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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시사정보모음 2015-541

구봉88 2015. 9. 23. 09:43

-기업경영정보관련 모음

(GMRI  Business Intelligence 2015- 541호.   2015.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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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경제.산업동향

  1.한국경제, 대외악재로 사방이 꽉 막혔다

  2.미국, 금리 동결 … 불확실성 깊어진 세계경제

  3.힘으로 낮춘 달러 … 30년째 일본 괴롭히는 ‘환율 업보’

  4.통상임금·근로단축법과 기간·파견제법 분리 추진해야

  5.'큰 산' 美의회 넘은 이란 핵합의안 앞으로 절차는

  6.'노후준비지원센터' 107곳 문연다…은퇴 후 생활 상담

 

기업경영

  1.30대그룹 80%, 불황에도 근속연수 늘어…평균 10.9년

  2.“큰 꿈 꿔라” … 식음료업계 평정 3G캐피탈

  3.‘집없는 억만장자’ 베르그루엔

  4.<위기의 제조업> ⑤<르포> 계속되는 적자 행진…"앞으로가 더 걱정"

  5.英이코노미스트,"서방 다국적기업 '로마제국'처럼 쇠락"

  6.내면의 목소리 듣고 싶을 땐 혼자서 훌쩍 떠나보세요

  7.[세상을 바꾼 전략] 신라 통일의 교훈

  8.[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31- 대공황 탈출 경쟁

  9.[인더스트리 다이어리] 성큼성큼 다가오는 無人車… 택시기사는 살아남을까

  10.세상을 즐겁게 한 ‘대박+엉뚱’ 발명품 7선

  11.애플 대화면 아이패드로 기업시장 장악할까?

  12."닌텐도Wii 신화 재현될까"…스마트TV '게임' 정조준

  13.중기 절반 이상 "한·중미 6개국 FTA 체결되도 진출 계획 없어"

  14.[커버스토리] 아빠의 사촌동생이 낳은 딸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있나요

 

 

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1.케냐에서 빅맥 한 개 사려면 ‘3시간’ 일해야

  2.외신들 "일본, 평화주의 버려…군국주의 돌아가나"

  3.‘불의 고리’ 50년설 근거 약해 … 지하수 과다 개발이 문제

  4.만델라가 꿈꾼 ‘아프리카 자립’ 한국의 힘으로 이루게 하자

  5.[한국 재벌의 탄생과 세습 ⑤]

  "현대그룹 쓸어버리겠다"던 신군부에 맞서 정계진출,

   보복성 세무조사에 정계은퇴

  6.<통독 25주년>

  7.[전문가 좌담] 6자 회담 ‘9·19 공동성명’ 10주년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정선미 기자 = 미국 금리 동결 후에도 대외악재들이 여전히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20일 국제금융계에 따르면 중국의 경기 둔화는 한국경제가 직면한 최대 악재이고 미국 금리 인상도 심각한 불안 요인으로 남아있다. 여기에다 신흥국 위기와 유럽 정치불안까지 더해져서 한국 경제의 주변 여건이 좋지 않다.

중국은 지난달 위안화 절하 이후 경기 바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불투명한 시스템은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나마 실물 경제지표를 통해 확인되는 경기 둔화세도 심각하다. 지난 8월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7로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 당국의 개입에도 증시 폭락이 멈추지 않자 이제는 중국 공산당의 컨트롤 능력에 대한 회의까지 부상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연간 성장률이 5%대로 떨어지며 세계 경제를 침체에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한국은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크다 보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 2003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으로 떠올랐으며,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은 25.1%에 이른다.

중국의 수입은 그러나 올해 1∼7월에 14.6%나 대폭 감소했다. 같은 기간에 한국의 수출은 4.9% 줄었고, 지난 8월 수출은 14.7% 급감했다.

미국 금리 인상도 한국 금융시장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요인으로 남아있다.

미국 금리 동결 후 지난 18일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코스피가 상승했지만 짧은 안도감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불안감이 팽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다음 달 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가 다가오면 세계 금융시장은 연준의 행보를 점치며 요동칠 전망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 순매도 행렬이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 연준 결정으로 인해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연내 인상에 대한 기대가 약해지고 내년 3월 이후가 급부상했다.

신흥국 위기는 점점 고조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같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남미지역에서는 경제 규모가 최대인 브라질이 투기등급으로 추락했고 터키나 러시아, 남아공 등도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놓였다.

NH증권 신환종 이코노미스트는 "중국발 세계 경기 침체와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여전한 부담 때문에 신흥국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대부분 내부 정치 혼란까지 겹치다 보니 중국발 쇼크에 맞서 경기 회복을 위한 박차를 가할 여력이 없는 상태다.

신흥국이 외환위기로 빠지면 글로벌 신용경색이 나타날 수 있고 한국도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최근 S&P 신용등급 상향으로 일본보다 높은 등급을 갖게 되는 등 차별화된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안전지대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의 정치적 리스크가 높아지는 것도 한국 경제에는 악재로 꼽힌다.

그리스 위기만큼의 파괴력은 아니겠지만 세계 경제 전반에 불안심리를 초래할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유럽 일부 국가에서 예정된 총선 결과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주목된다.

남유럽에서는 재정위기 이후 긴축에 반대하는 좌파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긴축 반대파가 집권하면 유로존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포르투갈에서는 다음달 4일, 스페인에서는 연말에 총선이 각각 예정돼 있다.

그리스는 두 달 전 구제금융을 확보해 한시름 놨지만 오는 20일로 예정된 조기총선에서는 신구정권이 충돌하는 가운데 연립정부 구성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 유럽 내 난민 위기가 심각성을 더해가면서 난민 유입 반대 목소리가 큰 국가에서는 우파 정당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럴 경우 유럽연합(EU)의 분열이 조장될 우려가 나오고 있다.

merciel@yna.co.kr smjeong@yna.co.kr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미국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 이후 세계 각국들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양적완화 확대 또는 연장 가능성이 있으며 신흥국은 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20일 국제금융계에 따르면 브느와 꾀레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지난 18일 필요할 경우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예정된 2016년 9월 이후에도 연장하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는 ECB가 연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면서 유럽 채권시장에서 투자심리를 자극했다.

피터 프랫 ECB 집행이사도 이날 인플레 목표치가 위협받을 경우 ECB가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할 수 있다고 재차 확인했다.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도 지난 15일 금융정책위원회 회의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에 미달할 경우 주저하지 않고 양적완화를 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긴 바 있다.

BoACS는 미국 금리동결로 인해 달러화가 유로화와 엔화에 비해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뒤집어보면 유로화와 엔화가 달러에 비해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 금리가 동결되면서 돈이 달러화에서 빠져나가 덜 위험한 통화인 유로화와 엔화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ECB와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기 전에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과 일본으로서는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을 위해 유동성을 대거 투입하는 와중에 통화가치가 상승하면 그 효과가 약해지는 문제가 있다.

JP모건 호수 채권과 통화전략 대표 샐리 아울드는 "인플레 하락을 막는데 유로화 강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어링자산운용의 글로벌 총 대표 가이 던햄은 "영국은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올릴 것 같지 않으며, 이런 점 등을 감안해 ECB와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 결정을 내릴 것 같다"고 말했다.

BNP파리바의 켄 와트렛 유럽시장 경제부문 공동 책임자는 "ECB가 올 연말 이전에 월 자산 매입 규모를 늘리는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유로화 움직임에 따라 이르면 10월 회의에서 카드를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은 일본 은행이 다음달 30일 금융정책위원회 회의에서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은 회사채를 더 매입하는 방식으로 추가 양적완화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흥국들의 사정은 다르다. 중국 성장세 둔화에 따른 충격을 줄이고 경기를 활성화하고 싶지만 금리를 내리자니 국제자본 유출이 더 무섭다.

호주와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몇 개월째 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동결했지만 이르면 다음 달에도 인상에 나설 수 있는 상황에서 신흥국들이 금리를 낮추는 것은 부담이 너무 크다.

이론적으로는 금리를 내려서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면 수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수 신흥국들이 이미 통화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한 상태여서 인위적으로 더 내려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환율이 올라가면서 해외 자본이 빠져나가면 외환위기에 몰릴 위험이 있다.

한국에도 중국발 쇼크로 수출이 감소하고 성장률이 하락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리를 내리기에는 가계부채 수준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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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9.20 02:09 / 수정 2015.7.17 13:07

내수·수출 빠르게 식는 한국, 미시·거시정책 총동원해야

미국, 금리 동결 … 불확실성 깊어진 세계경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는 대형 TV 화면에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정례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워싱턴 AP=뉴시스]

금리는 그 나라 경제의 거울이다. 모든 나라의 금리가 다 의미 있지만 미국의 기준금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전 세계가 다 사용하는 달러 자금의 가격이 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제결제가 달러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특히 자본 거래의 경우 달러 자금의 비중은 엄청나다. 당연히 달러 금리 수준은 모든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를 쓰는 한국은 달러가 부족해지면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커다란 교훈을 얻은 바 있다.

 

 

대공황 뒤 통화·재정정책 필요성 절감
달러 금리의 변화는 대개 세 가지 통로를 통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유동성 채널이다. 달러 유동성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나 주가는 자금의 가용성 여부에 많이 의존한다. 그런데 미국 금리 상승은 달러 유동성의 감소와 연결돼 있다. 달러 자금이 기본적으로 줄어들면 국내외의 다양한 자금 흐름이 변화할 수 있다. 특히 자금의 가용성이 줄면 금융회사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대출도 줄어들 수 있고 투자 등의 행태에 변화가 생긴다.

둘째는 수익률 채널이다. 기본적으로 기준금리는 무(無)위험수익률의 크기를 결정한다. 따라서 미국 기준금리 상승은 미 금융상품의 전반적 수익률 상승을 가져오면서 미국으로의 자금 회귀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흥국에 투자된 자금이 미국으로 회귀하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이 받는 타격은 커진다. 물론 2013년 버냉키 쇼크 당시 다른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한국으로 유입된 적이 있기 때문에 모든 신흥국이 일률적으로 동일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자금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환율 채널이다. 미국 금리 상승은 미 달러 가치를 상승시키면서 원화 약세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원화 약세는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수출 증가로 연결되면서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달러 금리 상승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이 이 부분인데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처럼 기축통화인 달러의 금리가 가진 의미는 매우 크다.

1929년 대공황이 남긴 교훈은 상당했다. 특히 경기 침체 시에는 팽창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적자를 내고 돈을 푸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또한 자기 혼자 살겠다며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를 시도하면 남들이 모두 힘들어지는 근린궁핍화 정책의 폐해를 경험한 것도 소득이었다. 이러한 대공황의 교훈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미국발 위기가 터지면서 많은 국가가 팽창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시행했다. 그런데 재정정책에서는 문제가 발생했다. 국가 채무가 많은 국가들이 추가적 재정적자를 통해 빚을 늘리자 국가 부채가 급증하면서 재정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돈을 열심히 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이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하자 다른 나라도 앞다퉈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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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리 연내 인상 불가피 전망
금리가 0%가 돼도 돈을 계속 푼다는 양적완화 정책은 큰 의미가 있다. 중앙은행이 금융회사 보유 채권을 매입하면서 돈을 지급하면 본원통화가 공급된다. 문제는 금융회사다. 금융회사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돈이 잘 돌지 않는다. 하지만 양적완화는 금융회사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금융회사 자체의 파산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자금 사정이 힘들었던 금융회사로 유동성이 공급돼 금융회사가 일단 한숨을 돌리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유동성이 개선되고, 위기 가능성이 작아지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유럽과 일본이 아직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는 이유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9월 인상설이 물 건너가면서 한국 경제를 비롯한 세계 경제가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연내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내년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미국 금리는 이제 방향을 잡았다. 미국 Fed 관계자들은 “Fed가 미국의 중앙은행이지 세계의 중앙은행은 아니다”는 언급을 종종 한다.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책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 전 세계 경제상황을 고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금리 동결의 경우 미국 내에서 물가가 매우 안정적인 것도 고려 대상이 됐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나 유럽 경제의 부진에 대한 고려도 이뤄졌다. 사실 양적완화 기조를 지속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지나치게 불어난 유동성이 언제 어떻게 경제에 위험요인이 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비상시의 대책을 평상시까지 끌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 언젠가는 전통적 정책으로 돌아가야 하고 이제 그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나 홀로 독주 또한 어려운 얘기이므로 Fed는 균형 있는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통화정책이 매우 완만하고 안정적으로 진행되면서 대규모 자금 유출 등 큰 규모의 자금 이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진 것은 한국 경제에 호재다. 더구나 최근 한국 경제에 가뭄 속 단비 같은 희소식이 전해졌다. 신용평가사 S&P가 한국 경제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것이다. 우리 경제에 대한 등급은 5등급에 해당하는 A+에서 4등급에 해당하는 AA-로 조정됐다. 그런데 일본은 거꾸로 4등급에서 5등급으로 강등됐다. 사실 일본 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다. 일본 정부는 약 50조 엔을 세금으로 걷어 100조 엔을 지출하고 있다. 매년 50조 엔 가까운 적자가 나면서 이 적자로 인해 발행된 국채를 중앙은행이 사들이고 있다. 이것이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이다. 이러한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재정 균형의 원년을 2020년으로 책정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본에서 위기가 발생한다면 필시 재정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재정위기는 한국에는 재앙이다. 이웃 나라의 부진함이 우리에게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므로 일본의 재정상황에 대해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국의 신용등급 향상은 고마운 일이지만 다른 부분은 여전히 어려운 구석이 많은 것이다.

수출도 주시해야 한다. 1~7월의 누적 액수를 보면 전년 동기 대비 수출은 10.6% 감소했고, 수입은 18.7% 줄었다. 경상수지는 624억 달러 흑자로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지만 좋아하기만 할 상황은 아니다. 내수도 안 좋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1분기 대비 0.3%(전년 동기 대비 2.2%)라는 빈약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소비의 경우 전 분기 대비 0.2% 감소(전년 동기 대비 1.7% 성장)를 기록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상반기 건물 공실률이 13.1%에 달했는데 2008년 위기 시에도 5.4%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급격한 증가다.

자영업 위기 막고 신규 진출 억제해야
내수와 외수가 빠르게 식어가는 현 상황에서 미시와 거시적 정책 패키지를 총동원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완화적 거시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노동개혁을 포함한 미시적 정책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한국 경제의 3대 뇌관인 자영업·부동산·가계부채 문제가 서로 얽혀 있는 점을 잘 감안해 이에 대한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NICE 신용평가에 따르면 자영업에 유입된 부채가 600조원 정도다. 내수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고, 특히 자영업발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정년연장 조치 등은 퇴직자의 숫자를 줄이면서 자영업 진입 숫자를 줄인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의무교육 혹은 자격증 취득요건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진입 억제정책과 함께 이미 진입한 자영업자의 매출에 도움이 되는 많은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내수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이는 김영란법의 시행은 대승적 관점에서 재고해야 한다. 취지와 명분은 좋지만 손실이 너무 크다.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분만이 아닌 실리를 고려한 대안이 필요하다.

이번 미국의 금리 동결 조치를 통해 우리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내수와 외수가 빠르게 식고 있어 시간이 우리 편만은 아니다.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졌다. 증권업계 등에서는 미국 금리 동결이라는 호재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양한 노력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 경기 둔화와 위기 예방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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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9.20 01:09 / 수정 2015.7.17 13:07

힘으로 낮춘 달러 … 30년째 일본 괴롭히는 ‘환율 업보’

9월 22일 플라자합의 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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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9월 22일 플라자 합의에 서명한 뒤 활짝 웃는 G5 재무장관들. [중앙포토]

 

1985년 9월 22일 플라자 합의에 서명한 뒤 활짝 웃는 G5 재무장관들. [중앙포토]

 

# 장면 1.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5개국 재무장관들이 모였다. 세계 무역을 주름잡는 나라의 경제수장들 회동은 은밀했다.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일본 대장상은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해 골프복 차림으로 공항으로 나가 태평양을 건너왔다. 회의가 시작되자 미국 재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목청을 높였다. “엔화가 너무 저평가돼 미국 무역적자가 극심하다. 엔화 강세를 유도해달라”.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고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베이커의 압박에 장관들은 엔화 절상, 달러 절하에 동의했다. 이들은 미국의 적자가 계속되면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게 될 것을 우려했다. 외환의 수급에 따라 환율이 결정되는 ‘시장 경로’를 거치지 않은 강제적·인위적 결정이었다. 글로벌 환율 역사에 가장 두터운 장(章)으로 기록될 ‘플라자 합의’는 이렇게 이뤄졌다.

# 장면 2. 2015년 9월 16일. 미국의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네 번째 단계인 ‘AA-’에서 다섯 번째 단계인 ‘A+’로 한 계단 강등한다고 밝혔다. S&P는 강등 이유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디플레이션을 타개하려는 일본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2~3년 이내에 경제상황을 역전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노믹스’를 앞세운 일본 정부가 중앙은행(BOJ)의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 인플레이션 유도와 경기 회복을 시도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에 경기하락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 것이다.

30년 전 미국 플라자호텔 회의와 2015년 일본 중앙은행 윤전기의 고속 가동.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별개의 두 사건은 실제로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플라자 합의라는 30년 전의 날갯짓이 지금도 글로벌 경제 구석구석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장면 1’은 어떻게 긴 세월을 거쳐 ‘장면 2’에까지 연결되는가. 글로벌 화폐경제사를 되짚어 올라가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환율의 위력’과 환율마저 주무르는 국제경제 ‘힘의 논리’가 궁금증 해소의 두 키워드다.

미국 쌍둥이 적자 해소에 일본 희생
다시 1985년의 플라자호텔. 협약 당시 미국은 절박했다. 1981년 45억 달러 흑자였던 경상수지는 그해 1190억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이 가운데 429억 달러가 대(對)일본 적자였다. 재정수지·무역수지가 모두 마이너스인 ‘쌍둥이 적자’를 탈피하려면 경기회복이 절실했고 가장 쉬운 방법이 달러의 평가절하였다.

협약의 위력은 대단했다.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235엔에서 하룻밤 새 20엔이 내렸다(엔화절상). 1년 뒤엔 120엔이 됐다. 달러 값이 내리면서 일본이 무역흑자로 번 돈으로 사들인 미국 국채의 실질 가치도 반 토막이 났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 부채를 앉아서 절반으로 줄였고, 일본은 대미 무역에서 번 부(富)의 절반을 1년여 만에 날렸다.

미국이 글로벌 화폐시장에 힘을 행사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 아니었다. 미국의 전력(前歷)은 화려했다. 플라자합의 14년 전인 1971년 8월 15일 일요일 저녁.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TV드라마 ‘보난자’를 중단시키고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달러의 금 태환을 정지하고, 국내 물가를 통제하고, 수입품에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종이에 숫자를 인쇄한 물질에 불과한 달러라는 지폐의 가치를 금으로 보장하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일방적 선언이었다. 당시에도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닉슨 정부는 금환본위제 포기와 달러가치 평가절하라는 손쉬운 해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로써 30년 가까이 세계경제의 흐름을 지배해 온 브레튼우즈 체제는 깨졌다.

이후 미국은 달러 가치를 금이나 다른 재화에 연계하지 않는 ‘명목화폐제도’를 선택하면서 불황의 조짐이 보이면 언제든 달러 공급량과 환율 손보기라는 방법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플라자합의도 ‘닉슨쇼크’라는 날갯짓이 만든 필연이었던 셈이다. 영국 경제학자 J. V. 로빈슨은 이러한 미국의 정책에 대해 “다른 나라의 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근린 궁핍화(Beggar-thy-neighbor) 정책”이라고 말했다.

효과 한계 부딪힌 아베노믹스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 절상되면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85년 6.3%에서 이듬해 2.8%로 하락했다. 일본 정부는 급격한 엔고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불황 조짐이 보이자 저금리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행(BOJ)은 1986년부터 이듬해 초까지 1년여 만에 정책 금리를 5차례에 걸쳐 5%에서 2.5%로 떨어뜨렸다. 금리가 떨어지자 유동성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증시로 몰린 돈은 니케이 지수를 3년 새 3배나 끌어올렸다. 1987년 일본의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미국을 앞섰다. 부동산 시장은 더 심하게 요동쳤다. 땅값은 한해 70%씩이나 뛰어올랐다. 1990년이 되자 일본 전체 부동산 가치는 2000조 엔을 넘어섰다. 미국 전체 땅을 4번 살만한 액수였다. 일본 경제 구석구석에 낀 거품은 부풀어오를 대로 부풀어올랐다. 잃어버린 20년이 이렇게 막을 올리고 있었다.

일본은행은 부동산 폭등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렸다. 1989년 5월 한번에 0.75%포인트를 올린 것을 비롯해 1990년 8월까지 1년여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3.5%포인트나 금리를 올렸다. 돈줄이 마르면서 결국 거품이 터졌다. 경기는 움츠러들고 부동산값과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쳤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10년 사이 주가지수는 3만8000대에서 6000대로 6분의 1토막이 났다. 1989년에 구입한 1억 엔짜리 주택의 가격은 2009년 2800만 엔까지 떨어졌다.

일본 경제는 1991년 이후 22년간 저성장 상태에 빠졌다.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됐고, 이제 30년으로 늘어날 위기에 처했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려도 경제 회복 효과는 없었다. 정부부채가 GDP대비 240%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 부채비율로는 재정지출 확대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아베 신조( 安倍晋三) 총리는 승부수로 양적완화 카드를 꺼냈다. ‘돈 풀어 엔화가치 낮추기’에 기대기로 한 것이다.

2013년 4월부터 2년간 일본은행은 1조4000억 달러(1500조원)에 해당하는 엔화를 찍어내 국채보유를 두 배로 늘렸다. 미국은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말부터 4년여 동안 양적완화를 통해 본원통화를 배로 늘렸다. 그런데 일본은 그 절반의 기간인 2년만에 본원통화를 배로 늘린 것이다. 일본이 훨씬 대담한 양적완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일본은 현재 연간 80조엔(800조원)의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효과로 일본 경제는 잠시 회복세를 보였으나 다시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무역적자는 5697억엔(약 5조5285억원)으로 7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0.3%(전분기대비)로 3분기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8월 소비자물가도 전년 동기 대비 0.6% 오르는 데 그쳤다. S&P가 일본의 신용등급을 낮춘 배경이다.

일본의 양적완화는 전세계적인 통화전쟁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재정위기로 혼난 유럽도 양적완화를 시행해 유로화 가치 낮추기에 나섰다. 중국은 경제 경착륙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추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불황형이지만 경상수지 흑자행진이 41개월째 계속돼 환율시장에 개입할 명분이 약하다. 한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 예고 장면 일본 내에서는 아베노믹스 약발이 다했다는 지적과 함께 추가 양적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자에 “BOJ는 연간 80조 엔(6670억달러) 규모의 국공채를 사들이고 있으나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고 보도했다. 일본 중앙은행의 윤전기는 조만간 가동속도를 높일지 모른다. 30년 전 힘의 논리가 만들어낸 나비효과는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얘기다.

입력 2015.9.20 01:09 / 수정 2015.7.17 13:07

통화전쟁에 대응 못 하면 타이타닉호 신세 될 수도

현대경제연 이부형 수석연구위원

“통화전쟁이 계속되면서 달러 흐름이 한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환율 전문가인 현대경제연구원 이부형(45·사진) 수석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각 나라의 경제가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과 일본의 구조적 소비 부진을 비교한 보고서를 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플라자 합의 30주년이 됐다. 여진은 그치지 않는 것 같다.
“당시 일본은 급격한 엔화 절상에도 제품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한동안 산업경쟁력을 유지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결국 일본은 무너졌다. 인위적인 환율 변화가 한 나라의 경제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경제를 움직이는 경로가 여럿 있지만 환율 경로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달러 흐름이 경제 시스템을 위협하는 최대 리스크가 됐다. 특히, 1980년대 들어 미국의 산업정책이 금융부문으로 중심을 옮겨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연결성이 강화됐다. 이것이 세계 경제의 윤활유로 작용하면서 한편으로는 한 나라의 경제 시스템을 뒤흔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위기가 어떻게 오나.
“미국의 경우 주식·부동산 같은 내부 자산시장이 붕괴하면서 위기가 왔지만 그 외 국가들은 양상이 다르다. 급격한 달러 유출과 이로 인한 환율 급등으로 채무위기에 빠지면서 전체 경제가 위기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러시아·브라질은 물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 개도국의 경제위기도 결국 달러 유동성 확보의 어려움에서 위기가 비롯됐다.”

-근린궁핍화를 강요하는 통화전쟁은 화폐중심 경제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최근 통화전쟁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 하락,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유로화 불안, 일본의 아베노믹스, 중국의 경착륙 예방을 위한 위안화 가치 하락 유도 등이 맞물려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여러 화폐의 도전에도 달러 위상은 견고하다. 통화전쟁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해도 달러화를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화폐경제 시스템이 붕괴하거나 대안화폐를 찾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엔과 위안화의 가치 절하 협공을 받고 있다.
“한·중·일은 산업구조가 유사하고 수출 의존도도 높다. 한 나라의 움직임은 즉각 다른 나라의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준다. 지금까지는 다행스럽게도 국내 산업경쟁력이 유지되면서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업 투자, 고용 등이 연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 전반에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 천천히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같은 신세가 될지 모른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일본의 경험을 되돌아 보면, 경쟁 기반의 유지·강화야말로 경제시스템 전반의 안정과 지속 성장을 담보한다. 통화나 외환 정책도 경쟁 기반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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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9.20 02:09 / 수정 2015.7.17 13:07

통상임금·근로단축법과 기간·파견제법 분리 추진해야

노사정 대타협 이후 남은 과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국에 노동개혁 5대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이인제 노동시장선진화특위원장, 권성동 환노위 간사. [뉴시스]

청년고용 창출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노사정 협상이 지난 13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번 노사정 대타협은 ‘최소 입법에 기반한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노정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업무 부적응자 해고와 같은 난제를 풀기 위한 협의 거버넌스를 구축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관련 내용도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핵심 내용을 변경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6쪽에 달하는 합의문을 살펴보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개선 노동시장 활성화 등을 위한 이중노동시장 개선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실업급여제도 개선 등의 사회안전망 확대 청년고용 활성화를 위한 지원 노력 등도 담겨 있다.

이번 대타협을 통해 현장의 근로자들은 노동시장이 점차 성과주의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 근로자의 집단주의 노동문화에서 포스트 베이비붐 세대의 개인성과주의 노동문화로 변화가 촉진될 것으로도 예상된다. 또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혁하고 적정 근로시간 내에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현장의 노동문화가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9·13 대타협 이후의 지난 한 주도 순탄치 않았다. 14일에는 한국노총 중앙집행위 회의에서 강경파의 분신소동이 있었다. 15일에는 경제 5단체 명의로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가 미흡하니 국회를 통해 입법청원을 하겠다고 합의를 뒤엎는 발표가 나왔다. 16일에는 새누리당이 기간제 기간 연장과 파견 허용 업종 확대를 포함한 5대 노동입법을 발의했다. 이에 한국노총은 합의를 깨뜨린 일방적 발의라고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5대 입법 가운데 기간제근로자법은 35세 이상 기간제근로자의 근무 기간이 2년이 되면 근로자가 신청할 경우 2년 연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파견근로자법은 55세 이상 고령자, 관리자 또는 근로소득 상위 25%(2015년 기준 5600만원)에 포함되는 전문직에 대해선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누리당이 5대 입법을 신속하게 발의한 것은 노동개혁 입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국회에서의 예결산 심의 및 총선 관련 변수들이 복잡하게 반영된 결과로 추측된다.

이는 명백한 9·13 합의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노사정 합의문 중 관련 내용을 보면 기간제·파견근로자 등의 고용안정 및 규제 합리화와 관련해 “노사정은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 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하여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하도록 한다”로 명기하고 있다.

그런데 기간제·파견근로자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집권여당에서 먼저 안을 발의한 것은 노사정 합의의 신의칙을 깬 것이다. 물론 발의 후 상정까지 노사정 합의가 있다면 반영하겠다는 취지겠지만 이는 전략적 실수라고 판단된다. 현재 여당안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작아 보이는 데다 설사 여야 합의를 위한 조정안이 상정된다고 해도 그 공은 조정에 성공한 야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노동계에 대한 합의 압박용이라고 해도 간신히 협상을 타결한 온건한 노총 집행부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키고 강경파 득세를 불러와 향후 노사관계를 경색시키게 할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에서 노사관계를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충심(忠心)은 좀처럼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공학에 갇혔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노사관계, 노동시장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노동개혁 이슈를 당리당략에 의한 정치메뉴 중 하나쯤으로 생각했다면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는 짓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노사정 대타협 합의정신에 따라 청년일자리기금 설립을 제안하고 급여의 일정 부분을 기부하는 모습과도 배치된다. 여당의 5대 입법 발의의 정치공학적 셈법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제라도 정부는 노사정 합의를 지켜야 하며, 기간제와 파견제도의 경우도 10월에 노사정 합의를 위한 논의시간을 가져야 한다. 만일 합의에 실패한다면 10월 말 여야가 정치적 협상을 해도 늦지 않다. 개혁도 좋지만 정부가 신의를 스스로 버리면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울 수 없다.

노사정 합의를 존중하면서 국회에서 입법을 순탄하게 하기 위해 두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관련 입법이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도록 노사정은 노력해야 한다. 기간제·파견제 논의가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입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절대 안 된다. 혹자는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관련 노사정 합의는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데 국회에서 내용이 변형되면 노동시장에 대재난이 초래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5대 입법을 할 때 통상임금-근로시간 입법과 기간제-파견제도 입법을 분리해 단계별로 추진해야 한다. 둘째 노사정은 기간제·파견제 관련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되 실패할 경우 국회에 자동 이양해 추가적인 입법 논의가 정치권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번 노사정 대타협은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립이 아니라 합리적 노사와 전투적 노사로 이해집단이 재편성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사회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공익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노력 등이 지속된다면 전투적 노사관계를 가진 사업장의 비정상적인 단체협약과 파업관행에도 제동이 걸리고 점차 순치되어 가리라 판단된다. 정치권 및 노사정도 내년 총선의 정치공학에 매달려 합의정신을 흔들지 말고 신의칙에 입각해 국가백년지대계의 노동개혁에 충심을 다해야 한다.

 

 

 

입력 2015.9.20 02:09 / 수정 2015.7.17 13:07

기간제 근무 2년 연장, 파견 근로업종·대상 확대가 최대 쟁점

새누리가 발의한 노동개혁 5대 법안은

0802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개혁 관련 5대 법안 통과를 놓고 여야가 양보 없는 결전을 예고하고 있다. 여당은 상임위원 교체로, 야당은 대안 입법으로 맞설 태세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 159명 전원이 16일 발의한 노동개혁 관련 법안은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기간제근로자법·파견근로자법 개정안이다. 이를 놓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의에서부터 전투가 시작된다.

가장 첨예하게 전선이 형성될 지점은 기간제근로자법과 파견근로자법 개정안이다. 새누리당 개정안은 현재 2년으로 돼 있는 기간제근로자 사용 기한을 35세 이상의 경우 본인이 신청하면 2년 더 연장해 총 4년을 기간제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금형·주조·용접 등 6개 업종의 파견근로와 55세 이상 고령자 및 상위 25% 고소득 전문직의 파견근로를 허용키로 했다.

그러나 지난 13일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문엔 기간제와 파견근로에 대해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 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하여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당장 한국노총이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파기하려 한다’며 반발한 이유다. 환노위 소속인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은 “2006년 기간제 제한 법률이 시행된 이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이 늘면서 대기업의 불만이 제기돼 왔는데 이번에 그 불만을 들어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환노위 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재취업이 어려워 35세 이상 기간제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율이 10%밖에 안 된다”며 “고용노동부의 기간제 근로자 설문조사 결과 80% 이상이 2년 추가 연장에 찬성했다”고 반박했다.

실업급여 인상을 담은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실업급여 지급 수준을 실직 전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올리는 것이 골자지만 급여 수령조건을 현행 180일 이상 근무에서 270일로 강화했다. 야권과 노동계는 ‘비정규직 상당수가 수령 대상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낮춘 것도 문제 삼고 있다.

새누리당은 법안 통과를 위해 환노위원 교체를 통한 ‘선수 보강’ 카드를 꺼낼 작정이다. 당내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과 간사를 맡았던 이인제·이완영 의원이 환노위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인제 의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이완영 의원은 노동부 관료 출신이다. 새정치연합은 2012년 자신들이 발의했던 기간제근로자법과 파견근로자법 개정안을 대안 입법으로 들고 나올 작정이다. 기간제 2년이 지나면 정규직 채용을 ‘의무’로 하고, 도급과 파견의 구별 기준을 명시하는 등의 내용이다. 실업급여도 피보험 기준을 180일 근무에서 120일로 줄이고 급여 수령기간을 최장 240일에서 360일(여당안은 270일)로 늘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해 이미 발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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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AFP=연합뉴스자료사진)
12월15일 IAEA 이란 사찰보고서가 관건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이란 핵합의안(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불승인안이 부결됨에 따라 JCPOA가 이행 단계에 들어섰다.

미 의회가 공화당이 다수인 만큼 JCPOA 불승인안이 가결되고, 이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거부한 뒤 재의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점쳐졌지만 예상보다 수월하게 JCPOA가 의회에서 승인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심이 집중된 대(對)이란 경제·금융 제재가 바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미 의회의 JCPOA 승인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대이란 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국내법적 요건을 갖추게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 정부가 별다른 차질없이 제재를 풀기 위한 행정적·실효적 준비에 착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JCPOA의 내용으로 보면 다음 단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프로그램 사찰 보고서다.

IAEA는 핵무기를 제조한다고 의심을 샀던 이란의 과거와 현재 핵프로그램과 관련 시설에 대해 다음달 15일까지 사찰을 마칠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IAEA 집행이사회에 늦어도 12월15일까지 제출된다.

이 사찰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는 파르친 군사시설이다. 서방은 이곳에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폭실험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사찰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은 군사시설을 외부에 공개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JCPOA엔 양측이 파르친 기지의 사찰 방법과 시기에 대해 별도 합의한다는 것으로 두루뭉술하게 기술됐다.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EPA=연합뉴스자료사진)
이와 관련, AP통신은 파르친 기지를 이란이 사실상 '셀프 사찰'하는 것으로 비밀 합의됐다고 지난달 폭로했다. 이란과 IAEA 모두 이를 부인하는 상황이다.

12월15일까지 제출될 IAEA 보고서에서 '핵활동이 의심된다'고 결론지을 경우 이후 일정은 상당히 꼬이게 된다. 이를 해소하라는 서방과 이를 거부하는 이란의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IAEA 사찰 종료일 사흘 뒤인 10월18일에 도래하는 날이 '적용일'(adoption day)이다.

IAEA 보고서에서 큰 문제가 없다면 이란은 적용일 이후부터 JCPOA에서 약속한 원심분리가 감축·아라크 원자로 설계 변경 등 핵프로그램 감축 조건을 이행하게 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유엔은 적용일부터 각자의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실무적 준비를 해야 한다.

이란은 이미 2013년 11월 잠정 합의된 공동행동계획(JPOA)의 핵프로그램 감축 조건을 성실히 이행해왔기 때문에 이와 맥락이 같은 JCPOA의 이행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IAEA가 이란이 JCPOA의 핵프로그램 감축 조건을 제대로 이행했다고 검증하면 비로소 대이란 제재가 풀린다. 이 날은 JCPOA에서 이행일(Implementation Day)로 명명됐다.

이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께가 될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예측이다.

이란 제재 전문인 법무법인 율촌의 신동찬 변호사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던 미 의회의 이란핵합의 승인 절차를 오바마 미 행정부가 정치력을 발휘, 조기에 매듭지음으로써 JCPOA는 이제 실질적인 이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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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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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장대 업종 길고 서비스업 짧아…남자 12.3년, 여자 6.9년

계별기업은 SK에너지 20.2년 최장…기아차 19.2년, KT·현대로템 18.7년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 30대 그룹 중 대다수인 24개 그룹은 장기 불황임에도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가 늘어났다.

지난해 10.6년이던 평균 근속연수는 10.9년으로 약간 길어졌다.

평균 근속연수가 짧아진 곳은 업황 부진으로 구조조정을 한 현대중공업그룹 등 5곳이었다.

30대 그룹 중 근속연수가 가장 긴 곳은 대우조선해양(16.4년)과 현대중공업그룹(15.8년), 현대자동차그룹·에쓰오일(각 15.6년), 포스코그룹(14.2년) 등으로 이른바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업종 그룹이다.

기업별로는 SK에너지(20.2년), 기아자동차(19.2년), KT·현대로템(18.7년), 현대비앤지스틸(18.3년)이 근속연수 '톱5'를 형성했다.

20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가 올 6월 기준 30대 그룹 249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남녀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를 조사한 결과 10.9년으로 나타났다. 1년 전(10.6년)에 비해 0.3년 늘어났다.

남자 직원은 작년 6월 12년에서 올해는 12.3년으로 0.3년, 여자 직원은 6.5년에서 6.9년으로 0.4년 각각 길어졌다.

평균 근속 연수가 가장 긴 그룹은 대우조선해양으로 16.4년이다. 이어 현대중공업그룹(15.8년)과 현대자동차그룹·에스오일(각 15.6년), 포스코그룹(14.2년) 순이다.

그다음은 한진(13.5년), LS(13년), 금호아시아나(12.2년), 두산(12.1년), 동국제강(12년), 현대(11.4년), KCC(11년), KT(10.8년), SK(10.2년) 순으로 근속연수가 길었다.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가장 짧은 그룹은 신세계그룹으로 5.2년이다. 이어 현대백화점(5.8년), CJ(6.6년), 효성(6.7년), 동부(7.8년), 롯데(8년), 영풍(8.1년), 미래에셋(8.6년), LG(8.9년) 등의 순으로 근속연수가 짧았다.

대우건설(9.1년)과 GS(9.4년), 한화(9.5년), OCI(9.6년), 대림(9.7년), 삼성(9.9년) 등도 근속연수가 10년을 넘지 않았다.

1년 새 근속 연수가 가장 많이 길어진 곳은 대우건설로 1.5년이었다. 다음으로 LG·두산(0.8년), 삼성·동부·KCC·KT(각 0.6년), 에쓰오일·OCI(각 0.5년), LS·동국·영풍·미래에셋·신세계(각 0.4년) 등이 30대 그룹 평균보다 많이 늘어났다. 나머지 9개 그룹은 0.1~0.3년 길어졌다.

이에 반해 현대중공업그룹은 1년 새 평균 근속연수가 1년 짧아졌다. 실적 악화 등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어 현대(0.4년), 포스코·효성(0.3년), 대우조선해양(0.1년) 순으로 근속연수가 줄었다.

남자 직원의 평균 근속 연수가 가장 긴 곳도 대우조선해양으로 17.2년이었다. 다음으로 현대중공업(16.4년), 현대자동차·에쓰오일(각 16.1년), 포스코·한진(각 14.7년), KT(14.4년), 금호아시아나(14.2년), LS(13.5년), 두산(12.8년), 동국제강(12.5년) 등의 순이었다.

여자 직원 근속연수는 한진그룹이 10.7년으로 가장 길었다. 또 현대(10.5년) 등 15개 그룹도 30대 그룹 평균보다 길었다.

개별기업 중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가장 긴 곳은 SK에너지로 20.2년에 달했다.

이어 기아자동차(19.2년), KT·현대로템(각 18.7년), 현대비앤지스틸(18.3년), 포스코(17.8년), 현대자동차(17.5년), SK종합화학(17.1년), 금호타이어(17년),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각 16.4년) 순으로 10위권을 형성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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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9.20 01:09 / 수정 2015.7.17 13:07

“큰 꿈 꿔라” … 식음료업계 평정 3G캐피탈

세기의 맥주사 인수전 이끄는 브라질 사모펀드

2101세계 최대 맥주회사 안호이저 부시 인베브(AB인베브)가 2위 업체 SAB밀러에 인수를 제안한 것을 놓고 AB인베브를 소유한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탈이 화제가 되고 있다.
3G캐피탈은 2008년 자신이 최대 지분을 가진 브라질 맥주회사 암베브(AmBev)와 벨기에의 인터브루(InterBrew)를 합병한 데 이어, 버드와이저를 생산하는 미국의 안호이저 부시까지 인수해 세계 최대 맥주회사를 만들었다. 2010년엔 패스트푸드 체인 버거킹도 인수했다. 2013년에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함께 230억 달러(26조7260억원)을 들여 케첩으로 유명한 식료품 제조업체 하인즈를 사들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작년엔 다시 워런 버핏과 함께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있는 도넛 체인 팀 호튼스(Tim Horton’s)를 인수해 버거킹과 합병했다. 올해에도 워런 버핏과 함께 하인즈의 크래프트(Kraft) 인수를 성사시켰다. 크래프트는 치즈로 유명한 미국의 유제품 생산업체다.

3G캐피탈은 이제 세계 최대 맥주회사도 모자라 규모를 더 키우려고 하고 있다. 3G캐피탈은 1980년대 브라질 맥주회사 브라마(Brahma)에 투자하면서 맥주업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3G캐피탈에 대한 책 『드림 빅(Dream Big)』을 쓴 작가 크리스티안 코레아는 “3G캐피탈은 브라마 경영을 통해 실적중심주의와 강박적인 원가 관리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안호이저 부시를 비롯해 하인즈·크래프트·RBI에도 같은 모델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려왔다는 것이다.

3G캐피탈이 세계 2위 맥주업체 SAB밀러를 인수하려는 것은 짝짓기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세계 경제 성장 둔화로 전통적인 맥수 수요 지역인 유럽과 북미에서 소비가 줄고 있다. 그나마 아프리카, 아시아 같은 신흥시장만 수요가 살아 있다. SAB밀러는 아프리카와 중국 시장에서 우세하다. AB인베브가 인수를 검토할 만하다.

AB인베브가 SAB밀러 인수에 성공하면 실적주의와 원가관리중심주의 경영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직원이 정리될 수 있고, 불필요한 지출은 차단된다. 3G캐피탈의 이런 경영철학은 진보적인 정치관을 가진 워런 버핏이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버핏이 계속 3G캐피탈과 합작하는 것은 3G캐피탈이 일부 사모펀드와 달리 ‘먹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핏은 올 초 “3G캐피탈은 기업을 되팔아 차익을 남기려고 인수하지 않는다. 다른 사모펀드들은 기업을 인수한 뒤 상장하거나 경쟁업체에 팔아넘기려고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워런 버핏이 SAB밀러 인수에도 참여할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3G캐피탈의 공동대표 조르주 레만은 과거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맥주업계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에 나는 남미에서 제일 부자가 누군가 살펴봤다. 베네수엘라도 콜롬비아도 아르헨티나도 전부 맥주회사 오너였다.” 그는 또 전통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예산 쥐어짜기 방식으로 이윤을 남기고 추가 투자 및 인수합병(M&A)을 하는 방식은 IT업계 등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수가가 10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이는 AB인베브의 SAB밀러 인수는 성사되기까지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성사된다면 세계 M&A 역사상 6번째로 큰 딜이 된다. 규제 당국의 독점 논란을 피하기 위해 SAB밀러와 영업장이 겹치는 미국·중국 등에서 영업활동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3G캐피탈 측은 회사의 모토가 ‘큰 꿈을 꿔라(Dream Big)’인 점을 강조하며 M&A를 계속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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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9.20 01:09 / 수정 2015.7.17 13:07

LA·뉴욕에 아파트 구입 새 사조 만들 연구소 출범

‘집없는 억만장자’ 베르그루엔

‘집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53·사진)이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뉴욕에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의 월간 섹션 ‘FT웰스’가 18일 보도했다. 베르그루엔은 현재 웨스트 할리우드 지역에 있는 아파트의 내부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

페이스타임(FaceTime) 동영상 통화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베르그루엔은 “한 곳에 정착해 살면서 ‘집없는 억만장자’라는 별명을 잃고 싶다. 하지만 여러 장소에 관심이 많아서 한 곳에 애착을 갖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기 둥지를 갖고자 하는 본능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것”이라며 “내겐 건강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FT는 그가 “집을 가지면 그 집을 어떻게 꾸밀 지와 여러 물리적인 일에 시간을 뺏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호텔이 가장 좋은 옵션”이라고 말한 점을 들어 구매계약을 중도에 해지할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고 전했다.

왜 LA와 뉴욕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베르그루엔은 “캘리포니아는 태평양을 마주한 혁신적인 곳이고, 뉴욕은 전통을 상징하는 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여러 가지 것들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고, 다양한 아이디어에 관대하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독일·미국 이중국적을 보유한 베르그루엔은 집·차·가족 없이 전용기로 5성급 이상 호텔을 돌며 살아 화제를 몰고 다닌다. 미술품 수집가였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투자로 불려 현재 자산총액이 150억 달러(17조4300억원)에 달한다.

베르그루엔 거버넌스 연구소를 통해 세계 석학들과 교류하는 그는 최근 ‘철학과 문화 연구소(Institute of Philosophy and Culture)’를 출범시켰다. 종교개혁·계몽주의·마르크스주의·워싱턴 컨센서스에 필적하는 세계를 바꾸는 사조(思潮)를 탄생시키는 산파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이 연구소는 이미 스탠퍼드·케임브리지·베이징대 등과 펠로십 협약을 체결했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한 학자에게 100만 달러의 상금을 주는 노벨상급의 상(賞)도 만들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이 참여한다.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사학자 티모시 가튼 애쉬 등 60여명의 세계적인 석학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도 꾸렸다.

베르그루엔은 이 연구소를 ‘세속적 수도원(secular monastery)’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50명의 석학들이 한 곳에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씩 모여 자유롭게 생각하고 발명하고 소통하는 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창출되지만 그 아이디어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심도있는 고찰은 없지 않느냐”며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적 탐구를 즐겼다. 나도 그게 즐겁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위기의 제조업> ⑤<르포> 계속되는 적자 행진…"앞으로가 더 걱정"

'최대 적자' 조선업, 수주 반토막…구조조정에 노사관계마저 '위태'

유화업계 공장도 곳곳 가동 중지...전문가 "근원적 대책 마련해야"

(거제·울산=연합뉴스) 이경욱 장영은 허광무 기자 = 요즘 울산과 거제 지역 조선소들의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조 파업 등으로 일부 어수선한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공장 가동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이다.

내부적으로는 수주 감소 등에 따른 적자 행진이 계속되고, 이로 말미암은 구조조정 및 노사 갈등 등으로 위기의식이 크게 자리잡은 상태다.

조선업계의 어려움은 중국과 일본에 밀려 선박 수주가 예전같지 않은데다 저유가의 장기화, 중국·중동의 설비 증대 및 자급률 상승, 셰일가스 확대 등의 영향이 적지 않다.

울산 등의 석유화학업계 역시 수주잔량 감소와 수출 급감 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빠졌다.

생산량을 줄여가던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 안 일부 공장은 '더는 견딜 수 없다' 며 잇따라 가동을 중단했다.

회사들은 "위기가 바로 기회"라며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경영 위기를 돌파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경기 흐름도 조만간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이래저래 걱정이 커지고 있다.

◇ '수주 가뭄' 조선업계, 지속적인 적자에 구조조정 진행

이달 16일 오후 1시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노조사무실 앞. 노조가 올 임금협상에서 회사 측 기본급 동결안에 반발해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노조사무실 옆 공장에선 '웅∼웅∼' 거리는 요란한 기계음 소리를 내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근로자들이 평소처럼 용접 불꽃을 튀기며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파업하는 사람은 파업하고,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두 장면이 동시에 연출됐다.

그러나 세계 최대 조선소인 이 회사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데다 올해까지 7분기 연속 적자 행진했다.

회사 측은 "조선업 침체가 장기화해 앞이 안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상가상 회사의 노사 관계는 여전히 불안하다. 경영 위기를 타개하는 데 또 다른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전 세계 신조 발주량이 최근 6년 중 가장 적었다. 세계 금융위기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던 200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현대중은 8월 한 달간 단 2척의 선박을 수주하는데 그쳤다.

해양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 8월까지 신규 프로젝트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8월까지 회사의 올 전체 수주는 연간 계획인 229억5천만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국제 유가마저 급락해 해양플랜트 수주 물량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상선 발주마저 자취를 감춰 1, 2년후 일감 부족 걱정이 태산 같다.

조선업체들은 대규모 영업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노조 파업까지 겹치면서 선주들이 신규 발주를 꺼리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현대중 노조는 지난해 출범 20년 만의 파업을 벌였고, 올해 또 3차례 부분파업을 했다. 파업을 바라보는 조합원들 입장은 엇갈린다.

파업에 불참한 한 조합원은 "회사가 어렵다는데 파업에 동참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일단 위기부터 노사가 함께 극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의 경기 침체 등으로 세계 경제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어 수주 어려움은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경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노사가 상생해도 모자랄 시점에 노조 파업은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15일 오후 150만평에 달하는 경남 거제시 옥포 대우조선해양 야드.

대우조선은 대규모 적자 탓에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지만 겉보기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차질을 빚는 공정은 없고 근로자들도 평소처럼 일에 매달린 모습이다.

시뻘건 불꽃을 내면서 거친 철제 패널을 매끈하게 다듬는 근로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철판끼리 연결해 붙이는 용접 담당 근로자들 손도 바쁘게 움직였다.

조선소 한쪽에 거대한 시설물이 눈에 들어왔다. 대우조선 경영에 어려움을 주는 해양플랜트다.

해양플랜트 분야는 국내 조선업계가 충분한 기술축적 없이 덤볐다가 국제유가가 곤두박질 치면서 곧바로 위기를 불러왔다.

공기 지연에 따른 손해가 불가피해 졌고, 이는 경영난으로 직결됐다.

대우조선은 해양플랜트 악재로 올 2분기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회사는 4천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매각하는 한편 부장급과 전문위원, 수석전문위원 등 고직급자 1천300여명을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희망퇴직 또는 권고사직을 단행할 방침이다.

다행히 17일 초대형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2척의 건조 계약을 따냈다. 희망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

대형플라즈마절단공장 앞에서 만난 이필순(50·조립3부) 씨는 "해양플랜트의 경우 혹독한 수업료를 치르며 충분한 학습과정을 거치고 있다"면서 "지금은 정부가 해양플랜트 건조기술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위기 상황을 맞아 근로자들과 협력업체 관계자들도 일단 '위기 탈출'에 나서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한 근로자는 "위기가 기회라는 사실에는 모두가 공감한다"며 "월급이 다소 줄더라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회사를 살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한 관계자도 "추석을 앞두고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모두가 공정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조선해양과 무관한 자회사 매각, 구조조정 등 조기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에는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삼성중공업도 대우조선보다는 적지만 대규모 적자를 냈고,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 '수출 효자'였던 석유화학업계, 지금은 국내 시장도 빼앗길 위기

15일 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의 나일론 원료 생산업체인 K사 공장.

거대한 원통형 탱크들, 어지럽게 엉킨 배관과 설비가 이 품목 국내 최대 생산공장의 위용을 뽐내 듯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장 입구로 들어서자 웅장한 외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설비와 공정이 자동화됐다지만, 공장 주변에서 안전모를 쓰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창 돌아가야 할 공장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공장이 멈춰 선 것이다.

한때 이 회사는 3개 공장을 가동해 한해 27만t의 제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제품 감산으로 2013년에 1개, 작년에 1개 공장이 각각 멈췄다.

지금은 생산능력이 가장 많은 1개 공장만 가동하고 있다. 따라서 생산량은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 회사는 감산에 돌입하면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아 약 80명의 인력을 줄였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이 회사는 3∼4년 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이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저가 제품을 쏟아내면서부터다.

이 회사는 2012년까지만 해도 약 3만t의 제품을 중국에 수출했으나 지금은 수출길이 아예 막혔다.

오히려 가격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제품들이 우리나라로 역수출되는 바람에 그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하던 국내 수요마저 빼앗기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 회사가 단일 품목을 생산하는 탓에 현재 상황을 뒤집을 만한 '반전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수지가 맞는 대체 제품 생산량을 늘리거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식으로 포트폴리오 재구성이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공정 개선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고체연료 허용 등 제도 개정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울산 석유화학공단 내 1∼2개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는 공장가동률을 낮추는 등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동종 업계가 처한 위기를 전했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울산의 3대 산업이 모두 위기상황을 호소하는 가운데 석유화학산업은 가장 우려스런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석유화학의 위기가 '순환적'이기 보다는 '구조적'인 것이어서 근원적인 대책 마련과 실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경구 울산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은 "그동안 석유화학산업은 국내외 환경에 따라 부침이 반복됐지만, 현재는 대외적 환경이 국내 기업에 호의적이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구조에서 산업의 부활을 마냥 기다려서는 안 된다"며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거나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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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이코노미스트,"서방 다국적기업 '로마제국'처럼 쇠락"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전 세계 GDP서 다국적기업 비중 이미 '정점' 찍은 듯]
미국 등 서방에 기반을 둔 다국적기업들이 전성기를 끝낸 로마제국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순이라고 19일(현지시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했다.

최근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가 약 3만개의 전 세계 다국적기업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이익은 2013년 현재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했다. 이는 1980년의 7.6%에서 2.4%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이 가운데 서방 다국적기업들의 이익이 약 3분의 2를 차지해 192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MGI는 그러나 다국적기업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안에 8%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MGI는 서방 다국적기업들의 전성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의 이익이 증가한 것은 두 가지 핵심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전 세계 시장이 일체화하는 글로벌화(Globalization)덕분이며 다음은 이에 따른 비용의 감소다. 글로벌 노동인력은 1980년 이후 약 12억명이 증가했는데 신규 인력은 대부분 신흥시장 출신이었다. 이른바 부자나라들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내는 법인세율은 같은 기간 절반으로 떨어졌다. 대다수 상품(원자재)들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가격 측면에서 같은 기간 하락했다.

서방기업들은 그러나 이제 보다 험난한 시기에 진단했다. 우선 전 세계 다국적기업들의 수가 1990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면서 경쟁이 격화했다. 이들의 마진도 경쟁 심화로 쪼그라들고 있다. 북미 기업들의 현재 평균 자본수익률(ROC)의 변동성은 1965-1980년보다 60% 높아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서방 다국적기업들이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1737-1794년)이 저술한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묘사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 이후 로마제국처럼 황금기를 마치고 몰락의 길로 들어선 셈이라고 논평했다. 기번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로마에 대해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을 이해하고 있었다"며 "로마의 적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로마의 명성과 훈련된 무용 앞에 봉쇄됐다"고 표현했다. 로마 시민들은 "부와 사치가 안겨주는 이점을 즐기고 남용"했다. 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로마제국의 경제·정치 영역에 이미 몰락을 불러올 씨앗들이 심어져 있던 탓이다. 전 세계 시장의 구석구석을 이해하고 있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서방 다국적기업들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서방 다국적기업들을 몰락으로 몰고갈 씨앗들은 신흥시장의 경쟁은 물론 서양과 동양 모두에서 부상한 기술기업들이다.

미국 경제지 포춘의 500대 기업 순위에서 신흥시장에 기반을 둔 기업의 비율은 1980년부터 2000년 사이의 5%에서 현재 26%로 21%포인트 높아졌다. 신흥시장 기업들은 과거에 한국과 일본의 전례를 밟아 글로벌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흥시장 50대 기업들의 현재 해외매출 비중은 40%로 지난 10년 사이에 두 배로 높아졌다. 신흥시장의 성장 전망이 수년 전보다 혼조를 보이긴 하지만 이는 오히려 신흥시장 기업들의 글로벌화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전 세계 기술기업들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수많은 고객들을 확보하면서 기존 다국적기업 중심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페이스북의 이용자 수는 중국의 인구인 14억명과 맞먹을 정도다. 소규모 기업들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물론 텐센트, JD닷컴과 같은 중국의 다른 경쟁사들의 사이트를 통해 자사를 해외시장에 진출시킴으로써 글로벌시장을 공략할 저비용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정치적 환경이 서방 다국적기업들에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포퓰리스트(대중인기영합) 색채를 지닌 정치인들이 부상하면서 연일 기업들을 문제 삼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과 부동산 재벌로 공화당 경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다. 이들은 서방기업들이 조세회피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공세를 강화했다. 심지어 포퓰리스트와 거리가 멀고 비교적 중도적인 정치가들도 기업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 독일에서 처음으로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했다.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는 최근 최저임금과 유사한 생활임금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들에 대한 이익의 사회 환원 압박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MGI는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한 서방기업들은 경영상 유리함을 계속 보장하는 하나의 영역에 초점을 맞추라고 주문한다. 이 같은 영역이 바로 아이디어 중심의 산업이다. 노동 또는 자본집약적 산업들은 신흥국 등 해외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이익을 창출하기 쉽지 않지만 미디어, 금융, 제약 ,물류, 고급자동차 등 아이디어 중심산업들은 여전히 높은 수익성을 보장한다. MGI가 규정한 이 같은 ‘아이디어섹터’가 서방기업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31%로 1999년 17%에서 14%포인트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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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9.20 00:09 / 수정 2015.7.17 13:07

내면의 목소리 듣고 싶을 땐 혼자서 훌쩍 떠나보세요

에세이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의 저자 카트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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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올 가을 서점가에는 ‘혼자’라는 단어가 부쩍 늘어났다.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2권이나 올라와 있다. 일본 메이지대 교수 사이토 다카시(齋藤孝ㆍ55)가 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과 오스트리아 일간지 크로넨 자이퉁 기자 출신인 카트린 지타(Katrin Zitaㆍ44)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걷는나무)다. 동양과 서양,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의 효용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카트린 지타의 서문은 인디언 윤리 규범으로 시작된다.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길을 대신 만들도록 허락하지 말라. 다른 이와 함께 걸을 수는 있으나 어느 누구도 당신을 대신하여 걸어줄 수는 없다.’ 그리고 덧붙였다. 인생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탐구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과 한 발짝 떨어진 낯선 곳에서의 시간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이다.

7년간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터득한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흔한 여행 사진 하나 없이 사색과 이론으로 가득 채운 신기한 여행서로 유럽 서점가를 장식한 작가를 e메일로 만났다.

 

혼자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때 프라하로 간 여행이 처음이었다. 6개월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는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간다고 하더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시 고민했지만 혼자 떠나보기로 했다. 그 결과 처음엔 힘들었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풍경을 좋아하는지, 걷는 걸 좋아하는지 등등.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더라.”

그때부터 나홀로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나 보다.
“본격적으로 혼자 여행을 하게 된 건 7년 전 서른 일곱 살부터다. 당시 나는 직장에선 일에 치였고, 가정에선 이혼을 하면서 매우 지친 상황이었다. 세이셸의 고급 리조트로 휴가도 떠나봤지만 내게 필요한 건 치유였다. 수도원에서 하루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질문에 대한 대답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혼자 여행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당신 같은 40대 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난생 처음 혼자 떠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가 있나.
“혼자 있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며칠을 홀로 보낸다고 해서 당신이 혼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애초에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40대 여성들에게는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도시를 추천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비엔나나 프라하, 파리 같은 곳은 훌륭한 장소다. 역사와 전통이 가득할 뿐더러 기분 전환이나 정서적 안정을 찾기에도 적합하다.”

그럼 당신이 자주 가는 곳은 어디인가.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생기지 않나. 한 번 가고 두 번 다녀와도 계속 찾게 되는 곳 말이다.
“내겐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가 그런 곳이다. 특히 볼프강 호숫가에 있는 부티크 호텔 코르티젠(Cortisen)은 혼자 머무르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은 고객을 위해 심지어 ‘노 키즈(No Kids) 방침’을 고수하는 곳이니까. 나는 혼자 숨을 수 있는 작은 마을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장 최근엔 어디를 다녀왔나. “여행엔 늘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무사히 달성했는지 궁금하다.
“지난 주말에 슈테게허스바흐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막 끝마친 만큼 지친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라리마르(Larimar) 스파 호텔을 택했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동안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새 책 『행운이 따르는 여성이 되는 기술』(The Art of Being a Fortunate Women)에 대한 생각들을 비워내니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이 마구 떠올랐다.”

새 책은 무슨 내용인가. 소개 좀 해달라.
“역시 에세이다. 이번 주에 출간된다. 현대 여성이 어떻게 행복과 만족감을 얻고 어떻게 뜻한 바를 이루어가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셀프 심리코칭을 하다 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이 죄책감과 불안정함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걸어갈 때 동행하길 원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스카이프 등으로 코칭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책을 쓰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행복은 우리 안에 있다. 그리고 종종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은 오히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사실 이번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메타프로그램이었다.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여행지를 선택하면 한결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건데 어떻게 알게 됐나.
“대학원에서 언론학과 사회심리학을 공부했다. 메타프로그램 자체는 신경 언어 프로그래밍 전문가인 레슬리 캐머런 밴들러가 개발한 것이다. 사람마다 고유 필터를 사용하여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이론을 토대로 보통 14개 필터를 사용하는데 나는 그중 주체성ㆍ판단 기준ㆍ선택 이유 등 3가지 필터가 여행 스타일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에 따라 능동형과 수동형, 내적 기준과 외적 기준형, 옵션형과 프로세스형으로 나눈 것이다.”

나는 옵션형인 것 같더라. 쉬는 것보다 다양한 체험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타입에게 추천한 사하라 사막 투어나 홍해 스쿠버 다이빙도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실제로 이 필터에 맞춰 떠나서 성공한 사례가 많은가.
“물론이다. 내 권유에 따라 프랑스 니스로 여행을 떠난 친구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외적 기준형이기에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추천했다. 결국 그녀는 그곳에서 팝 가수 레니 크라비츠의 콘서트를 즐기고 쏜살같이 달려나가 입고 있던 티셔츠 위에 사인을 받았다. 일행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자 혼자 떠난 그녀에게 찾아온 멋진 선물이었다.”

2403

7년 주기 이론도 흥미로웠다.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의 이론을 토대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이 7년 리듬에 따라 바뀌므로 그때마다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라는 건데 본인의 삶에도 적용이 가능한가.
“29~35세는 우리의 자아가 세상을 형성하는 시기이므로 늦어도 이 시기에는 한 번쯤 홀로 여행을 떠나보길 추천한다. 나 역시 수도원 여행을 통해 혼자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50대에 접어든다면 바닷가에 가서 몇 주간 즐기고 싶다. 아마 이탈리아나 그리스, 혹은 덴마크가 될 것 같다. 정확히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는 꼭 맞을 거라 생각한다.”

당신의 삶에도 주기가 있는 것 같다. 건축학도에서 기자로,
다시 셀프심리 코치로 거듭났으니 말이다.
삶 역시 여행이라면, 당신의 종착역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나는 용기와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독일 베를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었다. 여전히 베를린에 살고 있지만 얼마 전 비엔나 근처에 오래된 집을 한 채 구입했다. 뿌리로 돌아가 새로운 베이스를 만들 계획이다. 언젠가 미국에서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유럽의 건축이 너무 그리울 것 같다.”

그런데 진짜 동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나.
“하하. 나는 동행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꽤 자주 하는 편이다. 다만 혼자만의 여행이 삶의 방식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한국도 한 번 와보길 추천한다.
“안 그래도 얼마 전 한국관광공사에서 만든 ‘코리아 유어 스토리(Korea Your Story)’ 홍보 영상을 봤다.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도 무척 아름답더라. 가능한 빨리 가 보고 싶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g@joongang.co.kr
사진 스테판 호프마이스터(Stefan Hoffmeister)·걷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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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9.20 00:09 / 수정 2015.7.17 13:07

외부와 연합만큼 내부 결속 단단해야 동맹전략 성공

[세상을 바꾼 전략] 신라 통일의 교훈

영화 ‘평양성’. 668년 9월 21일 평양성 함락으로 백제에 이어 고구려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영화 ‘평양성’. 668년 9월 21일 평양성 함락으로 백제에 이어 고구려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으로부터 꼭 1347년 전인 668년 9월 21일(음력), 고구려 수도 평양성이 불탔다. 당(唐)과 신라의 연합군에 포위된 고구려 장수가 불을 지르고 투항한 것이다. 평양성 함락 직후 나당연합은 분열되었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서 당과 전쟁을 치른 후에야 한반도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신라의 한반도 패권을 가능하게 한 연합은 300년 동안 여섯 단계를 거쳐 진화된 결과였다.

동맹 의지 보여주려 인질 보낸 신라

28-3.1첫 번째 시기는 백제 근초고왕 재위(346~ 375) 때다. 연(燕)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밀린 고구려가 요동지역 대신에 한반도로 남하하던 무렵이다. 근초고왕은 당시 관계가 좋지 않던 신라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백제로서는 대(對)고구려 전선에 집중하여 고구려 남하를 막을 수 있었고, 신라는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백제·신라의 연합은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광개토왕(391~412) 때다. 백제의 독산성이 신라에 복속되자 백제와 신라는 갈등을 빚었고 이에 신라는 고구려와 연합했다. 신라는 강자에게 편승한 외교를 택했던 것이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세 차례 백제 공격 가운데 두 번이 신라를 돕기 위한 출병이었다. 고구려·신라 연합에 대해 백제는 가야 및 왜와 군사적 협력관계를 맺었다.

고구려·신라 연합은 전쟁뿐 아니라 국내정치에도 영향을 주었다. 신라는 동맹 준수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고구려에 인질을 보냈다. 김(金)씨계 내물왕은 모계가 석(昔)씨인 실성을 고구려에 보냈다. 김씨계 왕권 세습을 도모하던 내물왕으로서는 내치와 외교를 함께 고려한 선택이었다. 이후 고구려는 내물왕 사망, 실성왕 즉위 및 피살, 눌지왕 즉위 등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내 여러 정파들은 자국에 군까지 주둔시키고 있는 고구려를 내정에 이용하려했다.

‘공동의 적’ 고구려 앞에서 손잡은 신라·백제

28-3.4세 번째 시기는 고구려 장수왕(412~491)과 백제 무령왕(501~523) 때다. 427년 평양으로 천도한 장수왕은 북위(北魏)와 우호관계를 유지해 남쪽 영토의 확장에 주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구려의 위협에 직면한 백제는 북위에 고구려 정벌을 촉구했지만 북위는 고구려와의 우호관계를 깨지 않았다. 그래서 백제는 신라와 협력을 추진했다. 당시 신라도 고구려에 병합될까봐 우려하고 있었다. 결국 백제와 신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서로 동맹을 결성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맥락에서 백제와 신라는 서로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이는 균형 외교에 해당한다. 이 시기 백제와 신라는 혼인과 군사교류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네 번째 시기는 신라 진흥왕(540~576) 때다. 돌궐이 중흥함에 따라 고구려는 남쪽 국경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백제·신라·가야의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백제와 신라는 각각 한강의 하류지역과 상류지역을 차지했다. 이에 고구려는 신라에 한강 상류지역뿐 아니라 하류지역의 점유를 인정해주기로 밀약했다. 그리하여 백제·신라 동맹은 결렬되고 고구려·신라 동맹이 결성되었다.

다섯 번째 시기는 수(隋)의 중국 통일(589)과 당의 건국(618) 그리고 신라 선덕여왕(632~647)과 무열왕(654~661) 때다. 7세기에 들어설 무렵 고구려는 돌궐 등과 제휴하여 북서 경계를 안정화한 후 한강지역 탈환을 위해 다시 남하했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라는 공동의 위협을 맞은 상황에서도 손잡을 수는 없었다. 이미 감정의 골은 깊을 대로 깊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양국은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그리고 수가 망한 후에는 당나라에 접근했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가 조공의 길을 막고 있으니 고구려를 응징해 달라고 수와 당에 제의했다.

수와 당도 고구려를 남쪽에서 견제해줄 동맹국이 필요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맥락에서 백제와 신라 모두를 친구로 받아들일 만했다. 그렇지만 백제와 신라가 서로 적대적인 상황에서 당은 두 나라와 동시에 화친을 맺기가 어려웠다. 당은 ‘친구의 적’을 친구로 받아들기 불편했고 백제는 ‘적의 친구’를 친구로 여길 수 없었다.

642년 백제 의자왕은 대야성을 비롯한 신라의 40여 개 성을 정복했다. 대야성 전투 직후 성주와 그의 가족들은 처참하게 죽었다. 그들이 바로 신라 김춘추의 딸·사위·손자들이었다. 김춘추는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원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고구려·신라 연합은 결성되지 못했다. 이미 그 이전에 고구려·백제의 연합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643년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의 당 연결로인 당항성을 함께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고구려·백제 연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신라가 당에 주장했던 내용이 역사서에 그대로 기록되었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신라, 당 연호 사용하며 동맹 공고화
고구려·백제 연합이 있었든 없었든 이 시기 신라는 국가존망의 위기를 체감했다. 그때까지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 가운데 늘 누군가와 협력해 왔다. 또 자국이 빠진 고구려·백제 협력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동맹을 중시한 신라의 선택은 강대국 당이었다. 648년 김춘추와 당 태종은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하면 평양 이남을 신라가 차지하기로 약속했다. 이듬해 신라는 당과의 동맹을 공고화하기 위해 자신의 연호를 폐지하고 당의 연호와 관복을 사용했다.

653년 백제는 고구려와의 연합에 왜를 포함시켰다. 이로써 당·신라 연합 그리고 고구려·백제·왜 연합이 대치하게 되었다. 양 진영 간의 여러 전투 이후 660년 당과 신라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켰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왜군은 백제를 지원했지만 고구려군의 참전은 없었다.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이 급박하게 이뤄져서 고구려는 백제를 지원할 여유가 없었다. 고구려가 백제를 지원하지 못한 더 중요한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 간에 공유되는 정체성이 약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동병상련으로 결속력을 높일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패망 후 전개된 나당전쟁에서 두 나라 유민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백제 부흥운동 세력이 친(親)당, 반(反)신라의 태도를 보였다면 고구려 부흥세력은 반(反)당, 친(親)신라의 행동을 취했다.

정체성 공유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뿐 아니라 고구려 내부 그리고 백제 내부에서조차 부족했다. 백제와 고구려 공히 멸망 직전에 심각한 내분을 겪었다. 외부 위협이 내부 결속은커녕 내부 와해를 가속화시킬 정도로 정체성 공유가 미약했다. 따라서 나당연합군 침공에 대한 혼연일체의 반격이 없었다. 백제 없이 홀로 나당연합군을 상대하던 고구려는 665년 연개소문이 죽자 내분이 더욱 심각해졌고, 668년 결국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이로써 백제와 고구려는 소멸했다.

28-3.5여섯 번째 시기는 신라 문무왕(661~681) 때로, 특히 고구려 멸망 이후의 기간이다. 당은 평양 이남을 신라에 할양하지 않고 도호부를 설치해서 한반도 전역을 직접 통치하려 했다. 신라의 도움으로 고구려를 점령한 당은 이제 신라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의 행동은 승리가 확실하면 전리품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승리연합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에 해당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냥이 끝난 후에는 불필요해진 사냥개를 잡아먹는 이른바 토사구팽이다.

이런 토사구팽의 위기는 신라에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5세기 때 신라는 고구려군의 신라 주둔을 경험한 바 있다. 신라는 강온(強穩) 양면 전술을 구사했다. 먼저 나당연합 상황을 나당전쟁 태세로 전환했다.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여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을 지원하고 또 670년 일본으로 국호를 개명한 왜와도 협력하면서 당을 견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수의 외교문서 등을 통해 당 조정을 설득하고 호소하는 접근도 병행했다. 토번이 당을 침공하여 당이 한반도에 집중할 수 없게 되는 운도 따랐다. 그리하여 신라는 대동강 이남의 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당과 신라의 국력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하지만 전쟁 결과는 힘을 얼마나 투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신라가 모든 힘을 다 쏟았던 반면, 당은 일부의 힘만을 그것도 먼 곳에서 출정한 것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할 수 없었다.

특히 당을 상대로 싸우던 신라는 하나로 똘똘 뭉쳤다. 당이 문무왕 책봉을 취소하고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봉했을 때 신라는 내분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외부 위협이 있을수록 내부가 더욱 결속되는 현상은 멸망 직전의 백제 및 고구려에서 관찰되지 못했던 반면에, 신라에서는 관찰되었다. 삼국은 리더십·정치문화·사회제도 등에 따라 내부 결속의 정도가 달랐던 것이다. 이런 차이는 외부와의 연합에서도 관찰되었다. 신라의 동맹은 비교적 공고했던 반면에, 고구려·백제 연합은 느슨했다.

생존 위협의 공유가 결속력 증진에 효과적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 정체성도 공유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생존 위협의 공유가 결속력 증진에 가장 효과적이다. 함께 고통을 겪은 집단일수록 결속력이 높고 서로 협력함은 여러 사회실험에서 확인되고 있는 사실이다. 오늘날 기업의 사원연수 때 극기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신라는 삼국 간 대립의 축을 자신이 중간에 위치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립구도에서 승리연합에 속했다. 신라의 파트너 또한 백제·고구려·당·고구려유민 등 다양했다. 신라는 균형자로 또는 편승자로도 행동했다. 그런 행동은 일차적으로 신라 존속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론 한반도 패권을 가져다 줬다. 이는 시야가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아울렀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질서 또한 700년 전처럼 요동칠 판세다. 균형 외교 는 오늘날 자주 등장하는 화두다. 균형은 그만큼 늘 아슬아슬함을 감수해야 한다.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반대인 편승도 마찬가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격랑의 판세에서는 외부와의 연합뿐 아니라 내부의 결속이 성패의 주요 결정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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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9.20 01:09 / 수정 2015.7.17 13:07

식민지와 보호령 묶어 폐쇄 블록경제 구축한 열강들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31- 대공황 탈출 경쟁

그림 1 알프레드 크리미, 『우편 운송』, 1937년. 대공황시대의 현실이 아니라 화가가 ‘완전고용’의 호시절을 상상해 그렸다. 대공황 당시 미국 정부는 공공일자리 제공 차원에서 화가의 창작을 지원했다. 그림 1 알프레드 크리미, 『우편 운송』, 1937년. 대공황시대의 현실이 아니라 화가가 ‘완전고용’의 호시절을 상상해 그렸다. 대공황 당시 미국 정부는 공공일자리 제공 차원에서 화가의 창작을 지원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어린 소녀가 편지를 우편집배원에게 전달하고, 이를 자전거를 탄 집배원이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에는 상자를 카트에 싣는 인부들이 보인다. 뒤쪽으로는 화물을 옮기는 이들이 있고 짐마차를 운전하는 이도 보인다. 뒤로는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다양한 운송수단을 이용하여 우편물을 나르기에 바쁜 사람들을 묘사한 이 그림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일까? 또 얼마나 현실의 경제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을까?


 

그림 1은 알프레드 크리미(Alfred D. Crimi)라는 미국 화가의 작품이다. 우편물을 옮기느라 분주한 거리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풍경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림이 제작된 해는 1937년, 미국이 대공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였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굶주리던 시기였다. 이 그림은 화가가 실제 관찰한 현실이 아니라 마음 깊이 희망하는 ‘완전고용’의 호시절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화가가 당시에 처했던 상황을 알면 이 희망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한 이래 미술작품에 대한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수많은 화가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크리미도 마찬가지였다. 실업상태에 놓인 여타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1932년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이듬해부터 뉴딜정책을 실시하였다. 구제, 부흥, 개혁을 모토로 삼고 여러 정부기구를 신설하여 정책을 이끌도록 했다. 1935년에 창설된 공공사업진흥국(WPA)은 대표적인 정부기구로서 수백만 명의 실업자에게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공공사업진흥국이 실시한 사업 중에는 연방예술프로젝트(Federal Art Project)라는 것도 있었다.

위대한 예술가위한 공공 일자리
이 사업 덕택에 수천 명의 미술가들이 생계 걱정 없이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총 20만 점에 이르는 작품이 이들에 의해 그려졌다. 그림 1도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만일 이런 정책이 없었더라면 훗날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게 되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일찍이 붓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같은 명장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림 1이 우편물을 운송하는 모습을 소재로 삼은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정부는 화가들이 공공건물에 벽화를 그리도록 장려했는데 특히 많은 우체국 건물들이 대상이 되었다. 그림 1은 워싱턴DC에 위치한 미국우체부 본부건물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대공황 시기에 제작된 벽화들 중에 유독 우편서비스와 관련된 작품이 많았던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숨어있었다.

미국에서 뉴딜 정책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되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각국은 어떤 정책에 집중했을까? 당시에는 경제문제를 국제적으로 조율하는 공조체제가 전혀 없었다. 열강들은 자국이 보유한 식민지와 보호령을 묶어 폐쇄적인 블록경제를 강화했다. 그리고 자국우선주의 입장에서 위기 타개책을 고민했다. 영국은 대공황 이전부터 이미 경제가 침체했는데, 대공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극복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케인스가 공공근로정책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적자재정에 대한 반감이 커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와 절연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새로 집권한 인민전선 정부가 무능력하게도 경기회복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폄으로써 경기회복이 지연되었다.

그림 2 미국 전쟁생산 위원회에서 제작한 포스터(부분), 1942~1943년. 그림 2 미국 전쟁생산 위원회에서 제작한 포스터(부분), 1942~1943년.

다른 국가들은 더욱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독일에서는 1933년 나치 정부가 들어서서 자유주의적 기반을 무너뜨린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정부가 경제활동 전반을 강력하게 통제했으며, 1935년부터는 군비증강에 국가의 자원을 집중했다. 독일에 히틀러가 있었다면 이탈리아에는 무솔리니가 있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도 나치가 그랬던 것처럼 구세력의 묵인 하에 권력을 잡았다. 국가가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강력한 장악력을 보인 점도, 호전적 태도로 군비증강에 몰두한 점도 모두 독일과 유사했다. 일본도 민주적 체제와는 거리가 멀어진 채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침략정책은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의 서막에 해당했다.

그림 3 소련의 선전포스터, 1933년. 그림 3 소련의 선전포스터, 1933년.

그림 2는 2차 대전 중에 미국의 전쟁생산위원회(War Production Board)가 제작하여 배포한 선전포스터다. 히틀러, 무솔리니, 히로히토를 한데 묶은 캐리커처다. 이들은 전쟁에서 동맹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성격의 정부를 이끌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대공황 시대에 가장 주목할 경제성장을 보인 국가는 소련이었다. 레닌이 죽은 후 집권한 스탈린은 1928년 5개년계획을 발표하고 계획경제적인 발전을 도모했다. 1930년대를 통해 사회기간망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이 증가했다. 서구 국가들이 대공황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던 시기였으므로 소련이 보여준 성과는 더욱 대단해 보였다. 그림 3은 이를 체제선전에 이용하기 위해 소련에서 제작한 포스터다. 스탈린이 5개년계획을 발표하자 서구 자본가가 ‘환상, 거짓말, 유토피아’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곧 공장과 댐이 건설되고 생산이 증가하자 자본가는 충격을 받아 얼굴이 잿빛이 된 채 울상을 짓게 된다는 내용이다. 서구의 지도자들 중에도 소련의 경제성과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저명한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스 쇼(George Bernard Shaw)는 1931년 소련을 방문한 후 미국의 한 라디오를 통해 심신이 건강한 청년들은 소련으로 가서 일자리를 찾으라는 강연도 했다.

일관성 부족했던 뉴딜 정책
겉보기에 번드르르했던 소련 경제성적표의 내면에는 사실 어두운 실상이 도사리고 있었다. 스탈린은 경제개발에 필요한 노동력을 소련 여러 지역으로부터 강제로 이송시킨 인구에 의존했다. 낯선 곳에 끌려온 이주민들은 열악한 수용소에 머물면서 강제노역에 종사해야 했다.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던 수십만 명의 한인들이 1937년에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적 정책의 일환으로 중앙아시아로 끌려가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자원과 인력의 강제 동원과 가혹한 착취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미국의 뉴딜로 돌아가 보자. 뉴딜에 대해 어떤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대중들은 실업과 경기침체에서 미국경제를 구출한 일등공신이라고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제사학자는 뉴딜이 좋은 경제정책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뉴딜 정책들이 임기응변적이고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독점금지법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켰는데 이는 과잉설비를 가진 구식 산업들에 구조조정을 미룰 빌미를 제공했다. 농업생산 제한조치는 농산물 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소작농들은 경지에서 쫓겨나 실업자로 전락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가 묘사하는 이주농민이 여기에서 나왔다. 연방예술프로젝트에 의해 정부가 고용했던 화가들의 작품은 1943년 사업이 종료되자 대부분 경매를 통해 헐값에 팔려나갔는데, 이를 뉴딜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사학자들의 이런 평가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경기회복의 동력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국가들이나 극좌나 극우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미국의 성과는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당시는 끝 모르는 경제위기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빈곤에 처해 사회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뉴딜이 빠른 경기회복을 가져오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뉴딜은 경기회복기가 도래할 때까지 사회구성원들이 민주적 사회기반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고된 시절을 버텨갈 수 있도록 한 대타협의 틀이었다. 그런 면에서 뉴딜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현재 경제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게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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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769년 프랑스에서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이후, 인류에게 자동차는 늘 ‘복잡한 연장’이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차가 앞으로 나갔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멈췄다. 핸들을 돌리면 차는 그 방향대로 움직였다. 10년 전만 해도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정보기술(IT) 업계를 관통하는 공통의 주요 화두(話頭)는 ‘무인차(無人車)’다. 자동차가 인간의 조작 없이 달리고 장애물을 피하며 목적지에 멈춰 선다. 사실 여기까지는 너무 복잡한 길만 아니라면 현재 기술로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핸들에서 손을 뗀 채 달리는 차 안에서 뒤로 누워 편하게 이동하는 모습. 일론 머스크 테슬르 CEO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거의 끝났다"며 "앞으로는 졸음운전이란 단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 제공)



자동차 업계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삼는 무인차 시대는 이런 것이다. 자동차가 인간이 부르면 혼자 달려오고, 냉장고와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생수나 고양이 사료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동차에 타고 있는 인간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메일을 읽어주며 일정을 알려준다. 즉, 자동차가 주체가 되는 세상이다. 자동차 속 인간은 차가 운전하는 동안 기차에서처럼 낮잠을 잘 수도 있다. 자동차가 조작하는 ‘연장’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며 달리는 ‘로봇’이 된 것이다.






그래서 무인자동차 연구의 끝은 ‘로봇’ 분야로 통한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컴퓨터·인공지능연구소(CSAIL)의 첫 여성 소장인 다니엘라 러스(Rus)는 세계 최고의 로봇 전문가다. 지난해 다보스 포럼에서 ‘로봇의 시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무인차 전문가이기도 하다.


러스 교수는 CSAIL 사상 첫 여성 소장이기도 하다. 53년의 역사를 가진 CSAIL는 소프트웨어를 공유한다는 ‘오픈 소스’라는 개념을 처음 발명한 곳이기도 하다.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이 젊고 뛰어난 과학자에게 시상하는 ‘커리어 어워드’ 수상자이기도 한 러스 교수는 최근 일본 자동차 그룹 도요타의 인공지능 기반 자동차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무인차 시대에는 차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다. (테슬라 제공)



조선비즈 주최 ‘스마트 클라우드쇼’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를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곱슬머리에 세련된 치마 정장을 입은 그는 기자의 네일케어에 관심을 보이는 ‘천생 여자’였다. ‘로봇이란 주제와 잘 안 어울린다’고 말하자, 러스 교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로봇”이라며 웃었다.


러스 소장은 “이미 우리는 무인차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무인차에 필요한 레이더, 센서, 카메라, 인공지능 등 30여 가지 기술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개발된 것이며 지금은 이 기술들을 자동차라는 하나의 틀에 집어넣는 단계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에 탑재된 ‘위급 시 자동 제동 장치’ ‘주행 자동 거리 유지 장치’ 등은 무인차 기술의 한 부분이다. 




무인차 안에서 화상 화면을 켜놓고 운전은 잊어버린 채 동료들과 회의를 할 수도 있다. (테슬라 제공)



- 현재 로봇과 무인차 기술 발달 단계는 어느 정도인가요.


“로봇이라는 것이 TV에 나오는 인간 형태의 특이한 로봇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로봇을 접하고 있습니다. 최근 등장한 로봇 청소기도 하나의 로봇이죠. 일본에서 유행 중인 애완 로봇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로봇은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힐 것입니다. 무인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인차 자체로만 보면 초기 단계입니다. 미국 교통안전국은 무인차의 발전 단계를 4단계로 나눴는데, 현재는 아직 운전자가 센서의 도움을 받아 운전하는 1단계입니다. 하지만 최종 4단계에 이르기 위한 수십 가지의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공지능, 더욱 정확한 지도 등입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기술들을 ‘융합’하는 단계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무인차는 상상하기 어려웠지 않았나요. 테슬라나 닛산 같은 완성차 업계도 2020년이면 무인차의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앞으로 5년도 안 남았다는 얘기입니다.”






- 그렇다면 무인차와 비슷한 로봇도 곧 대중화된다는 말이겠군요.


“1963년 우리 연구소가 문을 열 당시엔 컴퓨터가 딱 한 대 있었습니다.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죠. 당시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저 컴퓨터를 모두가 공유하는 것. 당시 ‘오픈 소스’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 그런 궁핍이 때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1인 1 컴퓨터 시대에서 한발 더 나아가 휴대폰이 컴퓨터가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가까운 주변만 해도 컴퓨터 역할을 하는 기기가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 1인당 3~4가지는 될 것입니다. 이제는 로봇의 기술 개발뿐 아니라 로봇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 고양이와 놀아주는 ‘장난감 로봇’ 같은 것 말입니다. 최근 개발된 체스 로봇은 100%까진 아니지만 거의 스스로 판단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금 개발된 것만 봐도 로봇이 청소해주고, 로봇이 애완동물과 놀아주며, 심심할 때 나와 체스를 둘 수 있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조만간 1인 1 로봇 시대는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 인간과 같은 일을 하는 로봇과 무인차로 인류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인류의 가장 큰 발명품 중 하나가 무엇인 줄 아세요? 바로 ‘세탁기’입니다. 세탁기 발명으로 여성들은 빨랫감과 씨름하던 시간에서 해방돼 그 시간에 자기 개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세탁기가 대신 빨래를 해주는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연구를 합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단순하고 의미 없는 노동의 일을 로봇이 대신해준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요. 무인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미국인은 1년에 총 470억시간을 운전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 시간 동안 운전을 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시간을 벌어준다는 것은 아주 큰 ‘혁명’입니다. 무인차가 개발되면 졸음 운전이라는 단어도 사라질 것입니다. 자동차가 컴퓨터처럼 각종 데이터를 모아 교통 체증을 피해간다면, 길에서 버리는 연료와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에서는 5초마다 한 번씩 교통사고가 발생하는데, 이 교통사고의 95%가 인간의 작동 실수입니다. 교통사고로 미국에서 매년 124만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이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가 연간 2770억달러(약 326조7000억원)입니다. 교통사고는 세계 8위의 사망 원인으로 고혈압성 심장병보다 높습니다. 무인차의 개발은 인류 생존에서 심장병 특효약을 개발한 것보다 효능을 발휘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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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HOOC=이정아 기자] 세상을 더 즐겁게 바꾼 7개의 이색 발명품을 소개합니다. 공학기술 전문매체인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스가 꼽은 7개의 발명품인데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발명품들은 출시와 엄청난 인기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다소 엉뚱해 보이고 쓸모 없어 보이는 발명품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1. 분홍색 홍학

적은 예산으로 정원을 꾸미는 방법이 있을까요? 1957년 생산조합(Union Products)에서 일하는 돈 페더스톤은 정원을 분홍색 홍학 장식품으로 채웁니다. 페더스톤은 이 플라스틱이 먼 미래에 가장 예술적인 장식품이 될 것이라고 믿었죠. 그리고 그 즈음, 앤디 워홀이 이 장식품 생산에 투자를 하면서 홍학은 시대를 관통하는 장식품 모델이 됩니다. 당시 돈 페더스톤의 홍학 장식품은 2000만 개가 팔렸습니다.



2. 스누기(Snuggis)

팔 부분 소매를 만들어 앞으로 입을 수 있게 한 거대한 담요인 스누기는 발명 이래로 2000만 장이 팔렸습니다. 스누기를 만든 스콧 보일렌(Scott Boilen)은 어떤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발명품을 어떻게 광고해야 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옷인지, 담요인지 구분이 안되는 다소 이상한 모습의 스누기는 그 엉뚱한 모습에 더 불티나게 팔렸으니까요.



3. 이지(esay) 버튼

이지 버튼은 한 광고에서 등장한 버튼인데요. 소비자들이 광고 속 제품에 열광하면서 실제 제품으로 나왔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그건 참 쉬웠어”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아무 기능도 없지만 이 제품은 첫 해에 150개가 팔렸습니다.



4. 트럭 넛츠(Truck nuts)

캐드 톰빌과 데이비드 햄은 10년간 터무니 없는 아이디어를 주고 받으면서 자주 다퉜는데요. 그 결과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제품이 바로 트럭 넛츠입니다. 이 제품은 자동차를 더 단장하게 해주는 기이한 악세사리인데요. 네, 사실 그냥 요상한 악세사리입니다. 그런데 이 제품은 매년 무려 50만 개가 팔립니다.



5. 노래하는 물고기

200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던 이 제품은 ”걱정마, 행복해질거야(Don’t Worry, Be Happy)”와 “강으로 데려가줘(Take me to the River)” 노래를 부르는 물고기입니다. 가수 알 그린이 이 물고기의 음악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 사실이 믿겨지시나요?




6. 아이 폴트(iFart)

뽕뽕 쿠션의 현대판 버전입니다. 조 콘은 이 아이 폴트 앱으로 하루에 1000만 달러를 벌여들였습니다. 이 앱이 할 수 있는 건 뽕뽕 소리를 내는 것 뿐이데요. 2008년 12월 앱이 출시된 뒤로 무려 4만 번 다운로드 됩니다.



7. 펫 락(Pet Rock)


고양이나 강아지를 돌보는데 시간을 쓰기 아깝다면 펫 락이 제격일 겁니다. 1975년에 개발된 펫 락은 돌을 애완동물처럼 기를 수 있도록 이야기를 입힌 상품입니다. 돌이 들어있는 상자에는 숨 쉬는 구멍이 있고 돌이 잘 수 있는 침대도 있는데요. 4달러에 판매된 이 돌덩어리 제품은 무려 150만 개가 팔렸습니다. 제품을 개발한 게리 다헬은 그 덕분에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고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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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뉴스24

<아이뉴스24>

[안희권기자] 애플은 지난주 기업시장을 겨냥해 야심차게 준비한 12.9인치 대화면 아이패드 프로를 공개했다.

아이패드 프로는 고성능 애플칩 A9X를 탑재해 아이패드 에어2보다 CPU 성능이 1.8배, 그래픽 처리 성능이 2배 향상됐으며 노트북을 뛰어넘는 데스크톱 수준의 컴퓨팅 능력을 구현한다.

애플은 데스크톱 수준의 성능과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타이핑을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스마트 키보드,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애플펜슬을 접목해 아이패드 프로를 기업용 모바일 기기 가운데 최고의 성능과 기능, 효용성을 두루 갖춘 제품으로 만들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아이패드로 기업시장을 장악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장 분석가들은 새로운 기기 도입에 소극적인 기업 고객의 특성과 아이패드 프로의 높은 가격을 이유로 애플의 기업 시장 장악을 비관적으로 봤다.



◆기업고객 모바일 기기 도입 꺼려

시장 조사업체 포레스터 리서치에 따르면 태블릿 시장은 개인용 태블릿의 시장 포화로 성장 정체에 빠진데 반해 기업용 태블릿의 비율은 올해 14%에서 2018년 2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애플은 최고 성능과 기능을 갖춘 아이패드 프로로 기업 시장을 공략해 단말기 판매를 늘려 매출 성장을 꾀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업 고객은 소프트웨어를 변경하거나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갖추고 있지 않은 고가의 기기 도입에 소극적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데이터를 유닉스나 윈도 시스템을 저장하고 있고 전사적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공급망관리(SCM) 등을 포함한 복잡하고 중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운용하고 있다.

애플은 기업 환경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기 위해 IBM, 시스코 등과 제휴를 맺고 공동으로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있으나 성과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사용자 정의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기업은 기기를 iOS로 바꾸는 것에 부정적이다.

포레스터 리서치 애널리스트 제이피 가운다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미션크리티컬한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을 애플 기기에서 사용할 수 없다"며 "이런 호환성 문제로 기업 기술 도입 결정 담담자들 중 42%가 iOS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를 선호하고 있고 iOS를 지지하는 비율은 16%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가격

또 다른 걸림돌은 아이패드 프로의 가격이다. 아이패드 프로의 가격은 799달러부터 시작하지만 169달러 스마트 키보드와 99달러 애플펜슬을 포함할 경우 1천달러를 넘어선다. 소비자들이 대부분 128GB 모델을 구입하고 있어 이 경우 128GB 와이파이 모델의 가격이 999달러, 4G 겸용 모델이 1천79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총 구입비용은 1천347달러에 이른다.

이는 다른 아이패드보다 2배가 넘는 가격이고 MS 서피스 프로보다도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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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O 캐피털마켓 수석 애널리스트 키스 버크만은 "아이패드 프로의 가장 큰 적은 가격"이라며 "이 제품은 뛰어난 실용성과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가격 문제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애플은 단가 하락으로 인한 아이패드의 매출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패드 프로에 높은 가격을 책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판매량보다 수익성을 먼저 고려한 것.

애플은 2012 회계연도에 아이패드 5천830만대를 판매했으며 이 당시 평균 판매가는 531달러였다. 2년후 아이패드 판매량은 6천800만대로 늘었지만 평균 판매가격이 456달러로 떨어져 총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

2015 회계연도는 평균 판매 가격이 420달러로 떨어지고 판매량도 줄고 있어 매출은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아이패드 프로는 가격이 799달러에 스마트 키보드와 펜슬을 포함할 경우 평균 판매가격이 1천달러에 이른다.

애플이 내년에 아이패드 프로를 1천만대 판매할 경우 1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연간 매출이 100억달러를 넘어서면 아이패드가 아이폰을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기기 호환성과 가격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한 애플이 아이패드 프로로 1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안희권기자 arg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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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성연광 기자] [애플·아마존·구글, '게임' 특화 스마트TV 출시 잇따라…엔터테인먼트로 新시장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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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위로 즐기는 '위스포츠' 게임 패키지 사진 /출처=닌텐도.
# 2006년 세상에 첫 등장한 '닌텐도 위(Wii)'. 당시만 해도 게임 업계와 사용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 손에 쥔 리모콘으로 거실 TV 화면을 향해 휘두르거나 제스처를 취하는 것 만으로 테니스, 볼링 등 스포츠 게임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었던 것. 전용 보드에 올라가 TV가 시키는 대로 요가 동작을 따라하며 신체 단련도 할 수 있다. 거실 TV를 이용한 이 게임들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그 인기는 예년만 못하지만 당시만 해도 거실 TV가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진화될 가능성을 제시해주기엔 충분했다는 평가다.

그로부터 10년 뒤 과거 '닌텐도 위 신화' 재현에 나선 진영이 있다. 바로 스마트TV다. 영화나 교육 VOD(주문형비디오) 위주로 콘텐츠를 선보여왔던 스마트TV 서비스 기업들이 '가정용 게임'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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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애플TV. /사진제공=애플 홈페이지.

애플이 오는 10월 말 출시할 '애플TV' 신제품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애플TV는 음성인식 '시리' 탑재 외에 게임을 특화 기능으로 내세우고 있다.

애플TV와 함께 제공되는 터치 리모콘에는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도계가 탑재돼 있다. 이를 이용하면 '닌텐도 위'처럼 TV앞에서 각종 제스처를 취하는 것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게임 그래픽 구동을 위해 A8 프로세서도 탑재했다.

지난 10일 애플 신제품 발표 당시 에디 큐 애플 수석 부사장은 "콘솔 게임에서나 즐기던 게임을 이제 TV를 통해서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TV 가격은 32GB 모델 기준 149달러(18만원)다. 애플TV 출시와 맞물려 관련 게임 서비스 앱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존도 게임 기능에 특화된 스마트TV 셋톱박스 '파이어TV'를 내달 5일 출시한다. 가정내 TV와 연결하면 넷플릭스, 훌루 등 인터넷 스트리임 서비스는 물론 게임까지 즐길 수 있다. 게임 전용 컨트롤러가 지원되며 32기가바이트(GB) 저장 공간과 마이크로 SD카드 슬롯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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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파이어TV'. /사진제공=아마존 홈페이지.

앞서 구글이 지난 5월 국내 시장에 출시한 '넥서스 플레이어'도 안드로이드 셋톱과 게임 콘솔이 결합된 기기다. 게임 패드를 연결할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게임 패드처럼 사용할 수 있다. 8GHz 인텔 아톰 실버몬트 쿼드코어 CPU와 파워VR 시리즈6 GPU, 1GB 메모리, 8GB 저장용량을 제공한다.

이처럼 스마트TV 진영이 게임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데는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기 때문. 기존 인터넷 콘텐츠와 영화, 방송 VOD 위주의 스마트TV 서비스로는 더 이상의 수요 확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게임 엔터테인먼트는 기존 '보는 TV'와 다른 '즐기는 TV'로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스마트TV 업계가 가정용 게임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닌텐도(위), 소니(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 등 기존 가정용 게임기기(콘솔) 업계와의 시장 충돌도 예상된다.

그러나 당장의 시장 경쟁 강도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들 스마트 TV의 하드웨어 사양과 성능이 아직 콘솔 게임 기기들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임용 스마트TV 시장이 당분간 고사양 게임보다는 캐주얼 게임이나 스포츠 게임 등 일부 장르에 제한될 것이라는 분석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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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데일리

- 신규진출 계획 없는 기업 73%…시장정보부족·비싼 물류비 등 원인 꼽아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국내 수출중소기업 절반 이상은 중미지역 6개국(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더라도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이들 기업 중 10곳 중 7곳 이상은 중미지역 진출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0일 “수출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한·중미 6개국 FTA 업종별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FTA 체결 후에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이 58.0%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FTA가 발효되더라도 신규 진출계획이 없는 기업은 73.7%로 조사됐다. 신규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도 응답기업의 5.0%에 지나지 않아 중미 6개국에 대한 중소기업의 관심이 저조한 편으로 나타났다.

자료= 중소기업중앙회
신규진출 계획이 없는 이유로는 ‘시장에 대한 정보부족’이라는 응답이 34.4%로 가장 많았고 △물류비 등 높은 진출 비용(26.2%) △협소한 시장규모(20.8%) △지리적 거리(9.0%)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수출중소기업의 32.3%는 중미 6개국과의 FTA 체결로 경영활동에 유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의료기기·의약업종의 경우 65.4%가 경영활동에 유리할 것이라고 답하고 53.8%는 중미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미 6개국과의 FTA 효과 극대화(복수응답)를 위해서는 ‘전시회 참가지원’(63.3%), ‘중미 6개국 바이어미팅 주선’(53.2%), ‘통관애로 해소’(25.3%), ‘시장·투자 정보제공’(19.0%)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김태환 중기중앙회 국제통상실장은 “중미지역은 지리적으로 멀고 언어장벽으로 인해 시장정보 접근이 어려워 중소기업들의 관심이 적다”며 “전략업종 중심으로 중미지역 시장개척단 파견 및 전시회 참가지원 확대를 통해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미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료= 중소기업중앙회
뉴스1
부산항에 정박한 컨테이너선에 컨테이너를 선적하고 있다. (뉴스1DB)2015.7.1/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중기중앙회, 중기 대상 한·중미 6개국 FTA 인식 설문조사

(서울=뉴스1) 양종곤 기자 = 중소기업은 한·중미 6개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드라스 등 중미 6개국은 21일 1차 FTA 협상을 시작한다.

20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수출중소기업 300개를 대상으로 한·중미 FTA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32.3%가 FTA 체결 시 자사 경영활동에 유리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시장 내 가격경쟁력 개선이 53.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중남미 내수시장 진출기회 확대(44.3%), 원자재 및 부품 수입단가 인하(22.7%) 등이 뒤를 이었다.

기업이 영위하는 업종별로 기대감 차이가 컸다. 의료기기 및 의약업종 기업은 65.4%가 경영에 유리하다고 답했고 53.8%는 중미시장 진출 계획까지 세웠다.

반면 58%는 한·중미 FTA 체결 후 자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FTA 발효 시 신규진출을 희망한다고 답한 비율은 5%에 그쳤다. 이들은 정보부족(34.4%)을 비롯해 높은 진출비용(26.2%), 협소한 시장 규모(20.8%), 지리적 거리(9%) 등을 진출의 걸림돌로 꼽았다.

한·중미 FTA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중미 내 개최되는 전시회 참가지원이 63.3%로 가장 많았다. 중미 바이어미팅 주선(53.2%), 통관애로 해소(25.3%), 시장 및 투자 정보제공(19%)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태환 중기중앙회 국제통상실장은 "중미지역은 지리적으로 멀고 언어장벽으로 인해 시장정보 접근이 어려워 중소기업의 관심이 아직 낮다"며 ""중미지역 시장개척단 파견·전시회 참가지원 확대를 통해 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미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gg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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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추석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신나게 쉴 수 있는 연휴이자 민족의 대명절입니다. 추석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친구들도 있을 텐데요. 평소 보기 힘든 친척들을 만나 인사할 때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몰라서 아무렇게나 불렀다가 부모님께 혼나는 경우도 있겠죠. 추석에 왜 모여야 하는지 모를 수도 있고요. 걱정 마세요. 소중이 여러분들을 ‘추석의 달인’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소중을 손에 꼭 쥐고 이번 추석만큼은 어른들께 칭찬을 풍성하게 받아보세요.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알겠는데 이름도 얼굴도 생소한 어른들을 만날 땐 어떻게 해야할까요. 물론 예의 바르게 인사를 드려야죠. 하지만 호칭을 몰라 그저 ‘안녕하세요’만 하던 그동안의 추석은 이제 잊으세요. 소중이 촌수 확인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우선 촌수 설명을 읽고 빈 칸에 친척의 성함을 적어 보세요. ‘나’를 기준으로 위에 있다면 항렬(손위·아래 세대 관계)상 윗사람, 아래에 있으면 아랫사람입니다.

사실 이 모든 빈칸을 채울 수 있는 독자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불러야 할 호칭이 복잡하고 많기도 하고요. 심지어 ‘종질’, ‘종손’ 등의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가친척이 모여 살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 서로 만나기도 쉽지 않아서죠. 친족은 자신과 혈연관계로 이어진 사람 중 일정한 범위 내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법률 용어입니다. 우리나라 민법 제777조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를 ‘친족’이라 규정합니다. 법에 따라 친족의 범위가 정해진 것이죠. 흔히 쓰는 삼촌·사촌과 같은 말은 바로 이 친족을 구분하는 항렬에서 생겨난 말이랍니다. 아무리 친해도 8촌의 범위를 벗어나면 법적으로 친족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옛날에는 9·10촌을 넘어가는
사람들도 친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요.

 
어마어마하게 많은 친족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4촌을 넘어가는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 없다시피 합니다. 5촌을 나타내는 이토고치가이(いとこちがい)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일상에선 거의 쓰이지 않아요. 미국·영국 등의 서양에서는 아예 단어조차 없죠. 정 필요할 경우 사촌·친척을 나타내는 ‘Cousin’에 second·third를 붙이기는 합니다. 한국·중국처럼 친족에 대한 의식이 강한 나라는 드문 것이죠. 최근 저출산 현상으로 가족 구성원의 수 자체가 줄어들며 우리나라도 친족의 개념이 과거에 비해 희박해지고는 있습니다.

친족간 호칭이나 촌수를 계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호칭을 외우기는 힘들어도 촌수 계산 자체는 쉽다는 소리죠. 나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숫자 1을 더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사촌(4촌)은 나의 위에 있는 아버지(+1), 그 위의 할아버지(+1), 할아버지의 자식인 큰아버지·작은아버지(+1), 이들의 자녀인 사촌(+1)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총 4의 숫자가 더해져 4촌이 되는 원리예요. 5촌 역시 아버지의 4촌이
기 때문에 4+1=5가 되는 것입니다. 추석 연휴 때 친족들의 촌수를 계산하며 제대로 된 호칭을 불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중앙일보

[기본적인 차례상 차림. 진설법은 가문과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집 안 가득 퍼진 맛있는 냄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잘 익은 과일과 보기만 해도군침 도는 산적에 손이 슬쩍 올라갑니다. 아차차! 오늘은 안 됩니다. 아무리 식탐이 나를 지배하려 해도 말이죠. 조상님들에게 우리 가족을 무사히 보살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는 날이니까요. 조상님께 인사를 건네는 제사상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또 기제사상과 차례상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옛날 옛적, 농사를 짓기 시작한 조상님들은 농사란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정성을 다해도 가뭄이 들거나 태풍이 오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죠. 고민하던 조상님들은 자연의 신에게 농사를 잘 되게 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제천의식입니다. 여러분이 역사 교과서에서 배울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이 바로 제천의식이죠. 하늘과 땅·바람·비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절을 올렸던 제천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상을 기리는 제사로 정착됩니다.

오늘날 제사는 크게 기제사와 차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의식으로 집 안에서 예를 지키며 주로 돌아가신 날 0시 무렵에 지냅니다. 차례는 원래 차를 올리면서 예를 다한다는 의미로 ‘차 다(茶)’를 써서 ‘다례’라고 불리다가 ‘차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4대 명절인 설날·단오·추석·한식 당일 이른 아침에 대대로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조상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죠. 지금은 보통 종손의 집에 모여 지냅니다.

차례는 절기(봄·여름·가을·겨울) 행사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명절에 따라 상에 올리는 음식도 차이가 있죠. 설날은 한 해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흰 떡국을 올리고 추석에는 햅쌀(그 해 추수한 쌀)로 밥을 짓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어 올립니다. 기제사와 차례상의 상차림은 일반 잔칫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상님께 ‘잔치를 벌려 공경하는 마음을 전한다’는 의미를 담아서죠.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에 담긴 의미

차례상에는 절기별로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인 송편이 그중 하나죠. 소나무 잎을 넣고 떡을 쪄 소나무 송(松) 자를 따 ‘송편’이라고 부르는데요,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살라는 뜻입니다. 반달 모양은 점점 켜져서 꽉 찬 보름달처럼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죠. 삼색나물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뿌리를 먹는 도라지는 과거를, 줄기를 먹는 고사리는 현재를, 잎을 먹는 시금치는 미래를 상징하죠. 과거·현재·미래가 골고루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제사상은 의식을 치르는 상차림이기 때문에 음식을 놓는 자리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이를 ‘진설’이라고 합니다. 법칙이긴 하지만 가문과 지방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제사상 첫 줄에는 과일을 놓는데요. 과일 놓는 순서를 동조서율(東棗西栗)이라고 하기도 하고 조율이시(棗栗梨枾)라고 하기도 합니다. 한자 때문에 어려워보이지만 뜻을 알면 쉽습니다. 동쪽 동(東), 대추나무 조(棗), 서쪽 서(西), 밤 율(栗)의 한자를 써 동쪽에는 대추, 서쪽에는 밤을 놓으라는 소리죠. 붉은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니 색이 비슷한 대추는 동쪽, 서쪽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뜻을 가진 밤은 서쪽에 놓으라는 의미예요.

조율이시는 대추나무 조(棗), 밤 율(栗), 배나무 이(梨), 감 시(枾)를 말합니다. 대추 씨는 하나니 왕을 뜻하고, 밤은 껍데기 속에 알이 셋 들어있어 3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뜻하고, 배는 씨가 6개라 6판서(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를, 감은 씨가 8개라 팔도관찰사를 의미한다고 해서 순서를 대추-밤-배-감 순으로 놓는 것이죠. 배와 감의 순서를 바꾸는 집안도 더러 있는데,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왔어요.

제사가 끝나 친인척끼리 모여 음식을 나눠먹는 것을 ‘음복’이라고 부릅니다. 조상의 덕을 기리는 마지막 절차인 셈이죠. 차례를 지내는 방식은 가문과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모두 하나겠죠. 이번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며 마음 속으로 ‘조상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을 평온하게 보살펴주세요’라고 빌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송편 만드는 법

쫄깃한 송편을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떡 속에 깨·콩·밤 등 다양한 소가 들어가 골라먹는 재미도 있죠. 송편은 햅쌀로 만든 추석의 대표 음식이에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예쁜 송편 만들기 게임을 해 보는 것도 추석의 묘미입니다. 복스러운 송편을 만들어 올 추석 송편의 아이콘이 되어 보세요.

1단계 소 준비하기 소는 송편에 들어가는 재료로, 밤·깨·콩·거피팥 (흰 팥) 등을 주로 쓰며
설탕·꿀·소금으로 간을 해 다양한 맛을 만들죠. 밤은 삶아 속을 벗겨 으깬 후 설탕과 소금을 넣고 조려주고, 깨는 볶아 찧은 다음 꿀이나 설탕, 소금으로 간을 해 버무려주세요. 콩은 삶아 껍질을 까서 소금·설탕으로 간을 하고, 거피팥은 삶아 으깬 후 설탕·소금·계피가루를 넣고 뒤적여줍니다. 이외에도 단호박·대추 등 넣고 싶은 재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2단계 떡 반죽하기 방앗간에서 갈아온 멥쌀을 소금과 섞어 체에 한 번 걸러주세요. 멥쌀가루가 고와져 더 쫄깃해집니다. 체에 거른 멥쌀가루에 끓인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익반죽합니다. 익반죽은 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하는 것을 말하는데 곡물 속의 전분을 풀어줘 끈끈한 점성이 생기게 해요. 익반죽을 잘해야 쫀득쫀득한 떡을 만들 수 있죠.

3단계 송편 빚기 익반죽 한 떡을 밤톨 크기로 떼어내 동그랗게 만들고, 엄지손가락으로 가운데를 움푹하게 만든 후 소를 담아요. 속을 채우고 입구를 엄지와 검지로 붙여가며 반달 모양을 만들어요. 소를 너무 많이 넣으면 반죽이 터지거나 소가 새어 나오니 양을 조절하는 것 잊지 마세요. 가족 모두 나눠 먹는 음식인 만큼 정성을 다해 예쁜 모양으로 빚어 보세요.

4단계 송편 찌기 김 오른 찜통에 면보(헝겊)를 깔고 솔잎을 가지런히 놓은 후 송편을 붙지 않게 일정한 간격으로 올려주세요. 그 위에 다시 솔잎을 깔고, 송편을 올리는 방법으로 3~5층을 쌓으면 됩니다. 뚜껑을 덮고 18분 정도 쪄낸 다음 빨리 찬물에 담갔다 건져내야 쫄깃함이 살아있는 떡이 된답니다. 물기를 뺀 후 서로 붙지 않게 참기름을 발라주면 완성입니다.

 

중앙일보

[승경도 놀이는 주사위인 윤목을 굴려 5개의 말을 움직이며 높은 관직을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윤목 대신 윷을 사용할 수 있다.]

윷놀이는 식상하고, 컴퓨터 게임은 눈치가 보입니다. 심심한 연휴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소중이 멋진 게임을 소개합니다. 조선 시대 양반집 아이들이 즐겨 놀았던 조선판 보드 게임 ‘승경도 놀이’입니다. 승경도는 ‘벼슬살이를 하는 도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종이에 조선 시대의 관직 이름을 적고 ‘윤목’이라 불리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에 따라 등급을 올리거나 내리는 놀이죠. 잘못하면 관직을 박탈당하거나 사약을 먹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스릴이 넘칩니다. 조선 초기 관료 하륜(1377~1416)이 양반집 자녀들에게 관직 체계를 가르치고 학구열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게임 자체도 재미있어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군관 송희립·김대복을 불러 승경도 놀이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 승경도는 무척 복잡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승경도 놀이 자료를 보면 약 300개의 관직이 경직(중앙관리)과 외직(지방관리)로 구분돼 등급별 칸에 그려져 있고, 칸마다 종9품부터 정1품까지의 벼슬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윤목 대신 윷을 굴려 ‘도·개·걸·윷·모’로 정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최고 관직에 오른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죠. 온 가족이 모여 조선 시대의 관직 이름도 배우고 재미도 찾을 수 있는 승경도 놀이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놀이방법 · 규칙

신분(놀이 순서) 정하기 유학(초입문)에서 신분을 가린다.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윤목 혹은 윷을 굴려 은일·문과·무과·남행·군졸의 순으로 정한다.
게임 진행 은일부터 윤목(윷)을 굴려 나온 수에 따라 해당하는 관직을 찾아 말을 옮겨 간다. 다른 사람과 벼슬이 같아져도 잡거나 잡히지는 않는다. 가장 먼저 봉조하에 오르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파직과 사약 높은 벼슬에서 잘못하면 파직(관직에서 물러나게 함)을 당할 수 있다. 복직(물러났던 관직에 다시 종사함)할 수도 있으니 실망하지 말자. 다만 사약을 받으면 패자부활 기회 없이 놀이에서 빠져야 한다.
인사권 인사권을 얻으면 한 사람을 지정해 공주판관이나 강원도 관찰사로 보낸다. 종3품 이하의 당하관이면 공주판관으로,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면 강원도 관찰사로 보낼 수 있다.
양사법 판서 이상의 관리 중 한 명을 파직시킬 수 있다.
백의종군 백의종군이 되면 군졸부터 다시 시작한다.
성은 임금의 성은을 입으면 같은 품계 내에서 원하는 벼슬로 옮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정1품이라면 영의정·좌의정·우의정 중 골라 말을 옮긴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도움말=국립민속박물관, 사진·게임제공=해와하늘(www.summersk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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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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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ㆍ세계 물가 비교…서울, 71개 도시 중 17위·임금은 35위

서울 물가(임대료 포함)가 세계 71개 주요 도시 중 17번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의 임금 수준(세후·구매력 기준)은 중간인 35위로 나타났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가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2015 물가와 소득’ 보고서에 따르면, 임대료가 포함된 뉴욕(미국) 물가를 100으로 봤을 때 서울은 64.2로 17위에 올랐다.

뉴욕에 이어 스위스의 취리히와 제네바가 2·3위에 랭크됐다. 서울은 런던(79.5), 시드니(72.5), 도쿄(70.6)보다 낮았지만 파리(63.8), 뮌헨(56.1), 상하이(54.3), 베이징(53.2)보다는 높았다. 물가가 가장 싼 곳은 소피아(불가리아)로 30.3이다.



임금 순위에서 서울은 66.4로 35위에 자리했다. 취리히(135.1), 제네바(128.3), 룩셈부르크(123.8)가 1~3위다. 로스앤젤레스(121.1), 도쿄(94.7), 런던(80.4), 파리(80.2)는 서울보다 높았고 상파울루(61.3), 모스크바(36.3), 베이징(25.4)은 서울보다 낮았다.

빅맥 물가에서 서울(18분)은 홍콩(9분), 도쿄(10분), 뉴욕·시카고·제네바(11분) 등에 이어 31위다. 최하위는 173분인 나이로비(케냐)다. 빅맥 물가는 빅맥 한 개를 사기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이다. UBS는 1971년부터 임금과 물가에 대한 보고서를 3년 주기로 발간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나이로비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버는 수입은 시간당 41달러를 받는 취리히 근로자의 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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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AP=연합뉴스)
日집단자위권법 통과 보도…中관영매체는 "군국주의 향한 발걸음" 비판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집단자위권법(안보법제)을 19일 제·개정한 데 대해 주요 외신들은 일본이 해외에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특히 안보법제 정비로 일본에서 상당한 논쟁과 반발이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전후 70년간 유지해온 일본의 평화주의 노선이 크게 변하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 관영매체들은 집단자위권법 통과로 일본의 평화주의가 버려졌을 뿐만 아니라 과거 군국주의로 돌아가는 길을 열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日국회의사당 앞의 대학생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집단 자위권 법안(안보법안)의 강행 처리가 임박한 18일 오후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대학생들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5.9.18 jhcho@yna.co.kr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분석기사를 통해 "과거 전쟁 기계를 부활시키려는 아베의 발걸음이 일본의 평화주의 이상을 박탈해버렸다"고 전했다.

신화는 또 별도 논평을 내고 "일본이 새로운 전쟁 태세로 과거 군국주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강경파이자 역사수정주의자인 아베 총리가 '전쟁 버튼'을 보유하게 되면서 일본의 군사적 입장이 잠재적으로 더 위험하게 됐다"고 성토했다.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사설에서 집단자위권법 통과를 '도발'로 규정하고 "더 강력한 군대를 키워 일본의 도발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CNN방송은 '일본이 평화주의를 버리다'라는 제목의 온라인판 기사에서 "일본 상원이 논란이 많은 안보법제를 처리, 자국 군대가 외국 전투에 제한적으로 관여할 수 있게 했으며 이는 70년에 걸친 평화주의에 중요한 변화"라고 전했다.

AP통신도 "2차 세계대전 이후 묶여 있던 자위대의 역할이 논란거리였던 집단자위권법 통과로 느슨해졌다"면서 "이는 일본의 헌법에 대한 재해석이며 근본적으로는 자국 군대의 사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 변화"라고 지적했다.

일본 집단자위권 법률 정비 완료…대서특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주도로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안보관련법률이 19일 제·개정됐다. 일본 주요 일간지가 19일 조간 1면에 안보법안이 성립한다는 전망을 크게 실었다. 참의원 표결을 거쳐 이날 오전 2시18분께 법안 가결이 선언됐으며 원고 마감시간의 제약 때문에 법안이 성립했다는 결과가 아닌 성립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2015.9.19 sewonlee@yna.co.kr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일본 의회가 시위대 수천 명의 항의에도 아베 총리의 숙원이던 법안을 최종 승인, 해외에서 자국 군대의 역할을 확대했다"며 "이로써 일본 정부는 2차대전 후 처음으로 국외 충돌 상황에 자국군을 사용할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도 "일본군인들이 또다시 해외에서 싸울 수 있게 됐다"면서 "이번 집단자위권법 통과가 2차대전 이후 일본의 대외·군사 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또 높은 반대 여론과 대규모 반대 시위에도 아베 정권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법안을 강행 처리한 처사에 대해 '민주절차를 이용한 비민주적 법안 처리'라는 일본 학계의 비판을 소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집단자위권법으로 일본이 자국 방위에만 군대의 역할을 한정해오던 정책을 뒤집었다고 전하면서, 법안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긴 정치적 대립과 반대시위로 아베 총리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문가 전망을 함께 소개했다.

inishmore@yna.co.kr
입력 2015.9.20 00:09 / 수정 2015.7.17 13:07

일본, 70년 만에 ‘전쟁 가능한 나라’ 복귀

 [안보법안 통과에 박수 치는 일본 참의원]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안보법안이 19일 새벽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된 직후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 등 여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19일 오전 2시18분 집단적 자위권 법제화 등을 담은 안보 관련 11개 법 제·개정안이 찬성 148표, 반대 90표로 일본 참의원(상원)을 통과했다. 자위대법·무력공격사태대처법·국제평화협력법·중요영향사태안전확보법·선박검사활동법·미군행동관련조치법·특정공공시설이용법·해상수송규제법·포로취급법·국가안전보장회의설치법 등 10개 법안이 개정됐고, 국제평화지원법이 제정됐다.

특히 개정된 무력공격사태대처법에 따르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를 ‘존립위기사태’로 규정해 자위대가 타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은 그동안 평화헌법 9조에 따라 자위 차원의 실력행사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해외에서 무력을 행사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수만 명의 일본 시민이 법안에 반대하며 시위를 했지만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외에 차세대당 등 군소 3개 야당까지 가세해 법안을 강행처리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과 그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호하고 전쟁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입법”이라며 “우리 자녀와 후손들의 평화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해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개정 법률이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평화헌법 9조에 위배된다는 위헌 논란 후폭풍이 불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함에 있어 한반도 안보와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서 우리 측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유지해 온 평화헌법의 정신을 견지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반대의견을 밝혔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며 안보정책을 바꾼 것은 평화·발전·협력의 시대 조류와 전혀 맞지 않다”며 “일본이 역사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일본 국내외의 정의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정중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국무부는 “동맹을 강화하고 지역적·국제적 안보활동에 적극적 역할을 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입력 2015.9.20 02:09 / 수정 2015.7.17 13:07

‘일본 역할 확대’ 미국 뜻 실현 … 동북아 군비경쟁 우려 커져

[전쟁할 수 있는 일본] 달라지는 동북아 안보 지형

040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총재인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여당이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안보법안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이에 따라 동북아 안보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향후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를 둘러싸고 군비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일 간에 자칫 국지전 발생 가능성도 거론된다. 무엇보다 북한의 전면적 도발이 일어날 경우 1945년 해방 이후 일본군이 다시 한반도에 들어올 가능성도 완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명찬(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일본 게이오대 국제정치학 박사)은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가는 길을 착착 밟아 온 일본의 외교안보 전략과 정책을 연구해 온 학자다. 그에게 이번 법안의 의미, 아베 총리의 의도, 앞으로 동북아와 한반도에 끼칠 영향 등을 들었다.

-일본 국민의 강한 반대에도 안보법안을 강행 처리한 아베 총리의 의도는.
“아베 정권의 숙원은 ‘전후 레짐(Regime·체제)으로부터의 탈각(脫却·벗어남)’이다. 전후 레짐이란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의 전승국인 미국의 일방적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평화헌법 9조에 따라 형성된 ‘자학(自虐)사관’이 만연한 일본을 지칭한다. 일본 우익세력은 현재의 일본이 미국의 반(半)식민지이고, 이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헌법을 개정해 명실상부한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라고 줄곧 주장해 왔다. 아베 총리의 숙원은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사실상 날치기 처리 이후 일본에서 예상되는 정치적 후폭풍은.
“헌법학자들 대다수가 위헌이라고 인식하는 안보법안이 통과됐지만 이를 무력화하려는 일본 국내의 반발은 계속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아베 총리는 중의원과 참의원 해산을 통해 신임을 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총선에서 야당의 대응이 이후 일본 정치의 흐름을 결정할 것이다. 문제는 소선거구제도에서 분열된 야당으로는 아베 정권의 질주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 정세에 줄 영향과 함의는.
“경제대국 일본이 가까운 미래에 군사대국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곧바로 세계 정세에 위협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질 경우 군사적 충돌 위험성은 더 커졌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중·일 간에 국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주변국과의 군비 경쟁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 입장에서는 전략적 계산에 넣어야 할 또 하나의 군사대국이 이웃에 등장한 의미가 있다.”

-미국은 환영 성명을 냈는데, 미국이 기획하고 아베 총리가 실행한 것 아닌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징벌적인 개혁을 일본에 강요했다. 하지만 냉전이 시작되고 50년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일본 헌법 9조를 개정해 군대를 창설하도록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당시 총리를 압박했다. 요시다 총리는 이에 반발하고 경무장(輕武裝)과 경제 우선이라는 ‘요시다 독트린’을 발표했다.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전수(專守)방위’를 자위대의 역할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90년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요구해 왔다. 그 요구가 25년의 세월을 거쳐 이번에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아베 총리는 내심 미국의 군사적 요구를 들어주면서 반대급부로 역사 문제에서 미국이 일본 편에 서 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안보법안은 북한 위협 대응이 주요 목적인가, 궁극적으로 중국의 팽창을 겨냥한 것인가.
“일본의 안보법안이 지향하는 보통국가화는 결국 일본의 국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군사력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전후 엄격하게 금지해 왔던 군사력의 외교적 수단화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경제력 쇠퇴로 약화된 국가경쟁력을 군사력으로 보완하려는 것이다. 군사력의 외교적 수단화에 있어 대상은 단기적으로는 북한이나 중국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든 국가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법안의 본질이다.”

-일본이 31년 만주사변을 도발한 기념일(9월 18일) 밤에 법안을 강행 처리해 중국이 더 반발하고 있다.
“일본 우익이 역사 문제에 그만큼 무신경함을 보여 주는 일례로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도 2013년 5월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일본 관동군의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자위대 비행기에 탑승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비판받았다.”

-중국 외교부의 대응 수위를 어떻게 보나.
“중·일 양국 관계를 대국 관계로 인식하고, 패권 다툼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대응할 것이다. 센카쿠 열도 문제로 양국 관계가 가장 악화됐을 때도 중·일 정상회담이 두 번이나 열렸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중국과 미·일이 대치하는 구도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미·중 관계가 반드시 충돌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의 위협 때문에 일본 안보법안은 한국에 ‘양날의 칼’ 같은데.
“만약 북한 문제를 잘못 처리해 무력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한·미 연합군의 힘만으로 부족함을 느낀다면 일본의 도움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미군의 전투력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우려는 이러한 경우를 방지하는 노력으로 대치돼야 할 것이다. 이번에 한국 외교부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논평 수위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일본의 조치를 환영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다시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데.
“북한 문제를 잘 관리해 무력 사용 없이 평화적 통일을 달성한다면 일본 군대가 다시 한반도에 진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우리의 현명한 대응이며 끝까지 추구해야 할 국가 목표일 것이다.”

입력 2015.9.20 02:09 / 수정 2015.7.17 13:07

유사시 주일 미군 한반도 파병 땐 자위대 후방 지원 가능

[전쟁할 수 있는 일본]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안보법안이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되기 직전인 18일 밤 도쿄 의회 앞에서 ‘전쟁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뉴시스]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19일 오전 2시18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정부가 참의원 본회의에서 11개 안보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들에 대해 일본 내는 물론이고 한국과 중국, 북한 등에서 우려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 법안들이 국가 정책수단으로서 전쟁을 포기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한국 내 주요 언론들은 이들 법안에 의해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이 됐다고 경계하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들도 연일 이 법안들이 “군국주의 재생의 위험성”을 갖는 것이라 보도하고 있다.

반면 법안 강행을 관철한 아베 정권과 이를 지지하고 있는 일본과 미국 내 안보 전문가들은 이 법안들이 일본의 억제태세를 강화시켜 일본 및 아태 지역의 안정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법안들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상반되는 평가들이 나오는지 객관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군 외 타국군도 군사시설 이용 가능
소위 안보 관련 11개 법안은 이번에 개정 대상이 된 자위대법·국제평화협력법·중요영향사태안전확보법·선박검사활동법·무력공격사태대처법·미군행동관련조치법·특정공공시설이용법·해상수송규제법·포로취급법·국가안전보장회의설치법 등 10개 법안과 새로 제정된 국제평화지원법 등을 가리킨다.

이 법안들의 내용을 보면 공통으로 두 가지 경향이 발견된다.

첫째, 이 법률안들은 일본이 직면하게 될 안보 위기사태를 일본에 대한 직접무력공격사태·중요영향사태·존립위기사태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각각의 경우에 육·해·공 자위대와 항만·비행장 등을 관리하는 국가기관, 해상보안청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미군행동관련조치법은 종전에 상정되던 무력공격사태뿐 아니라 존립위기사태에 처해서도 미군 행동과 관련해 일본이 지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했고, 특정공공시설이용법은 무력공격사태나 존립위기사태 시 미군 이외 타국군도 항만과 비행장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해상수송규제법도 종전에 적용되던 무력공격사태뿐 아니라 새롭게 규정된 존립위기사태에 있어서도 해상수송을 규제할 수 있게 개정된 것이다.

둘째, 국제평화협력법 개정안과 새롭게 제정된 국제평화지원법은 유엔 주관의 평화유지활동(PKO)이나 여타의 국제평화활동에 참가하는 일본 자위대가 외국 군대들이 수행하는 군사 및 비군사활동에 대해 후방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련 국가 공격 받을 때도 자위권 행사
원래 이 안보법제들의 상당수는 1997년 9월, 미·일 간에 방위협력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면서 책정된 것이다. ‘미·일 가이드라인 1997’은 일본에 대한 직접무력사태뿐만 아니라 주변사태, 즉 일본의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본 이외 지역에서의 유사사태 발생 시에도 미·일 간 안보협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제시한 바 있었다. 이러한 주변사태 개념을 적용해 99년과 2000년에 주변사태안전확보법·선박검사활동법이 제정됐고, 2003~2004년 무력공격사태법·해상수송규제법·미군행동원활화법·교통통신이용법·국민보호법·포로취급법 등의 소위 10여 개 유사 관련 법제가 성립됐다.

그런데 잘 알려진 바처럼 아베 정부가 재등장하면서 그동안 평화헌법과 전수방위 원칙하에서 행사가 금기시돼 왔던 집단적 자위권을 2014년 7월의 각의 결정을 통해 용인하게 됐다. 다만 아베 정부는 연립여당인 공명당 등의 반발을 고려해 종전에 적용되던 직접적 무력공격사태 및 주변사태 개념과 구별되는 ‘존립위기사태’라는 경우에 한해 집단적 자위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해 이로 인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권이 근저에서 무너질 명백한 위험이 있는 ‘존립위기사태’에 다른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 필요 최소한도의 무력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세 가지 원칙을 밝힌 것이다.

시민단체선 “아베가 헌법 위반” 반발
이같이 ‘존립위기사태’라는 개념하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용인됨에 따라 아베 정부는 기존 10여 개 안보법안에 대한 개정에 착수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종전의 주변사태 개념을 ‘중요영향사태’로 변경하고, 그에 더해 ‘존립위기사태’라는 상황을 추가하면서 일본이 개별적 자위권뿐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자위대와 일본 국가기관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들을 기존 법률안에 추가한 게 이번에 성립된 안보법제들인 것이다.

다만 일본 시민단체와 헌법학자들은 안보 관련 법제들의 근간이 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용인이 전쟁을 국가 정책수단으로 부정하고 있는 현행 일본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에 더해 헌법 개정이라는 정당한 절차 없이 해석 변경만으로 안보법제 성립을 강행한 아베 정부의 일방적 정치수순에 대한 불만도 더해지면서 전례 없이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안보법제 채택 등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가 한반도 안보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지를 냉정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일본이 규정하는 무력공격사태·중요영향사태·존립위기사태 등의 상황에서 일본이 미·일 동맹하에서 한반도에 대해 어떤 정책을 전개할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의 설명에 의하면 무력공격사태란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나 공작선 침투를 통해 직접 일본의 영해와 영토를 침범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없이도 자위대법에 규정된 방위출동 개념에 의해 미사일을 요격하거나 공작선을 격퇴하는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2001년 12월에 북한 공작선이 일본 연안에 침투했을 때 일본 해상자위대가 관련 법에 따라 격침시켰다.

한반도 영토·영해·영공 접근 못해
중요영향사태(종전의 주변사태)란 예컨대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에 분쟁이 발생해 미군과 한국군이 북한과 교전에 돌입한 경우를 가리킨다. 이 경우 일본은 중요영향사태안전확보법 등에 의해 전방에 투입되는 주일미군 등을 후방 지원할 수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일본은 한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북한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영해 및 영공에 대한 자위대의 접근과 무력행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존립위기사태란 일본의 미사일 방어를 담당하는 미국 함선에 대해 북한이 공격을 가하거나 미국을 향해 발사한 북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공역을 통과하는 경우를 가리키고 있다. 이 경우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공격이 아닐지라도 일본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논의를 거쳐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해 미국 함선에 대한 공격을 물리치거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아베 총리는 한국이나 북한 영내로 자위대를 파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호르무즈해협 등 다른 지역에서 미국 등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이 행사된다고 해도 직접적 무력공격 참가는 불가하고 자위대의 역할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세 가지 원칙에 따라 후방 지원에 한정될 것이라는 설명도 하고 있다.

이같이 새로 성립된 안보법제들과 그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해석을 분석하면 집단적 자위권 개념하에서 일본의 무력행사 상황이 확대된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 안보에 직접적 위해가 되는 요소들은 그다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의 무모한 군사도발에 대한 억제태세 강화, 나아가 한·미 동맹의 운용태세 강화에 이어지는 요소들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북한 언론에서 주장하듯이 군국주의로 회귀한다고 보는 관점도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유엔 회원국으로서 미·일 동맹을 견지하고 있는 21세기의 일본이 국제연맹과 주요 군축회의 등을 탈퇴하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을 가상 적국으로 삼아 전쟁을 벌였던 30년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아태지역 재균형 노려 환영
현재의 일본은 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추구하던 보통국가의 길, 즉 경제력에 상응하는 안보 역할의 국제적 확대를 추구하는 노선을 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때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였던 독일과 이탈리아가 지금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의 일원이 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중동 지역 등의 국제분쟁에 참가하고 있는 수준의 보통군사국가가 일본 안보정책 변화의 지향점이 되고 있다고 보인다.

이 같은 보통군사국가의 노선은 아태 지역에서 재균형정책을 전개하면서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제어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것이다. 올해 4월에 미국과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개념이 반영된 신가이드라인을 공표한 것은 일본의 보통군사국가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 입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안보법제가 갖고 있는 한반도 안보상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위안부를 포함한 역사 문제에 대해 미심쩍은 입장을 취해 오고 불필요하게 영유권 문제를 제기해 온 일본의 태도로 인해 그 안보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쉽게 해소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이 진정 독일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21세기 보통군사국가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우선 역사나 영유권 문제로 촉발된 근린 우방들로부터의 불신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일본의 안전보장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 될 것이다.

 

입력 2015.9.20 02:09 / 수정 2015.7.17 13:07

日, 집단 자위권 행사하려면 주변국 신뢰 얻어라

사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일본의 안보 법안이 결국 성립됐다. 어제 새벽 일본 자민당은 참의원 본회의에서 야당의 반발을 누르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군대를 보유하고 필요 시 무력을 사용하는 정상국가가 돼야 한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뜻이 관철된 것이다.

아베의 말대로 정상적인 국가라면 집단적 자위권의 제도화와 행사가 문제될 게 없다. 국제적으로도 인정된 국가 고유의 권한이다. 하지만 일본은 침략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로 1945년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한 뒤 무력행사의 포기를 명기한 평화헌법을 채택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일본 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개헌을 하기엔 현실적 장벽이 높으니, 헌법을 우회하기 위해 만든 게 이번 안보법제다.

그동안 자민당 정권 내부에서도 위헌 소지를 감수하고 안보 법안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적 안정성은 관계없다”는 초법적 발언들이 공공연하게 나오지 않았나. ‘해석개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장기불황에서 벗어나려는 아베노믹스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않는 이상 정권의 앞날을 예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앞으로 이름만 자위대인 일본군이 언제 파견되고, 어느 상황에서 누구에게 무력을 행사할지는 일본 정부의 주관적 판단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민감한 정책결정엔 숙의(熟議)와 함께 견제·비판 기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번 법안 통과 과정을 보면 어떤가. 56%의 투표율과 48%의 득표율로 무려 76%의 의석을 점유해 구성된 자민당 정권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지 않았나. 집단적 자위권의 실질적 행사에서도 그런 폭주 현상이 재연된다면 국내외의 냉엄한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의 안보 법제를 비난하거나 경계만 할 일은 아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우리의 안보이익을 해친다고는 보기 어렵다.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 등 군사도발 위협을 되풀이하는 북한에 대한 억지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전면 부정하진 않는다. 외교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한반도 안보와 우리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 관해서는 우리 측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반도에서 우리의 의도와 국익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일본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제에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동북아 공동의 안보 이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미·일이 보다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인 시각차를 해소하는 일도 중요하다.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의 법제화를 ‘적극적 평화주의’로 부르지만 침략의 피해를 기억하는 나라들은 ‘잠재적 군국주의’로 바라볼 여지가 있다. 게다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과거사와 영토 문제도 변수다. 당장 새누리당이 어제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하지 않았나.

이런 분위기를 고려해 일본은 이웃에서 제기된 감정적 경계론을 의도된 과민반응으로 넘기지 말고, 설득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변국의 이해를 구하지 못하면 ‘국제공헌’이라는 슬로건은 의미를 잃고 만다. 집단적 자위권이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길이 될지, 군국주의 회귀로 비난받는 표적이 될지는 일본 지도자의 역량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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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9.20 01:09 / 수정 2015.7.17 13:07

‘불의 고리’ 50년설 근거 약해 … 지하수 과다 개발이 문제

칠레 대지진과 ‘불의 고리’ 수수께끼

지난 17일(현지시간) 칠레의 통고이 해변에 쓰나미에 떠밀려온 어선이 박혀 있다. 이날 칠레 중부 앞바다 해저에서는 규모 8.3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통고이(칠레) AP=뉴시스] 지난 17일(현지시간) 칠레의 통고이 해변에 쓰나미에 떠밀려온 어선이 박혀 있다. 이날 칠레 중부 앞바다 해저에서는 규모 8.3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통고이(칠레) AP=뉴시스]

지난주 칠레 중부 코킴보주 앞바다 해저(남위 31.5도)에서 규모 8.3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해저 대지진으로 해저의 동쪽 지층이 들어 올려지면서 쓰나미(최대 파고 4.7m)로 이어졌다. 칠레는 후안페르난데스 해산열을 경계로 북쪽 비화산대(코킴보주 일원)와 남쪽 화산대(산티아고 일원)로 나뉜다. 이번 대지진은 인구가 적은 북쪽 비화산대에서 발생했다. 그 후 발생한 여진도 인구밀집지역인 남쪽 화산대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고, 북쪽에서만 발생하고 있다. 지진과 화산활동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불의 고리(Ring of Fire)’란 무엇일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우리 지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땅 움직일 때 지구 속 고온 물질 요동
지구는 맨틀 위에 떠 있는 판(plate)이라고 불리는 10여 개의 땅조각으로 나뉘어 있다. 판들은 극지방의 빙하처럼 끊임없이 여기저기로 움직인다. 움직이는 속도는 연간 수㎝ 내외로 우리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하다. 대륙이 이동한다는 설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1915년 독일의 지질학자이자 기상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다. 대서양을 동서로 마주하고 있는 대륙을 서로 붙여보면 양쪽 대륙붕 해안선들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할 뿐만 아니라 지층과 화석대도 대륙 간에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1960년대 초 아이슬란드 남쪽의 대서양 중앙해령(해령은 해저의 바다산맥)의 지자기탐사에 의해 사실로 입증됐다.

지구는 평균 반경이 6371㎞로, 깊이 들어감에 따라 지각(10~30㎞)→맨틀(30~2900㎞)→핵(2900㎞ 이하) 순으로 이뤄져 있다. 압력이 높아지면 물질의 끓는 온도도 같이 높아진다. 높은 산에서 밥을 지으면 밥이 설익지만 압력밥솥을 이용하면 밥을 빨리 지을 수 있는 이치다. 주로 규소와 마그네슘 산화물(페리도타이트)로 이뤄진 땅속의 맨틀도 깊이 들어갈수록 온도가 증가하지만 고체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고체와 액체의 상변이는 매질에 따라 다르다. 맨틀 물질의 경우 대체로 80~200㎞ 지점에서 물렁물렁한 성질을 갖고 있다. 상부 맨틀 내에 존재하는 이 지대는 지진파가 통과할 때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저속도층 혹은 연약권으로 불린다. 움직이는 땅덩어리라는 것은 단단한 지각과 저속도층 상부의 ‘최상부 맨틀’로 이루어져 암권(lithosphere)이라 부르며, 저속도층 위를 움직이는 판의 단위체다.

땅덩어리들이 움직이는 이유를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구 땅속이 뜨거운 물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주전자에 물이 끓을 때 들여다보면 물이 요동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는 주전자 바닥의 물이 뜨거워져 분자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가벼워져 위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를 열대류라고 부른다. 내부 온도가 섭씨 4000도에 달하는 맨틀 내에는 대류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맨틀은 고체여서 물질 자체가 상승하는 대신 지표 쪽으로 상승하는 에너지, 즉 맨틀 열대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지표의 암권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상부 맨틀 내 압력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녹아 마그마가 만들어진다. 용암물질이 솟아나와 땅이 양쪽으로 벌어지면 이 부분을 해령이라 한다.

이 용암물질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지각보다 무거워 낮고 광활한 해저대지를 이룬다. 이것이 지표면적의 3분의 2나 차지하는 해양지각이다. 즉 야구공 실밥처럼 지구를 길게 둘러싸고 있는 해령은 지구상에서 맨틀이라는 재료를 써서 해양지각을 만드는 공장인 셈이다. 결국 맨틀의 대류운동은 지구 속의 뜨거운 열을 바닷물로 식히는 지구자연계가 택한 효율적인 방법인 셈이다. 우리가 수돗물을 떨어뜨려 주전자 물을 식히는 방법과 비슷하다.

칠레는 안데스산맥 서안을 따라 분포하며 지질학적으로 이른바 ‘불의 고리’ 동남단에 위치한다. 60년 5월 22일 칠레 해안가 테무코시(남위 38도)에 발생한 규모 9.5의 대지진은 지난 100여 년간 지진계측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인근 해저로 전달된 쓰나미는 칠레(3000여 명)뿐만 아니라 미국·일본·필리핀 등 태평양을 끼고 있는 국가에 수백 명의 인명피해를 남겼다. 인류 지진계측 역사상 규모 9 이상의 지진이 5번(52년 캄차카, 60년 칠레, 64년 알래스카, 2004년 수마트라, 2011년 동일본) 있었는데, 모두 불의 고리에서 발생했다.

1402불의 고리서 규모 9 이상 지진 5번
불의 고리는 화산들이 줄지어 있는 모양이 반지처럼 둥글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지구상 90% 이상의 지진이 여기에서 일어난다. 대서양·동태평양 등의 중앙해령에서는 새로운 해양지각이 탄생하고 있다. 즉 불의 고리 가운데 위치한 태평양-남극대륙 중앙해령(Pacific-Antarctic Mid Ocean Ridge)에서 탄생한 해양지각이 오래된 해양지각판을 고리 바깥쪽으로 밀어낸다. 고리 경계부까지 밀려난 무거운 해양지각은 결국 가벼운 유라시아나 북미 및 남미대륙 지각판 경계부 아래로 들어가 소멸되면서 일으키는 화산과 지진대인 것이다. 요컨대 불의 고리는 땅덩어리들이 충돌하는 곳으로 판 경계부와 정확히 일치한다.

오늘날 인류의 산업활동과 저수시설, 지하수의 과다 이용으로 곳곳에서 많은 지진이 발생한다. 이를 저류암 유발지진(RIS·Reservoir Induced Seismicity)이라고 부르는데, 물이 주변 암석의 기공에 침투해 암석의 공극압을 낮춤으로써 암석의 파괴가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67년 인도 중부 코이나(Koyna) 지역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보고된 바 있다. 바닷물을 산안드레아스 단층 속으로 주입해 인공지진을 일으키려던 악당을 소재로 한 영화도 이 원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 요인을 제외하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진이 특별히 증가했다는 증거는 없다. 지진 전문가들은 지진계측기술의 발달과 지진계의 지구촌 보급 확대로 상대적으로 많은 지진이 관측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 인류가 지진계를 사용해 지진을 관측한 것은 100년 남짓이다. 더욱이 20세기 전반기는 두 차례에 걸친 전쟁과 복구로, 지진계측이 체계적으로 이뤄진 것은 겨우 50~60여 년에 불과하다. 적어도 지금보다 10배 이상 기간의 꾸준한 지진자료가 구축되었을 때 신뢰성 높은 지진 주기 스펙트럼을 구할 수 있다. 50년마다 불의 고리에서 대지진이 발생한다는, 이른바 ‘불의 고리의 50년 주기설’은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판단된다.

한반도, 보호막 둘러싸였지만 안심 못해
학술적으로 홀로세(1만1700년 전~현재)에 활동한 이력이 있는 화산을 활화산이라고 한다. 한국은 백두산·제주도·한라산·울릉도 성인봉이 있다. 화산은 마그마의 성분과 규모, 분화 형태에 따라 크게 다른데 그중 백두산이 현실적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화산이다. 10세기 백두산 대분화는 홀로세 이래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적어도 수십 년에 걸쳐 이 일대의 역사와 생태계의 단절을 가져왔다.

10억 명의 경제권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북아는 도시인구 집중화와 첨단산업단지, 핵발전시설들이 조성돼 있다. 이는 초대형 화산 재해 측면에서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 민족에겐 백두산 분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백두산이 일본화산열과 같은 판 섭입대 화산임에도 불의 고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불의 고리에 존재하는 화산에 비해 분화 가능성은 작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는 판구조적으로는 판경계부인 일본 열도와 중국 히말라야 습곡대라는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상대적으로 초대형 지진의 피해에서 비켜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말은 아니다. 인도판과 태평양판에서 작용하는 동서 압축응력의 일부가 한반도 안쪽으로 스며들어 축적되기 때문이다. 78년 규모 5.2의 홍성지진이나 신라 혜공왕(서기 779년) 경주 지진이 그 예다.

최근 지진은 주로 한반도의 약한 단층대를 따라 발생하는 특성이 있어 내진설계나 부지 설정 시 철저한 지질조사와 전문성을 요한다. 지진은 진앙지의 지질 특성, 내진시설 여부, 인구 밀도와 구성, 사전대비 훈련, 발생 시간대 등에 따라 그 피해는 다르게 나타난다. 국민·전문가·정부의 긴밀한 소통이 핵심이다. 평소 충분한 연구와 시설보강, 교육, 훈련을 통해 11명의 사망자에 그친 칠레 대지진에서 배워야 할 점이기도 하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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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SUNDAY

“한국이 아프리카인의 자립을 위해 공업단지를 조성해 주면 좋겠다.”

2011년 11월 넬슨 만델라(1918~ 2013)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고향 쿠누의 자택으로 찾아온 한국 기업인에게 한 말이다. 단순한 투자 권유가 아니었다.

“과거 50년간 구호활동 명분의 원조형 지원은 아프리카인의 영혼을 빼앗고 자립의지를 훼손시켰다. 아프리카에 필요한 건 단순 원조가 아니다. 자립정신을 키워 주고 스스로 필요로 하는 걸 생산토록 하는 거다.”

이 말을 들은 이는 박광기(현 부사장) 당시 삼성전자 아프리카 총괄. 그는 삼성의 쿠누 지역 교회 신축·기증으로 만델라와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4년, 만델라의 꿈이 한국에서 틀을 갖추고 있다. 그것도 한국과 유엔의 꿈까지 보태면서. 이른바 ‘범아프리카 한국형 산업단지 구축 프로젝트’(이하 아프리카 공단)다. 정부·유엔의 지원 아래 한국의 30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함께 2030년까지 아프리카 빈곤국에 공단 30개를 세우자는 것이다. 현지에선 기아 퇴치와 지역 개발을, 한국에선 기술인력 파견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내겠다는 구상이다. 새마을운동의 원리도 접목된다.

현재 아프리카 주재 경험이 있는 국내 대기업의 전·현직 임원, 개발협력·도시계획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13년 8월 ‘아프리카 기아퇴치연구단’을 만든 데 이어 올 6월엔 프로젝트를 주도할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를 열었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도 지원하고 나섰다. SDSN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의 차별화된 경제 개발 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해 기아 퇴치는 물론 자립의 기초를 조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며 “국제사회가 지원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1차 목표는 25~27일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할 예정인 ‘2030 지속가능발전 어젠다’의 세부 시행사업으로 선정되는 것이다. 2030 어젠다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지구촌이 힘을 합해 빈곤 근절, 국가 간 불평등 완화, 지속가능 경제 발전 등을 이뤄 내자는 국제협력계획이다. 정상회의엔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이 대거 참석한다. 양수길(전 OECD 대사) 한국SDSN 대표는 이 사업에 대해 “2030어젠다에 대한 국가적 대응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정부와 유엔이 돕고 대·중소기업이 손잡으면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성공하면 공단당 3만 명, 30개 공단에서 90만~100만 명을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광기 부사장은 “전체의 30%를 국내에서 파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대 30만 개의 해외 취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베이비부머 명퇴자, 청년 실업자가 고용 대상이다. 한상백 경희대 취업진로지원처 팀장은 “근무환경·급여가 적절하면 일자리 갈증을 해결하는 매력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양 대표는 “지속가능발전 추진체제를 정비하고 아프리카 공단사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앙SUNDAY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17개의 공동적 지향목표와 169개의 이행목표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UN2030지속가능발전어젠다와 한국’ 콘퍼런스. [사진 SDSN코리아]
1400만 명이 본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는 독일에 광부로 나간다. 깊고 어두운 탄광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덕수가 벌어 온 돈은 가족의 생계수단이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광복 70년, 덕수를 독일에 보냈던 한국은 선진국 대접을 받는 나라가 됐다. 지구촌 최빈국에서 외국의 도움과 수많은 덕수의 힘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난 한국은 이제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됐다. 동시에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청장년 실업 문제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덕수는 배운 것, 가진 것 없고 나라도 가난해 광부가 됐지만 지금 우리에겐 능력과 기술을 갖추고도 일자리가 없는 청장년이 상당하다.

 

‘범아프리카 한국형 산업단지 구축 프로젝트’(이하 아프리카 공단). 한국이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가난한 나라에 공단을 세워 ▶빈곤 퇴치 ▶시장 개척 ▶좋은 일자리 창출을 하자는 사업이다. 공단은 한국 정부 및 유엔·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아래 국내 30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손잡고 추진한다.

사업을 추진하는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공단을 단계적으로 조성한다는 목표다. 국내에 민관 합동기구를 만든 뒤 아프리카에 시범 공단을 세울 계획이다. 이어 국제사회의 참여를 유도해 ‘세계 기아퇴치 민간기구’(가칭)를 만들어 지구촌에 곳곳에 공단을 늘려 가겠다는 것이다.

연구소 박광기(프로젝트 리더·삼성전자 부사장) 전문위원은 “아프리카 공단 프로젝트가 앞으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구체적 시행사업의 하나로 채택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선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하라 이남 빈곤지역에서 우선 추진 연구소는 아프리카 기아 밀집지역에 공단 30개를 조성한다는 목표다. 사업은 3단계로 추진한다. 1단계는 극빈국에 생필품 공단을 세운다. 2단계는 개발도상국으로 대상을 확대, 생필품뿐 아니라 중화학제품도 만든다. 3단계는 국제사회의 본격적인 동참을 통해 지구촌 곳곳으로 공단을 늘려 간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전력 공급, 용수 처리, 산업폐기물 처리, 주거시설 구축 같은 인프라 조성을 담당한다. 중소기업은 가공식품·생활도구 같은 생필품을 만든다. 공단은 수출형이 아닌 자급자족형으로 한다. 현지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다. 한국 농촌 발전의 원동력인 새마을운동도 접목한다.


공단이 성공적으로 조성되면 공단 한 개당 3만 명, 30개 공단에서 총 90만~10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다. 박 전문위원은 “전체 인력의 30%는 기술자 및 현장 관리·마케팅 인력으로 한국에서 파견한다. 30개 공단을 모두 합치면 총 30만 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범 단지 후보로는 에티오피아·모잠비크·가나가 꼽힌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관심이 높다. 지난 4월 대구에서 열린 세계 물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물라투 테쇼메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박 대표에게 생필품 공단을 세워 줄 것을 요청했다. 물라투 테쇼메 대통령은 “2016년에 시작되는 에티오피아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연결시켜 유엔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면 직접 유엔에 필요한 사항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아프리카 공단은 한국의 장점을 살린 효과적인 지원방식이다. 원조 대상국에서 공여국이 됐고 경공업부터 중화학공업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빈곤 퇴치운동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대표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의 경제 개발 경험을 전수해 기아 퇴치는 물론 경제 자립 토대를 조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 청장년에게 해외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000년대 7~8% 수준을 유지하던 청년 실업률은 올해 2월 11.1%로 뛰어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6월 청년 실업률은 10.2%로 전체 실업률(4.1%)의 두 배 이상이다.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곧 은퇴해야 하는데 2모작 인생계획 수립이 쉽지 않다. 2010년 경제활동 인구조사 기준으로 베이비부머는 732만6000명이나 된다.

범정부적 사업 추진기구 필요 한상백 경희대 취업진로지원처 팀장은 “근무 환경이나 연봉이 적절하면 아프리카 공단 프로젝트는 일자리 갈증을 해결하는 매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봉 한반도발전연구원 원장도 “양질의 해외 일자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한국이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지구촌 70%를 차지하는 150여 개도국을 새로운 주력 시장으로 만들고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중소기업중앙회 추문갑 실장은 “아프리카는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 한국에서는 사양산업이지만 현지에선 뜨는 산업이 될 수 있는 업종과 기술이 많다”며 “정부·대기업이 앞장서 준다면 중소기업은 환영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야심 찬 계획이나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가능하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교·원조·경제정책의 조화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 이익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제품과도 싸워서 이겨야 한다.

2011년 11월 남아공 중부지역 쿠누에 있는 만델라 자택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박광기 삼성전자 부사장. [사진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개발원조 담당부서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사업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범정부적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외교부 개별협력과 관계자는 “사업 규모가 크고 기업 경영과 연결돼 있어 특정 부처의 힘만으로는 힘들다”고 했다. 공단당 2000억~3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자금 조달도 과제다. 30개 공단이면 6조~9조원이 들어간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어야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다.

연구소 백현주 사무대표는 “공적개발원조(ODA) 자금, 대기업의 사회공헌 자금 등을 활용해 시범 공단을 시작하고 2~3년 내에 성공사례를 만들어 국제사회에 동참을 요구하면 이후 세계은행 개발자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창조경제혁신센터처럼 삼성·SK·CJ 등 어느 한 곳이 정부 지원 아래 시범 사업을 하면 경쟁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진상 덕성여대 국제개발협력센터장은 “어느 때보다 일자리 창출, 시장 개척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프리카 공단에 대한 유엔과 한국 정부·대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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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정상회의가 채택할 예정인 ‘2030 지속가능발전 어젠다’는 ‘사람과 지구를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헌장’이라고 불리는 국제협력 의제다. 세계 경영 패러다임을 인간 중심적이고 환경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변환시켜 나가자는 시도다. 특히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모든 나라의 국가 패러다임을 변환시켜 나가기 위한 행동계획으로 우리의 경제와 국가 경영에 끼치는 의의도 크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다행이고 또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젠다를 어떠한 시각에서 보고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한국이 지속가능발전 위기에 처해 있음을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동반자살은 한국의 절대 빈곤층과 빈약한 사회안전망의 현실을 보여 준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전개되고, 소득 분배는 나빠지고 있다.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중산층의 살림은 어려워지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노인 빈곤율이 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에 이른다. OECD 회원국 중 여성 취업률은 최하이고,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는 최고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의식은 아마 최하위권일 것이다.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의 증가 없이는 경제 성장도 이룰 수 없다. 공직사회와 정치권은 부패하고 무사안일하다. 시민사회는 분열돼 있고 무질서하다. 한마디로 한국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문제는 우리만이 아니다.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나라가 겪는 문제다.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령’, 이슬람국가(IS)의 대두, 난민사태, 각종 기상 재해 등으로 이들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모두 인구의 지속적 증가와 세계 경제의 끊임없는 성장, 자원 고갈 및 각종 폐기물 배출, 글로벌화에 따른 문제다.

이런 문제를 우리의 힘으로만 극복하기에는 벅차다.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 및 국가 경영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유엔의 ‘2030 지속가능발전 어젠다’는 이를 위한 대책이다.

이 어젠다는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169개의 세부목표(targets)로 구성돼 있다. 2030 어젠다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송파구 세 모녀와 같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거시적 지표에 의해 국가를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과지표를 성·연령·소득·장애·인종·지역 등으로 세분화해 목표를 추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SDGs 체제를 최대한 활용해 한국의 여러 위협요인을 종합적·체계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의 지속가능발전 추진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필요하면 SDGs 체제를 한국의 여건에 맞게 조정하고 국가 비전과 계획·예산·법체계 등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최고위 점검·평가기구로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기존 동명의 위원회를 대체해야 한다. 위원회를 정점으로 하되 각급 지방정부·시민사회·국회 등이 참여하는 다핵적 구조를 갖춰 SDGs를 공유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차원의 지속가능발전 협력에서 적극적 리더십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창의적이고 세련되고 효과적인 소프트파워를 구축하고 구사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동북아의 강대국들과 대등한 국제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는 길이다. 우리의 성공적 발전 경험이 자산이 된다. 몇 가지를 제시한다.

SDGs 달성을 위한 제반 국제협력에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에 적극 참여한다.

②공적개발원조(ODA)를 ‘현대화’한다. 현재 한국의 ODA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0.13%에 불과하다. 2030년까지 이를 0.7%로 높이기 위한 로드맵을 수립·발표한다. 아울러 외교부와 기획재정부로 이원화된 ODA 집행체제를 일원화한다.

③새마을운동 등 한국의 성공적 개발 경험을 개도국의 역량 개발을 위해 공유하는 ‘지식공유사업(KSP)’을 SDGs에 적응시켜 업그레이드한다. 현재 KSP 집행조직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내 국제개발센터(IDC)를 캐나다의 국제개발연구센터(IDRC)처럼 독립, 확대 운영하고 빈곤개도국 개발 문제 연구의 중심으로 발전시킨다.

④대학의 연구개발 역량을 활용해 현지에서 기술을 공동개발한다. 대기업의 경영자원을 활용해 빈곤개도국에 산업단지를 구축하고 운영을 지원한다.

SDGs 중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기후변화와의 투쟁이다. 이를 위해 녹색성장의 관점에서 적정한 장단기 자발적 저탄소화 방안을 도출해 토론하는 국제 공동연구를 추진한다.

⑥북한도 유엔 회원임을 감안해 북한과 함께 한반도에 대한 혹은 한반도를 포함하는 지역 점검·평가체제를 운용한다. 이것은 통일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⑦국민이 지속가능발전의 능동적 추진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속가능발전의 의미와 주요 과제 및 추진방안에 관해 교육한다. 

양수길 유엔 SDSN 국제전략이사 겸 한국대표
중앙SUNDAY

   

미디어오늘

[한국 재벌의 탄생과 세습 ⑤] "현대그룹 쓸어버리겠다"던 신군부에 맞서 정계진출, 보복성 세무조사에 정계은퇴

[미디어오늘 김유리 기자]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재방북을 준비하던 1998년이었어요. 갑자기 ‘내 나라 내 땅 가는데 판문점을 통해서 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요. 청천벽력이었죠. 1989년 첫 방북 때 일본과 평양을 거치는 항공편을 이용했던 정주영 회장이 두번째는 육로로 가겠다고 한거죠. 북에서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인데 ‘이봐, 해봤어?’ 기질을 아니까 우리로서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죠. 결국 정주영 회장이 ‘소 떼 방북’ 카드를 내놓으면서 육로 방문 길이 열렸습니다.”

김고중 전 현대아산 부사장이 지난 9일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김고중 전 부사장은 1990년대 후반 홍콩 지점에서 북경 지점으로 옮긴 후 정주영 회장의 재방북을 위해 북한과 접촉한 현대 측 인사다.

김 전 부사장이 소개한 일화를 통해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와 ‘창의적 문제 해결 방식’은 물론 그의 민족적 관심사를 두루 엿볼 수 있다. 도전정신과 뛰어난 창의력은 정주영 회장의 장점이었다.

1984년 2월 서산 간척 사업 현장에 선 정주영 회장. 사진=아산정주영닷컴


정주영 회장은 1915년 11월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6념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의 농사를 돕다 가출을 거듭했다. ‘소 판 돈을 들고 도망’한 때는 3번째고 4번째 가출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면서 창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적산 땅 불하받아 ‘현대’ 이름 사용한 자동차 공업사 설립

정주영 회장은 해방 후인 1946년 6월 군정청 산하 기관인 신한공사에서 적산 땅 200여평을 불하받아 서울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정주영 회장은 ‘현대’라는 사명에 대해 “우리가 때 벗게 한 번 지어본다고 한 게 ‘현대’였다. 자동차 수리공을 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생각한 것 같은데 자동차라는 건 ‘현대’ 문명의 이기다. 그리고 그 당시 자동차는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듬해 현대자동차공업사 건물에 ‘현대토건사’ 간판을 하나 더 달고 건설업을 시작했다. 1950년 1월에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해 현대건설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하청업체 3000여개 중 하나에 불과했던 현대토건사는 전쟁을 계기로 발돋움 했다.

1972년 11월 현대울산조선소를 참관 중인 정주영 회장과 전경련 산업시찰단. 사진=아산정주영닷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미군 공병대에서 통역을 맡았던 동생 정인영 덕분에 정주영 회장은 미군 관련 공사를 거의 독점으로 발주 받으면서 건설업을 키웠다. 이는 한국전쟁 후까지 이어져 교량 복구 등 전후 복구 사업을 수주했다. 1965년에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에 뛰어들면서 국내 최초로 해외 진출을 이뤄냈다.

1972년 정주영 회장은 울산에 현대조선소를 설립한다. 조선소 건설은 포항제철이 생산할 철을 대량으로 소비할 목적으로 박정희 정권이 정주영 회장에게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경제기획원 과장을 지낸 황병태는 저서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정주영 회장의 조선소 사업(박정희의 4대 핵심 공장 중 하나)에 대해서도 산업은행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졌다”고 전하고 있다.

정주영 회장은 미국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유지했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정인영은 미 군정기부터 형 정주영 회장을 도와 미국 쪽 업무를 맡았다. 미군 통역 장교를 지낸 정주영 회장의 둘째 동생 정세영의 도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유솜(미국경제협조처) 직원들을 자택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할 정도로 친분을 쌓아뒀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현대는 한국에서 철수하는 미국 포드사의 울산 자동차 공장을 인수 받아 현대자동차를 설립한다. 정주영 회장은 1971년 현대자동차ㆍ현대건설ㆍ현대시멘트를 총괄하는 현대그룹을 창립하고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1965년 1월 제2한강교 개통식에 참석한 정주영 회장. 사진=아산정주영닷컴


현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착공ㆍ서산 앞바다 간척 사업 등 굵직한 사업에서 성과를 내며 재계 1~2위로 발돋움 하게 된다. 정주영 회장은 당시 간척사업 현장을 찾은 기자들에게 “택시 운전을 하는 것보다 농촌에서 트랙터 모는 게 더 잘 사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주영 회장은 막바지 물막이 공사에서 ‘정주영 공법’(큰 유조선으로 급류를 막아 방파제를 쌓는 방법)을 개발하며 토목 건설학계에도 이름을 남겼다.

맏동생과의 의견 차… 계열 분리의 시작

정주영 회장의 독불장군형 경영 스타일은 종종 충돌을 빚기도 했다. 맏동생 정인영과의 의견 차이가 두드러진다. 정주영 회장이 ‘꼭 입찰을 따야 한다’고 했던 사우디 주베일 지역 산업항 건설에 정인영은 절대 반대했다.

울산에 조선소 설립 당시에도 정인영은 못마땅해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기획원 과장을 지낸 황병태는 저서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조선소 사업에 대해 말할 때마다 정인영은 손을 내저으며 ‘안 된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회고했다. 간극을 좁히지 못한 정인영 사장은 후일 독립해 한라그룹을 세운다.

정주영 회장은 정인영과의 불화를 제외하면 비교적 ‘조용히’ 계열 분리를 이뤄냈다. 사돈 댁에도 사업을 맡길 정도였다. 장남 몽필의 처남 이영복에게는 동서산업, 사위 정희영에게는 선진종합해운, 4남 정몽우의 처남 이진호에게는 현대 알루미늄 부회장, 5남 몽헌의 장인 현영원에게는 현대상선 회장, 8남 몽일의 장인 권영찬에게는 현대 중전기 회장 등을 맡겼다. 또 ‘기계박사’로 불린 매제 김영주에게는 한국프랜지공업주식회사를 맡겼다.

신군부 “현대그룹을 쓸어버리겠다” 위협

정주영 회장은 1977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았다. 1980년 쿠데타로 들어서 정당성이 약했던 신군부는 화살을 대기업으로 돌리면서 정권의 지지를 구하고 있었다. 당시 기업인들은 이전 박정희 정부의 군사정권과 신군부의 군사정권을 별개로 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경우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기업 지원에 적극적이었던데 비해 신군부는 반대였기 때문이다.

1985년 포니엑셀 신차발표회에 참석한 정주영 회장. 사진=아산정주영닷컴


이런 경향은 전경련에서 정주영 회장을 보좌했던 박정웅이 쓴 ‘이봐, 해봤어’에서도 드러난다. 박정웅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이후 전두환ㆍ노태우 정부까지 약 12년간 신군부 통치가 이어졌다”며 “한국경제에 있어 국민 경제적 당위성이나 자유시장경제 원칙보다는 집권 세력의 정치적 입장과 이권이 우선되던 시기”라고 평가한다.

정주영 회장도 전경련 회장으로서 정권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신군부 실세 그룹에서는 ‘공수부대를 동원해 현대그룹을 싹 쓸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가하면 정주영 회장의 전경련 회장 사퇴 압력을 넣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주영 회장은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창원중공업을 강탈당했다.

정주영 회장은 신군부를 거치면서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정주영 회장은 대선 출마 결심을 밝힌 자리에서 “그들은(신군부) 권력을 막강한 힘으로만 알지 막중한 책임에 대한 인식이 없다”며 “대단한 권력에 존경심을 품거나 그것을 부러워해 본 일이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정주영 회장은 78세가 되던 1992년 국민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창당 45일만에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은 31명의 의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주영 회장은 그해 대선에 출마했으나 3위에 그쳤다. 정주영 회장은 대선 패배 뒤 ‘정치 보복’ 성격의 세무조사를 받고 1993년 정계를 은퇴한다.

“소 1000마리 말고 1001마리”… 남북 관계 새틀짜기

말년의 정주영 회장은 재벌 총수로선 매우 독특한 발자취를 남겼다. 북녘의 강원도 통천이 고향이기도 한 정주영은 8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몰두했다. 정주영 회장의 1998년 방북 실무 작업을 했던 김고중 전 부사장은 “정 회장이 1987년부터 방북계획을 준비 했다”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주영 회장은 오래전부터 시베리아 원동지구 진출과 북한 금강산관광 사업 등 대북 경협 사업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정주영 회장은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 정책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8년 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모스크바에서 실제 면담을 했으며 1989년 1월 처음으로 방북의 꿈을 이뤘다.

1998년 정주영 회장이 소 500마리를 전달했던 2차 방북 행렬. 사진=민중의소리


육로를 통한 방북을 고집한 정주영 회장은 ‘소 떼 방북’이라는 카드를 내놓는다. 강인덕 당시 통일부 장관은 “정주영 회장이 ‘소 500마리에 501마리를 더해 북으로 보내고 싶다’는 뜻을 당시 대북 사업 책임자였던 정몽헌을 통해 전달해 왔다”며 “0이면 끝나는 숫자고 1이면 다시 시작하는 숫자로 금강산 사업 시작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에 ‘기업가의 구상은 특별하다’고 감탄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정주영 회장은 ‘통일소’라는 별칭을 얻은 소 500마리 1차분을 실은 트럭 50대를 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입성했다.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해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며 “전쟁이 나면 다 끝난다. 우리가 이뤄놓은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북한은 무인도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남북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강력히 드러냈다.

정주영 회장의 대북 사업은 금강산 관광개발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일각에서는 유전 개발사업을 추진했다는 정황도 제기된다. 금강산 관광개발로 대북 사업을 시작한 정주영 회장은 장기적으로 북한의 유전 개발을 구상하고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 방북하기 전 해인 1997년 6월 북은 남포 인근해역에서 450배럴의 석유를 생산했다고 발표했다. 김고중 전 부사장에 따르면 1998년 3차 방북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주영 회장 요청에 “북에서 석유가 나오면 현대에 주겠다”고 답했다.

현대는 1998년 11월 첫 현대금강산를 상업 출항 시켰지만 2008년 7월 관광객 박아무개씨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일환으로 추진됐으나 2003년 대북 송금 특검 정국에서 정몽헌 회장의 투신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은 자신을 “재벌이 아니라 성공한 ‘뇌’노동자”라며 친노동적 기업임을 강조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1989년 현대중공업과 2003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업체 노동자에게 ‘식칼테러’를 자행했으며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에는 77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했다. 또 현재도 매년 1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는 현대중공업은 ‘절망의 공장’이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소 떼를 몰고가는 정주영 회장의 웃는 얼굴 뒤로 반노동자적 재벌의 얼굴이 존재하는 셈이다.

(관련기사: 삼성과 매스컴 전쟁 벌이고 문화일보 창간)

▲ 현대일가 가계도도...............................................................................................

 

연합뉴스


분단 시절 동독은 베를린장벽 안쪽에 내벽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중 장벽인 셈이었다.(베를린 시내 내벽 전시공간서 촬영, 베를린=연합뉴스)
급변 상황서 긴박하게 대처하며 조기통일 완성

<※ 편집자주 = 현대사의 기적으로 불리는 1990년의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일이 2주일 남았습니다. 베를린장벽 붕괴에 이은 독일 통일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면서 전후 독일을 유럽의 중심국으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독일은 한때 통일 후유증으로 고통받았지만, 하나 됨의 저력을 토대로 유럽 최대경제국이자 리더십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옛 동·서독 지역 간 경제 격차와 마음의 장벽은 여전하지만 통일은 그보다 훨씬 큰 분단 비용을 줄이고 통합의 무한 잠재력을 독일인들에게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연합뉴스는 1989∼1990년 통일 과정과 조건, 과거 동·서독 지역 격차, 분단 시절 동독 탈출을 감행한 러브스토리를 4회에 걸쳐 전합니다.>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1987년 7월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에게 독일 통일은 100년은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1년 6개월이 흐른 1989년 1월 에리히 호네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서기장은 베를린장벽은 50년이나 100년은 더 버틸 것이라고 장담하며 그해를 열었다.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세력과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주의 블록 간 진영 대결 구도가 고르바초프의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무너지는 과정에서 나온 이들 예언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는 그들 스스로마저 이른바 현실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의 변화 속도와 폭을 가늠하지 못한 결과였고, 어떤 면에선 그런 변화에 대한 불길한 두려움을 자기 기만하는 주술적 레토릭이 가져온 필연이었다.

동독인들의 평화투쟁이 이끈 1989년 11월 9일의 베를린장벽 붕괴가 이듬해 10월 3일 독일 통일로까지 내달리는 데에는 불과 329일이란 시간 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베를린장벽을 넘으려다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그림이다. 공식 희생자만 136명이었다.(이스트사이드갤러리서 촬영, 베를린=연합뉴스)
20세기가 놀란 베를린장벽 붕괴의 낌새를 동독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 예배후 300명이 나선 1989년 3월 13일의 여행자유 요구 시위에서, 그리고 5월 2일 헝가리의 오스트리아 국경 통제 철조망 제거에서 알아차린 이는 거의 없었다.

그들 행위는 하지만, 1989년말까지 150만 동독인으로 서독으로 가고파 한다는 일요신문 벨트암존탁의 보도와 국경 탈주 발견 시 발포 행위를 중단하겠다는 힘 빠진 호네커 정부의 태도와 겹쳐 장벽 붕괴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독일 내부에선 5월 7일 실시된 동독 지방선거 부정이 동독인들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밖으로는 서독행을 원하는 동독 난민들이 프라하, 바르샤바, 부다페스트의 서독 영사관으로 몰려들면서 격랑의 정세를 예고했다.

안팎의 상황 변화에 맞물려, 이후 동독 평화혁명을 촉발한 니콜라이교회의 월요시위에는 9월 4일 1천 200명이 모이고, 9∼10월 지금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장벽 붕괴 후 가세한 민주약진 같은 저항적 야당 세력이 등장했다.

독일 당국이 통독사(史)를 기술할 때 '첫 번째 하이라이트'로 꼽는 10월 9일 라이프치히 월요시위에는 무려 7만 명이 운집했다. 이 시위는 그해 6월 천안문 사태와 달리 무력 진압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당시 고르바초프와 호네커가 탱크와 총칼로 짓밟고 나섰다면 모든 것은 끝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민중의 집단적 저항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역류시킬만한 힘이 그들에겐 이미 없었다는 진단과 함께다.

호네커가 결국 10월 18일 서기장에서 물러나고 에곤 크렌츠가 바통을 이어받는 동독 권력지형의 일대 변화는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호네커의 사임은 동독인들의 자유투쟁을 억제할 카드가 되지 못했다. 10월 말 동독 경제는 파산 상태라는 전문가 그룹의 진단이 나온 가운데 저항은 들불처럼 번졌고, 체코 정부는 동독인들의 서독행 진로를 열었다.

베를린장벽 붕괴 직후 '동방정책'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 연설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당시 "이제 함께하는 것은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연설하면서 동, 서독의 동반성장 가능성을 기대했다. (베를린 시내 장벽공원 사진전서 촬영, 베를린=연합뉴스)
지금 독일의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볼프강 쇼이블레 당시 서독 내무장관은 동독 정부에 수 십억 마르크의 경제지원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동독 정부는 새로운 여행법을 내놨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11월 6일 하루에만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에 각기 30만 명, 10만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공산정부를 반대했고, 이는 동독 내각의 총사퇴와 온건파 한스 모드로브 총리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며칠 뒤 11월 9월 귄터 샤보브스키 동독 정치국원의 동독주민 서독여행 상시허용 발표는 베를린장벽 앞으로 동독인들을 몰려들게 만들었고, 이들은 1961년 건설 이후 28년을 버틴 냉전의 철옹성을 현장에서 허물었다. 샤보브스키가 다음날 이후였던 발효 시점을 '당장'이라고 착각해 발표한 것이 장벽 붕괴의 직접적 계기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장벽 붕괴는 즉각 통일의 열망을 들끓게 했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동독 정부에 근본적으로 개혁하면 모든 것을 지원해 준다고 약속했고, 모드로브 동독 총리는 "변화는 되돌이킬 수 없다"며 현실을 직시했다. 그 사이 동독인들은 11월 20일 월요시위부터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라는 기존 구호에서 나아가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콜 총리는 11월 28일 독일과 유럽의 분단 극복을 위한 10개 정책 발표를 통해 단계적 통일 비전을 제시하고, 1990년 벽두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에게 통일 추진에 관한 협조 의사를 전달받는 등 주변국 설득 외교 채널을 가동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해도 모드로브 동독 내각은 파탄 난 경제를 살리며 서독과 공존하려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서독 역시도 동독을 자극하지 않고 적어도 겉으로는 공생을 도모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

콜 총리가 2월 15일 연방의회 보고에서 통일이라는 목표 지점에 가까이 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당시 서독 정부의 조심스런 태도를 방증한다.

그러나 콜은 앞서 2월 10일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나 독일 통일은 독일인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확인받고, 2월 24일에는 미국으로 날아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통독 추진 의사를 전하며 지지를 얻는 등 통독 행보에 속도를 냈다.

1990년 10월 3일 통일의 그날에 서독 연방의회 앞(독일연방정부 운영 홈페이지 이미지 복사, 베를린=연합뉴스)
이에 덧붙여 동독에선 3월 18일 첫 자유선거를 통해 콜이 이끄는 서독 기독민주당(CDU)과 함께하는 동독 CDU 주도의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 내각이 출범하면서 '조기통일론'은 탄력을 받았다.

그 기조에 따라 동·서독은 5월 '화폐·경제·사회통합 조약'으로 7월 통합 마르크화 사용을 발효하는 데 합의하고, 8월 말 900쪽 분량의 통일협정에 사인함으로써 통일로 급속히 내달렸다.

독일은 앞서 통일 달성을 위해 동·서독과 소련·미국·프랑스·영국 등 전승 4개국 간 '2+4' 회담을 수 차례 가동한 끝에 9월 12일 통독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잔류와 소련군 철수에 사인하는 등 외교적 문제를 마무리했다.

나치 정권이 일으킨 2차 세계대전 전후, 승전국인 미국 프랑스 영국은 서독 영토를, 소련은 동독 땅을 각기 점유한 가운데 동, 서독 정부는 군사와 외교 등 주권적 사항을 이들 국가에 의해 제약당하고 있었다. 그 점에서 2+4 조약을 통한 통독은 온전한 주권국의 거듭남이란 의미도 있다.

서독은 이 과정에서 통독의 군사력 위협을 우려하는 소련에, 통독의 나토 잔류 및 통독군 37만으로 제한 동의와 소련군 철수 비용 대가로 150억 마르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은 마침내 2일 동독 의회를 해산하고 3일 동독의 서독 편입을 공식 발효하면서 통일을 완성했다. 통일 독일은 직후, 2차 대전 패배 후 폴란드에 영토의 약 30%를 되돌려 주겠다며 그은 기존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을 확정하는 조약을 맺는 등 후속 작업도 매듭지었다.

uni@yna.co.kr

연합뉴스


동베를린 쪽 브란덴부르크문 앞 아들론호텔 로비에 치장된 고르바초프 사진(아들론호텔서 촬영, 베를린=연합뉴스)
이해강대국 설득이 키…2+4 회담 틀이 통일 성취의 견인차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벗어진 머리에 언뜻 봐선 한반도 모양의 검버섯이 선명하게 보이는 인상적인 소련의 정치 지도자가 20세기 후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1985년 3월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세기말 기적의 역사로도 불리는 베를린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이 현대사의 대사건이 과연 고르바초프 없이도 가능했을까.

베를린장벽 붕괴에 이은 독일 통일은 고르바초프에게 크게 빚 지고 있다는 게 독일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올해 통독 25주년을 맞아 베를린 시내에 있는 마우어파크(장벽공원)에서 고르바초프의 이름을 앞세운 거리 사진전이 열린 것은 그런 인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그의 등장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진영 대결 구도를 깨뜨리면서 국제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스탈린주의 망령이 깃든 교조주의 배격이라는 신(新)사고를 앞세워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두 축으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냉전을 녹였고, 이는 1989년 여름 폴란드와 헝가리의 공산체제 변혁과 상승 작용을 일으켜 동구 사회주의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국제정치 환경의 이러한 변화는 동독인들의 자유 열망과 폭압적 공산정권에 대한 저항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동독인들은 1989년 5월 서독행 루트였던 헝가리의 오스트리아행 국경 철조망 제거 이래 서독으로의 대탈출에 나섰고 부다페스트, 프라하, 바르샤바, 동베를린의 서독 대사관으로 몰려가 여행자유를 요구했다.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독일 방문(베를린 마우어파크 사진전서 촬영, 베를린=연합뉴스)레이건 대통령은 그해 6월 서독을 찾아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향해 "이 장벽(베를린장벽)을 허무시오"라고 연설했다.
또 동독 정부의 지방선거 부정이 기름을 부은 동독인들의 공산체제 저항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 11월 4일 동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앞으로 50만 시위대가 모이는 일로 발전했다.

동독 시민들의 평화투쟁은 사실상 동독의 군대 동원권을 쥐고 있던 소련의 양허 아래 폭력적으로 진압되지 않았다. 그것이 또한 고르바초프의 존재가 통독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 요인이었음을 뒷받침해주는 포인트다.

시민 저항은 동독 경제의 파탄 때문이기도 했다. 동독 전문가 그룹이 내놓은 '게르하르트 쉬러 보고서'는 동독 정부가 이미 경제적으로 파산에 이르렀다고 진단하고 전면적인 경제개혁이 필요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리히 호네커 공산정부는 경제개혁을 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동독 경제의 근거가 무너지고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함께 국제정치의 냉전 구도가 깨져가는 상황에서 동독인들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거리로 나섰고, 이를 '노이에스포룸' '데모크라티 예츠트' '민주약진' 같은 정당이나 정치조직의 만개를 가져왔다.

그러나 최근 사망한 에곤 바가 기초하고 빌리 브란트 총리가 이끄는 서독 사회민주당(SPD) 정권의 동방정책이 없었다면 통일은 또한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동방정책은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철학아래 냉전 완화, 그리고 소련과 동독을 위시한 동유럽과의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도모하는 기조였다.

미국 등 서방친화적 힘의 우위 정책을 지속한 콘라트 아데나워의 기독민주당(CDU) 정권에 이은 두 차례 CDU 정권의 동유럽 화해정책을 본격화했다는 의미에서 브란트의 이 정책은 신동방정책으로도 불린다.

냉전의 첨예한 전선이던 서베를린 시장을 지낸 브란트는 수 많은 말 보다 하나의 자그마한 실천이 중요하다면서 동베를린, 나아가 동독과의 자유왕래와 교류를 강조했고 이를 위해 통일보다는 평화공존을 앞세웠다.

이 정책은 동, 서독인들이 분단 상황에서 겪는 단절과 소외, 이질감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급격하게 통일로 쏠리는 과정에서 소련 설득 등 핵심적 지점에서 튼실한 기반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동방정책은 애초 통일을 장기적 과제로 보고 동, 서독이 평화공존을 통해 통일의 효과를 누리자는 발상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통독이라는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1990년 9월12일 '2(동,서독)+4(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조약 사인(독일정부 운영 홈페이지 이미지 복사, 베를린=연합뉴스)
1989∼1990년 통독 과정을 이끈 CDU의 헬무트 콜과 달리, SPD는 1990년 3월 동독의 첫 자유선거 때에도 점진적 통일론에 매달리다 선거에서 패배하고 통독 이후 통합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반면 콜은 1990년 들어 조기통일론으로 선회하면서 동·서독과 소련·미국·프랑스·영국 등 전승 4개국 간 2+4 회담 틀을 통해 통일 성취를 이끌었다.

당시 한스-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2+4 회담 틀에 대해 "2+4는 아마도 달리 말하면 2+0.5일 것"이라고 비유했다. 여기서 2는 서독과 소련이고, 0.5는 미국을 뜻했다. 전승 4국 중 가장 중요한 안방 열쇠를 쥔 쪽은 소련이었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와 영국은 거대 독일의 탄생을 두려워는 했지만 최종적으론 미국을 따를 수 밖에 없던 종속변수이고, 미국은 통독의 나토 잔류 같은 목표만 달성된다면 통독의 출현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문제는 소련이었던 셈이다.

콜 정부의 전방위 외교와 미국의 후견 아래 1990년 상반기에 들어서자 프랑스와 영국도 독일 통일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소련은 그해 7월 15일 유명한 '캅카스 회담'에 가서야 서독 정부에 통독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잔류, 통독군 37만 명으로 제한, 소련군 4년 내 철수를 합의하는 것으로 통독에 '최종' 동의한다. 소련은 캅카스 회담에서 통독의 핵 권리 포기도 다짐받는 것으로 강력한 통독의 군사력 부상을 경계했다.

서독이 치른 대가는 컸다. 1990년 4월에도 통독의 나토 잔류에 대한 지지를 소련에 구하면서 50억 마르크 제공을 약속한 데 이어 캅카스 회담의 추인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9월 12일 2+4 회담의 최종 사인과 관련해서도 150억 마르크의 지원을 확약했다.

통독은 2+4 회담의 타결로 사실상 완성됐다. 2차 세계대전 전승 4개국 중 미국, 프랑스, 영국은 서독을, 소련은 동독을 점유하고 주권을 제한하고 있었던 만큼 이 회담 타결을 통한 독일 통일의 완성은 온전한 주권국가 '독일'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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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이스트사이드갤러리 건너편 호텔 벽화에 있는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문구(베를린=연합뉴스)
"큰 부담 각오해야"…구동독 지원 위한 '연대세' 제도 성과 주목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SIND WIR EIN VOLK?(우리는 한 민족(국민)인가?)"

분단 시절 동독인들은 공산 독재정부에 저항하면서 "우리가 인민이다"를 외치다가 베를린장벽이 붕괴하고 나서는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통일로 나아갔다.

지난해, 1989년 11월 9일의 베를린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하며 독일 출판 시장에 나온 단행본 책자가 바로 그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바꾸어 동·서독의 격차를 다뤘다.

책은 알렌스바흐여론조사연구소의 동서독 인식 격차 조사를 실었다. 동독인(Ossi·오씨) 42%는 스스로 '2등 시민'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또 서독인(Wessi·베씨) 45%는 동독인들이 항상 불만에 차 있다고 말했다. 동독인 79%는 서독인들은 거만하고 돈만 밝힌다고 진술했다. 심지어 3분의 1은 통일을 동독의 식민지화로 여겼다.

독일 통일 25주년에 이른 올해 역시도, 동서독의 균형발전과 격차 이슈는 내내 동어반복일 수밖에 없다. 통일 그 자체는 성공의 역사이고 독일인들을 대체로 만족하게 하고 있다는 게 총론이다. 덧붙여 구동독의 동반성장이나 균형발전은 크게 진보했지만 미흡하며, 무엇보다 정신과 마음의 벽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요약이다.

'우리 한 민족인 거 정말 맞아'라는 도발적 질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아직도 심리적 장벽이 동, 서독인을 가로막는 현주소를 대변한다.

통일은 애초 큰 대가를 치르는 과업이었다. 통독 직전 해인 1989년 기준으로 동서독 전체 인구는 7천868만 명이었지만 동독은 서독 인구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의 30% 수준이었고, 산업구조도 3차 산업 중심인 서독과 달리 1, 2차 산업이 주류였다.

동독 경제 수준과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천문학적인 재건 비용이 필요했다. 통일 이후 6년간 공공부문에만 1조 1천700억 마르크(640조 원)가 투자됐다. 지금껏 동독 지역에 투입한 돈이 2조 유로(2천689조 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있다.

결과는 그래도 성공적이었다. 구동독 GDP는 구서독의 75% 안팎으로 상승했고, 물가 수준을 고려한 실질구매력과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따지면 최대 80∼90% 가량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1995년 즈음 달성된 그 수준이 이후 20년 동안 별반 진폭 없이 정체되고 있는 데 있다.

Ifo 경제연구소의 요아힘 라크니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통독 25주년 기념 발표문에서 "미래의 사반세기가 흘러도 격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과거 동서독 지역이 모두 평등한 삶의 수준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단언했다.

라크니츠의 진단 근거는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구동독을 일컫는 신(新)연방주에는 구연방주와 달리 생산성 높은 대기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애초 펀더멘털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위적 재건을 통해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런 갭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도 있는 지역 간 격차로 보는 게 맞다는 주장으로도 읽힌다.

그는 물론, 구동독의 모범적인 발전도시로 꼽히는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예나, 그리고 수도 베를린은 전망이 밝다고 말해 다른 신연방주 도시들과 이들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점에서 경제력 차이도 중요하지만, 정작 관심을 두고 해결해야 할 난제는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난민 유입에 맞물려 반이민 정서가 상대적으로 많이 표출되는 곳도, 과거 사회주의 향수와 닿아 있는 좌파당 지지 색채가 강한 곳도 구동독이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지난 8일 자에서 오는 2060년까지 신연방주 노동력의 40%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소개했다. FAZ는 베를린을 제외한 브란덴부르크, 작센, 작센-안할트, 튀링겐,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등 신연방주 5곳의 인구는 전체적으로 26% 감소한 920만 명 선이 될 것으로 봤다.

독일은 구동독을 지원하려고 1991년부터 소득세나 법인세에 추가로 붙는 연대세(稅)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7.5% 세율의 연대세는 1년 만에 폐지됐다가 1995년 재도입된 이후 1997년부턴 5.5%로 낮아진 채 적어도 2019년까지 유지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이 연대세제가 전체 독일 인구의 4분의 1 수준인 통일 이후 세대의 비중 확대와 함께 옛 동, 서독과 동, 서독인들의 내적 장벽을 허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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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 벽화 그림의 부연 자료(이스트사이드갤러리서 촬영, 베를린=연합뉴스)1979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만나 키스하고 있다.
칠순 서독男-동독女 회고…"통일은 좋은 것, 선입관 갖지 말고 대화하면 통해"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과거 베를린장벽의 일부가 남아있는 담벼락에 예술가들이 그림을 잔뜩 그려 놓은 곳이 있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라고 불리는 데다.

베를린 도심 관광객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을 찾아 역사 산책을 하기 마련이다. 그 중 슈프레 강을 바라보는 편에서 왼쪽으로 걷다보면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에리히 호네커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서기장이 입맞춤하는 그림 앞이다.

이 그림은 두 사람이 1979년 동독 정권 30년을 기념하며 만났을 때 촬영된 실물 사진을 그린 것인데, 그림 밑에 있는 문구가 더 걸작이라는 이들도 많다. "신이시여, 내가 이 치명적인 사랑을 딛고 살아남을 수 있게끔 도와주소서."

브레즈네프와 호네커의 진한 키스가 상징하는 공산주의의 강고한 카르텔을 넘어, 그리고 동서독 분단의 사슬까지 끊어 버린 치명적 러브스토리가 여기 있다.

클라우스 하인츠 로스코스(74) 서독남(男)과 마르티나 로스코스(57) 동독녀(女)의 만남은 197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스코스 부부가 브레즈네프-호네커 입맞춤을 흉내내어 달라는 요구에 진하게 키스하고 있다.(미헨도르프<브란덴부르크州>=연합뉴스)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 정권의 (신)동방정책이 헬무트 슈미트 총리 집권 때에도 이어지던 그 때 서독인의 동독 친인척 방문 등 교류가 허용됐던 것은 그들에겐 더 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물론 동독에서 서독으로의 이동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서독으로 넘어가, 차라리 돌아오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는 연금생활자 등이 대상이었다.

클라우스는 동독 영역이던 슈베린 친척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이방인 마르티나를 만난다. 그 때 한 눈에 그만 영혼을 빼앗겨 버렸다는 것이 그의 회고다.

"나는 서베를린뿐 아니라 다른 서독 거주 증명서를 함께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동베를린은 항상 방문할 수 있었고, 그 밖의 동독 지역도 연간 14일 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면서 "슈베린에서 처음 만나고 나서 그냥 반해버렸다"고 고백했다.

보험 자영업을 하던 클라우스와, 어머니가 운영을 책임진 직조공장 경리 일을 보던 마르티나는 이후 일주일에 두 세 차례씩은 꼬박 만나 사랑을 다져나갔다.

데이트 장소는 주로 동베를린이었다. 클라우스는 서베를린에서 자동차로, 마르티나는 열차로 각기 동베를린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1979년 1월부터는 종종 체코 프라하에서도 만남을 지속했다.

"자주 만나다 보니 동독 국가보위부인 슈타지에서도 우리가 이동하는 경로를 알기 시작했어요. 남편(클라우스)에게는 동독 스파이로 일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지요. 자동차 미행도 있었구요."

마르티나는 1980년 가을까지 그렇게 만나다가 그해 10월부터 동독 탈출 계획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하며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로스코스 부부의 젊은 시절 산책 모습(미헨도르프=연합뉴스)
남편이 바로 말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친구 한 명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와 마르티나가 위장결혼을 하면 동독을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렇게 해보려 했지만 너무 복잡해서 결국 포기했던 기억입니다."

위장결혼 카드가 어렵게 되자, 두 사람은 브로커의 도움을 얻어야 겠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생사의 문제가 될 수 있는 탈출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마르티나는 포기할까도 생각했다고 했다. "가족과 이별하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은 만나고 있는데,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었죠."

동독 슈타지 요원들의 솔깃한 제안이 있었다고도 했다. "우리가 결혼하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그래서 동독에서 결혼하는 것을 허용할테니 스파이가 돼 달라고 또 요청했지요."

두 연인은 당연히 이를 거절하고, 마침내 클라우스가 1981년 5월 '힌체(Hinze)'라고만 자신을 밝힌 브로커를 만나 탈주 계획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이 브로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신뢰할 수가 없으니 자주 만나서 실상을 파악하려 했어요. 연락도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하면 수동적으로 만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1982년 2월부터는 약도까지 그리면서 실행 계획을 짜고 나섰죠."

마침내 D-데이인 1982년 5월 24일이 찾아왔다. 차량은 포드의 피에스타와 동독 국민차 트라비 등 두 대가 준비됐다. 클라우스 없이 브로커 두 명과 마르티나가 함부르크와 서베를린에서 각기 당시 동독 지역이던 브란덴부르크주 미헨도르프의 한 주유소에 모였다.

"이렇게 운전석에 겹쳐 앉아있다가 옮겨탔어요"(미헨도르프=연합뉴스)마르티나 로스코스 부인이 동독 탈출 당시, 운전석에 겹쳐 앉아 있다가 다른 차량으로 옮겨탔다고 설명하며 자세를 재연하고 있다.
탈주 과정은 007 첩보전 같았다. 사방에 감시망이 펼쳐져 있었던 환경이라 조금이라도 의심 스런 행동은 용인되지 않았다. 서독 영역 진입은 피에스타 몫이었다. '동독 여인'인 마르티나가 버젓이 그 차에 탈 수는 없었다.

두 차는 시차를 두고 일단 출발하고는 9번 아우토반 상에서, 보조를 맞추어 달리면서 다른 주행 차량이 눈에 띄지않는 기회만을 노렸다. 그러다 때가 오자 마르티나는 트라비 운전석에 브로커와 겹쳐 앉아 있다가 나란히 서행하던 피에스타에 옮겨탔다.

마르티나는 하도 긴장한 나머지 여기저기 상처가 난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피에스타를 모는 브로커는 트렁크로 들어가라고 다그쳤지만, 처음에는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한 채 벌벌 떨기만 했다고 마르티나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브로커가 그랬어요. 자기 부인이 만삭이라면서 제발 말 좀 들으라고요. 트렁크에 빨리 숨어달라고 큰소리를 했었죠. 트렁크에 있으면서 얼마나 갔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트렁크 안에서 브로커에게 여행 서류를 보여달라고 한 국경 요원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당시 브로커 비용이 3만 마르크(1만 5천 유로 추정) 들었습니다."

그 시절 동, 서독 관련 협정에 따라 통행 검문만 실시하던 바이에른주 호프(Hof) 국경을 넘는 것으로 밀행 작전은 끝났고, 연인은 내내 함께 지낼 수 있었지만 동독 당국에 탈출 소식이 전해지자 마르티나의 어머니는 여권을 빼앗기고 동생은 군대에서 영창에 끌려가는 등 수난이 이어졌다고 한다.

로스코스 커플은 동거 생활을 하다가 2001년 9월 결혼했다. 앞서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1990년의 통일은 가족의 재결합과 평화를 이들에게 안겼다.

클라우스는 "어려서부터 분단의 아픔을 체험하며 자랐다"면서 "나는 기독민주당(CDU)을 지지하는 편이지만 사회민주당(SPD) 정권 때 에곤 바가 주창한 동방정책(접근을 통한 변화)에 따라 소련과 동독 등 동구권을 접촉한 것이 통일에서 중요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웅크린 채 트렁크에 숨어서 갔던 겁니다"(미헨도르프=연합뉴스)마르티나 로스코스 부인이 동독 탈출 당시, 서독 국경을 넘어가는 차량 트렁크에 숨어서 이동했다며 그 때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머물면서도, 다시말해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의 협력을 지속해 나가는 기반 위에서 소련과 동독 등 동유럽과 관계 개선을 함께 추구했던 'Sowohl als auch'(동시추구 또는 병행 의미) 기조가 주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도를 펼쳐놓고 한반도 위치를 가리키면서 한국의 통일은 "중국의 입장에 크게 좌우되는 것 아니냐"라고도 했다.

마르티나는 '통일은 좋은 것이냐'라는 질문에 남편과 함께 "당연하다"라고 합창하면서 감시받던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그녀는 "내 세대 동독 출신 중에도 적응을 하지 못해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게으른 오씨(Ossi·옛 동독인)라거나 거만한 베씨(Wessi·구서독인) 같은 관념 역시 없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가 더 많다"면서 동, 서독 격차의 단점보다는 통독의 장점을 강조했다.

두 사람은 분단된 한국에 한 마디 해달라고 주문하자 이구동성으로 '대화'를 이야기했다. 특히 부인 마르티나는 끝까지 열변을 토했다.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었습니다. 영웅으로 생각해서 그랬던 거죠. 그런데 사실 그는 영웅 보다는 살인자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동독 사람들이 게으르다구요? 나는 항상 열심히 일했습니다. 서로 대화를 하다보면 알게 되고 통하게 됩니다. 선입관을 갖지 말고 진실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그날의 생사를 건 탈주를 못 잊어서일까. 로스코스 부부는 자녀 없이 미헨도르프에 둥지를 틀고 둘 만의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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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9.20 01:09 / 수정 2015.7.17 13:07

북핵 방치는 일본 우익에 군비증강 위한 좋은 구실

[전문가 좌담] 6자 회담 ‘9·19 공동성명’ 10주년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의 국빈관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남북한과 미·중·러·일 등 6개국 대표들이 북한의 핵 포기 등 6개 항의 합의문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핵실험이 계속되면서 9·19 공동성명은 사실상 사문화됐고 6자회담도 2008년 12월 이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한국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상 당시 직책). [중앙포토]

북한이 최근 또다시 핵실험을 협박하고 있다. 19일은 9·19 공동성명이 타결된 지 10주년 되는 날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베이징에서 북핵 세미나를 열어 9·19 성명의 의미를 되새겼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이자리에서 “6자 회담 구성원들은 모두 유엔 헌장을 준수할 책임이 있고 유엔 결의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중국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대북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10년 전인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당시 7일간 계속된 6자회담 4차 2단계 회담에서 마침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열렸다. 2003년 8월에 시작된 6자회담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마련된 순간이었다.

한국·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5자는 북한과 6개 항에 합의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조치를 하기로 했다. 고질적인 북핵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 전기가 될 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9·19 공동성명은 풍랑을 만난 배처럼 외풍에 흔들렸다. 급기야 북한이 이듬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하고 같은 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하면서 9·19 공동성명을 사실상 파기했다.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 낸 주역인 송민순(북한대학원대 총장)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학계의 대표적 북핵 전문가인 김태우(동국대·건양대 석좌교수) 전 통일연구원장을 만나 9·19 성명의 의미와 한계를 재조명했다.

 

 

북, 다른 속셈 있으면서 협상국 우롱
-9·19 공동성명 10주년을 맞은 소회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하 송)=당시에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지금과는 다르지만 공동성명 채택 직후에도 BDA 문제나 경수로 제공 조건에 대해 미국과 북한이 서로 다른 입장을 제시하는 등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도 북핵 문제 해결의 길을 제시했고 한반도 미래의 조감도를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북핵 문제는 더 악화됐고 한반도 미래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착잡한 기분이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이하 김)=아쉬움과 허무를 느낀다. 9·19 공동성명은 6자회담이 만들어 낸 최초의 포괄적인 합의였고 내용 면에서도 완벽한 ‘모범답안’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합의를 지키려는 의무감조차 없는 북한과 그동안 ‘아름다운’ 합의를 많이 만들어 놓고 우리만 혼자 들뜨고 흥분한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허무하다.

- 그럼에도 의의와 교훈이 있다면.
김=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가장 큰 교훈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북한 체제와 특성을 우리가 너무 경시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1~2년 핵을 준비한 게 아니고 세습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오랜 시간 준비해 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교훈은 정부의 낙관적인 접근이 결실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6자회담을 전반적으로 보면 단계마다 북한은 한 걸음 후퇴한 뒤 두 걸음 전진했다. 9·19 공동성명 1년 만에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큰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다른 협상 당사자들을 우롱한 것이다.
송=북핵과 한반도, 동북아 문제에 대한 이익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한반도 문제의 미래를 보면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당시 정부가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이끌어 냈다. 미국은 제3차 회담 이후 6자회담이 침몰 직전에 갈 때까지 북한에 대해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만을 요구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우선적으로 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미국이 적극 나서지 않으면 한·미 동맹의 존재가치가 도전받을 것”이라는 자세로 미국이 한·미 동맹 자체에 위기감을 갖게 했다. 미국의 적극적 협상태도 없이는 이룰 수 없는 합의였다.

 

동맹 카드로 미국 압박한 노무현
-당시 노 대통령이 한·미 동맹 카드로 미국을 강하게 압박했다는 말인가.
송=그렇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포함한 대테러전쟁 지원, 용산기지 이전 문제,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 미국이 필요로 하는 다른 것은 다 해 줄 수 있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남북 관계는 물론 앞으로 한국이 나아갈 길이 꽉 막혀 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한·미 동맹을 걸고 핵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고 미국에 요구했다.

-합의 불이행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송=상호 불신상태에서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북핵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서로 제시하는 협상카드가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서로 맞바꿀 수 있는 성격들이 아니다. 합의 이후에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정비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이행으로 이어지는데 2008년 이후 그 접착력이 떨어졌다.
김=대부분의 책임은 북한과 중국에 있다. 가장 큰 책임은 북한의 체제 딜레마다.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하면 주민들을 잘 살게 할 수 있지만 이는 곧 체제 위협과 직결된다. 그래서 한 가지 선택을 하지 못했고 국제사회가 간섭할 수 없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북한은 핵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지도자의 과학적 위엄을 보이는 후광 효과(Halo Effect), 남한에는 정부와 국민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흔드는 그림자 효과(Shadow Effect), 미국에는 강대국에 동등하게 맞설 수 있는 동등화 효과(Equalizer Effect)를 노렸다. 중국은 사실상 북한의 핵 개발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
송=가끔 북한 정권의 성격을 얘기할 때 ‘3M 정권(3M Regime)’이라고 한다. 호전(Militancy)·위장(Mendacity)·탁발(Mendicancy)이다. 하지만 왜 북한이 3M을 이용하느냐고 비판만 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북한이 생존을 위해 그런다는 것을 전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단은 몰가치적으로 대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9·19 공동성명이 북핵의 모범답안
-9·19 공동성명은 이미 휴지 조각이 됐나.
김=북한이 이미 세 차례의 핵실험을 했으니 법적으로는 휴지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앞으로 또 합의문을 만든다고 해도 9·19 공동성명과 같은 내용 외에는 나올 것이 없다. 모범답안이라고 한 이유다.
송=휴지라고 할 수는 없다. 배로 치면 좌초된 상태다. 바다로 다시 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버릴 수는 없는 거다. 핵 문제를 관리하고 해결하는 유일한 다리인데 이를 아무런 대안도 없이 잘라 버리려는 것은 잘못이다.

-북한이 헌법에 ‘핵 보유국’임을 명시했는데 제재와 압박은 실패한 것 아닌가.
송=헌법에 명시한 것은 경제건설·핵무력 병진노선을 위한 내부통치용 또는 대외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제재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중국이 동참한다면 성공하겠지만 북한을 생존시킬 필요가 있다고 중국이 생각하는 한 효과적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형식적인 수준에서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김=핵 보유국이 되려면 기술적 문턱과 정치적 문턱을 넘어야 한다.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보여 주면 기술적 문턱을 넘은 것이다. 정치적 문턱은 핵을 보유해도 아무런 제재 없이 정상적 국제활동이 가능할 때 넘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은 기술적 핵 보유국이지만 정치적 핵 보유국은 아니다. 앞으로도 정치적 핵 보유국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대화(Dialogue)·외교(Diplomacy)·억제(Deterrence) 등 ‘3D’로 압축된다.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시키려면 북한 정권의 소멸을 위협해야 한다. 아울러 군사적 억제력도 필요하다.

 

북한 사회 변화 유도해 북핵 해결해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10월 10일)을 앞두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협박하고 있는데.
김=북한은 주변 상황과 상관없이 대전략(Grand Plan)을 갖고 핵 개발을 해 왔다. 과거 전례에 비춰 볼 때 당 창건 기념일을 전후한 도발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3월 노동미사일 발사 이후에 할 수도 있었지만 국제 여론과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도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겠지만 4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준비는 돼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도 단호한 응징카드를 모두 꺼내야 한다. 북한이 도발하면 심리전 방송을 재개해야 한다.
송=북한은 국내 정치적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아직도 권력 안정 과정에 있다.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당 창건 기념일에 뭔가를 보여 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 등 주변국을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필요성은 지금 상황에서는 없어 보인다. 북한이 또 도발을 하면 남북 관계가 다시 나빠질 수밖에 없다.

-북핵 해결은 불가능한가. 시간은 누구 편인가.
송=최소한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기능은 6자회담에서 기대할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 시나리오는 남북한이 각각 별개의 국가로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핵 없이 사는 방식이 하나고, 북한 자체가 붕괴되는 것이 다른 하나다. 또 다른 길은 북한의 핵 개발을 일단 중단시키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로 상황을 관리하며 종국적으로 해결로 나아가는 중간상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간은 우리 편도, 북한 편도 아니다. 결국 시간은 미·중·일 중에서 한반도가 적당한 수준의 긴장상태에서 현상 유지되기를 원하는 세력들의 편이다. 특히 보통 국가로서 군비 증강의 명분을 찾는 일본 우익세력이 현 상태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다고 생각한다.
김=단기적으로 제일 시급한 것은 제재를 강화하는 것과 군사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다. 6자회담 재개 노력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북핵 문제는 인권 개선, 민주화, 종교와 언론의 자유 등 북한의 사회 변화를 통해 해결될 것이다. 시간은 북핵 활동을 동결하지 못하는 한 전적으로 북한 편이다. 북한의 핵 능력은 5~10년간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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