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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경영정보(9/13)

구봉88 2014. 9. 14. 23:06

-기업경영정보관련 모음입니다.

(GMRI  Business Intelligence 2014- 498호,   2014.  9.   13.)

 

그래픽 여성이 일하는 자세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제공

 

 

 

 

 

국내외  경제.산업동향

  1.가짜 서민법 논란까지… 133일째 법안 0건 ‘불임국회’

  2."응답하라, 재정정책!"…`홀로 돈 푸는` 드라기의 SOS

  3.러시아 루블화 가치 사상 최저…美·EU 추가 경제 제재 압박

  4.'45억 아시안 축제' 기업들이 먼저 뛴다

 

기업경영

  1.1만원 퀵 서비스가 250원 우체국을 이기는 이유? 사용 만족감

  2.역사를 가능케 한 역사 뒤의 여성들

  3.여성 잠재력 100% 활용 방법?… ①수평적 조직 ②일 자체의 의미 부여 ③유연한 근무 환경

  4.美 GE 경영진은 왜 家電부문을 스웨덴에 팔았을까

  5.[장세진 교수의 '전략&인사이트'] 인도 그룹 '타타'의 길, '릴라이언스'의 길

  6.싸우면 必敗… 기계와 공존할 일자리 창조하라

  7.제러미 리프킨의 '제로 한계비용 사회'

  8.쿠폰·멤버십카드까지 뚱뚱한 지갑, 스마트폰에 쏙~

  9.알리바바 미국 상장? 박 대통령과 만남서 무슨 이야기...

  10.애플 "아이폰 예약주문 신기록"…'대화면' 6+ 품절(종합)

  11."애플, 페이스북-트위터와는 싸울 생각 없다"

  12.텔레파시가 현실로…두뇌를 인터넷으로 연결 메시지 전송 성공

  13.IT담당자만 보안 외치는 기업은 위험하다

 

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1.개성공단 재가동 1년…갈길 먼 국제화

  2."착한 일 한 뒤 나쁜 일 할 가능성 커져"<사이언스>

  3.푸틴 때문에 우는 유럽 과일농가…왜?

  4.[S 스토리]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로…"사장님 나빠요"

  5.[현장 속으로] 헤밍웨이의 1차 세계대전, 줄리안 알프스 전선을 가다

  6.[토요일에 만난 사람]데뷔 15주년 ‘god’ 재결합 이끈 김태우

  7.박희태 전 국회의장, `성추행 의혹` 해명했다가 논란 더 키워

  8.공동 비대위원장 영입 무산…새정치연합 혼돈 속으로

  9.당대표 뽑아놓고 흔들기...새정연의 뿌리깊은 흑역사

  10.대권 주자 1위 김무성, 여권의 ‘차기 아이콘’ 될까

  11.[토요판 커버스토리]한일관계 ‘조선통신사’에 길을 묻다

  12.[커버스토리] 억겁의 세월이 빚었네…알프스 속살이 빛나네

  13.[토요 Watch] 고개숙인 애널리스트

 

               박 두규드림 

       dgpark5909@hanmail.net

(010-3616-3013, 042-629-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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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외  경제.산업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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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국회가 12일로 133일째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무능 국회로 전락했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정쟁에 묻혀 입법 의무를 잊은 지 이미 오래다.

현재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애타게 기다리는 의안은 91개다. 이 중 87개는 여야가 사이좋을 때 이견 없이 상임위원회와 법사위원회를 통과시킨 법률안들이다. 하지만 정국 상황이 악화되자 여야가 본회의 처리를 합의한 법안까지 발목이 잡혀 있다. 여야가 매일 같은 얘기를 반복하며 지루한 입씨름만 펼치고 있어 갈등 요소가 거의 없는 법안들의 본회의 통과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성난 국민들 사이에서 국회 해산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입법 제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경제활성화 법안을 포함한 민생 법안을 언제 처리될지도 모르는 세월호 특별법과 분리해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이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법안들이 서민들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며 반박하고 있다. 입법 제로 상황에서 민생 법안의 '진짜·가짜' 논쟁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정쟁(政爭)에 발 묶인 '91개' 의안=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본회의 처리 예상의안으로 올라온 안건은 현재까지 모두 123개에 달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4일 여야에 국회정상화를 촉구하며 "추석 명절 직후 세월호 특별법과 함께 처리해야 한다"고 지목한 91개 의안은 법률안 87개와 안건 4개다. 안건은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결과 발표 규탄 결의안' '개인정보 대량유출 관련 실태 조사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채택의 건' 등이다.

87개 법안은 상임위와 법사위를 무리 없이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만 하면 곧바로 통과가 가능한 비쟁점 법안들이다. 새누리당이 다툴 일 없는 법안부터 우선 처리하자고 야당에 요구하는 법안들이다.

87개 법안에는 대출사기 등 불법행위에 사용된 전화번호 이용정지 등의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 발전소나 발전연료가 특정지역에 편중되지 않도록 사업 허가기준을 강화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 등이 포함돼 있다. 새정치연합이 "87개 법안 중 민생과 매우 밀접해 있고 시급성과 중요성이 크다고 여겨지는 것은 2개 법안"이라고 꼽은 것이 바로 이들 법안이다.

이외에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법안들이 있다. 빚만 탕감 받고 경영권을 되찾는, 이른바 '유병언식 기업재건'을 막기 위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314명의 피해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피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자금 이체의 지급 효력이 일정 시간이 지난 뒤부터 발생하는 내용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아동 학대 등 부당한 친권행사 시 친권 일부를 제한하는 '민법개정안' 등이 민생과 관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7개 법안 중 최소 50개 법안은 일부 문구만 수정한 '단순 개정안'인 것으로 분석됐다. 예를 들어 국가공무원법 일부개정안, 농어업재해대책법 일부개정안 등 33개는 조항 중 벌금액 부분을 징역 1년에 1000만원 비율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안 등 12개 법안도 민법 개정에 따라 '금치산자 및 한정치산자' 문구를 '피성년후견인'으로 대체하는 게 골자다.

여야는 그러나 이런 법률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보험 공사채 등 이미 사실상 시행되고 있는 제도를 법률로 규정해 명확성을 제고하는 법안들이 많다"며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민생에 큰 문제가 생길 것처럼 호도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본회의에 계류 중인 법안 처리는 여야가 합의한 사안으로 국회의장이 거부할 이유도 권한도 없다"며 "'의장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법에 따른 실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이날 양당 원내대표에게 정기국회 의사일정과 관련한 협조공문을 보냈다. 정 의장은 상임위원장단과의 연석회의에서 "91개 법안 리스트에는 정부가 긴급히 요청한 30개 민생법안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 의장은 또 "15일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본회의를 열어) 법안을 통과시켜 정기국회를 망쳐놓으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당 단독으로라도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새누리당의 요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피력한 것이다.

◇'진짜·가짜' 논쟁에 휩싸인 경제활성화 및 민생법안=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여야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며 지목한 경제활성화 법안 30개는 더 큰 '뇌관'이다. 경제활성화 30개 법안은 투자활성화 관련 법안 18개, 주택정상화·도심재생사업 관련 법안 6개, 민생안정 법안 3개, 금융 및 개인정보 보호 법안 3개 등 4개 분야로 이뤄졌다.

이들 법안 중 복지사각지대 해소와 관련한 이른바 '송파 세모녀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일부 법안은 여야가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의료법, 주택법, 관광진흥법, 경제자유구역특별법 등은 정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어 세월호 특별법 합의만큼이나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 경제자유구역특별법의 경우 정부와 여당은 외국인관광객의 즐길 거리를 확대하고 투자 유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은 카지노 유치를 위한 외국 투기자본 유입이 국민정서 및 문화정서에 반하며 '먹튀'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반대하는 입장이다.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 내 관광숙박 시설 입지 허용을 담은 관광진흥법 개정안의 경우 여당은 2017년까지 7000억원 투자효과와 1만7000개 일자리 창출 효과가 가능하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시급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관광호텔 사업자를 위한 특혜 법안이며, 학교 주변 불법·퇴폐적 유해시설 상존 가능성이 있어 학생의 교육권이 위협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폐지와 전매금지 대상 재지정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은 '주택시장 활성화'와 '사회적 갈등 야기'라는 논쟁이 붙고 있다. 같은 법을 놓고 '진짜·가짜' 민생법안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새정치연합은 대신 소득 중심의 가계성장 관련 법안과 세월호 참사 관련 법안, 5대 신사회위험 해결법안 등 52개 법안을 '진짜 민생법안'으로 제안하고 전선 확대에까지 나섰다. 15일부터는 자체적으로 상임위별 릴레이 정책토론회도 연다.

30개 법안은 현재 대부분 소관 상임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상임위 전체회의, 소위원회 회의, 법사위 심사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쟁점별 다툼이 예고돼 있지만 현재는 국회 파행으로 심사는커녕 '발의' 상태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한 상태다.

전웅빈 최승욱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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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 "통화-재정정책-구조개혁 함께 가야 유로존 회생 가능"
- "필요시 추가 행동 준비돼"..정부-기업 투자 중요성 강조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을 디플레이션 공포에서 구해내기 위해 총대를 맨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재정부양정책으로 힘을 실어 달라며 각국 정부에 호소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드라기 총재는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로파이 금융포럼(Eurofi Financial Forum) 강연에서 “오늘 전하려고 하는 주된 메시지는, 통화정책 뿐만 아니라 재정정책과 경제구조 개혁이 손을 맞잡고 함께 가야만 유로존이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ECB는 지난주 통화정책회의에서 시장 예상을 뒤엎고 또다시 기준금리를 10bp(0.10%포인트) 낮은 사상 최저인 0.05%로 조정했고, 10월부터는 자산유동화증권(MBS)과 커버드본드를 시장에서 직접 매입하는 제한적 의미의 양적완화도 시작하겠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드라기 총재는 “ECB 혼자만으로는 유로존 경제를 부양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ECB 통화정책위원회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추가로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거듭 확인하면서도 경제를 확실히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투자에 나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로존 각국 정부들은 독일 주도로 재정 긴축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드라기 총재는 지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 참석해 “EU가 회원국 재정적자 상한선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정하고 있는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에 유연성을 가미해 각국이 자국내 수요를 부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때”라며 각국 정상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EU 정상들은 이론적으로 드라기 총재의 주장에 동조하면서도 “아직까지는 이에 대한 컨센서스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EU 정상들은 지난 6월 회의 때부터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에 국가별로 유연성을 두는 방안을 논의해오고 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드라기 총재가 재정정책에 간섭하는 것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을 정도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미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반면 유로존 기업들의 투자는 소폭 개선된 이후 정체양상을 보이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이 정도 기업 투자 개선으로는 지속 가능한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는 재정을 풀어 투자하고, 기업들은 현금을 풀어 과감하게 투자할 때라야만 우리가 기대하는 인플레이션 상승이 나타날 수 있으며, 경제도 부양되고 고용도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드라기 총재는 최근 2년간 친기업적 경제 개혁으로 투자를 살리고 성장률을 높이고 있는 스페인이 유로존 각국에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future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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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루블화 가치 사상 최저…美·EU 추가 경제 제재 압박

유럽연합(EU)과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안를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각) 달러화 대비 루블화 환율은 장중한 때 전날보다 1.2% 오른 37.97달러까지 상승했다 (루블화 가치는 하락). 사상 최저 기록을 경신한 루블화 가치는 지난주 보다 2.5% 가까이 떨어졌다. 러시아 국채 금리도 닷새 만에 반등(국채 가격은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루블화 가치가 최근 다시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은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정 선언에도 불구, 미국과 EU가 경제 제재를 계속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에 대해 만기 30일 이상의 채권과 주식 매매를 금지하는 한편, 가스프롬과 로스네스프트 등 에너지·안보 분야 5대 기업에 대해서도 만기 90일 이상의 채권 구입과 금융제공을 금지하기로 했다.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사이의 휴전이 이뤄진 후 추가 제재를 미뤄온 EU도 이날 러시아 은행·에너지·방산업체 등 15개 회사와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지도자 등 러시아 정부·기업인 24명을 추가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서방 측의 경제 제재 발표를 앞두고 러시아 정부는 외국 항공사들의 러시아 상공 비행을 금지하는 한편, 의류 제품과 중고차 수입을 금지하는 보복 조치를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남민우 기자 n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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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아이뉴스24>

추석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늘상 그렇지만 연휴 뒤 찾아오는 일상의 피곤함은 때론 더 무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음주에는 짧은(?) 연휴의 아쉬움을 달래줄 또다른 축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45억 아시아인들의 스포츠 축제, 인천 아시안게임이 19일 그 화려한 막을 올리죠.

아시아 45개국, 약 1만3천여 명이 참가해 역대 대회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번 대회에서 각국 선수들은 보름여간 36개 종목 총 439개 금메달을 걸고 4년간 갈고 닦은 기량을 펼치게 됩니다. 이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승리 그 감동의 드라마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할 겁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 시피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규모 스포츠 대회는 막대한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이벤트이자 기업들의 마케팅 전쟁터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아시안게임의 경제효과는 대략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생산유발 및 부가가치 창출 등을 포함해서죠. 여기에 고용창출 효과도 27만명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기사이미지

또 45억 아시안을 겨냥, 제품과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마케팅 경쟁도 본 게임 열기 못잖습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대한항공, 신한은행 등이 이번 아시안게임의 프레스티지 파트너(공식 후원사)로 각국 대표들과 함께 장외에서 펼칠 열띤 경쟁도 또다른 볼거리인 셈이죠.

삼성전자는 지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이번 대회까지 총 5회 연속 공식 스폰서로 후원해 왔습니다. 이번 대회도 이미 지난달 말부터 중국·태국서 아시안게임 성공기원 달리기에 나서는 등 분위기 띄우기에 한창입니다.

또 인천시 구월동 삼성화재, 삼성생명 사옥을 비롯해 인천공항 3층 출발대합실, 공항철도 김포공항역·인천공항역·서울역 등 주요 관문에 옥외 광고물을 설치하고, 전략 제품인 커브드 TV 판촉행사 등에도 열심입니다. 대회기간 중 '갤럭시 시리즈'를 홍보하는 체험 홍보관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현대·기아자동차 역시 ▲에쿠스, 그랜저, 쏘나타, 아반떼, K7, K5, K3 등 승용차 600여대 ▲스타렉스 300여대, ▲버스 800여대 등 총 1천700여대를 이번 대회 공식차량으로 지원합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아시아 각국 대표 선수들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들에게 현대·기아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죠. 이 외에도 대회기간 중 ▲경기장내 기업 홍보관 운영 ▲선수 번호판 광고 ▲경기장 A보드 광고 등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적극 나설 예정입니다.

SK텔레콤은 아예 이번 대회를 '모바일 기반 최고의 IT대회'로 구현한다는 목표로 1위 통신업체로서 기술력을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총 1천여명의 직원을 투입, 49개 경기장과 데이터센터, 국제방송센터 등 100여개 주요 거점에 IT·통신·방송 전 분야에 걸쳐 인프라를 구축, 경기 지원 준비에 만전을 꾀하고 있습니다. 대회기간 중 역시 홍보관도 운영합니다.

이외 SK에너지는 선수단 차량 등 조직위원회의 모든 운영차량에 석유제품을 단독 공급하고, 소니코리아는 KBS의 UHD 제작을 지원하는 것으로 아시안게임을 통한 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기업들은 말 그대로 비인기 종목으로 어려움을 겪던 종목들을 후원, 인기종목으로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가령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들은 레슬링이나 양궁, 핸드볼, 체조 종목 등을 후원해 왔습니다. 그동안 이들이 지원해온 종목들에서 또 어떤 결실을 맺게 될 지도 지켜봐 주십시오.

/박영례기자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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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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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1만원 퀵 서비스가 250원 우체국을 이기는 이유? 사용 만족감

  • 정리=이위재 기자
  • 조지원 조선비즈 인턴기자
  • 입력 : 2014.09.13 03:08

    위비 지식콘서트 조광수 연세대 교수가 말하는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
    아직도 가격 경쟁?
    소비자는 가격 아닌 사용 만족감에 더 민감
    인스타그램·우버택시… 프리미엄급 경험 제공
    UX 외면하면 시장이 외면
    시작 버튼 없앤 윈도 8 사용자 불만 쏟아져
    혁신의 중요 가치는 '사용' 소비자 관점에서 파악해야

    조광수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조광수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조광수<사진>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가 'UX(User eXperience)로 보는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펼친 위비 지식 콘서트 내용을 요약했다.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A사와 B사는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과정은 조금 다르지만, 소비자가 얻는 편익은 같다. 가격은 A사 1만원, B사 250원이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걸 선택하겠는가.

    대부분 B사를 고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A는 퀵서비스, B는 우체국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체국은 다 무너지고 있다. 사용자 경험(UX·UsereXperience)과 연관이 있다.

    올해 성균관대에 사표를 내고 연세대로 옮겨올 때 사표를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하더라. 당황했다. 우체국에 가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조교에게 부탁했더니 이 친구도 모르더라. 결국 2만8000원 주고 퀵서비스를 불렀다. 우체국에서는 250원짜리 우표 1장 붙이면 되는데 안 간다.

    우리는 비즈니스를 할 때 가격을 갖고 싸운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에겐 꼭 가격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용자 경험이 갖는 묘미가 여기에 있다. 기업의 전략에서 가격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고, 소비자 구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가 판단하는 가격의 의미가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 경험에 따라 지불하는 가치'라는 점은 쉽게 간과한다.

    소비자는 가격이 아니라 만족에 민감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UX를 분석해보자. 한쪽에는 제품과 서비스의 총비용이 있고, 반대쪽에는 소비자의 만족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양쪽 사이 어딘가에 소비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심리적 가격 수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소비자의 지불 의사 수준이라 부른다. 기업에서 이보다 낮은 상품 가격을 제시하면 소비자는 싸게 느끼지만, 높으면 비싸다고 느낀다.

    결국 기업 이윤은 비용과 가격 사이에서 결정되는데, 이윤을 높이려면 비용을 낮추거나, 소비자 만족을 높여서 두 지점 간 거리를 벌려야 한다.

    우리 산업계는 지금까지 비용 낮추는 데만 골몰했지, 만족을 높이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소비자 만족을 높이는 사업 전략이나 상품 기획은 우리 기업들의 놀라운 성장세에 비교하면 안타까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

    UX의 중요성을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노키아는 역사상 가장 많은 휴대전화를 팔아치운 기업이었다. 판매량 기준으로 역대 최다 판매 휴대전화 10대를 뽑으면 6대가 노키아 제품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무너졌다. 왜 그랬을까. 사용자 경험을 무시하고 제조업 중심 관점으로 일관하는 기업 문화가 파국을 불렀다. 단적인 예로 노키아는 휴대전화 이름을 '노키아 1100', '노키아 2200', '노키아 3300' 식으로 붙였다. 이런 노키아를 모토롤라는 '레이저', LG는 '초콜릿폰', 애플은 '아이폰', 삼성은 '갤럭시폰'으로 공략했다. 과연 이들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기술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노키아를 무너뜨렸을까.

    인스타그램은 UX에 예민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사진 올리는 기능만으로 비교하자면, 트위터에서는 사진을 보려면 7번 클릭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7번 쳐야 한다. 페이스북은 6번이었는데, 4번으로 줄였다. 인스타그램은 2~3번이면 된다. 손가락 톡톡 한 번 두드리는 데 0.1초도 안 걸린다. 7번 쳐봤자 1.4~2.8초다. 인스타그램은 1초 빠른 셈인데 이게 결정적인 차이를 부른다. 그래서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무려 1조원에 인수했다.

    애플과 삼성의 피 말리는 특허 소송에서 주요한 쟁점은 스마트폰 외각이 꺾인 정도나 앱을 배열하는 구조,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대부분 UX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를 쓰려면 문자 명령어를 외워야 했던 도스(DOS)나 유닉스(Unix) 체제를 UX 관점에서 재편한 윈도 운영체제(OS)로 혁신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구가했다.

    그런데 윈도 비스타나 윈도 8은 UX를 무시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윈도 8은 전통적으로 윈도 초기 화면 왼쪽 밑에 있는 조그만 '시작' 버튼을 없앴다. 나름대로 메뉴 구조를 연구해 편리하게 구성해서 타일처럼 화면에 나열해 놓았지만 '시작' 버튼을 없앤 것 때문에 사용자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사실 '시작' 버튼은 기술이나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사용자에게는 일터로 들어가는 현관문 같은 긴요한 역할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세계와 연동한다는 전략적 이유에서 이 버튼을 없앴는데, 도리어 이게 사용자들 불만을 가져온 것이다.

    유엑스(UX) 일러스트(그림)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혁신가치는 구매가 아니라 사용에서 출발

    사용자 경험은 '구매'보다 '사용'이 중요한 혁신가치가 되면서 빛나고 있다. 지난해 60조원을 벌어들인 구글에서 뭔가를 직접 구매한 소비자는 사실 거의 없다. 대부분 무료로 검색엔진을 쓰고, 구글 메일과 캘린더, 구글 문서도 무료다. 하지만 구글은 이를 통해 확보한 사용자가 많기 때문에, 광고 키워드를 중심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최근 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완성되는 UX 전략은 '공유(共有) 경제'라는 말을 타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있다. 우버(Uber)는 택시를 타려면 길거리에서 기다리다가 손들어서 세워야 하는 번거로움, 더구나 잘 잡히지도 않는다는 사용자 불만에서 사업을 착안했다. 우버는 UX 가치가 다르다. 스마트폰 우버 앱을 클릭하면, 누가 운전하는 무슨 차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다 볼 수 있다. 에쿠스나 벤츠 같은 최고급 차량을 제공하고, 정장을 차려입은 운전기사가 마치 개인 기사처럼 행동한다. 시쳇말로 '뽀다구' 나는 사용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요금 계산하면서 많이 나왔다느니 적다느니 현금이니 카드니 하는 실랑이도 아예 없다.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이 흥미로운 점은, 어차피 고급 차량 유휴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니, 비용이라 해봤자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그리고 기름값 정도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버 입장에서는 차량을 늘리면서 드는 비용은 거의 없고 영(zero)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비즈니스 모델 기본 공식에서 분석해 보면, 비용 쪽은 극단적으로 낮으면서도, 소비자에겐 프리미엄급 만족을 제공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지불 의사 수준을 높일 수 있고 높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소비자의 본성과 욕구를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UX 전략은 실상 신비롭거나 대단한 게 아니다. 최종 소비자가 가진 본성과 욕구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현실의 상품을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혁신도 소비자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어떻게, 무엇이 인간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느끼게'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사용 경험 전략은 비즈니스의 기본 중의 기본이며,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운영하는 UX 연구실은 융합의 표본이다. 인지과학, 정보시스템, 마케팅, 전자, 심리학, 광고, 디자인 등을 전공한 학생들이 섞여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 마음에 대해 연구한다. 과학적으로 이 사람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시각은 어떻게 작동하고, 행동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질문을 던진다. 뇌파를 측정하고 아키텍처나 UI 설계 개발, 상호 소통하는 리테일숍도 만든다. 연구실 360도를 다 스크린으로 만들고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인간의 심리와 욕망을 구현하는 UX 전략을 상당수 무시해 왔다. 선도적인 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면서 "이거 해, 저거 해"라는 임원 지시와 일사불란한 실행을 통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내지는 카피캣(copycat) 수법으로 세계시장을 분할했지만, 이제는 추진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불편한 과거는 씻어내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두려운 건 자본력, 기술력, 노동력, 그리고 소비력까지 네 박자를 무장하고 세계를 공격하는 중국 기업들이다. 이런 각축전에서 UX 전략이 가지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 욕구(needs)는 변하지 않는다. 주권자인 이용자·소비자 관점에서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가볍게, 쉽게, 재밌게 그리고 함께 UX를 만들고 품는 자가 세상을 가지는 시대가 왔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말로 강의를 마칠까 한다.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사장이 위클리비즈 인터뷰에서 했던 말인데 '천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이 가볍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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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역사를 가능케 한 역사 뒤의 여성들

  • 보스턴=윤형준 기자
  • 입력 : 2014.09.13 03:08

    ‘산파 일기’로 퓰리처상 받은 울리히 하버드大 교수 인터뷰
    微視史 걸작 '산파일기' 통해 본 책임감 강한 사회적 약자의 삶
    "여성의 기록이 남성의 것보다 풍부… 기존 역사와 관점도 판이"

    길 잃고 말에서 떨어지면서 816번이나 출장 다닌 산파
    역사에서 주목 못 받았지만 높은 책임의식으로 헌신

    집 밖으로 나와 활동하면서 여성의 삶 요즘에야 주목
    여성의 역사를 알아야 남녀 문화 차이 알 수 있어

    지금까지 역사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알렉산더, 나폴레옹, 유비 등 역사의 주인공은 모두 남성이었고, 여성은 조연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수천년 동안 여성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로렐 대처 울리히(Ulrich) 하버드대 교수는 이 의문을 평생 파고들었다. 그리고 1700년대 미국의 한 시골 산파가 27년에 걸쳐 쓴 일기를 재구성한 '산파일기'라는 책으로 1991년 퓰리처상 역사 부문과 최고 역사 저작물에 주어지는 뱅크로프트상을 비롯한 상 8개를 휩쓸었다.

    미시사(微視史)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책의 주인공 마서 밸러드라는 산파는 아기를 816명 받았다. 그는 동시에 간호사, 의사, 장의사, 약사, 농부, 주부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 거의 모두를 일기로 남겼다. 평범한 사람이 남긴, 평범하지 않은 기록이었다.

    '1789년 4월 25일. 비. 휴인스씨와 함께 허시 부인의 집에 갔다. 말이 진창에 빠졌으나 신의 가호로 다치지 않았다. 부인은 저녁 5시 30분에 무사히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마서의 일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울리히 교수는 "마서를 통해 당시 여성들이 높은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이라고 답했다.

    "저는 그가 아이를 받고자 816번이나 새로운 어떤 곳에 제대로 도착했다는 것이 놀라워요. 얼음 강을 건너고, 말에서 떨어지고, 길을 잃는 고난을 겪었는데도, 그는 어떻게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적지에 도착했고, 아이를 받아냈어요. 그의 책임의식에 저마저도 뿌듯해지더군요."

    로렐 대처 울리히 하버드대 교수
    울리히 교수
    마서의 일기장은 메인 주의 한 주립 도서관에 보관돼 있었다. 가끔 몇몇 지역 주민들만 족보를 만드는 데 참고자료로 보는 정도였다. 잠들어 있던 이 사료(史料)를 깨운 것이 바로 울리히<사진> 교수였다. 당시 뉴햄프셔대에서 초기 미국사를 연구하던 울리히 교수는 우연히 이 도서관에 들렀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마서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순간을 "마치 눈앞에 창문이 열리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 기분"이라고 회상했다. 일기장은 8년의 각고를 거쳐 책으로 다시 태어났고, 울리히 교수는 책의 성공에 힘입어 하버드대로 자리를 옮겼다. 76세인 울리히 교수는 허리가 약간 굽었고 피부는 쪼글쪼글했지만, 마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어린 소녀처럼 눈이 반짝거렸다.

    우리는 여성의 혁신을 몰랐다

    ―마서의 일기가 왜 중요한가요?

    "20세기에는 많은 여성이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18세기는 그렇지 않아요. 마서의 일기는 미국 초기 시대에서 거의 유일한 '여성이 남긴 기록'이며, 남녀를 포함해서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역사는 모두 '위에서 아래로(top-down)' 기록돼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돼,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록돼 온 겁니다. 그러나 마서의 일기장은 사회적 약자가 본 당시의 시대 상황이었고,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역사와는 관점이 아주 다릅니다."

    ―왜 여성의 기록은 거의 없나요?

    "사람들은 역사를 공공 사회의 움직임으로써만 기록해 왔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주로 새로운 지도자에게 국가의 옛 모습을 알려주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국가 지도자였는지, 전쟁에서 누가 어떻게 이겼는지 정도만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여성은 정치를 하거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옛날 기록이 대개 '비즈니스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무역 장부 같은 것인데, 마을에 어떤 상품이 수입·수출되는지, 얼마나 많은 양이 들어오고 나갔는지에 대해 적혀 있어요. 그러나 지역사회 안에서는 어떤 거래가 발생했는지 적혀 있지 않았어요. 예컨대 배추 몇 포기가 얼마에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같은 실물 경제는 여성들이 주도한 경제인데, 기록이 없어 당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기 어려웠던 겁니다."

    ―여성들의 삶은 정말 소소했나요?

    "제가 요즘 연구하는 것은, 살림 도구를 통해 보는 여성의 삶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 삼발이 솥은 18세기에 실제로 사용됐던 솥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발이 달려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당시 요리를 하던 방법과 관련이 깊어요. 지금은 전자레인지가 있고, 가스버너가 있지만, 당시에는 야외에서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불을 피우고 그 모닥불에서 요리해야 했습니다. 발이 없다면 수프를 만드는 내내 이 무쇠 덩어리를 들고 있어야 했을 겁니다.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이에 대처한 겁니다. 여성이 단순히 요리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해요. 사실 여성의 삶은 지난 수천년간 조금씩 혁신해 오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여성의 삶을 무시해왔던 건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 부분도 있죠. 예컨대 학교에서 여성의 삶이나 여성의 역사에 대해 배운 적이 있나요? 학교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가르치지만, '문화적으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아요. 일부 역사책에서 여성 영웅들에 대해서는 배우겠지만, 보편적인 여성의 삶은 잘 몰라요. 남성과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커다란 도전 과제예요."

    ―당시 다른 여성들도 마서만큼 헌신적이었나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유명한 여류 작가였던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을 '집 안의 천사'라고 불렀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가로서 글을 쓰려면, 내 안의 천사를 처단해야만 한다.' 저도 이 말을 반박하지 않아요. 제가 만약 제 안의 천사를 처단하지 않았다면, 그 천사가 제 직업을 죽였을 것 같거든요(웃음)."

    이탈리아 화가 지아코모 세루티가 그린 ‘베갯잇을 꿰매는 여인들.’
    이탈리아 화가 지아코모 세루티가 그린 ‘베갯잇을 꿰매는 여인들.’ 햇볕이 들지 않는 방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베갯잇을 꿰매고 있는 18세기 중반 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 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여성이 집을 떠나 세계로 나가다

    울리히 교수는 "남성의 기록을 통해 여성을 배우는 것보다 여성의 기록을 통해 남성을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여성은 남성이 무슨 일을 하는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만 했어요. 내조를 하고 같이 살기 위해서는 법정에서 무슨 판결이 내려졌는지, 남편이 하는 일이 무엇이고,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매일 밤 집에 몇 시쯤 들어오는지, 혹시 누구를 데려오진 않는지 전부 꿰고 있어야만 합니다. 반면 남성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무시해도 '자기 할 일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는 겁니다.

    예컨대 남성들의 일기장을 보면 '아내가 아프다'고 기록된 부분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내에 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어요. 자기 할 일에 여성의 삶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잘 몰랐거나 무시한 것이죠. 그래서 여성의 기록이 남성의 기록보다 훨씬 더 풍부하답니다."

    ―여성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중요해졌습니다.

    "여성이 중요해졌다(important)라기보다는 여성이 잘 보이게 됐다(visible)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인 것 같아요. 여성의 활동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여성은 과거에도 지금도 무척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집 안에서만 일했다면, 지금은 집 밖에서 그리고 글로벌 무대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 달라졌지요. 몇몇 국가는 여성 정치인이 지도하고 있어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과거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남성과 여성은 이제 같은 세계에 삽니다. 여성들이 집을 떠나 세계로 나간 겁니다."

    ―지금은 많은 학자가 여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산파일기'가 미친 영향은 얼마나 될까요?

    "(웃음) 몹시 어려운 질문이네요. 사람들은 사실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요.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데 책을 읽은 사람들은 태도를 바꾸더라고요. '오, 이게 만약 역사라면, 나도 읽고 싶고, 나도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약자(弱者)의 기록이 근사한 역사가 됐다는 데서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를 이끌어 내는 측면도 있는 듯해요."

    역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 교수님의 말 중에서 '예의 바른 여자가 역사를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다(Well-behaved women seldom make history)'가 한때 유행어가 됐죠.

    "(웃음) 그 말은 처음에 제가 했던 말하고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바뀌었어요. 제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건,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기록이 남는데,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에 역사 책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성들이 순종적이고 욕심이 없어서는 역사에 남을 수 없으므로, 오히려 기존의 관념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아가자는 뜻으로 사용되더군요." 울리히 교수는 이 말로 인해 일순간에 페미니즘(feminism·여권주의)의 선두 주자가 됐다.

    ―마서는 순종적이었나요?

    "그녀는 아주 헌신적이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친절했고, 좋은 이웃이었으며, 동시에 좋은 엄마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종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예컨대 법정에서 잘못된 판단이 내려졌을 땐 그것이 잘못됐다고 썼어요. 그녀는 순종적인 삶을 살았지만, 역사를 만들어 냈어요(well-behaved woman made history). 그녀는 어찌 보면 그렇게까지 순종적이었던 건 아니었나 봐요."

    ―교수님께서 이 책을 쓰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요? 독자에게 어떤 점을 가르치고 싶었나요?

    "궁극적인 목적요? (웃음) 역사학자들은 어떤 '교훈'을 남기기 위해 역사를 쓰거나 사람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절대 그러지 않아요. 역사학자는 과거의 세상을 다시 창조하기 위해서 역사책을 쓰는 겁니다. 당시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현실 세계를 벗어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돕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저희가 굳이 무언가를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역사를 보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배움의 내용은 모두 다를 겁니다. 각자 다른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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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여성 잠재력 100% 활용 방법?… ①수평적 조직 ②일 자체의 의미 부여 ③유연한 근무 환경

  • 베인앤컴퍼니 김정수 파트너

  • 베인앤컴퍼니 신경자 상무

  •  

    입력 : 2014.09.13 03:08

    '산파 일기'가 주는 경영 시사점

    김정수 파트너, 신경자 상무
    (왼쪽부터) 김정수 파트너·신경자 상무
    여성의 노동과 경제활동 참여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그러나 근대 이전까지 경제활동과 노동의 세계는 여성과 남성이 분리돼 있었으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산파일기'에 기록된 마서의 일은 남성의 세계와는 다른, 오래된 여성의 경제활동과 노동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마서의 일은 협업 정신에 기반을 둔다. 가족·이웃이라는 1차적 공동체를 근간으로 자매애라고 할 수 있는 평등한 노동 정신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마서는 양초와 비누를 만들고, 베를 짜고, 끊임없이 바느질을 했다. 도축을 하고,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며, 아이도 돌보았다. 또 산파로서 아기를 받고, 아픈 사람들에게 약을 주고 간호하는 일까지 했다. 마서가 이런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딸, 며느리 외에 이웃 여성들과의 긴밀한 협업 체계 덕분이었다. 이러한 협업 관계는 위계질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체로 수평적이었다. 마서는 경험 많은 산파로서, 또 어머니로서,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리더였으나, 상명하복식의 조직을 기반으로 한 리더는 아니었다.

    둘째, 마서를 비롯해 산파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노동에 대한 가장 중요한 보상은 일 그 자체였다. 물론 마서는 금전적 보상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마서가 아이를 받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고 밤새워 간호하는 모습에서, 보상보다는 일 자체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 마서에게 지위, 권력, 명예 등 상징적 보상은 거의 없었고, 마서 스스로도 그 부분에 대해 개의치 않고 있다.

    셋째, 마서는 멀티태스킹의 달인이란 점이다. 그녀의 일은 계획적이고 단선적인 일이 아니라,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부분으로 쪼개서 분업화하기 어려우며, 전체적 일에 대한 큰 책임은 가지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성격의 일이었다. 이런 일을 마서는 아주 유능하게 처리한 멀티태스커였다. 산파로서 출장을 갔을 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대기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뜨개질 도구를 사용했으며, 아이를 돌보면서도 누비이불을 만들고 농사일을 했다.

    오늘날은 마서의 시대와 비교해 볼 때 많은 변화가 있다. 남성과 여성의 업무 성격과 환경이 유사해졌고, 특히 남녀가 평등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마서가 보여주는, 여성 경제활동의 원형적 특성은 오늘날 여성 인력의 '최대 잠재력'을 달성하고자 하는 기업 경영자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그래픽 여성이 일하는 자세
    우선 여성 인력을 활용할 때 사내 위계질서에 따른 상사 동료 관계와 별도로 협업 정신에 근거한 친밀한 멘토-멘티 동료 관계를 설정해 주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녀 모두에게 중요하나, 경험적으로 보면 대체로 여성은 친밀한 가족 같은 관계에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정서적 지지를 받을 때 성과가 더욱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최근 많은 회사가 여성들 간의 네트워킹 기회와 여성만을 위한 일대일 멘토십을 강화하고 체계화하는 추세다. 필자가 근무하는 베인에서는 여성 컨설턴트에게 개인별 멘토를 남성보다 한 명 더 추가로 배정해 주고, 멘토들과 허심탄회하게 일대일 커뮤니케이션 세션을 정기적으로 갖도록 해 최대한 맞춤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다음으로 여성에게는 명예, 지위, 권력 같은 보상 시스템 못지않게 일 그 자체가 훌륭한 보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부분은 남녀 차이만큼이나 개인차가 크게 존재하는 부분이며 지나친 일반화는 어렵지만, 대체로 남성 직원이 명예, 지위, 권력의 상징-가령, 팀원 수, 호칭-에 좀 더 예민한 경향이 있는 반면, 여성은 일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좀 더 많이 고민한다.

    이를 고려할 때 여성의 최대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담당하는 일의 의미를 본인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일을 부분 부분 나누어 맡기기보다는 최대한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end-to-end)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에게 유연한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과제가 불가피한 데다 오랫동안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는 훈련이 돼 있다. 따라서 언제 어떻게 일을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최대한 유연성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제도와 프로세스를 도입해 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베인에서는 1년에 2개월 쉬고 10개월 일하는 '10-2' 제도를 도입해 능력 있는 여성 인재 유치와 유지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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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칼럼 Outside] 美 GE 경영진은 왜 家電부문을 스웨덴에 팔았을까

    입력 : 2014.09.13 03:07

    매건 맥아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매건 맥아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가전 부문이 스웨덴의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로 팔렸다. 가전제품의 애호가로서, 나는 애석함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애당초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고 만든 회사인) GE는 더 많은 전기를 팔기 위해 가전 사업으로 뛰어들었다. 전기를 사용하는 각종 제품 생산에 뛰어든 것이다. 실제로 최초의 토스트 기기는 전구의 소켓에 곧바로 꽂아서 사용했다. GE는 대기업들을 고객으로 하는 발전기 및 전기 기차엔진 생산 부문과 더 많은 전기에 대한 수요를 창출해내는 부문(가전 사업 등)으로 나누어졌다. 소비자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사업 부문은 성능이 좋은 가전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GE는 더 이상 전기를 사용하는 수요를 만들어내도록 노력할 필요가 사라졌다. 다른 많은 회사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사업에 특화해서, 많은 전자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GE의 소비재 사업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와는 아주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에게 스토브를 판다는 것은 그 거래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돈을 한꺼번에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가 부분은 값비싼 보증수리를 의미할 뿐이다. 반면 기업과 거래를 하게 되면 단순히 소비재를 파는 것과 달리 보수 및 유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매출을 창출해 낸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브랜드를 두고서 서로 다른 두 그룹인 소비자와 기업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이 두 가지 고객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도 큰 과제이다. GE가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경제는 여러 사업군을 거느린 기업집단 체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한 지붕 아래 다양한 사업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 특정 시장에서 실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기업 전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또 사고파는 제품이나 서비스와 직접 관련 없이 기업 경영 시에 발생하는 전기료, 보험료, 복리 비용 같은 간접비용(overhead)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단점이 이점보다 많다. 사업부서가 많아지면 내부 경쟁이 치열해지며, 이런 내부 잡음을 관리하고 조율하기 위해 갈수록 더 큰 관료주의 제도를 필요로 하게 된다. 네트워크를 하나 더 늘릴 때마다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1980년대 시행된 세제 개혁이 기업들이 '관리형 제국'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세금 혜택을 빼앗았을 때 이미 재벌을 갈기갈기 찢는 무정한 논리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런 사업 다각화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아마 불가피했을 것이다. 아니, 더 일찍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이혼은 항상 서글픈 일이다. GE의 가전 사업 부문은 우리에게 현대식 주방을 가져다준 선구자 중 하나였지만 이젠 새로운 파트너에게로 가서 더욱 성공하도록 행운을 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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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장세진 교수의 '전략&인사이트'] 인도 그룹 '타타'의 길, '릴라이언스'의 길

    입력 : 2014.09.13 03:07

    정경유착 택한 '릴라이언스' - 암바니 회장 인도 제1부자
    장관 갈아치울만큼 권세 글로벌 기업으론 성장못해
    글로벌 스탠더드 '타타' - 자선단체가 지분 66% 소유
    인도서 존경받는 기업 1위 세계적 경쟁력 갖추게 돼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백성으로부터 두려움과 사랑을 함께 받아야 하지만, 그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돼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배신하지만, 두려운 사람에겐 그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권모술수의 화신으로 알려지고, 군주론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마키아벨리가 경영자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리하기 위한 처세술을 가르쳐준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경영자 역시 사랑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처세술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다. 마키아벨리는 무엇보다도 '네세시타(Necessita)'라는 시대적 상황을 강조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때로는 교활하거나 잔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항상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보다 두려움을 선택하라는 충고는 군주론이 쓰일 당시 약육강식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똑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각각 두려움과 사랑을 선택한 인도의 두 대표 재벌 릴라이언스와 타타그룹의 사례를 보면, 그 선택이 향후 기업 전략과 사업 구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릴라이언스는 창업자 시절부터 정경 유착을 통해 성장했다. 인도가 1990년대 초반 규제 완화와 개방을 추진할 때, 릴라이언스는 정경 유착을 통해 여러 사업권을 따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릴라이언스는 내수 시장에 집중하는 화학, 석유, 에너지, 통신, 유통, 미디어 등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시가총액은 증시의 4%에 달한다. 2세 경영자인 암바니 회장의 재산은 235억달러로 인도에서 가장 부자이다.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 암바니 회장이 보유한 대저택(왼쪽). 라탄 타타 타타그룹 회장이 2008년 초저가 자동차 나노를 공개하는 모습. / 조선일보 DBㆍAP 뉴시스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 암바니 회장이 보유한 대저택(왼쪽). 라탄 타타 타타그룹 회장이 2008년 초저가 자동차 나노를 공개하는 모습. / 조선일보 DBㆍAP 뉴시스
    암바니 회장의 영향력은 필요에 따라서는 장관을 갈아 치울 수 있을 정도로 크다. 그러나 기업 지배 구조는 혼탁하기 그지없다. 절반 가까운 지분을 암바니 가족이 지배하리라 예상들은 하지만, 수많은 투자 회사를 통해 분산 소유되기 때문에 정확한 실상은 알 수 없다. 연 12억달러 규모의 내부 거래는 암바니 개인 소유의 기업에 큰 이윤을 가져다준다. 27층 규모로 영화관, 스포츠시설, 헬리콥터 착륙장을 갖춘 암바니 회장의 대저택은 뭄바이의 빈민가와 대조를 이룬다.

    반면, 타타그룹은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다. 타타그룹은 식료품, 자동차, 철강, IT 컨설팅, 소프트웨어, 화학, 발전, 호텔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시가총액은 증시의 7%를 차지한다. 릴라이언스가 규제 완화의 흐름에 정경 유착을 기반으로 내수 위주로 사업을 확장한 것에 비해, 타타는 오히려 규제 완화의 결과로 향후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것에 대응하고자 글로벌 경영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해외 진출을 추구했다. 영국의 코러스철강과 재규어, 랜드로버 자동차를 인수하고, 한국에서도 대우 상용차를 인수했다. 현재 해외 매출 비중이 60%가 넘는다.

    타타는 일찍부터 뇌물과 같은 부정적인 방법을 지양했다. 지배 구조도 투명하다. 지주회사인 타타선스는 자선단체가 지분의 66%를 소유하며, 타타 가족의 지분은 3%밖에 안 된다. 이는 선대 회장들이 자신의 개인 지분을 헌납해 문맹 퇴치, 병원, 예술, 학술 활동을 지원하는 자선단체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타타 직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기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번다"라는 말을 한다. 전임 회장인 라탄 타타는 독신으로 검소하게 살며, 유일한 낙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타 자동차가 3000달러의 초저가 자동차 나노를 개발하게 된 동기도, 오토바이에 위험하게 여럿 타고 다니는 인도 서민을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라탄 타타는 2012년 은퇴하면서 가족이 아닌 인물(사이러스 미스트리)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릴라이언스는 내수 위주의 사업 구조로 앞으로도 정경 유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릴라이언스가 2009년 리온델바셀이란 화학회사를 인수하는 데 실패한 이유도 회사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반면 타타는 일찍부터 정경 유착을 지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수익성과 같은 현재의 경영 성과만 보면, 릴라이언스와 타타 둘 다 성공적인 기업이다. 과연 두 재벌 중 앞으로 누가 더 성공적일지는 향후 인도라는 나라가 어떤 길로 가느냐에 달렸다. 만일 인도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경쟁을 촉진한다면, 타타가 승자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한국의 재벌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의 재벌이 마키아벨리에게 자문을 한다면, 아마도 타타처럼 두려움보다는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를 충고할 것이다. 그 길이 주주, 종업원, 국민이 투명한 지배 구조를 원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며,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 상황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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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Cover Story] 싸우면 必敗… 기계와 공존할 일자리 창조하라

  • 보스턴=윤형준 기자
  • 입력 : 2014.09.13 03:07

    '기계와의 경쟁' 저자 브린욜프슨 MIT교수
    값싼 노동력 의존하는 中·인도… 앞으로는 위험하다

    세계 공통 현상인 실업과 일자리 부족은 기계 도입으로 단순노동 수요 줄기 때문

    '더 빨리, 더 많이' 경쟁으론 기계 못 이겨 새로운 기술·제품·방법 만드는데 집중을

    기술 발전 활용의 주체는 인간
    기계와 싸우는 사람은 결국 일자리 뺏겨… 구글·애플·아마존 등 기계와의 협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市場 만들어내

    기계로 인한 불평등 해결하려면
    저임금 노동력, 기계로 쉽게 대체 가능…창의력 발전시키는 '혁신 교육' 집중 투자…고도의 기술 도구 삼아 新가치 창출해야

    브린욜프슨 MIT교수
    브린욜프슨 MIT교수
    오후 1시15분. 미국 보스턴의 MIT 슬론 매니지먼트 스쿨 4층에 있는 에릭 브린욜프슨<사진> 교수의 연구실에는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회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1시20분쯤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그는 "회의 때문에 점심을 못 먹었는데, 정말 미안하지만 캘리포니아 롤(김밥) 한 줄만 먹어도 되겠느냐"며 "보통은 절대 안 그러는 데 오늘은 정말 너무 바쁘다"며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비서가 포장된 롤을 들고 들어왔고, 그는 허겁지겁 간장을 뿌린 다음 "정말 미안하다.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기계와의 경쟁(Race against the machine)'의 저자인 그는 세계 공통의 현상인 실업과 일자리 부족 문제의 원인으로 기계의 급속한 발전을 지목한다. 경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업이 이익을 내고 투자를 확대할 때 일자리와 고용은 같이 늘어났다. 그러나 지금의 기업은 금융 위기가 끝났음에도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기업은 새로 개발된 기계는 사들이지만 신규 채용은 하지 않는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빈부 격차 문제의 연원도 기계와의 경쟁에서 찾는다. "가방 끈이 짧거나 월급이 적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수요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계가 그들의 일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빈부 격차가 발생하며 노동 인구가 줄어드는 겁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은행 직원을 통하지 않고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공항에서 카운터 직원의 도움 없이도 무인발권기에서 항공권 출력과 좌석 배정을 한꺼번에 끝낸다. 사람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패했다.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제공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제공
    ―교수님의 연구가 기계로 인한 불평등을 조사한 것이라면, '21세기 자본론'을 쓴 피케티 교수의 연구는 부(富)로 인한 불평등을 조사한 것인데요, 그의 연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사실 오늘 오전에 피케티 교수와 스카이프 화상 통화를 했습니다. 주제는 기술의 역할이었습니다. '기업가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서 로봇이나 다른 기술을 더 많이 활용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주제였죠. 그리고 피케티와 저 둘 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인간 노동력보다 자본(자본으로 로봇을 구입하고 이를 생산 라인에 투입)을 더 많이 활용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다른 점은 로봇과 자본 가운데 경제 구조를 바꾸는 데 무엇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저는 향후 경제 구조가 바뀌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데는 기술 발전이 더 핵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 자본을 활용하는 추세가 증가하는 핵심 원인으로 기술의 진보를 꼽습니다. 반면 피케티는 저축과 부의 축적에 주목했습니다. 피케티는 자본 수익률이 소득 증가율보다 높으니까 노동자보다 저축과 부의 축적이 많은 자본가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서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죠.

    사실 이 두 가지 현상(기술 진보와 부의 자기 증식)은 동시에 발생할 수 있고,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자본가들에게는 로봇이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그리고 그들은 로봇을 활용해 수익을 낼 것입니다. 이는 불평등이 심화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그러나 빈부 격차 문제의 해법에 대해서는 역설적이게도 "'기계와의 공존'을 모색하면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많이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면 기계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기계가 인간을 도와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기술력, 새로운 제품,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기업은 전보다 더 많은 생산성과 이윤을 내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의 할 일을 줄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의 분배도 훨씬 평등하게 이뤄지게 됩니다.

    기계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면 기업의 전체 생산성과 부는 확실하게 늘어납니다. 그러나 기계와 함께 경주한다면 생산성과 부를 늘리는 동시에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과실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

    -아이폰 '제조기지'로 유명한 폭스콘은 앞으로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해오던 일을 1만대의 로봇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폭스콘은'기계를 통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전략'을 쓰는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이를 통해 몇 가지 효과가 발생할 겁니다. 하나는 기계를 통해 더 많은 아이폰을 생산해서 생산력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부의 이동입니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이 노동자에게 가지 않고, 기계를 사서 운영하는 자본가에게 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건 아주 커다란 이동인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더 큰 불평등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최근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에 이어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Occupy Silicon Valley)' '우버 서비스를 중단하라(Stop Uber)' 시위에서 보듯 기술 진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이 거의 고착 상태이거나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략이나 처방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습니다. 빈부 격차 심화를 이유로 구글이나 우버의 기술 발전을 늦추자는 것은 우리 스스로 발전 기회를 걷어차는 커다란 실수가 될 겁니다. 기술 진보의 속도를 늦춰서 '미래로부터 과거를 지키는 것'은 절대 승리 전략이 될 수 없어요. 경제를 성장시키는 전략도 될 수 없습니다.

    대신, 기술 발전으로 생겨나는 부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을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계와 '협력'하게 되면 사람들을 교육할 수 있고, 가치 창조에 참여시킬 수 있으며, 부를 함께 나눌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게 훨씬 더 성공적인 전략입니다.

    저와 맥아피 교수가 '기계와의 경쟁'이란 책을 쓴 이유도 '안티-테크놀로지' 또는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공적(公敵)'으로 여겨져 왔던 로봇과 기술력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기술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제공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제공
    ―큰 그림에서 인간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1990년대 이후 줄어들거나 정체 상태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기술 발전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둘 다 사실이지만, 우리가 지향할 미래 모델은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버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 개념에 좋은 모델입니다. 실시간으로 운전자와 고객을 연결해 주는 기술을 바탕으로 등장한 우버는 운전자에게 과거 택시 기사들보다 더 많은 소득을 보장하고, 더 나은 근무 환경(언제 일하고 어디서 일할지)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일자리를 무너뜨리는 사례와 함께 기계가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례를 같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지향할 방향은 결국 기계가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쪽이 될 것입니다. 기술 발전을 통해 인류는 지금까지 많은 기회를 창출해 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가 찾아올 것으로 예측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기술력의 발전으로 끔찍한 전쟁, 무한한 실업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그러나 저는 양측 모두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이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라는 점을 잊고 있습니다. 기술은 도구입니다. 우리는 기술을 활용해 우리가 살고자 하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즉 미리 결정된 미래의 모습이 있다고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대신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가 직접 결정하고, 기술을 활용해 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기계와의 협력의 또 다른 사례로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을 꼽는다. 기계와 인간을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조직 구조,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나아가 고용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을 합쳐서 새로운 것을 만든다. 자원은 고갈되지만, 이 같은 조합의 결과물은 고갈되지 않는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이를 '조합 혁신(combinatorial innovation)'이라고 부른다.

    저임금 노동자 많은 중국·인도, 위기 맞을 수도

    ―기계와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것은 미국 기업밖에 없는 듯 합니다.

    "미국이 기계를 이용한 경주에서 굉장히 잘해오고 있지만, 미국만 성공적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군요. 예컨대 한국엔 삼성전자가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 말대로 앞으로는 이 구도가 미국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은 창업 문화와 기업가 정신이 잘 발달했으며, 다른 나라보다 잘 교육된 노동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최근 제가 잡지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이 하나 있는데, 거기엔 어떻게 미국과 다른 선진국들이 새로운 기술력 시대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저임금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에 의지해 잘나가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가 앞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임금 노동력은 기계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생기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우선 '교육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기술력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이 고속 성장한 것은 교육열과 교육 시스템 체계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은 노동력입니다. 이건 아주 훌륭한 전략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보고 배워야 합니다. 기술이 우리 사회에 번져나가면서, 고숙련 노동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기술력을 다룰 줄 아는 '스킬'이 없다면 일자리를 갖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기계와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인재는 어떤 모습인가요? 또 기업은 앞으로 어떤 인재를 키워내야 하나요?

    "직원 교육에는 반드시 명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창의성을 길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한편, 단순 업무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많은 구식(舊式) 회사들은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직원을 성실하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런 건 모두 기계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좋은 교육법이 아닙니다.

    둘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능력을 개발하고 교육하는 겁니다. 예컨대 리더십, 팀워크, 협상법, 공감 능력, 가르치는 능력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겁니다. 기계는 이런 부분에서는 발전이 더디며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향후 앞으로 환자를 간호하거나(nursing), 사람들을 가르치거나(teaching), 노약자를 돌보는(caring) 직업의 수요는 늘어날 것이며, 회사에서도 이런 능력을 갖춘 직원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겁니다."

    브린욜프슨 MIT교수
    브린욜프슨 MIT교수
    피케티의 부유세엔 반대

    ―피케티 교수는 부 편중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부유층에 70%에 달하는 과세를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저도 그렇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 해결책은 비현실적이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대신 훨씬 현실적이고, 우리가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근로소득 세액공제 제도'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중위 소득' 같은 기준점을 정해 놓고, 저임금 노동자가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가 각종 세금 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노동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일하지 않으면 그 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저소득층의 근로 욕구도 신장시킬 수 있을 겁니다."

    ―결국 기술로 인한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하면 '기술과의 공존, 신교육, 기업가 정신'이군요.

    "맞습니다. 저는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어요. 앞서 언급한 근로소득 세액공제 같은 세제 개혁입니다. 이는 직접적으로 분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술 개발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소득과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서 이들의 생존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최근 '기계와의 경쟁'과 관련해 '정책 제안'을 담은 책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인가요?

    "'제2차 기계시대(The 2nd Machine Age)'라는 책인데, 한국에도 곧 출판될 것입니다. 인류 문명사에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시기는 두 번 있었습니다. 과거 18세기(제1차)와 지금(제2차)이죠. 제1차 기계 혁명에서 기계들은 인간의 팔다리를 대체했고, 제2차 기계 혁명은 인간의 두뇌까지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1차 기계 혁명으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사라졌다면, 이젠 화이트칼라 노동자도 위협받게 된다는 겁니다. 교수, 법률가, 의사, 회사원이 필요 없어지고, 현재 직업 절반 이상은 사라질 것입니다. 남는 직업은 사람과 직접 일해야 하는 감성 노동자, 인공지능 기계를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 일부 서비스 직종 등에 불과하게 될 것 같아요."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이며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 편집장이다. IT 발전이 기업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로 연구해 왔다. 1999년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VOD 방송, 음악 파일 등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상품은 서로 다른 분야의 상품을 한데 묶어서 파는 '번들링' 전략이 따로 파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내용의 논문으로 마케팅 분야 최고 논문상인 '존 D.C.리틀상'을 받았다. 5개의 특허, 2개의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Weekly BIZ] "공짜 인터넷 서비스 가치 GDP에 반영하면… 美 성장률 2~3%p 증가"

  • 윤형준 기자
  • 입력 : 2014.09.13 03:07

     
    최근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Occupy Silicon Valley)'와 같은 반(反)기술(anit-technology)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계와의 경쟁 와중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데 대한 불만이 큰 원인이다.

    그런데 기술은 제품과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순기능도 크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기술의 순기능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인터넷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실제 기술 기여도가 GDP(국내총생산) 같은 경제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의 공짜 상품이다. 우리는 구글이나 네이버,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해 예전보다 훨씬 쉽게 일할 수 있게 됐지만, 이에 대한 사용 요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제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면서도 비용이 공짜이다 보니 부가가치의 합인 GDP에는 포함되지 않고 있다. 경제학계에서는 이런 실상을 반영하는 GDP 개선안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도 그런 예다. 그는 최근 출간한 저서 '제2차 기계시대'(한국 곧 출간)에서 GDP에 누락된 인터넷 공짜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인터넷 공짜 상품에 투자한 시간을 계산하고 이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는 MIT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인 한국인 오주희 박사가 참여했다. 오주희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인터넷의 공짜 상품들의 가치는 지난해 기준 미국에서만 3000억~5000억달러 상당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전체 GDP의 2~3% 수준으로, 만약 인터넷 공짜 상품의 가치가 반영됐다면, 미국의 성장률이 2~3%포인트 더 높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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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Foreign Book Review] 제러미 리프킨의 '제로 한계비용 사회'

  • 김희수 KT 경제경영연구소 부소장

  • 입력 : 2014.09.13 03:07

    기술 혁신이 한계비용 제로로 떨어뜨려… '공유 경제'가 대안

     
    김희수 KT 경제경영연구소 부소장
    기술 발전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반갑지만, 함께 다가오는 '고용 없는 성장'은 현대 사회의 공포이다.

    운전기사를 실직자로 만들 구글 무인 자동차의 상용화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배달원을 사전에서 사라지게 할 아마존의 무인 비행기(드론)도 개봉 박두이다. 로봇 가격이 워낙 싸져서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던 필립스는 본국 네덜란드의 무인 공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컴퓨터와 로봇의 노동 대체는 고급 직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법률 판례 분석 소프트웨어(EDiscovery)를 이용하면 한 변호사가 변호사 500명의 일을 할 수 있다. X레이나 CT 촬영 판독을 의사 대신 컴퓨터가 할 수도 있다. 과거 히트곡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신곡의 흥행 성공 확률을 알려주는 뮤직 엑스레이(Music Xray)사는 창업한 지 3년도 안 돼 아티스트 5000명과 계약했다. 에파고긱스(Epagogix)라는 회사를 통하면 대본만 읽어봐도 신작 영화의 성공 확률을 알 수 있다. 고가의 마케팅 에이전트나 리서치 회사의 일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소수 천재만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지난 4월에 출간한 '제로 한계비용 사회(The Zero Marginal Cost Society·국내 미출간)'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는 이미 1995년 '노동의 종말'이란 책으로 자동화에 따른 대량 실업 문제를 예견하고 대응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19년 전 리프킨의 경고는 한낱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주의자의 주장으로 치부됐다. 그동안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 대부분은 '기술 발전이 일시적으로 실업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생산성 향상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져 결국 성장과 고용 창출에 기여한다'고 믿어왔고, 이를 뒤집을 증거도 부족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닥친 '대침체(Great Recession)'로 고용 없는 성장과 경기 회복이 지속되고, 급속한 기술 발전(특히 인공지능)으로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영역이 획기적으로 확대되면서 그의 주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제로 한계비용 사회'란 무슨 뜻인가? 모든 사물의 스마트화(사물인터넷) 추세가 수십 년 더 진행되면, 모든 산업(심지어 제조업조차)의 생산 방식이 디지털화하고, 생산 인프라(통신망, 물류망, 에너지망)는 지능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처럼 되어(3차 산업혁명) 모든 산업의 한계 생산 비용(마지막 한 단위를 추가로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다. 마치 인터넷 뉴스나 스마트폰 앱 같은 '디지털 재화'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해도 기업에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인터넷 뉴스처럼 가격이 거의 공짜 수준까지 하락하는 가격 경쟁이 발생한다. 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가격이 공짜이면 기업이 제품 공급을 위해 투입한 고정비용조차 회수하지 못하게 되므로 산업이 유지될 수 없다. 일자리가 없으니 소비도 창출되지 않아 더욱 산업은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뿐이다. 독과점화를 허용해 가격을 올리거나, 가격을 거의 제로로 두되 모든 사람이 생산 비용을 소비량과 무관하게 동등하게 분담하는 것이다.

    리프킨이 주장하는 것은 둘째 방안이다. 통신이나 전력 산업의 '보편적 서비스'와 유사한 사회정책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협업으로 생산에 참여하고 그 산출물을 공유하는 '협업형 공유 경제' 방식으로 경제가 운영된다면, 제로 한계비용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마음껏 써도 자원이 고갈되지 않는 풍요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리프킨이 제안하는 대안이다.

    집카(zipcar·차량 공유), 에어비앤비(airbnb ·빈 방 공유)가 가장 비근한 예이며, 난치병 환자가 공유하는 증세와 치료 경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참여형 의료 모델, 여러 개인으로부터 투자 후원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이 확산일로다.

    리프킨은 10여년 전부터 EU의 집행위원회, 의회 및 국가 지도자들(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의 자문역을 맡아왔고, 그의 비전을 받아들인 '제3차 산업혁명 프로젝트'가 EU에서 가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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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진달래 기자][[전자지갑 빅뱅]애플도 뛰어들었다…2016년 시장규모 1조770억불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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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킨 대학생 이성희씨(가명·22)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직원에게 내민다. 결제와 포인트적립이 동시에 가능한 전자지갑을 사용한 덕에 일일이 포인트카드를 가지고 다닐 일도, 찾아볼 일도 사라졌다. 결제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 있으면,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에 알뜰살뜰 챙기기도 편해졌다.

    #직장인 하성훈씨(가명·36)는 외출할 때마다 묵직했던 바지 뒷주머니가 최근들어 가벼워졌다. 늘 챙겨넣던 지갑을 두고 다니기 시작하면서다. 돈 한푼 없이 밖을 다니는 일이 가능한 것은 '전자지갑' 덕분이었다. 카드 결제부터, 포인트카드 적립, 은행간 송금까지 스마트폰만 있으면 실시간 가능한데 굳이 무거운 지갑을 들고 다닐 이유가 없어진 것.

    시계, 전자사전, MP3플레이어를 밀어내던 스마트폰이 이제 '지갑'까지 넘보고 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물건값을 결제하고, 쿠폰을 적립받는 모습은 전세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결제부터 포인트적립까지 한방에 해결해주는 '전자지갑'=전자지갑은 모바일에 신용·직불카드나 현금 대신 상품이나 서비스 대금을 지불하는 모바일카드를 포함, 멤버십카드, 쿠폰 등을 담은 서비스를 말한다. 송금 등 은행업무와 가계부와 같은 부가기능을 포함한 경우도 있다.

    이가운데도 '모바일카드'는 전자지갑의 핵심 기능이다. 플라스틱카드의 역할을 모바일이 대신하는 셈이다. 대부분 신용·직불카드는 현재 모바일카드로도 발급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5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기준으로 전자지갑 이용자는 2년전보다 2.8배 증가한 1135만명으로 집계됐다. 스마트폰 가입자 41%에 달하는 수치다.

    전자지갑의 가장 큰 장점은 '편리성'이다. 여러 장의 카드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모바일 하나면 해결된다. 예를 들어 한 백화점에서 전자지갑으로 물건값을 결제하면, 사용가능한 쿠폰이나 포인트를 전자지갑이 알아서 찾아 사용해 계산해준다. 관리가 힘들어 놓칠 수 있는 할인 혜택 등을 챙겨주는 똑똑한 비서인 셈이다.

    사용자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전자지갑은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른다. 멤버십카드나 쿠폰 등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마케팅이 가능하고, 계열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쉬워진다.

    ◇IT·금융, 2010년부터 '전자지갑 빅뱅' 기다려=글로벌 IT(정보기술)기업에서 금융사까지 전자지갑은 차세대 먹거리로 꾸준히 거론됐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전자지갑 결제액은 2016년 1조77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신용카드 시장이 발달한 국내에서는 모바일카드를 중심으로 전자지갑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행한 2013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카드 발급 규모는 총 4500만장에 달했다. 이용금액 또한 지난해 1월 5억원 수준에서 12월에는 105억원까지 늘어났다.

    다만 아직까지 사용처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주로 온라인쇼핑과 편의점, 대형마트에 치우쳐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지난해 설문 조사한 결과 54%(중복응답)가 모바일과 인터넷 쇼핑에 전자지갑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주요 사용처로 꼽힌 곳은 편의점·슈퍼마켓(41%) 대형마트·백화점(32.5%), 대중교통(32.5%) 순이었다.

    오프라인 사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전자지갑을 읽어낼 수 있는 단말기가 설치된 가맹점이 많지 않아서다. NFC(근거기무선통신)기반 모바일카드만 봐도 전용단말기가 설치된 가맹점은 1.5%에 불과하다. 바코드, QR코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바일카드 결제가 지원되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올해 카카오, 애플 등도 도전장 내밀어= 글로벌 전자지갑 시장이 올해는 '빅뱅' 예감에 휩싸였다. 업계 선두주자들이 전자지갑 시장 진출을 줄줄이 선언한 까닭이다.

    대표적으로 애플은 지난 9일(현지시간) 신제품 발표회에서 전자지갑 서비스인 '애플페이'를 주요기능으로 선보였다. 비자, 마스터카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신용카드사와 손 잡고 결제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화제가 됐다.

    기존에 선보인 비NFC기반의 앱(애플리케이션) '패스북(passbook)'에서 한 단계 진화한 형태다. 패스북은 직접 결제가 불가능하고 디지털쿠폰이나 멤버십카드를 모아 관리하는 기능 정도만 지원했다.

    국내에서는 카카오가 문을 열었다. 우선 은행과 제휴해 전자지갑에 충전된 현금으로 송금과 소액결제를 할 수 있는 전자금융 서비스인 '뱅크월렛 카카오'를 준비 중이다. 앱에 사용자 은행계좌와 비밀번호 입력하면 하루 최대 50만원까지 충전할 수 있다. 충전된 금액으로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카카오가 지난 5일부터 제공하는 '카카오페이'도 전자지갑의 기능을 한다. 모바일카드와 마찬가지로, 미리 카드 정보를 저장해두고 플라스틱 카드 실물없이 결제하는 방식이다. 결제시 다른 카드 정보를 다시 입력할 필요없이 설정한 개인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밴드도 송액송금 서비스를 추가하기도 했다. 밴드 회원간 회비송금 간편하게 지원한다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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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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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애플 아이폰 6와 아이폰 6 플러스(AP=연합뉴스 DB)

    (샌프란시스코·댈러스=연합뉴스) 임화섭·장현구 특파원 =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 6와 6 플러스가 12일(이하 미국 태평양시간) 새벽 예약판매에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고 이 회사가 밝혔다.

    애플은 이날 공보팀을 통해 "아이폰 6와 아이폰 6 플러스에 대한 반응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라며 "간밤 예약주문 수량이 신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그러나 구체적 수치는 밝히지 않았다.

    정확한 초기 판매량 통계는 내주 초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주요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 직후부터 애플 온라인 스토어와 주요 이동통신사들의 웹사이트에서 예약 판매가 시작되자 신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몰려 화면 크기·통신사·색깔·용량 등에 따라 상당수 모델이 품절됐다.

    또 온라인 애플 스토어는 한때 접속이 지연됐다.

    특히 5.5 인치 대화면 모델인 아이폰 6 플러스에 소비자들의 주문이 몰리면서 몇 시간만에 준비된 물량이 동났다.

    이 때문에 지금 예약주문을 하더라도 적어도 3∼4주를 기다려야 아이폰 6 플러스를 받아 볼 수 있다.

    통신사를 거쳐 아이폰 6 플러스를 주문할 경우 대기 시간은 짧게는 3∼4주, 길게는 8∼10주로 애플 스토어에서 주문하는 것보다 더 길게 표시된다.

    <그래픽> 애플 신제품 '아이폰 6·6+' 사양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애플이 9일(현지시간) '아이폰 6'와 '아이폰 6 플러스' 등 신제품 스마트폰 2종을 공개했다. 이 제품은 미국 등에서 오는 19일 시판될 예정이다. zeroground@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화면 크기가 4.7 인치로 이보다 다소 작은 아이폰 6 중 일부 모델은 지금 주문하더라도 출시 예정일인 19일에 받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색깔·저장용량·통신사 등에 따라 16 기가바이트(GB)와 128 GB 등 일부 모델은 품절돼 대기 기간이 7∼10일로 늘어났다.

    애플은 오는 19일 미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홍콩, 일본, 푸에르토리코, 싱가포르, 영국 등 1차 출시국에서 아이폰 6와 6 플러스를 출시한다.

    AT&T의 한 관계자는 판매 추세가 수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과거 애플의 신제품 초기 판매량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애플 아이폰 신모델의 첫 주말 판매량은 2012년 아이폰 4s 400만대, 2013년 아이폰 5s·5c 900만대 등이었다.

    아이폰 6 플러스 초기 물량이 동나면서 이베이, 크레이그스리스트 등 사이트에는 웃돈을 얹어 제품을 내놓는 사용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날 오후 이베이에는 정가가 949 달러인 아이폰 골드 128 GB 언락 기기의 경매가가 1천625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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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DNet Korea

    팀 쿡 CEO, 찰리 로즈쇼에서 강조

    (지디넷코리아=황치규 기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쪽에선 아무 계획이 없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유명 토크쇼인 PBS 찰리 로즈쇼에서 나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 업체들과는 싸울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팀 쿡 CEO를 다룬 찰리 로즈쇼는 12일(현지시각) 밤에 방송된다.

    SNS에 대한 팀 쿡 CEO의 발언은 판도데일리가 애플 엔지니어링팀의 한 관계자를 인용해 애플이 폐쇄형 SNS 서비스인 패스를 인수할 것이라고 보도한 뒤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패스는 매일 쓰는 사용자수가 500만명에 이른다. 6월 400만명에서 늘어난 수치다. 데이브 모린 패스 CEO는 최근 한 기술 컨퍼런스에 참석해 성장세를 강조했지만 애플로의 매각설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애플은 그냥 패스에 보유한 인력들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라는 카드를 언제든지 꺼낼 수 있다. 마움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팀 쿡이 악의없는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이같은 관측에 대해 씨넷은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약해 보인다고 전했다.

    애플은 2010년 음악 SNS를 표방하는 핑(Ping)을 내놓고 SNS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2년후 핑은 문을 닫았다.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 이유였다. 이후 애플은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 야후 같은 서비스와 자사 OS를 깊숙하게 연동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애플은 현재 iOS 기기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이메시지 서비스를 제공중이다. 애플 워치에도 나름 SNS 기능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팀 쿡 CEO는 애플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직접 경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애플은 SNS를 하지 않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경쟁상대라기 보다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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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뉴스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의 가능성 찾았다"


    [CBS노컷뉴스 감일근 기자]

    두뇌 링크를 이용해 인도에 있는 사람이 프랑스에 있는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사진출처=미국공공도서관온라인학술지)공상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실현됐다.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말이나 문자, 동작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뇌를 통해 간단한 메시지를 주고받는 실험이 성공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알바로 파스큐얼 레오네 교수는 최근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 온라인 학술지(PLOS onE)에 실린 논문을 통해 뇌파 등을 이용한 비외과적인 방법으로 8천km 떨어진 두 사람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공동저자인 이론물리학자 길리오 루피니는 AFP 통신과의 전화 통화에서 "텔레파시(두 사람 사이에 오감을 사용하지 않고 생각이나 감정을 주고 받는 심령능력)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라며 "마술 대신 뇌와 뇌 사이에 전자기적인 방법으로 반응을 주고받는 기술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실험이 향후 의사소통의 방법을 혁명적으로 바꿔놓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뇌와 두뇌간 의사소통시스템 (사진출처=미국공공도서관온라인학술지)

     

     

    연구진은 실험에 EEG(뇌파기록장치) 기록을 사용했다. 피실험자들의 두피에 전극을 설치하고 대뇌피질의 전기적 활동을 기록했다. EEG는 이전에도 사람이 동작할 때의 뇌파를 기록해 휠체어 조종이나 로봇 연구 등에 사용됐었다.

    연구진은 또 TMS(경두개자기자극술: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도 이용했다. TMS는 두피에 미세한 전류를 공급해 두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기기로, 피실험자의 특정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거나, 눈에 빛이 번쩍이게 하는 것 등이 가능하다.

    실험에는 인도와 프랑스에 사는 4명의 건강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인도에 사는 한사람은 특정 단어를 보내고 프랑스의 세 사람은 수신하는 역할을 맡았다. 단어를 보내는 사람은 EEG를 이용한 뇌파 기록으로, 단어를 받는 사람은 TMS를 통해 불빛을 보는 형태로 정보를 받아 해석하게 된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인도에 있는 사람이 영어로 "hello(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hola", 이탈리아어 "Ciao"를 8천km 떨어진 프랑스에 사는 세 사람에게 전달했다.

    전달 방법은 인도에 있는 사람의 뇌파를 컴퓨터를 이용해 이진법의 기호로 해석한 뒤 이메일로 프랑스에 보낸다. 프랑스에서 이를 펄스신호로 다시 바꿔 TMS를 이용, 메시지 수신자의 뇌를 자극해 피실험자의 주변 시각에 빛 형태로 나타낸다.

    프랑스에 사는 세 사람 수신인은 모두 메시지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다.

    스페인과 프랑스인들이 참여한 두 번째 실험에서는 전체 메시지의 15%가 잘못 전달됐다. 잘못 전달된 메시지의 경우 송신자의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인코딩보다 해석하는 디코딩 쪽에서 에러가 많이 발생했다.

    이번 발견은 비록 매우 초보적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나 글로 쓰지 않고 서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파스큐얼 레오네 교수는 "이번 연구로 언어나 이동수단에 기초한 전통적인 의사소통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찾는데 중요한 첫발"이라고 평가했다.

    stephan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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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DNet Korea

    최동근 롯데카드 CISO, 금융정보보호컨퍼런스서 강조

    (지디넷코리아=손경호 기자) 25년째 롯데, 동부, 한화 그룹 등 기업현장에서 보안 업무를 책임져 온 최동근 롯데카드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는 보안에 대한 고민이 비보안, 비IT부서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된 '제8회 금융정보보호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맡은 최 CISO는 '금융기관의 정보보호 최우선 고려사항'을 주제로 이 같은 의견을 냈다.

    올해 초 발생한 카드 3사 개인정보유출 사건은 내부 시스템을 잘 아는 협력업체 직원의 소행이었다. 외부 해킹보다 내부자를 통한 정보유출 사고가 많다는 점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 CISO는 "현직원, 퇴사한 직원, 프로젝트를 하러 들어온 협력업체, 외주업체 직원들까지 내부자로 본다면 글로벌  환경에서도 평균 90% 정보유출 사고가 내부자를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내부자를 통한 유출을 막기 위한 방법에 대해 그는 크게 세가지를 강조했다. 핵심은 기업 내 보안책임자, 보안담당자가 아무리 얘기해도 결국 현업에서 움직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 CISO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그룹사의 계열사들을 돌아다니며 점검해 본 결과, 각 계열사 보안조직/IT조직에게 임직원들에게 보안지침을 알리도록 맡겨도 현업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업에서는 비즈니스에만 집중하다보니 사고가 난 이후에도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고, 누구한테 관련 내용을 알려야 할 지 잘 모르는 임직원들도 여럿이다.

    기업 내 필요한 IT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현업에서는 비즈니스만 강조하고, IT조직은 개발기간이 길어지고 골치 아프니 보안은 나중에 하자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CISO쪽에서 얘기를 하더라도 일단 서비스를 오픈하고 나중에 대화하면서 보안성을 높이자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그는 현업에서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 온 '베테랑 빅마우스'를 사내 정보보호조직에 전배 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약 2년~3년 간 이 조직에 있으면 다른 현업 부서에 재배치 됐을 때 자연스레 보안성을 강조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최 CISO는 "IT조직 담당자들이 커뮤니케이션하는 대상을 10이라고 보면 이중 8, 9 정도는 현업 임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기업환경에서는 정반대로 IT조직 직원들끼리만 대화가 이뤄지고 있어 현업의 요구와 보안 문제에 대한 절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보보호에 대한 역할과 책임(Role&Responsibility, R&R)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안/IT조직이 아니라 현업 임직원들에게도 개인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사고가 나는 것은 당신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 해놓고 형사처벌 받는 일이 없도록 정보보호에도 신경을 써달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CIO, CISO 조직 간에 티격태격해서는 답이 없다고 밝혔다. IT조직 내에서 조차 불협화음이 나면 보안은 속수무책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탁/수탁업체들, 협력사에 대한 교육도 필수다. 이들 회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정보보호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 정보보호 문제를 100으로 놓고 보면 60은 해결하고 간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최 CISO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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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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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뉴스

    [CBS노컷뉴스 최승진 기자]

    (윤성호 기자/자료사진)남북이 1년 전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면서 외국기업을 유치하기로 합의했으나 아직 현지 생산공장 투자를 결정한 외국기업은 없다.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과 제2의 도약을 위해서는 국제화가 시급하지만 남북은 최근 논의의 장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 국제화 전제조건 남북 입장차 ‘뚜렷’



    주한 러시아 무역대표부 관계자들이 지난 4일 자국 기업의 투자 가능성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이들은 개성공단 현황을 살펴보면서 러시아 기업의 개성공단 내 투자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 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독일, 중국 등 해외 기업 20여 곳이 우리 정부에 개성공단 투자를 문의한 바 있다. 투자 문의 기업 중 일부는 개성공단을 다녀오기도 했다.

    개성공단 노동자의 경우 생산성은 높으면서도 임금은 낮기 때문에 외국 기업에게도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통일부 임병철 대변인은 "러시아 기업이 개성공단 투자 의향을 밝혔지만 아직 사업계획이 구체화하지 않은 기업도 있다"며 "일반적으로 외국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국제화는 남북 합의사항이다. 지난해 개성공단 가동 중단 후 재가동에 합의하면서 남북은 외국기업을 유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아직 생산 기업 형태로 투자를 결정한 외국 기업은 없는 상태다.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기반조성이 미흡한 것이 주된 이유다.

    통신·통행·통관 등 이른바 3통 문제는 개성공단 국제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은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인터넷 서비스 조기 공급, 전자출입체계 전면 가동 등 3통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노무, 임금체계를 부각시키면서 먼저 임금 등을 국제 수준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26일 남북은 6개월 만에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회의를 열고 공단 발전 방안에 대해 협의했으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끝났다.

    정부는 최근 개성공단 3통 현안을 논의할 분과위원회 회의 개최를 촉구하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냈으나 북측은 응하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데다 국제화 전제 조건에 대한 남북의 입장이 달라 개성공단 국제화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는 공단의 안정적 관리와 제2의 도약을 위해 필요하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개성공단이 국제화를 이루는 것은 남북관계가 정치.군사 상황을 넘어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을 대외적으로 심어줄 수 있어 중요하다”고 밝혔다.

    개성공단은 10년 전 2004년 6월30일 시범단지가 준공된 뒤 부침을 거듭하며 발전을 해 왔다.

    개성공단 시범단지에는 처음에 15개 기업이 입주했지만, 지금은 총 125개 기업이 현지에서 생산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섬유가 73개, 58.4%로 가장 많고, 기계금속 24개, 전기전자 13개, 화학 9개 등 순이다.

    2005년 당시 평균 6천명 정도였던 북측 근로자는 지금은 5만2천여명으로 늘었다. 여성이 70.6%로 높고, 평균 연령은 37.9세로 20∼40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본임금에 각종 수당을 합해 북한 근로자에 지급되는 평균 월급은 지난 3월 기준 130.8달러다. 북한 근로자에게 소요되는 인건비 총액은 연간 8,700여만 달러 규모다.

    본격적인 개성공단 가동 첫해인 2005년 생산액은 1,491만달러였으나 2012년에는 4억6,950만달러를 기록했다.

    10년 동안 개성공단의 누적 생산액은 23억685만달러, 교역액은 94억5천만달러로 집계됐다.

    sjcho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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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일 한 뒤 나쁜 일 할 가능성 커져"<사이언스>

    "종교 유무는 선행 여부와 무관"

    (뉴욕=연합뉴스) 이강원 특파원 = 선행을 '받은' 직후에는 착한 일을 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선행을 '베푼' 뒤에는 오히려 비도덕적인 일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흥미로운 연구가 나왔다.

    12일(현지시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미국·독일·네덜란드 등 3개국 대학의 공동연구팀이 성인 1천252명을 대상으로 종교 유무와 이념적 성향이 선행이나 친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연구팀은 이들을 대상으로 사흘간에 걸쳐 하루에 5차례씩 선행·친절 또는 악행·불친절을 '베풀거나 당하거나 목격했는지'를 스마트폰에 기록해 문자로 알리도록 했다.

    그랬더니 친절이나 선행을 받은 사람은 당일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0%나 많게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었다.

    흥미로운 것은 반대로 선행이나 친절을 베푼 사람은 당일 다른 사람에 비해 오만·경멸 등 비도덕적이거나 불친절한 행위를 한 빈도가 3% 높았다.

    종교 유·무 여부는 선행·악행을 하는 정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 종교가 없는 사람보다 선행을 더 하거나 악행을 덜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선행을 받은 쪽은 '전염효과'로 착한 일을 타인에게 전파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선행을 했다는 도덕적 우쭐함이 되레 도덕성을 약화시킨다고 풀이했다.

    또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선행·도덕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랐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주로 성실·믿음·품위 등과 연관지어 선행 또는 친절 등을 고려했지만 진보적인 사람들은 주로 공정·자유·정직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짙었다.

    gija0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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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 네덜란드에서 배 농사를 짓는 바스 폐이텔 씨는 올해 배가 풍작을 이뤘지만, 75%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밭에서 그대로 썩게 둘 예정이다. 예년보다 턱없이 떨어진 가격 때문에 많이 팔아봤자 되려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1㎏에 50유로센트에 팔았던 고급 배가 올해엔 15유로센트밖에 나가지 않는다. 폐이텔 씨는 “올해는 인부를 고용해 저품질 배까지 딸 필요가 없다”면서 “일주일 뒤 수확을 시작하려 했는데 상황이 매우 나쁘다”고 토로했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요즘 유럽 농가는 ‘푸틴발(發) 가격하락’ 때문에 울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서방의 대러제재에 맞서 지난달 유럽의 과일과 유제품 등 식품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도입하면서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생산 주요 농산물의 대(對)러시아 수출 비중. [자료=비즈니스위크]
    이에 따라 매년 유럽 농식품의 4.2%가 팔렸던 러시아로의 수출길이 막혔다. EU가 지난해 51억유로(약 6조8300억원) 상당의 농식품 수출을 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 피해 규모는 막대하다.

    뿐만 아니라 수출로가 차단되면서 유럽 농식품 시장에선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져 가격의 하방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수입 금지 직전 3개월 간 식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내림세를 걸었던 만큼 이번 조치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지난달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물가상승률이 유럽중앙은행(ECB) 목표치 2%를 크게 밑도는 0.3%를 기록한 데도 식품값 하락이 큰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다.

    실제 수입 금지 조치가 발효된 이래 네덜란드의 오이와 토마토 가격은 80% 떨어졌으며, 체코의 사과값은 지난해 대비 70%의 낙폭을 기록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등 복숭아 주요 산지에선 복숭아가 예전에 비해 평균 30~50%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농식품 소비를 촉진시켜 농가를 살리자는 움직임도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로의 식품 수출액이 비교적 적은 편인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티안 슈미트 독일 농업장관은 지난 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과일을)먹어야 한다”면서 하루 최소 5번 과일을 먹자고 촉구했다.

    sparkli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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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산업연수생제 보완… 2004년 도입, 15개국 근로자에 취업 비자 발급

    고용주의 동의 없인 이직 불가능, 일 그만두려 해도 ‘허락’을 받아야

    “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2일 서울의 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 사무실에서 만난 네팔인 차마르(33·가명)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무릎 위에 놓인 그의 한쪽 손은 손가락이 3개뿐이었다. 올해 초 일어난 사고의 흔적이었다.네팔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2012년 한국 땅을 밟았다. ‘기회의 땅’으로 여겼던 한국에서 그가 처음으로 배운 한국말은 ‘개××’라는 욕설이었다. 공장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그를 이름이 아닌 개××라고 불렀다.


    공장에 딸린 작은 방은 보일러조차 작동되지 않아 겨울에는 외투를 껴입고 자야 했다. 사장은 “나머지는 대신 저금했다가 나중에 주겠다”며 매달 임금의 50% 정도만 지급했고, 그마저도 밀리는 일이 많았다. 관리반장은 수시로 그의 머리를 때리거나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며 무시하는 발언을 퍼부었다. 차마르는 “나도 감정이 있고 아픔을 느낀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참고 견뎠지만 그는 올해 초 사고가 나면서 공장에서 쫓겨났다. 밀린 임금을 주겠다던 사장은 몇 달째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고 있다. 차마르는 “내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못했을 것”이라며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 조건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10여년 전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유행하던 “사장님 나빠요”란 말은 이들에게는 웃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근로 복지를 위해 ‘고용허가제’를 내놓았지만 이는 오히려 이들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있다. 여기에 사그라지지 않는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적 시선은 이주노동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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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허가제의 그늘

    정부는 2004년 8월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15개국 근로자들에게 국내 근로자와 같은 대우를 보장하는 취업비자를 발급하는 제도다.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가 ‘연수를 통한 선진기술 이전’이란 명목으로 저개발국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악용됐던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불법체류자가 줄어드는 등 고용허가제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고 있지만,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고용허가제가 반인권적이라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가 가진 가장 큰 문제로 ‘사업장 변경 제약’을 꼽는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일을 그만두려면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사전 정보 부족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지만, 한번 일자리가 정해진 후에는 고용주의 동의 없이 이직이 불가능하다. 일부 고용주들은 “근무지를 옮겨줄 테니 돈을 달라”고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년의 노동기간이 끝나고 재고용 계약을 할 때도 고용주의 동의가 필요하기에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로부터 폭행 등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항의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수짓(29)은 지난 7월 회사 직원으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했다. 함께 있던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는 일하다 맞는 것이 다반사니 참으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갑작스럽게 해고된 수짓은 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경찰서에 임금체불 및 폭행 진정서를 냈지만, 고용주의 보복을 두려워한 동료들은 증언을 회피하고 있다.

    농업, 건설 등의 근로 분야를 한번 선택한 뒤에는 다른 분야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이주노동자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노무법인 ‘노동과 인권’의 공성수 공인노무사는 “최근 농업 부문 취업이 증가하고 있는데, 농장에서의 노동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농장은 근로기준법상 휴가일이 보장되지 않고,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아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입증이 어렵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는 2012년 고용허가제 관련 법규를 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공 노무사는 “대부분 휴일도 없이 하루 종일 일을 하지만 근로 시간 등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자료를 찾기 어렵다”며 “농장을 떠나고 싶어도 농업 이외 분야 일을 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별과 무시 만연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의 기저에는 이주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저들에게는 저렇게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조성애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은 “외국인 노동자를 존중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단순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5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 ‘백인이 지나가면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꺼려진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근데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며 “이 같은 편견은 평소 접하는 문화와 언론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주노동자들의 범죄가 많다는 점을 들어 이들을 ‘위험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 10만명당 범죄 피의자 수는 2192명으로, 국내 인구 10만명당 범죄 피의자(4673명)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외국인 범죄 건수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이는 외국인 인구 증가에 따른 현상이다.

    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35)씨는 “수년 전 미국에서 한국계 학생이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질렀을 때 미국인들이 ‘한국인 범죄자라 위험하다’고 했다면 억울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특정 민족의 문제로 비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몽골에서 온 A씨는 “겉모습만 보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가 몽골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태도가 변하는 것을 많이 봤다”며 “출신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세계일보

    외국인 노동자 70만 시대의 그늘
     
    “동생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보고 싶습니다.”

    지난 1일 경기도 이천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 베트남에서 온 찬팃퉁(35·여)은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의 동생 찬밧풍(33)은 지난달 28일 이 농장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중 숨진채 발견됐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발생한 비극이다.

    이웃들은 동생의 죽음을 과로사로 추정했다. 동생은 사망 3주 전쯤 손가락 두 개를 심하게 다쳤는데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다고 한다. 가족들에겐 늘 ‘잘 지낸다’고 했던 동생이었다. 찬팃퉁은 동생이 마지막으로 지내던 곳을 보고 싶어 농장을 찾았으나 안에 들어가진 못했다. 농장주가 ‘가택침입’으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농장주는 찬팃퉁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시신 안치비용과 운구비용 460만원을 지불할 테니 자신에게 노동법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것이었다. 농장주는 “서명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절차를 도와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동석했던 베트남대사관 직원은 “운구비를 내주는 것을 보면 (농장주가) 좋은 사람”이라고 거들었다. 찬팃퉁은 하는 수 없이 서명을 했다.

    그는 현재 베트남으로 돌아가 동생의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동생의 죽음이 과로사로 밝혀지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일을 하다 사망하더라도 산업재해 등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국이 무섭습니다.”

    올해로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지만, 이들의 ‘한국살이’는 여전히 열악하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착취나 임금체불은 물론 폭력에도 빈번히 노출되어 있다. 한국 사회의 차별적 시선과 편견 역시 사라지지 않고 있다.

     
    12일 법무부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162만2868명으로, 이 중 취업자격 체류 외국인은 60만2355명이다.

    전문가들은 불법 체류자 등을 포함해 현재 국내에 70만명가량의 이주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노동자의 3%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생활·근로 환경은 열악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조사한 국내 이주노동자의 근무 중 산업재해발생률은 0.84%, 사망률은 1만명당 1.32명으로 국내 전체 노동자 평균(0.59%, 1.25명)보다 높았다. 또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1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8%는 고용주로부터 폭언을 당했고 14.9%는 폭행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 중 성폭력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30.8%였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세계일보

    이주노동자 전문 교육체계 전무, 민간단체서 교육·인권활동 주도

    “더불어 살아간다는 인식이 중요”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한국의 언어나 문화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국내에 들어온다. 전문가들은 문화나 언어 차이로 인한 ‘소통의 부재’가 갈등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갈등해결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체계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주노동자 교육·인권 활동은 민간 단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주로 주말을 이용해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한국어 강습을 진행하거나 법률 상담을 지원한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푸른사람들(푸른시민연대)’은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다. 이곳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노동권 등에 대한 상담과 함께 수준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다. 이곳의 특징은 이주노동자를 ‘수혜자’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 활동가들과 함께 매달 모국을 소개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노인들을 대접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친다.

    매주 이곳을 찾는 베트남 출신 여성 A씨는 오는 21일 열리는 다문화축제를 앞두고 베트남 전통 춤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다문화축제는 100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는 “춤을 잘 추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며 “직접 축제를 기획하고 한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어 즐겁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내부 기관인 ‘모두도서관’도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베트남, 필리핀 등 각국의 동화책을 모아놓은 곳으로,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외에 지역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지역주민들과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녹아든다. 이주영 모두도서관 센터장은 “이주노동자를 동정의 대상이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대상화시키는 것보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역주민과 이주노동자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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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전쟁은 리더십의 경연장이다. 무능·무모한 리더십은 재앙을 부른다. 제1차 세계대전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집단 패주했다. 최고사령관 루이지 카도르나의 지도력 실패로 인한 군대 붕괴다. 줄리안 알프스 전선에서다. 미국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 전선에 나갔다. 그는 전쟁의 비극과 인간성의 야만을 포착한다. 그것을 『무기여 잘 있거라』에 옮겼다. 올해가 1차대전 100주년. 소설 속 현장을 찾아갔다. 지금은 대부분 슬로베니아 땅.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 나갔다. 이탈리아군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참전했다. 그는 자원입대한 미국인이다. 줄리안 알프스(Julian Alps) 전선에 배치됐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터다.

    헤밍웨이는 전선 체험을 소설로 적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그는 전쟁의 비극과 인간성의 야만을 포착한다.

    산 아래 소차(Soca)강이 흐른다. 이탈리아 말로 이손조(Isonzo). 한 세기 전 그 산과 계곡은 격전지다. 지금은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 국경지역. 이손조 전투의 상징은 카포레토(Caporetto)다.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 군대는 붕괴됐다(29만 포로). 줄리안 알프스 전쟁은 잊혀졌다.

    카포레토 참패는 리더십 실패의 결집이다. 그런 해체는 평화 때도 있다. 세월호 참사는 조직 붕괴다.

    코바리드 1차 세계대전 박물관과 박보균 대기자.
    카포레토는 현재 슬로베니아 땅. 코바리드(Kobarid)라고 부른다. 수도 류블랴나(Ljubljana)에서 서쪽 끝 115㎞ 떨어졌다. 슬로베니아는 1991년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했다. 나는 올해 그 현장에 갔다. 2014년은 1차대전 100주년. 잊어버린 전쟁을 찾아서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추적의 단서다.

    길은 거칠어진다. 알프스 산줄기다. 산 옆구리를 쳐낸 좁은 2차로. 아래는 가파른 계곡. 에메랄드 색깔의 소차(이손조)강이 보인다. 유럽 강들은 작다. 한강은 바다 같다. “강물은 맑고 얕으며 흐름이 빨랐다. 하늘색 물빛, 산 정상에 눈이 보인다. 『무기여 잘 있거라 구절』”-. 미려(美麗)한 수채화다.

    헤밍웨이가 묘사한 풍광은 살아 있다. 작은 마을(인구 1100명)이 나온다. 코바리드다. 『무기여…』의 주인공은 야전병원 중위 프레더릭 헨리(Frederic Henry)다. 미국인 수송장교 헨리는 기억한다. “종탑(鐘塔)이 있는 골짜기 속 희고 작은 마을”-. 그 구절대로 재건됐다.

    코바리드 전쟁박물관은 관광 명소다. 큐레이터는 설명한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간 전쟁은 조연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처절함은 서부전선(프랑스·영국 대 독일)과 다를 바 없다. 여기 슬로베니아 땅이 기억의 장소다.”

    이탈리아는 독일·오스트리아와 삼국동맹국이었다. 개전 직후 동맹에서 탈퇴했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땅에 야심을 가졌다. 영국은 그 갈증을 부추겼다. 이탈리아는 합스부르크(Habsburg)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1915년 5월 24일, 1차대전 시작 9개월 뒤다. 영국·프랑스 편이 됐다.

    첫 전투에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쳤다. 정예 산악부대 알피니(Alpini)는 크른(KRN·2244m)산을 점령했다. 접경지 카포레토(코바리드)를 차지했다. 박물관에 양군 사진이 함께 전시돼 있다. 추모 십자석도 적과 동지를 나누지 않는다. 요제 셰르베치(Jo<017E>e <0160>erbec) 관장은 “군복 견장 5각별은 이탈리아(프랑스제 철모), 오스트리아는 6각별(베른도르프 철모)”이라고 구별해 준다. 무기, 포탄, 철모, 사진, 지도, 군복들이 짜임새 있게 진열돼 있다. 박물관은 아담한 3층 건물.

    코바리드 길가에 녹슨 대포가 있다. 이탈리아군 149mm 곡사포. 대포는 나의 기억장치다. 대포 뒤쪽 멀리 알프스 산맥이 펼쳐진다. 나는 100년 전 전투 속으로 들어간다. 국경은 길었다. 중남부 유럽의 유선형 ㄱ자(600km). 주요 전장 두 군데가 형성됐다. 이탈리아의 북쪽 트렌티노(Trentino)와 동쪽 줄리안 알프스의 이손조 계곡이다. 이탈리아군은 이손조 전선(100km)에 집중했다. 최고사령관 루이지 카도르나의 롤 모델은 나폴레옹이다. 알프스 국경 돌파→슬로베니아 평야 공략→오스트리아 빈 압박 전략이다. 장교들은 65세 지휘관의 역량을 의심했다. “우리 군에 나폴레옹이 있기를 바랐지만, 카도르나는 살찌고 부유했다. 『무기여…』”-.

    줄리안 알프스(3000m 이하)는 스위스 쪽 알프스보다 낮다. 산세는 그쪽보다 험악하다. 양쪽 군대는 산 암벽에 참호를 팠다. 겨울엔 폭설과 혹한, 눈사태에 시달렸다. 아이젠, 눈신발, 삽, 고글이 눈에 띈다. 노새 편자도 미끄럼 방지용이다. 케이블카는 대포, 탄약, 식량, 부상자를 산꼭대기로 나른다. “서부전선 흙에 떨어지는 포탄과 달랐다. 알프스의 날카로운 돌 파편은 치명상을 입혔다.”(『1차 세계대전』 R.G. 그란트 지음). 양쪽 모두 상대방을 증오했다.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의 동맹 탈퇴를 배신으로 여겼다.

    전시실에 모형 산악참호가 있다. 밀랍인형 병사가 편지를 쓴다. 검독수리 깃털 모자의 알피니 부대원이다. “산악 진지에서 비참한 공포를 경험했다. 동료와 적의 시체 사이에서 쪼그리고 지냈다. 물은 없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 일기는 산악 전투의 고달픔과 악몽을 전달한다. 박물관 2층에 헤밍웨이 사진이 걸렸다. 하얀 턱수염은 어색하다. 부상으로 군병원 침대에 누운 사진도 있다. 『무기여…』시절은 조각 같은 꽃미남이다.

    이손조(소차) 전투는 이탈리아가 주도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방어다. 다른 두 곳(러시아와 동부전선, 세르비아와 발칸전선)으로의 전력 분산 때문이다. 전투는 석 달에 한 번씩 있었다. 한 번 전투(보름쯤)에 이탈리아군 사상자는 2만~3만 명. 참상이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전과는 드물었다. 영토 점령은 더뎠고 찔끔댔다. 교착상태는 길었다. 1917년 8월(11차 이손조 전투)에 이탈리아는 바인시차(Bainsizza) 고원을 확보했다. 희생은 컸다(사상자 17만 명). 승부의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다.


    나는 코바리드에서 20km 위쪽 보베치(Bovec)로 갔다. 디즈니 영화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 촬영 장소다. 관광 안내문은 “소차강의 불가사의한 청록색 물빛과 트리글라브(Triglav) 국립공원은 동화 속 환상을 연출”이라고 씌어 있다. 풍광은 숨을 막히게 한다. 100년 전쯤 그 협곡과 강은 피로 물들었다. 죽음은 넘쳐났다. 전쟁은 자연을 배반한다.

    산길을 오르니 거대한 진지가 나온다. 클루제 요새, 성벽처럼 버티고 있다. 오스트리아군 유적. 위쪽 헤르만(Hermann) 진지는 수풀 속에 방치돼 있다. 참호 돌 벽에 탄흔이 무수하다. 나는 돌 부스러기를 한 움큼 쥐었다. 냄새를 맡았다. “포탄이 떨어진 곳에는 가루가 된 부싯돌 냄새가 났다. 『무기여… 구절』”-.

    왼쪽부터 베르살리에리부대 수탉 깃털모자, 알프스전투용 눈신발, 독일군 최고훈장 푸르 르 메리트.

    카도르나는 ‘단조로운 정면 돌파’를 고집했다. 그의 전략적 상상력은 빈곤했다. ‘작은 실적, 큰 피해’는 반복됐다. 전쟁 초기 병사들은 용감했다. 그 사기는 꺼져 갔다. “엄청난 병력이 소모되고 있다. 바인시차를 점령해도 오스트리아 쪽은 산들로 계속 막혀 있다. 『무기여…』”-. 오스트리아군 사상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스트리아 방어망은 약한 듯 견고했다. 전선은 암울해졌다.

    11 차 이손조 전투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노쇠함도 드러냈다. 오스트리아 황제 카를 1세는 지원을 요청했다. 독일 카이저(빌헬름 2세)는 응답했다. 그 무렵 러시아는 볼셰비키혁명으로 시끄러웠다. 동부전선의 변화는 재배치를 가능하게 했다. 독일군은 중부전선에 처음 뛰어들었다. 합동 14군(독일 7개+오스트리아 8개 사단)이 신설됐다. 전력은 외형상 비슷했다. 이탈리아군은 34개(40만 명) 사단과 포 2485문을 가졌다. 반대편(독+오스트리아·헝가리)은 35개(35만 명) 사단에 포 2430문. 이제부터 리더십 역량과 전략적 상상력, 전쟁 의지가 승패를 가른다. 헤밍웨이의 감수성은 정밀해진다.

    “독일군, 그 말은 섬뜩(frightened)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무기여…』”-. 명성은 힘이다. 두려움은 전염병처럼 퍼졌다. 독-오 합동군은 카포레토(코바리드)에 집중했다. 그곳 이탈리아 방어는 취약했다. 12차 이손조 전투는 카포레토 전투로 불린다. 오스트리아군은 앙갚음의 기회로 삼았다.

    왼쪽부터 이탈리아군 운전병 헤밍웨이, 이탈리아군 최고사령관 카도르나, 독일군 중위 롬멜.

    1917년 10월 24일 새벽 2시. 독-오 합동군은 공격을 개시했다. 안개 짙은 어둠 속에서 독가스탄, 연막탄을 쏘았다. 이탈리아 군대는 혼란에 빠졌다. 방독면은 엉성했다. 아침 6시30분 대포가 불을 뿜었다. 이어 보병의 기습공격. 좁고 거친 계곡으로 진입했다. 독일군 ‘침투(infiltration) 전술’은 주효했다. 독일 장군 후티어(Hutier) 전술. 후티어의 작은 사진이 큰 전시실을 압도한다.

    카포레토 쪽이 뚫렸다. 이탈리아 군은 겁을 먹는다. 지리멸렬했다. 총과 대포를 버린다. 진지를 포기했다. 무리지어 도망친다. 공황(恐慌) 속 군대 붕괴다. 소설 『무기여…』는 영화(록 허드슨, 제니퍼 존스 주연)로 제작됐다. 영화 속 헨리 중위도 후퇴한다. 앰뷸런스 트럭은 진흙길에 빠졌다. 패퇴의 길은 고달프다. 군인과 민간인이 섞인다. 살기 위해 상대방의 목을 조른다. 철조망 위에 걸린 시신은 섬뜩하다. 패주는 계급과 명령, 복종을 깬다.

    ① 줄리안 알프스와 소차(이손조)강. 산 정상 흰 눈과 에메랄드 물빛은 환상의 수채화. 한 세기 전에 계곡은 피로 물들었다. ② 전선을 시찰하는 카도르나(오른쪽 셋째). 소통 없는 엄격한 규율로 통솔했다. ③ 코바리드 박물관 2층 헤밍웨이 코너.

    “카도르나는 집단(en masse) 투항과 패주(rout)를 질서정연한 후퇴로 바꾸려 했다. 낙오 장교들을 즉결처형했다.”(R. G. 그란트의 『1차 세계대전』). 극단적 수단도 항전 의지를 되살리지 못했다. 영웅적 저항은 없다. 장렬한 산화도 없다. 수탉 깃털 부대 베르살리에리(Bersaglieri)의 돌격은 사라졌다. ‘독일, 오스트리아 만세(Evviva)’를 외쳤다. 독-오 군의 병참선이 길어졌다. 공세는 피아베(Piave)강에서 멈췄다. 이탈리아는 사령부 주둔지 우디네(Udine)도 빼앗겼다. 후퇴 거리는 150km(베니스 북쪽 30km 지점).

    유럽인 관광객 20여 명이 카도르나 사진을 살핀다. 1차대전 100주년 기념 관광단이다. 가이드가 전쟁사전문가 존 맥도널드(John Macdonald)의 책을 읽어 준다. “카도르나는 공포로 통솔했다. 그는 참패의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다. 군사적 파업으로 오도했다.”(『카포레토와 이손조 전선』). 관광객들이 쓴웃음을 짓는다.

    1차대전 때 이탈리아 왕국(왼쪽 위)과 오스트리아제국 깃발(코바리드 박물관·왼쪽 아래), 무솔리니는 베르살리에리 부대에서 복무.
    이탈리아의 재앙(disaster)이었다. 18일간 전투에서 29만 명이 포로로 잡혔다. 사망(1만 명)·부상(3만 명)과 대비된다. 세계전쟁사에서 희귀한 사례다. 대포 3150문을 잃었다(전체의 3분의 2). 군대는 반토막이다. 65개 보병사단은 33개로 줄었다. 난민 40만 명이 생겼다. 반대편은 기적(miracle)이다. 독-오 군대 희생자는 2만5000명. 국왕(빅토리오 엠마누엘 3세)은 카도르나를 해임했다. 이탈리아 내각은 총사퇴했다.

    비슷한 사례가 떠오른다. 2차대전 때 프랑스군은 독일군 전격전에 무너졌다. 리더십 실패와 전쟁 의지 상실 때문이다. 베트남전에서 월남군은 집단 투항했다. 한국군 3군단은 중공군 기습에 패주했다(1951년 5월 현리 전투). 세월호 참사는 조직 해체다. 선박 지휘부는 패주했다. 구조와 수습의 리더십은 어설펐다.

    나는 코바리드(카포레토) 마을 세인트 안소니(St. Anthony) 교회 납골당에 갔다. 이탈리아군 전사자(7014명) 유골이 보관돼 있다. 1차대전종전 후 코바리드는 이탈리아 땅이 됐다. 1938년 10월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납골당 봉헌식에 참석했다. 파시스트 독재자는 그곳을 애국심과 전우애로 치장했다.

    납골당에 수학여행단이 왔다. 이탈리아 베로나(Verona) 중학생들이다. 인솔 교사는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추모석 앞에 섰다. “이곳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쓰러진 당신들에게 경의를 표한다(ONORE A VOI CHE QUI CADESTE VALOROSAMENTE COMBATTENDO).”

    무솔리니는 1915년 9월 이손조 전선에 나갔다. 그는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였다. 사병(32세, 하사로 승진)으로 징집됐다. “산속 참호에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련을 겪었다. 추위와 배고픔, 눈과 비, 진흙탕…”(무솔리니 자서전). 그는 수류탄 폭발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카포레토 전투 두 달 전쯤 전역했다.

    나는 패배 이유를 물었다. 교사의 표정은 난감하다. 교사는 “이해할 수 없는 참패였다. 지도력 실패”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군대 전통은 약하지 않다”고 했다. 로마제국, 베니스, 사르데냐 왕국을 들었다. 군사력은 무기와 병력, 리더십, 전쟁 의지를 합한다. 이탈리아의 총량은 부족했다. 무형적 요소(리더십+의지)가 미달했다. “이탈리아는 감당할 힘이 없다. 분에 넘치는 전쟁을 했다. 『무기여… 구절』”-. 어리석은 리더십은 나라 이미지를 망가뜨린다. 후유증은 컸다. “이탈리아 군대는 신망을 잃었다. 군사적 자질은 값싼 조롱거리(gibes)였다.”(존 키건 『1차대전사』)

    1차대전은 서부전선 독일의 항복(1918년 11월)으로 끝났다. 이탈리아도 승전 4대국에 끼였다. 하지만 베르사유(Versailles)회담에서 발언권은 약했다. 영토 야심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약체와 무기력, 불명예의 평판은 오래갔다. 무솔리니의 2차대전 때도 회복되지 않았다.

    줄리안 알프스 전쟁은 무모했다. 29개월간 이손조 전투(총12회)는 잔혹했다. 이탈리아군 사상자는 67만 명(포로 33만 명 제외)이다. 오스트리아군 41만 명. 박물관 블랙 룸은 전쟁의 끔찍함이다. 사진 속 병사의 코와 눈, 입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총과 독가스탄의 상흔이다. 이손조는 서부전선의 베르됭이다.

    존 쉰들러(John R. Schindler) 미 해군대학(NWC) 교수는 “쓸모없는(useless) 목표, 무의미한 전투로 희생은 엄청났다”고 했다(『이손조, 1차대전의 잊어진 희생』). 비극의 역사는 조명되지 않는다. 이탈리아는 참패를 부담스러워한다. 오스트리아는 사라진 제국 합스부르크의 유산으로 여긴다. 티토 집권 때 유고(현 슬로베니아)는 기억하지 않았다.(2차대전 뒤 코바리드는 유고 영토) 박물관 콘셉트는 화해와 평화다. 영광과 굴욕은 뒤로한다.

    코바리드를 떠날 시간이다. 박물관 한쪽에서 알피니부대 찬송가가 흐른다. ‘스텔루티스 알피니스(Stelutis Alpinis)’. “내가 죽어 잠들어 있는 곳은 에델바이스 풀밭.”

    슬로베니아 코바리드=글·사진 박보균 대기자

    ◆제1차 세계대전=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계 청년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다. 사라예보 사건이다. 한 달 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유럽 판도는 삼국동맹(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대(對) 삼국협상(프랑스-영국-러시아). 그것은 인계철선으로 작동한다. 암살 5주 만에 서로간 선전포고와 총동원령이 이어졌다. 그리고 4년4개월(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 전쟁.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다. 이탈리아는 처음에 중립, 나중에 ‘협상’ 편에서 전쟁을 했다.

    ◆루이지 카도르나(Luigi Cadorna·1850~1928)=이탈리아 군 참모총장 겸 최고사령관. 장교 때부터 엄격한 군기와 거친 처벌로 유명했다. 전쟁 동안 장군만 217명을 경질. 그는 카포레토의 지휘 실패에다 즉결처형으로 비난받았다. 종전 후 집권자 무솔리니는 불명예 퇴역한 그를 원수(Maresciallo)로 승진시켰다.

    ◆1차대전 100주년(2014년) 기념=올해 유럽에서 다양한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유럽 정상들은 격전지에 모인다.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다지고 있다. 전적지와 박물관을 찾는 관광·견학도 활기차다.

    ◆프랑스 베르됭(Verdun)전투=1차대전 서부전선 베르됭에서 독일과 프랑스군의 공방전(1916년 2~10월). 양군 희생자 63만여 명의 살육전이다. 이손조 전투는 알프스 산맥의 베르됭으로 불린다.

    사진 설명

    코바리드(카포레토) 마을 도로 옆에 있는 한 세기 전 이탈리아군의 149?곡사포. 녹슨 대포는 전쟁의 격렬함을 기억한다. 뒤쪽에 눈 덮인 줄리안 알프스 산.

    이탈리아군 납골당 교회와 험악한 줄리안 알프스 산세. 코바리드의 상징 풍광.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은 집단 후퇴했다. 전쟁 의지를 상실한 군대의 붕괴 모습.

    모형 알프스 산악 참호, 밀랍인형은 이탈리아 정예 알피니 부대원.

    코바리드 박물관은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인을 함께 기억한다.

    소차강 협곡 위에 남아 있는 오스트리아군의 거대한 클루제 요새.

    산악 케이블카는 무기, 식량, 부상자를 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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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동아일보]
    “13년전 그 춤 추려니… 폐가 터지는 줄 알았죠, 하핫”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울샵엔터테인먼트 4층 스튜디오에서 만난 가수 김태우는 더이상 ‘키 크고 노래 잘하는 막내’가 아니었다. 어느덧 작곡가, 프로듀서, 제작자가 돼 있었다. “헤어진 god는 부부싸움을 한 가족 같아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돼 있죠.” 이런 그의 단언도 이젠 거짓말이 아니다. 다섯 남자는 다시 함께이니까. 왼편 액자 속 왼쪽 인물은 김태우의 부친 김종호 씨. 김태우와 함께 소울샵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사진에 담아두고 싶었어요.”(김태우)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세기가 그린 미래,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벌써 15년이다. 인류가 꿈꾼 시간여행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그건 아직 영화, 꿈에서나 등장하는 신기루다.

    최근 몇 달간 시간여행 비슷한 걸 체험한 인류를 만났다. 남성그룹 god의 메인 보컬 김태우(33). 15년 전, 20세기의 끝자락에 남성그룹 god의 고교생 막내 멤버였던 그는 이제 가요기획사의 대표이고 두 아이의 아빠다. 1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15년 전, 그러니까 1999년 데뷔한 5인조 god는 한국 남성그룹 계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했다. ‘어머님께’ ‘거짓말’ ‘길’ 같은 감성적인 노래는 춤과 함께 듣지 않아도 좋았다. 리듬을 타는 가벼운 손동작과 멤버 위치 이동만으로 충분했다. 남녀노소의 감성에 호소했다. ‘거짓말’이 든 3집(2000년)이 180만 장, ‘길’이 담긴 4집(2001년)이 170만 장 넘게 팔렸다. 이들을 두고 ‘국민그룹’이란 조어가 생겨났다.

    국민그룹의 후기는 순탄치 않았다. 2004년 윤계상이 탈퇴한 뒤 4인 체제로 두 장의 앨범(‘보통날’ ‘하늘 속으로’)을 냈지만 예전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도 큰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올해 7월, 5인 체제로는 12년 만에 낸 앨범 ‘챕터 8’은 음원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god의 색채를 유지한 신곡 ‘미운오리새끼’ ‘하늘색 약속’ ‘우리가 사는 이야기’는 god 팬덤을 넘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4일 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울샵엔터테인먼트 5층에서 신장 190cm의 거구가 손을 내밀었다. 2009년 ‘사랑비’의 인기로 솔로 가수로 자리매김한 김태우는 데뷔 때보다 키만 4cm 더 큰 게 아니다. 이번 ‘g5d’(5인 체제 god) 재결합을 이끌었다. ‘챕터 8’을 공동 프로듀스했다. 지난달 30∼31일 대전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한 달 반 동안 이어진 15주년 전국 순회공연을 마친 김태우의 눈은 쉽게 젖어들었다. 서울 광주 대구 부산 대전을 돌며 마주한 7만 명 넘는 관객의 눈처럼. 전전날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 뒤 과음하고 ‘빤쓰 바람’으로 잤더니 그만 감기가 왔다는 김태우의 목소리는 안개를 머금은 듯 더욱더 허스키했다.

    ―재결합 콘서트를 봤어요. 나이 탓인가요. 격렬하게 춤출 때마다 멤버들 모두 힘들어 보이던데….

    “‘니가 있어야 할 곳’을 할 때는 정말 폐가 터지는 줄 알았어요. 하핫. 연습할 땐 괜찮았는데 관객 앞에 서니까 흥분해서 더 세게 추다 보니….”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도 콘서트를 보러 왔죠?

    “그날 무대에서 저흰 스무 곡을 불렀고, 그걸 3만 명이 랩 부분까지 다 따라 불렀어요. 근데 그 스무 곡을 만든 사람이 한 사람이었죠. 진영이 형은 다른 관객과 똑같이 공연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줬어요. 꼭 2000년대 초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god 음악의 9할이었던 박진영 씨에겐 이번에 왜 신곡을 의뢰하지 않았죠?

    “왜 안 했겠어요. 좋은 곡 써달라고 했죠. 근데 그때 진영이 형이 엄청 바빴어요. ‘너희 곡 쓰는 데 몰입할 수 없는 조건이면 안 쓰는 게 맞는 것 같아. 다른 작곡가랑 작업해서 다른 색깔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하시더라고요. 5월에 이단옆차기랑 작업한 ‘미운오리새끼’가 발매됐을 때 (진영이 형한테) 전화가 왔어요. ‘내가 썼어도 이렇게 못 썼을 것 같다’고. 기분이 묘했죠.”

    ―god 재결합 얘기는 언제부터 나온 건가요.


    “제가 군 제대하던 2009년부터 얘기를 꺼냈어요. 쭌이 형(박준형), 계상이 형이 하는 얘기를 제가 나머지에게 전달하고, 나머지도 마찬가지…. 제가 소통창구였죠. 어느 팀에나 오지랖 넓은 행동대장 있잖아요. 제가 ‘사랑비’ 내고 바빠지면서 1, 2년이 정신없이 흘러갔어요. 멤버들마다 사건, 사고도 있었고…. 쭈니 형은 할리우드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 찍다 허리를 다쳐 3년이나 재활을 했죠. 미국 갈 때마다 형 만나서 설득도 해봤고요. 근데 올해 15주년이 되고 멤버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유해지고, 안 좋았던 기억도 좋은 추억이 되고, 탈퇴한 계상이 형한테 쌓인 오해도 풀리고 하면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죠. 계상이 형이 2012년 방송 뒤풀이 술자리에서 그랬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god 꼭 하자.’ 전 속으로 ‘예스!’를 외치고 바로 다음 날부터 음반 기획에 들어갔죠. 하핫.”

    ―가요계도 많이 변했죠. 앨범 콘셉트를 잡기 힘들었겠어요.

    “8집 작업을 하기 전에 1∼7집을 반복해 들어봤는데 답은 거기 있었어요. 처음엔 god가 요즘 스타일의 음악도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단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근데 멤버들과 의논하다 ‘god는 장르가 필요 없는 거구나’ ‘다섯 명의 목소리가 합쳐지면 그게 바로 god구나’ 하는 결론에 닿았어요. 우리의 가장 큰 힘은 음악에 메시지가 있다는 거였잖아요. ‘어머님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거짓말’ ‘길’…. 일반 사람들이 고민하고 기뻐하고 아파하고, 그런 걸 음악에 녹여냈던 게 가장 컸죠. 편곡과 랩의 흐름에 세련미를 더하되 본질을 지키기로 했죠.”

    ―처음엔 막내가 앨범 프로듀싱을 맡는다는 데 대해 형들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을 것 같아요. 지난 7장의 god 앨범 모두 박진영 씨가 프로듀스한 거였잖아요.

    “전 그래도 이쪽(가요계)에서 가수이자 제작자로 노하우를 쌓아왔는데, 초창기엔 형들이 말 잘 안 들었죠. 하핫. 힘들게 제작해온 1, 2번 곡을 들려주고 나서야 인정을 받은 것 같아요. 여기 소울샵에서 녹음하고 안무 연습을 하는 동안 형들이 자꾸 ‘막내’ ‘막내’ 하면서 볼도 꼬집고 하니까 회사에서 그래도 대표이사인 제 권위가 직원들 보기에 영…. ‘형들, 이럴 거면 이제 우리 회사 오지 마라!’고도 했죠. 하핫.”



    2011년 결혼한 아내 김애리 씨도 이곳 소울샵엔터테인먼트 이사로 재직 중이다.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뒤 서울대 연구원을 지낸 재원이다. 장모는 국내 1호 색채 전문가로 꼽히는 한국케엠케색채연구소 김민경 소장이다.

    ―아내는 어떻게 만났나요.

    “2010년 소개팅이란 걸 첨 해봤어요. 그때 만나서 1년 반 연애하고 결혼했어요. 만난 지 3개월 만에 제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어요. 이지적이고 현명한 여자와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MBC ‘목표달성! 토요일-god의 육아일기’(2000년 1월∼2001년 5월 방영)는 가족생활 예능 프로그램의 효시 격이잖아요. 멤버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하고 진짜 아빠가 돼 보니 어떻던가요. 그때 경험이 도움이 돼요?

    “와이프가 놀라더라고요, 너무 잘하니까. ‘어디 숨겨둔 애 있는 거 아니냐’면서. 하핫. 그때 체득한 게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아기 안는 법, 기저귀 가는 법…. 세 살배기 소율이, 두 살배기 지율이 모두 딸인데 재밌게 키우고 있어요.”

    ―god 유일의 유부남으로서 형들한테 장가 좀 가라고 보채지 않나요.

    “소율이, 지율이 보면 형들 (좋아서) 난리 나죠. 형들이 나이 드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나 봐요. 결혼생활에 대해 저한테 많이 물어봐요. ‘결혼 상대로는 어떤 여자가 좋냐’고 해서 ‘그건 본인 필(느낌)이 안다. 느껴지면 (결혼)하라’고 했어요.”

    ―손호영 씨에게는 안 좋은 일도 있었잖아요. 그땐 어땠나요.

    “형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전 왜 그랬는지 이해가 돼요. 형이 몸도 좋고 남자다워 보이는데, 실은 되게 여려요. 남에 대한 배려심이 너무 많아요. ‘내가 좀 상처 입어도 상대에겐 상처주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요. 지금은 너무 좋아요. god를 다시 하면서 자신감도 얻은 것 같아요.”

    7월 12일 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15주년 재결합 콘서트 무대에 선 남성그룹 god. 왼쪽부터 김태우, 손호영, 박준형, 윤계상, 데니안. “데니 형, 우는 거 맞을걸요. 완전 감성 래퍼….”(김태우) 소울샵엔터테인먼트 제공
    ―콘서트 때 호영 씨가 ‘god에서 무한긍정을 맡고 있다’고 한 건 인상적이었어요.

    “요즘 무한긍정 맞아요!”

    ―윤계상 씨가 팀을 탈퇴했을 때는 어땠나요.

    “그땐 멤버들 전부 계상이 형 혼자 연기자가 되고 싶어 나간 걸로 알고 원망했는데, 그게 아니었단 걸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죠. 계상이 형은 그때 연예계 일을 아예 그만두려고 했대요. 이런 얘기를 재작년에 TV 예능 프로그램(올리브TV ‘윤계상의 원테이블’)에서 멤버들 모두 처음 들은 거예요. 10년간의 오해가 풀리면서 그때 다 같이 울고….(이때 김태우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흩어진 다수가 다시 모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god 재결합에 영감을 준 다른 재결합이 있었나요?


    “5월에 낸 싱글 ‘미운오리새끼’의 대표 이미지로 다섯 멤버가 손을 모아 포갠 사진을 골랐잖아요. 이건 미국 록 밴드 본 조비의 ‘킵 더 페이스’ 앨범 표지를 따라 한 거예요. 본 조비 음반 제목처럼 ‘신의를 지킨다’는 의미도 있고, 그들처럼 오래가는 팀이 되자는 뜻도 있죠. 미국 밴드 ‘이글스’ ‘뉴키즈 온 더 블록’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합친 것도 멋졌어요. 클럽풍의 댄스 음악이 대세인 시기에 그런 록 밴드나 보컬 그룹이 돌아오고, 또 성공을 거둔다는 건 대단한 일이죠. 저희의 재결합은 물론 ‘팬 지오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운영하고 있는 소울샵엔터테인먼트는 어떤 회사인가요.

    “가수 길건과 메건리가 소속돼 있는데요. 11월쯤 남성 솔로 가수 한 명을 더 데뷔시킬 거예요. 아이돌 그룹 출신인데 작사 작곡 편곡 건반 연주 노래 춤 모두 출중해요. 물건이 될 거예요.”

    ―기획·제작자로서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뭔가요.

    “스테디셀러가 많은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요즘 가수들 생명력이 짧잖아요. 가수란 게 사실 오래할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제2의 god를 만드는 건 어때요.

    “안 그대로 머릿속에 5인조 신인 남성그룹을 어떻게 만들고 유지해 나갈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어요. 당연히 god처럼 만들어보고 싶죠.”

    ―근데 god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음 달 25일 오후 6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앙코르 콘서트를 열어요.(16일 오후 8시 입장권 예매 개시·4만4000∼14만3000원·1544-1555) 그 뒤 활동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게 없어요. 내년에 또 한 번 앨범을 낼 수도 있고요. 완전 좋거든요, 지금 분위기!”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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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데일리

    [이데일리 e뉴스 박지혜 기자]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여성 경기진행요원(캐디)를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11일 오전 10시께 박 전 의장이 라운딩 중 담당 캐디 A씨의 신체 일부를 접촉해 강력한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골프장 측은 “A씨가 라운딩 중에 신체 접촉이 심하다는 내용의 무전 연락을 한 뒤 교체를 요청해 곧바로 다른 캐디로 바꿨다”고 전했다.

    A씨는 ‘박 전 의장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관할 경찰서에도 신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골프장 측도 캐디가 개인 사업자 신분이지만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 자문 변호사와 논의해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세웠다.

    이에 박 전 의장은 “캐디는 골프장에서 계속 ‘등을 쳤다’, ‘팔을 만졌다’라고 하는데 서로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으로서 어제도 오늘도 내가 직접 원주로 찾아가 얘기해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며, “손녀 같아서 귀엽다는 표시는 했지만 정도를 넘지는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박 전 의장은 한 언론매체와 전화 인터뷰에서 “손가락 끝으로 (A씨의) 가슴 한 번 툭 찔렀는데 그걸 어떻게 만졌다고 표현하느냐”고 말해 파장이 일고 있다.

    박지혜 (noname@edaily.co.kr)
    조선일보

     

    공동 비대위원장 영입 무산…새정치연합 혼돈 속으로

    [CBS노컷뉴스 박종관 조태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2일 이상돈-안경환 명예교수의 공동 비대위원장 영입을 전격 철회했다. 세월호특별법 추인이 두 차례나 불발된 데 이어 비대위원장 인선도 무산되면서 박 위원장의 리더십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비대위 구성은 물론, 나아가 국회 의사일정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박영선 위원장은 이날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문희상·정세균·김한길·박지원·문재인 의원 등 중진 인사 5명과 2시간 가량 회동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와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각각 '보수'와 '진보'의 두 축으로 영입해 공동 비대위원장 체제를 꾸리겠다는 구상에 대해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안경환, 이상돈 교수를 공동 비대위원장으로 모시는 것은 두 분이 고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는 의견을 모으고 비대위 구성 문제를 추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박수현 대변인이 전했다. 아울러 일단 세월호특별법 협상에 집중하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부당' 판결과 담배세, 주민세 인상 등 민생현안 문제에 전념하기로 했다.

    특히 박 위원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도 "당이 더 위기로 치닫게 되고 세월호법 협상을 실종시키게 됨으로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박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변인은 박 위원장의 자진 사퇴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당초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에만 해도 "다음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며 공동 비대위원장 체제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전날 발표한 이상돈 교수의 영입 구상이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애초부터 안경환 교수와의 '투톱' 체제였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이 교수의 새누리당 활동 전력에 대한 '반감'에, '세월호 정국'에서 보인 불통의 리더십이 이어졌다는 '불만'이 더해지면서 당내 반발은 수습 불가 상태로 치달았다. 급기야 박 위원장이 원내대표 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터져 나오자 이 교수와 안 교수도 고사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합리적 보수'인 이 교수의 영입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야권의 '혁신'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 도리어 내홍을 키우다 좌초되면서 박 위원장의 리더십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박 위원장이 일단 각 계파의 수장을 모아 위기를 가까스로 넘어갔지만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장 당내에서는 '세 번은 참을 수 없다'는 회의가 번지고 있다. 고 김근태 상임고문 계보인 민평련 회장인 최규성 의원은 "공동 비대위원장 철회와 상관 없이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내려놔야 한다"면서 "더 이상은 리더십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번 인선 파문을 계기로 계파 간의 이견은 물론, 외부 인사에 대한 거부감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당내 누구를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울 것이냐를 두고 계파 간에 힘겨루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비대위 구성 자체도 별다른 기약 없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박 위원장이 이번 주말을 시한으로 못박은 새누리당과의 세월호법 협상에서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하기도 힘들어졌다. 극적인 돌파구가 없다면 15일 본회의 개최 등 정기국회 일정도 줄줄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野 '비대위원장' 다툼 이면엔 좌우 노선.권력 다툼

    박영선 '진보-보수 투톱' 인선 실패..강경 노선으로 회귀할듯


    [CBS노컷뉴스 정영철.박종관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영입 문제를 놓고 표출된 내홍은 당내 노선과 권력 투쟁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안경환 서울대 교수에 대한 영입에 실패하면서 박영선 원내대표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수 밖에 없게 됐다.

    당내 혁신모임과 더좋은미래 등에서 새누리당 출신의 이상돈 공동 위원장 내정자에 대해 강하게 '비토'한 이면에는 당의 우클릭 노선에 대한 반감이 깔려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당의 생존을 위해서는 강경일변도의 모습에서 벗어나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 "비대위원장 문제는 그동안 잠복해 있던 강.온파간의 노선투쟁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으로 이상돈 교수 외에 안경환 서울대 교수를 영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외연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당의 노선을 우클릭해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공동위원장 체제가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이것이 다음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갖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교수는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끝낸 노동당 출신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제3의 길'처럼 새정치연합이 '우클릭'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이 교수와 함께 비대위를 이끌 '진보' 축으로 꼽힌 안경한 서울대 명예교수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교수의 토니블레어식 개혁에 공감을 표하며 "(이 교수와 공동으로) 혁신과 외연의 확장이란 두 축을 꾸려보는데 노력해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당내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은 새누리당 출신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앉히는 것은 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민평련 회장인 최규성 의원은 "박 원내대표가 생활정치를 하겠다고 한 것은 우편향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그러면 세월호 문제도 이쯤에서 접자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야당의 선명성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비대위원장은 내부 사정을 잘아는 상임고문 등 원로 중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당 관계자는 "토니블레어는 진보에 바탕을 두고 중도를 어우르면서 외연을 넓혔다"며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보수인사를 들여와 중도쪽으로도 발을 뻗겠다는 것인데 이런 방법은 제3의길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노선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당내 헤게모니 싸움과 밀접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비대위원장은 당 개혁작업과 새로운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에 계파간 이해관계에 따른 정면충돌이 표면화했다는 것이다.

    강경파 측은 "박 원내대표가 사심으로 외부 인사를 영입해 비대위원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게 아느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반면 박 원내대표 측에서는 "당 개혁에 대한 반발심리로 흔들기를 하고 있다"고 봤다.

    '이상돈-안경환 카드'를 관철시키지 못하면서 박 원내대표가 이번 노선 싸움에서는 패했다. 이에 따라 당내 노선도 다시 진보-강경 쪽으로 선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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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안

    한명숙 대표가 4.11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문성근 당대표 권한대행, 이해찬 대표, 문재인 대통령 후보 겸 당대표 권한대행, 박기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 문희상 비대위원장, 김한길 대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에 이르기까지 새정연의 전신인 민주당과 그를 이은 새정연은 2년 5개월 내내 당대표의 수난이 이어졌다.ⓒ데일리안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새누리당 출신 이상돈 중앙대 교수를 영입하려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내 반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박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직에서 조기에 끌어내리고, 의원총회가 위임한 비대위 구성권도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난다면 지난 2012년 4.11 총선 이후 2년 5개월 동안 9번째 당대표 교체가 된다.

    한명숙 대표가 4.11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문성근 당대표 권한대행, 이해찬 대표, 문재인 대통령 후보 겸 당대표 권한대행, 박기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 문희상 비대위원장, 김한길 대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에 이르기까지 2년 5개월 내내 당대표의 수난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한명숙 대표와 이해찬 대표, 김한길 대표, 안철수 대표는 정해진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했다. 이 대표는 18대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으로 사퇴했으며, 김 대표와 안 대표는 7.30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책임에 걸맞는 권한이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김 대표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출판기념회, 조의금, 식비 제한은 당내 의원들의 무시에 자연스럽게 사장됐다. 안 대표와 문재인 의원의 대선 공통공약이었던 기초의원·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도 당내 반발에 부딪혀 시도 자체가 무산됐다.

    박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과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대표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나섰지만, 1차 합의안은 의총에서 부결됐고, 2차 합의안은 유가족들의 반발에 추인이 미뤄지고 있다. 박 위원장은 협상 전권을 가졌음에도 당으로부터 협상 결과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번 비대위원장 인선 과정에서 역시 54명의 당내 의원들이 박 위원장의 결정에 반대하는 연판장에 서명을 했고, 일부 중진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며 박 위원장을 압박하고 있다. 자칫 박 위원장이 이 교수 영입을 강행한다면 강제로라도 박 위원장으로부터 비대위원장직을 박탈할 태세다.

    결국 박 위원장도 당대표로서 무엇 하나 자신의 뜻대로 이뤄보지 못 하고 불명예 퇴진의 기로에 놓였다.

    구(舊)민주당 시절부터 당권을 잡았던 인사들은 하나같이 “민주당은 너무 민주적이어서 문제다”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손으로 당대표를 뽑아놓고도 당대표가 추진하는 정책들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개별 의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문화 때문인지, 소수 의견이 지도부의 결정을 뒤엎을 때도 있다.

    반면, 당 지도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세력은 말한다. 당원의 의사를 묻지 않는 당 지도부의 결정을 독재이고 독단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대대로 입이 가볍다. 언제나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당내에서 논의 중인 사안이 언론으로 흘러들어갔다. 결정 시까지 비공개로 논의돼야 할 사안이 공개되면 결과는 빤하다. 여야 협상에선 협상력이 약화하고, 인선 시엔 공식 영입 제안 전에 상대방에 부담을 줘 인사가 무산될 수 있다.

    이처럼 때때론 먼저 결단하고 후에 양해를 구하는 비민주적인 방식이 불가피하지만, 당내 의원들은 이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당대표가 먼저 의견을 구하면 외부에 흘리고, 후에 의견을 구하면 반대할 것이라면 뭣 하러 대표를 뽑는 건지 모르겠다. 의사 대리인만 뽑아 모든 안건을 표결에 붙이면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 아닌가. 권한 없이 책임만 지는 대표라면 앞으로 누가 당권을 잡으려 할지 의문이다.

    데일리안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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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ㆍ관건은 ‘보수혁신’ 현실화… ’숫자에 강박’ 이미지 정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63)가 점점 여권 차기 대권 주자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지난 7월 대표 당선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차기 후보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1위 주자로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가더니 좀체 변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여당 내 확고부동한 1위 주자다. 세월호특별법 협상 난항 등 위태위태한 정국 상황에서도 김무성 대표 체제는 일단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대권 주자에 부합하는 자질을 보여주며 여권의 ‘차기 아이콘’이 될지에 대해선 여전히 당 안팎에서 물음표가 남는다. ‘보수혁신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혁신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월호특별법을 놓고도 원내대표 일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이다. 대신 연일 경제 통계수치를 언급하며 ‘경제 지도자’ 이미지 구축에만 매달리고 있다.

    ■ 당 혁신이 ‘낮술 금지’… 큰 그림이 없다

    김 대표는 7·14 전당대회에서 “보수혁신의 아이콘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힌 후 줄곧 ‘보수혁신’을 외쳐왔다. 그러나 당권을 장악한 후 2개월이 되도록 밑그림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측근 의원은 “김 대표 머릿속에 보수혁신에 대한 큰 그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간 제안한 혁신안이라는 것도 당직자들 낮술 금지,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횟수 제한, 해외 출장 시 비행기 이코노미석 이용, 당 예산 전면 공개 등 소소한 것들에 불과하다. 당 안팎에선 “작은 것에 집착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김 대표는 지난 11일 “거대 담론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있는 고쳐야 할 점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고 반박했다. 100% 상향식 공천도 ‘김무성표’ 혁신의 주요 레퍼토리지만 측근들 사이에서 “그러면 왜 인재영입위원회를 만드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해 말 철도파업 ‘해결사’로 나서 정치력을 발휘한 김 대표는 세월호특별법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야당과 새누리당 일부에서 김 대표 역할론이 끊이지 않고 나오지만 수수방관하고 있다. 철도파업 당시 일개 의원이면서 조정자로 나섰는데 당 대표인 지금은 오히려 ‘불가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내심 여야의 정치적 타협을 바라면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수 없어 ‘우두망찰(정신이 얼떨떨해 어찌할 바를 모름)’에 빠진 상황이란 분석이 나온다.

    ■ 경제 지도자 이미지에 올인

    김 대표는 요즘 당 회의나 민생 탐방 시 경제 관련 통계수치를 줄줄 읊는다. 최근 그의 발언에 숫자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다. 한 수도권 의원은 “김 대표가 요즘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열공’ 중”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 2일 당 사무처 월례조회에서 이승진 여성국장을 일어나게 한 후 일본 출산율이 얼마인지 물었다. 이 국장이 답변을 못하자 김 대표는 “일본은 1.34, 우리나라는 1.18이다. 넌 여성국장 자격이 없다”고 면박을 줬다.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국가부채 규모를 놓고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20여분간 설전도 벌였다. 당 관계자는 “국가부채가 지방정부와 공기업 부채를 포함해 국내총생산(GDP)의 60%가 넘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을) 자랑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대권 도전 콘셉트를 ‘민생경제 지도자’로 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또 다른 측근 인사는 “다음 대권 시대정신은 ‘격차 해소’가 될 것이고 김 대표도 그런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 대표가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론,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에 참석해 “피케티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강병한·정환보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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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가깝고도 먼 49.5km
    지난달 3일 일본 쓰시마에서 2년 만에 다시 열린 조선통신사 국서 교환식 재현 행사. 쓰시마=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부산에서 49.5km, 맑은 날 부산 태종대에 오르면 맨눈으로 일본 쓰시마가 보인다. ‘국경의 섬’으로 불리는 곳이다. 일요일인 지난달 3일을 전후해 쓰시마 시청 소재지인 이즈하라(嚴原) 항 일대 호텔과 민박집의 방이 동났다.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福岡) 공항과 쓰시마를 오가는 항공편도 일찌감치 만석이었다. 2년 만에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일본 각지는 물론이고 부산에서 페리 편으로 들어온 한국 관광객들로 섬 전체가 들썩였다.

    쓰시마는 1980년 이즈하라 항 축제 때 처음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했다. 조선통신사 연구의 선구자인 재일교포 신기수 선생이 쓰시마 역사자료관에서 상영한 ‘에도 시대의 조선통신사’라는 영화 한 편이 계기였다. 쓰시마는 1988년 축제 이름을 ‘아리랑축제’로 바꿨다. 2002년부터는 부산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회를 초청해 함께 행렬을 재현했다. 옛날 정사와 부사, 종사관의 후손들도 초청됐다. 한일 교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선조들의 영광을 되살리려 한 것이다.

    그랬던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이 지난해 끊겼다. 고려 후기의 보살좌상과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등 불상 2점이 쓰시마에서 반출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보지 못한 지난해 쓰시마 섬 전체가 우울증에 빠졌다. 쓰시마의 조선통신사 행렬 진흥회장을 맡고 있는 이나다 미쓰루(稻田充) 씨는 “많이 허전했다”고 말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쓰시마는 올해 다시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기로 했다.

    지금도 앙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축제 이름에서 ‘아리랑’은 지워졌다. ‘한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내건 선술집도 보였다. 한 20대 남자는 “한국 관광객이 늘면서 일부는 혜택을 보겠지만 섬 주민 대부분은 성가시기만 하다”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환대와 불만은 200년 전에도 교차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일본을 오간 조선통신사는 그런 상황에서 교류를 이어갔다. 통신사(通信使)에는 ‘믿음을 소통한다’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일 양국은 200여 년간 선린 우호의 외교관계를 이어갔다. 당시 일본에서는 원조 ‘한류 붐’이 일었다. 한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악화되고 있는 지금 조선통신사의 의의가 다시 평가받고 있다.

    ▼ 도쿠가와의 정성… 1년 稅수입 넘는 100만냥 들여 접대 ▼

    적 탐지로 시작해 교류로… 아베 지역구서 행렬 재현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이 소장한 조선통신사 행렬도. 쓰시마 번주가 무사, 짐꾼들과 함께 에도(현재 도쿄)를 오가는 조선통신사를 수행했다. 2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통신사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일본 각지에서 인파가 몰려들었다. 동아일보DB
    지난달 3일 쓰시마에서 예정됐던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은 불발됐다. 마침 북상한 태풍 나크리 탓이었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의 표정엔 아쉬움이 컸다. 축제에 맞춰 일한 교류 사진전을 열고 있던 니이 다카오(仁位孝雄) 나가사키(長崎) 시 미술진흥회 이사는 “2년간 기다렸는데 태풍이 마음을 몰라준다”며 탄식했다.

    그 대신 쓰시마 교류센터 내 공연장에서 국서 교환식이 재현됐다. 쓰시마 번주 역할의 호리에 마사타케(堀江政武) 쓰시마 시의회 의장은 국서에서 “지난해 한국에서 18만 명 이상 방문하는 등 쓰시마는 옛날과 마찬가지로 국제 교류의 최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통신사 정사(正使) 역을 맡은 권오성 부산시의회 행정문화위원장은 “지난해 행렬 재현이 중단됐지만 서로의 신뢰를 통해 (행사를) 재개해 기쁘다”고 화답했다.

    1764년 제11회 통신사에 부사로 나섰던 이인배의 8대손으로 이번 행사에서 역시 부사 역을 맡은 이상구 씨(72)는 감격에 젖었다. 그는 “소통과 신뢰의 상징이던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되살린다면 두 나라 간 문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선의 실리주의 외교

    쓰시마와 조선통신사는 밀접한 관계였다.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연 29만 명의 군사를 보내 조선을 초토화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불리는 침략전쟁이었다. 도요토미의 죽음으로 일본군이 물러난 1년 뒤인 1599년 쓰시마 번이 조선에 사신을 보냈다. 도요토미의 뒤를 이어 일본 천하를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화평을 맺고 싶어한다”는 전갈이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일본이 정말 화평을 맺으려는 건지, 다시 침략하려는 트집 잡기용인지 꿍꿍이속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일단 탐적사(探賊使)를 파견해 일본의 정세를 정찰하기로 했다. 이때 파견한 사신이 사명대사 유정이다. 유정은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운 바 있다. 왜군의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4차례 협상한 경험도 있었다.

    1604년 유정은 쓰시마로 향했다. 쓰시마 번주 소 요시토시(宗義智)는 이를 국교 재개의 좋은 기회로 여겼다. 유정을 설득해 도쿠가와가 있는 교토(京都)까지 데리고 갔다.

    소가 조선과의 국교 재개에 적극적이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쓰시마는 면적의 88%가 표고 500∼650m의 산지로 농작물을 경작할 땅이 거의 없는 섬이다. 자급자족이 어려웠던 탓에 한반도를 1000년 이상 괴롭혀 온 왜구의 소굴이기도 했다. 조선은 소에게 왜구 단속을 요청하는 대신 독점 무역권을 줬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국교가 단절되자 섬은 생사의 기로에 섰다. 조선과 국교 재개만이 살 길이었다.

    도쿠가와는 유정을 직접 만나 “나는 조선 출병에 관계하지 않았다. 조선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다. 나는 조선과 화평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가운데 일부인 1400명도 유정의 귀국길에 돌려보냈다. 한양으로 돌아온 유정은 일본의 재침 위험이 없다고 보고했다. 그래도 조선 왕실은 일본과의 국교 회복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사무친 원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한반도 북쪽에서는 여진족이 세력을 넓히면서 국경을 위협하고 있었다. 남과 북, 아래위로 적을 두기에는 부담이 컸다. 조선은 세 번째 통신사가 파견됐던 1636년 병자호란을 당했다.

    조선은 조건을 달아 화평에 응하기로 했다. 도쿠가와가 먼저 화평을 요청하는 국서를 보낼 것이며 임진왜란 때 조선 왕릉을 파헤친 범인을 잡아 보내라고 했다. 몇 개월 후 도쿠가와의 인장이 찍힌 국서가 쓰시마 번을 통해 조선에 전달됐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내용이 남아 있다. ‘우리가 전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은 지난해 유정에게 말한 대로다.’

    하지만 국서는 쓰시마 번이 위조한 것이었다. 서체도, 연호도 과거 일본의 국서와 달랐다. 잡아 보낸 범인도 쓰시마 번의 잡범이었다. 선조는 이를 알아챘다. 하지만 눈감고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기로 했다. 실리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1607년 파견된 1차 사절단의 이름은 ‘회답 겸 쇄환사’였다. 일본이 보낸 국서에 답하고 조선인 포로를 찾아온다는 의미다.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에는 선조가 1607년 2대 쇼군(막부 우두머리) 히데타다(秀忠)에게 보낸 국서가 전시돼 있다. 쓰시마 번이 보낸 가짜 국서에 대한 조선 임금의 회답으로 이 역시 그대로 전달할 수 없어 쓰시마 번이 다시 위조한 것이다. 전시관에는 쓰시마 번이 위조한 옥새도 함께 전시돼 있다.

    도쿠가와 막부의 지극정성

    12차례 파견된 통신사 일행은 정사, 부사, 종사관 등 삼사(三使) 이하 400∼500명으로 구성됐다. 행렬은 쓰시마와 시모노세키(下關)를 거쳐 오사카(大阪)까지는 뱃길로, 오사카에서 에도(지금의 도쿄)까지는 육로로 이동했다. 평균 10개월∼1년이 소요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쇄환사로 파견된 첫 통신사는 여우길을 정사로 하는 467명이었다. 이들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에게 귀국하자는 포고문을 보이며 길을 걸었다. 하지만 1607년, 1617년, 1624년 등 3차례에 걸쳐 파견된 쇄환사가 데려온 조선인은 약 2000명에 불과했다. 일본인들이 포로를 감춘 데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이미 자리를 잡아 돌아오기 어려웠던 조선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쇄환사는 이후 네 번째 방일 때인 1636년부터 ‘조선통신사’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1811년까지 막부의 경사나 새로운 쇼군이 자리를 물려받을 때마다 일본을 오가며 양국 우호의 가교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자 문인 서예가 화가 등이 다수 포함됐다. ‘칼’을 숭상하는 일본을 교화해 이들의 마음에서 전쟁과 침략의 유전자를 다독이기 위한 포석이었다.

    통신사 일행은 쓰시마 번이 파견한 환영선의 안내로 쓰시마 섬에 도착한 뒤 번주의 경호 아래 에도까지 왕래했다. 일본인 수행인력을 합하면 2000명이 넘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 행렬이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통신사가 지나가는 지역마다 엄명을 내려 국가 총력 체제로 이들을 대접했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막부의 위신과 권위를 높이려 했던 것이다. 다이묘(大名·번주)들의 재정을 소진시켜 힘을 빼려는 노림수도 있었다.

    통신사가 지나는 각지의 다이묘는 경쟁을 벌이듯 통신사를 접대했다. 객사는 최고로 경치가 좋은 곳을 골랐다. 당시 일본은 불교를 국교로 삼아 육류 섭취를 금기시했다. 하지만 통신사에 돼지고기 등을 대접하기 위해 고기를 들이는 별도의 출입문을 숙소에 만들 정도였다.

    통신사 접대 경비로 쓰인 돈은 100만 냥에 이르렀다. 마쓰바라 가즈유키(松原一征) 조선통신사 연지(緣地)연락협의회 이사장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500억 엔(약 4850억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라고 말했다. 1709년 에도 막부의 세입이 약 76만∼77만 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시모노세키에 재현된 조선통신사 행렬


    쓰시마에서 불발된 행렬은 약 3주 뒤인 지난달 23일 일본 본토 서쪽 끝의 항구도시인 시모노세키 시 ‘바칸 마쓰리(축제)’에서 재현됐다. 시모노세키는 조선통신사가 바닷길로 쓰시마를 거쳐 일본 본토로 들어갈 때 들르는 첫 기착지였다. 시모노세키와 기타큐슈(北九州) 사이로 난 폭 1.5km의 간몬 해협을 통과하면 곧바로 일본의 내해(內海)로 불리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로 진입하게 된다. 일본의 최대 상업도시였던 오사카와 고베(神戶)는 모두 세토나이카이에 붙어 있다.

    해안도로에 시모노세키 시와 부산문화진흥재단이 재현한 조선통신사 행렬의 나팔과 꽹과리, 장구 소리가 울려 퍼지자 도로변 상가가 들썩였다. 시민들은 상가 건물 2층 난간까지 몰려나와 행렬을 지켜보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해동 부산시의회 의장이 분장한 정사는 가마 위에서 긴 수염을 휘날리며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통신사 행렬이 시내 중심지로 진입하자 시민들의 반응은 더 폭발적이 됐다. “스고이(멋지다)”라는 탄성이 쏟아졌고 공연하느라 땀을 쏟아내는 사물놀이패에 부채를 부쳐주는 시민들도 있었다.

    한 할머니는 부채춤을 추는 무용단에 다가가 일본어로 뭔가 말을 걸고 있었다. 알고 보니 76세 재일교포 2세였다. 이 할머니는 “어머니가 통신사 일행처럼 늘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 행렬의 출발 지점은 옛날 조선통신사가 상륙했던 항구 옆 광장이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는 항구 옆에는 ‘한일의원연맹 회장 김종필’의 휘호가 새겨진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가 서 있다.

    이곳에서 만난 민단 야마구치(山口) 현 지방본부 이만우 부단장은 “부산문화진흥재단이 행렬을 재현하기 전에도 3, 4년에 한 번씩 시청 사람들과 교포들이 축제 때 행렬을 재현하곤 했었다”며 “일본 본섬에서는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만큼 한국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행렬이 끝나자 시내 중심 광장에서 국서 교환식이 열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도 이날 행사장을 찾았다.

    ▼ “200년간 한일 평화, 信을 지키려는 노력 있어 가능” ▼

    300년 전의 한류… 우정 뒤엔 팽팽한 긴장



    일본 시모노세키 거리에서 재현된 조선통신사 행렬. 정사로 분장하고 가마에 탄 이해동 부산시의회 의장이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시민들은 ‘멋지다’는 탄성을 쏟아내며 환영했다(위쪽 사진). 시내 광장에서 열린 국서 교환식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아래쪽 사진). 시모노세키는 아베 총리의 지역구다. 시모노세키=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아키에 여사는 이날 저녁 환영행사에서 “정치적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민간 간에는 우호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김치도 만들고 한국말도 배우고 친한 한국인도 많다. 양국이 우호를 빨리 되찾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시모노세키는 아베 총리의 지역구(야마구치 4구)다.



    한류의 원조를 보다

    시모노세키에서 재현 행렬에 쏟아진 ‘스고이’ 세례의 원조는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쇄국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일본 학자와 문인들은 조선통신사와의 교류를 ‘일생의 영광’으로 알았다. 사절단이 묵는 객사에는 일본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시문이나 서화를 의뢰했다.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확인하고자 필담을 나누려는 학자들도 줄을 이었다. 조선 사신이 쓴 글씨나 그림을 지니면 액운이 달아난다는 믿음이 생겨나기도 했다.

    “사관(使館)에 연일 심상한 시인들의 방문이 잇달아 시를 부르고 화답하기와 필담으로 쉴 새가 없어 고통을 겪었다.”

    1719년 제9회 통신사의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갔던 신유한이 여행기 ‘해유록(海遊錄)’에 남긴 기록이다.

    통신사가 지나가는 길은 구경하러 온 인파로 산과 바다를 이뤘다. 조선 영조 때 문인 김인겸은 1764년 통신사 행렬이 에도로 입성할 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에도로 향하는 30리 길이 빈틈없이 인파로 이어져 있으니 대체로 헤아려 보면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당시 인기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오카야마(岡山) 현 우시마도(牛窓) 정에서는 통신사 행렬의 소동들이 추던 춤을 본뜬 ‘가라코 오도리’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통신사를 모티브로 한 인형도 일본 곳곳에서 만들어졌다.

    조선통신사 행렬에는 의원들도 동행해 동의보감 등 당시 첨단 의학을 전수했다. 쓰시마 시가 발간한 조선통신사 자료집에는 “조선통신사의 방일로 물자뿐만 아니라 예술 학문 등의 교류도 왕성하게 이뤄져 현재 일본 문화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통신사 일행이 일방적으로 주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미개하다고 여겼던 일본의 경제적 번성을 본 통신사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1624년 부사로 일본을 방문했던 강홍중은 “시장에는 물건들이 쌓여 있고 여염집에는 쌀이 넘쳐난다. 백성의 부유함과 물자의 풍부함이 우리나라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라고 했다. 통신사가 일본에서 본 수차 등 앞선 문물은 조선후기 실학 발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교차하는 우정과 미움


    통신사 파견이 거듭되면서 한일 간에는 깊은 우정이 싹텄다. 신유한과 교류했던 쓰시마 번의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1668∼1755)는 조선과의 풍부한 교류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고린테이세이(交隣提醒)’라는 책에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진실한 마음으로 사귀는 성신(誠信)을 바탕으로 조선과 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도 시대 일본 근린외교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조선어를 배우기 위해 부산 초량 왜관에 3년간 유학했고 일본 최초의 조선어 학습 교재인 고린슈치(交隣須知)를 펴냈다.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 앞뜰에는 지금도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이라고 새겨진 아메노모리 호슈 현창비가 서 있다. 이에 호응하듯 자료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고려문과 조선통신사비가 세워져 있다.

    통신사가 다녀가는 사이 양국 민족감정이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대립했던 적도 적지 않았다. 교토 다이부쓰지(大佛寺) 서쪽에는 조선인 귀무덤(耳塚)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베어낸 조선인의 귀와 코를 항아리에 담아 묻은 것이다. 최소 10만 명 이상의 귀와 코가 묻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719년 통신사가 교토를 방문했을 때 쓰시마 번주는 막부의 명령이라며 다이부쓰지 연회에 참석할 것을 요구했다. 인근에 있는 귀무덤을 상기시키며 조선 사신들을 은근히 겁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정사 홍치중은 이 절이 도요토미의 원당(願堂·명복을 빌던 법당)이어서 참석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외교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교토의 책임자가 꾀를 냈다. ‘일본연대기(日本年代記)’라는 가짜 책을 보여주며 이 절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중건한 절로 도요토미의 원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홍치중은 결국 부사, 제술관과 함께 연회에 참석했지만 종사관 이명언은 끝까지 참석하지 않았다. 한일 우정의 한편에는 민족의 한(恨)과 자존심이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이번 시모노세키 축제의 뒷마당에도 아픈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조선통신사가 상륙한 옛 항구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언덕 위의 ‘일청강화기념관’. 1895년 4월 17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 지배권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당시 고급 음식점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끌려온 강제징용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처음 도착했던 곳도 이곳 시모노세키였다.

    앞서 쓰시마에서도 역사의 아픔이 느껴졌다. 조선통신사 축제가 펼쳐지는 이즈하라 항 언덕배기에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센지(修善寺)라는 절이 있었다. 한말 일제에 항거하다 쓰시마에 유배돼 숨진 최익현의 유해는 이 절에서 장례를 치른 뒤 부산으로 옮겨졌다. 지금 슈센지의 순국비는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세운 것이다. 순국비 앞에는 조화와 물 한 컵이 바쳐져 있었다. 관리인은 “후손들이 매년 한 번씩은 이곳을 찾아 꽃을 바치고 간다”고 전했다.

    끊어진 통신, 되풀이된 침략


    1800년대 들어 가뭄과 기근으로 재정난과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자 도쿠가와 막부는 우두머리가 바뀌었는데도 조선통신사 파견 요청을 미루다 1811년 쓰시마에서 12번째 조선통신사를 맞았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57년 뒤 일본에서는 근대화 혁명이라는 메이지(明治)유신이 일어나 도쿠가와 막부는 권좌에서 쫓겨났다. 메이지 정부는 1876년 조선 침탈의 신호탄인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에 통신사가 아니라 수신사(修信使) 파견을 요청한다. 조선을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시켜 일본의 한반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이었다. 수신사 일행은 통신사가 이용하던 목선 대신 일본이 제공한 증기기관선을 이용했고 일본 방문 비용 일체는 과거와 달리 조선 조정이 부담했다. 조선의 우수한 문화를 전수하던 통신사와 달리 수신사는 선진 문화 수용자였다. 고종은 나름대로 1882년까지 4차례 파견된 수신사를 통해 나라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믿음의 소통이 끊어진 시점에서 양국 교류사에 불행이 찾아온 것이다.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둔 최근에도 양국 관계는 오히려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조선통신사 연구 권위자인 교토조형예술대 나카오 히로시(仲尾宏) 교수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양국 지도자의 강한 결의가 200년간의 평화를 가져왔다”며 “지금 이 시대야말로 당시 외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철 부산대 사학과 교수는 “통신사의 시대가 평화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조선이나 일본 모두 상대를 깔보거나 적으로 여기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런 불안정 속에서도 평화를 지속한 것은 ‘믿음의 교류’라는 이상을 유지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접국 간의 마찰을 노골적인 대립으로 만들지 않으려 한 외교적 노력이 중단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쓰시마·시모노세키=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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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체르마트 고르너그라트 정상에서 리펠베르그로 내려오는 내내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를 만끽할 수 있다. 이맘때 스위스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트레킹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 된다

    여기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지요. 바로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만년설 덮인 알프스 산맥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모두가 이 경치를 배경으로 소위 ‘인증 샷’을 찍지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풍경입니다. 1년에만 10만 명 가까운 한국인이 이곳 융프라우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진 속 풍경의 정확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융프라우라고만 알고 있지요.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얼음 세상의 이름은 알레치 빙하입니다.

    1000만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알레치 빙하는 유럽에서 가장 긴 빙하입니다. 길이가 23㎞나 됩니다. 2001년 유네스코가 융프라우와 알레치 빙하 지역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유럽인의 버킷 리스트에 알레치 빙하 트레킹이 올라 있을 만큼 명성이 높지만, 국내에는 그저 융프라우의 배경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요.

    먼발치에서만 보았던 알레치 빙하를 1박2일 걸었습니다. 최대 깊이가 900m에 이른다는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억겁의 세월을 거치며 다져진 빙하의 속살은 영롱하게 빛나는 에메랄드 같았습니다. 빙하를 헤치며 걸어보지 않고서는 마주할 수 없는 장관이었지요.

    1 빙하가 녹은 물이 강처럼 흐르다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진다. 2 새벽녘 콩코디아 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알프스 산양.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 안쓰럽다. 3 알레치 빙하를 걷기 위해서는 쇠발톱 길이가 2㎝나 되는 크렘폰을 착용해야 한다.

    또 한 장의 사진도 눈에 많이 익습니다. 마터호른(4478m)이지요.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도 아닌데, 가장 유명한 산 중의 하나입니다. 이 마터호른을 찾아 전세계에서 스위스 남쪽의 외진 산골마을 체르마트로 모입니다. 마터호른 역시 눈으로만 즐기는 관광객이 더 많은 건 아쉬운 일입니다. 곤돌라와 산악열차를 타고 산봉우리에 올랐다가 기념사진만 찍고 내려가는 관광객이 수두룩하지요.

    하나 눈요기만 하고 떠나기엔 체르마트에는 놀거리가 무척 많습니다. 1년 내내 스키를 타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하이킹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마터호른을 벗삼아 걸었습니다. 눈으로 즐길 때보다, 알프스가 훨씬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week&이 스위스의 속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행 방법을 소개합니다. 단순히 멋진 기념사진이 아니라 황홀한 추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스위스를 몸소 느껴보시지요.

    스위스의 자연은 아름답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답지만, 깊숙이 걸어 들어가 바라보는 자연은 더욱 아름답다.

    이 스위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 두 곳을 체험하고 돌아왔다.

    융프라우의 알레치 빙하 트레킹과 체르마트 마터호른 트레킹.

    두 트레킹 모두 스위스의 자연을 만끽하는 경험이었지만, 두 트레킹에서 경험한 스위스의 자연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오랜 세월 빙퇴석 바위가 빙하에 쓸리고 깎여 만들어진 마운틴 크리스털. 알레치 빙하를 걷다 보면 주울 수 있다.


    알레치 빙하 트레킹 Aletsch Trekking

    ‘거대한 입’이 쩍~ 포승줄에 묶인 죄인처럼 덜덜


    푸른 초원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체르마트 트레킹 코스.
    융프라우 알레치 빙하 트레킹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코스부터 만만치않다. 빙하 구간 18㎞, 고산 지대 하이킹 코스 4㎞ 합해 모두 22㎞ 구간을 약 12시간 동안 걸어야 한다. 21년째 알레치 빙하 트레킹 가이드를 하고 있는 프레디(51)도 인사를 나누자마자 겁부터 줬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의 최대 깊이는 900m입니다. 추락하면 시체도 찾을 수 없습니다.”

    프레디가 꺼낸 등산 장비도 범상치 않았다. 자일(로프)은 기본이고, 안전벨트 하네스, 빙하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쇠 발톱 같이 생긴 크렘폰까지…. 손쉬운 트레킹인 줄 알고 왔는데 장비는 몽블랑(4807m)을 등반할 때와 다름없는 것 같았다.

    눈이 등산화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스패츠를 차고 하네스를 허리춤에 동여맸다. 프레디가 먼저 30m쯤 되는 자일을 자신의 몸에 맸다. 프레디의 자일에 한국에서 온 기자와 독일인 체육교사 등 모두 3명이 차례로 연결됐다. 언뜻 포승줄에 묶인 피고인들 같았다. 안자일렌 방식의 트레킹이다.

    눈 덮인 융프라우 요흐역(3454m)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첫날 목표는 해발 2850m에 있는 콩코디아 산장이었다. 거리는 9㎞가 조금 넘지만, 예상 소요시간은 5시간이나 됐다. 한 발 한 발 조심해야 해서 시간이 한없이 걸린단다. 프레디는 “내 발자국만 따라 걸으면 안전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지난겨울에 내린 눈을 밟고 걸었다. 날씨가 추워 깊게 빠지지는 않았다. 베테랑 가이드답게 프레디는 크레바스를 용케 피해갔다. 고도가 내려갈수록 눈이 녹아서 질펀했다. 발이 푹푹 빠졌고 고어텍스 등산화에 물이 스며들었다. 가끔 동그란 구멍도 눈에 들어왔다. 빙하가 토해낸 숨구멍 같았다. “이것도 크레바스”라고 프레디가 알려줬다. 크레바스라고 하면 으레 ‘사다리를 걸쳐서 넘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지름이 30㎝ 정도로 작아서 그냥 뛰어 넘었다.

    슬러시(진창이 된 눈) 구간을 빠져나오자 억겁의 세월동안 얼어 있던 빙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지 바른 곳은 빙하 녹은 물이 흘렀고, 주변 산에서 굴러온 바위와 빙퇴석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융프라우 요흐에서 빙하 위에 난 길처럼 보였던 것이 이 빙퇴석이었다. 지친 몸을 쉬어갈 콩코디아 산장은 499개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절벽 위에 있었다.

    이튿날은 콩코디아 산장에서 케이블카역이 있는 엑기스호른(2869m)까지 약 12㎞를 걸어야 했다. 이 중에서 플라타(2380m)까지 8㎞는 빙하지역이고 이후 4㎞는 해발 2500m의 산악지역이었다. 콩코디아 산장에서 내려오자마자 크렘폰을 등산화에 동여맸다. 한국에서 챙겨온 아이젠을 내보이자 프레디가 고개를 흔들며 “발톱이 너무 작아 미끄러진다”고 핀잔을 줬다. 크렘폰은 1개 무게만 1㎏쯤 됐다. 발바닥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듯했다.

    체르마트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손쉽게 알프스 봉우리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빙하도 어제 본 빙하와 완전히 달랐다. 올록볼록했고, 거북이 등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다. 프레디는 “코끼리 피부”라고 표현했다. 겉은 거칠어도 빙하의 속살은 에메랄드빛이었다. 은은한 파스텔톤의 빙하 속살은 자체로 빛이 나고 아름다웠다. 워낙 크레바스가 많아 지그재그로 걸었다. 프레디도 피켈을 꺼내들어 추락사고에 대비했다. 프레디는 가끔 큼지막한 크레바스 속으로 돌을 던져 깊이를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아무런 울림이 없었다. 그만큼 깊었다.

    플라타에 다다를 즈음 프레디가 먼 산을 가리켰다. “마터호른입니다.” 생김새가 진짜 마터호른(4478m)이었다. “해발 2000m급 지역에서 마터호른과 융프라우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알레치 빙하뿐입니다.” 빙하를 빠져나와 엑기스호른으로 가는 길에 프레디가 “해가 갈수록 빙하가 줄어든다”고 걱정했다. “21년 전에는 지금보다 1m는 더 높았어요. 빙하가 다 녹으면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도 많이 사라지겠지요. 그때 스위스에 남는 건 시계와 은행뿐일 겁니다.” 프레디의 농담에 웃음이 나왔지만 왠지 씁쓸했다.

    체르마트 트레킹 Zermatt Trekking

    열차로 3089m 정상에 … 산 오르지 않고 내려오다




    체르마트행 기차에 올랐다. 마터호른 산자락 해발 1620m에 자리한 체르마트는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융프라우 요흐의 알레치 빙하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의 땅이라면, 체르마트는 여유가 흐르는 낭만의 휴양지라 할 수 있다.

    체르마트에 도착하자마자 관광객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반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과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관광객이 뒤섞여 있는 풍경은 도무지 생경했다. 스위스정부관광청의 마티아스 크래머(35)가 이해를 도왔다. “체르마트에서는 복장만 봐도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어요. 산으로 올라가 스키를 탈 사람인지, 트레킹을 할 사람인지, 시내 주변에서 산책을 할 사람인지 말이죠.”

    체르마트 주변으로 높은 산이 많지만, 오르기는 쉬운 편이다. 고르너그라트(3089m)·로트호른(3103m)·수넥가(2288m) 등 봉우리 정상부로 향하는 산악열차와 곤돌라가 수시로 운행하기 때문이다. 여기 체르마트에서는 어르신도, 장애인도 힘들이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다. 스키를 타거나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도 흔하다. 그래도 체르마트는 역시 트레킹이다. 체르마트에는 모두 400㎞ 길이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을 오르기보다는,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선호한다. 산에서 내려온다. 산악열차나 곤돌라를 타고 산을 오른 뒤 일부 내리막 구간만 선택해 걸으면 하루에도 두 코스는 너끈히 걸을 수 있다.


    마터호른을 벗삼아 알프스 안을 걸었다. 산악열차로 고르너그라트까지 올라 정상부 주변을 돌고 리펠베르그(2582m)로 걸어 내려오는 4㎞ 코스를 먼저 걸었다. 정상부 풍경은 단연 압권이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알프스의 풍광은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했다. 스위스에서 가장 높다는 듀포스피체(4634m)부터 마터호른까지 산봉우리 29개와 고르너빙하·그렌즈빙하가 파도를 치듯이 역동적인 자태로 사방에 펼쳐졌다. 리펠베르그로 향하는 내리막 길에선 좀처럼 걷는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만큼 눈에 담아야 할 것이 많았다. 왼쪽으로는 알프스와 빙하가, 오른쪽으로는 산을 거슬러오르는 산악열차와 케이블카가 연신 그림을 만들어냈다.

    산악자건거를 타는 이들과도 심심치 않게 마주쳤다. 체르마트가 세계적인 생태여행지로 불리는 까닭은 이 도시 안에서는 전기차를 뺀 모든 자동차의 출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체르마트 주민이 1990년 법을 만들어 여태까지 지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인 자연환경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다.

    체르마트 시내에서만 자전거가 흔한 줄 알았는데, 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 중턱에도 자전거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따로 있었고, 산악열차에도 자전거용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이 정도면 산악자전거족의 천국이라고 해도 좋을 법했다.

    이튿날에는 블라우헤르트(2571m)에서 리펠알프(2211m)를 거쳐 체르마트로 내려오는 9㎞ 길이의 젠베그 코스를 걸었다. 지난 2010년 제주올레 6코스와 자매결연한 ‘5개 호숫길’과도 겹치는 길이었다.

    수넥가까지 열차를 타고 올라간 뒤 곤돌라로 갈아타기를 약 30분, 블라우헤르트 정상에 내렸다. 해돋이 명소인 로트호른 바로 아래 블라우헤르트가 출발점이었다. 블라우헤르트 하산길은 돌이 많아 등산화가 필수라고 했지만, 경사가 무난한 편이라 걷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나무가 없는 터라 사방의 알프스 풍경을 구경하기에도 그만이었다. 변수는 날씨였다. 고산지대여서 변덕이 심했다. 이슬비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알프스가 운무로 휩싸였다. 어느새 마터호른도 밑동만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젠베그 코스는 제법 걷는 재미가 있었다. 골짜기를 건너는 길이어서 리펠알프로 가는 길에는 다른 트레킹 코스와 달리 오르막길도 만날 수 있었다. 옛날에 빙하가 있었던 골짜기를 걸으며 슈텔리·그린드예·그륀 등 크고 작은 호수도 끼고 걸었다. 젠베그 코스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곳은 슈텔리호수였다. 축구장만 한 호수 안으로 마터호른의 반영이 고스란히 스며드는 사진 명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름 낀 마터호른은 호수 안으로 들어오길 거부했다.

    알프스의 속살은 밖에서 보는 것과 사뭇 달랐다. 눈으로 덮인 높은 산맥과 달리, 빙퇴석 지대인 핀델른 마을에서 리펠알프로 이어진 길은 각종 야생화로 뒤덮인 초원과 소나무숲의 세상이었다. 웅장한 마터호른, 만년설의 오랜 흔적인 빙하와 호수, 종잡을 수 없는 날씨까지 체르마트에서 바라본 알프스의 표정은 풍부했다. 안개를 헤치며 체르마트 시내로 돌아왔다. 마을 너머로 마터호른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융프라우 요흐역을 벗어나면 처음으로 마주치는 설원이 바로 알레치 빙하다. 1000만년 전에 만들어진 빙하가 23㎞나 뻗어 있다.
    여행정보=대한항공이 매주 화·목·토요일 인천∼취리히 스위스 직항편을 운영한다. 스위스를 여행할 때는 스위스 패스가 용이하다. 스위스 패스 한 장이면 철도·버스·유람선 등 스위스의 대중교통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체르마트에서 스위스 패스를 보여주면 산악열차 고르너그라트반을 비롯해 각종 케이블카를 반값에 이용할 수 있고, 마터호른 박물관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스위스 패스 어른 4일권(2등석) 221스위스프랑(약 24만원). 스위스정부관광청(myswitzerland.com/ko).

    체르마트 슈텔리 호수에서 바라본 마터호른.
    융프라우 알레치 빙하 트레킹은 전문회사(swissrockguides.com)를 통해야 한다. 1박2일 가이드 투어에 어른 469스위스프랑(약 52만원). 융프라우 요흐까지는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 산악철도를 이용해야 한다. 요금 왕복 200스위스프랑(약 21만원). 융프라우 철도 한국사무소(jungfrau.co.kr, 02-756-7560)가 발행하는 쿠폰을 가져가면 최소 30% 할인받을 수 있다. 융프라우 요흐에는 최근 초콜릿 공방이 새로 생겼다. 스위스 최대의 린트 초콜릿사가 운영하는 것으로 직접 초콜릿을 만들고 살 수도 있다.

    글·사진=이석희·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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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경제



    주식 정보수집·숫자 전달자 신세 전락… 고액 연봉은커녕 구조조정 0순위…

    '증권가의 꽃' 시들어 간다

    금융위기후 수익낼 정보만 집착

    부실한 보고서 쏟아내며 내리막

    입김 세진 펀드매니저에도 치여

    잘못된 풍토 벗고 다시 꽃피려면


    IR담당자 등과의 먹이사슬 끊고

    본인 철학 앞세워 분석력 키워야


    "본류(분석)가 사라지고 지류(정보 수집 및 전달)가 그 자리를 꿰찼습니다. 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그는 리서치 업계의 현실이 부끄러울 정도라며 고개를 떨궜다. 무엇이 애널리스트를 이렇게 부끄럽게 만드는 것일까. 한때 '증권가의 꽃'으로 불리던 애널리스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고액 연봉의 거품은 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들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도 차갑기만 하다. 우리나라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리서치센터 조직체계가 갖춰지고 애널리스트의 업무분화가 이뤄진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애널리스트 1세대로 활동하다 지금은 해외상품부로 자리를 옮긴 이윤학 우리투자증권 이사는 "외환위기 직후 스티브 마빈 쌍용증권 이사가 외국계 증권사의 조직체계와 분석틀을 가져오면서 애널리스트가 섹터별로 특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IMF 외환위기 전까지 리서치센터는 투자분석실 또는 투자전략실로 불렸고 특정 업종에 특화된 애널리스트도 거의 없었다. 리서치센터라는 용어는 지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정착됐다. 이때부터 리서치센터가 시장 전체의 흐름을 살피는 투자전략팀과 특정 분야를 담당하는 섹터별 기업분석팀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시장이 박스권에 갇히면서부터 섹터 분석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입지를 굳혀갔다. 최근 사전 정보 제공과 엉터리 실적 예측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섹터 애널리스트의 출발이었다.

    업계에 애널리스트의 전성기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2001~2007년을 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바로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촉발한 전세계 금융위기 바로 직전까지다. 이 시기는 500포인트대에 불과했던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 2,000선까지 추세적으로 상승했던 때다. 리포트가 나오면 주가가 즉각적으로 반응할 때여서 애널리스트도 덩달아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환경은 바뀌었다. 국내 경제는 장기간 저성장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코스피도 박스권에 갇혀버렸다. 지수가 지지부진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은 더 이상 시장의 방향성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장의 방향성과 관계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정보가 대접을 받았고 애널리스트들은 그 수요에 맞춰 종목별 분석을 해야 했다. 정확하게는 분석보다 취재가 요구됐다.

    특히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1~2년 전부터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간의 갑을관계가 심화됐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분위기를 바꿨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당시 업계에서는 '미차디' '미차솔'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미차디와 미차솔은 업계 최초로 조 단위 자금을 끌어모았던 '미래에셋 차이나 디스커버리 펀드'와 '미래에셋 차이나 솔로몬 펀드'를 지칭하는 말이다. 두 펀드의 덩치가 너무 커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부작용도 발생했다. 바로 갑(펀드매니저)의 횡포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한 연구원은 "미차디와 미차솔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간 관계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미래운용에 기업 분석 보고서를 들고 찾아가면 '당신이 뭘 안다고 보고서를 가지고 오나. 당신 의견은 필요 없으니 IR 담당자를 통해 숫자(실적)가 나오면 그거나 제일 먼저 알려달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펀드에 편입한 종목의 목표주가를 낮추면 주문을 안 받아주고 매도 보고서를 낼 때는 먼저 전화를 해달라는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당시 운용 업계 선두를 달리던 미래의 이 같은 행태는 순식간에 업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후 애널리스트가 펀드매니저에게 숫자를 먼저 알려주는 것이 당연한 업무로 굳어졌고 목표주가를 올리기 전에 미리 언질을 주기로 하는 등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관행이 됐다. 본류가 좁아지자 지류로 물이 몰려들었고 새로운 흐름이 시장을 장악해나간 것이다.

    요즘 리서치 업계의 현실은 암담할 정도다. 지난해 CJ E&M 사태를 계기로 애널리스트가 IR 담당자로부터 사전에 실적에 대한 정보를 받기 어려워지면서 애널리스트의 실적 예측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만천하에 드러났다. CJ E&M의 2·4분기 영업손실은 131억원이었다. 이에 앞서 애널리스트들은 CJ E&M의 2·4분기 영업이익을 100억~190억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애널리스트 스스로 업황·상품별 판매 증가 등을 고려해 매출을 추정할 수 있는 모델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IR 담당자에게 의존하다 보니 그런 능력이 전혀 쌓이지 않았다"며 "애널리스트들이 IR 담당자로부터 들은 숫자를 토대로 결론을 정해놓고 논리를 찾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천편일률적인 보고서도 문제다. 애널리스트들이 단체로 기업을 탐방한 후 IR 담당자가 주는 자료를 정리하는 정도의 보고서가 판을 치는 것이다. 한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후배들에게 '떼 지어 다니지 말라'고 늘 강조한다"며 "어떤 날 보면 한 업체에 대한 리포트가 동시에 5~6개씩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보고서에서 차별화된 분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는 애널리스트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꼬리(정보 수집 및 전달)가 몸통(분석)을 흔들면서 정작 실력 있고 연륜 있는 연구원들은 스스로 짐을 싸고 있다. 정보기술(IT) 관련 기업 분석 1세대로 꼽히는 박재석 삼성증권 연구원도 그중 하나다. 박 연구원은 최근 작은 게임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박 연구원과 같은 세대로 그를 곁에서 지켜본 한 펀드매니저는 "박 연구원은 항상 자신만의 분석 방법과 논리가 있었기 때문에 의견이 다르더라도 경청했다"며 "그런 능력 있는 연구원이 업계를 등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환경이 다시 정상화되고 증권가의 꽃이 생기를 되찾는 데는 잘못된 풍토가 조성된 시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CJ E&M 사태 이후 업계의 불편한 관습들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우리의 시야에서 잠시 벗어난 상태다. 한 업계 고위관계자는 "잘못된 풍토가 굳어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이를 수정하는 시간도 길 것"이라며 "근본적인 업계 풍토의 변화 없이는 CJ E&M 사태는 1~2년이 지난 뒤 다른 형태로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간략하게 네 가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기업을 공개하고 자금조달을 한 업체들은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이자비용으로 생각하고 애널리스트들 혹은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의무를 다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부품업체 입막음 풍토도 개선돼야 한다.

    애널리스트들 역시 펀드매니저, IR 담당자와의 먹이사슬을 끊어내고 본인의 철학을 가지고 취재보다 분석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평가 방식도 바꿔 분석능력이 있는 애널리스트에게 가산점을 주고 부정한 행위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고병기·강광우기자 staytomorro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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