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의 경쟁' 저자 브린욜프슨 MIT교수
값싼 노동력 의존하는 中·인도… 앞으로는 위험하다
세계 공통 현상인 실업과 일자리 부족은 기계 도입으로 단순노동 수요 줄기 때문
'더 빨리, 더 많이' 경쟁으론 기계 못 이겨 새로운 기술·제품·방법 만드는데 집중을
기술 발전 활용의 주체는 인간
기계와 싸우는 사람은 결국 일자리 뺏겨… 구글·애플·아마존 등 기계와의 협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市場 만들어내
기계로 인한 불평등 해결하려면
저임금 노동력, 기계로 쉽게 대체 가능…창의력 발전시키는 '혁신 교육' 집중 투자…고도의 기술 도구 삼아 新가치 창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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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린욜프슨 MIT교수
오후 1시15분. 미국 보스턴의 MIT 슬론 매니지먼트 스쿨 4층에 있는 에릭 브린욜프슨<
사진> 교수의 연구실에는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회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1시20분쯤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그는 "회의 때문에 점심을 못 먹었는데, 정말 미안하지만 캘리포니아 롤(김밥) 한 줄만 먹어도 되겠느냐"며 "보통은 절대 안 그러는 데 오늘은 정말 너무 바쁘다"며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비서가 포장된 롤을 들고 들어왔고, 그는 허겁지겁 간장을 뿌린 다음 "정말 미안하다.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기계와의 경쟁(Race against the machine)'의 저자인 그는 세계 공통의 현상인 실업과 일자리 부족 문제의 원인으로 기계의 급속한 발전을 지목한다. 경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업이 이익을 내고 투자를 확대할 때 일자리와 고용은 같이 늘어났다. 그러나 지금의 기업은 금융 위기가 끝났음에도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기업은 새로 개발된 기계는 사들이지만 신규 채용은 하지 않는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빈부 격차 문제의 연원도 기계와의 경쟁에서 찾는다. "가방 끈이 짧거나 월급이 적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수요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계가 그들의 일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빈부 격차가 발생하며 노동 인구가 줄어드는 겁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은행 직원을 통하지 않고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공항에서 카운터 직원의 도움 없이도 무인발권기에서 항공권 출력과 좌석 배정을 한꺼번에 끝낸다. 사람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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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제공
―교수님의 연구가 기계로 인한 불평등을 조사한 것이라면, '21세기 자본론'을 쓴 피케티 교수의 연구는 부(富)로 인한 불평등을 조사한 것인데요, 그의 연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사실 오늘 오전에 피케티 교수와 스카이프 화상 통화를 했습니다. 주제는 기술의 역할이었습니다. '기업가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서 로봇이나 다른 기술을 더 많이 활용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주제였죠. 그리고 피케티와 저 둘 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인간 노동력보다 자본(자본으로 로봇을 구입하고 이를 생산 라인에 투입)을 더 많이 활용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다른 점은 로봇과 자본 가운데 경제 구조를 바꾸는 데 무엇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저는 향후 경제 구조가 바뀌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데는 기술 발전이 더 핵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 자본을 활용하는 추세가 증가하는 핵심 원인으로 기술의 진보를 꼽습니다. 반면 피케티는 저축과 부의 축적에 주목했습니다. 피케티는 자본 수익률이 소득 증가율보다 높으니까 노동자보다 저축과 부의 축적이 많은 자본가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서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죠.
사실 이 두 가지 현상(기술 진보와 부의 자기 증식)은 동시에 발생할 수 있고,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자본가들에게는 로봇이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그리고 그들은 로봇을 활용해 수익을 낼 것입니다. 이는 불평등이 심화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그러나 빈부 격차 문제의 해법에 대해서는 역설적이게도 "'기계와의 공존'을 모색하면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많이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면 기계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기계가 인간을 도와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기술력, 새로운 제품,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기업은 전보다 더 많은 생산성과 이윤을 내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의 할 일을 줄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의 분배도 훨씬 평등하게 이뤄지게 됩니다.
기계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면 기업의 전체 생산성과 부는 확실하게 늘어납니다. 그러나 기계와 함께 경주한다면 생산성과 부를 늘리는 동시에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과실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
-아이폰 '제조기지'로 유명한 폭스콘은 앞으로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해오던 일을 1만대의 로봇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폭스콘은'기계를 통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전략'을 쓰는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이를 통해 몇 가지 효과가 발생할 겁니다. 하나는 기계를 통해 더 많은 아이폰을 생산해서 생산력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부의 이동입니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이 노동자에게 가지 않고, 기계를 사서 운영하는 자본가에게 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건 아주 커다란 이동인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더 큰 불평등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최근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에 이어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Occupy Silicon Valley)' '우버 서비스를 중단하라(Stop Uber)' 시위에서 보듯 기술 진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이 거의 고착 상태이거나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략이나 처방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습니다. 빈부 격차 심화를 이유로 구글이나 우버의 기술 발전을 늦추자는 것은 우리 스스로 발전 기회를 걷어차는 커다란 실수가 될 겁니다. 기술 진보의 속도를 늦춰서 '미래로부터 과거를 지키는 것'은 절대 승리 전략이 될 수 없어요. 경제를 성장시키는 전략도 될 수 없습니다.
대신, 기술 발전으로 생겨나는 부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을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계와 '협력'하게 되면 사람들을 교육할 수 있고, 가치 창조에 참여시킬 수 있으며, 부를 함께 나눌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게 훨씬 더 성공적인 전략입니다.
저와 맥아피 교수가 '기계와의 경쟁'이란 책을 쓴 이유도 '안티-테크놀로지' 또는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공적(公敵)'으로 여겨져 왔던 로봇과 기술력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기술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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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제공
―큰 그림에서 인간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1990년대 이후 줄어들거나 정체 상태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기술 발전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둘 다 사실이지만, 우리가 지향할 미래 모델은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버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 개념에 좋은 모델입니다. 실시간으로 운전자와 고객을 연결해 주는 기술을 바탕으로 등장한 우버는 운전자에게 과거 택시 기사들보다 더 많은 소득을 보장하고, 더 나은 근무 환경(언제 일하고 어디서 일할지)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일자리를 무너뜨리는 사례와 함께 기계가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례를 같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지향할 방향은 결국 기계가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쪽이 될 것입니다. 기술 발전을 통해 인류는 지금까지 많은 기회를 창출해 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가 찾아올 것으로 예측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기술력의 발전으로 끔찍한 전쟁, 무한한 실업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그러나 저는 양측 모두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이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라는 점을 잊고 있습니다. 기술은 도구입니다. 우리는 기술을 활용해 우리가 살고자 하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즉 미리 결정된 미래의 모습이 있다고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대신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가 직접 결정하고, 기술을 활용해 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기계와의 협력의 또 다른 사례로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을 꼽는다. 기계와 인간을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조직 구조,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나아가 고용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을 합쳐서 새로운 것을 만든다. 자원은 고갈되지만, 이 같은 조합의 결과물은 고갈되지 않는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이를 '조합 혁신(combinatorial innovation)'이라고 부른다.
저임금 노동자 많은 중국·인도, 위기 맞을 수도
―기계와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것은 미국 기업밖에 없는 듯 합니다.
"미국이 기계를 이용한 경주에서 굉장히 잘해오고 있지만, 미국만 성공적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군요. 예컨대 한국엔 삼성전자가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 말대로 앞으로는 이 구도가 미국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은 창업 문화와 기업가 정신이 잘 발달했으며, 다른 나라보다 잘 교육된 노동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최근 제가 잡지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이 하나 있는데, 거기엔 어떻게 미국과 다른 선진국들이 새로운 기술력 시대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저임금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에 의지해 잘나가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가 앞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임금 노동력은 기계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생기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우선 '교육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기술력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이 고속 성장한 것은 교육열과 교육 시스템 체계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은 노동력입니다. 이건 아주 훌륭한 전략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보고 배워야 합니다. 기술이 우리 사회에 번져나가면서, 고숙련 노동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기술력을 다룰 줄 아는 '스킬'이 없다면 일자리를 갖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기계와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인재는 어떤 모습인가요? 또 기업은 앞으로 어떤 인재를 키워내야 하나요?
"직원 교육에는 반드시 명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창의성을 길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한편, 단순 업무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많은 구식(舊式) 회사들은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직원을 성실하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런 건 모두 기계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좋은 교육법이 아닙니다.
둘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능력을 개발하고 교육하는 겁니다. 예컨대 리더십, 팀워크, 협상법, 공감 능력, 가르치는 능력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겁니다. 기계는 이런 부분에서는 발전이 더디며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향후 앞으로 환자를 간호하거나(nursing), 사람들을 가르치거나(teaching), 노약자를 돌보는(caring) 직업의 수요는 늘어날 것이며, 회사에서도 이런 능력을 갖춘 직원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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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린욜프슨 MIT교수
피케티의 부유세엔 반대
―피케티 교수는 부 편중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부유층에 70%에 달하는 과세를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저도 그렇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 해결책은 비현실적이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대신 훨씬 현실적이고, 우리가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근로소득 세액공제 제도'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중위 소득' 같은 기준점을 정해 놓고, 저임금 노동자가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가 각종 세금 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노동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일하지 않으면 그 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저소득층의 근로 욕구도 신장시킬 수 있을 겁니다."
―결국 기술로 인한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하면 '기술과의 공존, 신교육, 기업가 정신'이군요.
"맞습니다. 저는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어요. 앞서 언급한 근로소득 세액공제 같은 세제 개혁입니다. 이는 직접적으로 분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술 개발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소득과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서 이들의 생존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최근 '기계와의 경쟁'과 관련해 '정책 제안'을 담은 책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인가요?
"'제2차 기계시대(The 2nd Machine Age)'라는 책인데, 한국에도 곧 출판될 것입니다. 인류 문명사에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시기는 두 번 있었습니다. 과거 18세기(제1차)와 지금(제2차)이죠. 제1차 기계 혁명에서 기계들은 인간의 팔다리를 대체했고, 제2차 기계 혁명은 인간의 두뇌까지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1차 기계 혁명으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사라졌다면, 이젠 화이트칼라 노동자도 위협받게 된다는 겁니다. 교수, 법률가, 의사, 회사원이 필요 없어지고, 현재 직업 절반 이상은 사라질 것입니다. 남는 직업은 사람과 직접 일해야 하는 감성 노동자, 인공지능 기계를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 일부 서비스 직종 등에 불과하게 될 것 같아요."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이며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 편집장이다. IT 발전이 기업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로 연구해 왔다. 1999년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VOD 방송, 음악 파일 등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상품은 서로 다른 분야의 상품을 한데 묶어서 파는 '번들링' 전략이 따로 파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내용의 논문으로 마케팅 분야 최고 논문상인 '존 D.C.리틀상'을 받았다. 5개의 특허, 2개의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