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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산물 유통체계 혁신, 안정적 자본확충 숙제… 농협 구조개편 1년 성과·과제
사업구조 개편 1주년을 맞은 농협이 올해 농가지원 확대 및 서민금융 역할 강화에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농협은 사업구조 개편으로 농산물 유통체계 혁신과 금융 경쟁력 강화의 실질적인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대규모 물류센터 건립, 직거래장터 확충, 조직 슬림화 등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기 위한 활발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정부 현물출자의 무산,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 등은 농협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농축산물 유통혁신·금융그룹 안착=지난해 3월 단행된 농협 사업구조 재편의 핵심은 경제사업과 금융사업의 분리였다. 농협중앙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중앙회 산하에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를 만들어 각각 유통·판매사업과 금융사업을 총괄하도록 하는 구조다.
경제지주는 국내 생산 농산물의 50% 이상을 책임지고 판매해 농업인은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안전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오는 6월에는 경기도 안성에 농식품물류센터를 준공한다. 2015년까지 전국 5곳에 세워지는 물류센터는 산지와 소비지를 직접 연결하는 직거래형 유통 채널이다. 대도시 농협은 기존 153곳이던 직거래 장터를 올해 안에 200곳까지 늘리기로 했다.
농협금융은 지난 1년간 외형적 성장보다 금융지주체제로의 성공적인 전환과 안정적인 운영기반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9월 5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본드 발행에 성공하고 농협금융지주는 한 달 뒤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전량 희망금리로 발행했다.
농협생명은 2012회계연도 2분기 보험료 수익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이 8.87%를 기록해 생명보험 빅4 반열에 진입했다. 농협손보는 자동차보험이 없는데도 다양한 보장성 상품으로 업계 7∼8위권까지 올라섰다.
◇정부 현물출자·농산물 가격 안정은 과제=정부는 농협의 안정적인 사업구조 재편을 위해 5조원을 지원키로 약속했다. 이 가운데 1조원은 산업은행금융지주와 한국도로공사 주식의 현물출자였다. 하지만 정치권의 산은금융 민영화 반대에 부딪히면서 산은 주식의 현물출자가 불가능해졌다. 다급해진 농협은 정부에 현물출자 대신 이자 지원을 요구했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농협이 발행한 채권 1조원의 이자 340억원을 올해 대신 내주기로 했다.
윤종일 농협중앙회 부회장은 “산은 주식 등의 현물출자가 이뤄져야만 농협의 안정적인 자본 확충이 가능해진다”며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농산물 가격의 안정을 이루는 것도 농협에 남겨진 중요한 과제다. 올해 들어 배추, 무 등 채소류 가격은 폭등하고 돼지고기 가격은 폭락하면서 산지 농가와 소비자 모두 농산물 유통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농산물 판매의 큰 축을 담당하는 농협으로서는 책임을 통감하고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과 가격 안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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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디트로이트 파산 위기
주지사 재정 비상사태 선포…車산업 쇠퇴로 인구·세수 급감자동차 산업의 쇠퇴로 고통을 받아온 미국 디트로이트가 파산 위험에 처했다.
릭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는 지난 1일(현지시간) 디트로이트의 재정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비상 재정담당관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비상 재정담당관은 예산안 삭감과 공무원 정리해고, 시 조직 개편, 자산 매각 등 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게 된다. 시 운영에 대한 권한이 사실상 주정부로 넘어가는 셈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재정적자가 해소되지 않으면 비상 재정담당관은 디트로이트 파산을 선언할 수 있다.
스나이더 주지사는 “디트로이트의 재정적자 증가세를 멈출 때가 왔다”며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디트로이트의 예산 적자는 3억2700만달러(약 3500억원)이며 장기 차입금은 140억달러(15조원)에 이른다.
디트로이트의 재정적자 증가는 지역 주력 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쇠퇴 때문이다. 제너럴모터스, 포드 등 주요 자동차 메이커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디트로이트의 인구도 덩달아 감소했다. 1950년 180만명으로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았던 디트로이트는 2011년 현재 70만명까지 주민이 줄었다. 2000년부터 10년 동안에만 인구가 25% 줄면서 시의 재정 수입도 감소하고 있다.
이처럼 수입이 줄고 있지만 시 재정은 방만하게 운영됐다. 공무원 연금과 건강보험 등 복지 혜택이 유지되면서 재정을 빨아들이고 있다. 주정부 감사팀은 디트로이트의 경찰과 소방관 등에 대한 연금 지급 규모가 가파르게 늘어나 2017년에는 전체 인건비의 83%를 차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데이브 빙 디트로이트 시장을 비롯한 시 공무원들은 주정부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재정긴축보다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CNBC는 “디트로이트 측은 소송 등 법적 대응도 강구하고 있지만 비상 재정담당관 임명 등의 일정은 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디트로이트 재정비상사태…인종갈등·기업이전으로 세수감소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가 결국 재정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재정전담 관리자를 지명하기로 했다.
리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는 지난 1일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매우 슬픈 날이고 이날이 오지 않길 바랐지만 지금 디트로이트보다 미국에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도시는 아마 없을 것"이라며 이 같은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스나이더 주지사는 "디트로이트시 혼자서는 이 문제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디트로이트 시민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이 같은 조치를)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디트로이트시는 3억2700만달러의 예산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장기 차입금은 140억달러에 달한다. 이에 따라 디트로이트는 주(州)정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다.
향후 10일간의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면 재정전담 관리자가 선임된다. 선임된 재정전담 관리자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노조와의 계약을 전면 무시할 수 있고 지방정부 자산도 법적 제한 없이 매각할 수 있다. 공공 서비스도 구조조정할 수 있고 선출직 공직자의 급여 지급도 연기할 수 있다.
디트로이트시가 이 같은 재정 비상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는 인종 갈등에 따른 중산층 세수 감소가 악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1950년대 180만명에 달하던 인구가 절반 이하인 71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기업들 또한 디트로이트를 떠나 법인세 감소도 지방재정에 타격을 입혔다.
디트로이트시가 파산한다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큰 규모의 지방정부 파산 선례를 남기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80%의 민주당 지지 성향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정 건전화 담당 관리자를 선임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미시간주 내 지방정부가 파산한 전례는 없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방정부 파산은 2011년 앨라배마주의 제퍼슨카운티가 기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디트로이트시 재정을 검토한 감사팀은 지난달 19일 디트로이트시에 미시간 주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임을 밝힌 바 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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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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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이머징마켓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브라질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놓였다.
브라질의 경제 성장률이 급전직하하고 있는 가운데 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 시장 전문가들은 브라질 거시경제가 위태롭다며 '서든 스톱(외국인 자본 유입이 갑자기 멈춘 뒤 일시에 빠져나가는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일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비 0.9% 상승하는 데 그쳤다고 발표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7% 성장률을 구가하던 브라질 경제는 이듬해인 2011년 2.7% 성장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성장률이 1% 아래로 떨어지면서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했다.
수출도 최악이다. 지난 1월 브라질의 무역수지는 40억3500만달러(약 4조4183억원) 적자를 기록해 브라질 경제에 50여 년 만에 가장 큰 구멍을 냈다.
하지만 고용과 인플레이션 면에서는 정반대의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브라질의 1월 실업률은 월중평균으로 4.93%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고용 상황이 좋다 보니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5개월 연속 상승세를 거듭해 2월 월중평균 기준 6.18%를 기록했다. 이렇다 보니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타우 유니방코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일란 골드파진은 "브라질은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라며 "성장률이 3%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면 실업이 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그러나 브라질이 올해부터 다시 성장세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내년 월드컵, 대선 등 경기 부양에 효과적인 대형 이벤트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한예경 기자 /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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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아베식 엔低 도박 정책의 '5大 함정'
아베노믹스 효과 불안요인 많아…실패땐 조기 하야 가능성도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차기 일본은행 총재로 대표적인 성장론자로 알려진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가 내정됐다. 이로써 ‘엔저(低)’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가 추진될 수 있는 여건이 모두 마련됐다. 엔·달러 환율이 100엔을 훌쩍 넘길 것이란 예상이 벌써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이 가장 불리하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에는 몇 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 로빈슨 크루소 비유가 들어가는 ‘국수주의 함정(Robinson’s ultranationalism trap)’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인위적인 엔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으로 갈린다. 하나는 일본 경제가 오랫동안 당면한 디플레이션 타개책으로 엔저를 묵인하는 시각이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근린 궁핍화 차원으로 인식해 적극 반발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에 가담하는 입장이다. 엔저에 따른 유로화 강세 피해가 심한 유럽 국가와 대부분 신흥국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묵인해온 국가들도 엔저가 더 심해지면 이런 입장에 속속 가담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이 점입가경(漸入佳境)에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J-커브 함정(J-curve trap)’이다. 아베 정부의 의도대로 엔저가 무역수지 개선과 이를 통한 경기부양이 가능해지려면 ‘마셜-러너 조건(Marshall-Lerner condition)’을 충족해야 한다. 국제무역이론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다뤄지는 이 조건은 수출입 공급에서 문제가 없을 경우 외화표시 수출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자국통화표시 수입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합한 값이 ‘1’을 넘어야 엔저가 무역수지를 개선시킬 수 있음을 뜻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는 무역수지가 더 악화되고, 경기부양도 외수기여도가 떨어진다. 특히 엔저에 따른 수출입 가격 변화에도 물량 변화가 쉽지 않은 초기에는 무역수지가 심하게 악화된다. 엔저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적자 폭이 커진 1월 일본의 무역통계가 ‘J-커브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뒷받침해 준다.
셋째, ‘부메랑 함정(boomerang trap)’이다. 갈수록 나라 안팎에서 반대가 심해짐에도 불구, 아베 정부가 엔저를 무리하게 유도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디플레이션 타개다. 엔저가 되면 수출이 늘어남과 동시에 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기대된다. 수출 업종 중심으로 일본 기업의 주가가 강하게 반등하는 것은 이런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보다 내수 확대가 더 중요하다. 인구 고령화 등으로 일본의 내수시장은 앞으로도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무리한 엔저로 남아 있는 내수 기반마저 무너질 경우 일본의 경기침체가 더 장기화되는 자충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때 국제 외환시장에서 ‘미스터 엔’으로 통했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대 교수가 아베식 엔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넷째, 일본 내 ‘자금이탈 함정(exodus trap)’이다. 아베노믹스 초기에는 일본 내 자금이 더 풍부해진다. 엔저를 유도하기 위해 자산매입 과정에서 풀리는 유동성에다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차원에서 주가 상승을 겨냥한 외국 자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체리 피킹이란 주가가 적정 수준에서 떨어질수록 체리가 무르익어 따 먹으면(주식 매입) 맛있게 먹을 수 있다(투자 수익)는 데서 비롯된 일종의 저가 매수 전략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상황이다. ‘S자형 투자원칙’이나 ‘하이먼-민스크의 리스크 이론’대로 초기 단계를 지나 일본 경제 회복과 같은 추가적인 투자 유인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 통화 가치를 감안한 피셔의 국제간 자금 이동 이론상 ‘제로(0) 금리’에다 엔저까지 가세하면 엔 캐리 자금은 언제든지 이탈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된다면 ‘역(逆) 자산 효과’까지 겹쳐 경기는 부메랑 함정에 더 빠져들고, 일본 내에서는 자금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다섯째, ‘좀비 함정(zombie trap)’이다. 아베 정부의 엔저 정책처럼 특정국 경제에서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기대가 무너질 경우 정책 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내더라도 국민들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좀비 현상이 가장 먼저 나타날 수 있다. 좀비는 시체와 같다는 의미다.
좀비 현상이 더 심해지면 비이성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경제 분야에서 비이성적인 행동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잘못됐다’고 보는 이분법적 사고(dichotomy)를 말한다. 이분법 경제는 일본처럼 장기간 침체 국면이 지속되는 국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敵)이다.
결국 아베 정부가 5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 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지금보다 엔저를 더 진행하려 무리수를 두거나 아니면 지금까지 유도했던 엔저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경쟁국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다른 정책을 보완하는 길이다. 무리하게 전자의 길을 택한다면 아베 총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하야할 운명에 처할 수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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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행복지수로 박근혜 정부 평가
7월부터 발표
김광두 원장 "朴대통령 이제 회원 아니다"대선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이 ‘국민행복지수’를 7월부터 발표한다. 박 대통령의 외곽 조직에서 벗어나 국정운영 성적표를 직접 평가함으로써 개혁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독립적 기관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사진)은 3일 서울 서강대 마테오관에서 홈페이지 공개 행사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조직발전 방향을 밝혔다. 그는 “이제 박 대통령은 더 이상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이 아니다”며 “앞으로 어떤 정권, 정당의 정책이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2010년 12월 박 대통령의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학계를 중심으로 전직 관료, 기업인 등 80여명이 설립했다. 박 대통령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회원 상당수는 새누리당 대선기구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현 정부의 공약을 구체화했다. 새 정부의 첫 내각과 청와대에 들어간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 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보자, 최성재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등이 연구원 출신이다.
연구원은 이번 홈페이지 공개를 계기로 독립적인 싱크탱크로 ‘홀로서기’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민행복지수, 민생지수, 안정지수 등 3대 지표를 개발해 3개월 단위로 발표할 예정이다. 모두 박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분야다. 이날 처음으로 민생지수를 공개한 데 이어 국민행복지수, 안정지수는 7월부터 발표하기로 했다. 회원인 남주하 서강대 교수는 “국민행복지수는 고용률 70%, 반값 등록금, 의료 복지 개선 등 새 정부의 공약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 이후에도 국민 삶의 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또 운영 및 활동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기업 후원을 받지 않고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다수의 소액 지원만 받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회원이 낸 회비를 모아 운영해왔다.
연구원은 지난 2년간 쌓아온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정책 보고서도 꾸준히 공개할 계획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미래硏 "朴정부서 홀로서기"…민생지수, 금융위기 때보다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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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미래연구원 인터넷 홈페이지. |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국가미래연구원이 독립적인 싱크탱크를 지향하며 "국민행복지수·민생지수·국민안전지수 등 3대 지표를 개발하겠다"고 3일 밝혔다. 미래연구원은 미국 우파 진영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을 지향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미래연구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미래연구원이 개발하겠다는 국민행복지수·민생지수·국민안전지수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을 나타낼 수도 있어 객관적인 홀로서기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미래연구원은 이날 민생지수를 먼저 공개했다. 국민행복지수는 7월1일, 경제행복지수는 3월10일부터 공개하겠다고 미래연구원은 밝혔다.
미래연구원은 "국민들의 살림살이, 즉 민생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진다고 하지만, 민생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그리고 왜 어려워졌는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지표가 없었다"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민생지수를 개발해 정부 정책의 목표를 설정하고 정책 성과를 관리하고자 민생지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민생지수는 실질주택·전세 가격·실질소득·고용률·교육비 등을 종합해 구성되며 분기마다 산출한다.
미래연구원은 "2002년 민생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노무현 정부 5년간 민생지수는 5.05포인트가 하락해 2007년 94.95를, 이명박 정부 5년간은 6.11포인트가 하락해 88.84를 기록했다"며 “지난 10년간 민생지수는 11.06포인트나 하락했다”고 밝혔다.
미래연구원은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났던 2008년 민생지수는 88.94였는데, 작년 3분기 현재 민생지수는 88.84"라며 "국민들이 금융위기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고 호소하는 것은 엄살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조호진 기자
superstor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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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게임체인저'가 될 美·EU FTA
정인교 < 인하대 교수·경제학 inkyo@inha.ac.kr >
하루 거래 36억달러 규모 경제권…FTA체결되면 무역질서 큰 변화
통상정책 점검, 대응책 마련해야지난달 12일 연두교서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인 범대서양FTA(TAFTA) 체결 의지를 밝혔다. 2년 내 체결되기에는 버거운 과제로 보이지만, 미 대통령의 TAFTA 공식협상 언급은 당사국인 미국과 유럽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던 1990년대 중반에 양측은 TAFTA에 대해 간헐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고, 최근 몇 년 사이 실무자 간 협의를 넘어 고위급에서 검토해 왔다. 지난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데이비드 카메룬 영국 총리도 TAFTA 구축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고, 브루킹스 등 워싱턴에 있는 연구기관들도 2기 오바마 행정부가 이를 추진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은 서로 최대 교역대상지역이다. 양측은 하루 36억달러어치를 거래하고 투자 누적총액이 6조달러에 달할 정도로 긴밀한 경제관계를 가지고 있어 TAFTA 체결은 두 지역 경제에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세계 최대이면서 선진경제권인 두 지역이 FTA로 연결되면 상품교역 확대, 상호간 투자 증대, 기술표준 등에서의 협력 강화, 환경-노동 등에서의 국제 규범화 추진 등으로 상당한 경제이익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지역주의 경제통상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 양측은 이런 영향력을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상당한 기대이익이 예상됨에도 그동안 TAFTA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 TAFTA 추진은 GATT-WTO 다자무역체제 폐기로 비춰질 수 있다. 유럽국가들은 EU의 확대로 고무돼 있었기에 미국과의 TAFTA 체결은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미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재정절벽과 수출부진으로 전반적인 경제여건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몇 년 전부터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 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경제효과가 낮은 ‘무늬만 협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등이 참여하지 않고 있고, 기존 참여국들 간 견해 차이로 협상도 부진한 상황이다.
TAFTA 추진은 역외국에게 보호무역주의로 작용하고, 세계적인 새로운 지역주의 열풍을 불러올 수 있다. 역외국들은 무역전환 손실과 더불어 미국·유럽 간 공조로 변경된 게임룰을 지켜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다.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목소리 큰 신흥개도국과의 입장 차이가 유지되는 가운데, TAFTA 체결은 DDA를 무한 표류시킬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양측이 협조하면서 TAFTA 게임체인저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경우 이들 신흥개도국을 DDA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낼 가능성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심 통상의제를 TPP에서 TAFTA로 전환시키면서 부진한 TPP 협상을 진전시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몇 년째 답보상태에 놓여 있는 DDA 협상이 진전될 기미가 없고, 경제효과가 없는 TPP를 의미있는 통상정책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집권 2기에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적 눈총을 받더라도 TAFTA를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과거와 달리 유럽의 지도자들이 TAFTA를 들고 나온 것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농업문제 등으로 TAFTA 체결이 낙관적이지 않지만, 체결될 경우를 대비해 대응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미국 및 EU와 FTA를 체결했기에 중국,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TAFTA 피해가 덜할 수 있지만, 거대 선진대국 간 FTA는 기술표준, 무역규범, 투자유치, 서비스교역 등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미국과 유럽이 TAFTA를 게임체인저로 활용할 경우 세계 통상질서에 미칠 영향은 클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에 대한 지역통상 차원이 아니라, DDA 협상은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TPP, 동아시아 경제통합 구도 등에 대한 한국의 통상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고 종합적인 대응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 인하대 교수·경제학
inkyo@inh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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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숙련기술 키워야 국민이 행복…'기술인=기름쟁이' 편견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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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묵 대한민국명장회장은 “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해야 한국 경제가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며 “명장의 위상을 높여 기술인의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
대한민국명장회 신임회장 최창묵 시계수리 명장(名匠)
15세 때 입문해 시계수리 외길…한 가지 일에 미치니 삶 재밌어
숙련기술로 中企 경쟁력 키워야…명장 위상 높여 롤모델 만들 것칼바람이 불던 1969년 겨울 전북 고창의 해리면 소재지인 하련리. 고픈 배를 달래며 시계수리점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한 기술자가 넥타이를 매고 환한 전구 아래에서 시계를 고치는 중이었다. 중학교 수업료를 제대로 못 낼 정도로 가난했던 그 아이는 커서 멋진 기술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듬해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시계수리 기술을 배우기 시작, 43년 외길을 걸었다. 바로 최창묵 시계수리 명장(58)이다. 그는 지난달 정부가 인정한 명장(名匠) 547명이 가입한 ‘대한민국명장회’의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첨단기술이 판치는 이 시대에도 숙련기술 육성이 국가 경제의 희망이라고 믿는 ‘올드보이’. 19년째 운영 중인 서울 삼성동의 명품시계 유통·수리매장 ‘탑타임’에서 그를 만났다.
▷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숙련기술입니까. “첨단산업만 키워서는 모든 국민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지만 80%의 국민은 ‘나 죽겠다’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몸담고 있는 중소기업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게 숙련기술입니다. 첨단산업은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접근하기 어렵지만 숙련기술은 중소기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기술인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 열매를 다시 기술인들이 누리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체 국민의 복지가 좋아지고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새 정부의 산업육성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새 정부의 공약과 국정과제에는 숙련기술 육성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반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와 사회가 기술인에 대해 최고의 대우를 해줬죠. 제 입장에서는 박 전 대통령 시절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자랐으니 실제로 국정 운영을 하면서는 잘 챙겨주리라 생각합니다. 밑바닥 기술인들이 산업화 시기에 손에 기름 묻혀 가면서 일해 한국 경제를 이만큼 키우지 않았습니까. 경기 침체기를 딛고 도약하려면 그런 계기를 다시 한번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숙련기술인의 위치는 어떤가요.“숙련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합니다. ‘기름쟁이’라고 부르면서 천대시하는 분위기까지 있습니다. 때문에 취업난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청년들은 취업을 보장하는 기술을 꺼리고 대학 진학만 바라보는 모순된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모들도 자식이 기술을 배우기 바라지 않죠. 하지만 청년들이 모두 판·검사만 하려고 하면 사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사회가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산업현장에서 땀흘리는 기술인 아닙니까. 한국은 지금 반대로 뒤집혀 있습니다.”
▷‘기술입국’이 국정지표였던 시절도 있었죠.“경제가 성장해도 기술인들에게 그만큼의 과실을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을 기피하게 된 거죠. 산업화 시기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자부심도 있었지만 그보다 공장 생활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대우가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죠. 하루에 8시간 일해야 하는 것을 18시간 일하면서도 돈은 8시간만큼만 받았습니다. 참다 못해서 불만을 표시하고 나서면 전부 ‘빨갱이’로 몰아버렸죠. 국가 경제가 발전하는 것에 비해서 숙련기술인에 대한 처우 개선은 상대적으로 느렸습니다.”
▷외국에서는 숙련기술인을 어떻게 대합니까.“스위스 독일 일본 등 시계산업 선진국을 많이 다녀봤습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숙련기술인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으로 보고 최고의 예우를 하더군요. 예를 들어 스위스에서 그 나라 숙련기술인과 대화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기술인에게 다가와 경의를 표하고 가는 걸 자주 볼 수 있죠. 국민의 시선에 존경심이 배어 있습니다. 경제적인 처우도 좋아 독일에서는 명장증서 하나만으로도 사업자금 2억원 정도는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롤모델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명장을 보고 국민들이 ‘기술을 배우면 저렇게 잘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기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첫째, 숙련기술인의 위상을 올리는 상징적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명장증서가 고용노동부 장관 명의로 나오는데 이것을 대통령 명의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또 올해부터 명장에게 표창을 준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보다 한 단계 높은 훈장을 줘야 합니다. 둘째, 정부가 주는 계속종사장려금을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연금(월 52만5000~100만원) 수준으로 올려야 합니다. 지금은 명장이 된 다음해에 연간 167만원이 나오고 1년이 지날 때마다 10만원씩 올려주고 있어서(최고 357만원) 그 수준에 크게 못 미칩니다. 셋째, 명장의 활동 범위를 넓혀줘야 합니다. 명장은 60세도 젊기 때문에 기업체에서 일하는 경우 그 기업의 정년보다 더 오래 일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또 정부가 운영하는 기술학교의 이름을 ‘명장학교’로 바꾸고 명장을 강사진으로 초청해야 합니다.”
▷시계수리를 배우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고향인 전북 고창 해리면을 지나다 우연히 시계수리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겨울이라 날도 춥고 배도 고팠는데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걸 보니 참 부럽더군요. 이듬해 서울에 무작정 올라와서 서울 평창동에 있는 한미시계학원에 들어갔습니다. 학원비가 없어 허드렛일을 하는 조건으로 공짜로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수업 도우미를 하다 보니 남들은 하루에 한 시간 듣는 수업을 여섯 시간씩 듣게 돼 기술을 빨리 배울 수 있었죠. 물론 강의시간에 배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취침시간에 혼자 빠져 나와 밤새 연습했고요. 그 결과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 해에 서울 후암동 시계대학병원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미도파백화점, 유로통상(명품시계 유통업체) 등 시계 분야 톱클래스 직장으로만 옮겨 다녔습니다.”
▷43년 외길을 걸으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뭔가요.“시계수리는 아주 작은 ��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정밀하게 다뤄야 하는 지난한 작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할 때 집중력이 매우 강해야 합니다. 일을 많이 하던 시절에는 자리에 한 번 앉으면 5~6시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잡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43년을 살다 보니 한 가지 일에 미치면 인생이 재미있고 성공도 보장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비록 어려운 일이 닥친다고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저도 탑타임(명품시계 수리·유통매장)을 차린 직후 외환위기가 닥쳐 힘들었지만 전문 분야가 있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오더군요.”
▷명장회 회장으로서 활동 계획은.
“명장의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명장 관련 정책 주관부처인 고용부도 최근 계속종사장려금을 인상하는 등 명장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고무적입니다. 정·관계와 긴밀하게 협조해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진전된 모습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국회를 찾아가 협조도 구하고 언론을 통해 대국민 홍보도 추진하겠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최창묵 명장회 회장은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계수리 분야 명장이다. 195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고 열다섯 살에 상경해 서울 평창동 한미시계학원에서 시계수리를 처음 배웠다. 기술을 배운 지 3년 만인 1973년 경인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이듬해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시계 부문에서 금메달을 딸 만큼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5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시계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당시 대회 개최지인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귀국, 카퍼레이드로 청와대에 가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일을 ‘최고의 추억’으로 꼽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시절이어서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도 봤다고 한다. 1984~1995년과 2001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장을 지냈다. 1992년 한국시계기술협회장 등을 지낸 뒤 2009년 명장이 됐다. 지난달 23일 대한민국명장회 정기총회에서 임기 2년의 제11대 회장으로 뽑혔다.
■ 명장이란정부가 인정한 최고 기술자…22개 분야에 547명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정부가 인정한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를 말한다. 3월 현재 96개 직종에서 547명이 활약하고 있다. 명장을 두는 직종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로 정한다. 큰 묶음으로는 공예, 서비스, 섬유, 기계 등 22개 분야가 있다. 시계수리, 항공정비, 금형, 용접 등이 속한 기계 분야가 96명으로 가장 많다.
명장에 오르기 위해서는 △해당 직종 경력이 15년 이상 돼야 하고 △해당 직종에서 최고의 숙련기술을 보유해야 하며 △숙련기술의 발전이나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신규 선정 심사를 하며 35명 내외를 뽑도록 돼 있으나 보통 20~25명이 선정된다. 관련 공무원, 해당 분야 종사자, 전문가 등 20여명이 위원으로 있는 대한민국명장심사위원회(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가 선정 심사를 한다.
명장에게는 선정 연도에 일시장려금 2000만원을 지급하며 매년 계속종사장려금도 준다. 1년에 한 번 주는 계속종사장려금은 명장 선정 이듬해에 167만원이 나오고 한 해가 지날수록 10만원씩 올라간다. 고용부는 최초 지급하는 계속종사장려금을 2015년까지 215만원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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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 CEO] 디스플레이산업협회장 선임된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지난달 2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총회. 이날 협회장으로 선임된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하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검정 양복에 짙푸른 넥타이로 단정한 멋을 냈다. 김 사장은 항상 깔끔한 옷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선다. 양복 바짓단은 복숭아뼈 부근에 오도록 단정히 정리하고 양복이나 조끼 윗도리는 체격에 알맞게 착용한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꼼꼼하고 깔끔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고 의사결정 속도가 빠른 편"이라며 "자기 관리가 철저한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날 협회장 취임식에서 "핵심 소재와 장비 국산화 기술을 지원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 원천기술 개발 등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 사업들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사장은 지난해 12월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전자 계열사 내 서열 2위인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로 전격 발탁됐다. 삼성 미래 기술을 총괄하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사장)을 3년간 수행하고 삼성디스플레이로 투입된 데는 그의 탁월한 ’기술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삼성전자의 캐시카우로 손꼽히던 액정표시장치(LCD)사업부는 2011년 대규모 적자에 허덕였다. 결국 삼성전자에서 떨어져 나온 LCD사업부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과 합쳐진 게 지금의 삼성디스플레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디스플레이 초대 대표이사를 겸직하면서 이 회사의 사업 체질을 일차적으로 바꿔낸 데 이어 지난해 말 김기남 사장이 구원투수로 낙점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삼성 안팎의 평이다.
198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학사)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2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반도체 전문가로 꼽힌다. 198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공학 석사, 1994년 미국 UCLA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해 삼성전자 사업장과 연구실에서 터득한 현장 기술에다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김 사장의 기술 역량은 세계 최고 전자그룹인 삼성 내에서 역대 최상위 수준에 속한다. 그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증명하는 3대 증거가 △삼성펠로 선임 △미국전기전자학회(IEEE) 석학회원 △미국 공학한림원 회원 선정이다.
삼성은 2002년부터 한 해 한 차례씩 삼성을 대표하는 S(슈퍼)급 핵심 기술인력에게 ’삼성 펠로(Fellow)’라는 최고 명예직을 부여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선임된 삼성 펠로는 총 18명에 불과하며 김 사장은 이들 중 처음으로 대표이사가 됐다. 김 사장은 2003년에 삼성 펠로로 선정됐다.
김 사장은 1기가 D램부터 4기가 D램까지 반도체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고 반도체 차세대연구팀장을 맡아 S램, P램, 플래시 메모리, 퓨전 메모리 등을 개발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김기남 당시 전무가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을 이끌면서 일년 내내 밤낮으로 연구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2003년 초 김 사장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IEEE 석학회원(펠로)으로도 선정됐다. IEEE는 전기ㆍ전자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은 연구원을 석학회원으로 매년 뽑는데 전체 IEEE 회원의 0.1% 정도에 불과하다. 2012년에는 미국 공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 외국회원으로 선발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사람으로는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이상엽 KAIST 교수에 이어 세 번째며 기업인 중에서는 처음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숨 가쁜 개발 업무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최신 연구논문과 보고서 탐독을 놓치지 않는다"며 "매일 아침 6시 30분 전에 출근하고 밤 9~10시 퇴근을 반복하는 워커홀릭"이라고 귀띔했다.
김 사장은 지금까지 국내외 학술지에 4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는 쟁쟁한 S급 기술인력이 즐비하다. 그중 삼성 사장급으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한 인물이 윤종용, 이윤우, 이기태, 임형규 등인데 이들의 뒤를 이어 김기남 사장이 한국과총 부회장을 맡게 됐다.
물론 체력 관리에도 틈틈이 신경 쓴다. 김 사장은 매일 점심마다 1시간 정도를 할애해 등산화를 신고 사업장 주변을 산책한다. 주말에는 등산을 즐긴다.
김 사장은 "디스플레이는 사양 산업이 아니고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플렉시블, 투명 디스플레이 등 기술 진화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속속 열릴 것"이라면서 디스플레이 낙관론을 강조한다.
최근에는 LG디스플레이와 얽힌 특허소송 분쟁에서 유연한 해결 자세를 취해 눈길을 끌었다. 김 사장은 "일본ㆍ대만ㆍ중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소모적 분쟁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해외 경쟁 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TV용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양산에 성공하는 등 디스플레이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해 낼지 전자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 He is…
김기남 사장은 △1958년생 △1977년 강릉고 졸업 △1981년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 △1981년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기술팀 입사 △198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공학 석사 △1994년 미국 UCLA 전자공학 박사 △200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차세대연구팀장 △2003년 미국전기전자학회(IEEE) 석학회원 △2003년 삼성 펠로 선정 △2007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 개발실장 △2009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 △2010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사장) △2012년 미국 공학한림원 회원 △2012년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황인혁 기자 / 이경진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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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유라시아로 건너간 한인들의 놀라운 역사!
[프레시안 books]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프레시안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올해는 함경도 농민들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올해가 아닌 내년(2014년)에 다양한 150주년 행사를 거행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고려인협회를 비롯한 구소련지역의 한인 사회에서는 1864년을 최초의 이주로 공식화한 바 있다. 10년 전 140주년 행사를 두고 논란을 벌인 끝에 내린 공식적 결정이었다. 그 근거는 두 가지다. 제정러시아시기의 공식문건에 한인들이 나타났다는 기록, 그리고 1914년 한인들이 한인노령이주50주년 기념행사를 계획·추진했던 사실이다.
여하튼 한국학계의 정설인 '1863년 최초이주설'에 따르게 되면, 구소련지역 한인이민사에서 올해는 참으로 뜻 깊은 해가 된다. 이 뜻 깊은 해에 시의적절하게 간행된 책이 원로언론인 김호준이 집필한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주류성 펴냄)이다.
소련붕괴 이전 시기인 1980년대 후반에 신연자의 <소련의 고려사람들>(동아일보사 펴냄),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고송무의 <쏘련의 한인들>(이론과 실천 펴냄)이 간행된 바 있다. 전자는 소련시기에 중앙아시아를 방문하고 썼다는데 의미가 있지만 여행기에 가깝고, 후자는 개설서 형식을 취했으나 한인들의 이주사와 언론, 문화예술 활동 등 한정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서대숙 교수가 편집하여 1987년에 간행했던 영문서 <Koreans in the Soviet Union>(University of Hawaii 펴냄)이 1989년 번역·출간됐다. 이 책 <소비에트 한인백년사>(이서구 옮김, 태암 펴냄)는 재미한인학자(서대숙, 신연자)와 일본인 학자들(와다 하루키, 하라 테리유키, 기무라 히데스케)이 쓴 논문들을 엮은 책이다.
2000년대 들어와 러시아와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구소련지역의 한인역사를 다룬 개설서가 간행되었다. 우선 러시아학계에서는 2004년 '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하여, 보리스 박과 니콜라이 부가이의 공저인 <러시아에서의 140년간 : 재러한인이주사>(시대정신 펴냄)이 한글과 러시아어로 동시 간행되었다.
이어 한국학계에서 국사편찬위원회가 기획한 '재외동포사총서' 시리즈의 하나로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펴냄)가 간행되었는데, 여러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였다. 이 두 책은 러시아와 한국 학계의 성과를 각각 반영하고는 있지만, 양국 학계의 연구 성과가 상호간에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동안 구소련지역 한인역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명실상부한 개설서 편찬이 힘들었던 것은 개별학자들의 탓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학계의 연구 성과가 부족한 때문이다. 여전히 사실적 측면에서조차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는 오랜 냉전으로 인한 교류의 부재, 러시아어라는 언어적 장벽, 거주지역의 지리적 광범함과 이주·재이주와 정착과정의 복잡다단함, 러시아와 한국학계의 교류 결여와 연구자의 수적 부족 등 여러 원인에서 비롯된 바 크다. 이에 더하여 학문적 논쟁이 충분치 못하여 한국과 러시아 학계 모두 사실적, 해석상의 오류가 방치되고 되풀이 되고 있는 점도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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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김호준 지음, 주류성 펴냄). ⓒ주류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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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은 이러한 연구 환경의 제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문역사학자가 아닌 저자가 '거대한 구상'을 세우고 학계의 성과들을 널리 섭렵하여 성실하게 반영하고 자신의 개인적 연구를 바탕으로 총 17장, 550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로 정리해 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2002년 키르기즈스탄 방문 이후 고려인 연구를 위해 보낸 10여 년의 세월과 구소련지역 곳곳을 직접 답사하며 다양한 고려인들을 인터뷰하고 사진과 문헌 자료들 수집한 저자의 열정과 노고가 돋보인다.
우선 이 책은 그 서술내용이 1860년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150년에 집중되어 있지만, 고대와 중세시기의 한반도-서역교류사로서 7세기의 '고구려 사절단, 고구려 멸망 이후 끌려간 고구려유민의 후손 고선지(高仙芝)의 활약,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통일신라의 혜초(慧超) 등을 고려인 역사의 전사(前史)로서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긴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에 더하여 다루고 있는 지리적 범위 역시 유럽러시아로부터 러시아 원동의 사할린에 이르기까지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유라시아대륙의 거의 모든 지역을 망라하고 있다.
다루고 있는 주제들 역시 이주사, 인구변화, 일상생활, 항일독립운동, 공산주의운동, 한인사회의 변화과정, 시베리아내전이후의 소비에트화와 집단화과정, 1937년 강제이주, 중앙아시아에서의 정착생활과 문화활동, 각 지역(국가)의 고려인 분포, 출세한 고려인들의 면모, 고려인의 문화적 정체성 등 고려인 역사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부문을 다루고 있다. 특히 1930년대 전반에 시작된 고려인 엘리트에 대한 대탄압과 1937년의 강제이주, 이후 고난에 찬 정착과정과 재이주에 관해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노력전선(勞力戰線)'에 투입되었던 고려인 노동군(勞動軍)에 관한 부문 역시 한국학계에서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노동군 출신들의 생생한 경험이 담긴 인터뷰들은 저자의 값진 발굴성과라 할 수 있다. 이후 중앙아시아 내에서 고려인들이 수행한 다양한 농업경영, 특히 고려인 특유의 고본질에 대하여는 그 기원으로부터 조직과 경영 방식, 경제적, 사회적 의미와 러시아인들의 평가 등의 다양한 각도에서 소개하고 있다.
1945년 광복 후 북조선에 진주한 소군정에 협조하여 북조선 정권 성립에 참여한 이른바 '고려인 군단'의 활동과 운명에 관한 부분은 독자들의 특별한 흥미를 끈다. 저자가 자평한 바,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한국 속의 고려인'에 대해서도 최초로 정리해 놓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구소련지역을 벗어나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 또는 중국으로 이주한 고려인들까지 향후의 연구에서 보완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은 저자가 많은 시간을 들여 발로 뛰면서 채록한 고려인들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점인데, 고려인들의 생생한 삶과 경험이 잘 드러나 있다. 연해주를 비롯한 바이칼호수 동쪽 러시아지역을 일컫는 일본식 표현 '극동(極東)' 대신에 '원동(遠東)'이라 표현하고 있는 점도 깊은 공감을 갖게 한다. '원동'이란 말은 고려인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원초적 고향으로서 이주와 정착 그리고 강제이주 등의 역사적 선조들이 겪어온 고통의 역사와 정서가 함축된 표현으로 단순한 명칭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주제의 모든 측면에서 구소련지역의 한인 역사에 대한 포괄적이며 총체적인 역저라 할 수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전문적 학술서라기보다는 대중교양서에 가까운 저서라 할 수 있지만, 현시점에 고려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종합적인 교양서로서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언론인으로서의 오랜 경력에서 비롯된바 물 흐르듯 유려한 문체와 문장,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주제에 따라 형식이나 체제에 얽매이지 않은 독자 위주의 서술방식이 읽기가 수월하여 훌륭한 대중서로서 손색이 없다. 학계의 연구 성과들을 정리한 참고문헌과 색인을 첨부했고, 인물 사진을 비롯하여 본문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다양한 사진들을 풍부하게 싣고 있어 대중강좌나 강단의 교재로서도 활용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대중서이기 때문에 엄격한 학문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지만, 서술과정에서 의존하거나 인용한 저서나 논문에 서지적 전거를 명기하고 있지 않은 점이 아쉽다. 그 결과 논쟁적인 부분이나 의심나는 구체적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특히 인용문의 경우, 특히 문헌에서 인용해온 경우에는 그 전거를 명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인터뷰 일시와 장소를 명기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대부분 연월은 표시하였지만)
간혹 발견되는 사실적 오류와 부정확한 부분이 있는데, 이는 한국역사학계의 구체적인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저자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계 자체의 연구 성과가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한말 의병활동에 참가한 고려인 수가 10여만 명에 달한다고 한 서술(22쪽), 1907년 8월에서 1908년 2월 사이에 1700회 전투에 달했다는 서술(54-55쪽), 이범윤 휘하의 의병이 4000명에 달했다는 서술(52쪽) 등은 명백한 과장으로 전문역사학자들도 무심코 인용하게 되는 잘못된 원전의 탓이다.(당시 연해주 전체 고려인수가 10만 명 안팎이었다!)
고려인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숫자가 다르게 제시된 부분 역시 서로 상충된 통계를 제시한 한 예이고(286쪽, 269쪽), 1910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든 의병부대를 하나로 총합한 군사조직이 창의회(倡義會)였다는 서술(55~56쪽, 원래는 '13도의군'이다)은 저자가 학계의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경우이다.
영국의 저명한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Isabella L. Bird)의 남우수리 지방 방문시기를 1897년으로 서술하고 있는 점이나(36~37쪽), 1918년 10월 최초의 고려인 빨치산 부대 조직자가 박일리야였다는 서술(78쪽, 원래는 박이반 다닐로비치다), 하바롭스크에 거리이름을 남긴 1929년 동중철도 사건의 영웅 김유경을 김유천으로 잘못 서술하고 있는 것(79쪽) 등은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사소한 오류이다.
1914년 제2의 러일전쟁에 대비하여 권업회가 군사지휘부로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하였다고 파악한 것은 학계의 잘못된 성과를 반영한 것이다.(66쪽), 권업회는 러시아당국의 허가를 받은 합법적 공개적 단체인데 반하여, 대한광복군정부는 비합법적, 비밀조직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즉, 비입적 여호인들인 이상설, 이동휘, 이종호, 정재관 등이 합법단체인 권업회에 참여함과 동시에, 비합법단체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하면서 러시아당국의 정책을 고려해야만 하는 입적 ���호인들에게는 이를 숨겼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향후의 구소련지역 한인문제 연구의 진전을 위하여 두 가지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고려인'이란 명칭에 관한 문제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고려인'이라는 명칭을 쓰게 된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고려인'이란 명칭은 구소련지역이나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로서 앞으로도 이 명칭이 굳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저자가 '고려인'의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거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앞에 소개한 여러 개설서의 제목들로부터 알 수 있는 바, 구소련지역의 한인들에 대한 명칭은 사용하는 주체와 대상 시기와 의도에 따라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적 입장에서 다각적인 측면의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1867~1869년에 남부우수리를 여행한 러시아 여행가 프르제발스키(N. M. Pruzheval'skii)를 인용했다. 당시 그가 만난 이주 한인농민들이 스스로를 '고려사람'을 뜻하는 '까울리(Kauli)'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연해주가 고구려 땅이었음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이로부터 한인들의 강력한 역사적 연고의식(historical franchise)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후 다양한 명칭에서 사용된 '고려'나 '고려사람' '고려인'에서도 이러한 의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저자가 '고려인'을 구소련지역의 동포들의 명칭으로서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강력한 논거이다.
일반적으로 한민족과 오랜 역사적 인연을 가져왔던 타민족사람들, 특히 아시아내륙지방의 사람들이 한인들을 '까울리(Kauli)'로 불렀다는 기록은 많다. 예를 들어 1910년대 후반 몽골인들은 울란바토르에 거주했던 세브란스 출신 의사 이태준을 '까울리 의사'라고 불렀다. '까울리(Kauli)'는 주지하는 바 '고(구)려'와 역사적 연원을 둔 명칭임은 명백하지만, 우리 동포들이 스스로를 부른 자칭이기도 했고 다른 민족이 우리 동포들을 불렀던 타칭이기도 했던 것이다.
원동러시아의 한인사회에 한정할 경우, 대체로 제정러시아시기에는 '한인'과 '조선'이 보다 많이 쓰였다. 대한제국으로 멸망한 탓에 '한인사회당,' '대한광복군정부' '대한국민의회' 등에서 볼 수 있는 바, '대한제국'을 염두에 둔 '한인'이 많이 쓰이게 된다.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러시아인들, 특히 러시아 혁명세력들과의 접촉이 빈번해졌고 점차 러시아어를 많이 쓰게 되면서 '고려'라는 용어가 자주 쓰였다. 1923년 3월 이후 1937년 강제이주까지 연해주 지역에서 간행된 한글신문 <선봉>을 보면, 러시아어인 '까레이츠'(Koreits)와 연계되어 '고려인' 또는 '고려사람'이 널리 쓰였다.
대략 1934년 8월 이후에는 '조선' '조선인'이 많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제2세계대전이후 북조선과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소련군과 함께 북조선에 나갔다 온 사람들, 그리고 사할린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주로 남한 출신)이 <레닌기치> 등 언론·문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91년의 소련붕괴 시점까지 이어진다. 즉, 1950년대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레닌기치> 신문의 기사에는 '고려사람'보다는 '조선사람'이, '고려극장' 보다는 '조선극장'이라는 말이 선택되었다.
한편 1985년 중앙아시아를 방문한 재미학자 신연자에 따르면, 당시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는 노년기 한인들은 자신들을 '고려사람'이라고 불렀고 우리말을 모르는 젊은 후세들은 스스로 러시아어로 '소비에트 카레이츠 (Sovietskie Koreitsy)'라고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소련의 고려사람들>, 4쪽)
저자가 '고려인' 앞에 '유라시아'를 덧붙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1991년 소련붕괴 이후 구소련지역 한인동포들은 스스로를 이전의 '소비에트 카레이츠 (Sovietskie Koreitsy)' 대신 '유라시아 카레이츠'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1993년에 간행된 박보리스의 저서 <제정러시아 시기 한인들> 서문에서 고려인 철학박사 유가이 게라심(G.A. Iugai)이 밝힌 바 있다. 즉, '유라시아'에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그리고 중앙아시아가 포함되고 이 지역의 한인들을 '유라시아 카레이츠'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비에트'라는 정치공동체 명칭 대신에 '유라시아'라고 하는 '지리적 개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를 논하고 싶다. 고려인의 정체성에 관한 저자의 인식은 혈통주의적, 동포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것같다. 아울러 저자는 '유라시아 고려인'들이 '역사적 조국'인 한국과의 만남으로 통하여 이들의 정체성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돌아 보면 그동안 한반도와의 연계성을 추적하는 혈통주의적, 동포주의적 정체성론이 해외동포, 특히 고려인사회에의 학문적인 접근은 물론 정부와 민간차원의 동포 관련 사업에서 주류를 차지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학자 한발레리는 한국학자들이 강조하는 '통일된 한국적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는 "어떠한 민족적 정체성도 추상적인 것으로서 또는 초역사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하면서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역사적 존재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우즈베키스탄 한인의 정체성 연구>(권희영·Valery Han·반병률 지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펴냄) 70쪽) 한반도 내외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한반도 또는 남북 그 하나에 틀을 맞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의 출간을 계기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한반도의 '역사적 조국'이 역사적 경험과 가치를 달리하는 유라시아 고려인들의 정체성을 포용할 수 있는 자격 있는 주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한반도 내외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이 서로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명실상부한 국제주의적 가치에 입각한 인류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mal@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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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도 깜짝 놀란 朴대통령의 '외국어 실력'
영어·불어로 토론 가능
중국어·스페인어로도 대화
외교사절에 세련된 표현도박근혜 대통령의 외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영어와 프랑스어는 토론이 가능할 만큼 능숙하고, 중국어와 스페인어는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외교사절 환담에 배석한 관계자들 얘기를 종합하면 상당한 수준의 어학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영어는 외교관들도 쓰기 힘든 고급 표현을 간혹 구사해 통역관들도 깜짝 놀란다는 후문이다. 김형진 청와대 외교비서관은 “회담시 통역을 쓰는 게 관행이지만 통역 전에 상대방의 말을 다 알아듣는 눈치”라며 “공식 환담 전후 가벼운 대화는 대부분 영어로 하는데 세련된 표현을 자주 구사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당선인 시절인 지난 1월14일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와이트먼 대사가 “예전에 한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지만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하자 영어로 “It’s the thought that counts(해보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라고 답변했다. 당시 통역으로 배석했던 한 관계자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때 일반인은 흔히 하기 힘든 표현이라서 놀랐다”고 말했다.
취임 후 지난달 26일 데이비드 존스턴 캐나다 총독과의 정상환담에서는 존스턴 총독이 “대통령과 마치 오랜 친구인 것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the feeling is mutual(동감이다)”이라고 화답했다
김 비서관은 “흔히 ‘I have the same feeling’을 떠올리지 이런 표현은 잘 구사하기 힘들다”며 “꾸준히 영어를 쓰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쉽게 나오지 않은 표현”이라고 했다. 취임 직전인 지난달 22일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제임스 서먼 연합사령관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때는 “ditto(동감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프랑스어도 격식을 갖춘 표현을 곧잘 쓴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한 측근은 “과거 대학 졸업 후 프랑스 유학 시절 배운 실력이 아직 남아 있다”고 전했다. 스페인어도 간단한 회화를 구사할 줄 안다. 지난달 26일 마리솔 에스피노사 페루 제1부통령과의 접견 마무리에 스페인어로 인사를 건네며 “Hablo un poco espanol(제가 스페인어를 조금 합니다)”라고 했다.
중국어 역시 “EBS 교재로 5년간 독학해 농담을 건넬 정도로 대화할 줄 안다”고 박 대통령 스스로 밝힌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2008년 중국 후진타오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도 중국어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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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나
■ 재보선 출마 의도와 향후 행보는
안철수, 예상보다 빠르게 정계 복귀 선언… 제3세력 조직화 '시동'
박근혜정부 지지율 추락, 민주 계파 싸움 골몰… 安 복귀에 길 터 줘
국회 입성 성공하면 정치권 새판짜기에 상당한 영향 미칠 듯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4ㆍ24 보궐선거 직접 출마를 전격 결정한 것은 제3지대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대선 도전에서 실패 요인으로 꼽혔던 무소속 후보의 조직력 부재, 애매모호한 태도와 늦은 결단 등의 약점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조속히 결단한 셈이다. 그의 국회 입성이 성공하면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부터 '안철수 바람'이 야권 발(發) 정계 개편을 촉발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당초 안 전 교수가 3월에 귀국하더라도 안철수재단과 포럼 활동 등을 통해 외곽에서 보폭을 넓히며 차분히 정치 재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내다봤다. 4월 보궐 선거에서도 측근들의 출마를 측면 지원하는 것으로 역할을 제한하고, 본인은 일러야 10월 보궐선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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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송호창 의원이 3일 국회 정론관에서 안철수 전 서울대교수의 4월 보궐선거 출마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송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 캠프 공동선대본부장을 지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
예상을 깨고 안 전 교수가 4월 보선 출마 카드를 꺼낸 것은 제3세력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속히 구심점으로 나설 필요를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철수 세력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 전 교수가 지금부터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던 만큼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여야 모두 혁신과 정치력 부재의 난맥상을 보이는 것도 안 전 교수의 빠른 정치권 복귀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이후 박근혜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모두 추락하고 있다"며 "특히 민주당이 대선 패배 뒤에도 혁신 없이 계파 싸움에만 골몰하는 것으로 비쳐 안 전 교수의 복귀 길을 터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전 교수의 보궐선거 도전이 쉽사리 성공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안기부 X 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은 상태에서 노 대표 측과의 협의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벌써부터 잡음이 나오고 있다. 진보정의당이 "일방적 출마 선언이 매우 유감"이라며 즉각 반발하는데다 야권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 영도 대신 야권에 유리한 노원병에 출마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노원병에 후보를 내지 않고 안 전 교수 측에 양보할지도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노원병 후보 출마 여부를 놓고 친안(親安) 세력과 반안(反安) 세력으로 갈등을 빚을 공산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안 전 교수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지 못한다면 승리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안 전 교수가 여러 위험 요인을 뚫고 원내에 진입한다면 정치권의 새판짜기 흐름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기성 정치권이 대립과 갈등, 계파 정치를 반복하게 되면 정치개혁 기대감이 다시 안 전 교수에 쏠릴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민주당 일부 세력이 이탈해 안 전 교수 측에 합류할 수 있는데다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하는 진보정의당도 안 전 교수와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 관계자는 "안 전 교수가 원내에 진입해서 정치력을 보여주면 10월 보궐 선거와 내년 6월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신당 창당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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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수석비서관 서열 바뀌나..좌 '정무' 우 '국정기획'
[이데일리 박원익 기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의 자리 배치가 달라졌다. 박 대통령의 의중과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는 수석비서관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국정 방향과 정책 우선 순위 등이 의전 서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27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맞은편에 허태열 비서실장이 자리했고, 좌우에는 각각 이정현 정무수석과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배석했다.
대통령의 맞은편과 오른쪽 및 왼쪽 자리는 서열 순대로 배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관급인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경호실장을 제외하고 차관급인 수석비서관 중에서 정무수석과 국정기획수석이 대통령의 좌우에 자리했다는 것은 높아진 해당 수석들의 위상을 반영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선 김중수 경제수석과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이 각각 대통령의 왼쪽과 오른쪽에 배석했다.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왼쪽에 자리한 것은 이 전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를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로 삼았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
보고 순서가 국정기획수석, 정무수석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자리배치 뿐 아니라 보고 순서가 앞섰다는 건 박 대통령이 국정현안의 우선순위를 국정기획과 정무분야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수석비서관 인선 발표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18일엔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가장 먼저 발표됐고 19일엔 이정현 정무수석이 맨 앞이었다. 새 정부 출범 초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국정기획수석실의 역할에 무게를 뒀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관측이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은 정부조직개편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140개의 국정과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여의도 정치’의 복원을 고려하면 정무수석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정현 수석은 기존 친박(親朴) 중 유일한 수석이자 박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새 정부에서 강화되는 사회안전 업무도 정무수석실이 관장한다.
수석비서관 회의 시간이 늦춰진 것도 이전 정부와 달라진 점이다. 이 전 대통령이 오전 8시에 첫 회의를 개회한 반면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에 주재했다. ‘얼리 버드’(Early Bird)를 표방하며 부지런함을 강조한 이 전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의 보고 준비 시간 등을 고려해 회의 시간을 늦춘 것으로 전해진다.
박원익 (
wipark@edaily.co.kr)
박근혜 요직 인사 배경엔 7인회?
정홍원·남재준·황교안 등 추천설
2일 현경대 전 의원의 아들 결혼식에서 현 전 의원(오른쪽)이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운데)와 악수하고 있다. 이들과 김용갑 전 의원(왼쪽)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자문그룹 '7인회' 멤버다. [최정동 기자]지난 2일 국가정보원장에 내정된 남재준 전 육군 참모총장은 강창희(67) 국회의장과 육사 25기 동기다. 남 후보자는 2007년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국방·외교·안보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대선 때는 국방·안보특보를 맡았다. 하지만 남 후보자가 박 대통령에게 가까이 갈 수 있었던 첫 순간에는 중간에 다리를 놓아준 강 의장이 있었기 때문이란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두 사람은 육사 생도 시절부터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김기춘(74) 전 법무부 장관의 경남중 후배이자 검찰에서 근무할 때 상관으로 보좌한 사이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선 정 총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추천한 인사가 김 전 장관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김기춘 전 장관-강창희 국회의장의 공통점이 있다.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 멤버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장관급 인사가 거의 마무리되면서 7인회가 주목받고 있다. 7인회 멤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사들 상당수가 입각하면서다.
7인회는 두 사람과 함께 김용환(81) 새누리당 상임고문, 안병훈(75) 기파랑 대표, 최병렬(75) 전 한나라당 대표, 김용갑(77) 전 의원, 현경대(74) 전 의원 등 7명을 가리킨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남을 가지며 자문에 응해왔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선 공개활동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박 대통령과 7인회가 오랫동안 교분을 쌓아오는 과정에서 이들이 잘 아는 인사들 얘기가 나왔을 수 있고 '인재'에 관심이 많은 박 대통령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7인회 멤버 가운데 김 전 장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검찰 출신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김 전 장관이 밀어줬다는 평가가 법조계 내부에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공안통이다. 이외에도 인수위 고용복지분과 위원을 지낸 안상훈 서울대 교수가 김 전 장관의 사위다.
서울고(9회) 출신으로 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를 했던 안병훈 대표는 유진룡(27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서울고 선후배로 가까운 사이다.
7인회의 좌장 격인 김용환 고문은 지난해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박근혜 캠프의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으로 합류하는 데 역할을 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영락교회에선 현경대 전 의원 장남의 결혼식이 열렸다. 김용환 고문 등 7인회 멤버 대부분과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등 여권의 수뇌부가 모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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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조국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 접어" 전격 사퇴(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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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조국위해 헌신하려던 마음 접어" 전격 사퇴 (서울=연합뉴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정론관을 나서고 있다. 김 내정자는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워졌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13.3.4 << 노컷뉴스 제공 >> photo@yna.co.kr |
장관 내정자 중 첫 낙마…朴대통령 타격 불가피
김용준 포함땐 두번째 낙마…여야 정부조직법 협상에 미칠 영향 주목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는 4일 "이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 한다"며 내정자직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김 내정자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워졌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내정자는 기자회견 후 사퇴하는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네"라고 답변한 뒤 곧바로 국회를 떠났다.
김 내정자의 사퇴는 새 정부 각료 후보자 및 지명자 가운데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 이후 두번째다. 장관 내정자 가운데는 첫 낙마 사례로 남게 됐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는 새 정부의 '핵심 중 핵심' 부처여서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시작부터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그의 사퇴는 교착상태에 빠진 여야의 정부조직법 협상에도 직·간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는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어제 대통령이 제안한 영수회담이 무산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저는 어려서 미국에 이민 가 열심히 연구하고 도전했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또 인정받는 한국인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면서 "그러나 제가 미국에서 일군 모든 것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저를 낳아 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가 그 길을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창조경제에 달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과학과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생산적으로 융합해 새로운 일자리와 미래성장동력을 창출해야 미래를 열 수 있다. 그 비전에 공감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박 대통령의 선택에 감명받아 동참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김 내정자는 그러나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시점에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창조과학부 관련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면서 "조국을 위해 바치려던 꿈을 지키기 어렵고, 조국을 위해 바치려 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사퇴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의 마음이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와 국민이 힘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sims@yna.co.kr
靑 "김종훈 사퇴 유감··· 다양한 인재 역량발휘 환경 만들어야"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청와대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의 갑작스런 사퇴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논평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대국민담화 시작 20분 전인 4일 오전 9시 40분께 긴급 브리핑을 갖고 "김종훈 씨가 사퇴하기로 한 데 대단히 유감"이라는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윤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와 세계에서 활동하는 인재를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런 인재를 육성하는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하면 결국 국가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박 대통령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미래창조'를 위한 핵심으로, 직접 설득해 삼고초려 끝에 모시고 온 사람"이라며 "그런 분이 국내 정치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떠나시게 된 데 대단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 대변인은 "부디 모든 인재를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길 부탁한다"며 "다시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러 온 분들이 돌아가지 않도록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3일) 김종훈 내정자로부터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윤 대변인은 전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
[전문]'사퇴' 김종훈 "국정 혼란, 참담한 심정"
<아이뉴스24>
[윤미숙기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진 사퇴 의사를 전격 밝혔다.
다음은 김종훈 내정자가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 전문이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일주일 지나고 어제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 무산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어려서 미국 이민 가서 열심히 연구하고 도전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갖고 미국에서 인정 받는 한국인으로 자리 잡을때까지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해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에서 일궈온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저를 낳아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돌아왔습니다. 그 길 선택한 것은 한국의 미래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창조경제에 달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은 과학과 ICT 산업을 생산적으로 융합해서 새로운 일자리와 미래성장동력을 창출해야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비전에 공감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대통령의 설득에 감명 받아 동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려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조직 개편안 논란과 여러 혼란상 보면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조국을 위해 바치려고 했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에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했던 마음 지켜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제 저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했던 마음을 접으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마지막으로 한국과 국민의 미래를 위해 박 대통령이 꿈꾸는 창조경제가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와 국민 여러분이 힘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