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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88 2013. 4. 5. 11:53

한국 경제회복 속도 G20 중 8위… 이명박 정부 ‘가장 빠르다’는 과장



ㆍ국회 예산정책처 ‘경제 동향 이슈’ 보고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회복 속도는 주요 20개국(G20)의 중간 수준이라는 국회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정부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1일 국회 예산정책처의 ‘경제 동향 이슈’ 보고서를 보면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소비·투자지표, 주가지수 등을 이용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과 주요 국가의 경기회복 속도를 비교했다.

한국의 2007~2011년 GDP 성장률은 13.1%로 주요 20개국 가운데 8위였다.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50.2%였다. 다음으로는 중국(44.5%), 인도(34.6%), 아르헨티나(28.0%), 인도네시아(25.4%), 브라질(15.8%), 터키(13.5%) 등의 순이었다. 이탈리아(-4.4%), 일본(-2.7%), 영국(-2.3%), 프랑스(0.0%), 미국(0.7%), 독일(2.6%), 캐나다(4.0%) 등은 한국보다 성장률이 낮았다.

민간소비는 2011년 말 현재 2007년에 비해 8.1% 증가해 20개국 가운데 10위였다. 국가별로는 사우디가 50.2%로 가장 크게 늘었고 중국, 인도,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뒤를 이었다.

고정투자는 2007년부터 2012년 말까지 1.5% 증가해 13위를 기록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경기가 부진한 데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설투자는 경쟁국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에 비해서도 크게 뒤처졌다.

주가지수는 2012년 말 현재 2007년에 비해 12.7% 상승해 주요 20개국 가운데 7위였다. 삼성 등 일부 대기업의 호조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입되면서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반등했다고 예산정책처는 설명했다.

이 같은 경제실적으로 볼 때 한국의 경제회복 속도는 빠른 편이 아니라고 예산정책처는 평가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과 주요 20개국의 경기·주가 회복 양상을 비교해 볼 때 한국은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지속되면서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빠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한국의 민간소비(20개국 중 10위)와 총고정투자(13위) 등 내수 개선폭은 GDP 개선폭 순위(8위)보다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나 한국 경제의 내수 취약성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GDP 성장세는 중위권이지만 내수는 이보다 뒤처져 있어 국내 경제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이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퇴임 연설에서 “지난 5년간 두 차례에 걸친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더 큰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지고자 힘써왔다”며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대한민국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엔화가 빠른 속도로 약세를 보이고 있어 올해는 한국의 수출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창민 기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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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악재 현실화… 추락하는 수출



[서울신문]

지난달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엔저로 인한 불확실성과 조업일수 부족 등으로 주력 품목인 자동차와 일반기계 등의 수출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환율 변동으로 채산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현실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1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2013년 2월 수출입동향’(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423억 27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8.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입은 10.7% 줄어든 402억 6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엔저 등 어려운 수출 여건에도 정보기술(IT) 업종의 선전이 돋보였다. 전 세계 롱텀에볼루션(LTE)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스마트폰, 태블릿PC의 수요 증가에 힘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선통신기기 수출은 전년 대비 10.2%, 액정표시장치(LCD)는 6.2% 증가했다.

하지만 대표적인 수출 주력 품목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 수출은 15.1%나 감소해 엔저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일반기계(-15.1%)와 철강(-10.5%)도 줄었고 선박(-40.3%) 또한 대폭적인 감소세를 나타내는 등 IT를 제외한 모든 부문의 수출이 약세로 돌아섰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엔저에도… 13개월 연속 무역흑자

2월 수출 전년비 8.6% 줄었지만

하루 평균 수출액은 더 늘어

설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로 2월 수출과 수입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8.6%, 10.7% 줄어들었다. 하지만 수출보다 수입 감소 폭이 더 커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달 수출액이 423억2700만 달러, 수입액은 402억6600만 달러로 잠정 집계됐다고 1일 밝혔다. 무역수지는 20억6100만 달러 흑자로 지난해 2월 이후 13개월 연속 흑자를 유지했다. 2월 무역흑자 규모는 1월(4억7600만 달러)보다 4배 이상 개선됐다.

 수출이 8.6%나 감소했지만 이는 지난해와 달리 2월에 설 연휴가 끼면서 조업일수가 2.5일 감소한 영향이 컸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2월 하루 평균 수출액은 20억6000만 달러로 지난해 2월보다 2.5%가량 증가했다. 선박 수출이 40.3% 급감했고 자동차(-15.1%), 일반기계(-15.1%), 철강(-10.5%) 등 상당수 주력 품목이 부진했다. 무선통신기기(10.2%), 석유화학(7.8%), 액정디바이스(6.2%) 등은 수출이 증가했다. 원자재·자본재·소비재 수입이 모두 감소해 수입은 2011년 3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조영태 지경부 수출입과장은 “최근 엔화 약세 때문에 수출 둔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하루 평균 수출액이 증가하는 등 아직 추이가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1·2월 누적 수출액은 88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6% 증가했고 수입액은 855억 달러로 3.6% 감소했다. 이 기간 무역수지는 25억 달러 흑자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36억 달러 개선됐다.

 와이 호 렁 바클레이스캐피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월 수출 실적이 시장 예상(-9.2%)보다 좋았다”며 “전자 부문보다는 자동차·선박에서 엔저의 영향을 더 받고 있다”고 말했다.

원高에도 13개월째 무역흑자

최근 가파른 원화값 절상에도 국내 무역수지가 13개월째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있지만 아세안 등 신흥국 중심 수요와 정보통신(IT) 수출이 두 축이 돼 흑자 기조를 떠받쳤다.

하지만 미국발 시퀘스터(정부 예산 자동 삭감) '후폭풍'이 불거진 데다 자국 경기 부양에 비상이 걸린 일본발 엔저 정책 등이 겹치며 국내 수출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1일 지식경제부는 2월 수출액 423억2700만달러, 수입액 402억6600만달러로 무역수지가 20억61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잠정 집계했다. 무역수지는 작년 2월부터 13개월 연속 흑자를 유지했다.

액면 수출은 한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늦은 설 연휴로 인해 2월 통관일수가 2.5일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과 비교하면 수출은 8.6%, 수입은 10.7% 감소했다. 기저효과도 한몫했다. 꼭 1년 전 선진국 수요 회복으로 수출이 20.4%로 급증하며 올해 수출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낮게 잡혔다.

수출 면면을 뜯어보면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통관일수 변수를 걷어낸 일평균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로 오히려 불어났다. 흑자 규모도 전월(4억8000만달러)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중국에 이은 2대 수출시장인 아세안 수출이 0.6% 늘며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여기에 전 세계 롱텀에볼루션(LTE) 시장이 급성장하며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기기 수출이 10.2% 증가하는 등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향후 수출과 무역 흑자 발목을 잡을 변수가 산적했다는 점이다. 주력시장인 미국ㆍ중국 내수 표정이 좋지 않은 데다 원고 현상도 시차를 두고 자동차 등 수출에 부담을 줄 전망이다. 2월 자동차 수출은 15.1%나 뒷걸음질쳤다.

미국에서는 당장 1일부터 시퀘스터가 발동되며 사회보장비 감축이 불가피해졌다. 지난해 말 재정절벽 해소 과정에서 세율도 인상됐다. 이날 발표된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두 달 연속 하락해 50.1로 턱걸이하는 등 중국 제조업 회복 속도도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박승영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시퀘스터 등으로 미국 내구재 지출 감소가 진행될 전망"이라며 "단기적으로 국내 IT 부문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서대일 KDB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약세는 1분기 정도 시차를 두고 한국 수출에 영향을 미친다"며 "작년 하반기 엔저 현상이 2분기 수출 회복 속도를 둔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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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시퀘스터 결국 발동.. 재앙은 시작일 뿐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예산 자동삭감(시퀘스터)이 결국 1일(현지 시각) 발동된 가운데, ‘정부 폐쇄’ ‘국가 신용 등급 강등’ 등 더 큰 충격파를 몰고 올 재정 협상 ‘고비’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시퀘스터 협상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타협·양보 정치’가 완전히 실종된 현 정치 지형에서는 어느 고비 하나 쉽게 넘어가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우선 이미 발동된 시퀘스터에 대한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1일 시퀘스터가 시작된 후에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가 만났지만, 시한을 뒤로 미루는 ‘미봉책’ 외에 별다른 묘책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이달 27일에는 2013 회계연도 잠정예산 편성이 종료된다. 의회가 그전에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사태가 오게 된다. 연방정부 폐쇄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년 이후 18년간 발생하지 않았다.

2014 회계연도 예산안도 관례대로라면 2월 중에 의회에 제출됐어야 하지만, 시퀘스터 등 당장 닥쳐 있는 문제 때문에 무산됐다. 의회는 계속되는 잠정예산 편성으로 비난을 받자, “4월 15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의원 급여를 받지 않겠다”는 배수진까지 쳤지만 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다.

가장 큰 고비는 국가의 빚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일이다. 의회는 지난달 시퀘스터와 채무 상한 조정 문제가 겹치자 일단 5월 18일까지는 법정 한도를 해제해 미국 재무부가 필요한 지출을 할 수 있게 조치해놨다. 만약 5월 18일까지 의회가 채무 한도를 올려주지 않으면 미국은 국가 부도를 의미하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국가 신용 등급이 강등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의 경제 소식통은 “미국 신용 등급 강등은 시퀘스터보다 세계경제에 훨씬 즉각적, 직접적,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민주·공화당 모두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어 타협의 여지가 거의 안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야 지도부가 가까스로 타협안을 도출하더라도, 강경파가 이를 따르지 않고 반대표를 던져 무산시키는 사례가 잇따랐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강경파가 ‘어떤 대형 후폭풍도 무시한 채 자기주장만 한다’는 뜻에서 이들을 ‘세계 종말 의원모임’이라고 표현했다.

[워싱턴=임민혁 특파원 lmhcool@chosun.com]

<美예산삭감, 워싱턴 직격탄…아시아에도 그림자>(종합2보)


즉각적이기보다 순차·점진적 영향…우려 점증

'오바마 정부가 악영향 과장' 공화당의 지적도

(워싱턴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 김성진 기자 = 미국 연방정부 예산의 자동삭감(시퀘스터)은 1일 밤 11시59분(현지시간.한국시간 2일 오후 1시59분)부터 발효된다.

이에 따라 그 직전에 열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 공화 양당 지도부 회동에서 수습책이 나올 것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세계가 그 파장을 주목하는 가운데 일단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아시아가 가장 이르게 체감하게 된다는 예측이 나왔다.

미국의 주요 언론에 따르면 경제활동의 20% 정도를 연방정부 지출에 의존하는 워싱턴DC와 메릴랜드주, 그리고 버지니아주가 시퀘스터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지역으로 지목됐다.

군부대가 많은 하와이와 알래스카, 그리고 방위산업체들이 주로 자리잡은 뉴멕시코나 켄터키 같은 지역이 그 다음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꼽혔다.

미국 밖에서 시퀘스터의 그림자가 먼저 드리울 지역으로 아시아가 거론됐다.

아시아 지역 전문가들은 시퀘스터 때문에 당장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이 철수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군사 훈련이나 부대의 이동 같은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물리적인 영향보다도 시퀘스터 논란으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는 상황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전임자인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첫 해외 순방지를 유럽과 중동으로 정한 점 또한 시퀘스터와 맞물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을 빛바래게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일본의 방위비 지출이 최근 11년만에 증가한 현상도 이런 분위기와 맞물리면 본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미국에서 시퀘스터가 시행돼도 당장 이날부터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만 보면 정부 기관들은 440만명에 이르는 연방정부 직원들에게 공식적으로 임시 해고조치나 무급 휴가를 부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경과조치를 거쳐야한다.

특히 강제로 무급 휴가를 부여하려면 적어도 1개월 전에 통보해야 한다.

물론 실제로 업무에 지장을 받는 정부 기관도 나타났다.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은 청정에너지 사용실태 조사 보고서를 비롯해 발간 예정이던 보고서 3건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퀘스터에 대한 우려는 대부분 미래 시제다.

시퀘스터 때문에 민간 업체와 맺은 계약이 무산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국방부나, 인력 문제 때문에 세금 회피자들에 대한 대응이 둔화할 수 있다는 국세청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논의할 때 협상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하는 무역대표부(USTR)의 우려나 교사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교육부의 걱정도 현실화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시퀘스터 때문에 2013회계연도 말인 오는 9월까지 연방정부 예산 850억 달러가 삭감될 예정이지만, 복잡한 예산 집행 절차 때문에 실제로 줄어드는 돈은 430억 달러 정도라고 외신은 전했다. 연방정부 전체 예산이 3조7천억 달러인 데 비하면 미미한 규모다.

금융시장과 재계도 아직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하품'을 하는 형국이라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재정적자 감축과 세금인상 문제를 둘러싸고 공화당과 오바마 행정부 사이의 대립이 이미 5번째로 일종의 '위기 피로증'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또 정치권의 막판 합의로 결국 시퀘스터를 피하더라도 어차피 3월 후반에 정부예산 시효가 완료되면 공공 기능 마비라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야당인 공화당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에서 시퀘스터의 악영향을 과장한 게 아니냐는 공세마저 펴고 있다.

보수성향인 폭스뉴스도 예산 절감론자들의 발언을 인용, 시퀘스터의 긍정적 효과로 마침내 정부가 불요불급한 부분을 축소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부 관리들은 이미 콘퍼런스 지출을 줄이는 등 비싼 겉치레를 없애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시퀘스터가 작동된 책임을 오바마 대통령 한사람에게만 물을 수 없다면서 시퀘스터가 오래 지속될 수록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시퀘스터 해결해도… 美 재정절벽 ‘산 넘어 산’



27일까지 6개월 예산안 의결

4월 15일 내년 예산안 데드라인… 5월중순 국가채무 한도 증액 대기

[동아일보]

미국 정치권이 예산 자동 삭감 문제를 간신히 해결하더라도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올해 상반기 중 세 개의 큰 산을 더 넘어야 한다.

의회는 지난해 9월 2013 회계연도(2012년 10월∼2013년 9월)의 절반에 해당하는 첫 6개월 예산안만 잠정 의결했다. 이달 27일까지 나머지 6개월의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하면 또 한 번의 일시적 연방정부 폐쇄가 불가피하다. 1970년부터 최근까지 미국에서는 17차례의 연방정부 폐쇄가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 1기인 1995년에 21일 동안 모든 연방정부가 일손을 멈추는 사태가 있었다.

2013 회계연도 예산안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2014 회계연도 예산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미 행정부는 통상 2월에 다음해 예산안을 처리하지만 시퀘스터 파동 등에 발이 묶인 행정부는 아직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지 못했다. 하원은 1월 “4월 15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의원 급여를 받지 않겠다”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정쟁에 여념이 없는 여야가 기한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산 문제를 넘으면 부채한도 증액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나랏빚은 지난해 말 이미 법정한도인 16조3940억 달러를 넘어섰다. 공화당은 사회보장 지출 등의 대폭적인 삭감을 요구하며 행정부의 채무한도 증액에 소극적인 방침을 보이다 5월 18일까지 법정한도를 해제해 재무부가 필요한 지출을 할 수 있도록 미봉해 놓은 상태다.

따라서 여야가 5월 중순까지 국가채무 한도를 증액하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미국은 또다시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S&P는 2011년 8월 미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을 우려하며 국가신용등급을 사상 처음으로 AAA에서 AA+로 강등시킨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은 무디스와 피치도 올해 5월 여야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등급을 하향 조정할 것을 시사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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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칼럼 Outside] 한국 짓누르는 가계 빚, LTV <주택 가격대비 대출비율> 완화로 실마리 풀자

  • 리처드 돕스(Dobbs)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소장
  • 입력 : 2013.03.01 14:09

    임대시장 활성화하려면
    은행·보험사 임대사업 허용
    장기 투자 가능하게 해줘야
    英공동지분 실험도 검토를
    중산층 이자부담 줄이려면
    20년 넘는 고정금리 대출로
    원금상환 압박 피하게 해야
    LTV기준은 최초가격으로

    리처드 돕스(Dobbs)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소장
    대한민국 국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며 이혼율과 출산율도 위험 수위이다. 이런 현상의 주원인은 경제적인 측면에 있다. 특히 한국 중산층의 절반 이상은 임금 상승 정체와 주택·교육비 급증으로 매월 소득수준을 초과하는 지출로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가계 재정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신속한 방안은 비싼 주택을 장만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대출금을 갚기 위해 매월 투입하는 엄청난 지출을 줄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중산층은 지금 높은 주택 가격과 높은 대출 비용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주택 가격은 1인당 국민소득 대비 7.7배로 그 어떤 선진국보다 높고,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의 3배에 육박한다.

    특히 내 집 장만 시의 주택 금융은 대부분이 약 10년 만기의 단기 모기지론으로 매월 거액의 원금을 상환해야 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또 대출의 약 90%가 변동 금리이기에 채무자들은 이자 부담 폭등의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주택 시장 거품 및 은행권 부실 방지를 위해 도입한 LTV(Loan To Value ratio·주택 가격 대비 대출 비율로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해줄 때 적용하는 담보 가치 대비 최대 대출 가능 한도를 일컬음) 규제 정책도 주택 대출 비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상당수 주택 구입자와 추가 주택 담보대출을 필요로 하는 젊은 층 가구들은 LTV 상한선 규제에서 초래된 주택 구입 자금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제2 금융권 및 사금융의 고금리 추가 대출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그 결과, LTV 50%를 상회하는 자금을 대출할 경우 그 이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LTV 관행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더 많다. 주택 가격 하락 시에는 기존의 LTV 수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거액의 원금 상환을 요구하는 대출 기관의 압박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 하락세가 수년째 진행 중인 지금이 그렇다. 주택 가격 하락세에 따른 주택 담보대출 비율의 확대로 LTV 비율이 상승하게 되자, 기존의 LTV 비율 수준을 유지하고자 하는 대출 기관들이 원금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첫 단계는 전통적 주택 소유 수요를 완화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주택 소유를 매우 중시해 주택 보유율이 74%에 달한다. 이는 중산층 가구에 적합한 주택을 공급하는 주택 임대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데다, 정부에서 중산층 가구를 겨냥해 시행하기 시작한 임대주택 서비스가 지지부진한 등 주택 보유 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 임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주거 건물에 대한 은행 및 생보사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는 현 규제를 전격적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생명보험사들의 주택 임대 시장 진입을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 도입도 추진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보험사가 다가구 임대주택에 대한 주요 장기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방안은 대안적 주택 소유 방식을 활성화하는 일이다. 영국의 공동지분 모기지 프로그램인 홈바이(HomeBuy)는, 부동산 지분의 일부를 일반인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100만에 달하는 빈곤층 가구에 내 집 장만 기회를 제공했다. 최초 주택 구매자들을 겨냥한 홈바이 프로그램은 부동산 구입 비용의 일부에 대한 융자를 제공하고, 주택의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는 소유주들에게 상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제도가 한국에 도입될 경우, 최초 주택 구매자들이 저비용으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이 될 수 있다.

    셋째로 한국 가계가 안고 있는 높은 월 대출 상환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 장기에 걸친 고정 금리 모기지론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실제로 대부분 선진국에서 모기지론 상환 기간은 대체로 20년이 넘는다. 그 결과, 총 대출 비용은 거의 상승하지 않는 반면 매월 부담해야 할 상환액은 훨씬 줄게 된다.

    LTV 기준도 주택의 현재 시가가 아니라 당초 구입 가격에 적용해야 한다. 물론 장기 고정 금리 모기지론과 완화된 LTV 조건의 대출을 확산할 경우, 대출 기관들의 리스크는 더 커질 것이다. 이로 인해 해당 대출 기관인 제1 금융권의 건전성이 훼손되는 리스크가 수반될 수 있는 만큼, 은행권의 지급 여력 보호를 위한 견실한 대책 수립도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은행들이 자기 은행의 모기지론을 패키지화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주택 저당채권 유동화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이는 은행 입장에서 과도한 수준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도 장기 고정 금리 및 높은 LTV의 대출을 발행할 길을 열어준다. 주택 저당채권 유동화 제도는 서브프라임 위기 당시 미국 부실채권의 진원지로 지목돼 명성에 손상을 입었으나, 영국·독일·호주 등은 일종의 주택 저당증권 및 정부 보증을 통해 매우 효과적인 결과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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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편전쟁 후 170년 만에 힘의 역전 중국, 유럽 ‘경제 영토’ 점령 나서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파리=홍주희 기자 밀라노=김성희 통신원, 서울=노진호 기자 joonny@joongang.co.kr | 제312호 | 20130303 입력
    유럽 여행차 영국 런던의 히스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당신은 ‘차이나 머니’를 밟게 된다. 지난해 11월 중국투자공사(CIC·국부펀드)가 공항 지분 10%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공항에 줄 서 있는 ‘블랙캡’(검은색 택시)도 ‘차이나 머니’의 세례를 받았다. 이 택시를 만드는 영국 회사는 지난달 폐업 일보 직전에 지리(吉利)자동차에 지분 20%를 팔아 기사회생했다. 런던의 호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할 때도 그렇다. 런던 상수도회사인 템스워터의 지분 8.7%를 CIC가 갖고 있다. 최근 새로 지은 집의 주인은 중국계일 확률이 꽤 높다. 부동산업체 나이트 프랭크의 투자분석가 리엄 베일리는 “런던 중심부에서 지난해 신축된 아파트·주택 가운데 5%는 중국 본토인, 16%는 홍콩인, 23%는 싱가포르인에게 팔렸다”고 말했다.

    프랑스로 여행지를 옮겨도 비슷하다. 중국인들은 파리 중심부의 호텔이나 세계적 와인 산지인 보르도·부르고뉴 지역의 포도밭을 속속 사들이고 있다. 보르도에선 최근 4년간 30개 이상의 양조장이 중국인 손으로 넘어갔다.

    이탈리아 남부 바닷가에 정박 중인 화려한 요트에도 이미 중국의 손길이 뻗쳤다. ‘요트계의 페라리’라고 불리는 ‘페레티’를 만드는 회사의 지분 75%는 지난해 1월 산둥(山東)중공업에 팔렸다. 로마에서 비교적 싼값에 캐시미어 스웨터를 샀다면 ‘메이드 인 이탈리아’이지만 중국산과 다를 바 없다. 피렌체 옆 직물공업도시인 프라토에만 4000여 개의 중국계 의류공장이 있다. 중국산 원단으로 중국인 노동자가 옷을 만든다.

    중국의 넘쳐나는 돈과 사람이 유럽 상권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쩍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명품매장 싹쓸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요즘엔 고급 부동산과 기업들도 거침없이 쓸어 담고 있다. 현찰이 아쉬운 유럽에선 손님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각국 정상들이 중국을 찾아가 투자나 수입을 늘려 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한 지도 오래다. 170여 년 전 아편전쟁을 시발로 중국 땅을 강점했던 서구 열강이 이젠 거꾸로 ‘경제 영토’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열강들이 홍콩·마카오·광저우 같은 중국 주변부로 먼저 침투했듯 중국 자본도 유럽의 변방을 집중 공략한다. 남유럽의 사정이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영 해운업체는 2009년 그리스의 최대 무역항인 피레에프스항구의 35년 임차권을 샀다.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동쪽의 섬나라 키프로스에선 부동산 열기가 뜨겁다. 최근 반년 새 중국인들이 약 2000채의 주택을 매입했다. 키프로스 정부가 지난해 8월 30만 유로(약 4억2000만원)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면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내주기 시작하면서다. 키프로스 영주권은 다른 EU 회원국에서의 장기 체류를 보장해 준다. 스페인 정부는 16만 유로 이상인 집을 사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내주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 역시 뒤질세라 투자이민의 벽을 낮추고 있다. KORTA 밀라노무역관의 이종건 센터장은 “중국이 연구개발(R&D)을 통해 단시간에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해 브랜드 가치와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들을 작심하고 사들이는 것 같다. 산업 측면에서 한국에 매우 위협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차이나 머니는 한국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관광·부동산 분야를 중심으로 중화권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해 40억 달러(전체 금액의 24.6%)로 늘었다. 2011년 19억 달러에 비해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서울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분양 땐 중국·홍콩에서 20여 명이 방문해 주변 상권 등을 둘러봤다. 제주도는 인기 지역이다. 그래선지 베이징·상하이·광저우·홍콩 등에선 한국 부동산 투자설명회가 열린다. 홍콩의 부동산 자문업체 DoB글로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말 홍콩 5성급 호텔에서 설명회를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번 주에 고객 10여 명이 제주도·부산·서울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차이나 머니의 한국 외출은 이제 시작”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관계기사 6~7p

     

    키프로스 중국인 부동산 투자로 활기, 이탈리아 공단 장악해 현지인과 갈등

    유럽 넘보는 차이나 파워의 두 얼굴

    파포스·프라토·밀라노=이상언 특파원 joonny@joongang.co.kr | 제312호 | 20130303 입력
    전 세계 국경을 넘나드는 중국의 자본과 노동력은 다른 나라의 경제 성장을 돕는 약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최근 유럽에선 부동산 투자를 기대하며 중국인을 열렬히 환대하는 지역이 생겨났다. 그러나 중국인 때문에 전통 산업이 무너졌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도 있다. ‘차이나 파워’의 명암이 선명하게 펼쳐진 유럽의 현장을 살펴본다.
    거실 창으로 사파이어 빛깔의 지중해가 펼쳐지고, 뒤편에 18홀 골프장이 맞닿아 있는 바닷가 언덕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빌라. 부동산중개업자 게오르게 요아누는 “110만 유로(약 15억6000만원)만 내면 당장 인수 가능하다. 내부 구조는 원하는 대로 바꿔 줄 수 있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좀 비싸다”고 하자 “바다가 안 보이는 쪽이면 50만 유로짜리도 있다”며 앞장설 채비를 했다.

    영주권 따면 유럽 거주와 세금·학비 혜택
    지난달 22일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의 남서부 해안도시 파포스를 찾아갔다. 중국인 부동산 투자 열기가 한창 뜨거운 곳이다. 공항을 나서자 순환고속도로 입구에 대형 부동산 광고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엔 “바다가 보이는 빌라를 30만 유로(약 4억2000만원)에 판다”는 뜻의 중국어가 적혀 있었다. 중국어 간판은 라르나카∼파포스 고속도로(130㎞) 구간에서 2∼3㎞마다 등장했다. 황인종 부부가 아들딸 두 자녀와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짓는 광고판도 눈에 띄었다. ‘둘째 아이는 이곳에서 키우라’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1가구 1자녀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 정부는 한족(漢族)의 경우 둘째 아이 출산을 금지하고 있다.
    호텔 입구에서 객실로 안내하던 직원은 머뭇거리다 “파포스에 왜 왔느냐”고 물었다. 부동산 사러 온 중국인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집을 좀 보러왔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친척이 파포스에서 제일 큰 부동산회사 직원”이라며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호텔로 찾아온 아일랜드 출신의 중개업자 수전 브래디에게 맨 먼저 이끌려 간 곳은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아파트 단지였다. 300채의 아파트 중에 40채가 중국인에게 팔렸고 6채만 분양이 안 됐다고 했다. 단지 안에 수영장·헬스클럽이 있었다. 방 두 개짜리가 36만 유로, 방 세 개짜리는 49만 유로였다.

    1 키프로스 남서부 해안도시 파포스에 새로 들어선 고급 아파트 단지. 300채의 아파트 중에 40채가 중국인에게 팔렸다. 130㎡의 방 3개짜리 아파트 값이 49만 유로(약 7억원)다. 2 키프로스의 관문인 라르나카 공항에 택시 정류소를 알리는 문구가 중국어로도 쓰여 있다. 중국어는 이 나라에서 그리스어(공식언어)·영어·러시아어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는 언어가 됐다. 이상언 기자
    브래디는 “집을 사면 영주권은 빠르면 4주, 늦어도 8주 안에 나온다”는 말을 반복했다. “집을 팔지 않는 한 영주권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지난해 8월 30만 유로 이상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반년 새 약 2000채의 집이 중국인에게 팔렸다. 그중 실제로 중국인이 거주하는 집은 10%도 안 된다고 한다. 영주권이 진짜 목적인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키프로스는 인구 80만 명의 소국이다.
    키프로스 영주권은 EU 내에서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한다. 중국인들은 유럽 국가에 가려면 한국인과 달리 사전에 별도 비자를 받아야 한다. 유럽에 이미 정착한 중국인에게 키프로스 영주권은 소득세를 줄이는 수단으로 쓰인다. EU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해도 키프로스 거주자로 등록돼 있으면 세율이 낮은 키프로스에 개인 소득세를 내면 된다. 자녀 유학에도 도움이 된다. 영국 대학들은 EU 거주자의 학비를 자국민과 동일하게 받는다. EU 바깥에서 오는 유학생 학비의 절반 정도다. 브래디는 “이틀 전에 상하이(上海)에서 온 고객은 미국의 좋은 대학에 아들을 유학 보내려 집을 샀다”고 말했다. 미국 명문대 지원 때 중국인보다 유럽인이 유리하다는 생각이 작용했던 것으로 짐작됐다. 일부 미국 대학은 중국 유학생 비율이 너무 높아지자 입학생 숫자를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포스에서 만난 부동산중개업자들은 관광이나 식사를 제의하며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 중국인으로 가장한 덕분에 받은 융숭한 대접이었다. 하지만 키프로스에서처럼 중국인들이 늘 유럽인의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는 곳도 많다. 이탈리아 중부 도시 프라토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프라토시의 중국인 의류업체 밀집 지역을 한 중국인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고 있다. 중국어 간판이 걸린 곳이 샘플 전시장을 겸하는 중국인 의류 공장이다. [프라토=김수동 사진작가]
    프라토 장악한 저장성 원저우 출신들
    지난달 25일 프라토 서남부의 공단지역을 돌아봤다. 듣던 대로 중국어 간판을 내건 의류공장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약 4000개의 중국인 의류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원단을 수입해 중국인 노동자가 옷을 만든다. 생산제품에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라고 적힌 라벨이 붙여져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된다.

    이 지역에 중국인 옷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직물공장이나 의류업체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이 스스로 독립해 가내수공업 형태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사가 잘되자 공장 수는 점점 불어났고 중국 대륙에서 친척·친구가 몰려왔다. 이 지역의 중국인은 대부분 ‘중국판 유대인’이라 불리는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출신이다. 상술이 뛰어나고 결속력이 강하다.
    프라토시에 등록된 중국인 거주자 수는 9600여 명. 하지만 실제로는 3만∼4만 명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20만 명 소도시의 거주자 중 10% 이상이 불법 체류자인 셈이다. 경찰이 공장을 급습하며 이따금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차이나 파워가 드세진 사이 프라토에서 이탈리아인들의 영역은 쪼그라들었다. 프라토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10년 전 원단·의류를 생산하는 이탈리아인 회사는 6000개가량이었으나 요즘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3대째 경영하던 의류업체를 지난해 폐업했다고 밝힌 주민 페데리코 마르체티(53)는 “불법 노동자를 고용하고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현지 언론에는 ‘900년 전통의 직물도시가 중국인 때문에 초토화되고 있다’는 자극적 표현이 실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인들은 “어차피 망해 가는 공장을 우리들에게 비싼 값에 떠넘기고선 이탈리아인들이 원망을 쏟아낸다”고 항변한다. 2년 전에 공장을 열었다는 후즈펑(胡志峰·37)은 “이탈리아 회사들은 주로 원단을 만들고 우리는 옷을 만들기 때문에 서로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국제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업을 접고서는 우리를 탓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지 밀라노도 양쪽의 반목이 심각해 보였다. 그 갈등의 흔적이 도심 북쪽 차이나타운의 역사에서 고스란히 발견됐다. 밀라노 차이나타운은 2년 전 시에서 대대적인 정비를 해 전 세계의 그 어떤 중국인 거리보다 산뜻했다. 그런데 바로 그게 중국인들에겐 엄청난 압박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1920년대에 조성되기 시작한 차이나타운은 약 20년 전 규모가 급격히 불어났다. 주로 도매로 옷을 파는 가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옷을 내리고 싣는 차량들 때문에 길이 막히기 일쑤였고, 지역 주민들은 시 당국에 불평을 쏟아냈다. 그 결과 경찰이 상주하다시피 하며 불법 주차 차량에 범칙금을 부과했다. 중국인들은 “장사를 하지 말라는 거냐”며 항의했다. 2007년 4월엔 400여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폭력시위까지 벌였다. 시 정부는 중국인들에게 도심 외곽의 옛 자동차공장 부지로 옮겨 갈 것을 제의했다. 이에 중국인들이 반발하자 차이나타운의 중심축인 파올로 사르피 거리를 차량통행 금지구역으로 정하고 길가에 화단을 설치해 주차공간 자체를 없애 버렸다. 곳곳에 단속용 폐쇄회로TV(CCTV) 카메라까지 매달았다. 이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쉬진옌(徐金燕·41)은 “보기엔 깨끗해졌을지 모르지만 장사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미 다른 지역으로 가게를 옮긴 이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은 유럽의 조용한 해안도시를 들썩이게 하기도, 공단이나 거리를 장악해 원성을 사기도 한다. 유럽에 뻗어 나가는 ‘차이나 파워’의 두 얼굴이다. 1600여 년 전 훈족의 기습으로 민족 대이동을 겪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 기행담에 놀랐던 유럽인들, 그들은 21세기의 새로운 중국을 학습하고 있다.

    중국인들 ‘부동산 투어’ 급증 제주 토지 취득 건수 1년 새 6배로

    국내는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 제312호 | 20130303 입력
    경기도 김포시 래미안 한강신도시 2차 아파트 분양사무소. 지난해 5월부터 중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이른바 ‘부동산 투어’를 오고 있는 중국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종오 현장소장은 “지금까지 100팀 정도 이곳을 찾았는데 그중 10여 건 이상 계약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제주시의 고급주택단지인 ‘라온프라이빗타운’의 경우 전체 934가구 중 211가구를 중국인들이 사들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10여 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하다 얼마 전 제주도로 이사 온 김형술 전 상하이랜드 사장의 말이다. “상하이와 광둥성의 부유층 일각에서 요즘 제주도 투자 미니 붐이 일고 있다. 요즘 상하이보다 제주도에서 더 많이 계약이 성사된다.”

    차이나 파워는 한국에도 미치고 있다. 이는 수치상으로도 확인된다. 국내에 유입된 중국인들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해 7억2700만 달러로 2011년(6억5100만 달러)보다 11.7% 늘어났다. 중국 자본이 경유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홍콩·싱가포르 등 중화권 국가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40억600만 달러나 돼 2011년(19억3900만 달러)의 두 배 이상이다. 지식경제부 전윤종 투자유치과장은 “2006년 이후 제주도가 해외 직접투자 유치에 성공한 12건 중 7건이 중국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제주도에 1조500억원을 들여 헬스케어타운을 조성 중인 중국 뤼디(綠地)그룹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일본과 달리 정치적 문제도 없다. 회장이 제주도를 방문한 후 ‘자연경관이 좋은 데다 휴양시설이 생각보다 적다’며 흔쾌히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중국인 소유 토지 또한 늘고 있다. 2008년 전국에서 257만㎡였던 게 지난해 493만㎡(9월 말 현재)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외국인 소유 토지는 10%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특히 5억원 넘는 부동산을 5년 이상 소유하면 영주권을 주는 투자이민 활성화 조치 덕에 제주도 내 중국인 토지 소유가 급증하고 있다. 2011년 256건이던 제주도 토지 취득건수는 지난해 1548건으로 급증했다. 돌하루방공인중개사 고정민 대표는 “2년 전부터 중국인들의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건물보다는 개발 가능한 땅을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인적 진출도 활발하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는 283만여 명으로 전체 외국 관광객(1110만여 명) 중 4분의 1을 차지했다. 올해 춘절 연휴기간(2월 9~15일)에 중화권 관광객 10만4000여 명이 한국을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 제주시에서 5년째 여행사를 운영 중인 국인여행사 심명하 이사는 “2011년 1만 명쯤이던 게 지난해 3만5000명으로 늘었다”며 “오늘도 중국 현지 여행사 6곳에서 문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중국 자본이 직접 국내 인바운드 여행사로 진출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중국 현지에서 관광객들을 직접 모아 한국에서 직접 관광사업을 하는 방식이다. 제주도의 인바운드 여행사 150여 곳 중 약 10%가 중국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한다.

    중국인의 한국 진출이 활발한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넘쳐나는 돈과 중국 정부의 ‘쩌우추취(走出去)’ 정책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쩌우추취’ 정책이란 국외 투자를 장려하는 정책으로 2001년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가 제창했다. 중국의 5대 은행 중 하나인 중국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중국에선 요즘 기업이든 개인이든 해외 투자를 권장하는 편인데 2~3년 전부터 대규모 해외투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금융경제연구소 전병서 소장은 “전 세계에서 3조3000억 달러(외환보유액)를 현찰로 가진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며 “아시아에서 투자를 한다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일본보다는 한국이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은 중국인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전병서 소장은 “중국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경상수지 균형을 꾀하는데 중국에 들어오는 외화 규모만큼 해외투자를 하려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금까진 제주도를 중심으로 부동산 쪽에 활발히 투자했다면 차츰 부지 확보, 공장 설립과 같은 그린필드형 투자나 인수합병(M&A) 투자도 많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투자하면 영주권 남발하는 탓에 ‘솅겐조약’ 위기”

    유럽이사회 대외관계 선임정책연구원, 프랑수아 고드망

    파리=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 제312호 | 20130303 입력
    유럽의 중국 전문가인 프랑수아 고드망(Francois Godement·사진)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유럽 국가들이 사실상 ‘영주권 판매’에 나선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솅겐조약으로 성립된 유럽 국가 사이의 ‘국경 개방 합의’가 장차 허물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키프로스처럼 부동산을 구입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내주는 제도가 다른 나라로 퍼져나가면 유럽 전체의 이주자 통제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키프로스는 솅겐조약 가입국은 아니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이기 때문에 준가입국 지위를 누리고 있다. 파리에 있는 아시아센터의 소장인 고드망 교수는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의 대외관계 선임정책연구원이기도 하다.

    -유럽에 중국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어느 정도인가.
    “EU 통계에 중국인 투자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공식 통계로는 기업 자본의 10% 이상을 취득하거나, 땅을 매입해 공장·사업장을 짓는 경우에만 집계된다. 분명히 많은 돈이 중국에서 흘러 들어오는데도 부동산 같은 개인 자산 취득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알 길이 없다. 유럽 전역의 증시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막대한 차이나 머니가 들어오고 있지만 통계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

    -돈과 함께 중국 사람들도 유럽으로 몰려드는데.
    “이주자 문제는 또 다른 얘기다. 호주·캐나다 등은 일정 액수를 투자하면 그린카드(영주권)를 준다. 유럽에는 원래 없는 제도다. 최근 키프로스가 이런 정책을 만들었다. 일정 금액이 넘는 부동산을 구입한 투자자에게 체류 허가를 내준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솅겐조약 가입국이 아닌 키프로스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같은 솅겐조약 가입국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는 점이다. 솅겐조약 가입국 한 곳에서만 체류 허가를 받으면 나머지 가입국들을 자유롭게 오가며 살 수 있다. 한 국가의 체류 허가가 사실상 유럽 전체에 대한 체류 허가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EU에서 어떤 논의가 있나.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현상과 그에 대한 우려가 이제 막 시작됐다. 초기 단계에 예의 주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영주권을 파는 정책이 확산되면 솅겐조약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중국인 이주자가 많아져서 생기는 다른 문제는 어떤 것이 진행되고 있나.
    “중국인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 살곤 한다. 한 가지 특정 비즈니스에만 종사해 그 분야를 장악하기도 하는데 이런 집중화가 갈등 요소로 등장한다.”

    -이탈리아에선 중국인들의 의류사업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프랑스가 의류사업의 판매 중심지라면 이탈리아는 생산 기지다. 이 때문에 많은 중국인 노동자가 이탈리아에서 일한다. 유명 브랜드의 회사들도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제품을 생산한다. 자연히 이탈리아 토종 업체나 근로자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중국인들의 집단 이주는 장기적으로 유럽에 득인가, 실인가.
    “득이 될 거라고 본다. 그들이 아시아와 유럽의 다리 역할을 할 것이고 유럽 기업들도 이들을 활용할 수 있다. 아시아인들의 높은 교육열을 고려하면 2세대는 부모와는 달리 전문 영역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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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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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韓 브랜드 가치 높일 절호 기회"

    [머니투데이 하세린 국제경제부 인턴기자][세계적인 브랜드 전략가 마틴 롤 인터뷰..."한국은 브랜드 원석"]

    ▲ 브랜드 전략가이자 마틴롤컴퍼니 CEO(최고경영자)인 마틴 롤(45)의 모습.
    "퇴임 후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으세요?"

    세계적인 '브랜드 대가'의 대답은 짧았다. 지난 25일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질문이란다.

    브랜드 대가가 말하는 '유산'의 조건은 까다로웠다. 국정운영 철학이 확고해야 하고, 그러려면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감성'을 결합한 대한민국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 브랜드 '원석'"이라고도 했다. 대한민국 브랜드는 섬세하게 다듬으면 무한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부족한 면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나라', '떠오르고 있는 나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고 브랜드로 치면 아직 브랜딩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삼성·현대·LG 등 전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린 한국의 대기업들이 효율·혁신·디자인 면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상징적인 글로벌 브랜드는 없다는 게 롤의 평가다.

    롤은 한국 기업들이 기대치를 높여야 한다며, 우리 기업들이 힘써온 세계화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문차 방한한 롤은 28일 머니투데이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브랜드 대가답게 대한민국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술술 풀어냈다.

    다음은 롤과의 일문일답.

    '대한민국 브랜드'는 원석...박 대통령, 한국 대표 얼굴

    -외국에서 보는 '대한민국 브랜드'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나라, 떠오르고 있는 나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나라다. 그러나 여전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브랜드로 치자면 브랜딩 과정에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은 G20(주요 20개국) 회의를 주재했고, 유엔 산하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도 유치했다. 삼성·LG·현대 등 글로벌 기업도 있다.
    ▶한국인들이 인식하는 세계 속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세계인이 인식하는 한국 의 이미지에는 차이점이 있다. 한국은 좀 더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강력히 떠오르고 있는 나라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박 대통령의 브랜드는.
    ▶박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세계인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이 그러했고,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가 그랬다.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배경에도 세계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평가는 갈릴 수 있겠지만 관심을 받을 것이란 점만은 분명하다. 결국 박 대통령은 한국을 가장 잘 대표하는 얼굴이 될 것이다. 한국은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국제사회의 우호적 분위기를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효율·혁신 넘어 가치·개성으로 승부해야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전략은.
    ▶한국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앞에 두고 있다. 새로운 여성 대통령의 탄생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 한국은 이제 효율·혁신·디자인을 넘어 가치·개성을 추구하는 감성적 측면을 파고들 필요가 있다. 앞서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제는 그 다이아몬드를 다듬을 때다.

    삼성 휴대폰이 기술적으로 완벽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제품을 사지 않고 '라이프스타일'을 산다. 같은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소속감을 산다. 애플의 초기 고객들이 애플 제품으로 다소 반항적이며 '쿨'(cool)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공유한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브랜드는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진국 기업들의 주문을 받아 대량생산만 하던 제조업체들이 한 단계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브랜드계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애플'도 지금의 애플이 되는 데 35년이 걸렸다.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실행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얼굴(브랜드)을 찾아줘야 한다. 이러한 브랜드를 얻기 위해선 한국이 국제사회에 어떤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전통문화와 유산, 미래지향적인 국민과 역동적인 사회분위기, 교육제도 등 한국이 잘 하고, 자랑할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 '퇴임 후 유산'(遺産) 생각해야

    -박 대통령에게 제안하도 싶은 브랜드 전략은.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있다고 해서 변화가 쉬운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을 만나면 가장 먼저 '퇴임 후 대한민국에, 그리고 세계에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으냐'고 묻고 싶다. 어떤 철학을 갖고 무슨 목적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사고방식이다.

    대통령의 인식은 현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박근혜라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그 가치를 높여서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대통령 브랜드를 높이려면.
    ▶전직 대통령들과 자신을 차별화해야 하고, 더욱 용기 있고(bold) 대담한(daring)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제사회와 더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하고, 언론·비정부기구(NGO)는 물론 기업인들과도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소통은 머리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유엔(UN)·아세안(ASEAN) 등과 공감대를 찾고, 대통령이 직접 세계 곳곳을 더 많이 방문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더욱 분명하고 큰 소리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속의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브랜딩 전략

    -아시아 내 대한민국 브랜딩 전략은.
    ▲ 마틴 롤의 저서 '아시아의 글로벌 브랜드'(2006년)의 한국어판 표지. 올해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다.

    ▶현재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금 아시아에서는 '주목'을 받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중국이라는 독특한 변수를 바로 이웃으로 두고 있다. 나는 한국이 중국이라는 변수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교역국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은 자신을 가장 적극적으로 브랜딩하고 있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중국이라고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산 자동차를 사겠느냐'고 묻는다면 '사지 않겠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반면 (품질이 확인된) 현대자동차를 사겠다는 사람은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결국 이러한 결점들을 보완해서 국제무대에 등장할 것이다. 한국에는 그때까지 자신의 국가 브랜드를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한국은 자신만의 독특한 무엇인가를 이미 가지고 있다. 단지 이를 브랜드화해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일본이 상대적으로 침체기에 빠져 있다면 한국은 동적인 모멘텀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꼭 일본을 규모 면에서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적'이면 된다. 재차 말하지만 한국만의 브랜드를 정교하게 다듬어 그것을 대담하게 밀어 붙이고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글로벌 코리아, 한국 기업의 브랜딩 전략

    -최근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생각'의 변화다. 아시아 기업들은 단순 제조업에서 벗어나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려는 기업가들은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강한 브랜드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고 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강한 브랜드를 가지면 좋다(nice)'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강한 브랜드를 보유하는 것은 필수(need)다.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은 브랜드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이 한국만의 고유한 브랜드를 갖는 것이다. 서양의 브랜드를 모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브랜드 자체를 가지려는 목적으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브랜드 가치를 통해 기업은 보다 큰 수익과 유동성,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경영의 관점에서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 기업들에 필요한 브랜딩 전략은.
    ▶진정한 글로벌 기업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글로벌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삼성과 LG, 현대로 대표되는 한국 기업들은 외신의 헤드라인을 곧잘 장식하곤 하지만, 상징적인(iconic) 글로벌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긴 힘들다.

    기업들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나면 거만해지거나 안주하려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러나 기대치를 항상 높이 둘 필요가 있다.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화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됐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으로 이러한 글로벌화는 더욱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당신의 회사를 어떤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은가'에 대해 답하고, '퇴임 후 당신의 회사를 통해 한국에 그리고 세계에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어떤 비전과 목적을 가지느냐, 어떻게 자신을 브랜딩하느냐가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인내하며, 항상 원대한 포부를 지녀야 한다.

    ◇마틴 롤은 브랜드 전문 컨설팅 회사인 마틴롤컴퍼니(전신은 벤처리퍼블릭)의 설립자이자 CEO다. 세계적인 브랜드 전략가로 미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100대 기업을 포함한 유수 글로벌 기업에서 경영자문 및 리더십 특강을 하며 명성을 쌓았다. 1년 365일 가운데 25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고 80만㎞ 이상을 여행한다. 지구를 20바퀴 돌 수 있는 거리로 그는 한국도 100번 이상 방문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INSEAD)의 초빙교수와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CEIBS)의 교환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아시아 글로벌 브랜드'(2013년 개정판 예정)의 저자이기도 하며 2010년부터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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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영 필립스전자 사장 "신뢰 팔았더니 1등은 덤으로"

    [머니투데이 정지은 기자][헬스케어 사업 1위 이어 '소비자 삶의 질 향상' 꿈꾼다]

    김태영 필립스전자 사장이 "결국은 정직과 신뢰를 앞세운 제품이 소비자와 통한다"며 자신의 경영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제품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줬더니 1등에 올랐습니다. 제품이 아닌 신뢰를 판 덕분입니다."

    베테랑이지만 베테랑답지 않은 모습을 추구한다. 어느 분야든 노하우를 쌓으면 활용하기 마련이지만 김태영 필립스전자 사장(61)은 달랐다. 노하우는 과감히 버리고 신입사원 시절 세운 두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게 김 사장의 경영 전략이다.

    1982년 필립스전자에 입사한 김 사장은 2006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필립스전자를 국내 헬스 케어 시장 1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1위를 차지한 원동력으로 '정직과 신뢰'라는 첫 번째 원칙을 꼽았다.

    입사 3년차 시절부터 몸소 헬스 케어 시장에 뛰어들어 현장에서 보고 느끼며 만든 원칙이다. 판매 성사를 위해 말하기 스킬부터 배우는 보통의 영업사원은 되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경쟁사의 눈속임 판매 전략에 뒤쳐지기도 했지만 길게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반짝 포장은 안 되겠더라고요. 판매 당시 설명과 실제 사용에 차이가 있으면 누가 다시 그 회사 제품을 구매하겠습니까."

    김 사장은 직원들에게 '정직한 판매'를 주문했다. 장비에 있지도 않은 기능을 부풀린다거나 장비 예상 수명을 높여 부르는 등 당장의 판매를 위한 거짓말은 하지 말자는 당부였다.

    "헬스케어 장비는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합니다. 제품의 성능과 효과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하며 '이 제품은 믿고 사용할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었습니다."

    제품 신뢰도 향상은 재구매로 이어졌다. 김 사장은 "결국은 정직과 신뢰의 원칙이 통했다"며 "이같은 원칙이 만들어낸 1위라는 점에서 더욱 값진 성과"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40세가 되던 1992년부터는 더 이상 판매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김 사장은 "노하우가 쌓이면 나도 모르게 판매를 위한 영업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한 마지노선"이라며 "신뢰를 깨지 않겠다는 의지를 실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영 필립스전자 사장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본사 1층 로비에 전시된 주요 헬스케어 제품들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위기도 여러 번 있었다. 필립스전자가 외국계 기업인만큼 김 사장의 위치가 높아질 수록 세계 각국의 업계 고위층과 만날 일이 늘었다. 일상생활 영어와 비즈니스 영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회사 업무를 100% 소화하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결국 김 사장은 1994년 사직서를 내고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평소 김 사장의 성실성을 눈 여겨 본 상사가 '떠나지 말고 천천히 배우라'며 미국 근무 기회를 줬다. 주변의 격려에 힘입어 미국에서 3년간 머물며 실전 감각을 익혔다.

    이때부터 김 사장에겐 '위기는 곧 기회'라는 원칙이 하나 더 생겼다. 아무리 안 좋은 상황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더 나아가 힘든 순간에도 변화를 시도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이다.

    김 사장이 수장이 된 뒤로 필립스전자는 면도기와 전동칫솔로 유명한 가전회사 이미지를 한 꺼풀 벗었다. 특히 헬스 케어 사업에서 시장 영향력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김 사장은 "재무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헬스 케어 사업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가 의료기기 사업에 진출하는 등 업계 주목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김 사장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고령화가 되면서 헬스케어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건강한 경쟁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현재 국내 의료기기 시장을 약 4억유로(한화 약 6000억원) 규모로 진단하며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잠재능력이 큰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헬스 케어는 일반 제품과 달리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생명존중 의지와 애정이 필요하다"며 "매출이 아닌 삶의 질 향상을 우선시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장의 꿈은 필립스전자가 소비자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회사로 자리잡는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들의 삶에 기여해야 지속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사장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며 소비자들과 지속 소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실천하고 있는 원칙들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직과 신뢰가 담긴 제품은 언젠가는 반드시 소비자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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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게임 업계의 '애플'1년에 1개꼴 출시 줄줄이 홈런

  • 라스베이거스(미국)=강동철 기자
  • 입력 : 2013.03.02 08:31

    Interview in Depth 블리자드社 마이크 모하임 CEO
    "게임업계는 재미의 神 모시죠, 성공도 혁신도 재미에서 나오니…"
    게임업계 판을 바꾼 회사
    다중접속·E스포츠 게임 개발
    전 세계가 동시에 즐기게 해
    10년 넘게 정상의 자리 지켜
    회사의 중심은 개발자
    마니아라야 유저 마음 알아
    게임 좋아하는 사람만 뽑아
    개발자가 만족해야 게임 출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제공
    세계 게임 업계에 IT 기업 '애플(Apple)'과 같은 회사가 있다. 1991년 설립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이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22년 동안 21개의 게임만 출시했다. 매년 평균 한 개 수준이다. 장르도 공상과학(SF)과 판타지(Fantasy) 딱 두 가지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게임은 모두 성공을 거뒀고 대부분 대박을 냈다.

    지난해 5월 블리자드가 출시한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여러 사용자가 한 게임에 접속해 각자 맡은 역할을 하며 협업·경쟁하는 게임) '디아블로3'는 7개월 만에 1200만장 넘게 팔렸다. 2004년 내놓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는 매월 2만원씩 돈을 내고 즐기는 회원만 전 세계에 1100만명이 넘는다. 여태 전 세계에서 팔린 블리자드 게임은 1억장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2008년 미국 비디오게임 회사 액티비전과 합병한 후에는 세계 경제 침체 와중에도 최근 4년간 매출액이 50%나 늘었다. 블리자드의 지난해 총매출은 48억5600만달러(약 5조2653억원·액티비전 통합)로 전년 대비 2% 정도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3억4500만달러(약 1조4583억원)로 27.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게임산업의 '트렌드 메이커'인 블리자드의 중심에는 마이크 모하임(Morhaime· 47·사진) 공동창업자 겸 CEO가 있다. 그는 최고경영자이면서 블리자드의 오늘을 만든 히트작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등을 직접 기획한 '천재 기획자'이다. Weekly BIZ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게임 콘퍼런스에서 그를 만났다.

    마이크 모하임 CEO는 헝클어진 은발에 반팔 셔츠, 청바지를 입은 채 Weekly BIZ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모하임 CEO는 "나 역시 게임 마니아"라며 "테란(스타크래프트의 3종족 중 하나로 인간 종족)을 주로 쓰며 한국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인 임요환의 팬이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블리자드는 글로벌 게임업계의 작동 방식과 구조까지 바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이다.

    배틀넷(Battle Net)으로 대표되는 다중 접속 게임과 E스포츠를 전 세계에 퍼뜨린 게 그렇다. 배틀넷을 통해 전 세계 게임 사용자들이 한데 모여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E스포츠를 통해 게임은 관전(觀戰)하는 재미를 갖추게 됐다. 게임 전문 방송을 만든 것도 블리자드의 '작품'이다.

    모하임 대표는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직후 미국 하드디스크 업체인 웨스턴디지털(Western Digital)에 취업했으나 이 회사를 1년도 채 다니지 않고 UCLA 동창들과 함께 블리자드를 창업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마이크 모하임 CEO는“게임의 핵심 가치는 재미(fun)”라며“가장 재미있는 게임을 만든 것이 블리자드가 성공한 이유다”고 말했다.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회사의 중심은 '개발자'이다. 개발자가 만족 못하는 게임은 출시하지 않는다"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와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1년은 비디오 게임의 중흥기이면서 가정용 컴퓨터(PC) 보급이 일반화된 시점이었다. 나와 공동 창업자들(앨런 애덤·프랭크 피어스)은 앞으로 컴퓨터 게임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닌텐도가 만든 비디오 게임기가 미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 구비된 것처럼 컴퓨터도 모든 가정에 보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게임 개발시까지 돈은 벌지 못하고 빚만 지며 일했다. 하지만 1994년 블리자드로 이름을 바꾸고 워크래프트를 출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회사를 나와 할머니께 돈을 빌려 창업한 일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그는 "내 할머니가 창업 자본인 1만5000달러를 빌려줬다. 아마 할머니께서 돈을 빌려주시지 않으셨다면 블리자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할머니가 창업 종자돈으로 건네 준 수표를 사무실 한쪽에 걸어 놓고 있다.

    ―워크래프트의 출시 후 블리자드는 세계 정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우리는 다양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대신 하나라도 최고 품질의 게임을 선보인다. 우리는 돈 잘 버는 게임보다 가장 재미있는 게임을 최고로 여긴다. '재미(fun)'를 위해 시간·비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것을 투자한다. 블리자드가 세계 최고가 된 이유는 (돈을 가장 잘 벌어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 '개발자가 만족할 때가 게임을 발매할 때'라는 블리자드의 원칙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 개발자들이야말로 게임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게임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게임 사용자가 만족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 아닌가. 개발자들이 만족 못하는 게임은 사용자들도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중심은 '개발자'이다. 개발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는 '양복쟁이'들이 개발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10년 넘게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큰 비결이다."

    ―하지만 미리 예고한 출시 일정을 못 맞춰 팬들을 실망시키는 일도 많았는데.

    "우리가 출시 일정에 쫓기며 게임을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출시 일정에 맞춰 불만족스러운 게임을 내놓는 것보다는 일정에 늦더라도 완벽한 게임을 내놓는 것이 사용자에 대한 예의다. 물론 연기할 때는 사용자들이 불평·불만을 한다. 하지만 막상 출시된 게임을 보면 다들 좋아하지 않는가. 일찍 출시하고 여러 번 수정하는 것보다 처음 내놓을 때 완벽한 게임을 선보이는 것이 더 낫다."

    "아무리 실력 있는 인재여도 게임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 뽑아"

    실제로 블리자드의 게임 발매사(史)는 숱한 발매 연기로 얼룩져 있다. 스타크래프트(1998년)는 경쟁 게임의 그래픽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연기됐고, 디아블로(1997년)는 게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게임업계 최고의 성수기인 연말 연휴기를 훌쩍 넘겨서야 출시됐다. 출시 시점이 실적을 좌우하는 게임업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블리자드는 지나치게 개발자를 우대한다는 느낌이 든다.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게임 마니아(mania)의 회사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게임 제작사 직원이기에 앞서 모두 게이머(Gamer·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개발을 아무리 잘해도 게임 마니아가 아니면 우리 회사에서 일할 수 없다. 그러니까 개발자만을 위한 회사가 아니라 게임 마니아를 위한 회사라고 해야 한다."

    ―채용 원칙에도 이런 게 반영되는가?

    "당연히 게임을 좋아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의 인재 선발 기준은 오로지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이다. 개발, 프로그래밍 실력, 게임업계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게임을 좋아하지 않으면 뽑지 않는다. 다른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는 CEO부터 시작해서 신입사원들까지 모두 게임 마니아다.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 블리자드에서 일할 수 있다."

    ―게임 마니아가 아니라도 마케팅·재무 등의 전문 인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른 직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게임만 하는데 게임 마니아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적응하겠는가(웃음). 뭐든지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가장 좋은 성과가 나온다. 특히 게임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게임은 재미를 추구하는 감성 비즈니스다. 게임이 재미있어야 사용자들에게 팔리고 돈도 벌 수 있다. 책으로 공부해서 재미를 배울 순 없다. 게임을 좋아해야 재미있는 부분과 지루한 부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게임 마니아를 제1 조건으로 뽑는 거다. 게임 마니아 중에도 마케팅·재무 전문가는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온라인 게임은 영원할 것"

    ―블리자드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유저가 겨루는 '배틀넷'과 프로 게이머들의 활동장인 'E스포츠' 등의 혁신을 만들어 냈다. 원동력이 뭔가?

    "사실 우리는 혁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가장 재미있는 게임(The most interested game)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게임의 핵심 가치는 재미(fun)다. 모든 사용자가 재미를 느끼는 게임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혁신과 연결된 것이다. 기존에 없던 걸 보여줘야 사용자들이 재미를 느끼지 않겠나."

    ―혁신을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사용자 입장에서 가장 큰 재미와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게임을 보자. 다 재미있는 게임이다. 재미가 있으니까 성공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재미'라는 기본에 충실할 때에 성공과 혁신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최근 게임 트렌드가 모바일로 넘어가는데 블리자드의 대응이 늦다는 지적도 있다.

    "대응이 늦어지는 게 아니라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게임은 키보드와 마우스 없이 불가능하다. 게임성과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섬세하고 빠른 조작은 모바일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는 영원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온라인 게임 역시 영원할 것이다. 모두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던 비디오 게임은 여전히 순항 중이고, 우리 역시 모바일이 등장한 이후 오히려 급성장하지 않았나."

    ―급격히 변화하는 게임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꼽자면?

    "우리는 지금까지 총 21��의 게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 세계 정상에 섰다. '재미'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픽이 뛰어나고 기능이 많아도 사용자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이 게임업계의 원칙이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더 재미있는 게임, 사용자들에게 더 만족을 주는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오는 12일 출시 예정인 스타크래프트2 확장팩 '군단의 심장'.
    마이크 모하임(Morhaime) CEO는

    출생
    : 196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학력 : UCLA 전기공학과(학사)

    연봉
    : 745만달러(2011년 기준)

    취미
    : 블리자드 게임 하기, 포커, 록밴드

    기타
    : 다이스 유명인 포커 대회 2위(2006년), 미국 인터렉티브 아트 & 사이언스 학회 명예의 전당 헌액(2008년),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영’ ‘올해의 사업가’에 선정(2012년), 블리자드 사내 록밴드 ‘L90ETC’ 베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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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Cover Story] 삼성·인텔도 고개 숙이는 수퍼乙의 비결은?

  • 펠트호번=류정 기자

    입력 : 2013.03.02 08:31

    납품업체와 동반성장…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 ASML社 CFO 피터 베닝크
    "리스크·이익 공유한 상생모델이 해답이죠"
    "연구·개발 예산의 50%는 납품업체에 투자… 마진도 서로 공개"
    납품업체와 함께 연구·개발
    연구·개발비 확보할 수 있게
    부품 단가 최대한 높게 책정
    지분 투자해 리스크·이익 공유
    결혼과 같은 관계… '신뢰의 공식'
    서로의 높은 역량을 확인하고
    마진이 투명할수록 신뢰 커져
    자기 이익만 생각하면 약화
    반도체 장비업계 최고 매출
    부품 공급업체 이익 보장해
    마진율은 가장 낮지만
    영업이익률은 업계 최고

     

     

    작년 말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인텔, TSMC는 한 네덜란드 장비 업체의 지분을 앞다퉈 매입했다. 인텔이 15%, 두 번째로 TSMC가 5%를 사들이자 삼성도 뒤질세라 지분 3%를 매입했다. 이들은 이 장비 회사가 추진하는 최신 장비의 R&D(연구개발)에도 각기 수조원씩 투자했다. 세 회사의 총 투자 금액은 50억유로(약 7조원)에 달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회사가 반도체 업계의 '수퍼 갑(甲)'인 삼성·인텔 등에 투자를 먼저 제안했고, '수퍼 갑'들은 이 제안을 거의 무조건 수용했다는 점이다. '수퍼 갑' 위에 군림하는 세계 반도체 업계의 '수퍼 을(乙)'인 네덜란드 ASML 얘기다.

    '수퍼 갑'들이 꼼짝 못한 이유는 반도체 칩에 빛으로 정교한 회로도를 그리는 '리소그래피(lithography·노광·露光)' 장비 분야에서 ASML의 독보적인 기술력 때문이다. '반도체의 심장'으로 불리는 리소그래피는 첨단 반도체 제조공정의 핵심 장비로 ASML이 70%가 넘는 점유율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ASML 장비의 진보 없이는 삼성과 인텔 반도체의 진보도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다. ASML의 요구를 거부했다가는 아무리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라도 첨단 장비를 공급받지 못해 경쟁력을 잃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니, 삼성과 인텔 등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ASML은 리소그래피 장비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30%대) 기준으로 3위 업체였다. 이후 세계 시장 점유율은 33%(2005년)→65%(2010년)로 수직상승했다.

    트윈스캔 리소그래피(2000년)·이머전 리소그래피(2007년) 같은 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하고 최근에는 초(超)울트라 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으로 한층 정교한 회로도를 그리는 EUV 장비까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덕분이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까지 쥐락펴락하는 ASML의 성공 DNA는 뭘까? 지난달 중순 펠트호번(Veldhoven)시 ASML 본사에서 만난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56·사진) CFO(재무 총괄 책임자)의 대답은 놀랍게도 최근 한국 경제의 최대 화두인 '대·중소기업 간 상생(相生) 협력'과 일치했다.

    ASML의 피터 베닝크 CFO는“납품업체와의 신뢰는 상호 역량(competence)과 의존도(reliability), 투명성(transparency)이 높아질수록 단단해지고, 자기 이익(self-interest)만 챙길수록 더 약해진다”며“진정한 파트너로서 위험과 이익을 공유할 때 참된 혁신이 일어난다”고 했다. / 류정 기자
    "우리가 만드는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의 80% 이상을 아웃소싱(외부에 제작을 맡겨 납품받음)합니다. 하지만 협력업체들의 마진을 쥐어짜지 않고 그들이 최고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마진을 낼 수 있도록 최대한 돕지요. 즉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혁신'과 '가치'를 납품받은 것이 우리의 진짜 성공 비결입니다."

    14년째 회사의 2인자인 CFO로서 ASML의 '상생 혁신' 시스템과 '신뢰'의 경영철학을 구축한 주역인 그는 "우리는 부품을 제작하는 협력업체들과 사실상 '결혼'한다. 그래서 그들이 세계 최고 부품을 만들도록 헌신적으로 돕고 세부 정보까지 공유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ASML은 부품을 만드는 협력업체들의 지분을 사들여 개발에 따른 이익을 공유하는 동시에 R&D에도 함께 투자해 실패에 따른 리스크(risk)도 함께 부담한다.

    "우리는 서로 모든 역량과 마진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하고 '리스크'와 '이익'을 공유했어요. 그랬더니 공급업체들은 우리를 위해 최고 기술을 개발했고, 우리 회사 장비가 세계 최고 제품이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ASML이 인텔·삼성 등에 '지분 보유'와 'R&D 투자'를 동시에 요구한 것은 공급 업체들과 구축한 '상생 모델'을 발주 업체에도 확장한 셈이다. 협력업체의 혁신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위험과 이익을 공유하며 협업하는 모델'은 최근 동반성장 분야에서 속 시원한 해법을 못 찾고 있는 한국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ASML의 '열린 혁신'을 Weekly BIZ가 추적했다.

    Getty Images / 멀티비츠
    "우리는 공급업체(supplier)를 단순한 하도급업체로 여기지 않습니다. 진정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결혼을 한 것과 같은 매우 끈끈한 신뢰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함께 최고 기술을 만듭니다. 우리는 이 모델을 '2사(社) 1업(業)'(two companies, one business)이라고 부릅니다."

    네덜란드의 최대 공업 도시인 에인트호번의 남서쪽에 있는 소도시 펠트호번은 'ASML 타운'으로 불린다. ASML 본사와 공장 건물 10여개가 위치한 이곳에는 전체 직원 8000명 가운데 6000명이 일하고 있다.

    일대 전망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본사 16층 사무실에서 만난 피터 베닝크(Wennink) CFO는 넥타이를 풀어제친 채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ASML이 어떻게 반도체 장비업계의 최강이 될 수 있었냐고 첫 질문을 던지자, 그는 '정말 중요한 질문'이라며 이 질문에 답하는 데만 10분 이상을 할애했다. 답변 도중 일어나 칠판에 키워드를 적기도 했다.

    그는 ASML의 핵심 성공 요인을 '혁신을 아웃소싱 한다'(outsourcing of innovation)는 말로 정리했다. ASML의 주력 제품인 리소그라피 장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의 80%를 아웃소싱 한다는 이유에서다. ASML은 거대한 냉장고만 한 리소그라피 장비를 만들기 위해 500개가 넘는 공급업체를 통해 부품을 조달하며, ASML은 장비 디자인과 설계에 역량을 집중한다. 그렇다면 아웃소싱 한 부품들의 품질은 어떻게 관리하고, 최고 수준의 기술은 어떻게 개발해낼까?

    베닝크 CFO는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급자 네트워크(supplier network)를 구축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비즈니스에서 신뢰는 어마어마하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신뢰에 관한 매우 명확한 정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뒤 사무실 벽에 걸린 칠판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뢰의 공식'으로 '신뢰=역량×의존도×투명성÷자기 이익'이라는 내용이다. 신뢰는 상호 역량과 의존도, 솔직함이 강화될수록 높아지고, 반대로 자기 회사의 이익만 생각하면 신뢰는 거꾸로 약화된다는 의미이다.

    "배우자를 속여서는 안 되듯이 파트너를 속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마진과 역량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이익'과 '리스크'를 공유합니다."

    핵심 부품은 단 1개 업체와 장기 계약해 '함께 혁신'

    ―협력 업체와 '결혼한다'는 의미는?

    "우리는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key supplier)는 부품별로 단 1곳만 선정해 5~10년 장기 파트너 관계를 맺는다. 이들도 ASML에만 부품을 공급한다. 예를 들어 렌즈는 독일 기업인 칼자이스(Carl Zeiss)로부터만 공급받는다. 반도체 장비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정밀기계이다. 이런 산업에선 여러 납품 업체를 경쟁시켜 단가를 낮추는 것보다 한 업체라도 최고의 기술을 갖도록 돕는 게 더 중요하다."

    ―공급 업체들의 기술 개발을 어떤 방식으로 돕는가?

    "이들의 연구·개발(R&D)에 우리가 직접 투자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급 업체들과 '리스크'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매출의 10%를 R&D에 투자하는데 이중 최소 50%는 납품업체들에 돌아간다. 또 이들이 충분한 연구·개발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부품 단가를 최대한 높게 책정해 준다. 이 때문에 ASML의 마진율은 40%대로 리소그라피 장비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ASML은 어떤 이익을 얻나?

    "우리가 이 업체의 지분을 일부 사들이면 이익을 배당받을 수 있다. 만약 공급 업체가 사기업이어서 지분을 팔지 않는 경우라도 이익은 공유할 수 있다. 그들이 낸 이익으로 R&D 투자를 늘리면 우리가 부담해야 할 R&D 투자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공급 체계를 구축한 결과 ASML의 영업이익률은 20%대로 업계에서 가장 높다."

    ―공급 업체와의 '신뢰'가 '역량'과 '의존도', '투명성'에 비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역량은 곧 지식이다. 우리의 역량과 그들의 역량이 모두 최고일 때 신뢰가 쌓인다. 의존도는 네트워크다. 서로가 서로를 강하게 의지할 때 믿음이 쌓인다. 투명성은 마진을 서로 공개하는 것이다. 그들의 마진을 깎으려는 게 아니라 재투자를 위해 필요한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그들의 마진이 낮아져 R&D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지면 그 부담은 곧 우리가 져야 한다."

    ASML이 개발하고 있는 최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인 EUV(초울트라자외선) 리소그라피 시스템. 이 기술이 진보되면 그동안 한계점에 달했던‘무어의 법칙’이 실현돼 처리 속도가 훨씬 빠른 반도체 양산(量産)이 가능해진다. / ASML 제공
    본사는 설계·디자인, 고객 서비스에 집중… 대학·연구소와 '그물망 네트워크'

    ―한 개 납품 업체에 올인(all-in) 하는 것은 위험한 방식 같아 보이는데.

    "정밀 렌즈 같은 중요 부품에서 최고 기술을 가진 기업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QLTC라는 관리 체계를 통해 공급 업체의 생산 시스템과 기술 전반을 관리한다. 품질·물류·기술·비용(Quality·Logistics· Technology·Cost) 측면에서 최소 1년에 한 번 1~5등급으로 평가한다. 문제가 발견된 공급 업체는 ASML이 적극 개입해 개선한다."

    ―만약 기술 개발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 분야의 최고 기술을 보유한 최상의 파트너들을 고른다. 한 번 파트너가 되면 무조건 서로가 가진 역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뢰하고 함께 투자한다. 그럼에도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엔 대부분 누가 했어도 실현 불가능한 기술이다. 우리 파트너들이 못하면 아직은 어느 누구도 못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그런 믿음이 있고,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최고의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고, 필요할 경우 공급 업체를 인수하기도 한다."

    ―어떤 업체를 인수했나?

    "작년 말 미국 기업인 사이머(Cymer)를 인수했다. 사이머는 EUV 장비에 필수적인 광원(光源)을 공급하는 업체인데, 이 광원이 더 강해야 효율적인 공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이머가 혼자서는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SML이 자본을 투자하고 기술 인력과 시스템을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우리가 19억5000만유로(약 2조8000억원)를 투자해 인수했다."

    ―핵심 부품이 아닌 경우엔 공급 업체를 어떻게 선정하나?

    "우리는 대체로 한 곳의 전문 업체로부터 부품을 패키지로 구매한다. 만약 A부품 납품 업체가 부도가 났을 때 B부품 업체로부터 A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좀 더 보편적인 일반 부품은 2개 이상 업체와 거래 계약을 한다. 이 경우에도 QLTC 관리 체계는 똑같이 적용된다."

    ―부품의 80%를 아웃소싱 하면 ASML은 무엇에 집중하나?

    "장비 시스템을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고객사를 위해 서비스 하는데 우리의 역량을 집중한다. 또 500여개 공급업체뿐 아니라 에인트호번 공대 등 주요 대학, 연구 기관과 '거미줄' 같은 그물망 관계를 맺고 그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작동되도록 힘쓰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개별 업체의 합(合)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이런 '혁신의 아웃소싱' 모델로 ASML이 얻은 것이 있다면?

    "15년 전 경쟁업체보다 기술이 1년, 2년 뒤처져 있던 우리가 반대로 1년, 2년 앞선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경쟁사들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고, 2011년 반도체 장비업 전체에서 최고 매출(56억유로·약 8조원)을 올렸다. 우리는 현재 정밀기계와 광학·계측학 방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ASML은 1984년 필립스와 ASMI의 조인트 벤처로 시작해 분리됐는데 지금은 필립스보다 더 뛰어난 정밀기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업황 따라 근무시간 탄력 조정… 상사에게도 거침없는 '반대'

    ―현재 개발 중인 EUV 장비로 반도체 업계에서 한계점에 달했던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실현할 수 있다고 들었다.(※'무어의 법칙'은 마이크로칩 저장용량이 18개월마다 2배로 커진다는 법칙으로, 20나노 공정 이하에서 폐기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렇다. EUV(초울트라자외선) 장비는 반도체 회로도를 그리는 빛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여 그동안 한계에 다다랐던 '무어의 법칙'을 실현할 수 있는 차세대 장비로 꼽힌다. 지난 10여년간 무어의 법칙을 실현했던 것도 ASML의 기술이었다. 현재 개발 초기 단계로 한 대당 가격이 1억달러(약 1080억원)를 호가하는 EUV 장비 시제품이 주요 반도체 제조사에 몇 대 납품돼 있다. 사실상 무어의 법칙은 이미 실현된 상태지만,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 아직 더 개선이 필요한 단계다."

    ―사실상 반도체 기술 진보를 선도하고 있다. 우리 일상에는 어떤 영향을 주나?

    "반도체는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 들어간다. 우리는 기억용량이 더 크고 처리 속도가 더 빠른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핵심 장비를 만든다. 스마트폰 발달도 ASML의 장비 기술 진보가 있기에 가능했다. 미래에 반도체 기술이 더 진보한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영어로 말할 필요도 없을 수 있다. 서로 모국어로 얘기하면 스마트폰이 즉각 번역해줄 수도 있다."

    ―인텔·삼성 등에 지분과 R&D 투자를 요구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우리는 2002년 큰 위기를 겪었다. 반도체 경기 악화로 장비를 발주했던 기업들이 주문을 대량 취소했기 때문이다. 이미 대규모 R&D 투자를 단행해 장비를 개발했던 ASML은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고, ASML에 부품을 납품했던 업체들 역시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우리는 개발 단계부터 발주 업체와 리스크를 함께 공유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그리고 발주사들이 장비 개발로 이익을 얻고 싶다면 우리가 지분을 25% 이내에서 팔 테니 원하면 사라고 제안한 것이다. 인텔은 15%를 인수해 현재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삼성전자와 인텔, TSMC가 이런 투자로 얻게 되는 이득은 무엇인가?

    "장비를 우선 공급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술 개발 단계와 의사 결정 과정도 수월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미 몇 개월 만에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도 얻었다. 그러나 인텔이 지분이 많다고 장비를 더 우선 공급하거나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투자한 발주 업체들을 공평하게 대할 것이다. 다만 소유한 지분 크기에 따라 돌아가는 이익은 각기 다를 것이다."

    ―ASML이 직원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우리는 열려 있는 문화다. 이곳 본사 직원 6000여명이 총 73개 국적을 갖고 있을 만큼 다양성이 중시된다. 우리는 상사에게 반대 의견을 말하거나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직원들의 창의성과 열정을 독려하고 그들의 모든 두뇌를 결합해 최고의 시너지를 창출한다. 끊임 없는 '고객 중심'이야말로 우리의 갈 길임을 강조한다."

     

    ―유연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들었다.

    "반도체는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다. 우리는 업황이 좋을 땐 주 40시간보다 8시간 더 많은 48시간을 일하고, 업황이 침체돼 업무량이 적어지면 8시간 적은 32시간만 일한다. 월급은 어느 때나 똑같다. 불황에 꼭 필요하지 않은 노동력을 저축해 놓았다가 일이 몰릴 때 활용하는 방식이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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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첨단 산업으로 물갈이하려던 광둥성 성장률 추락에 "섬유·봉제업 남아 달라"

    입력 : 2013.03.01 11:50

    China Economy 현장 리포트

    "충전하려면 90분이나 기다려야 하고 1회 충전 거리도 300㎞에 불과해 한 번 주유에 500~600㎞ 달리는 휘발유 차보다 효율성이 너무 떨어져요."

    이달 27일 선전 시내에서 만난 전기택시 운전기사 양펑타오(楊風桃)는 "승차감이 좋고 조용하다"는 기자의 말에 한참 불평을 늘어놓았다. 중국 전기차 메이커 BYD(比亞迪)가 2011년 10월 내놓은 최신모델 'e6' 전기 택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왕즈밍(王志明·자영업)은 "작년 5월 전기 택시가 교통사고로 폭발 전소돼 운전자와 승객 3명이 모두 사망했는데 '탑승자들이 감전돼 탈출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BYD 주가가 폭락했다"고 했다.

    지난해 BYD의 전기차 판매량은 승용차 1700대, 버스 700대를 합해 총 2400대로 매월 200대 남짓했다. 이는 BYD 차량 총 판매량의 1% 미만의 수치이며 그 결과 BYD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92% 넘게 급감했다. 컨설팅업체 부즈앤컴퍼니의 존 줄린스(Jullens) 이사는 "전기차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많기 때문"이라며 "전기차는 10년 이상 내다보고 사업계획을 짜야 하는데 BYD는 성공을 너무 낙관했다"고 했다.

    BYD의 패퇴는 산업고도화와 구조개혁을 야심 차게 추진하는 중국 정부와 기업들의 노력이 현장에서 만만찮은 역풍에 부딪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전에 본사를 둔 세계 4위 휴대폰 제조기업(2011년)인 ZTE(中興通訊)는 지난해 최대 29억위안(5000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증시 상장 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 5년간 95조원의 부채를 끌어다 과잉투자해 사업을 벌인 게 부메랑이 됐다. ZTE는 지난해와 올해 3개의 자회사를 매각했다.

    이로 인해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騰籠換鳥)'는 구호를 내걸고 첨단 신성장산업 유치에 나섰던 광둥성의 경제성장률은 2007년 14.7%에서 2010년 12.2%, 지난해 8.2%로 추락했다. 중산대 린장(林江) 교수는 "요즘은 시 정부들이 섬유·봉제 등 노동집약기업들의 잔류를 요구하는 지경"이라고 했다.

    이런 현상은 중국 기업들이 원천기술 향상보다 외형 확장 경쟁에 치중한 요인이 크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난징자동차(南汽)는 2005년 영국 로버(Rover)의 모델·엔진 지식재산권을 샀으나, 개발능력 부족으로 신제품 개발은 해외에 위탁하고 있다. 작년 4월 중국 토종 기업들의 전체 승용차시장 점유율은 41%였지만, 기술이 필요한 세단시장 점유율은 27%에 그쳤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매년 설비가 갑절로 불어나던 태양광산업의 경우, 중소업체의 절반 정도가 생산을 중단했고 나머지 중 30%는 감산에 돌입했다.

    양뤼후이(楊瑞輝) 홍콩중문대 교수는 "첨단업종에서 중국은 많은 로열티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저품질로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연구·개발(R&D) 결과를 상업화하는 등 첨단기술 상용화 능력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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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법원, 삼성-애플 1심 배상액 4억5천만弗 삭감(종합2보)


    애플의아이패드(왼쪽 위), 아이폰4(왼쪽 아래)와 삼성전자의 갤럭시탭10.1(오른쪽 위), 갤럭시S2(오른쪽 아래)의 모습.

    배상액 6억弗로 낮아져…삭감 대상 기종 침해·배상 관련 새 재판 명령

    (샌프란시스코·서울=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권영전 기자 = 미국 법원이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소송에서 배심원이 평결한 배상액 10억5천만 달러 가운데 절반 정도인 4억5천50만달러를 삭감한다고 판결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 루시 고 판사는 1일(현지시간) 이 사건 1심 최종판결에서 추가 배상을 요구한 애플의 주장을 기각하고 이같이 판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배상액은 5억9천950억 달러(약 6천500억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고 판사는 그러나 삭감된 배상액과 관련된 삼성전자의 모바일 기기 14 개종의 특허침해 여부와 관련해서는 재판을 새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판사는 "법원은 배심원들의 배상평결 가운데 삭감된 부분과 관련해서는 용인할 수 없는 법률이론이 적용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삭감된 부분과 관련된 14개 기종의 배상액과 관련해 배심원들의 의도에 근거한 합리적인 배상액 계산이 불가능해 이들 기종과 관련해서는 새 재판을 열 것을 명령한다"고 말했다.

    애플의아이폰4S과 삼성전자의 갤럭시S3(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애플은 합의에 도달하지 않는 한 이번에 배상액이 삭감된 14개 기종의 특허 침해와 관련된 배상액 산정을 위한 새 재판을 열어야 한다.

    새로 재판을 해야 하는 만큼 재판결과에 따라 삭감액이 다시 변할 수 있지만 이번 판결은 고 판사가 지난번 배심원 평결 내용에 대해 일부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업계는 지적했다.

    따라서 삼성전자로서는 지난해 8월 평결에서 애플에 완패한 이후 이번에 배상액 삭감으로 패배를 일정부분 만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업계는 평가했다.

    그러나 이들 14개 기종에 대한 새 재판을 진행하면 배상액이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어 삼성전자는 새 재판 결과를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1심 판결 결과에 관계 없이 양쪽 모두 항소할 것으로 예측해온 만큼 1심 배상액이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법원이 배심원 평결에서 결정된 배상액 중 일부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재판을 결정한 것을 환영한다"며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에 대해서도 검토후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내놓는 등 항소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지난해 8월 미 법원의 배심원단은 1심 평결심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대부분이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디자인과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상품의 외관 혹은 느낌을 포괄하는 지적재산권 보호장치) 등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보고 10억5천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이는 당초 애플이 요구한 배상액 27억달러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미국 특허소송 배상규모 가운데 손꼽힐 정도로 큰 것이어서 미국 법원에서 애플이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픽> 삼성전자 - 애플 특허 소송 현황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 1일(현지시간) 미국 법원이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소송에서 배심원이 평결한 배상액 10억5천만 달러 가운데 절반 정도인 4억5천50만달러를 삭감한다고 판결했다. kmtoil@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삼성과 애플은 현재 한국을 포함한 세계 9개국(미국·영국·일본·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호주)에서 50여 건의 특허 관련 소송을 벌이고 있다.

    nadoo1@yna.co.kr
     

    <삼성전자 美소송 큰불은 껐지만…새 재판에 주목>(종합)


    애플의아이패드(왼쪽 위), 아이폰4(왼쪽 아래)와 삼성전자의 갤럭시탭10.1(오른쪽 위), 갤럭시S2(오른쪽 아래)의 모습.(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 특허 재판을 맡은 미국 법원이 1일(현지시간) 삼성전자의 배상액을 절반가량 삭감함에 따라 일단 삼성전자는 큰 불은 껐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8월 배심원 평결에서 삼성전자의 배상액은 10억5천만 달러(약 1조1천400억원)였으나 이날 법원 판결에서는 5억9천950만 달러(약 6천500억원)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미국 법원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태블릿PC 14종에 대해서 새 재판을 명령함에 따라 삼성전자의 배상액이 이보다 늘어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배상액이 확정된 제품은 패시네이트, 갤럭시 에이스, 갤럭시S, 갤럭시S 4G, 갤럭시S2, 갤럭시S2 T모바일, 갤럭시S2 에픽4G터치, 갤럭시S2 스카이로켓, 갤럭시S 쇼케이스, 갤럭시탭 10.1 와이파이, 갤럭시탭 10.1 4G LTE, 인터셉트, 메스머라이즈, 바이브런트 등 14종이다.

    새 재판 명령이 내려진 제품 14종은 갤럭시 프리베일, 젬, 인덜지, 인퓨즈 4G, 갤럭시S2 AT&T, 캡티베이트, 콘티늄, 드로이드 차지, 에픽 4G, 이그지빗 4G, 갤럭시탭, 넥서스S 4G, 리플레니시, 트랜스폼 등이다.

    이 가운데 갤럭시 프리베일에 대해서는 당초 평결에서 삼성전자 이익금의 40%인 약 5천800만 달러가 배상액으로 책정됐으나 법원은 이 배상액 산정이 잘못됐다고 판시했다.

    이 제품은 디자인 특허는 침해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특허만 침해한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익금의 40%가 아닌 특허 사용료의 50%를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미국법은 실용(기술) 특허에 대해서는 부당이익 환수를 적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젬, 인덜지, 인퓨즈 4G, 갤럭시S2 AT&T, 캡티베이트, 콘티늄, 드로이드 차지, 에픽4G 등 8개 제품은 바운스백('381) 특허와 다른 디자인 특허를 동시에 침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것들이다. 이그지빗 4G, 갤럭시탭, 넥서스S 4G, 리플레니시·트랜스폼 등 5개 제품은 부정확한 고지일에 기초해 배상액이 산정된 것들이다.

    이번 재판을 진행한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 새너제이 지원의 루시 고 판사는 이들 제품에 대해서는 법원이 정확한 배상액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새 재판이 필요하다고 명령했다.

    14종에 대해 새로운 재판을 진행하면 배상액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어 삼성전자로서는 새로운 재판 결과를 다시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

    한남성이 양사 태블릿PC 제품인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10.1을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AP=연합뉴스, 자료사진)

    AP통신은 새 재판에서 애플의 손해액을 다시 산정하면 배상금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번 판결의 배상액만 해도 더 늘어날 수 있다. 독일의 특허전문 블로그 포스페이턴트는 애플이 받을 배상액으로 5억9천950만 달러 외에도 미국 재무성 증권 금리에 따른 52주치의 판결 전 이자와 평결 이후 판결 때까지의 판매량에 따른 추가 배상액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새 재판 결과에 따른 배상액을 합하면 전체 배상액은 10억 달러 이상이 될 수도,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고 이 블로그는 추산했다.

    그러나 판결 결과와 관계없이 양쪽 모두 항소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이번 판결의 배상액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는 업계의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는 "법원이 배심원 평결에서 결정된 배상액 중 일부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재판을 결정한 것을 환영한다"며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에 대해서도 검토 후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내놓는 등 항소 의지를 내비쳤다.

    comma@yna.co.kr

    삼성 VS 애플 美1차전 마무리…애플의 삼성 견제는 계속

    미국에서 진행된 삼성전자(005930)와 애플 간의 특허 소송 1심 판결이 1일(현지시각) 마무리됐다. 이로써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 소송은 2라운드(항소심)에 돌입할 전망이다. 이와 별도로 내년부터 2차 특허 소송도 진행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이 날 작년 8월 배심원단이 인정했던 손해배상액을 절반으로 낮춘다고 밝혔다. 배심원단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태블릿PC 14종에 대한 배상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법리상 오류를 범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 판사는 “1차 평결에서 배심원단이 산정한 10억5000만달러의 배상금 중 절반가량인 4억5050만달러를 삭감(vacate)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삼성전자가 애플에 지불해야 할 배상액은 5억9890만달러(한화 6500억원)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다만 애플이 삼성으로부터 배상액을 당장 수령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과 애플이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 법원이 인정한 배상액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플 역시 항소심에서 배상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당초에 27억달러를 손해배상금으로 요구했다. 한화로 약 2조9000억원에 달하는 수준으로, 미국 내 특허소송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금액이 컸다. 손해배상액은 1심 판결에서 거의 33% 수준인 5억9890달러로 줄어든 상태다.

    특허 전문 블로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손해배상액은 항소심을 거치면서 더 줄어들거나 늘어날 수 있다.

    팀 쿡 애플 CEO
    한편 고 판사는 14개 기종에 대한 추가 재판을 별도로 진행할 것을 권고했다. 추가 재판은 동일한 법원에서 열리지만 1심과는 다른 배심원단을 꾸리게 되기 때문에 1심과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배심원단이 결정한 배상액 중 일부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재판을 권고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추가 재판은 삼성과 애플의 항소심이 끝난 뒤에 열릴 전망이다. 고 판사는 이날 “항소 절차를 통해 1차 소송의 모든 법적 다툼이 해결되고 나서 추가 재판을 열기를 권고한다”고 말했다.

    이번 1차 소송의 마무리와 함께 삼성과 같은 한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는 비난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북미지역에서 스마트폰·TV 점유율을 늘려가면서 미국의 견제 대상이 되고 있다. 2009년 도요타의 리콜 사태는 미국이 자국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자동차 업체를 공격한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한국 자동차도 현대·기아차가 해외시장 점유율을 늘리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의 보호무역주의를 자극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편 미국 외 해외 법원은 삼성과 애플 간의 유사한 특허 소송에서 미국과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법원은 삼성과 애플이 모두 양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고, 영국에서는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사실이 없다고 판결했다. 심지어 영국 법원은 애플이 영국 내 주요 언론 매체에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베끼지 않았다’는 내용의 광고를 싣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플이 삼성을 비롯한 수많은 업체들과 특허전을 벌이는 것 자체가 ‘전략적 실패’라고 본다”며 “애플이 신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고 특허 소송전에 자원과 힘을 낭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정현 기자 jen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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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쿡, 입만 열면 애플에 무슨 일이...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을 즐기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습관이 애플 주가에 약영향을 끼치는 모습이다.

    허핑턴포스트는 최근 팀 쿡 CEO의 공식 발언과 주가 하락의 상관관계를 집계해 보도했다. 주주총회를 비롯, 지난해 9월 이후 열린 총 6회의 공식 석상에서 팀 쿡이 발언한 다음날은 어김없이 애플의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가장 최근 주가가 하락한 것은 지난달 27일 열린 애플 연례 주주총회 직후다. 이날 애플의 주가는 448달러43센트로 시작했으나 종가는 444달러57센트로 떨어졌다.

    주가 하락은 애플이 새 카테고리를 준비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한 다음에 있은 일이라 더욱 주목된다. 쿡 CEO는 이날 애플이 깜짝 놀랄만한 새 카테고리의 제품을 출시 중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설명은 피했으나 업계는 이 제품이 스마트 시계, 또는 완제품TV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팀 쿡 애플 CEO
    보름 앞선 12일엔 골드만삭스테크놀로지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애플 주가는 479달러51센트로 시작했지만, 12달러 떨어진 467달러90센트로 장이 마감했다.

    1월 24일은 애플이 회계연도 기준 2013년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연 날이다. 아이폰 판매고가 사상최대를 기록했음에도 분기 실적은 10년만에 감소했다.

    이 소식에 애플 주가는 451달러69센트로 시작했다가 439달러88센트로 급락했다. 25일엔 전날보다 12.35% 떨어진 450.50달러로 마감하며 주가 폭락의 쓴 맛을 봐야 했다.

    지난해 12월 7일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가 팀 쿡의 인터뷰를 커버스토리로 내보낸 날도 마찬가지. 같은 날 저녁 팀쿡은 미국 TV 프로그램 록센터에 진행자인 브라이언 윌리엄스와 함께 나타났다. 이날 애플 주가는 553달러40센트로 시작했지만, 533달러25센트로 장을 마감했다.

    주가 추락 전조는 아이패드 미니 발표와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부터 나타났다. 애플의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이 열린 10월 25일, 애플 주가는 620달러로 시작했다가 609달러54센트로 폭락한 채 장을 마쳤다.

    아이패드미니가 발표됐던 10월 23일에도 애플 주가는 631달러36센트에서 613달러36센트로 하락했다.

    팀 쿡이 공개석상에 나타났지만, 다음날 애플 주가가 상승했던 마지막은 9월이었다. 아이폰5가 출시된 날이다. 이때 애플 주가는 666달러85센트에서 669달러79센트로 올랐다.

    `52주 신저가` 애플, 임원들에 회사주식 떠안긴다

    - 애플, `아이폰` 판매둔화 우려에 2%이상 급락
    - 쿡 CEO에 연봉 10배 주식보유 권고..임원들도 3~5배씩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대표 상품인 ‘아이폰’의 판매 둔화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에 애플 주가가 52주 신저가로 추락했다. 이 때문에 애플은 임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더 떠안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1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전일대비 2% 이상 하락하며 431.88달러까지 주저 앉았다. 이로 인해 애플 주가는 52주 신저가를 경신하는 굴욕을 맛봤다. 애플 주가는 지난해 9월21일 사상 최고가인 705.07달러를 기록한 이후 불과 5개월여만에 39%나 추락하고 있다.

    이날 주가 하락의 이유는 크레디트스위스(CS)가 제기한 애플 아이폰 판매 둔화 우려 때문이었다.

    컬바인더 가차 CS 애널리스트는 ‘아이폰’ 판매량이 예상보다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애플의 2013회계연도 주당 순이익 전망치를 종전 47.90달러에서 44.92달러로 6% 이상 하향 조정했다.

    그는 올해 ‘아이폰’ 총 판매량을 1억5800만대로 예상하며 당초 전망치보다 11%나 낮췄다. 삼성전자(005930)의 차세대 주력폰이 될 ‘갤럭시S4’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여름쯤 있을 차세대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구매를 늦추는 고객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차세대 아이폰 덕에 아이폰 판매량은 지난해보다는 16%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애플에 대한 우려와 그에 따른 주가 하락이 가팔라지는 가운데 애플이 고위 임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더 보유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이날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지난달 6일부터 시행한 임원들의 자사주 보유 관련 조항을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회사측은 팀 쿡 최고경영자(CEO)에게 자신의 연봉의 10배에 해당하는 주식 보유를 권고했다.

    그 외 주요 고위 이사진들도 연봉의 3배가 되는 주식을 보유해야 하고 비등기 이사들은 5배의 주식을 보유하도록 요구받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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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지멘스서 분사한 치과장비 업체 폭발 성장 중 한국도 계열사 분할로 히든 챔피언 키울 수 있어

  • 이신영 기자
     
  • 입력 : 2013.03.01 11:55

    '히든 챔피언' 저자 헤르만 지몬

    조선일보DB
    "젊은이들의 창업률이 출산율만큼 저조해 한국 경제가 늙어가고 있다. 각 산업 분야에서 훌륭한 '히든 챔피언'들을 발굴해야 한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헤르만 지몬(Simon·사진·67) 지몬-쿠퍼&파트너스 회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경제가 최근 15년간 평균 2% 성장했지만 강소 기업들은 10% 성장해 독일 기업 총매출액의 40%, 고용의 70%를 각각 맡고 있다"고 했다. '히든 챔피언'이란 세계 시장점유율 1~3위(또는 소속 대륙 점유율 1위)로 연 매출 40억달러 이하 강소 기업을 일컫는데, 지몬 회장이 1992년 만들었다.

    ―히든 챔피언이 지금 왜 중요한가?

    "독일의 1인당 수출액은 1만8863달러(2011년)로 프랑스(8784달러), 미국(4859달러) 등을 압도한다. 이렇게 독일의 경제적 실속이 최고인 것은 인구 1인당 히든 챔피언이 16개로 미국(1.2개)·일본(1.7)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이 왜 강력한가?

    "중소기업들의 주거래 은행인 하우스방크(Hausbank)의 역할이 크다. 이들은 경영 상태와 회사 동향을 100% 공유하며 같이 성장하는데, 기업에 대출금리·수수료 인하 등 혜택을 준다. 세계 제조업 현장에 꼭 필요한 자재·부품 등 '필수불가결한' 제품을 만드는 점도 한몫한다."

    ―한국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미국 벤처 출신 기업인을 지명했는데.

    "리더의 벤처 경험은 히든 챔피언을 키우는 최고의 자질이다. 한국은 세 가지 과제를 실천해야 한다. 먼저 '국제적인 지식 쌓기'이다. 일례로 매년 40만명의 유럽 학생들은 국제교환학생 프로그램 '에라무스'를 이용한다. 민간 기업·대학·정부 합동의 연구개발도 중요하다. 60개 연구소(직원 2만명)를 거느린 독일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Fraunhofer)는 히든 챔피언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여기에 철저한 직업 훈련도 수반돼야 한다."

    ―대·중소기업의 상생이 핵심 과제인데.

    "지멘스는 과거 계열사인 치과 장비 업체 시로나(Sirona)를 떼어 냈는데 2011년 매출액(9억1000만달러)이 전년 대비 18% 늘어나는 등 폭발 성장 중이다. 이처럼 한국 재벌들도 계열사 분할을 하면 히든 챔피언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인 만큼 제조업이 고품질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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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E스포츠 게임 열기 축구월드컵 못잖아 프로 리그는 물론 국가대항전도 열려

  • 라스베이거스(미국)=강동철 기자
  • 입력 : 2013.03.01 14:10

     
    지난해 12월 라스베이거스 코스모폴리탄호텔 4층 컨벤션센터는 4000명이 넘는 인파로 북적였다. 이날 무대에서 세계 최대 스타크래프트2 프로 리그인 'GSL(Global Starcraft2 League)' 결승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 각지는 물론 캐나다·브라질·프랑스·중국 등 전 세계에서 150달러(약 16만원)의 입장료와 호텔비·항공비까지 부담해가며 '게임 대결'을 구경하러 왔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기가 치솟는 'E스포츠'는 컴퓨터 게임으로 스포츠처럼 시합하고 승패를 가리는 것이다. 국가 대항전도 있고 프로 리그도 열린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보듯 컴퓨터 게임을 관전한다. 2012년 E스포츠 대회의 총상금은 약 980만달러(약 100억원). 블리자드가 후원하는 GSL은 지난해 총상금이 200만달러(약 21억7000만원)였고, 삼성이 후원하는 E스포츠 대회인 WCG(World Cyber Games)는 상금 50만달러(약 5억4000만원) 규모로 진행됐다.

    게임 대회와 대회 중계를 위한 방송 채널도 생겼다. 예전에는 게임 폐인(廢人)으로 손가락질받던 이들이 'E스포츠'의 등장으로 프로 게이머가 돼 엄청난 팬들을 몰고 다닌다. 홍보·마케팅 목적에서 게임 대회를 후원하거나 직접 프로 게임단을 창단해 운영하는 대기업도 상당수이다.

    인터넷상의 프로 게이머 팬카페는 물론 미국을 중심으로 게임 펍(Game Pub·E스포츠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술집)까지 생겨 게임을 즐기는 인구도 크게 늘었다. 이들은 직접 게임을 하지 않지만 프로 게이머들의 팬이 돼 게임을 즐긴다. 모하임 대표는 "E스포츠를 통해 게임 저변이 확대되고 새로운 사업 영역이 창출된다"며 "이를 잘 활용해야 게임 업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는 'E스포츠'의 종주국이다. 한국에서 E스포츠가 처음 시작됐고, 현재 E스포츠의 최강국 역시 한국이다. 블리자드가 E스포츠 육성에 나선 것 역시 한국의 E스포츠 대회를 본 뒤부터였다. 모하임 대표가 "한국은 E스포츠의 수도(Capital)"라고 할 정도이다. 한국에서 1998년 스타크래프트 출시 후 온게임넷 같은 게임 중계 채널이 생겼고, 스타크래프트 리그도 가장 먼저 출범했다. 인터넷 생중계는 한국 기업인 그래텍의 '곰TV'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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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지구촌 소비 이끄는 안티에이징… 젊음 지키는 시장 年 300조원

  • 강찬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MSN 메신저

     

  • 입력 : 2013.03.01 14:11

    국내서도 연 10%씩 성장
    화장품·미용 서비스가 주도
    작년 시장규모 12兆 육박
    필립스 등 전자업체도 나서
    가정용 건강 관리 제품 봇물
    생활 습관 컨설팅해 주기도
    선진국선 '종합 웰니스' 열풍
    리조트서 영양·운동 요법 등
    180여 맞춤 프로그램 제공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안티에이징(anti-aging)'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구 고령화가 급진전하고 외모 중시 경향이 심화하면서 안티에이징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다 노령층의 소득 증가와 삶의 질 개선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세해 세계 안티에이징 시장 규모는 300조원대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도 2012년에 11조 9000억원 규모 시장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10.1%씩 성장했다.

    안티에이징 프로그램으로 미국 최대 휴양 리조트로 성장한 캐니언 랜치(Canyon Ranch)를 찾은 숙박객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캐니언 랜치는 숙박객들에게 의료·영양·운동요법·피트니스·피부관리 등 180여종의 맞춤형 전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 캐니언 랜치 웹사이트
    1인당 GDP와 비례해 시장 활성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컨설팅그룹인 하바스 월드와이드(Havas Worldwide)가 지난해 19개국 8000여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여성의 66%, 남성의 59%가 '사회가 점점 젊음에 집착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상품 개선 관련 의견을 적극 표출하면서 최신 유행에 민감한 '프로슈머(prosumer)'들의 긍정 응답률은 69%에 달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2월 국내 최고경영자(CEO) 3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5% 정도가 "안티에이징 트렌드가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화장품과 의료, 이·미용 서비스 등 자신을 관리하고 꾸미는 데 투자하는 '퍼스널케어' 비용은 1인당 GDP와 정비례하는 성향을 보여, 향후 경제가 성장할수록 안티에이징 산업도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항피부 노화 관련 각종 기기 속출

    가장 주목받는 안티에이징 산업 분야는 '항(抗)피부 노화'이다. 2002년 이후 10년간 출원된 안티에이징 특허를 분석해보면, 국가별로 최소 47%에서 최대 84%가 피부 노화 관련이다. 일본의 경우, DHC·오르비스 등 화장품 기업들이 '히알우론산' '콜라겐' 등 피부 구성 성분을 입으로 섭취해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 '먹는 화장품' 제품까지 내놓는 단계로 진전했다.

    글로벌 기업 가운데는 네덜란드 필립스(Philips)가 적극적이다. 필립스는 개인 생체 신호를 측정하는 초소형 기기를 판매한 후, 이 기기로 읽어들인 신체 상태·행동 양식을 바탕으로 생활 습관을 컨설팅하는 '다이렉트 라이프(Direct Life)' 프로그램을 149달러(약 16만원)의 연회비를 받고 판매하고 있다.

    2011년에는 영국·네덜란드 등 유럽 시장에 가정용 레이저 피부 노화 방지 기기인 '르오라(R�[Aura)'를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다. 파나소닉·샤프 등 일본 전자기업들은 헤어드라이어·구강 제트 워셔 등 노화로 기능 약화가 발생하는 신체 부위를 집중관리하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선진국에선 '종합 웰니스' 서비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의료·미용·휴양 등을 합친 '웰니스(wellness)' 비즈니스가 안티에이징 산업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웰니스는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행복을 동시에 지향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웰니스 비즈니스는 특정 노화 현상에 각각 대응하기보다는, 의료진에 의한 진단·운동 요법·식생활·영양 컨설팅 등을 통합 관리한다.

    종합 안티에이징 서비스 제공을 표방하는 미국 최대 휴양 리조트인 '캐니언 랜치(Canyon Ranch)'의 경우, 의사·간호사·스포츠생리학자·영양 전문가·피부관리사가 상주해 고객을 관리한다. '캐니언 랜치'는 운영 초기에는 비만관리·체중감소 같은 프로그램만 갖추었으나 이후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프로그램을 확대해 지금은 의료·영양·운동요법·피트니스·피부관리 등 180여종의 맞춤형 전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장수(長壽) 유전자인 '시르투인(Sirtuin)'을 활성화하는 의약품을 연구하고 있다. 당뇨·심혈관질환·뇌질환 등을 예방·치료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시르투인 활성화 약품이 상용화될 경우, 안티에이징 시장의 급팽창이 기대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르투인 활성화가 성사되면 노인성 질환의 진행 속도가 크게 늦춰지고 획기적인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하다.

    미국 화이자(Pfizer)는 안티에이징 시장 본격 공략을 위해 2008년 '재생 의학(regenerative medicine)' 관련 연구부서를 별도로 만들어 줄기세포를 중심으로 노화 등을 통해 손상된 생체 기능을 회복하는 방법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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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화성탐사 로봇용 모터도 개발… 1만5000개 글로벌 기업이 고객

  • 자흐젤른(스위스)=이신영 기자
  • 입력 : 2013.03.01 14:06

    Small Champion 세계 1위 초소형 모터 기업 스위스 '맥슨모터'
    고품질·고효율 명품 모터
    직경 4~90㎜에 500w파워
    영하120도~영상 200도 견뎌
    경쟁사보다 수십 배 비싸도
    세계시장 점유율 40% 차지
    금융 위기 때도 R&D 25% 늘려
    "다양한 연령·시각 융합해야 혁신의 질 높일 수 있어"
    고교 졸업생과 석·박사 인재
    R&D 인력 같은 비중 선발

    맥슨모터 CEO 오이겐 엘미거. / 자흐젤른=이신영 기자
    200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8억2000만달러를 들여 화성에 쏘아 올린 무게 170㎏ 쌍둥이 탐사로봇인 스피릿(Spirit)과 오퍼튜니티(Opportunity). 화성에서 물과 생명체의 존재를 입증한 사진과 자료를 발굴해 세계를 놀라게 한 이 탐사로봇들의 당초 기대 수명은 90일이었다. 하지만 스피릿은 최초 작동 후 7년 4개월 만인 2010년 1월에 동력을 잃었고, 오퍼튜니티는 아직 탐사 중이다. 이들이 발군의 생명력을 발휘하는 비밀은 각 로봇에 장착된 초소형 모터 40개에 있다. 맥슨모터 제품의 직경은 4㎜~90㎜(무게 2.3~300g)에 불과하지만, 최대 500w의 힘을 내며 섭씨 영하 120도에서 영상 200도까지 견딘다.

    이 초소형 모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세계 1위 강소 기업 맥슨모터(Maxon Motor·임직원 총 2023명)는 NASA가 만든 로봇 모터의 99%를 공급하고 있다. 40개국에 진출해 NASA·보잉·삼성·지멘스·BMW 등 1만5000개 대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40%의 세계 시장점유율로 스위스 상공회의소의 '최고 혁신상'을 두 차례(1996·2010년) 받은 '혁신 아이콘'인 맥슨모터의 차별화 포인트는 3가지이다.

    ◇고정밀·고효율 '명품'을 소량 생산

    취리히에서 남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인구 5000여명의 작은 마을인 자흐젤른. 눈으로 뒤덮여 적막한 이 마을에 있는 맥슨모터 본사와 공장에는 직원 1000여명이 초소형 모터의 베어링·자석 부품 조립에 몰두하고 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수명이 반영구적인 BLCD모터와 2만~3만 시간만 사용이 가능한 DC모터 두 가지인데, 경량(輕量)이면서도 강력한 힘을 요구하는 산업용 로봇·자동차·선박·비행기 등 제품에 쓰인다. 500w짜리 초소형 모터는 경차 한 대를 끌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맥슨모터의 오이겐 엘미거(Elmiger· 50) CEO는 "우리 초소형 모터는 개당 최대 200만~300만원으로 경쟁자들보다 수십 배 비싸다"고 했다.

    "초소형 모터의 효율(전기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변환하는 비율)은 80~90%로, 업계 평균인 40~50%보다 2배 높은 고정밀·고효율의 '명품'입니다. 저희는 '명품 기업'의 원칙을 고수합니다. 다른 경쟁자들이 연간 5000만개 모터를 싼값에 팔 때, 그 10분의 1인 500만개를 넘기지 않고 재고율을 최소화합니다. 또 소량 주문생산 비중이 80%입니다."

    맥슨모터는 스위스프랑의 가치 상승으로 생산 기지를 최근 해외로 옮기는 여타 스위스 기업들과 달리, 최고 제품은 최고 기술력을 가진 현지에서 만든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엘미거는 "기계 가공이 강한 독일 섹사우 지역과 헝가리 베스프렘의 공장에서 감속기 등 부품을 생산하고 스위스 본사에서 모터 완제품을 조립하는 전통을 수십년째 이어가고 있다"며 "2008년 말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 R&D투자를 거꾸로 25% 정도 늘렸고 현재 총 매출의 80%를 수출로 번다"고 했다.

    ◇중소기업이 먼저 시장을 선점·창출

    1961년 창립한 맥슨모터는 당초 면도기 전문 기업 브라운사의 면도날을 만드는 회사였으나, 1967년 브라운이 미국 질레트사에 팔리는 바람에 파산 위기에 몰렸다.

    엘미거 CEO는 "초소형 모터 기술의 원형은 지멘스가 개발했으나 모터가 너무 커 상용화를 못했는데, 이 기술을 재개발해 비디오나 녹음기 같은 제품에 적용하자는 역발상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경쟁 기업과 달리 모터의 중심부를 다양한 굵기의 구리선으로 300차례 이상 휘감아 에너지를 내는 권선(winding) 기술로 모터를 개발해 69년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맥슨모터는 혁신 기술을 보유해도 대기업 고객의 주문을 기다리는 데 익숙한 편이었다. 그러다가 NASA가 1990년대 초 "영상과 영하에서도 쓸 수 있는 모터를 생산해달라"고 요구한 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맥슨모터는 수년 연구 끝에 화성 탐사로봇용 모터를 개발해 '대박'을 쳤고, 이때부터 매출의 8%와 8.5%를 마케팅과 연구개발(R&D)에 각각 투자하며 공격적인 '시장 선점'에 나섰다.

    "고객 제품에 실제 초소형 모터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제품 예시와 모터를 결합해 디자인한 시제품 300여개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문신 시술 기기 등 상식을 깨는 틈새시장을 개척했습니다."

    2007년부터 의료용 의족(義足)과 수술 지원 로봇 분야를 선점해 현재 총 매출의 40%를 의료 시장에서 창출하고 있으며, 똑같은 동력을 내더라도 크기와 소재가 다른 모터를 3만 가지 만들어 업종별로 '맞춤형 영업'을 한다.

    2011년과 지난해 2년 연속으로 유럽 HR컨설팅기관인‘트렌던스’(TRENDENCE)에서‘스위스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대 IT기업’으로 구글₩애플 등 과 함께 선정된 맥슨모터는 올 1월 충남 세종시에 R&D센터 겸 생산 공장을 열어 아시아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여성 근로자들이 본사 공장에서 초소형 모터 조립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자흐젤른=이신영 기자
    ◇직원의 50%는 여성… MIT 등 세계 최고 대학과 공동 연구

    엘미거 CEO는 "우리가 만드는 모터의 50%는 수작업으로 생산한다"며 "섬세한 여성의 손길은 자동화된 제조라인으로 불가능한 최고의 기술력으로 우리만의 강점"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여성이 전체 인력의 50%를 차지한다. 여성들을 위해 40년 전부터 사내 보육원 운영·무료 헬스클럽·교통비 전액 지원 같은 유럽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한다.

    R&D에 대한 접근도 남다르다. 엘림거는 "매년 신규 R&D인력을 10명 뽑는데, 고교 졸업생부터 석·박사 학위자까지 똑같은 비중으로 선발해 3개월 이상 엔지니어 교육을 한다"며 "다양한 연령과 시각의 융합이 혁신의 질을 높인다"고 했다. R&D 인원은 200여명이다. 유럽우주기구·MIT 등 명문대와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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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송병락 교수의 '승자병법'] 안 싸우고 이기는 全, 싸워 이기는 破… 두 지혜를 합쳐라

  •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입력 : 2013.03.01 14:02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동양과 서양의 전쟁은 어떻게 다르며 중국인과 미국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를 알려면 '손자병법'과 '전쟁론'을 알아야 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이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이 두 병서(兵書)를 가장 잘 알아야 할 나라는 한국일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한국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6060자에 이르는 '손자병법'의 핵심은 '전(全)'이란 한 글자이다. '全'의 반대는 '파(破)', 곧 파괴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전(全)승'을 가장 이상적 승리로 내세우고 있는 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不戰而屈人之兵), 즉 아군도 적군도 파괴하지 않고 전쟁 비용도 최소로 하는 것을 지향한다. '전쟁론'의 골자는 "전쟁은 정치를 다른 수단으로 계속하는 것"인데, 정치적 목적을 가장 빨리 달성할 수 있도록 적을 파괴해 이기는 것을 이상적 승리로 여긴다.

    '전쟁론'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방대한 분량의 미완성 초고를 마친 상태에서 콜레라로 사망하자 그의 부인이 펴낸 책인데 매우 난해하다. "전쟁은 지옥이지만 '전쟁론'을 읽는 것도 지옥"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다. 그래서 1991년에야 두 병서를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한 연구가 처음 나왔는데, 미국 육군전쟁대학이 전략 교재로 내놓은 '손자와 클라우제비츠'이다. 두 병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먼저, 승리의 방법에서 적의 중심(重心·center of gravity)에 대한 파괴가 가장 중요한데, 손자는 중심을 적의 의지와 동맹 시스템 등으로 보고 심리전이나 속임수 등 비군사적 방법을 중시한다. 반면 클라우제비츠는 중심을 적의 군대로 보고 결정적 시점에 최대한의 군사력으로 파괴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는 병력의 사용이다. 19세기 프랑스는 태국 동쪽의 베트남을, 영국은 서쪽의 미얀마를 점령했다. 당시 태국 왕 몽꿋(Mongkut)은 프랑스와 영국을 설득해 태국을 완충 지역으로 만들어 식민 통치를 피했다. 태국은 싸우지 않고도 자기의 목적을 잘 달성했고, 베트남은 그러질 못했기에 대규모 병력을 사용해서 프랑스와 전쟁을 치른 후에야 식민 통치에서 벗어났다. 그런 측면에서 태국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병법 측면에서 고수(高手)였다.

    반대로 클라우제비츠는 국가는 가능한 한 처음부터 최대한의 군사력을 동원하고, 군은 최대한의 전투력을 사용해 적을 먼저 무력화하며 의지력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후일에 필요한 병력, 전쟁 기간 및 비용을 절감시켜 가장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총력을 다해 싸우는 이른바 총력전(절대전쟁)이다.

    셋째로 전쟁에 대한 시각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 지휘관이 가장 중시할 것은 역시 군사적 수단이라고 말한다. 반면, 손자는 전쟁에는 심리·외교군사적 수단, 정보, 속임수, 지형, 기후 등 수많은 비군사적 요인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헨리 키신저는 이 점이 손자의 가장 중요한 통찰력이라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손자의 단점은 외교와 정보·속임수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적과 일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이를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클라우제비츠의 단점은 병력 희생이 과다하고 비군사적 수단을 경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두 병서의 차이가 큰 것은 두 사람의 지위 영향도 있다.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가 초급장교에서 소장이 될 때까지 많은 전투 중심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손자병법'은 손무(孫武)가 국가 최고 지휘관의 입장에서 수많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거기에 더해 실전 경험이 많은 위나라 왕 조조(曹操)에 의해 체계적으로 다듬어지고 재해석됐다. 즉 클라우제비츠는 전쟁 지휘관, 손자는 국가전략가의 차원에서 쓴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병서는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있다.

    다른 하나는 문화의 차이이다. '손자병법'전문가인 리링(李零) 북경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손자는 예(禮)를 앞세우고 전쟁을 뒤로 하여 상대가 복종하지 않을 때 비로소 전쟁을 하되 점차 단계를 높이는 반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앞세우고 예를 뒤로 하여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뒤에야 비로소 대화를 하고 점차 단계를 낮춘다."

    지금은 환율전쟁, 무역전쟁, 사이버전쟁 등 각종 전쟁의 시대이다. 한국의 개인과 기업, 정부 모두 이 두 병서를 잘 알고 강점을 융합해 앞서갈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한다면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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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올봄 남성을 위한 3가지 팁 ①깔끔 피부 ②강렬한 색상 ③재킷·점퍼 결합한 블루종

  • 황의건 패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3.03.01 14:10

    1% 패션 & 스타일

    1990년대 초,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를 부활시킨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영화감독인 톰 포드(Ford)는 한 인터뷰에서 '남자들에게 필요한 15가지'를 꼽았다. 패션 아이템을 넘어 '스타일'이라는 가치까지 담고 있는 15가지는 유머감각, 매일 읽을 신문, 능숙하게 하는 스포츠, 족집게, 자신만을 표현하는 시그니처 향수, 잘 재단된 양복 한 벌, 클래식 검정 레이스 업 구두와 블레이저 재킷, 진한 색상의 데님 팬츠, 여러 벌의 흰색 면 셔츠, 새 양말과 속옷, 클래식한 턱시도 한 벌, 메탈 밴드 시계, 잘 어울리는 선글라스, 완벽한 치아 등이다.

    보통 한국 남성들이 봄을 맞아 기품 있는 '젠틀맨'으로 거듭나려면 톰 포드의 충고와 더불어 다음 세 가지 팁을 새겨두면 좋을 것이다.

    첫째는 '스마트한 피부', 즉 얼굴의 피부 보습 및 정리이다. 요즘은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피부가 좋지 못하면 자신감을 갖기 힘들다. 특히 빛이 많고 바람이 심하며 황사가 심한 봄 날씨에는 겨울보다 방심하기 쉬워 더 각별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최근 'SK II 맨'에 이어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비롯한 해외 화장품 브랜드와 '라네즈 옴므' 같은 국내 화장품 브랜드들도 앞다투어 남성 전용 기초 라인을 별도로 론칭했다. 봄철에는 각질 제거를 위한 똑똑한 클린저 사용과 반대로 그만큼 채워주는 수분 보습이 강화된 로션이 필수다. 또 운전 중 자외선 차단제를 차에서 그때그때 바르는 것도 피부 노화를 막는 방법이다.

    토즈 더블 스트라이프 백 / 토즈 제공
    둘째 키워드는 '비비드(vivid) 색상'이다. 이는 눈이 시릴 정도로 청량한 색채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이 강세를 보인다는 통계대로, 올봄에는 놀랄 만큼 화려하고 생기 있는 컬러들이 대세를 이룰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렌지'와 '블루'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무채색 아이템에 익숙한 한국 남성들에게 비비드 색상은 고민거리이다.

    방법은 옷을 화려한 색상으로 입는 것보다는 운동화나 백 혹은 작은 소품 등에 비비드한 매치를 포인트로 줘 트렌드는 공유하면서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화려한 컬러의 포켓 스퀘어를 베이직한 수트 포켓에 접어 넣거나, '토즈'의 파란색 가방을 손에 드는 것만으로도 산뜻하고 경쾌한 봄의 신사로 거듭날 수 있다.

    마지막 키워드는 '레트로 블루종'이다. 블루종이란 예전엔 사냥꾼들이 입었던 옷으로 재킷과 점퍼가 결합한 윗옷이 변형된 아이템인데 진부한 공무원의 점퍼 같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블루종은 영원한 청춘이며 남성들의 로망인 '제임스 딘'의 상징이다. 블루종은 최근 레트로 열풍을 타고 남성의 필수 스타일 코드로 꼽힌다. 점퍼 스타일로 상의가 짧고 허리 부분에서 벨트나 고무로 조여 등이 불룩해지는 게 특징이다. 슈트 차림에 부드럽고 화사한 변화를 주고 싶다면, 고급스러운 스웨이드 블루종을 권한다. '스마트 피부', '비비드 색상', '레트로 블루종'. 올봄에는 이 스타일 키워드 3개를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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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초 백’ 대신 ‘셀렙 백’ … 지각변동 들어간 명품 시장 3.0

    '합리적 소비'에 직격탄 맞은 명품 시장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 제312호 | 201303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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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앞둔 직장인 임모(32ㆍ여)씨는 예물로 프랑스 브랜드 생로랑(옛 이브생로랑)의 핸드백을 점찍어 놨다. Y자 모양의 버클 외엔 아무 장식도 없는 단순한 디자인이다. “샤넬은 비싸기도 하지만 너무 흔해요. 루이뷔통은 더더욱 흔하고요.” 그는 지난해엔 해외 구매대행을 통해 지방시 핸드백을 구입했다. 역시 가까이서 봐야 알 수 있는 작은 글씨의 로고만 박혀 있다.
    “정말 패션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명품 브랜드를 찾아요. 편집숍이나 온라인에서요. 대부분은 알아보지도 못해요. 멀리서도 딱 알아보는 가방을 들면 뭐랄까, ‘아, 자랑하려고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좀 촌스럽게 보인다는 느낌이랄까.”

    #신세계백화점의 고가 의류 편집매장 ‘마이분’에선 올 초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해 판매 실적을 집계한 결과 알렉산더 매퀸, 발렌시아가 같은 쟁쟁한 수입 브랜드를 제치고 국산 의류 브랜드 ‘스펙테이터’가 의류 매출 3위에 오른 것. 이뿐이 아니다. 국산 브랜드 ‘쟈뎅 드 슈에뜨’는 지난해 ‘럭키 슈에뜨’라는 하위 브랜드를 출범시킬 정도로 고가 의류 편집매장에서 인기다. 갤러리아 명품관에선 ‘준지’라는 국산 브랜드가 남성 코트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 대형 편집매장의 마케팅 부장은 “명품 소비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국적이나 역사를 따지는 손님들이 많이 줄었다”며 “국산은 물론 일본이나 개발도상국의 브랜드도 디자인과 품질이 좋으면 시장에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명품 시장 판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부유층이 아닌 대중이 명품 브랜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게 1990년대다. 이후 소수의 명품 브랜드가 다수의 대중에게 절대적 위상을 구축하며 20년 가까이 인기를 독점했다면 최근엔 명품 브랜드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다.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국산 브랜드도 품질과 디자인, 가격대비 가치를 앞세워 명품에 근접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명품 시장 3.0 버전이다.

    이런 시장을 주도하는 건 주로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젊은 소비자들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스칸디 맘’이라고 부르는 계층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김 교수는 이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다. “고도성장기에 태어나 소비에 죄책감이 없다. 어려서부터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노티카(NAUTICA) 점퍼를 입으며 자랐다. 어떤 브랜드가 가치 있는지, 브랜드에 얼마만큼 지불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자녀에게 돈을 쓰는 것 못지않게 자신을 위한 합리적 사치를 중시한다.”

    명품 대중화 3세대는 '가치 소비' 중시
    합리적 소비를 앞세운 젊은 소비자들은 유통가에서 ‘명품 대중화 3세대’로 불린다. 장혜진 신세계백화점 홍보부장은 “MCM 같은 매스티지(masstigeㆍ대중적 명품)로 명품을 배우기 시작한 지금의 중년이 1세대, 루이뷔통을 구입하며 명품 시장에 들어선 30대 후반~ 40대 초반이 2세대라면 3세대인 젊은 소비자들은 기존의 명품 브랜드를 맹목적으로 숭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난도 교수도 초창기 명품 세대를 요즘 세대와 구분한다. “명품 대중화 초기 세대는 나쁘게 말하면 ‘졸부’ 같은 이미지인데…. 어렸을 때는 소비라는 걸 모르고 살다가 부동산 가격 오르면서 갑자기 돈이 생긴 사람들,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 부러운 사람들이죠. 돈 쓴 지가 얼마 안 되니까 아는 브랜드가 몇 개 안 돼요. 샤넬ㆍ루이뷔통 같은 유명한 브랜드를 맹목적으로 추종했죠.” 한때 길을 걸으면 3초마다 한 개씩 눈에 띈다고 해서 ‘3초 백’으로도 불렸던 루이뷔통 스피디백의 인기는 이렇게 형성됐다.

    명품 대중화 3세대는 엔트리(entryㆍ진입) 브랜드 자체가 다르다. 2세대의 엔트리 브랜드가 루이뷔통과 구찌ㆍ버버리 등이었다면 3세대의 엔트리 브랜드는 생로랑ㆍ지방시ㆍ멀버리ㆍ발렌시아가 등이다. 최근 명품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백화점에서 크게 성장하며 ‘컨템퍼러리 럭셔리’로 불리는 브랜드들이다. 이들 브랜드 특징은 뚜렷하다. ▶디자인이 단순하고 ▶컬러나 사이즈가 비교적 다양하며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로고를 눈치챌 수 없다.

    김민아 롯데백화점 해외패션부문 과장은 “젊은 명품 소비자들은 남들도 다 사는 천편일률적인 소비를 가장 싫어한다”고 설명한다. 2008년 이후 백화점 명품 매출이 급성장하면서 몇몇 브랜드가 지나치게 많이 팔린 게 역풍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큼지막한 로고가 전체에 도배된 디자인의 가방은 대부분 매장 전면에서 밀려나는 추세”라며 “샤넬은 잘 알려진 디자인인 클래식백을 아예 매장에 진열하지 않고 원하는 고객이 오면 꺼내 보여준다”고 말했다. 기존의 명품 브랜드들이 식상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발버둥치는 셈이다.

    제품 소규모에 다양한 편집숍 한몫
    3세대 명품족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지향성(selfwardness)’이다. 기존에 명품을 들던 소비자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부와 취향을 과시하려는 성향이 강했다면 최근엔 ‘남들이 몰라줘도 괜찮다’는 명품족이 주류로 자리 잡는 것이다. 소규모 브랜드의 제품을 다양하게 모아 놓은 ‘편집숍’이 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ㆍ청담동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편집숍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신세계백화점은 원조 편집숍인 ‘분더샵’에 캐주얼 의류 중심의 ‘마이분’을 더해 강화했다. 롯데ㆍ현대 백화점도 수입 의류 편집숍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편집숍에 입점하는 의류는 대부분 출시한 지 10년이 채 안 된 신진 브랜드가 많다. 유럽에 치중된 기성 명품 브랜드와 달리 국적도 제각각이다. 이 바람을 타고 최근엔 품질 좋고 가격 경쟁력 있는 국산 브랜드들이 눈에 띄게 약진한다. ‘스펙테이터’의 디자이너 안태옥(32)씨는 “예전엔 제품보다 브랜드를 선호했던 소비자들이 지금은 가격 대비 품질과 디자인을 따지는 합리적 소비 성향이 강해졌다”며 “한편으로는 남들이 모르는 브랜드를 안다는 자부심이 또 다른 과시의 대상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브랜드만 다양해진 게 아니다. 가방과 지갑 등 잡화 중심 명품 시장의 무게중심이 의류와 액세서리ㆍ시계 쪽으로 퍼진다. 류민정 현대백화점 수입의류 바이어는 “명품 대중화가 오래 지속되면서 웬만한 30대 이상 중산층 여성들은 명품 가방 한 두 개는 장만했다”며 “수입의류의 종류와 가격대가 다양해지면서 옷이나 장신구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구매대행 명품족 늘어
    명품 시장 3.0에서는 브랜드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도 다르다. 3세대 명품족은 해외ㆍ국내 패션 블로그를 통해 셀렙(유명인사를 뜻하는 ‘셀레브리티’의 준말. 주로 연예인을 뜻함)들이 어떤 브랜드를 입고 걸치는지 실시간으로 접한 다. 셀렙들이 선보이는 브랜드는 바로 온라인에서 평가를 거쳐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브랜드’로 성장한다.

    최근 백화점 명품 매출 신장률이 주춤한 것도 시장의 지각 변동이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단순히 경기침체 때문에 명품이 덜 팔리는 것이 아니라 백화점 중심의 기존 명품 유통 시장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한 백화점의 명품 담당 바이어는 “지난해에도 프라다나 생로랑 같은 브랜드는 큰 폭으로 매출이 신장했지만 구찌는 감소했고 루이뷔통은 정체였다”며 “손님들이 돈이 없어 명품을 사지 않는다기보다 채널이 다변화하면서 잘나가던 브랜드의 위상이 하락하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신 명품 유통 채널은 다변화한다. 편집숍뿐 아니라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직접 물건을 주문하거나 최근 3~4년 사이 늘어난 명품 아웃렛을 이용하는 이도 많다. GS홈쇼핑이 운영하는 병행수입 사이트 ‘플레인’에선 올 들어 2월까지만 명품 주문이 13억원어치 들어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9% 늘었다. 이 사이트는 명품 매출이 늘어 올 초부터 아예 수입 명품만 파는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조재형 GS홈쇼핑 대리는 “관세를 물더라도 해외에서 직접 들여오면 백화점보다 30% 정도 저렴하다”며 “합리적인 가격에 명품을 사려는 이들이 늘어 소셜 커머스 등에서도 명품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했다.

    명품 시장이 다각화하는 이유가 상류층의 ‘담쌓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중들은 사지 못하는 브랜드로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상류층이 기존의 브랜드가 너무 대중화하자 생소한 브랜드를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전미영 서울대 트렌드연구소 연구위원은 “상류층 사이에서 스키가 유행하다가 스키가 대중화하면 승마가 새롭게 유행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상류층과 대중은 담쌓기와 다리놓기를 반복한다”며 “분명한 건 명품 소비가 개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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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계속 짓자니 국민 불안 '늪'… 화력발전 늘리자니 온실가스 '덫'… 태양광·풍력은 발전단가에 '발목'



    ■ 전력 정책 '3중 딜레마'

    화력에서 원자력으로 다시 화력으로. 정부의 전력공급정책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화력은 환경(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안되고, 원자력은 안전 때문에 안 되고, 그렇다고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상업성이 미비한 터여서, 정부의 중장기 전력공급계획은 장기표류 우려까지 낳고 있다.

    이명박정부 때만 해도 중장기 전력공급의 무게중심은 원자력이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이명박정부는 '공해 없고 발전단가도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임을 강조하며 원전을 미래전력의 대안으로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정부 때 수립된 제5차 전력수급계획에는 2024년까지 11기의 원전을 짓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이어 국내 원전의 잦은 고장ㆍ사고로 인해 원전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커지면서 '원전드라이브'는 제동이 걸렸고, 화력으로 무게중심이 다시 옮겨졌다. 원전을 제외한 상태에서 전기요금 안정과 '2027년 전력 예비율 22%'목표를 달성하려 하다 보니,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석탄화력발전소 확충을 현실적 대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달 22일 지식경제부가 확정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계획(6차 계획)에는 총 18기의 화력발전소 신설계획이 담긴 반면, 원전은 5차 계획 때 확정된 11기 이외에 추가증설계획을 유보시켰다. 화력에서 원자력으로 옮겨갔던 발전축이 다시 화력으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환경의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화력, 그 중에서도 석탄화력발전이야말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범이기 때문. 실제로 전력 1㎾ 생산 시 태양광은 온실가스를 57g, 풍력과 수력은 각각 14g, 8g 배출하는 반면, 석탄은 991g이나 뿜어낸다.

    당장 환경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환경부는 6차 계획 확정 사흘 만인 지난달 25일 "국가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완전히 무시됐다"고 발표했다. 타 부처의 정책과제를 다른 부처가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건 매우 이례적인 일.

    환경부는 2009년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정부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0%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는데, 6차 계획대로라면 국제사회에 선포한 약속이 공수표가 된다고 주장했다. 온실가스 30% 감축을 위해선 발전부문에서 26.7% (2020년 기준)를 줄여줘야 하나 6차 계획에 따르면 7.4%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향후 화력발전소에 사업불가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지경부를 압박했다.

    지경부는 온실가스 배출 부담은 인정하면서도, 안전성과 효율성을 고려할 경우 화력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발전단가 면에서 석탄은 원자력 다음으로 싸다. 환경오염도 없고 안전걱정도 없기로는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최고이지만 발전단가가 높아 아직은 상업성이 적다"고 말했다. 실제로 1kWh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석탄은 73.6원, 원자력은 28.5원이 드는 반면 풍력은 170원, 태양광은 300원이 넘는다. 결국 화력도, 원자력도, 신재생에너지도 각각의 한계 때문에 주력에너지원이 되기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주장도 엇갈린다. 유상희 동의대 교수는 "최선의 대안이 없는 만큼 화력발전소 자체는 허용하되 온실가스 배출문제는 석탄연소기술 개발, 배출권 거래제 등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글로벌 사회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감축을 주시하고 있는데 이대로가면 2020년 신기후변화체제도 무방비상태로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환경단체 쪽에선 정부가 발전소만 계속 늘려가는 공급확대정책을 중단하고, 차제에 수요억제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수요억제는 결국 대대적 전기요금인상을 의미하는데 이 또한 국민들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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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업계가 유진룡 문화부장관후보에 열광하는 이유는?

    [머니투데이 홍재의 기자]["셧다운제 규제 일원화" 약속 지켜질지 관심↑···남경필·전병헌회장 지원도 기대]

    ↑ 남경필 게임산업협회 회장, 전병헌 e스포츠협회 회장,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왼쪽부터)
    정부와 정치권의 곱지 않은 시각 때문에 이중 규제에 몸살을 앓던 게임업계가 반색하고 있다. 잇단 정치권 인사의 게임업계 지원과 새 정부의 달라진 시각 때문. 규제일원화를 목 놓아 외치던 게임업계가 환영할만한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여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셧다운제와 관련해 "문화부에서도 비슷한 규제를 하고 있어 협의를 통해 규제를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유 후보자는 셧다운제에 대해서는 "수면권을 보장해 청소년을 건강하게 육성하려는 제도"라며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다만, 게임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던 이중규제, 다중규제 문제에 있어서 해결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심야시간대인 밤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서비스 제공을 제한하는 제도로서 지난 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문화부에서는 지난해 18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본인 혹은 법정대리인이나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게임 이용시간에 제한을 두는 '게임시간 선택제(선택적 셧다운제)'를 시행했다.

    아울러 지난 1월에는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 등이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과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관한 법률'을 공동 발의해 게임업계에서는 다중규제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위기에 빠진 게임업계에 최초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은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이었다. 전 의원은 지난 2월4일 부모의 요청이 있을 경우 아이를 셧다운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와 같은 행보로 게임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전 의원은 지난 1월 말 e스포츠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다음 투수는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남 의원은 1일부터 게임산업협회 신임 회장으로 2년간 협회를 이끌게 된다. 그동안 IEF(한중 국제 e스포츠대회) 공동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게임업계와 연을 맺었던 남 의원이 전면에 나선 것.

    지난달 22일 열린 취임식에서 남 의원은 "최근 규제는 '수레는 요란한데 거두는 곡식은 별로 없는' 비효율적인 요소가 있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자율규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겠다"고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 같은 당 손인춘 의원 등이 발의한 규제법안에 대해 "손 의원과 대화를 나눠보겠다"고 밝혀 게임업계의 큰 환영을 받았다.

    두 정치권 인사 영입과 더불어 이번 유 후보자까지 게임업계에 규제 부담을 덜어줄 것을 천명하자 게임업계는 크게 고무됐다.

    더구나 유 후보자가 "'e스포츠 진흥에 관한 중장기 진흥 기본계획'을 새롭게 수립하고, 서울시가 건립중인 e스포츠 전용경기장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새 정부에서 게임 산업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업계관계자는 "규제 일원화는 무조건 환영"이라면서 "게임업계에서 오랫동안 바라던 숙원이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5대 킬러콘텐츠 중 하나로 게임을 꼽은 만큼 새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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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학 강좌, 아이튠즈U 속으로
    최호섭 | 2013.03.01

    애플 ‘아이튠즈U’에 국내 교육 기관의 콘텐츠가 2월28일부터 등록되기 시작했다. 아이튠즈U는 애플이 평생교육 콘텐츠 공급을 위한 서비스로 이미 세계의 대학교를 비롯해 교육 단체, 도서관, 박물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아이튠즈U는 단순히 팟캐스트처럼 강의 콘텐츠만 올려두는 것을 떠나 강좌를 개설하고 수강생을 관리하면서 과제, 시험 등 평가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2007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번에 추가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터키, 아랍에미리트다. 이로써 30개 국가의 교육 기관들이 아이튠즈U에 강좌를 개설했고, 155개 국가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됐다.

    itunesU_01[1]

    국내에 새로 강의를 시작한 것은 고려대학교, 울산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3개 대학과 한국외국인학교, EBS 등 5곳이다. 아직 국내 교육 과정은 동영상으로 강의를 촬영해 올려놓는 수준이다. 2~3년 전 강의도 있고 아직 등록 자체가 어수선한 강의도 있다. 하지만 물리학, 심리학, 종교학 등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강의들이 채워지고 있다. 울산대는 서비스 첫 날 15개 과목의 274개 영상 콘텐츠를 등록했다. 각 대학들은 올해 학교에서 열리는 강의들을 차례로 등록할 계획이다. 올해 수 백의 강의가 등록되고 교재와 시험 등 정식 커리큘럼도 운영된다.

    최근 아이튠즈U 외에도 교육자원공개(OER, open educational resources)나 오픈코스웨어(OCW, open courseware) 처럼 다양한 교육 자원을 개방하는 서비스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교육 과정은 대개 CCL 같은 개방형 저작권 규약을 적용하고 있다. 이번에 아이튠즈U에 참여한 고려대, 울산대, 이화여대 등을 비롯해 서울대학교, 방송통신대학교등 국내 대학들도 교육 자원을 공개해 평생 교육 서비스를 하고 있다. 울산대는 지난 2009년부터 대학강의를 인터넷에 공개한 바 있다. 아이튠즈U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오픈 커리큘럼은 국내 혹은 해외에서도 시간이나 거리, 경제 사정 등으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이들에게 대학에서 실제 이뤄지는 수준의 교육 접근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뜻깊다.

    아이튠즈U 역시 그런 과정 중의 하나다. 다만 널리 퍼져 있는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이용해 콘텐츠를 자유롭게 내려받고 아이북스를 이용한 교과서 공급 등 접근을 쉽게 만든 플랫폼이라고 보면 된다. 애플은 최근 아이튠즈U에 등록된 콘텐츠 다운로드가 10억 건을 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itunesU_02[2]

    이번에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국내 강의도 손쉽게 등록할 수 있다. 과정을 순차적으로 등록하고 교재와 시험 문제는 OS X용 아이북스 저작도구(iBooks author)를 통해 만들고 이 모든 것이 아이튠즈U를 통해 유통된다.

    아이튠즈U는 맥과 PC의 아이튠즈에서도 이용할 수 있고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에서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해 10월 아이패드 미니를 발표하는 현장에서 아이패드의 교육 현장 보급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꼭 아이튠즈U를 통한 방법이 아니어도 태블릿, 특히 아이패드를 통한 교과서 등 교육 시장이 커지고 있다.

    MIT, 하버드, 스탠포드, 케임브릿지 등 많은 세계 유명 대학교들이 상당수의 강의를 아이튠즈U로 제공하고 있다. 단순 교양강좌 뿐 아니라 공학, 인문학, 자연과학, IT 등 실제 대학에서 이뤄지는 강의가 고스란히 옮겨진다. PC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아이튠즈U는 PC, 맥, 그리고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플랫폼 장벽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태블릿을 통한 교육 시장도 더불어 성장하고 있다.


    ▲태블릿을 통해 자폐아를 교육시키는 사례 소개 ☞유튜브에서 영상보기[3]

    미국 텍사스주의 매캘런 공립학교는 교육용 컴퓨터로 데스크톱PC 대신 아이패드를 채택한다. 매캘런 지역 전체에 아이패드 2만5천대, 와이파이 네트워크 구축 등 교육 인프라를 위해 2천만달러가 투자된다. 장애나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교육에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등 교육 사례들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Endnotes:
    1. [Image]: http://www.bloter.net/wp-content/uploads/2013/03/itunesU_01.jpg
    2. [Image]: http://www.bloter.net/wp-content/uploads/2013/03/itunesU_02.jpg
    3. ☞유튜브에서 영상보기: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BwSCijCPGLQ  

    "교육의 형태가 변한다" 애플 '아이튠즈 유' 콘텐츠 다운로드 10억 건 돌파

    강일용

    애플이 자사의 교육 콘텐츠 플랫폼 '아이튠즈 유(iTunes U)'의 콘텐츠 다운로드 수가 10억 건을 돌파했다고 1일 발표했다. 아이튠즈 유는 전 세계 학교, 도서관, 박물관, 단체 등의 교육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교육 플랫폼으로, 이를 통해 아이폰, 아이패드 사용자들은 강의, 과제, 책, 시험 등 교육자가 개설한 교육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아이튠즈 유 강좌를 개설할 수 있는 국가는 약 30여 개에 이른다. 최근에는 국내를 포함해 브라질, 터키, 아랍 에미리트 등에서도 아이튠즈 유 강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됐다. 아이튠즈 유 강좌를 수강하고 싶다면 아이폰, 아이패드에 아이튠즈 유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내려받으면 된다.

    현재(2013년 3월 1일 기준) 1,200곳 이상의 대학교와 1,200곳의 초중고교에서 2,500개 이상의 공개 강좌와 수천 개의 개인 강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예술, 과학, 의학, 교육,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애플 관계자는 "듀크, 예일, 캠브리지, MIT, 옥스포드 등 세계 일류 대학의 10만 명이 넘는 수강생이 아이튠즈 유 강좌를 청강하고 있다"며, "스탠포드 대학과 영국 개방 대학의 콘텐츠 다운로드 수도 각각 6천 만 건이 넘는다"고 전했다.

    아이튠즈 유에 등록된 콘텐츠의 60퍼센트 이상은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사용자들이 내려받는다. 전 세계 모든 사용자들이 아이튠즈 유의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아이튠즈 유에 17만 명 이상의 수강생을 두고 있는 스토콜스 교수는 "아이튠즈 유 덕분에 멀티태스킹, 정보 과부하와 스트레스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한 연구를 중국 학생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됐다"며, "아이튠즈 유에 올린 강좌를 통해 많은 학생이 환경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는 가르치는 사람이자 배우는 사람인 나로서는 참으로 보람찬 일"이라고 밝혔다.

    10만 명 이상의 수강생을 두고 있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 스톨츠퓨즈 교수는 "아이튠즈 유 강좌는 대학에 재학 중이지 않은 학생들로부터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며 "학생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교사들도 아이튠즈 유에 올린 강좌를 수업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 에디 큐(Eddy Cue) 부사장은 "여러 교육자와 학생이 아이튠즈 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무척 감격스럽다"며, "아이튠즈 유에는 수강생이 25만 명이 넘는 강좌들도 많다. 이는 교육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자신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아이튠즈 U' 콘텐츠 다운로드 수 10억 돌파
    10억회 중 60%는 미국 외 국가에서 발생
    2013년 03월 01일 오전 06:13
    시카고(미국)=원은영 특파원 grace@inews24.com

    [원은영기자] 일명 애플대학이라 불리는 '아이튠즈 U'의 교육 콘텐츠 다운로드 수가 10억 회를 돌파했다.

    애플은 28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세계 유명 대학의 강의들을 모아놓은 아이튠즈 U에 가입한 학생 수가 25만명 이상이며 콘텐츠 다운로드는 10억 회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또 10억 건의 다운로드 중 60%는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7년 처음 출시된 아이튠즈 U 앱은 대학강의 및 교육관련 콘텐츠들을 공유하는 장으로 전세계 155개국의 1천200개 이상의 대학에서 아이튠즈 U를 통해 수많은 교육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애플은 이날 교육 서비스와 관련해 지금껏 미국 내 교육기관에 판매한 아이패드 수가 총 450만대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전세계적으로는 800만대의 아이패드를 교육기관에 판매했다고 덧붙였다.

    애플의 '아이튠즈U' 다운로드 수 10억건 돌파



    [OSEN=정자랑 기자]애플의 ‘아이튠즈 U’가 새로운 온라인 강의의 장을 열었다. 애플은 2일 ‘아이튠즈 U(iTunes U)’의 콘텐츠 다운로드 수가 10억 건(2월 28일 기준)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아이튠즈 U’는 학교, 도서관, 박물관, 단체 등의 교육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카탈로그로써, 교육자들이 iOS 사용자들을 위해 강의, 과제, 책, 시험 등의 과정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에디 큐 애플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부문 수석 부사장은 “다양한 교육자와 학생들이 i ‘아이튠즈 U’를 어떻게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면 무척 감격스럽다. ‘아이튠즈 U’에서 제공되는 훌륭한 콘텐츠를 통해 학생들은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다. 현재 수강생이 25만 명이 넘는 강좌들도 많다. 이는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200곳 이상의 대학교와 1200곳의 초중고교 및 학군에서 2500가지 이상의 공개 강좌와 수천 가지의 개인 강좌를 제공되며, 그 범위는 예술, 과학, 건강과 의학, 교육, 비즈니스 등을 아우른다.

    듀크, 예일, 캠브리지, MIT, 옥스포드 등 세계 일류 대학의 경우 ‘아이튠즈 U’에서 제공하는 강좌 하나에만 10만 명이 넘는 수강생이 등록하는 등 대중과의 교류 및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스탠포드 대학과 영국 개방 대학의 콘텐츠도 다운로드 수가 각각 6000만 건이 넘는다.

    또 ‘아이튠즈 U’에 등록된 앱의 60% 이상은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다운로드된다. 따라서 어떤 학교든 규모와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교육자들이 ‘아이튠즈 U’에 강의를 개설할 수 있도록 서비스가 확대됐다.

    이 외에도, iOS에는 7만5000개가 넘는 교육용 앱이 제공되고 있다.

    luckyluc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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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코리안페이 두얼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의 TGI 프라이데이스 매장. 한 사람이 모임의 음료 값을 혼자 내고 있다. 코리안페이에는 무조건 나쁘다고 성토할 수 없는 장점과 매력이 있지만 그 현실에 순응해 버리기에는 개인적^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졌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한사람이 몰아내는 것은 불합리" 그 숱한 비판에도 왜 건재할까?

    관습과 情에 이끌려 서슴없이 지갑 여는 우리 자신들 때문…

    여럿이 식당에 가도 종업원들이 계산서 놓는 자리는 대충 정해져 있다. 나이든 사람 앞, 남자 앞이다. 그게 엉뚱하게 내 앞에 자주 놓인대도 종업원에게 짜증낼 일은 아니다. 겉늙은 내 외모 탓이고, 우리 관습이 그런 탓이니까. 한 사람이 비용을 몰아내는 그 관습을, 각자의 몫만큼 따로 내는 더치페이에 맞세워 '코리안페이'라 부르기로 하자.

    서구문화가 확산되면서 코리안페이에 대한 반성과 비판도 이어져왔다. 그게 벌써 40여 년 전부터다. 그 사이 저 관습도 가치관과 함께 조금씩 변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아니 현실은, 아직 멀었다는 쪽이 우세한 듯하다.

    결혼정보업체 같은 데서 툭하면 내놓는 설문조사가 있다. '데이트 비용, 어떻게 부담하세요?' 질문은 가볍지만 파장은 늘 험악하다. 소개팅 나갔다가 밥값으로 몇십만원을 뜯겼다는 식의 엽기적 경험담들이 인터넷 상에서 공유되고, 김치녀 스시녀 찌질남 거지근성 같은 말들이 짱돌처럼 난무한다. 불똥은 시댁문제 군복무 출산 고통으로까지 튀어 숫제 억눌린 청춘들의 증오의 성(性)대결장으로 돌변하기 일쑤다.

    불합리와 부작용에 대한 숱한 반성과 비판에도, 허망하게 반복되는 저 푸닥거리에도, 코리안페이가 건재한 까닭은 뭘까. 우선 단순히 관성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교적 베풂의 긍정성, 정(情)적인 유대와 조직문화…, 그리고 서구의 삭막한 합리에 맞서려는 선량한 저항감. 그렇다. 코리안페이는 남자를 벗겨먹으려는 소수의 된장녀나 푼돈으로 마음을 사려는 찌질남들이 아니라, 관습과 정에 이끌려 사심없이 서슴없이 지갑을 여는 다수의 우리 자신들이 지탱해온 거였다.

    하지만 우리는 코리안페이의 문제점을 다시 들춰보기로 했다. '늙으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을 가볍게 해도 괜찮은 세상인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왜 하필 지금인가? 그럴싸한 여러 근거들을 댈 수 있고 일부는 기사에 담기도 했지만, 한 마디로 너나없이 사는 게 더 팍팍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더치페이…" 말 꺼내는 순간, 내 인간관계는 흔들렸다


    20,30대 더치페이족도 더디게나마 늘어나고 있다. 인식이 바뀌기도 했겠지만 88만원 세대의 주머니 사정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 20대 남자 직장인 더치페이 체험기

    취업도 못한 후배에겐 차마 말 못하고 잘 나가는 후배들은 '이 선배 왜 이래' 표정

    선배들은 얼굴 굳어지고 모욕감 드러내 약속잡기 두렵고 이상한 소문날라 포기

    '까짓 거, 해보지 뭐!'

    그렇게 나선 '더치페이 라이프'는 힘들었다. 아니 고통스러웠다. 20대 후반 직장 초년생 남자에게 저 임무는 애당초 가망 없는 것이었을까?

    "우리 더치페이 하…지 않을래?"입을 떼는 것부터 두려웠다. 반응도 두려웠고, 인간관계도 걱정스러웠다. 나름 성실히 고군분투했으나 나는 졌다. 이 글은 그 처절했던 더치페이 라이프 실패담이다.

    대학 후배 김형모(27)씨가 첫 '희생자'. 저녁 자리에 앉자마자 후배는 취업의 어려움을, 부모님 눈칫밥 먹는 고통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선배랍시고 면접 경험담 등 취업요령까지 주절거리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더치페이뿐. 결국 나는 말을 못 꺼냈다. '이건 경우가 달라.'


    그 사이 만난 후배는 모두 6명. 나보다 잘 벌고 넉넉한 부모 만난 후배도 있었지만, 어렵사리 비굴하게 더치페이를 제안했을 때의 반응은 언제나 나를 위축시켰다. "(차갑게)제건 제가 내려고 했어요."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에이 왜 그러세요?" "(표정이 굳어지며) 당연히 저도 내야죠." "(얼굴까지 벌개지며) 저, 어려운 거 아시잖아요"

    그런 경험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약속 정하기조차 두려울 지경. 소문이라도 이상하게 나면 어쩌나….

    상대가 선배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취향을 드러내는 것부터 부담스러웠다. "뭐든 좋습니다, 아무 거나 잘 먹습니다."자장면과 아메리카노에 질릴 때면 '이게 사는 건가'싶은 생각도 들지만, 뻔한 사정 알면서 비싼 거 고를 수도 없는 노릇. 그래, 더치페이!

    9일 점심, 호기롭게 "제건 제가…"라고 말한 순간, 선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됐어, 집어 넣어"라는 말에서는 억눌린 모욕감이 감지됐고, 언뜻 강압의 기미마저 느껴졌다. 반복된 시도에도 반응은 대동소이. (쓴 웃음과 함께)"뭐?" (가소롭다는 듯)"네 후배한테나 사!"흔쾌히 응하는 선배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포기했다. 내게도 인간관계라는 게 있으니.

    이렇게 힘들게 더치페이를 고집하는 게 좋을까, 아니 더치페이가 절대선일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 코리안페이라고 꼭 나쁘기만 할까, 과도하지만 않다면 정(情)도 느껴지고 또…. 알게 모르게 내면화한 관습 탓일까. 아니면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코리안페이에도 이성적인 뭔가가 있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나는 관습의 아늑함에 젖어 들고 있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Cover Story] "기업의 운명이 걸린 거래" "재투자에 쓸 돈이 줄줄 새"


    밥값과 술값 떡값의 액수 차는 크겠지만 그 의미는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룸살롱 술자리 풍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 한해 비용 8조3500억원… 한국 사회의 '접대' 문화

    종로구청, 직원에 '청렴식권' 민원인과 구내식당서 식사

    새로운 문화들 속속 시도

    '밥값의 먹이사슬을 보면 한국 사회의 권력관계가 보인다.'

    공적 네트워크 안에서 '접대'라는 이름으로 코리안페이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저 명제는 꽤 그럴싸하다. 조건 없는 대접이란 없거나 드문 법이니까. 그걸 '거래'라고도 하고, 돈(자본)의 합리성이라고 한다. 대개는 내는 쪽이 을이고 받는 쪽이 갑이다. 을은 내면서도 굽실거리고, 갑은 받으면서도 당당하다. 을이 원하는 것, 곧 권력을 갑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직 내에서는 그 관계가 대개는 뒤집힌다.) 그 때의 권력은, 권한의 크기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직업 직종간 위계를 넘어 인품이나 학식 위엄 권위 사회 문화적 영향력 등을 포괄하는 광의의 권력이지만, 여기선 '이권'이라는 좁은 의미로 한정 지어 보기로 하자.

    밥값은 관행, 떡값은 뇌물?

    굳이 사례를 들출 필요가 있을까. 빙산의 일각으로나마 드러난 권력 비리는 대개 저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는다. 어떨 땐 수평적 친분이나 선후배간의 선의로 치장되고, 또 어떨 땐 스폰서라는 찜찜한 자발성으로 표현되지만 저 관계가 뇌물 비리로 타락하는 덴 그리 큰 낙차가 필요 없다.

    2011년 6월 중소기업 경영자 600여명이 제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을 열었다. 한 레미콘 업체 대표는 "접대를 안 하면 불안하고, 그러다 보니 식사라도 한번 대접하려 애를 쓰고 그 결과 중소기업도 부정부패의 줄기가 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다섯 해 전인 2006년에는 거꾸로 시멘트업계가 레미콘업계의 접대와 협찬 요구에 대해 푸념하곤 했다. 전통적으로 시멘트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지만, IMF 이후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갑을 관계가 역전됐던 것.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접대와 상납 문화 안에서 밥값과 떡값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코리안페이의 사회적 비용

    그 관행 안에서 코리안페이는 기업의 운명이 걸린 문제일지 모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 회계연도(2010.4~2011.3)의 27개 주요 증권사 순이익은 전년보다 6.8% 줄어든 2조3,035억원, 접대비는 18.2% 증가한 1,116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증권사 평균 조사연구비는 9억6,000만원이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기업 접대비는 2008년 7조502억원에서 2011년 8조3,535억으로 증가했다.

    접대비의 상당액은 호화 유흥업소에 뿌려진다. 국세청이 최근 공개한 '최근 5년간 법인카드 사용액 중 호화유흥업소 사용실적'을 보면 2011년의 경우 1조원이 넘는 금액이 룸싸롱(9,237억원) 등 호화유흥업소에서 결재됐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선화 연구위원은 "사원 복지나 연구개발 등 재투자에 쓰일 수 있는 돈이 저런 식으로 새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외적이지만 새로운 시도들

    서울 종로구청은 지난해 4월부터 협력업체와 접촉이 많은 도시개발부, 세무과 등 15개 부서에 '청렴 식권'을 나누어 주고 민원인과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도록 유도했다. 접대, 청탁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육지책. 지난해 450만원의 예산을 편성한 구청 측은 올해 확대 시행을 검토 중이다.

    안랩(전 안철수연구소)은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의 더치페이 습관이 기업문화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안 전 후보는 선거 기간 중 기자들과도 가끔 더치페이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세계 그룹은 8년 전부터 직급 불문 사내외 더치페이 캠페인인 '신세계페이'을 벌이고 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Cover Story] "갑이 접대받으면 을 편의 봐 줄 수밖에"

    ■ '더치페이 캠페인 8년' 신세계 최병용 부사장

    최병용 신세계그룹 기업윤리사무국 부사장을 만나 '신세계페이' 캠페인 8년의 성과와 한계를 물었다.

    -캠페인 취지는.

    "신세계는 유통그룹이다. 바이어 한 명이 수십, 수백 개 협력사와 거래한다. 90년대에는 '바이어 1년 하면 집을 바꾼다'는 말까지 있었다. 바이어가 접대를 받으면 거래하는 업체의 편의를 봐 줄 수밖에 없다. 질 낮은 상품이 들어오고 하자가 생겨도 제재하기 힘들다. 회사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 접대 규정이 있다. 5만원 이상 접대를 받으면 감봉, 10만원 이상은 해직이다. 그러다 보니 협력업체 분들과 간단한 식사마저 부담스럽다는 지적이 있었다. 상품 정보, 시장 동향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거였다. 그게 신세계페이 캠페인의 발단이 됐다."

    -직원들의 첫 반응은.

    "직원이 법인카드를 쓰면 상세내역을 전산망에 올리도록 했다. 직원의 행적과 인간관계가 본의 아니게 드러난다. 회사에서 경비를 줄이려고 만든 제도라는 말도 돌았다. 그래서 얼마간 현금을 지급하고 더치페이를 주문하기도 했다. 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지난해 전산망에 등록된 건수는 2005년보다 무려 23배나 증가한 73만5,000 건이다."

    -협력사 등 외부의 불만은 없었나.

    '잠깐 하다가 말겠지'하는 반응이 많았다. 한번은 거래처 상무와 골프를 친 뒤 내가 먼저 내 비용을 냈더니 상대방이 난처해했다. 그쪽은 '갑'회사 간부인 내게 접대를 한다고 생각했을 테고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예산도 잡아놓은 거다. 그런데 더치페이를 하니 '접대를 잘못했나'라고 생각했을 테다. 지금도 새로 거래를 시작하는 업체는 이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성공했다고 보나.

    접대 때문에 매년 5,6건 정도씩 문제가 발생했지만, 최근 3년 동안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유통회사로서는 쉽지 않은 성과다. 다만 우리 그룹엔 '신세계SI'라는 패션 브랜드 회사가 있다. 한마디로 '을'의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갑 회사나 관공서, 해외 거래처에 먼저 더치페이를 요구하기 어렵다. 신세계페이의 궁극적 목적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접대 때문에 낭비되는 부분이 많다.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위계문화 공고히… 돈없는 노인 인간관계 옥죄기도

    ■ 코리안페이 어떻게 볼 것인가

    전문가들은 코리안페이가 권력관계에서 비롯돼 교환관계로 변질돼왔다는 의견이었다. 상급자와 하급자, 남성과 여성, 연장자와 연소자의 위계에서 시작돼 그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해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코리안페이 관습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저 견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본서열화를 전제한다. 상급자(연장자)는 하급자(연소자)의 밥값을 대신 내줌으로써 사적인 차원에서 자본을 재분배하고 서열화의 긴장을 완화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 특유의 정(情) 문화와 서구의 타산적 합리주의적 생활습관에 대한 거부감도 코리안페이의 생명력을 강화했다.

    문제는 상급자, 남성, 연장자라는 전통적 '갑(甲)'이 더 이상 갑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갑 위계는 여기저기서 와해되고 있는데 지불 위계가 못 따라가는 것이다. 처자식 딸린 선배도, 취업 못한 남성도 전통이 억지로 입혀준 갑의 옷을 입고 원치 않는 의무와 권리를 강요 받고 있는 것이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코리안페이 문화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살펴야 한다는 유교주의적인 전통에서 유래했다"며 "과거에는 '너그러움'의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밥을 사 주고 아랫사람의 존경과 충성을 요구하는 일종의 교환 관계가 되었다" 고 말했다. 그는 "코리안페이가 사적인 영역에서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권력의 위계관계로 이어지는 게 문제"라며 "코리안페이로 강화되는 위계문화는 개인간 평등한 관계를 가로막고,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남녀 관계에서 남성들이 더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두고 "우리 사회가 성평등을 이루지 못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2차, 3차 데이트 비용까지 지불하며 경제력을 과시하고, 여성들은 남성에게 얼마나 얻어먹었는지를 자신의 가치로 여긴다"며 "자유로워야 하는 남녀 관계가 돈에 얽매이는 관계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력이 없는 선배는 선배 자격을 얻지 못하고 돈이 없는 남성들은 연애 시장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며 "허례허식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 김갑수씨는 "코리안페이 현상은 자산 서열화의 한 현상이겠지만, 사주고 얻어먹는 관계가 정형화했다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서점 매대를 점령해 온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들이 사람을 자산으로, 인간관계를 자산 관계망(관계자본)으로 전제하는 현실을 예로 들며 "그런 인식 안에서 인격체적 관계가 형성될 여지는 협소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령 은퇴세대에게 코리안페이는 잔인한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한다. 후배세대를 만나든 동년배 모임에 나가든 늘 사기도 부담스럽고 얻어 먹기도 민망한 일. 고령자의 3대 불안으로 꼽히는 건강과 돈(물질적 여유), 고독(인간관계) 가운데 두 가지를 코리안페이가 가로막고 있는 셈. 더욱이 한국은 전체 인구대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11.4%(2011년 기준)로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노인빈곤율도 45.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보건사회연구원)다. 해서 더치페이가 아니면 모임 자체가 지속되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방송인 김씨는 "노인들의 경우 더치페이에 대한 반감도 상대적으로 강하고 번갈아 내거나 신세 진 사람이 내는 등 코리안페이의 자체합리성이라는 것도 있다"며 "다만 그 관행이 장기화할 경우 부담이 불균등해질 수밖에 없고, 타격 또한 크기 때문에 회비제 등 절충형 더치페이 관행이 여느 세대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정착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agon25@hk.co.kr

    20대 여대생 더치페이 체험기


    남친에 데이트 비용 반반 부담 선언하자

    "갑자기 왜 그래?" "이거 그만하자"

    초반엔 불편해 하다가 점차 익숙해져

    결국 관습의 수혜자 여자 의지가 중요

    발렌타인 데이. 나의 더치페이 라이프 D데이! 레스토랑은 커플들로 넘쳐났다. 저들의 밥값은 누가 낼까? 당연(?) 열에 열은 남자들이 계산서를 챙겼다. 식사 후 남자친구 앞에 놓인 계산서를 얼른 집어 들며 말했다.

    "우리 더치페이 하자.""응?"

    당황해 하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현금이 없으니 내가 일단 카드로 낼게. 절반만 돌려줘."옆 테이블 커플은 신기한 듯 우리를 힘끔거렸고, 남자 친구는 낯을 붉혔다. "장난 치지 마~"

    어쨌건 나는 계산을 했고 그는 뾰루퉁해졌다."갑자기 왜 그래? 멀어지려는 것 같잖아."

    "해보자. 나 근사해 보이지 않아?"

    며칠 뒤 함께 편의점에 들렀던 날. 과일주스와 캔 커피. 신용카드를 건네는 그에게 "내건 내가 낼게"라고 했고, 그의 신용카드를 받아 들려던 편의점 점원은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우리는 못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서둘러 편의점을 나왔다.

    "이거 그만하자. 요즘 무슨 일 있어?"

    "좋잖아. 부담스럽지 않고."

    조금씩 더치페이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뭘 하든, 뭘 먹든 편하고 솔직해질 수 있었다. 재미있을 때도 있었다. 어느 저녁. 밥값 2만9,100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 그럼 한 사람당 1만4,550원씩 내면 되겠다." "1만4,500원만 줘. 50원은 내가 쏠게!"어이가 없는 듯 종업원도 웃는다. 그렇게 주변의 시선도 조금씩….

    더치페이 문제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는 듯하다. 관습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경험은 어쩌면 예외적인 경우일지 모른다.

    일전에 한 신문에 더치페이 라이프를 선언하며 그 당위성을 역설하는 칼럼을 썼던 김현지(숙명여대ㆍ22ㆍ미디어학부 3)씨는 험난했던 경험담을 토로했다.

    자존심인지 자격지심인지 모를 남자친구의 비협조적 반응, 함께 미팅 나갔던 여자 친구들의 반응("우리가 밥값을 왜 내? 내고 싶으면 너나 내.") 끝내 어색해져버린 한 선배와의 관계….

    데이트비용 갈등으로 이별을 겪고, 남녀관계가 돈에 얽매이는 게 싫어 더치페이 소신을 갖게 됐다는 김씨지만 그의 요즘 더치페이 라이프는 제한적이라고 했다. 선후배와 만날 땐 대충 분위기에 따른다는 것. "어렵죠. 어렵지만, 그게 동등하게 만나 각자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김의정 인턴기자 (숙명여대 경영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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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전관예우 공화국

    [서울신문]

    인사청문회 때마다 전관예우 시비가 일고 있는 가운데 고위 판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들이 ‘얼굴 변호사’를 내세우거나 선임계를 내지 않고 사건을 맡은 뒤 의뢰인에게 수천만~수억원대의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받고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얌체짓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수의 변호사들은 1일 “고위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은 대체로 사건을 직접 수임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변호사를 대리로 내세우는 등 선임계를 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대학 입시 비리로 최근 구속된 A씨. 집행유예도 어려운 상황인데 벌금형을 선고받는 조건으로 담당 법원의 부장판사 출신 B변호사를 선임했다. B변호사는 착수금 2000만원에 성공보수 3000만원을 요구했다. B변호사는 자신이 아는 후배 변호사에게 300만~500만원을 받고 사건을 수임케 한 뒤 그를 얼굴 변호사로 내세웠다. B변호사는 후배 변호사에게 “벌금형이 선고되면 내가 한 줄 알면 된다”고 했다.

    지방의 검찰에서 수사를 받던 C씨는 서울 지역 검사장 출신의 D변호사를 선임했다. 구속을 면하는 조건으로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5000만원을 지불했다. D변호사는 수사 담당 지역 검찰에게 입김이 통하지 않자 C씨 사건을 자신이 몸담았던 서울 지역 검찰로 이송시켰다. C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지방 사건이었는데 해당 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얼굴 변호사로 내 이름만 올려 달라고 했다”면서 “착수금·성공보수로 2억원을 받는데 1억원을 주겠다고 했다. 일은 자신이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으나 거절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관 변호사들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기 때문에 세원 파악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은 “사건당 보통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받는데, 모두 탈세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국세청 조사국 관계자는 “전관 출신 변호사 등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수사를 하고 있진 않지만 제보나 첩보 등 혐의를 입증할 물증이 나온다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변호사법상 선임계 미제출은 영구제명, 제명, 3년 이하 정직, 3000만원 이하 과태료, 견책 등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선임계 미제출로 처벌받은 변호사들의 현황은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면서 “변협회장이 징계위원회에 징계 개시를 청구하고 징계위는 처분 수위를 결정한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커버스토리-전관예우 공화국] 공직 → 민간 → 다시 공직… “관행적 ‘인사 악순환’ 끊어야”



    [서울신문]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법 제도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1년 11월 거의 전면 개정 수준으로 대폭 바뀐 공직자윤리법에서는 4급 이상 공무원이 민간기업에 취업할 때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직무 연관성을 따지는 취업심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했고, 퇴직자가 현직에 있는 공무원에게 청탁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처벌조항까지 뒀다. 하지만 주로 검찰, 법원 등 법조계 또는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들이 대형로펌에 취업해 거액을 받으며서 수면 아래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빈번하다. 법의 허점 탓이다.

    김석진 행정안전부 윤리복무관은 “2011년 법 개정 당시 취업심사의 예외조항을 두면서 미처 간과했던 부분이 현실에서 문제로 드러났다”면서 법의 허점을 시인했다. 변호사나 세무사, 회계사 등 자격증만 있으면 로펌이나 세무법인, 회계법인 등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받지 않고 취업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뒀던 게 문제의 핵심이다.

    김 윤리복무관은 “법률회사로 가는 경우에도 반드시 심사를 받고 가도록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는 만큼 그와 관련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사례 수집을 진행했으며, 조만간 시민단체와 학계의 의견까지 함께 담을 수 있는 민관합동 2차 TF를 꾸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행안부는 이와 함께 부정 청탁에 대한 익명의 신고를 보장해 주는 ‘부정청탁 신고센터’도 운영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5년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작은 정부’를 운영한다는 명분으로 부패방지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등을 모두 국민권익위원회로 집어넣었다. 반부패 문화와 청렴 문화를 확산시켜도 부족할 마당에 기존의 조직마저 없애고 기능을 축소한 것은 대형로펌, 대기업 등으로서는 일종의 긍정적 신호였다. 반칙과 편법을 눈감아 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나서서 제공한 셈이다.

    공직에서 취득한 정보, 그 시절 다진 인적 네트워크를 로펌 등에서 로비의 창구로 활용하고, 그 인물이 또다시 공직으로 돌아오는 관행을 허용케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공직→민간→공직’과 같은 인사 악순환을 가능하게 한 최고 인사권자의 문제의식 박약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은 배경이다.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은 “이른바 ‘김영란법’ 입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공직자윤리법의 처벌조항을 더욱 강화, 실효적으로 단속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하고, 로비스트를 제도 속으로 끌어와 합법화할 수 있는 법안 마련도 필요하다”며 선결 과제로서 제도적 정비를 제안했다. 이와 더불어 “최고 임용권자인 대통령이 퇴행적 회전문 인사 관행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해 그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천명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반부패 정책과 제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사회 전반의 청렴도를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커버스토리-전관예우 공화국] 법조계 전관예우 실태



    [서울신문]

    변호사들이 털어놓은 전관예우 실태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법 제1조가 무색할 정도다. 먹이사슬로 따지면 최상위에 대형 로펌이 있고 바로 아래에 법원·검찰 고위직 출신의 전관 변호사가, 그 아래 단계에 법원과 검찰이 있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

    검찰 출신의 A변호사는 “변호사들 사이에선 어떤 로펌에 전직 법원장급이나 고위직 출신이 있으면 그 사람이 알아서 다 할 것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경찰도 담당 변호사의 급에 따라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전관 변호사가 구치소에 수감된 피의자를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송시킨 뒤 석방까지 이끌어낸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퇴직 판·검사의 절반은 로펌에 재취업했다. 지난해 10월까지 퇴임한 판사 61명 중 32명이 20대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은 64명의 검사가 퇴직해 30명이 로펌을 선택했다. 퇴직 검사들이 가장 많이 취업한 로펌은 김앤장법률사무소로 6명이 재취업했고, 법무법인 태평양(4명), 화우(3명), 동인·광장(각 2명) 순으로 나타났다.

    로펌들은 변호사 개인에게 주는 연봉을 공개하지 않지만 부산고검장 출신의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자는 퇴임 후 태평양에서 17개월간 모두 16억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다. 또 대검 차장 출신의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0년 12월 감사원장에 내정됐지만 검찰 퇴임 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7개월간 7억원의 보수를 받은 점이 문제가 돼 낙마했다.

    검찰 관계자는 “판사나 검사 모두 ‘엘리트’ 소리 들으며 자라왔는데 개업 변호사나 기업인 등 동년배의 지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봉급이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형 로펌의 경우 1~2년 만에 노후를 보장할 정도의 연봉을 주는데 배우자와 자녀를 생각하면 자존심만 고집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력을 갖춘 곳이 대형 로펌들인데 법원과 검찰 출신 고위 인사가 로펌의 강력한 무기”라면서 “로펌들은 능력 있는 ‘변호사’를 채용하는 게 아니라 고위 인사의 ‘이름’과 ‘얼굴’을 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후보자의 경우 월 평균 1억원의 보수를 받았지만 17개월간 선임계를 낸 사건은 2건에 불과했다.

    판사 출신 B변호사는 “로펌에서 고액 연봉을 주고 전직 판·검사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그들이 로비스트가 되기 때문”이라면서 “그 사람들이 사건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사건 담당 판·검사들에게는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C변호사는 “검사장이나 지법원장 출신은 변호사 개업 첫해에 30억~40억원을 벌지 못하면 바보라고 한다”면서 “양심이나 윤리에 호소하기엔 로펌도, 전관도 너무 탐욕스럽다”고 꼬집었다.

    법을 수호했던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법망을 피하며 불법을 저지르는 행태도 가관이다. ‘탈세 온상’이라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2011년 5월 개정·시행된 전관예우금지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관들은 착수금이 성공보수 모두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는다. 불법이다. 이런 불법이 가능한 건 전관들이 선임계를 내지 않고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의 인물을 ‘얼굴 변호사’로 내세운 뒤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다. 판·검사로 재직했던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법원 및 검찰청 관할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전관예우금지법은 사문화된 지 오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관들은 후배 판·검사를 사석에서 만나거나 전화로 “그 사건 내 사건이야”라고 한 마디만 할 뿐이다. 일반 변호사들과 달리 변호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 변호사들은 “전관들이 받는 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로비의 대가”라고 못 박았다.

    전관들의 수임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보통 민사사건은 수백만~수천만원, 형사사건은 수천만~수억원에 달한다. 구속영장 기각 등 신변 자유를 보장해주는 건 통상 1억원이다. 얼굴 변호사는 보통 300만~500만원을 받고 사건을 수임, 선임계를 낸다.

    착수금·성공보수는 현금 직거래다. A변호사는 “선임계를 내지 않는데 개인이나 법인 계좌에 돈이 입금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며 “전관들은 철저히 돈 관리를 한다”고 전했다.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돈을 받는 건 고전적 수법이다. B변호사는 “요즘은 변호사가 지정한 특정 계좌에 의뢰인이 성공보수를 선지급하기도 한다”면서 “의뢰인의 조건대로 사건이 처리되면 변호사가 돈을 가져가고, 반대일 경우엔 의뢰인이 되찾아간다”고 말했다.

    로펌 소속 전관 변호사들의 편법 행위도 심각하다고 한다. C변호사는 “로펌 소속 전관들의 수입 내역을 떼어 보면 황당할 것”이라며 “월 1억원을 받는데 선임계를 낸 건 극소수다. 로펌은 철저히 실적으로 평가하는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월 1억원을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D변호사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문제가 있다”면서 “월 평균 1억원을 받았는데 16개월간 선임계를 낸 사건은 고작 2건뿐이다. 그 2건으로 7억원을 받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E변호사는 “증거가 드러나지 않을 뿐 황 후보자도 사실상 수렴청정을 한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변호사들은 “사건 의뢰인, 변호사, 사무장만 알기 때문에 내부 고발을 하지 않는 한 적발이 안 된다”면서 “전관들이 나중에 어떤 위치에 올라갈지 모르기 때문에 후배 검·판사들이 폭로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커버스토리-전관예우 공화국] ‘로비스트 합법화’ 걸림돌은

    [서울신문]

    로펌(법률회사)이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고위 공직자 출신을 거액에 영입하는 이유가 뭘까. 로펌은 이들의 전문지식을 높이 산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들이 오히려 출신 부처에 각종 로비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로비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미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양성화해야 부적용이 최소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비스트를 합법화하고 일반인들도 공개적으로 이용하면 궁극적으로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론자들은 로비 제도가 합법화된다고 해도 헌법이 보장한 청원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비싼’ 또는 ‘힘 있는’ 로비스트를 살 수 있는 대기업이나 힘 있는 이익단체가 합법적으로 입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로비 활동내역과 로비자금 등을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해도 이러한 로비의 ‘부익부’ 현상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에는 행정부나 국회의 고위 관료들이 퇴임 후 대형 로펌에 고문이나 자문위원으로 가는 모습을 광의의 ‘로비 행위’로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관료 시절의 인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이번 정부 내각 인선에서처럼 이들 전직 관료들이 부처 수장으로까지 오는 경우도 생겼다. 무기중개업체에 고문으로 재직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이러한 국민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

    로비가 합법화되더라도 학연과 경력 등 인맥을 바탕으로 하는 음성적 로비를 끊어낼 수 없다는 의심도 나온다. 로비 활동과 자금 등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함께 비리가 적발된 경우 엄중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으면 입법에서 정책입안 과정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로비가 합법화돼도 로비 비용으로 최소 수천만원이 든다는 얘기가 나오면 국민들은 괴리감을 느낄 것”이라며 “아무리 투명해도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커버스토리-전관예우 공화국] 경제관료 전관예우 실태

    [서울신문]

    #1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직 고위관료들이 잇따라 대기업 사외이사로 옮겨갔다. 공정위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전임자가 잘나간다는 면에서 반길 만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뒷말이 무성하다. 한 전임자의 경우, 현직에 있을 때 이번에 자신이 옮겨간 대기업 관련 조사를 미루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는 얘기가 나돈다. 공정위의 한 간부는 “자기 안위를 위해 친정을 욕보인 사례”라면서 “이런 선배들은 무슨 사건이 터지면 대놓고 ‘봐달라’고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부탁을 못 들은 척하면 “예의 없다”고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지라 대놓고 묵살하기도 어렵다는 고백이다.

    #2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예산 통제 등을 받는)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으려고 전방위 로비전이 펼쳐지는데 여기에도 전관예우 속사정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해당 기관장 등 임원들은 ‘업무 연관성이 있는 기업에 2년간 취업하지 못한다’는 제재조항에 걸리게 된다. 전관예우를 통해 민간 기업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고위직들 처지에서는 공공기관 지정 여부가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얘기다.

    법조계 못지않게 경제관료 사회에도 전관예우 관행이 뿌리 깊게 퍼져 있다. 경제부처 중에서도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처 출신들은 로펌의 영입 0순위다. 국세청의 경우 2006년 이후 5년간 퇴직한 공무원 중 26명이 로펌 및 회계법인으로 옮겨갔다. 퇴임 당일이나 이튿날 바로 취업한 경우도 11명이나 된다.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등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금융 출신들도 인기가 높다.

    현재 국내 6대 로펌의 고문이나 전문위원을 맡고 있는 전직 경제 관료는 60여명이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는 허병익 전 국세청장 권한대행과 서동원 전 공정위원장 직무대행 등이 포진해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에는 김영섭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오대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등이, 율촌에는 이정재 전 금감원장과 채경수 전 서울국세청장 등이 있다. 세종의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과 이근영 전 금감원장, 광장의 김용덕 전 금감원장 등도 눈에 띈다. 최근 신세계 사외이사를 맡은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법무법인 화우에 몸담았다.

    이들의 몸값은 공무원 연봉의 2~3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해 수억원을 고문료 등의 명목으로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모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장은 퇴직 뒤 2006년 9월부터 5년 가까이 S그룹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31억여원을 받았다. 고문이지만 웬만한 대기업 사장보다 연봉을 더 받은 셈이다.

    전직 관료들에게 눈독 들이기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업 경영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10대 재벌기업 92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323명 가운데 공무원 출신, 즉 ‘전관’들은 109명이다. 3명 중 1명 꼴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경제관료는 “기업이 (세무조사 등의) 방패막이나 고급정보 획득 등의 의도 없이 순수하게 전직 관료를 사외이사로 데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관료 출신 사외이사의 상당수는 해당 기업의 공식 로비스트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료도 “모임에 나가 보면 ‘기업 사외이사로 나를 추천해 달라’거나 ‘무슨무슨 건을 잘 봐달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선배들이 있다”면서 “꺼진 불이 다시 화려하게 타오르는 경우(공직 재발탁 등)도 적지 않아 이들의 부탁을 외면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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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베팅 공화국'…한 해 20조 '한탕'에 걸다

    [세계일보] 지난해 우리나라 사행산업의 총매출이 20조원에 육박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 지난 12년간 3배 이상 급증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전 국민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탕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사행산업 피해를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할 당국과 업체들이 세수와 수입 감소 등을 우려해 매출총량제를 수시로 어기고, 전자카드 도입을 외면하는 등 오히려 국민의 사행성을 부추기고 있다.

    1일 기획재정부, 농림수산식품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카지노, 스포츠토토, 소싸움 등 7개 사행산업의 총매출은 19조5700억원이었다. 2011년의 18조2629억원보다 7.2% 늘어났다. 사감위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의 6조2761억원에 비해 211.8%나 뛰었다.

    사행산업 중 매출이 가장 큰 업종은 경마인데 지난해 7조8397억원으로 전년의 7조7862억원보다 0.7% 증가했고, 2000년의 4조6229억원에 비해서는 70%나 늘었다. 운동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스포츠토토의 매출 신장은 폭발적이다. 처음 도입된 2001년에는 매출이 28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조7583억원으로 985배나 폭증했다. 강원랜드 카지노의 지난해 매출은 1조3180억원으로 2000년 개장 당시의 884억원보다 15배 늘었다. 외국인전용 카지노 매출은 2000년 3405억원에서 작년 1조2531억원으로 3.7배 늘었다. 로또, 연금복권 등 복권은 작년(3조1854억원) 처음으로 3조원을 넘어서 로또가 첫 발매된 2002년(9796억원)의 3.3배가 됐다.

    정부의 사행산업 건전화 조치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사감위는 사행산업의 지나친 확산을 막고자 매출총량액을 정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5개 업종(복권·스포츠토토·카지노·경정·경륜)은 2009∼2012년 매출총량을 무려 17차례나 초과했다. 도박중독을 막고자 1회 베팅 상한액 위반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전자카드 도입도 외면당하고 있다. 전자카드가 전면 도입된 곳은 경마·경륜·경정의 본장(7곳)과 장외매장(68곳) 등 75곳 중 단 1곳(동대문 경륜 장외매장)뿐이다.

    사감위 관계자는 “관계 부처와 업체가 세수 감소를 우려하고 특별기금이나 수익을 올리는 데 급급해 국민의 도박중독 예방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찬준·이귀전·정진수 기자


    도박 중독·가산 탕진…국민 눈물 먹고 크는 사행산업

    [세계일보]
    우리나라의 사행산업은 정부가 조세수입 확대와 기금 조성을 목적으로 2000년부터 업종을 늘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정부는 내국인 카지노(강원랜드·2000년 10월), 스포츠토토(2001년 10월), 경정(2002년 6월), 온라인복권(2002년 12월) 등을 순차 도입했다. 이전에는 경마, 경륜, 외국인 카지노만 있었다. 정부는 장외발매소 증설, 온라인베팅 제도 도입, 교차투표 실시, 경기횟수 연장 등 게임방법도 다양화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고용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사행산업 시설을 앞다퉈 유치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국민이 쉽게 사행산업을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지난해 사행산업 매출은 2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사행산업 확대로 정부의 당초 목적인 세수는 늘었지만, 도박중독자가 급증하는 등 사회적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부작용에도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 사업자들은 전자카드 도입, 매출총량 준수 등과 같은 사행산업 건전화 조치는 등한시하고 있다. 사행산업 건전화에 따른 매출 하락은 곧 세수는 물론 기금 수익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외면받는 전자카드

    1일 재정부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10년 과도한 사행심 유발과 도박중독자 양산을 막고자 사행산업 업종별 1회 베팅한도액(구매상한액·카지노 10만∼30만원, 나머지 업종 10만원) 확인이 가능한 전자카드를 시범 도입했다. 이용자가 현금을 이용할 경우, 한도액을 넘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자카드가 시범 도입된 지 3년째지만, 도입된 매장은 10곳 중 1곳에 불과할 정도로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현재 전자카드가 도입된 사업장은 경마·경륜·경정 매장 75곳(본장 7곳, 장외매장 68곳) 중 장외매장 7곳(9.3%)이 전부다. 전자카드가 전면 도입된 곳은 동대문 경륜 장외매장 단 1곳뿐이다.

    전자카드 도입이 저조한 것은 관련업체들이 수입감소를 우려해 도입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 경륜 장외매장은 작년 8월 전자카드가 전면 도입되기 전 하루 평균매출액이 3억8200만원이었지만 도입된 후엔 1억7700만원으로 반 토막 났다. 전자카드와 현금의 병행 사용이 가능한 대구·인천 중앙·창원에 있는 경마 장외매장 3곳도 작년 10월 전자카드 도입 후 일평균 매출이 15%(약 2억원)가량 줄었다.

    ◆정부조차 매출총량제 무시

    사감위는 사행산업의 지나친 성장을 막기 위해 사행성 게임 사업자를 대상으로 매출총량제를 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복권발행 주체인 정부나 사업자들은 사실상 이를 무시하고 있다. 복권은 2009년, 2011년, 지난해 매출 총량한도를 넘겼다. 초과액이 2009년 9억원이었지만 2011년 2759억원, 지난해엔 3101억원으로 급증했다. 정부마저 매출한도 준수 의지 없이 사행성 산업의 폐해를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토토는 2009∼2011년에 총매출 총량보다 1000억∼2000억원 더 팔았다. 강원랜드도 같은 기간 3년 연속 300억∼1500억원을 초과했다. 경륜도 2010년과 2011년 총량을 넘겼다.

    정부나 사업자들이 매출총량 한도를 반복적으로 넘기더라도 제재 강도가 낮아 규제의 실효성도 없다. 매출액이 한도를 넘어서면 이듬해 매출총량 한도를 줄이거나 도박중독 치유 분담금을 증액하는 벌칙이 있다.

    관련 부처와 사업자는 여전히 총량과 매장 확대에 몰두하고 있다. 재정부 복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012년 복권 매출총량 한도를 3198억원 증액해 달라”고 사감위에 요청했다. 사감위는 지난달 “신상품 매출은 총량범위에서 조정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마사회도 경마 장외발매장 증설을 추진 중이다. 2008년 사감위가 확정한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에 따르면 경마 장외매장은 32곳으로 제한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이 제한을 풀어 ‘공원형 장외발매장’ 3곳의 추가 설치를 요청했다. 사감위는 건전화 노력이 부실하다며 결정을 유보했다.

    ◆사행산업 건전화 대책

    사감위는 전자카드를 모든 사업장에 전면 도입하는 게 목표다. 다만 매출이나 조세, 기금 감소 등의 추이를 봐가며 점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사감위는 매출감소 보전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올 하반기에 수립할 2014∼2018년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에 구체적인 전자카드 도입 로드맵도 넣을 계획이다. 또 매출총량 한도 미준수 업종의 제재를 강화할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이듬해 총량을 설정할 때 초과분의 100%만큼 삭감한다. 건전화 평가를 벌여 S, A 등급을 받으면 총량을 각각 7%, 4% 늘려주되 C, D등급을 받으면 각각 4%, 7% 깎는다.

    사감위 관계자는 “과도한 사행심 유발과 도박중독자 양산 등 사행산업 부작용을 예방하려면 전자카드 도입이나 총량 준수와 같은 건전화에 관련 부처와 사업자가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찬준·이귀전 기자 skyland@segye.com  

    전자카드 도입 동대문 경륜장…수천만원 베팅 사라져

    [세계일보]
    “매장에서 ‘오대’가 사라졌습니다.”

    화상을 보며 베팅하는 서울 동대문 경륜 장외매장에서 지난해 전자카드가 전면 도입된 이후 이용객들이 하는 말이다. ‘오대’란 경기에 베팅을 크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다. 보통 ‘오대’는 사람들을 동원해 한 경기에 수천만원씩 베팅한다. 카지노를 제외한 경마나 경륜 등의 사행성 게임은 한 사람이 회당 10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도록 한도액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현금을 이용하면 창구를 돌아다니며 여러 차례 구입해도 이를 걸러낼 방법이 없다.

    과거 사행성 게임에 빠져 수억원을 탕진한 40대 도박중독 경험자는 “최근까지 장외매장에서 한 명이 한 경기에 수천만원을 베팅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매장은 매출을 올리려고 이를 사실상 묵인해왔다”며 “여러 명이 돌아가며 경주권을 구입하니 단속에 걸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동대문 경륜장에 지난해 8월부터 경기당 베팅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전자카드가 도입되자 ‘오대’들이 매장에서 사라졌다. 전자카드가 도입되기 전에는 고액 베팅을 하는 사람이 많아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여기저기서 욕설이 난무하고, 경주권을 찢어 던지는 등 아수라장이었다. 전자카드 도입 이후에는 고액 베팅을 할 수 없게 돼 부담이 줄어들면서 과거와 같은 험악한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한 현장조사원은 “동대문 장외매장에 전자카드가 도입된 후에는 쓰레기가 대폭 감소했고 고함이나 욕설을 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며 “대신 말 그대로 ‘레저’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지하철로 불과 30분 거리인 서울 장안 경륜 장외매장이나 인근의 경마장으로 사람들이 옮겨갔다. 현금으로 고액 베팅을 하기 위해서다. 전자카드가 도입됐지만 일정액 이하는 현금으로 베팅할 수 있는 전자카드·현금 병행 매장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경기 의정부 경정경륜 장외매장은 지난달 중순부터 전자카드가 일부 도입됐지만 한 경기당 이용자는 서너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자카드를 기기에 읽히고 버튼을 눌러야 하는 등 절차가 익숙지 않은 데다 고액 베팅을 할 수 없어 이용객 대부분은 현금으로 베팅을 하고 있다.

    강신성 전국도박중독피해회복자모임 사무국장은 “정부는 전자카드 도입을 확대해 도박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며 “도박중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국가적인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이귀전·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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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세상] 포스코 사외이사, 年 7차례 회의에 연봉은 1억4000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사외이사 거액 보수 논란… 60여개 주요 상장사 분석]

    포스코 사외이사 7인, 작년 상정된 35건 모조리 찬성·통과

    포스코 "3년 이상 재직 이사들에 성과급 지급해 보수 늘어"

    삼성전자, 4명에게 1인당 8800만원… 전년보다 46% 급증

    공직자·교수 출신이 80% 넘어… 금융지주사서 권한 막강


    주요 대기업이 지난해 사외이사들에게 지급한 보수를 큰 폭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포스코는 지난해 사외이사에게 전체 근로자 평균 연봉의 5배를 웃도는 억대 보수를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사회 1번에 2000만원꼴

    본지가 지난달 28일까지 주주총회 소집을 공고한 시가총액 상위 60여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포스코는 지난해 사외이사에게 1억원이 넘는 보수를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억대 보수는 포스코가 유일했다. 포스코 사외이사 7명이 받은 보수는 1인당 평균 1억4370만원이었다. 이는 포스코 직원 평균 연봉(2011년 기준 6500만원)의 2배를 넘는 액수다. 국세청이 집계해 발표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평균 연봉(2011년 기준 2817만원)과 비교하면 5배를 웃돈다.

    포스코는 지난해 이사회를 7차례 개최했다. 이사회 1회당 2050만원의 보수를 받은 셈이다. 포스코는 "지난해엔 3년 이상 재직한 5명의 사외이사에게 장기 인센티브(성과급)를 지급해 평균 보수가 늘어났다"면서 "올해부턴 사외이사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가 없어지기 때문에 보수가 다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명망가가 많아 최소한의 예우는 필요하지만 포스코의 보수는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준양 회장은 사외이사들과 정기적으로 골프를 치는 등 사외이사를 각별하게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스코에 이어 보수가 많은 기업은 의류업체인 영원무역이었다. 2명의 사외이사에게 1인당 9300만원을 지급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 보수도 높은 수준이었다. 삼성 계열사는 지난해 사외이사 보수를 크게 늘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이사회를 11차례 개최하고, 4명의 사외이사에게 전년에 비해 46% 늘어난 8800만원의 보수를 지급했다. 삼성전기·삼성물산·삼성중공업 등도 20% 가까이 늘려 8000만원 안팎의 보수를 지급했다. KT는 전년에 비해 소폭 줄어든 6800만원을 지급했다.


    "오너 없는 금융지주 사외이사 막강"

    대기업 사외이사로 임명되면 보수 외에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사회에 참석할 때마다 50만~100만원의 거마비를 받고, 임원용 차량을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국내 금융지주사는 '사외이사의 낙원'이라고 불릴 정도다. 확실한 오너나 뚜렷한 대주주가 없기 때문에 최고경영자가 사외이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사외이사의 권한이 가장 막강한 곳은 KB지주로 알려져 있다. KB지주는 2011년 사외이사 9명에게 평균 6760만원의 보수를 주었다. 건강검진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이사회 의장을 맡은 사외이사에겐 월 200만원 정도의 활동비도 별도로 준다.

    신한·하나·우리지주도 사정은 비슷하다. 금융지주가 이처럼 사외이사를 극진히 모시는 것은 사외이사가 차기 회장 후보 추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이 술집에 모여앉아 지주사 회장을 불러내 술값을 내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방패막이·거수기 역할" 비판도

    대기업 사외이사는 전관(前官)이라 불리는 고위 공직자 출신이 대부분이다. 10대 그룹 40개 계열사가 지난달 28일까지 사외이사 후보자로 추천한 73명 가운데 장·차관·국장 등 공직자 출신이 31명(42.5%)에 달했다. 현직 교수도 29명으로 40%에 육박했다. 대기업에 대한 감시·견제 여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조사나 국세청 세무조사 등에 대비한 '보험용'으로 전관을 경쟁적으로 영입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높은 보수에 비해 사외이사의 경영 감시 활동은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실제로 포스코 사외이사 7명은 지난해 이사회에 상정된 35건의 안건을 모두 찬성 통과(수정 찬성 4건 포함)시켰다. 삼성전자 사외이사도 지난해 47건의 안건에 모조리 찬성표를 던졌고, 현대자동차도 32건의 안건 처리 과정에서 반대표가 전혀 없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사외이사가 로비스트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액주주가 사외이사를 직접 뽑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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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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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핵실험은 이란을 위한 것이었다?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이란핵, 국제사회의 근심

    ▶“북한의 세 번째 핵실험은 이란을 위한 것이다.” 북한이 세 번째 핵실험을 강행한 뒤 미국의 국제뉴스 전문 뉴스 사이트 <월드 트리뷴>이 보도한 기사의 한 구절이다. 실험 현장을 이란 과학자들이 참관했다는 다른 보도도 있다. 보도의 진위가 확인되려면 아마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는 이란과 북한 핵문제를 보는 서구의 시선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북한 핵과는 또 다른 이란 핵 문제는 지금까지 어떤 경위를 통해 발전해 왔을까?

    “미국이 북핵 제대로 대처 못하면

    이란의 핵야망 더 대담해진다”

    외신들은 ‘현행범’ 북한보다

    우라늄 농축 문제로 숨바꼭질하는

    이란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더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25~26일 카자흐에서 열린 협상

    유엔 상임이사국과 독일은

    “20%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면

    경제제재를 풀겠다” 했지만

    이란 대표가 밝힌 것은

    “핵개발권을 위한 단결”이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집요한 경고에도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다음날인 2월13일. 세계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힐러리 클린턴의 뒤를 이어 미국 국무장관의 자리에 취임한 존 케리에게 집중됐다. 그는 예상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맹비난한 뒤 “세계는 북한의 세번째 핵실험에 대해 빠르고, 분명하고 강하고, 신뢰할 만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신들의 비상한 주목을 잡아끈 발언은 그다음에 이어졌다. 케리가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노력은 다른 지역의 핵 비확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전역 노릴 수 있는 다양한 미사일 과시

    그가 말한 ‘다른 지역’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미심쩍은’ 우라늄 농축으로 국제사회와 대립하고 있는 이란이었다. 케리는 북핵 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북한과 이란의 문제는 서로 ‘연계돼’(linked) 있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해 표현했다. 북한 핵 문제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문제겠지만, 그것이 이란으로 ‘확산’되는 것을 더 경계해야 한다는 인식인 셈이다. 이를 두고 미국 <뉴욕 타임스>는 14일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은 북한 핵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을 경우 장차 이란의 핵 야망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외신들의 동향을 봐도 벌써 세번이나 핵실험을 강행한 ‘현행범’ 북한보다, 우라늄 압축 문제를 두고 서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잠재적 범죄자’ 이란에 더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을까? 그리고 북한과 어떻게 다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핵무기를 만들려면 핵탄두, 핵탄두를 만들려면 고농축 우라늄(또는 플루토늄)을 단숨에 임계점에 다다르게 하는 기폭장치 등이 필요하다. 그다음엔 핵탄두를 목표 지점까지 날려 보낼 수 있는 미사일이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북한과 이란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북한은 핵탄두 개발에선 이미 볼장을 다 본 상태다. 북한은 2006년부터 세차례 핵실험을 벌였고, 2월12일 세번째 핵실험에서는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줄였음을 뜻하는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견줘,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은하 3호’에 대해선,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발사체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궤변이겠지만, 핵은 있으나 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발사체는 없다는 논리인 셈이다.

    이란은 정반대다. 이란은 샤하브-1호(사정거리 300㎞)부터 이스라엘 전역을 노릴 수 있는 세질-2호(2200㎞)까지 다양한 미사일을 과시하고 있지만, 핵무기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2005년부터 이란은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고,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이뤄진 직후인 14일에도 “우리는 모든 핵무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주장하며 수상한 우라늄 농축을 계속하고 있다. 미사일은 있고, 핵무기에는 반대하지만 핵무기 제조 기술은 갖고 싶다는 속내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란은 왜 이렇게 핵 기술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1980년대 이란과 이라크(1980~1988)가 벌였던 피비린내 나는 7년 전쟁 시기 이란인들이 겪어야 했던 좌절과 공포에 눈길을 돌려봐야 한다.

    이란의 핵 개발은 사실 미국의 후원을 받던 친미 팔레비 왕조 시절부터 시작됐다. 이 시절의 핵 개발은 당연히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것이었다. 1967년 미국의 지원으로 테헤란 핵연구센터가 설립됐고, 이듬해인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석유파동)가 터진 뒤 전세계적으로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이란도 자연스럽게 프랑스, 독일 업체들과 핵발전소 건설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에 의한 이슬람 혁명이 성공한 뒤 그때까지 이뤄졌던 모든 핵개발 사업은 중단된다. 이란이 핵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판단 때문이었다.

    유엔안보리서 여섯번이나 “농축 중단” 결의

    이듬해 이란은 이라크와 전쟁에 돌입한다. 이 시기 이라크군이 이란의 주요 도시에 쏘아댄 스커드 미사일과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암암리에 진행해 오던 핵무기 개발 계획은 이란인들을 벌벌 떨게 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후세인의 핵 야망은 1981년 6월 이스라엘이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쪽에 위치한 오시라크 원자로를 공습해 파괴하면서 일단 좌절되지만, 핵에 대한 이란의 공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란은 1980년대 중반부터 혁명 이후 외국으로 이주한 핵과학자들을 불러들이고, 파키스탄, 중국, 러시아 등과 원자력 ���정을 맺어 핵 개발에 나서게 된다. 1986년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라 불리던 압둘 카디르 칸 박사 등이 이른바 ‘핵의 국제 암시장’을 통해 이란한테 핵 관련 시설의 건설을 위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이 무렵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이란에 전수되기도 했다. 이란이 자랑하는 샤하브-3(사정거리 900㎞) 미사일은 북한의 노동 미사일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밝혀진 사실이지만, 호메이니는 그 무렵 “이란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이라크와 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수기를 남기기도 했다.

    다른 한편, 핵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적잖은 의미가 있었다. 혁명이 일어나던 1979년 인구가 3300만명에 불과했던 이란의 2012년 인구는 8000만명에 육박한다. 이란은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혁명으로 한 차례 중단됐던 부셰르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부활시켜 1995년 러시아와 8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2002년 8월 전 세계인을 경악시킨 놀라운 폭로가 터져 나온다. 이란 반체제 인사들로 구성된 이란국민저항위원회(NCRI)가 이란이 중부 도시 나탄즈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알리지 않는 우라늄 농축시설, 아르크에는 중수로를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이후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와 서구 주요 국가들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된다. 국제사회와 이란의 줄다리기는 2003년 10월의 테헤란 합의와 2004년 11월의 파리 합의 등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이란은 합의를 뒤집고 농축을 재개한다. 이란의 핵 개발은 2005년 8월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더 노골화되고, 그로 인해 2006년 7월 안보리 결의 1696호를 시작으로 무려 6번이나 농축 활동을 중단하라는 안보리 결의와 이를 위반한 데 따른 제재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이란의 핵무기 제조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이와 관련해 국제원자력기구는 2011년 11월8일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된 20쪽 분량의 흥미로운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본문이 아닌 11쪽에 이르는 부록에 담겨 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미국, 이스라엘 등 주변국들로부터 확보한 첩보, 공개정보(OSINT), 이란 현지 시찰 등을 통해 확보한 여러 정보들을 토대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보고서에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시설과 기술을 △기폭장치 개발 △고성능 폭약 실험 △유체동력 실험 △지하핵실험 시설 △미사일 탄두 탑재 계획 등 12가지 항목으로 나누고, 항목별로 이란이 받고 있는 의혹과 그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다. 일본 방위연구소 슈에 슈지 교관이 지난해 1월 이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국제원자력기구가 제기한 의혹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이란은 핵무기에 사용될 수도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비밀리에 생산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고, 둘째, 기폭장치 개발을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며, 셋째, 이런 핵탄두를 이란이 자랑하는 미사일 샤하브-3호기에 장착하려 계획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란이 2003년 말 이전까지는 핵폭발 장치에 관련한 연구를 조직적으로 진행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이를 쉬운 말로 고치면, 이란이 현재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딱 떨어지는 증거는 없지만 핵무기 제조 기술을 확립하려는 시도들이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는 것이다.

    폭발실험 진행’ 파르친기지 사찰요구에 불응

    이에 대해서 일부 신중론자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발표가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내용이고 대부분 2003년 이전에 이뤄진 활동이 많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전체적으로 이런 사실은 이란이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란에 대한 본격적인 경제제재에 돌입했다. 이란은 현재 이에 맞서 농축 우라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두 갈래로 진행중이다. 하나는 국제원자력기구에 의한 사찰, 또 하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에 독일을 더한 ‘5+1’에 의한 협상이다. 국제사회는 이란이 테헤란에 있는 실험용 원자로용 연료라고 주장하는 20% 농축 우라늄의 제조를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력발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농축도가 3~5%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 등은 20% 농축 우라늄을 핵폭탄용 농축 우라늄의 전 단계로 보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지난 21일에는 이란이 나탄즈의 핵시설에 ‘IR-2m’이란 이름이 붙은 새 원심분리기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모델은 이전 것보다 3배나 빠른 속도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어, 이란의 핵 농축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란이 핵폭탄용 기폭장치 개발을 위해 고성능 폭발실험을 진행한 장소로 지목돼 온 테헤란 교외의 파르친 기지 사찰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란은 쉽게 응하지 않고 있다.

    지난 25~26일, ‘5+1’ 국가들과 이란 간의 핵 협상이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이뤄졌다. 이번 협상에서 5+1 국가들은 이란이 포르도 지하 농축시설에서 이뤄지고 있는 20%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 사찰을 받아들이면 이란에 가해져 있는 석유와 금융거래를 제외한 경제 제재를 일부 풀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포르도 시설의 폐쇄를 요구한 8개월 전 모스크바 회담 때 요구보다 후퇴한 것이다.

    이번 회담에 참여한 서구 외교관들은 협상이 “유용했다”고 표현했지만, 이란 쪽 협상 대표로 참여한 사이드 잘릴리는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단독 인터뷰에서 “현실적인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농축 정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 모든 이란인은 핵 개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단결해 있다”고 말했다. 이란이 혁명을 보위하고 이스라엘의 위협에 맞서는 데 핵 기술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바꾸지 않는 한, 국제사회와 이란 사이의 숨바꼭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란의 핵 기술은 북한이 그랬듯 조금씩 진보해 나갈 것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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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커터칼 피습’ 겪은 朴대통령, 경호도 달라진다…‘어깨 어떻게 잡나’ 부터 재논의



    여자가 총리? 독일이 뒤집혔다

    [동아일보]

    권력이란 음모와 술수의 지난(至難)한 가시밭길을 건넌 자의 손에만 들어오는 법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권력을 놓고 싸우는 정치는 가슴보다 머리가 우선이다. 일찍이 이런 권력의 속성을 간파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513년 ‘군주론’에서 “군주는 여성스럽고 결단력이 약하다는 모습을 절대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후 500년이 흘렀지만 리더는 ‘강한 아버지’ 같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와 권력의 속성은 한결같다. 여성 정치 지도자는 되기도 어렵지만 집권한 뒤는 더 어렵다. 그래서일까. 남자보다 더 많은 난관들을 극복하고 최정상에 오른 그들이 남긴 빛과 그림자 또한 훨씬 강하고 짙다.

    “메르켈이 총리가 되는 건 막아야 합니다”

    박빙으로 전개되던 2005년 9월 18일 독일 총선 직전, 독일 한 신문사의 중진 언론인 A 씨는 기민당(CDU) 소속 중진 정치인들로부터 쏟아지는 전화를 받았다.

    “아무리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대표가 총리 후보라지만 국가의 수장을 뽑는데 ‘여성 총리’가 말이 됩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메르켈이 총리가 되는 건 막아야 합니다. 저와 제 동료들의 생각이 모두 같습니다.”

    메르켈 총리와 매우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A 씨의 회고다. “기민당 출신 전직 장관들부터 주지사들까지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중도 좌파 사민당 소속)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도 내게 ‘여자는 총리로 안 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와 친분이 깊었던 내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정치권 내 여론이) 오죽했겠습니까.”

    2009년부터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4년 연속 선정됐고, 당분간 그 자리를 고수할 것이 유력한 메르켈 총리. 불과 4년 전 총리직에 오를 때의 믿기지 않는 독일 정가의 뒷모습이다.

    여왕이 여러 차례 통치한 영국과 달리 독일은 여성이 통치한 전례가 없다. 그런데 동독 출신의 물리학자, 목사의 딸로 성장한 개신교도, 두 번의 결혼을 하고도 자식이 없는 메르켈이 독일의 첫 여성 총리에 올랐다. ‘정치란 법대를 나온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기고, 가톨릭을 배경으로 한 보수주의 정당 기민당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기적 같은 일이었다.

    메르켈은 ‘헬무트 콜 전 총리의 정치적 양녀’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은 기민당의 심장에는 접근하지 못한 여자 정치인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진정한 이너서클에서 배제됐던 메르켈은 그 덕분에 콜 전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유로운 정치인이 됐고, 기민당의 개혁을 원한 일반 당원들의 지지로 당 대표가 됐던 것이다.

    메르켈이 총리가 되는 걸 보면서 기민당의 남성 정치인들은 30년 전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대처는 보수당 정권 시절 주택, 재무, 교통, 교육부 등 여러 부의 장관을 맡았지만 정작 총리가 된 것은 우연과 운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에드워드 히스 보수당 대표가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하고, 유력한 후계자였던 키스 조지프가 말실수로 대표 경선 출마를 포기하면서 대처는 1975년 보수당 대표에 당선됐다. 그는 4년간의 야당 대표를 거쳐 총리에 올랐고, “여성이 총리 역할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세간의 예상을 비웃듯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냉전 시대에 11년 동안 영국을 다스렸다.

    대처와 메르켈은 경제 위기에 빠진 국가, 수렁에 빠진 당에서 기회를 잡은 여성 정치인의 선두, 남성적인 리더십과 질긴 생명력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 메르켈 취임후 여성총리 새 단어 ´Kanzlerin’ 생겨 ▼

    총리실 인터넷 주소도 여성형으로 바뀌어


    대처재단의 연구팀장 겸 대변인인 크리스토퍼 콜린스 씨가 기억하는 일화. “대처는 총리가 된 뒤에도 거의 스스로 요리를 했다. 그런데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부엌이 좁았는지 하루는 ‘옆집 11번지는 부엌이 꽤 넓던데 부럽네요’라고 말하더라.” 11번지는 내각의 2인자인 재무장관 관저다. 대처 총리가 관저를 고치지는 않았다.

    메르켈 총리는 집무실 바로 위 8층의 아파트형 관저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맞은편의 암 쿠퍼그라벤 거리 6번지 건물 5층의 사저를 계속 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직접 가까운 슈퍼나 백화점을 들러 장을 본다고 한다.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의 해산물 코너에서 메르켈 총리를 만났던 한 지인의 말. “총리는 나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이리 잠깐 오시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 생선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오늘 생선 요리를 해야 하는데 고민이다’고 말했다. 그녀는 시장에선 그냥 평범한 주부다.” 남성 총리가 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취재차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메르켈 총리의 사저를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을까 싶어 건물을 찾았던 기자는 깜짝 놀랐다. 건물 앞에는 단 한 명의 경찰관도 없었다. 건물에서 30m쯤 떨어진 곳에 경찰차 한 대가 있을 뿐이었다. 입구에는 출입문 옆 인터폰을 누르는 곳에 메르켈의 남편인 ‘Prof. Dr. Sauer(자우어 교수)’라고 쓰인 작은 이름표만 있을 뿐이었다.

    여성 지도자가 등장한 뒤 새로운 단어들도 생겨났다. 독일어로 총리를 뜻하는 ‘Kanzler(칸츨러)’의 여성형 명사인 ‘Kanzlerin(칸츨러린)’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총리실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도 www.bundeskanzler.de에서 www.bundeskanzlerin.de로 바뀌었다. 영국에서는 총리의 남편을 뜻하는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이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한국에서 가장 큰 변화는 경호

    첫 여성 대통령을 맞은 한국은 변화의 폭이 더 클 것 같다.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경호. 대통령 경호실은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한 직후 처음으로 ‘여성대통령 경호 직무 교육’을 실시했다. 대통령 경호의 제1수칙인 ‘대피 조치(괴한의 습격 등 돌발 사태 발생 시 대통령을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위험 지역에서 대피시키는 것)’에 대한 내용부터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대통령 근접 경호 중인 경호관들이 대통령의 어깨를 양손으로 강하게 붙잡고 안전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게 기본이었다. 박 대통령의 경우 대피 조치 시 여성 경호관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대통령의 어깨를 어떻게, 또 얼마만큼 강하게 잡고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재논의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었고, 자신도 2006년 지방선거 유세 중 ‘커터칼 테러’를 당한 ‘피습 트라우마’가 있는 만큼 청와대는 돌발 상황을 대비한 경호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청와대 본관 앞 경호실 전용 체력단련장인 연무관에서���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주변의 소리에 따라 권총을 발사하는 사격 대응 훈련이 집중 실시되고 있다. 주변에 총 소리, 풍선 터지는 소리, 타이어 터지는 소리 등 총 소리와 유사한 다양한 소리를 잇달아 들려주면서 진짜 총 소리에만 권총을 뽑는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주로 사용할 공간과 각종 집기도 여성 대통령에 맞게 교체를 준비 중이다. 대통령이 수시로 사용하는 메모지의 이름이 이미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 대통령으로 바뀌었고, 필기도구 등 각종 소품도 조만간 바꿀 것으로 알려졌다.
    ▼ 소련 “철의 여인” 조롱… 대처 “그말 좋네” ▼

    진짜 변화는 소프트웨어… 무성(無性)의 지도자 대처


    독일과 영국에서 여성 지도자의 등장에 따른 진짜 변화는 소프트웨어에서 두드러졌다.

    또 다른 언론인 B 씨의 얘기다. “메르켈이 총리가 된 뒤 페터 슈트루크 사민당 원내대표를 만났을 때 ‘메르켈 총리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오전 9시에 총리실에 갔는데 레드와인 병이 없고 모든 결재 서류를 꼼꼼히 보고 사안을 완벽히 파악한 상황에서 지시를 주는 총리를 만나는 것도 즐겁더라’고 답하더라.” 역으로 슈뢰더 전 총리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메르켈의 ‘완벽주의’다.

    대처와 메르켈이 총리직에 오르는 데 ‘여성’이라는 장점이 큰 영향을 미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무능한 보수당, 비리의 기민당은 개혁과 변화를 원했고 절묘하게 두 사람은 그때 그 자리에 신선하고 깨끗한 여자 정치인으로 서 있었다.

    대처와 메르켈은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수재로 자수성가하며 남성들의 세계를 뚫고 올라가 정상에 이른 것부터 완벽주의와 강인한 1인자의 리더십을 보여준 점까지 같다. 그리고 과학도 출신인 두 사람은 총리가 된 뒤 ‘여성’이라는 ‘성’의 문제를 논리와 이성, 한 치의 오차도 인정하지 않는 과학의 세계로 덮어 버렸다.

    특히 대처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에 남자보다 더 차가운 중성의 리더십을 가미해 완전히 새로운 정치인상을 만들어 냈다. 영국 최고의 대처 전문가인 대처 전기 작가 존 캠벨 씨는 “대처는 섹스리스(sexless), 즉 무성(無性) 정치인이다. 본인 스스로 여자라고 인식한 적이 없고 남자다워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스스로가 남자보다 더 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철의 여인’이라는 말은 옛 소련이 대처를 조롱하려고 지어낸 것이지만 정작 본인은 가장 좋아했던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콜린스 대변인도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대처 총리는 ‘첫 여성 총리의 느낌이 어떠냐’는 질문을 제일 싫어했다. 이런 질문에 대처는 항상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여성 총리가 돼보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대처의 완벽주의를 보여주는 숨겨진 일화. 대처는 전용 코디네이터와 미용사가 있었는데 특히 미용사는 각료회의장과 주요 회의가 열리는 곳에 모두 따라다녔다고 한다. 대처는 회의가 길어지거나 연속적으로 다른 회의가 이어질 때면 중간에 잠깐 옆방으로 가서 재빨리 드라이를 하고 나왔다. 머리 모양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심지어 머리카락이 한 올만 삐져나와도 바로 손질을 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한국 여성 정치에 드리운 박근혜의 그늘

    “마흔 넘어 둘째를 임신한 채 선거를 치르는데 나중에는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금배지를 달아야 하나’라는 깊은 회의가 몰려 왔다. 여기서 물러나면 지역주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정치적으로도 끝장이란 생각에 버텼지만 다시 하라면 결코 못 할 것 같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부산 연제)은 선거 뒤 주변에 넋두리처럼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도 여성 정치인들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어렵기만 하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여성 정치인들에게 ‘롤 모델’이면서도 넘어서기 어려운 깊은 그림자를 던지는 이중적 존재다. 박 대통령은 한국 사회가 배출한 거물급 여성 정치인 중 정치에 ‘다걸기(올인)’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퍼스트레이디 대행으로서의 청와대 경험, TK(대구·경북)라는 확고한 지역 기반을 접어두고라도 남편과 자식이 없는 독신, 날씬한 체형에다 미인이라는 평가(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받는다. 반면 여성의 전통적 의무와 책임은 거의 없는 특수한 조건까지 겸비했다. 여기에 2004년 파산 직전의 한나라당을 ‘천막 당사’ 돌풍으로 살려낸 것으로 시작된 ‘보수의 잔다르크’라는 정치 역정과 이미지가 더해진다.

    하지만 그런 박 대통령도 2006년 테러를 이겨내고 당내 자기 사람(친박)들이 ‘숙청’(2008년 총선 전 친박 대거 낙천)되는 상황을 참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은 어떤 여성 정치인도 갖기 어려운 조건을 갖췄고 보수와 진보가 10년씩 권력을 분점해온 만큼 천시(天時)도 좋았는데도 일반 정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고 평가했다.

    후배 여성 정치인들도 이 점을 잘 안다. 대표적인 친박인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국회의원 노릇도 쉽지 않은데 한국적 상황에서 대통령을 꿈꾸고 도전한다는 게 웬만한 사람에게는 머나먼 산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성공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김희정 의원은 “선배 여성 의원이 나온 지역에서 다시 여성 정치인이 나올 가능성이 높듯이 박 대통령이 성공해야 ‘제2의 박근혜’ ‘새로운 여성 리더십’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선인 유은혜 민주당 의원도 “결국 현 시점에선 박 대통령이 성공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정치에 다 던진 그들… 롤모델이지만 넘기 힘든 벽 ▼

    ‘엄마’ 같은 메르켈의 여성 리더십… “진정한 킬러일 수도”


    메르켈 총리는 자식이 없다. 그는 “정치에 투신했을 때 35세였고 이후 아이를 갖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메르켈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무티(mutti·엄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필요할 때에는 모성애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따뜻하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모습에서 나온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데 탁월한 소질과 놀라운 인내심을 보여준다는 게 공통적인 평가다.

    타냐 뵈르첼 베를린 자유대 교수는 메르켈의 이런 소통의 정치에 대해 “처음에는 그의 신중하고 다소 느린 스타일이 단점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가 심화되고 유럽연합(EU)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리자 그의 리더십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메르켈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모든 상황을 듣고 조율하며 최대공약수를 만들어 냈다”고 분석했다.

    메르켈 총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베를린 북동부의 우커마��크에 소유한 주말 별장을 이용하는 것도 편안한 소통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곳은 진짜 가깝고 필요한 사람을 초대해 자신이 재배한 채소 등을 갖고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비밀공간이다. 그는 여기서 온갖 농담은 물론이고 자신의 장기인 유명인 성대모사까지 해 보인다고 한다.

    동독 출신으로 통일 후 1990년 첫 선거에서 메르켈과 함께 정계에 데뷔한 지한파 여성 정치인 카타리나 란트그라프 의원(기민당)은 “메르켈 총리는 누구와 만나도 그 사람의 눈높이에서 말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상대가 공감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메르켈은 자신의 최측근을 모두 여성으로 채웠다. 독일 정가에선 “독일은 여성 3인방이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이 3인방은 ‘걸스 캠프(girls camp)’로도 불린다. 메르켈 총리, 메르켈의 분신으로 불리는 베아테 바우만 총리비서실장, 에바 크리스티안젠 정책기획특보를 일컫는 말이다. 메르켈의 양 날개로 불리는 이들은 메르켈이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다. 메르켈이 만나야 할 사람을 정하는 것부터 총리가 내리는 모든 정책 결정에 깊숙이 관여한다.

    남성보다 여성, 새 사람보다 아는 사람을 믿는 메르켈의 스타일은 동독 공산 정권의 감시 속에서 성장한 특수한 환경과 관련이 깊다는 게 B 씨의 분석이다. 그는 “메르켈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목사 사택 안에서만 편안하다고 느꼈다. 남자 측근 참모로는 로날트 포팔라 총리실 장관 정도가 유일하다. 자신처럼 정확하고 계획적인 사람을 좋아하다보니 남자보다 여자를 선호하게 된 것 같다. 특히 믿고 나눈 얘기가 외부로 새 나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메르켈은 모든 회의의 의제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료회의에서 그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장관은 무안해지기 일쑤다. 메르켈 총리는 툭하면 회의를 여는 유럽연합(EU) 회의장에서도 가장 끈기 있고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독일 정치권 관계자는 “EU 정상회의는 새벽은 물론 아침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다과와 함께 쉬는 시간을 갖는다. 피곤한 참석자들은 뻗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메르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끈기와 집요함에서 메르켈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1월 30일 베를린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1월 30일 스스로 총리에 오른 지 80주년을 기해 나치의 과오를 반성하는 기념식이 임시의회로 열렸다. 마침 연방공보처의 초청을 받은 기자는 이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행사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자 지치고 몸이 경직돼 불편한 듯 허리를 구부렸다 펴고, 어깨를 움직이기도 하고, 의자를 좌우로 조금씩 돌리는 각료들이 있는가 하면 옆 사람과 간단히 귓속말을 하는 각료들도 있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한 시간 내내 허리를 편 채로 두 손을 앞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있다가 증언이 끝나자 나치 박해 생존자의 손을 잡고 회의장을 나갔다.

    메르켈 총리가 ‘킬러’ ‘독거미’ 등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언론인 하요 슈마허는 “메르켈은 경쟁자들을 암살하지 않았다. 단지 자만심과 조바심에 젖어 오판과 실수를 반복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기다렸을 뿐이다. 메르켈이 남자 정적들을 제거한 것은 독이 아니라 인내심이었다”고 설명했다.

    무능한 부하를 제거할 때 쓰는 전술도 놀랍다. 한 정가 소식통은 “메르켈은 무능력한 부하에게 도저히 해낼 수 없을 만큼 어렵고 큰일을 준 뒤 스스로 무능력을 깨닫거나 주변의 비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든다. 그녀는 진정한 킬러다”라고 말했다.

    대처가 남긴 빛과 그림자

    대처는 가끔 여성의 장점을 이용했다. 한 예로 작가 캠벨은 “대처는 크고 어렵고 복잡한 이슈들을 가정사에 빗대 설명하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냉전 시대의 국제 관계를 가정의 가족 관계로 설명한다든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비교할 때도 가정 경제를 꾸려 나가는 방법으로 비유를 하는 것 등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본질과 거리가 멀었다. 캠벨은 “대처는 여성성을 내보이는 여성 정치인은 총리가 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만들어버렸다. 여자가 많은 걸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그런 성공을 위해선 남자보다 더 남자다워야 하고 가족과 사생활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캠벨의 이어지는 얘기다. “대처는 자신을 성공한 남자처럼 키우려 한 아버지에게만 좋은 딸이었다. 항상 아버지만 언급했으며 어머니와 자식들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았다. 결혼한 지 1년 후 이란성 쌍둥이를 낳았지만 가정일은 완전히 버렸다. 자식들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이들 이란성 쌍둥이는 모두 훌륭하게 자라 현재 아들은 사업가로, 딸은 기자 겸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 씨의 의견도 비슷하다. “대처 이후 여성의 사회진출이 조금 많아진 건 사실이나 대처와 연결시키는 건 무리다. 분명한 건 대처가 여성의 인권이나 사회 진출을 위해 직접적으로 노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단 한 명의 여성도 각료로 임명하지 않은 총리는 대처가 유일하다.”

    토인비 씨는 대처의 또 다른 그늘을 이렇게 지적했다. “대처로 인해 노조의 힘이 약화됐고, 이를 통해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문제가 해결됐으며,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는 대영제국의 자긍심을 높였다. 하지만 대처는 정책적 측면은 물론이고 이념적 측면에서까지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돕는다는 극단적인 신념을 통해 극단적인 부의 편중과 대물림을 고착화시켰다. 영국은 이제 불평등의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국가가 됐다.”

    반면 콜린스 대변인은 “대처는 1989년 11월 폴란드를 방문해 독재 치하를 살아가는 국민에게 큰 희망을 전했다. 그녀는 서구 정치인들이 가만히 있을 때 소련에 대항해 일어섰고 소비에트 치하의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결단력과 에너지를 통해 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사회에 만연해온 통제와 집단주의의 그늘을 걷어냈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조언… 대처의 신념과 메르켈의 포용력

    대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지만 국민은 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한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지난달 ‘지난 반세기 동안 8명의 영국 총리 중 누구를 최고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처가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했다. 메르켈도 경천동지할 일이 없는 한 9월 총선에서 다시 총리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캠벨 씨는 “대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용기 있게 제시하고 설득했다. 위기에 처할수록 국민은 확신을 가진 지도자를 원한다. 어떻게 하면 국민을 잘살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토인비 씨는 “대처는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서 옥스퍼드를 갔고 혼자의 능력으로 최고의 리더가 됐다. 그래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다르다. 아버지의 후광과 우호적인 정당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대처 스타일에 치중하면 아버지의 독재를 연상시킬 수 있다. 특히 평등 문제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 모두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채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대처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박근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베일 교수는 “대처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듣지 않은 건 큰 잘못이다. 박 대통령은 비전을 가져야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바꾸거나 축소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지적은 메르켈 총리의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과 연결된다. 독일은 한국이 직면한 통일, 성장, 복지 등의 과제를 앞서 해결해내고 유럽 최강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한국에 시사점이 많다.

    뵈르첼 교수는 “2차 대전 이후 주변 강국의 질시, 복잡한 국제정치 역학 속에서 지내온 독일처럼 동북아 패권경쟁, 북핵 문제, 남북통일 등 한국 역시 매우 크고 복잡한 이슈가 많다. 박 대통령은 메르켈처럼 크고 멀게 내다보면서 이견을 포용해주고 갈등을 조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광웅 서��대 명예교수는 저서 ‘미즈 프레지던트’에서 공존의 지혜를 가진 리더십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내가 얼마나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느냐’부터 자문해야 한다. 주어진 이익을 다 포기하고 세속으로부터 초연하며 경쟁자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대통령은 참모를 넘어 마음의 문을 열고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을 한 전직들과 어울려 지혜를 짜낼 수 있어야 한다. 정적에게 관용을 베풀고 그들의 논리를 존중할 줄 아는 아량만이 이 나라를 하나가 되는 민주국가로 만들 수 있다.”

    베를린·런던=이종훈 특파원·이승헌·백연상 기자 taylor55@donga.com

    [커버스토리]국가통합 업적 이룬 여성지도자 원조들



    “신대륙 탄압 말라… 그들도 내 백성” 스페인 이사벨라, 콜럼버스 수감

    [동아일보]

    “… 사람을 두고 말한다면 사내는 높고 계집은 낮은 것이다. 어찌 늙은 할미가 안방으로부터 튀어나와 국가의 정사를 처리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을 것인가? 신라는 여자를 잡아 일으켜 임금 자리에 앉게 하였다. 참말 어지러운 세상에나 있을 일이었으니 나라가 망하지 아니한 것이 다행이었다.”

    이 구절은 고려시대 김부식이 삼국사기 ‘선덕여왕’ 편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석으로 달아 놓은 것이다. 여왕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엄격한 유학자였던 김부식만의 독특한 견해도 아니었으며 유교적 전통이 강한 동양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유럽에서 여왕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가 성숙해갈 무렵인 15세기 후반이었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연이어 등장해 조국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성별은 통치력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이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이사벨라 여왕은 현재의 스페인 왕국을 만든 사람이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에스파냐 사람(Espa~nol)’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이사벨라의 시대에 스페인 남부는 800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북부의 바스크 지역도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바르셀로나는 독립국이었다. 그 나머지 영토를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동서로 양분하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작고 혼란스러운 카스티야 왕국에서 이복 오빠인 엔리케 4세와 정치적 타협으로 내전을 끝내고 왕위계승권을 확보했다. 엔리케에게는 후사가 없었고 이사벨라가 왕국의 유력한 왕위계승자이었기 때문에 여섯 살 무렵부터 청혼자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그는 아라곤 왕국의 왕위계승자인 페르난도 왕자에게 구혼함으로써 스스로 정략결혼을 선택했다.

    이사벨라는 집권 초기부터 심각한 내우외환을 극복해야 했다. 왕권은 약화되고 이미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해 있던 포르투갈의 침공을 받았다. 이사벨라는 포르투갈과 싸워 승리한 뒤 귀족들을 굴복시켜 조세징수권, 화폐발행권, 지방관리 임명권을 되찾아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 그는 의회를 무시하고 무력시위도 불사했지만 국민들과 직접 접촉해 그들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얻는 방법으로 기득권의 저항을 이길 수 있었다.

    대략 10년에 걸쳐 왕권을 강화하며 자신감을 얻은 그는 ‘레콘키스타(Reconquista)’를 선언했다. 이는 ‘재정복’이라는 의미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을 완전히 몰아내는 작업이었다.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은 7년에 걸친 긴 전쟁을 통해 재정복에 성공했으며 민족적인 일체감을 되찾았다. 공식적인 왕국의 통합은 이사벨라의 다음 세대에 이뤄졌지만 이때부터 그들은 스스로를 ‘에스파냐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고대 로마시대의 지명인 ‘이스파니아(Hispania)’에서 유래된 명칭이었다.

    ‘레콘키스타’와 함께 이사벨라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게 배 세 척을 내주어 신대륙을 개척하게 한 것이다. 이 항해를 계기로 스페인은 급격히 부유해졌고, 그의 말년에 이미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사벨라는 부정적인 유산도 남겼다. 이베리아 반도를 재정복한 후 무슬림과 유대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추방했으며, 그의 통치 기간에 ‘종교재판(Inquisition)’이 시작됐다. 이는 유별나게 독실한 그의 가톨릭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의 신임을 받기 위해 주변인들이 경쟁적으로 이교도에 대한 탄압에 앞장선 것이다.

    이사벨라는 종교적 탄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예가 콜럼버스와의 일화다. 초대 서인도제도 총독으로 임명된 콜럼버스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원주민들을 모두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 했다.

    이 보고를 받은 이사벨라는 즉각 콜럼버스를 체포해 송환한 다음 감옥에 집어넣었다. “인디오들도 모두 나의 백성이며 고귀한 신의 피조물이라 그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정의와 공정성이 행해지기를 바랍니다.”

    이사벨라는 죽을 때까지 콜럼버스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여왕의 사후에야 페르난도에 의해 석방됐다.


    ▼ 인재발탁 탁월한 엘리자베스1세… 말타고 전국 돌며 대중과 소통 ▼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는 타고난 천재였다. 일곱 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는데 모두 열 살 무렵 마스터했다고 한다. 그는 초기 잉글랜드 르네상스 문학의 선구자였다. ‘엘리자베스 튜더’라는 이름으로 시집을 여러 권 출간했고, 당시 문화 선진국이던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작품들도 영어로 번역해 냈다.

    문학적 재능보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었다. 그의 최측근이었던 윌리엄 세실 경은 원래 정치적으로 반(反)튜더, 반엘리자베스 진영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일찌감치 참모로 발탁되더니 24년 동안은 정치고문으로, 그 후 26년 동안은 재무상으로 봉직했다. 여왕이 신교도 망명자 출신의 신참 하원의원 프랜시스 월싱엄을 참모로 발탁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그를 ‘현대 첩보전의 창시자’로 높이 평가한다.

    여왕은 41세 생일 즈음에 유명한 해적인 존 호킨스를 왕립해군의 준제독(Rear Admiral)에 전격 임명해 해군함정의 건조를 맡겼는데 그는 향후 200년 동안 유럽 각국 해군의 표준이 될 신형 프리깃 전투함을 개발했다.

    호킨스를 발탁할 때 정규 해군 출신 인사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게다가 호킨스는 골수 가톨릭 신자였다. 당시 잉글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은 여러 차례 쿠데타나 여왕의 암살을 기도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측근들 중 가톨릭 신자를 제거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는 시인답게 멋진 말로 이에 응수했다. “나는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해 마음의 창을 열지는 않을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사람을 쓸 때 그의 출신이나 과거 행적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그가 일구어 낼 미래만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사실 엘리자베스 1세는 재위 기간에 의회도 몇 번 소집하지 않을 정도로 독재자였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잘 깨닫지 못했다. 여왕은 말이나 마차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대중과의 소통에 의존하는 현대식 정치인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그는 구텐베르크가 불과 한 세대 전에 발명한 금속활자를 가장 모범적으로 활용한 프로파간다의 대가이기도 했다. 여기엔 타고난 문학적 재능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는 그의 별명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나 ‘영광의 여인(Gloriana)’도 모두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업적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거나 대영제국을 출범시킨 정치적인 성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사회는 리더의 성향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엘리자베스의 시대는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신라의 선덕, 진덕여왕은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졌고 이사벨라 1세는 스페인을, 엘리자베스 1세는 대영제국을 설계했다. 물론 역사에는 신라의 진성여왕이나 이집트 왕국의 마지막 통치자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정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2013년 대한민국은 여성 대통령이 통치하는 흔하지 않은 시대를 맞았다. 5년 후, 그리고 후일의 역사는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김후 ‘불멸의 여인들 역사를 바꾼 가장 뛰어난 여인들의 전기’ 저자
     

    새로운 대통령에서 보는 게임 속 파워풀 한 지도자는 어떤 모습?



    얼마 전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질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됐다. 사상 유례없는 초 접전 속에 당선된 새로운 대통령을 향해 각종 언론과 단체에서는 저마다의 분석을 내놓으며 여러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앞으로의 5년을 다양한 시각에서 예측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의 나라를 이끌어가는 리더 지도자는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런 지도자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다룬 다양한 다큐멘터리는 언제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으며, 다양한 성향의 지도자의 모습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가상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게임에서도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는 게임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경우를 종종 접할 수 있다. 다양한 스토리를 펼칠 수 있으며,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세계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인상적인 모습의 지도자는 게임의 스토리텔링에 사실감을 더하며 몰입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게임 속 등장하는 강력한 지도자를 꼽는다면 웨스트우드에서 개발한 전략 시뮬레이션의 명작 게임 커맨드앤컨커 시리즈에 등장하는 '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커맨드앤컨커는 당시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참신한 시스템과 높은 수준의 그래픽 등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특히 시뮬레이션 게임에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 더해져 여느 게임보다 뛰어난 몰입도를 가진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커맨드앤컨커의 '케인'은 지구 방위군 GDI와 대립하는 단체인 Nod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자신을 예언가라고 말하는 '케인'은 매우 높은 지능을 가진 반사회주의자로써 자신을 신봉하는 사람을 모아 Nod를 창설한 인물이다.

    게임 속에서 '케인'은 지구 방위군과 전쟁을 치루는 인물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좌중을 휘어잡는 언변, 뛰어난 두뇌로 대중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게임의 세계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커맨드앤컨커의 모든 등장 인물은 마치 영화가 진행되듯 실제 배우들이 배역을 맡아 연기를 펼쳤는데 이중 '케인'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웨스트우드의 비디오 감독인 '조지프 D. 쿠칸'으로 촬영과 연기 두 가지를 모두 소화해냈다는 것이다.

    2K게임즈의 인기 액션 어드벤처 게임 '바이오쇼크'에서도 인상적인 지도자가 등장한다. '바이오쇼크 1,2'의 무대가 되는 해저도시 랩처를 설립한 '앤드류 라이언'이 그 주인공.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등장하는 '앤드류 라이언'은 육지로부터의 단절을 선언하고 완벽한 자유주의가 번영하는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건설하려 노력한 인물이다.

    하지만 누구의 간섭도 없고 어떠한 제제도 없는 밀폐된 해저도시 속에서 유전자 변형을 이용한 기술이 전파되며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이들이 등장하게 되고, 결국 유토피아를 꿈꾸며 건설된 랩처는 괴이한 생물들로 가득 찬 죽음의 도시가 된다.

    결국 앤드류 라이언은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처단하는 방법을 택하고 결국 미친 지도자로써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바이오쇼크는 수준 높은 그래픽과 음산한 배경, 다양한 액션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내용을 다룬 뛰어난 스토리라인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최고의 스토리를 가진 게임으로 평가 받고 있다.


    광기에 치우친 지도자가 있다면 나라를 위한 마음에 잘못된 선택을 한 지도자도 있다. 전세계에 좀비 붐을 일으킨 캡콤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영화화한 '레지던트 이블: 댐네이션'의 여성 대통령 '스베틀라나 벨리코바'가 그 중에 하나다.

    강대국 사이에서 시달리는 약소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완전히 독립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생화학 무기라는 위험한 수단을 선택하게 된다. 동슬라브 공화국의 대통령이자 전 현직 교관으로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는 '스베틀라나 벨리코바는 비록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조그만 나라에서 태어나 독립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의 모습을 다뤄 많은 원작 팬들과 게이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도 했다.

    '문명의 패왕', '비폭력 폭력주의자' 등으로 불리는 문명5의 '간디' 역시 '게임 속 지도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다. 한 나라의 문명을 대표하는 인물로 인도의 지도자로 등장하는 문명5의 '간디'는 유난히 공격적인 인공지능과 다수의 병력을 보유할 수 있는 인도의 특징 덕에 많은 게이머로부터 '패왕'이라는 칭호로 불리기도 했다.

    때문에 '순순히 금화를 넘기면 유혈사태는 피할 것입니다', '전세계의 모든 문명을 지배해 폭력을 없애는 것이 비폭력주의' 등 문명5의 간디를 소재로 한 다양한 패러디를 양산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글 / 조영준 기자 <june@gamedong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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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오바마, 제2의 힐러리 될까

    힐러리 클린턴 前국무장관
    -대통령보다 바쁜 퍼스트레이디?

    전국 돌며 비만 방지 캠페인 칼럼 쓰고 아카데미상도 발표

    -남편보다 지지도 20%p 높아

    차후 상원의원 도전 소문도… 민주당 "대선후보 자질 갖춰"


    춤, 영화, 방송, 요리, 패션, 언론 기고….

    미국 오바마 2기 출범 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종횡무진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정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권의 재정 싸움에 휘말려 꼼짝 못하는 상황이지만, 미셸은 거의 매일 화제를 만드는 것이다. 미 언론들은 "미셸의 최근 행보는 남편 퇴임 후 독자적인 정치를 하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퍼스트레이디에서 정치인으로 성공적 변신을 이룬 힐러리 클린턴의 길을 꿈꾼다는 것이다.

    2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는 미셸 여사의 기고가 실렸다. 현직 퍼스트레이디가 언론에 글을 보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아동 비만 방지 캠페인인 '레츠 무브'(Let's Move) 캠페인을 이끄는 그는 "건강식품은 팔리지 않아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사회적 통념이 틀렸음이 입증되고 있다. 미국의 모든 기업이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 의미 있는 조처를 하는 기업 지도자들과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7일부터 이틀간 '레츠 무브' 홍보차 미 주요 도시를 돌며 5차례 연설을 통해서도 대중 앞에 섰다.

    미셸은 1기 때도 간간이 방송에 출연했지만 최근 그 빈도가 부쩍 늘었다. 지난달 27일 ABC의 아침방송에 출연해 백악관 내 생활에 대해 얘기를 풀어놓은 미셸은 지난주에는 NBC '레이트 나이트'에서 사회자 지미 팰런과 함께 아동 비만을 막기 위한 '코믹 댄스'를 선보여 최고의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달 24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하이라이트인 작품상 수상 때 백악관에서 화상을 통해 깜짝 등장해 수상작을 발표했다. 미셸은 1월부터는 트위터를 시작해 백악관의 소소한 일상을 올리고 있고, 이를 통해 직접 만들었다는 김치를 공개하기도 했다.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친근한 이슈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미셸은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도가 40~50%대인 반면 미셸의 지지도는 60~70%에 이른다.

    이렇기 때문에 미셸이 '정치'를 꿈꾸고 있다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백악관을 떠난 뒤 고향 일리노이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퍼블릭 폴리시 폴링(PPP)에 따르면 일리노이주의 현역 공화당 상원의원과의 가상 대결에서 미셸은 60% 대 34%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민주당 내에서도 '미셸이 힐러리처럼 정치인을 거쳐 차기 대선 유력 카드가 될 자질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임민혁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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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 세계銀 총재, 선비정신으로 세계적 인물 돼… 그 정신 되살려 국가브랜드로 삼아야 합니다"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 원장, TV조선 시사토크 '판'서 열변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지낸 엘리트 경제 관료가 은퇴 후 5년째 선비정신을 널리 알리고 교육하는 일에 열심이다. 2009년부터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병일(68)씨다. 그는 2008년부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김 원장은 1일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공직생활 할 때부터 시간 나면 도산서원과 퇴계 종택으로 역사기행을 다녔고, 그걸 유심히 본 유림들이 저에게 선비문화수련원과 한국국학진흥원을 맡긴 것 같다"며 "선비정신은 결국 가장 슬기로운 삶의 자세"라고 말했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실력도 쌓아야 하지만, 자주 대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자기는 낮추고 남은 높이고 공손하게 대우하고, 자기 안위보다는 남의 안위와 자기가 몸 담은 공동체의 안위를 생각하는 게 선비정신입니다. 넓게 보고 멀리 보는 지혜로운 삶이지요."

    김 원장은 "요즘 인사청문회를 보면 공직자들이 선비정신의 기준에서 아주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성취의 목표가 물질제일주의인 것이 문제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한 사람이든, 마지막에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위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심해졌습니다. 전관예우, 회전문 인사 문제도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절한 물질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모든 분야 사람들이 물질적 가치만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는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는 선비정신을 국가브랜드화(化)한 뒤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비정신을 살려 세계적 인물이 된 좋은 예로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들었다.

    "김용 총재는 경제학 전공자나 금융 전문가가 아닙니다. 하버드대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는 인류학을 택했지요. 남들이 석·박사 공부에 몰두할 때 그는 빈민구호 활동을 벌였습니다. 30년 동안 이렇게 하며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켰지요.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삼고초려해 세계은행 총재로 모신 겁니다. 김 총재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학을 공부했고, 어머니에게선 동양의 미덕을 배웠다'고 했어요. 김 총재의 어머니(전옥숙 박사·80)는 50년 동안 퇴계학을 공부한 퇴계학의 세계적 권위자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줄곧 '사람답게 살아라, 헌신과 봉사를 하라'고 가르쳤답니다. 김 총재는 어머니로부터 '선비 수업'을 받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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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D 울린 탈북女 "길에 버려진 아이 손에…"

    [중앙일보]입력 2013.03.02 00:39 / 수정 2013.03.02 04:42

    길거리에 버려진 여자아이 손에 이런 쪽지가…
    “당신이 이걸 읽을 때쯤, 우린 굶어 죽었을 것”

    “어렸을 적, 저는 제 조국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인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길가에 버려진 여자아이를 데려왔는데, 손엔 이런 쪽지를 들고 있더군요. ‘당신이 이걸 읽을 때쯤 우리 가족은 굶어 죽었을 겁니다’라고.”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행위예술센터. 글로벌 오디션을 통해 TED 콘퍼런스 연사로 뽑힌 이현서(33·사진)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탈북자다. 1990년대 북한에 대기근이 닥쳤지만 이씨 가족은 운 좋게도 ‘먹고살 만’했다. 이씨는 압록강 근처에 살았다. 강 건너는 중국이다. ‘밤이면 이쪽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저쪽은 왜 밝을까’ 싶었다. 가끔 국경을 넘다 죽게 된 이들의 시체가 강물에 떠내려 왔다. 7살 때는 처음으로 공개처형을 목격했다. ‘북한=지상낙원’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14살 때 탈북했다. 그 후 10년을 중국에서 살면서 언제나 마음을 졸였다. 탈북자란 사실이 탄로 나면 북한으로 송환된다. 북송된 이들이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가고, 심지어 사형까지 당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는 2008년 한국으로 왔다. 남은 일은 가족을 데려오는 것. 중국에서 모은 돈과 한국에 들어오며 받은 정착금을 털어 가족 탈북자금을 마련했다. 일이 꼬여 이씨가 직접 북한으로 가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 2주간 버스를 타고 중국 대륙을 통과한 끝에 라오스에 도착했다. 중국말을 못하는 어머니와 동생은 중국 경찰의 검문에 벙어리 행세를 했다.

     라오스 한국대사관을 코앞에 두고 이씨의 가족이 경찰에 잡혔다. 벌금을 낼 돈이 없었다. 끝이구나 싶어 경찰서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누군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정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돈을 줬다. 아무 대가도 없이. 이씨가 왜 이렇게 내게 친절하냐고 물었다. 그는 “너를 돕는 게 아니라 북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나에게 일어난 기적을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게 해줄 수 있도록 대학을 마치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발표를 마쳤다. 관객들의 기립 박수가 한동안 이어졌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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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킷리스트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병달 교수의 4대강 자전거 종주



    휙 지나치던 숨은 절경, 느릿느릿 미니벨로에선 보이네

    [동아일보]

    “가까운 데나 댕기제, 먼다고 추운디 먼 데까지 와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허연 입김을 뿜으며 아침 일찍 식당에 들어서는 두 남자가, 주인아주머니는 이상해 보였나 보다.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자전거 두 대, 그리고 괴나리봇짐을 연상시키는 배낭.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피식 웃었다.

    “요즘엔 자전거 타는 사람이 없나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다시 끌끌 혀를 찼다. “봄가을엔 많이들 와. 딴 사람들처럼 날씨나 좀 따땃해지면 오제, 먼다고…. 올겨울 들어선 손님들이 첨이여.”

    청명한 하늘. 수은주도 많이 올라갔다. 그러나 2월 중순의 날씨는 여전히 매서웠다. 따지고 보면 기자의 ‘이 고생’은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됐다. 4대 강을 종주한 인물을 찾던 중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꽂혔다.

    20인치의 ‘무한 도전’

    사진 속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선수들이 타는 날렵한 사이클도, 힘 좋아 보이는 산악자전거(MTB)도 아니었다. 바퀴 지름이 20인치(약 50cm)밖에 되지 않는 미니벨로. 아담한 디자인 때문에 여성에게 인기가 있지만, 동네 심부름 갈 때나 쓰는 자전거가 아닌가.

    남자는 그런 미니벨로를 타고 4대 강 자전거 길을 종주한다고 했다. 이미 지난해 4월 한강과 새재, 낙동강의 자전거 길을 달렸다. 서울 잠실에서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600여 km 종주에 성공했단다.

    이병달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64)였다.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미니벨로로 하셨다는 국토 종주 경험을 좀 들려주시겠어요? 제 자전거도 미니벨로라 관심이 많이 가네요.”

    이 교수는 4대 강 중 한강과 낙동강을 종주했지만 영산강과 금강은 아직 자전거 여행을 끝내지 못했다고 했다. 마침 여행을 떠나려던 시점이란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단, 조건이 붙었다. “같이 해 보는 게 어때요?” 기자더러 ‘멘티’가 돼 직접 몸으로 느껴보라는 뜻. 이 교수와의 한겨울 영산강과 금강 종주가 시작된 사연이다.

    종주 전날 밤, 이 교수와 야간 우등 고속버스에 올랐다. 물론 미니벨로와 함께. 버스는 새벽에 광주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담양행 첫차를 탔다. 영산강 종주 자전거 길의 시발점이 바로 담양댐이니까!

    드디어 종주의 시작. 순조로운 여행이었다. 배가 고픈 것만 빼면…. 담양읍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현수막이 ‘아침 식사 됩니다’였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의 아주머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 다시 출발.

    진정한 두 바퀴의 자유

    “미니벨로는 빨리 달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그 대신 세상과 풍광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죠.”

    인적이 드문 한겨울 자전거 길. 덕분에 두 대의 자전거는 나란히 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달릴 수 있는 것도 미니벨로의 장점이죠. 자전거 타는 즐거움이 커진다고 할까요.”


    ‘멘토’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가 자전거 여행을 머릿속에 그린 시점은 지난해 4월이라 했다. 부산 을숙도에서 4대 강 자전거 길 완공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바로 4대 강 종주. “평소 좋아하던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온 국토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사이클이나 MTB를 타려 했다. 빨리 달리면 2박 3일, 조금 여유를 가져도 3박 4일이면 될 테니까. 그랬던 계획을 출발 직전 바꿨다. 추억을 살려볼까? 젊은 시절의 ‘무전여행’ 콘셉트로…. 미니벨로를 선택했다. 조금 더 넉넉하게 일정도 5박 6일로 늘렸다.

    재미는 기대 이상이었다. 풍광이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자전거를 멈췄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경치를 감상했다. 배가 고프면 어떻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슬로 라이프’를 온전히 즐겼어요. 그렇게 6일 내내 즐기고도 비용은 1인당 20만 원도 안 들었어요.(웃음)”

    강 따라 절경이 가득

    “저길 봐요, 저기. 정말 장관이네 장관이야.”

    영산강을 따라가다 광주를 지나는 길에 이 교수가 외쳤다. 그의 손가락은 무등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하얀 구름이 무등산 정상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절경이라는 표현을 이럴 때 써야 할까. 천천히 달리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광경이었다.

    강변에 조성된 야구장에는 주말 야구 연습을 하러 나온 어린이들의 함성이 가득했다. 또 다른 야구장에서는 아저씨들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강변의 오토캠핑장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마을을 통과할 때는 동네의 개들이 일제히 컹컹 짖어댔다. 따스한 햇볕을 받은 한낮의 도로에는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벌써 봄인가.

    자전거 여행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풍경과 인간 세상. 멀리 강물 위에 졸면서 떠 있는 철새 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시 멘토인 이 교수의 한마디. “최고의 절경은 경북 고령을 지나는 낙동강 자전거 길이에요. 고령 인근의 비포장 구간에 낙동강을 까마득히 내려다보는 길이 있어요. 아주 힘들죠. 그렇지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이 교수는 시골 정취가 가득한 충주∼수안보 새재 자전거 길의 정겨운 풍광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물론 고생을 한 날도 많았다 한다. 지난해 5박 6일간의 국토 종주 마지막 날이었다. 때아닌 폭우에 강풍까지, 그야말로 일진이 그처럼 사나울 수 없었다. 갖은 고생 끝에 도착한 을숙도. “그래도 그 기분만큼은…. 종주를 끝낸 그 행복을 어디에 비기겠습니까?”

    미니벨로로 국토 완주 그랜드슬램을

    3일간 영산강과 금강의 자전거 길을 모두 달렸다. 그 결과 이 교수는 4대 강의 종주를 끝냈다. 이 교수의 새로운 목표. 미니벨로로 ‘국토 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거란다. 이미 완공된 북한강 자전거 도로와 현재 조성 중인 섬진강 자전거 도로는 물론이고 앞으로 조성할 제주 환상 자전거 도로까지 모두 가보겠다는 포부다.

    “대학 다닐 때부터 남들이 잘 안 하는 걸 해 보고 싶었어요. 쉰 넘어 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죠.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미니벨로로 국토를 완주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이 교수는 운동 마니아라 불린다 했다. 자전거뿐 아니라 등산과 마라톤에 철인 3종 경기까지 못하는 게 없다.

    50세 때인 1999년 마라톤에 입문한 뒤 풀코스(42.195km)를 70회 완주했고, 철인 3종 킹 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도 5차례 완주했다. 서울대 의대 2학년 시절(1971년)엔 의대 산악부원 5명과 함께 북한산 인수봉에 올라 암벽루트도 개척했단다. 그 루트에 ‘의대길’이란 이름도 붙였다. “의대 교수님이 아니라 체대 교수님이신 거 같아요.”

    모든 운동종목이 매력이 있지만 그래도 자전거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공간의 확장성이 커진다고 할까요. 자전거를 타면 행동반경이 무척 넓어져요. 행동이 자유로워지고 편한 대로 다닐 수 있죠. 어지간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서 가니까 1년 자동차 기름값이 100만 원도 안 나와요.”

    아무리 그래도 커다란 중형차가 더 낫지 않을까. 이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달려야 하잖아요.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 끝내 달려 내 자전거 바퀴가 낸 궤적이 끊어지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 자전거를 안 타 본 사람이 그 맛을 알겠습니까?”

    에필로그, 멘토는 강했다

    3일간 300km 가까이 자전거를 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멘토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40대 초반의 저질 체력 멘티가 문제였다.

    첫날 100km를 넘게 달렸다. 그 때문에 둘째 날부터 기자의 무릎에 통증이 생겼다. 금강 하굿둑을 출발해 백제보로 올라오던 길이었다. 이 교수는 ‘장경인대염’이라며 “쉬면 낫는 거니 크게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아, 무심하다. 기자는 둘째 날도 오후 늦게까지 페달을 밟아야 했다.

    마지막 날인 3일째. 세종보에 닿을 즈음 페달을 밟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이 교수가 배낭에서 파스와 진통제를 꺼냈다. “믿어 봐요. 의사가 준 맹물을 마시고도 병이 낫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웃음)”

    약의 힘, 아니면 믿음의 힘? 신기하게도 다시 페달을 밟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통증. 몇 시간을 이를 악물고 달렸다. 최종 목적지인 대청댐에 도착.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헉헉거리는 기자와 달리 너무나 멀쩡한 60대 멘토의 강철 체력이 조금 얄밉긴 했지만….

    ▼ 4대강 자전거 종주의 재미 ‘도장 받기’ ▼

    ■ ‘자전거 여권’ 사면 길목마다 스탬프 쾅… 4대강 다 돌면 메달


    어릴 적 선생님으로부터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는 기분이랄까. 4대강 자전거 종주의 또 다른 재미. 바로 ‘도장 받기’다.

    국토해양부와 행정안전부는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여행’이라 적힌 수첩(일명 여권)을 만들었다. 자전거길 곳곳에 마련된 인증센터에서 구입 가능. 수첩을 산 후 ‘이곳을 다녀갔다’는 의미로 스탬프를 찍으면 된다.

    예를 들어 영산강 종주 자전거길에는 담양댐, 메타세쿼이아길, 담양대나무숲, 승천보, 죽산보, 느러지 관람전망대, 영산강 하굿둑 등 7개의 인증센터가 있다. 인증센터마다 스탬프 모양이 다르다. 담양댐에는 댐 모양, 담양대나무숲에는 대나무 모양의 스탬프다.

    순서대로 스탬프를 받을 필요는 없다. 한 코스를 여러 번에 나눠서 종주해도 된다. 7개의 스탬프를 모두 찍은 후에는 따로 인증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이 스티커는 수첩 뒤쪽에 마련된 별도 공간에 붙인다. 그러면 그 코스의 종주를 끝냈다는 증거가 된다.

    인증센터 자체가 흥미로운 볼거리이기도 하다. 모든 인증센터가 눈에 잘 띄는 빨간색 부스. 요즘 들어 쓰임새가 줄어든 공중전화부스를 재활용했다. 몇몇 인증센터에는 매점이나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여행 중 이보다 좋은 쉼터가 있을까.

    좋은 정보 하나 더! 633km에 이르는 국토종주(아라 서해갑문∼낙동강 하굿둑)와 4대강 종주(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을 모두 종주)를 끝냈다면 인증스티커 말고도 인증메달까지 받을 수 있다. 이미 완공됐거나 조성 중인 9개 구간(한강, 남한강, 새재, 낙동강, 금강, 영산강, 북한강, 섬진강, 제주)을 모두 종주하면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스티커도 획득 가능.

    다만 무인 인증센터도 적지 않다. 그러니 어디에서 수첩을 살 수 있는지는 미리미리 확인해두는 게 좋다. 자세한 사항은 4대강 콜센터(1577-4359)나 4대강 이용 도우미(www.riverguide.go.kr)를 참고하자.

    영산강·금강=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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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이 라마가 세일즈의 달인?

    장사의 시대

    필립 델브스 브러턴 지음|문희경 옮김

    어크로스|348쪽|1만5000원

    모로코 항구 도시 탕헤르에서 관광객에게 방심은 금물이다. 이슬람 상술의 대명사인 이곳 상인들은 '흥정의 귀재'. 마지드는 이곳에서도 전설로 불린다. 형형색색의 담요와 양탄자, 실크 셔츠와 드레스가 잔뜩 쌓인 그의 가게 방명록엔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서명이 있다. 록스타와 호텔 경영자들도 그에게서 물건을 사갔다. 비결이 뭘까. "장사꾼은 모든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손님이 어떤 물건을 보는지 관찰하지만 절대 귀찮게 하지 않지요." 손님을 읽어내 '동기'를 간파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더니 장사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세일즈 과목이 없어 어리둥절했다". 세일즈는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가장 치열한 전투인데도 말이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대한 장사꾼들을 찾아 세일즈 기법을 들었다. 스토리텔링으로 고객 마음을 움직이는 홈쇼핑, 일본 보험 판매왕의 인맥 관리술,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고객을 안달나게 하는 미술상의 노하우…. 고객을 끌어당기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각종 장사 기법이 페이지마다 생생하다.

    애플은 고객의 충성심을 넘어 '신앙심'을 자극하는 종교적 마케팅을 펼친다. 고(故) 스티브 잡스는 "마치 종교지도자 같은 카리스마로"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 앞에서 선보였다. 달라이 라마도 세일즈에 능하다. 때로는 빙그레 웃으면서 행복 철학을 설파하고, 때로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폭정을 방관하는 세상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낸다. "청중에 맞게 메시지를 전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종의 청중 맞춤형 판매 방식"이다.

    발품 끝에 내린 저자의 결론. "위대한 세일즈맨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공통점은? 손님에게 거절당해도 굴하지 않는 회복 탄력성과 낙관주의, 자신의 세일즈 능력에 발동을 거는 간절한 욕구였다." 무엇을 왜 팔아야 하는지 내용과 목적은 달라도, 모두 스스로 팔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추동력으로 세일즈의 달인이 됐다는 얘기다.

    물건이든 믿음이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사고판다. 식당 종업원은 손님에게 요리를 팔고,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 행위를, 기자는 데스크에게 새로운 기사의 아이디어를 판다. 세일즈 능력이란 결국 상대를 움직이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삶의 기술. 그러니 저자의 결론을 곧바로 각자의 인생에 대입해도 좋겠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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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적 담론 말해도 명예훼손이란 귀신이 덮쳐”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 ‘통비법과 싸우는’ 3인의 만남

    ▶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롭지 못한 것을 봤을 때, 여기 정의롭지 못한 것이 있다고 호루라기를 부는 데에서 정의는 시작된다.”(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정의를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호루라기를 분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와 이상호 전 <문화방송> 기자, 최성진 <한겨레> 기자는 모두 ‘진실의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고통을 겪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맞선 3인이 만났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권력기관 불법도청 막자는 게

    통비법의 애초 취지인데

    공익보도 등엔 법률적 배려 없어

    불법 수집정보라 수사 안한 검찰

    자기들끼리 내용 주고받더라

    이상호 전 문화방송 기자

    삼성이 조직적으로 관리한

    검찰이 날 기소했다는 게 기막혀

    검찰 출석 전 보도국장 책상에선

    내 삼성생명 대출서류까지 봤다

    삼성은 다 알고 있었다 ㅎㅎ

    최성진 한겨레 기자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논의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렸을 때

    기자로서 당연히 귀가 쫑긋했지

    ‘아, 이건 통비법 위반이다’ 해서

    역공당할 줄 꿈에도 생각 못해


    “국민의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전기통신의 감청과 우편물의 검열 등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가 구현되는 자유로운 민주사회로 진전시키기 위함임.”

    1993년 12월 여야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처음 통과시킬 때, 법 제정의 목적을 이렇게 못박았다. 그 시절 통비법의 ‘제안이유’만 잘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군사정권이 물러가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그 첫해에 국회를 통과한 통비법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 등 정보·수사기관의 정치 사찰, 민간인 감시 목적의 도청을 막기 위해 만든 ‘개혁 법안’의 하나였다.

    민주당 등 야당이 ‘여대야소’ 정국에서 민주자유당과 안기부 등 정부·여당의 반대를 뚫고 통비법을 통과시킨 지 20년이 지났다. 국민에 대한 권력의 불법 감시를 막아보려 만든 통비법이, 거꾸로 권력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감시·비판을 가로막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별별 소송 해봤지만 엑스파일이 가장 코미디

    이상호 전 <문화방송>(MBC) 기자는 2011년 3월17일,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지난 2월14일 대법원으로부터 각각 통비법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전 기자는 ‘엑스(X)파일’로 불리는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와 그 녹취록 등을 입수해 재벌기업 삼성이 검찰 간부 등에게 거액의 ‘떡값’을 전달해왔다고 2005년 7월22일 보도한 ‘죄’, 노 대표는 같은 해 8월18일 엑스파일에 떡값을 받은 것으로 나오는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죄’다. 제18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0월 ‘정수장학회 비밀 지분매각 시도’를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도 통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3월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기자와 노 대표, 그리고 최 기자가 지난 2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최 기자의 사회로 열린 이날 방담의 주제는 ‘통신비밀보호법,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였다.

    최성진 기자(이하 최) 우리 세 사람은 스스로를 모두 ‘통신비밀보호법의 피해자’라 생각할 텐데, 통비법에 어떻게 얽혔는지 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지난해 10월8일 서울 정동 정수장학회 이사장실에서 열린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 등의 정수장학회 비밀 지분매각 논의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18일 검찰에 기소됐다.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의 두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노회찬 대표와 이상호 기자는 어떤가?

    노회찬 대표(이하 노) 사건 당시 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이었다.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떡값 검사’ 중 현직 고위 간부가 있다는 걸 알고서 즉각 수사를 촉구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법사위를 소집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고, 그제야 출석한 법무부 차관 등의 이름을 대면서 수사를 촉구했다. 그때부터 기나긴 ‘법조계’ 인생이 시작됐다.

    이상호 전 기자(이하 이) 내가 원죄자다.(웃음) 엑스파일에 관한 제보를 받은 게 2004년 10월이었다. 2005년 7월에 비로소 뉴스를 탔으니까 보도하는 데까지 열달이 걸린 셈이다. 문화방송이 지금과 달리 나름의 ‘언론 자유’를 누리던 시절이었는데도 그랬다. 삼성 문제, 참 힘들었다…. 노 대표는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유일하게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하며 엑스파일 사건의 핵심인 검찰의 문제를 제기한 유일한 사람이다.

     


    엑스파일 사건은 두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남겼나?

    검찰은 가장 먼저 칼을 맞아야 할 대상이었다. 돈 먹은 사람부터 먼저 수사하라고 한 거다. 그때 떡값 검사라는 표현을 썼다가 시민들에게 야단맞았다. (검사들이 삼성 쪽으로부터) 500만원 이상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떡값이냐, ‘뇌물 검사’라고 해야지 하더라. 그 뒤 통비법 위반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역공을 당했다. 명예훼손 부분은 무죄가 됐고, 통비법은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받은 거고.

    나 역시 1997년 삼성의 세컨드맨(이학수)과 서드맨(홍석현)이 93분 동안 이야기를 한 내용을 보도한 뒤 통비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 선고유예를 받았다. 내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나를 기소한 주체가 삼성에 의해 조직적으로 관리됐던 검찰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피 묻은 손으로 기소를 한 셈이다. 특별검사가 하든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사한 뒤에 기소해야 했다. 그리고 삼성 엑스파일을 취재해 보도하게 한 자, 즉 나를 ‘방송 책임자’로 보고 기소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뉴스는 문화방송이라는 거대 플랜트(공장)가 움직여서 나오는 것이다. 분업화된 보도본부에서 내가 제보를 받아 발제를 했고, 기자 20명이 특별취재팀을 운영했다. 그런데 나를 방송책임자로 보고 기소했다. 내가 지금 59번째 소송을 하고 있는데, 삼성 엑스파일 재판이 가장 코미디에 가까웠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안기부가 1997년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불법 도청테이프 내용이 2005년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며 시작됐다. 엑스파일에는 삼성가의 두 인물이 검찰 간부들과 대선 후보에게 정기적으로 ‘떡값’, 곧 뇌물을 건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떡값을 주고받은 이들에 대해 수사하지 않았다. 대신 이 전 기자와 노 대표 등을 통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불법 도청테이프 내용을 공개했다는 이유였다.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27일 “불법 도청의 결과물이지만 엑스파일을 통해 재벌기업과 검찰 간부의 뒷거래에 관한 강한 의혹이 제기됐다면 이를 단서로 수사에 착수했어야 했다. 도청에 가담한 국정원 관계자와 그 내용을 폭로한 노 대표, 이 기자만 처벌하고 떡값 검사 등에 대해 수사하지 않은 것은 검찰이 직무유기를 넘어 수사권을 포기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공적 관심사 아닌데 왜 줄줄이 옷을 벗나

    대법원은 노 대표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며 불법 감청 내용이라도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클 경우 공개할 수 있지만, 엑스파일은 폭로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8년 전 녹음이 이뤄진 내용이고, 비상한 공적 관심사가 아니다 이렇게 판단했는데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건 주관적 판단의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2005년 삼성 엑스파일 보도로 파문이 인 뒤, 엑스파일에 나온 당사자들이 어떻게 처신했나? 삼성은 그룹 명의로 사과하면서 8000억원을 기부한다고 했고, 중앙일보도 1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유력했던 홍석현 주미대사가 사임했고, (떡값 검사로 거론된) 법무부 차관은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날 저녁에 사임하지 않았나. 공공의 지대한 관심사가 아닌데, 다들 왜 사임을 하나? 또 엑스파일에는 공공의 관심사가 아닌 사생활과 관련한 대화는 1%도 없었다.

    1%는 있었다. 둘이서 농어를 좋아한다며 주문하는 내용이 1분 있다. 물론 그건 사생활이라서 보도하지 않았다.(웃음)

    검찰은 ‘독수독과론’(독이 든 나무는 독이 든 열매를 맺는다)을 들어 떡값 검사나 삼성 임원에 대해 끝내 수사하지 않았다. 독수독과의 원칙 자체는 맞는 것 아닌가?

    당시 검찰 수사 책임자였던 황교안 서울지검 제2차장(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이 그렇게 발표했다. 불법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수사할 수 없다는 논리다. 또 하나는 1997년 도청테이프여서 설사 확인된다 하더라도 공소시효를 넘었다는 게 수사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독수독과론은 불법 수집 정보가 재판에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뜻이지 수사의 단초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녹취록을 제보받고 2개월 뒤 어렵사리 테이프를 건네받았다. 그사이 녹취록을 근거로 취재했는데, 수사권이 없는 기자가 해봐도 손쉽게 확인이 되더라. 이를테면 (두 인물의 대화에서)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의 대쪽 이미지를 삼성에서 만들어주고, 보광커뮤니케이션이 홍보사업을 하되, 한나라당이 지급한 것처럼 삼성이 대납해주자는 내용이 나온다. 확인했더니 사실관계가 맞더라.

    검찰은 독수독과를 경직되게 해석했다. 독이 든 과일이니 수사 착수도 안 한다는 논리다. 재밌는 거는 2005년 8월18일에 법사위에 출석한 법무차관에게 당신 이름이 있다고 하니까 ‘알고 있다’고 하는 거야.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거기서(수사팀에서) 가르쳐줬다고 하더라. 정작 수사는 안 하고 자기들끼리는 알려줘도 되나?

    통비법 제정 취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처럼 언론인이나 국회의원 등 공익신고자에게 적용하는 게 맞나?

    통비법은 양날의 칼이다. 불법도청의 폐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전체 19개 조항 가운데 불법도청에 대한 처벌 조항은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국가의 합법 도·감청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법 개정이 반복되면서 국가가 국민들의 대화를 좀더 용이하게 도청할 수 있도록 개악됐다. 긴급한 경우에는 영장 없이도 도청할 수 있다.

    그 피해자가 나다. 지난 2월21일 통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첫 재판을 다녀왔는데, 검찰이 공소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 휴대전화 통화내역 10개월치 6500여건을 무차별 조회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더라. 어이가 없었다.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본부장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나를 기소한 검찰이 언론사 기자의 10개월치 사적 통화내역을 파헤친 것이다. 나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국회에서 통비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데, 방향은 찬성하나?

    18대 국회 때 조승수 의원이 엑스파일 사건에서 드러난 법률적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정안을 낸 적이 있다. 끝내 다루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이유가 뭔지 아나? 당시 한나라당이 합법 감청을 확대하는 개악안을 여러 개 내놓은 거야. 여러 개정안을 두고 대치 국면이 진행되면서 다 폐기됐다. 통비법 부분에 관해서는 다양한 측면을 봐야 한다.

    이제 겨우 통비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두 분의 경험이 씁쓸하다. 좀 잘 싸워주지 그랬나.(웃음) 두 분과 별개로 당시 엑스파일 내용을 보도한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도 최종심까지 ���서 유죄를 받았다. 노 전 의원은 2007년 통비법에 대해 위헌심판을 신청한 적도 있는데, 그것도 결국 2011년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4전4패다.

    과거 권력기관이 불법 도·감청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까 이를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통비법이다. 하지만 공익을 위한 보도 등 불가피한 경우에 대한 법률적 배려가 없다. 그래서 통비법에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위헌 소송을 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형법에 일반적인 정당행위 조항이 있어, 이를 원용할 수 있으니 위헌이 아니라고 했다.

    함께 유죄받은 또다른 인물의 엇갈린 운명

    통비법은 1993년 12월1일 제정됐다. 당시 통비법 제정을 주도한 쪽은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였다. 도청을 통한 수사·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워낙 심각했던 탓이었다. 1989년 정보기관이 서울시내 44개 전화국에서 도청 설비로 보이는 ‘블랙박스’(비음성 전송품질 측정장치)를 운영했던 사실이 드러났고, 199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안기부가 전화 전용회선을 활용해 광범위하게 도청을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범 첫해 ‘도덕성’을 강조한 김영삼 정부로서는 야당의 통비법 제정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당시 국회 정치특위 민주당 간사를 맡아 통비법 발의 및 통과를 주도한 박상천 전 의원은 지난 2월20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때 도청이 얼마나 심했냐면, 안기부가 야당의 공천 현황까지 손바닥 보듯 꿰고 있을 정도였다. 정보기관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으니 ‘정보정치’라는 말이 나왔다. 통비법을 만들지 않으면 정보기관의 도청 앞에 야당은 완전히 발가벗겨진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기관의 정치권 및 재야 사찰을 막겠다는 것이 통비법의 제정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여전히 미제 사건이다. 당시 안기부에서 불법도청한 테이프가 280여개인데, 그 내용이 알려진 게 몇 개인가?

    1개다. 당시 안기부 미림팀이 일상적으로 도청했고, 그중 1개가 유통되고 있었다. 나머지는 안 열어보고 창고로 들어간 거지.

    검찰이 불법도청 테이프이니까 수사 못 하겠다고 해서, 국회에서 특별법 만들어서 수사하자고 했다. 여야가 합의해 특별법을 제출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양쪽 다 뭉개버린 거지. 법은 자동 폐기됐다.

    처음 폭로할 때 통비법을 통한 ‘역공’이 몰아치리라 예상했나? 노 의원과 이 기자의 경우가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 내 경우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필립 이사장이 켜놓은 휴대전화 너머로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논의가 들렸을 때 기자로서 당연히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거지 ‘아, 이건 통비법 위반이다’, 혹은 ‘아 통비법 위반으로 문제삼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물론 통비법으로 엮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도 내 선택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당시 이미 40건 정도 소송을 경험해본 상태였다. 100% 역공이 들어올지 알았다. 재벌이라고 다 똑같은 재벌이 아니다. 삼성 정도 되면 의제설정 능력이 있다. ‘이건희가 국익이다’ 이런 등식을 만들어왔다. 이게 아니라고 주장하면 황우석 사태 때 겪은 것처럼 대중들은 인식의 저항을 겪는다. 고발보도가 공격적 보도잖아, 승산을 따져보거든. 난 50%만 돼도 고발한다. 그런데 이번엔 승산이 30%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국익이 이건희와 등식 관계와 있기 때문에. 70%는 지겠다고 생각하면서 고발했다. 그리고 실제로 죽었지. 그때 죽는 길에 동참한 분이 노 대표였다.(웃음)

    어떤 식으로 역공이 취해질 거라 구체적으로 예상했나?

    보도자료에 대해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문 보면, 기자들에게 뿌린 보도자료는 면책특권에 해당하지만, 내 홈페이지에 올린 건 면책특권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자들에게 뿌리면 언론사에서 걸러지는데, 인터넷에 올리면 국민에게 직접 노출된다는 논리다. 이 얘기대로라면 정치인은 두 가지 보도자료를 만들어야 해. 그럼, 대법원은 어떻게 하는 줄 아나? 대법원도 (똑같은) 보도자료를 동시에 올린다.

    대법원 보도자료가 기자용과 인터넷용이 다른지 확인해봐야겠다.(웃음)

    이 사건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이 또 한 명 있잖나.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이번 정부에서 사면됐어.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일하다가, 내 대법원 판결 나던 날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갔다.


    통비법을 위반했다 해도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이렇게 달라진다.(웃음)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밖에 안 된다. 역대 정권은 지지율이 내려갈 때 깜짝 쇼를 했단 말이야. 임기 초반 재계 군기잡기 차원에서 삼성 엑스파일 사건과 관련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본다. 대선 공약도 그렇고 첫걸음으로 중소기업회관에 갔잖아. 물론 보수 철학을 지닌 분이지만, 사실 거대범죄를 감싸주는 게 보수는 아니잖아.

    법치야말로 보수의 코드다. 큰 죄를 감싸면서 작은 죄를 처벌하는 것은 불의이거든.

    담장 밖으로 비명 들리는데 귀를 막을 텐가

    수십년이 된 범죄도 과거사위원회가 조사하지 않았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 관련자들이 살아있을 때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

    삼성이 재판 과정에도 어떤 행동을 보여줬는지도 따져봐야 된다. 실제로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은 이제 사법부와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이 되거든. 과거는 군에 대한 영향력이 권력의 바로미터였다면, 지금은 누가 리걸 프로세스(사법 절차)를 장악하느냐에서 판가름 난다.

    검찰이 비대해진 것도, 권력이 검찰 괴물을 악용하려다 보니 키워준 측면이 있다.

    재판 과정에서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 출석 직전에 보도국장이 나를 불렀다. 책상 위에 16절지 묶음이 놓여 있었는데, 뭔가 봤더니, 내 삼성생명 대출서류더라. 집 사려고 대출받은 게 있었거든.

    그거야말로 기자의 사생활 아닌가?

    그렇다. 그런데 보도국장이 ‘이 돈 가지고 뭐 했냐’, ‘불법도청 테이프 구입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삼성 계열사에서 나에 관한 자료를 위로 보고한 거지. 그리고 다시 문화방송에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등줄기가 서늘했겠다.

    삼성은 다 알고 있어.(웃음)

    국민의 사생활 보호는 그 자체로 반드시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다. 검사나 대통령 측근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생활과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충돌해서 오는 갈등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가치가 우선한다고 보나?

    정수장학회 사건의 경우 불법으로 엿들으려고 한 게 아니니까 불법도청 혐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편으로 받아 본 상황과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들리게 되어서 알게 되지 않았나. 그리고 대화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람 피운 것도 아니고 공공의 관심사에 관한 대화였다. 적절하게 잘 보도했다.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한다고 본다.

    아니, 담장 밖으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치자. 그럼 귀를 막고 있어야 하나? 내가 적극적으로 염탐하거나 정보를 빼온 게 아니라 통상적인 합법적 테두리에서 활동하다가 들은 거다. 전화 예절에도 어긋난다. 어른과 통화할 때는 어른이 끊은 뒤 확인하고 끊어야 하잖아.(웃음) 검찰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기자는 상대방보다 먼저 끊어야 하는 건가? 최 기자 처벌하면 기자의 모든 취재가 봉쇄되는 셈이다. 법률 과잉이다. 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발 주체가 최필립 이사장이 아닌 언론인이라 할 수 있는 문화방송 사장이었다는 게 서글프게 느껴졌다. 언론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할 언론사, 언론인이 나를 통비법 위반으로 고발하다니, 참 씁쓸했다.

    나도 명예훼손만 20여번 소송을 치렀다. 그러다 보니 명예훼손에 대한 나름의 주관도 있고, 명예도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명예는 거죽만 남았다. 누가 명예를 위해 아들을 전방 부대에 보내고 수십 수백 억원을 기탁한 사람이 있나? 공적 담론을 이야기해도 명예훼손이라는 귀신이 덮친다. 사회적 약자와 납세자의 명예가 더 보호돼야 하는데,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 명예훼손 소송으로 언론 보도를 막는다.

    최 기자 재판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1월18일 기소됐고, 2월21일 첫 재판에 이어 오는 19일 두번째 재판이 열린다. 통비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상호 기자의 모두진술, 항소이유서 등을 참고하고 있다.(웃음)

    노, 이 행운을 빈다!

    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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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도 때 한밤에도 직각보행 지키던 ‘딸깍발이’ 군인

    육참총장 출신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

    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 제312호 | 20130303 입력
    2007년 6월 5일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캠프 사무실에서 국방·외교·안보 정책자문위원 간담회에 앞서 남재준 전 육참총장(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했다. [중앙포토]
    1960년대 중반, 어둠이 깔린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어두운 교정을 한 생도가 절도 있게 걷는다. 곧장 가다 굽은 길이 나오자 몸을 90도로 틀며 방향을 돌린다. 다시 가다 또 그런다. 육사 생도가 지켜야 하는 ‘직각보행’이다. 밤이라 보는 눈이 없어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번에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남재준(육사 25기) 생도였다. 65년 1학년 생도 때 그를 처음 본 한 예비역 장성은 “남 선배는 캄캄해도 철저히 직각보행을 지켰다. 남들처럼 적당히 안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남재준 후보자의 사람됨에 대해 대부분 좋게는 ‘전형적 군인’, 좀 나쁘게는 ‘딸깍발이’라고 한다. 그런 성향은 생도 시절부터 분명했던 것이다. 원칙을 너무 따진다고 해서 ‘생도 3학년’ ‘작은 이순신’ ‘천연기념물’ 같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군인은 군복의 명예를 지켜야”
    생도 시절에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인연이 생겼다. 당시 육사는 8개 중대로 나뉘어 생활했다. 중대당 1~4학년 30명이 함께 내무생활을 했다. 남재준과 2년 후배인 김 실장은 생도 3중대였다. 당시 같은 내무반이었던 한 예비역 장성은 “둘이 썩 친하진 않았다. 김 실장은 축구를 좋아했는데 남 후보자는 운동 대신 책을 읽었다. 그래도 2년간 같이 살다 보면 연대의식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69년 임관 이후 남재준은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나회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 멤버가 아니었던 그는 ‘변방’으로 돌았다. 진급이 잘 되는 작전 특기였지만 강원도 원주의 36사단에서 처음 작전참모를 했다. 그 이전 육군대학 시절 그는 ‘군인정신’을 드러낸다. 79년 하나회 주동으로 12·12 사태가 일어나고 동기였던 김오랑 소령이 저항하다 총을 맞고 숨졌다. 이때 육군대학 교관이던 남 소령은 김오랑 묘소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러곤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슬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인은 자기 군복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연히 ‘진급 누락’이란 불이익을 겪었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서광이 비쳤다. 하나회가 척결된 것이다. 이후 그는 수도방위사령관에 이어 국방부 장관 예비 코스라는 합참 작전본부장도 했다. 당시 합참에서 같이 근무했던 비(非)육군 예비역 장성은 “그는 정도(正道)를 지킨다. 그런 이가 계속 있었으면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육참총장 시절 프라이드 손수 운전
    군인 남재준은 전반적으로 “답답하다”는 평을 받는다. 골프도 못한다. 그의 ‘딸깍발이’ 성향은 육군참모총장 때 유감없이 드러났다. 일과 뒤엔 오래된 프라이드 승용차를 손수 운전했다. 여기엔 양론이 있다. 한 예비역 장성은 “미국 장성들은 우리와 달리 일과 뒤 관용차를 안 쓴다”고 두둔하나 다른 예비역 장성은 “제대로 일하라고 차와 운전병을 주는데도 소위처럼 처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소신’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충돌 때 절정에 달했다. 노무현 정부가 군검찰을 통해 장성 진급 비리 수사에 돌입하자 2004년 11월 26일 남 총장은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군 통수권자에 대한 항명으로 간주됐다. 그는 훗날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부하들이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인답지 못하게 투서질을 했으니 잘못된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육참총장이 소신만 고집해 군 개혁과 화합을 저해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빚었다”고 비판했다. 요컨대 그에겐 ‘타고난 군인’이라는 빛과 비사교적·비타협적이라는 그림자가 함께 존재한다.

    그래선지 그를 둘러싼 부패·비리의 가능성에는 모두들 고개를 젓는다. 한 예비역 장성은 “그런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이고 그게 큰 장점”이라고 했다. 무기산업에 오래 종사해 온 공군 출신 예비역 장성도 “그가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4월 전역 뒤 충남대에서 강의했고 2010년부턴 서경대 석좌교수를 하고 있다. 군사정책 측면에서 그는 “지난 10년간 국정원이 죽었다”며 예비역 장성 모임이 있을 때마다 국정원을 비판해 왔다. 국정원의 대대적 개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육사 25·27·28기로 구성된 안보라인은 대북 강경책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7인회’ 멤버인 강창희 국회의장이 그를 박 대통령에게 연결해 줬다는 관측도 있다. 둘은 육사 25기 동기다. 한 예비역 장성은 “둘이 생도 때부터 친했고 육군대학에서 교관도 같이 했다”고 말했다. 다른 예비역 장성은 “ 박 대통령 주변의 하나회 인맥이 소개했을 수 있다”고 봤다. 아무튼 남 후보자는 2007년 박근혜 경선 캠프로 영입돼 안보자문역을 맡았다. 지난해 대선 땐 국방안보 특보를 했다. 한 소식통은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박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상의한 사람이 남재준”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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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유내강 朴 대통령, 소통 안 하면 ‘외딴섬 공주’ 될 것”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 인터뷰

    류정화 기자 jh.insight@joongang.co.kr | 제312호 | 20130303 입력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지난 달 27일 당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과 연대의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민주통합당 문희상(68) 비상대책위원장은 바빴다. 지난달 27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문 위원장은 점심도 거른 채 여섯 번째 일정(중앙SUNDAY 인터뷰)을 소화했다. 그전엔 ‘5·4 전당대회와 당 대표 선출 룰’을 확정지은 중앙위원회 참석이었다. 임기 50일째인 문 위원장은 “대선 평가 백서(白書)와 당 혁신 청사진(blue print)을 내야 하는데, 혁신 하나만큼은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당 혁신방향에 대해서는 중도·개혁노선으로 돌아갈 뜻을 명확히 했다. 그는 “아직도 독재·반독재, 좌우 등 이분법적 구도에 빠져 있는 건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또 연평도에서 비대위 회의를 했던 일을 거론하며 안보를 강조했다. “우리 당은 안보를 소홀히 하는 집단이 아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북의 군사도발에 대응한 건 역사상 김대중(DJ)·노무현 정권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선 때) 새로운 색깔론, 변종 색깔론에 당했다”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12·19 대선 패배 이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116일 임기 동안 박근혜 정부의 출범 과정에서 여야 관계의 한 축을 맡게 된다. 박 대통령과는 16대 국회 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활동을 같이 하고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엔 정치적 파트너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동료 의원일 때 외유내강(外柔內剛)·유능제강(柔能制剛)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는데 지금도 변함없다”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침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뒤 소통하지 않고 ‘외딴섬 공주’로 전락하면 곧바로 망하는 길”이라고 했다.

    문 위원장은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창당 이후 일곱 번째 당 대표다. 이에 대해 문 위원장은 “당이 재·보선과 총선·대선에서 연거푸 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차기 주자감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선 “미국의 빌 클린턴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조그만 주(州)의 주지사였다. 우리도 8명의 시장·도지사를 갖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송영길·안희정·이광재도 훌륭한 지도자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 바깥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다 다음 대선 땐 내각제가 되지 않는 이상 절대 안 놓친다”고 덧붙였다. 대담은 이양수 중앙SUNDAY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대선 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봤나.
    “북한 핵실험 후 3자 회동(2월 7일) 때 만났다. 그날 외부에 공개된 부분은 1%밖에 안 된다. 99%는 ‘대화하고 소통하세요. 그거 안 하면 큰일 납니다’는 내용이었다. 제1소통의 대상은 측근이고 다음이 여당, 야당 순인데 야당과의 대화를 빼놓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야당과 한 번만 대화하면 (박 대통령을 찍지 않은) 48%와 대화하는 거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 다음 순서가 언론이다. 남북 관계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했는데 (박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더라.”

    -이른바 ‘박근혜 인사 스타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인사가 만사라는데 지금 ‘망사(亡事)’가 되고 있다. 초장 인사가 5년 임기를 좌우하는데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 허태열 비서실장이 빨리 인사위원장을 맡아 (인사를) 걸러야 한다. 옛날 수첩만 보고 ‘TV 보니 누가 괜찮더라’ ‘누가 누굴 추천하더라’ 이렇게 인선하면 한계가 있다.”

    -인사청문회, 정부조직개편안을 무기로 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데.
    “인사청문회에서 불법·비리가 드러나면 우리는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특정 인사를 지목해 그만두게 하려는 건 아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은 방통위 기능 이관 외에 다 양해할 수 있다. 언론의 공정성ㆍ자율성 확보는 기본이다. 그걸 슬쩍 옮겨서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가 읽히는데 야당이 두고 볼 수 있나.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청와대) 비서관 인선이나 대통령실 직제면 상관없다. 하지만 이건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하는 법률 개정안의 문제고 국회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될까.
    “대화 국면으로 간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너무 뼈저리게 느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박 대통령은) 타이밍을 절대 놓치지 않을 사람이다. 3자 회동 때 내가 DJ·노무현 정부 때 북·미 관계의 진척 상황과 그 선에서 해야 할 일 등 ‘할 수 없는 얘기’까지 모두 해 줬다. (박 대통령이) 눈빛으로 동의하는 듯 했다. ‘정권 초반에 북한이 우리를 다루려 할 텐데 거기에 빠지면 안 된다. 거기 볶이면 5년 내내 가게 된다’고도 조언했다. 그 부분에서도 금방 고개를 끄덕이더라. 남북관계가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4월 재·보선은 어떻게 보나.
    “국회의원 지역구가 서너 군데이고 나머지는 군수ㆍ구청장이다. 우리로선 다 떨어져도 본전인 지역이 많지만 몇 군데는 승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안철수씨의 신당 창당론이 돌아다닌다.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순 없지만 어리석은 일이다. 악마의 유혹을 견뎌야 한다. 지난해 대선 전 송호창 의원이 안철수 캠프로 갔을 때가 아슬아슬한 유혹이었다. 그런데 ‘가면 망한다’는 걸 민주당 의원들이 다 안다. 20명쯤 가야 문패라도 달 텐데 (의원들이) 안 간다. 민주당은 60년 전통의 문패가 있어서 없어지려야 없어질 수 없다. 제3신당이 되면 크든 작든 (양쪽 다) 공멸의 구조다. 안철수씨 입당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선거를 같이 치렀으니 동지 아닌가. 하지만 싫어하는데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없다.”

    -연락해 봤나.
    “우리가 안 해도 (안씨 쪽에서) 접촉해 온다. 구체적으론 얘기 못한다.”

    -DJ가 애용하던 ‘헤쳐 모여’ 식의 제2창당은 어떤가.
    “그렇게 해서 (안씨가) 들어오겠다고 하면 못할 게 뭐가 있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런데 세력 대 세력이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우리는 국회에 127석이 있는 공당이다. (안씨 쪽이 세력 지분을 주장하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다. 혁신이 문제라고 하는데 우리는 스스로 살기 위해 혁신하는 거다. 선(先)자강이다. 숲을 만들면 봉황새든 잡새든 숲으로 깃들 거 아닌가.”

    -안씨가 4월 재·보선에 출마한다면.
    “안철수씨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고 그 사람한테 미안하다. 내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이 대선에 패배한 아킬레스건은 뭔가.
    “첫째는 전략 부재다. 집토끼인 20대와 호남·영남에선 잘했지만 수도권ㆍ충청ㆍ강원도에서 전략이 전무했다. 둘째는 사령관이 없었다. 배우 두 사람(문재인·안철수)은 열심히 했는데 감독이 없는 영화를 찍었다. 100마리 양떼를 사��가 지휘해야 단결된 힘이 나오는데 우리는 사자 100마리를 양 한 마리가 지휘한 격이다. 대선캠프가 셋이고 선대위원장이 10명이었다. 총사령관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친노 책임론’이 계속 나온다.
    “선거 패배 책임은 그걸 주도적으로 했던 사람이 져야 한다. 결국 문재인 후보 아니면 안철수, 그 다음이 당 지도부, 선거대책본부다. 정치적 책임은 직위를 그만두는 거다. 이미 다 책임졌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당 대표 선거에 또 나온다는 거다. (‘김부겸도 친노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하자) 김부겸은 친노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 제치면 자기들이(비주류를 지칭) 당 대표를 하겠다는 건데 이 역시 전형적인 편가르기, 계파 싸움이다.”

    -문재인 후보의 의원직 사퇴론을 일축했다.
    “그건 부관참시다.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다만 DJ는 1971년 대선에서 떨어지고 이듬해 당권에 도전했다. 그건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다. 은인자중,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본인이 할 의지가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딱 맞는 시간에 다시 나타나야 한다.”

    -민주당은 왜 그렇게 계파 갈등이 심한가.
    “문제는 계파가 아니라 계파주의다. 몇몇이 모여 DJ·노무현 사상을 연구하고 현안 관련 책을 내는 건 박수 칠 일이다. 그런데 당권 쥐고 천년세세 해먹자는 건 안 된다. 계파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리더십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거다. 색안경을 끼면 편견이 생겨 누가 재목인지를 못 본다. 당권을 잡으려 작심하면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만 보고 형편없이 깔아뭉갠다.”

    -통합진보당과의 연대가 대선 패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지난번 야권 연대는 마이너스 연대였다. 연대를 하려면 대의명분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절차가 투명해야 한다. 내가 대표였다면 저런 연대는 안 했다. (최근 이정희 대표가 복귀했는데) 축하 난도 안 보냈다. (유시민 전 대표 은퇴 때는) 연락은 안 해 봤다. 자유로운 사람이고 그 사람다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DJ 정권 때 국정원 기획실장을 했는데 종북 논란을 어떻게 보나.
    “나는 볼테르의 자유주의 사상을 지지한다. 국보법 폐지를 주장했다.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고 구속하는 건 안 된다. 법을 위반할 때 규제하면 된다. 코페르니쿠스를 보면 생각이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있고 생각 자체는 자유로워야 한다.”

    -요즘 무슨 다짐을 하고 지내나.
    “나는 두 가지가 두렵다. 하나는 치매, 하나는 편견이다. 둘 다 나이 먹으면 생기는 병이다. 사람이 생각의 덫에 걸리면 더 큰 걸 못 본다. 그래서 아침마다 나는 ‘더듬이’를 닦으려고 애를 쓴다. 방향감각을 상실하면 죽으니까. 중립·중도는 노력하는 게 몸에 배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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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위해 레일 깔자" 친박실세 원내대표론 부상



    [5월 원내대표 선거에 친박 3명 출마 저울질]

    친박 "黨에 구심점 필요" - "원내지도부 지도력 발휘 못해… 국정 뒷받침하는 데 역부족"

    원내대표로 누가 뛰나? - 이주영·서병수·최경환 등 거론, 비주류 남경필 재도전 가능성도

    비주류 "지금은 참고 있지만…" - "원내대표까지 친박 실세면 당이 거수기로 전락" 비판


    새누리당 친박 진영에서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순항을 위해 레일을 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철학'을 잘 아는 친박이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확실한 박 대통령의 지원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친박들은 그 계기 중 하나를 5월 원내대표 선거로 잡고 있다.

    ◇친박 원내대표론 부상

    현재 새누리당에서 지난해 대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친박 중진들은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다. 이와 맞물려 당내에선 당과 원내지도부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쪽에서도 "당의 지원이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친박 쪽에서 "뭔가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일단 황우여 당 대표에 대해선 "내년 5월까지 임기를 채울 것 같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황 대표는 지난해 5월 2년 임기의 당 대표로 선출됐다. 여권 관계자는 "황 대표의 남은 임기 동안 큰 선거가 없다. 재보선 패배 같은 변수가 있더라도 박 대통령의 스타일상 웬만해선 임기를 보장할 것"이라고 했다. 현 당 최고위원회는 심재철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친박 일색이다. 그러나 당 곳곳에서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는 데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친박들은 원내대표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한 친박은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의 상당수는 법률 제·개정이 필요한 사안들"이라며 "박 대통령도 그걸 책임져야 할 원내대표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직인수위는 지난달 21일 활동을 마감하면서 총 210개 법안의 입법화 작업을 연내에 80%까지 마치려고 한다고 했었다. 현 여야 관계를 감안할 때 쉽지 않은 과제이고, "그래서 더더욱 박 대통령을 뒷받침할 원내지도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내대표 후보들

    친박에선 4선의 이주영 의원이 움직이고 있다. 이 의원은 작년 5월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다가 1차 투표에서 탈락했지만 이후 박 대통령은 그에게 경선캠프 선대위 부위원장, 대선기획단장 등을 맡겼다.

    4선의 친박인 서병수 사무총장도 원내대표에 뜻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당직자는 "서 의원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부산시장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 만큼 그에 앞서 원내대표 도전도 고민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때 친박 최고 실세로 불렸던 최경환 의원(3선)도 출마를 고심 중이라고 한다. 최 의원은 대선을 두 달 앞둔 작년 10월 당시 박근혜 후보 주변에 대한 '인적 쇄신론'이 제기되자 대선후보 비서실장에서 사퇴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했었다. 그때부터 아무 직책을 맡지 않았다.

    쇄신·소장파에선 5선인 남경필 의원의 재도전이 점쳐진다. 그는 작년 5월 원내대표 선거에 나섰다가 이한구 원내대표를 상대로 1차 투표에서 1표 차이로 이겼으나 결선투표에서 6표 차로 뒤졌다.

    현재로서 "의원 상당수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공천을 받은 이상 원내대표는 친박에서 나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당에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당이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쇄신·소장파를 비롯한 비주류 측에선 벌써부터 "지금은 새 정부 출범 초반이라 참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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