 있어. '빨리 들어오이소' 하며 내 방에서 한 그릇씩 퍼줬어요. 엄마가 알고는 '저년이 애비 생일도 모르고' 하며 혀를 찼어. 에이, 이런 얘기 그만해. 창피하잖아."
―남 주고 나면 안 아까운가요?
"기분이 좋으니까 그렇게 하지. 내 손에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다 이뤄졌어. 대구에서 최초로(1989년) 무료 급식소를 할 때도 그랬어요. '내일 먹일 쌀이 없는데 어쩌나' 걱정하는데 누군가가 트럭에 열 가마니를 싣고 왔어. 함께 일하던 수녀들과 쌀가마를 두들기며 울었어. (울먹이며) 그런 좋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때를 맞춰서 보내줬겠어. 이는 하느님이 하신 거지."
―수녀님이 무슨 재원으로 무료 급식소를 시작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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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와의 만남(왼쪽이 소피아 수녀). |
"무료 급식소를 시작하겠다고 하니까, 수녀원 총장님께서 '불쌍하다고 어떻게 다 도와주나'며 말렸어요. 제가 '이 세상에 내가 안 온 걸로 치고 내가 할 수 있게 해달라. 시래기를 주워 먹여도 안 굶게 할 것이고, 수녀원에는 절대 부담이 안 되도록 하겠다'고 했어요."
1993년 1월 당시 한 신문은 '기적처럼 매일 첫새벽에 쌀, 생선, 헌 옷, 콩나물을 문 앞에 두고 가. 의인(義人)들의 행렬이 이어져'라며 무료 급식소에 대해 보도했다.
―정말 그랬나요?
"10평도 안 되는 비가 새는 빈집에서 시작했어.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갖다놓고 가거든. 유리창 밑으로 2만원과 함께 '된장 하나 끓여줘라'고 메모를 남겨놓고. 자고 나면 대문 앞에 먹을 것을 놔두고 가는 거야. 그 사람들 얼굴은 모르지. 하느님이 역사(役事)를 하신 거지."
―그 뒤 경북 성주에서 기증받은 임야를 개간해 부랑아 숙식 시설을 지었다면서요?
"술 취해 아무 데나 퍼질러 자니까. 부랑자들을 그리로 데려왔지. 제가 '하느님은 애들 마음을 잡아주이소'라고 기도했어요. 모두들 술을 끊고 열심히 일해서 같이 살 집을 지었지."
―잘 지은 집을 떠나 왜 이쪽으로 옮겼죠?
"한군데 10년 이상 머물 수 없다는 수도원 규정이 있어. 그중에 몇 친구가 나를 따라왔지. 늙은 할매와 함께 살 집을 지어야 하니까."
―부랑자들과 한 공간에 살면 불안하지 않은가요?
"우리는 가족인데. 여기서 아이들은 술을 안 마셔. 얼마나 얌전하다고."
―1970년 초에는 경북 봉화군 나환자(한센병) 정착 마을에서 일을 하셨다면서요?
"그 얘기를 누가 했어요? 그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같이 자고 먹어야지. 함께 손잡고 율동도 하고. 모녀가 사는 방에서 잤지요. 방에는 썩는 냄새가 지독해. 이런 얘길 하면 안 되는데, 나중에 다른 수녀들이 힘들잖아."
―한센병 환자가 밥에 치료제 연고를 발라서 시험하려고 했다면서요?
"진물 날 때 바르는 연고야. 밥뚜껑을 여니 색깔이 시퍼렇게 변해 있어. 얼른 밥 위쪽을 떠서 상다리 밑에 두고는 그냥 먹었어. 왜 그랬는지 묻지는 않았어."
―수녀님이라도 육신의 감각을 갖고 있으니 찜찜했겠지요.
"괜찮다는 마음이 있었으니 그렇게 했지요."
―그런 마음은 어디서 나오죠?
"측은한 마음이지. 남의 아픔을 나누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도 병자나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하셨거든."
―김수환 추기경 생전에 교유가 깊었다지요?
"참 이상해.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네. 저를 참 좋아하셨죠. 저를 보면 '저기 수녀 왕초 아이가. 아이고 무서워라. 소피아가 쌀 떨어졌을 때 쌀가마를 안 보내주면 혼난다'고 우스개 말씀도 하셨죠. '요셉 성인께서 보내신 겁니다'라며 돈도 부쳐주셨지요. 미사를 친히 집전하면서 저를 위해 축복해주시기도 했어요."
―처음 어떤 인연으로 추기경을 만나신 겁니까?
"이방자(순종의 이복동생인 영친왕의 일본인 부인) 여사가 임종하시기 전에 저를 서울대병원으로 불렀어요(1989년). 제게 영세를 받고 싶다고 해서, 신부님 대신 그렇게 해줬어요. '하늘나라에 가서 사랑하는 애인(영친왕)도 만나세요'라고 했지요. '하이, 하이, 소데쓰요(예, 예, 그렇지요)'라고 답했어요. 나중에 돌아가신 뒤 추기경께서 이 소문을 듣고 저를 찾으신 거예요."
―그러면 이방자 여사와는 어떻게 만난 겁니까?
"인도에 마더 테레사를 만나러 갈 때였지요. 내가 비행기를 어떻게 타고 가는지 알아야지.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지요. 그런 걱정을 할 때 이방자 여사가 유럽 8개국을 돌며 '궁중 의상 발표회'를 연다는 것이었어요. 그 일행에 끼워줘 한 달간 유럽 여행을 같이했어요. 의상 발표회에서 저는 남자처럼 생겨서 영친왕으로, 여사님은 왕비로 손잡고 걸어나갔어요. 그걸 마치고서 파리에서 안내자와 함께 인도로 갔어요. 제가 무식해도 이런 고급 사람들도 사귀었어요(웃음)."
그를 떠나오면서 '이런 것이 축복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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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동중국해 대륙붕 경계선 늘리자… 중국도 당초보다 더 한국 쪽으로 확대
[외교부, 오늘 국무회의 보고]
한·중 수역 일부 겹쳐 논란… 中, 댜오위다오 자국領 표시
日은 유엔 CLCS 논의 거부외교통상부는 24일 국무회의에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낼 우리 정부의 '동중국해 대륙붕 외측 경계안'을 보고한 후, 이르면 26일 이를 CLCS에 제출한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23일 "한국 정부가 2009년 CLCS에 예비 정보를 낼 때에 비해 상당히 확대된 수역의 대륙붕 권리를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내는 본(本)정보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연적으로 뻗어나간 대륙붕이 일본의 영해 근처까지 가 있으며 일부는 오키나와 해구(海溝)를 넘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11월 26일자 A1·8면 보도>유엔 회원국이 200해리를 초과하는 대륙붕에 대한 권리를 얻으려면 CLCS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서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부가 2009년 제출한 대륙붕 경계 예비 정보(1만9000㎢) 수역은 한·일 양국이 1974년 체결한 '대륙붕 남부구역 공동개발 협정' 적용 지역의 남측에 한정돼 있었다. 그 후 정부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의 조사를 바탕으로 우리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지역이 동남쪽으로 더 내려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륙붕은 해안에서부터 약 200m 깊이까지 대륙이 연장된 지역으로 어장이 형성되고 천연가스·석유 등 유용한 광물이 매장돼 있다.
중국이 지난 14일 CLCS에 낸 본정보에 따르면 동중국해 대륙붕 외측 경계선이 우리 정부가 본정보에서 주장하게 될 수역과 일부 겹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제출한 대륙붕 외측 경계는 북위 27.99~ 30.89도, 동경 127.62~129.17도에 걸쳐 있어 예비 정보 때보다 확대돼 있다.
중국이 2009년 CLCS에 제출한 예비 정보는 우리나라의 예비 정보와 중복되지 않았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우리 정부가 예비 정보 제출 때보다 더 넓은 수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것으로 보고, 중국도 자기들의 권리를 더 확대해서 주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본정보에서 일본과 영토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를 자국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일본은 대륙붕 외측 경계 문제를 CLCS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CLCS에서의 동중국해 대륙붕 외측 한계 논의를 최종적으로 거부할 경우, CLCS에서의 조정은 이뤄지지 않게 된다. 정부는 CLCS에 우리의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한 후, 내년 초 유엔에서의 발표 등을 통해 우리 측 입장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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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미사일 산화제는 군사용… ICBM 개발 증거”
[동아일보]
북한이 12일 발사한 장거리 로켓의 잔해가 추가로 인양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21일 서해 변산반도 서쪽 150여 km 해상, 수심 85m 지점에서 연료통과 연료통 하단부, 연료통과 엔진을 연결하는 링 등 북한 로켓의 잔해물 3점을 인양했다”고 23일 밝혔다.
21일 인양된 잔해는 모두 북한 로켓의 1단 추진체를 구성하는 부품들이다. 낙하 시 해수면과 충돌하면서 심하게 찌그러진 연료통의 표면엔 ‘3’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어 북한이 발사한 ‘은하3호’의 잔해임을 보여준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연료통 하단부는 금속성 튜브가 서로 엉켜 있는 채로 발견됐다. 이에 앞서 해군은 14일 같은 해역에서 ‘은하’라는 글씨가 새겨진 1단 추진체의 산화제통을 건져 올렸다.
국방부는 산화제통에 남아있던 산화제를 분석한 결과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적연질산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적연질산은 북한이 노동과 스커드 미사일의 산화제로 사용하고 있고, 민간 로켓용으론 이용하지 않는 맹독성 물질”이라며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목적이 우주발사체가 아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산화제통의 모양은 이란이 개발한 미사일에 사용된 것과 유사하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번 조사 결과 북한은 500kg의 탄두를 1만 km 이상 날려 보낼 수 있는 로켓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북한 로켓의 추가 잔해들은 산화제통을 건져 올릴 때처럼 해군 소해함이 ‘사이드스캔 소나(음향탐지기)’로 물속 잔해 위치를 파악한 뒤 구조함인 청해진함과 심해 잠수사 20여 명이 투입돼 인양됐다고 군 당국은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1998년 8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지 14년 만에 북한 로켓의 1단 추진체 중 엔진을 제외한 주요 부품을 모두 확보했다”며 “북한 로켓의 성능과 설계 구조 등을 자세히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잔해들이 발견된 해역 인근에 소해함 등을 투입해 북한 로켓의 핵심 부품인 엔진 탐색 작업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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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새 지도자 심층 비교]친해지기 어려운 시진핑-아베… 서로 朴에게 “협력 강화”
[동아일보]
《 2012년 한중일 3국의 최고지도자가 모두 새로 선출됐다. 2013년이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 등 환갑 전후의 새 지도자가 동북아 3국을 이끌어 간다. ‘
협력과 공영’대신 ‘대립과 마찰’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동북아 3국에서 이들 3인은 어떤 리더십을 선보일 것인가. 똑같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사회주의(중국)와 자유민주주의(한국 및 일본)로 대별되고 또 같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로 구별되는 동북아 3국은 새로운 지도자 시대를 맞아 ‘지역의 공동 번영과 국제무대에서의 상호 협력’이라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낼 수있을 것인가.
이를 가늠해 보기 위해 정치철학과 리더십, 통치 스타일, 성장 환경 및 취미에 이르기까지 이들 3인의 모든 것을 심층 분석했다. 》
不遠不近 ‘불원불근’ 갈등-화합의 외교 삼국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2004년 8월 공식적인 만남을 가졌다.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아베 총재는 “북한과 쉽게 타협하지 말고 한미일 3국이 공동 보조를 하자”고 요청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면담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대북 유화파였다. 자연스레 아베 총재는 대북 강경론을 펴는 박근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당시 대표와 더 이야기가 잘 통했다. 면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두 사람이 웃으며 환담하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박 당선인과 아베 총재는 앞으로 상호 우호적인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독도는 한국 땅이다” “위안부 문제는 없다”며 대립하고 있지만 내심 상대국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 지도자 모두 새 정권 출범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욕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관계도 강화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박 당선인은 지금까지 중국과 연결고리를 맺는 핵심 역할을 해 왔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시 당선인의 중국 특사 자격으로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면담했다. 2006년 11월, 2005년 5월에도 중국을 방문했다.
박 당선인이 중국어로 농담이 가능한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양국관계 강화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그가 대통령 특사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은 “항상 공식 행사만 하다가 간다. 여유 있게 관광도 하고 가라”고 말했다. 그때 박 당선인은 중국어로 “제가 그렇게 좋은 팔자가 되나요”라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중국 패널의 웃음이 이어졌고 “중국어로 해 달라”는 요청에 박 당선인은 통역 없이 중국어로 답했다. 한국 대선 직후 중국 언론은 박 당선인이 중국어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한중 관계 개선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일 지도자들 사이에선 그리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이 껄끄러운 중-일 관계에서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지난달 총서기 취임 직후부터 ‘중화민족 부흥’을 강조하며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9월 일본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에 대해 “웃기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1인자 등극을 두 달가량 앞둔 민감한 시기에 주변국의 우려를 살 수 있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은 것이다.
시 총서기는 2009년 12월 일본 방문을 불과 2주가량 앞두고 일왕과의 면담을 요구해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왕 면담은 통상 한 달 전에 신청하는 게 외교상의 관례였기 때문.
아베 총재는 2006년 9월 처음 총리가 되고 첫 해외 순방국으로 중국을 택했을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같은 해 펴낸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도 중국에 대해 ‘왜 중국은 발전하나’ ‘중국 전문가는 누구나 중국과 사랑에 빠진다’ 등으로 중국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중국이 해양으로 세력을 떨치자 요즘은 ‘중국 경계’에 방점을 찍고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한중일 새 지도자 심층 비교]父傳子傳 ‘부전자전’ 정치신념 바탕된 성장배경
朴, 고도성장 이끈 대통령의 딸… 환란보며 정치결심
시진핑, 덩샤오핑 개방 도운 부친 따라 성장에 방점
아베, 정치 실력자 집안… 국수주의 외조부 영향 커
[동아일보]
한국 일본 중국 3국의 새로운 지도자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정치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이다. 중국식으로 말하면 모두 ‘태자당’(혁명 원로나 전직 고위관료 자제 그룹)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사의 부침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겪으며 성장했다. ‘역경 돌파형’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남북 간의 첨예한 대결구도 속에서 부모를 총탄에 잃는 아픔을 겪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도성장기에 자란 아베 신조 일본 차기 총리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강한 일본’을 평생의 정치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3명 다 집안 배경은 화려하다. 박 당선인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 총서기의 부친은 공산당 중앙선전부장, 정무원 비서장, 국무원 부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을 지낸 시중쉰(習仲勳). 시 총서기는 태자당 중의 태자당인 셈이다. 아베 차기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작은 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총리를,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외상을 지냈다.
하지만 순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박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을 주도했을 때 서울 장충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1963년부터 10·26사태로 아버지를 잃은 1979년까지 청소년기와 청년기 약 17년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시 총서기는 부친이 1962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심기를 건드린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숙청되고, 1966년 문화대혁명까지 터지자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산시(陝西) 성의 궁벽한 시골로 하방(下放)돼 반동의 자식으로 불리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아베 차기 총리의 성장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A급 전범으로 복역했던 외할아버지 기시. 그는 어린 시절 “네 할아버지는 보수반동, A급 전범 용의자가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이에 대한 감정적 반발이 그의 국수주의적 성향의 뿌리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 신념과 성향도 성장 배경과 떼놓을 수 없다. 박 당선인은 1952년생으로 1960, 7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이끌던 세력의 정점에서 자랐고, 또 1974년부터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경험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잊혀진 대통령의 딸’에서 ‘정치인 박근혜’로 변신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뤄놓은 나라인데”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고 한다. 미사여구보다 실천과 결실을 강조하는 정치철학에 영향을 준 것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였다.
시 총서기가 개방을 통한 성장에 방점을 두는 우파의 대표 주자로 부상한 것도 성장 과정과 무관치 않다. 1978년 복권된 아버지 시중쉰은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鄧小平)이 몰고 온 개혁·개방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덩샤오핑의 절친한 친구로 경제특구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개방론자였던 것. 이런 정치적 DNA를 물려받은 시 총서기는 20대부터 개혁·개방이 가져다준 성장의 세례를 받으며 정치를 시작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아베 차기 총리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64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됐다. 개회식 날 자위대 비행기가 하늘에 오륜 마크를 그리는 장면을 본 그는 “이제부터 일본에서 뭔가 빛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자부심이 그의 국가주의 성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한중일 새 지도자 심층 비교]臥薪嘗膽 ‘와신상담’ 최고권력 오르기까지
朴, 천막당사 - 커터칼 피습… 역경 딛고 입지 키워
시진핑, 시골 근무로 바닥다져… 도련님 한계 극복
아베, 단명 총리 불명예 5년만에 씻고 총선 대승
[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모두 아버지에게서 정치를 배웠다. 권력 쟁취 과정은 조금씩 다르다. 박 당선인이 ‘자기희생’과 ‘중성적 카리스마’로 스스로 권력을 확보한 반면 시 총서기는 ‘바닥 다지기’로 도련님의 한계를 극복했다. 아베 총재는 부친의 권위와 강경 우익 발언으로 생존해 왔다.
박 당선인은 2004년 3월 ‘1.5선’ 국회의원으로 탄핵 역풍의 위기에 놓인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차떼기당’의 오명을 떼기 위해 당사 매각을 발표한 뒤 ‘천막당사’로 나앉았다. 2년 3개월의 야당 대표 시절 흉기 테러를 겪으며 치른 2006년 지방선거를 비롯해 2004∼2006년 재·보선에서 ‘40 대 0’의 완승 신화를 이끌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과 함께 당내 1인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1.5%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시 총서기는 허베이(河北) 성 시골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시골 근무를 자원했다는 점에서 국무원 부총리의 아들로서는 파격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때부터 시 총서기 특유의 친화력이 단련됐고 검증받았다.
아베 총재는 세이케이(成蹊)대 졸업 후 고베제강 평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년 뒤인 1982년 11월부터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당시 외상의 비서관이 됐다. ‘장관 아버지-비서 아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부패가 일상화한 중국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 그의 성장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은 북한이었다. 2002년 9월 관방부(副)장관이던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를 따라 간 평양에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사과하지 않으면 평양선언에 서명해서는 안 된다”는 초강경 자세를 고집해 일본 국민의 뇌리에 각인됐다.
2007년 9월 그는 총리가 된 지 1년 만에 사임했다.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웠지만 참의원 선거의 ‘역사적 대패’와 국정 혼란 책임으로 쫓겨난 셈이었다.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며 점차 잊혀져 갔다. 하지만 올해 8월 한국 중국과 잇달아 영토 분쟁을 빚으면서 사회가 우경화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극우 성향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자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했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두 번째 총리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박 당선인이 최고 권력을 거머쥔 것은 특유의 고집과 카리스마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2011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4·11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박근혜 대세론’을 확고히 한 뒤 8월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84%로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시 총서기는 계파 구도에서 낙점된 측면도 있다. 태자당의 핵심이자 그와 호형호제하는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이 총서기로 ‘기획 육성’한 것. 이 과정에서 태자당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좌장인 상하이방(상하이 관료 출신 모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파와 대립과 협력을 반복해 왔다.
3국 지도자의 외교 스타일을 가늠하는 게 쉽지는 않다. 시 총서기가 강한 민족주의를 내걸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한 계파의 대표이자 7명으로 이뤄진 집단지도체제의 일원이다. 반대파 포섭 여하에 따라 총리 재임 기간이 결정되는 아베 총재는 소신보다는 내부 정치를 외교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외교적 대응에 가장 효율적인 대통령중심제의 수장이라는 지위를 충분히 활용해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한중일 새 지도자 심층 비교]원칙의 朴 - 인화의 시진핑 - 임기응변의 아베
三人三色 ‘삼인삼색’ 서로 다른 정치적 리더십
[동아일보]
미국의 철학자 시드니 후크는 시대적 흐름에 대한 태도와 대응 방식으로 지도자의 유형을 나눴다. ‘대세 주도형’은 흐름을 주도해야 직성이 풀리고 급회전도 잦은 반면 ‘대세 편승형’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신중한 결단을 내리고 이를 우직하게 가져가는 스타일이라는 것.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대세 편승형’ 리더십에 가깝다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차기 총리는 ‘대세 주도형’의 성향을 나타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절충형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국내정치에서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대세 주도형과 비교할 때엔 ‘대세 편승형’으로 편의적으로 분류되지만 큰 정치적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정공법을 택한 점에선 ‘대세 주도형’ 특성을 보였다.
○ 원칙과 신뢰의 정면 돌파형박 당선인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는 ‘원칙과 신뢰’다.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으로 보수정당에서 남성 정치인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발휘한 데는 ‘박정희 후광’ 이외에도 고집스러울 만큼의 단호함이 한몫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세종시 대결에서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국회 본회의 반대토론까지 나서 수정안을 폐기시킨 일이 대표적이다.
그는 ‘전략’이라는 말도 싫어한다. 2004년 차떼기와 탄핵역풍의 위기, 2011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와 4·11총선 그리고 18대 대선이란 정치인생 15년 동안 가장 절박한 3번의 순간에서 판을 뒤흔들 ‘전략’보다 진정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자회견이나 대중연설을 할 때도 즉흥 발언은 거의 없다. 좀처럼 실수하는 법도 없다.
○ 인화를 앞세운 대세 편승형시 총서기의 리더십은 ‘인화’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관리가 새로 부임하면 3가지 새로운 일을 벌인다(新官上任三把火)’고 한다. 하지만 시 총서기는 반대였다. 1999년 푸젠(福建) 성 대리성장으로 부임했을 때 업무의 연속성과 사람 간의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지도자는 정무에 종사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처리하는 데 정력의 70%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시 총서기는 1982년 허베이(河北) 성 정딩(正定) 현 부서기를 시작으로 30년 동안 정치를 했지만 손에 꼽을만한 성과가 없다. 하지만 2000년 8월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가 소개한 것처럼 그는 골목골목을 돌며 서민들을 직접 만났다. 이는 시 총서기가 나중에 계파 간 집단지도체제인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됐다.
○ 임기응변의 대세 주도형아베 차기 총리의 리더십은 ‘임기응변’이란 평가를 받는다. 국수주의적 강경발언을 쏟아내며 사상과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이미지를 연출하지만 실제로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처신을 바꾼다는 의미다.
2006년 처음 총리에 오른 그는 초기엔 한국, 중국을 먼저 방문해 관계를 개선하고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도 자제했다.
하지만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그의 러더십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측근들로 채워진 내각이 주요 정책을 놓고 제각기 목소리를 쏟아내면서 혼선을 빚기 일쑤였다. 그가 탈출구로 내세운 것이 바로 극우 세력을 자극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등 외교도 좌충우돌 우경화로 치달았다.
○ “상반된 중일 리더십에 전략적 신중함으로 대응해야”
동북아 지도자의 리더십 유형이 향후 3국 관계를 규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북아의 국내외 환경 변화 및 북한 문제 등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국내 리더십을 분석한 잣대로 ‘아베 차기 총리가 주도하고 나서면 박 당선인과 시 총서기가 편승한다’고 도식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2인자를 두지 않고 최종 의사결정을 본인이 하는 박 당선인이 상대 지도자들의 특성을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은 “박 당선인이 상반되는 아베 차기 총리의 임기응변 리더십과 ‘계파 간 화합을 끌어내는 인화력’이라는 시 총서기의 ‘만만디’ 리더십에 말려들지 않도록 전략적 판단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朴, 천막당사 - 커터칼 피습… 역경 딛고 입지 키워
시진핑, 시골 근무로 바닥다져… 도련님 한계 극복
아베, 단명 총리 불명예 5년만에 씻고 총선 대승 ▼
臥薪嘗膽 ‘와신상담’ 최고권력 오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모두 아버지에게서 정치를 배웠다. 권력 쟁취 과정은 조금씩다르다. 박 당선인이 ‘자기희생’과 ‘중성적 카리스마’로 스스로 권력을 확보한 반면 시 총서기는 ‘바닥 다지기’로 도련님의 한계를 극복했다. 아베 총재는 부친의 권위와 강경 우익 발언으로 생존해 왔다.
박 당선인은 2004년 3월 ‘1.5선’ 국회의원으로 탄핵 역풍의 위기에 놓인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차떼기당’의 오명을 떼기 위해 당사 매각을 발표한 뒤‘천막당사’로 나앉았다. 2년 3개월의 야당 대표 시절 흉기 테러를 겪으며 치른 2006년 지방선거를 비롯해 2004∼2006년재·보선에서 ‘40 대 0’의 완승 신화를 이끌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과 함께 당내 1인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1.5%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시 총서기는 허베이(河北) 성 시골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시골 근무를 자원했다는 점에서 국무원 부총리의 아들로서는 파격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때부터 시 총서기 특유의 친화력이 단련됐고 검증받았다.
아베 총재는 세이케이(成蹊)대 졸업 후 고베제강 평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년 뒤인 1982년 11월부터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당시 외상의 비서관이 됐다. ‘장관 아버지-비서 아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부패가 일상화한 중국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 그의 성장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은 북한이었다. 2002년 9월 관방부(副)장관이던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를 따라 간 평양에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사과하지 않으면 평양선언에 서명해서는 안 된다”는 초강경 자세를 고집해 일본 국민의 뇌리에 각인됐다.2007년 9월 그는 총리가 된 지 1년 만에 사임했다.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웠지만 참의원 선거의 ‘역사적 대패’와 국정 혼란 책임으로 쫓겨난 셈이었다.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며 점차 잊혀져 갔다.
하지만 올해 8월 한국 중국과 잇달아 영토 분쟁을 빚으면서 사회가 우경화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극우 성향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자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했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두 번째 총리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박 당선인이 최고 권력을 거머쥔 것은 특유의 고집과 카리스마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2011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4·11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박근혜 대세론’을 확고히 한 뒤 8월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84%로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시 총서기는 계파 구도에서 낙점된 측면도 있다. 태자당의 핵심이자 그와 호형호제하는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이 총서기로 ‘기획 육성’한 것. 이 과정에서 태자당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좌장인 상하이방(상하이 관료 출신 모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파와 대립과 협력을 반복해 왔다.
3국 지도자의 외교 스타일을 가늠하는 게 쉽지는 않다. 시 총서기가 강한 민족주의를 내걸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한 계파의 대표이자 7명으로 이뤄진 집단지도체제의 일원이다. 반대파 포섭 여하에 따라 총리 재임 기간이 결정되는 아베 총재는 소신보다는 내부 정치를 외교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외교적
대응에 가장 효율적인 대통령중심제의 수장이라는 지위를 충분히 활용해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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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파트너십 정신으로 돌아가야” 도쿄 한일포럼 참석 50명 성명서
[동아일보]
한국과 일본의 정계 재계 학계 인사 50여 명이 현재의 한일 관계를 위기라고 진단하고 “지금이야말로 미래지향의 파트너십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분위기를 조성하자”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양국 민간 대화채널인 한일포럼은 20∼22일 도쿄(東京) 오쿠라 호텔에서 포럼을 열었다. 포럼은 참석자들이 상대 국가에 대해 아쉬운 점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 등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21일 오전에 열린 ‘지도자 교체와 한일, 중일 관계의 과제’ 세션에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은 국내 정치의 인기몰이에 급급해 헌법을 개정하고 현 상황을 바꾸려는 외교 공세를 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 우경화의 실태는 폐쇄감에서 비롯되는 자괴감”이라며 “정치가가 표심을 얻기 위해 그러한 주장을 강력하게 하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런 주장에 위화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일본 측 참석자는 올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언급하며 “우방국 지도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한국 측 참석자가 “한국에서도 독도 방문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있다”고 하자 일본 측 인사는 “그렇다 하더라도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사흘간의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격론을 벌이면서도 “지식인들이 나서 막힌 한일 관계를 개선하자”는 점에는 뜻을 같이했다. 참석자들은 22일 성명서를 내고 “한일 양국의 성숙된 동반자 관계 재구축이 시급하다”며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의의를 재평가하고 지금이야말로 미래지향적 파트너십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일포럼은 1993년 경주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족해 그해 12월 서울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 이래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열리고 있다. 올해 주요 참석자는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 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郞) 일본 민주당 의원,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규슈대 특임교수 등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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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발 묶인 민주당 개조론 (상) 질 수 없다던 대선 진 4가지 이유
① 총선 때 홍역 치르고도 … 문재인, 대선 막판 '나꼽살' 출연
② 종편 출연 거부, 지지층 확장 막아
③ 계파 편 갈라 친노·486만 챙겨
④ NLL 문제에 '50대 신보수' 반발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통령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동교동으로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문 전 후보가 이 여사를 기다리는 동안 입을 굳게 다문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3.6%포인트 차의 패배가 아닌 '근본적 처방을 요하는 중대 실패'. 18대 대통령 선거 패배에 대한 민주통합당 내부 평가다. 올해 초만 해도 4·11 총선과 12·19 대선은 “야권이 질 수가 없는 싸움”이란 말이 많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늘 과반을 넘었다. 이처럼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대선에서 진 이유는 5060세대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층이었던 50대가 등을 돌렸다는 점은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왜 민주당은 50대가 '찍을 수 없는 정당'이 된 것일까.
①대선 직전 '나꼽살' 출연한 문재인=지난 12일 문재인 전 후보는 '나는 꼽사리다(나꼽살)'에 출연했다. 나꼽살은 딴지라디오(대표 김어준)가 제작하는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이다. 방송인 김미화씨, '막말' 파문의 주인공 김용민 민주당 노원갑 당협위원장, 우석훈·선대인씨 등이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 측은 이 사실을 쉬쉬했다. 문 전 후보가 나꼽살에 출연한 사실이 오히려 '중도층'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문 전 후보는 출연을 강행했다.
그는 지난 4·11 총선 당시 김용민 막말 파문이 정국 최대 쟁점이 됐을 때도 나꼼수에 출연했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과거에 몰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며 “나꼼수와 같이 극단적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인기에 편승하려 했던 것은 당이 중도와 멀어진 상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②진영논리에 함몰=문 전 후보는 뒤늦게 대선 패인으로 본인의 부덕 외에 진영 논리에 갇혀 중간층의 지지를 더 받아내지 못한 점을 꼽았다. 민주당은 중간층으로의 확장을 스스로 거부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표적 사례가 종편 출연 거부다. 종편의 핵심 시청자들은 대부분 중도층, 50대 안팎으로 분류된다. 민주당이 출연을 거부해 새누리당 인사만으로 대선 프로그램을 마치고 난 뒤 한 종편 진행자는 “종편을 보는 국민은 유권자가 아니란 말이냐”고 말한 적도 있다. 결국 대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야 우상호 전 공보단장이 “우선 내 권한으로 대변인들부터 각자 개인의 선호나 인연, 그때그때 필요에 맞춰 종편에 출연할 수 있도록 했다”며 '금족령'을 풀었다. 하지만 문 전 후보가 직접 종편에 출연한 적은 없다. 문 전 후보가 나꼽살에는 출연하면서도 종편엔 나오지 않은 게 민주당의 현주소였다.
③편가르기 행태=대선 기간 중 문 전 후보의 유세 현장에 빨간색 목도리를 두르고 온 취재기자들이 민주당 대변인에게 면박을 당한 적이 있다. 민주당의 상징색인 노란색 대신 새누리당 상징색을 목에 두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장선 전 의원은 “총선을 치르고 나서 대선을 치르는데 10년 전 (노무현의) 노란색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유권자들을 생각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4·11 총선 때 공천의 가장 큰 원칙을 '정체성'으로 삼았다. '이길 후보'에게 공천을 준 게 아니라 '우리 편'을 공천했다는 얘기다. 당시 현직 원내대표였던 김진표 의원까지 정체성 문제로 탈락 위기에 몰렸을 정도였다.
반면 친노그룹이나 486세대 정치인들은 쉽게 공천을 받았다. 총선 승리 전망이 나올 때가 중도인사들을 대거 영입할 기회였음에도 각 계파의 '나눠먹기'로 공천이 끝난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은 어제 뭘 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당”이라고 말했다. “오직 자기에 맞는 사람과 동종교배함으로써 조직이 굉장히 편협해지고 외부 위기에 취약해졌다”고도 했다.
④경제와 안보, 모두 점수 잃어=진영논리와 편가르기 과정을 거쳐 민주당은 '신(新)보수화'된 50대에겐 새누리당에 비해 '경제는 무능, 안보는 불안'한 정당으로 비쳤다.
대선 기간 중 문 전 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한 게 북방한계선(NLL) 문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NLL을 포기하겠다는 발언을 했는지 여부는 둘째치고, 일단 이런 이슈가 문 전 후보에게 악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민주당이 자초한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면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등과 함께 미 대사관 앞에서 공동시위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명숙 대표가 대사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편지엔 재협상하지 않으면 폐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표현도 담겼다. 외교상 의전은 안중에 없었다. 중앙대 신진욱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로 가야 최대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건데, 난데없이 (총선 때) '통일의 꽃'(임수경 의원 공천을 지칭)을 다시 불러들여 화를 자초한 건 납득이 안 된다”고 적었다.
강인식.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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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승리 요인 ‘단일화 실패’ + ‘민주당 잘못’ 68.3%
중앙일보 5차 대선 패널조사
'박근혜가 잘해서'는 15.4% 그쳐
'당선인 국정운영 잘할 것' 72.5%
중앙일보-SBS-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가 대선 직후 사흘간(20~22일) 공동 실시한 마지막 대선 패널조사(panel survey)에서 응답자들은 '박근혜 후보가 잘해서'라기보다 '단일화 실패와 민주통합당 잘못'으로 이번 대선의 승패가 갈렸다고 봤다. 패널조사는 조사대상을 고정시켜 복수의 시점에서 여론을 살피는 방법으로, 중앙일보는 이번을 포함해 대선기간 중 다섯 차례 패널조사를 실시했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차 조사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승리하고 문재인 전 후보가 패배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 응답자들의 50.1%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기대만큼 잘 안 돼서'라고 꼽았다. 이어 '민주당이 잘못해서'(18.2%), '박근혜 후보가 잘해서'(15.4%), '문재인 후보가 잘못해서'(4.7%), '새누리당이 잘해서'(1.2%)라는 답변이 나왔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변수가 역시 단일화였으며, 응답자들의 절반 이상이 안철수씨의 일방적 사퇴로 끝난 단일화가 실패한 단일화였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야당 패배의 책임을 문 전 후보보다 민주당에 묻는 견해가 높게 나타난 것도 주목된다. 민주당이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전면적인 당 쇄신에 나서야 할 것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앞으로 국정운영을 '잘할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한 응답자는 72.5%였다. '잘못할 것'이란 응답은 25.5%로 조사됐다. 70% 이상이 박 당선인의 국정수행에 대해 기대를 나타낸 셈이지만, 2007년 대선 직후 패널조사에서 나타난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기대감(86.9%)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이 당선인에 비해 기대감이 낮은 이유는 문 전 후보 지지자 중 47.2%만이 박 당선인이 잘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17대 때 대선 직후엔 패자인 정동영 전 후보 지지자 중 73.0%가 이명박 당선인이 '잘할 것'이라고 했었다.
대선 직후 역대 당선인들은 국정운영과 관련해 90%에 가까운 높은 지지를 받아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경우 박빙으로 승부가 갈린 만큼 야당 지지층의 아쉬움이 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언제든 박 당선인의 정책에 비판적으로 나설 세력이 적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박 당선인으로선 이들을 포용하지 않으면 국정 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개별 과제에 대해선 긍정적 전망이 다소 높은 편이었다.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선 '개선될 것'(32.0%)이란 답변이 '악화될 것'(21.6%)이란 의견보다 높았다. 노사갈등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도 '개선될 것'이란 의견이 각각 28.9%와 25.7%로 '악화될 것'이란 의견(20.0%, 22.0%)보다 높았다. 이번 패널조사는 할당추출 방식으로 선정된 유권자 패널 1355명을 대상으로 했다(패널 유지율 67.8%). 컴퓨터를 이용한 전화면접으로 조사했고, 최대 허용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2.7%포인트다.
◆패널 조사팀
▶동아시아연구원(EAI)=강원택(서울대)·권혁용(고려대)·김성태(고려대)·김준석(동국대)·박원호(서울대)·박찬욱(서울대)·서현진(성신여대)·이내영(고려대)·이우진(고려대)·이현우(서강대)·임성학(서울시립대)·장승진(국민대)·지병근(조선대) 교수, 이곤수·정원칠·정한울 연구원 ▶중앙일보=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SBS=현경보 부장 ▶한국리서치=김춘석 부장, 오승호 차장
신창운 기자
survey@joongang.co.kr.........................................................................................................
[해외 칼럼] 중국이 미국을 넘지 못하는 이유
조셉 나이미국 하버드대 교수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극소수 선주민을 제외한 모든 미국인은 이민자의 자손이다. 하지만 최근 미 정치는 반(反)이민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2012년 공화당 대통령 지명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는 라티노(멕시코 등 중남미계 이민자) 유권자들이 한몫했다. 이들은 민주당의 오바마와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에게 각각 3 대 1의 비율로 투표해 롬니를 거부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그랬다. 그 결과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이제 반이민 정책의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이민정책 개혁은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어젠다가 될 전망이다. 이는 미 국력의 쇠퇴를 막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20세기에 이르러 미 인구에서 외국 출신자 비율은 1910년 14.7%로 최고조에 올랐다. 한 세기 뒤 2010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13%가 외국 출신이었다. 이처럼 이민의 나라임에도 보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이 이민에 공감하기보다 회의적이 돼 가고 있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과반수 또는 다수 응답자가 이민 억제를 원했다. 경기 침체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민 억제를 요구한 미국인은 2008년 39%였지만 2009년엔 절반에 이르렀다.
인구학자들은 2050년 미국에서 비히스패닉계 백인은 히스패닉계를 간신히 상회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체 인구에서 히스패닉계는 25%, 아프리카계는 14%, 아시아계는 7%를 각각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민이 빠르게 늘면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민은 오랫동안 미국 국력 강화에 기여해 왔다. 전 세계 83개 국가와 지역이 현재 인구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출산율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21세기에 인력 부족 현상을 겪게 될 것임에도 미국은 인구 감소를 피하고 전 세계 인구에서 현재 비율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이 현재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50년 동안 매년 35만 명의 외국 인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주자에게 적대적이었던 과거사에 비춰 이는 어려운 일이다. 대조적으로 미 인구조사국은 미 인구가 앞으로 40년 동안 49%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오늘날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나라인데 앞으로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세계 3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중국과 인도 다음). 이는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으로 거의 모든 선진국이 노령세대라는 부담을 짊어지게 되겠지만 미국은 이민 덕분에 부담이 희석될 것이다. 숙련노동자에 대한 이민비자 발급 숫자는 특허등록 건수와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세기 초 실리콘밸리의 기술 비즈니스 운영자의 4분의 1이 중국·인도 출신 엔지니어였으며 이들은 178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05년 이민자들은 미국 기술창업의 4분의 1을 차지했는데 이는 그전 10년간의 기술창업 전체와 맞먹는다. 이민자나 그 자녀가 창업한 회사는 2010년 경제잡지 포춘선정 500대 기업의 40% 정도를 차지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를 통찰력 있게 관찰해온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중국이 21세기 주도 국가로서 미국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외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여 창의력 높고 다양한 문화를 만들기 때문이란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중국은 엄청난 인구 덕분에 국내에서 인력을 충원할 수 있겠지만, 리콴유의 의견으로는 이러한 중국 중심적인 문화는 미국보다 창의력이 떨어진다. 미국인이 가슴에 담아야 할 견해다. 오바마가 집권 2기에서 이민개혁법안 제정에 성공한다면 미국의 국력을 유지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다. ⓒProject Syndicate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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