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제품 턴키 구매방식 탈피… 독자기술 개발 주력
미래부, 500억 규모 사업 밑그림 이달내 마무리 계획우리나라가 2022년까지 독자적인 기술로 세계 10위권의 슈퍼컴퓨터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달 내로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한 기획 연구를 마무리하고, 이르면 연말 기획재정부에 개발사업 추진을 위한 예비타당성 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또 미래부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을 통해 오는 9월까지 `국가 슈퍼컴퓨팅 자원 수요 예측조사'를 진행해, 슈퍼컴퓨터 수요와 서비스 현황, 활용 방안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막바지 작업을 앞두고 있는 `국산 슈퍼컴퓨터 개발 기획 연구'는 슈퍼컴퓨터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 과제 선정, 개발 규모와 최신 기술 동향 등을 담은 보고서다. 미래부는 약 500억원 규모의 개발 사업의 밑그림이 담긴 이번 보고서와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국가 슈퍼컴퓨팅 자원 수요 예측조사를 합쳐 이르면 오는 9월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 심사 신청을 할 계획이다.
오대현 미래부 원천연구과장은 "기존 슈퍼컴퓨터가 대부분 외산 제품을 턴키방식으로 구매한 탓에 자체 개발 움직임은 미약했다"며 "슈퍼컴퓨터 산업은 뿐만 아니라 원천기술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만큼 독자적인 개발 기술을 보유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세계 슈퍼컴퓨팅 컨퍼런스 2013'에서 공개한 우리나라 슈퍼컴퓨터 순위는 해온이 91위, 해담 92위, 타키온Ⅱ 107위, 천둥 423위를 기록했다. 2011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해온과 해담은 20위권에 올랐지만, 현재는 100위권에 턱걸이를 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지난 5년간 708억원을 투입해 슈퍼컴퓨터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국방과기대학이 자체 개발한 `톈허2'는 이번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외산 제품을 도입하기보다는 지난해 서울대 이재진 교수팀이 개발한 `천둥'과 같은 국산 슈퍼컴퓨터 개발이 장기적인 국내 산업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재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국산 슈퍼컴퓨터 개발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며 "최대 10년을 잡고, 처음 5년은 기존 부품을 활용해 어떻게 시스템을 구성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다음 5년 동안은 핵심 개발과 국산 CPU, GPU 등을 개발해 완전체로 구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게 효율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용철기자 jungyc@
정보보안산업 연평균 14.3% 성장 2016년엔 10조원 규모
허울뿐인 세계 3대 보안강국… 이젠 인력확보가 경쟁력■ SW가 미래다갈수록 진화하고 다양해지는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보안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2009년 7ㆍ7 분산서비스거부(DDoS)공격, 2011년 농협해킹사건, 올해 3ㆍ20 사이버테러 등의 공격은 물론 옥션, 넥슨, KT 등의 기업에서의 개인정보유출 또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보안산업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정보보안산업은 지난해에는 1조6642억원으로 2011년 보다 14.2% 증가했다. 이는 물리보안 시장이 2011년 3조8240억원에서 9.2% 성장한 것보다 높은 수치다. 향후 정보보안산업은 연평균 14.3% 성장을 지속해 2016년에는 10조원 규모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소프트웨어(SW)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성장성이나 가치 측면에서는 어느 분야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평가다.
◇30년 넘게 역사 써온 정보보안산업=국내 보안 산업은 1980년대 태동기로 맞아 국가정보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관 주도로 시작했다.
이후 1990년에는 정보보호학회가 설립되고 1세대 보안 기업이 탄생하며 보안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995년 안철수연구소(현재 안랩), 1996년 시큐어소프트, 인젠(IDS) 등이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이다. 이후 1996년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출범했고 1998년에는 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KISIA), 1999년에는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가 설립되면서 그 틀을 만들었다.
닷컴열풍이 분 1999년 2세대 보안 기업이 등장하고 해커, 시스템 벤더, 통신과 금융권 출신 사람들이 창업을 활발하게 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3세대 보안 기업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안철수연구소, 시큐아이닷컴(현재 시큐아이), 윈스테크넷, 이글루시큐리티 등이 부문별 1위 업체로 부상했다.
2010년에는 정보보안 시장 매출액이 1조원을 돌파하며 보안시장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정보보안 기업도 2000년대 이전 96개에 불과했지만, 2000년 이후 10년간 200여개의 기업이 생겨나는 등 보안 산업의 활황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100억원 이상 매출 기업도 31개로 확대됐고,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11개, 코스닥 상장기업이 14개에 달해 산업 성장세가 점차 두드러질 전망이다.
국내 정보보안 시장의 성장은 물론 고도화된 공격이 이어지자 해외 보안 업체도 우리나라 보안 시장의 성장성을 확인하고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 시만텍, 맥아피 등 소수의 업체들만 뛰어들었던 한국 시장에 최근 체크포인트, 파이어아이, 포티넷 등 많은 업체들이 새롭게 참여하면서 전세계 보안업체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세계 3대 보안 강국...이름뿐인 명성=국내 보안 시장은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업계는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안랩, 인포섹, 시큐아이 등 1000억원 내외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기업이 세 곳이나 있지만 이들 기업 중 글로벌 보안 기업이라 손꼽을만한 곳은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시만텍, 맥아피)과 이스라엘(체크포인트)에 이어 세계 3대 보안 강국으로 꼽히고 있지만 이들 기업에 견줄만한 곳이 없다는 점은 시장의 한계로 지적 받고 있다. 대부분 국내 보안업체들이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몇년 사이 국내 보안 업체들이 일본, 동남아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업계는 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고 글로벌 보안기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기업 자체의 노력은 물론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 등 우리보다 앞선 보안강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국내 보안 업체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지식정보보안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기술수준은 선진기업을 100으로 봤을 때 70% 수준이다.
◇경쟁력 확보위해 인재양성 시스템 절실=기술력 확보는 인력문제와도 직결된다. 정보보안 업체들이 기술개발 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안으로 `인력확보'를 꼽았다. 현재 보안 산업은 고급인력에 대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장이 원하는 고급 기술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그동안 화이트해커나 보안전문가를 양성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방법 외에는 딱히 없었다. 업계는 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과 정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또 △정부 공공부문의 시장 수요 창출 △각종 자금 지원 및 혜택 △해외지원사업 확대 △기술 이전의 활성화 및 인수합병(M&A) 지원 등 산업이 성장하고 해외에서 인정받기 위해 정부의 다양한 정책 마련이 주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보안산업은 매우 중요한 산업으로 정부차원에서 산업 부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보안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정부가 기업에 확실하게 책임을 지도록 유도하고 보안을 잘하는 기업에게는 여러 가지 혜택을 줘 선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도 보안사고를 대충 넘기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관문으로 여기고 사고 발생 전에 미리 대응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덧붙였다.
유정현기자 juneyoo@
[한겨레]
[사이언스온] 같은 동물 다른 성격진화생태학자의 실험연구 주제와 심지어 사고방식은 어떤 생물을 대상으로 연구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오랫동안 야생 바닷새를 연구하다가 최근에 ‘큰가시고기’라는 물고기의 생태 연구로 방향을 바꾼 이후로 날마다 새끼손가락만한 물고기들한테서 조류에서 어류로 사고의 전환을 강요당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2년여에 걸쳐 진행될 연구를 위해 지난겨울에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강에 사는 큰가시고기를 스페인 비고대학의 우리 연구실에 들였다. 연구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장기의 물고기를 잡아다가 정성껏 잘 돌보면 야생에서 그런 것처럼 대부분이 봄에 성숙해서 번식을 시작한다.
물고기들이 하는 짓이래야 먹고 싸고 자라는 게 고작이겠지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저마다 생긴 것도 다르고 하는 짓도 천차만별이다. 내가 다가가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반기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어떤 개체는 쳐다보기만 해도 질색을 하며 숨어버려서 송구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행동은 같은 연구자를 날마다 봐도 쉽게 바뀌지 않고 반복된다. 게다가 대담한 물고기는 다른 큰가시고기에 더 호전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을 때 더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행동을 보인다. 반대로 겁 많은 물고기는 다른 개체들과 이루는 사회적 관계나 짝짓기 등 모든 면에서 신중하다.
사실 동물들의 서로 다른 행동방식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만하다. 붙임성이 좋아 어떤 사람이나 잘 따르는 개가 있는가 하면, 겁이 많아 집 밖에 데리고 나가기가 힘든 개도 있다. 사람을 잘 따르는 명랑한 개는 공원에서 만난 다른 개와 잘 놀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모험심도 강한 편이다.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심지어 서로 다른 종이면서도 잘 어울리는 ‘성격 좋은’ 닭과 개, 고양이와 개가 텔레비전의 동물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한다.
이렇게 주변의 생물적, 비생물적 환경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행동방식의 일정한 어떤 경향성을 ‘성격’이라고 한다. 다양한 성격은 어떻게 발현되며, 동물이 살아가는 문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오랜 진화를 거치며
다양한 성격이 유지되는 것은
한 형질에만 생존과 번식의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공평한 자연선택 때문이리라2012년 영국에서 큰가시고기의 다른 두 개체군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큰가시고기가 갑자기 새로운 환경을 접했을 때 탐색 행동을 보이는 정도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는 유전적인 연관성을 지닌다고 한다. 즉, 같은 유전자가 물고기의 대담성과 적응력에 함께 영향을 주어서, 부분적으로는 유전자의 발현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포식자의 위협에 자주 노출되는 서식지에서 온 물고기들한테서는 이런 유전적 연관성이 그렇지 않은 물고기들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격이란 건 위험한 곳에 사는 개체들에게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무서운 포식자의 위협 때문에 큰가시고기의 성격이 진화했다는 말인가?
캐나다 맥길대학,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등 여러 연구팀이 지난 십여년 동안 쥐를 대상으로 공동진행한 일련의 신경의학 연구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느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출산 뒤의 엄마 쥐도 한동안 갓 태어난 새끼를 돌보는데, 이때 젖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새끼를 혀로 핥아주는 스킨십을 하기도 한다.
새끼를 핥아주는 정도는 엄마 쥐 개체마다 다른데, 어미의 이런 행동이 새끼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성격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갓난아기였을 때 엄마가 자주 핥아준 쥐는 어른이 되어 느긋한 성격에 스트레스에도 둔감한 형질을 갖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쥐는 겁도 많고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이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후 첫 주 동안에 엄마 쥐의 스킨십을 충분히 받은 새끼 쥐에서는 특정한 ‘후성유전 물질’의 작용이 달라져서 쥐의 스트레스 반응을 감소시키는 단백질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성유전 물질은 디엔에이에 달라붙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 같은 유전자를 지닌 개체라 할지라도, 후성유전 물질의 조절 작용이 달라지면 유전자가 발현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으며, 또한 발현의 정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큰가시고기나 쥐나 살아가는 데 그런 성격이 무슨 도움이 될까?
우리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는 것을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겁을 내기보다는 대담하고 느긋하게 살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길을 걷다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거나 극심한 기근에 굶어 죽을 위험이 없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이나 과거의 인간 사회, 심지어 우리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어떤 사회는 그렇지 않다. 엄마 쥐가 느긋하게 스킨십에 열중할 수 없는 환경에서 태어난 새끼 쥐는 위험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같은 환경에 사는 개체들한테서 다양한 성격이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 한 개체의 성격이 그 개체의 여러 가지 행동방식에 일정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도 미스터리다. 큰가시고기의 경우에, 포식자에게 대담하면서 동시에 동족 이웃에게 호전적인 성격이 정말 이득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포식자에게는 적당히 겁을 내면서 이웃에게는 자기 세력권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조금 거칠게 대하는 것이 생존과 번식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다양한 성격이 오랜 진화를 거치며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형질에만 생존과 번식의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어느 정도 공평한 자연선택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생활사 전략, 즉 살아가는 방식의 다양성이 성격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담한 큰가시고기는 포식자 위험에도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환경을 열심히 탐색해 먹이와 서식지 같은 자원을 확보하고, 동족의 다른 물고기에 공격적이어서 그 자원을 지켜낸다. 그러므로 대담한 물고기는 당장의 번식에 유리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자식을 남길 수 있을지는 모르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겁쟁이 물고기는 어떠한가? 신중한 그들은 당장의 번식에서 많은 이득을 얻지는 못할 것이나, 대신 더 오래 살아남아서 다음해의 번식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나이에 따른 생활사 전략의 변화가 성격에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2012년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마다가스카르 섬에 서식하는 회색쥐여우원숭이도 개체마다 대담하고 신중한 정도가 다르다. 그런데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젊은 수컷은 생존을 위해 몸을 사리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노련한 수컷은 더 많은 암컷과 짝을 짓기 위해 대담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화하는 다양한 환경에서, 이런 성격의 다양성은 더 빛을 발한다. 대담한 단기투자의 생활사 전략, 신중한 장기투자의 생활사 전략. 더 많은 위기와 위험이 존재할수록, 이 두 가지 전략 중에 누가 승자가 될지 예측하는 것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김신연 스페인 비고대학 생물학과 연구교수
이 글은 사이언스온의 연재물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에 실린 글을 필자가 다시 구성해 쓴 것입니다.
'포스트 최강희'가 확정됐다. 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축구대표팀 차기 사령탑으로 내정됐다.(사진=도현석 작가) |
터키의 귀네슈도 브라질의 파리아스도 아니었다. ‘포스트 최강희’는 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전을 끝으로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나는 최강희 감독의 뒤를 이어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대표팀을 이끈다.
그동안 ‘포스트 최강희’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들이 분분했다. 일부 여론은 ‘이란전 이후에 차기 감독 논의를 해보겠다’는 말만 반복했던 축구협회의 여유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외부에 노출된 상황과 달리 정몽규 회장을 중심으로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물망에 올려 놓은 후보군들과 직간접적인 접촉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차기 감독 인선을 위해선 기술위원회를 소집하는 게 순서이지만, 아직 아시아지역 최종예선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감독에 대한 논의가 공식적으로 이뤄졌다가는 자칫 대표팀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는 판단에 정 회장과 측근들이 나서 후보군들과 물밑 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확정 지은 뒤 기뻐하는 홍명보 감독. 이제는 월드컵대표팀을 이끌고 브라질로 향할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
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홍 감독과는 이미 지난 3월부터 꾸준히 접촉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홍 감독이 A대표팀에 대한 부담과 축구 유학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 관계자는 “협회에선 최강희 감독이 6월 이후 전북 현대로 돌아갈 것이란 사실을 확인한 다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외국인 감독과 홍 감독을 최종 후보로 올려 놓은 뒤 본격적으로 접촉을 시작했다”면서 “홍 감독이 5월 들어 조금씩 심경의 변화를 나타냈고 그 후로 협회와의 대화에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 관계자에 의하면 홍 감독과 축구협회가 대표팀 감독직을 놓고 최종적으로 구두 약속을 이뤄낸 시점이 2주 전이었다고 한다.
홍 감독은 ‘포스트 최강희’에 쏠리는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에서의 귀국 시기를 계속 늦춰왔고, 축구협회와 이란전이 끝난 이후에 귀국하는 걸로 의견 조율을 마쳤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협회 입장에서는 허정무 부회장이 오는 20일 ‘2013 FIFA 터키 U-20 월드컵’ 단장 자격으로 터키로 출국하기 때문에 출국 전에 차기 대표팀 감독 인선을 마무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당장 다음달 20일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연맹 축구대회를 이끌 감독 선임이 시급한 터라 축구협회는 차기 감독 인선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는 선수 구성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사진=연합뉴스) |
차기 감독 인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정몽규 회장은 19일 서울 모처에서 최강희 감독과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그 자리에서 최 감독의 유임 의사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황보관 기술위원장 주재로 기술위원회를 소집, 홍명보 감독에 대한 기술위원회의 최종 재가를 받은 뒤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홍 감독의 임기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2년+∂일 가능성이 높다. 즉 2014 브라질월드컵과 2005년 호주 아시안컵까지의 성적을 토대로 2018년 러시아월드컵대표팀의 지휘봉을 계속 맡길 지의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
청소년대표팀과 런던올림대표팀을 이끌며 젊은 선수들의 잠재된 가능성과 무한한 능력을 그라운드에 펼쳐 보이게 했던 홍 감독은 그동안 어수선했던 대표팀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최적의 카드로 꼽힌다. 항간에서는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는 홍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봤을 때 이번 브라질월드컵대표팀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지만,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홍 감독으로서는 배려와 신뢰가 담긴 협회의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축구대표팀은 이제 ‘최강희호’의 색깔을 벗고 ‘홍명보호’로 새로운 옷을 입게 된다. 올림픽대표팀이 아닌 월드컵대표팀을 이끌고 브라질로 향하는 홍명보 감독 또한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홍 감독은 이번 주에 귀국, 협회와 정식 계약을 체결한 후 공식 기자회견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올림픽대표팀을 통해 지도자로서 주가를 높인 홍명보 감독, 과연 그가 이끄는 대표팀은 어떤 색깔을 보이게 될까. 한국 축구의 쫀쫀한 맛을 그리워하는 축구팬들에게 홍 감독이 시원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사진=도현석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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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에 대한 국민신뢰를 회복시키겠다" 英 중대범죄청(SFO) 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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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그린 SFO청장 |
NYT인터뷰...리보조작사건 형사혐의 적용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법치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는데 주력하겠다”
데이비드 그린 영국 중대범죄청(SFO.59장이 최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밝힌 각오다. 그린 청장은 최근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 코앞에 있는 집무실에서 NYT와 가진 인터뷰에서 “리보(런던은행간금리) 조작 사건을 돕기 위해 올해 우리 청의 조사인력을 두 배로 늘렸다”며 이같이 각오를 다졌다.
그의 각오처럼 집무실 책상에는 1805년 영국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 전야에 함대에 보낸 신호 ‘영국은 제군들이 직무를 수행하기 기대한다’를 새긴 기념패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린 청장은 25년간의 검사와 변호사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해 4월 SFO청장에 취임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형사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돈 사무실에서 변호사로 일했다.그의 부친은 은행원이었다.
그린은 금융범죄와 살인을 포함하는 사건의 검사와 변호사도 역임했다. 그는 검사로서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생산된 헤로인 수입과 조직범죄,사기 등을 기소했고 2005년에는 국세와 세관담당 검사로서 자금세탁과 담배밀수 사건을 기소했고 기소건의 90%이상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그의 취임당시 SFO는 아이슬란드의 은행 도산과 관련한 기업인 연루에 대한 엉터리 수사로 법정에 나서는 등 명성이 크게 실추돼 있었다. SFO는 사과하고 내부수사를 개시했으나 엄청난 법률비용을 물어야 했다. 또 2011에는 리보 조작사건을 않기로 결정하고 책임을 금융감독청(FSA)으로 전가시켜 국민비난을 자초했다. 미국 법무부가 해외에서 영국의 리보조작을 파헤친 것과는 크게 대조를 이뤘다.
SFO는 혐의자를 새벽에 기습하고 협박도 했지만 ‘짓기만 할 뿐 물지는 않는’ 기소기관이라는 이미지만 굳혔을 뿐이었다. 하도 평판이 나빠 영국 정부는 폐지를 검토할 지경이었다.
이에 따라 그린은 취임후 가장 먼저 SFO 직무를 분명히 규정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선고는 판사의 일이지만 나는 여기에 기소하기 위해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영국 국내외에 SFO가 기소할 배짱없이 민사소송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한다는 일반의 인식을 감안한 조치였다. 그린 청장은 “범죄행위를 저지르면 우리가 추적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또 사기범죄 부서 2개와 뇌물수수 전담부서 2개를 설립하는 등 조직을 단순화하고,소송지원을 위해 까탈스럽기로 소문난 퇴임판사 제프리 리블린 등 새로운 인력을 채용했다.
그린 청장은 특히 SFO가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조사는 착수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걸고 넘어졌다.그는 “얼토당토 않고 치욕스럽다”고 까지 말했다.
그린 청장은 “저의 직무는 중대 부정부패에 대한 최일선 검찰로서 우리 청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우리청이 맡은 사상 최대 수사인 리보조작 사건 수사의 도움으로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SFO는 이르면 18일(영국 현지시간) 스위스 은행인 UBS와 미국 시티그룹의 외환 트레이더인 토마스 헤이즈에 형사사기 혐의를 적용할 계획이다.
헤이즈는 이미 지난해 미국 법무부가 사기혐의로 기소한 인물로 리보 조작의 중심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형사상의 혐의가 적용된다면 영국 검찰이 리보 조작 혐의와 관련해 처음으로 적용하는 것이 된다.
리보조작 사건은 SFO의 현안 67건 중 최대 사건이어서 그린 청장은 조사인력을 올해 60명으로 두 배나 늘렸다. 그린 청장은 영국 국세청과 회계법인,외국 규제당국의 인력 지원도 받았다.미국 법무부와는 직원교환 협상 막바지 단계에 있다.
그린 청장은 “국민들은 대서특필된 사건에서 성공하는 것을 보고자 한다”면서”저는 정의를 행하고 법치에 대한 신뢰회복을 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국민 대중은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이 범죄자로서 처벌받는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리보조작과 같은 국제사건에서 기소는 그린 능력밖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린은 “리스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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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차이나머니에 휘둘리는 뉴욕… 100층인데 꼭대기 표기는 '88층(8은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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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진 특파원 |
[변하는 '세계경제 首都' 장상진 특파원 르포]
- 100층 주상복합 짓는데
돈 대는 중국인 요구로 1~12층 쇼핑몰, 13층부터 '1층'
- 최고의 명품거리 맨해튼 5街
"중국인 관광객은 씀씀이 10배" 매장마다 중국인 매니저 모시기지난 13일 오후 4시쯤 뉴욕의 한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회의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중국 선전(深圳)에서 온 부동산 회사 부회장이 마주 앉았다. 양측은 이날 약 1시간의 협상 끝에 미국 측이 뉴욕 인근의 땅을 제공하고 중국 측이 9000만달러(약 1000억원)를 투자해 100층짜리 초대형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데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특수한 조건이 붙었다. 꼭대기 층 표기를 '88층'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중국 측 요구에 따른 것이다. '바(八·8)'는 큰돈을 번다는 뜻인 '파차이(發財)'의 '파(發)'와 발음이 비슷해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100층 건물을 88층으로 맞추기 위해 양측은 '꼼수'를 쓰기로 했다. 1~12층에 쇼핑몰 등 상업시설을 넣고, 사무실과 아파트가 들어서는 13층을 '1층'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100층이 표기상으로는 88층이 된다.
미국 회사 CEO는 "성공적인 분양을 위해 '100층'이란 상징성보다 실리를 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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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 빌딩도 88층으로 표시… '차이나 머니'의 위력차이나머니(China money)가 뉴욕 부동산 시장을 휩쓸고 있다. 업계에는 중국인 손님을 겨냥한 숫자 마케팅이 한창이다. 맨해튼 한복판에 건설 중인 90층짜리 주상복합건물 '원(One)57'이 대표적이다. 이 건물은 80~88층을 한 층에 한 가구만 입주하는 초호화 아파트로 꾸몄다. 예상대로 면적 576㎡(약 174평)인 88층 아파트는 중국인 여성 고객에게 5000만달러에 팔렸다.
최근 뉴욕 부동산 업계는 새 건물을 지을 때에는 남향(南向)은 기본이고 풍수지리사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CNBC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맨해튼 부동산업체 'PD자산'의 일라드 드로 대표는 "최근 뉴욕 부동산 구매자의 30%는 중국계이고, 1000만달러 이상 거래는 절반이 중국계"라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중국어 배우기 열풍도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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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쇼핑 거리' 뉴욕 5번가도 중국인이 휩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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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8층은 중국인 겨냥해 건설…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앞에 17일 초호화 주상복합 아파트 ‘원57’이 지어지고 있다. 이 건물은 설계 단계부터 중국인을 겨냥해 80~88층을 초호화 아파트로 만들었다. 중국인들은 ‘큰돈을 벌다’는 뜻 파차이(發財)의 ‘파’와 숫자 ‘8’의 발음 ‘바’가 비슷해 8이 들어간 번호를 선호한다. /장상진 특파원 |
부동산 시장뿐이 아니다. 미국 최고의 '명품 쇼핑' 거리인 뉴욕 맨해튼 5가(5th Avenue)도 중국인 파워가 거세다. 지난 16일 오후 3시(현지 시각)쯤 맨해튼 5가의 루이뷔통 매장. 입구 가까운 핸드백 진열대 앞에서 중국인 여성 매니저가 40대의 중국인 커플에게 열심히 제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커플은 8250달러(약 900만원)짜리 악어가죽 백을 집어들더니 망설임 없이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이들의 손에는 이미 롤렉스와 페라가모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들른 프라다·구찌·불가리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띄는 자리에는 예외 없이 중국인 매니저가 배치돼 있었다. 매장마다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의 손님이 중국인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맨해튼 5가 명품 점포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해 일본계 외에는 아시아계 점원을 거의 쓰지 않았다"며 "최근에는 중국계 점원을 구하려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보석업체 티파니 매장은 작년부터 중국인 매니저 외에 입구에서 손님을 안내하는 점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미국인이지만 중국어 구사 능력이 필수라고 매장 측은 전했다.
중국인 매니저의 몸값도 올랐다. 맨해튼 5가에 있는 한 보석 전문 브랜드의 중국계 여성 매니저가 지난해 받은 연봉은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였다. 2008년 연봉 3만달러에서 10배 이상 올랐다. 게다가 지난주에 다른 명품업체 2곳에서 "최고 75만달러를 줄 테니 우리 매장에서 일하자"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는 "중국 쇼핑객은 씀씀이의 단위가 다르다. 미국·일본 쇼핑객의 평균 구매 가격이 1000달러 정도지만, 중국 관광객은 1만달러 이상 제품을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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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살면, 결국 빨리 죽는 거겠죠"
[오마이뉴스 전슬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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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 |
ⓒ 재미있는재단 |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낯설지 않다. 익숙하지 않았던 '베르테르 효과(유명인의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해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지칭)'라는 단어도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또 최근 발생한 사회복지사들의 연이은 자살 사건을 보고 있자니, 이제 한국에서 '자살'은 어느 순간 번져버릴지 모르는, 몸 속 깊은 곳에 기생하는 '우울 바이러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우리 삶을 감싼 규범과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억압 받은 채 고통 받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감옥에 가둬버리고 있다. 이처럼 자유롭지 못한 생각들이 모인 세상에서 '생각하는 여자' 유지나는 거꾸로 자유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우리의 삶 속에 이미 녹아있는 그 '놀이(Ludens)'라는 것을 통해 억압된 삶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영화'였다. 유지나에게 '영화'가 바로 그 '놀이'이자 '예술'이자 '자유'인 것이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만의 '놀이'를 찾아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호모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라는 것은 '빨리빨리'에 굳어진 것들을 빼어내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가정교육에서, 한국의 집단무의식에서 요구하는 출세, 성공, 경쟁에서 잘 사려는 최면, 규범, 도덕, 그리고 명령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놀이를 통해 이것을 빼어내야 합니다. 저한테는 놀이가 예술입니다. 이것은 연예나 오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로서의 예술을 말하는 것입니다."영화평론가 유지나는 왜 호모루덴스에 주목하나지난 4일 서울 신촌 한 바에서 열린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의 아홉 번째 주인공은 영화평론가 유지나였다. 그녀는 "왜 이 시대에 호모루덴스 적극 추천하는가?"라는 말로 이날 강의의 문을 열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이자 문화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1938년에 출간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 책을 쓴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이었고 네덜란드 북쪽이 나치의 손에 들어가면서 표현의 사상 또는 사상의 자유를 누리는 모든 사람들이 감옥에 끌려갔을 때이며 그 또한 감옥에 억류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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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 |
ⓒ 재미있는재단 |
하위징아는 그 시기에 이성(Sapiens)을 잃은 인류라는 종속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했고 결국 "인간, 즉 생명체의 본성은 놀이(Ludens)다"라고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지나는 인류가 전쟁의 광기로 이성을 잃고 타 민족을 아무 가책 없이 죽였던 살벌하고 삭막했던, 그래서 놀이를 찾을 수 없었던 세상이었기에 하위징아가 '인류의 본질은 생명체로서 놀이다'라고 해석하게 된 것 아닌가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어 그녀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놀이하는 인간'이란 개념이 왜 사람들에게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기사 제목을 언급했다.
우울증 앓는 20대 여성 직장인 급증 - 6월 3일한국 고령화 대응성적 OECD 꼴찌 - 5월 21일한국 어린이 청소년 사회 행복도 OECD 꼴찌 - 5월 4일대도시 자살률 서울이 뉴욕의 5.5배...- 4월 3일이 모든 문제는 한국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최근 정신 상담치료센터 또는 우울증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기사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경각심, 그게 끝은 아니었다.
"규범이 높은 사회, 이것을 보수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좋게 말하면 도덕률이 높은 사회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한국이 전 세계에서 5위라고 합니다. 한국사회는 규범이 강해서 우울증도 많습니다."유지나 주변에도 우울증을 방치하다 자살한 이들이 무척 많다고 한다. 그런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인지 그녀가 찾고자 하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 우리는, 나는, 그리고 당신은 '놀이'를 통해, 아니면 그 무언가를 통해서라도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그것을 방증하는 것이 요즘 우리 곁을 떠도는 '힐링'이란 단어 아닐까.
영화평론가 유지나가 '놀이'를 찾아서 결국 이루려는 것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 '실적'에만 얽매여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빨리 빨리'라고 한다. 과거 경제 급성장에 비롯된 낡은 관습 때문인지 한국 사람들 대다수가 '빨리 성공하고 돈 벌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산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생각하는 여자'어릴 적 간절히 소망하던 '꿈'은 사치가 되었고 어떻게 해서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허세와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자신을 탓하다가, 우리가 왜 사는지 그 뿌리와 목적까지 잃고 흔들린다. 한국인 뼛속까지 깊게 박힌 '빨리빨리'에 대해 유지나는 이렇게 말했다.
"빨리빨리 사는 것은 압축적인 겁니다. 빨리 죽는 겁니다. 다 따져보면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률이 1위가 된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이해가 갑니다."현재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사회가 원하는 인간의 모습을 갖추고 살아야 '인간 구실을 하는 인간'으로 대접받는다. '빨리빨리' 압축적으로 만들어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그 본질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일까? 사람이 사는 이유나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일까? 바쁜 일상에서 일과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리고 그 무의미한 시간 속에서 자아는 점점 상실 되어가고 나약해져만 가는데, 우리는 텅 빈 자신을 붙들고 이렇게 노예처럼 돈을 좇으며 성공만 울부짖는다.
그런 사회의 중심에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한 '생각하는 여자'가 유지나다. 그녀는 영화평론가이기 이전에 철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었고, 철학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질문하는 방법을 배웠다. 여성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의 사회구조와 남자가 주를 이루는 영화판에서 여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저절로 페미니스트로 각인되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용기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유지나는 질문한다.
"놀이라는 것은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며, 범죄 또는 불의와 결탁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해가 되고 자기 자신을 상처 주는 '타락된 놀이'도 있다. 결국 어떻게 노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놀이는 예술처럼 숭고한 것도 아니고 그저 밥 먹듯이 본질적인 것이다. 자기가 언제가 가장 행복했었는지 상상해보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놀이의 의미를 다시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놀이도 건강하게 표출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진정한 놀이가 된다. 개인의 행복지수가 높아져야 더욱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놀기 좋은 한국'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게 해 준 '철학가'이자 '놀이문화 전달자'인 유지나의 소중한 이야기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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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 |
ⓒ 재미있는재단 |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 소개 |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은 사단법인 '재미있는재단'이 기획 주관하며, 오마이뉴스와 함께 합니다. 재미있는 재단은 문화를 중심으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재미있는 재단의 다양한 사업들, 미국 MBA 진출지원 프로젝트 '개천에서 용났다'와 소소한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 영상 교육 프로젝트 '비추다'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사업들 중의 하나로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을 을 기획하고 전개해 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은 매주 화요일 지속적으로 개최 됩니다.
먼저 문화계를 비롯한 궁금한 우리 시대의 인물로부터 점차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전시'하는 재미있는 사업입니다. 신촌 현대백화점 옆의 텍사스아이스바(02-325-0088)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호프 한잔과 함께 편안한 대화의 장으로 진행되는 '사람이야기 전'은 누구나 스스로를 이야기 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날 그날 진행된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한달의 행사를 사전에 공지하고, 만나고 싶은 분이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 주시면 됩니다. 참가비는 간단한 식사거리와 맥주, 강연료 등을 포함하여 2만 원이며, 대학생의 경우 50% 할인해 드립니다. 자연스런 우리시대의 삶의 전시 공간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6월 일정은 4일 영화평론가 유지나 전, 11일 만화평론가 박인하 전, 18일 애니메이션 '빼꼼' 제작자 김강덕 전, 25일 부천문화재단 대표 김혜준 전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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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학의 '특수강간' 혐의…금명간 체포영장 신청
변호인 측 "특수강간커녕 준강간 혐의도 적용 불가" 반박
[CBS노컷뉴스 이대희 기자] 별장 성접대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결국 강제 구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 전 차관이 네 차례에 걸쳐 경찰 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18일 김 전 차관 측 변호인에 따르면,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김 전 차관에 대해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해 체포 영장을 신청하기로 하고 이날 변호인 측에 의사를 전달했다.
특수강간은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지닌 채 또는 2명 이상이 합동하여 강간죄를 범했을 때 적용되며 고소가 없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경찰은 김 전 차관이 병원에 입원한 뒤 기간을 연장해 소환을 네 차례나 거부하자, 병원 방문 조사 일정을 변호인 측과 조율하다가 돌연 방침을 바꿨다.
김 전 차관 측은 이에 반발, 이날 곧바로 변호인의견서를 경찰청에 제출했다.
CBS노컷뉴스가 단독입수한 이 의견서에는 특수강간 혐의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담겨 있다.
변호인 측은 김 전 차관이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윤중천(52) 회장과 함께 범행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의견서에 "흉기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부분은 가능성 자체가 배제된다"면서 "또 윤 회장과 합동범으로 처벌을 받을 정도로 실행 행위를 분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었다.
이에 따라 친고죄인 준강간이나 준강죄추행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변호인 측은 이조차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변호인 측은 "이 사건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간)이 아니라 형법상 준강간 또는 준강제추행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행 형사소송법 203조에 따르면 친고죄인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은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내에 고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공소권이 없다는 것.
논란의 핵심인 별장 성접대 사건은 최소 6개월 이전에 있던 일이어서, 고소가 있다 해도 '공소권 없음'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변호인 측은 "경찰이 동영상 혐의나 뇌물 혐의에 대해 수사하다 벽에 부딪히자 무리하게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하려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앞서 경찰은 김 전 차관에게 지난달 29일부터 네 차례에 걸쳐 출석요구서를 보냈지만 모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체포영장을 신청하기로 하면서, 석 달째를 맞는 성접대 의혹 수사도 본격적인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특히 경찰의 강제 구인 방침에 사건을 지휘하는 검찰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2vs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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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교관의 사표, 정부 신상필벌을 묻다
‘한일정보협정 책임론’ 조세영 前국장, 1년 보직 못받다 끝내 옷벗는 선택
일각 “고위층 대신 실무자 희생양 삼기… 어떤 공무원이 나라위해 몸던지겠나”
[동아일보]
신상필벌(信賞必罰)이란 말이 있다.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뜻이다.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하는 일은 국가경영의 기본으로 일컬어져 왔다. 한 엘리트 중견 외교관의 사표가 ‘정부의 신상필벌 원칙은 무엇이고,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다.
지난해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밀실처리 논란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던 조세영 전 외교부 동북아국장(52·외무고시 18회)이 최근 사표를 낸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조 전 국장은 지난해 6월 외교부가 ‘상반기 내에 일본과 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다’는 이명박정부의 방침에 따라 국무회의에서 협정안을 비공개 처리했을 당시 실무 책임자였다.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는 민감한 내용을 충분한 공론화 절차도 없이 서둘러 밀실 처리했다는 여론의 비판이 거셌다. 그 책임의 1차 화살은 이른바 ‘정권 실세 중 한 명’이던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을 향했다. 그 무렵 익명의 청와대 고위인사가 조 전 국장의 실명과 함께 그의 책임론을 한 언론에 거론했고 외교부는 곧바로 조 전 국장을 직위 해제하고 본부 발령 조치를 내렸다.
조 전 국장은 그 후 1년간 아무 보직 없이 대기 발령 상태였다. 이명박정부도, 박근혜정부도 그에게 ‘책임의 끝’이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고 사실상 방치했다. 외교부의 대표적 아시아통이자 ‘에이스 외교관’으로 평가받던 그는 결국 스스로 옷을 벗는 선택을 했다. 그의 사의를 말렸던 한 지인은 “아무런 기약 없이 손놓고 대기하면서 세금으로 나오는 월급을 받을 수 없다는 조 전 국장의 생각이 확고했다”고 전했다.
조 전 국장의 사표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정부 안팎에서는 몇 가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그의 죄가 무엇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한 중견 외교관은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국익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청와대와 외교부 내에 있었다”며 “그 추진 방식(밀실 처리)만 문제된 것인지, 아니면 그런 공감대 자체도 문제인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국민대 행정학과 홍성걸 교수는 “정권의 주문을 집행하던 관료가 나라를 위해 더 일할 기회만 놓치게 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 사안은 상과 벌이 공정한지도 묻고 있다. 지난해 당시 민주당은 “청와대와 국무총리, 주무 장관인 외교 및 국방 장관이 책임져야 할 일을 일부 실무자에게 떠넘긴 국민 기만 조치”라고 비판했다. 협정의 비공개 처리를 보고받아 경고 조치를 받았던 안호영 외교부 1차관은 이번 공관장 인사 때 주미대사로 영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조 전 국장의 사표 소식을 접하고 ‘억울하면 더 높이 출세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정치적 부담이 있는 사건이 터지면 ‘꼬리 자르기’식 책임 추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한 당국자도 “이런 식으로 공무원을 쓰고 버리면 앞으로 누가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 온몸을 던지겠는가”라고 말했다. 조 전 국장은 9월부터 지방의 한 대학에서 특임교수로 활동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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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 “글로벌 이슈, 한국 포함 D-10체제로 풀어라”
고든 컨설팅사 대표-자인 연구원, WSJ에 ‘G8은 잊어라…’ 기고
[동아일보]
세계 각국이 북한, 시리아, 이란 등 국제 사회 현안에 잘 대처하려면 참가국 간 의견조율이 잘 안 되는 ‘주요 8개국(G8)’ 체제 대신 미국이 한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가장 가까운 우호 관계’에 있는 9개국과 ‘D(Democracies)-10’ 체제를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컨설팅회사 유라시아 그룹의 데이비드 고든 연구부문 대표와 애시 자인 독일 마셜펀드 연구원 겸 전 미 국무부 정책기획관은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G8은 잊어라. 이제 D-10의 시대가 왔다’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이들은 기고문에서 “G8 정상회담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시리아 내전, 이란과 북한의 핵무장 등 현재 세계가 당면한 현안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며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중국과 러시아가 번번이 G8이나 안보리의 공동 행동을 무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은 세계 안보 위협에 대처하려는 열의가 있고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국가들과 새 협력체제 D-10을 만들어야 한다”며 참가 대상국으로 한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호주 유럽연합(EU) 등을 들었다.
고든 대표와 자인 연구원은 “D-10 참가국의 국내총생산(GDP) 총합이 세계 전체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군비지출도 세계 전체의 4분의 3에 달한다”며 “미국이 이들 나라 외교장관을 모아 하루빨리 D-10 체제를 정식 출범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D-10 체제의 장점으로 북핵과 이란 등 특정 현안에 맞서 쉽게 공조 체제를 구성할 수 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유럽의 우호국을 함께 챙길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일례로 이란에 대해 효과적으로 제재하려면 미국과 EU만으로는 역부족이며 이란 원유의 주요 수입국인 한국과 일본의 도움이 있어야 효과적이란 점을 들었다. 중국의 급부상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교역량이 많은 EU와의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다만 고든 대표와 자인 연구원은 “D-10에 포함되지 못하는 브릭스(BRICS) 등 신흥 강대국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D-10의 대외 홍보는 피해야 한다”며 “공식 사무국이나 회의 장소를 선정하지 말고 각국 외교장관 간 비공개 전략협력 회의로 운영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미국이 D-10 체제에만 의존해 유엔 중국 러시아 주요 20개국(G20) 등과의 관계를 등한시해선 안 되며 특히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브릭스 5개국과도 심도 깊은 양자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든이 속한 유라시아그룹은 1998년 설립된 세계적인 정치컨설팅회사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워싱턴, 영국 런던, 일본 도쿄에 사무소를 두고 세계 각국 정부 및 수많은 기업에 다양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미시간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프린스턴대, 조지타운대 등에서 강의했던 고든은 2009년 유라시아그룹의 연구부문 대표가 됐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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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지역서 전학 온 급우에 “빨갱이 척결”
온라인 욕설 맹목적 전파… 10대들 ‘묻지마 지역감정’
[동아일보]
이진성(가명·14) 군은 충격을 받았다. 전학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는커녕 더 멀어지는 기분이다. 최근에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 “야, 냄새 나. 이쪽으로 오지 마.”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이 군은 하루에 두 번은 샤워를 한다. 이런 그를 두고 친구들은 왜 냄새가 난다고 할까. 왜 걸핏하면 툭툭 치고, 말을 걸어도 대답을 잘 안 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얼마 전 전학을 와서다. 서울의 A중학교로 전학 온 다음 날, 반에서 힘 좀 쓴다는 친구 한 명이 그를 불렀다. “너한테 홍어 냄새 난다.” 홍어는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전라도 출신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때부터 다른 친구들도 놀림 대열에 동참했다. 자연스럽게 왕따 분위기가 생겼다. 그리고 얼마 뒤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이 군은 말수가 부쩍 줄었다. 심각하진 않지만 대인기피증까지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아들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 영문도 모르면서 지역감정 표현 남발 10대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습득한 특정 지역에 대한 거부감을 실제 생활에서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영문도 모르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10대가 늘고 있다. 이른바 ‘묻지 마’ 식 지역감정이 청소년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
이처럼 상황이 악화된 것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특히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와 ‘오유(오늘의 유머)’ 등 10대가 몰리는 사이트들이 대표적이다. 겉으론 보수(일베), 진보(오유)를 외치지만 극단적인 표현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때가 많다. 이를테면 오유에 ‘부정선거 정황에도 경상도는 침묵한다’는 등 맹목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글이 이어지는 식이다. 일베에 글을 자주 남긴다는 중학생 김모 군(14)은 “그냥 재미있는 놀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쓰는데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기자가 서울의 B중학교로 찾아간 11일. 많은 학생이 지역감정과 연관된 단어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렸다. 10명 중 7명은 ‘빨갱이’, ‘홍어’, ‘노운지(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비하하는 표현, 운지는 추락을 의미하는 인터넷 은어다)’ 같은 단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봤다. 한 학생은 카카오톡 창에 ‘빨갱이 척결’이라 적었다. 혹시 부모님이 경상도 출신일까. 대답은 이랬다. “그냥 유행처럼, 재미로 쓰는 건데…. 이유는 없어요.”
이 학교 정모 교사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문제라고 했다. “아이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글을 남기면서 특정 지역 관련 욕설을 스펀지처럼 흡수해요. 수요자가 그대로 전파자가 되면서 묻지 마 지역감정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셈이죠.”
○ 왜곡된 지역감정, 장기적으로 더 위협적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선 10대의 왜곡된 지역감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따르면 대선 기간 10대들이 작성한 특정 지역 비하 글은 그 전의 대선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늘었다. 네이버 관계자는 “10대의 표현은 매우 적대적이고 과격한 게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의 A사립대에선 축제 기간에 전라도 지역을 비하하는 현수막이 올라왔다. 비난이 쏟아지자 슬그머니 내렸다. 학교 총학생회 관계자는 “문구를 만든 학생이 습관처럼 쓰던 말을 적었다가 생긴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올해 초 케이블의 게임 전문 채널에선 선수가 닉네임으로 ‘북괴멀티전라도’라고 쓴 게 그대로 방송에 노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신종호 서울대 교수(교육학과)는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표현은 10대에겐 장기적으로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내재된 지역감정은 전통적인 지역감정보다 더 풀기 힘든 ‘신(新)지역감정’으로 악화될 개연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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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인 가족시대 ‘장수의 위험’은 전세계적 문제”
■ 美 최고 연금전문가로 꼽히는 캘러머리디스 푸르덴셜 부사장
[동아일보]
미국 금융그룹 푸르덴셜의 퇴직연금 분야 수석 부사장인 제이미 캘러머리디스(사진)는 미국에서 최고의 연금 전문가로 꼽힌다. 국제보험회의(IIS) 서울 총회 참석을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캘러머리디스 부사장은 1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자산이 감당할 수 있는 기간보다 더 오래 사는 ‘장수의 위험’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수명이 늘어난 것이 문제인 이유는 대비가 안 됐기 때문. 캘러머리디스 부사장의 진단을 들어보면 선진국인 미국도 심각한 상황이다.
캘러머리디스 부사장은 “미국인 중 절반만이 노후를 대비해 연금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또 “100인 이하 사업장 중 75%는 퇴직연금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캘러머리디스 부사장이 지적한 가장 불안한 사람들은 중산층.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대비가 충분하지 않은 데다 공적 연금의 혜택도 별로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후 대비가 안 된 사람들은 일을 그만뒀을 때 바로 위기에 직면한다. 특히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거나 사고를 당하면 생활은 더욱 궁핍해진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캘러머리디스 부사장은 “노후 대비가 부족한 것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처럼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경고했다.
캘러머리디스 부사장은 “은퇴하기 20년 전부터는 은퇴 후 받을 연금을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전 자산과 위험 자산에 골고루 투자했던 사람도 이때부터는 보수적으로 자산을 관리해야 한다. 은퇴하기 10년 전인 사람이라면 더욱 철저하게 자산을 지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55세 전후로 은퇴하는 한국인들은 30대 중반, 늦어도 40대 초반부터는 은퇴 자금을 모으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후 대비의 필요성’은 수없이 강조되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일부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그렇다. 캘러머리디스 부사장은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미래의 나’를 ‘내’가 아닌 ‘타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도 언젠가는 반드시 은퇴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1인 가구가 늘고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노후가 더욱 불안해졌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모여 살며 서로 도왔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안전망을 구축했다. 캘러머리디스 부사장은 “지금은 나에게 위험이 닥쳐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을 갖고 살 수밖에 없다”며 “보험회사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진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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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20代를 이해하기까지 꼬박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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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웅 기자 |
[어수웅 기자의 북앤수다]
'80년대' 연재하는 최영미
-등단 20년 만에 쓰는 '80년대'
소설 제목 '토닉 두세르'는 명품 화장품의 화장수 이름
'운동 주변인' 여대생 고백 담아… 초고는 1988년에 쓴 4500장
-'386'을 대변하는 소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두고 '운동은 끝났다'고 해석하는데
난 '운동' 제대로 한 적 없다 '불완전한 개인' 말하고 싶을 뿐20년 동안 전업작가로 모든 주제를 사양 없이 쓰면서도, 시인 최영미(崔永美·52)는 단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원고 청탁을 거절해 왔다. '80년대'다. 그랬던 시인이 80년대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문예 계간지 '문학의 오늘' 여름호에 연재를 시작한 장편 소설 '토닉 두세르'다. 토닉 두세르는 랑콤의 화장수 이름. '80년대 운동권'과 '명품 화장품'이라는 기우뚱한 조합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지만, 이런 생각도 함께 들었다. 후일담 문학도 시효를 지난 시대, "아직도 386인가?"
―우선 결심을 바꾼 이유부터.
"전제가 있다. 나는 386을 대변하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학생 운동은 끝났다'로 읽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말하는데, 아니다. 근본적으로 난 개인주의자다. 시집 출간 이후 386에 대해 써달라는 청탁이 계속돼 왔다. 당연히 쓸 수 없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이 책의 초고(草稿)는 1988년, 200자 원고지로 4500장 분량을 썼다. 그리고 25년 동안 주물러 왔다."
―운동권의 386 후일담 문학은 숱하게 많다.
"기존 후일담 문학은 운동의 전선(前線)에 있던 사람만을 다룬 게 아닐까. 주변부 개인의 내면으로 들어간 작품은 만나기 어려웠다고 본다. 386이란 단어로 그 세대를 뭉뚱그리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다. 나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눈치 보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겠다' 다짐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모든 욕망을 대의에 투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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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의 새 소설에는 자전적이라 오해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하지만 작가는“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라면서“80년대는 단지 배경일 뿐, 소설로 읽어달라”고 했다. /이진한 기자 |
소설은 80년대 운동권 주변부에 있던 여대생 진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토닉 두세르'는 진주가 사용하는 브랜드. 연재물 1회에서 진주는 "투쟁의 현장에서 멀어진 죄의식을, 혁명의 나라에서 수입한 꽃향기와 방부제가 덮어주었다"고 했다.
―운동권 여대생과 랑콤 화장품은 얼핏 어울리지 않는데.
"바로 그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80년대가 요구하는 대로 세상을 산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큰 강물이 흘러가면 그 주변에는 여러 작은 물줄기가 있는 법이다."
―대학생 최영미에 대한 고백인가.
"나는 늦된 아이였다. 대학교 1학년을 고등학교 4학년처럼 보냈다. 80학번(서울대 서양사학과)으로 입학하자마자 광주가 터졌는데, 운동권 언어는 너무나 생소했다. 투쟁, 모순, 매판자본…. 주변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나는 늘 주눅 들어 땅을 내려다보며 다녔다. 1학년이 끝날 무렵, 처음으로 서클(고전연구회)을 시작했다. 적(籍)은 뒀지만 운동에서는 늘 주변인이었다."
당시 운동권 여학생의 전형적 패션이 있다. 화장기 없는 짧은 커트머리, 헐렁한 윗도리에 치마는 금물. 그런데 여대생 최영미는 긴 머리에 레이스 달린 치마를 입고 다녔다. 자신은 '탐미주의자'라 믿었고, 친구들은 '너 운동권 맞느냐'고 물었다. '소극적 운동권'이었던 최영미가 기억하는, 몇몇 미묘한 순간들이 있다. 이념과 명분이라는 완강한 보도블록 틈새에서 수줍게 솟은 풀잎 같은 순간들.
―2학년 때 무기정학까지 받지 않았나.
"남학생에게 돌 주워주다 경찰 사진에 찍혔다. 철학과, 사범대 친구랑 함께 걸렸다. (웃으며) 우리가 '미녀 3총사'로 불리던 시절이다. 일단 잡혀가면 무조건 정학 먹을 때였다. 관악서 유치장에 수감됐는데, 밤이 되니까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저쪽 유치장 남학생들이 간수에게 부탁을 한 거다. 우리랑 미팅 시켜달라고. 알고보니 의대 신입생들이었다. 선배인 우리 '미녀 3총사'가 꾸짖었다. 정신이 틀려먹었다고."
―소설은 '19세 이하 불가' 문장도 많더라. 1980년대 성(性)의 미시사(微視史)라 불러도 되겠다.
"대학 3학년 때인가. 여학생끼리 포르노 비디오를 빌렸다. '최소한 뭔지는 알아보자'는 데 의기투합한 거지. 보는데 '오럴 섹스'라는 표현이 나왔다. 함께 본 4명 중 1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중 하나가 '입으로 EDPS(음담패설)하는 거 아니야?'라고 묻더라. 이게 당시 내 주변 여대생들의 수준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소설 속 진주도, 당신도 결혼과 운동 사이에서 결혼을 선택했다.
"그때 운동권 여대생들은 취업, 결혼, 운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20대 전반을 이 고민으로 보냈다. 운동할 자신은 없으니, 운동하는 사람 아내가 되어 뒷바라지나 하자고 선택한 결혼이었다. 결국 실패했다. (웃으며) 혼인신고를 한 적은 없으니, 법적으로는 미혼이지만. 지금의 20대는 이해하기 힘들 거다. 나도 나를 이해하는 데 30년 걸렸으니까. 그게 희생이었을까. 정확히 맞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시대에 눌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을 통해 나 자신을 치유하고, 나처럼 아팠던 청춘도 위로하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역사는 집단의 기억을, 문학은 개인의 기억을 그린다. 최영미는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보다 더 정확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자칭 회색인이 자신의 상처와 흉터에 대해 눈치 보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는다면, 우리는 80년대에 대한 새롭고 의미 있는 벽화 하나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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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도, 조용필도, 갓 데뷔한 세븐틴도… 더 쉽게, 더 빨리 전 세계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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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뮤직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한 조용필 컴백 쇼케이스. |
ㆍ소셜라이브서비스, 소통·저비용·배포력 강점에 적극 마케팅 ‘신 한류 채널’로지난 4월23일, 10년 만에 가요계로 돌아온 조용필(63)은 19집 앨범 <헬로>의 쇼케이스(음반 공개행사)를 네이버 뮤직을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10대 아이돌 그룹에서나 볼 수 있는 파격 행보였다. 1시간여 동안 전 세계로 생중계된 이날 쇼케이스는 25만여건의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했다. 잠실주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5차례 공연한 것과 같은 수치다.
‘가왕’ 조용필부터 갓 데뷔한 신인가수까지…, 가요계가 ‘소셜라이브서비스(SLS) 마케팅’에 푹 빠졌다.
SLS 마케팅이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 누구나 방송을 시청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실시간 생중계 플랫폼’을 이용한 마케팅을 말한다. SNS 시대를 맞아 유튜브나 유스트림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TV와 라디오를 넘어 가수들의 홍보무대로 각광받고 있다. 음반 발매와 동시에 컴백 쇼케이스를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일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특정 플랫폼에 자신만의 채널을 만들어 팬들과 직접적으로 스킨십에 나서기도 한다. 유스트림은 스마트폰으로 앱을 다운로드받아 촬영해서 곧바로 올리면 된다.
싸이(36)는 SLS로 재미를 톡톡히 본 대표적인 가수다. ‘강남스타일 신화’ 자체가 유튜브란 동영상 플랫폼이 없었으면 탄생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월드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 이미 SLS를 친숙하게 이용했다. 동영상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유스트림’으로 생중계된 지난해 10월5일 서울시청 앞 공연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날 공연은 무려 145개국에서 160만건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시청 앞에 실제로 모인 관객이 8만명이었으니, 싸이는 이날 서울광장 12배 규모의 콘서트장에서 전 세계 팬들을 모아 놓고 공연한 것과 같은 홍보 효과를 거둔 셈이다.
싸이는 ‘젠틀맨’ 컴백 무대도 SLS 방식을 택했다. 4월13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컴백 공연 ‘해프닝’은 유튜브와 네이버에서 실시간 중계되며 1시간 만에 12만명의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하고, 10만건 넘는 댓글이 달린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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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싸이 콘서트는 145개국에서 유스트림 생중계를 통해 지켜봤다. |
아이돌 가수들에게 SLS는 더 없이 효과적인 ‘글로벌 홍보 채널’이다. 전 세계 팬들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신들의 음악과 콘텐츠를 알리는 일이 더욱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인기그룹 2AM은 지난 3월 정규 앨범 발매에 앞서 유스트림을 통해 정규 앨범 컴백 쇼케이스를 전 세계에 중계했다. 2AM은 지난해 3월에도 미니앨범 쇼케이스를 유튜브로 41개국에 생중계한 바 있다. 또 지난 2월, TV 대신 인터넷을 컴백 무대로 선택한 샤이니의 3집 쇼케이스는 네이버 뮤직 생중계를 통해 1시간 공연에 12만명의 팬을 불러모았다.
소통 기회가 부족한 신인들에게 SLS는 필수에 가깝다. 신인가수의 경우 정식 음반 발매 이전부터 SLS 플랫폼에 공식 채널을 열고 정기적인 방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팬들과의 접점을 늘려나가는 것이 ‘홍보의 ABC’가 됐다.
신인 아이돌 그룹 세븐틴은 정식 데뷔 전부터 유스트림에 공식 채널 ‘세븐틴tv’를 개설하고 필리핀, 일본 등 외국 팬들과 소통 중이다. 세븐틴은 특히 시청자들과 함께 트레이닝을 받는 예능형 프로그램을 매주 2회 직접 생방송하며 국내외 팬들에게 인지도를 쌓았다.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 톱10 출신인 샘 카터가 소속된 루나플라이 역시 유스트림 공식 채널에서 해외 팬들에게 댓글로 실시간 사연과 신청곡을 받는 방송을 격주로 진행 중이다.
SLS를 이용한 ‘라이브 팬 채팅’은 전 세계 팬과 소통하는 ‘한류 창구’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 뉴저지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K팝 영문 뉴스 사이트 ‘올케이팝(allkpop.com)’이 유스트림에서 진행한 걸스데이의 라이브 팬 채팅은 101개국 팬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이 같은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올케이팝은 앞으로도 국내 아이돌 그룹과 함께 라이브 팬 채팅을 정기적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난 2월 개설된 아리랑TV 유스트림 채널도 한류 팬을 겨냥한 K팝 가수들의 ‘효과 만점’ 홍보 창구다. 특히 에릭남과 한별이 진행하는 ‘애프터 스쿨 클럽’은 다양한 K팝 소식을 전하고 아이돌 스타를 초대해 전 세계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소병택 유스트림 코리아 본부장은 “지상파 음악방송 시청률이 점점 감소하는 반면,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콘텐츠 다운로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아무런 제약 없이 전 세계 팬들과 만날 수 있는 SLS 마케팅은 가수들에게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으며, 가요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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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EXO가 유스트림을 통해 필리핀 팬들과 화상대화하고 있다. |
< 조진호 기자 ft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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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커피 마시다 녹차 잊었다
위기의 녹차 … 해마다 축구장 100개 면적 밭 사라져
농약 파동 후 커피에 입맛 뺏겨
"요즘 스님들도 녹차 대신 커피"
지난 주말 녹차의 수도로 불리는 전남 보성군의 대한다원 녹차밭을 찾았다. 4월 하순께(곡우) 첫잎을 따낸 녹차밭에선 다시 돋은 새순이 초록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새순을 따는 일손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지난겨울 한파에 누렇게 얼어 죽은 녹차나무 흔적만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또 몇 해 전 영화·TV 광고 등의 촬영 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차장을 가득 메웠던 관광객도 온데간데없었다. 대한다원 주용로 공장장은 “요즘 녹차 소비가 줄어 전체 60만 평의 녹차밭 중 40만 평을 방치해 두고 있다”며 “관광객도 확 줄어 가끔 사진 찍는 사람만 찾는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녹차가 커피에 완전히 밀리면서 잊혀진 존재가 돼 버렸다”며 “요즘 녹차 농가에는 한파보다 더 무서운 게 커피”라고 말했다.
최근 커피가 호황을 누리고 메밀차·마테차 등 건강 기능성 차까지 잇따라 출시되면서 녹차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녹차는 2004년만 하더라도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곳에서 한 해 1667억원어치가 팔렸다. 하지만 지난해 판매액은 663억원어치가 전부다. 커피를 제외한 전체 차 제품 중 녹차의 판매 비중도 한때 90%(2004년)에 육박했지만 지난해에는 51%로 뚝 떨어졌다.
이에 따라 보성군에서는 한때 1100㏊에 육박하던 녹차 재배지가 지난해 1063㏊까지 줄었고 1500t을 넘나들던 녹차 생산량도 1200t을 밑돌고 있다. 하지만 녹차 재배지 감소보다 더 심각한 것은 대한다원처럼 방치되는 녹차밭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치된 녹차밭은 정부의 통계상에는 재배지로 잡히지만 실제로는 녹차 농사를 포기한 땅이다. 보성군의 한 관계자는 “보성군 내 전체 차밭의 30% 이상이 방치되고 있고 해마다 방치 면적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원예산업과의 한 관계자는 “보성은 물론 보성과 함께 3대 녹차 생산지로 꼽히는 경남 하동이나 제주 등에서도 밭은 그대로인데 잎을 따지 않는 녹차밭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녹차 농가들 사이에서 수년 전부터 “매년 축구장 100개 정도의 녹차밭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보통 산비탈에 위치한 녹차밭이 방치될 경우 잡초가 무성해져 다시 녹차 수요가 살아나도 좋은 품질의 찻잎을 수확하기가 어려워진다.
녹차는 1990년대 들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소비자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비만이나 암 예방 효능이 알려지면서 90년대 후반부터는 생산량이 증가했다. 실제로 2002년 518㏊의 녹차밭에서 960t을 생산하던 보성군은 2006년에는 1111㏊에서 1572t을 생산했다. 전국적으로도 2008년 3774㏊의 재배지에서 3936t이 생산될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녹차는 급격히 추락한다. 먼저 농약파동이 결정타였다. 당시 녹차 소비가 크게 증가하자 중국에서 수입량이 급증했다. 이 중 농약 성분이 남아 있는 녹차가 섞여 들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녹차 전반으로 소비자의 불신이 확산된 결과다. 또 커피와 달리 마시는 절차가 복잡하고 마신 뒤에는 찌꺼기가 남는 등 녹차가 간편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한 측면도 있다. 고려대 생명공학연구소 오미정 교수는 “농약이 과다 사용된 녹차가 유통되면서 신뢰를 잃었고 때마침 다국적 커피까지 잇따라 들어와 외면받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커피는 파죽지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커피 수입량은 계속 증가세다. 2011년에는 수입량이 13만t을 돌파했다. 이를 커피잔으로 환산하면 18세 이상 전체 성인 남녀가 연간 338잔을 마셨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의 모든 성인 남녀가 하루 한 잔을 마신다는 얘기다. 글로벌리서치기관인 닐슨컴퍼니에 따르면 커피믹스 시장이 1조2000억원, 커피 음료가 9000억원, 커피전문점 시장이 1조원대로 커졌다. 반면 대형마트 등을 포함한 전체 녹차 시장 규모는 커피의 10분의 1 수준인 2000억~3000억원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쯤 되면 녹차가 커피에 완패한 셈이다. 보성에서 만난 한 녹차 생산자는 “요즘은 햇녹차를 싸들고 절에 가도 스님들이 녹차는 쳐다도 안 보고 커피만 찾을 정도”라고 한탄했다. 차 문화를 대변했던 사찰에서까지 차 대신 커피를 마실 지경에 이르렀다는 푸념이다.
보성=장정훈 기자