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바닥찍고 부활… 中갑부, 맨해튼 200채 싹쓸이도
월세 수익률 4~5%, 새 안전자산 판단… 美큰손도 몰려
연준, 매달 44조원어치 담보채권 사들여 시장에 활력
세계 부동산 시장은 지금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불러왔던 ‘원흉’으로 꼽히는 미국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 연준(연방준비제도)이 작년 9월부터 매달 400억달러(약 44조원)어치의 모기지(장기주택담보대출) 담보 채권을 사들여 부동산 시장에 돈을 푸는 것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자 세계 갑부들은 미국 부동산을 사려고 뉴욕·마이애미·실리콘 밸리 등지로 몰려들고 있다. 반면 유럽에선 부동산 침체가 여전히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자 ‘영주권 장사’까지 하면서 해외 투자자를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풀린 돈이 몰려든 홍콩 등지에선 오히려 부동산 시장 과열이 걱정거리여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속도 차가 있지만, 유럽을 제외하곤 세계가 전반적으로 부동산 상승 궤도에 올라선 양상이다.
방 2개짜리 아파트가 100만달러(약 11억원)를 호가하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초호화 주상복합건물 '마르키스 레지던스'. 이곳 506가구 중 30%가 브라질 부유층이다. 이 건물은 2008년 완공됐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로 분양이 신통치 않았었다. 그러나 작년 브라질풍의 모델 하우스를 만들고, 브라질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에 나서자 한 달 만에 15채가 팔렸다. 현재는 한 채만 비어 있다. 미 경제 잡지 포브스는 지난달 18일 "마이애미 호화 주택 구매자의 60% 이상이 브라질·러시아·유럽 등지에서 온 외국 부호(富豪)들이다"라고 전했다.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선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들이 부동산 쇼핑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는 지난 2월 "뉴욕 번화가인 59번가에서 79번가 사이에서 경매가 300만달러 이상인 주택 낙찰자 중에서 60%가 중국인이고, 맨해튼 남부에선 100만달러가 넘는 아파트 중 200채 이상을 중국인이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의 부동산 업자 켄 딜리온은 포브스지와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은 일주일 정도 방문해서는 10채 정도의 집을 보고, 맘에 들면 조건 없이 현찰로 산다"며 "실리콘 밸리의 중심인 팔로 알토의 집 구매자 중 3분의 1이 중국인"이라고 했다.
세계 경제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었던 미국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자 글로벌 자금이 미국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부동산 지수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케이스-실러 지수는 지난 2월 전년보다 9.3% 상승했다. 상승폭으론 6년 9개월 만의 최대다. 미국 집값은 작년 6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부동산, 저금리 시대의 대안 부상
전미부동산중개업협회(NAR)에 따르면 작년 외국인들은 미국 내 부동산을 825억달러어치 사들였다. 전년(664억달러)보다 24% 급증했다.
미국 큰손도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2일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내 헤지펀드,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이 집을 구입해 월세를 주면서 두 자릿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구글·링크드인 등 벤처 기업 직원들이 1000만달러짜리 호화 주택을 척척 사들이고 있다. 2월 집값 상승률이 가장 높은 도시는 금융위기 때 폭락했던 애리조나의 피닉스다. 1년 사이에 24%나 뛰었다. 외국 부호들이 몰리는 뉴욕·마이애미·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의 집값 급등 지역에 속한다.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선 미국 부동산이 '새로운 안전 자산'으로 통하고 있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10년 만기)의 수익률은 저금리 시대를 맞아 연 2% 미만이지만, 뉴욕의 월세 수익률은 4~5%에 달한다. 마이애미의 월세 수익률은 6~7%까지 나온다. 여기에 시세 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위험을 헤지(회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준의 부동산 부양책 지속이 변수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데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양적 완화(채권을 매입해서 돈을 푸는 것)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미 연준은 작년 9월부터 매월 400억달러(약 44조원) 규모의 모기지(장기주택담보대출) 담보 채권을 시장에서 사들이고 있다. 모기지 시장에 자금이 넘치면서 모기지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에서 주택금융을 제공하는 프레디맥에 따르면 3월 평균 1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연 3.57%로 우리나라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잔액 기준 연 4.46%)보다 낮다. 싼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 수요가 살아나는 것이다.
세계적인 부동산 컨설팅회사 CBRE는 "연준이 올해에도 통화 완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저금리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올해는 미국 부동산 시장이 회복하느냐 마느냐는 질문을 던질 게 아니라 얼마나 회복세가 강하냐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일 연준의 양적 완화가 축소될 경우 모기지 금리가 올라 주택 시장 상승 속도가 주춤할 수 있다. 하지만 주택 시장 회복이란 큰 흐름세를 꺾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추세다.
[방현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