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들은 종종 기업의 실적을 부풀리려는 유혹에 빠진다. 자신의 경영 능력을 과시하거나, 회사로부터 보상을 얻어내려는 목적에서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역시 연임을 위해 실적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고재호 전 사장은 2012년부터 3년 동안 회사를 이끌며 매년 흑자만 기록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모두 해양플랜트에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며 앓는 소리를 내던 2014년 역시 흑자를 발표하며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다음 분기 대규모 영업손실 기록이 예상되면서 고 전 사장의 과거 행적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고 전 사장의 경영 능력이 칭송받는 동안 회사에는 2조원대 손실이 쌓여갔다.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손실 충당금을 제때 반영하지 않음으로 회계장부를 보기 좋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경영자들이 회계장부를 보기 좋게 꾸미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 엔론 사태와 닮은꼴 대우조선해양, 사베인스-옥슬리법으로 다스릴 수 있어
사베인스-옥슬리법이 2002년 미국에서 제정될 때의 상황은 현재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둘러싼 소동과 유사한 면이 있다. 당시 법이 제정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엔론사 역시 지난 몇 년간의 대우조선해양처럼 승승장구하던 중이었다. 유명 경제 잡지인 '포천지'는 에너지 기업인 엔론사를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극찬했고,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꼽았다.
하지만 2001년 3월 엔론의 최고경영자(
CEO) 제프리 스킬링이 부실을 부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랩터 조합'이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었던 사실이 발각됐다. 이것이 80억달러에 상당한 단기채무의 즉시 상환 요구를 촉발시켰다. 결국 엔론은 그해 말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영업손실 가능성이 알려진 이후 워크아웃, 대규모 인력 감축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우조선해양 상황과 유사하다. 이런 이유로 사베인스- 옥슬리법에는 기업이 회계상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투자자들을 속이는 행위를 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돼 있으며, 상장기업에 회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적을 불문하고 경영진과 회계법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엔론사와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이 투명하지 않은 회계 처리를 했던 주요한 동기는 실적이 곧 경영자에 대한 보상으로 연결되는 구조에 있다. 파산하기 직전까지 기업을 미국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까지 이끌었던 스킬링은 1998~2001년 급여, 보너스, 엔론 주식 처분으로 1억달러 이상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스킬링은 당시 자신이 받은 스톡옵션(자사주 매입선택권)이 순익을 부풀리기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됐다고 증언했다.
고 전 사장은 퇴임 직전 해인 2014년 8억89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2013년 8억1000만원을 받았던 것과 비교했을 때 10%가량 올랐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측은 "고재호 사장이 수익성, 성장성 등 매출액을 증가시킨 점과 어려운 경영여건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경영관리와 장기 발전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수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우수한 실적에 대한 보상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강력한 보상체계가 존재해 경영자의 실적 부풀리기의 동기로 작동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국에는 사베인스-옥슬리법이 존재한다.
◆ K-
IFRS의 지나친 재량권 제한
몇몇 전문가들은 제2, 3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회계 기준인 K-
IFRS가 허용하는 회계 처리 재량권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K-
IFRS는 이전의 불투명한 회계 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2011년부터 모든 상장기업에 의무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회계 기준이다.
K-
IFRS는 기본적으로 '원칙중심'의 회계 처리 방법을 제시한다. '규칙 중심'이었던 이전의 회계기준이 기업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가급적 상세하고 구체적인 회계 처리 방법을 제시했던 것과는 다르다. 큰 원칙만 따른다면 세부 내용은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 기업이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IFRS의 목적이다. 예를 들어, 예상되는 손실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손실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 대비하는 게 가능하다.
문제는 원칙 중심의 회계기준이 기업의 융통성을 높여준 반면, 기업에 너무 많은 재량권을 줬다는 점에 있다. 정혜영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국제회계기준에서 자율성을 강조하다 보니깐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사태가 회사의 악의적인 판단에서 왔는지 단순 실수에서 왔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졌다"며 "법원에서 만드는 판례처럼 금융감독원에서 회계 판단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정리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론도 존재한다. 한국 회계학회 관계자는 "단지 하나의 기업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서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회계기준 변경에 대해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민동원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아직 현재의 손실이 분식회계에 의한 결과인지 기존의 손실을 미반영한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전반적인 회계 체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기는 이르다"는 의견을 보였다.
◆ 회계 담당자의 객관성 확보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회계 담당자가 회계를 대할 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베인스- 옥슬리법 역시 사후 제재에 불과하고, 회계 계정과목의 자율성을 지금보다 줄이더라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회계 부정을 저지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동진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회계 계정 과목에서 자율성을 줄이더라도 회계 계정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과거에 벌어진 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해외 사업장에서 어떤 공사가 진행되는지 알 수 없다"며 "기업이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주석 등을 통해 자세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투자자들이 향후 사업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백원선 성균관대 교수는 "조금 과격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문제은행에서 시험 출제 가능한 문제 풀을 만들 듯이 사외이사의 풀을 만들어 랜덤으로 선출해야 할 것이다"며 "이런 방식으로 오너와 사외이사 자신의 월급이 별개라는 인식이 생겨야 객관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박창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