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 쇼크] '가성비 깡패'가 된 첫번째 비결은 '비판적 모방' [성현석 기자]
중국 기업 샤오미(小米)의 약진이 눈부시다. 창업 5년째인 이 회사는 종종 '대륙의 실수'라고 불렸다. 중국 기업은 원래 값은 싸지만 품질은 조악한 '짝퉁'을 만들었다. 그런데 '실수'로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조롱 섞인 농담이다. 대충 찍었는데, 요행히 좋은 점수 맞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요행이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봐야 한다. 샤오미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꺽은 게 2년 전이다. 지난해에는 삼성을 제쳤고, 올해 2분기에는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 스마프폰 시장에서 6%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소형 전동스쿠터(세그웨이), 고화질 텔레비전(UHD TV) 등을 내놨다. 드론(무인항공기) 시장에도 뛰어들겠다고 한다. 여전히 '가성비 깡패'다. 가격 대비 성능이 압도적이라는 뜻. 예컨대 샤오미가 지난 19일 발표한 소형 전동스쿠터 '나인봇 미니'는 1999위안이다. 우리 돈으로는 약 35만 원이다. 비슷한 사양의 기존 제품 가격의 10분의 1도 안 된다. '나인 봇 미니'가 발표되던 날, 한국 인터넷도 난리가 났다. '샤오미'와 '세그웨이'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 2위에 올랐다. 품질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소형 전동스쿠터 기업의 원조가 세그웨이다. 샤오미는 지난 4월 세그웨이를 인수했다. '나인봇'에는 세그웨이 기술력이 녹아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이제는 '대륙의 실력'을 상징하는 샤오미의 약진. 어떻게 봐야 할까. 국내 전자업체 관계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초로 세 가지 키워드를 뽑아봤다. 첫 번째 키워드는 '비판적 모방'이다.
구글의 실패와 샤오미의 성공
샤오미 스마트폰 제품이 애플의 아이폰을 닮았다는 건, 다들 아는 이야기다. 샤오미가 모방에서 출발한 건 사실이다. 우선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雷軍)이 그렇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그가 대형 스크린 앞에 서서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된다.
잡스 흉내 내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샤오미는 약간 다르다. 선발 주자를 분석해서, 장점만 따라한다.
샤오미가 애플을 흉내 낸다고 흔히 말한다. 그건 겉만 본 평가다. 샤오미 사업 모델은 구글에 가깝다. 이 점에 주목하는 이들이 드물다.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이다. 하드웨어 제조 부문 경험이 전혀 없다. 이런 그가 스마트폰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구글이 지난 2010년 1월 내놓은 스마트폰 '넥서스원'을 떠올리게 한다. 구글은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데, 스마트폰 제조업에 도전했다. 샤오미와 닮은꼴이다. 판매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휴대폰 업체들은 방대한 오프라인 판매 조직을 갖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과 제조업체의 중요한 차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대부분 오프라인 판매 조직 운영 경험이 없다.
구글은 '넥서스원' 출시 당시 온라인으로만 팔았다. 샤오미 역시 철저히 온라인 판매를 고집했다. 얼마 전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지만, 중심은 여전히 온라인이다.
그런데 구글의 '넥서스원'은 실패했다. 반면, 샤오미가 2011년에 처음 내놓은 스마트폰 '미원'은 성공했다. 샤오미가 그저 모방만 하는 기업이라면, 이런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생각 없는 따라쟁이'가 아니라 '비판적인 수용자'였으므로 가능했던 성공이다. 실제로 레이쥔은 '넥서스원'의 실패를 철저히 분석한 뒤에 '미원'을 출시했다. 소비자와의 스킨십이 없다는, 온라인 판매의 한계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구글 창업자인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어릴 때부터 수학, 과학 영재로 유명했다. 이런 이미지는 구글의 기술력을 보장하는 장치가 됐다. 하지만 '기술 천재' 이미지가 때론 질곡이 된다. 휴대폰처럼 늘 손에 품고 다니는 제품에 대해 소비자는 기술, 그 이상을 원한다. 기존 휴대폰 업체들이 바보라서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광고를 했던 게 아니다. '한번 만져보고 싶다'라는 막연한 느낌, 그게 중요하다. 구글의 '넥서스원'이 실패한 지점이다.
그렇다면, 역시 유명 연예인을 출연시킨 광고가 답인가. 그래서는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 레이쥔은 다른 답을 찾아냈다.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다. 샤오미의 최대 자산은 천만 명이 넘는 '미펀'(米粉·샤오미 팬)들이다. 이들에 대해선 '샤오미 쇼크' 두 번째 글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반항아 잡스, 모범생 레이쥔
샤오미가 애플을 흉내 낸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동경했고, 그래서 흉내냈지만, 마냥 따라하지만은 않았다. 레이쥔이 중국 우한대학교 컴퓨터학과에 입학한 건 1987년이다. 신입생 시절부터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동경했다고 한다. 훗날 그가 잡스의 프리젠테이션 스타일을 따라한 건 그래서였다고.
하지만 그는 잡스와 전혀 다른 유형이다. 잡스는 반항아였다. 레이쥔은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수학, 과학 등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에만 열정을 쏟는 컴퓨터 영재 유형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문학, 수학, 역사, 과학 등 전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다.
레이쥔은 대학을 마친 뒤 킹소프트에 개발자로 입사했는데, 상사와의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고속승진을 했고, 29살에 사장이 됐다. 킹소프트 상장 이후 퇴사해서 엔젤 투자자가 됐다. 유망한 벤처 기업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일이다. 그리고 마흔 살에 샤오미를 창업했다. 잡스의 좌충우돌 인생과는 확실히 다르다.
"당분간은 이익 낼 생각 없다"
사업 모델 역시 애플과 다르다. 애플은 제품을 팔아서 이익을 낸다. 마니아가 열광하는 제품을 만들고, 대신 높은 이윤을 챙긴다. 높은 이윤율은, 애플, 그리고 잡스의 자존심이었다. IT 기업들은 공짜를 뿌려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방식을 종종 쓴다. 잡스는 이런 방식을 경멸했다.
레이쥔은 이 대목에서 다르다. '공짜 경제'를 창피해하지 않는다. 지난해 말 <차이나 비즈니스>에 따르면, 애플은 스마트폰을 100만 원어치 팔아서 28만7000원 가량의 이익을 낸다. 삼성은 18만7000원이다. 반면, 샤오미는 2만 원이 안 된다. 이윤율이 너무 낮다는 지적에 대해 레이쥔은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에 텅쉰이 그렇게 돈을 벌었으면, 오늘날 샤오미도 벌 것입니다."
텅쉰은 중국의 인터넷 포털 기업이다. 윈도우용 메신저 프로그램을 공짜로 뿌리면서 성장했다. 한국 포털 업체 역시 이메일 서비스 등을 무료로 제공했다.
샤오미 창업 초기, 레이쥔은 치밍벤처투자를 찾아가 투자 요청을 했다. 당시 그가 한 말.
"먼저 말해두는데 샤오미는 앞으로 3~5년 안에는 이윤을 낼 생각이 없습니다. 만약에 단기수익을 보고 투자할 생각이라면 재고하든지 아니면 투자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제로 샤오미는 아직 상장을 하지 않고 있다. 당장은 상장 계획이 없다고 한다.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이익률을 높이라는 압박이 들어온다. 레이쥔은 이익보다 시장 장악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인터넷 포털 업체의 성공 방정식을 따라하고 있다. 사용자가 늘어나고, 평판이 좋아지면 돈은 따라온다는 식이다. 실제로 레이쥔은 치밍벤처투자의 투자를 받는데 성공했다. 당분간 이윤 낼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샤오미 모델이 지닌 매력말고도 이유가 있다. 레이쥔의 '모범생' 이미지가 투자 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줬다. 레이쥔은 킹소프트 사장 직에서 물러나 투자자로 활동하면서, 중국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인맥과 평판은 여전히 중국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다.
'특허 약자' 샤오미, 후발 기업엔 '짝퉁' 공세
하지만 '공짜 경제'가 지닌 한계 역시 분명하다. 소프트웨어 산업과 제조업의 차이와도 관계가 있다.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비해 제조업 특허 규제가 더 엄격하다. '짝퉁'에 의지하는 '공짜 경제'가 제조업 분야에선 쉽지 않다. 아울러 이윤율이 낮다는 점은, 연구개발에 투자할 재원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다. 파괴적인 혁신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 흉내내기 제품에만 계속 머무를 경우, 같은 전략을 쓰는 후발 업체에게 뒤쳐지는 건 시간 문제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헐값으로 일하겠다는 엔지니어가 넘쳐난다. 낮은 인건비로 경쟁하는 시장에선, 승자가 없다.
삼성전자 등 경쟁기업은 이 대목을 잘 알고 있다. '특허권 침해' 여부로 공격하면, 샤오미의 발을 중국 안에 묶어둘 수 있다. 실제로 샤오미가 쉽게 해외 진출을 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가 특허 분쟁 가능성이다.
하지만 '특허 공격'으로 발을 묶는 건, 결국 수세적인 전략이다. 1980년대 일본과 독일의 제조업이 도약하자, 미국이 프로 패턴트(Pro-patent) 전략을 썼다. 특허 기득권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후발 주자의 특허 침해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 방식이다. 문제는 그래서 미국 제조업이 성공했느냐, 라는 점이다. 미국 제조업은 꾸준히 경쟁력을 잃었다.
또 샤오미가 앞으로도 '특허 약자'에 머무르리라는 보장도 없다. '세그웨이'를 인수해서, 파격적인 가격에 소형 전동스쿠터를 내놓은 사례가 보여준다. 일정한 성공을 거둔 뒤에 앞선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면, '특허 강자'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샤오미는 중국 국내에서 후발 기업들을 상대로 '짝퉁' 공세를 하고 있다. 선진국 기업으로부터 받았던 공격을 국내 후발 기업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런 공격을 한국 기업이 받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